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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 2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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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요 / 심플리 선데이
문득 스치는 기억에 머물러 영원을 약속했었죠 가까이와 있었는데
원곡은 Henry Clay Work(1832-1884)이 1876에 지은Grandfather's Cl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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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에 모질게 휘몰아 친
눈보라가
저 나뭇가지를 얼마나 아프게했을까.
그러나
의연한 모습으로 봄을 기다리는데.(언)
서대문 형무소에서의 유관순
3.1 독립 운동 때의 순국 소녀
충남 천원군 목천면에서 태어나 1918년 미국인 여자 선교사의 소개로 이화 학당에 입학하였다.
이듬해 1919년 3월 1일, 3.1 운동이 일어나자 학생들과 함께 만세 시위를 벌였고, 학교가 휴교되자 만세 시위를 지도하기 위하여 고향으로 내려갔다. (일본은 1910년 8월 25일 한일 합병 조인을 통해 대한민국을 신민지화 했다.)
고향인 지령 마을로 돌아와서는 천안, 연기, 청주, 진천 등지의 학교와 교회 등을 방문하면서 만세 운동을 협의하여 세밀한 계획을 세우고, 1919년 음력 3월 1일(4월 2일) 아오내 장터에서 만세 운동을 일으키기로 의견을 모았다. 2월 그믐날 밤 각 마을로 신호를 보내기 위하여 어둠을 뜷고 지령산 매봉에 올라가 타오르는 횃불을 높이 쳐 들었다.
드디어 음력 3월 1일 정오, 장터에 모인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앞장서서 함께 대한 독립 만세를 소리높이 외쳤다. 만세 소리에 놀란 일본 경찰들이 만세 군중을 무자비하게 죽이자 군중들의 분노는 더욱 끓어 올라, 천안은 온통 독립 만세 소리와 군중의 물결로 뒤덮였다.
결국 그녀는 일본 경찰에 잡히고, 아버지 유중권과 어머니 이씨는 일본 헌병들에게 죽음을 당하였으며 집마저 불태워졌다. 공주 검사국으로 옮겨져 그 곳에서 영명학교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가 끌려 온 오빠 유관옥을 만났다. 그리고 3년형을 선고받자 항소하여 서울로 다시 옮겨졌다. 서울 법정에서는 재판 중 검사에게 걸상을 던져 법정 모독죄가 가산되어 7년형을 선고 받았다.
유관순은 옥중에서도 "나는 한국사람이니 너희들에게 재판 받을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재판을 거부했다. 서울 서대문형무소의 모진 고문 속에서도 투쟁 의지를 잃지 않고 만세시위를 전개했다.
"저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했습니다. 2천만 동포의 10 분의 1만
목숨을 내놓는다면 독립은 곧 될 것입니다."
1920년 10월, 꽃다운 나이 17살에 유관순은 순국하였으며 시신조차 거둘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 기념관의 묘는 시신이 없는 허묘(墟墓)로 남아 있다.
모교인 이화여고에 세워진 유관순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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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 신사 합사’ 문제를 다루는 국제 컨퍼런스가 뉴욕 맨해튼에 있는 컬럼비아대학에서 열렸다. 한국에서
알고 지내던 몇 분들이 왔기에 참석해서 저녁식사까지 함께 했다. 저 멀리 떨어진 테이블에서 한국과 미국의 청년들이 어울려 신나게 얘기하는 걸
보면서 부러워했다. 식당에서 나와 작별 인사를 하려는데, 미국 청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내 귀에 너무나 쏙 들렸다. 영어가 이제 들리기
시작하나? 아니다. 그가 한국말을 한 것이다. 발음뿐만 아니라 표현까지 유려하게 쓰는 것이 희한했지만, 백인이 야스쿠니 신사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도 호기심을 자극했다. 게다가 컬럼비아대학에서 한국 음악을 가르친다고 하니, 그저 인사만 하고 넘어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거의 한 달 뒤에 컬럼비아대학 근처 식당에서 다시 만났다. 그는 내가 자기보다 어린 줄 알았고, 나는 그가 나보다 한참 어린 줄 알았다. 그래서 청년이라는 표현을 썼던 것이다. 막상 주민등록증을 까보니(실제로는 없지만) 나보다 약간 어린 36살이었다.
그는 작년에 시카고대학 음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은 컬럼비아대학에서 포스트닥터 자격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김종희
일본군 성노예 생존자들의 노래 연구
조수아(Joshua Pilzer)는 워싱턴주립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으나, 대학을 졸업하고는 음악 활동을 하다가 대학원에서 음악인류학을 전공했다. 전공을 좇아 세계 각국의 토속 음악을 찾아서 듣던 중, 한국인 친구가 자기한테는 너무 어렵다면서 ‘시나위’를 들려주었단다.
기자가 “그룹 시나위 말인가요?” 하고 물었더니, 약간 기가 막히다는 듯 “아니 서태지 뭐 그런 거 말고, 굿할
때 하는 무속 음악 있잖아요” 한다. 아무튼 조수아는 시나위를 듣고 한국 음악에 빠져들었고, 특히 남도와 서도 음악에 뿅 갔다. 하와이에 한국
음악을 가르치는 교수를 찾아간 하와이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시카고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다. 석사 과정 중이던 1997년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의 전래 음악에 빠져서 지냈다. 개인에게 있어서 일상의 삶에서 음악이 어떤 의미가 있고, 삶과 음악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연구하다 보니 감각이 일반인들과는 다르게 발달될 수밖에 없는가 보다.
99년 텔레비전에서 일본군 성노예 생존자들(그는 ‘종군위안부’라는 표현을 안 쓴다고 했다)이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거기서 할머니들이 흥얼거리는 소리에 귀가 열렸다. 할머니의 목구멍 너머 그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한, 아픔, 흥겨움……, 뭐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이 환청처럼 들렸다. 그는 일본으로도 건너갔다. 할머니들이 유독 일본 노래를 많이 불렀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한국과 일본과
미국을 오가면서 공부했다. 연구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2002년 여름. 경기도 이천에 있는 나눔의 집에 아예 둥지를
틀었다. 3년을 이곳에서 지내면서 할머니들이 젊었을 때 자주 불러서 지금도 어렴풋하게나마 기억하는 노래들과 최근 즐겨 부르는 가요들을 일일이
녹음했다. 이렇게 전국을 돌면서 녹음한 구전가요나 민요가 500곡이 넘는다. 조수아는 틈틈이 할머니들이랑 텃밭도 가꾸고, 이곳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통역도 해주었다. 가끔 할머니들한테 배운 노래를 들려주기도 했다. 물론 일본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시위가 있을 때도 빠질 리가
없었다. 그는 나눔의 집에서 함께 자원봉사를 했던 일본인 사진작가 야지마 쓰카사와 함께 한국에서 몇 차례 전시회를 열었다. 쓰카사가 찍은 할머니들 사진에 조수아가 녹음한 증언과 노래를 붙이는 방식이었다.
해방, 남에겐 희망 나에겐
절망 그중에는 기막힌 사연이 담긴 것도 있었다. 여든이 된 이용수 할머니가 조수아에게 들려준 노래 제목은 ‘조종사의 노래’다. 1928년 대구에서 태어난 이용수 할머니는 아들 많은 집에서 외딸로 태어났다. 금지옥엽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라기에는 집이 너무 가난했다. 어려운 살림을 돕기 위해 공장에서 일하다가 해방되기 직전인 1944년 ‘좋은 곳에 취직시켜주겠다’는 일본인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대만에 있는 위안소로 끌려갔다. 그 위안소에는 가미가제 부대(자살 특공대로 알려진)원들이 들락거렸다. 할머니에게 ‘도시꼬’라는 일본 이름을 지어준 어떤 군인이 출정하기 전에 할머니에게 가르쳐준 노래다.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김순덕 할머니는 창부 타령을 부르곤 했다.
저마다 해방의 기쁨을 안고 제 살 집을 찾아 돌아가게 되었지만, 전쟁터에서 군인에게 몸을 빼앗긴 젊은 여자들은 돌아갈 곳이 없었다. 해방이 남들에게는 희망이겠지만, 이들에게는 절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고통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
할머니의 흥얼거림에는 개인의 슬픔과 민족의 아픔이 겹쳐져서 묻어 있었다. 우리 할머니들의 심장에서 새어나오는 이런 흥얼거림을 얼굴 하얗고 눈이 파란 이방인이 하나씩 둘씩 기록으로 남겨 놓는 작업을 몇 년간 했던 것이다.
조수아는 2002년부터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나눔의 집에서 3년간 할머니들과 같이 살면서, 할머니들이 평소 부르는 노래들을 일일이 녹음했다. 그렇게 기록에 남긴 것이 500곡이 넘는다. (Joshua Pilzer)
원폭 피해 입은 한인 생존자 노래 연구 계획 조수아는 딱딱한 논문 때문에 한국의 할머니들과 연을 맺었지만, 그 논문 안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이 담길 수밖에 없었다.
“내 학위 논문은 일본군 성노예 한국인 생존자들의 음악과 삶에 대한 연구이다. 이 여성들은 위안소에서 일본과 한국의 노래를 억지로 불러야 했다. 이들은 태평양과 동아시아, 동남아시아를 돌아다니면서 여러 나라의 노래를 듣고 불렀다. … 연구의 가장 큰 목표는 이 여성들의 음악을 체험의 기록으로서, 그리고 수난과 생존의 과정으로서 탐구하려는 것이다. 일본군 성노예
여성들의 경우 인간의 영혼이란 무엇인가, 영혼은 어떻게 수난을 당하고 음악을 통해 견뎌냈는가, 살아남고 자기를 규정하고 자기를 타인과 관련짓고
기억하고 잊고, 이런 과정에서 음악의 역할이란 무엇인가를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게 해준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 생존자 최 할머니의 삶과
음악’에서)
조수아는 캐나다에서 태어나서 미국에 자랐지만, 그의 부모는 폴란드 태생이고 유대인이다. 홀로코스트의 역사를 알고, 아우슈비츠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한국의 할머니들을 보는 그의 시선은 남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앞으로 식민지 시대의 강제 징용 및 강제 이주 생존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한인 원폭 피해 생존자, 월남 생존자 들을 만나서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노래가 자신들의 삶과 어떻게 호흡하는지를 계속 연구해나가려고 한다. 내년에는 일본군 성노예 생존자들의 삶과 노래에 대한 박사 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영어와 한국어로 된 단행본도 출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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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보고싶은
사람
당신의 음성이 들릴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중년
보고픈 사람이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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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월간중앙에 몇 차례에 걸쳐 연재로 게재 된 내용입니다. 필요한 부분만 발췌, 편집하여 여기에 싣습니다.(언)
IMF 외환위기 때 직격탄을 맞았던 샐러리맨이 11년 만에 또다시 위기를 맞았다. 경기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기업 구조조정의 칼날이 샐러리맨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몇 푼 안 되는 월급을 받기 위해 기꺼이 프로메테우스가 되는 샐러리맨. 이들은 누구이고, 또 이번 불황을 넘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변신해야 할까?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 이어령 고문으로부터 샐러리맨의 유래와 어원, 불황기 샐러리맨이 살아남는 법 등에 대해 들었다.(오효림 기자)
-이런 위기의 시대에 샐러리맨이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전처럼 어물쩍 조직에 편승해
상사한테나 잘 보여서는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연차가 차면 일률적으로 승진하고, 회사에 오래 머무르면 자동으로 대우받던 시대는 이미
사라졌죠. 경쟁의 벌판에서 한 사람 한 사람 능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예전 샐러리맨들은 시간이 남으면 취미생활을 했어요. 그런데 요즘 샐러리맨은 취미생활을 할 시간이 없습니다. 대신 시간이 나면 공부를 하죠. 현재의 직장에서 언제 잘릴지 모르니 다시 직장을 잡을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샐러리맨의 풍토를 빗댄 신조어가 ‘샐러리맨’과 ‘학생’의 합성어인 ‘샐러던트(Salardent)’입니다.” ‘only one’이
돼라 “우선 조직에서 ‘오직 한 사람(only one)’이 돼야 합니다. 비록 의사니 변호사니 하는 전문직은
아니지만, 조직 내에서 나 아니면 못하는 일을 하는 것이 계장이나 과장으로 승진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월급쟁이가 불황의 위기 속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전문직처럼 되는 것이죠. 또 회사 업무에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 외에 별도의 기술을 하나 정도 갖추는 것이 좋죠. 자격증을
따는 것입니다. 자격증이 있으면 경쟁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아지니까요. 둘째, 자기 브랜드를 만드는 것입니다. 요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전문직이든 샐러리맨이든 수천 명 가운데 자기를 확실히 차별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회사원은 수천 명의 사원 중에서 사원
누구, 계장 누구, 과장 누구로 기억될 것이 아니라 홍길동이면 홍길동, 김삼돌이면 김삼돌이라는 이름 석 자로 기억돼야죠. 또 어느
직장이나 부서에서든 부속품으로서 시키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독창적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업무를 개척해야 합니다. 자신만의 업무영역을 개척하고
스스로 브랜드화하면 어떤 회사, 어떤 부서에서든 전방위적으로 업무가 가능해 전직이 자유로워지기 때문에 승진 여부와 상관없이 일에서 보람을 찾을
수 있게 되죠. 회사 이름보다 자신의 이름 석 자가 더 유명한 ‘브랜드 사원’은 구조조정에서도 절대 잘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회사에 충성할 것이 아니라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셋째는 자기 특허 또는 지적재산권을 만드는 것입니다. 회사를 자신의 파트너로
삼는 것이죠. 즉, 회사에 예속돼 봉급을 받았지만, 회사에 많은 부를 벌어주는 파트너가 되면 아무도 못 건드리죠. 요즘 샐러리맨들은 최소한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인데 막상 취직해서 써먹는 지식수준은 고등학교 수준밖에 안 돼요. 회사에 다니며 박사 학위를 받든 독학을 하든,
어떤 식으로든 샐러던트가 돼서 지적재산권을 하나쯤 만들어 놓는 것이 필요합니다. 일본에는 샐러리맨이나 심지어 주부 중에서도 지적재산권을 소유한
사람이 많아요. 한 가정주부는 미용실 드라이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속옷건조기를 만들어 특허를 받아 말 그대로 ‘대박’을 터뜨린 예도
있죠. 샐러리맨이 이런 지적재산권을 하나쯤 갖게 되면 언제 잘리더라도 최소한 보험 하나는 들어둔 셈이 됩니다. 일단 실직자가 되면
이런 지적재산권을 만드는 것이 더 어려워요. 당장 먹고 살 벌이가 없기 때문에 불안해서 장기간이 소요되는 작업에 매달릴 수 없죠. 반면 회사원은
잘리기 전까지는 시간적·정신적 여유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죠. 이 세 가지를 못한다고 해도 최소한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해야 합니다.
최소한 취미생활이라도요. 취미로 배운 것이 언젠가 직업이 될 수 있는 세상이니까요. 직장에서 잘리기 전에 자기가 좋아하는 것, 못해본 것이
있으면 빨리 해보십시오. 회사에서 지금 하는 일 외에, 세상에서 내가 무엇을 하면 가장 보람을 느낄 수 있을지 숨은 재능과 취미를 찾아 그쪽을
계발하는 것이죠. 그렇게 하면 회사 눈치 안 보고도 당당히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런 사람, 이런 회사를
‘비저너리(Visionary)’라고 합니다.”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법을 말씀하셨는데, 반대로 고문께서 사장이라면
어떤 사람을 자르시겠습니까? “일에 대한 열정이 없는 사람들이죠. 금세 구분됩니다. 그런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답답해요. 열정적인 사람은 매사를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관찰합니다. 그렇게 관찰하다 보면 관심이 생기고, 그러면서 동료·상사·회사와 관계가
형성되죠. 그러면 내가 비록 사원일지라도 이 회사가 어떻게 가야 할지, 이 회사의 잘못된 점은 무엇인지 지적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사원은
절대 안 잘립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제일 먼저 잘리죠. 또 하나는 잘리기도 전에 “아이고, 나 잘렸어” 하는 사람들입니다.
구조조정 대상이 발표되기도 전에 자포자기하는 사람들이죠. 자신만만하게 일해도 잘릴 판인데, 이런 자기암시에 빠진 사람은 틀림없이 잘립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장미 가시에 한번 찔렸다고 장미 전체를 증오한다’는 속담에 속하는 사람들이죠. 일하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고, 또 상사한테 혼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툭툭 털고 다시는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지, 한번 야단맞은 것을 과장하고 정치화하는 사람은 조직에서 낙오하고 맙니다. 또 회사에서 제일 미움을 받는 사원은 가만히 있으면 평가받을 것을 제 공이라고 떠들고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때문에 절대로 공을 내세워서는 안 되고, 또 절대로 실패를 자기 몸 속에 두어서도 안 됩니다.”
“박지성 같은 샐러리맨
돼야” -미래사회에서 샐러리맨은 결국 어떻게 자리매김하게
될까요? “외롭지만 혼자 사는 세상이 왔습니다. 또 조직이 개인에게 아무런 보호망이 돼주지 못하는 대신 개인 스스로
자신의 삶을 재단하는 주인이 되는 보람 있는 세상이 왔다고 할 수 있어요. 남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 적응하는 인간이 아니라 스스로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창조적 인간을 요구하는 시대죠. 즉, 과거에는 샐러리맨도 시스템에 적응하느냐 못 하느냐가 관건이었다면, 지금은 어떤
조직에 속해 있느냐와 상관없이 스스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이냐 아니냐로 가치를 평가받죠.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면 평사원이 사장보다 더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이 고문은 샐러리맨을 오케스트라의 단원과
비교했다. “교향악단을 하나의 회사로 봤을 때 단원 한 명 한 명은 회사원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악기에 대한
전문가로서 책임지고 자신이 맡은 악기를 다루죠. 자기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면 오디션에서 떨어져 낙오할 수밖에 없고요. 이를 하나의 앙상블로
만들어 화음을 내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지휘자, 즉 사장입니다. 그런데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바이올리니스트에게 비올라를, 트럼펫
연주자에게 플루트를 연주하라고 하면 그 오케스트라가 되겠어요?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회사원의 80% 이상이 자신의 적성과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 사장의 중요한 업무죠. 회사원 역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오케스트라를 하나의
발판으로 삼아 얼마든지 솔로리스트로 활동하듯, 회사를 발판으로 자신의 잠재적 역량을 키운 스타 샐러리맨이 돼야 합니다. 히딩크 팀의 박지성처럼
팀 전체를 위해 뛰는 것이 곧 자신을 위해 뛰는 것이 되게 만들어야죠. 이런 마음을 갖게 되면 취미와 일이 분리되지 않고, 내 정체성과 일의
정체성이 일치하면서 회사는 물론 개인도 막강한 경쟁력을 갖추게 됩니다. 과거 샐러리맨의 인생관으로는 이제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우연히 안 잘리더라도 보잘것없는 인생에 그치고 맙니다. 겨우 연명하는 수준의 인생밖에 안 되는 것이죠. 하지만 ‘어떻게 벌 것인가(How to earn)’가 아니라 ‘어떻게 배울 것인가(How to learn)’를 고민하면 이번 불황도 거뜬히 넘길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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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의 조각 [생각하는 사람]은 단테의 [신곡]을 주제로 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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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상승으로 맨 처음 사라질 나라
섬은 조용히 죽어가고 있다. 소금기가 많아 식수 구하기가 어려워졌고, 코코넛나무와 농작물이 죽고 있다. 땅 밑에서는 거품이 솟아오른다. 바닷물이 솟아오르고 있다는 증거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해수면이 상승하고 국토가 점차 좁아지고 있는 나라가 많다. 그 중에서 지구상에에서 맨 처음 사라지게 될 운명에 처한 나라가 있다.
투발루(Tuvalu)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도 참가한 나라, 세계에서 4번재로 작은 섬나라, 남태평양 피지에서 북쪽으로 약 1,0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투발루는 2001년 국토 포기를 선언했다. 투발루는 폴리네시아에 있는 섬나라이며, 키리바시,사모아, 피지와 가깝다.
최고점 해발이 4m인 투발루는 해수면이 상승, 국토의 상당 부분이 물에 잠긴 상태다. 수도인 푸나푸티는 이미 오래전 침수된 상태이다.
투발루는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인해 2001년에 국토 포기후 수도인 푸나푸티가 침수되어 수도를 옮긴 상태이다.
면적 26㎢. 인구 1만 600명(1999). 인구밀도 413.6명/㎢(1999) 수도는 푸나푸티이고 공용어로는 투발루어와 영어를 사용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북동쪽 4,000km 지점, 남위 5∼11, 동경 176∼180°에 위치하는 섬나라이다. 영국의 보호령이었다가 영국연방의 자치국으로 독립한 나라로 남태평양의 9개의 흩어져있는 섬들로 구성되어 있다.
국가가 곧 없어진다는 위기감에 쌓인 투발루는 이웃 국가들에게 이민을 받아달라고 호소했지만 호주와 피지는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고, 이민을 허락한 뉴질랜드 역시 40세 이하로 2002년 7월부터 75명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였으며,
뉴질랜드에 직장을 가진 사람만을 이민 대상으로 인정하고 있다. 사실상 투발루 주민들은 인류 최초로 환경난민이 될 위기에 처해 있다.
2004년 국제에너지기구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9.73t, 호주는 17.53t, 한국은 9.6t, 뉴질랜드 8.04t에 이르렀다. 반면 투발루는 0.46t에 불과했다
푸나푸티섬에서 10km 떨어진 테푸카 사빌리빌리섬은 주민들에게 재앙의 전조로 인식된다. 주민들은‘한밤중에 폭풍이 몰아치더니 섬을 메웠던 야자나무들이 시야에서 사라졌다’고 말했다.테푸카 사빌리빌리섬은 이제 100평짜리 산호더미에 불과하다.
섬은 조용히 죽어가고 있다. 소금기가 많아 식수 구하기가 어려워졌고, 코코넛나무와 농작물이 죽고 있다. 땅 밑에서는 거품이 솟아오른다. 바닷물이 솟아오르고 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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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 대파’ 수확 바쁜 손길
26일 부산 강서구 명지동 밭에서 한 농부가 잘 자란 대파를 수확하고 있다.
새싹심는 태안반도
24일 충남 태안읍 송암 작목반 농민들이 웰빙 농산물인 태안 황토 알타리무의 씨를 뿌리고 있다.
예쁜 호박이 주렁주렁
오는 4월 24일부터 27일 간 충남 태안군 안면도에서 열리는 '2009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를 50여일 앞둔 25일 꽃박람회조직위원회 관계자가 꽃박람회장 식물터널에 주렁주렁 매달린 관상용 호박의 생육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부산 동래시장 가득메운 '태극기의 물결'
90돌 3.1절 기념일인 1일 오전 부산 동래시장에서 열린 만세운동 재현행사에 참가한 학생과 시민 등 4000여 명이 태극기를 흔들면서 만세를 부르며 그날의 함성을 재현하고 있다
대한의 마루치 아라치, '독도는 우리땅!'
3.1절을 맞아 독도에는 여러 단체행사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이 독도에 입도 3.1절 기념식을 가졌다
외국공항서 판 벌인 한국 아줌들
▲ 인터넷에 ‘베트남 공항에서 한국 아줌마들’이라는 제목의 사진이 한 장 올라와 네티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사진에는 공공장소로 보이는 의자에 아주머니들이 가운데 천을 깔고 둘러 앉아 무언가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아주머니들이 둘러앉은 천 위에 붉은색 ‘무언가’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화투’이다. 사진 속의 아주머니들은 공공장소에서 화투를 치고 있고, 주위에는 이를 지켜보는 구경꾼들이 모여 있다. 사진을 올린이는 “공항에서 이러지 좀 마세요”라는 의견과 함께 사진을 인터넷에 올렸다.
폭행 당한 法治
27일 국회에서 부산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회원에게 폭행을 당해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에 입원한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 전 의원은 왼쪽 눈의 각막과 결막이 손상되고 온몸에 타박상을 입었다.
게임중독 12살 소녀, ‘손바닥 플레이스테이션 감염증’ 걸려
▲ 스위스에서 ‘플레이 스테이션’으로 무리하게 게임을 해 손바닥에 염증을 입은 12살 소녀가 병원을 찾은 웃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의사는 소녀에게 10일 간 게임을 금하라는 처방을 내렸다고 하고 스위스 통신사 ATS가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구걸하는 여성
26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한 여성이 구걸을 하고 있다.
‘옷 사세요…’
26일(현지 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여성들이 옷을 팔고 있다.
바짝 마른 호주 야라계곡 저수지
오랜 기간 이어지고 있는 호주 빅토리아주의 가뭄으로 산불참사가 빚어졌던 멜버른 북동쪽 야라계곡의 한 포도농장 저수지가 1일 바짝 마른 모습을 하고 있다
에이즈는 소년병의 '피의 의식'을 타고…
우간다 소로티 마을의 마이클과 조세핀 남매. 에이즈 감염으로 생명의 불이 언제 꺼질지 모르지만 미래의 변호사와 수학 선생님을 꿈꾼다. 소년병(少年兵)으로 끌려간 청소년들은 ‘피의 의식’에 내몰리고 반군(叛軍)의 성 노리개로 학대당하며 에이즈에 감염됐다. 부모에 의해 수직 감염된 경우도 적지 않다. 3200만명의 인구 중에서 에이즈 감염 청소년과 아동의 숫자가 어림잡아 300만명에 이른다는 보고도 있다.
우린 갈곳이 없어요’
26일(현지 시간) 콩고 동부의 고마 외각 임시 난민 캠프에서 내전으로 집을 잃은 자매 모습
화산폭발
칠레 차이텐 화산폭발로 지난 22일 주변 마을이 화산재로 폐허가 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콜레라 창궐, 3천8백명 사망한 짐바브웨
최근 콜레라가 짐바브웨 전역을 휩쓸면서 전국적으로 3천8백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가운데 25일 한 남자가 콜레라에 걸린 가족을 리어카에 싣고 하라레 콜레라치료소를 향해 가고 있다. 닷새 전 현지에 도착한 유엔 구호팀은 현재의 상황이 매우 "비통"하며 일부 지역에서는 콜레라와 맞설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속수무책인 상황체 처해있다고 전했다.
전쟁으로 고아가 된 콩고 아이
24일(현지 시간) 콩고민주공화국 북동부 부니아의 키지토 고아원에서 전쟁으로 고아가 된 아이가 종이상자 위에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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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이거스, 버려진 도시 1위에 사무실 공실률 16%나… 車산업 몰락에 디트로이트·애틀란타도 휘청
미국의 번영과 환락을
상징하던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그러나 이 도시는 더 이상 예전의 화려함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사무실
곳곳은 텅텅 비어있고 거리마다 건설이 중단된 빌딩들이 덩그러니 흉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사태와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도시 전체가 어려움에 빠진 것이다. 미국 abc방송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라스베이거스는 '미국의 경제 위기로 버려진 도시' 1위로
선정됐다. 라스베이거스는 사무실 공실률 16.0%, 주택 공실률 4.7%로 미국 평균치보다 각각 5.9%, 1.8% 포인트
높았다. abc 방송은 "라스베이거스의 몰락은
주택 버블 붕괴의 영향이 가장 크다"며 "부동산 경기가 한창이던 2007년에 이스라엘 억만장자 이츠하크 트슈바가 12억5,000만달러를 들여
시내 중심 부지를 사들였으나 이 부동산의 가치가 현재는 절반에 불과하다"고 보도했다. 이 방송은 "당시 가격이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부동산
매입에 나섰던 사람들이 재기불능의 상태에 빠져 있다"고 덧붙였다. 2위를 차지한 디트로이트는 자동차 산업의
몰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방송은 "디트로이트 인구가 1950년대 180만명이었지만 현재는 100만명에 미치지 못한다"며
"디트로이트의 쇠락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3위를 차지한 미국 남동부 최대 도시 애틀란타는
화학, 자동차 산업이 타격을 받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노스캐롤라이나주의 그린스보로, 오하이오주의 데이튼이 각각 4, 5위를
차지했다. 이번 순위는 abc방송이 미국의 주요 75개 도시의 사무실 공실률과 주택 공실률을 바탕으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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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드라마에는 등급이 있다고 한다. 모든 사람이 공감하고 즐겨 볼 수 있는 ‘명품 드라마’가 있는가 하면, 극의 완성도와 영상미를 제대로 갖춘 ‘고품격 드라마’, 전문성을 띤 내용의 ‘마니아 드라마’ 그리고 상식을 벗어난 소재로 전개되는 ‘막장 드라마’가 있다.
막장 드라마의 호칭도 여러 가지이다. 막장이라 해서 ‘막드’, 욕을 하면서 본다 하여 ‘욕드’, 상식 밖의 내용 전개와 일부 어설픈 연기자의 연기를 보면서 시청자들의 오금이 저려온다 하여 ‘오글 드라마’가 그것이다.
막장 드라마란 한마디로 욕이 저절로 나오는 드라마, 마지막 갈 데까지 가 버린 드라마란 뜻이다. ‘막장’이라는 말은 광산 갱도의 맨 마지막 막다른 곳을 말한다. 더 이상 나갈 데가 없는 종착지이다. 그런데 이상한 한국 사회현상은 막장드라마라고 개탄하는데 시청률이 높다는 것이다. 괴이한 현상이다. 욕하면서 즐겨본다? 왜 그럴까?
이미 종영이 됐거나 현재 방영하고 있는 드라마 중에 대표적인 막장
드라마는 <하늘이시여> <조강지처클럽> <아내의 유혹> <너는 내 운명> <흔들리지 마>
<꽃보다 남자> <에덴의 동쪽> 등이 있다. 막장 드라마에서
단골 메뉴로 사용되는 소재는 ‘불륜’과 ‘패륜’이 빠지지 않는다. 거기에다 강간, 강제 낙태, 혼전 임신, 여자의 복수 등
소재에서 이미 일반성이 떨어지고, 드라마 전개의 억지성이 눈에 띤다. 시청자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일 막장드라마를 보면서, 분노하고, 말도 안 된다고 흥분하면서도 드라마에 중독되어 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막장 드라마는 가족과 가정을 배경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 그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가족의 사랑은 허울에 불과하고, 평온한 가정에서는 있지도, 있을 수도 없는 소재를 통하여, 가정의 정체성을 흔들고 있다.
이런 한국사회를 생각하면서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라는 소설을 생각하게 된다.
미국에서 1992년 4월, 초판을 시작하여 1년 만에 40판을 거듭하면서 줄곧 1년 동안 베스트 셀러의 자리를 지켰던 소설이다. 로버트 제임스 왈러(Robert James Waller)가 쓴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라는 책 (The Bridges of Madison County) 이다.
언듯보면 이 소설은 불륜의 관계를 사실대로 다룬 리얼리즘에 속한 흔히 볼 수 있는 애정소설로 여겨진다. 그런데 무엇이 다르길래 이렇게 미국 독서계에 돌풍을 일으키면서 오래도록 읽혀지고 있는 것일까 ?
미국의 현대 소설가라고 하면 단연 죤 엎다이크를 꼽는다. 파탄으로, 파탄으로 치닫는 가정의 비극의 원인이 불륜의 사랑 때문인 것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책이 그의 소설의 전부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찌 보면 [사랑한다]는 상황 윤리적 현실은 가정의 파괴를 가져오면서 까지도 정당화된다는 논리 아닌 논리를 제공하는 소설이 그의 소설이었다.
그러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쓴 왈러는 담장도 넘고 국경도 넘는다는 <불륜의 사랑>에 대해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때문에 더 이상 진행시킬 수 없다고 여주인공으로 하여금 토로하게 한다.
<상황윤리>에 중점을 두어 <어쩔 수 없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오히려 <책임>을 강하게 제기시켜 <불륜의 사랑>을 <종식>시키려는 의도를 분명히 한다.
여주인공 프란체스카 죤슨(45세)은 가난한 시골 농부의 아내였다. 남편과 자식들이 농사일로 타주에 간 사이에 자기 마을을 방문한 사진작가 로버트 킨케이드(52세)와 깊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는 상황윤리에 빠져 가정을 파괴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정에 대한 <책임>때문에 자기의 달콤한(?) 사랑에 대해 강렬한 비판을 가한다.
지금 한국의 현실은 그럴 수도 있다, 어쩔 수 없다는 무책임한 막장성이 판을 치고 있다. 사람들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막장성에 의존하는 것은 아무래도 불황의 영향일까?
뉴욕 브로드웨이에서도 경기침체 탓으로 대형 뮤지컬들이 잇따라 막을 내리고, 스트립쇼 위주의 오락 공연 벌레스크(burlesque)가 거의 100년 만에 다시 전성기를 맞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래서 한국도 어쩔 수 없이 세계의 첨단 조류인 ‘대중문화 퇴행’에 동참하고 있다는 정도로 그냥 넘어가야하는가?
21세기는 미디어의 세계이다. 그 막강한 세계 속에서 자칫 망가지기 쉬운 인간성과 가정을 옹호해야한다. 사탄은 이미 그 세계를 장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막장드라마가 얼마나 한국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가를 생각해보았는가? 그런데 왜 교회는 그 세계를 향해 한마디도 입을 열지 못하는가? (장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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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숙 / 희곡 작가
▲ 버스 정류장의 표지판.
요즘은 하루에 네 번씩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다양한 사람들 구경하는 재미에 빠져 있다. 버스타기에 웬만큼 익숙해져 정류장에 가면 '마지막 사람 누구에요?'라고 물어서 앞 사람을 확인하는 독특한 줄서기도, 1980년대 서울에서 그랬듯 만원 버스에 발만 겨우 들여놓은 채 문에 매달리기도 꽤 잘하고 있다.
그래도 서울에서처럼 서둘러 출발한다거나 난폭하게 운전하는 일은 없어 그다지 위험하지는 않다.
버스에서 일어나는 일들 하나하나가 나에겐 모두 신기할 따름인데, 운전수가 버스를 세우고 근처 가게에 가서 빵을
사와도 승객들이 태연히 기다릴 때,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작은 일을 계기로 10년 된 친구처럼 끊임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신나는 음악이
나오면 관광버스처럼 다 같이 노래를 부를 때, 재밌어서 나는 혼자 웃는다.
물론 걸치는 물건의 품질 자체는 많이 떨어진다. 조악하고 허술하다. 그러나 그 열악한 상황에서도 머리에서 발끝까지 조화롭게 꾸미는 감각은 우리나라 여성에 비해도 손색없다. 남미 여자들의 기본적인 패션 철칙은 옷·구두·가방·머리 장식의 색을 맞추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쿠바 멋쟁이들이라면 누구나 그런 식으로 색을 맞춘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다 낡은 것들이지만 전체적으로는 독특한 멋이 흐른다.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아바나에도 종종 보이는 버스 트럭.
보통은 쿠바 사람들의 식생활 때문인지, 아니면 아무리 뚱뚱하고 나이가 많아도 몸에 착 달라붙는 옷들을 입어서 그런지 모두들 몹시 배가 나왔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그런 와중에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아가씨들과, 사진을 찍어놓지 못한 걸 통탄할 만큼 멋진 청년들이 있다.
그런데 이 매력적인 선남선녀들을 보는 내 시각이 처음엔 잘못되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아깝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저 정도 미모라면 헐리웃 배우나 일류모델 감인데, 하면서 쿠바에 태어난 게 아깝다고 생각했다. 어떤 한국 남자분도 비슷한 말을 하는 걸 들었었다. 아름다운 쿠바 여인들이 마음껏 꾸미지도 못하고, 연예계로 진출해서 부귀영화를 누릴 수도 없으니 참 불쌍하다면서 '슬픈 여인들'이라고까지 표현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니 그런 시각이 잘못된 것 같았다. 어째서 반드시 아름다운 미모는 널리 알려져야 하고, 돈벌이가 되어야 하고, 고부가가치의 상품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아깝다'는 생각 저변에는 철저히 자본주의적 사고가 깔려있었음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그렇게 되어야만 그 아름다운 미모가 정당한 대우를 받는 거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 한국계 쿠바 소녀들.
아름다운 모습으로 버스 맞은편에 앉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고, 길을 갈 땐 눈웃음만으로도 받는 이의 하루를 행복하게 해주면서 사는 것이 늘 카메라 앞에서 긴장해야 하는 연예인보다 덜 행복하다고, 덜 보람 있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멋진 풍광은 반드시 관광지로 개발해야 하고 맛있는 음식은 반드시 식당 메뉴가 되어야 하며 미인들은 반드시 배우나 모델이 되어야 하는 철저한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의 때를 내 머릿속에서부터 벗겨내야 할 것 같다.
쿠바에 대해 지극한 애정을 갖고 있다면서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생각도 미남미녀들을 아까워하던 나의 생각과 비슷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 같다. 쿠바 사람들을 돕겠다는 열정으로 오는 선교사 혹은 선교팀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물론 잘못된 선교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어디 쿠바에 대해서만 그렇겠냐마는, 그들은 일단 쿠바 사람들을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본다.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들을 조합해 스스로 연민을 불러일으킬만한 시나리오를 구성해 놓고, 그 시나리오에서 자신들은 천사의 역할을 맡는 것이다.
▲ 교회에 모인 한인 후손 분들.
얼마 전 다녀간 한 해외 교포 선교팀은 쿠바 한인 후손 가정을 방문하여 성금과 옷가지, 과자 등을 전달했다고 하는데, 다니면서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우리가 각 가정에 전달하는 10CUC면 슈퍼에서 한 가득 물건을 살 수 있지요" "우리가 대접하는 식사 정도면 쿠바에서 아주 잘 먹는 것이지요?" "집이 매우 허름하던데 다들 그런 집에 사는 것이지요?" 그 분들은 원하는 정답을 정해놓고 질문했다는 생각이 든다.
쿠바를 사랑한다는 명목으로 몇 년째 방문을 하고 있지만, 진정 쿠바 사람들과 친구가 되려는 생각보다는 어딜 가나 자기네 선교팀의 이름이 적힌 현수막을 펼쳐들고 선물과 돈을 전달하는 포즈를 사진으로 남기는 것에 더 혈안이 되어 있다. 교회에서 쿠바 사람들이 준비한 밥이 맛이 없다면서 자기들끼리 따로 나가서 먹었다니, 그러고도 자신들을 선교팀이라고 내세우는 것이 놀랍다. 더 기가 막힌 건, 그 중 누군가는 쿠바에서 땅을 살 수 있으면 사두고 싶다면서 나중에 쿠바가 개방되면 돈 좀 벌 수 있지 않겠느냐고 문의해왔다는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쿠바 사람들 중 하나라도 그들이 주는 돈과 물건을 거절했으면 속이 시원하겠다고 생각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런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현실적으로 10CUC가 그들 말대로 슈퍼에서 한 아름 살 수 있는 돈은 아니더라도 하찮게 내던질 그런 액수도 아닌 까닭이다.
▲ 농산물 시장에선 물건을 사도 비닐봉투에 담아 주지 않기 때문에 비닐봉투를 파는 사람들이 따로 있다.
쿠바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사실 하나만으로 이들을 '불쌍한 사람'으로 봐도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분은 위에 언급한 그 선교팀의 질문이 못마땅하여, 쿠바 사람들이나 그들의 집이 겉으로 보기에는 허름해도 안을 들여다보면 없는 것 없이 갖추어 놓고 잘 산다고 말해주었다고 한다.
물론 무슨 짓을 해서든 잘 사는 일부 사람들은 그렇겠지만 보통 쿠바인들의 경우라면 그 대답은 거짓말이다. 무조건 불쌍하게 보려는 시각이 잘못된 것만큼, 가난한 것을 가난하지 않다고 둘러대는 것도 잘못이라 생각한다.
요점은 가난한 것이 왜 반드시 불쌍한 것이 되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물론 당장 배가 고파 굶어죽을 지경이라면 불쌍해하면서 먹을 것을 주어야 마땅하지만, 분명 쿠바는 그런 상황은 아니다. 일례로 우리나라에선 돈이 없으면 병원에도 못 가고 수술도 못 받는다. 하늘의 별 따기로 텔레비전 방송이나 탄다면 또 모를까? 그러나 쿠바에선 돈이 없어 수술을 못 받거나 병원에 가지 못하는 일은 없다. 돈은 많지 않지만, 돈이 없어 굶는 사람도 없고, 돈이 없어 교육을 못 받는 사람도 없다.
▲ 쿠바의 가스렌지는 라이터로 점화를 해야 하기 때문에 각 가정마다 라이터가 필수품이라서 시장마다 이렇게 라이터 충전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돈'에 의지하여 인간답게 살고 있는 거지만, 쿠바인들은 쿠바 국민이라는 '존재 자체'에 의지하여 인간의 기본권을 보장받고 있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더 불쌍한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정말 쿠바를 사랑한다면 쿠바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돈이 많은 친구가 돈이 없는 친구를 대할 때, 만날 때마다 돈을 주는 것 보다는 그 친구 앞에서 돈 자랑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진실한 태도가 아닐까?
지난 해 두 차례 허리케인으로 극심한 피해가 발생했을 때 미국이 원조를 제의했는데 쿠바 정부가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이것을 두고 어떤 분이 몹시 분개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정작 고통당하는 것은 쿠바 국민들인데, 정부 고위직들은 잘 먹고 잘 살면서 무슨 권리로 도움을 거절하느냐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일리 있는 말이지만, 나는 쿠바 정부의 결정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이것은 당장 옷가지와 식량으로 곤란을 면하는 것이 더 중요한가, 아니면 스스로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 능력을 키우면서 자존감을 잃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조건이 걸린 원조라면 더더욱 덥석 받을 수만은 없는 문제다.
▲ 치약, 담배 등을 파는 노점상 할아버지
쿠바 교회에 보내는 외국 교회의 각종 원조들 또한 위험한 요소들을 안고 있다고 본다. 물론 쿠바 교회가 절대적인 재정 부족으로 곤란에 처해있다는 점은 이해가 가지만, 선물로 받은 꽃신을 신다가 발바닥이 연하게 되어버린 원숭이처럼 혹시라도 안일한 습성에 빠지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쿠바 교회 장로님 한 분도 이런 말씀을 하셨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외국 교회에 이메일 하나 보내는 것으로 쉽게 답을 얻을 수 있다면 스스로 문제를 극복하고 해결해나가는 능력은 영영 잃어버릴 지도 모른다고. 그 말이 참으로 맞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사람을 볼 때, 어떤 나라를 볼 때, 어떤 현실을 볼 때, 내 마음에 안타까움과 연민이 생긴다고 해서 그런 동기에서 나온 모든 행동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옛 이야기 중에 아들이 어머니에게 발을 씻겨 달라고 하는 것이 아들이 할 수 있는 최대의 효도였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물론 측은지심이 나쁘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다. 그러나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다고 해서 우리가 원하는 걸 하늘에서 뚝뚝 떨어뜨려주시진 않는다. 우리가 당하는 고통과 어려움에 함께 아파하고 눈물 흘리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는 방식이며, 무언가를 주실 때에도 우리를 나약하게 만드는 방법으로는 주시지 않는 것 같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쿠바 아가씨를 한국 연예계에 데뷔시켜 주는 것이 정말 그 아가씨를 위한 길인지, 쿠바
사람들에게 돈을 주어 물건 좀 사게 해주는 것이 정말 그 사람들을 위한 길인지, 재정이 약한 교회에게 원조금을 주는 것이 정말 그 교회를 위한
길인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엉덩이가 다 헤져서 구멍 난 교복을 입고 다니는 학생을 측은한 눈길로 본 적도 있지만, 이제 생각해보면 나의 옹졸한 기준일 뿐이다. 추운 지방 사람들이 구멍 난 옷을 입어 떨고 있다면 또 모를까, 쿠바처럼 온화한 날씨 속에 사는 사람들이 옷이 헤어져 구멍이 나든 낡아서 찢어지든 무슨 문제인가? 오히려 바람이 통하니 시원해서 좋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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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살에 강제결혼한 예멘 소녀
부모의 강제에 의해 10살의 나이에 자신보다 20살이나 많은 남성과 결혼한 뒤 이혼 소송을 벌이고, 이혼에 성공한 예멘의 소녀가 자서전을 출간하면서 세계가 중동의 조혼과 강제결혼 풍습에 대해 성토하고 있다.
지금은 11살인 누주드 알리는 작년에 아버지의 강요로 당시 30세인 파에즈 알리 타메르와 결혼했다. 이는 당시 실업자인 아버지가 결혼지참금 때문에 성사시킨 강제결혼이었다.
그러나 알리는 결혼 후 남편에게 상습 폭행을 당한 후 두 달 만에 예멘 법원 이혼 소송을 냈다.
알리가 어린 나이에도 소송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인권변호사인 샤다 나세르 변호사의 도움 덕택이었다. 법원은 최종판결을 통해 이혼을 허락했고, 알리는 남편과 원하지 않는 결혼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되었다. 그의 결혼과 이혼과정은 세계 주요 언론에 의해 보도되었고, 미국에서는 알리를 ‘2008년의 올해의 여성’ 가운데 1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후 인권운동가들의 도움으로 학교에 들어갈 수 있게된 알리는 학교에서 쓰고 읽는 것을 배운 후 자신의 끔찍한 결혼에 대해 소상하게 밝힌 책을 출간하면서 세계의 주목을 또다시 받게 되었다.
이 책은 ‘나, 누주드, 10살, 이혼’이라는 제목으로 프랑스에서 출간되었고, 다른 나라의 출판업자들도 판권을 따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현재 책의 홍보를 위해 프랑스를 방문 중인 알리는 장차 변호사가 되어 자신과 비슷한 소녀들을 돕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슬람 여성 ‘눈에는 눈, 염산에는 염산’가해 남성에게 같은 처벌 요구
사건 전과 후, 아메네 얼굴
사귀던 남자로부터 염산 테러를 당해 두 눈을 잃게 된 이란의 한 여대생이 재판을 통해 가해 남성에게 똑같은 고통을 주라는 판결을
얻어냈다. 이는 여성 학대에 대한 일부 이슬람권 문화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란 여인 아메네는 지난 2004년
11월 대학에서 알게된 남자로부터 염산 공격을 받았다. 아메네는 이 일로 인해 두 눈의 시력을 모두 잃었고 아름답던 얼굴은 예전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참혹하게 변했다. 아메네가 공격을 받은 이유는 단지 결혼 요구를 거부한다는 것이라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하지만
남성위주의 이란 사회에서는 오히려 피해자를 비판하는 의견이 분분하다. 법원은 지난해 말 1심에서 가해자의 양쪽 눈에 열 방울의
염산을 떨어뜨리라는 판결을 냈고 이달 열린 항소심에도 1심 판결을 확정했다.아메네는 이란법에 따라 돈으로 배상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여성에게
자행되는 이런 잔힌한 범죄를 막기 위해 이같은 선택을 했다. 명예라는 이름으로 여성에게 자행되는 이슬람 문화의 무자비한 폭력이 이번
사건으로 인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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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북이의 사랑 -
암수 거북이 두 마리가 동굴로 들어갔다가 한참 후에 수거북이만 나왔다. . . . .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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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베스트셀러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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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11위 |
12위 |
13위 |
14위 |
15위 |
16위 |
17위 |
18위 |
19위 |
20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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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벤허 하면 전차경기만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소설의 원저자 (루 월리스)는 기독교의 허구를 파헤치는 소설을 써 달라고 부탁을 받고 먼저 성경책을 여러번 읽다가 오히려 예수님을 높이는 소설
벤허를 썼는데 이를 영화화한 것이 이 필름입니다.
내용은 주인공이 어떻게 해서 예수님을 만나는가를 잘 묘사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wide screen 형식이어서 1분 정도 본 후에 Alt + Enter 키를 클릭, 전체 화면으로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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