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2,  2014

 

 
 
 
 

 

 

 

 

 
 
 

 

 

 

 

 

 
 
 
 
 
 
 
 
 

 

비전통신의 영문 이름을

VT News 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새로운 영문이름과 함께 비전통신이

더욱 분명한 메시지

더욱 다양한 메시지를 전하는

귀한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비전통신의 영문 명칭...

VT News라는 이름으로 영문표기하기로 했습니다.

 

두 번이나 휴간... 사과

불가항력이었습니다만 두 번이나 휴간하게 되어서 죄송하기 그지없습니다. 창간 이래 두 번 연속으로 사고가 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다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처 하겠습니다.

 

 쉐마 이스라엘.....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앙생활 관행을 특집으로 싣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북한의 최고학교 .....

북한에 김일성 이름이 붙은 학교가 5개가 있습니다. 최고의 학교입니다. 군사교육에 몰두하는 학교입니다. 결국 북한은 남한을 적화통일 시키겠다는 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있기만 해도 건강 .....

별나게 운동을 하지 않아도 서있기만 해도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100세 장수시대에 건강하게 살면서 맡은 일을 잘 감달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언)

 

 
 
 

 

 

 

 
 
 
 

 
 

 

 

 

 

고단 / 孤單

 

아내가 제 손 잡고 잠든 날이었습니다

고단했던가 봅니다

곧바로 아내의 손에서 힘이 풀렸습니다

 

훗날에는 함부로 사는 제가 아내보다 먼저

세상의 손 놓겠지만

힘 풀리는 손 느끼고 나니 그야말로

별세(別世)라는 게 이렇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날 오면 아내의 손 받치고 있던

그날 밤의 저처럼 아내도 잠시 제 손 받치고 있다가

제 체온에 겨울 오기 전에

내려놓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고는

 

아내 따라 잠든 제 코 고는 소리 서로 못 듣듯

세상에 남은 식구들이

조금만 고단하면 좋겠습니다 

 

 

새해가 시작되면서 가슴에 와 닿은 시편 중 하나가 바로 윤병무 시인의 "고단 / 孤單"입니다.

 

'고단하다'는 말은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피곤하고 힘이 들다'는 뜻입니다.

 

시인이 한자를 병용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굳이 사전을 찾아보지 않았다면 고단.. 이란 말이 원래 "단출하여 외롭다"는 뜻임을 내내 몰랐을 겁니다.

 

그러니까 시인은 지금 '고단'이란 말을 두 가지 뜻으로 사용한 것이니 복합적으로 이해해주길 바라는 것입니다.

 

고단하여(피곤하고 힘이 들었거나 홀로 외로웠거나) 잠든 아내를 바라보며 언젠가 시인이 식구들 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 남은 식구들이 조금만 덜 고단하면, 그러니까 조금만 덜 힘이 들고 조금만 덜 외로웠으면 좋겠다고 혼잣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족이란 이름 아래 폭력이 감추어지기도 하는 세상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식구'는 소중한 존재들이고 애틋한 관계 아닌가..  그래야만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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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윤병무는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성장하였고  대전대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1995년 가을, [동서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시단에 데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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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전화 통화 후 나의 동료 직원이 여러 경로를 거쳐
해고 조치된다면 나도 사표를 준비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장시간에 걸친 전화 통화는 동료 직원의
인내심으로 조용히 끝났기 때문이다
나는 곧바로 퇴근했지만,
동료 직원은 어느 술집으로 다시 출근했을 것이다
다음날 술자리에서 동료 직원은 말했다;
걸려온 전화기에 가득 찬 고함 소리의
틈새로 자신이 너무도 좋아하는 브람스 음악이
새어 나오고 있었노라고
 

 

 

칸트는 음악에 대한 불평이 대단했다고 합니다. 그의 유명한 책인 [판단력비판]에서 음악은 매우 세련되지 못한 예술이라고 말했을 정도였습니다.

 

이유는 음악이 사람들이 원하는 것 이상으로 이웃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지요. 회화와 같은 시각예술은 그 인상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으면 눈만 돌리면 되지만 음악은 듣기 원치 않는 사람의 자유까지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향수를 뿌린 손수건을 호주머니에서 꺼내면 주변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냄새를 맡아야 하는 것처럼 음악은 감상을 강요한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칸트는 옆집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철학적 사색을 방해 받아 분개하는 날이 많았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이런 깐깐하고 예민한 철학자에게 윤병무 시인의 시를 읽어주고 싶습니다. 무심코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깊은 위로를 받은 적이 없었느냐고...

 

 

 

 

 

 

 

 

윤병무 시인

“백수의 허망함 달래던 어느 날 잊혀졌던 詩가 갑자기 쏟아져”

 

13년 만에 두 번째 시집 ‘고단’ 펴낸 윤병무 시인

담담하게 그리는 일상의 소묘…

생활 속에 담긴 진실-진심 추구

 

13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낸 윤병무 시인

 

시인은 “이번 시집은 혼자 먹는 밥 같은 것”이라면서 “나는 보여주고자 하는 욕망보다는 일상 속에서의 소소한 발견이 더 기쁜 사람”이라고 말했다.

 

윤병무 시인(48)은 일상의 애잔한 서정을 가닥 지어 시를 짠다. 시인 스스로 ‘직무유기’라고 할 정도로 그 손놀림은 더디다. 1995년 등단한 그가 이제야 두 번째 시집 ‘고단’(문학과지성사)을 최근 내놨다. 첫 시집 ‘5분의 추억’ 이후 13년 만이다.

 

시인은 문학과지성사 편집부 출신이다. 이후 서강대출판부에서 일하다가 지인들과 출판사를 차려 사회생물학 관련 책을 주로 냈다. 그러다 ‘성실하게 일은 하지만 경영을 잘하는 사람은 못되는구나’ 싶어 그만뒀다. 그 뒤로 대학 출판부의 학술 총서 외주 일을 했는데 지난해 봄, 그 일마저 딱 끊기고 말았다.

 

“계속 일을 하다가 아무 할 일이 없으니 허망했어요. ‘이제 뭐하지…’ 했는데 그 동안 잊고 있던 시를 자연스럽게 쓰게 됐어요. 작년 4월부터 6월까지 40여 편을 썼더라고요. 이 두 달 동안 써낸 시를 중심으로 새 시집을 묶어냈습니다.”

 

지난해 봄은 10년 넘게 밀쳐둔, 먼지 쌓인 상자를 열어젖힌 시간이었다. 촉망 받는 신예였던 그가 시를 밀쳐낸 것은 첫 시집 때문이었다.

 

“첫 시집을 너무 급하게 냈어요. 당시 문예지에 어떤 시인이 등단했는데, 시상이 나와 비슷했어요. 자칫하면 아류가 될 것 같아 마음이 조급했죠. 시집이 나온 뒤에 후회했어요. 절반은 다 버려야겠더라고요. 이것저것 뒤섞인 지저분한 밥상 같았어요. 이후에 시를 잘 못 쓰게 됐어요.”

 

살뜰한 네 식구의 가장으로서 살아온 인생, 그의 두 어깨를 누르는 고단하고 비루한 삶의 무게는 백수가 된 어느 날부터 시에 실렸다. 그는 ‘이만한 일로 갑자기/설사처럼 시가 마구 써지다니’(‘시작(詩作)’ 중)라고 털어놓는다.

 

그의 시는 일상을 담담하게 그린 소묘 같다. 상복 같은 빨래, 빨랫비누 쪼가리 같은 눈곱, 손가락질하는 경적, 아스팔트 뚫고 올라온 죽순 같은 자존심, 끝내 벗겨지지 않는 눅눅한 땅콩 같은 인생….

 

“나를 시인으로 만들어주는 건 아침의 눈곱이에요. 눈곱은 눈물의 찌꺼기, 나는 간밤에 자면서 눈물을 흘렸구나. 그런 일상의 발견, 생활의 흔적들이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만들어요. 늘 그 속에 담긴 진실과 진심을 찾아 헤맵니다.”

 

함성호 시인은 윤병무의 시에 우리 시사(詩史)에서 간과되는 생활의 서정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거기에는 생활하는 자의 슬픔이 아니라 생활이라는 삶 자체의 슬픔이 있다고.

 

 

 

 

 
 

 

 

 

 

 

 

 

 

어느 시인의 말처럼
외로우니까 사람입니다

 

되돌아보면
진정한 외로움은
언제나
최선을 다한 후에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본질을
직시(直視)하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거리를 기웃거리는
외로움과는 다른 것입니다.

 

자신에게 정직해지려고
애쓰다 보면
언제나 외롭다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럴 때
그 외로움은
나를 따뜻하게 감싸줍니다.

 

친구가 말했습니다.
당하면 외로움이고
선택하면 고독이라고....

 

우리는 외로우니까
글을 쓰고 외로우니까
좋은 책을 뒤적입니다.
외로우니까 그리워하고
외로우니까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합니다.

 

어떤 시인의 말대로
외로우니까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人)인 것 같습니다.

 

 

 

 

 

 

 

 

 

 

 

 

1. - 내가 주님 편에 있는가

 

아브라함 링컨이 어려운 환경에 처해서 양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교회의 대표자로 링컨에게 보내어진 사람이 링컨에게 격려의 말을 했습니다.

 

"링컨씨, 우리는 주님이 우리 편에 계시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자 링컨은 다음과 같이 말을 했습니다.

 

"네, 나의 진실된 관심사는 주님이 어느 편에 계시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과연 주님의 편에 서 있는가 입니다."

 

2. - 해석이 중요

 

남미의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국경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동상이 하나 서있습니다. 그 동상이 서있는 동안은 두 나라가 서로 전쟁이 없이 우호 관계를 유지하자고 합의를 하고 동상을 세운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동상으로 말미암아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 뻔 하였습니다.

 

그 동상이 거의 완성되어 가고 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칠레의 한 사람이 지적하기를 동상의 예수님은 칠레에다 등을 돌리고 계시다고 했습니다. 즉 동상의 전면은 아르헨티나를 향했고 뒤는 칠레 쪽을 향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 일은 칠레 사람들의 마음을 대단히 상하게 하고 자극시켰습니다. 이렇게 동상을 세우는 일은 칠레를 무시한 처사라고 했습니다. 칠레 사람들의 감정은 점점 거칠어지고 그것은 곧 폭발할 것만 같았습니다.

 

바로 이때 한 기자가 신문에 실은 글 때문에 그 위기를 모면하게 되었습니다.

 

그 신문의 글은 예수님의 얼굴이 아르헨티나를 향하고 서계시는 이유는 아르헨티나가 칠레보다 예수님의 감시, 감독을 더 필요로 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글은 전체 칠레 사람들의 감정을 즉시 무마시키고 무서운 마찰을 피하게 했던 것입니다. 이 멋있는 해석....

 

 나는 나의 인생을 무엇으로 해석하는가? 

 

3 - 무엇을 위해서 뛰었나

 

옛날에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개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 개가 특별히 자랑하는 것은, 자기가 아주 잘 달리는 선수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개가 토끼 한 마리를 쫓아 갔는데 그만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대 망신이었습니다. 다른 개들이 마구 놀렸습니다. 그러자 그 개의 대답이 걸작이었습니다.

"자네들이 알아야 할 것은 그 토끼는 목숨을 위해서 뛰었고, 나는 그냥 저녁 식사거리를 위해서 뛰었다는 점일세"

 

4 - 겨우 진주였단 말인가

 

어떤 아랍 사람이 사막에서 길을 잃었다. 가지고 있던 식량이 다 떨어졌습니다. 이틀 간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결사적으로 걸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사막 가운데의 한 작은 샘터를 발견하고 거기에 이르렀습니다. 급히 물을 마시고 보니 얼마 전에 거기에 천막을 쳤던 흔적이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혹시 천막을 치고 머물렀던 사람들이 먹다 남은 음식이라도 흘린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자세히 주변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놀랍게도 어떤 주머니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얼른 그것을 만져보니 손에 떡처럼 단단한 것이 만져졌습니다.

 

그 사람은 미친 듯이 주머니를 헤쳐서 열었습니다. 그리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속에 있는 것을 한 움큼 움켜서 꺼내 보니까 그것들은 아주 값비싼 커다란 진주 알이었습니다. 그러 자 그 사람은 손에 한 움큼 쥐었던 진주들을 사방에 던져 뿌리며 외쳤습니다. "겨우 진주였단 말인가?" 그리고 그 아랍 사람은 사막에 누워서 죽어 갔다고 합니다. 

 

5. - 사소한 일

 

미국 콜로라도의 <롱의 봉우리>에는 거대한 나무가 쓰러져 있었다고 합니다.

 

400여년이 넘은 그 나무는 14번이나 벼락을 맞고도 이겨냈고,수많은 눈사태와 폭풍우를 이겨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그마한 딱정벌레들이 이 나무에 기어들어 나무의 속을 갉아먹고 나무의 거대한 체구를 지탱할만한 힘을 빼앗았던 것입니다.

나무는 거대한 사건과는 투쟁하여 장장 400년이 넘도록 이겨 왔지만 딱정벌레들의 습격에는 당하지 못하고 그만 쓰러져 버린 것입니다.

 

사소한 일 때문에 패망하는 경우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사소한 일 즉 대수롭지 못한 일 때문에 커다란 목적을 상실한 것이 아니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6. - 당신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어느 날 장자(莊子)가 활을 메고 사냥을 나갔습니다. 갑자기 이상하게 생긴 까치 한 마리가 머리 위를 날아서 멀리 있는 나뭇가지 위에 앉았습니다. 그 모양이 하도 이상해서 그것을 사냥하리라 마음먹은 장자는 까치를 노려보며 조심조심 다가갔습니다.

 

활을 당기려고 보니까 까치가 무엇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눈길이 닿는 곳을 보니 풀숲 사이에 사마귀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마귀는 또 나무 그늘에서 울고 있는 매미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습니다. 사마귀도 까치도 눈앞의 먹이에 정신이 팔려 자기가 죽게 되었다는 것은 전혀 생각지도 않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한심한 그 미물들이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어 장자는 그만 활을 거두고 돌아섰습니다. 그리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한 사나이가 몽둥이로 자기를 내리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사정을 알고 본즉, 까치를 따라가느라 정신 없었던 장자가 남의 밭으로 들어가 쑥밭을 만들어 놓았던 탓이었습니다. 결국 사마귀나 까치나 장자 모두 똑같은 존재들이었습니다.

 

"당신의 목전에 놓여있는 탐욕으로부터 자유를 얻지 않는 한 당신은 살았어도 죽은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7. - 깨어짐의 원리

 

계란의 껍질이 깨어지지 않고는 병아리의 새 생명이 태어날 수 없고 딱딱한 밀알이 땅에 떨어져 물렁물렁해지고 껍질이 깨어지지 않고는 새 생명으로 나타나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옥합의 딱딱한 껍질이 깨어진 후에도 향기가 온 방에 진동했고 예수님의 칭찬과 축복을 받았습니다. 야곱이 얍복강 가에서 절름발이 되도록 환도 뼈가 부러진 후에 (위골) (이스라엘)이란 축복을 받았습니다.

 

계란의 껍질과 같고 옥합과 같은 육에 속한 사람의 고집과 교만과 아집이 깨어지지 않고는 새 생명,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올 수가 없고 진정한 의미의 축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실패나 질병의 방망이로 건강의 환도뼈, 사업의 환도뼈, 자식의 환도뼈, 물질의 환도뼈를 칠 때가 있습니다. 그때 비로소 헛된 소망을 버리고 하나님과 만나고 영원한 소망을 갖게 됩니다. 

 

8. - 감사를 잊지 않는 사람

 

물에 빠져 죽게 된 사람을 머리칼을 잡아 끄집어내 살려주었더니 다른 사람은 메달을 달아주며 칭찬하는데 살아난 사람은 그때 머리가 아파서 혼이 났다고 두고 두고 원망하더랍니다.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긴다"는 말대로 은혜를 잊기가 쉽습니다.

 

미국 오하이오주 Springfield에 있는 위튼벌그 대학에서는 34년 전에 200달러를 갚지 못했던 학생한테서 백만불을 기부받은 일이 있었는데 그 분은 대 Power회사의 사장인 Dr.Stanley Hanley입니다. 그가 성공한 것은 바로 이 감사를 잊지 않는 성품 때문일 것입니다.

 

"기도와 감사함으로 깨어있으라"(골로새4:2)고 성경은 말씀했습니다.

 

"제일 가르치기 어려운 수학문제는 우리가 받은 축복을 세어보는 문제이다"라는 서양격언이 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람에게 기쁨을 줍니다.

 

9. -생각의 힘

 

한 청년이 알프스 산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준비해간 물이 떨어져 심한 갈증을 느꼈습니다.

 

그때 그는 알프스 계곡 사이에 있는 맑고 깨끗한 호수를 발견하였습니다. 이 청년은 단숨에 물을 꿀꺽꿀꺽 마셨습니다. 몹시 시원한 물이었습니다. 물을 실컷 마시고 발길을 돌리는 순간 그는 "포이즌(poison)"이라고 쓴 경고판을 보았습니다. 이 물 속에 독이 들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이 청년의 몸에서는 열이 나기 시작했고, 그는 심한 구토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온 몸이 떨리고 얼굴은 창백해졌습니다. 그는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의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게시판을 잘못 보았군요 그것은 '포이즌(poison)'이라고 쓴 것이 아니고 '포이존(poisson): 낚시금지)'이라고 쓴 것입니다.

 

이 청년은 '포이존'을 '포이즌'으로 잘못보고 야단법석을 떤 것입니다.

의사의 말을 듣자마자 청년은 열이 내리고 구토도 멈추고, 깨끗이 나았습니다. 이것이 생각의 힘입니다.

 

10. - 작은 문제를 소홀히 여기지 말라

 

옛날에 큰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유명한 장수가 지휘하는 큰 군대가 적에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적보다 훌륭한 지휘관과 병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싸움에 패한 원인이 무엇인가 살펴보았더니, 그 군대를 지휘하던 장수의 말 편자의 못이 하나 빠져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작은 일은 무시해 버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작은 일에 무관심할 때, 그것으로 인하여 큰 실패를 하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한 선수가 한 신문사와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당신은 훌륭한 기록으로 우승을 하였는데, 당신이 달리는 동안 가장 어려웠던 때는 언제였습니까?

 

"나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신발 속에 들어간 작은 모래였습니다."

 

우리의 가정의 행복을 파괴하는 많은 요인들도 단순하고 작은 이유들입니다. 우리가 작은 문제에 소홀히 해서는 행복을 쉽게 잃어버리게 될 때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심한 우울증에 시달려 자살을 생각하고 있던 한 젊은이가 마지막으로 루터를 찾아갔습니다. 루터 그 젊은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 중 그 누구에게도 밤이 찾아오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밤에 잠을 자지 않으면 사람은 살 수 없으니까요.

우리 중 그 누구에게도 아침이 찾아오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햇볕을 쬐지 않고서 사람은 살 수 없으니까요.

 

젊은이여, 그만하면 어두운 밤 가운데 충분히 있었으니, 이제 일어나 빛 가운데로 나오시오. 그대의 영혼은 이제 깨어나야 하오.

그대에게 줄 수 있는 치료제는 마음에 햇볕을 쬐면서 밝은 마음과 용기를 충전하라는 것입니다.

 

최고의 강심제는 밝은 마음입니다.

밝은 성격은 ...

자비심의 친구이고 ...

참을성의 유모(乳母)이며...

지혜의 어머니입니다.

또한 마음과 정신의 최고의 활력소입니다."

 

밝은 성격은 상당부분 타고나는 것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다른 습관과 같이 후천적으로 얼마든지 길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다만 게을러서 입니다...

 

 

 

 

 

 

 
 
 
 

 

 

 

'율''률'을 어떻게 구분할까?

 

모음이나 ''으로 끝나는 명사 뒤에는 ''을,

''을 제외한 받침 있는 명사 뒤에는 ''을 붙인다.

 

몇 가지 예를 기억해 두면 더 쉽다.

사고율, 백분율, 건폐율,

용적률, 입학률, 취업률, 성공률. '확률'

 

 

 

 

 

바루기: 바루기라는 뜻을 아십니까?

         비뚤어지지 않도록 곧게 하다는 뜻입니다. 

 

 

 

 

 
 
 

 

 

 

 

 

첫 번 째 진실

이 세상에 진실로부터 도망 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살면서 때로는 피하고 싶은 진실과 맞닥뜨려야 할 때가 있다. 그냥 모른 채 살면 좋겠지만 진실은 너무 끈질겨서 우리의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두 번 째 진실

비상한 용기 없이는 불행의 늪을 건널 수 없다.

 

누구나 불행을 피해갈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이겨내지 못할 불행도 없다.

 세상에 대한 원망과 자기연민을 이겨낼 용기만 있다면 우리는 모든 고통으로부터 구원 받을 수 있다.

 

세 번 째 진실
가장 견고한 감옥은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어떤 일을 망치는 가장 큰 원인은 두려움이다.

이 두려움이 갖가지 변명거리를 만들어 내며 우리를 뒷걸음치게 만든다.

 

그리고 이 두려움은 누가 우리에게 준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네 번 째 진실 

완벽주의가 좋은 인간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일에서는 완벽주의가 빛을 발할 수 있지만

인간관계에서는 오히려 해가 된다.

 

그래서 완벽주의자는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는 좋지만 친구로서는 꺼려지는 법이다.

 

다섯 번 째 진실 

사랑은 인생에 처방하는 가장 강력한 진통제다.

 

고통으로 가득 찬 이 세상을 순간  살아볼 만한 곳으로 만들어주는 신비로운 존재가 바로 사랑이다.

 

인간이 견뎌야 할 모든 시련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도 바로 사랑이다.

 

 

여섯 번째 진실 

좋은 일이 일어나는 데에는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나쁜 일에 빠져드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지 않지만,

거기에서 벗어나는 데에는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

좋은 것일수록 그것을 얻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일곱 번째 진실 

방황하는 영혼이라고 해서 모두 길을 잃은 것이 아니다.

 

인생에는 미처 다 가볼 수 없는 여러 갈래길이 있다.

그 여러 갈래길 사이에서 잠시 이탈하거나 행로를 변경하는

것은 방황이 아니라 오히려 행복한 모험일수 있다.

 

 

여덟 번째 진실 

짝사랑은 고통스러우면서 낭만적이지도 않다.

 

애정에 대한 과도한 욕구가 때로는 짝사랑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랑은 서로 소통될 때 비로소 그 빛을 발한다. 혼자 하는 사랑은 낭만적이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아홉 번째 진실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체념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사람은 변화를 꾀할 수 없다.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지금 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열 번 째 진실 

만일 지도가 지형과 다르다면 지도가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많은 것을 시행착오를 겪은 뒤에야 깨닫게 된다.

이 깨달음이 모여 인생의 지도를 만들어나간다.

 

결국 인생이란 지금 발을 딛고 있는 현실에 맞게

머리 속의 지도를 수정해 나가는 과정이다.

 

열 한번째 진실 

지금 하는 행동이 미래를 말해준다.

 

나와 다른 어떤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면 먼저 행동을 살펴야 한다. 말이나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 그 사람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말해주기 때문이다.

 

 

열 두 번 째 진실   

감정적인 행동을 이성적으로 멈추게 할 수는 없다.

 

우리가 스스로 잘못인 줄 알면서도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은  

그 행동이 논리적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편견이나 아집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열 세 번 째 진실 

나에게 일어난 일의 대부분은 나에게 책임이 있다.

 

사람은 자신의 고통을 다른 사람이나

외부 환경 탓으로 돌리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을 고통에 빠뜨리는 것도, 그 속에서 구해내는 것도 결국은 자기 자신임을 알아야 한다.

 

 

열 네 번 째 진실 

모든 인간관계에서 주도권은 무심한 사람이 쥐고 있다.

 

어떤 인간관계든 깨어질 때는

어느 한쪽이 먼저 마음이 떠나기 마련이며,

그 사람이 오히려 강자가 되어

원상회복을 위한 약자의 모든 노력을

헛수고로 만들어 버린다.

 

열 다섯 번 째 진실  

함부로 베푸는 친절이 상대를 더 망칠 수 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주위사람들의 친절이나 보호가 아니라

절망을 이겨내겠다는 본인의 강력한 의지다.

 

 

열 여섯 번째 진실 

정말로 바꾸고 싶다면 지금 당장 용기를 내야 한다.

 

무언가 불만이 있는데도 부딪쳐 싸워낼 의욕이나 용기가 없어 내버려두고 있다면,

그 사람은 아직 충분히 불만스러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열 일곱 번째 진실 

열 번의 변명을 하느니 한 번의 모험을 하는 것이 낫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면서 왜 그 일을 할 수 없는가에 대한

변명거리만 준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스스로 그 일을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모험심으로 출발하는 사람도 있다.

 

 

열 여덟 번째 진실   

지금 여기에서 좋은 것이 영원히 좋으리란 법은 없다.

 

뛰어난 두뇌, 유머감각, 완벽주의 등

어떤 사람을 돋보이게 해주던 요소들이

때로는 그 사람을 불리한 처지로 몰아 넣을 수 있다.

인생에 절대적 가치가 없듯이 절대적 장점이란 것도 없다.

 

열 아홉 번째 진실 

남을 속이는 것도 나쁘지만 자신을 속이는 것이 더 나쁘다.

 

갖가지 핑계로 게으른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자기 합리화가 반복되면 결국은 어떤 판단도 올바로 할 수 없게 된다.

 

 

스무 번째 진실

이혼은 완벽한 사랑의 환상에서 비롯된다.

 

나를 온전히 이해해주는 사람과 영원히 함께하는

완벽한 사랑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것은 환상이며 헛된 욕망일 뿐이다.

 

스물 한번째 진실

이별은 사랑의 가치를 더욱 소중하게 만들어준다.

 

진실로 사랑했다면 그 사랑은 결코 사라지거나 죽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자리에도 사랑은 그대로 남아 더욱 견고하고 아름다워진다.

 

 

스물 두 번째 진실

아무리 좋은 부모라도 훌륭한 스승이 되기는 어렵다.

 

끊임없이 규칙을 만들고 강요하며 통제해야만

부모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오히려 아이를 나약하고

비관적인 사람으로 만들 뿐이다.

 

스물 세 번째 진실

어떤 사람은 아프다는 핑계로 책임을 회피한다.

 

아픈 사람에 대해서는 관대해지는 법이다.

그래서 누군가의 사랑을 갈구하거나

혹은 고통스러운 상황을 회피하고 싶을 때

우리는 몸져눕는 방법을 선택하곤 한다.

 

 

스물 네 번째 진실

불필요한 두려움은 진정한 기쁨을 방해할 뿐이다.

 

이 사회는 온갖 다양한 것들로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전쟁과 테러, 가난, 질병, 사업 실패 . . .

그것들은 단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의 행복을 방해한다.

 

스물 다섯 번째 진실
부모가 자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훌륭한 부모가 되고 싶다면 통제하는 대신 따라오게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과 용기를 심어주는 일이다.

 

 

스물 여섯 번째 진실

아쉬운 기억일수록 낭만적으로 채색되는 경향이 있다.

 

과거의 기억은 곧잘 낭만적인 환상으로 부활한다.

과거의 낭만적인 기억에 매달리는 사람들의 문제는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미래를 불안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스물 일곱 번째 진실

 

인생의 마지막 의무는 아름다운 노년을 준비하는 것이다.

 

외로운 노년을 자식에게 기대려는 것은 더 이상 환영 받지 못한다. 

노년의 상실감을 품위와 의지로 견뎌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마지막으로 용감 해 질 수 있는 기회다.

 

 

스물 여덟 번째 진실

세상에 실망할 수는 있지만 심각하게 살 필요는 없다.

 

온갖 부조리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

어떤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는 용기를 발휘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위대한 능력이다.

 

스물 아홉 번째 진실

시련에 대처하는 방식이 삶의 모습을 결정한다.

 

우리는 대부분의 상황을 자유의지대로 선택할 수 있다.

시련에 대처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시련을 대처하는 여러 방식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서른 번째 진실

용서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다.

 

용서는 포기나 망각이 아니라

변화를 위한 적극적인 의지이다.

 

원망이나 복수심을 버리기 위해서는

그만큼 내면의 성숙이 필요하고,

내면의 성숙은 그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리스크(Risk)라는 것은

사자(死者-죽은 자)에게는
있을 리 없습니다. 죽은 자에게는 또
고뇌도 어려움도 없습니다.

 

모든 투수는
항상 타자가 칠 수 없도록
의도적으로 볼을 던집니다.

 

그래도 치고 나가는 것이 야구요
바로 거기에서 야구의 묘미가 나옵니다. 
뿐 아니라 그런 중에도 4할 타자가 등장합니다.

 

인생도 매번 치기 쉽게 

기회가 오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쳐 내야 합니다.
거기에 인생의 묘미도 숨겨 있는 것입니다.

 

 

 

 

 

 

칠 수 없게 던진 공을 쳐 내는 추신수 선수

 

 

 

 

 

 

 
 
 

 

 
 

 

 

 

 

 

두 주전 돌연사(突然死)에 관한 글을 썼다. 지난 주에는 심한 몸살 감기로 칼럼도 쓰지 못하고 비전통신도 발행하지 못했다. 미국 남가주에서는 이번 독감으로 지금까지 95명이 죽었다.

수요일 아침 공부하러 온 학생이 자기 주변에서 지난 주 두 명이나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49살에 세상을 떠난 한 선배의 딸이 유방암 수술을 했는데 전이가 되어 특별기도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아내로부터 들었다. 그녀의 나이는 45살이다. 불안한 생각 때문에 마음이 무겁다.

 

오늘도 이렇게 죽음에 관한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는 일반적으로 3일간의 장례 과정에서 헤어지는 시간을 갖는다. 살아있는 이들은 죽은 자와 함께 이 세상에서 다시 만나지 못할 이별을 한다. 죽은 자는 이 세상에 주어진 삶을 마지막으로 완성하고 마감한다. 이 세상과의 영원한 작별을 하는 시간이다.

 

평생 몸에 피를 돌리며 뛰었던 심장, 누군가를 사랑하며 뛰었던 그 마음 그리고 자연을 보고 느끼고 감각하였던 신체. 그리고 희노애락(喜怒哀樂)의 고단한 감정이 어딘가 쌓여있을 법한 몸, 한 인생을 지탱해 왔던 몸은 화장(火葬)을 하던 땅에 묻히던 한 줌 재가 된다. 이렇게 그의 신체는 이 땅의 먼지가 된다.

 

이 세상 가운데 우리와 더불어 살았던 그는 어디로 갔을까. 그의 고단함은, 그의 생의 기쁨은, 그의 우리를 향한 사랑의 마음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우리의 짧은 지식의 열쇠로 열 수 없는 그 문을 죽음이라는 열쇠로 열고 그는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그렇다. 그는 우리의 마음에 있다고들 말한다. 그는 우리 마음에 살아있다. 그러나 그것이 죽음에 대한 유일한 대답일까. 우리도 언젠가는 그들처럼 사라진다. 그렇다면 유일한 우리의 삶과 죽음의 보증은 다가올 우리 후대의 기억과 전승일 뿐인가.

 

생명이 물리화학적으로 완전히 해체되어 언젠가는 흩어질 먼지로 사라지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생명과 죽음에 대한 유일하고 적절한 이해일까. 혹은 개인이 죽어서 어디엔가 영원히 깨지지 않는 유리알과 같은 영혼의 상태로 존재한다면 그것은 또 얼마나 납득하기 어려운 사변(思辨) 아닌가.

 

인간은 사라지는 존재이다. 소멸한다. 하지만 사라지는 인간의 삶 안에서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것은 무엇인가. 인간은 신묘한 존재이다.

 

피조물, 생명, 죽음, 십자가, 교회, 몸의 부활, 그리스도, 사랑, 하나님은 단순한 종교적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분명 역사가 증명하는 인간에 대한 심오한 진술과 고백이다.

 

저 소박한 흙에서 신성을 엿본 테이야르 드 샤르뎅은, 우주를 ‘그리스도의 사랑과 불멸’로 가득한 곳이라고 고백했다.

 

죽음에 관한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현실에서 죽음 저 넘어 영생을 바라보고 확인하는 기회가 되라는 샤르뎅의 도전에 마음을 여미어 본다.

사람은 불멸의 존재이고 영원히 산다. 지옥과 천국 어느 곳에서든지....(장재언)

 

 

 

 
 
 
 

 

 

 

 

 

 

 

마쓰시타 고노스케(Matsushita Konosuke 1894년 11월 27일 ~ 1989년 4월 27일)는 일본의 사업가로 현재의 파나소닉을 세운 인물입니다.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전기산업 발전에 공헌하였으며, '경영의 신(神)'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당신 덕분에...

 

"덕분에" 라는 말과 "때문에" 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의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언제나 긍정적인 태도를 반복적으로 선택하여 '경영의 신' 으로 불린 일본의 전설적인 기업인 마쓰시타 고노스케.

 

그는 숱한 역경을 극복하고 94세까지 살면서 수많은 성공 신화를 이룩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승리 비결을 한마디로 '덕분에'라고 고백했습니다.

 

ㅡ "저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덕분에'

 

어릴 때부터 갖가지 힘든 일을 하며 세상살이에 필요한 경험을 쌓았습니다.

 

ㅡ 저는 허약한 아이였던 '덕분에' 운동을 시작해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ㅡ 저는 학교를 제대로 마치지 못했던 '덕분에'

 

만나는 모든 사람이 제 선생 이어서 모르면 묻고 배우면서
익혔습니다.

 

참 멋진 인생입니다.

남들 같으면 '때문에' 요렇게 힘들고, 요 모양 이 꼴이 되었다고 한탄하고 주저앉을 상황을 '덕분에'로 둔갑(遁甲)시켜 성공비결로 삼았으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 아닐 수 없고 절로 머리가 숙여지는 분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매사를 긍정적으로 '덕분에'로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늘 부정적으로 한탄하며 탄식하는 '때문에'로 살고 있습니까?

 

오늘도 하나님 덕분에...

부모님 덕분에...

친구 덕분에...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 덕분에...

살아가고 있음을 고백하는 멋진 날입니다.

 

지금도 저는 당신 덕분에 항상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사랑하는

많은 이들과

함께하는 이 인생길...

 

덕분에 감사합니다. 

 

 

 

 

 

 

 

 

 

 

 

 

 

 

 

 

 

이스라엘에 가 본 적이 있다면,

이스라엘 가정집에 들어갈 때 우리나라의 문패처럼

문설주에 부착되어 있는 손바닥 길이 정도의 작은 

케이스가 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작은 케이스가 바로

"메주자-Mezuzah" 입니다.  

 

이스라엘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작은 가게의 입구 에도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메주자의 크기는 다양합니다.

통상적으로는 사람의 손바닥 만한 크기의 메주자가 사용됩니다. 

메주자의 크기가 정해진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위 사진은 이스라엘의 벤 구리온 공항에 있는 대형 메주자입니다. 

글씨가 적힌 두루마리가 안에 있습니다. 

 

메주자의 안에는 성경 구절이 기록된 종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메주자는 성경말씀을 담은 작은 상자라고

해하면 되겠습니다. 

 

무슨 말씀이 담겨있을까?

 

 

 

메주자 안에는 성경의 신명기 6장 말씀이 들어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이신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신6:4-9)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메주자는 종교적 의미와

민족 전통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메주자의 다양한 모양은  다양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겉모습과 행동 방식, 취미 등을 반영하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향한 마음은 같습니다.

좀더 자세한 내용을 아래 소개합니다.

 

 

메주자 / Mezuzah

 

메주자란 히브리어로 <문설주>를 뜻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유대인들이 자신의 집 문설주나 대문에 붙여놓은 조그만 상자를 말한다.

이 상자 안에는 모세 오경 중 하나인 신명기 6,4-9와 11,13-21의 구절이 적힌 양피지가 들어있다.

 

<너, 이스라엘아 들어라 Shema Israel>로 시작되는 이 구절은 야웨가 이스라엘에 내린 절대적인 명령을 담고 있다.

이 성경구절은 정결하게 처리된 양의 가죽에 특별히 훈련 받은 사람만이 필사할 수 있다. 이는 메주자가 신성한 것이기에 사소한 실수도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메주자에 들어 있는 성경구절을  현대적인 문구로 소개해 본다

 

너,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의 하나님은 야웨이시다.

야웨 한 분뿐이시다.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희 하나님 야웨를 사랑하여라.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라.

이것을 너희 자손들에게 거듭거듭 들려 주어라.

집에서 쉴 때나 길을 갈 때나

자리에 들었을 때나 일어났을 때나

항상 말해 주어라.

네 손에 매어 표를 삼고 이마에 붙여 기호로 삼아라.

문설주와 대문에 써 붙여라.

 

메주자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유대인이 거주하는 집의 모든 문에 붙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메주자는 방으로 들어가는 문설주 오른쪽 위쪽 10㎝ 지점에 위치한다. 소수의 유대인들은 메주자의 위쪽이 방 쪽을 향하게 약간 기울여 붙이기도 하지만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수직으로 붙이고 있다. 붙이는 방식의 차이는 특별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 가문의 관습에 의한 것이다.

 

 

모든 집안의 문에 붙이는 메주자는 침실이나 욕실, 채광문이나 작은 방 그리고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는 방문에는 붙이지 않는다.

메주자를 붙일 때는 <브로카 brocha>라는 축복의 기도를 하는데 이 기도는 메주자를 붙이도록 명령한 주님이 자신들을 거룩하게 해 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메주자를 붙일 수 있는 사람은 유대인의 성인식인 <바 미츠바 bar mitzvah>를 거행한 13세 이상의 남자로 한정한다.

 

특별한 방법으로 기록된 메주자는 때때로 시간이 흐르면서 파손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안에 넣어둔 양피지의 글자 가운데 작은 흠집이라도 안된다. 이런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보통 7년에 두 번 정도 메주자를 필사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이 검사를 한다.

 

메주자에는 신성함이 주어지기 때문에 야웨에 대한 유대인들의 서약이 상징되어 있다. 따라서 문을 드나들 때 메주자에 입을 맞추는 것이 관행이다.

 

테필린 / Tefillin

 

유대인들은 기도를 할 때 토라의 구절이 적힌 작은 가죽주머니를 두 팔과 이마에 묶는데 이것을 테필린이라고 부른다. 테필린은 보통 <성구함 聖句函>으로 번역되는데 본래의 의미는 <부적>이란 뜻이다.

 

 

어원에서 보듯 테필린은 무엇인가로부터 혹은 무엇인가를 보호하기 위한 부적으로 보이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테필린의 어원은 기도한다는 테필라 tefilah와 재판한다는 페 라메드 לפ의 어근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테필린 역시 메주자와 같이 신의 절대적인 명령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 테필린의 착용에 관한 근거는 신명기 6,4-7에 나와 있다.

유대인들은 주일 아침(유대의 주일은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이다)에 기도하기 위해 토라의 구절이 담겨있는 성구함을 팔뚝에 잡아매고 팔에서 손에 이르는 곳에 가죽 끈을 둘러 매었다.

그리고 다른 성구함은 이마에 비 끌어 매고 어깨 쪽으로 가죽 끈을 내려 묶었다. 이 테필린은 아침 기도가 끝나면 풀었다.

위의 그림은 테필린을 착요하는 방식을 보여주는데 아쉬케나지-유럽출신의 유대인-와 세파르딤-중동 및 북아프리카 출신의 유대인-의 착용방식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어떤 특별한 형식이 아니라 관습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지지트 / Zizit와 탈리스 / Talis

 

토라는 유대인들에게 기도할 때 머리에 숄 / Talis을 쓰라고 명하고 있다. 이 숄은 단순한 것이 아니라 네 귀퉁이에는 장식 / Zizit를 달도록 하고 있다. 이 숄의 착용은 민수기 15,37-41과 신명기 22,12에 근거를 두고 있다.

 

<옷자락에 술을 달고 그 술에 자주빛 끈을 달아 이것을 볼 때 마다 야웨의 모든 명령을 기억하기 위한 것>으로 네 귀퉁이에 달려있는 각각의 술 장식은 모두 39번을 감아 올렸는데 이는 히브리어 <주님은 한분이시다>라는 글자의 숫자와 같은 것이다.

 

구약에서 탈리스는 유대인의 정신과 영혼, 즐거움과 슬픔, 기도와 축제를 감싸는 종교적 상징으로 나타난다.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탈리스를 할례식, 성인식, 결혼식, 장례식에 사용한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인 토라를 이동할 때 탈리스로 감싼다.

장례식에서는 시신을 감싸 매장하는데 탈리스를 사용하기도 한다. 또한 결혼식에서는 신랑과 신부를 이 탈리스로 감싼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희. 노. 애. 락에 다양하게 사용하는 탈리스는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할 때 자신들의 국기를 만드는데도 영감 靈感을 제공하였다.

갓 건국한 이스라엘은 세계각국에서 온 이민 유대인들을 하나의 국가 속으로 묶기 위해 탈리스에 다윗의 별을 첨가하여 국기를 만들었다. 현재 우리가 보는 이스라엘 국기의 바탕은 탈리스이다.

 

 

탈리스는 텐트를 의미하는 탈 tal과 작다는 뜻의 이트 ith가 결합된 것으로 원 뜻은 작은 텐트를 의미한다.

유대인 성인 남자들은 모두 자신의 탈리스를 가지고 있다. 이 탈리스는 신약성서에도 잠깐 언급되는데 그것은 사도 바울에 의해서 이다. 사도 바울은 신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의 직업을 <텐트 제조자>로 언급하는데 이는 커다란 텐트가 아니라 탈리스를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장인으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탈리스와 유사한 것으로 판초처럼 셔츠 위에 입을 수 있는 것이 있는데 이를 <탈리트 카탄/Talis Katan>이라고 부른다. 유대인이 탈리스 카탄을 착용하였을 때는 술 장식인 지지트가 옷 밖으로 보여야만 한다.

 

메노라 / Menorah

 

유대인들의 믿음 상징 가운데 가장 오래 된 것 가운데 하나가 메노라이다. 성전에서 사용하는 일곱 갈래 가지 형태의 촛불인 메노라는 매일 저녁과 아침(유대인의 하루 시작은 해질 무렵부터이다)에 성직자에 의해 심지가 교체되고 신선한 올리브 기름이 담겨졌다.

 

이 메노라를 제조하는 방식은 모세 오경 가운데 하나인 출애급기 25,31-40에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다.

 

 

 

<너는 순금으로 등잔대를 만들어라. 한 덩이를 두드려서 밑둥아리와 원대를 만들고, 또 두드려서 꽃받침과 꽃잎 모양을 갖춘 잔들이 뻗어 나게 하여라.

원대 양쪽에서 곁가지 여섯 개가 나오게 하되 등잔대 한 쪽에 곁가지가 세 개, 또 다른 한 쪽에도 곁가지 세 개가 나오게 하라.

한 쪽 가지에는 감복숭아 꽃받침과 꽃잎 모양을 갖춘 잔 세 개, 또 다른 쪽 가지에도 감복숭아 꽃받침과 꽃잎 모양을 갖춘 잔 세 개가 뻗어 나게 하여라.

등잔대에서 나온 여섯 가지를 모두 같은 모양으로 만들고, 등잔대 원대에는 감복숭아 꽃받침과 꽃잎 모양을 갖춘 잔 네 개를 만들어라...이 꽃받침이 있는 곁가지들은 등잔대를 늘여서 만들되, 모두 한 덩어리의 순금을 두드려서 만들어라.

그리고 등잔 일곱 개를 만들어 앞을 환히 비추도록 등잔대에 올려 놓아라. 등잔 불 집게와 불똥 받는 접시도 순금으로 만들어라. 이렇게 등잔대와 이 모든 기구를 만드는데 순금 한 달란트를 들여 산 위에서 너에게 보여준 모양대로 만들어라.>

 

이 메노라는 예언자 이사야가 말한대로 <만국의 빛>이 되기 위해 이스라엘 국가의 상징이 되었다. 오늘날 유대인 회당인 시나고그에서 사용되는 램프는 <네르 타미드/ Ner Tamid>라고 불리는데 이는 <계속 타오르는 불꽃>이란 뜻이지만 <영원한 불꽃>으로 번역된다.

메노라는 일반적으로 일곱 갈래 가지 이지만 유대인들의 가장 큰 축제인 <하누카 / Chanukkah> 때에는 아홉 갈래 가지 촛대를 사용한다.

 

하이 / Chai

 

히브리어로 삶을 뜻하는 하이 Chai는 목걸이나 다른 보석 장신구에 이용되고 있다.

 

 

하이는 히브리어 헤트 ח와 요드י 두 글자를 합성한 것으로 하나님에게 삶을 의탁한다는 의미가 있다.

종교로서 유다이즘은 삶의 초점이 대우 다양하다. 그러므로 하이는 매우 중요한 뜻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기쁨의 건배를 나눌 때 외치는 구호는 삶을 뜻하는 르하임 / l'chayim이다.

또 유대인들이 자선의 선물을 줄 때에는 글자 하이가 가지고 있는 수자인 18의 배수로 주어야 한다(ח는8, י 는 10).

 

야믈케 / Yarmulke (혹은 키파 Kippah)

 

야믈케라는 말은 이디쉬어 얌미카/Yammica에서 온 말이다.

언어학자들에 의하면 이 말은 타타르 족의 언어로부터 차용한 것인데 <테두리 없는 모자>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러나 소수의 정통파 신자나 하시딤파들은 이 단어가 아람어 <예라이 말카 / yerai malka>에서 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말은 <왕에 대한 존경 혹은 두려움>이란 의미이다.

이 테두리 없는 모자를 히브리어에서는 키파라고 부른다.

 

 

고대로부터 유대인들은 기도를 하기 전에 자신들의 머리를 덮었다. 이는 머리를 덮음으로써 신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것을 뜻하는데, 이는 아마도 고대 유대인들이 접하던 동방문명으로부터 차용한 것이라 생각된다.

동방 민족들이 기도를 할 때 머리에 모자를 쓰는 것을 히브리인들은 신에 대한 존경으로 이해하였던 것이다.

이런 유습은 고대 로마에서도 있었다.즉 노예들은 자유민이 아닌 동안에는 그들의 머리를 가리게 하였다. 이런 것을 볼 때 유대인들이 기도할 때 머리를 가린 것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종>임을 은연중에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중세시대에 와서도 유대인들은 항상 자신들의 머리를 가렸는데 이는 자신들의 위에 언제나 신이 존재함을 느끼고자 함이었다. 이러한 전통과 관습은 유대인의 한 전형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위의 그림은 기도하는 유대인의 그림으로 성구함을 머리에 매고, 테필린을 팔에 두른 다음 지지트를 어깨에 덮고 야믈케를 머리에 쓰고 기도를 하는 모습이다. 이것이 유대인들이 기도하는 전형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다윗의 별

 

다윗의 별 혹은 다윗의 방패로 알려진 이 문장은 유다이즘을 상징한다.

 

 

이 문양이 유다이즘의 상징이 되는 데는 프란츠 로젠바이크 / Franz Rosenzweig가 크게 기여하였다. 로젠바이크는 위쪽으로 향한 삼각형은 [신을 향한 상승의 투쟁]이며, 아래쪽으로 향한 삼각형은 [현실세계를 향한 하강적 투쟁]이고, 삼각형의 세 변은 이스라엘의 세 축인 코하님 / kohanim(사제), 레위족, 이스라엘을 의미한다고 한다.

 

다윗의 별이 유대인의 상징으로 부상하게 된 것은 중세와 나치시대를 거치면서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세시대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표시로 항상 다윗의 별만을 부착하였던 것은 아니다. 다윗의 별이 고정적으로 유대인의 표시가 된 것은 17세기 이후부터라는 것이 정설이다. 이후부터 기독교인들의 집에 십자가가 달려있듯 유대인의 집과 회당에는 다윗의 별이 부착되기 시작하였는데 왜 다른 유대인의 상징을 놔두고 이것이 채택되었는지는 불확실하다.

 

다윗의 별은 1897년 시온주의의 문장으로 채택 됨으로써 유다이즘의 상징이 되었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고 국기를 제정하는데 다윗의 별은 토론을 거쳐 국기에 삽입되었다. 이후 다윗의 별은 이스라엘 혹은 유대인을 상징하는 보편성을 가지게 되었다. (언) 

 

 

 

 

 

 

 

 

 

 

 

사람이 글자를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영향을 받을 수 있을까.

우리가 흔히 보는 식당에 붙어 있는 성구나 가정에 붙어 있는 성구들이 믿음의 범주를 떠나 글자 자체에 효능이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예전 모 방송사에서 한 실험을 통하여 피실험자 12명을 대상으로 30여 개의 노인관련 글을 보여준 후 이들이 무의식 중에 걸음이 느려지는 것을 관측하였다. 반대로 청년에 관련된 글을 보여준 후 이들의 걸음걸이가 빨라지는 것이 관측됐다.

 

이들은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글자에 영향을 받아 행동에 변화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쉐마)을 '메주자'라는 통에 넣어 문설주에 붙이고 또 말씀을 넣은 작은 상자를 가죽 끈으로 묶어 우리 미간(이마)과 팔과 손목에 붙이고 다니라고 명하고 있다.

 

이는 글자를 쳐다 만 봐도 거기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스라엘 백성이 왜 그렇게 많은 노벨상을 수여 받고 그들의 교육이 유독 전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가는 사람이라면 호텔 입구에 '쉐마'라는 성구가 들어있는 '메주자'가 문설주에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느 건물을 막론하고 화장실이나 창고를 제외한 모든 문마다 '메주자'에 적혀 있는 '쉐마'의 하나님 말씀을 볼 수 있다.

 

한국에서 다니엘 학습법을 강의 하는 분께서 성경말씀과 영어단어를 집안 곳곳에 붙여놓고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렇듯 내가 눈으로 보는 글자에 의해 내가 영향을 받고 산다면 이왕이면 힘을 주는 글자, 소망을 주는 글자를 보며 사는 것이 얼마나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까를 생각해 본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생명력 있다는데 소망의 말씀을 곳곳에 붙이고 새 힘을 공급받는 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신명기 6:8-9)(언)

 

 

 

 

 

 

 

 

 

 

 

컴퓨터 사역에 뛰어든 지 어언 10여 년.

온라인으로 오프라인으로....

 

비전통신(VT News)은 온라인에서

2만7천명이 애독하는 인터넷 주간매거진이 되었고

컴퓨터 교실은 오프라인에서 작년 가을에

이미 1만 명이 넘는 학생을 배출했으니

정말 큰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진 폴더를 뒤적이다가 지나간 사진을

들추어보니 그리운 얼굴들이

반가운 미소를 짓게 했습니다.

클래스마다 사진을 찍어둘걸 하는 아쉬움과 함께.

 

여기 보이는 얼굴들 어디서 어떻게 들 지내시는지

궁금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립기도 하고. (언)

 

 

 

 

 

 

 

 

 

 

 

 

 

선교 지에서 날아 온 편지

 

선교 지에 나와서 선교현장을 보며 그야말로 백문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다. 물론 15년 동안 매년 해외 선교지를 탐방하며 의례적인 차원의 방문이 아니라 선교사와 함께 사역하고 그 집에서 기거하며 지냈기에 나름 꽤 선교지 실정을 잘 알고 있음에도 그렇다.

가능성과 감사의 내용도 많지만 그에 못지 않게 문제점과 개선점이 너무 많이 보인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제발 부탁하고 빈다.

선교사 혹은 선교와 관계되신 분들이여....

 

1. 꼭 소명을 점검해 달라.

 - 선교사로서 하나님의 부르심이 확증되지 않은 사람을 결코 내보내지 마시길..

 

2. 소명이 확증된 사람이라면 철저히 선교 훈련을 시켜 보내주시길.

-  목사, 선교사는 말할 것도 없지만, 특히 이제 전문인(평신도) 선교사 시대인데 그들에게 이것은 정말 중요하다. 느낌과 마음, 은혜만으로 나오지 않도록 꼭 부탁한다.  

 

3. 보내놓고 팽개치거나 소극적 관리로 넘기지 말고

제발 사후(事後 ) 관리해 달라.
 - 사후는 죽은 다음의 死後가 아니다. 사후 관리는 파송한 다음의 돌봄, 격려, 관리, 감독, 조언, 충고, 점검 등의 지속적인 사역을 말한다.

선교사들의 현장에서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아는가? 국내와 비교도 안 되는 문제들이 산처럼 쌓여 있다. 누구도 신경을 안 쓴다. 자녀교육, 건강, 재정, 정서, 대인관계, 사역, 영성 등 총체적인 것에 관계된 문제이며 선교사의 정체성과 선교 자체의 존립에도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다. 

 

오늘 이야기는 킬리만자로 현지 교회가 위치한 산촌 마을의 현실에 대한 것이다. 나는 최근 엔지오를 통해 미개발국가의 가난에 대한 다양한 도움의 손길이 펼쳐지는 것을 무척 감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 부작용과 문제점 또한 만만하지 않다. 아니 점점 심각해지고 있으며, 이것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한국 엔지오 단체들에게 큰 타격을 주게 될 것이다. 하루 빨리 바른 도움이 베풀어지기를 바란다.

쉽게 말하면 동정을 짜내기 위한 과장된 보도, 조작, 왜곡, 짜여진 각본과 연출, 비참한 상황에만 초점을 맞추어 시청률과 후원을 증가시키려는 의도, 현지에 전달되는 돈과 그 과정의 투명성에 대한 감사나 관리가 전혀 없음 등이다.

 

그래서 이것을 의도적으로 악용하는 사역자들은 자꾸 한국 매스미디어와 연예인이나 엔지오를 잘 사용한다. 이것은 실제 사역의 무덤이 되며, 영성의 피폐함을 가져온다.

거꾸로 신실하고 하나님만 의뢰하는 사람들은 스폿 라이트를 받지 못하며, 어려운 재정에 시달린다. 물론 그들은 그럼에도 결국 믿음과 기도로 승리하며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받는다. 정당하고 꼭 필요한 알림이나 홍보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그 균형과 조화를 이루기는 그렇게 쉽지 않다. 

 

나는 최대한 이런 점을 주의하고 아울러 의도적으로 내가 주도하는 홍보나 후원 요청을 철저히 거부하기로 스스로 마음먹었다. 매스미디어 노출도 마찬가지이다. 솔직히 현장에서 보면 돈 들어오는 길과 방법이 보인다.

그러나 이건 타락의 지름길밖에 아무 것도 아니다. 한 영혼에 대한 사랑과 구원의 복음에 대한 열정이 사라지고 안정된 사역 환경과 풍부한 재정, 거대한 프로젝트 중심의 선교 사역이 무엇을 가져오며 어떤 열매를 맺겠는가? 과연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나타나는 현장이 될 수 있을까? 그러나 그 유혹은 누구에게나 가능하며 끈질길 수 있다.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오늘 나는 조심스럽게 내가 목격한 현장을 그대로 알리기로 한다. 읽는 이들이 하나님 나라와 소외된 자들 특히 가난의 문제에 대해 복음주의적인 시각으로 고민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어느 에이즈 환자의 집..

2mⅹ4m=8제곱미터(2.42평) 두께 5센티도 채 안 되는

흙과 얼기설기 나뭇가지들로 이뤄진 벽과 차가운 땅 바닥 

그리고 겨우 하늘을 가린 얄팍한 양철지붕.

 

 

2.42평에 엄마와 아이들 5명.

1인 0.4평의 공간 그나마 절반은 부엌. 결국 1인 0.2평의 삶의 자리.

 

 

남편은 에이즈로 2006년 사망.

상하수도, 화장실, 전기 3무(無)

무엇으로 생계를 유지할까, 하루에 몇 끼 먹을까? 
인간다움과 존엄성은커녕 생명을 부지하기 힘든

이들에게 삶이란 무엇일까?

 

누군가 이들에게 작은 희망의 빛이 되고,
늘 푸른 하늘의 길을 열어주며,
삶도 때론 살 만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고 말해야 한다면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날 목이 매이고 가슴이 미어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느꼈다. 또한 가난에 대해 알지 못한 약간의 분노도 느꼈다. 불평등과 불공정, 소외와 왜곡, 편중이 보편적인 이 땅의 현실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아메리카노 커피로 편 가름과 이념을 따지는 웃기는 짓은 제쳐놓더라도, 우리가 우아한 향기 나는 커피전문점에서 누리는 자유를 만끽하면서도 한 번쯤은 내 주변의 가난한 자들과 소외된 자들을 마음에 품으며, 때론 그 자유 함을 조금씩 내려놓거나 아니면 보다 큰 자유와 의미를 위해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눌 수 없을까? 

 

당신의 지갑과 재정, 소비생활 가운데에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며, 그분의 나라가 임하며, 하나님의 통치가 나타나고 있는지 고민하지 않겠는가? (킬리만자로의 산 자락에서

 

 

 

 
 

 

 

 

 

 

 

 

구글이 모토롤라의 스마트폰 사업 부문을 중국의 레노보에 29억 달러에 매각한다.

 

이 같은 매각 가격은 지난 2012년 124억 달러에 모토롤라의 스마트폰 사업 부문을 매입한 구글의 결정이 구글 사상 최악의 실패였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124억 달러는 구글이 인수·합병에 들인 사상 최대 규모 금액이었다.

 

구글은 그러나 이 매각으로 재정적 골치거리를 없앨 수 있게 됐다. 모토롤라 스마트폰 사업 부문은 구글이 인수한 후 20억 달러 가까운 적자를 기록했으며 직원 수도 2만 명에서 3800명으로 줄었다.

 

이에 앞서 구글은 지난해 모토롤라의 셋톱 영업 부문을 23억5000만 달러에 아리스 그룹에 매각해 투자금의 일부를 회수했었다. 구글은 또 모토롤라 인수로 확보한 특허 대부분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

 

이날 구글의 스마트폰 매각 소식은 월 스트리트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월가는 스마트폰 사업 부문이 구글의 이익을 잠식하는 쓸데 없는 것으로 보고 있었다. 매각 소식이 전해지자 구글 주가는 장외거래에서 28.08달러(2.5%) 올라 1135달러로 상승했다.

 

레노보는 이번 모토롤라 스마트폰 사업 부문 인수로 사업 확장을 위한 좋은 기회를 맞았다. 세계 최대 PC 생산업체인 레노보는 데스크탑이나 랩탑 컴퓨터 대신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남에 따라 스마트폰 부문 진출 확대를 모색해 왔다.

 

레노보는 이미 중국 내에서는 스마트폰 부문에서 강자로 떠올랐지만 미국과 남미 등 해외에서 사세를 확장하려 노력해 왔다.

레노보는 또 블랙베리의 잠재적인 구매자 명단에도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레노보는 지난주에도 IBM의 서버 영업 부문을 23억 달러에 인수해 이 달 들어 두 번째로 대형 인수를 성사시켰다.

레노보는 특히 모토롤라 인수로 애플에 가담할 수 있게 돼 주목을 받고 있다. 

 

 

 

 

 

 
 

 

 

 

 

 

 

 

신앙과 문화를 주로 다루는 미국 릴리번트 매거진(Relevant Magazine)은, ‘교회가 말할 필요가 있는, 5가지 불편한 주제들(5 Uncomfortable Issues The Church Needs to Start Talking About)’을 게재했다.

 

프리랜서 작자이자 블로거인 잭 퍼킨스(Zack Perkins)는 자신의 글에서 “교회는 성자들의 박물관이 아니라 죄인들을 위한 병원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앰뷸런스를 부르기보다 성자처럼 보이고 싶어할 것”이라면서 “우리는 매주 교회에서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들 옆에 앉아 예배를 드리지만, 이들과 우리 내면의 깊은 문제들을 함께 나누려는 생각은 전혀 해 본 적이 없다.

이는 우리 자존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요소는 교회가 특정한 화제에 대해서는 말하기 꺼리고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를 가져오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창조론, 환경에 대한 책무, (사회적) 활동 등 교회가 다뤄야 하는 많은 이슈들이 있다. 그러나 교회의 각 개인 뿐 아니라 전체가 다뤄야 할 주제들이 있다.

 

갈라디아서 6장 2절에 보면, 바울은 교회가 서로의 짐을 지라고 권면하고 있다. 더 큰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는 서로의 마음 속에 있는 어둠에 빛을 비출 수 있고, 교회는 우리가 다루기 힘든 불편한 것들에 대한 안전한 피난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잭 퍼킨스는 “이러한 주제들은 대부분 먼저 전문가들이 다뤄야 할 필요가 있지만,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특히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도 치료의 큰 부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다음과 같은 5가지 주제를 제시했다.

 

[중독]

 

중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중독은 대부분의 교회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주제가 아니다. 특정 중독에 대한 대화는 분명히 교회보다 사회에서 더욱 이야기가 되고 있다.

예를 들어, 비신자의 흡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괜찮지만, 신자의 알코올 중독 대해서는 쉬쉬한다.

 

또한 많은 교회에서 중독은 화젯거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교회가 중독자들에게 가족으로서 먼저 접근한다면, 교회는 그들의 싸움에 있어서 취약한 부분에 대해 보다 안전함을 제공한다. 그들은 단순히 사랑을 받을 필요가 있으며, 스스로 이러한 부분을 충분히 인지해 나갈 필요가 있다. 그들은 공동체에서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으며, 교회 안에서는 그들이 중독증으로 인해 매순간 부딪히는 일은 없다.

 

[성생활]

 

성과 성생활은 교회에서 잘 다뤄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 교회의 한켠에서는 혼전 성관계에 대해 광범위한 정죄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곳에서는 대화가 단절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개인적·인격적 수준에서 성에 대한 주제를 잘 다루지 않는다. 이 주제의 변두리에 그나마 일반적으로 수용되는 개념이 있다. 사람이 일단 결혼을 하면, 이들은 근심이 없는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성적으로 만족된, 더 없이 행복한 삶에 대한 그 어떤 필요성도 절대 논의되지 않는다.

 

성적인 정체성으로 고통받는,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있다. 전 세계 교회 안에는 이로 인해 마음이 부서지고 환란을 겪는 자들이 많다. 이들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감히 이 같은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죄를 짓지 않길 원하지만, 성적인 죄와 죄적인 욕망으로 씨름하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

결혼 후 성생활에 대한 문제를 나누는 사람들은 매우 적다. 이들은 홀로 자신의 짐을 지고 간다. 만약 많은 교회들이 성적인 문제를 개인의 선택으로 치부하는 것을 그만둔다면, 우리는 사람들이 그들의 짐을 서로 나눌 수 있고 그들이 혼자가 아님을 발견할 수 있는, 보다 안전한 장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진지한 의심]

 

오늘날 많은 교회에는 의심과 싸우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있으며, 심지어 이 가운데 목사들도 있다. 이들은 모든 인정된 변증을 받아들여왔다. 하나님이 정말 선하신 분인지, 하나님이 정말 계신지 하는 믿음과 싸우면서도, 탁자 위에 커피를 놓고 미소짓는 동작을 한다. 입술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가 있지만, 공허함을 느낀다. 내가 이러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기 때문에 이를 잘 알고 있다.

 

교회 내에서 의심을 다루는 가장 필요한 방법 중 하나는, 믿음에 대한 모든 것이 분명한 것처럼 행동하지 않는 것이다. 교회는 우리 모두가 때때로 의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성적인 설명을 넘어선 희망에 붙들려 있다. 교회들은 또한 성경의 어려운 부분을 숨기려 하거나, 사람의 마음 속에 의심을 가져오는 윤리적인 질문들에 대해 경시하려는 노력을 그만두어야 한다.

 

[정신적 질병]

 

정신적인 질병과 싸우는 사람들, 혹은 개인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이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전형적으로 그들이 경험한 싸움에 대해 침묵한다. 우리의 사회에서는 여전히 질병에 대한 전형적인 모습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를 다루고 싶어하지 않거나, 혹은 그들이 상처받았기 때문에 알리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 문제는 만약 이러한 이슈들이 이야기되지 않을 때, 이들의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부 교회에서 사람들은 전문적인 도움 없이 기도의 장소에 가서 자신의 질병을 드러낸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 질병을 지닌 사람들은 실패감 혹은 그들이 믿음이 충분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람들이 올바른 도움을 얻고, 육체적인 치료와 더불어 영적인 치유를 받을 수 있도록, 교회는 계속적으로 용기를 북돋워주는 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다.

 

[외로움]

 

교회에는 외로워하는 무리들이 있다. 이 가운데는 담임목사나 사제들도 포함돼 있다. 고립감은 자아정체성의 부족에서 온다. 자아정체성은 열린 대화를 통해서 온다. 우리가 다른 이들과 더불어 약해지고 정직해질 때, 우리는 깊이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외로운 사람들은 교회에 혼자 왔다가 혼자 남을 수 있다. 비록 이들이 교제할 때 제공되는 공짜 커피와 음식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있다고 해도, 그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교제이다. 여러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알고자 하는 시간을 갖고,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면, 교회는 보다 더 훌륭하고 안정적인 공동체가 될 것이다.

 

물론 모든 교회는 각각 다르고, 한 지역에 있는 어느 교회는 매우 강한 반면, 다른 교회는 약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교회의 몸으로서 관심을 가져야 하는 문제다. 우리가 이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겸손함·이해·은혜를 갖고 전해야 한다.

우리의 역할이 박물관의 큐레이터가 아닌, 병원에 있는 같은 환자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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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서 앉아 있는 생활을 오래 하면 비만을 부르고 수명을 줄이는 반면 움직이는 시간이 많을수록 체중을 줄이고 수명은 늘린다는 연구결과들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에도 캔사스 대학의 연구팀이 19만여 명의 남녀 성인들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하루에 서 있는 시간을 늘리기만 해도 심혈관질환과 뇌졸중 유방암 발병률을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결과는 하루에 앉아 있는 시간이 4시간 미만이면 만성질환의 발병률이 12% 낮아지고 당뇨병 발병률이 25% 낮아진다고 밝히고 있다.

 

전문가들은 앉아서 생활하면 혈액으로부터 지방을 포획해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지단백 지질가수분해효소(lipoprotein lipase)'를 크게 낮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렇게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생활에서 실천하기 힘든 게 바로 직장인들이다. 그렇다면 사무실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간단한 운동 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다음은 28일 건강정보 사이트인 프리벤션이 제시한 몇 가지 '사무실 내 운동' 방법들이다.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책상을 사용할 것: 책상의 높이를 높여 선 채로 책상에서 일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의자대신 짐볼에 앉을 것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고 계단을 이용할 때도 걷는 대신 뛰다시피할 것

 

▶전화를 걸거나 받을 때 걸어 다니면서 통화할 것

 

이러한 모든 사소한 움직임들은 칼로리를 소모하게 해주며 건강에 좋은 영향을 주게 된다.

 

 

 

 

 

 

 

 

 

 

 

 

 

 

 

 

북한에 ‘김일성’ 이름이 앞에 붙여진 학교는...

‘김일성_고급당학교’,

‘김일성_군사종합대학’,

‘김일성_정치대학’,

‘김일성_종합대학’,

‘김일성_고등물리학교’ 이상 5개이다.

 

북한에서 김일성이라는 이름이 갖는 절대성을 감안해 볼 때 앞에 김일성이라고 붙여진 학교들은 모두 최고의 대학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북한에서 ‘김일성종합대학’이 최고의 대학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실은 알려진 것과 다르다. 김일성의 이름이 붙여진 5개 학교의 설립목적과 역할을 알아보면 각 학교의 존재감과 중요성을 알 수 있다.

 

북한 최고의 학교는 ‘김일성_고급당학교’이다.
당일꾼(간부양성기지)을 키우는 학교이며, ‘김일성고급당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노동당일꾼으로 선발된다. 보통 당일꾼으로 일하던 사람들 중에 더 중요하고 비중 있는 일을 감당하도록 승진시켜야 할 사람을 선발해 ‘김일성 고급당학교’를 보내서 공부시킨다.

 

예를 들면 일반 사범대학이나 김일성종합대학의 혁명역사학부나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한 사람을 당 일꾼으로 등용하는 경우, 반드시 김일성 고급당학교를 보내 재교육을 받게 한다. ‘김일성고급당학교’는 북한 노동당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할 간부들을 양성하는 최고의 학교이다.

 

그 다음은 ‘김일성_군사종합대학’이다.
육.해.공군, 호위국, 평양방어사령부 등 혁명적 무력강화에 필요한 군사일꾼을 양성하는 기지이다.

이 학교를 갈 수 있는 대상은 현직에서 근무하는 장교들 가운데 발탁된 사람만이 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일반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현직에서 근무하다가 발탁되어 가는 학교이다. 그리고 제3세계 나라들에서 군사무력강화에 필요한 군사인재들을 키우려고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 유학을 보내기도 하고, 북한에서 제3세계 나라에 군사고문관으로 파견할 인재들을 양성한다.

현재 북한의 장성들은 모두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다.

 

세 번째 순위가 ‘김일성_정치대학’이다.
군대 안에 노동당일꾼을 키우는 학교이다. 그러므로 본질적으로는 당학교로 봐야한다. 입학대상은 현직에서 정치장교로 근무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발탁된 사람들을 김일성정치대학에 입학한다. 군대정치장교로서는 최종학교이다.

 

군사종합대학과 정치대학은 군대의 필요한 간부를 육성하는 두 축을 이룬다. 그러므로 정치대학에서는 군사를 모르고 당적지도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군사교육에 가장 큰 비중을 둔다.
반대로 군사종합대학에서도 정치를 소홀히 여기지 않고 당적지도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관점으로 철저하게 정치교육으로 무장시킨다. 당 중심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당중심의 조직적인 교육을 실시한다.

 

네 번째는 김일성종합대학이다.
북한 안에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모든 분야에서 필요한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외교 등을 총망라한 간부들을 양성하는 대학이다. 김일성종합대학의 핵심과는 정치경제학부이다.

김정일이 바로 김일성종합대학의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했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사적(사적지는 김일성과 김정일이 발길이 닿은 곳을 가리킴)학부로 불린다.

 

인민무력부나 호위국, 평양방어사령부 등의 무력기관에서 김일성종학대학에 위탁교육을 시킬 때 무조건 정치경제학부에서 교육을 받는다.

 

다섯 번째는 김일성_고등물리학교이다
양강도 보천군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국에서 수재로 선발된 고등학생들을 교육시키는 곳이다. 김일성 고등물리학교는 1937년 6월 4일 보천보 전투(김일성이 압록강을 넘어서 보천보에 도사리고 있던 일본 경찰서와 파출소 등을 습격해 승리한 전투)를 기념해서 설립되었다.

 

북한노동당에 의해 움직이는 국가이다.

그러므로 북한의 정치원리를 이해하려면 노동당의 조직과 운영부터 속속들이 알아야 한다. 우리가 보고 듣는 모든 사건들이 노동당에서 결재되어 실행된다.

그런 측면에서 북한에서 가장 막강한 파워엘리트를 양성하는 김일성 이름이 붙여진 5개의 학교 역시 노동당의 군사를 중시하는 북한교육의 핵심적인 틀 안에서 운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북한은 최고교육을 관장하는 학교에서 군사중심교육을 실시하는 것일까?

 

북한은 한국과 미국이 북한을 먼저 선제공격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분명한 것은 나라를 방어하기 위한 목적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군사력강화에 주력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반드시 한국을 무력으로 적화시키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북한의 이러한 오만과 악행이 반드시 괴멸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우리의 기도

 

예레미야 18장 12절에 “우리는 우리의 도모대로 행하며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하리라”고 말하는 교만한 자들을 싫어하시는 주님...

 

북한의 김일성 이름이 붙여진 5개 학교의 교육목적과 역할을 살펴보게 하심을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노동당의 테두리 안에서 최고의 엘리트들을 교육하는 북한대학에서의 핵심내용이 군사중심적인 것이 남한을 적화시키려는 악한 의도에서 비롯되었음을 아시는 주님께서 북한당국의 악한 도모가 결코 헛된 일이 되도록 막아주시옵소서.

 

그리고 선군중심의 북한정책이 백성들의 자유를 보장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정책중심으로 바꾸어지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북한에 하나님의 복음이 편만케 되는 은택을 부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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