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11, 2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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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ole Flieg / A Little Peace
1970년대에 산레모 가요제에서 우승했던 곡 A Little Peace (작은 평화)입니다. 니콜이 산레모 가요제에 캐나다 대표로 나왔을 땐 16세의 소녀였었는데.
Just like a flower when winter begins Just like a candle blown out in the wind Just like a bird that can no longer fly I'm feeling that way sometimes
이른 겨울에 피어있는 꽃처럼, 바람에 꺼지는 촛불처럼, 더 이상 하늘을 날 수 없는 새처럼, 나는 가끔 그런 마음이 된답니다.
But then as I'm falling Weighed down by the load I picture a light at the end of the road And closing my eyes I can see thru the dark The dream that is in my heart
무거운 마음으로 쓰러질 것 같은 순간, 내가 도달하는 종점에 밝은 빛이 있다고 상상하며 눈을 감고 들여다보면 어두운 마음에 빛이 되어 내 마음속에 꿈이 보이지요.
A little loving a little giving To build a dream for the word we live in A little patience and understanding For our tomorrow a little peace
우리가 살면서 좀 더 사랑하고 나누며 조금 더 이해하고 인내심을 키우며 우리의 꿈을 함께 실행하여 나가다 보면 우리 모두에게 평화로운 미래가 되겠지요.
A little sunshine a sea of gladness To wash away all the tears of sadness A little hoping a little praying For our tomorrow a little peace 바다같이 깊은 기쁨과 밝은 마음의 빛으로
슬픔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고 조금 더 기도하며 희망을 조금만 더... 우리모두 함께 평화의 미래를 만들어봐요.
feel I'm a leaf in November snow I fell to the ground there was no one below So now I am helpless alone with my song Just wishing the storm was gone
11월에 내리는 눈 속에 남은 나무 잎 같은 내 심정.. 나무 잎처럼 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져 아무도 받쳐주지 않는 인생의 외톨이가 된 나는 갈 길을 잃고 폭풍이 지나기만 바라는 마음의 노래만 남았답니다.
A little loving a little giving To build a dream for the word we live in A little patience and understanding For our tomorrow a little peace
우리가 살면서 좀 더 사랑하고 나누며 조금 더 이해하고 인내심을 키우며 우리의 꿈을 함께 실행하여 나가다 보면 우리 모두에게 평화로운 미래가 되겠지요.
A little sunshine a sea of gladness To wash away all the tears of sadness A little hoping a little praying For our tomorrow a little peace
바다같이 깊은 기쁨과 밝은 마음의 빛으로 슬픔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고 조금 더 기도하며 희망을 조금만 더... 우리모두 함께 평화로운 미래를 만들어봐요.
We are feathers on the breeze Sing with me my song of peace We are feathers on the breeze Sing with me my song of peace
우리는 바람에 날리는 깃털이에요 평화의 노래를 함께 불러봐요 우리는 바람에 날리는 깃털이에요 평화의 노래를 함께 불러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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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홀로 대충 부엌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 해도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어머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심순덕
I'd know mother could be done like that.
Mother could be done like that I'd know. Though working hard to death
Mother could be done like that I 'd know. Though alleviating her hunger roughly with
a cold boiled rice. Mother could be done like that I'd know. Though washing clothes in the bitter winter river.
I'd know. Though starving for filling the family.
Mother could be done like that I 'd know. Though a quilt is sounded with her crack heel.
Mother could be done like that I'd know.
Though her nails wearing away. Mother could be done like that I'd know. Though father angry with her and we worrying her.
I'd know. 'I long for my mother.' 'I long for my mother.'
Which is, I 'd know, her murmur. At midnight waking and watching mother who was weeping soundless in secret. Ah! I'd know never could mother be done like that.
translated by 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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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인은
듣고 보니 나도 좀 걱정이 되네요... 식욕도 좀 떨어지는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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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
간호교육경력개발센터의
졸업 후 잠시 병원에 근무하다 줄곧 전업주부로 지냈던 그는 4년 전부터
다시 간호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박씨는 “미국 간호사가 되면 중학생 아이를 현지에서 공부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재취업을 한 것도 경력을 쌓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1960년대 말 해외 취업의 대표 직종으로 꼽히던 간호사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
주부들이 자녀 유학을 뒷바라지하고, 돈도
벌기 위해 미국 간호사에 도전하는 것.
NCLEX-RN 응시자 수도 꾸준히 늘어나 2003년 1341명에서 2005년
1724명,
2006년에는 2145명을 기록했다. NCLEX-RN 전문 학원도 전국에 20개나 된다.
탄력근무로 6만∼8만 달러 연봉 가능
NCLEX-RN에 응시하려면 3년제 이상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한국 간호사 면허를 소지해야 하기 때문에 국내 간호대학의
편·입학
경쟁률도 올라가는 추세다. 수도권의 한 간호대 관계자는
“몇 년 전부터 명문대 졸업자, 대기업 직원, 의대
중퇴생까지 다양한
커리어의 주부들이 편입시험에 응시한다. NCLEX-RN 합격률이
평균 70%를 웃돌 만큼 높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부들이 NCLEX-RN을 준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 병원에 취업하면
영주권을 쉽게 받을 수 있기 때문. 이 경우
자녀를 미국 공립학교에
진학시킬 수 있다. 또 현지에서 본인이 원할 때까지 계속 일할 수 있어
자녀의 유학 뒷바라지에도
유리하다. 학원가에서는 최근 금융위기
여파로 고환율 현상이 지속되면서 주부 수강생이 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박영희
씨도 “같이 수업을 듣는 이들 중에는 나처럼 나이 든
전·현직 간호사가 많다”고 전했다. 미국 간호사의 급여와 처우가 한국
간호사보다
월등히 높다는 것도 많은 주부가 NCLEX- RN에 도전하는 이유.
미국 간호사 면허시험을 준비하는 전직 간호사 안수미(가명·48) 씨는
“한국은 간호사의 전문성을 인정해주지 않는 문화가
강해 간호사의
직업 만족도가 낮은 편이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 끌렸다”고 밝혔다.
그러나 NCLEX-RN 시험에 합격했다고 해서 누구나
미국 간호사로 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미국 병원에 취업하려면
면허 취득 후 개별 인터뷰를 치러야 한다. 미국 병원에서는 간호사
실무 경력과 영어 능력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이
단계를 통과하기
쉽지 않은 게 현실. 병원 인터뷰에 합격했다 해도 V.S.C(Visa Screen Certificate)를
받지 못하면 정식 취업이 안 된다. 미국 정부는 전문 분야의 취업비자를
발급하기 전에 신청자의 영어 실력 등을 검증해 V.S.C를 주는데,
의료 분야에서 V.S.C를 받으려면 IELTS 6.5 이상,
토플 550점(PBT) 이상 수준의 영어
실력을 갖춰야 한다.
지난 2월 NCLEX-RN 시험에 합격한 조수정(가명·29) 씨는
“NCLEX-RN 합격자 가운데 미국 병원 취업에까지
성공하는 사람은 극소수”라며
“취업에 이르기까지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미국 병원이 주는 급여나 보상이
우리나라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인지 의심스럽기도 하다”고 말했다.
美, 2016년까지 간호사 100만명 부족
2005년 간호사 인력난에 시달리던 미국 정부가 외국 이민자를 위한
간호사 취업 비자 5만개를 선발급하면서 취업의 문이
크게 넓어졌지만,
이 쿼터가 모두 소진됨에 따라 최근에는 미국 간호사
취업이 무척 어려워졌다고 한다.
이 때문에 아예 유학 비자를 받고 미국 간호대에 진학하는 이들도 있다.
성신여대 간호학과는 미국 뉴욕시립대 레먼대학과
협약을 맺고
미국 간호학사 편입과정(RN-BSN)을 운영한다.
이 대학 송지호 학장은 “우리나라에서 전문대 간호학과 이상을 졸업하고
NCLEX-RN을 취득한 사람이 이 과정에 등록하면
레먼대학에 학사 편입할 수 있다.
이 대학에서 1년 과정을 마치면 미국 간호학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어
비자 스크린 때
영어 점수를 제출할 필요가 없고, 졸업과 동시에
연봉 5만8000달러를 받는 유급 실무연수(OPT)에도 들어갈 수 있다”고
밝혔다.
2007년부터 시작된 이 과정을 통해 115명이 미국으로 떠났다.
▲ 한국 간호사보다 급여와 처우 수준이 월등히 높은 미국 간호사가
되기 위해 자격시험을 준비하는 주부가 늘고 있다.
그러나 간호대학과 NCLEX-RN
학원가에서는 미국 간호사 취업의 문이
다시 열릴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최근 연방하원에 상정된 ‘비이민 비자 신설
법안’에 외국인 간호사 비자를
연간 5만개씩 발급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서 사회복지 시설의 간호사 인력난이
심해지는 것도 이 같은 예측을 뒷받침한다.
미국 노동국은 2020년까지 280만명의
간호사가 충원돼야 하는데
그중 30%인 80만명이 부족하다고 예측했고, 미국간호대협회(AACN)도
2016년까지 100만여
명의 간호사가 부족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12월 NCLEX-RN에 합격한 김은혜(가명·37) 씨는
“미국 병원에 취업해 아이와 함께 유학을 갈 수 있다면
가장 좋겠다.
하지만 당장 취업을 못하더라도 이 자격증이 있으면 의료시장 개방 후
우리나라에 들어올 외국계 대형 병원에
취업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간호사 박영희(가명·43) 씨는 대학 졸업 20년 만인 올해 이화여대
이슬람화 막기 위한‘4HIM운동’인류구원 목표로 기도·연구·홍보·협력 병행
세계적으로 걷잡을 수 없는 기세로 진행되고 있는 이슬람화를 막기 위해 뜻 있는 목회자들과 사역자들이 4HIM(Halt Islamization Movement)운동을 시작했다.
4HIM은 4월 4일 서울 숭인동에 소재한 임시본부에서 창립감사예배를 드리고 본격적인 사역의 기치를 올렸다. 이날 창립예배는 4HIM 대표인 이만석 목사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전호진 총장(캄보디아장로교신학교)과 김진섭 총장(백석대 신대원 신학부) 등이 참석했다.
4HIM은 이슬람화를 막는 운동으로, 발음 그대로 “하나님을 위한(for him)” 운동이다. 이는 무슬림을 포함한 인류 구원을 성취하고, 온 인류의 자유와 행복을 지향하고 있다.
이만석 목사는 “이러한 운동을 하는 진정한 목적은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급성장하는 것을 시기해서 방해하자는 것이 아니다”라며 “이것은 인류 평화를 위해 절대 필요한 일이며, 하나님의 인류 구원 계획을 앞당기기 위한 가장 절박한 운동”이라고 강조했다.
이 목사는 “온건한 무슬림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슬람의 교리와 경전과 무함마드의 행동 모범은 전혀 평화스럽지 않고, 거짓과 폭력 및 살인과 테러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세계를 이슬람으로 통일하자는 것”이라며 “암세포처럼 커지는 이슬람 세력을 감당할 수 없어 안절부절 못하는 유럽처럼 때늦은 후회를 하기 전에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가 밝혔다.
이날 예배에서 설교한 전호진 총장은 이같은 운동이 이슬람에 대한 오해를 낳고 평화를 해친다는 비난에 대해 적극 반박했다. 전호진 총장은 “이 운동은 이슬람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와 자유를 위한 것”이라며 “논리를 비약해선 안 된다”고 전제했다.
그러나 전 총장은 이슬람의 실체에 대해서는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전 총장은 특히 ▲타 종교의 선교를 강제적으로 막는 것 ▲평화의 종교라면서 가는 곳마다 충돌을 일으키는 것 ▲집단주의적 행태를 보이는 것 ▲무슬림 남성과 결혼한 여성들의 피해사례가 잇따르는 것 ▲이슬람이 다수일 때는 종교간 평화적 공존을 거부하는 것 ▲쿠란과 칼을 내세우는 것 ▲테러는 이슬람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하면서 빈 라덴에 대해서는 강력한 항의를 하지 않는 것 ▲여성 차별 ▲하나님과 알라가 동일하다고 주장하는 것 ▲이슬람 국가들이 비민주적인 것 등 이슬람의 잘못된 점 10가지를 꼽았다.
4HIM은 앞으로 무슬림보다 더 열심히 전도하고 기도하자는 ‘영적운동’, 이슬람의 실체를 알아내는 ‘연구조사운동’, 연구·조사한 내용을 알리는 ‘교육홍보운동’, 같은 목적의 조직들과 협력하고 확장해나가는 ‘협력망운동’ 등 네 가지 운동을 중점적으로 벌일 예정이다.
구체적인 활동으로는 연 1회 세미나 개최, 4HIM 교사양성학교 운영, 각 지역 혹은 학교나 기관 본부 결성 등을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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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의 조각 [생각하는 사람]은
단테의 [신곡]을 주제로 한 |
사진이 안보일 때 이렇게 하십시오
1. 사진이 절반만 보일 때는 화면을 다시한번 여십시오.(Refresh 단추 클릭) 2. 어떤 사진 한 장이 안보이고 X 표가 보일 때는 그림위에 마우스포인터를 올리고 오른쪽 마우스를 클릭한 후 메뉴중 Show Picture 를 클릭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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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팝나무 꽃 활짝… “거리가 환해졌네”
★*…초여름 같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7일 전남 목포시 목포역 광장 주변의 이팝나무가 새하얀 꽃망울을 터뜨려 행인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싼 집들
1위 대구광역시 중구 동산동 주택24만8000원, 11.31㎡ 철제 파이프와 함석으로 지은 부속 건물 "건물 잔존가치 거의 없는 상태"
2위 부산광역시 사하구 감천2동 주택 25만1000원, 10.8㎡
옥녀봉 산자락에 위치, 작은 방과
부엌, 공중 화장실 사용
3위 전북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 주택28만4000원, 10.8㎡ 접도구역에 위치, 구멍가게로 사용. 지금은 비어 있음
서해 점령한 불법조업 中어선들
7일 오후 인천 옹진군 연평도와 북한령 석도 사이에서 100여척의 중국 어선들이 북방한계선(NLL)을 넘나들며 불법조업을 하고 있다.
“오리들 옆에서 먹고자며 연구 또 연구했죠” ‘마늘 오리’로 年매출 15억, 경기 포천 최윤화 씨
“자유무역협정(FTA)과 도하개발어젠다(DDA)를 공부하면서 앞으로는 품질이 가장 중요한 경쟁력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오리 유축실(알에서 부화한 오리를 10일가량 기르는 곳)에서 몇 달동안 함께 먹고 자고 하며 연구한 결과가 ‘마늘오리’입니다.”
지난 6일 오후 경기 포천시 영중면 양문리 개울오리농원. ‘오리 엄마’ 최윤화(46) 대표가 운영하는 3만6660㎡의 오리농원에 2만여마리의 오리들은 쉴새없이 꽥꽥거렸다. 새끼 오리들 틈에서 마늘을 갈아만든 사료를 먹이고 있는 최 대표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마치 친자식들을 돌보는 듯했다. 오리들도 최 대표를 따라 다니기에 바빴다. 태어나자마자 처음 본 게 최 대표라고 하니 그를 ‘어미(?)’로 여기는 것처럼 보였다
개통 앞두고 막바지 공사
서울∼춘천 고속도로(61.4km)가 7월 개통을 앞두고 있다. 7일 강원 춘천시와 경기 가평군 경계지점인 발산1교 인근 고속도로가
시원스럽게 뚫려 있는 모습. 다리 밑으로는 홍천강이 흐르고 있다.
‘불안한 출발’ 오바마시대 美유대인들의 생존법
미국이스라엘공공정책위원회(AIPAC) 정책수련회 이틀째인 4일 저녁 연회 장면. 낮에 열띤 연설과 토론이 벌어지던 총회장이 저녁이 되면 6000명이 동시에 식사하는 초대형 레스토랑으로 변모한다. 미국 유대인 커뮤니티는 탁월한 조직력으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켜 왔다. 고국 정치에만 관심이 쏠려 있는 듯한
일부 한인
커뮤니티 지도부와 대비된다.
배고픔과 두려움 달래줄 홍차
파키스탄 정부군이 탈레반의 주요 거점 지역인 스와트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7일 북서변경주(洲)의 한 난민촌 캠프에 홍차를 얻기 위해 어린이들이 줄지어 서 있다.
라자스탄, 물 나르는 소녀
6일(현지 시간) 인도 북서부 라자스탄에서 한 소녀가 물 항아리를 이고 가고 있다.
“땅과 물을 달라”
십자가 시위 한 브라질 원주민이 7일 수도 브라질리아의 의회 앞에서 양팔을 십자가에 묶은 채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브라질 전역에서 온 1천여명의 원주민들은 지난 4일부터 의회 앞에서 땅, 광산, 물에 대한 권리를 늘려달라고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브라질 홍수 사망 40명 수재민 30만명
40명이 죽고 30만 수재민이 발생한 브리질 홍수 물이 가득찬 자기 집 밖 길거리에서에서 원숭이 한마리와 함께 앉아있는 한 남성
브라질 마라바 홍수 현장
5일(현지 시간) 브라질 북부 마라바의 홍수 현장. 이번 홍수로 15명이 숨지고, 7만명 이상의 주민이 피해를 입었다.
아편을 수확하는 아프간 주민들
아프가니스탄 파라(Farah)의 골레스탄 지구에서 사람들이 아편을 수확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대형 산불 … 1만2000여 명 긴급 대피
미국 캘리포니아 반덴버그 소방대원들이 7일(현지시간) 샌타바버라 래틀스네이크 계곡에서 방화선을 구축한 뒤 능선 너머로 번져가는 산불을 바라보고 있다. 6일 샌타바버라시 인근에서 발생한 산불로 7일 현재 주택 75채가 소실됐으며 1500에이커(약 607만㎡)를 태운 것으로 알려졌다. 주 정부는 산불 피해를 막기 위해 주민들에게 대피 명령을 내려 주민 1만2000여 명이 피신했다.
캘리포니아산불
캘리포니아 샌터바버러 미션캐년 상공에서 진화제를 살포하고있는 항공기
샤워하다 욕조에 낀 여성, 5시간만에 구출
몸무게가 140kg에 육박하는 여성인 로즈마리 베이티(Rosemarie Batey ·49)라는 영국 여성이 한밤중에 샤워를 하다 목욕 크림에 미끄러져 작은 욕조에 끼여 꼼짝도 못하다가 5시간만에 구출됐다. 그녀는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소리를 질렀지만 아무도 듣지 못한채 5시간동안 추위와 공포에 맞서 싸워야 했다. 새벽 6시경 잠에서 깬 아들이 엄마를 발견하고 구조대에 신고를 했고 구조대가 소형 전기톱을 이용해 욕조 분리작업을 펼친 끝에 안전하게 베이티는 안전하게 구출될 수 있었다.
엄마 곰 아기 곰
엄마 북극곰이 캐나다 매니토바주(州) 처칠 부근 허드슨만(灣) 연안의 와푸스크 국립공원에서 새끼 두 마리와 함께 서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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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인가 봅니다. 오렌지 카운티 가든 그로브에 있는 어느 보험회사 사무실 한쪽 귀퉁이에 말라 비틀어진 나무 한 그루가 눈에 거슬렸습니다. 죽기 직전이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주인에게 청하여 내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긴 뿌리를 자르고 위로 뻗친 가지들을 무자비할 정도로 잘라냈습니다.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할 흙을 털어내고 납작한 분재 화분에 옮겨 심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주는 물만 먹고 자라도록 했습니다. 자생의 능력을 박탈한 셈이지요.
나무의 생명은 오로지 내 손에 달려있었습니다. 나는 내가 목마른 것 이상으로 나무의 목마름을 걱정하며 가꾸었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세요. 늠름한 자태와 생명력 넘치는 초록의 유혹을.... 주인을 잘 만나 죽었던 녀석이 저렇게 예쁘게 자란 것입니다. 7년 걸렸습니다.
사계절의 시작은 봄이었던가요? 아닙니다. 겨울입니다. 죽어가던 나무는 분명 겨울이었습니다. 그리고 잘려나가는 아픔도 겨울이었습니다. 그 겨울부터 시작한 나무는 저렇게 아름답게 초록을 노래합니다.
봄의 색깔은 초록입니다. 정확히 연초록입니다. 생명입니다. 많은 시들이 있지만 나는 초록을 노래한 시를 너무 좋아합니다. 나에게는 초록이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초록의 꿈을 꾸는 나무
우인순
버릴 것을 다 버린 알몸으로 겨울 내내 찬바람 부는 광야에서 두팔 벌려 마음 내려 놓은 앙상한 나무는 욕심이 없어 하늘꿈을 꾸며 새처럼 높이 날아 오르고 나무에 걸린 따스한 마음 동굴 하나 꽃향기 피어나는 행복으로 봄을 그리며 희망의 꽃씨를 뿌린다 멀리 남쪽 바다 따스한 바람 봄손님 데려 오는 날 겨우내내 웅크리고 있던 소망의 꽃씨들의 두런두런 이야기 하는 소리 뽀드득 뽀드득 새싹 올라오는 소리 두팔 벌려 마음 내려 놓은 나무는 온몸에 초록 옷 갈아 입고 기지개 펴며 피어나는 사랑꽃의 향기에 취해 봄바람에 너울 너울 춤을 추며 벌나비 초대해 축제를 벌이고 행복문 똑똑 두드리며 초록빛 새 봄의 문을 연다
초록의 꿈
박광호
세상이 어떻다는 걸 몸소 체험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다 한 세월 몸에 담고 허물만을 남긴 채
마음 새로 가다듬어 영혼을 깨끗이 씻고 스스로 흙에 갇힌 영어의 몸을 자초 했구나
동한의 긴 세월 몸을 얼리는 고난에도 거듭나기 위한 죗값이라 감사함으로 꿋꿋이 견디며 새 생명 간구하는 잡초의 씨앗
늘 오던 봄이 또 올지는 알 수 없으나 정녕 너의 믿음으로 보아 새 생명 탄생의 봄은 찬란한 빛으로 올 것이다
초록 햇살이 꿈이 되어 내릴 때
정수리에 떠올라
온 세상 굽어보는 태양
그 붉은 물감에 휘저어
다듬은 붓 산허리 툭툭 친 후
물든 잎새
입김 불어가며 말리는 사이
하늘 캔버스에 그림을 그려봅니다...
어스름 저녁
구름 사다리 붉게 젖어 출렁이기 전에
뭉게구름 조용한 숨소리에 흩어지는 쪽빛
바스러질듯 눈부신 하늘가에
고운 옷 입혀봅니다...
한 쪽엔
아이들 재잘거리던 교정에서
길 잃은 웃음 주워다
가지런히 늘어 놓고
집 떠나 헤매는 조각구름 불러세워
지난 밤
소근대던 얘기들 들어봅니다...
끝없는 하늘
그 언저리 어디쯤에
잃어버린 꿈 있겠지요..
붓끝에 묻어나와
오늘밤 쯤
가슴에 내릴 것 같아
가지런히 접히는 어둠 속에서
하얗게 지새는 밤이 지루하지 않습니다.....
위의 글과 그림은 카키나보라(김덕기_1969년 경기도 여주 출생,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졸업)가 지은 것입니다. 그리고 아래 시 노트를 해주셨습니다.
짧은 겨울 방학을 접고 오늘부터 보충 수업으로 개학이네요.... 휭~하던 교정에 학생들의 활기찬 숨소리가 삶의 향기를 선사합니다. 또 다시 나의 그들에게 새로운 뽀얀 사랑을 아낌없이 쏟아 부을 고귀한 사랑 앞에 다시금 숙연해지는 설레임의 아침입니다. (장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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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캐롤라이나 블랙마운틴에 20여명 거주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에서 복음전파와 봉사활동을 하며 젊음을 바쳤던 미국
선교사들이 노스 캐롤라이나 주의 한 산골마을에 모여 살고 있다. 8순이 넘은 이들은 젊은 시절에는 한국을 위해 봉사한데 이어 은퇴후에도 조용히
북한과 아프리카에 대한 지원의 손길도 계속 뻗치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서부의 블랙 마운틴시. 이곳은 미국 동부의 남북을 잇는 애팔래치아 산맥의 끝 자락에 있는 블루 리지 산속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인구 1만여명의 조용한 산골마을.
이곳에는 해방시기부터
90년대초까지 한국에서 짧게는 1-2년 길게는 20-30년, 교육.의료 등 각 분야에서 봉사하다가 은퇴한 미국 선교사 20여명이 모여 살고
있다. 마리엘라 프로보스트 할머니(87)도 그 중 한 명. 부모가 일제시대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함에 따라 광주에서 태어난 그녀는 전주예수병원과 대구동산병원등에서 간호사로 활동했고, 특히 한국전쟁때도 한국을 떠나지 않고 환자와 전쟁고아들을 돌봐오다 미국으로 돌아와 이곳에 정착했다.
그녀의 집 정문에는 `부례문'이란 한글 명패가 걸려 있다. 그녀는 8일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60년 경주 문화중고등학교를 재개교시키는 등 교육활동을 하다 세상을 떠난 남편의 한글 이름이고, 내 이름은 부마리아"라면서 "작년 11월 한국을 방문했는데 정말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다. 늘 한국을 사랑할 것이며 가슴에 새길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으로 돌아와 한국 유학생들을 위한
장학재단을 설립했던 그녀는 은퇴 후에는 `조선의 기독교 친구들'이란 단체에 가입해 북한돕기에 나서고 있고, 틈틈이 아프리가 말라위에 보낼 털실도
짜고 있다.
로이스 플라워즈 린튼(83) 할머니는 구한말 근대교육과 의료사역을 펼쳤던 유진벨 선교사의 외손자인 휴 린튼의 부인.
한글명이 `인애자'로, 한국전쟁 뒤부터 94년 순천결핵재활원장으로 은퇴할 때까지 35년간 한국의 결핵퇴치에 일생을 바쳐왔다. 그녀의 6남매 자녀
중 `유진벨 재단'을 설립해 활동중인 둘째 스티븐 등 4형제가 모두 북한의 결핵퇴치 등 북한돕기에 나서는 등 린튼 집안은 4대째 한반도에서
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산 중턱에 위치한 린튼 할머니의 집은 지난달 미국을 방문했던 북한 대표단이 머물다 가는 등 블랙 마운틴을
방문하는 남북한 인사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동네에 살면서 북한의 지하수 개발을 돕고 있는 셋째 제임스 린튼씨는 "한국과의 인연이
4대째가 되다 보니 남북한 구분없이 많은 분이 어머님 집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로버트 윌슨 박사는 1900년대 초반 조선에
파송되어 나병환자 요양소인 `애양원'을 세우고 56년까지 1만명이 넘는 조선인 나병환자를 돌봤던 인물이다. 그의 장녀로 한국에서 태어나
애양원에서 환자를 돌보며 선교활동을 했던 엘리자베스 탈마지(98) 할머니도 동네주민이다. 그녀는 "여섯 형제들이 모두 한국에서 태어났고,
평양외국인학교를 졸업한 뒤 선교사로 활동했다"면서 "2007년 이곳에서 4세대가 모여 윌슨가의 조선 선교 100주년을 기념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53년부터 90년까지 전주예수병원에서 간호부장으로 재직하고, 기독의학연구소 등을 설립했던 매리 씰(84) 할머니와
계성고와 장로교 신학대에서 영어와 성경을 가르치며 기독교 교육에 앞장서온 메리 안네 멜로즈(86) 할머니도 이 동네에 살고
있다.
선교사들이 이곳에 모여 살게 된 배경에 대해 제임스 린튼씨는 "블랙 마운틴의 몬트릿에 선교사들이 파송되기 전 마지막 교육을
받던 센터가 있고, 안식년 때 주로 이곳에 와서 휴가를 즐긴 인연 등이 작용한 것 같다"면서 "인근 YMCA에는 선교사인 부모들과 떨어져 미국에서
공부 중이던 자녀들이 방학 때 교육을 받던 센터가 있었던 점도 한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블랙 마운틴이 미국 남장로교파의
중심지이고, 세계적인 기독교 부흥사인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부인인 고(故) 루스 그레이엄 여사가 고향인 이곳에 은퇴한 선교사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한 점도 한몫을 했다. 루스 그레이엄 여사 역시 평양외국인 학교 출신으로, 선교사중에서 이 학교 출신이 많아 86년에는 블랙
마운틴에서 이 학교 동창회가 열리기도 했다. 하지만 선교사들이 고령화됨에 따라 과거에는 40여명이 거주하다 최근에는 20여명으로 줄어든 상태. 한국에서 8만여명의 간질환자를 간호하다 은퇴해 이 마을에 살던 레나벨 루이스 선교사는 올해 2월 10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고, 104세 되는 한 선교사는 최근 자녀들이 있는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했다.
선교사 후손 위문행사가 열린 블랙마운틴 장로교회
8일 오후 블랙 마운틴 시내에 있는 장로교회에서는 이들을
위한 위문행사가 개최됐다. 한국의 기독교 TV인 CTS와 기독실업인연합회(CBMC)가 이 마을에 거주하는 은퇴 선교사들을 초청해 한국의 재건을
위해 젊음을 바친 선교사들의 노고에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마련한 것으로 워싱턴과 애틀랜타의 한인 200여명도 참석했다.
행사에는
인근 애쉬빌과 샬럿 등에 거주하는 선교사 40여명들도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애쉬빌에 거주중인 프리다 모리스(95) 할머니는 "1960년대 초반
배화여고에서 영어를 가르쳤다"면서 "당시엔 지붕개량 등 도시화가 시작되던 시기였는데 최근에는 몰라보게 발전했다는 소식을 듣고 있지만 가보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주최측은 은퇴 선교사들에게 한국 음식으로 저녁을 대접한 뒤 감사의 메달을 증정하고, 성악과 피아노 및 전통
부채춤 등 위문공연을 통해 선교사들을 위로했다.
행사에 동참한 칼 바틀렛 블랙 마운틴 시장은 "한국분들이 먼곳까지 찾아와 은퇴한
선교사들을 위로하는 모습이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행사를 기획한 워싱턴 기독교방송의 김영호 회장은 "한국을 위해 청춘을 불사른 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행사를 마련했다"고 말했고, 기독실업인회 워싱턴 지회장인 박상근 변호사는 "모금운동을 통해 내년 5월에는 인근 빌리그레이엄
센터내에 한국초기 선교사 기념비를 세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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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을 생각하며..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합니다. 누구의 제안에 의해서 그렇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좋은 착상인 것 같습니다.
어린이 주일에다 Mother's Day 가 있고 나중에 거의 형식적이기는 하지만 Father's Day도 있고... 가족 구성원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갖자 라는 뜻이 있는 것 같아서 가족의 화목에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오래 만에 맛있는 음식도 같이 먹고, 선물도 주고 받고, 사랑한다고 고백도 하고, 격려도 하고...
그런데 문제는 그와 같은 행위가 일시적 겉치레로 끝나는데 있습니다. 평소의 소홀함을 때우려는 의도가 적지 않게 깔려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결국 가정에서의 문제는 직무유기에서 출발한다고 봅니다. 아버지로서 또는 남편으로서 어머니로서 또는 아내로서 자식으로서 또는 형제 자매로서 자기 자리에 대한 기능이 무엇인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인지 누군가 가르쳐야 했고 스스로라도 공부를 했어야 합니다.
물론 어릴 때에는 부모가 가르치고 학교에서도 가르치지만 점점 자기의 존재가치를 느끼면서부터는 무조건적인 어쩌면 무의식적인 배려에 한계가 나타납니다. 나의 유익이 먼저 생각나고 나의 생각이 더 중요하고 그것에 반대하는 존재가 싫어지고 더 더욱 방해하는 존재는 미워지기 시작합니다.
구성원의 관계형성이 돈이나 사물이나 자기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 그들의 가치기준으로 자리를 잡고 말았습니다. 나 이외의 가족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는 자기 중심적 이기주의가 둥지를 튼 것 입니다.
그런 결과는 밖으로 진출을 해서도 자주 나타납니다. 다른 아이가 갖고 있는 것을 달라고 조르는 아이들을 우리는 자주 봅니다. 울면서 떼를 쓰면서 아주 격렬하게 요구합니다. 그것이 부당한 요구라는 것을 본인은 알고 있습니다. 아주 잘 알고도 하는 짓입니다.
그 때를 놓쳤습니다. 가르칠 시기를 놓쳤습니다. 그 후에도 기회는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모두 놓쳤고 오히려 더욱 악화되는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부부간의 화목한 모습으로 배려하는 모습으로 현장실습을 시켜야 했지만 기능을 상실한 부부는 아이들의 눈에 슬픔과 낙심을 기억시키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어느덧 굳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 모습을 감추고 싶은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화려한 척 포장을 하고 싶은 겁니다. 그것이 가정의 달에 나타나는 가식적 현상입니다.
그러나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고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불우한 어린이들을 돕는 운동입니다. 믿을만한 구호단체가 많이 있습니다. 어린이 한 명에게라도 생활비를 후원하는 일에 어른들이 먼저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한 달에 몇 달러가 적은 금액이겠으나 그들에게는 한 두 달을 먹고 살 수 있는 큰 돈입니다.
전쟁으로, 천재지변으로, 굶주림으로, 질병으로 지구촌 구석구석에서는 비명소리와 신음소리와 한숨소리가 끊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나 자신의 문제로 우왕좌왕 할 때에 기껏해야 내 가족의 화목을 걱정 할 때에 그들은 허기진 배를 움켜 쥐고 죽어 가고 있습니다.
주식시세가 오르락 내리락 할 때마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락 내리락 할 때마다 우리의 기분이 오르락 내리락 할 때에 그들은 몇 십명 씩, 몇 백명씩 아니 수천 명씩 죽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입맛에 비위를 맞추느라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걱정 할 때에 그들은 손가락을 빨다가 지친 채 죽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눈 만 뜨면, 마음 만 먹으면 얼마든지 찬양을 드리고, 기도를 드리고 언제든지 교회를 향하여 달려 갈 수 있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모른 채 불쌍하게 죽어 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죄가 있다면 예수님을 모르는 죄이지만 그들에게 예수님을 전하지 않은 죄는 누구에게 있다는 말 일까요? 누구에게 그 피값을 물으실까요?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가능하면 그들을 먹여 주어야 합니다.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있어서 선교의 현장으로 갈 수 없다면 그 곳의 선교사들과 동역을 해야 합니다.
돈! 많이 벌면 좋습니다. 정직하게 깨끗하게 많이 벌어야 합니다. 왜? 이런 곳에 쓰기 위해서 입니다.
그렇게 움직이는 우리를 보는 자식들이 우리의 뒤를 이을 것 입니다.
이것이 가정을 살리는 길입니다. 이 길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섬김의 사역입니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 몸소 죽어주신 예수님의 희생입니다. 그로 인해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 그로 인해 우리는 부활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가정의 달 나의 가정만이 아니라 우리의 가정입니다. 남을 위해 애쓰는 만큼 나의 가정이 든든히 설 것 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5:7)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잠14:21)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잠14:31)
우리의 가슴이 넉넉해지는 5월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의 눈이 나와 내 가족, 우리 교회를 훌쩍 뛰어 넘어 동서남북을 바라보고 세계를 바라보고 우주를 바라보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아야 합니다.(주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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