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성경을 사용하여 성막에 관한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출 25:1-출 25:9]
(1)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2)"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나에게 예물을 바치게 하여라. 누가 바치든지, 마음에서
우러나와 나에게 바치는 예물이면 받아라.
(3)그들에게서 받을 예물은 이러하니, 곧 금과 은과 동과
(4)청색 실과 자주색 실과 홍색 실과 가는 모시 실과 염소 털과
(5)붉게 물들인 숫양 가죽과 돌고래 가죽과 아카시아 나무와
(6)등잔용 기름과 예식용 기름을 넣는 향품과 분향할 향에 넣는 향품과
(7)에봇과 가슴받이에 박을 홍옥수와 그 밖의 보석들이다.
(8)내가 그들 가운데 머물 수 있도록, 그들에게 내가 머물 성소를 지으라고 하여라.
(9)내가 너에게 보여 주는 모양과 똑같은 모양으로, 성막과 거기에서 쓸 모든 기구를
만들어라.


출애굽후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산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십계명과 율법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출애굽기 25장 8-9절 말씀처럼 성소 안에
성막을 만들라고 지시하십니다.(자료4)
(8)내가 그들 가운데 머물 수 있도록, 그들에게 내가 머물 성소를 지으라고 하여라.
(9)내가 너에게 보여 주는 모양과 똑같은 모양으로, 성막과 거기에서 쓸 모든 기구를
만들어라.


다시 말해 성막 안에 성소가 있는데, 그 성소가 바로
하나님이 계시는 장소인
것입니다.
신약에 사는 우리야 어디든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고 있지만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아무 때나 경험할 수 있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성소에만 계셨는데 그 성소가 솔로몬이 성전을 짓기
전에는 성막에 있었고, 후에는 성전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성막의 구조와 의미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울타리와 성막문
우선 성막은 길이 100규빗(50미터), 폭이 50규빗(25미터), 높이가
5규빗(2.5미터)인 하얀 세마포 울타리로 내부가 가려져 있습니다. 이 울타리를 기준으로 성막 안을 성막 뜰이라고 부릅니다.
성막에서 제일 중요한 곳은 지성소인데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 바로 지성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굳이 울타리가 없이 지성소만 하나 있어도 하나님이 계신다는 표시가 충분히 될 것 같은데 하나님은 굳이 성막 안과 밖을
분명하게 구분하는 울타리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신자와 불신자는 분명한 구분이 있어야
합니다. 울타리를 지나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은 신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 울타리는 어떻게 들어갑니까?
반드시 동쪽에 있는 유일한 성막 문을 통해서 들어가야 합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성도가 되는 문,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문, 구원의 문은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요 10:9-요 10:9]
(9)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이 문으로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들어오고 나가면서 꼴을 얻을
것이다.
[요 14:6-요 14:6]
(6)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없다."
[행 4:12-행 4:12]
(12)"예수 밖에는 다른 어떤 이에게서도 구원은 없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이름은
사람들에게 주신 이름들 가운데 하늘 아래에 이 이름 밖에는 없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모두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기독교를 독단적이라고 비판할지라도 타협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문이라는 사실입니다. 진리는 독단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믿는 사람만이 성막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 진리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싸우고, 함부로 대하는 것을 정당화
하지 않습니다. 성막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은 오직 하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그 문을 모르는 사람들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신앙과 진리를 핑계로 독선적인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겠지요.

2. 번제단
성막문을 통해 뜰 안에 들어가면 제일먼저 마주치는 것이 바로 9미터 폭의 번제 단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희생제사를 통해 죄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희생제사란 나의
죄를 대신해서 짐승을 희생시켜 죄용서를 받는 제사입니다. 그런데 이 제사에 받쳐지는 짐승에는 기준이 있습니다.
[레 1:3-레 1:3]
(3)드리는 제물이 소를 번제물로 바치는 것이면 흠 없는 수컷을 골라서, 회막 어귀에서
드리되, 주께서 그것을 기꺼이 받으시게 하여라.
[레 3:1-레 3:1]
(1)화목제사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소를 잡아서 드릴 때에는, 누구든지, 수컷이거나
암컷이거나, 흠이 없는 것을 골라서 주 앞에 드려야 한다.
바로 흠없는 짐승입니다. 이것은 제사를 준비하는 사람의 마음가짐과 깊이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짐승에 굶주려 계신 분이 아닙니다. 제물을 받치는 사람의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롬 12:1-롬 12:1]
(1)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흠없는 짐승으로 희생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이제는 더
이상 희생제사가 필요 없어졌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희생 짐승처럼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주셨기
때문입니다.(자료11)
[요 1:29-요 1:29]
(29)이튿날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엡 5:2-엡 5:2]
(2)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자기
몸을 내주신 것 같이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히 9:28-히 9:28]
(28)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한 번 자기의 몸을 제물로
바치셨고, 두 번째로는 죄와는 상관 없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셔서 구원하실 것입니다.

3. 물두멍
번제단에서 희생제사를 드리고 난 후에 성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물두멍에서 손과 발을 씻어야
합니다.
[출 30:17-출 30:21](자료13)
(17)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18)"너는 물두멍과 그 받침을 놋쇠로 만들어서, 씻는 데 쓰게 하여라. 너는 그것을 회막과
제단 사이에 놓고, 거기에 물을 담아라.
(19)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물로 그들의 손과 발을 씻을 것이다.
(20)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물로 씻어야 죽지 않는다. 그들이 나 주에게 제물을 살라
바치려고 제단으로 가까이 갈 때에도, 그렇게 해야 한다.
(21)이와 같이 그들은 그들의 손과 발을 씻어야 죽지 않는다. 이것은 그와 그의 자손이
대대로 지켜야 할 영원한 규례이다."
일부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라는 사실에 대해서
‘그러면 기독교인들은 예수님만 믿으면 인생을 마음대로 살아도 되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기독교인은 구원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구원받은 이후의 삶입니다. 물두멍이 이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물론 번제를 통해 죄용서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우리는 이 땅에서 사는 동안 계속해서 죄를 짓고, 실수를 합니다. 이랬을 때 ‘나는
구원은 이미 받았으니까 상관없지’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엉터리 기독교인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유일한 문이 되시고,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신 예수님의
은혜밖에 의지할 것이 없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구원받은 사람으로써 자신을 성결 케 하고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제사를 지낸 이후에 반드시 물두멍에서 손과 발을 씻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함부로 성소에 들어오면 죽을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기독교인은 죄에서의 구원도
중요하지만, 구원받은 이후의 성화의 삶도 중요합니다.


4. 성소의 덮개
이제 하나님이 계시는 성소에 들어갈 차례입니다. 그런데 성소를 덮고 있는 네 개의 장덮개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소는 밖에서부터 해달가죽, 붉은 물 들인 수양가죽, 염소털, 앙장을 덮여 있습니다.
성소를 보면 거무튀튀한 해달 껍데기만 보입니다. 사실 성소 안에 들어가면 전체가 순금입니다.
매우 값비싸고 화려한 장소입니다. 그런데 그 겉모습은 왜 하필 해달 가죽일까요?
그 아래 덮개는 주님의 보혈을 상징하는 붉은 물 들인 수양가죽이 있고, 그 아래에는 이스라엘의
죄를 지고 광야에서 죽는 아사셀(레16:6-10) 염소를 뜻하는 염소털로 만든 덮개가 있습니다. 이 염소 역시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청색, 자색, 홍색, 흰색의 실로 수놓은 앙장이 덮여 있는데 이 네가지 색깔
역시 청색은 하나님의 아들, 자색은 왕, 홍색은 피, 흰색은 완전한 인간을 상징하는 것으로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계시는 성소, 즉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예수님 자신이라는 뜻인데
그 성소가 겉으로 볼 때는 매우 초라한 해달 가죽이라는데 우리는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얼마나 감사하고 큰 은혜입니까?
그런데 많은 비기독교인들, 특히
기독교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십자가를 얼마나 비웃는지 모릅니다.
우리 죄를 위해 예수님이 죽으셨다는 사실을 말도 안 된다고 얼마나 비웃습니까? 이 사실이 왜 그 분들을 그렇게 불쾌하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은혜를 받는 것들을 어떤 사람들은 마치 저주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소는 직접 들어온 사람들만이 그 귀중함을 알 수 있습니다. 직접 들어오지 못해본
사람은 평생 성소의 해달가죽밖에 보지 못합니다.
가끔 인터넷이나 기사를 통해 기독교를 비판하는 글들을 보면 공감이 가면서도 안타까운 것이
있는데, 그것은 그 분들이 제대로 된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없이 TV나 기사에서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교회의 모습을 마치
‘교회 전체의 모습’인양 비판한다는 점입니다.
성소 안에 들어와 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 가치를 제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혹 지성소에는 들어온 적도 없으면서 해달 가죽만 쳐다보며 이것이 신앙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지 않습니까?
성소에 직접 들어와서 은혜를 경험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5. 성소
이제 성소를 들어갈 차례인데 이 성소도 휘장을 경계로 안쪽에 있는 지성소와 바깥에 있는 성소로
구별이 됩니다.
우선 성소에 들어가면 성소를 밝히는 등대와 12개의 떡이 올려 있는 떡 상과 분향단이 있습니다. 주님이
자신을 가리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 6:51-요 6:51]
(51)나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나의 살이다. 그것은 세상에 생명을 준다."
[요 8:12-요 8:12]
(12)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어둠
속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성소 안에 있는 등대와 떡은 구약 백성들은 아무도 몰랐지만 바로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분향 단은 무엇입니까?
분향 단 뒤에는 대제사장이 1년 한번 들어갈 수 있는 지성소를 가리고 있는 휘장이 있습니다.
대제사사장은 1년 한번 이 분향단에서 속죄예식을 치른 후에서 휘장을 지나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십니까?
[마 27:50-마 27:51]
(50)예수께서는 다시 큰소리로 외치시고 나서, 숨을 거두셨다.
(51)그 때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폭으로 찢어졌다. 그리고 땅이 흔들리고, 바위가
갈라지고,

하나님과 인간을 가로 막고 있던, 사람들이 절대로 지나갈 수 없던 그
경계선이 갈라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경계를 지나 하나님의 법궤가 있는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언제나 성막 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 멈추어 있을 때는 모든 지파의 중심에 성막이 있었고, 행군할 때는 언약궤를 따라 길을 나아갔습니다. 이것이 부활을 믿는 기독교인의 삶입니다.
부활을 믿는
기독교인의 삶은 주님을 내 삶의 중심에 모시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삶입니다.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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