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ecember 22,
2013










Pentatonix - Little Drummer Boy
Pentatonix는
미국의
아카펠라 경연 버라이어티
‘Sing Off’라는
TV 프로그램
Season 3에서
우승했던 팀이지요.
이들 구성 멤버를 살펴보면
펜타토닉스의 막내이자
'The Sing-off' 촬영 때
고등학생이었던
Mitch Grassi,
작사가이자 피아니스트이면서
8살 때부터 공연을 한
Scott Hoying,
8살 때부터 'Theatre Arlington' 투어에
참여를 했던
Kirstie Maldonado,
전신과 의사인 나이지리아 출신 아버지와
간호사였던 그레나다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Kevin Olusola,
카네기홀에서 공연을 한
Avi Kaplan...
Scott이
메인 보컬을 담당하고
Kevin
Olusola는 비트 박스를 담당하며
Avi는
베이스를, Kirstie와 Mitch가
알토와 소프라노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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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크리스마스...
모든 비전통신 애독자 여러분과 가정과 하시는 사역 위에 아기 예수님의 탄생의 은혜와 교훈과 감동이
넘쳐나시기를 기원합니다.
의미
있고 경건하고 엄숙하게 이 명절을 보낼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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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
아래로 내려가시면 유튜브로 소개되는 내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이라는 찬송이 연주 됩니다.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다짐하는 올해의 결론이라고 말해도 되겠습니다.
눈물과 함께 감동의 연주에 동참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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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메시지
.....
장재언칼럼 외에도 크리스마스 특별 메시지 2개를 싣습니다. 마구간의 아기 예수님을 바라보라 그리고 경건의
폭력을 휘두르지 마라는 주제의 내용입니다.
깊이
있게 음미하며 우리들 모두의 신앙을 돌이켜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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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교회 이야기 ....
이훈목사님이 독후감처럼 쓴 가나안교회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바르게 사역하고 계시는 김도진목사님의 사역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감동입니다.
그럼 다음주 올해 마지막 주일에 뵙겠습니다.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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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전 그러니까
1992년에
출간된 ‘타임’지
특별판은 새천년을 앞두고 지난 1000
년
동안 가장 중요한 10대
인물들을 선정한바 있다.
음악가
모차르트,
발명가
구텐베르크,
탐험가
콜럼버스,
미술가
미켈란젤로,
작가
셰익스피어,
과학자
갈릴레이와 아인슈타인,
정치가
제퍼슨,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 그리고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가 뽑혔다.
다른 사람은 수긍이 얼른 가는데
프란체스코는
왜 들어갔을까.
그의
학식과 사상은 깊지 않았고 루터처럼 종교적으로 큰 위업을 이루지도 못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일까?
그가
여기에 포함된 단 하나의 이유는 자신의 삶의 모델을
그리스도로 보았고,
복음서의
문자 그대로 그분을 본받아 살았다는 데 있다.
그의
유일한 갈망은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산다는 것을 매우 즐거운 일로 여겼다.
프란체스코는
자신을 따르는 형제들에게도 다음과 같이 권고했다.
“우리
주님의 가장 거룩한 말씀과 행적 이외에 어떠한 즐거움이나 기쁨도 취하지 않고,
기쁨과
즐거움으로 주님의 말씀과 행적을 가지고 사람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도하는 신실한 이들은 복이 있다.”
그리스도
생애의 많은 사건과 말씀들 가운데 프란체스코에게 가장 영향을
준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낮추시어 구유에 누우신 아기가
되셨던 성탄 사건이었다.
프란체스코는
크리스마스를 특히 좋아했기에 다른 어떤 절기보다 말할 수 없는 열정으로 이날을 맞았다.
그에
따르면 성탄일은 하나님께서
작은 아기가 되어 인간의 가슴에 안긴 날로 축일 중의 축일이라고
말했다.
성육신(成肉身)의
겸손에 너무도 감동을 받고서 성탄을 가능한 가장 엄숙하게 기념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1223
년
그레치오 마을에 베들레헴의 첫 번째 크리스마스를 재현했는데 마구간,
구유와
짚,
살아있는
소 한 마리와 나귀 한 마리를 준비하고 수도사들과 마을 사람들을 초대했다.
무수히
빛나는 별들 아래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하늘로 퍼져 올라갔다.
프란체스코는
베들레헴의 아기라고 자신이 부른 가난한 왕의 성탄에 대해 설교했다.
그는
이날 가난한 사람들과 굶주린 사람들이 부자들을 통해 배를 채우고,
황소와
당나귀들이 여분의 건초를 얻기를 바랐다.
여력
있는 사람들이 길에다가 밀과 곡식을 뿌려 이렇게 장엄한 날에 종달새들조차 풍부함을 누리기를 원했다.
프란체스코가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에게서 본 것은
신(하나님)의
무력함이다.
이
세상에 내려오실 때 특권을 버리시고,
인간과
하나 되신 하나님 아들의 비하(卑下)와
비움을 보았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요1:14)
는
짧은 구절에 담긴 깊은 의미에 대해 프란체스코는 찬탄해 마지않았다.
그가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선택한 생활양식인 가난은 바로 여기에
근본을 두고 있다.
말구유에서
태어나 갈릴리에서의 방랑생활,
외롭고
쓸쓸한 십자가에 이르는 그리스도의 철저한 자기 비움,
즉
그의 가난을 따라 자신도 가난하게 살기를
열망했다.
가난은
그의 삶 모든 영역에서 중심점이 되었다.
가난했기에
즐거웠고 가난이 그를 힘 있게 만들었다.
마음마저도
가난하기를 원했다.
누가
부당하게 취급을 하더라도 아무 변명이나 대꾸함 없이 참고 인내하는 것이 마음이 가난한 자이다.
자신에게
해가 되는 말 한마디를 들으면 흥분하고 발끈하는 것은 아직 마음이 가난하지 않음을 드러낸다.
가난을
부인으로 삼고 살았던 프란체스코는 사람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도 가난하기를 원했다.
자신을
어떻게 다루시든지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는
눈,
위장,
비장,
간이
나빠 엄청난 병고를 치렀다.40
대
초반에 몸 어느 한 군데 성한 곳이 없었다.
한
번은 여느 때보다 더 심한 고통을 당하자 한 수사가 “형제여,
하나님께
간구하여 좀 더 편해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분은
형제를 너무 심하게 다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프란체스코는 “내가
만약 형제가 순진한 사람인지 몰랐다면 다시는 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을 것이오.
왜냐하면
형제는 감히 하나님께서 나를 대하시는 방법에 대해 잘못을 찾으려고 했기 때문이오”라고
대답하고서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
“주님,
이
모든 고통에 대해 감사 드리나이다.
그리고
주께서 원하신다면 저의 고통을 백배나 더 아프게 하시기를 간구하나이다.
주께서
나를 아끼시지 않고 고통으로 괴롭게 하시는 것보다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없나이다.”
프란체스코가
마구간의 광경을 재현함으로써 백성들은 마음 깊이 감동을 받고 그리스도께 대한 새로운 사랑을 그들 안에 일깨웠다.
17 세기부터는
유럽의 집집마다 크리스마스를 경축하기 위해 구유 속에 아기 예수상을 설치하는 관습이 시작됐다.
성당들과
교회에서도 비치했다.
성탄절이
되면 우리는 마구간의 아기 예수를 보아야한다.
그
다음에 봐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의 마음이다.
가난한
왕을 따라 사는 가난에의 열망이 있는가를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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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에 가을 내려 단풍이 불타는데
진달래 못 다한 울음 예까지 사무쳤나
골마다 묻었던 설움 통곡하며 퍼지네
허기져 대지 뜯고 배곯아 흙 파먹던
압록강 얼음물이 삼켜버린 마른 뼈들
죽어간 피 값이 모자라 금강 저리 우는가
내리는 눈이 모두 쌀이면 좋겠다고
하얗게 얼어붙은 하늘에 토한 절규
치솟는 불길 속인들 언 마음이 녹을까
약산아,
금강산아
피맺힌 눈물 산아
언 땅에 봄이 들면 빈들에 고함 쳐라
숨었던
푸른 불씨 일어나
하늘 문을 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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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윤 박사(풀러신학교) 초청 목회자 세미나가 서울 논현동
서울영동교회(담임 정현구 목사)에서 개최됐다.
김세윤 박사는 이날 '칭의와 성화'를 주제로 2시간 동안 참석한 3백여명의 목회자들에게
강연했다.
김세윤 박사는 한국교회의 위기를 '도덕적 타락과 신학적 부패'라고 요약하면서,
△사제주의, 공로(상급)신학, 스콜라 신학방법 등 중세 가톨릭주의로의 회귀
△부분적이고 왜곡된 복음 등 ... 원인을 열거했다.
김 박사는 "한국 보수교회, 개혁교회는 불쌍한 성도들이 이단의 밥이 되도록 하는
'모판'이 되고 있다"며 "이는 성경에 대해 비평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비평을 막아버려 성경은 중세처럼 '닫힌 책'이 됐고, 기존 교리들이나 문자적·율법적
방식으로만 해석하게 되고, 읽기 좋아하는 구절들만 읽는 천박한 현상을 초래했다는 것.
그는 "보수 교회에서 어디까지나 교리에 맞춰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도리어
성도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복음에 힘이 없어졌다"며 "은혜는 싸구려로 전락해 버리고, 구원파를 이단이라고 하는 한국의
정통교회가 사실상 '구원파적 복음'을 선포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스콜라 신학방법론과 교조주의에 의해, 닫혀버린
성경의 가르침과 설교에 의해 수십 년 가르침 받은 사람들이 아무리 큐티를 해 본들 성경 메시지를 이해할 수 없다"며
"기껏 해야 감정적으로 고양시키는 말씀을 찾거나 복 주는 말씀을 읽는 문자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했다.
특히 김세윤 박사는 '칭의의 복음에 대한 왜곡'에 주목하면서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은 사라진 지 오래"라며 "의로운 삶이 없는 칭의론으로 인해, 본회퍼가 말했듯 싸구려(값싼)
복음과 구원파적 복음이 판을 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박사는 "보수 교회에서는 의로운 삶을 막고, 도리어
방해하는 칭의론이 공공연히 종교개혁의 유산으로 선포되고 있다"며 "한 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면 영원히
구원받는다는 사람들에게는, 기독교 윤리란 몇 가지를 하거나 하지 않는 걸로 끝난다"고 밝혔다.
교회에서는
...
주일성수·헌금·전도 세 가지만 하면 되고,
술·담배·제사 세 가지만 하지 않으면
훌륭한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
김 박사는 "술과 담배는 음식을 가리는 문제로, 예수님은 성경에서 이에 대해 신학적으로
'성별파'들인 바리새인·서기관들과 가장 논쟁을 많이 하시지 않았느냐"며 "예수님은 입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게 한다며 이런 부분들을 싹 무시하셨는데, 정작 우리는 이것에만 집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성경은 이에 대해 두 가지로 요약하는데,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것과 이웃 사랑의 관점에서
누구에게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는 것"이라고 했다.
신학적으로는 칭의론에 대해 법정적 의미만 강조하고 관계적 의미를 간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법정적 의미가 중요하지만, 의(義)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에서 나오는 의무를 다한다는 뜻도
있다"며 "그런 의미에서 의는 신실한 관계이고 원만한 관계는 바로 '샬롬'이 되며, 죄는 관계에서 나오는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으로 이것이 불의(不義)"라고 설명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차원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행위구원을 배격하기 위해 의인이 되었다는 말 대신 의인으로 칭함받았다는 말만 강조하다 보니 생긴
현상이다.
또 칭의의 '종말론적 유보의 구조'가 무시되고 있다고 했다. 김 박사는 "칭의는 지레
받았다는 선취(先取)이지, 완성이 아니다"며 "그리스도인들은 선취한 의인됨의 상태 속에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서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칭의론을 조직적으로 전개한 로마서만 봐도 3-4장에서 칭의를 설명한 후 5장에서 '이
관계에 서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고도 설명했다.
'예정론과 성도의 견인 교리에 대한 일방적이고 사변적 이해로 앙양된 잘못된 안심'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김 박사는 "이 교리를 부인하거나 약화시키면 안 되고, '오직 은혜로만'을 말하려면 예정론에
대해 분명히 말해야 한다"면서도 "칭의는 '다가올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하심'이라는 데서 보듯 결국 미래적인
것으로, 성경은 구원으로부터 탈락의 가능성에 대해 여러 차례 분명히 경고하고(고전 10:12, 롬 11:17-24,
히 6:1-10) 있다"고 했다.
이밖에 "성화를 새로운 단계로 보아 버리는 우를 범했다"며 '구원의 서정 구도 안에서
성화론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칭의란 사단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로의 '주권 전이'
성령의
도움으로 성화와 의의 열매 맺는 삶 살아야"

이후 김세윤 박사는 '칭의론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대해 설명했다. 먼저 회심 때
우리는 그리스도 대속 제사의 덕(은혜)를 믿음으로 입어, 우리 죄에 대한 사면을 받고(aquittal) 의인이라
칭함받는다(declared righteous)는 것이다(은혜로만·믿음으로만).
'의인이라 칭함받음'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로 회복됐다는 뜻이므로, 칭의란 '주권의 전이', 즉 사단의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 하나님 아들 예수가
하나님 대신 왕권을 대행하는 나라(하나님 아들의 나라)에로 이전됨을 의미한다(롬 1:3-4, 고전 15:23-28,
골 1:13-14). 그러므로 바울의 '칭의의 복음'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의 구원론적 표현이다.
또 세례 때 얻는 '칭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있을 최후의 심판에서 얻을
칭의의 선취에 불과하므로(롬 8:31-39), 현재 회복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서 있음, 즉 하나님 백성으로서
삶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이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함으로써, 즉 하나님의 통치를 대행하는 하나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순종함으로써 가능하다.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실존에서 하나님과 이웃 사랑의
계명을 지키라는 요구로 우리를 통치하시며, 바울은 그래서 로마서 8장까지의 '칭의의 복음'에 대한 강해를
12-15장에서 '의로운 삶에 대한 권면'으로 이어간다.
그리고 하나님과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의 영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주권에 순종하여 이 두 계명을 지키도록 돕는다. 이러한 삶은 '의의 열매(빌 1:11)'를 맺음으로
하나님의 칭의된 자들임을 증거하게 되는데, 이는 곧 '성령의 열매(갈 5:22-23)'이다.
그리고 칭의는 구원의 전 과정(과거·현재·미래)를 통칭하는 것으로 이해해야지, 믿음의
시작점(세례) 때 다 이뤄지고 성화의 단계로 이어지는 것으로 이해해선 안 된다. 앞에서 언급했듯 '성화'는 칭의를
따르는 구원의 새로운 단계가 아니라 구원의 전 과정을 통칭하는 또 하나의 '그림언어'로, 칭의와 병행되는 언어로
이해해야 한다.
김 박사는 "성화는 하나님께 바쳐진 백성으로서 세상의 오염을 계속 피하고 거룩하게 사는
현재성을 띠어야 한다"며 "이러한 의미에서 칭의론을 실제적으로 의로운 삶을 살라는 윤리적 요구와 분리시키는 구원파적
왜곡은 '언어도단'"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바울의 구원론을
'칭의-성화-영화'의 세 단계로 알고 있는데, 이것이 틀리진 않았지만 정확하지도 않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전통 신학계 '구원의 서정'에서의 '성화'는 칭의의 현재 단계에 대해 이름을 잘못 붙였다는 것. 그에 따르면 칭의 다음이
성화가 아니라, 둘은 같은 실재를 말하는 다른 그림언어들(metahpors)이다.
칭의가 죄를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징벌을 초래하는 것으로 보고 구원을 이 죄를 해결하는
것이라 표현하는 법정적 뉘앙스라면, 성화는 죄를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는 세상의 오염으로 보고 구원이 이를 해결하는
것으로 보는 제의적(cultic) 뉘앙스이다. 한 마디로 '성화'는 칭의의 구조 속 현재적 삶을 지칭하는 또 하나의
동의어적 어휘이다.
이렇게 보면, '성화'는 확정된 구원 이후 하늘나라 상급의 구도가 아니라, '칭의된
자'로서 우리로 하여금 의롭게 살려고 더 노력하게 만든다.
김세윤 박사는 "'은혜로만·믿음으로만'의 구원과 윤리적
요구의 통합이라는 논지가 생소하게 들리겠지만, 칭의(장로교)와 성화(감리회·성결교) 중 어떤 면을 강조하는 전통에
속하든 우리 모두 칭의론은 결국 하나님 또는 하나님 아들의 주권에 대한 '믿음의 순종(롬 1:5, 16:26)을
골자로 함을 잊지 않아야 한다"며 "이로써 의로운 삶을 무시하거나 방해하는 그릇된 칭의론이 아니라, 이를 요구하고
가능하게 하는 올바른 칭의론을 믿고 선포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 정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김세윤 박사는 "삼위일체적 하나님에 의해 즉 하나님 은혜로만 이뤄지고
지탱되는 우리의 칭의·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고, 우리는 우리의 칭의(구원)를 '두려움과 떨림으로' 이뤄가야 한다"며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순종하여, 즉 우리의 실존에서 그의
하나님·이웃 사랑의 계명을 성령의 도움으로 지킴으로써 의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연을 마무리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있을 하나님의 최후 심판을 늘 의식하면서 의인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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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있다가 뵈요."(?) 맞을까?
친한 후배와 점심을 같이하기로 약속한 날, 사무실을 나서니 날씨가 추워져 싸늘한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소박한 점심을 즐겁게 먹고 헤어지는데, 후배 왈...
“그럼 있다가 뵈요.”
아 참, 그러고 보니 오늘
저녁에 모임 약속이 있었지.
“그려―.”
우리가 말로 할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글로 적으면 맞춤법에 어긋나는 표현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럼 있다가 뵈요”는 별문제가
없을까. 우선 ‘있다가’를 보자. “밖에 눈이 오니 여기 조금 더 있다가 눈이 그치면 나가자”라고 할 때처럼 ‘있다가’는 용언 ‘있-’에 ‘어떤
동작이나 상태 따위가 중단되고 다른 동작이나 상태로 바뀜을 나타내는 연결어미’인 ‘-다가’가 결합한 형태다. ‘있다가’는 ‘어떤 상태를
유지하다가’를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있다가’와 똑같은 발음이 나는 ‘이따가’도 있다. 이 말은 어원적으로 보면 ‘있-’에 어미 ‘-다가’가 결합된 말로 보이지만, 현대
국어에서는 ‘있다’의 의미에서 이미 멀어져 다른 뜻,
곧 ‘조금 지난 뒤에’라는 뜻의 부사로 굳어져 쓰이기 때문에 원형을 밝히지 않고
‘이따가’로 적는다. 그러니 “이따가 보자”라고 하면 “조금 지난 뒤에 보자”라는 의미다. ‘이따가’는 ‘이따’로 줄여 쓸 수도 있다. 따라서
“그럼 있다가 뵈요”에서 ‘있다가’는 ‘이따가’로 바로잡아야 한다.
다음 ‘뵈요’를 보자. ‘뵈다’는 ‘보이다’에서 온 것으로 ‘웃어른을 대하여 보다’라는 뜻이다. ‘뵈다’의 뜻풀이는 ‘웃어른을 대하여
보다’이지만 그 속뜻은 내가 웃어른을 ‘보는’ 것이 아니라 웃어른에게 나를 ‘보이는(보여주는)’것이다.
‘뵈요’처럼 어간 ‘뵈-’ 뒤에 어미가
붙지 않고 바로 보조사 ‘요’가 붙을 수는 없다. 어간 ‘뵈-’ 뒤에 어미 ‘-어’가 붙은 ‘뵈어’의 준말인 ‘봬’ 뒤에 ‘요’가 붙은 것이므로
‘봬요’와 같이 적어야 바르다.
그래서 “그럼 있다가 뵈요”는 “그럼 이따가 봬요”라고 해야 정확한 표기가 된다. 이 ‘뵈다’보다 더 겸양의
뜻을 나타내는 말로 ‘뵙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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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루기: 바루기라는 뜻을
아십니까?
비뚤어지지 않도록
곧게 하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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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가족영화, 빨간 양말 속에 든 선물, 종소리, 거리를 지나가는 연인, 촛불.....
코앞으로 다가온 크리스마스 때만 되면 공통적으로 떠오르는 것들이다. 선물을 주고받으며 아끼는 사람들과 따뜻한 시간을 보낼 생각을 하다 보면
아이나 어른이나 괜히 마음이 들뜨기 마련이다. 추석이나 설 연휴를 앞두고 고향 갈 생각에 싱숭생숭해지는 것과도 같다.
매년
겪는 일이라 익숙해질 만도 하지만 매번 어김없이 들뜬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 이유는 반복적인 경험과 행동 패턴이 우리 뇌에 각인되어있기 때문이다.
인지과학 분야에서는 이런 뇌의 패턴을 ‘스키마(schema)’와 ‘스크립트(script)’로 설명한다.
스키마는 경험을 통해 뇌가 조직화한
지식의 틀에 근거해 새로운 경험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처음 본 공을 뇌가 전부터 알고 있던 야구공이나 축구공의 정보와 비교해 이해하는
식이다. 크리스마스 때의 들뜬 심리도 예전에 경험했던 영화, 캐럴, 음식, 선물 등이 사람들의 뇌 속에 비슷한 구조로 자리 잡아 매년 스키마로
나타나기 때문에 일어난다.
어느 심리학 교수는 “사람의 뇌는 특정 경험과 함께한 이벤트를 하나로 묶어 기억한다”며 “어려서부터 겪은 크리스마스 경험이 비슷한
시기가 되면 스키마로 작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인지심리학’에 자주 등장하는 스크립트란 개념은 어느 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행동의 순서를 말한다. 예를 들어 스키장에
간다고 생각하면 ‘장비 대여-티켓 구매-리프트 탑승’처럼 도식화된 행동 패턴이 떠오르는 것이다.
이를 크리스마스에 만나는 연인들에 대입하면 ‘잘 차려 입고 만난다-근사한 식사를 한다-선물을 주고 받는다’가 된다. 이런 스크립트 때문에 크리스마스가 다가올수록 연인이 있는 사람은 어떻게
즐길까를, 없는 사람은 상대적인 박탈감을 심하게 겪는 것이다.
“인지가 강조되는 스키마와 행동에 초점이 맞춰지는
스크립트가 강하게 작용하는 시기인 만큼 기대와 어긋나는 상황으로 인한 허탈감이 더 클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는 말한다.
이런 들뜬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크리스마스 원래의
정신을 회복시키는 길 밖에는 없을 것이다.
::
스키마(schema) ::
새로운 경험이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 이미 조직화된 지식의 틀 속에 받아들여지는 과정이다. ‘럭비공’을 처음 접했다면, 이를 전부터 알고 있던
‘야구공’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이해하는 식이다.
::
스크립트(script) ::
정형화된 특정 사건이 발생했을 때 통상적으로 진행되는 ‘행동의 순서’. ‘식당’에 가는 상황이라면, 이후 일어나는 ‘착석-주문-식사’ 등의
행동에 대한 패턴을 일컫는다.(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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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잘 믿는 다는 기독교인들이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봅니다. 이름하여 경건의 폭력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자신이 경건하다고 생각하는 오만(傲慢)이 다른 이들을 향한 판단과 정죄로 이어지는 것을 봅니다. 분명 그 사람의
생각은 무언가 옳은 것을 위해 자신이 일조(一助)를 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복음을 위해 개혁을 위해 혹은 순수함을 유지하기 위한 당연한 노력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칼로 찌르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을 느끼게 합니다.
그것은 분명 '폭력'입니다.
새벽기도에 오래도록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한 집사님의 눈길이 무섭습니다. 그분의 머릿속에는 새벽기도에 빠진 목사와 장로들의 빠진 횟수와
날짜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십일조를 정확하게 꼬박꼬박 내는 신자의 눈길이 무섭습니다. 그분의 머릿속에는 십일조를 빼먹거나 제대로 하지
않는 동료 신자들의 목록이 빼곡히 들어 있습니다.
40일 금식기도를 다녀온 권사님의 눈길이 무섭습니다. 그분의 시선에는 '너는 왜 금식기도를 하지 않느냐'는
무언(無言)의 질타가 섞여 있습니다.
크고
건강한 교회를 다니는 성도가 무섭습니다. 그분의 말투에는 작고 별 볼일 없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에 대한 우월감이 넘쳐납니다.
무언가를 깨달은
'안티'가 무섭습니다. 그분의 몸짓에는 깨닫지 못한 어리석은 사람들을 향한 손가락질이 배어있습니다.
신학 박사 학위를 받은 신학자가 무섭습니다. 그분 앞에 서면 모든 사람들이 종류별로 차곡차곡 분류되어 버리고 맙니다.
성도수가 제법 되는 교회
목사들이 무섭습니다. 그분의 권위와 무게가 엄청난 압박으로 성도들을 찌그러트립니다.
사실 이런 모습은 성경에도 이미 기록되어 있는 오래 된 전통입니다. 너무도 경건이 몸에 배어 스스로 자신들을 구별된 존재라고 여겼던 바리새인들의
모습이 바로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는 것도 모자라 울타리 율법까지 만들어 놓고 철저하게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심지어는 음식에 집어넣는 양념까지 십분의 일을 구분하여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신앙의 일상화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자기과시(自己誇示)'의
일상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율법과 경건이 종교의 광기(狂氣)로 치달았습니다. 그래서 수틀리면 사람들을 돌로 쳐 죽이고자 하는 무서운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아시시의 프란체스코에 관해 전해지는 이야기들 중 하나입니다.
프란체스코의 제자들이 스승과 함께 40일 금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하루를
남겨 놓은 39일째 되는 날 젊은 제자 하나가 맛있는 수프 냄새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한 숟가락을 입에 떠 넣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함께
금식을 하던 제자들은 눈을 부릅뜨고 그 젊은 제자를 노려보았습니다.
그 눈길 속에는 유혹에 넘어간 불쌍한 영혼을 향한 애처로움이 아니라 분노에 찬 정죄의 따가운 시선이 들어 있었습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았던
제자들은 유혹에 넘어간 젊은 제자를 엄하게 꾸짖어주기를 바라며 스승, 프란체스코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프란체스코는 말없이 수저를 집어 들더니 젊은 제자가 먹었던 스프를 천천히 떠먹기 시작했습니다. 경악의 눈길로 스승을 쳐다보고 있는
제자들을 향해 프란체스코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우리가 금식을 하며 기도를 드리는 것은 모두가 예수님의 인격을 닮고 그분의 성품을 본받아 서로가 서로를 참으며 사랑하며 아끼자는 것입니다. 저
젊은이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수프를 떠먹은 것은 죄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를 정죄하고 배척하는 여러분들이야말로 지금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굶으면서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는 실컷 먹고 사랑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바른 신앙이 무엇인지, 경건의 폭력이 어떤 것인가를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39일 동안 무사히 금식을 마친 프란체스코의
제자들에게서 그들의 엄격한 경건과 돈독한 신앙이 오히려 형제를 짓밟고 자신들의 영성마저 망가트리고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 주변에는 이러한 이야기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율법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고 다른 이들을 욕하고 질타하면서 그보다 더 큰 사랑의 계명을
어기던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오늘 우리의 모습 속에서 확인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도 바리새인들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仁) 과 신(信)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23:23)
사람은 얼마든지
잘못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아니 '잘못할 수 있음'이야말로 인간의 인간 됨이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욕망과 고통으로 가득 찬 어리석은
범부(凡夫)들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로 긍휼하게 여기고 잘못했을 때에는 그 잘못을 꾸짖고 정죄하기보다는 잘못을 깨닫고 바른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인내하면서 기다려주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경건은 겸손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믿음은 사랑으로 승화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경건과 믿음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타와 거부가 될 것이며 무엇보다 폭력이 되어
다른 사람의 영혼을 상하게 하는 끔찍한 범죄가 될 것입니다.
누구의 이야기랄 것도 없이 저와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더구나 오늘날처럼 자아가 모든 것의 중심이 되도록 부추기는 이 세상 속에서 신앙생활을
잘해보겠다는 사람들이 쉽게 빠지게 되는 함정이라고 생각됩니다.
나도 모르게 스며든 다른 이의 영혼을 상처 내는 경건의 폭력을 제거하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다면 이번 성탄절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평화가 깃드는 복된 명절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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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문화권의 길수(吉數)는
하나님이 천지 창조를 마치고 안식(安息)한 날 수인 `7'이다. 일본 사람은 `8' 수를
좋아한다. 한국 사람이 싫어하는 `4' 수를 유태인과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좋아하고. 희랍
사람들도 `3' 수를 좋아한다고 한다.
`3'은
천(天)-지(地)-인(人)하는 우주의 기본 구조요, 음(陰)-양(陽)-합(合)하는 헤겔의
변증법과도 통하는 천지창조의 수라고들 한다.
3이라는
숫자 다음으로 좋아하는 수가 6, 9, 12인 것은 그것이 3으로 나누어지는 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3월 중에서도 홀수 날인 1, 3, 5, 7, 9 일과 짝수 날 중에서는 6, 12
일을 대길일(大吉日)로 여겼다. 눈치 코치없는 아둔한 여자를 두고 `삼짇(3월3일)날 밤 마실
다니는 계집'이라고 빗댔던 것도 이 합방 길일(吉日)의 `은밀한 창조 작업'을 보장시켜 주기
위한 금기(禁忌)에서 생겨난 속담이라고 한다.
비단 아이를
낳는 데 뿐 아니라 거사(擧事)나 창업(創業), 그리고 과거(科擧)도 그 앞 날의 번창이나
영화를 비는 뜻에서 이 3 월 초순의 길일을 택했다.
3.1
운동을 굳이 그날에 잡은 것도 결코 그날이 고종인산(高宗因山) 날이라는 우연의 일치 때문만은
아니다. 거사를 의논하는 가운데 3월5일로 하자는 의견이 나왔던 것으로도 미뤄 알 수가 있다.
민족 대표로서 33인을 채운 것이며 옛날 과거에 33, 36 수로 급제시킨 것도 그렇다.
임금에게
올리는 하례(賀禮) 때 정승, 판서, 방백(方伯)을 36명으로 제한, 참여시킨 것이라든지
요즈음 친목 클럽이나 회사 이름에 가장 선호되는 숫자가 `삼오(三五)'인 것도 이 민족
심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요즘 한국 TV를 보면 출연하는 나이 어린 탤런트나 개그 하는
사람들이나 배우 할 것 없이 거침없이 점 보러 다녔다는 이야기를 막 터놓고 하는 것을 본다.
미신인 줄 알면서도 길수(吉數)를
찾기 위해서다.
그런데 인디언의 달력을 보면 12개월 모든 달이 의미가 있는 달로
표현하고 있다. 1년 내내 길수인 셈이다.
인디언들은 .....
1월을
‘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달’(아리카라 족), ‘나뭇가지가 눈송이에 뚝뚝 부러지는 달‘(쥬니
족), ‘얼음 얼어 반짝이는 달’(테와 푸에블로 족)이라고 부른다.
2월은
‘물고기가 뛰노는 달’(위네바고 족), ‘홀로 걷는 달’(수우 족), ‘기러기가 돌아오는
달’(오마하 족), ‘삼나무에 꽃바람 부는 달’(테와 푸에블로 족).
3월은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달’(체로키 족), ‘암소가 송아지 낳는 달’(수우 족), ‘한결같은
것은 아무 것도 없는 달’(아라파호 족).
4월은
‘생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달’(블랙푸트 족), ‘머리 밑에 씨앗을 두고 자는 달’(체로키
족), ‘옥수수 심는 달‘(위네바고 족).
5월은
‘들꽃이 시드는 달’(오사지 족), ‘말이 털갈이하는 달’(수우 족), ‘오래 전에 죽은 자를
생각하는 달’(아라파호 족).
6월은
‘옥수수 수염이 나는 달’(위네바고 족), ‘더위가 시작되는 달’(퐁카 족), ‘나뭇잎이
짙어지는 달’(테와 푸에블로 족), ‘말없이 거미를 바라보게 되는 달’(체로키 족).
7월은
‘사슴이 뿔을 가는 달’(키오와 족), ‘천막 안에 앉아 있을 수 없는 달’(유트 족),
‘들소가 울부짖는 달’(오마하 족).
8월은
‘옥수수가 은빛 물결을 이루는 달’(퐁카 족), ‘다른 모든 것을 잊게 하는 달’(쇼니 족).
9월은
‘사슴이 땅을 파는 달’(오마하 족), ‘풀이 마르는 달(수우 족), 옥수수를 거두어들이는
달’(테와 푸에블로 족).
10월은
‘시냇물이 얼어붙는 달’(샤이엔 족), ‘추워서 견딜 수 없는 달’(키오와 족), ‘큰 바람의
달’(쥬니 족).
11월은
‘물이 나뭇잎으로 검어지는 달’(크리크 족), ‘산책하기에 알맞은 달’(체로키 족), ‘강물이
어는 달’(히다차 족),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아라파호 족).
12월은
‘다른 세상의 달’(체로키 족), ‘침묵하는 달’(크리크 족), ‘나뭇가지가 뚝뚝 부러지는
달’ (수우 족), ‘무소유의 달’(퐁카 족), ‘늑대가 달리는 달’(샤이엔 족)이다.
이렇게 부르는 인디언 달력을 통해 나는 소중한 것 두 가지를
확인하게 된다.
하나는,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다. ‘나뭇가지가 눈송이에 뚝뚝
부러지는 달’, ‘한결같은 것은 아무 것도 없는 달’, ‘머리 밑에 씨앗을 두고 자는 달’,
‘천막 안에 앉아 있을 수 없는 달’, ‘추워서 견딜 수 없는 달’, ‘늑대가 달리는 달’
등, 인디언의 달력에는 자연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가득 담겨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다른 하나는,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다. ‘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달’, ‘생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달’, ‘오래 전에 죽은 자를 생각하는 달’,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무소유의 달’ 등,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는 달 이름이 많다.
여기서 나는 숫자에 의해서만 시간과 계절의 흐름을 가늠하는 우리의
시간 개념이 얼마나 메마르고 빈약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우리도 우리의 시간에다 의미 있는
이름을 붙여보자. 새해가 다가 온다. 2014년은 1년 내내 의미 있는 달일
것이다.(장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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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교회는 1986년 청량리 588 윤락가 한가운데 세워진 교회입니다. 장소가 만만치 않은 것처럼,
목사님도 특이한 이력을 가진 분입니다.
1939년 일본 나고야에서 출생, 해방 후 아버지의 고향 경남 함안에 와서
삽니다. 독립군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4·19 의거의 혼란기에 불의에 항거하지만, 경찰을 때린 사건으로 지명수배를
받고 쫓기듯 군에 입대합니다. 군 제대 후에도, 어머니의 죽음 이후 생긴 한을 술과 폭력으로 소진하며 알코올
중독자가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예수 믿는 아내를 얻었지만 술에 찌든 생활을 청산하지 못했고, 사기꾼들에 의해 전
재산을 날리고 허물어져가는 판잣집에서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암담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공사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는데, 꿈 속에서 누군가 "나는 네 아내가 믿는 예수니라"고
말하면서 칼로 다리를 수술했습니다. 깨어보니 2년 동안 고통스럽던 다리가 하나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달려가 "내 아내가 믿는 예수가 내 다리를 고쳐주었다!"라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교회에 나갈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고, '이제 다리가 완전히 나았으니 전보다 더 자유롭게 술을 마시면서 돌아다닐 수 있겠구나' 생각했답니다.
이 부분을 읽으며, '험한 인생을 산 저자만이 아니라, 꼭 우리의 모습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들면
도와 달라 기도하고, 아니 때로는 기도하지 않았는데도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으로 해결 받았으면서도, 마치 내가 무엇을
해서 해결된 것으로 착각하며 다시 하나님을 지우고 내 맘대로 사는 우리의 배신 인생!
갑자기 베드로와 가룟 유다가 생각나네요. 베드로는 수제자로, 가룟 유다는 재정 담당 제자로 예수님을 따랐는데
중간에 둘 다 사고를 치죠.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배신하고, 가룟 유다는 돈 때문에 예수님을
배신합니다. 나중에 둘 다 잘못을 깨닫는데, 그 순간부터가 중요합니다. 베드로는 회개를 했고, 가룟 유다는 후회를
했기 때문입니다. 잘못이 생각나서 울지만 울음을 그친 후 다시 그 길을 가면 '후회'가 되고, 마음과 방향을 바꾸어
다시 그 길을 가지 않는 삶의 변화를 이루면 '회개'가 되는 겁니다. 이 때 저자의 모습은 회개가 아니라
후회였습니다.
이렇게 저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으면서도, 감사함을 모르다 세 번이나 사기꾼에게 당합니다. 그 많던
친구들은 모두 떠나고, 빚쟁이들만 찾아오는 상황 속에 빚쟁이를 피하려 삼각산 기도원에 갔는데, "내가 너를
도우리라!"는 예수님의 환상을 보게 됩니다. 그 순간 "주여! 제가 죄인입니다!"라고 베드로 같은 회개의 고백을
하는데, 42년간 행했던 온갖 범죄 인생이 필름처럼 눈앞에 지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에게 사기를 치고 죽음의
상황으로 내몬 사람들의 피를 보려 칼까지 품고 다녔는데, 십자가에서 피 흘리는 예수님이 그 마음을 대신 채워주면서
새 사람이 된 겁니다.
그래서 44세의 늦은 나이에 신학 공부를 시작했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 가나안 교회를 개척합니다.
그런데 노숙자들이 교회에 오니 교회 성도들이 떠나기 시작해요. "어디 신성한 하나님의 집에 더러운 인간들을
끌어들인단 말이오?"라며 장로들이 모두 나가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부흥의 은혜를 주셔서, 무당
골목에서 시작한 교회가 이전을 하게 되었는데, 그곳이 바로 청량리 588 사창가 한가운데, 당구장을 했던
장소였습니다. 1988년 어느 봄날 이곳으로 이전해, 노숙자, 부랑인, 깡패 등 갈 곳 없는 사람들의 쉼터가 된
겁니다.
김도진 목사님은 '가나안 쉼터' 입소를 위한
두 가지 약속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는 절대로 술을 먹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 사람들은 한번 술을 마시면 하루 이틀이 아니라 몇 주 동안 마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활을 위해
금주(禁酒)부터 실천하게 한 겁니다.
또 하나는 예배에 참석하는 것입니다. 매일 새벽 5시 새벽예배를 시작으로 저녁
7시에 저녁예배까지 드렸습니다. 그래서 말씀으로 변화된 그들이 일을 하게 됐고, 그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는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무조건 먹여주고 재워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큰 문제인 음주에 대해 자각을 주고,
말씀과 예배로 영적인 치유를 시도했기 때문에 놀라운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저자는 노숙자 쉼터의 자랑거리를 세 가지로 표현합니다.
첫째 '말씀 교육'입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프로그램이나 일시적인 훈련이 아니라 지속적인 말씀 교육 뿐임을 믿고 한 것입니다.
둘째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들이 감동을 받을 때까지 사랑을 주며 변화를 시도한 겁니다.
셋째 '노동'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절대
놀고 먹지 않는다는 확신 속에, 노동을 하나님이 주신 소명으로 받아들이게 한 겁니다.
그래서 이 책의 5부(변화된
사람들)에 보면, 정말 '하나님께 돌아오면 이렇게 될 수 있구나!' 하는 실제적인
간증이 넘칩니다. 그 분들의
인격을 존중해서 가명을 쓴 것도 참 아름답네요.
1년에 6-7백명 이상의 소외된 이들(노숙인, 출소자, 장애인 등)이 찾아와 변화되고 있는 이곳에, 저자는
2만명 이상 수용하는 교육 자활센터를 꿈꾸며 살고 있습니다. 그들 때문에 하나님 앞에 보여드릴 열매들이 생겼다는
목사님을 보며 참 도전이 됩니다.
'1년에 단 한 명이라도 이런 사람을 만나면 영적으로 돌보기가 얼마나 어렵겠는가?'는 생각이 솔직히 들었습니다.
고아원에서 자라서 폭력을 일삼다 교도소에서 나온 청년, 결핵 3기로 뼈만 앙상하게 남은 날카로운 성품의 청년, 살인
등으로 삼청교육대까지 끌려갔다 온 건달, 항상 유언장을 지니고 다닌 22년 교도소 생활의 전과 8범, 20대부터
40대까지 폭행 전과로 인해 감옥에서 지낸 40대 사나이, 아내를 죽이고 무기수로 살다 감형되어 찾아온 사람... 이
모두가 예수로 인해 변화되어서 간증을 남긴 사람들입니다.
공감(共感)이라는 단어가 생각나네요. 김도진 목사님은 젊은 시절 이들과 비슷한 아픔을 겪었기 때문에 그들과
공감할 수 있었고,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감동받을 때까지 사랑하라...
낮은 곳에는 경쟁자가 없다... 는
저자의
고백이 강한 메시지로 다가옵니다. 나는 무엇과 경쟁하며 살고 있을까? 여러분은 무엇을 보며 살고 계신가요? 사랑합니다.
(하늘뜻섬김지기 이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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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가 미국에서 크리스마스를 법적으로 보호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첫번째 주가 됐다.
소위 ‘메리 크리스마스법’이라고 불리는 이 법안은 많은 보수적 국회의원들과 논객들의
지지를 받았다.
이 법은 학교 내에서 십자가와 같은 종교적 아이콘 착용을 허용한다. ‘메노라’(유대교 제식에 쓰이는
촛대) 등 다른 종교 상징물도 공립학교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텍사스주 상·하원을 모두
통과했다.
앞서 텍사스주 공립학교가 ‘크리스마스 트리’라는 명칭을 쓰는 것이 헌법의 정교분리
원칙에 위배된다는 무신론단체들의 거듭된 항의에 ‘홀리데이 트리’란 이름으로 바꾸자, 드웨인 보학(Dwayne Bohac) 하원의원은 이 같은 법안을 발의했다.
민주당 대표인 리차드 레이몬드 의원은 “크리스마스와 하누카는 분명히 많은 이들에게
종교적인 암시를 지니고 있으나, 또한 미국의 일부분”이라고 말했다.
이 법안이 비록 이슬람이나 불교와 같은 다른 종교를 명쾌히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보수운동단체인 텍사스 밸류스(Texas Values) 조나단 샌즈(Joanthan Saenz)는 “자신들의 종교적인
표현에 있어 부족함을 느끼는 학생들은 누구든지 이 법안을 인용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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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샌디애고 솔데드 산 위에는 십자가 모양의 한국전 기념비가 있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세워진 이 기념비는
25년
전부터 철거 여부를 둘러싸고 공방을 벌여와 전국적인 관심의 대상이었다.
연방법원은 결국 지난
12일
기독교를 상징하는 십자가가 연방정부 소유의 공공지인 이 산 위에 세워지는 것은 정교 분리라는 헌법의 원칙에 위배된다며
철거를 판결했다.
향후
90일
내 항소가 없으면
60년동안
솔데드 산 위에 자리하고 있던 십자가는 사라지게 된다.
1989년
무신론자이자 베트남 참전용사인 폴슨은 십자가 모양의 이 참전기념비는 기독교인인 아닌 참전용사들에게는 맞지 않는다며 철거를
주장했다.
그는 솔데드 산은 샌디에고 시 소유의 공공지이기 때문에 특정종교를 상징하는 모형을
두는 것은 정교 분리 원칙에 위배,
철거해야 한다며 캘리포니아주 법원에 제소했다.
법원은 그의 주장을 수용,
특정종교 상징물을 공공지에 두는 것은 캘리포니아 헌법에 위배된다며 철거하라고
지시했다.
참전기념비를 지키려는 사람들은 이는 십자가 형태일 뿐 참전기념비라며 철거를
막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샌디에고 시는 참전기념비와 그 지부를 솔데드산기념사업회라는 비영리단체에 팔았다.
그 지역을 시 소유의 공공지가 아닌 민간 소유로 만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법원은 십자가와 그 밑의 땅만 파는 것은 시 정부가 특정 종교를
우대하는 것으로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결했다.
2005년
샌디에고 주민들은 십자가 모양 한국전 참전기념비는 기독교를 상징하기보다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리는 조형물이라는 내용의
주민투표를 실시해 채택했다.
하지만 법원은 그렇지 않다며 기독교를 명백히 상징하는 십자가가 시 공유지에
세워지는 것은 헌법에 위반이고 주민투표 의견 역시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그리고 샌디에고 시에 그해
8월까지
십자가 모양의 참전기념비를 철거하라고 명령했다.
이를 계기로 미국 내 교회 및 기독교 단체들은 십자가 모양의 참전기념비를
지켜야 한다며 항소했고 참전기념비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철거를 반대하는 던칸 헌터 등 캘리포니아주 공화당 의원들은 샌디에고 시 소속의
이 산을 연방정부가 수용∙관할하는 내용의
법안을 마련했다.
연방정부가 이 산을 소유하게 되면 주법이 아닌 연방법에 따라 참전기념비가
관할되는데 연방법은 캘리포니아 주법보다 공공지에 특정종교 상징물을 전시하는데 유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법안은 연방 하원과 상원을 통과했고
2006년
8월
14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서명하면서 법이 되었다.
당시 부시 대통령의 법안 서명을 두고 그가 십자가를 지키겠다는 사람들 편에
확고히 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며 대통령이 정교분리를 문제삼으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사건에 개입하는 것은 보기드문
일이라고 평가되었다.
하지만 무신론자 참전용사 등은 다시 소송을 제기,
연방정부가 소유한 공공지에도 기독교를 상징하는 십자가를 세우는 것은 정교 분리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2011년 연방
제9순회법원은
연방정부 소유의 공공지에 십자가가 있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철거를 반대하는 측은 연방대법원에 항소했지만 연방대법원은 심의를 거부하고 법원으로 돌려보냈고 연방법원은 지난
12일
철거를 명령했다.
이 판결에 대한 항소여부는 연방 법무부가 결정하게 된다.
이 사건은 미국사회에서 종교 분리 원칙에 따라 기독교 상징들이 공공장소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단면을 보여준다.
미국 무신론자들은 충성서약에 있는
‘신
아래서(Under
God)’와 화폐에 쓰인
‘우리는
신을 믿습니다(In
God We Trust)’라는 표현의
‘God’이라는 단어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청 등 공공 장소에서 십계명을 새긴 조형물과 아기 예수 탄생을 보여주는
조형물들에 대한 철거는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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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부터
2012년 까지 4년 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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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 류가 지휘하는
"내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
이 찬송을 듣고 또 부르면서
신앙적 결단을 다짐하는
성탄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다가와도
주께 더 나아가기 소원하는 삶...
아래
그림을
어디나 클릭하세요.

내주를 가까이 하려함은
1절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2절
내
고생 하는 것 옛 야곱이
돌 베개 베고 잠 같습니다
꿈에도 소원이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3절
천성에
가는 길 험하여도
생명 길 되나니 은혜로다
천사 날 부르니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4절
야곱이
잠 깨어 일어난 후
돌 단을 쌓은 것 본받아서
숨질 때 되도록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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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B.S. Hwang |
5000명분
발송비(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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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헌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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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 Kim
윤*영
S. Park
F. Chang
YJ Kim
Y kim
Esther Kim |
$100.00
20000원
$50.00
$20.00
$20.00
$100.0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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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음의
운동효과는?
▲ 박장대소를 1분만
해도 얼굴 근육
80개를 포함한
650개 근육과
206개 뼈가 움직이며
에어로빅을 5분 동안
하는 것과 같은
칼로리가 소모된다.
호흡에 의한 산소공급도
2배로 증가한다.
엔도르핀과 도파민 등
21가지의 호르몬도
나와 건강에 도움이
된다.
억지로
웃는 것이 효과가
있나?
▲억지로라도 큰소리를
내서 웃는 것이 좋다.
뇌는 억지로 웃는
것인지 즐거워서 웃는
것인지 구별하지
못한다.
― 웃음의 크기에
따라 효과가 다른가?
▲얼굴 근육을 더
사용하고 목젖이
울리도록 웃는 큰
웃음일수록 긍정적인
효과가 크다.
― 얼굴만 웃으면
되나?
▲손과 발을 동시에
움직이면서 웃는 것이
좋다. 몸을 움직이면서
웃으면 웃는 것이 더
쉽고 재미있어진다.
아이들이 발을 구르거나
팔짝팔짝 뛰면서 웃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 웃음을
생활화하는 비결은?
▲일단 손거울을 갖고
다니길 권한다. 작은
거울을 때때로
들여다보면 평소에 내가
얼마나 굳은 얼굴을
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거울 속의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웃어보자.
얼굴이 예뻐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 웃음으로
젊어보일 수 있는
방법이 있나?
▲웃음운동을 하면
10년은 젊어 보일 수
있다. 코 양쪽 끝에서
입가로 이어지는 팔자
주름은 나이를 말해
주는 대표적인
주름이다. 윗입술을
위로 당겨 웃어
입꼬리를 끌어올리는
웃음운동을 지속적으로
해주면 팔자 주름이
완화된다.
― 웃음이
다이어트나 몸매관리에
효과가 있나?
▲웃음은 복식호흡을
하게 하므로 변비
해소에 도움이 되고,
특히 배를 두드리며
웃는 것은 성인병의
원인인 뱃살과
내장지방을 제거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일상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웃음법
웃음 인사
= 사람을 만날 때면
웃음을 이용해 4단계로
인사한다.
1단계는 안녕하세요,
2단계는 악수,
3단계는 ‘하하하’
웃기,
4단계는 칭찬을 해주는
것이다.
웃음
라인(line)
= 집이나 직장에
웃음선을 지정해 놓고
그 선을 넘거나 밟을
때마다 10초간
웃는다.
웃음 시간
= 오전 9시, 낮
12시, 오후 3시
등으로 하루 세번
시간을 정해 가족이나
부서원 전체가 크게
웃는다.
웃음 지역
= 웃음지역을 설정해
그 장소에서 머물거나
통과할 때 20초 이상
웃는다.
웃음 데이(day)
= 일주일에 하루
웃음의 날을 지정해
웃음회의를 마련, 각자
유머를 준비해 풀어놓고
웃는다.
웃음 리더
= 1주, 1개월,
1년 기준으로 가장
많이 웃는 직원에게
웃음왕 칭호를 수여하고
상품을 준다.
#1일 웃음운동
프로그램 따라하기
1단계
= 일어나자마자 하품을
하고 있는 하마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하∼하∼하∼’
소리내어 웃는다. 얼굴
근육이 부드러워지고
부기가 빠진다.
2단계
= 아침 샤워를 하며
온 몸으로 웃는다.
“팔아, 수고 많다.
하하하”, “아랫배야,
들어가라. 하하하” 등
말을 걸며 웃는다.
3단계
= 양치를 하며
입꼬리를 올리고
웃는다. 웃음에 맞춰
신나게 양치질을 한다.
4단계
= 출근 전에 문가에
서서 1분 동안 명상을
하며 웃는다. “오늘
하루도 행복하자.
하하하”, “멋진
미소를 동료들에게
보여주자. 하하하”
등의 하루 목표를
생각하며 웃는다.
5단계
= 식사 전후에 10초
정도 가볍게 웃는다.
음식을 앞에 놓고는
기뻐하며 웃고 다 먹은
후 만족해하며 웃는다.
6단계
= 업무에 쫓길 때
잠깐 어깨를 돌리거나
기지개를 켜면서 하하하
웃는다. 웃으면서
일하면 업무능률이
오른다.
7단계
= 퇴근길에 찻속에서
크게 웃으며 운전하다
귀가한다. 웃는 얼굴로
귀가하면 가족들도
기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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