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18, 2015






 



 

 










 

일찍이 [찬미가/1895년] 44장에 Louis C. Rothweiler(1853-1921) 선교사 번역으로 처음 채택된 이 찬송은, 200여 년 전부터 애창되어 온 찬송입니다.

영국의 Augustus Montague Toplady(1740-1778)목사가 1776년에 작사한 곡이고요. (언) 

 

 




1. 만세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창에 허리 상하여 물과 피를 흘린 것
내게 효험 되어서 정결하게 하소서.

2. 내가 공을 세우나 은혜 갚지 못하네
쉬임 없이 힘쓰고 눈물 근심 많으나
구속 못할 죄인을 예수 홀로 속하네.

3. 빈 손 들고 앞에 가 십자가를 붙드네
의가 없는 자라도 도와주심 바라고
생명 샘에 나가니 맘을 씻어주소서.

4. 살아생전 숨 쉬고 죽어 세상 떠나서
거룩하신 주 앞에 끝날 심판 당할 때
만세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아멘






 



 


 
 



 









 










 

 

이 글은 오하이오주 클리브랜드 플레인 딜러(Plain Dealer)에 사는
90세 노인인 레지나 브렛(Regina Brett)이 쓴 글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나는 예전에 내가 인생에서 배운 45가지의 교훈을 글로 적었다.

이 글이 내가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썼던 가장 유용한 칼럼이다.
내 나이는 이제 8월이면 90이 넘는다. 그래서 이 시점에 다시 한 번 이 칼럼을 게재한다.“



1. 인생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인생은 좋습니다.

2. 의심이 들 때는 그저 약간만 앞으로 전진하십시오.


3. 인생은 매우 짧습니다. 인생을 즐기십시오.

4. 당신이 아플 때 당신의 직업은 당신을 지켜주지 않습니다.
오직 당신의 친구와 가족만이 당신 곁을 지켜줄 것입니다.

5. 카드 빚은 매달마다 정산하십시오.


6. 당신이 모든 논쟁에서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당신 스스로 진실되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하십시오.

7. 누군가와 함께 우십시오.
혼자 우는 것보다 훨씬 더 당신을 치유해 줄 것 입니다.

8. 하나님에게 화를 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받아주실 수 있습니다.

9. 첫월급을 탈 때부터 은퇴할 때를 대비하여 저축을 시작하십시오.

10. 굳이 초콜릿을 먹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은 참 쓸데없는 짓입니다. 


11. 당신의 과거와 화해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과거가 현재를 망가뜨리지 않습니다.

12. 당신의 자녀들이 당신이 우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해도 괜찮습니다.

13. 당신의 삶을 다른 사람들의 삶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다른 사람들의 삶이 실제로 어떠한지 결코 알 수 없습니다.

14. 만일 어떤 인간관계가 비밀에 부쳐져야 한다면,
그런 인간관계는 맺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15. 모든 것은 눈깜짝할 사이에 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결코 눈을 깜빡 거리지 않습니다.

16. 숨을 깊이 들이쉬십시오.
그럼 당신의 마음에 평화가 찾아옵니다.

17. 쓸모 없는 것들을 제거하십시오.
잡동사니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당신을 무겁게 짓누릅니다.

18. 어떤 고통이든지 간에 그것이 실제로 당신을 죽이지 못한다면 항상 당신을 강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19. 행복해지는 것은 언제라도 결코 늦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직 당신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20. 당신이 인생에서 정말 사랑하는 것을 추구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대답을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21. 촛불을 켜십시오.
좋은 침대시트를 쓰십시오.
근사한 속옷을 입으십시오.
그런 것들을 특별한 날을 위해 아껴두지 마십시오.
오늘이 바로 가장 특별한 날입니다.

22. 준비는 항상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하고,
실전에서는 흐름에 따르십시오. 






 



23. 괴짜가 되십시오.
자주색 옷을 입기 위해서 나이가 먹을 때까지 기다리지 마십시오.

24. 섹스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신체 기관은 뇌입니다.

25. 당신 외에는 아무도 당신의 행복을 책임지지 않습니다.

26. 소위 재앙이라고 말하는 모든 일들을 다음 질문의 틀 속에서 판단하십시오.

     ‘5년 후에도 이 일이 정말로 내게 중요할까?’

27. 항상 삶을 선택하십시오.

28. 용서하십시오.

29.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당신이 신경쓸 일이 아닙니다. 


30. 시간은 모든 것을 치유합니다.
시간에게 시간을 주십시오.

31. 상황이 좋건 나쁘건, 상황은 반드시 변하게 됩니다.

32. 당신 스스로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당신 자신 말고 다른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33. 기적을 믿으십시오.

34. 신은 그저 신이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이 하거나 하지 않는 것들 때문에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35. 인생을 청강하지 마십시오.
지금 당당히 앞으로 나와 인생을 최대한 활용하십시오.

36. 성장해가는 노인이 죽어가는 젊은이보다 낫습니다.

37. 당신 자녀에게 있어서
어린 시절은 인생에서 오직 한번 뿐입니다.

38. 결국 마지막에 정말로 중요한 것은 당신이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39. 매일 밖으로 나가십시오.
기적이 모든 곳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40.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의 문제들을 쌓아 올린 후에
다른 모든 사람들의 문제들을 보게 된다면,

우리 자신의 문제는 나중에 처리하게 될 것입니다.

41. 질투는 시간낭비입니다.
당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을

받아들이십시오.

42. 가장 좋은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43. 당신의 기분이 어떻든 간에, 아침에 일어나

옷을 잘 차려입고 당당하게 나오십시오.

44. 양보하십시오.

45. 인생에 나비넥타이가 묶여있지 않더라도, 인생은 여전히 선물입니다. 



 

참고하시라고 영문으로 소개합니다.(언) 





 

45 Life Lessons Written by a "90-Year-Old" Woman


1.Life isn't fair, but it's still good.
2.When in doubt, just take the next small step.
3.Life is too short to waste time hating anyone.
4.Don't take yourself so seriously. No one else does.
5.Pay off your credit cards every month.


6.You don't have to win every argument. Agree to disagree.
7.Cry with someone. It's more healing than crying alone.
8.Save for retirement, starting with your first paycheck.
9.When it comes to chocolate, resistance is futile.
10.Make peace with your past so it won't screw up the present. 



11.It's OK to let your children see you cry.
12.Don't compare your life to others'. You have no idea what their journey is all about.
13.If a relationship has to be a secret, you shouldn't be in it.
14.Life is too short for long pity parties. Get busy living, or get busy dying.
15.You can get through anything if you stay put in today.


16.A writer writes. If you want to be a writer, write.
17.It's never too late to have a happy childhood. But the second one is up to you and no one else.
18.When it comes to going after what you love in life, don't take no for an answer.
19.Burn the candles; use the nice sheets; wear the fancy lingerie. Don't save it for a special occasion. Today is special.
20.Overprepare, then go with the flow.


21.Be eccentric now. Don't wait for old age to wear purple.
22.The most important sex organ is the brain.
23.No one is in charge of your happiness except you.
24.Frame every so-called disaster with these words: "In five years, will this matter?"
25.Forgive everyone everything.


26.What other people think of you is none of your business.
27.Time heals almost everything. Give time time.
28.However good or bad a situation is, it will change.
29.Your job won't take care of you when you are sick. Your friends will. Stay in touch.
30.Believe in miracles.



31.Whatever doesn't kill you really does make you stronger.
32.Growing old beats the alternative — dying young.
33.Your children get only one childhood. Make it memorable.
34.Get outside every day. Miracles are waiting everywhere.
35.If we all threw our problems in a pile and saw everyone else's, we'd grab ours back.


36.Don't audit life. Show up and make the most of it now.
37.Get rid of anything that isn't useful, beautiful or joyful.
38.All that truly matters in the end is that you loved.
39.Envy is a waste of time. You already have all you need.
40.The best is yet to come.


41.No matter how you feel, get up, dress up, and show up.
42.Take a deep breath. It calms the mind.
43.If you don't ask, you don't get.
44.Yield.
45.Life isn't tied with a bow, but it's still a gift.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어 바라본다
곳곳이 위조할 수 없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
해와 달이 하나뿐이라는 일월오봉도,
반으로 접어보니 해와 달이 한곳에 겹쳐진다
음과 양의 기가 한 곳에 만나 통하는 세상
얼마나 많은 문양을 완성해야 이루어진다는 말인가
또한 보는 각과 빛에 따라 나타나는 홀로그램은
그 이치가 사람의 마음처럼 보인다
이 만 원의 돈이면 한 달 치 소식을 전하는 월간 잡지를 사볼 수가 있고
어리광 부리는 조카딸의 입을 봉할 수도 있고
시인의 고단한 눈빛이 묻어 있는 시집 한 권을 사 볼 수 있는데
이 만 원이 내 삶의 표현을 갉아 먹고 있다
얼마나 많은 이 세상의 말을 압축해 놓았으면
돈 앞에서는 할 말을 잃게 할까
 


 

 





 

시를 읽고 나서 나도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어 본다. 수없이 사용해 왔으면서 세종대왕 왼편 배경으로 해와 달이 뜬 산수화가 있는 것도 처음 보고, 그것이 ‘일월오봉도’라는 것도 이제 알았다. 반으로 접혔던 자국이 있고 한쪽 귀퉁이가 살짝 찢어진 지폐. 얼마나 많은 사람을 거쳐 왔을까. 화폐를 대할 때 우리한테 중요한 것은 거기 명시된 금액이지 생김새가 아니다.

 

언제부턴가 사람도 그렇게 대하곤 하는 세태가 화자로 하여금 문득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어 바라’보게 했을 테다. 무구한 얼굴로 다소곳이 화자의 눈빛을 받아들였을 만 원짜리 지폐. 그러나 그 제조 과정부터 무구하지 않다. 심미적 효과를 고려한 문양 곳곳에 위폐 방지를 위한 장치가 숨겨져 있다.

 

화자는 지폐를 살펴보고 반으로 접어보기도 하면서 ‘음과 양의 기가 한 곳에 만나 통하는 세상/얼마나 많은 문양을 완성해야 이루어진다는 말인가’라는 통찰에 이른다. ‘또한 보는 각과 빛에 따라 나타나는 홀로그램은/그 이치가 사람의 마음처럼 보인’단다.

무구한 사물인 지폐여, 너로써 이런 것도 저런 것도 할 수 있는 고마운 지폐여, 그런데 네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이여! 아, 돈! ‘얼마나 많은 이 세상의 말을 압축해 놓았으면/돈 앞에서는 할 말을 잃게 할까.’ 시인도 돈이 ‘내 삶의 표현을 갉아 먹고 있’단다.

 

요즘 여기저기서 떠들썩한 ‘갑의 횡포’를 떠올리면 인간의 몸을 쩍 가르고 튀어나온 괴물의 얼굴을 보는 듯하다. 너무도 돈의 위력을 잘 아는 ‘갑’들. 돈의 위력은 돈에의 공포와 비례할 테다. 사람들이 요물로 만든 돈, 돈이 요물로 만든 사람들….

 

황인숙 시인 


 



 



 


 

 









 




 

 


 






 


 


 

 





 








 

표세흥 목사님 안녕하십니까?

에티오피아 송의광 김혜숙 선교사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와 기쁨이 새해에 가정과 섬기시는 교회 위에 충만하길 빕니다.

사모님과 자녀들 모두 평안하신지요? 저희들은 잘 지내고 나날이 아이들은 커갑니다.

 

지난 한 해를 잘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동역자들의 기도와 사랑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새해에 이 곳에서 하나님께서 하실 일들을 기대합니다. 지치지 않고 인내로 경주에 승리하여 성령의 열매를 많이 맺도록 기도 부탁 드립니다.

12월을 잘 보내고 2014년 마무리 하고 새해를 맞으며 선교보고 드리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1.

 

4일 갈레사곱투 교회를 방문하였습니다. 8년여 전에 갈레사곱투교회가 시작될 때 우물을 파서 마을 사람들이 나눠 마시고 짐승들도 마시게 했고, 유치원을 운영하여 아이들의 교육을 돕고, 작은 클리닉을 통하여 마을 사람들의 보건과 위생을 돕는 여러 목적으로 교회 부지를 얻었는데, 우물과 교회는 시작되었고, 유치원과 클리닉은 시작되지 않아서 그 마을 사람들의 숙원사업이 되었습니다.

 

교회에 땅을 기증한 사람들은 처음의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땅을 돌려달라는 요청을 하고 고소장을 접수하기에 이르렀고, 이에 교회는 유치원을 시작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복음의소리(YDBB) 교단에서는 갈레사곱투 교회의 요청을 받아들여 유치원과 교육관으로 사용할 수 있는 건물을 짓기로 하고 교단본부에서는 건축에 필요한 자재를 공급하고 교회에서는 노동력을 더하여 유치원 교육을 위한 건물을 짓게 되었습니다.

12월 말까지 바닥 기초와 기둥, 그리고 양철지붕 공사까지 끝났고, 외벽과 마무리 작업이 남아 있습니다.
 

 

2.

 

6일에는 복음의소리(YDBB) 게르지교회의 주일학교 교사인 네짜네트의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부모나 형제들의 큰 도움을 받지 않고 두 사람이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교회에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굿뉴스교회와 복음의소리교회에서는 웨딩드레스와 꽃, 차량, 사진, 행사의자 등 여러 가지를 협조하여 은혜롭고 아름다운 결혼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3.

 

13-14일에는 은세노교회를 방문하여 함께 예배를 드리고 이동진료를 하였습니다. 은세노 지역은 교회가 왕성하게 부흥하는 지역입니다. 곳곳에서 가정교회 형태의 교회가 일어나고 있는데, 그 지역을 인도하는 아게로 전도사의 사역을 돕기 위하여 방문하였습니다. 이번 이동진료는 특별히 현지인 의사 르데트가 참여하여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고, 어린이들과 청년들의 사역이 진료에 큰 보탬이 되었습니다.

심방용 자전거를 전달하였고, 1년 혹은 2년 사역하고 본국으로 철수한 청년들이 기증한 다양한 옷가지와 생활용품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선교적인 의미를 찾게 하고, 현지 교회에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그런 사역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4.

 

16-18일 제2회 목회자 컨퍼런스가 본부에서 열렸습니다. 이번 컨퍼런스는 15개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전도사 15명을 초청하여 마태복음을 공부하였습니다. 다음 컨퍼런스까지 마태복음을 이용하여 교회에서 설교를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첫날에는 아디스아바바 시내를 견학하였습니다. 은또또에 올라서 아디스아바바 시내를 내려다보았는데, 에티오피아 사람들 중 은또또에 가 본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가끔씩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도 시각을 키우고 넓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디스아바바 대학을 방문하였습니다. 비록 지방에서 목회하고 살고 있지만 교인들 가운데 아디스아바바 대학에 진학할 아이들이 생겨나길 기대하는 꿈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에티오피아정교회의 총대주교좌교회에 있는 박물관을 견학하였습니다. 에티오피아 교회의 역사를 이해하도록 돕고, 또한 교인 중 상당수가 정교회의 배경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교인들을 더 잘 이해하고 목회하기 위해서는 에티오피아 정교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기에 이런 방문을 계획하였습니다. 다음 목회자 컨퍼런스에서는 목회자 부부를 초청하여 부부학교 및 결혼식에 대한 공부를 하고 마지막 날에는 지방교회의 유일한 총각 전도사인 아디세 전도사의 결혼식도 시행하려고 합니다.


 

5.

 

20일 에티오피아정교회의 대주교(아키비숍) 아분네 가브리엘이 명성기독병원(MCM)을 방문하였습니다. 아분네 가브리엘은 2013년 11월에 있었던 WCC부산총회에 에티오피아정교회의 대표단을 이끌고 한국을 방문했던 분이고 2차례 명성교회의 예배에도 참석했던 분입니다. 이번 방문을 계기로 병원 내의 정교회교인들이 적극적으로 병원사역에 참여할 계기가 되었고, 에티오피아정교회와 명성기독병원의 지속적인 교류와 협력이 예상됩니다.


 

6.

 

21일에는 에티오피아에 와 있는 중국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중국인 초청 성탄음악회를 굿뉴스교회에서 열었습니다. 중국선교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아프리카에 있는 중국인들을 위한 선교는 문이 활짝 열려 있다고 보입니다.

약 190 여명의 중국인들과 또 한국사람, 미국사람 그리고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여 뜻깊은 성탄축하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울러 24일 수요일 저녁에는 굿뉴스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성탄축하예배와 축하순서를 가졌습니다.

28일 주일에는 굿뉴스교회에서 1년 동안 수고한 주일학교 교사와 성가대 그리고 그 외 여러 분야에서 봉사한 사람들에 대한 연말시상이 있었습니다.


 

7.

 

28-29일에는 코넬대학한인교회와 함께 갈레사곱투 교회를 방문하여 함께 찬양하며 이동진료를 하였습니다. 29일 월요일 하루 동안에 약 350명의 환자를 만났고, 이들 중 추가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명성기독병원(MCM)으로 와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추후조치를 하고 있습니다.

 

8.

 

31일 저녁에는 송구영신예배를 드렸습니다.

2014년은 정말 일이 많았고 또 그만큼 시간이 빨리 흘러간 해였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육신적으로는 조금 지친 면도 있지만 굿뉴스교회나 복음의소리 교단적으로는 많은 부흥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내년에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함으로 교회가 부흥하고 선교사역이 더 활기차게 진행되기를 소원합니다. 2015년 새해 주께서 주시는 은총이 늘 함께 하길 기도합니다.


 

9. 다음과 같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1) 복음의소리(YDBB)교단이 더 부흥하고 목회자들이 성령 충만하여서 주님 더 사랑하고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게 하소서

2) 굿뉴스교회가 부흥하게 하신 것 감사드리고 선교지에서 주님의 영광을 높이 드러내고 선교하는 교회 되게 하소서

3) 명성기독병원(MCM)이 기독병원의 사명 잘 감당하도록 의사, 간호사, 모든 직원들이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고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임받게 하소서

4) 에티오피아에서 일하는 선교사들과 봉사자들이 기쁨으로 사명 감당하게 하소서

5) 백혈병 치료를 받고 있는 처남 김동일 장로에게 은혜를 주시고 속히 회복되게 하소서

6) 자녀들이 믿음으로 건강하게 자라나서 주의 영광 위하여 살게 하시고 캄보디아 단기사역 중에 있는 딸 애영이를 지키시고 캄보디아를 위해 기도하게 하소서

7) 부모님의 건강을 지키시고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회복시켜 주소서

8) 저희 부부가 건강하고 믿음으로 사역 감당하게 하소서

 

 

우리 주님의 은총을 기원합니다.

2015. 1. 5

에티오피아 송의광 김혜숙 선교사 드림 

 

 

송의광
251-912-619-124
82-70-7569-1448
카카오톡 아이디 ac85033
http://www.mcmet.org/



 

 









 



주일학교 교사 네짜네트 결혼식

 

 



 




제2차 목회자 컨퍼런스 에티오피아정교회 박물관 방문


 



 




제2차 목회자 컨퍼런스 아디스아바바대학 방문





제2차 목회자 컨퍼런스 시내견학



 






제2차 목회자 컨퍼런스 수요예배 특송 (1)
 



 





제2차 목회자 컨퍼런스 단체







 




은세노 교회 이동진료





은세노 교회 간증


 

 







에티오피아정교회 대주교 아분네 가브리엘

 

 




에티오피아정교회 대주교 명성기독병원 방문





중국 그리스도인들 성탄축하



 




중국 그리스도인들 성탄축하





갈레사곱투 교회 이동진료 차 이동



 



 

갈레사곱투 교회 유치원 및 교육관 건물공사




 

 

 



 

갈레사곱투 교회 우물에서 나오는 물



 

 



갈레사곱투 교회 우물에서 24시간 계속 나오는 물




 

 

 



갈레사곱투 교회 예수 영화상영



 

 

 



갈레사곱투 교회 밤새 이동진료 기다리는 사람들




 

 



 

갈라사곱투 교회 유치원 및 교육관 신축부지



 

 





중국 그리스도인들 성탄축하





 


 










 





 














 





2015년1월17일 오전 6시45분 미국 Buena Park, CA에서

Riverside가 있는 동쪽 하늘을 바라본 모습. 

 

동창(東窓)이 하도 붉어 혹시 어디 불이 난 것은 아닐까

급히 현관문을 나섰을 때 동녘 하늘이 저렇게 불타고 있었다.

그러나 1분 후에는 전혀 다른 색깔로 변하고 말았다.

- Galaxy Note3로 촬영 -






 



 

 





 











 

새해 북한 왜 이리 조용하나 했더니…

 

2015년 새해에 들어서면서 북한 내부에서는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히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올해는 더욱더 긴장되고 복잡한 한 해가 될 것이다.

 

중앙기관 간부들로부터 하부 말단 노동자, 농민, 일반사무원들까지 우선은 하루 일을 끝마치고 김정은의 신년사를 암기하고 보고를 해서 검열을 받아야 한다. 신년사 학습은 또 인사부문, 성과부문, 과업부문, 조국통일부문, 국제부문으로 나누어 체계적으로 진행하여야 한다. 심지어 일요일조차 휴식을 못하고 밥 먹는 사람은 다 부식토(퇴비)를 생산하여 농장지원을 하여야 하기 때문에 매우 긴장되는 1월이다.
 

퇴비생산은 유치원생에서 대학에 이루기까지 전국의 학생들과 전 국민이 입으로 밥을 먹는 사람은 다 부여된 과제가 있기 때문에 모든 화장실과 산에서 부식토를 생산하기에 여념이 없다. 자기 지역을 놓고 다투기까지 하며 질 좋은 부식토를 지정된 농장에 가져다 바치고 확인서를 받아 자기들의 상급기관에 바쳐야 하므로 어쩔 수 없이 산에 가서 흙을 파다가 대충 만들어서 지정된 농장에 돈을 모아 뇌물을 고이고 퇴비 확인서를 받는 상황에까지 가고 있다.

 

심지어 추운 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보통강과 용흥개울을 비롯한 개울들의 얼음을 깨고 물속에 들어가 바닥을 파서 퇴비를 생산하다 보니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리고 있다.

 

이렇게 2월까지는 계획된 퇴비과제를 무조건 수행하여야 쌀을 받을 수 있는 쌀 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매해 1월과 2월의 북한의 구호가 ‘모두가 퇴비생산에 박차를 가하여 올해 농사에서 대풍을 이룩하자’가 거의 고정화 되어 있다.

 

 


 

평양과 달리 지방에서는 정권기관과 보위부, 보안부를 비롯한 국가기관을 제외하고는 쌀을 공급하지 않아 쌀 표가 크게 의의가 없지만 당원은 당 회의에서와 당원이 아닌 사람들은 자기들이 소속되어 있는 각 근로단체조직에서 생활총화를 비롯한 회의에서 비판과 각기 다른 형태의 처벌을 받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어 있다.

 

3월에는 공인된 국가무역기관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화학비료를 사올 수 있게 1인당 300$를 회사단위로 모아서 농업성에 무조건 납부해야 한다. 지방에서는 도 무역관리국에 납부하지 못하면 해임조치 되므로 돈을 다른 사람들에게서 대부하여서라도 바쳐야 한다.

 

올해에 김정은이 집권하여 처음으로 맞이하는 조국해방 70돌과 당 창건 70돌 정주년을 맞이하면서 행사를 크게 진행하여야 하겠는 데 돈이 없으니 중앙 외화벌이 기관들에서 5월까지 무조건 3000만 달러를 바치라는 김정은의 2014년도 10월 특별지시로 하여 중국을 비롯한 외국에 나가 돈을 대부받으려고 그야말로 결사적으로 노력을 하고 있다. 김정은이 부과된 돈을 마련하지 못하면 간부직에서 해임하고 돈을 마련하는 사람에게는 공화국영웅칭호를 주겠다고까지 하였으니 그야말로 전투이다.

 

북한에서 올해 10월 10일 당 창건 70돌을 계기로 지난 1980년에 제6차 당 대회를 진행하고 35년간을 진행하지 않은 당 제7차 대회를 개최하여야 한다는 의견도 많이 제기되고 있지만, 김정은은 결심을 못 하고 있다고 한다. 원인은 김정은에게 정권을 물려준 김정일이 인민생활을 한 단계 끌어올리지 못하면 절대로 당 대회를 하지 않겠다고 전체 당원들에게 당 총비서로 약속의 말을 하였기 때문에 지금처럼 주민들의 생활이 더 극단에 이르렀고 2014년도 농사도 거의 망쳐 아직 결정을 못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니 김정은은 어떻게 하든 올해에 대한민국을 비롯한 외국의 지원을 받아야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을 비롯한 외국의 정상들과 대표단을 초청하여 국가적인 행사들도 무난히 치르고 자기의 정치적 위상을 세계에 과시하여야 하겠는데 올해에 또다시 떼죽음이 날 수도 있다는 내부여론으로 하여 몹시 긴장된 나날을 보내고 초조해하고 있는 것이다.

 

하여 절망적으로 생각하다 못해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경제 분야를 추켜세워 인민생활을 높일 수 있는 방도를 하나도 내놓지 못하고 한국정부에 평화교류를 제안했다. 최고위급정상회담도 필요하다면 할 수 있다고 발언하고 금강산관광 재개도 실현하며 대한민국의 지원을 받아 위기를 모면해보려는 의미도 보였다고 생각한다.

 

그 다음에는 한미군사훈련이 연례적으로 진행한 정상적인 방어훈련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중지하면 핵실험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겠다고 한발 뒤로 양보하는 것처럼 전략으로 나오는 것이다.

 

올해에 북한은 큰 국가행사가 겹쳐 있는데 돈은 없고 경제 활성화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작년도에는 농사 작황도 더욱 나빠지니 고립무원이다. 김정은 집권 3년을 지켜본 북한의 간부들과 주민들 속에서 반 김정은 활동이 시작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결국은 이전에도 계속 해오던 수법 그대로, 북한주민들에게 우리가 못사는 것은 미국과 남조선을 비롯한 자본주의 나라들이 지구상에 하나뿐인 인민 대중 중심의 사회주의 조선을 압살하기 위하여 온갖 모략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라 인식시키면서 자기네는 항상 공명정대한 평화회담만을 제안하는데 미국과 남조선이 그 제안을 거부하고 계속 전쟁준비만을 해오고 있다고 선전해서 북한주민들에게는 내부가 안정하여 다른 데 신경 쓰지 말고 오직 당과 김정은의 두리에 더욱 철석같이 뭉쳐야 살 수 있다는 개념으로 김정은 정치지반을 공고히 하자는데 중점을 둘 것이다.

 

이번에 신년사에서도 듣기 좋은 말을 일단 하고 한국이 받아들이면 돌 한 개를 던져 새 두 마리를 잡는 격이 된다. 그 다음 미국이 한미군사훈련을 당분간 중지하면 핵실험도 당분간 중지하자고 제기하면서 자기들이 시간을 얻어 압박에서 벗어난다. 그렇게 하여 안정적으로 행사도 치르고 김정은의 위상을 올려보려고 하는 것이 올해의 최종 목적이라고 볼 수 있다.
김철추
 




 





 







 





 


 



 

 


 




 


 





 




 

하버드 윌리암 하인리히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는 해군장교였습니다. 해군을 제대하고 보험회사에 취직이 되었습니다. 하인리히는 보험회사에서 산업 재해 감독관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매일 크고 작은 산업 재해만 취급하게 되었습니다. 매일 많은 사고를 접하면서 그 사고들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지 않을까 가설을 세워보았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하였습니다.

 

그는 보험회사에 접수된 5만 건의 사고를 분석하며 통계를 내게 되었습니다. 1929년에 발표한 논문이 세상에 관심을 끌었습니다.

대형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그러면 그 전에 동일한 사고가 29번 나서 부상을 당하였다는 통계를 내게 되었습니다. 평균 그랬습니다. 그리고 죽지도 않고 부상도 당하지 않았지만 사고가 날 뻔 한 경우가 300번 정도 있었습니다.

 

범죄도 마찬가지입니다.

강력 범죄가 발생하였습니다. 그러면 그 전에 경미한 그런 범죄가 29번 있었고, 300번 정도 날 뻔한 시도가 있었습니다.
이를 [하인리히 법칙]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1991년 소련이 13개 나라로 붕괴되었습니다.

그 때 징조가 있었습니다. 붕괴의 직접적인 원인은 미국과 무기전쟁을 하면서 경제난이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쏘련 붕괴 징조가 여기저기에서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5년 전 1986년 체르노빌에서 원자로가 폭발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그 해 8월에 체르노빌에서 정기 여격선 한 척이 침몰하여 400명이 한꺼번에 죽었습니다.

 

1988년 지진이 일어나서 2만명 가량이 죽었습니다.

다음 해 1989년에 시베리아 송유관이 폭발하였습니다. 그 때 기차 두 대가 공중으로 날아가면서 800여명이 즉사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계속 안 좋은 일이 일어나다가 소련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2008년 5월 12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중국 쓰촨성에 대지진이 일어나서 30만명이 죽은 사건이 일어난 날입니다.
당시 쓰촨성 지진은 강도 7.8의 강진으로 중국 30년 만에 최대의 강진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강진이 오기 전에 몇 번 징조가 있습니다.

 

15일 전에 그 옆에 있는 후베이 은스시에 있는 관인탕 저수지에 담겨 있던 8만톤의 물이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목격자가 있었습니다. 아침 7시에 고요하던 저수지가 갑자기 소용돌이치더니 물이 다 땅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쓰촨성 인근의 우물물은 갑자기 수위가 높아지면서 넘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지진이 일어나기 며칠 전부터는 강물이 갑자기 뜨거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지진 발생 10일전에는 뜨거운 김이 하늘로 치솟으면서 지진 구름이 하늘을 덮기도 하였습니다. 뜨거운 김이 갈라진 땅 사이로 치솟아 하늘에 형성된 구름이 지진운 이었습니다.

 

사흘 전에도 징조가 있었습니다.

수십만 마리 두꺼비가 집단 이동하는 장면이 목격되었습니다. 주민들은 이런 현상을 보면서 정부에게 건의하였습니다.

지진이 일어날 징조가 나타난 것 같으니 조치하여 주십시오.-- 그 때 중국정부는 한창 북경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정부가 해명하였습니다.

이틀 비가 내려서 수온이 상승하였기에 구름이 생겼고, 두꺼비는 산란과 부화를 하려고 이동중이니 안심하라. 그러나 곧 지진이 나고 말았습니다.

 

사회적인 현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통사고가 잦은 곳에서는 멀지 않아 대형사고가 날 것이라는 징조입니다. 거꾸로 말해봅니다. 어떤 대형사고가 났다면 대형사고가 나기 전에 작은 사고가 빈번하였다는 의미입니다.

 

예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화장실 가는 것을 소변보러 간다 대변보러 간다 라고 말합니다. 소변과 대변을 보면 금방 건강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이때 작은 징조라도 소홀히 여기지 않을 때 건강을 잘 지킬 수있다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일에는 징조가 있습니다.

북한을 보십시오. 자꾸 끝으로 가고 있습니다.

끝이 더욱 선명하게 보여지고 있습니다. 더 큰 혼란을 만나기 전에 한국교회는 통일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장재언)


 



 



 




 



 












 

 

 

 





 











 
 




 

 

 

뇌는 묻는다. 우린 누구인가? 왜 사는가?

뇌과학자이자 KAIST 교수인 저자는 '왜'라는 31가지 거대한 물음표에 과학과 철학, 윤리학 등을 동원해 그 나름의 설명을 시도한다.

 

인간은 왜 필요한가

인간이 존재하는 우주가

인간 없는 우주보다 왜 바람직한지에 대한

답을 준비해야 합니다.”



"20년 후, 사람은 기계와 일자리를 두고 다툴 것"



(정리/신혜선 정보미디어과학부·문화부장 , 류준영기자)



 

'뇌 과학자' 김대식 KAIST교수

"우리가 모르는 인공지능 시대…

인간이 왜 필요한가, 기계가 묻는다면"


 



“인간의 지능을 이식받은 로봇은 모든 인간에게 도움이 되고, 인간을 행복하게 할까요?”

최근 ‘우리 시대의 31가지 위대한 질문:김대식의 빅퀘스천’이란 책을 출간한 ‘찢어진 청바지’ 옷차림으로 유명한 뇌 과학 전문가 김대식(47·전기 및 전자과)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가 대뜸 묻는다.

사람과 연애하는 SW(소프트웨어)가 등장하는 영화 ‘Her’나 애정을 갈구하는 어린이 로봇이 나오는 ‘A.I’,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고 죽이는 ‘아이로봇’. 김 교수의 질문 앞에 머릿속엔 온갖 공상과학 영화가 떠올랐다.

“인간과 기계가 공존하는 시대는 어떤 법이 필요할까요?” 이번엔 매트릭스 영화에 영향을 끼쳤다는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공대’다. 쉽게 대답할 수 없다.

김 교수가 계속 묻는다. “가장 똑똑한 컴퓨터가 개와 고양이를 최근에서야 구분했다는 거 아십니까?” 이상하다. 지구에 존재하는 가장 똑똑한 슈퍼컴퓨터는 그 어렵다는 두뇌 게임 체스에서 인간을 이기지 않았는가. 그런데 개와 고양이를 구분하지 못했다고? 사실이다.

◇ 체스는 지구상 지존인데, 고양이는 못 알아본 컴퓨터?

인공지능 역사는 1950년대부터니 이제 60여 년 정도다. “당시 컴퓨터는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 됐죠. 사람이 하기 어려운 최고의 일을 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바둑이나 체스를 해결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선택한 거예요.”

그런데 막상 ‘어려운 숙제’를 해결한 대단한 컴퓨터가 인간에게 가장 쉬운 일을 못 하더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개와 고양이를 구분하는 것처럼.

이를 고민하던 과학자들은 ‘인간의 뇌를 모방하는 게 정답’이라는 힌트를 찾았다. “사람 뇌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그 원리를 토대로 인공지능을 운영했습니다. 컴퓨터 네트워크가 스스로 학습하면서 거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패턴을 인식하는 사람의 뇌 구조를 모방하는 것, ‘딥 러닝’(Deep learning)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방식은 1980년대 고안됐지만, 최근 GPU 병렬 연산 등 컴퓨팅 성능이 개선되고 소셜 데이터양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현실성이 높아졌다. 실제 2013년부터 문제가 풀리기 시작했다.

바이두의 앤드류 엔지 박사는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1000만 개 이상의 비디오 중 1만6000 개의 컴퓨터 프로세서와 10억 개 이상의 네트워크 조합을 이용해 고양이 동영상을 찾아냈다. 컴퓨터가 영상에 등장한 고양이의 생김새 자체를 인식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딥 러닝’은 컴퓨터가 엄청난(Big) 양의 데이터(지금의 데이터는 ‘빅’이 아니고 ‘스몰’이라고 김 교수는 말한다)를 처리하면서도 사람처럼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기술을 뜻한다. 인간처럼 생각하고 학습하고 질문하는 기계, 즉 영화 속에서 그려진 ‘인간 같은 로봇’이 현실화된다는 얘기다.

◇ "딥 러닝 전문가 모셔라" IT 공룡기업 각축

김 교수는 ‘딥 러닝’의 의미를 구글·페이스북·바이두 등 ‘IT 공룡 기업’들의 행보로 설명했다. 페이스북은 2014년 5월 얀 레쿤(미 뉴욕대학) 교수를 영입, 인공지능팀 책임자로 발탁했다.

창업자이자 CEO(최고경영자)인 마크 주커버그는 주주총회에서 “인공지능을 이용해 사람들이 주고받는 대화 취지를 이해하고 세상에 대해 새로운 통찰력을 가지게 될 것”이라며 “이를 이용해 다른 사람들의 질문에 답을 주겠다”고 말했다.

‘중국의 구글’로 통하는 검색엔진업체 바이두 역시 스탠퍼드 대학 연구원이자 ‘딥 러닝 권위자’로 불리는 앤드류 응을 지난해 영입했다. 구글의 움직임은 더 빨랐다. 역시 인공지능의 전문가인 제프리 힌튼(캐나다 토론토대) 교수를 2013년 CTO(최고기술책임자)로 맞이했다.

‘시리’에서 “이름값을 못했다”는 평을 받으며 자존심을 구긴 애플도 바쁘다. 애플은 최근 ‘딥 러닝’ 기술 전문가 구인 광고를 냈다. 차세대 시리 버전에 인공지능을 적용할 것이란 전망이다. 김 교수는 “헤드헌터 시장에서 ‘딥 러닝’ 전문가들의 몸값이 100만 달러(약 11억 원)까지 치솟았다”고 말했다.


 

 

◇ 착한 인공지능이냐, 나쁜 인공지능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도대체 ‘딥 러닝’이 뭐길래 이렇게 호들갑을 떨까. 특히, 영국의 우주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 등 세계 석학들의 행보는 더욱 눈여겨볼 만하다. “인공지능이 촉발할 이른바 ‘2차 기계혁명’으로 사회·경제·정치가 ‘도미노식’ 혼란을 빚게 될 가능성이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예사롭지 않다.

김 교수는 “20~30년 후엔 낮은 수준의 인공지능을 구현할 수 있는 기계가 등장하고 다시 20년 후에는 높은 수준의 인공지능을 구현하는 기계가 등장할 것”이라며 “그땐 인간이 기계와 일자리를 두고 다툴 것”이라고 확신했다. 여기까지는 뇌 과학 전문가들의 공통된 생각이라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이후는 김 교수도 잘 모르겠단다. 앞서 던진 “왜 인공지능인가”라는 질문이 성립한 이유는 간결해졌다. ‘과거 인공지능에 대한 생각이 틀렸고, 앞으로 인공지능이 만들어 낼 세상을 우리가 모르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기계가 지능을 가지면 인간의 삶이 편해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더 먼 미래에 대해서는 다른 판단이 필요했다. 인공지능이 인류 문명에 가져올 위험성은 혜택과 함께 검토해야 할 문제였다. 그렇다고 뇌 과학자 김 교수가 인공지능을 무조건 반대할 리 없다.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그 기술을 만들 사람들 아닙니까. 자신들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아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어요. 엄청난 혜택이 있는 게 사실이니까요.”

김 교수는 ‘효율적인 암 치료법’을 찾고 있는 IBM 사례를 들었다. “암 관련 논문이 전 세계에서 30초에 한 권씩 나옵니다. 최고 전문가도 다 알 수 없는 엄청난 분량이죠. IBM은 암 관련 논문 몇백 년 치를 인공지능 슈퍼컴 ‘왓슨’에 입력했습니다. 단 몇 시간 만에 ‘새 단백질 12개를 찾아보라’는 결과를 내놨습니다. ‘이건 왜 아직 한 번도 안 봤나?’라는 메시지를 보내온 거죠.”

미국 존 홉킨스 의과대학이 이를 찾아봤더니 놀랍게도 9개 정도는 아직 인간이 발견하지 못한 중요한 단백질이었다고 한다. 불과 두 달 전 얘기다. 김 교수는 한 달 전 IBM 연구소에 다녀왔다.

“인건비 때문에 현재 제3국에 아웃소싱하는 미국 콜 센터들이 사라지겠더군요. 보험회사는 수백, 수천 명의 인력을 고용할 필요 없이 ‘왓슨’ 하나만 설치하면 끝입니다. 제가 특허를 대충 썼다고 합시다. 왓슨은 빅데이터에서 비슷한 특허를 찾아줘요. 여기까지는 지금도 하죠? 왓슨은 더 나아가 기본 특허를 피해 새롭게 써 줍니다. 변리사의 역할을 대신하는 거죠. 그 시스템은 5년 안에 완벽하게 구현될 것처럼 보였어요.”

김 교수의 판단대로라면 ‘감정노동’의 고통을 호소하는 콜 센터 직원이나 고급 노동자로 평가받는 변리사 모두 똑같이 예비 실업자다. 50대 아버지와 자식들이 일자리를 다툰다는 지금의 걱정은 우스워진다. 20년 후엔 ‘기계와 일자리를 다투는 인간’들이 더 큰 사회 문제가 될 게 자명하다.

“1차 산업혁명 때 기계가 인간의 팔, 다리를 대신해 화이트칼라(사무직 종사자)가 등장했습니다. 2차 기계혁명에선 기계가 사람의 머리를 대신합니다. 이제 화이트칼라 직업이 사라질 차례입니다. 우리가 화이트칼라 마지막 세대가 된다는 게 무리한 예측일까요?”

◇ 초등학생에게 기계가 할 수 없는 걸 가르치자

김 교수가 우려하는 지점은 ‘일자리를 잃은 인간’ 그 자체가 아니다.

“1%대 99%가 아닌 0.00001%대 나머지가 될 수 있다는 얘기를 안 꺼낼 수가 없죠. 인공지능 때문에 실업률이 70, 80%에 육박했다고 가정해보죠. 이들은 국가 기초생활지원비를 받고 생활해요. 정부 예산 대부분은 인공지능 서비스를 만들고 운영한 실리콘밸리 고급 직업군 1000명이 책임져요. 그들이 ‘정부 예산 1%에도 못 미치는 세금을 내는 실업자들이 왜 나와 똑같은 혜택을 누려야 하나’라고 묻는다면요? 민주주의는 투표권처럼 ‘공평함’을 토대로 하는데 그런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얘기한다는 건 중세기로 돌아가자는 얘기로 취급되지 않을까요?”

김 교수는 과학의 궁극적인 소비자들인 ‘국민’들이 알고 토론해야 할 때가 됐다고 말한다.

“현재 초등학생들에게는 분명히 다른 무엇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하죠.‘국·영·수 학습’은 200년 전 프랑스 공교육 시스템입니다. 산업혁명 당시엔 유럽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농부들을 공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했어요. 글을 읽고 쓰고 계산을 할 수 있도록 가르친 거죠. 인공지능 시대에서는 ‘국·영·수’가 아닌 미래 기계가 할 수 없는 것들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기계가 할 수 없는 건 도대체 뭘까. 김 교수도 모른단다. 다만 그는 두 가지 논의를 제안했다. ‘국내 기업들이 이것(인공지능)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것이 가져올 사회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다.

김 교수의 책 마지막 장 제목은 ‘인간은 왜 필요한가’이다. “객관적인 답을 원하는 기계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해요.인간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인간이 존재하는 우주가 인간 없는 우주보다 왜 바람직한지에 대한 답을 준비해야 합니다.”

“인공지능은 인류가 만들어 낼 ‘마지막 발명품’일지 모른다”고 말하는 김 교수는 기계로부터 존경받는 현명한 인류로 거듭나야한다고 강조했다. 인공지능이야말로 인류에게 주어진 ‘계몽’의 마지막 기회라는 것이다. 


 




 


 


 

 

 


 

 


 



 




 




 









 











 

비전통신은 그리스도인들의 용어 사용을 신중하게 할 것을 제안해 왔다. 이번에는 성가대인가? 찬양대인가? 성경적인 의미를 찾아보고자 한다.

 

성경에서는 성가대, 또는 찬양대라는 말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찬양대의 기원이 되는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노래하는 자>(singers, 대상 15:27)로 기록되었을 뿐이다. 여호사밧, 히스기야 왕 때나 포로생활에서 귀환하여 성벽이나 성전 봉헌할 때에도 역시 <노래하는 자>로 나온다.

 

성가대의 정체성

 

① 하나님으로부터 구별된다는 뜻

② 그 노래 속에는 오직 하나님만 선포된다.

③ 거룩함을 상징하는 예복(세마포)을 입는다.

④ 거룩한 그 노래를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불렀다.

⑤ 노래하는 자들은 거룩한 제사장들이었다.

 

성가의 뜻

 

4세기 경 카토릭 미사 중의 노래를 찬트라 하였고, 13세기에는 찬트가 모테트로 변하고, 1543년 성공회가 카토릭에서 갈라질 때 모텟은 엔템(Anthem)으로 바뀌었다.

오늘날에는 예전을 위한 노래를 다 성가라 부른다. 예배를 위하여 작곡된 합창곡을 Anthem이라 한다.

 

신령한 노래라는 뜻이다.

 

신약성경에는 ....

(시편)와

찬미(시편 외의 찬송)와

신령한 노래(찬송가 외의 영적인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엡5:19) 가 나오는데, 신령한 노래란 Nava(예언하다의 뜻)라고도 하여 예언하는 노래란 뜻도 있으며, 영적으로 감사와 믿음에서 나오는 영혼의 노래를 말한다.

시편 7편에 나오는 <시기오놋>은 정열적인 선율의 노래이며, 하박국의 노래가 시기오놋이고, 리듬의 변화가 매우 빠르며, 경건 거룩을 뛰어 넘어 보다 차원 높은 영감에 가득한 노래를 말한다. 예배 중에 제사장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노래이다.

 

거룩한 하나님을 향하여 거룩한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이다.

 

프란시스 샤프는 이렇게 말했다.  - “경건한 양식이나 불경건한 양식은 성경에 없다. 이를 구별 지으려면 혼란만 올 뿐이다.”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뜻으로 부르면 그것이 경건한 노래이다.

 

③ 성가대란 말은 특권의식이 담겨있다.

 

회중을 대표하여 찬미의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 역할을 강조하는 말이다. 성가대석이 뒤에 따로 분리되어 있는 과거의 가톨릭의 예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그런 교회가 더러 있다.

 

④ 한편 찬양대라는 말은 성경의 노래하는 자에 근접한 말이다.

 

다윗의 찬송에서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말이 나오는 데서 유래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백성들이 송축하고, 경배하고, 엎드리고, 경외하고, 인정하고, 두 손을 들고 섬김의 소리를 내는 것이 바로 찬양하는 것이다.

 

찬양대란 말은 수평적 수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찬양에는 하나님을 송축하고 찬송하는 수직적인 것만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자랑하고 기뻐하고 기억하고, 즐거워 외치고, 좋아서 껑충껑충 뛰고, 춤을 추는 이런 섬기는 행위와 선포, 선언, 기념, 전도 등의 모든 수평적인 것도 포함되는 것이다.

 

그러나 성가대 수직적인 면이 강하다. 즉 회중과 구별되어 분리된다는 면이 강조되는 문제점이 있다.

찬양의 본질은 회중과 함께 드리는 것이므로 찬양대라는 용어가 더욱 적합한 것이다. 그리고 성가는 이교도들도 그들이 부르는 노래를 하나같이 성가라고 부르는 용어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구별된 의미에서도 찬양대라고 부르는 것이 더 낫다.

 

교회를 섬기는 성직자들을 이교도들도 함께 사용하는 The Reverend로 부르지 않고 Pastor라고 부르는 것이 바람직한 것과도 상통하는 것이다.(언) 









 

 


 




 


 






 


 




 

 




 

 

미국 자동차 판매량에서 14% 차지

활용도 다양해 미국 경기의 지표로 인식돼




 

"아니, 픽업트럭쇼인가?"
 

2015 북미 국제 오토쇼(디트로이트 모터쇼)가 미국 디트로이트 코보센터에서 지난 12일(현지시각) 15일간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매해 가장 먼저 열리는 국제 모터쇼이자, 가장 미국적인 자동차가 무엇인지 볼 수 있는 행사다.

 

특히 올해 모터쇼는 홈그라운드를 무대로 전면에 나선 포드와 GM의 모습에서 2009년, GM과 크라이슬러의 파산에서 시작됐던 미국 자동차 시장의 불황이 일단락됐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전시장을 둘러 본 기자들이 하나같이 궁금해 한 차종이 있다. 바로 픽업트럭이다. 대체 무슨 이유로 이 차들이 전시장의 한복판을 모두 차지하고 있는 것일까?

 

픽업트럭은 한국인에게 낯선 차종이다. 픽업트럭은 미국인 고유의 가족 문화, 레저문화와 더불어 직접 차부터 집까지 다 스스로 고치는 개러지(차고) 문화를 대변한다. 마치 한국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미국 미식축구 문화와도 같다고나 할까.

 

픽업트럭은 뚜껑이 없는 적재함을 둔 소형 트럭이다. 여기에 승차감을 확보해 오프로드 활동에도 이용된다.

 

픽업트럭은 미국 자동차 판매량에서 상당수를 차지한다. 지난해 미국 전체 자동차 판매량은 약 1653만대인데, 이중 약 232만대, 14%가 픽업트럭이다.

 

도심 레저를 위해서는 미드 사이즈, 말 그대로 집을 고치는 건축업자부터 온 가족의 사막 여행을 즐기는 사람을 위해서는 풀 사이즈가 팔린다. 자동차 업계에서 풀 사이즈 픽업트럭은 미국 경제의 지표라고 여긴다. 도로에 풀 사이즈가 늘어나면 경기가 살아났다고 본다. 더 많이 짓고 더 많이 떠나는 증거이니까.

 

픽업트럭은 미국의 차다. 미국의 차는 디젤을 반기지 않는다. 진짜 픽업트럭은 가솔린을 쓴다. 다만 절대 승낙하지 않던 ‘소형화’의 바람은 타고 있다. 여성들이 운전할만한(그래도 한국사람 눈에는 포드 익스플로러 수준 이상의 크기!) 사이즈가 나타났다.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픽업트럭은 포드의 F시리즈다. 올해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SUV·트럭부문 '올해의 차'도 포드의 F-150이 차지했다. 이 차는 3.5리터 V6 트윈터보 엔진과 6단 변속기가 조합돼 최고출력 365마력, 최대토크 58.03kg·m의 성능을 발휘한다.

 

GM은 1위 포드를 근소한 차이로 쫓고 있다. 미국 국민 브랜드답게 쉐보레와 GMC 두 브랜드에서 각각 2종의 픽업트럭을 판매하고 있다. 쉐보레는 미드사이즈 콜로라도와 풀 사이즈 실버라도를, GMC는 미드 사이즈 캐니언과 풀사이즈 시에라가 있다. 쉐보레 타호, GMC 유콘, 캐딜락의 에스컬레이드 등의 차량은 한국에서는 SUV(스포츠 유틸리티 자동차)로 알려져 있지만 미국에서는 라이트 트럭으로 분류된다.

 





 

현대차 역시 이번 모터쇼에서 ‘싼타크루즈(HCD-15)'라는 크로스오버 형태의 픽업트럭 콘셉트카를 공개했다. 산타크루즈는 헥사고날(Hexagonal) 라디에이터 그릴 등 강렬한 디자인에 190마력 친환경 2.0 터보 디젤 엔진, 4륜 구동 시스템인 ‘H-TRAC’를 갖췄다.

그간 현대자동차가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픽업트럭 모델을 보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나온 터였다. 현대차가 픽업트럭을 생산한 것은 1977년 포니픽업트럭이 유일하다.

 

미국 경기회복으로 소비자들의 주머니 사정이 좋아지면서 픽업트럭의 판매량은 크게 늘고 있다.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포드 F시리즈(75만3851대)와 GM 쉐보레 실버라도(52만9755대)는 크라이슬러 닷지의 램(43만9789대)은 판매량이 전년 대비 20% 이상 증가했다.

 

한국에서는 쌍용자동차의 코란도스포츠가 대표적인 픽업트럭 모델이지만 시장이 그리 크지 않다. 한국내 GM과 포드의 공식 수입사들은 아직 픽업트럭을 수입하지 않고 있다. 일부 대행수입사들이 소규모로 수입을 하고 있을 뿐이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해 도입 차종을 결정하는데, 수익을 낼 정도 크기의 픽업트럭 시장이 형성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시장에서 우락부락한 픽업트럭의 인기를 어떻게 봐야 할까? 모터쇼장에서 만난 스티브 킴 한국GM 익스테리어 총괄 상무는 한국인이 이해하기 힘든 픽업트럭의 디자인을 이렇게 안내한다.

 

"풀 사이즈 픽업은 섹시하고 카리스마 있는 남자들이 즐겨 탑니다. 그들은 성능에 충실하면서 심플한 디자인을 선호하죠. 승용차처럼 디테일이 많아지면 귀여워질테니 절대 피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픽업트럭은 유행에 쉽게 편승하지 않는 것도 특징입니다.”

 

픽업트럭은 특히 보디 디자인의 경우 남성적인 매력이 아주 중요하다. “보디라인을 잘 보세요. 역도 선수의 팔근육처럼 두툼한 보디라인을 갖고 있죠. 육상선수의 근육처럼 길고 가늘게 쪼개진 라인은 승용차에나 있습니다.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미국 픽업트럭의 세계. 그런데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미국 언론이건 온라인 사이트건 여성에게 승용차를 타는 남자와 픽업트럭을 타는 남자 중 누가 더 섹시한지를 물어보면 항상, 픽업트럭을 탄 남자가 승리했다는 점이다.







 






 






 




 







 

 

수많은 과일 중 삼각이나 사각형처럼 각진 모양을 지닌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약한 사각타원형인 바나나를 제외하고 대개 과실은 원형 또는 타원형의 둥근 모양을 띤다. 그런데 ‘왜 과일은 둥근가’에 답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단지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하여 나뭇가지에서 잘 익을 때까지 온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일까.

 

추락하는 것엔 날개가 있듯 과일이 둥근 것에도 이유가 있다.

과실은 종족 유지에 필수적인 씨앗을 담고 있다. 모든 생명체처럼 과수들도 종족 유지를 위해 생존영역을 넓히려 한다. 서식범위를 넓히는 데는 운동성이 필수적이라 그들은 동물의 이동성을 이용한다. 작고 둥근 과실은 소형 동물과 새들이 선호하는 먹이 형태다. 목 넘김이 쉬운 먹잇감은 이들에 의해 섭식(먹히고)되고 씨앗은 동물 배설물과 함께 다른 곳에 뿌려진다.

 

배설물은 씨앗이 발육하는 데 훌륭한 토양성분으로 작용하며 새 생명의 성장을 돕는다. 과일의 각 없는 둥근 형태는 바람과 동물에 의한 간섭이나 마찰로부터 받는 영향을 최소화하여 가지로부터 떨어지는 확률을 낮추는 작용을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생명의 근원인 (수분)의 보존에 있어 최상인 형태가 선택된 진화적 결과가 바로 그것이다.

 

생존을 위해 물을 효율적으로 지니기 위해서는 표면적 대 부피의 비율이 중요하다. 즉, 외부와 접하는 표면적을 줄이고 물을 담는 내부 부피의 극대화 전략이 필수적이다. 예로서 동일한 부피를 지닌 정육면체와 구형이 지닌 각각의 표면적 크기를 비교하면 이해가 쉽다.

27㎤의 부피를 지닌 정육면체의 표면적은 54㎠인 데 반해 같은 부피의 구형은 43.5㎠의 표면적을 지닌다. 구형의 외부에 노출된 표면적은 정육면체의 80.5%에 불과하다. 구형이 생존에 보다 유리한 형태라는 것은 둥근 등 모양을 지닌 소형 딱정벌레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만큼 둥근 모양은 생존을 위한 내용물 확보에 효율적이다.

 

외부에 드러남보다 내적 성숙함이 더욱 중요한 것은 오랜 교훈이자 추구해야 할 덕목이다.

요즘 사회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 내적으로 충만하지 못하거나 정신적으로 미성숙함에도 외적인 성장과 화려한 겉치레에만 집착하는 풍토에 젖어 있는 건 아닌지. 우리 삶에 있어 외적 모습과 내적 품성의 바람직한 조화를 이룸에 있어서도 과실의 둥근 까닭을 투영시켜 볼 연유가 있다. 




 

 

 


 




 











 


 



 



 



 









 

 


 

‘헐크’  ‘독종’  ‘빅스마일’  ‘시카고 와이삭스 대사’….

한국 프로야구의 살아 있는 전설, 이만수(57) 전 프로야구 SK 와이번스 감독의 별명이다.

남들은 그가 탄탄대로를 달려온 것처럼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그의 45년 야구인생 뒤안길을 파헤쳐 보면 피눈물 범벅이다.

 

야구 국가대표에서 탈락하는가 하면 프로야구 16년 만에 방출까지 당하는 수모도 겪었다. 하지만 그는 오뚝이처럼 다시 살아났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동양인 첫 코치로 팀 우승을 견인한 뒤 금의환향해 감독으로 승부사적인 면모를 보였다. 지난해 시즌이 끝난 뒤 지휘봉을 내려놓고 재능 기부 활동을 하고 있는 이 전 감독은 라오스에 야구 씨앗을 뿌리는 행복나눔 전도사로 ‘제2의 야구인생’ 길을 걷고 있다.

 

그는 지난해 11월 12일 라오스로 떠나 18박19일간 일정을 마치고 지난달 30일 귀국, 재능 기부활동 중이다. 14일 오후 인천 연수구 테크노파크로 송도센트럴파크에서 ‘라오스의 필립 질레트(1904년 한국에 야구를 전한 선교사)’를 꿈꾸고 있는 이 전 감독을 만났다.

 

‘은퇴하고 무슨 일?’ 걱정했는데… 22가지도 넘어

 

이 전 감독은 그라운드에 있을 때보다 더 바쁘게 산다.

지난 4일부터 일주일 동안 경북 문경시에 있는 글로벌선진학교(GVCS)에서 새카맣게 어린 후배들을 지도했다.

지난 8일에는 서울 명동 우리은행 명동금융센터 앞에서 하이패밀리 주최로 열린 ‘행가래(행복한 가정의 내일로) 거리 캠페인’에 참여해 시민들을 헹가래치는 캠페인에도 참여했다.

 

사실 이 전 감독은 유니폼을 벗고 나서 무엇을 하고 살까 막막했다고 했다. 그때 40년 동안 써온 야구 일기를 떠올리고 펼쳐보니 야구와 관련된 일이 22가지나 되더란다.

그 1순위가 재능기부다. 현역 시절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겠다는 의미로 자신의 재능을 사회 곳곳에서 나눠주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봄, 현지에 있는 한 지인의 소개로 1000만원 상당의 야구용품을 보내면서 라오스와 인연을 맺었다. 그는 현지에 ‘라오 브라더스’라는 팀을 만들어 구단주(?)가 됐다.

아직은 오합지졸, 손가락이 잘린 청년 등 최근엔 선수가 60명으로 늘었다. 이 전 감독의 올해 목표는 라오스에 야구장을 짓고 ‘이만수 열린재단’을 설립하는 것이다.

 

벌써 가속도가 붙었다. 라오스 국가올림픽위원장과 전 체육장관 등을 만났고, 또 야구협회 설립도 많이 진척됐다.

 

“사회주의 국가여서인지 선수들이 잘 웃지 않았는데 며칠이 지나자 하이파이브를 하고 서로 등을 두드려주는 등 선수들의 표정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현재 라오스에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 관계자들을 비롯해 6명의 스태프가 현재 선수들의 훈련을 돕고 있습니다.”

 

이 전 감독에 따르면 라오스는 20세기 초 질레트 선교사 YMCA를 통해 우리나라에 야구를 전해준 상황과 흡사하다.

 

“우선 1세대에게는 야구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세대에서 3세대로 넘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아시아 및 세계 대회에도 참가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는 오는 3월 비엔티안에 완공되는 야구센터 개관에 맞춰 다시 한 번 라오스를 방문할 계획이다. 국내 프로야구 현장도 소홀히 하지 않을 계획이다. 올 시즌에는 MBC 스포츠플러스 객원해설위원으로 마이크를 잡는다.

 

10년을 매일 4시간 자면서 비전(Vision)을 품다

 

14세 까까머리 소년에게 야구방망이는 꿈과 희망이었다. 어린 나이에 하루에 4시간밖에 자지 못하고 운동한다는 것은 지금도 상상할 수가 없다. 그렇게 시작된 하루 4시간만 자는 생활은 대학 졸업 때까지 계속됐으며 지금도 주요 고비마다 습관처럼 되살아나고 있다.

 

이 같은 억척은 아버지와 한 약속 때문이었다. 게임에서 못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안타를 한 개도 치지 못하고 집에 들어가는 날에는 집안이 발칵 뒤집혔단다. 방망이와 글러브는 아버지의 도끼 세례를 피할 수 없었다. 운동을 늦게 시작한 터라 중학교 과정을 1년 더 다녔지만 대구상고에 올라가서는 전국에서 최고의 자리에 설 수 있었고 대학시절엔 꿈에도 그리던 최연소 태극마크를 달기도 했다.

 

어린시절 호랑이 같은 군인 출신 아버지 밑에서 신앙생활이란 있을 수 없었던 그가 독실한 기독교인이 된 것은 대학 1학년 때 만난 첫사랑인 지금의 부인 이신화씨의 기도 덕분이다.

 

홈런왕 삼관왕 MVP도… '아 옛날이여∼'

 

 

대학을 졸업하던 해인 1982년 마침내 국내에도 프로야구가 탄생하게 됐다.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중학교 때 1년 유급이 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한국 프로야구 원년 1호 안타, 1호 홈런, 1호 타점을 기록하며 젊은 나이에 최고의 스타덤에 오르게 됐다. 최고의 자리에서 모든 이들의 사랑과 부러움을 받았다.

 

하지만 그렇게 잘나가던 이 전 감독에게도 나락의 순간이 찾아왔다. 한순간에 주전선수에서 후보선수로 벤치만 지키던 신세가 됐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벤치에 앉아서 눈치를 보며 음료수를 축내는 일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 팀에서 그것도 16년간 선수생활을 했던 이 전 감독에게 구단에서는 방출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말이 방출이지 사실상 ‘해고’나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이제 이만수의 시대는 끝났다’고 했다.  

 

여행용 가방 하나 달랑 들고 미국으로

 

98년 아무 준비도 없이 도망가다시피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갔다. 달랑 여행용 가방 하나였다. 영어도 한마디 못하고 낯설고 문화도 다른 이곳에서 그가 살아 갈 수 있는 길은 오로지 땀방울을 흘리는 길밖에 방법이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야구밖에 없었다. 학창시절 몸엔 밴 ‘10년 고생’ 습관을 다시 불러냈다.


 


 



 

‘하나님의 4번 타자’ 낮은 곳에 서다

 

첫해 그가 미국프로야구에 들어간 팀이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팀이었다.

 ‘그래, 두고 보자! 코치로서 성공하고 금의환향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이만수라는 브랜드는 모래알만도 못했다.

메이저리그 코치는 동양인으로 상상도 할 수 없는 때였다. ‘마이너리그 코치 생활을 5년, 메이저리그 코치로 5년 하겠다’는 꿈을 일기장에 썼다. 하루 4시간만 자는 생활이 또 시작됐다. 신기한 일은 일기장에 적은 일정보다 더 빨리 꿈이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마이너리그 코치를 2년 하고, 3년째 메이저리그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옮기게 됐다.

 

금의환향… 약속은 하늘이 무너져도 지켜야

 

처음엔 당장이라도 서울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꿀떡같이 났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혼자서 화장실 샤워기를 틀어놓고 참 많이 울었다고 했다. 그때 위안을 받은 말씀이 출애굽기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 14:13∼14)

 

마침내 그는 미국 온 지 9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끼는 쾌거를 이루고 금의환향에 성공했다. SK 와이번스 수석코치 부임 첫해인 2006년, 문학구장이 만원이 되면 팬티만 입고 운동장을 질주하겠다고 팬들과 약속했다. 설마 했는데 2007년 5월 26일 문학구장이 관중으로 들어찼다. 이 전 감독은 약속의 중요성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스스럼없이 팬티만 입고 운동장을 돌았다.

 

스승의 엉덩이를 34차례 때리다

 

76년 겨울방학. 이 전 감독 일생에서 잊을 수 없는 스승 정동진 전 삼성 감독이 대구상고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그런데 부임 첫날 기막힌 ‘대형사고’가 터졌다. 정 감독은 야구부원들에게 “대구 앞산 충혼탑까지 달려갔다 오라”고 지시했다. 학교에서 충혼탑까지는 천천히 달려 1시간30분이면 왕복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런데 3학년 선배들이 중간에서 “골목길로 좌회전”을 지시했다. 새 감독이 왔으니 놀다 가도 된다는 것이었다. 감독의 명령보다 선배의 말이 더 무서운 시절이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찮았다. 새 감독은 무표정으로 “다시 한번 갔다 오라”고 했다. 부원들은 어쩔 수 없이 충혼탑까지 전력 질주해 50분 만에 학교로 돌아오니 날은 이미 어둑해졌다. 정 전 감독은 말없이 야구 방망이를 들었다. 그러곤 “내가 너희에게 스승다운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면서 “너희들 모두에게 한 대씩 맞겠다”며 그 자리에 엎드렸다.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스승을 모신 첫날 이런 행동을 한 자신에게도 화가 나 그만 방망이를 잡고 10번 정도 내리쳤습니다. 눈에선 눈물이 흘렀지요. 하지만 감독님은 ‘만수야, 아직 24대 더 남았다’고 말씀하시고 더 때리라고 했습니다. 결국 감독님은 34대를 다 맞고서야 일어나시며 내일부터 열심히 하자며 웃으셨습니다.”

 

이 전 감독은 그날 어둠이 내린 운동장에서 벌어진 광경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전설로 남아 있다고 했다. 그는 “당시 스승님의 한없는 사랑에 감동을 받고 선후배들과 서로를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면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채찍을 맞으며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는 모습이 연상돼 지금도 가슴이 아프고 코끝이 찡해진다”고 밝혔다.

 

‘기·집·팀’의 야구철학… 세상에 우연은 없다

 

세 가지만 지키면 승률 150%의 천하무적 야구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이 전 감독의 야구철학이다. 그는 이것만 지키면 ‘천하무적’이 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셋 중에서 ‘기본’이 제일 중요하다. 프로선수가 기본만 잘 지키면 승률 50%는 무조건 챙길 수 있단다. 경기 중 사소하지만 놓치지 쉬운 부분을 선수들이 충실히 수행하면 경기 내용이 달라진다고 했다.

 

다음은 ‘집중’이다. 집중력을 잃어버리면 부상병동으로 갈 뿐 아니라 패배의 늪으로 빠진다는 것이다. 집중만 잘해도 50%는 이기고 들어갈 수 있다는 게 이 감독의 지론이다.

 

마지막은 ‘팀’이다. 우리는 한 가족이라는 의식은 팀플레이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구기 종목, 특히 야구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인천시 남구 은혜의교회(박정식 목사) 집사인 이 전 감독은 세상의 그 어떤 찬사보다 ‘하나님의 영원한 4번 타자’라는 말을 좋아한다.

 

 “개인이 희생하지 않으면 절대로 이길 수 없는 것이 야구입니다. 어느 팀이라도 이 세 가지만 유지하면 천하무적이 될 수밖에 없지요. 한 가지 더 빼놓을 수 없는 게 있습니다. 이 세상에 우연은 없어요. 나의 나 됨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실수하지 않는 분이시라는 사실입니다.” ( 윤중식 기자) 


 

 





 





 










 

성경에 나오는 중요한 교리적 주제들을 가정예배를 통해 배울 수 있도록 한 특별한 예배 안내서가 나왔다.
 

‘교리와 함께하는 365 가정예배’(임경근 저, 세움북스). 이 책은 1년 365일 가족과 함께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이른바 ‘가정예배 안내서’다.

하지만 단순히 가정예배를 위한 안내서가 아니다. 가정예배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묵상(QT), 소그룹 모임, 구역예배에서도 성경공부 교재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이 특징이다.
 

일반적인 가정예배서와 달리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를 중심으로 집필된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1563년 만들어진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순서와 성경말씀에 근거해 신앙인들이 알아야 할 중요한 교리를 쉽게 배울 수 있도록 했다.









 

교리문답 순서에 맞춘 365일 예배 안내서

교리와 함께하는 365 가정예배 / 임경근 / 세움북스 / 22,000원
 


 

저자 임경근 목사(다우리교회)는 “성경 지식이 늘어나면 다음으로 필요한 것이 교리적 지식이다. 교리는 성경을 논리적 주제에 따라 잘 정리해주는 것”이라며 “요즈음처럼 이단들이 득세하는 때, 성경에 나타난 교리적 지식을 잘 가르쳐서 이단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가정에서 부모가 성경을 잘 가르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대다. 이단들이 자신들이 고안하고 만든 교리적 체계로 우리뿐만 아니라 자녀들을 유혹하고 공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올바른 교리로 무장돼 있지 않으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된다.

 

저자는 “교리를 잘 알면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이 무엇인자 잘 알 수 있다”며 “교리적 체계를 세워갈 때, 우리 믿음이 든든히 서고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에는 특별부록으로 종교개혁 신앙을 따르는 모든 교회가 따를 수 있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들어가 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첫째는 인간의 죄와 비참에 대한 것,

둘째는 인간의 죄와 비참으로부터 어떻게 구원을 얻는가에 대한 것,

셋째는 구원받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따라서 ‘교리와 함께하는 365일 가정예배’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순서를 그대로 따라간다. 자녀들에게 어려울 수 있는 부분도 있는 만큼 여러 세대가 함께 교리적 주제들을 놓고 생각하고 토론하며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해놨다.

 

또한 가정예배에서 토론할 수 있도록 ‘질문’ 코너도 만들어 놓았으며, 일주일에 하루 분량은그리스도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면서 익히고 훈련해야 할 ‘성품’을 52개 주제로 나눠 공부하도록 배치했다.

 

이 책의 사용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자녀들과 함께 교리와 관련된 성경구절을 먼저 읽는다. 그리고 그 교리에 관한 해설을 읽은 다음, 질문 문제를 생각해보고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으면 된다. 그리고 찬송하고 기도로 가정예배를 마치면 된다. 굳이 예배가 아니더라도 성경공부 형태로 진행해도 무방하다.

 

위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저자는 “이 책은 기본적으로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들이 함께 읽으며 교리적 주제를 공부하도록 고안됐지만 개인적으로 교리공부를 할 수 있고, 중고등부나 청년 그룹에서 읽고 토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교리와 함께하는 365일 가정예배’의 보다 구체적인 사용 매뉴얼은 다음과 같다.(책 내용 중에서)

 

1. 가정예배란 무엇인가요?

 

1) 가정예배, 교회 예배와 달라요!

 

‘예배’하면 주일 예배가 생각납니다. ‘묵상, 찬양, 대표기도, 성가대, 특송, 설교, 헌금, 축도’ 같은 순서가 머리에 스쳐 지나갑니다.

가정예배도 그 공적 예배를 흉내 내야 할까요?

아니요! 가정예배는 교회의 예배 형식을 따라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정은 교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정예배는 따로 정해진 형식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옳습니다.

성경은 가정예배를 하루에 몇 번 해야 한다는 지침을 주지 않습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루에 세 번 기도한 것(시 55:17)에서 유추해 하루 세 번 가정예배를 드리는 전통이 있긴 합니다만, 이 또한 유추한 기준일 뿐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가정예배’라는 이름도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에서는 ‘가족기도회’ 혹은 ‘가정기도회’라고 부릅니다. 이렇듯 가정예배는 내용의 성격상 ‘가정 경건회’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2) 무엇을 하나요?

 

‘말씀’과 ‘기도’와 ‘찬송’이 있으면 됩니다. 그 순서가 바뀌어도 좋습니다. 중간에 가족들의 대화가 길어져도 상관없습니다. 온 가족이 하나님 앞에 둘러앉아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그것이 가정예배의 핵심입니다. 이런 가정예배는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누릴 복된 자유이며 기쁨입니다.

 

3) 언제 하나요?

 

가정예배는 하루 중 언제 하면 좋을까요? 각 가정의 사정에 따라 결정하면 됩니다. 가족 회의를 통해 가장 잘 모일 수 있는 시간을 정하고 규칙적으로 일관성 있게 하면 됩니다.

필자가 네덜란드 개혁교회에서 배운 전통은 매일 하루 세 번, 매 식사 시간에 합니다. 식사가 끝나면 성경을 읽고, 가정예배용 365일 책을 읽고, 찬송하고, 기도하는 형식으로 진행하기도 합니다.

스코틀랜드 전통은 하루에 두 번, 식사 전 오전과 오후 시간에 합니다.

우리 한국 상황에서는 언제가 가장 좋을까요? 이른 아침일 수도 있고 저녁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가족이 언제 모두 모일 수 있는가’입니다. 모두 모일 수 있는 그 시간이 그 가정에 가장 좋은 시간입니다.

 

4) 얼마나 오래 하나요?

 

모든 것을 적당하게 질서대로(고전 14:40) 하는 것이 좋습니다. 너무 길거나 너무 짧으면 안 됩니다. 그럼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요? 대체로 15분 전후가 좋습니다.

성경을 읽고 가정예배 지침서를 읽고 찬송하고 잠시 얘기를 나누고 기도하는 모든 시간이 너무 길면 안 됩니다. 며칠 반짝하고 말 것이 아니라, 평생 할 것이기 때문에 무리하게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때에 따라 오래 할 수도 있고 짧게 끝낼 수도 있습니다만 아이들이 있을 경우, 너무 오래하면 안 됩니다.

 

5) 누가 인도하나요?

 

가능한 한 아버지가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에게 가장의 권위를 부여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없을 경우, 제임스 알렉산더는 그 집의 장남이 인도하도록 권면합니다만, 남편에게 위임을 받아 아내가 인도해도 됩니다.

 

6) 분위기는 어떠해야 하나요?

 

경직되지 않고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가정예배에는 온 가족이 얘기를 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이 시간이 딱딱한 훈계나 지겨운 잔소리를 늘어놓는 시간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마음을 내어놓고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수 있는 따뜻한 분위기는 가정예배가 가진 독특한 특징입니다.

이 점을 살리지 못하면 가정예배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갖게 되고 오래가지 못하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어릴 때 가정예배를 해 본 사람들 가운데 많은 수가 가정예배에 대해 지긋지긋하다는 인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그렇다고 가정예배를 장난스럽고 경망스럽게 진행하는 것은 유익하지 못할 것입니다. 가족의 신앙을 교육하고 훈련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7) 기도는 어떻게 하나요?

 

기도는 간단명료하며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미사여구를 동원한 멋진 기도나 같은 말을 반복하는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좋지 못합니다. 또한 길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기도는 골방에서 혼자 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의 대화이기 때문에 솔직하게 해야 합니다. 또한 기도제목은 먼 얘기가 아니라, 가족 안이나 주변에서 일어나는 구체적인 것들이어야 합니다. 물론 다양한 형식으로도 기도해 볼 수 있습니다.

 

8) 찬송은 어떻게 하나요?

 

가능한 한 쉬워야 합니다.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찬송을 선택하십시오. 또 같은 곡을 반복해서 부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잘 알지 못하는 좋은 찬송을 한 곡씩 배우는 것도 좋습니다. 요즈음 어린이와 청소년은 CCM, 부모 세대는 찬송가를 주로 불러서 가족 사이에 좋아하는 교회 음악이 서로 다릅니다.

그러나 가정에서는 공통분모를 찾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좋아하는 찬송가를 배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앙은 세대를 거쳐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9) 설교하지 마세요!

 

가정예배에서는 설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정예배에서 실패하는 경우는 아버지나 어머니가 설교를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설교는 교회에서 목사님으로부터 듣고, 가정에서는 온 가족이 읽은 성경과 설명된 교리적 내용을 배우고 적용합니다. 모든 가족이 하나님으로부터 듣고 배우고 나누면 됩니다. 잘못하면 설교는 잔소리가 되고, 아이들에게는 가정예배가 지겹고 싫은 시간이 될 것입니다. 물론 필요할 경우에 훈육의 말은 가능할 수 있습니다.

 

2. 이 책을 가정예배에서 어떻게 사용하나요?

 

1) 성경 읽기

 

그 날의 성경 본문을 읽습니다. 가능한 한 아버지가 성경을 읽어 주십시오. 가끔은 가족이 나눠서 읽는 것도 좋습니다만, 너무 자주 그러면 말씀을 아버지로부터 ‘듣고 배우는’ 기쁨과 즐거움을 놓칠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가정의 영적 책임자입니다.

 

2) 교리 설명 읽기

 

읽은 성경에 등장하는 교리 설명(내용)을 읽습니다. 필자는 어린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만약 아이가 이해할 수 없는 단어나 내용이 있을 때는 인도자가 설명을 해 주십시오.

교리적 주제가 교회 역사를 거치며 정리된 것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수준에 맞지 않게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당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언젠가 아이들의 마음속에 그런 질문이 생길 때, 이때 들었던 답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교리교육의 유익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미리 교육하지 말고 질문이 생기기 시작할 때 답을 가르쳐 주는 것이 가장 좋다고 얘기하기도 하지만, 적어도 신앙교육만큼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과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하는지 ‘미리’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성경의 교훈이고, 하나님의 뜻입니다.

 

3) 토론하고 얘기 나누기

 

교리 설명을 읽은 후에는 반드시 아이들에게 질문을 하십시오. 묻고 답하는 방법은 인류 역사를 통해 가장 좋은 교육법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그것이 바로 교리문답 교육의 특징이자 장점이기도 합니다.

 

질문을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아이들이 내용을 잘 이해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질문은 어려우면 안 됩니다. 시험이 아니기 때문에 지적 능력이 보통이라면 누구나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해야 합니다. 물론 아이의 나이를 고려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질문은 창피를 주려는 것이 아니라, 격려하기 위함임을 기억하십시오.

둘째, 아이들이 주의를 기울여 성경과 교리 설명을 잘 들었는지 알기 위해서입니다. 질문을 통하여 자녀들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파악해 지속적으로 도와줄 수 있습니다.

셋째, 아이들과 부모가 같은 주제를 가지고 생각과 얘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이 시간은 교리적 지식을 정리하는 시간이지만 각자의 신앙과 삶을 나누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신앙적 고민과 삶의 고통을 진솔하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부모도 자녀들에게 어려움을 얘기할 수 있으며, 자녀들도 부모에게 솔직한 모습을 얘기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4) 기도하기

 

책의 빈 공간에 기도 제목을 적어 두는 것도 좋습니다. 아니면 따로 기도 노트를 정리하는 것도 좋습니다. 다음 해에 같은 본문을 공부할 때 새로운 감동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정을 인도하시고 돌보시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5) 반복 효과!

 

이 책은 한 해만 하고 끝내지 마십시오! 매년 혹은 격년으로 반복해서 공부하면 좋습니다. 마치 우리가 매 주일 복음을 반복해서 듣는 것처럼 말입니다. 네덜란드 개혁교회는 매주 오후 시간에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강의합니다. 1년이면 설교를 통해 요리문답 전체를 배울 수 있습니다. 이것을 평생 반복합니다. 놀랍지 않나요? 그들의 신앙이 얼마나 탄탄할는지요!

 

6) 성품을 배우고 훈련하기!

 

이 책은 매 일곱째 날에 성품 주제를 다룹니다. 성품은 그리스도인의 신앙 인격입니다. 성품은 성령의 열매입니다(갈 5:22-23). 교리적 지식은 머리에만 머물지 않고 자연스럽게 삶으로 연결됩니다. 신자는 믿는 바를 삶 속에서 실천합니다. 성령님이 우리가 배운 신앙을 삶 속에서 표현할 수 있게 도와주십니다. 베드로는 그것을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벧후 1:4). 그러므로 온 가족이 한 주일에 한 성품을 배우고 훈련한다면 큰 유익을 얻을 것입니다.

 

3. 이 책을 다른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나요?

 

이 책은 기본적으로 가정예배용으로 만들어졌습니다만, 다른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개인 묵상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교리 공부에도 좋습니다. 더 깊은 교리 공부를 위한 좋은 입문이며, 더 나아가 그룹 성경공부 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성경 본문이 있고 그 본문에 근거한 교리를 해설했기 때문에 큐티 시간(Q.T., Quiet Time)에 교리를 공부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교리를 공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설명을 들어야 하는데 그런 시간을 마련하기도 어렵습니다.

교리를 가르쳐 주는 교회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 책을 펼쳐 매일 읽어 간다면 이슬비에 옷 젖듯이 자연스럽게 교리적 지식을 쌓아 가게 될 것입니다.

교리를 더 깊이 공부하기 원하는 분들을 위해 ‘HC 27문’ 혹은 ‘WSC 34’와 같이 안내해 놓았습니다. 그 요리문답 본문과 그에 해당하는 해설서를 찾아본다면 좋은 심화 공부가 될 것입니다.

 

또 그룹 교리 공부 교재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매주 모일 경우, 본문 아래 제시된 질문에 각자가 미리 답을 찾은 뒤 모임에서 발표하고 토론하는 형태로 공부할 수 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본문을 찾아보고 싶으면 본서 부록에 수록된 것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아래에 소개된 책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한국 경제개발의 종잣돈이 된 서독 상업차관을

끌어들이는 데 결정적 공헌을 한 백영훈 원장

 

                         

1961년 5월 16일 군대를 앞세워 집권한 박정희는

‘하면 된다’는 의지만 확고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경제’는 의욕만 갖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집권하며 내걸었던 공약대로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해결하고자 하는 열망은 강했지만

안타깝게도 ‘돈’이 없었다.

5·16군사정변 직후인

1961년 11월 미국의 원조를 기대하고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찾아간 그는

문전 박대 당한다.

 

 

미국 측에서 보기에, 준비해 들고 간 사업계획서들이

황당하기도 했지만 당시 케네디 정부는

5·16군사정변 자체를 곱지 않은 눈길로 보고 있었다.

 

거기다 한국에 돈을 빌려 주면

쿠데타를 인정하는 꼴이 되고

이로 인해 아시아 전체로 쿠데타가

파급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무렵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에서 연이어

쿠데타 조짐이 일고 있었다. 

미국 금융기관들도 야박하게 퇴짜를 놓기는 마찬가지였다.

겉으로는 무상 원조를 주고 있는 나라에 차관까지 주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한국의 미래를 불신하고 있음이 역력했다.

 

      

미국 다음으로 기댈 수 있는 나라는 일본밖에 없었지만

 

‘국교도 없는 나라에 어떻게 돈을 빌려 주느냐?’고 하니

할 말이 없었다. 

박정희는 새로운 나라를 주목하고 있었으니

바로 ‘라인 강의 기적’으로 불리며

신흥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던 서독이었다.

 

 

               

서독 경제는 1950년부터

매년 연평균 8%대의 실질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우리처럼 분단국가의 아픔, 패전의 상처를 딛고

당당하게 일어서는 서독의 모습을 보며

 

            

박정희는

‘우리도 전쟁의 잿더미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뤄 보자’라는

각오를 갖게 되었다.


박정희 군사정부는

1961년 11월 말 정래혁 상공부 장관을 주축으로

‘차관 교섭 사절단’을 구성해 서독으로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주독(駐獨) 대사관에도, 사절단에도

독일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수소문 끝에 알아보니

이승만 대통령 시절 국비 유학생으로

서독(뉘른베르크 에를랑겐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한 독일 경제학 박사 1호

 

백영훈 씨(83·현 한국산업개발연구원장)가

안테나에 걸렸다.

 

 

 

그는 중앙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백 원장은 사절단의 공식 통역관으로 합류한다

사절단은 서독에 도착하긴 했지만

관료들 중

누구도 한국 사람들을 만나 주려 하지 않았다.


“당시 우리 처지는

지금으로 치면 아프리카 최빈국 같은 나라였다.

 

듣도 보도 못한 가난한 나라에서 차관 교섭 사절단이라고

갑자기 찾아와 돈을 빌려 달라고 하면 누가 만나 주겠는가?”

당시 서독의 경제장관은

2년 뒤 총리가 되는 루트비히 에르하르트였다.

 

백 원장은 궁리 끝에

에르하르트 장관과 같은 대학을 나온

자신의 대학 은사를 찾아갔다.


“한국의 딱한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장관을 만나게 도와 달라고 사정했지만

 

은사 역시

도와줄 수 없다는 이야기만 되풀이했다.

나중엔 집에 오는 것조차 반기지 않았다.

 

              

결국

매일 아침 6시 교수 댁 앞으로 가서

사모님이 밖으로 나올 때까지 기다리다

 

마주치면 눈물로 호소했다.

‘사모님, 저를 살려 주세요. 장관님 좀 만나게 해 주세요.’”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자 은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차관과의 약속을 잡았다”는 것이다.

1961년 12월 11일 한국 사절단은

 

마침내 루트거 베스트리크 차관과 만난다.

그리고 이튿날에는 장관까지 만날 수 있었다.

 

한국은 마침내

1억5000만 마르크(당시 3000만 달러)의 상업차관을

빌리는 데 성공한다.

 

사절단은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상업차관이었다.

사절단은 귀국하고 백 원장은

뒷마무리를 위해 독일에 남기로 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은행의 지급 보증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한국의 재무부를 중심으로 해외 은행들을 수소문했지만

 

국가 신인도가 없었던 한국에

지급 보증을 해 주겠다는 나라는 없었다.

 

기적적으로 성공한 차관 협상이 물거품이 되어 버릴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다시 백 원장의 말이다.

 



 

하인리히 뤼브케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치고

독일 최고훈장인 특등십자대공로훈장을 받은

박정희 대통령.

한국 정부도 서독 대통령 내외에게

대한민국 최고 훈장인

무궁화대훈장을 수여했다.





“못사는 나라 국민의 심정이 얼마나

가슴 찢어지는 일인지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나는 매일 울면서 독일 친구들을 만나러 다녔다.

 

‘돈 꾸러 왔는데

지급보증 서 주는 데가 없어 돈을 가져 가지 못하고 있다,

 

이번 일을 성공시키지 못하면

나는 독일에서 그냥 죽어버릴 것’이라고 했다.

 

            

어느 날 소식을 들었는지 대학에서 같이 공부했던 친구

슈미트가 찾아왔다.

 

그는 당시 서독 정부에서 노동부 과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슈미트 과장은 대뜸 백 원장에게

“너희 나라 길거리에 실업자가 많지 않으냐?”고 물었다.

 

백 원장은 “그런데?”라고 되물었다.

 

슈미트 과장은 다음 날

두꺼운 서류 뭉치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지금 서독은 탄광에서 일할 광부가 모자란다.

웬만한 데는 다 파내 지하 1000m를 파고 내려가야 하는데

너무 뜨거워 다들 나자빠져 있다.

 

파키스탄, 터키 노동자들도 다 도망갔다.

혹시 한국에서 한 5000명 정도를 보내 줄 수 있겠느냐.

 

간호조무사도 2000명가량 필요하다.

 

시체 닦는 험한 일도 해야 하는데

독일인은 서로 안 하려고 한다.

 

만약 광부와 간호사를 보내 줄 수만 있다면

 

이 사람들 급여를 담보로 돈을 빌릴 수 있다.”

백 원장은 즉시 신응균 주독 대사를 찾았다.

 

신 대사는 백 원장의 말을 듣더니

“5000명이 아니라 5만 명도 가능한 것 아니냐”고 했다.

 

달러와 일자리가 부족한 한국으로서는

마다할 일이 아니었다.

신 대사는 본국에 긴급 전문을 넣었고

한국에서는 바로 모집 공고가 난다. 

당시 서독 광부의 한 달 임금은 국내 임금의 7∼8배에 달했다.

 

비행기 자체를 타기도 어려운 시절이다 보니

고임금을 받고

서독 같은 선진국에서 일할 수 있다는 생각에

수많은 사람이 몰렸다.

 

        

한국의 실업률은 40%에 육박했으며

1인당 국민소득은 79달러로

 

필리핀(170달러) 태국(260달러)에도 크게 못 미쳤다.

한국은행 외환보유고 잔액이 2000만 달러도

되지 못했던 시절이다.

1차 광부 500명 모집에 2894명이 몰렸다.

6 대 1의 경쟁률이었다.

 

선발 자격을 2년 이상 경력을 가진 사람으로 내걸었는데도

도시에 사는 경험 없는 대학 졸업자들도 무조건 신청했다.

 

탄광 갱도조차 구경 못한 ‘가짜 광부’들이

서류를 가짜로 만들어 응모했다.

1963년 9월 13일자 경향신문은 이렇게 보도하고 있다.

‘신체검사에서 실격된 1600명을 제외한

1300여 명 중 절반이 광부 경력이 없는

고등실업자임이 밝혀졌다.

 

노동청 관계자에 의하면 이들 광부 모집에

응모한 가짜 광부들이 300원 내지 500원으로

가짜 광산취업증명서를 사서 제출했으며

 

      

이 증명서 중에서 유령 광산 20여 개소가 발견되었다.

노동청은 전국 광산지역에 감독관을 파견해

유령 광산에 대한 조사를 할 계획이다.’

실제로 1963년부터 1966년까지 독일에 입국한

광부의 30%가 대학 졸업자였다.

 

서독 루르 지방으로 파견된 광부들은 거의 대학 졸업자였다. 
다들 관심이 높았던 사안이었던 지라 노동부는

1차 모집에 합격한 응시자들을 마치 고시합격자 발표하듯

각 신문에 명단을 실을 정도였다. 

드디어 1963년 12월 22일 오전 5시

독일 뒤셀도르프 공항에 광부 1진 123명이 도착했다.

 

이들은 북부 함보른 탄광과 뒤셀도르프 서쪽

아헨 지역에 있는

에슈바일러 탄광에 배정됐다.

파독 광부들은 지하 갱도 곳곳에서 땀과 눈물을 흘렸다.

 

심지어 목숨까지 잃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은 연금 저축 생활비를 제외한 월급을 고스란히

조국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했다.

 

1977년까지 독일로 건너간 광부는 7932명,

간호사는 1만226명이다. 

이들의 수입은 한국 경제 성장의 종잣돈 역할을 했다.

 

 

이들이 한국으로 송금한 돈은 연간 5000만 달러로

한때 한국 국민총생산(GNP)의 2%에 달했다.

 

 

광부와 간호사들의 파독 계약 조건은 ‘3년간

한국에 돌아갈 수 없고 적금과 함께

한 달 봉급의 일정액은

반드시 송금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들의 급여는 모두 독일 코메르츠방크를 통해

한국에 송금됐다.

이 코메르츠방크가 지급 보증을 서서

차관 도입이 이뤄진 것이다

.

우여곡절 끝에 차관 미션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백 원장은

 

지친 몸을 이끌고 귀국한 뒤 다시 중앙대 교수로 복직한다.

3년이 흐른 1964년 말,

백 원장은 다시 한번 박정희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호출을 받는다.

 

박 대통령은

그 전해인 1963년 10월 군정(軍政)을 끝내고

민간인 자격으로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15만 표라는 근소한 차로 윤보선 후보를 누르고

제3공화국 대통령이 된 터였다.

박 대통령은 백 원장을 현관까지 나와 기다려 맞았다.

그러면서 그에게 “한번만 더 도와 달라”고 부탁한다.

 

 

서독 하인리히 뤼브케 대통령이

 

박 대통령을 국빈 자격으로 초청했는데

통역관이 되어 달라는 것이었다.

 

라인강 기적 설계자 

“고속道 깔고 車-제철-정유 육성” 조언

 



 

동베를린을 바라보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

오른쪽 옆 키 큰 이가 백영훈 통역관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서독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오늘 이곳에서 북한을 보았습니다.

평화와 자유를 위해 수고한 자유 베를린시의 공은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서독으로 떠날 날만 기다리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청와대 회의가 있다고 해서 가 보니 다들 심각한 표정이었다.

서독으로 갈 비행기가 없다는 거였다.


“당초 5만 달러를 주고 20일 동안

미국의 노스웨스트 에어라인에서 비행기를 빌렸는데

미 의회가 쿠데타로 집권한 한국 군인이

미국 비행기를 이용하면 다른 나라를 자극한다고

 

갑자기 취소해 버리고 만 거였다. 독일 방문 열흘 전이었다.”

백 원장은

그 자리에서 대통령 특사로 임명됐다.

 

당장 서독으로 날아가 서독 정부에 비행기를 제공해 달라고

부탁하라는 것이었다.

 

백 원장은 궁리 끝에 일제강점기 때 독일에서 유학했으며

제3공화국 초대 총리를 지내고 물러난

최두선 전 동아일보 사장에게

부탁하여 함께 서독으로 날아갔다.

최 전 사장은 독일에 두터운 인맥을 갖고 있었다.

백 원장 일행은

박정희 대통령의 방독(訪獨) 일정을 상의하겠다며

뤼브케 대통령의 비서실장과 노동부 차관을 함께 만났다.

 

이 자리에서 비행기 이야기를 꺼내려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두 눈을 크게 뜨고 용기를 내 운을 뗐다.

 

“비행기가 없다. 서독이 잘사는 나라이니

비행기 좀 제공해 주면 안 되겠느냐?”

다들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었다.

“독일 관료들이 한동안 물끄러미 우리를 쳐다보더니

일단 돌아가라고 했다.

우리는 안 되는 줄 알았다.

 

떠나기 사흘 전까지 연락이 없었으니까.

 

그러다 떠나기 직전

비행기를 제공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결국 1964년 12월 3일 홍콩을 경유해 서독으로 들어가는

루프트한자 여객기(보잉 707)가

경로를 변경해 서울에 착륙했다.

 

박 대통령이 그 비행기를 타고 독일에 갔다.”

대통령 전용기가 아니라

일반 사람들이 타는 상용 노선에 취항 중이던

 

비행기에 급히 타게 된 것이다.

 

박 대통령은 홍콩 방콕 뉴델리 카라치

카이로 로마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쾰른 공항까지

무려 28시간이나 걸려 독일 땅을 밟을 수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가난하고

해외 경험이 없었는지는 비행기에 동행했던

조선일보 정치부 이자헌 기자의 회고

(‘파독 광부 45년사’)에 잘 나와 있다.

“대통령과 장관들은 1등석에 타고

다른 일행은 이코노미석에 탔다.

 

화장실에 가 보니 이상하게 생긴 물건이 거울 앞에 있었다.

이게 무슨 용도냐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그때 여기자로 유일하게 수행기자로 포함됐던

한국일보 정광모 기자가

‘물비누’라고 설명해 줘 실소를 금치 못했다.

 

기자들도 국제적 촌놈이었고

대통령 일행도 참 초라한 행차였다.

 

기내의 박 대통령 표정도 밝지는 않았다.”
박 대통령이 서독에 국빈 자격으로

초청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 전해 말부터 파견되기 시작한 서독의 광부들 때문이었다.

백 원장의 설명이다. 
 

“연일 서독 신문과 방송에서 헌신적으로 일하는

한국 광부들에 대한 이야기가 실렸다.

 

지하 갱도 1000m에서도 시간외 근무를 마다 않고 일하는

광부들의 모습이 TV에 방영되자

 

서독인들이 크게 감명을 받았다.

마침내 국회의원들이 국회에서 

‘한국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국의 대통령을 초청해 우리의 마음을 전하자’는

결의안을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28시간의 긴 비행 끝에 도착한 박 대통령 일행은

1964년 12월 5일

 

대통령과 총리의 따뜻한 환영을 받는다.

백 원장은 그날

에르하르트 총리가 열어 준 만찬 자리에서 보여 준

박 대통령의 모습을 평생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동양의 가난한 나라에서 온,

당시 마흔일곱이던 박 대통령은

서독 총리를 앞에 놓고

‘우리 국민 절반이 굶어 죽고 있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군인들은 거짓말 안 한다.

빌린 돈은 반드시 갚는다.

도와 달라.

우리 국민 전부가 실업자다.

 

라인 강의 기적을 우리도 만들겠다’고 했다.

눈물을 흘리는 박 대통령 말을 통역하며 나도 같이 울었다.”

“왜 쿠데타를 했느냐?”라고 묻는 총리의 질문에

박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한국도 서독과 마찬가지로

공산국가들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다.

 

공산국가들을 이기려면 우선 잘살아야 한다.

내가 혁명을 한 이유는 정권을 탐해서가 아니다.

 

 

정치가 어지럽고 경제가 피폐해져 이대로는

대한민국이 소생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돈이 없다.

돈을 빌려 주면 반드시 국가 재건을 위해 쓰겠다.”

이날 에르하르트 총리는 향후 한국의 역사를 바꿔 놓을

여러 가지 조언을 한다.

백 원장은 두 사람이 나눈 대화를 낱낱이 기록했고,

 

외무부에 그 기록을 넘겼다. 
 

“박 대통령의 말이 끝나자 총리가 대통령의 손을 꼭 잡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는 박 대통령의 열정과 사명감에 감화된 듯

자신의 경험을 차분하게 이야기하며

한국을 위한 조언을 했다.”

에르하르트 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경제장관 할 때

한국에 두 번 다녀왔다.

한국은 산이 많던데

산이 많으면 경제발전이 어렵다.

 

고속도로를 깔아야 한다.

독일은 히틀러가 아우토반(고속도로)을 깔았다.

 

고속도로를 깔면

그 다음엔 자동차가 다녀야 한다.

 

국민차 폴크스바겐도 히틀러 때 만든 것이다.”
눈을 반짝이는 박 대통령을 바라보며 총리의 말이 이어졌다.

“자동차를 만들려면

철이 필요하니 제철공장을 만들어야 한다.

 

연료도 필요하니 정유공장도 필요하다.

 

경제가 안정되려면

중산층이 탄탄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중소기업을 육성해야 한다.

우리가 돕겠다. 경제고문을 보내 주겠다.”


실제로 박 대통령 귀국 이후 서독은

다섯 명의 경제고문을 한국으로 보낸다. 

독일 초대 경제부 장관(1949∼1963)을 지낸

에르하르트 총리는

이런 점에서

우리에겐 은인과 같은 존재다. 아니 큰 은인이다.

 

당시 박 대통령을 만났을 때

서독 2대 총리(1963∼66년)로 재임하고 있던 그는

 

전쟁의 폐허에서 허덕이던 독일인들에게

‘모두를 위한 번영’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독일 경제를 일으켰다.

 

 

이날 그는

또 박 대통령에게 “일본과도 손을 잡아라”는

파격적인 조언도 했다.

“독일은 프랑스와 16번을 싸웠다.

독일 사람들은

지금도 프랑스에 한이 맺혀 있다.

 

그렇지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우리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가

 

프랑스 드골 대통령을 찾아가 악수했다.

 

한국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공산주의를 막는 길이기도 하다.”

백 원장은

“박 대통령이 그 이야기를 듣더니 화난 표정으로

‘우리는 일본과 싸운 일이 없다.

매일 맞기만 했다’고 말하자,

 

 

에르하르트 총리는

‘지도자는 미래를 봐야 한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에르하르트 총리의 말은

결국 이듬해인 1965년 한일협정 체결로 결실을 보게 되었다.

 

 

이날 두 사람의 대화는

한국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된 셈이다. 

이날 에르하르트 총리는

박 대통령의 손을 마주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회담 후 담보가 필요 없는 2억5000만 마르크를

한국 정부에 제공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한다.

그런데 예상외의 일이 벌어졌다. 

“독일 사람은 교수가 강의하러 들어오면 박수 대신

주먹으로 책상을 수차례 가볍게 두드리는데

 

사전에

이 이야기를 미처 대통령께 전하지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박 대통령이 단상에 올라가자 학생들이

너도나도 책상을 두드리는 것이 아닌가.

 

 

대통령은 이 모습을 보고 야유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통역관이라 멀리 떨어져 있어서

제대로 설명할 수도 없고….

이 양반 얼굴이 빨개졌다.

 

당황했는지 미리 준비해 간 원고를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있었다. 조금 있으니 학생들이

또 주먹으로 책상을 두들겼다.

 

그제서야 박 대통령이

‘아. 무시가 아니라

 

경청의 의미구나’ 하고 눈치 채고는

안심하고 원고를 제대로 읽기 시작했다(웃음).

 

 

 

연설을 마치고 돌아가면서 박 대통령이 내게

 

‘이 사람아, 왜 그런 문화가 있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지 않았나?

창피당할 뻔했다’고 농담조로 핀잔??주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가는 곳마다

 

“한국을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그날 학생들에게 했던 연설도

“우리도 여러분이 이룬 라인 강의 기적처럼

한강의 기적을 만들겠다.

도와 달라”는 거였다. 

박 대통령은

뤼브케 대통령의 안내를 받아 한국의 광부들이 일하는

루르 탄광을 방문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온 대통령을 기다리며

선 광부들의 얼굴엔 온통 석탄이

 

묻어 있었고 작업복 역시 흙투성이였다.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단상에 올랐다.

현지 광부들로 구성된 밴드가

애국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도 애국가를 따라 부르지 않았다.

 

울음소리가 노랫소리를 덮어 버린 거였다.

500여 명의 광부 등

모두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들먹였다. 연주가 끝나자

 

 

박 대통령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코를 풀더니 연단으로 걸어 나갔다.

“만리타향에서 이렇게 상봉하게 되니 감개무량합니다….”

대통령의 준비된 연설은 여기서 몇 구절 더 나아가지 못했다.

이 구석 저 구석에서 흘러나오던 흐느낌이

통곡으로 변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아예 원고를 옆으로 밀친 뒤 이렇게 말했다. 

“이게 무슨 꼴입니까?

내 가슴에서 피눈물이 납니다.

 

광부 여러분,

가족이나 고향 생각에 괴로움이 많을 줄 알지만…

 

비록 우리 생전에는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후손들에게만큼은

잘사는 나라를… 물려줍시다. 열심히 합시다.

 

나도 열심히….”

결국 대통령은 말을 맺지 못하고 소리 내어 울어 버렸다.

그 자리에 함께한 서독 대통령도 눈시울을 적셨다.

 

광부들은

대통령이 탄 차 창문을 붙들고

‘아이고 아이고’ 하면서 통곡했다.

서독에서 머문 일주일(7∼14일) 동안

 

박 대통령은

자동차 전용도로 아우토반을 달렸고

제철소를 견학했다.

가장 관심을 보인 것이 ‘아우토반’이었다.

 

나치 정권하에서 총연장 1만4000km를 목표로

건설하기 시작해 2차 세계대전으로 중단될 때까지

3860km를 완성시켰던 ‘아우토반’은

 

 

박 대통령이 방독할 무렵 ‘세계에서 자동차가

가장 빨리 달릴 수 있는 도로’로유명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서독 측 관계자에게

아우토반의 건설과 관리 방법,

소요 비용과 건설 기간, 건설 장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결국 3년 뒤인 1967년 11월 7일 청와대 회의에서

건설부 장관에게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지시하며

직접 진두지휘까지 하기에 이른다. 

백 원장은

“‘대한민국 건설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젊은 박정희’를

 

 

바로 옆에서 보았던 경험이

나의 평생 삶을 이끌어 준 나침반이다”라고 말한다.


“당시 박 대통령을 보며 그가 나라와 국민을 위해

목숨을 걸었구나 하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아우토반에 갔을 때

박 대통령이 중간쯤 자동차를 전부 세우더니

차에서 내려 무릎을 꿇고 땅에 입을 맞추었다.

 

 

다들 울면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육 여사도 서독 방문 내내 눈물을 훔쳤다.

남편 때문에 울고 광부와 간호사 때문에 울고.”

백 원장은

마치 어제 일처럼 그때 일이 기억나는지

눈가가 촉촉이 젖어 들고 있었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것은

박 대통령 혼자가 아니었다.

정든 고향을 떠나 언어도 통하지 않는

물 설고 낯선 땅에서

목숨 내놓고 일한 광부와 간호사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우리는 돈도 빌릴 수 없었고 경제 발전도 없었다.

나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한국인들이 정말 자랑스럽다.”  
 




 


 




 






 

    



 



 

 

 

미국 대형 소매업체 '타겟'이 캐나다 사업을 철수하기로 15일 결정했다.

빗나간 '타겟'… 캐나다서 133곳 매장 전면 철수

 

당초 목표로 했던 기간까지 수익을 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이날 타겟은 향후 2년 안에 캐나다내 사업을 완전히 철수시키겠다고 발표했다. 2013년 미국 국외로는 처음으로 캐나다에 매장을 낸 타겟은 현재까지 133곳의 매장과 1만7600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하지만 2021년까지 수익을 내겠다는 당초 목표가 현실성이 없다는 판단 아래 사업을 접기로 한 것이다.

 

캐나다 진출 전에는 많은 캐나다 소비자들이 타겟을 이용하기 위해 미국으로 넘어왔었다. 하지만 막상 진출을 하자 높은 가격과 좋지 않은 접근성으로 인해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게 됐다.

 

캐나다의 실적 부진 여파에 이번 달 종료되는 회계연도 4분기 타겟의 세전 손실 규모는 54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앞서 작년 11월에도 타겟은 캐나다 지역 손실 규모가 20억달러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타겟'에 이어 '소니'도 캐나다 전역 매장 문 닫는다

 

소니가 캐나다 전역 모든 소니 스토어의 운영을 중단한다.

 

오타와시티즌, 안드로이드헤드라인스 등 외신들은 15일 소니가 캐나다 전역의 14개 모든 소니 스토어에 대한 운영을 중단한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소니는 최근 지속적인 실적 부진에 따른 사업 재편의 일환으로 이번 결정을 내렸으며 소니 스토어 직원들에게는 공지사항을 통해 두 달 안에 모든 매장을 폐쇄한다고 알렸다.

 

직원들에 공지된 소니의 성명서에는 "다음 6주~8주 동안 우리는 캐나다에서 소니 매장들을 폐쇄하고 온라인 상점, 전화상담 판매 등 모든 사업 부문을 재편할 것"이라면서도 "과거 소니의 제품을 샀던 고객들을 위해 지속적인 서비스 지원은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신들은 소니가 내린 이번 결정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직원들이 직장을 잃을 것인지 등의 영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한편 소니는 지난해 PC 브랜드 바이오 사업을 매각했으며 TV 사업을 분사했다. 작년 2조1천52억원(2천300억엔)의 순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현재 TV사업과 스마트폰 사업의 매각설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의 성매매 실상에 관한 동영상입니다.


 


 


 


 



 

 





 




 



 

 



 





 







 

유가 급락하는데 산유국들은 왜 방관할까?


 

국제 유가가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면서 배럴당 50달러 밑에서 맴돌고 있다. 지난해 6월 108 달러에 비해 불과 반년 만에 절반 넘게 떨어졌다.

 

과거 같으면 OPEC(석유수출국기구)을 비롯한 산유국들이 유가 방어를 위해 생산량을 감축하며 대응에 나섰겠지만 지금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지난해 11월 OPEC의 생산량 감축 회의가 실패로 끝난 이후 유가하락은 계속되고 있지만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산유국들이 고통을 감내하면서 현재의 저유가방관하고 있는 데는 그만한 속사정이 있다.

 

◈ 저유가의 원인

 

최근의 저유가는 수요와 공급 모두에 원인이 있다.

 

수요 측면에서는 세계 경제 부진으로 소비량이 늘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 공급 측면에서 이전에 없던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 석유 대체재인 '셰일유'가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본격적인 시장 확대에 나선 것이다.

 

셰일유는 전통 원유와 달리 셰일층으로 불리는 암석에서 추출한 원유로 석유와 같은 성질을 가진다. 1694년 영국에서 추출법이 처음 개발됐지만 높은 생산 비용으로 경제성이 낮아 상업화되지 못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지난 수년간 정제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게 되면서 새로운 원유 공급원으로 부상했다.

 

실제 지난 25년간 원유생산량이 줄어 오던 미국은 셰일유 생산에 힘입어 지난해 원유 생산량이 2008년의 두 배로 증가했다. 이 때문에 1970년대 오일 쇼크 이후 금지해온 석유 수출을 재개하는 방안이 논의될 정도다.

 

지난 수년간은 원유 가격 강세로 셰일유 공급에 따른 원유시장의 충격이 흡수됐다. 그러나 수요가 감소하고 가격이 급락하자 경쟁이 가열되면서 기존 시장을 지키려는 전통 산유국 OPEC과 미국 정유업체간 치킨게임식 출혈 경쟁이 시작됐고, 이는 원유 가격을 더욱 끌어내리는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OPEC은 국제 원유시장에서 셰일유의 비중 확대를 견제하고 시장 점유율을 지키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가격 하락을 감수하고 있다. OPEC을 주도하는 사우디 석유장관은 지난해 12월 22일 "유가가 20달러든, 40달러든, 60달러든 상관없다"며 "시장 점유율을 지킬 것"이라고 공언했다.

 

셰일유에 결코 밀리지 않겠다는 것으로, 지난 수년간의 유가 강세에 힘입어 저유가에 버틸 실탄을 확보하고 있다는 자신감 표현이기도 하다. 사우디의 외환보유액은 지난해 10월 기준 2천412억 달러에 이르고, 2000년 국내총생산(GDP)의 120%였던 정부 부채는 2% 수준까지 떨어졌다. 유가 하락으로 재정 수입이 감소해도 국채 발행 등으로 버틸 여력이 있다는 의미다.

 

사우디는 출혈 경쟁을 감수하면서 미국 정유회사들이 셰일유 생산으로 마진을 남길 수 없는 수준까지 가격을 떨어트림으로써 스스로 생산을 줄이거나 버틸 수 없게 만들고, 이를 통해 원유시장 주도권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셰일유 손익분기점은 최소 50달러 중반은 넘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50달러 아래서 맴도는 현재의 유가 수준은 미국 정유 업체들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고, 일부 정유회사는 북미 셰일유전의 지분을 매각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물론, 원유 수출에 의존하는 산유국들의 고통도 미 정유 업체들 못지않게 크다.  







 



 

 

 

 
 

 

 



 




 





 








 



 



 

세계 첫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했던 코닥이 망한 까닭


 


한 동안 코닥과 캐논이 어느 나라 회사인지 헷갈렸습니다. 코닥은 미국, 캐논은 일본 회사지요?

코닥은 1882년 미국 뉴욕 주 로체스터의 은행 서기 조지 이스트먼이 만든 회사입니다. 정식 명칭은 이스트먼 코닥사이고요. 이스트먼은 ‘K’자가 행운을 가져온다고 믿었고 ‘K’자를 앞뒤에 넣어  ‘Kodak’을 회사 이름으로 지었습니다. 이스트먼은 회사를 필름 시장의 절대 지존으로 만들고 “친구들이여 내 일은 끝났다. 왜 기다려야 하지?”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살합니다.

캐논은 1930년대 고로 요시다가 만든, 일본 도코에 본사가 있는 회사이지요. 고로가 독실한 불교 신자여서 ‘관음보살(觀音菩薩)’의 ‘관음’에서 회사 이름을 따왔고요. 영어 표기 ‘Canon’은 음악에선 돌림 곡, 미술에선 이상적 인체비율을 뜻하는 것, 잘 아시죠? 

카메라 시장의 두 회사는 변화에 대한 상징으로 언급됩니다. 1975년 코닥의 스티브 세손은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필름을 더 못 팔까 우려해서 ‘쉬쉬!’ 했습니다. 그러다가 변화에 뒤처졌고 2012년 오늘(1월 19일) 파산 신청을 합니다. 이듬해 필름 및 카메라 사업부를 매각하고 지금은 이미지 솔루션과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로 변했습니다.

반면 캐논은 1990년대부터 디지털 카메라 시장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니콘과 DSLR 카메라 수위를 다투고 있고요. 캐논은 복사기, 프린터, 의료기기 등으로 사업을 넓혀 매출을 올리고 있는데 복사기 시장에서는 ‘원조’인 제록스와 경쟁하고 있지요.

변화는 어려운 숙제입니다. 앤드류 그로브 전 인텔 회장은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라는 책에서 기업의 보스가 시장의 변화에 대해 편집광적으로 집착하지 않으면 회사가 망하기 십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변화는 ‘버리는 것’과 함께 갑니다. 우리는 무엇을 얻기 위해, 무엇을 버려야 할까요? 기업도 그래야 하지만, 개인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세상은 빛의 속도로 바뀌고 있는데, 우리는 구년묵이 가치와 지식에 얽매여 있는 것은 아닐까요? 


 
삶에 도움이 되는, 변화에 대한 명언 5가지

 
①진보는 변화 없이 불가능하고 자신의 마음을 바꿀 수 없는 사람은 아무 것도 바꿀 수가 없다. -버나드 쇼
②변화는 삶의 법칙이다. 과거와 오늘만 보는 사람은 미래를 놓치기 마련이다. -존 F 케네디
③매사는 운명이어서 인간은 아무 것도 바꿀 수 없고 운명에 순응해야 한다는 사람도 길을 건너기 전에 좌우를 살핀다. -스티븐 호킹
④모든 사람은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한다. 하지만 자신을 바꾸려는 사람은 없다. -레오 톨스토이
⑤진보는 바꾸는 것이고, 완전함은 자주 바꾸는 것이다. -윈스턴 처칠



 

 




 



 


 







 


 

++++

황복심 5000명 발송비

Francis Chang

C Kim

김정선

주일엽

김성현

김디모데

Bee Kim

이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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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가정집에 들어갈 때

우리나라의 문패처럼 문설주에 부착되어 있는

손바닥 길이 정도의 작은 케이스가 달려 있습니다.

이 작은 케이스가 바로 [메주자/Mezuza]]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어느 작은 가게의 입구에도 붙어 있습니다.   


메주자 안에는 성경의 신명기 6장 말씀이 들어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이신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을 다하고

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신6: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