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어렸을 때 목사님 되신 아버님의 인도를 따라 반드시 아침 가정예배를 드린 후에 밥을 먹고
학교에 갔다. 가정 예배가 늦어질 때는 아침 밥 먹는 것을 거를 수 밖에 없었다.
주일이면 교회에서 하루를 온전히 보냈다. 교회 건물에 머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에서 펼치는 행사에 참여한다는 뜻이다. 하루 종일... 성경공부, 노방전도, 찬양, 심방 등등 ...
심방이란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주일 학교 학생 중에 결석한 학생이 있으면 삼삼오오 짝을 지어 결석한 친구네 집을 심방했다.
하루 해가 저물면 저녁예배를 드리고 난 후 잠자리에 든다. 주일은 예배와 성경공부와 전도,
성도들 보살핌으로 하루를 보내는 날이었다. 세상 일은 할 수 없었다. 성도들은 가게를 문닫고 학생은 학교 숙제도 할 수
없었다. 상급학교 진학 시험이 있을 때도 시험날짜가 주일에 겹치면 포기해야 했다.
나는 실제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선택할 때 내가 원하는 학교가 주일날 시험을 치게
되어있어 아버지가 입학원서를 찢어버리신 경험을 갖고 있다. "일류학교라도 안돼. 주일날 시험치는 학교는 안돼...."
나는 주일은 그렇게 보내는 줄 알고 자랐다. 내 생각에 좀 지나친 율법주의 적 요소가 있는
듯했어도...
나는 지금도 주일 성수란 이런 것을 말하는 줄 믿고 있다.
그런데 지금도 이런 교회가 있을까? 이렇게 용감하게 교인들을 이끌고 가려는 목회자가 있을까?
만약 그러지도 이러지도 못하는 교회라면 과연 주일성수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주일이란 교인들이 주일 하루,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배하며 창조자 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특별한 날이다. 그러나 최근 한국교회 주일예배에 저녁예배가 사라지고 주일에도 출근할 수밖에 없는 교인들이 생기면서 주일의
참된 의미가 실종되고 말았다. 입으로만 말하는 '성수'
주일이 되고 말았다. 미국교회는 더 그렇고....

‘칙필에이(Chick-fil-A)’라는 미국의 치킨 패스드푸드 업체가 있다. 40여개 주에
1800개 매장을 운영하면서 닭가슴살 샌드위치와 치킨 너겟을 판다. 칙필에이는 주일 영업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지난해
매출은 50억 달러(5조2225억)를 기록, KFC를 누르고 업계 1위로 등극했다.
지난달 8일 93세로 별세한 창업주 새뮤얼 트루엣
케이시는 창립 때부터 주일휴무 원칙을 지켰다. 침례교인이었던 그는 신앙을 사업에 접목하려고 애썼다.
그는 평소에 식당 운영자와 종업원들에게 “닭고기 파는 사람 이상이 돼야 한다. 고객들의 삶의
일부로 살아야 하고, 우리를 먹고 살게 해준 이 지역사회의 일부로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주일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하루였다. 그는 주일휴무를 “사업가로서 내린 최고의
선택이었다”면서 “(주일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고요한 간증”이라고 묘사했다.
주일은 ‘주의 날(Lord’s Day)’을 줄인 말이다. 신약성경 요한계시록(1:10)에 단
한 차례 등장한다. 주일은 주중 첫째 날이자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날이다. 초기 교회의 교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주일 예배를 드렸다. 교인들은 이날 모여 성찬을 나눴고 설교와 기도 그리고 헌금과 죄의 회개 시간도 병행했다.
주일예배의 전통은 이렇게 시작했다.
한국교회는 초기부터 주일을 강조했다. 청교도 신앙의 영향을 받은
선교사들은 주일 예배 외에 어떤 행사나 회합에도 참여하지 않고
기도와 성경읽기로 보내도록 했다.
1913년 4월 18일자 ‘예수교회보’에는 어린이들에게 주일의 정의를 이렇게 내렸다. “주일은
잘 쉬기도 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남에게 착한 일을 하는 날이라.”고...
한국교회도 주일 지키기를
엄격히 적용했다. 한 교단의 경우 주일에 전깃불을 사용한 것이 문제가 되어 교회가 분열되는 사태를 겪었다. 상당수 교회들은
주일 매매 행위나 자동차를 이용한 여행 등을 강력하게 규제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측 교회들은 주일 오락이나 장거리
이동 금지를 강조한다.
하지만 한국사회가 발달하면서 주일 풍경은 바뀌기 시작했다. 특히 예배의 변화가 커서 이전까지
주일 오전예배와 오후예배, 저녁예배로 구분됐던 주일예배가 90년대 이후부터 저녁예배가 사라졌고 오후예배로 대체됐다.
신도시가 생겨나면서 이사 간 교인들이 주일 오전예배를 드리러 왔다가 다시 집에 돌아가
저녁예배에 참석하기 힘든 것을 고려해 오후로 조정한 경우가 많았다. 이런 현상은 90년대에 두드러지게 나타났고
2000년대에 접어들어 일반화됐다.
이 같은 예배의 변화는 점차 주일의 의미를
평가절하시키는 원인이 됐다. 주일 낮 예배 한 시간 참석하는 것으로 주일의 의무를 다했다고 여기는
교인들이 많아졌고 주일에 치러지는 국가고시나 각종 보충수업 등 사교육 증가도 주일의 의미를 해치고 있다.
실제로 일선 교회학교는 각종 시험이나 학원수업 등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서울의 어느
교회에서 고등부를 맡고 있는 이모(33) 전도사는 “시험기간만 되면 학생 3분의 1일이 예배에 빠진다”며 “요즘엔 학원
보충수업까지 주일을 끼고 있어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토익 등 취업을 위한 영어시험이 주일에 치러지는 경우가 많아 기독 청년들이 어려워하고 있다.
취업문을 통과했더라도 입사 후 이어지는 각종 연수나 출장이 주일과 겹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가운데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하나님과 온전한 하루를 보내는 교인들이 있다.
일시적으로 반사회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자신의 일에 더 충실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주일을 기꺼이 누리면서 직업을 소명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프로바둑 기사 조혜연 9단은
2005년 마스터스대회 대국 일정이 주일에 잡힌 것을 확인한 후 곧바로 기권했다. 무려 결승전이었다.
기대를 한몸에 받던
신예였지만 후회는 없다고 한다. 조혜연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신앙에 어긋나게 주일 대국을 했다면 오히려 지금만큼의
실력도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능과 호기심이 많아 학업을 계속해 대학원까지 진학했고, 뛰어난 외국어
실력으로 해외 바둑 보급에도 기여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압구정 고로케’를
운영하는 이상현(40·청운교회) 대표는 ‘주일은 쉽니다’
표시를 가게 한쪽에 크게 붙여 놨다. 이 대표는 “매출을 더 올리려고 주일까지 일한다면 그만큼 피로는 가중되고 손님을 위한
서비스는 약할 수밖에 없다”며 “주일엔 차분히 예배를 드리고 다음날을 준비한다”고 말했다.
2년 전 문을 연 가게는 지난해보다 매출이 늘어 지금은 하루에 1000개를 판매한다. 그런가
하면 미국에 있는 한인식당이나 영업장에는 "주일도 문 엽니다'라는 팻말을 쉽게 볼 수 있다.
영화 ‘불의 전차’(1981)의
실제 주인공 에릭 리델은 주일을 지킨 사람들의 고전적
모델이다. 그는 1924년 제8회 파리올림픽 육상 부문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자신의 주종목 100m 경기가 주일에
열리자 경기를 포기했다. 이어 주종목이 아닌 400m에 출전해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는 선수생활을 마감하고 24세에 중국
선교사로 떠났다. 톈진에서 12년, 산둥반도에서 7년 활동하다 일본군 치하 웨이시엔의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1945년
순교했다. 장렬하게 달려간 삶이었다.
직장사역연구소 원용일 소장은 “리델의 결정은 1주일쯤 금식기도를 해보고 확정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경기 계획표를 본 순간 혼잣말처럼 했던 것”이라며 “그는 주일을 소중히 여겨 실천했던 멋을 아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우리가 주일 성수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교인이기 때문이 아니다. 창조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을
누리는 시간이다. 창조의 근본 중에 하나가 하나님도 쉬셨으니 우리가 주일은 하나님만 묵상하며 지내는 것이 가장 복된 일이
된다.
주일은 세상 일을 중단해야 한다. 예배와 말씀과 전도와 묵상으로 하나님을 누리는 날이 되어야
한다. 성도들은 반드시 주일을 성수해야 한다.(장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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