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이토 미즈코 박사팀이 발표한 미국 청소년들의 디지털 매체 사용에 관한 연구가 있었다.
<디지털 유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된 이 연구는 3년 동안
로스앤젤레스 내 저소득 라틴계 중학생 800여 명을 인터뷰하고,
이들의 인터넷 및 휴대전화 사용 실태를 5,000시간 이상 관찰한
결과이다.
미즈코 박사팀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 청소년들은 주로 ‘마이스페이스’나, ‘페이스북’ 같은 온라인 인맥 기반 커뮤니티를 이용하며 친구를 만나고 사교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청소년들은 인터넷을 통해 관심사에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정보를 얻는 ‘오타쿠’적 기질을 보였다.
일본 만화영화 팬의 경우 비디오 정보 교환 커뮤니티나 온라인 토론 그룹 등에 가입해 활동하면서 꽤 깊은 지식을 쌓고, 일부는 일본어 공부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또한 청소년들은 온라인 검색 서비스를 통해 컴퓨터 부품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온라인 대화방을 통해 설치 방법을 전수받은 뒤 직접 자신의 컴퓨터에 설치하는 등 전문가 버금가는 기량을 뽐내기도 했다.
이렇게 인터넷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청소년들은 연륜 있는
어른들로부터 배우는 것보다, 온라인으로 만난 또래 집단들로부터
스스럼없이 배우면서 더 많은 동기부여를 받고 있었다.
<디지털 유스 프로젝트>에서 또 다른 연구를 담당한 플로리다 주립대학의 리사 트립 박사 팀도 이와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청소년들이 인터넷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찾고,
사람들과 네트워킹을 하고, 게임이나 글쓰기, 동영상 편집 등과
같은 활동을 즐기는 과정에서 터득한 경험이 이들의 사회화를
촉진하고, 자율성을 증진시키는 효과를 가져 왔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청소년들이 인터넷을 사용하는 데는 부정적인 면이 더 많이 지적되고 있다. 물론 미국의 청소년들 못지 않게 좋은 방향에서 인터넷을 이용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잘못된 댓글문화이다. 한마디로 저질이다.
당장 지난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 때만 봐도 그렇다. 촛불
시위의 도화선을 당긴 것이 다음 아고라에서 ‘안단테’라는 닉네임을
쓰는 청소년이었고, 청계광장에서 촛불문화제를 처음 시작한 것도
‘촛불소녀’로 상징되는 청소년들이었다. 훗날 역사에 기록될 이
엄청난 사건이 바로 청소년들에 의해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기로 한다.
인터넷 폐인부대로 유명한 디시 인사이드(www.dcinside.com)
게시판에 네티즌들 사이에 악명 높던 전설적인 악플러(악성 리플을
올리는 사람)가 한 명 있었다. “씨벌교황”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던 이 악플러의 만행은 디시 폐인들조차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게 만들 정도로 대단했다.
디시인사이드 운영자인 폐인대장 김유식씨의 증언에 따르면 “글을
읽는 네티즌의 혈압을 순식간에 오르게 하는 것은 기본이고,
씨벌교황이 쓴 글을 읽다가 마우스를 내던지고 모니터를 부숴 버린
사례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사람의 감정을 요동치게 만드는
놀라운 표현력을 보다 좋은 글을 쓰는데 사용했다면 독자 대중들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재주가 아깝기
짝이 없다.
비록 씨벌교황은 사라졌지만 지금 인터넷 공간은 또 다른 수많은 씨벌교황들이 무자비하게 뱉어놓은 악플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얼마 전에는
임모씨가 불의의 사고로 아들을 잃은 내용을 보도한 언론기사에
올라온 악플에 견디다 못해 악플러들을 검찰에 고소한 일도 있었다.
"명복을 빈다고 말해야겠지만 솔직히 쌤통이다"
"안됐지만 국민의 저주가 하늘을 감동시킨 것 같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에게 도저히 할 수 없는 잔인한 말들을 이처럼 거리낌
없이 내뱉을 수 있다는 것은 스스로가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이
아닌가 싶다. 더욱 놀라운 것은 검찰의 조사 결과 기소된 악플러들의 상당수가 고학력의 중년층이었고 그 중에는 대학교수,
금융기관 간부, 전직 공무원들까지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악플이라는 전염병이 세대와 신분을 초월해 가히 ‘국민병’으로
급속히 번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흔히 악플의 원인으로 인터넷의 익명성을 지목한다. 하지만
악플의 원인은 인터넷의 익명성보다 비대면성에서 찾는 게
맞다. 익명성과 비대면성은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은 정반대의
성격을 띤다. 익명성이 나를 감추는 효과를 제공한다면, 비대면성은
거꾸로 상대방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즉 악플로
공격하는 상대방을 살아있는 인격체라 여기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행위에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포털 뉴스의 리플 구조도 악플이 만연하는데 큰 책임이 있다. 단지
제한된 몇 줄의 글만 올릴 수 있는 지금의 리플 공간에서
네티즌들이 글을 쓸 때는 그저 지나가며 한마디 툭 내뱉는 기분이
들기 마련이다. 따라서 깊은 생각 없이 단순히 감정을 배설하는
글쓰기에 머물 수밖에 없다.
몇몇 대형 포털 뉴스가 네티즌 여론을 독점하고 있는 것도 문제이다. 인터넷의 중요한 미덕 중 하나가 분산의 원리이다. 예전처럼 네티즌 여론이 형성될 수 있는 공간이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을 때에는 특정 게시판이 악플로 뒤덮이면 대다수 네티즌들은 그곳을 외면하고 다른 곳으로 떠나버렸다.
결국 오염된 공간은
도태되고 다른 곳에서 양질의 인터넷 여론이 새롭게 활성화되는
자연스러운 정화 작용이 작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포털 게시판이
인터넷 여론을 거의 장악하고 있는 현재의 구조에서는 이러한 정화
작용이 작동할 여지가 별로 없다. 지금의 포털 게시판은 마치
오염된 호수처럼 쓰레기 리플들이 내뱉는 악취에 숨을 쉴 수가 없는
형국이다.
물론 포털 업체들도 게시판 정화를 위해 나름대로 여러 가지
노력들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하루에도 수십 만 건이 넘는 리플들을
온전히 감당하기에는 사실상 역부족이다. 뿐만 아니라 네티즌들의
페이지뷰에 따른 광고 수입에 의존하는 포털의 수익구조를 감안한다면
보다 많은 페이지뷰를 유도하는 현재의 리플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기대하기도 힘든 노릇이다. 결국 악플의 궁극적인
해결자 역할은 네티즌 스스로의 몫이어야 한다.
내가 욕을 내뱉을 때 그 소리를 제일 먼저 듣게 되는 사람은 누굴까? 그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마찬가지로 누군가 악플을 올릴 때 그 글을 제일 먼저 보게 되는 사람 역시 악플러 본인이다. 내 입에서 나온 욕설은 제일 먼저 내 귀를 더럽히고, 내 손끝에서 나온 악플은 제일 먼저 내 눈을 더럽힌다.
너무나
당연한 이 원리 하나만 염두에 두어도 악플의 폐해는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지 않을까? 이 한 사람의 네티즌을 바로 세우는 것이 교회의
몫이기도 하고.(장재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