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마이트(Chromite)작전
수립

UN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낙동강 전선에서
연합군과 북한군이 전투를
치르던 당시
'특정 장소'에 미
해병대를 상륙, 서울을 함락하여
북한군의 군수물자
루트를 차단하고
북한군을 고립시킨 후
낙동강 전선에서 총 반격에
나선다는 작전을
구상하고 있었다.

맥아더 장군은 고심 끝에
서울에서 32km 떨어진
인천을 상륙지점으로
결정하게 된다.
인천은 서울로 접근할 수
있는 최단거리 항구였으며
수도 서울을 탈환한다면
아래와 같은 이점을 얻을 수 있었다.

1950년 9월 4일부터
1950년 9월 14일까지
미국의 F4U 커세어(Corsair)
항공모함 탑재기가 출격하여
인천, 군산, 삼척 등
상륙이 가능한 지점에 집중적으로
폭격을 감행한다.
다른 지점에도 폭격한
이유는?
상륙지점이 인천이라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한 기만술이었다.

작전에 앞서 미국 해군
첩보수집 특공대
임병래 중위의 1개 공작조가 인천
잠입에 성공한다.
이들 공작조는 방심하고
있는 북한군이 점령하고 있는
인천의 장비배치도, 병력,
고지 등의 정보를 수집하였으며
인천 월미도에서 북한 군관
2명을 생포하는 공을 세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D-DAY 1일 전인 1950년 9월 14일
북한군에 의해 공작조가
발각되자 자신은 홀로 남아
북한군과 교전하였고
공작조가 퇴각할 시간을 벌게 된다.
임병래 중위가 벌어준
소중한 시간 덕분에 공작조는
무사히 퇴각할 수 있었고
임병래 중위는 생포되었을 경우
고문당해 정보를 누설할
것을 염려하여 자결(自決)하게 된다.
우리는
임병래 중위를
기억해야 한다.

1950년 9월 12일 D-DAY 3일 전
영국 특수부대(SAS)는
전라북도 군산에 잠입하여
미군의 군용장비를 일부러
버려두고 도망친다.
(미군이 군산에 잠입했다고 북한군이 믿도록 하는 전략)
1950년 9월 13일 D-DAY 2일 전
미국 해군 미주리호(USS-Missorui)는
동해안으로 출동하여
강원도 삼척에 함포 사격을
감행한다.
같은 날, 낙동강 전선에서
미국 제8군 사령관 해리스 월턴 월커 중장은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한다.
"UN군과
한국군은 10월 중순에 총 반격을 감행할 것입니다 ."
이에 기자들은 일제히
'UN군과 한국군, 10월
중순에 반격할 듯'이라는 기사를 보도한다.
이 첩보를 접한 북한
수뇌부는 반격이 이루어지기 전에
전쟁을 끝내기로 결정하였고
결국 후방에 남아있는 예비
부대 또한 낙동강 전선에 투입하게 된다.
1950년 9월 14일 D-DAY 1일 전
북한군은 평양에 아래와
같은 보고를 한다.
적 함정들이
인천에 접근 중,
다수의
항공기가 월미도를 폭격 중,
유엔군 상륙
기도(企圖)가 극히 농후함.
휘하 전
부대에 전투준비를 명령하였음.
적이 상륙을
기도하면 저지,격멸할 것.
이에 김성주(김일성)는
매우 놀랐다.
급히 소련의 스탈린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하였으나
이미 소련이라고 한들 어쩔
도리가 없었다.

1950년 9월 15일 새벽 D-DAY
제7합동기동부대 스트러블
해군 제독의 지휘 아래
항공모함, 구축함, 순양함
등 8개국 261척의
함정이
인천 앞바다에 집결한다.
(261척 : 미국225척, 영국12척, 캐나다3척,
호주2척, 뉴질랜드2척, 네덜란드1척, 프랑스1척, 한국15척 )

1950년 9월 15일 오전 5시 00분
미국 해군은 인천 월미도에
상륙 준비 사격을 감행한다.

1950년 9월 15일 오전 5시 45분
미국 제15항모 부대의
F4U 커세어 10대가 출격하여
해안 지역에 폭격을
감행한다.


1950년 9월 15일 오전 6시 33분
미국 해군의 녹색 해안
함포 사격 후 미국 상륙주정 7대가
녹색 해안(Greean
Beach) 상륙에 성공한다.
상륙에 성공한 이들은
사상자 없이 인천 월미도 105고지를
탈환 하는 데에 성공한다.
1950년 9월 15일 오전 10시 00분
미군은 소월미도에 공격을
감행한다.
그로부터 1시간 정도 지난
1950년 9월 15일 오전 11시 15분
미군은 소월미도 점령에
성공한다.
미군 사상자
없음
북한군
사망자 108명
북한군
부상자 137명

1950년 9월 15일 오후 2시 30분
미국 해군은 또 다른 상륙
지점인 적색
해안(Red Beach)과
청색
해안(Blue Beach)에 함포 사격을 감행한다.
미국 해군이 함포 사격을
가할 때
대한민국 육군 제15연대,
대한민국 해병대 제1연대는
미군 상륙주정에 옮겨 타고
상륙 명령을 기다리게 된다.
1950년 9월 15일 오후 5시 33분
미국 해군의 함포 사격 후
미국 해병대 제1연대가
청색
해안(Blue Beach) 상륙에 성공한다.
미군 전사자
1명
미군 부상자19명
북한군
사망자 50명
북한군 포로
15명
1950년 9월 15일 오후 5시 33분
미군 해군의 함포 사격 후
미국 해병대 제5연대가
적색
해안(Red Beach) 상륙에 성공한다.
미군 전사자
8명
미군 부상자
28명

1950년 9월 15일 오후 8시 00분
대한민국 해병대 제1연대가
적색
해안(Red Beach)에 상륙하여
인천 시가지 소탕, 해안
경비를 담당하게 된다.
대한민국 해병대 제1연대가
상륙하는 것을 끝으로
인천상륙작전은 성공하게
된다.(비전통신 종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