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vember 3,
2013





1.
작은 불꽃 하나가 큰 불을 일으키어
곧 주의 사람들 그 불에 몸 녹이듯이
주님의 사랑 이같이 한 번 경험하면
그의 사랑 모두에게 전하고 싶으리
2.
새싹이 돋아나면 새들은 지저귀고
꽃들은 피어나 화창한 봄날 이라네
주님의 사랑 놀라와 한 번 경험하면
봄과 같은 새 희망을 전하고 싶으리
3.
친구여 당신께 이 기쁨 전하고 싶소
내 주는 당신의 의지할 구세주라오
산 위에 올라가서 세상에 외치리
내게 임한 주의 사랑 전하기 원하네
산
위에 올라가서 세상에 외치리
내게 임한 주의 사랑 전하기 원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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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
[상식 밖의 세계사]라는 책 한 권을 선물합니다.
양이 많아서 별도로 창이 열리도록 했습니다. 필요하시면 복사해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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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감별사.....
하도
선교사들이 가짜가 많아서(죄송한 표현 용서바랍니다) 잘 하고 있는 지 알아보는 사람을 선교사
감별사라고 부른 답니다.
뉴스앤조이의 김종희 기자의 글을 특집으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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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안내
.....
미국 이민생활을 안내하는
사이트로 연결되도록 했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시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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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8잔
.....
제 자신이
실험을 해 보았습니다. 얼마만큼 물이 나가는가? 그리고 얼마만큼 물을 보충하는가? 3분의 1
정도도 보충을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탈수라고 한다지요. 모든 병은 탈수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합니다. 건강을 위해서 물을 마셔야 하겠습니다. 하루에 8장 이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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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경제학박사 학위
.....
북한의
김정은이가 명예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답니다. 인민을 굶겨 죽이고 있는데 경제학박사학위라니.
북한 소식에서 자세한 내용을 한번 읽어보시지요.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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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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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열심히
암송했던 추억의 시 [국화옆에서]...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와 천둥 번개의 울음이 있었다.
'봄부터' 울어야만 했던 소쩍새, '먹구름 속에서' 울어야만 했던 천둥.
이들에게도 체머리를 떨어야만 했던 깊은 슬픔의 사연이 있었으리라.
바로 그 슬픔을 견뎌내는 힘으로 국화가 피어나게 했다.
국화는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며 '내게는 잠도 오지
않게 한 꽃이다.
노오란 네 꽃잎이 피도록..
'간밤에 무서리'를 저토록 내리게 한 국화의 힘.
누님의 힘. 누님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엿볼 수 있는 국화.
한 송이를 통해 나에게 절절하며 누님을 회상하게 만드는 국화.
누님이라는 간절한 꽃.
이 시를 읽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그립고 아쉬운
사람이었느냐...
서정주 국화옆에서를 생각하면 김소월의
산유화가 절로 생각난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와 '노오란 네 꽃잎'의 방황.
그리고 그들이 불러 일으키는 왠지 서글퍼지는 가슴.
생명의 탄생과 죽음. 서정주 국화옆에서 가을은
말없이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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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 개막식이 열린 10월 30일,
부산 벡스코 주변은
WCC 반대 여론으로 들끓었다.
회의장 앞에 집회 신고를 하지 못한 반대자들은
게릴라식 소규모 집회를 열거나,
멀지 않은 곳에서 기도회를 개최했다.
이날 모인 반대자들은 하나같이
WCC가
종교혼합주의와 동성애,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적그리스도라고 외쳤다.

한기총 WCC 반대
집회에서 설교자로 나선
홍재철 대표회장. 그는
WCC가 돈이 하나도 없는
거지 단체라며,
교인들이 열성적으로
헌금하는 한국에 와서
돈벌이를 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홍재철 대표회장)는 WCC 반대
집회를 위해 57개 교단에서 교인 3000여 명을 불러 모았다. 참석자들은 서울·대전·대구·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었다. 저마다 WCC를 비판하거나 대회 철회를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었다.
집회는 단순하게 이뤄졌다. 한기총 소속 목사들이 한 명씩 나와
WCC를 규탄하는 대표 기도를 하면, 교인들이 만세 삼창을 외치고 뜨겁게 통성으로 기도했다. 한기총은 WCC가
용공주의, 종교혼합주의, 동성애, 일부다처제, 개종 전도 금지를 추구하는 집단이라며 당장 회개하라고 했다.
홍재철 대표회장은 WCC가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온 것이라고
발언했다. 그는 WCC가 돈이 하나도 없는 거지 단체라며, 교인들이 열성적으로 헌금하는 한국에 와서 돈벌이를 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홍 대표회장은 WCC 소속 교회 교인들에게 "십일조와 헌금을 마귀에게 쓰라고 주는 것"이라며
참여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WCC 행사를 준비한 WCC한국준비위원회(한준위·김삼환
대표대회장)를 비판하기도 했다. 홍 대표회장은 한기총과 한준위가 함께 발표했던 공동선언문을 파기한 것을 비난했다.
당시 공동선언문에는 종교다원주의를 배격하고, 공산주의 및 동성애 사상과 개종 전도 금지주의 등을 반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홍 대표회장은 기독교인이라면 당연히 동의할 내용을 한준위가 일방적으로 파기했다고 주장했다.
집회에 참석한 윤경원 목사는 WCC의 종교혼합주의가 기독교
사상에 어긋난다고 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고신 소속이라고 밝힌 윤 목사는, WCC는 반대하지만 반대 집회는
하지 않겠다는 교단의 결정이 아쉽다고 말했다. 자신은 WCC의 잘못된 신앙관이 가져올 폐해가 심각하다고 판단해
개인적으로 부산을 찾았다고 했다.

한기총 WCC 반대
집회에는 57개 교단에서 3000여 명이 모였다.
참석자들은 저마다
WCC를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있었다.
집회를 마친 한기총 임원들과 교인들은 10여 분간 나루공원
인도를 걸으며 행진 시위를 했다. 구호 선창에는 예장합동 황규철 총무가 나섰다. 황 총무가 "WCC는 적그리스도
단체"라고 선창하면, 2000여 명의 참석자들이 따라 외쳤다.
같은 시각, 벡스코 근처 수영로교회에서는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학생 및 교직원들이 WCC를 규탄하는 기도회를 열었다. 기도회는 수영로교회가 예배당 대관을 허가하지 않아
입구 계단에서 진행했다. 수업을 WCC 반대 기도회로 대체한 이날 집회에는 신학생 830여 명, 교직원 40여 명
등 총 870여 명이 참석했다. 총신대 신대원 학생들은 'WCC 부산 총회가 좌초되길 바란다'는 제목으로 기도했다.

WCC 반대 기도회를
위해 수영로교회에 모인
총신대 신대원 학생과
교직원들. 870여 명의 참석자는
WCC 부산 총회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예장합동 안명환 총회장은 WCC 같은 적그리스도를 궤멸시켜야
한다고 했다. 자신과 같은 선배들은 정년이 다 되어 이제 곧 떠나지만 총신대 신학생들이 교단의 정신을 이어받길
바란다고 했다. 신대원장인 박희석 교수는 WCC가 사회 참여를 강조하고 봉사에 힘쓴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동성애를
지지하는 등 비성경적 신앙관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총신대 신대원 일동은 WCC 총회를 반대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 내용은 WCC는 ...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부인한다
△정통 기독교의 삼위일체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교리를 거부한다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시는
교회가 아니라 WCC 자체가 머리가 되는 세계적인 협의체를 추구한다
△종교 간의 대화라는 허명으로
타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종교 다원론을 추구한다
△회원 교회들의 합의를 성경의 권위보다 위에 둔다
등이다.
개막 전날 보수교단교회연합회에 참가했던 WCC 반대자들도
대회장 주변에서 소규모 집회를 열었다. 회원들은 WCC의 신앙관이 반기독교적이라는 내용의 영문 전단지를 돌렸다.
대부분의 외국인 참가자들은 신경 쓰지 않고 지나쳤지만, 일부 참가자들은 보수교단교회연합회 회원들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일부 WCC 참석자들은
반대자들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집회 참석자
정다와(29) 씨는 "오직 구원자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뿐"이라는 피켓을 들고 수 시간을 서 있었다. 정 씨는 WCC가
구원에 이르는 길이 다양할 수 있다는 주장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은 WCC의 참가자들의 생명을
살리고 싶어 이렇게 나섰다고 말했다.
반대 집회를 바라보던 WCC 참가자 이브 로저 씨(37·Eve
Rosser·미국)는 "공동체의 생각을 외부로 표출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말했다.
WCC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보며 "마귀,
사탄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는 그는, 그들이 자기 나름대로의 주장을 펼치는 것이기 때문에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필립푸스 씨(50·PHillpus Yassu)는
반대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과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는 "반대 집회를 하는 사람들도 교회의 일부이기 때문에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WCC 한국준비위원회 집행위원장 김영주 목사는 부산 곳곳에서
열린 반대 집회에 불편해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잔치를 방해하는 것은 종교인이기 전에 인간으로서의 예의가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WCC 반대 집회 후
행진 시위에 나선 참석자들.

행진 시위 선두에
홍재철 한기총 대표회장과
황규철 예장합동 총무가
섰다. 황 총무가
"WCC는 한국 땅에서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치면,
뒤따르던
2000여 명의 교인이 따라 외쳤다.
경찰과 맞닥뜨린 WCC
반대 시위대.
이날 한기총은 WCC
총회 장소인 벡스코로 행진을 시도했지만,
집회 신고
범위를 벗어나 경찰에게 막혔다.

행진이 막히자 홍재철
한기총 대표회장은
참석자들에게 해산하자고
말했다.
대부분 참석자는
돌아갔고, 일부는 부산에 남아 앞으로 있을
WCC 반대
집회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WCC 반대자 중 한
명이 총회 장소인 벡스코에 들어가려 하자, 경찰이 막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한
WCC 참가자가
1인 시위를 펼치고
있는 반대자와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그는 "민주 사회에서
의견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며,
반대 뜻을 자연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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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은퇴의 때를 맞이하게 된다. 그렇다면 목회자는 언제
은퇴하는 것이 좋을 까?
두 분의 목회자에 관해 살펴보면서 [은퇴]에 관해 생각해 보기로
한다.
2003년 12월 21일. 서울시 강남구 서초동에 위치한 한
교회에서는 그 교회뿐만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를 위해서도 매우 뜻 깊은 일이 있었다.
제자훈련을 목회철학의 뿌리로 삼아 교회를 개척, 사반세기를 지내며
[서울 사랑의교회]를 세계적인 교회가 되도록 이끌어 온 지금은 세상을 떠나신 옥한흠 목사가
담임목사로서의 고별설교를 한 것이다.
70세 정년을 5년이나 앞당겨 단행된 그의 은퇴는 교회의 노령화를
방지하려는 깊은 충정과 한국교회의 문제점 중 하나로 지적되는 비합리적인 목회의 세습 관행을
질타하는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그가 영향력의 정점에서 은퇴를 결행했다는 점은 교회를 향한 목자의
순수한 사랑과 희생정신을 보여주는 신선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살신성인의 자세로 일관된 삶을
살며 목회의 진면목을 보여준 옥한흠 목사는 참으로 이 시대 한국교회의 사표(師表)가 되는
분이라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같은 시기에 미국 텍사스 주 달라스 북쪽에 위치한
신흥개발도시 프리스코(Frisco) 시에서는 흥미로운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70살인 찰스 스윈돌 목사가 [꿈을 위한 종합 기본
계획(Master Plan for a Dream)]이라는 제목으로 향후 10년에서 15년에
걸쳐 진행될 엄청난 건축 계획을 자신이 목회하는 스톤브라이어 교회 앞에 제시한 것이다. 불과
5년 전 스윈돌 목사에 의해서 개척된 이 교회는 현재 6,000명에 이르는 대형교회로
성장했고, 향후 10년 내에 교회가 위치한 도시 인근에 1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거주하게 될
상황을 고려해서 지역사회 복음화를 위한 적극적인 사역 계획을 수립한 것이다.
어느 한국 목사가 스톤브라이어 교회를 방문해서 스윈돌 목사와
대담을 나누었는데, 은퇴 계획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 스윈돌 목사는 단호한 어조로
“No!”라고 답변하였다고 한다. 이제 막 70대에 진입한 노령의 목회자에게서 충천하는
독수리의 기상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스윈돌 목사는 남가주 오렌지 카운티에 소재한 초대형 교회를
목회했고 지금은 세계적인 달라스 신학교의 총장으로 재직하면서 스톤브라이어 교회를 목회하는 일과
함께, 1979년 이후 [삶을 위한 통찰력(Insight for Living)]이라는 라디오
방송설교를 통해서 현재 16개 언어로 11개 국가에 산재한 2,100개의 방송국을 이용하여
신자와 불신자 모두에게 말씀을 전파하고 있다.
나이에 전혀 구애됨이 없이 현재도 하나님이 주신 소명에
전심전력으로 헌신하는 그는 과연 은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목회자는 언제 은퇴하는 것이 적절할까?
한국과 미국의 기독교계를 대표하는 위의 두 분의 각기 다른 행보는
이 질문에 사실상 상이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목회자의 은퇴와 관련하여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어떻게
제시할 수 있을까? 아마 가장 좋은 지침은 획일적인 규칙보다 성경과 상식에 기초한 통찰력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봉사나 직책이나 직업을 떠나는 것을 은퇴라고 정의한 웹스터 사전의
정의에 근거해서 생각해 보면 은퇴는 곧 사임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목회자의 은퇴
행위와 직결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목회자의 사임 행위인 것이다.
그러면 목회자가 자신이 맡고 있는 직책을 떠나려 할 때 고려해 볼
수 있는 점들은 무엇일까?
과연 목회자에게도 은퇴 곧 사임이 있는 것일까?
게리 멕킨토쉬 교수는 100명 이하 교회에서는
아버지 같이, 200명 이상
교회에서는 방향을 제시하는 관리자
같이, 대형교회에서는 사역을 위임하는 CEO
같이 목회를 하여야 한다고 권면한다.
이와 같은 자신의 역할에 합리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때 그리고
정년이 되었을 때 교회를 사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목회자는 연령제한이 있는 직장이란 의미의 자리에서는 사임
할 수 있으나 사역이란 의미에서 은퇴를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은퇴는 은퇴(retire)가 아니라 바퀴를 새로 바꿔 끼고 다시
뛰는 Re-tire라는 말이
맞다. 그러니 목회자에게는 은퇴가 없다. (장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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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글 : 배민경 / 홍익대 동양화과 졸업 및
동대학원 수료
6월 14일 신문발전위원회에 허위 견적서를 내고 신문 발전 기금
2억 원을 빼돌린 혐의(사기)를 받아 온 조민제 <국민일보>
회장이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조민제
씨는 조용기 원로목사의 둘째 아들이다.
아버지 조용기 목사는
6월 7일 여의도순복음교회에 150억 원대의 손해를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배임)로 불구속
기소되었다.
조용기 목사의 맏아들
조희준 씨 역시
회사 재정 35억여 원을 개인적으로 사용한 혐의 등으로
지난 1월 징역 2년을 선고받고 구속된 바 있다.
이로써 조용기 삼부자는 검찰에
'삼박자'로
출두하게 되었다.

한편 /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의 부인 김성혜 한세대학교 총장이
지난 9월12일 검찰에 고발됐다. 고발장에
따르면 김 총장은 2001년 6월 미국 베데스다 대학의
챈슬러(Chancellor·최고재무책임자)에 취임했다.

이후
2005~11년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서 베데스다 대학에 송금한
100억원 규모의 선교 지원금을 임의로 사용한 혐의(특가법상
횡령)를 받고 있다.
한세대는 2009년 7월 베데스다 대학이
소유한 단독주택을 69만8000달러(한화 7억원 상당)에
취득했다. 김 총장은 해외 자산을 취득하면서 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혐의(외국환거래법 위반)도 받고 있다.
조용기 목사의 법원 출두

어느 누구보다 조용기 목사의 법원출두 모습은 한 사람의 교인으로서 뿐 아니라 한국 기독교가
부끄러워해야 하고 가슴 아파해야 할 일이라고 구경 나온 교인들은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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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희 기자 / 한국 뉴스앤조이 대표
[바에니 쑤웅아]에 담긴 남태평양 선교지 취재 이야기

숫자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이여호수아 선교사님(사진)의 사역은
그리 화려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오지와 다름없는 남태평양 섬나라에서 교회를 세우려면
자기 목숨을 담보로 내놓아야 할 만큼
위험한 지경이라는
사실입니다.
6~7년 전에 작은 선교 단체에서 감사를 맡은 적이 있습니다. 그 단체는 기도 많이 하고 선교사 후원 많이 하는 아줌마들이
모여 만든 일종의 선교 '계' 모임이었습니다. 그분들이 저에게 감사를 맡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제 역할은 재정 감사(監査)가
아니라 그분들이 후원하는 선교사 감별(鑑別)이었습니다.
저 선교사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단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분들과 같이
인도와 베트남 선교지를 다녀왔습니다. 참 씁쓸한 역할이었지만, 다행히 제가 직접 감별(?)한 선교사들 중에 엉터리는 없었습니다.
2010년 초 어느 날, 홍성사 정애주 대표께서 남태평양에서 사역하시는
이여호수아 선교사님에 대해 말씀하면서 그분의 선교 현장을
취재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저의 이력으로 비추어 보건대, 좋게 말하면 취재 요청이고 솔직하게 말하면 뒷조사 의뢰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4월에 뉴질랜드로 날아가서 이여호수아 선교사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2010년 4월 25일 주일은 개인적으로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있는 환태평양복음교회에서 섬나라 선교사로
파송되기 위해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다음 날부터 한 달 동안 이여호수아 선교사님과 남태평양의 여러 섬들을 돌아다녔습니다. 93년
시작된 남태평양 선교 사역 현장을 둘러보기 위해서입니다. 취재를 목적으로 동행하는 것이지만, 그 기간만은 저도 임시 단기 선교사가
된 것입니다.
이날 예배는 일종의 파송 예배였습니다. 저는 원주민 전통 예복을 입었습니다. 피지까지 동행할 이 교회 원주민 사역자들과 함께
무릎을 꿇고 안수를 받았습니다. 등불을 움켜쥐고 찬송가 '하나님의 진리 등대'를 부를 땐 손이 떨렸습니다. 등불의 열기 탓도
있었지만, 마음도 조금씩 뜨거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이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2010년 4월 25일,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있는
환태평양복음교회에서 섬나라 선교사로
파송되기 위해 안수를 받았습니다(사진
가운데).
성경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주신
생명과 호흡을 그곳에서 느껴 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80년대 중반 대학 시절 비전트립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한 달 동안 선교 활동을 했을 때가 떠올랐습니다. 하네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일본 사람들의 표정과 말투가 역겨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반일 감정이 본능적으로 솟구쳤습니다.
'여길 왜 왔나' 하는
후회가 물결처럼 밀려왔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선교사로 부르시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엄습했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뒤 기자가 되어서 여러 선교지를 다니며 취재했습니다. 그때마다 대학 시절의 공포가 되살아나곤 했습니다.
마음을 가다듬어 보려고 침대맡에 앉아서 성경을 펼쳤습니다. 사도행전 17장에서 바울이 아테네 사람들에게 설교하는 장면을 유심히
읽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직접 주신 분입니다.…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것은 사람들이 그분을 더듬어 찾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멀리 떠나 계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
내일부터 인간 문명과 단절된 곳으로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졸지에 선교사 파송식을 했지만, 그곳에서 나도 모르게 교만한 마음으로
건방진 행동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습니다. 성경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주신 생명과 호흡을 그곳에서 느껴 보고
싶습니다.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보고 싶습니다. 내 안에, 그리고 우리 안에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을 느껴 보고
싶습니다. 그런 마음이 원주민들과 공유될 수 있다면 더는 바랄 게 없을 것 같습니다. 끝까지 이 마음을 놓치지 않고 선교지를
다니려고 애를 썼습니다.
한 달간의 오지 선교 현장 취재를 마치고 뉴질랜드를 거쳐서 한국으로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6개월 동안 바쁘게 살다가, 2010년
12월 한 번 더 현지를 방문했습니다. 이번에도 기간은 한 달. 성탄절과 연말연시를 남태평양 선교지에서 보냈습니다. 태양이
작열하는 곳에서 "메리 크리스마스, 해피 뉴이어" 하고 성탄과 새해 인사를 나누는 어색한 체험도 했습니다.
두 번째이니까 조금 익숙해졌을까요.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아무것도 모를 때는 덮어놓고 뛰어들었는데, 조금 알고
나니까 머리보다 가슴이, 가슴보다 몸이 더욱 무거워졌습니다. 하지만 복음이 필요한 곳이면 거기가 어떤 곳이든 달려가는 것이
선교사의 운명인 것처럼, 사건이 될 만한 것이 있다면 어떤 곳이든 찾아가는 것이 기자 아니겠습니까. 선교사와 기자는 자기가 보고
겪고 들은 것을 정직하게 알려야 하는 '증인'(證人)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두 달 동안 이여호수아 선교사님과
함께 지난 20년가량의 발자취가 남겨진 오지를 다녔습니다.
'참치 통조림'과 '2차 대전'밖에는 남태평양에 대한 지식이 없던 저에게 이곳은 환상과 악몽을 동시에 안겨 주었습니다. 다랑어와
고래가 휘젓고 다니는 드넓은 바다, 그 안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울창한 밀림, 물 밑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에메랄드 빛 해안은 말 그대로 환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구명조끼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작은 모터보트에 몸을 싣고 바다를 달릴 때의
공포는 타면 탈수록 줄어들기는커녕 배가되었습니다.

남태평양 섬나라의 주요 이동 수단인
모터보트.
구명조끼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바다를 달릴
때의
공포는 타면 탈수록 줄어들기는커녕
배가되었습니다.
악어가 웅크리고 있는 강을 숨을 죽인 채 지나가면 정글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름 모를 독충이 득실거리는 나무에 피부가 닿지
않도록 몸을 잔뜩 움츠린 채 진공청소기마냥 발을 쭉쭉 빨아들이는 늪지대를 걷는다는 것은,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서 보는 오지 생존
체험과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말라리아모기에 물리지 않기 위해서 끈적끈적한 폭염 가운데서도 옷을 꼭꼭 쟁여 입고 자야만 했습니다.
배가 끊겨서 고립된 섬에서는 다람쥐만큼 큰 들쥐들이 숙소 천장에서 어슬렁거리는 바람에 밤을 지새웠고, 예정된 비행기가 오지 않는
바람에 안식교에서 운영하는 숙소에서 며칠을 묵어야 했습니다.
수도 없이 비행기와 배를 타고, 끝없이 걷고, 함께 먹고 자면서, 선교사님과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눈물도 많이 보여
주었고, 웃음도 많이 주고받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동고동락의 순간들을 떠올리면서 믿음의 우정을 쌓아 가고 있습니다. 이 책은
제가 취재한 것을 바탕으로 기초 골조 공사를 했고, 그 위에 이 선교사님이 그동안 쏟은 땀과 눈물과 탄식과 감사거리들을 정직하게
쌓아 올리신 것입니다.
숫자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이여호수아 선교사님의 사역 내용은 그리 화려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수십 개의 교회와 신학교를 세우고,
수십 수백 명의 사역자를 키우고, 수백 수천 명의 결신자를 만들어 낸 선교 보고서와 증빙 사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세상 기준으로
보자면,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초라하다고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군데 한 군데 둘러볼 때마다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곳에 교회를 세우려면 자기 목숨을 담보로 내놓아야 할
만큼 위험한 지경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조그마한 모터보트에 몸을 싣고 험한 파도를 타고 거친 늪지대를 헤치고 가야 합니다. 깨진
거울 조각처럼 날카로운 바위들이 삼엄하게 경계를 서고 있는 산을 오르내리고, 악어가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물을 몇 번이나 건너야
합니다. 식인 문화가 사라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야생성의 흔적이 남아 있는 원주민들이 정글용 칼을 곧추세우고는 복음의 길을
가로막기도 합니다. 안전을 절대 보장할 수 없는 위험한 순간의 연속입니다. 넘어지고 미끄러지고 부딪혀서 몸 곳곳이 망가지고,
무더위와 말라리아의 공격을 받아 쓰러지고, 배고픔과 외로움에 부들부들 떨어야 합니다.


가냘프고 연약해 보이는 선교사님이
말씀을 전할 때는 표정이 달라집니다.
아픈 이의 몸에 손을 얹고 기도할 때 보면,
눈빛은 한없이 부드러워지는데 손아귀에 어떤
힘이 몰리는 것 같습니다.
배신과 질투, 오해와 미움의 물살은 단 한순간도 그치지 않습니다. 죽을 고생을 해서 간신히 다다른 곳에 머물면서 현지 사역자를
격려하고 새로운 도전을 준 다음 돌아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들려오는 소식은, 사역자가 하나님 품을 떠나 세상으로
돌아갔다는 것, 예배당을 짓기 위해서 애써 장만한 물품을 훔쳐 사라졌다는 것, 자기 공만 자랑하고 남을 질투하고 이간질하다가 결국
갈라섰다는 것, 이처럼 가슴 무너져 내리게 만드는 이야기들입니다.
성경은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사 52:7, 롬 10:15)"라고 미화(?)하지만, 이여호수아 선교사님의
발 모양과 걸음걸이는 결코 아름답지 않습니다. 몸만 아니라 마음에도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와 아픔의 흔적이 깊이 새겨 있습니다.
게다가 그분은 선교사로서 기본적인 체력 조건이 많이 부족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섬나라에서 교통수단은 경비행기 아니면 작은
모터보트나 카누입니다. 저는 8명이 타면 꽉 차는 좁은 비행기 안에서 몸을 좌우로 움직여 가면서 카메라로 바깥 풍경을 찍고
있는데, 선교사님은 휴지 조각으로 귓구멍을 틀어막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습니다. 폐소공포증이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배
위에서도 저는 꼼짝 않고 서서 비바람을 맞으면서 열 시간 넘게 버텼습니다. 선교사님은 멀미를 잊기 위해서 온몸을 쪼그린 채 잠을
청했습니다. 양쪽 무릎 연골이 파열된 바람에 산을 오르거나 강을 건너거나 늪지대를 지날 때면 다른 사람들의 부축을 받거나 막대기에
의지해야만 합니다. 목 디스크도 장난이 아닙니다.
그에 비해 저는 선교사 체질입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풀을 빚어 만든 수프든 고구마와 무를 적당히 섞은 것같이 애매한 맛을 내는
열매든, 가리지 않고 맛있게 먹었습니다.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서 엄지손가락만 한 굼벵이를 구워 먹기도 즐겼습니다. 머리만 닿으면
언제 어디서건 잠에 빠졌습니다. 입던 옷을 훌렁 벗어 던지고 원주민 복장으로 갈아입고는 아이들과 신나게 춤도 추었습니다.
비행기와 배도 잘 타고, 걷기도 잘 걷고, 먹는 것, 자는 것, 노는 것, 어느 것 하나 가리지 않고 즐기는 저를 보면서
선교사님은 "하나님은 왜 이런 분을 안 쓰고 나 같은 사람을 쓰시나 모르겠다"고 입맛을 다십니다. 심지어 밥을 빨리 먹는 것
가지고도 "딱 선교사 체질이야" 하면서 감탄합니다. 저처럼 현지 음식이 입맛에 맞는다고 맛있게 잘 먹고 잘 자는 사람은 절대
말라리아에 안 걸린다면서, 여기 그냥 남아도 되겠다,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실지 궁금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습니다.
'그러나……' 잠시 뜸을 들인 후 말을 이었습니다. 잘하기는 참 잘하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하느냐'는
것이라고 정곡을 찌릅니다. 마음속으로 은근히 잘난 척했는데, 그 말을 들은 다음부터 겸손해지기로 했습니다.
가냘프고 연약해 보이는 선교사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는 표정이 달라집니다. 아픈 이의 몸에 손을 얹고 기도할 때 보면,
눈빛은 한없이 부드러워지는데 손아귀에 어떤 힘이 몰리는 것 같습니다. 더러운 악령을 쫓아내는 기도를 할 때 내지르는 호통 속에
담겨 있는 단호함과 결연함은 누구도 쉽게 흉내 낼 수 없습니다. 역시 선교사님은 저 같은 사람과는 전혀 다른 분입니다. 저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선교사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는 이번 취재를 위해서 선교와 관련한 책을 몇 권 읽었습니다. 그때 읽은 한 권의 책에 어느 분이 이런 추천의 글을 썼습니다.
"복음의 가치가 단순히 개인 구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한 사회를 변화시키고 그 종족의
운명을 바꾸기까지 역사하는 힘이 있음을 확증해 준다. 필자 역시 몽골에서 사역하는 과정에서 그 민족이 복음이 없어서 망하고 있으며
그 민족을 살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 복음을 심어 주는 것임을 절감했다."
저는 그 단락에 밑줄을 그었습니다. 그리고 한마디를 남겼습니다.
"과연 그런가?"
사회를 변화시키고 종족의 운명을 바꾸는 힘이 복음에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복음이 그런 능력을 발휘하려면 선교사가 먼저 복음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가 있어야 하며, 그런 방향으로 선교 전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제가 '?' 표시를 붙인
것은 한국교회 선교에는 그런 의식도 별로 없고 전략도 희박하다고 평소 생각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 책을 읽은 때가 2010년 2월 22일이니까, 뉴질랜드로 떠나기 전입니다. 2011년 6월에 그 책을 다시 읽으면서, '?'를
'!'로 바꾸었습니다. 피지에 가서, 똑같은 피지배의 아픔을 안고 있는 피지 원주민과 인도 이주민이 한 교회에서 가족으로 지내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에 가서, 내전으로 인해 원수처럼 지내던 과달카날 섬의 헤브론 부락과 사베카오 부락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고 서로 얼싸안은 채 화해의 예배를 드리는 현장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그런 의식도 약하고 전략도 빈곤하지만, 복음의 능력은 우리의 약함과 부족함과 무지를 뛰어넘어서 스스로의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확고한 의식과 치밀한 전략 이전에 복음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마음 깊이 배웠습니다.
이여호수아 선교사님은 아마 그런 의식을 하지 않고 '복음만' 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뿌린 희생의 씨앗을 잘
자라게 하셔서 화해와 용서와 회복의 열매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유난히 사랑하시기에 '기자'라는 신분 외에 '선교사 감별사'라는 새로운 별정직을 주신 것 같습니다.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이번에 진짜를 감별해 내는 은총과 감동을 누릴 수 있는 호사를 허락하셨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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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를 크게 다친 독수리 한 마리가
벼랑 위에서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는 몇 번이나 하늘 높이 날아 오르려고 했으나
다친 날개로는 도저히 하늘 높이 날 수가 없었습니다.
"독수리가 하늘 높이 날 수 없다는 것은
더 이상 살아갈 가치가 없다는 거야."
그는 날기를 포기하고 지난 날을 생각했습니다.
태어나자 마자 형제들을
벼랑아래로 떨어뜨리던 아버지 생각이 났습니다.
"넌 위대한 독수리가 될 자격이 있다!"
형제들 가운데서 살아 남자
그에게 뺨을 비비며 기뻐하던 아버지가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보다
더 이상 위대한 독수리로 살아 갈 수 없게 된
상처의 아픔이 더 컸습니다.
"나는 평범한 새가 아니야,
가장 높이 나는 새들의 왕이야,
그런데 이게 뭐야?
이제 가장 낮게 나는 새가 되어버렸어.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아."
그는 벼랑 아래를 오랫동안 내려다 보았습니다.
벼랑아래는 죽은 독수리의 뼈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 속에는 아버지의 뼈도 쌓여 있었습니다.
"독수리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은
이 방법 밖에 없어!"
그는 아버지를 떠 올리며
벼랑아래로 뛰어 내리려고 몸을 잔뜩 웅크렸습니다.
순간 어디선가
대장 독수리가 쏜살같이 하늘에서 내려와
"잠깐!" 하고 소리쳤습니다.
"형제여, 왜 자살을 하려고 하는 가?"
대장 독수리가 그를 가로막고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니?
왜 그런 생각을 하는가?"
"저는 더 이상 높이 날 수 가 없습니다.
독수리의 명예를 잃게 되었습니다."
대장 독수리는 한참 동안 그를 말없이 바라 보았습니다.
그러고는 그를 향해 날개를 활짝 폈습니다.
그이 몸에 여기저기 상처 자국이 나 있었습니다.
솔가지에 찢긴 자국,
다른 독수리에게 할퀸 자국 등 수 많은
상흔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나를 봐라, 내 온 몸도 이렇게 상처투성이 란다,
상처 없는 독수리가 어디 있겠니?"
자살하려고 했던 독수리는
대장 독수리의 말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러자 대장 독수리가 조용히 말을 이어 나갔습니다.
이건 겉으로 드러난 상처일 뿐이다.
내 마음의 상처는 이 보다 더 하다.
일어나 날아 보자.
상처없는 독수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자 마자 죽어버린 독수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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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 함*남
김*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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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몽골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지만, 김정은
제1비서와의 회담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위원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몽골 대통령의 북한
방문 일정이 10월 31일 끝났습니다. 북한의
형식상 국가 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는 회담을 했지요. 그런데 정작 김정은
제1비서와의 만남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위원님,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고영환:
김정은 체제에서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한 차히야 엘벡도르지 몽골
대통령이 지난 10월 31일 방북을 끝내고
귀국했습니다. 몽골 대통령은 이름만 국가 수반인
김영남을 만나고, 총리도 만나고 했지만, 실제적인
국가 수반인 김정은과는 만나지 못한 것으로 보도가
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이른바 지도자가 김정은이라는
사실은 온 북한 국민이 알고 온 세계가 알고
있는데, 몽골 대통령을 만나주지 않은 것이죠. 이런
외교적 실례가 없습니다.
김정은이 몽골 대통령을
만나지 않은 것은 우선 외국 정상과의 첫 만남을
몽골 같은 작은 나라와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빚어낸
외교적 참사라고 판단합니다. 김정은은 외국 수반과의
만남을 중국 같은 대국과 시작하여 ‘김정은이 대국의
국가 수반을 만났다’고, 그것도 세계 2대 강국인
중국의 수반과 만남을 가졌다고 선전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큰 나라든 작은
나라든 국가 수반은 국가 수반입니다. 몽골 같은
작은 나라, 경제적으로 큰 도움을 줄 수도 없는
몽골 같은 나라의 대통령은 김정은 지도자가 안
만나겠다는 의도인데, 이것은 외교적으로 대형
사건사고입니다. 한마디로 몽골 대통령이 북한에 가서
푸대접 수준을 넘어 무시를 당한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두 번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번에 몽골 대통령을 만나지 않음으로써
김정은의 외교적 판단력 수준이 매우 낮다는 점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몽골 대통령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귀국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북한의
이런 태도를 본 다른 작은 나라의 수반들이 평양에
가보고 싶겠습니까? 외교에서 작은 나라, 큰 나라를
가르면서 대우 수준을 정한다는 것은 대단한 외교적
실례이고 결례입니다.
박성우:
북한에서 외교관 생활을
직접 하셨기 때문에 이렇게 자신있게 평가하시는 듯
합니다. 위원님, 북한과 몽골의 관계, 그 과거와
오늘을 비교해 보면 어떤 차이가 있나요?
고영환:
과거 사회주의 시절
북한과 몽골은 동지적 관계였습니다. 몽골 대통령이
평양에 오면 김일성이 직접 비행장에 나가서 마중하고
극진히 대접하였습니다. 구소련이나 몽골이나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대우하였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보신 것처럼, 북한의 지도자라는 김정은이
몽골의 대통령을 마중하지도, 만나주지도 않았습니다.
이전보다 북한-몽골 국가관계의 수준이 많이
낮아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이번 몽골 대통령의 방북 배경에는 라선 경제개발구에
몽골이 투자하는 문제, 현재 1,700여명 규모로
몽골에 나가있는 북한 근로자 규모의 확대 문제,
그리고 정보기술과 축산업 발전 문제 등에서 몽골과
북한이 서로 협조를 강화하려는 것 등이 있겠습니다.
박성우:
북한과 몽골이 과거에는
정치적 동지였다면, 지금은 경제적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데 그치고 있다고 정리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런데 이번 몽골 대통령의 북한 방문을
일본 측에서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뭐라고 보면 될까요?
고영환:
금번 몽골 대통령의
방북을 일본 측에서 매우 주시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연이어 나왔는데요. 특히 일본 언론들이
관심이 많습니다. 지난 3월에는 아베 일본 총리가
몽골을 방문하였고, 9월에는 몽골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습니다. 또한 북한과 일본의 외교 관리들이
몽골에서 자주 만나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를
논의하기도 했습니다.
몽골과 일본의 관계가
이렇게 가까워지는 것은 일본이 몽골을 중재자로 삼아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전에는 북한-일본
사이의 회담이 주로 중국에서 진행되었는데, 중일
관계가 악화되면서 일본은 좀 더 중립적인 나라인
몽골을 북한-일본 관계를 토론하는 장소로 선택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덧붙여, 일본
도쿄에 있는 조총련 중앙위원회 건물 문제도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총련 건물을 놓고 현재 법원
경매가 진행 중입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면,
일본의 조총련 단체들과 재일본 북한인 상공인들이
북한에 외화를 지원하느라 일본 은행들에서 빚을 많이
내었는데, 그 빚을 갚지 못해서 많은 재일 상공인
소유의 건물들이 강제로 경매되고 있습니다. 조총련
건물도 돈을 갚지 못해서 법원에 경매로 넘어간
것이죠.
그런데 조총련 건물
경매에서 가장 높은 가격을 써낸 곳이 몽골의 ‘아바르’라는
기업입니다. 이건 사무실도 없는 사실상 유령
종이회사입니다. 많은 분석가들은 조총련의 상징인
조총련 중앙위원회 건물이 일본 사람들에게 팔리는
것은 북한의 망신이니, 북한이 몽골의 유령회사를
앞세워 이 건물을 다시 사려고 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결국 외교관계가 없는 북한이 일본 측
경매에 참가할 수 없으니, 몽골을 앞세워 경매에
참가해 건물을 사서 조총련이 계속 쓸 수 있도록
하자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박성우:
조총련 이야기를 잠시
하셨는데요. 일본 내에서 조총련의 위상이 점점
약화되고 있는 듯 합니다. 그 이유를 좀 구체적으로
짚어 주시죠.
고영환:
일본 도쿄에 있는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에서 걸어서 2-3분
거리에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건물이 있습니다. 저도
여러번 그 주변에 가 보았는데요. 이 건물은 일본에
사는 북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의 희망이었고 자부심의
상징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앞에서도 이야기를
하였지만, 이 건물이 지금 경매에 부쳐져 있습니다.
남에게 팔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소리입니다.
1970-80년대
그렇게 큰소리 치던 조총련의 건물이 외국인에게 팔릴
정도가 된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우선 조총련이
북한 정권의 거점 역할을 하면서 수십년 동안 북한에
수많은 외화를 들여보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총련 소유의 건물들, 재일 상공인들의
재산과 부동산을 담보로 하여 일본 은행들에서 돈을
꾸어 평양에, 김정일에게 외화현금, 충성자금을
보냈던 것이죠. 돈을 꾸었으면 갚아야 할 텐데,
갚지를 못하니, 많은 재일 상공인들의 재산이 법원에
경매로 넘어가고 파산하게 되는 것입니다. 조총련
건물도 그렇게 된 것입니다.
현재 조총련 자체도
점점 쪼그라들고 있습니다. 일본에는 두 개의 한국인
단체가 있습니다. 북한 국적을 선택한 사람들은
조총련 조직에, 한국 국적을 선택한 사람들은 민단에
속해 있습니다. 1959년 조총련이 창립했을 때,
총련 인원수는 43만명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2013년에 와서는 7만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하면, 그 동안 한국은 경이적인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이루었는데, 북한 경제는 몰락하면서
사람들이 굶어죽는다는 소문이 들리고, 여기에
사회주의 국가라고 하던 북한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삼대째 내려오면서 봉건왕조처럼 세습을
하고, 여기에 일본인 납치 문제까지 겹치면서,
조직원들이 실망하면서 총련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매일 100명
이상씩 북한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 국적을 가지거나,
일본으로 귀화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보면,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민단 회원수는 급증하고, 북한
국적을 가진 총련 회원수는 급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박성우:
마지막으로 이 소식도
소개해 드리고 있습니다. 김정은 제1비서가
말레이시아의 어느 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지요?
고영환:
말레시아에 헬프 대학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대학이 지난 10월 3일
김정은에게
명예 경제학
박사 칭호를 수여했습니다. 이
대학의 폴 찬 총장은 성명을 통해 “향후 6년 안에
북한이 개방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에게 이 칭호를
수여한 것은 북한 주민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다리를
만들기 위해서이다”라고 밝혔습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세계 곳곳에서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 대학
졸업생들은 “독재자에게 명예박사 칭호를 수여한 것은
대학의 망신이다”, “이젠 어디 가서 이 대학을
졸업하였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합니다.
세계 언론들도 우스꽝스러운 일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를 좀
이해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사실 저도 북한 외교관을
할 때 “김정일에게 명예박사 칭호를 수여하도록 해당
나라의 대학총장들을 만나라, 교육성 사람들을
만나라, 선물을 주라, 북한에 초청하는 한이
있더라도 영향을 미쳐 김정일에게 명예 철학박사나
경제학 박사 칭호를 받도록 최선을 다하라“ 이런
전문들을 외무성으로부터 수없이 받았고, 그래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대사의 고충을 그래서 이해합니다.
박성우:
김정은 제1비서가
경제학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하니까요. 이젠
북한 경제도 좀 챙기길 기대해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했습니다. 위원님,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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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7일 밤 11시 15분에
방송되는 ‘SBS 스페셜’에서 물 한잔에 담겨있는
건강의 의미를 방송했다.
대한민국 인구 90%는 수분 부족. 그 이유는 마실 물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실 음료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커피,
에너지 드링크, 탄산음료, 이온음료 등 때와 장소에 따라 마시게 되는 음료들
때문에 물(맹물)은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지 오래되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물을 멀리하면서 우리의 건강한
미래도 멀어졌다면? 건강에 관심 많은 현대인들의 다이어트, 운동, 식이요법 그
모든 것들이 충분한 수분섭취 없이는 몸을 되려 망칠 뿐이라면?
기본적인 건강
유지를 넘어서 내 몸을 치료하는 물에 대한 이야기로 수분부족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의 생활습관에 경종을 울린다.

2013년 8월. 점심시간
점심을 먹으러 나온 직장인들로 북적 이는
강남대로. 그 중 10명 중 8명의 손에는 테이크아웃 잔이 들려있다. 끊임없이
뭔가 마시는 사람들. 그런데도 우리 몸은 계속 말라가고 있다.
왜일까? 음료가 오히려 우리 몸을 탈수시키기 때문이다.
쉴 새 없이 바쁘고 여유 없는 사회 분위기와 소비문화가 사람들로 하여금 점점 물에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있다.
펜실베니아의 조용한 마을, 이 곳에는 20여 년 전부터
미국 내에서 워터 신드롬을 일으켰던 뱃맨갤리지의 주장을 따라
운영되는 워터큐어센터(WaterCure Center)가 있다.
제작진은 이 워터큐어센터에서 물 한 잔의 기적을 직접 체험한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2달 반만에 MS(다발성경화증)이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증상들이 없어졌죠. 저는 제
신경의를 1년에 한 번 정도만 만나는데 6월에 물 치료를 시작했고 의사를 12월까지 기다렸다가 만나게 됐죠.
그에게
갔더니 그가 제 증상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고 했어요. 그는 제가 치료됐다는 말을 하지 않았죠. 그리고 의사가
뭐했느냐고 물어봤을 때 저는 물 치료를 하고 있다고 말했어요.
의사는 그 이야기를 들어봤지만 누구에게도
추천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제가 개인적으로 아는 바로는 그의 환자 중
세 명이 저에게 전화했고 그들이 물 치료를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들의 다발성경화증도 없어졌죠”
(20년간 MS를
앓았던 프랭크 티틀렛씨)
‘MS 다발성경화증’은 다양한 통증과 하지 마비, 사지마비, 전신마비 등을 동반하는
중추신경계의 탈수초성 질환이다. 그 외에 피부병, 고혈압, 당뇨 등 고질적인 성인병을 단기간의 실험을 통해 치료되는
호전적인 결과를 얻었다.
어찌 보면 우리 몸의 병은 물이 부족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을 충분히
섭취하여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언)
Drinking 8 or more glasses of water daily.
I would like to share some interesting facts
about drinking 8 glasses.
We get an average of about 3.5 cups of water
from various foods, and 0.5 cups
as a by-product of the metabolism of the body
(water is produced
when energy is being released).
Simultaneously for 2 cups of water
through the lungs (respiratory)
6 cups disappear in the intestine
and kidney (droppings and wee),
2 cups of sweat in vigorous activity and
2 cups of extra sweating
in the hot weather or sports .
As you can see we need to drink
8 glasses of water to fill the gap.
일반적으로 우리가 음식을 통해 3.5컵의 물을 얻습니다.
0.5컵 정도의 물이 우리 몸 안에서 에너지가 발생할 때 생깁니다.
폐 활동을 통해 2컵 정도의 물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6컵의 물이 신장이 작동을 할 때 없어집니다.(대변이나 소변 등)
2컵의 물이 땀으로 없어집니다.
2컵의 물이 과외로 더운 날씨나 운동을 할 때 없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루에 8잔 이상의 물을 반드시 마셔야 합니다.


다이어트의 정석은 영양이 균형 잡힌 다이어트 식단과
꾸준한 운동,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충분한 물
마시기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수많은 종류의 다이어트 방법, 다이어트라고 이름 붙여진
거의 모든 체중감량 방법들의 공통점을 들자면 바로 물
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물을 잘 마시는 것은 건강에
굉장히 중요하고 다이어트 효과를 결정하는 핵심
비결이라 할 수 있는데요.
물 한잔의 기적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건강에 있어서 중요한
물의 효과와 물 다이어트 방법....
노폐물 배출을 돕고 포만감을 주는
물 한잔의 기적

물 다이어트 방법은 엄격한 식이조절이나 단식, 혹독한 운동 등을
하지 않고 일반적인 식사를 하면서 규칙적인 물 마시기와
물 섭취를 늘려 다이어트 효과를 기대하는 다이어트 법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먹고 싶은 것도 마음껏 먹고 불규칙한 생활을
하면서 단지 물만 마시면 되는 다이어트 법은 아닙니다
우리의 몸 70%가 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 약 2% 정도만
부족해도 피로해지고 갈증을 느끼게 될 정도로 인체의 중요
구성요소 입니다. 그래서 갈증을 느껴 마시는 물은 적정량을
채워주는 정도이기 때문에 평소 목이 마르지 않더라도 물을
충분히 마셔야 하는 것이 효과적인 물 다이어트 방법입니다

물 한잔의 기적적인 효과는 체내 노폐물 배출 및 칼로리 소모,
식욕억제 효과를 들 수 있는데요 물은 우리 몸의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고 노폐물 배출을 촉진하는 이뇨작용을 도우며,
물 1리터당 50kcal의 열량을 추가로 소비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루에 성인이 기본적으로 필요로 하는 물의 양은
체중 25kg당 1리터 이상으로, 체중이 50kg인 사람은 2리터 이상,
75kg인 사람은 3리터 이상입니다 물론 이 보다 많은 충분한 물을
마셔주는 것이 다이어트에 좋다고 합니다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물 다이어트 방법은
공복 또는 식사 전.후를 비롯해 하루 8~10회 정도 수시로 물을
한번에 300ml 정도씩 마셔주는 방법입니다
우선, 아침에 일어나서 변비예방을 위해 한 컵, 아침식사 전에
소화 흡수를 돕기 위해 한 컵, 오전 중 간식이 생각날 때 한 컵,
점심식사 전에 식욕억제를 위해 한 컵, 오후에 나른할 때 한 컵,
출출할 때 한 컵, 저녁식사 전.후에 한 컵씩...잠자기 전 한 컵 등
한꺼번에 많은 양을 마시지 말고 조금씩 마시는 것이 좋습니다

단, 식사 전.후에 물을 마실 때는 식사 30분 전.후가 좋고 식사
중에는 소화불량이 생길 수 있으므로 많이 마시지 않아야 좋습니다
물을 충분하게 마셔줘야 할 때는
운동하기 2~3시간 전으로 신진대사가
원활해져 운동효과를 극대화 시켜주기 때문에 많이 마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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