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03, 2015





 



 







 




 



I woke and you were there

잠에서 깨어나 보니 당신이 옆에 있었군요.
Beside me in the night
밤새도록 내 곁에...

You touched me and calmed my fear
당신의 손길이 두려움마저 없애주었나 봐요.
Turned darkness into light
어둠을 찬란한 빛으로 바꾸어...


 
I woke and saw you there
잠에서 깨자 당신이 있는 걸...
Beside me as before
전처럼 내 곁에 있는 걸 보았어요.
My heart leapt to find you near
당신이 곁에 있다는 걸 알고 내 마음은
To feel you close once more
더욱 당신과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며
To feel your love once more
다시 한번 당신의 사랑을 느꼈어요.



Your strength has made me strong
당신의 힘이 나를 강하게 해요.
Though life tore us apart
비록 삶에는 헤어짐이 있고
And now when the night seems long
긴 밤의 연속이 있을지라도
Your love shines in my heart...
당신의 사랑은 내 맘 속에서 빛나고 있어요.
Your love shines in my heart
당신의 사랑은 내 맘 속에서 빛나고 있어요.






 



영화제목 : Once upon a time in the west
제작년도 : 1968년
감독 : 세르지오 레오네
출연 : 헨리폰다, 찰슨 브론슨,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음악 : 작곡_엔리오 모리꼬네


 

중고등학교 시절에 서부영화를 즐겨 관람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헨리폰다, 찰슨 브론슨,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가 주연하는 <황야의 무법자>(Once upon a time in the west)는 소위 마카로니 웨스턴이라는 이태리식 서부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메인 테마곡인 Once upon a time in the west는 소프라노 <에다 델 오르소>의 허밍이 오케스트라와 함께 어우러져 이 노래만 들어도 배경으로 나오는 황량한 황야가 그냥 펼쳐지는 느낌을 느끼게 했지요.

부드럽고, 애처롭고, 우울하고, 장엄하기도 한 음악.....

그 후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개사하고 편곡하여 노래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Your Love>라는 이름을 붙여 둘세 폰테스(Dulce Pontes)가 부른 곡이 가장 감명 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둘세는 1969년 리스본 근교에서 파두의 전설인 아멜리아 로드리게스의 딸로 태어났는데 어머니의 영혼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차세대 파두(Fado) 주자입니다. 팝, 포트, 클래식의 장르를 넘나드는 포르투갈이 아끼며 자랑하는 world musician입니다.

 

그녀는 힘차고 드라마틱한 음성으로 1991년 포르투갈 송 페스티벌에서 우승을 했으며 다음해 유러비전 송 콘테스트에 참가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 후 그녀는 호세 카레라스, 안드레아 보첼리, 세시리아 에보라, 에타노 벨로수 등 세계적인 뮤지션들과 협연하기도. 포르투갈어 뿐 아니라 스페인어, 이태리어, 영어, 그리스어 등 다양한 언어로 노래 부릅니다.

 

그녀의 보컬은 흡사 세상의 모든 고통과 아픔을 농축해 놓은 듯 가슴 절절한 울림을 전해 줍니다.

 

그녀의 출발 장르인 Fado(파두)는 운명이란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1820년대부터 포르투갈에서 전해 내려오는 슬픔에 잠긴 가락과 가사가 특징이며, 주로 바다와 가난한 삶에 대해 노래하지만 잃어버린 누군가에 대한  노스탤지어의 느낌을 많이 표현합니다. 역시 Ennio Morricone의 노래입니다...(언) 



 

 


 
 



 




 




 
 
 

 
 




 



 

 






 


 



어지러워라
자유로워라
신기가 넘쳐 눈과 귀가 시끄러운
오월의 숲엘 들어서면

까치발로 뛰어다니는 딱따구리 아기 새들
까르르 뒤로 넘어지는 여린 버드나무 잎새들
얕은 바람결에도 어지러운 듯
어깨로 목덜미로 쓰러지는 산딸나무 꽃잎들


수다스러워라
짓궂어라
한데 어울려 사는 법을
막 터득한 오월의 숲엘 들어서면

물기 떨어지는 햇살의 발장단에 맞춰
막 씻은 하얀 발뒤꿈치로 자박자박 내려가는 냇물
산사람들이 알아챌까봐
시침떼고 도넛처럼 꽈리를 튼 도롱뇽 알더미들
도롱뇽 알더미를 덮어주려 합세하여 누운
하얀 아카시 찔레 조팝과 이팝꽃 무더기들
홀로 무너져 내리는 무덤들조차
오랑캐꽃과 아기똥풀 꽃더미에 쌓여
푸르게 제 그림자 키워가는 오월의 숲

몽롱하여라
여울져라
구름밭을 뒹굴다
둥근 얼굴이 되는
오월의 숲엘 들어서면...

 

이름없는 시인




 

 

 

 




 



 

 

 



 


 

 









 











 










 







 

 

브래드포드(William Bradford)는 영국 북쪽 오스터필드에서 태어났다. 오스터필드는 200명 정도의 주민이 사는 작은 농촌이었다. 남쪽으로는 유명한 서우드 숲이 펼쳐져 있었다.

 

브래드포드는 부유한 농장주 집안의 자손이었지만,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내지 못했다. 첫 돌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가 재혼을 하는 바람에 네 살 때부터 할아버지에게서 자랐다. 2년 뒤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재혼한 어머니와 의붓아버지가 다시 그를 키웠다.

 

그러나 1년 후에 어머니마저 죽자 일곱 살의 나이에 천애고아(天涯孤兒)가 되었다. 남은 혈육인 삼촌들이 그를 맡아 키웠다. 삼촌들은 그가 농사일을 돕기를 바랐다.

그러나 병약한 그는 농사일을 도울 수가 없었다. 잦은 병치레로 투병 생활을 오래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병약한 자신을 원망하지 않았다.

 

훗날 그는 오랜 투병 생활 덕분에 자만해지지 않고, 나중에 겪을 고난도 감내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병약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독서였다. 주로 성서와 고전들을 읽었다. 독서를 통해 어렸을 적부터 상실 그 자체였던 삶에 위로를 받았고 새로운 신앙에 눈뜨게 되었다.


 

그는 이미 열두 살 무렵부터 영국 국교회의 예배 방법에 대해 반대했다. 그가 청교도 신앙을 처음 접한 것도 그때였다. 친구의 초청으로 청교도 목사 클리프톤의 예배에 참석해 설교를 듣고 청교도 신앙을 갖게 된 것이다. 삼촌들은 예배 참석을 금지시켰지만 그는 계속해서 설교를 들으러 다녔다.

 

 





 

 

이 모임에 참석하는 동안 그는 오스트필드에서 4마일 떨어진 작은 마을 스크루비에 살던 윌리엄 브루스터를 만났다. 그는 우체국장으로 브래드포드보다 24세나 많았다. 브루스터는 젊은 시절 엘리자베스 여왕의 국무대신 월리엄 데이비슨 밑에서 일한 경험이 있었다. 데이비슨이 실각해 큰 뜻을 펴기도 전에 고향에 내려와 아버지의 일을 물려받아 우체국장 일을 하고 있었다.


 

브래드포드는 브루스터를 통해 스쿠루비의 청교도 분리주의자 모임에도 참석했다. 브루스터는 그에게 많은 책을 빌려 주었고 영국에서 일어난 교회 개혁에 대해 들려주었다. 스크루비 분리주의자들은 영적 유대감뿐만 아니라, 당국의 감시를 피하기 위한 동지 의식이 대단했다. 브래드포드는 브루스터에게서 동지 의식을 넘어 아버지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월리엄 1세가 왕위에 오르고 청교도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자 그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네덜란드로 탈출했다. 1609년에 브래드포드는 스크루비 교인들을 따라 네덜란드 라이덴에 정착했다. 그는 브루스터 가족과 함께 살았다.

1611년에 스물한 살이 되어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게 되자, 상속 재산을 팔아 네덜란드에 작은 집을 샀다. 1612년에 라이덴 시민권을 획득하고 회중 내에서 높은 지위도 얻었다. 1613년에는 도로시 메이와 결혼하여 4년 후 아들 존을 낳았다.
 

 





 



 

그러나 네덜란드에서의 안락한 생활이 그가 이주해온 목적은 아니었다. 점차 이주해온 목적을 잃어버리고 네덜란드화되어 가는 후세들을 보면서, 그는 스크루비의 교인들과 함께 또 다시 새로운 결단을 해야 했다. 그것은 신세계로의 이주였다.

그는 1619년 봄에 상속 받은 집 재산을 팔아 이주 자금을 마련했다. 그러나 신세계에로의 이주는 그에게도 커다란 고통이었다. 이제 겨우 세 살 된 아들 존은 항해하기에 너무 어려 네덜란드에 남겨 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식민지 아메리카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사람들이 아메리카로 항해를 떠났다가 참사를 당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아들 존을 돌보기 위해 결국 장인 장모도 남아야 했다. 이번에 떠나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가슴이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졌다. 그러나 그는 신앙의 자유를 위해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신세계로의 이주 과정은 결심만큼 쉽지 않았다. 힘겨운 협상 끝에 영국 정부로부터 식민지 공유지 불하 증서를 얻어냈지만 이주에 드는 비용은 엄청났다.

브래드포드를 비롯한 스크루비 교인들이 전 재산을 처분해 돈을 마련했지만 아직 턱없이 모자랐다. 이때 70명의 런던 상인들로 구성된 '모험조합'이 그들에게 투자하겠다고 나섰다. 겉으로는 '선교사업'에 동조한다고 했지만, 모험조합은 아메리카에 이주한 그들을 통해 어류, 모피 무역을 통해 높은 수익을 얻길 내심 기대했다.


 








 

 

스크루비의 교인들은 두 척의 배를 마련했다. 스피드웰과 메이플라워호였다. 라이덴의 교인들은 스피드웰호를 타고 영국 사우샘프턴으로 가서 메이플라워호와 합류해 아메리카로 떠날 예정이었다.

 

스크루비 교인들 중 3분의 1인 125명이 떠나기로 했다. 남은 사람들은 곧 뒤따라오기로 했다. 스피드웰호에 탄 교인들은 기도를 올린 후 영국을 향해 출발했다. 메이플라워호는 런던에서 스크루비 교인들의 가족 친지들을 태우고 약속 장소인 사우샘프턴으로 향했다. 드디어 두 배는 사우샘프턴에서 만났고 스크루비의 교인들과 가족 친지들은 감격의 재회를 나누었다.


 

두 배는 사우샘프턴을 떠나 일단 서쪽으로 120㎞ 떨어진 다트머스 항구를 향해 출항했다. 그러나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다. 스피드웰호가 고장난 것이었다. 돛에 바람이 새서 속도가 나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배에 물까지 새어 들어왔다.

 

수리를 하고 나니, 바람 방향이 바뀌어 몇 달을 지체해야 했다. 떠나지도 못한 채 준비한 식량만 축이 났다. 그 사이에 벌써 지친 사람들이 나타나 항해를 포기하기 시작했다. 이탈자는 늘어만 갔다. 항해를 해보기도 전에 이주는 실패로 돌아가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순풍이 다시 불기 시작하자 남은 사람들은 다트머스 항구를 출발할 수 있었다. 300㎞ 넘게 갔을 때였다. 또 다시 스피드웰호에 물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일단 되돌아 와 가까운 플리머스 항구에 입항했다. 이미 9월초였다. 또 다시 항해를 늦추면 바람 때문에 아메리카로 그 해에는 넘어갈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배와 이주에 들인 거액의 자금은 모두 사라져 버리게 된다. 성공적인 아메리카 이주도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스피드웰호를 포기해야 했다. 스피드웰호를 포기하고 모두 메이플라워호에 올라탔다. 나중에 밝혀진 이야기지만, 스피드웰호는 고장난 것이 아니었다. 스피드웰호의 선장 레이놀즈가 음모를 꾸민 것이었다.

그는 배에 물이 스며들도록 돛대를 높이고 높은 돛대에다 돛을 많이 달아 놓았다. 너무 높은 돛대에 돛이 많으면 판자들에 지나친 장력이 가해지면서 틈이 벌어져 물이 새어 들어온다는 사실을 노린 것이었다. 메이플라워호가 대서양을 향해 떠나면 선장은 돛을 고쳐 그 배를 다른 사람에게 팔아치울 생각이었다. 스크루비의 교인들은 떠나기 전부터 사기를 당한 것이었다.


 

스피드웰호의 수리로 한 달을 지체하면서 식량도 썩어가기 시작했다. 아메리카로 출항하는 것은 점점 불가능해 보였다. 그때 기적적인 순풍이 불기 시작했다. 1620년 9월 20일, 드디어 메이플라워호가 플리머스 항구를 출발할 수 있었다. 메이플라워호에 탄 사람은 모두 102명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데리고 온 두 마리의 개도 함께 했다.


 

이제 어둡고 축축한 비좁은 선실에서 5000㎞에 가까운 항해가 시작되었다. 곧바로 배 멀미가 그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배 멀미는 폭풍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얼마 가지 않아 만나게 된 폭풍우는 그들을 통째로 삼켜버릴 듯 기세 등등 했다.

폭풍 치는 커다란 바다에 메이플라워호는 마치 나뭇잎처럼 그냥 둥둥 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뭇잎이 물에 젖으면 가라앉을 운명이듯, 메이플라워호도 같은 운명이었다. 그러나 험한 바다에서 그들이 기댈 데는 없었다. 그들을 구원하리라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 이외에는...

 

메이플라워호는 다섯 달만인 12월 11일에 신대륙에 당도했는데, 폭풍우와 조류에 휩쓸려 당초 목적지였던 버지니아보다는 훨씬 북쪽인 메사추세스의 프리머스에 상륙하게 되었다.

 

이들은 주변의 인디언들의 위협에 대응하면서, 말 그대로 맨손으로 시작해서 교회를 짓고, 밭을 개간하고, 집을 짓고 학교를 지으면서 자신들의 신앙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갔다. 이 작은 밀알 하나가 이후 미국이라는 풍성한 장래의 열매를 맺기 위한 토대가 되었던 것이다.(언) 












 



 

 











 










 

이런 일이 없었습니다.

한두 개 피고 지고 하다 말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올 해 5월을 앞두고 터질 것 같은 꽃 꼭지가 15개나

매달린 것이 눈에 들어 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밤 사이에 그 많은 꽃대가 쑥쑥 자라더니

화려한 5월을 장식할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5월1일 드디어 터졌습니다.

 

땅이 아니었습니다.

하늘을 향한 15개의 나팔이

일제히 포문을 열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식탁에 들여 놓았더니

향기 진동하여 온 방안을 채웠습니다.

혹 잠자는 사이에 외롭게 피고 질 까봐

늦은 밤에 셔터를 눌렀습니다.

장 목사.. 이 선인장은 꽃이 안 피는 선인장인데

그래도... 꽃이 안 펴도 잘 키우게...

돌아가신 어머니의 말씀이었습니다 .

그 선인장은 현관 앞에 두었습니다.

돌아가신 지 3년 되던 해에 노란 꽃이 방울처럼

많이 피었습니다. 작년에요...

그와 함께

이 사진은 뒤 뜰에서 기른 것인데 

피어도 이렇게 많이 피었습니다.

 

어머님은 선인장 권사님이란 별칭을 가지고 사셨습니다.

5월10일은 어머니 주일입니다...




 




 






 
















 






 




 





 






 





 










 

 

대지진의 악몽을 쉽사리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네팔 땅에서 눈물의 주일예배가 드려졌다.

 

네팔 카트만두 한인교회(정형성 담임목사)는 현지시간으로 오늘(3일) 오전 11시 지진 발생 후 처음으로 예배당에 모여 감격의 주일예배를 드렸다. 지진 발생 직후였던 지난 주일에는 버시바티 공터 등 지진 대피장소로 뿔뿔이 흩어져 예배를 드렸었다.

 

대피장소 예배에 참석한 200여 명의 교인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고, 감격의 포옹을 나눴다. 예배 중에는 찬송가를 부르며 눈물을 훔치는 교인들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대표기도에 나선 안지오 선교사는 “주님, 지진으로 고통 당하는 이 민족을 구원하여 주옵소서”라며 울먹였다. 안 선교사는 이어 “한인 선교사들이 현장 구호를 위해 동분서주 하고 있지만 다 채워주지 못하고 있다”며, “한인 사회가 한마음이 돼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강단에서는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지진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이웃들을 섬기자고 격려했다.

 

정형성 담임목사는 “우는 자들과 함께 우셨고 배고픈 자와 함께 하셨던 예수님을 본받자”고 말했다. 정 목사는 또, “구호 현장에서 불철주야 애쓰는 선교사들, 교인들, 많은 자원봉사자들의 모습 속에 예수님이 나타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배 시간에는 지진 피해 구호활동을 위한 사랑의 헌금이 모아지기도 했다. 한인교회 역시 이번 지진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지만,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네팔의 이웃들에게 떡과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다.



 

 



 

 

예배부장 성문용 선교사는 “현재 예배당 영상 시설이 파괴됐고, 교육관 벽이 무너져 내려 중고등부 학생들의 예배처소가 폐쇄된 상태”라며, “교회 시설 복구도 시급하지만 지진으로 고통당하는 네팔의 이웃들을 돌보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배에는 네팔에서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는 기아대책과 굿피플 긴급구호팀 등 기독NGO 관계자들도 참석했다. 또, 최용진 네팔 대사가 참석해 외상 후 스트레스증후군 치료와 시설안전진단 등 교민 안전대책을 설명하기도 했다.

 

한편, 네팔에 거주하는 교민은 약 650여 명, 이 가운데 한인 선교사 가정을 비롯한 교인들이 400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젊은 시절 서울 경동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 작고하신 강원용 목사님이 설교하면서 리처드 바크(Richard Bach)가 쓴 [갈매기의 꿈]이란 우화소설 이야기를 했다. 비행기 안에서 읽었다는 이 소설의 원제는 [조나단 리빙스턴 갈매기(Jonathan livingston seagull)’다.

 

책을 손에 들고 비행기로 여행하는 모습하며 맛깔 나게 책의 내용을 설명하는 모습이 너무도 멋있어 보였다. 그보다는 그 책의 도전이 나에게는 더 큰 충격이었다.

 

조나단 리빙스턴이란 이름의 갈매기는 좀 삐딱한 갈매기다. 대부분의 갈매기는 해가 뜨면 고기잡이 배에 몰려가 그 주변에서 물고기를 먹으려 아우성을 쳤지만 조나단은 바닷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하늘을 나는(飛行) 연습을 했다.

 

조나단은 수면에 닿을 듯이 낮게 나는 걸 더 좋아했고, 높은 곳에서 빠른 속도로 낙하하는 속도를 즐겼다. 높은 곳에서 급전직하(急轉直下)해 시속 140㎞ 속도로 나는 순간 환희를 느꼈다. 비록 속도를 이기지 못해 바다 물에 고꾸라지듯 내쳐진 경우도 있었지만 말이다.

 

실패를 거듭하면서 조나단은 기술을 몸으로 익혀나간다. 갈매기 세계에서 누구도 도전하지 않은 공중회전까지 하게 됐을 때 갈매기 무리는 그를 쫓아낸다. 무리의 질서를 깼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조나단은 나는 것을 포기할 수 없다. 새로운 비행술을 익히고 또 익힌다.

 

어느 날 두 마리 갈매기와 함께 지상을 떠나 신비한 세계로 간다. 그곳은 날고 싶은 열망을 가진 갈매기들이 자유롭게 나는 것을 배우고 익히는 이상(理想)의 세계다.

 

조나단은 ‘자유롭게 나는 완전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또다시 모험을 시작한다. 지상으로 가서 다른 갈매기들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는 것이다. 모두가 말리지만 조나단의 뜻을 꺾을 수 없다. ‘먹는 것이 전부다’라고 생각하던 지상의 평범한 갈매기들은 이번에는 조나단의 높은 뜻을 이해하게 될까.

 

주어진 삶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기술을 익혀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조나단 리빙스턴은 구태의연(舊態依然)이라는 과거의 틀에 꽉 묶여 있는 현대인들에게 어느 모로든지 교훈이 된다.

 

[자식과 마누라만 놔두고 다 바꾸라]는 이건희 삼성그룹 총수의 혁신선포와도 맞먹는 내용이다.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이란 말과도 통한다.

 

현대 경영에서 ‘기업가’란 단순히 기업을 운영하는 경영인을 뜻하지 않는다. 경영학의 대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그의 저서 [혁신과 기업가 정신]에서 [기업가는 유용한 가치를 창출해 내고, 변화를 기회로 삼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했다.

 

조나단은 자유자재로 나는 비행술을 몸에 익혀 [자유]라는 가치를 창출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무리가 자신을 쫓아낸 변화를 기회로 삼았다. 무리에서 쫓겨난 것에 절망하지 않고, 되레 수직 낙하와 저공비행, 저속 비행 기술을 익히는 기회로 삼는다. 조나단은 이를 직접 실천했고 이뤄냈다.

 

조나단은 기술 혁신을 일으킨 갈매기다. 갈매기 역사상 최고 속도를 기록했고 갈매기들이 엄두도 내지 않은 곡예비행을 해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에서 자기 몸을 제어하기 위해 날개를 움직이는 기술을 발견했다. ‘창조적 파괴’다.

 

‘바람이 괴물처럼 으르렁거렸습니다. 시속 100㎞, 140㎞, 190㎞…. 속도는 점점 빨라졌습니다. 시속 220㎞가 되자 시속 110㎞였을 때 보다 오히려 날개를 버티기가 수월해졌습니다. 조나단은 날개 끝을 아주 살짝 비틀어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회색 대포알처럼 바다와 충돌해서 산산조각 났을 것인데 말입니다.’

 

조나단은 자신이 이룬 성과를 혼자 독차지 하려 하지 않았다. 다른 갈매기들과 나누고 싶어했다. 자유라는 가치를 혼자 누리는 게 아니라 다같이 누리고 싶어했다.

 

조나단이 다시 지상으로 가려 하자(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산 아래도 내려 가자는 말씀이 기억난다) 설리반 선생은 말린다.

왜 너를 추방한 그곳으로 돌아가려 하느냐고. 하지만 조나단의 생각은 확고하다. 자신이 사랑을 펼치는 방법은 진실을 찾고 싶어하는 갈매기에게 자신이 본 진실을 알려주는 일이라고 말한다. 사회적 책임이다.

 

지상으로 돌아온 조나단은 플레처를 가르친다. 조나단이 ‘멘토’고 플레처가 ‘멘티’다. 플레처가 다 배웠다고 생각하는 순간 조나단은 떠난다.

 

어쩌면 크리스천이란 조나단 적(的),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안트러_프러_너십)적(的)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장재언) 






 



 






 





 






 



 



 

 

 




 



 





 






 




 

 







 









 

 


 

하와이에 생긴지 50년 된 아주 유명한 관광명소 폴리네이션 컬쳐 쎈타 라는 곳이 있습니다.

적게는 수 천, 많게는 수 만의 관광객들이 매일 방문 하는 곳입니다. 입장료도 한국 돈 10만원 정도 됩니다
 

놀이 공원은 아니지만 컨셉이 한국의 에버랜드와 비슷하게 아주 잘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곳에는 폴리네시아 지역의 6개의 섬나라 사모아, 통가, 피지, 하와이, 타히티, 아오테아로아등 각 나라들 소개하는 6개의 공연장과, 야외 공연장, 카누를 탈수 있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작은 강, 각 나라별 기념품 가게 등이 있습니다.

 

각 공연장에서는 자기 나라를 소개하는 음악, 춤, 음식, 악기공연 등 전통문화와 생활 풍습 등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낮 시간대에 6개 나라들이 각각 카누 선상공연을 합니다. 밤에 7:30분부터는 main show를 1:40 동안 대 공연장에서 열립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즉 무희들, 가수들, 관광가이드들, gift shop에서 일하는 사람들 등이 폴리네시안 사람들 뿐 만 아니라 아시아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국말로 가이드 하는 사람에게 물어 봤더니 그곳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와이에서 몰몬교가 운영하는 대학교 BYU(Brigham Young University)의 학생들이거나 졸업생들이라고 하더군요.

 

몰몬교에서 대학을 세워 세계 각국에 있는 젊은 아이들에게 많은 장학금을 제공하여 그곳으로 불러들여 공부시키고, 몰몬교의 교리에 심취케하고 받은 사랑 되갚는 의미로 헌신케 하여 문화라는 매개체를 사용하여 선교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너무 깜짝 놀란 것은 그들이 7:30분에 공연하는 main big show가 그들의 교리를 종합예술로 만들어 무용, 음악, 노래, 악기, 조명등을 사용하여 웅장하다 못해 장엄하기까지 한 우상에게 바쳐지는 신의 제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공연하는 사람들은 프로 중에 프로 이였습니다.

 

단순한 공연인줄 알고 참석한 관광객들은 그 공연의 스케일과 완벽한 공연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일어서서 박수를 칩니다. 그것이 성경을 얼마나 왜곡하여 우상에게 바쳐지는 신의 제천인 것을 거의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면서 송도에 이슬람 대학이 서면 이렇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막대한 오일 머니를 들여와 최고의 시설과 수준의 대학을 세워 요즘처럼 어려운 때에 거액의 장학금 혜택이나 무상 교육을 빌미로 대한민국 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이슬람 젊은이들을 불러들여 공부시키고 훈련하여 이 땅을 이슬람 세력으로 확장하려는 그들의 속내가 하와이 폴리네이션 쎈타에서 일하고 있는 몰몬교 학생들을 보면서 절실하게 들었습니다.

 

세계적인 추세라고 생각하게 하는 다문화 쓰나미를 통해 사단은 한국 땅에 이슬람의 가라지를 뿌려놓았습니다. 대학을 통해, 노동자들을 통해 그리고 이제 대학이 세워지면 이슬람 부속 유치원 초등 학교등도 생기겠지요. 이렇게 자리를 잡아 가게 될 것 입니다.

 

요즘 이슬람 문화 알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이슬람 문화거리, 음식뿐 아니라 EBS에서는 이슬람 알리기 프로도 많이 진행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 경주에서도 이스탐블 문화 전이 오랫동안 열렸습니다. 학교에서 체험 학습으로도 많이 갔습니다.

 

기독교의 거장들이 나왔던 영국도 기독교가 퇴락하면서 이슬람의 쓰나미를 막지 못하고 무너졌습니다.

 

솔로몬이 사랑했던 이방 여인들을 통해 그 땅에 이방 신들이 들어오고 유대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면서 하나님의 진노를 면치 못했던 것처럼 이 땅에 이슬람 대학이 진정 세워 진다면 인천 지역 뿐 아니라 이 땅은 고통으로 신음하게 될 것입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사실은 한국 교회가 이것을 위해 기도하지도 않고 심각성을 깨닫지도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이슬람 대학이 세워지지 못하도록 막아서는 기도를 해 주시길 부탁 드립니다.(독자의 글) 

 





 



 

 

 

 






 





미 종합대학 순위 125위인 유타 대학의 한국 인천의 송도 글로벌 캠퍼스 개교했다.

 

대학 이사회는 지난주 열린 이사회에서 한국 정부가 개교 후 첫 4년간 매년 150만 달러를 대학에 지원하고 대학이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더라도 상환할 의무가 없는 1,000만 달러의 융자금을 무이자로 대출해주는 조건 수용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한국정부는 첫 5년간 캠퍼스 임대료도 무상 지원한다.

 

대학은 한국 정부와 손잡고 송도 캠퍼스를 한국은 물론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거점으로 삼겠다는 방침이다.

 

송도 캠퍼스의 연간 학비는 약 2만달러 선이며 학부 신입생 정원은 100명, 대학원 과정은 25명이고 등록생의 20%는 미국 본교에서 교환학생으로 건너간 학생들로 구성된다. 또한 사회복지학, 심리학, 커뮤니케이션학, 영어학 등의 학과를 우선 개설한 뒤 2016년부터는 생명공학과 수학과 등도 추가할 예정이다. 기숙사와 도서관, 공연센터 등을 이미 완공한 상태다.

 

송도에는 2013년 봄학기 한국뉴욕주립대학(SUNY) 스토니브룩의 첫 학부생이 입학한 것을 비롯해 버지니아 조지 메이슨 대학과 독일 벨기에 겐트 대학 등이 내년에 유타대와 더불어 학부과정을 선보인다.

 

이외 델라웨어대학,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 남가주대학(USC) 등 송도 입성을 추진했던 기타 대학들은 예산문제 등을 이유로 철회한 바 있으며 현재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그 대학이 송도 분교 설립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송도에 이 같은 대학들이 입성하는 흐름을 따라 무슬림 대학 역시 건립에 관한 모든 준비를 마치고 있어 대학의 세계화  추세가 대한민국 그리고 한국 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심히 걱정된다.

 







 

 


 

 

 

 




 




 



 


 


 



 




 



 



 









 

친한 친구가 암으로 투병 중에 있다고 칩시다. 만약 내가 암 치료 비법을 알고 있는데 알려주지 않는다면 좋은 친구일까요? 복음을 전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소중한 임무입니다.”

 

말레이시아 최대 교회인 다만사라우따마 감리교회(DUMC) 대니얼 호(65) 목사는 “그리스도인은 어떤 환경에서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아시아 이슬람 맹주국인 말레이시아에서 20년째 성장을 거듭하면서 복음 전도의 사명을 다하고 있다.

 

호 목사는 친구가 많다. 만나는 사람 모두가 친구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다. 어디를 가든지, 상대가 누구든지 가리지 않는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건물 청소부에게도 복음을 소개한다. 대형교회 담임목사지만 생활 속에서 전도하는 목회자로 유명하다.

 

중국계인 호 목사는 불교 가정에서 태어나 대학 시절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스스로 예수를 영접했다. 영국 유학을 떠나 전자공학(석사)을 공부하면서 신학을 공부했다. 32년 전 22명의 성도로 시작해 지금은 매주 4000명이 영어와 중국어, 말레이어 등 6개 언어로 예배를 드리는 교회를 일궜다. 최근 인천시 송도 한국뉴욕주립대에서 열린 국제선교대회에 방문한 그를 만나 이슬람 환경 속에서도 교회가 성장하는 이유를 들었다.

 

-DUMC가 부흥하고 성장하는 동력은 무엇인가.

 

“말레이시아의 감리교회는 철저하게 규칙과 규정을 따르는 시스템이다. 목회 전 과정이 규칙 속에서 이루어지는데 그러다보니 역동적이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

DUMC는 이 같은 감리교회 규정을 지키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우리는 일 잘하는 사람을 다양한 사역 현장에 배치했다. 목회자와 평신도를 가리지 않았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교회 일에 참여했고 이를 통해 교회에 생기가 넘쳤다. 말레이시아는 70%가 도시로 구성돼 있다. 우리는 도시를 기반으로 하는 사역에 집중했다. ‘드림센터’라는 이름으로 교회를 개척했고 이것이 주효했다고 본다.”





 

1만 명 이상 모이는  DUMC 말레이시아 교회 담임 중국계 호 목사

 


 

-‘드림센터’에 대해 설명해 달라.

 

“드림센터는 각 사람이 지니고 있는 꿈, 그리고 깨어진 꿈까지도 회복되는 곳을 의미한다. 이웃을 위한 일종의 문화센터다. 예배장소뿐 아니라 농구장과 배드민턴 코트, 배구장도 갖추고 있다. 무료 와이파이도 제공해 누구나 올 수 있도록 했고 푸드코트도 마련했다. 주차장도 무료다. 여기엔 무슬림도 찾아온다. 그들을 위해 돼지고기를 팔지 않는다. 중국인들에게 돼지고기가 없는 식당은 상상하기 어렵다. 드림센터는 지금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대형교회의 목회자인데도 직접 전도한다고 들었다.

 

“전도와 선교 없는 교회는 절대 부흥할 수 없다. 매주 설교 때마다 내가 했던 전도 이야기를 들려준다. ‘왕년에’ 했던 전도 얘기가 아니다.

한 주간 다니면서 전도했던 일화다.

한 가지를 소개하자면, 말레이시아 무슬림들은 귀신 이야기를 재미있어 한다. 쿠알라룸푸르 공항 택시 운전사는 대부분 무슬림이다. 나는 그들에게 귀신 이야기를 들려준다. 흥미롭게 듣는다. 귀신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집에 도착할 즈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알아야 할 귀신이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센 귀신이다. 그 귀신은 하나다. 어떤 귀신도 복종하고 굴복한다.’ 그들은 누구냐고 물어본다. 그러면 이렇게 대답한다. ‘Holy Ghost(성령)’라고 말이다.”

 

말레이시아는 무슬림 인구가 62%를 넘는다. 또 신앙심이 강한 불교도와 힌두교인도 많다. 이 때문에 복음전도의 대가인 반대와 핍박도 각오해야 한다. 한번은 자신의 딸이 예수 믿는 것 때문에 한 아버지가 칼을 들고 교회까지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는 어느 사찰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2년 전에는 무슬림 30명이 드림센터에서 열린 저녁 모임에 참석했다가 말레이시아 종교경찰이 교회에 들어와 그들을 체포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이 일로 교회는 더 알려지게 됐고 두려움을 넘어 온 교인들이 무슬림 이웃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한국교회는 이슬람 확산에 대한 우려가 많다. 인구의 다수가 무슬림인 환경 속에서 크리스천이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인가.

 

“우선 언론에서 말하는 무슬림과 관련된 정보를 너무 의지해선 안 된다. 특히 서구 언론은 무슬림에 대해 왜곡된 정보를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무슬림을 모두 테러리스트로 몰아간다거나 나쁜 사람들로 부추기는 원인이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슬람 세계에는 좋은 무슬림들이 많이 산다. 내가 그 증인이다. 나의 이웃은 모두 착하고 온건한 무슬림들이다.

 

두 번째는 이슬람 세계와 무슬림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책과 자료를 읽어야 한다. 그래야 불필요한 오해를 줄일 수 있다. 셋째는 그들을 만나야 한다. 타 종교인이라는 이유로 만나는 것을 꺼려서는 안 된다. 만나야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만나서 기독교 신앙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만나지 않고 어떻게 복음을 전하겠는가.”







 

-한국교회와 말레이시아 교회들이 어떻게 협력할 수 있는가.

 

“지금 말레이시아는 급속한 도시화가 진행 중이다. 교회 개척과 부흥을 위해서는 중심 도시에 거점 교회를 세우고 도시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이 우선돼야 한다. 동말레이시아에는 두 개의 주가 있다. 사바와 사라왁이란 주인데 이곳 역시 도시화가 확산 중이다. 여기서 한국교회와 함께할 일이 무척 많다.

 

또 하나는 말레이시아 중고교 과정에는 음악 과목이 없다. 그래서 학생들은 음악에 목말라 하고 K팝에 열광한다.

 내가 알기로는 한국교회의 음악 자원은 세계적이다. 음악 분야에 한국교회가 말레이시아 교회들을 돕는다면 유익할 것이다.”





 


 

 




 



 




 











 




 


 



 


 




 






 





 

이슬람교는 중동에서 7세기에 발생한 종교로 오늘날 지구 인구의 5명 중 1명이 믿고 있다. 북아프리카, 중동, 서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아울러 유럽과 미국 등 그 밖의 국가들로 이주한 무슬림들로 인해 이제는 세계 모든 대도시에 이슬람이 분포되어 있다.

특히 이슬람은 근래에 팔레스타인 분쟁, 유고슬라비아 분쟁, 체첸 분쟁, 수단 내전 등의 사건으로 세계인의 관심을 끌어왔다. 더구나 미국의 9.11 사태 이후에는 이슬람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이 상당히 높아졌다.

 

유럽에서는 창시자의 이름을 따서 마호메트교라고 하며, 중국에서는 위구르족을 통해 전래되었으므로 회교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슬람교 또는 회교로 불린다. 그리스도교, 불교와 함께 세계 3대 종교 중 하나다.

 

이슬람이 취하는 선교 전략을 ‘다와’라고 한다. 이는 기독교의 ‘선교’와 비슷한 개념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을 믿도록 노력하는 일체의 행위’를 뜻한다.

 

현재 전 세계 곳곳에는 ‘다이’라고 불리는 무슬림 선교사들이 파송돼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미국이나 한국에서 이슬람 국가로 보내는 선교사의 수보다 미국과 한국으로 선교하기 위해 온 무슬림 선교사들의 수가 더 많다고 하면 사람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주로 학생, 교수, 사업가의 신분으로 사역(使役)하고 있는 ‘다이’들이 ‘다와’를 행하고 있는데, 이슬람교를 하나의 문화포장해 이슬람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

 

또 하나의 이슬람 전략은 ‘지하드’다. ‘성전(聖戰)’을 의미하는 ‘지하드’는 이슬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무력 사용할 수 있다는 것으로, 꾸란은 ‘지하드’를 무슬림의 의무라고 규정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슬람의 전략은 ‘모스크’(이슬람 사원)를 세우는 것이다. 이슬람이 유럽의 전진기지로 삼은 영국 런던에는 1962년만 해도 모스크가 1개에 불과했지만 현재 644개의 모스크가 있다.

한국에 이슬람 선교의 목적을 가지고 들어온 이슬람 선교사는 약 2만명에 달한다. 이는 1만7000여 명 기독교 선교사를 파송하여 세계 2위의 선교대국인 한국의 선교사 파송 수보다 많은 숫자이다.

 

이슬람 에티켓

 

무슬림의 하루는 기도에서 시작해 기도로 끝난다.

새벽부터 밤까지 하루 다섯 번 하는데 깨끗한 장소에서 얼굴을 씻고 메카방향을 향해 기도한다.

 

우리나라에서 메카방향은 서북서 285.8도로, 서쪽을 바라보고 약간 오른쪽으로 몸을 틀면 된다. 기도는 양손 엄지를 귓불 가까이 올리고 ‘알라후 아크바라(하나님은 위대하다)’를 외는 것으로 시작해 5개 절차로 진행한다.

 

이슬람을 아는데 꼭 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IBM’ 문화다.

인샤알라(신의 뜻대로)

부크라(내일)

마알리쉬(괜찮아) 머리글자를 딴 말이다.

 

인샤알라는 하나님이 길을 정해 놓았다는 운명론이다. 사람의 힘으로 일을 좌우할 수 없다는 모호하고 부정적인 말로 쓰인다.

부크라는 약속이나 계획을 미룰 때 사용한다. 내일이란 뜻이나 그 의미는 내주, 다음 달, 내년인 경우가 많아 ‘지금 해줄 수 없다’는 말이 된다.

마알리쉬는 남을 위로하거나 자신의 잘못을 사과할 때도 사용한다. 약속시간에 아무리 늦어도 마알리쉬 이외의 사과는 없는 게 보통이다.

 

인사는 오른손으로 하고 친척 친구 간에 오른쪽부터 시작해 왼쪽으로 어긋나게 포옹을 한다.

가까운 사이라면 오른쪽 뺨을 맞추거나 오른쪽 뺨에 입술을 댄 뒤 왼쪽에 맞춘다. 반가우면 두 번 이상 뺨 맞대기 인사를 한다.

식사, 악수를 오른손으로 하고 손톱 자르기, 칫솔질도 오른쪽부터 할 정도로 오른손 문화가 보편화 되어 있다.

눈썹을 치켜세우고 머리를 위로 약간 올리면 부정적인 표시다.

이름 앞에는 호칭을 쓰는데 교수 변호사는 우스타드, 박사는 둑투르, 대통령이나 총리는 싸힙 알 파카마, 왕이나 영왕에게는 잘랄라를 붙인다.

 

이슬람 요일은 토요일부터 목요일까지가 평일이다. 그래서 아랍권 대사관은 금토일 3개 요일을 쉬는 경우가 많다. 관공서 업무는 아침7시30분 시작해 오후1, 2시 마감한다. 상점들은 더운 오후 1, 2시에 문을 닫았다가 저녁에 다시 연다.




간단한 아랍어 인사말

앗살람 알라이쿰(안녕하십니까?)
마르하반(안녕)
타샤라프나(만나서 영광입니다)
카이팔 할(어떻게 지내세요)
이스미 000(내 이름은 OOO입니다)
푸르사 사이다(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민 아이나 안타(당신은 어디서 왔습니까)
아나 민 쿠리야(나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마앗 살라마(안녕히 가세요)
슈크란(감사합니다)  






 

 



 

 









 


 

카타콤소식지 표지 얼굴에 있는

탈북한 어린이와 지도자어른과

북한 성도 할머니 얼굴을 보고 그렸습니다.


카타콤소식지를 알게 된 계기는 이삭 목사님께서

늘푸른 교회에서 북한 선교 말씀에 감동을 받고,

그때에 이 카타콤소식지

(코너스톤 선교회가 발행하는 선교잡지)를 보고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이 표지에 나오는 북한어린이들을 그리면서

그들을 위한 기도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북한성도들은 자유가 없는 믿음생활에

그들이 간절히 윈 하는 예배와 찬양을 큰 소리 내면

주님을 향한 뜨거움을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자유로움 가운데 절실한 기도가 없고

억압하는 것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말씀에 충실하지 못함에

주님의 자녀 됨이 부끄러웠습니다.


북한의 지하교회가 역동하고 복음이 퍼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화가인 제가 할 수 있는 그림으로

그들의 아픔과 현실을 나름대로 표현해 보있습니다


분단된 우리 조국이 한마음 영적 통일이 되는 그날을 꿈꾸며

우리의 무관심과 닫힌 마음을 열고

서로 소통되는 날을 소망합니다.

 

권은희








 




 


 






 




 




 




 




 




 




 




 




 




 



 



 






 

 


 


 




 



 

 


 
 



 

 



 

 

 






 


 

 

 

 



 




 





 







 



 







 


커피를 마셔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생겼다. 매일 커피를 마시면 시력 악화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코넬대학교 연구팀이 '농업 및 식품화학 저널'(the journal of Agricultural and Food Chemistry)에 최근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매일 커피 1잔을 마시면 시력의 악화를 막아줄 뿐만 아니라 녹내장과 노화, 당뇨가 원인이 돼 발생하는 망막변성에 따른 실명의 위험도 줄여준다고 했다.


원두 커피에는 보통 1%의 카페인밖에 없으나 7~9%의 클로로겐산(CLA)이 함유돼 있다. 바로 이 클로로겐산이 강력한 항상화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눈의 안쪽에 자리잡은 망막은 빛에 민감한 수백만개의 신경세포로 구성돼 있으며 활발히 작동하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산소를 요구한다. 만약 산소 수준이 감소하거나 '자유 라디컬'(free radical·짝짓지 않은 전자를 가지는 원자단)이 생성되면 망막섬유가 손상된다.


이번 연구는 생쥐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연구팀은 생쥐의 눈에 산화질소를 처방했고 이것은 산화 스트레스와 자유 라디컬의 생성으로 망막악화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에 앞서 클로로겐산이 처방된 생쥐들에선 망막에 아무런 손상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연구를 이끈 코넬대학교 식품과학과 창 Y 리 교수는 "우리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기능성 식품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 앞서 커피가 치매와 당뇨병 등에 좋다는 연구결과도 있었다. 코넬대학교의 이번 연구는 사이언스 월드 리포트가 3일 보도했다.









 



1. 녹을 제거한다. 

하룻밤 콜라에 집어넣었다 다음날 아침에 닦아내면 된다. 도금된 제품은 천에 콜라를 묻혀서 원을 그리듯 닦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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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찌든 기름때를 제거한다. 


얼룩진 부분을 콜라에 넣은 후 잠시 두었다가 세탁기에 세제를 넣고 세탁한다. 기름이나 피같은 찌든때도 사라지고 냄새도 제거가능하다. 다만 너무 오래놓아두면 콜라 색이 물드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는 중성세제를 희석한 세척을을 천에 묻혀서 위에서 두들기면 된다. 

 

이미지 소스: madamenoire.com


3. 벌레, 해파리에 물렸을 때의 진통에 좋다.


콜라는 벌레에 물렸을 때의 통증을 완화시킨다. 모기나 벌에 물렸을 때 치료제가 없다는 일단 콜라를 바른다. 해파리, 가오리에게 쏘였을 때의 통증에도 효과가 있다. 

 

이미지 소스: okeanosgroup.com


4. 체취 제거 

 

콜라를 한캔 몸 전체(특히 냄새를 제거하고 싶은 부위)에 끼얹은 다음 씻어내면 냄새가 사라진다고 한다.

콜라에 함유된 허브 냄새가 체취를 씻어낸다고. 머리에 뿌리면 머리카락을 매끄럽게 하는 트리트먼트 효과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스컹크 등 강렬한 짐승냄새 제거도 가능하다. 콜라 한캔과 비누 하나를 바케츠 하나 분량의 물에 녹인뒤 스컹크에게 당한 부위를 씻는다.

이 효과를 더 강하게 만들고 싶으면 과산화수소와 중조도 같이 넣어주면 좋다. 스컹크 냄새가 본인에게 옮았다면 냄새나는 부분에 콜라를 끼얹은 뒤 물로 씻어낸다.

 

이미지 소스: fcps.edu



5. 유리창의 성에 및 물때 제거

집이나 자동차의 창문에 붙은 성에에 콜라를 뿌리고 몇분 기다리면 성에를 그냥 긁어낼 때보다 훨씬 간단하게 성에를 제거할 수 있다. 콜라는 욕실의 창문이나 거울에 부착된 물때 제거에도 효과적이다. 콜라에 적신 걸레로 닦아내면 물때가 깨끗하게 제거된다. 다만 콜라에 포함된 당분이 잔류물로 남는 경우가 있으므로 완전히 닦아내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이미지 소스: meathenge.com



6. 위의 복통을 진정시킨다.

개인차는 있지만 콜라에는 위의 통증을 완화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얼음을 넣지 않은 콜라는 구토감이나 설사에도 좋다고 한다.

목젖부위의 통증에도 효과가 있다고. 미국에서는 감기를 앓으면 콜라나 세븐업을 마시도록 권한다고 한다. 다만 늘 마신다고 해서 감기가 걸리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착각하지 말도록. 

 

이미지 소스: ballywhointeractive.com



7. 화장실 청소

청소전에 변기에 콜라를 부어둔다. 때가 떨어져나오길 기다렸다 청소한다. 문지르는 시간이 대폭 줄어든다. 

이미지 소스: wikihow



8. 냄비의 검댕제거

냄비나 프라이팬의 검댕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럴 때 타버린 부분이 안보일 정도로 콜라를 넣고 약한 불에 올린 뒤 끈적거릴 때까지 수분을 날린 뒤에 식혀서 닦아내면 검댕을 제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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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머리카락의 껌 제거 

껌이 달라붙은 부위의 머리카락을 콜라에 몇분간 담궈둔다. 그 후 천천히 껌을 떼어낸다. 시간은 걸리지만 머리카락을 자르기 싫은 사람에게 권한다. 

 

이미지 소스: blogspot.com

 
10. 말벌등의 해충 구제


캠프에서 아웃도어 라이프를 즐기고 싶을 때, 근처에 뚜껑을 딴 콜라를 놓아두면 좋다. 대부분의 벌레, 특히 말벌은 콜라의 달콤한 성분을 좋아하므로 집중적으로 몰려들어 사람에게 오지 않는다.

그 콜라는 나중에 마시지 않도록 주의한다. 이외에도 얕은 접시에 콜라를 따라 정원에 놓아두면 달팽이나 민달팽이등을 구제할 수 있다. 이들 생물은 콜라를 마시면 죽어버린다고 한다. 실제로 인도에서는 콜라를 농약대신 사용한다고.

 

이미지 소스: adclinic.com

 
11. 창문 청소


코카콜라에는 구연산이 들어있어 유리창 세척 효과가 뛰어나다. 이는 귤이나 레몬 등이 포함된 유리창 세정제의 기능과 같다.

특히 묵은 때가 덕지덕지 붙은 유리창에 효과가 뛰어나다. 천에 적셔 끈적한 물체가 달라 붙지 않도록 닦아내면 된다.

 

이미지 소스: brucemctagu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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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복심 5000명 발송비

Francis 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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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가정집에 들어갈 때

우리나라의 문패처럼 문설주에 부착되어 있는

손바닥 길이 정도의 작은 케이스가 달려 있습니다.

이 작은 케이스가 바로 [메주자/Mezuza]]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어느 작은 가게의 입구에도 붙어 있습니다.   


메주자 안에는 성경의 신명기 6장 말씀이 들어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이신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을 다하고

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신6: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