
Aesop's Fables (이솝 우화)라는 책은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의 책꽂이에서 처음 발견한 책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 책은 모든 사람이 강력하게 추천하는 도서 중 하나다.
그 후 어른이 되어 영어로 된 이솝우화를 읽어 볼 기회가 있었다. 놀란 것은 철이 들어서 만이 아니었다. 내용이었다. 솔직하게 그 내용 중에는 불건전한 것들이 많다. 심지어 '예쁜 아이는 죽여야 한다'는 등의 내용도 있다.
사실 고전 작품을 읽다 보면 이런 경험을 자주 하게 된다. 모든 작품은 그 시대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 시대를 이해하지 못하면 작품을 제대로 해석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오늘의 판단으로 모든 과거의 문화를 불살라야 하는가?
요즘 미국에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사라지고 있다.
워너미디어(Warner Media)의 HBO맥스가 이 작품을 상영 목록에서 빼버린 것이다.

미국 영화사에서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인종차별 논란에 휘말려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흑백 차별과 노예제도를 미화(?)했다는 것이다. ‘노예 12년’으로 유명한 존 리들리가 LA타임스 칼럼을 통해 공개 비판하자 HBO가 곧바로 상영목록에서 빼버렸다.
왜 그랬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흑인의 삶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미네소타 주에서 흑인인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폭력으로 사망한 게 계기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노예제도를 미화한 작품을 아무 설명 없이 상영하는 게 옳으냐는 것이 리들리의 주장이었다. HBO맥스는 이 주장에 동의한다면서 바로 조치를 취했다.
그렇다면 영화 ‘신데렐라’는 어떤가? 모든 새 엄마는 ‘나쁜 사람’이란 편견을 심어줄 수 있는데? 역시 그건 그 당시 시대 상황 때문에 탄생한 동화라는 친절한 설명을 굳이 붙여야 할까? 오늘의 이슈를 들고 과거를 확인 사살(射殺) 해야 한다면 그럼 역사는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서울의 중앙청 건물로 사용하던 조선총독부 건물이 우리 시야에서 사라진 지 오래 되었다. 김영삼 문민정부가 '역사 바로 세우기'한다면서 1993년 11월 이 건물의 철거를 확정했다.
이에 김동길 교수는 그 당시 칼럼을 통해 “해방 이후 줄곧 중앙청으로 쓰이던 구 총독부 건물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을 보고 어이가 없다는 느낌이었다”며 “당시의 대통령이 김영삼 씨였는데 우리가 "역사적 건물을 헐어버리면 안 됩니다"라고 여러 번 탄원을 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고 했다.
“그 건물은 일제 시대에 지어져 총독부로 쓰이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건물의 설계자는 독일인이었고 그 건물의 돌을 지어다 나른 사람들은 다 한국인이었다”고 말했다.
또 “민족정기를 살리기 위해 헐었다고 변명을 할는지 모르지만 오히려 총독부 건물은 이 겨레의 민족정신을 살리기 위해 반드시 그 자리에 있어야 만 한다고 믿는다”면서 “나라 일을 그 건물 안에서 보고 싶지 않다면 독립기념관을 멀리 천안에다 지을 것이 아니라 그 건물을 독립기념관으로 정하고 찾아오는 모든 일본 사람들로 하여금 한번 꼭 들리게 만들었다면 민족의 정기가 더욱 앙양되었을 것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독일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아마 독일이 가장 부끄러워하는 역사는 '나치독일'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무자비한 학살의 증거가 되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치욕의 장소이자 없애버리고 싶은 역사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분이 그곳을 방문하는 중이었는데 놀란 것은 수학여행을 온 독일 고등학교 학생들이 있더라는 것이다.
자기 선조들이 저지른 잘못을 배우기(알기) 위해 자기 나라인 독일인의 수치스런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고 있었다. 독일인이 저지른 만행을 폴란드인 박물관직원으로부터 진지하게 설명 듣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2019년 12월 6일에는 마테우시 모리비에츠키 폴란드 총리와 함께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찾아 과거 화장장이 있던 자리에 헌화하고 고개를 숙였다.
메르켈은 이날 연설에서 “나치가 저지른 범죄를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며 “책임 인식은 독일의 국가적 정체성”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야만적 범죄에 부끄러움을 느낀다”며 “슬픔을 다 표현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독일 총리가 나치 만행의 현장에서 영원한 기억과 시효 없는 반성을 다짐한 것이다.
뿐 아니라 독일의 연방정부와 지방정부는 6000만 유로를 기부해 아우슈비츠 수용소 보전(保全)에 쓰게 할 방침이라고 했다.
이스라엘, 자기 국민 600만 명을 학살한 나치독일이 얼마나 미울까?
그래서 이스라엘은 [유대인 대학살 기념관]을 지었다. 유대인 대학살 기념관의 이름은 ‘야드 바쉠(Yad Vashem)’이다. 그 뜻은 ‘잊지 말라’이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있는 기념관 입구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용서하라, 그러나 잊지 말라.{Forgive, not forget)"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이란 책의 뒷부분에서 사람들이 간과 하지 말고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성경의 예수님처럼 행동할 때만이 우리의 음울한 예감을 극복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한나 아렌트는 역사의 환원 불가능성에 대한 유일한 치료제는 바로 용서라고 말한다. 또 그 다음 장에서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가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 대통령 공공 문서: 린든 존슨(Lyndon B. Johnson), 제1권(1965년), 281쪽을 보면 다음과 같은 존슨 대통령의 연설내용이 있다.
"흑인의 문제란 없습니다. 남부의 문제도 없습니다. 북부의 문제도 없습니다. 오로지 미국의 문제가 있을 뿐입니다. 오늘 밤 우리는 민주당원이나 공화당원으로서가 아니라 미국 국민으로서 이 자리에 모였으며, 이 문제를 해결할 미국 국민으로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러면서 “만인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시민이 인간의 존엄성을 함께 누릴 것이라는 약속"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 했다.
지금 미국이나 세계가 겪고 있는 모든 문제는 모든 인류 전체의 문제이다. 민주당의 문제도 공화당의 문제도 아니다. 자기 정당의 유익을 위해 분란을 책동촉발(策動促發)하는 어리석은 망발이 있어서는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