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24,
 2014

 




 


 


 



 


 







 


 






연주를 듣고 돌아오세요.


 

미국의 가수, 기타리스트, 작곡가, 하모니카 연주가...

처음에는 하모니카 연주자로써 초대되다가 1991년 가스펠 분야의 그래미상에 해당하는 "Dove Award"를 수상하며 씽어 쏭 라이터로 재능을 펼치게 된다. 이후 다방면에 재능을 보이며 엔터테이너(Entertainer)로써의 입지를 확보한다.

 

위 동영상은 미국의 복음성가 가수 Bill Gaither와 그의 아내 Gloria Gaither가 미국의 은퇴 성악가들을 중심으로 창설한 Gaither Gospel Team의 카네기 홀 공연 때 Buddy Greene의 하모니카 연주 모습이다. 옆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는 사람이 Bill Gaither이다.

 

Bill Gaither는 은퇴 음악가들을 'Homecoming Friends'라는 이름으로 불러 모았고 Bill Gaither부부와 그들은 탁월한 음악성을 바탕으로 맹렬한 연습을 통해 완벽한 화음을 만들어내며 전 세계를 무대로 맹활약을 하고 있다. 또 이 팀은 성악 외에도 각종 악기의 최고연주자들의 연주도 선보인다.

 

위 동영상의 연주 곡명은 순서대로 ....

"오 수잔나"

"예수 우리의 소망"

"모짜르트 피아노 소나타 C장조"

"롯시니의 윌리엄 텔 서곡" 이다.

 

손에 잡으면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하모니카 하나로 파격적인 연주를 하여 청중을 열광케 하는 솜씨가 놀라울 따름이다. 가히 천상의 솜씨라 아니할 수가 없다.(언)

 

 






 


 
 







 




 





 



 







 

나는 일찍 하모니카 연주에 매료된 적이 있다. 반 세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의 저명한 하모니카 연주자가 와서 YMCA에서 독주회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다.

 

상상해 보았다. 동네 어구에서 흔히 듣던 하모니카 소리와 그 연주의 한계를.....  하모니카 라는 악기 자체가 한 손 안에 들어 오는 작은 것인데 그것을 가지고 노래를 부르는데 그게 무슨 연주라고 거창한 이름을 내 걸 것 까지야...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벌서 연주회 장소에 당도했다.

 

그런데 연주회가 시작하는 순간부터 나는 놀래 자빠지고 말았다. 연주자가 걸어 나오는 모습을 보고 내 평생에 그렇게 눈을 크게 떠 본 일이 없다. 최고최상의 예복을 갖추어 입고 걸어 나오는 모습은 멋있고 근엄하기 까지 했다. 피아노 반주를 맡은 사람도 연미복을 입고 독주자와 같은 예절을 갖추었다. 처음부터 그들의 모습은 앞에 있는 청중들이 마치 왕자들인 양, 공주들인 양, 아니 황제들인 양 깍듯한 예절과 경건한 모습을 보였다.

참석한 청중을 둘러 보았다. 교복을 입은 몇몇 학생들을 빼 놓고는 양복에 넥타이를 맨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요즘 말로 모두가 후저 보였다.

 

연주는 시작되었다. 그냥 첫 곡부터 숨이 멎어버리고 말았다. 베토벤 모차르트 바흐에 이르는 어려운 바이올린 콘체르토를 연주하는 것이었다. 손으로도 어려울 텐데 어떻게 입으로 저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청중은 숨을 죽였고 연주자는 땀을 뻘뻘 흘렸다. 나는 손바닥이 깨져라 손뼉을 쳤다.

결코 그 연주자는 피아노 반주자를 포함하여 그 날의 연주를 대충하지 않았다.

 

오늘은 바디 그린의 하모니카 연주를 함께 듣게 되었다. 나는 이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놓고 거짓말이 아니고 수십 번을 들으면서 혼자서 여러 번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바디도 연주를 대충하지 않았다. 아마 연주를 위해 수십만 번을 연습했을 것이다.

 

더욱 인생은 연습이 없다는데 어찌 대충 살 수 있을까. 벌서 8월이 마지막 간다. 연말이 성큼 다가 오고 있다. 무엇을 하며 살았는가?

 

소설가 박충 씨가 출판기념회를 좀 근사하게 하기 위해 서울 한 복판 서점 앞에서 간단한 음악회를 하기로 했단다. 출판사 측에서 몇 명의 연주자를 보내 왔는데 사람들이 오가는 길거리에서 연습하려 하니 좀 쑥스럽기도 해서 한마디 내 뱉었다고 한다.

“뭐 그냥 대충 하죠.”

그랬더니 연주하러 온 분들이 정색을 하고 "대충하려고 우리가 여기 온 줄 아십니까"라며 얼굴을 붉히더라는 것이다.

 

컴퓨터 클래스에 부부가 함께 오는 학생이 있다. 과제를 내 드렸더니 남편이 하는 말이 대충하라고 부인에게 속삭인다. 소리에 민감한 내 귀가 그 소리를 놓질 수 없었다. "대충하라고요? 안 됩니다. 시키는 대로 하라"고 했다. 나는 학생들이 대충 공부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익숙해 질 때까지 반복하도록 교육시킨다. 무섭기도 어렵기도 하지만 선생님이 참 좋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이런 글이 있었다. 마라톤을 뛰고도 아직 힘이 남아 있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사람인가? 그는 마라토너로서 본분을 다하지 않은 사람이다. 힘이 남아 있다면 기록을 단축했어야지.

 

생애에서 가장 큰 악덕(惡德)이 있다면 최선을 다하지 은 것이다.

 

아궁이의 타다만 장작 그것은 악덕다. 다시 불 붙이기도 힘들다. 추운 겨울 마저 타올라 추위를 녹게 했어야지. 인생이란 잘하고 못하고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후회(後悔)할 것조차 남기지 말고 다 불태워야 한다. 그러기에 장수(長壽)만을 꿈꾸는 사회 그것은 악덕일 수 있다.

 

최선을 꿈꾸는 세상에는 대충이란 말이 없다.(장재언) 



 

 


 



 



 


 



 
 
 

 
 

 




 








 

그때 나는 빨래를 널고 있었다

제목도 없는 시간 속으로

태양은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지고

 

나는 마치 처음부터

빨래 건조대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나는 마치 처음부터

엄마엄마 보행기로 거실을 누비는

저 아이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나는 마치 처음부터

베란다 너머 저 허공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익숙해익숙해미치겠어

오늘 하루도 눈감아 주는데

 

거울아 거울아!

이 여자는 도대체 누구니?

 

하고 묻는 것이 코미디처럼 느껴지는

마치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은 시간 속에서

이제껏 살고도 날 모른단 말이야?

비아냥댈 것 같은 시간 속에서

도대체 빨래나 널고 있지 않으면

저마다의 베란다에서 저렇게도 마음 편히 말라가는

아파트의 빨래들이나 멍하니 감상하지 않으면

 

거울아 거울아!

도대체 무엇을 하겠니?

 

나는 마치 처음부터 나로

수천 년 수만 년을 살아온 듯

너무도 익숙하게

내 팔 속으로 내 팔을 뻗고

내 다리 속으로 내 다리를 뻗고

내 얼굴 속으로 내 얼굴을 드밀며

 

안녕 안녕 선생님?

안녕 안녕 친구들?

 

오늘도 이렇게 인사하는데  






 


 

햇살 가득한 아파트 베란다에서 한가롭게 빨래를 너는 시간, 저 안에서는 한 돌이 안 된 아기가 “엄마, 엄마,” 옹알대면서 보행기를 타고 거실을 누빈다.


 

결혼을 꿈꾸는 젊은 여인들이 바라마지 않을 정경인데, 정작 당사자인 화자의 마음은 겉돌고 있다. 제 아기를 ‘저 아이’란다.

 

영화 ‘디 아워스(The hours)’에서 줄리언 무어가 제 아이를 한없이 낯선 눈길로 바라보던 장면이 떠오른다.

물론 화자는 아기를 사랑할 테다. 어쩐지 육아도 살림도 ‘마치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능숙할 것 같다.

경제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남편이 속을 썩이는 것 같지도 않고, 아기도 본인도 건강한 것 같다.

그런데도 화자는 ‘익숙해익숙해미치겠어!’ 비명을 지른다. 이 미칠 것 같은 권태와 채워지지 않는 공허….

 

안락한 가정을 이루는 것만으로 한 생을 보내는 것을 도저히 수락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제 삶의 시간이 장삼이사의 고만고만한 ‘제목도 없는 시간’인 것이 가당치 않게 느껴지는데 어찌 호락호락 행복할까. 자기애 강한 엄마시여, 아이는 자라게 마련이지요. 곧 당신만의 ‘무엇을 할’ 시간이 주어질 거예요.

 

황인숙 시인


 

 



 

 

 

 

 





 

 

 




 




 








 










 

그의 모든 것은 늙어 있었다, 두 눈을 제외하고는....

그 눈은 바다와 같은 색으로, 명랑하고 굴함이 없는 것이었다.

Everything about him was old except his eyes and they were the same color as the sea and were cheerful and undefeated.'

 

노인과 바다 (The Old Man and the Sea), 1952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9-1961

 

눈의 '표정', 그리고 '눈동자에 담긴 힘'만으로도, '나이를 가늠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상대의 화장술이나 의상 등'에 시선을 빼앗기곤 하나, 정말은 눈만 바라다 보면, 상대의 대부분은 파악할 수 있다.

 

행여, 그 널리 흔한 '쌍커풀 수술'조차도 실제는, 그리 큰 역할을 하지 못함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강건하게 보호된 '인간 뇌'이지만, '생명활동에 절대적인 필요'로 하여, '유일하게' 신체밖으로 노출된 뇌가 눈이 아닐까.  

'눈'은 뇌의 힘, 생명력 - 그 사람을 그대로 드러내는 법이다.

 



 


 

조선일보 블로그에서 얻은 이 한 장의 사진이 글을 쓰게 한다.
 





 

벌써 92세라는 이 분의 '눈과 눈가'만을 주목하면

그 '내재한 힘'을 헤아릴 수 있을 것 다. 어떻게 그녀가 이렇게 오래 정정하실수 있는지. 주름은 결코 사람의 아름다움을 '해하지 않는다'.

 

<늙음이 행여 추하게 보인다면> 그것은, 거칠어진 살갗이 아니라, '눈의 표정' 때문이다. 

 

아, 다행한 일.

'마음 하나' 바로 다잡는 것으로, 우리가 '아름다와질 수 있다'니...    

(조선 블러그 <푸른 잎사귀>에서)  

 

'눈'은,

지난 삶을 읽게 한다, 그리고 현황까지도.

때때로, 거울을 통해 <자신의 눈>만을 주시하여

<자신의 삶>을 들여다 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

 

헤밍웨이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생명'을 지킬 수 있었던...

자기소설 주인공의 눈을 'Confident and loving eyes'라고 적었다. 

 

- 자신만만하고, 이제는, 사랑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나누는' 노인의 눈 ---. (언) 


 







 



 









 

 










 

 

 
 

 


 








 



 

식이섬유가 풍부한 렌틸콩.

삶아먹거나 샐러드로 조리해 먹으면 좋다.

 미국의 권위있는 건강지 '헬스(Health)'에서 세계5대 식품으로 꼽은 렌틸콩. 반으로 쪼갠 모양이 마치 렌즈와 같다해서 렌즈콩으로도 불린다. 식이섬유가 풍부해 콜레스테롤을 낮춰주고 성장에 도움이 되는 아연이 일반 콩보다 두 배나 많다.

 

국 농림부에선 렌틸콩이 심장병과 암, 노화방지에 도움을 주는 항산화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렌틸콩의 식이섬유는 바나나의 12배, 고구마의 10배나 많아 다이어트식으로도 더 주목받고 있다.

 

렌틸콩으로 만든 음식은 주로 인도에서 발달했다. '이들리'라는 인도 빵은 발효시킨 쌀과 껍질 벗긴 검은 렌틸콩 반죽을 쪄서 만든, 인도 남부에서 즐겨먹는 음식이다. 채소 스튜와 코코넛 처트니를 곁들여 먹는다. '도사'라는 전병도 있다.

 역시 발효시킨 쌀과 검은 렌틸콩 반죽을 얇게 부쳐 크레페 혹은 팬케이크처럼 만든 음식이다. 렌틸콩 반죽을 얇게 튀긴 음식도 있다.

 렌틸콩을 손쉽게 먹는 방법은 삶아먹거나 샐러드로 조리해 먹는 방법이 있다.

 

렌틸콩을 맛있게 삶으려면 미리 물에 잘 불려 놓고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어 건져 놓는다. 냄비에 콩 한 컵당 물 세 컵의 비율이 가장 적당하다.
 끓기 시작하면 불을 줄이고 뚜껑을 덮는다. 보통 그린 콩은 30분, 레드콩은 20분 정도가 적당하다. 단단한 식감을 원할 때는 5~10분 일찍 불을 끄고, 죽처럼 먹기 원한다면 10~15분 더 삶아준다.

 샐러드를 만들려면 렌틸콩을 깨끗이 씻고 냄비에 넣고 삶는데, 이 때 물의 분량은 렌틸콩의 2배 정도로 한다.

물기가 없을 정도로 삶은 뒤 불을 끄고 식힌다. 토마토나 양상추, 사과 등 좋아하는 채소와 과일을 올려 샐러드를 만든다.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金香爐)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8:3)

 

 금향로는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을 상징하며, 향로에서 피어 오르는 향기() 예수님의 중보기도를 상징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기도가 주님의 보좌 금단에 도달할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하나 기도가 금향로에 담겨야 합니다. 금향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기도의 마지막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고 끝맺는 것이 바로 기도를 금향로에 담겠다는 의미입니다.


 

한가지 조건은 금향로에 담긴 기도가 하늘로 올라가 보좌 금단에 담기도록 성령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성경은 그것을 피어 오르는 ()이라고 묘사합니다. 성령님께서 도와주시지 않는 기도는 아무리 많이 해도 헛수고에 불과합니다.

기도에 불이 붙지 않으면 냉랭하고 차가운 이기적인 지껄임이 , 그런 기도는 백날 해도 응답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도와주시는 기도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뜨거움이 있고 타오르는 향기가 있습니다.

 

기독교의 기초는 기도입니다. 성령님께서 직접 기도를 도와주십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과, 가족과, 자기교회와 부자 되기만을 원하는 이기적인 기도 성령님이 도와주시지 않습니다. 만약 그런 기도가 응답되었다면 그건 마귀가 가짜 불이고 가짜 응답입니다



 

 

 

 

 



 

 

 

 

 



 


 

 









 

에릭 와이너의 “행복의 지도”라는 책에 보면 모든 인생은 궁극적으로 행복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헤매는 나그네다. 어디에 행복이 있을까, 어떻게 행복을 만들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매일 같이 헤매고 있다. 행복을 갈망하는 인생들을 보면서,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

 

보통 사람들은 많은 것을 가지면 행복할 것이라는 마술에 걸려 있다. 그래서 더 갖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한다. 때로는 거짓을 말하고, 남의 것을 빼앗고, 속이고, 그래서 결국은 더 많이 갖는다. 그러나 행복하지 못한 것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돈이 많아지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현대인들이 세상에 널려 있다. 그래서 돈을 추구하고 돈을 좇아가고 돈을 붙잡으려고 인생의 처음부터 모든 시간과 열정을 다 투자한다. 돈이 없으면 불행하다고 느끼는 건 몰다비아인들이 가장 심하다고 한다. 그들은 가장 행복지수가 낮은 민족인데, 그 이유는 돈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돈이 많은 미국이라는 나라는 행복하여야 하지 않을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의 행복지수는 세계에서 23위에 그친다. 그처럼 돈이 많고 부요 하고 좋은 환경 속에서 살지만 그들은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루 건너 총기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그들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니, 결국은 돈이 인생에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카타르라고 하는 작은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나라 중 하나일 것이다. 쉬운 예로 모든 국민들에게 매월 칠백만 원씩 용돈을 준다고 하니, 그리고 세금이 전혀 없는 나라, 그들의 부가 얼마나 큰지를 상상하게 된다. 그들은 행복할까? 세탁기를 모르고 살아가는 그들의 행복은 무엇일까? 모든 것을 가진 그들이 왜 그렇게 난폭한 운전을 하면서 비켜주지 않으면 그대로 뒤통수를 박아버리는 것일까?

 

행복지수가 가장 높다는 스위스는 어떨까?

그곳은 실업자가 없는 부자 나라, 공기가 맑고 거리가 깨끗하고 초콜릿을 사랑하는 나라, 불행이 거의 없는 나라라고 한다. 그러면 그들은 행복한가? 그들은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행복의 기준이 전혀 다른 것을 보게 된다.

 

그들은 농담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한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이 되면 잔디도 깎지 못하고, 저녁 10시 이후에는 화장실의 물도 내릴 수가 없다고 한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하여서……. 자기가 가진 것에 대하여 절대로 나타내거나 자랑하거나 보이는 법이 없다고 한다. 다른 사람에게 시기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려는 태도라고 한다. 모든 것을 절제하고 산다. 한 가지 자유로운 것은 자살이라고 한다. 그래서 세계에서 자살하려고 모여들기 때문에 자살률이 가장 높이 나온다고 하는데, 이것이 그들의 행복이라고 한다.

 

국민행복지수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소개한 부탄이라는 나라의 행복 개념은, 관계가 행복의 도구요 신뢰가 행복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아주 좋은 개념이다. 그래서 관계와 신뢰를 구축하기 위하여 집단적으로 무척이나 노력한다고 한다. 의미 있는 이야기라고 본다.

 

성경에는 예수님과 함께 하는 인생이 가장 행복하고 만족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바울은 자족감(自足感)을 가질 때에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불행한 현대인들에게 힌트를 준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우리는 행복에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평안에 이르는 길이 무엇인지를 안내 받는다.

 

그런데 사실 신앙 안에 있어도 우리는 행복하지가 않고 만족을 가지지 못하는 때가 더욱 많다. 우리의 마음 속에 욕심 불만이 너무 많이 들어 앉아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성경은 소유가 아닌 존재를 가르친다. 버리라고 한다. 나누라고 한다. 베풀라고 한다. 그러나 세상은 이와 정반대이다. 소유하고 빼앗고 모으려 한다.

 

오늘날 많은 신앙인들이 혹은 성직자들이 주 안에서의 기쁨과 행복을 잃어버리고, 근심과 절망 가운데 살아가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돈의 노예가 되어 교회를 만신창이로 만들고 세상의 비난거리로 만든다. 이성에 홀려 비난이라는 화살을 맞게 된다. 명예라는 포로에 붙잡혀 거짓과 술수로 거룩한 성직을 세상에 매도해 버린다.

 

주 안에서 진정한 행복을 알지 못함이 아닌가? 성경이 말하는 행복과 기쁨을 알지 못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세상의 노예가 되고 물질로 만족을 누리려 할 것이다.

 

에릭 와이너가 말하는 행복을 생각해 본다.

행복을 찾아 이리저리 다니면서 고민과 갈등하는 모습을 생각해 본다.

나는 어디에서 행복을 찾고 기쁨을 찾고 있는가?

 

에릭 와이너의 결론이 마음 속에 와 닿는다. 우리의 행복은 전적으로, 철저히 관계 속에 존재한다.

우리는 다  다른 사람들과 관계 속에 있다. 가족, 친구, 이웃, 심지어 홈리스까지도 ..... 행복은 명사도 동사도 아니다. 접속사다.

그리고 더 중요한 행복한 삶의 요소는 하나님접속이다. 영원한 행복이 있다.(언)  



 

 

 



 

 





 

 









 

고도로 발달한 현대과학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지진(地震)이다.

‘설명’하지 못한다기보다 ‘예측’하지 못한다는 편이 정확하겠다. 단순히 보면 지진은, 지구 표면을 떠도는 대륙판(大陸板)들이 서로 비벼댈 때 지각이 재배열되며 일어나는 흔들림이다.

 

하지만 1995년 일본 고베에서 일어난 대지진(6434명 사망/ 30만 명 이재민)은 물론 세계사에 남은 대지진들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때 일어났다.

지구물리학자들은 지진의 리듬과 미리 결정된 패턴을 찾으려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지만, 현재까지는 완전히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예측이 힘든 것인가. 이론물리학자이자 과학 전문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이 부분에 주목했다. 큰 흐름에서 본다면 자연계의 변화나 인류의 역사는 분명 일정한 ‘패턴’을 갖고 있다. 패턴이 있다면 예상도 가능할 듯 하지만, 쉽지 않다.

 

정확히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여부는 상당부분 우발적인 부분에 기인한다. 책의 제목이 『우발과 패턴』인 이유다.

 

저자가 설명의 도구로 삼은 것은 세계를 비평형 상태로 인식하는 비평형 물리학, 즉 복잡계 물리학이다. 수세기 동안 물리학자들은 시간을 초월해 변하지 않는 우주의 근본 법칙을 찾으려 했다. 양자론이나 상대성 이론 등이 이런 노력에서 나왔다. 복잡계 물리학은 세계를 평형 상태가 아닌,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불안정 상태로 본다. 이런 비평형 상태에서 사물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패턴을 연구함으로써, 소용돌이치는 대기의 흐름에서 인간의 뇌까지 방대한 영역의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지진이나 거대한 산불 등 예기치 못한 재해가 일어나는 것은 임계(臨界)상태 때문이다.

임계상태란 아주 사소한 자극에도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과도하게 민감해진 상태를 말한다. 모래알을 하나씩 떨어뜨리다 보면 모래 산이 만들어지고, 경사가 가팔라지면서 어느 시점 산사태가 일어난다. 이처럼 임계상태에 있는 세계는 조그만 움직임에도 엄청난 격변을 일으키며 세상을 요동치게 한다.

 

하지만 이 격변이 어느 정도의 크기로, 언제 일어날지를 정확히 알긴 힘들다. 지진을 예로 들면, 대륙판은 수백 종류의 바위로 이루어져 있고, 이 바위들의 성질은 각기 다르다. 어떤 단층은 고지대의 산악에, 또 어떤 것은 평원이나 구릉지에 있다. 같은 임계상태라 하더라도 수천 가지의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은 ‘임계상태-사소한 자극-격변’이라는 패턴을 자연현상뿐 아니라 전쟁이나 증시 붕괴, 도시의 발생 등 다양한 인간 역사의 현장으로 확대해 설명을 시도한다는 점이다.

 

증시 대폭락 같은 경우도 자본시장의 불안정이 극대화된 상황에서 어떤 사건에 군중심리가 발동하면서 일어난다. 이런 역사의 패턴에 비한다면, 그 안에서 작동하는 인간 개개인의 선택이나 자질 등은 ‘우발적인 자극’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책에는 멱함수 법칙, 프랙탈 이론 등 일반독자에겐 익숙지 않은 용어들도 등장한다. 하지만 다양한 사회현상을 예로 들며 설명하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읽힌다.

결국 자연과 역사의 작동방식에 대해 저자가 내린 결론은 어쩌면 조금 허무하기도 하다.
 

 “어떤 특정한 사건이 궁극적으로 어떤 일을 일으킬지는 ‘불안정성의 고리’가 세계를 어떻게 누비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  따라서 미래를 내다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현재의 경향이 계속된다고 볼 수도 없다.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것은, 미래는 끊임없이 우리의 기대를 저버린다는 것이다. 이것이 역사가 흥미로운 이유가 될 수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기술이 하늘 높이 치솟아도 미래는 예측 불가능 하다는 결론이다. 결국 이 세상의 미래는 하나님 만이 아신다.(언)



 

 



 

 

 


 







 

Time 지(紙)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가?

 

아버지 로버트는 미국 포드 자동차회사의 이사로 가족은, 로빈이 태어났던 시카코를 떠나, 디트로이트로 이사를 하게 된다. 더구나, 결혼전 모델이었던 어머니 로리는, 집을 일만 아는 '전형적인 일벌 가정’으로 만들어 버렸다.

 

.. His father Robert, a Ford Motor executive, moved the family from Chicago, where Robin was born, to Detroit.           

..his mother Laurie, a former mode, completed the image of a picture book Wasp family.

(리차드 커릴스(Richard Corliss, 1944- ) Time지 편집자 (2014년 8월 25일자 에서) 

 

2014년 8월 11일 (월).

 

우연히도 <미국의 한 장년>과 <한국의 한 젊은이>의 '슬픈 사연'이 세상에 드러난 날이었다..

- '로빈 윌리암즈(Robin Williams, 1951-2014)'의 사망...

- 남경필 경기도 지사의 '장남, 남모 상병'의 군폭행과 추행...

 

다만, 한국에서는 후자의 경우,  자식 때문에 이미지가 <망가진 정치인 아버지들>쪽에 보다 큰 '관심'을 보이는 언론과 사람들이 많으나...... 

 그러나 '인맥잇기' 정치로, 가정을 돌보지 못한 아버지들로 하여 <망가진 '젊은 자식들'>쪽에 더 마음이 가야 옳지 않을지.  '이미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받아본 사람이라야 줄 줄도 아는 법.

 

남 지사의 아들이 <정도(正道)의 사람 삶>을 살지 못하고 '폭행과 추행'을 하는 젊은이로 성장했다면, 이는  <그가 어렸을 때,  '바른 성장과 힘'을 키우도록 적절히 보호되고 사랑받아야 했었음에도-, 제대로 보호도, 사랑도, 받지 못했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한국 전반의 모양새처럼.

 

실력보다도<거짓 허위로 '뻥'치는 자들과 인맥이 없으면, 성공하지 못하는...>,

<그래서, 그 '인맥'을 위해, 밤늦도록 '그런 추한 이들'의 비위나 맞추며 '가정을 비우는 쪽'>을 택한 그런 '못난 어른들'은, 행여 그 끝에 명예를 얻게 된다 할지라도 그 탓으로, <부모가 자리하지 않은 가정에서,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자식들'>은... 본디, 자신들의 잘못도 아니건만 <'인간의 심상'이 망가질 수 밖에 없다>, 불쌍히도...  

 

미국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았던 로빈 윌리암즈는 신간 Time지의 '표지'에 오른 것은 물론,  총 45쪽의 기사에 불과한 잡지의 1/3이 넘는 '장장 17쪽'에 걸쳐 추모기사가 특집되어 있다.

 

추모글을 적은 리차드는 놀란다. 

'사람들은 이 친구를 사랑했었다'.

그는 이 사실을 몰랐단 말인가 - 아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런 사실이 그에게는 '삶을 지속시킬 만족'이 될 수 없다는 말인가 - 분명, 될 수 있건만...

 

 They loved the guy.

 Didn’t he know that? And couldn’t that realization give him a life-preserving satisfaction?

 

누구보다도 많이 '즐거운 웃음'을 사람들에게 선사했었던 커미디언이었기에,  또, 누구보다도 자주 '병상의 고통받는 사람들'을 찾아 위로하고 힘을 나누었던 자선가이기도 했었기에, 그의 죽음의 선택은, 세상을 더욱 놀라게 했다..

많은 사람들은, <커미디언으로 성공한 '어른' - 로빈 윌리암즈의 '삶의 표면'만>을 알고 기억하려고 하나, 현대에 들어 과학기술이 발견한 <'뇌'에 의해 주관되는 '생명력, 인간력'>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의 <생명활동의 구조, 그 '틀'>이 형성되는 '어린 시절'을 더욱 주목하게 된다...

 

그에게 <'불가사의한 죽음의 선택'을 취하게 한 것>은 그의 '어린 시절의 성장 환경'이었다. 

 

‘친밀한 표정’을 담은 ‘강직한 얼굴윤곽’, 거기에다 판토마임에 적절한 '민첩한 움직임',  특히, 목에서가 아닌 가슴에서부터 퍼지는 '힘있는 성량'은, 말론 브란도나 후천적으로 기술로 익힌 사람들과는 다른, 영국과 미국의 고전적인 목소리를 메아리쳤다.

 

A friendly face and a sturdy frame, with a mime’s agility and a powerful voice –from the chest, not the throat – that echoed not Brando and Method men but the English and American classicists. 

 

<미국인들이 로빈 윌리암즈에 호감을 느끼는, 그 '인기'의 근원>을 Time지는 위와 같이 적었다. 

 

- 문화적 배경을 달리하는 우리가 단순히 갖는, 그가 연기했던 '영화속의 등장인물들'을 통해 얻는 '커미디언 로빈'에의 이미지를 초월하는 시선과 분석이다.

 




 

위에 인용하는 <사진의 인물>이 드러내는 분위기를 미국인들은 로빈에게서 보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언뜻, '단정한 코와 강직한 윤곽 등'이, '로빈의 얼굴'도 읽게 하는 이 신사는 로빈외증조 할아버지, 맥러린 상원의원(Anselm Joseph McLaurin, 1848-1909)이다.

 

- 미국의 '권위있는 중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난 로빈과  

- 한국의 '도지사'의 장남의 <'공통점'>으로

<아버지의 '이미지를 망친 아들'>이 아니라,  집을 너무 비운 <아버지에 의해 '생명력, 인간력'이 '망가진 아들'>의 성장과정을 주목하는 이유이다.

양친 두 사람 모두의 잦은 부재로 하여, 로빈은 ‘외톨배기 소년’이었다.

 

 엄청나게 많이 모아진 장난감과 놀며 시간을 보냈다.

 그의 성장을 돌본 것은 주로 '집안의 가정부들'이었고, 또 이들은 그의 '첫 관객'이기도 했다.

 

With both parents often absent, Robin was a lonely child, playing with his enormous collection of toys; the family maids were his main minders and first audience.

 

로빈의 아버지는 보다 많은 시간을 집밖에서 보냈었다.

그래서 그 아버지가 집에 있는 동안, 어린 로빈은 아버지가 ‘무섭고 두려운 존재’로 느꼈었다.

 

한편 그의 어머니도 역시 일을 가지고 있어, 그들은 고용하고 있던 가정부들에게 로빈을 돌보도록 맡겨놓았다. 그래서 로빈은 많은 시간을, 그 (방만 40개가 있던) 커다란 집안에서 2,000개의 장난감 병사와 놀아야 했다. 

 

Williams's father was away much of the time and, when he was home, Williams found him "frightening".

His mother worked too, leaving Williams to be attended to by the maids they employed.

 Williams spent much of his time alone in the family's large home, playing with his 2,000 toy soldiers.

 

이때부터 이미, 어린 로빈은 어머니가 집을 나서지 못하도록, '재롱'을 떨어 그녀를 웃기며, 자기 옆에 있게 하려고 애썼다고 한다...

(Time지의 리차드가, 가정부들이 로빈의 '첫 관객'이었다고 적은 것을 보면, 어머니는 그의 노력에 그다지 답하지 않았던 듯..)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거의 없다...

다만, <'자신 삶의 우선 순서'를 어떻게 두는가>에 따라, 또는, <'자식들의 어린 시절'의 무게를 너무 경시하는> 불찰로 하여, 어린 아이들은,  '바르고 풍요로운 생명력, 바르고 풍요로운 인간력'을 얻지 못하고 <어른이 되어 '어느 때인가' 반드시 그 '나약함, 굴절'을 드러내게 되는 것>. - 폭행을 '남에게' 가하든, '자신에게' 가하든....

 

'사람의 역량, 인간력'이라고 하는 것은, 서로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본디의 역량, 본디의 성향'이 <힘있고 바르게 드러나는> 삶의 크기는 <'어린 시절'에 돌보아지고 받는 사랑>에 의해 대부분 결정된다. 

- '로빈'과 '남모 상병'의 경우에는, <부모 사랑의 '결핍'>이 공통점으로 주목되었다... 불쌍했던 '어린 로빈'..., 그리고 불쌍했던 '어린 남모 상병'...

 

로빈의 아버지 로버트는, 1987년에 죽는다.

그 10여년 후인 1998년, 아카데미상의 수상연설을 하게 된 로빈은,

그 아버지에게의 감사의 말을 가장 마지막에 남겨두고 있었다.

 

Robert died in 1987 (In Robin’s 1998 Oscar acceptance speech, he reserved the final thank-you for “my father up there, the man who when I said wanted to be an actor, he said 'Wonderful, just have a backup profession, like welding'"

'아프고 가시를 품은' 감사...

 

<내리 사랑>, <치 사랑>이 있다.

그러나, '본능으로 <사랑하고픈 그 상대>가, 결코 <사랑하기에는 너무나 '미력하고 추할' 경우>,  부모 자식 간이라 하더라도, 뒤틀려 서로를 '상처를 주게 할 수'도 있다...  



 



 

 

 
 

 

 

 

 

 

 

 

 









 

IT는 보통 Information Technology의 약자로들 알고 있습니다. 이런 이해는 일반인들이나 기자들에게는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실제 IT업계에 종사하는 사람 중 적어도 10년 이상 된 사람이라면 이렇게 이해합니다. - "Interface Technology".

 

Information 즉 정보란 지식(Knowledge)이 될 수도, 지능(Intelligence)이 될 수도, 컨텐츠(Art)가 될 수 도 있습니다.


 

모두 인문학 영역에 속하는 무형의 가치(Intangible Value)들입니다. 이런 내용(Context)들을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전달, 유통, 향유 할 것인가 란 문제는 전적으로 기술자들이 할 영역입니다. 숫자와 공식과 알고리즘이 얽히고 설킨 복잡 다난한 과정을 거쳐 가장 싸고 효율적인 구체적인 방법을 찾는 과정, 이것이 즉 IT의 본질입니다. 이 과정을 업계에서는 인터페이스(Interface)라고 합니다.

 

단순히 전기가 흐르는 컨덴서 구멍을 2개로 할 것인지(한국, 일본) 3개로 할 것인지(영국, 호주)에서부터, TV 전파 전송 방식을 NTSC로 할 것인지(미국, 일본, 한국) PAL 방식으로 할 것인지 (영국, 호주) 까지 정보를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모든 기술적 선택의 맨 밑바닥에는 인터페이스에 대한 선택이 뒤따릅니다.

 

TV 리모콘에 있는 버튼을 모두 다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여성 인구가 많지 않듯이 컴퓨터 화면을 통해 또는 숨어 있는 기능들 대부분을 사용할 줄 아는 남자들도 많지 않습니다.

 

애플 컴퓨터는 1984년 매킨토쉬란 컴퓨터를 출시하면서 바로 이 점에서부터 혁명(혁신이 아닙니다.)을 일으켜 왔습니다.

 

1990년대 세계 최초로 노트북 컴퓨터를 출시하면서 마우스대신 그걸 뒤집어 놓은 트랙볼을 도입하는 인터페이스의 2중 혁명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무미건조한 흰색 쇳 조가리에 숨어 있는 회로 기판과 배선을 주방용품 디자이너를 통해 보이게 하는 iMac이란 새로운 혁명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이 제품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키보드가 어떻게 작동하고, CPU가 뭐고, 메인보드란 게 뭔지 눈으로 보고 이해하는 계기가 이루어 졌습니다.

 

사실 인터페이스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발전해온 정보학(Informationology, Communicationology) 분야에서 매우 핵심적인 분야입니다.

 

어떤 미디어를 통해 어떤 공간에서 어떻게 향유할 것인가? 즉, 어떤 영사방식으로 어떤 방식의 2차원 영상이 담긴 필름을 어떤 조도(빛의 세기)를 갖춘 공간에서 어떻게 영화로 볼 것인가 란 문제와 같습니다. 우리가 향유하는 모든 서적, 음악, 그림, 영상 심지어 자동차 까지 실제 제작에서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고 시장에서의 성공을 좌지우지하는 부분이 바로 이 인터페이스 부분입니다.

 

지금 마이크로소프트가 내 놓은 윈도우수 8이 왜 전전긍긍하는가? 그것 역시 인터페이스의 문제입니다. 어떻게 사용자가 편하고 재미있게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을까. 창의력이 필요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말을 깨우친 아이들에게 글자를 가르치지 마십시오. 대신 그림이나 실물을 쥐어 주고 내버려 두십시오.  글을 깨우친 아이들에겐 책을 강요하지 마십시오. 대신 박물관과 미술관, 자연 속에 던져 넣으십시오.

그들은 어른이 원치 않아도 그들이 이해하는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실험하고 창조할 것입니다.

그들의 미래는 그들을 낳은 어른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가기 때문에......




 

 

 


 





 

 

 

 

 

 

 

 

 






 



 



 

01. 웬 말인가 날 위하여, 

    갈보리 산 위에
02.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내 주를 가까이 하게함은
03.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04. 나의 사랑하는 책,  눈을 들어 하늘 보라
05.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06.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어려운 일 당할 때, 
     이 몸의 소망 무엔가
07. 주의 기도
08. 성자의 귀한 몸, 

     값비싼 향유를, 

     내게 있는 모든 것을
09. 예수 따라가며,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 

     아 내 맘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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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살코기는 피해라? 잘못된 상식 5가지

달걀은 오히려 건강에 좋아

 

식품과 영양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다면 매일하는 식사를 훨씬 수월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영양과 관련해서는 사실과 잘못된 상식을 분리하는 것이 어렵다.

 

미국 인터넷 매체 ‘내츄럴뉴스닷컴(naturalnews.com)’이 식품의 영양과 관련해 잘못 알려져 온 5가지를 소개했다.

 

◆달걀은 심장질환 위험을 높인다?

 

이런 말을 많이 들었겠지만 달걀은 심장에 반드시 나쁘지는 않다. 사실 달걀에는 콜레스테롤이 많이 들어있다. 하지만 심장마비나 죽상동맥경화증과 연관된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이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달걀은 몇 가지 건강상 좋은 점도 있다. 최근 노른자가 눈 건강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단백질과 비타민B 복합체인 콜린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콜린은 뇌신경 기능을 향상시킨다. 하루에 달걀 한 개가 적정 섭취량이다.

 

◆붉은 살코기는 무조건 피해야 한다?

 

즙이 나오는 소고기 스테이크는 다른 살코기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각종 영양소로 가득하다. 매일 붉은 살코기를 먹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약간의 스테이크는 신체가 지방을 태우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된다.

 

특히 풀이나 채소만을 먹여 기른 동물로부터 얻은 붉은 살코기는 효능이 있다. 붉은 살코기에는 포화지방이 많을 것으로 여기지만 요즘 생산되는 붉은 살코기에서는 포화지방이 거의 없다. 붉은 살코기에는 단백질과 아미노산, 그리고 다른 비타민들이 풍부하다. 이런 성분들은 날씬한 체격을 유지하면서 근육조직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고 단백질 음료는 위험하다?

 

단백질 셰이크는 전혀 위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같은 양의 물을 마심으로써 탈수화를 방지할 수 있다. 여러 연구결과, 단백질 음료가 뼈 칼슘을 대폭 감소시킨다는 것도 근거 없는 틀린 말로 드러났다. 고 단백질 셰이크를 마시는 것은 좋다. 단, 물을 적절히 마셔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탄수화물과 지방을 결합해서는 안 된다?

 

이 또한 오해의 하나다. 균형 잡힌 식이요법은 단백질과 탄수화물, 지방을 결합해야 한다. 건강에 좋은 지방과 복합 탄수화물, 살코기 단백질이 결합하면 포만감을 느끼게 하면서 영양학적 가치가 더 많아진다.

 

◆자주 먹으면 빨리 살을 뺄 수 있다?

 

하루에 여러 번 자주 먹으면 신진대사를 증진시켜 살을 빨리 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하루에 몇 번을 먹느냐가 아니라 총 칼로리 섭취량이다. 너무 자주 먹게 되면 과도한 양의 칼로리를 소모시켜야 하고 결국 먹는 양에 비례해서 칼로리를 소모시킬 수 없게 된다. 자주 먹는 식이요법은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고 오히려 원하지 않던 체중 증가를 불러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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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가정집에 들어갈 때

우리나라의 문패처럼 문설주에 부착되어 있는

손바닥 길이 정도의 작은 케이스가 달려 있습니다.

이 작은 케이스가 바로 [메주자/Mezuza]]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어느 작은 가게의 입구에도 붙어 있습니다.   


메주자 안에는 성경의 신명기 6장 말씀이 들어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이신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을 다하고

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신6: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