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17, 2015






 







 









 




믿는 사람들은 주의 군사니

앞서 가신 주를 따라 갑시다
우리 대장 예수 기를 들고서

접전하는 곳에 가신 것 보라



원수 마귀 모두 쫓겨 가기는

예수 이름 듣고 겁이 남이라
우리 찬송 듣고 지옥 떨리니

형제들아 주를 찬송합시다



세상 나라들은 멸망당하나

예수교회 영영 왕성 하리라
마귀 권세 감히 해치 못함은

주가 모든 교회 지키심이라



백성들아 와서 함께 모여서

우리 모두 함께 개가 부르세
영원토록 영광 권세 찬송을

우리 임금 주께 돌려보내세



믿는 사람들은 주의 군사니

앞서 가신 주를 따라 갑시다
아멘  


 


 





 

 


 
 



 




 




 
 
 

 
 



 



 



 







저녁 -

비 그치자 저녁이다 내 가고자 하는 곳 있는데, 못 가는 게 아닌데, 안 가는 것도 아닌데, 벌써 저녁이다 저녁엔 종일 일어서던 마음을 어떻게든 앉혀야 할 게다 뜨물에 쌀을 안치듯 빗물로라도 마음을 가라앉혀야 하리라, 하고 앉아서 생각하는 사이에 어느새 저녁이다 종일 빗속을 생각의 나비들, 잠자리들이 날아다녔다 젖어가는 날개 가진 것들의 젖어가는 마음을 이제 조금은 알겠다, 저녁 되어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 늙어가는 어떤 마음과 다름없는 것을…… 뽀얗게 우러나는 마음의 뜨물 같은 것을…… 비가 그 무슨 말씀인가를 전해주었나 보다
저녁…….


엄원태 시인(1955~ )
 





공중에 빗금 긋고 흐르는 비의 동선(動線)을 보고 “움직이는 비애”라고 표현한 것은 김수영이다. 비는 여기에서 저기로, 혹은 저기에서 여기로 움직이는 비애다.

엄원태의 시는, 비 그친 저녁, 가야 할 곳에 기어코 가지 못하고 부동(不動)하는 자의 번잡한 마음을 더듬는다. 못 간 것도 아니고 안 간 것도 아닌데, 어느덧 저녁이다. 이 마음 구석구석을 물들인 하염없음이라니... 당신은 먼 곳에 있는데 나는 뼛국물인 듯 뽀얗게 우러난 하염없음에 젖은 채 저녁을 맞는다. 이 저녁, 아픈 것은 내가 아니라 내 마음이 품은 그 사람이다.

[장석주·시인]  





 



 

 

 



 


 

 










 

















 




 




 




 




 




 




 




 




 




 




 




 




 




 




 




 




 




 




 




 




 




 




 




 




 




 




 




 




 



 




 












 











 

한국에서는 8 7일부터 9일까지 코엑스에서 한국 최초의 할랄 전문 전시회 할랄 엑스포 코리아 2015를 실시한다.

 

이를 위해 위나이(Dr. Winai Dahlan) 태국 할랄과학연구소장, 쑤린(Surin Palarae) 태국 할랄인증기관(CICOT) 사무총장, 빠껀 쁘리야껀(Dr. Pakorn Priyakorn) 태국 할랄표준연구소장, 야니스(Dr. Muhammad Yanis Musdja) 인도네시아 할랄제품재단 회장을 공동 특별자문위원으로 공식 위촉했다.

 

이 행사는 틀림없이 한국이 이슬람 샤리아의 포로가 되는 첫 발을 내 딛는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 틀림없다.

 

얼마 전 국회의원 회관에서 열린 "할랄(이슬람율법으로 허용된 것) 산업 활성화 및 무슬림 관광활성화를 위한 토론회"가 있었다. 

 

대한민국의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 회관에서 정부가 앞장서서 국회위원들을 앞세워 어떻게 하면 이슬람 포교를 경제적으로 법과 제도를 동원하여 지원할 수 있을까를 선동하는 모임이었다.
 

한국에서 이슬람 관련 문제만 나오면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한양대 모 교수가 거기서 기조 발제를 했다. 그의 발제는 이 토론회에서 학술적 의미를 부여하는 핵심적인 위치에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그가 제출한 발제문이 책자를 통해서 소개되었다. 그 발제문을 읽는 순간 머리가 어지러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대한민국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는지 너무 안타까웠지만 마땅히 하소연할 데가 없었다. 그의 발제는 자신의 말대로 대한민국에 이슬람 대중화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답게 눈감아줄 수 없을 정도로 부풀리고 미화된 자료였다.

 

그것을 알기 쉽게 풀어보면 아래와 같다.
 

◆ 첫째, 이슬람에서 할랄이란 신이 허용한 음식의 범주라고 간단하게 기술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직하게 말하자면 이것은 온 인류에게 주어진 지침이 아니라 이슬람의 신 알라(Allah)가 그를 추종하는 무슬림들에게 이슬람의 율법인 샤리아를 기준으로 볼 때 먹어도 좋다고 허용한 음식을 말하는 것이다. 할랄 개념은 이슬람의 율법인 샤리아를 떠나서는 의미를 상실한다.

 

이슬람의 신 알라(Allah)는 기독교의 하나님과는 속성이 전혀 다른 신이다. 알라(Allah)는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소속되었던 꾸라이시(Quraish)족이 섬기던 종족신이었으며 라트, 우짜, 마나트 라는 세 딸이 있었다.

꾸란에 보면 무함마드가 그 세 딸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그들은 알라와 관계가 없다고 선언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그것은 너희와 너희 조상들이 알라의 딸이라고 불러왔던 이름들이다"고 시인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꾸란53:19-23) 이슬람의 알라(Allah)는 기독교와 유대교인들이 섬기는 여호와(Jehovah) 하나님과는 전혀 다른 신이라는 증거를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에서도 찾을 수 있다.

 

유대교도나 기독교도는 그대가 그들의 종교를 신봉하지 않는 한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말하라. "알라의 인도만이 진실한 인도이다"라고...(꾸란2:120)

 

이 구절에서 여호와를 유일신으로 믿는 유대교인들과 기독교인들에게 "알라의 인도만이 진실한 인도라고 말하라"는 것을 봐서 이슬람의 신 알라(Allah)와 유대교와 기독교의 신 여호와와는 다른 신이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물론 그 발제자는 기회 있을 때마다 이슬람의 알라(Allah)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신이라는 일반명사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이 거짓이라는 증거는 이슬람의 신앙고백에서 찾을 수 있다.

 

"알라(Allah) 외에는 신(illah)이 없으며 무함마드는 알라의 메신저이다"는 것이 이슬람의 신앙고백이다. 모든 무슬림들이 "알라(Allah)외에는 일라(illah:신이라는 일반명사)가 없다"고 고백하고 있는데, 알라가 일반명사라는 것은 무지한 대중을 속이기 위한 전형적인 타끼야(위장술)로 보인다.

 





 

◆ 둘째로 '생명존중 사상이 핵심이다'라는 소제목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는 '신에게 생명의 소멸을 허락받는 과정의 준수여부가 핵심이다(비쓰밀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할랄 고기는 짐승의 목을 자르면서 비쓰밀라(알라의 이름으로)라고 외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무슬림들의 종교 의식이다.

 

이방인들이 짐승을 잡을 때 자신들의 신들에게 일단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먹던 우상숭배자들의 문화를 이슬람에 접목시킨 것이다. 이슬람의 신 알라(Allah)의 이름으로 죽이지 않으면 할랄이 아니다. 테러범들이 이교도들의 목을 칠 때도 "알라후 아크바르(알라는 더 위대하다)"라고 외치는데 이것도 일종의 종교의식이라고 볼 수 있다.

 

아무리 첨단시설과 위생시설이 잘 갖춰진 도축장에서 잡아도 비쓰밀라(알라의 이름으로)를 외치지 않으면 할랄이 아니다. 이 때 비쓰밀라를 외치는 도축자는 이슬람의 신성한 의식의 제사장 격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영국의 할랄 시장이 활성화 되자 파키스탄 출신의 무슬림 할랄 도축자들이 5000명이나 투입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생명의 소멸을 허락받는다"는 것은 매우 미화된 표현이다. '허락받는다'는 것은 죽여도 됩니까? 안 됩니까?를 묻고 그 응답에 따라서 집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슬람의 알라는 묻고 그 대답을 받을 수 있는 신(神), 즉 소통이 가능한 신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슬람의 율법을 모르거나 또는 알면서도 알라의 속성을 미화시키기 위해서 지어낸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이슬람의 알라는 인간과는 소통이 불가능한 신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제2의 이슬람 경전이라고 하는 부카리의 하디스에도 있고(Sahih Bukhari V.6 B.60 Number378) 꾸란에도 있다.(꾸란42:51)

 

그는 또 할랄은 행복한 동물(Happy animal)개념을 지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히려 일반 도축방법은 도축 전에 전기 충격으로 기절시킨 상태에서 동물이 고통을 못 느끼게 잡는 반면, 할랄 도축방법은 피를 먹지 말라는 이슬람의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짐승의 피를 빼야하기 때문에 온 몸의 감각과 기능이 정상인 상태인 짐승 목의 정맥을 산채로 끊어버린다.

 

그래야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심장의 펌프 작용으로 피를 뿜어내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피가 잘 빠지게 하기 위해서 거꾸로 매달아 놓기 때문에 짐승이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서서히 죽어가게 되는 잔인한 방법이 바로 할랄식 도축이다.

그래서 서방 세계에서는 동물 보호단체들에 의해서 할랄도축 반대운동이 일어나고 있고 실제로 폴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스위스는 할랄 도축을 전면금지하고 있으며 덴마크도 동물복지를 위해 할랄식 도축 금지법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EU보건위원회도 할랄 도축법이 유럽 연합법에 위배된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동물 개념 운운하는 것은 지나친 아첨으로 보인다.

 

◆ 셋째, 정화와 의례의 공간과 과정을 중시한다고 주장한다.

 

자료집에 의하면 할랄 개념은 "이슬람의 영적 공간이고 알라(Allah)에게 보호받고 축복받는 무슬림 공동체의 신성한 영역을 구성한다"고 썼다.

 

이는 할랄 음식이 유통되는 지역은 무슬림의 영역이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즉 이슬람의 율법인 샤리아통치되는 지역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무서운 말이다. 이슬람의 궁극적인 목표는 샤리아로 통치하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것은 IS(이슬람국가)나 알-카에다, 보코하람 등 모든 이슬람 테러단체들의 공동목표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은 "우리가 무슬림들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끌어내기 위해서 할랄 방식을 이용하는 것이지 이슬람 종교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하는 순진한 생각을 한다.

그러나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하여 할랄 인증을 받은 사람들은 혹시라도 할랄 단속반에게 "샤리아에 위배된다"는 지적을 받아 인증이 취소되는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이슬람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샤리아의 노예가 되어 종노릇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할랄 산업에 동원된 직원들에게도 술과 돼지고기를 금하고 이슬람 율법을 강요하는 신실한 무슬림 노릇을 하게 된다.

 

이 발제문에 의하면 "도살시기, 장소, 도살 주체자, 포장, 유통, 운송, 가공, 제품화, 음식, 광고, 금융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 허용된 의례와 정화된 보호공간을 벗어나는 순간 할랄은 그 의미를 상실한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여기서 '도살 장소'란 두 가지 의미로 볼 수 있는데 ...

첫째는 돼지고기나 부정한 것들로부터 5 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잡아야 하며...,

둘째는 짐승이 죽을 때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의 카아바 신전을 향하여 머리를 두고 죽어야 한다는 뜻이다. '도살 주체자'란 도축하는 자가 무슬림이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즉 포장 유통 운송 가공 제품화와 음식을 만드는 일까지의 모든 과정에서 비무슬림들의 손을 거치지 말아야 하며 하람(금지된) 음식과 접촉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할랄은 즉시 그 의미를 상실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할랄 인증을 받으려고 수천만 원의 돈과 1~2년 정도의 시간을 투자하여 겨우 인증서를 받았는데 돼지고기를 운송했던 차량으로 이것을 운송했다면 인증은 즉시 취소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돈 몇 푼 벌자고 무슬림들도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이슬람의 혹독한 율법인 '샤리아의 멍에'를 스스로 뒤집어쓰고 영혼을 팔고 '샤리아의 노예'를 자처하는 모습은 한없이 처량하고 불쌍해 보인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라디아5:1)

 

◆ 네 번째로 할랄은 "선택된 백성이 취하는 문화정체성의 상징"이라 하면서 "할랄 상태를 공유하고 할랄 고기를 취하는 행위를 통해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일체감과 형제애적인 동질감을 수없이 확인한다."고 씌어있었다.

 

이는 할랄음식을 먹으면 무슬림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할랄 상태를 공유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할랄 상태라는 것은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이는 "선택된 백성이 취하는 문화정체성의 상징"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으로 봐서 분명해 보인다.

샤리아에 의하면 비무슬림들은 죽여야 할 카피르(Kafir:불신자)이며 알라의 원수로 지칭되는 이교도(꾸란60:1)들을 말하며 또한 나지스(Najis)라고 불리는데 이는 샤리아에 의해 접촉이 금지된 더러운 것들을 의미한다.

 

유대인의 선민사상은 들어본 사람들이 많이 있겠지만 무슬림들의 선민사상은 그것 보다 더 강력하고 철저하다.

이슬람을 믿지 않는 자들은 지옥의 땔감들(꾸란3:10)이며 사악한 짐승들(꾸란8:55)이며 더러운 것들(꾸란9:28)이며 절대로 사랑해서는 안 되며 죽여야 할 알라(Allah)와 무함마드의 원수(꾸란60:1)라고 꾸란에 명시하고 있다.



 





 

알라 앞에서는 무슬림들만 할랄(허용된 사람들)이며 그 외의 모든 비무슬림들은 하람(금지된 자들)이기 때문에, IS(이슬람 국가)같은 소위 원리주의 무슬림들은 비무슬림들의 목을 자르면서도 죄의식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알라의 뜻을 실천했다(꾸란8:12)는 신앙적인 자부심을 가지고 "알라후 아크바르(알라는 더 위대하다)를 외치는가 하면, 무슬림들의 거룩한 성소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는 더러운 비무슬림들을 접근도 못하게 하는 것이다.(꾸란9:28)

 

한 가지만 더 지적하자면 그 발제자가 기록한 자료 내용을 보면 "할랄 산업은 3조 달러 이상 되는 지구촌의 블루오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참고로 같은 자료집 인사말에 보면 할랄식품 시장 규모에 대해서 박창식 국회의원은 "7,0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고 우상호 국회의원과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1조800억 달러로 이를 장악하기 위해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고 했다.

 

대한민국 농민축산식품부의 자료에 의하면 2018년까지 1조626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했다. 이는 할랄 시장의 규모가 3조 달러 이상 된다는 그 발제자의 주장이 얼마나 과장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된다.

 

교재의 마지막 부분에 "할랄은 올바른 삶의 방식을 규정한다"는 주장 역시 무슬림들만의 고백이라는 전제를 염두에 두고 이해해야 하며 "청정식품"이라는 주장 역시 정직한 표현이 아니다.

 

이슬람권의 가장 큰 축제들 중의 하나인 희생절(Eid e Qorbani)에는 전국의 동네마다 도축장이 되는데 대부분 아무데서나 맨 땅에서 잡기 때문에 전국이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파리 떼가 창궐한다.

 

위생과는 전혀 관계없고 오로지 아무나 무슬림이라면 비쓰밀라(알라의 이름으로)를 외치며 짐승의 머리를 메카 쪽으로 눕혀놓고 목을 자르면 피가 뻗혀 나간다. 이를 "청정 식품이나 안전한 먹거리"라고 주장하면 이는 명백한 거짓이며 이슬람식 종교예식을 치른 음식이라고 하는 것이 정직한 표현일 것이다.

 

할랄 인증을 받기 위해서 목돈을 싸들고 뛰어다니는 분들에게 꼭 들려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할랄 산업 뿐 아니라 이슬람의 모든 단체나 기관에서는 2.5% 정도 되는 자카트(Zakat)라는 세금을 의무적으로 납부하도록 되어 있다.

이 돈은 주로 NGO단체에 기부형식으로 납부하는데 이 돈의 지출내역을 보고해야할 의무가 없다. 그런데 꾸란 9장 60절에 보면 이 돈을 사용할 수 있는 아홉 가지 용처를 명시해 놓았다.

즉 이슬람 포교자금, 전쟁포로나 노예 석방을 위해, 지하드 전사들을 돕거나 필요한 무기구입에 쓸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할랄인증을 받기 위해서 수천만 원씩 갖다 바치는 행위는 결국 테러범들에게 목돈을 헌금하는 행위이며 이는 도끼로 제 발등을 찍는 것 같은 어리석은 일이 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중동방문 이후 무슬림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전국에 할랄 붐이 일어나고 있는데, 할랄이 무엇인지 이슬람의 샤리아가 무엇인지 정확한 정보를 알고 적절히 대처하지 않으면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의 굴레 속으로 들어가서 비참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 하루 속히 주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줘야 할 것이다.

 

그래야 우리의 영혼을 지키고 한국교회를 지키고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킬 뿐만 아니라 우리 후손들에게 평화롭게 예수 믿을 수 있는 미래를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미국 대형교회인 댈러스제일교회의 로버트 제프리스(Robert jeffress-59) 목사가 10일(지난 주일) '표적 안의 기독교인들'(Christians in the Crosshairs)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선지자 무함마드에게 이슬람 종교를 계시한 인물은 다름 아닌 사탄"이라며 "이 종교를 따르는 자들은 지옥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프리스 목사는 약 6주간 이어진 설교를 통해 "예수님께서 근본주의 이슬람의 증가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기독교 박해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전하면서 "이 모든 일들이 예수님이 이 땅에 재림하시기 전의 징조"라고 말했다.

 

제프리스 목사는 "무함마드가 천사에게서 이슬람을 계시받았다는 주장은 틀렸다"면서 "무함마드가 본 천사는 실제로는 '광명의 천사'와 같이 다가온 악마였다"고 했다. 제프리스 목사는 "사탄이 이러한 환상을 신앙이 있는 사람들에게 전달하여, 수백만 명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도록 했다. 이슬람은 여러분들을 지옥으로 이끄는 거짓된 종교다. 이슬람은 거짓을 바탕으로 한 거짓된 책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한 진리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사람들을 멀어지게 하는 거짓 선지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적그리스도가 전 세계의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말살하려는 가운데, 전 세계의 소수종교인들이 IS에 의해 심각한 수준의 살해 및 박해를 당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IS는 이러한 행위가 신앙적이라고 믿고 있다. IS, 알샤바브, 보코하람과 같은 테러 단체들은 지하드(성전)라는 명목으로 때로는 수천 명의 기독교인들과 비무슬림들을 공격하고 살해했다"고 했다.

 

이와 관련, 제프리스 목사는 "여러분들은 20세기에 들어, 다른 어떤 때보다 더 많은 순교자들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일들이 해산의 고통과도 같을 것이다. 그 강도와 빈도가 더욱 증가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박해가 계속 늘어 우리가 대환란이라고 부르는 때에 최고점에 이를 것이라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알고 있는가?"라고 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로 수백만 명의 기독교인들이 살해를 당할 것이다. 교회(예수를 믿는 성도)는 7년 대환란의 날이 오기 전 하늘로 올라간다. 마지막 7년의 때에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께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끔찍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제프리스 목사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가 근본주의 무슬림들 또는 이슬람 국가들에 의해 자행되고 있지만, 그 뒤의 촉매는 적그리스도라고 주장했다. 그는 "박해의 촉매제는 마지막 세상의 독재자인 적그리스도다. 그는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상대로 공격을 시작할 것이다. 그는 이들을 하나로 보고 있다. 이는 마치 근본주의 이슬람 세력들이 이들을 '성서의 사람들'로서 하나로 보는 것과 같다. 적그리스도는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동일시하며, 이들을 상대로 한 공격을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꾸란에는 이슬람 확장의 반대편에 서 있는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을 죽이라는 35개의 명령을 비롯해 위선적인 내용들로 가득하다. 이슬람 테러단체인 이들은 신앙의 이름으로 지금과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여러분들은 신약성경 어디에서도 불신자들을 상대로 한 폭력을 요구한 구절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원수들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반대로 무함마드는 원수를 살해하라고 명령했다"고 말했다.

 

제프리스 목사는 세계가 단순히 근본주의 테러의 위험 뿐 아니라, 시아파 무슬림 국가인 이란의 핵 위협에도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란의 야심은 어느 한 날 지구상에서 이스라엘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초창기의 거룩성과 사회적 신뢰성을 상실하고 있다. 기독교 본래의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하나의 대안이 있다면 1907년의 평양 대각성운동의 신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한국교회 초창기의 영성은 큰 틀에서 청교도 영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청교도 영성은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1875년 성공회 목사 하트포드-베터스비(T.D. Hartford-Battersby)가 시무한 성 요한 교회에서 개최한 이래 오늘날까지 140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케직사경회 (The Keswick Movement)와 연결된다.

 

케직사경회는 성공회 목사로서 강해설교자 이반 홉킨스(Evan Henry Hopkins)가 첫 사경회의 주강사로 초빙되어 주도적 역할을 하였고 성공회주교요 캠브리지 대학의 리들리 홀(Ridley Hall)의 학장 핸들리 모울(Handley Moule)은 1884년 9월 스코틀랜드에서 열린 케직사경회에 참석하여 에반 홉킨스의 설교를 듣고 자기 안에 있는 죄들을 직면하고 예수를 완벽한 구속자로 받아들이는 케직운동의 가르침을 신학적으로 정리하였다.

저명한 영국 성공회 성직자 프레벤다리 웹-펩로(the Rev. Prebendary. Webb-peploe)도 케직 운동의 가르침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케직운동은 미국의 복음주의 운동에 영향을 끼쳐....

미국 복음주의자 무디(D. L. Moody),

무디의 절친한 친구요 침례교의 대표적인 복음주의자 고던(A. J. Gordon),

예일대와 예일신학부 출신인 무디성경학교 교장 토레이(R. A. Torrey),

장로교 출신의 초교파주의자요 피어슨(A. T. Pierson)이 케직 운동의 교사로 활동하였다.

 

무디의 부흥운동, 특히 그가 1886년부터 시작한 대학생자원운동(Student Volunteer Movement)을 통하여 수많은 선교사들(맥코믹신학교 학생이었던 윌리엄 베어드와 사무엘 모펫 등)을 결심하도록 했고 한국의 평양대부흥 운동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토레이의 성령론은 한국의 초기 선교사 하디(Robert A. Hardie, 1860-1949)와 무디의 선교적 도전에 감동을 받은 맥코믹신학교 출신의 한국 선교사들에게 전수되어, 1903년의 원산부흥운동과 1907년의 평양부흥운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피어슨(A. T. Pierson)은 20세기 초 케직 운동의 일환으로 선교사로 한국에 와서 선교하였고 피어선 성경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가 발전하여 오늘날 평택대학교가 되었다. 평택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는 피어슨의 저서들을 번역하여 케직운동에 대하여 역사적 기원과 그 정신에 관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1980년대 한국교회에도 한국복음주의 협의회를 중심으로 6년 동안(1985년-2001년) 케직사경회가 소개되고 여러 교회(할렐루야교회, 사랑의교회, 부산초량교회, 소망교회, 충현교회, 강변교회 등)에서 집회를 하였다. 이 운동은 한국복음주의협의회가 시작되면서 일어난 것이며 그러니 한국복음주의협의회(KEF, Korean Evangelical Fellowship)는 케직 영성과 불가분적인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1965년부터 2007년 은퇴 시까지 영국의 복음주의 지도자 존 스토트(John Stott)가 케직사경회에서 42년간 설교하였다. 존 스토트는 20세기 하반기에 케직사경회를 대표하는 설교자요 주강사였다. 케직사경회는 지금도 청년층부터 노년층까지 매년 여름 1만여 명이 참석하고 있는 유서 깊은 부흥운동이다.


 

결국 한국교회의 회복을 원한다면 한국 초대교회의 부흥에 영향을 끼쳤던 케직 사경회를 통한 영성회복을 기대하는 것이 좋다.(장재언)



 



 






 





 






 



 



 

 

 




 



 





 






 




 



 










 

13일 오후 11시 14분(현지 시간) 미국 뉴욕 펜스테이션을 출발해 롱아일랜드 ‘포트 워싱턴’ 종착역을 향해 달리던 롱아일랜드레일로드(LIRR) 통근 기차 안. 정체불명의 외마디 비명 소리와 함께 기차가 멈춰 섰다. 베이사이드 역을 100m 정도 앞둔 지점에서였다.

 

기관사석과 붙어 있던 칸에 타고 있던 기자를 포함해 30여 명의 승객은 순간 모두 어리둥절한 상태. 잠시 뒤 비명을 지른 사람은 갑자기 선로에 뛰어든 사람을 발견하고 급정거를 하려 했던 기관사로 확인됐다.

 

기자도 ‘철로 위를 무심코 걷다가 사망자 통계에 포함되지 말라’는 경고 포스터를 매일 보며 출퇴근하고 있지만 실제 그런 사고를 겪기는 처음이었다.

 

기차가 굉음을 내며 정차한 직후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예상치 못한 사고로 기차를 멈췄습니다. 불편을 끼쳐 죄송합니다.”

 

이어서 바로 300∼400명의 승객이 탄 기차 안에 전원(電源)이 끊어졌고 에어컨도 함께 꺼졌다. 실내 조명등만 켜진 어두컴컴한 상태가 되었다. 이내 ‘답답하고 덥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승객들 모두 놀란 표정을 가라앉히고 침묵을 지키며 자리에 앉은 상태여서 뭐라고 하소연을 할 수가 없었다. 모두들 스피커에서 나올 기관사의 다음 안내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실제로 약 5분 간격으로 “예상치 못한 불편을 끼쳐 죄송합니다”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긴장을 다소 푼 승객들은 휴대전화로 집에 사고 소식을 알린 뒤 옆 사람과 “이 시간에 누가 철로에 뛰어든 걸까” “언제쯤 집에 갈 수 있을까”라며 소곤소곤 얘기를 나누는 모습도 보였다. 오후 11시 46분. 기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중년의 백인 여성이 마침 곁을 지나가는 승무원에게 “휴대전화 배터리가 다 떨어져 간다. 충전하게 전원 좀 켤 수 없느냐”고 물었다. 남자 승무원은 “No(안 됩니다)”라고 짧게 대답하고 지나갔다.

 

몇 분 뒤 LIRR 트위터에 들어가 보았더니 ‘경찰 조사에 따른 기차 운행 지연 소식’이 올라와 있었다. 기차 밖에선 경찰들과 메트로폴리탄교통공사(MTA) 관계자들이 시신을 수습하고 사고 원인을 조사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기차 안에선 적막감이 느껴질 정도로 승객들 모두 그냥 조용히 앉아 있었다.

 

시간은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0시 4분(14일)쯤 “비상용 물을 나눠 드리겠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더니 승무원이 우유팩처럼 생긴 ‘물 팩’을 하나씩 나눠 주기 시작했다. 국토안보부의 승인을 받은, ‘5년간 보관’이 가능한, 그야말로 비상용 물이었다. 통근 기차 안에도 승객 수만큼의 비상용 물이 상비돼 있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졌다.

 

휴대전화를 충전하지 못해 계속 안절부절못하던 그 백인 여성이 물을 나눠 주는 승무원에게 “와인은 없나요?”라고 하자 열차 안에는 웃음이 번졌다. 0시 10분. 다른 경찰 1명이 열차 안을 돌면서 “모두 괜찮죠?”라고 물었다. 사고 한 시간이 지난 0시 19분에도 안내 방송이 “여러분의 인내심에 감사드린다”로 달라졌을 뿐 상황은 그대로였다.

 

경찰이나 승무원을 붙잡고 이것저것 따져 묻는 승객들은 없었다. 조용한 가운데 한 20대 아시아계 남자가 “허가받지 않은 사람이 선로에 뛰어들어 기차에 치였다는 내용이 트위터에 올라와 있다”고 다른 승객에게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0시 57분 그 말 많던 백인 여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기차에서 내리면 안 되나요? 내일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거든요.”

 

그러자 승무원의 단호한 목소리가 들렸다. “절대 안 됩니다. 그러면 새로운 문제가 생기고 정해진 사고처리 규정에도 어긋납니다. 지금은 경찰이 모든 걸 통제하는 상황입니다.”

 

이윽고 기차가 멈춰 선 지 두 시간도 더 지난 오전 1시 19분이 돼서야 전원이 들어오고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사고로 정차한 기차 안에서 “왜 이렇게 처리가 늦냐” “급한 일이 있어 빨리 가야 하는데 당신들이 책임질 거냐”라고 따지거나 고함치는 사람이 왜 단 한 명도 없는 걸까. 많이 궁금했지만 차마 물을 수가 없었다. 그들의 표정과 태도에서 ‘그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란 걸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티화나 교도소는 한마디로 복음의 황금어장입니다.

청소년들이 여러 모양으로  수감되어 있지만 축복의 통로임을 절감합니다. 

25명의 청년들에게 현지인목사님과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들어가기도 어렵고 통제도 많고 접근하기 여렵지만  매력이 넘치는곳입니다.

장기수들에게 전도 훈련을 하여 그들로 하여금  

동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는 사역입니다.

 

아직 성경 외에 종이 한장 가지고 들어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셔서 그들과 더 가까히 접근하여 교제 할 수 있이리라 굳게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황무지에 장미꽃을 아름답게 피울 것을 믿고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이영순 선교사.... 



 

전도는 지상명령이다.

은사가 아니라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영혼을 구원하기시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다.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니고 전도는 사명이다.

 

우리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셨다.

고기가 있는 어장으로 그물을 가지고 나가야 한다.

전적인 집중력을 가지고 출항해야 한다,

전도는 이론이 아니라 실제이다.

 

우리 주님이 실제로 동네마다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하셨다.

제자들에게 보여 주시길 위해서다..

 

전하지 않으면 듣지 못한다. 듣지 못하면 믿지 못한다.

전도는 유리방황하는 양들이 헤메이는 삶의 자리로 찾아 나아가야 한다.

교회에 끌어 오기위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주체이신 그리스도

보여주기 위하여 나가는 것이다.

 

두려움, 거절에 대한 두렴움은 믿지 않은 자의 신이 주는 속임이다.

전도의 두려움은 위장된 사단의 장난이다.

사단은 전도를 방해한다.

나가면 그 결과는 주님이 책임지신다. 나가야 된다. 





 


 


 


 


 


 



 


 


 


 


 


 


 


 


 


 


 


 


 


 


 


 


 


 


 



 

 


 


 

 




 



 




 











 




 


 



 


 




 












 

마메틴 감옥은 바위를 정으로 쪼아 만든 지하감옥으로 탈출이 불가능하다.
유일하게 주먹 하나 만한 구멍이 있는데 그 구멍으론 사형장으로 가는 길만 보이게 되어 있다.

 

마메틴 감옥의 지하에 깊숙이 투옥된 바울은 누가의 헌신적인 보살핌을 받으면서 이제 주의 이름으로 갈 길을 힘차게 달려 이제 결승선에 도달하였음을 깨닫고 마음을 정리하고 있었다.

 

특히 디모데는 바울이 아들같이, 제자같이,형제같이 아끼고 사랑하는 제자로 루스투라에서 두 번째 전도여행 때 만난 후로 바울의 분신과 같은 동반자였는데 그 디모데가 못 견디게 그리웠다.

 

감옥의 조그만 구멍 사이로  보이는 사형장으로 가는 길을 바라보면서 세상을 떠날 기약이 가까워 옴을 느끼는 길목에서 바울은  66년 여름이 지나 가을이 올 무렵 에베소에 있는 디모데에게 서신을 보내게 되는데 그것이 디모데후서이다.

 

"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다". 

 

이 글을 쓰면서 바울은 뜨거운 정에 복 받혀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디모데에게 강한 어조로 "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며 복음의 진보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당부하였다.

 

바울은 이 서신을 유언(遺言)으로 생각하며 인간적인 진솔함을 토하며 " 전제(제물에 뿌려지는 포도주)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라 " 고 적어 놓았다.

 

바울은 동역자들을 하나 둘씩 떠나 보냈다.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고,  에라스토는 고린도에 머물게 했고, 드로비모는 병이 들어서 밀레로에 남겨 두었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사랑하는  디도는 니고볼리에서 체포 될 때 달마디아로 보냈다. 

 

그들을 떠나 보낼 때에는 외로운지 몰랐는데 데마가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배신하고 데살로니가로 떠난 것에 대해 매우 섭섭하게 생각하였고 그 후론 외로움을 타기 시작하였다. 

 

바울은 섭섭하고 외로운 마음을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고백을 하며 " 이 편지를 받은 즉시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누가 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 고 간청을 하였다.

 

바울은 1차전도 여행 도중에 포기하고 가버린 마가 요한이 신의가 없는 사람으로 생각해 잘못 평가 하였지만 그 후로 마가는 베드로를 도와 복음전파에 전념하고 날이 가면 갈 수록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 

 

특히 바울은 마가가 자신을 미워하고 있는 줄 알았으나 마가는 바울이 처음 로마 옥에 갇혀 있을 때 머나먼 로마까지 위문을 하러 찾아왔던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마가의 손을 잡고 그를 안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디모데에게 겨울이 오기 전에 로마로 올 때 드로아에 있는 가보의 집에 맡겨 둔 두꺼운 겉옷과 함께 가죽 종이에 쓴 책을 가져오라고 당부를 하였다. 그러나 마가는 그 때 알렉산드리아에 있었는데 유대인의 폭동이 일어났기 때문에 로마로 갈 수가 없었다. 마가는 아버지처럼 따랐던 베드로가 꺼꾸로 십자가를 지고 순교할 때도 로마로 가지 못하였다.

 

얼마 있으면 겨울이 닦아오고 바위를 쪼아 만든 지하감옥은 차디 찬데 노쇠한 바울이 그 추위를 견딜 수 없어 두꺼운 외투가 필요하였고 그 동안 선교한 자료를 기록한 가죽 종이 서책은 앞으로 디모데가 목회사역을 할 때 필요하기 때문에 디모데에게 주려고 했던 것이다.  

 

디모데는 편지를 받고 즉시 에베소 교회를 잠시 두기고에게 맡기고 먼 길을 걸어 드로아로 가서 가보의 집에 맡겨둔 바울의 두꺼운 외투와 가죽으로 된 서책을 가지고 로마로 향하였다.

 

로마에 도착한 디모데는 바울을 만나 외투와 함께 서책을 전달하고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이 전하여 준 따듯한 사랑으로 큰 위로를 받고 기뻐하였다. 누가와 디모데는 바울을 보살피는 한편 여러 경로로 바울의 구명운동을 펼친 것으로 추측이 된다.

 

이 무렵(AD 66년)에 히브리서가 기록이 되였다. 

AD 66년 바울이 사형이 확정되기 전에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청천벽력과 같은 비보를 접하게 된다.

 

예루살렘 교회의 주축을 이루었던 유대파 할례당들이 기독교를 버리고 그 옛날 유대교로 다시 돌아가고 예루살렘 교회가 문을 닫게 되였다는 슬프고 애통한 소식을 접하고 바울은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1차 전도여행 떠나기 전에 수리아 안디옥 교회에서 예루살렘 교회가 어렵다는 말을 듣고 연보를 모아 바나바와 함께 전달하였고 3차 전도 여행 때에도 그 위험을 무릅쓰고 마게도냐와 아가보 지방교회들이 연보한 것을 예루살렘에 전하다 유대인들의 고발로 체포되어 가이사랴와 로마의 감옥에서 4년을 옥살이 하였는데 그 모든 수고와 애씀이 수포로 돌아 가고 있다.

 

바울은 내가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자신의 동족이 구원받았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로 간절했는데 이들이 그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다시 유대교로 돌아갔다는  사실에 바울은 넋을 잃었다.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 문제로 수일을 먹지도 못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 바울 옆에 있던 누가가 보다 못해 " 이방인 교회에는 편지를 써서 위로도 하고 말씀을 잘 가르치면서 자신의 동족이 위기에 처해 있는데 편지를 써서라도  안타까운 마음과 믿음을 지키라는 격려의 말씀을 전하라"는 권면을 받고 바울은 번쩍 정신이 들었다.

정신을 차린 바울은 자기 동족 히브리인들의 예루살렘 교회의 회생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심혈을 기울여 히브리어로 서신을 써 내려가기 시작 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히브리서 서신이다.

히브리서 서신을 쓰고 있는 동안 AD67년 바울은 네로황제에 의해 사형 날짜가 잡히게 되였고 히브리서를 완성하지 못한 채 서신의  미완성된 부분을 누가에게 부탁하였다. 바울이 사형판결을 받는 최종심문에서 디모데는 바울의 무죄를 주장하다가 오히려 정치범으로 몰려 감옥에 수감되는 일이 발생하였다.

 

네로황제는 바울이 1차 투옥되어 심문할 당시 바울의 말에 큰 감동을 받았으므로 그를 기소하거나 정죄하지 않았었다.

바울에 대한 네로 황제의 증오가 생긴 이유는 황제의 가족 중에서 명망있는 사람들이 바울의 1차 투옥 시에 전도로 그리스도교인이 된 것이었다. 그래서 그가 두 번 째 투옥되었을 때에는 첫번 때보다 더욱 가혹한 고통을 당하게 되었고 복음을 전할 기회는 조금도 허락되지 않았다. 네로황제는 웬만한 구실만 있으면 바울을 죽이려고 결심하였다. 

 

멀지 않아 그는 순교자의 무덤에 들어갈 선고를 받아야 했다. 바울은 로마의 시민이었으므로 고문은 받지 않고 참수형(斬首刑)을 선고 받았다.



 

 



 

 
 

사도 바울은 은밀히 사형 집행 장소로 끌려갔다. 그의 압제자들은 바울의 영향력이 광범위하게 미친 것을 보고 놀라 그의 죽음을 구경하는 사람들까지도 그리스도를 믿게 되지 않을까 염려하였다.

그래서 바울의 죽음을 지켜보는 것까지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나 바울을 끌고 간 완고한 군사들은 바울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으며 죽음 앞에서도 그토록 유쾌하고 즐거워하는 바울의 모습을 보고 매우 놀랐다.

바울은 사형을 집행하는 형리(刑吏)들에 대한 용서와 최후 까지 흔들리지 않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목격한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향기를 느끼게 하였다.

 

바울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나 두려움이 아니라 오직 기쁜 소망과 간절한 기대로 순교대에 서서 사형 집행인의 번쩍거리는 칼이나, 미구에 자기의 피를 받을 초록의 땅을 보지 않고 오직 여름날 고요하고 푸른 하늘 저편의 영원하신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았다.

바울은 "오 주여 주는 나의 위안이시요 나의 유업이십니다. 이제 주님의 품에 내가 안기리이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내가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6-8).

 

바울은 다메섹 회심 후 주님의 명령을 생명을 다하기 까지 순종과 충성으로 사명을 다하고 그토록 그리던 주님의 품에 안기셨다. 순교한 바울의 시신은 오스티안 거리에 있는 루치나 부인 가문의 소유지에 묻혔다.


 

 



 

 

 

대리석 기둥 위에서 사도 바울의 목을 자르면서 잘려진 머리가 땅에 세 번 튀며 튄 자리마다 샘물이 솟아났는데 이를 '트레폰타네"  " 세 개의 샘"으로 불리며 아직도 샘이 솟아나고 있다.

 

바울이 순교한 후 누가는 수감되어 있는 디모데를 찾아갔다. 디모데는 누가에게 지금 에베소 교회가 지도자가 없이 비어 있으니 저 대신 에베소 교회를 맡아 달라고 부탁을 하였고 누가는 바울의 유품들을 정리하여 에베소로 향하였다.

 

누가가 에베소에 와서 얼마 있지 않아서 네로 황제가 정적들에 몰려 자결하여 죽은 후 군 출신 갈바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되였다. 정권이 바뀌자 정치범으로 수감된 디모데는 무죄로 석방 되였다. 디모데가 감옥에서 석방되자 석방의 소식을 누가와 에베소교인들에게 알려 주기 위해 로마에서 사람이 왔다.

 

누가는 바울이 마지막으로 부탁한 히브리서를 헬라어로 번역하고 마지막 부분을 아주 조심스럽게 권면하는 말로 히브리서를 마감 하였다.

 

13:22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권면의 말을 용납하라 내가 간단히 너희에게 썼느니라

13:23 우리 형제 디모데가 놓인 것을 너희가 알라 그가 속히 오면 내가 저와 함께 가서 너희를 보리라

13:24 너희를 인도하는 자와 및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 이달리야에서 온 자들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13:25 은혜가 너희 모든 사람에게 있을 지어다. 

 

누가는 이 서신을 완성 시키고 예루살렘으로 보내려고 하다가 유대인들이 바울의 이름으로 편지를 받으면 보지도 않고 찢어버릴 공산이 크다고 생각하고 인사도 중요하지만 편지 내용을 읽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함으로 바울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편지 첫 부분에 있던 문안 인사 부분을 잘라낸 것이다. 그런 연유로 히브리서의 저자는 오리무중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바울과 누가가 저자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후 AD 70년에 로마 티투스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은 흔적도 없이 멸망 당하였고 유대인들은 나라 없는 떠돌이 디아스포라가 되여 2000년을 방황하였는데도 지금도 기독교는 박해를 당하고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사도 바울은 주의 사명을 받고 달리고 또 달렸는데 로마에서 로마의 선교를 위해서 관제로 드려졌다.

 

관제는 제물 위에 붓는 기름이다. 바울이 자기 몸인 목을 잘라서 그 피를 로마라는 그 제물 위에다 관제로 드린 후 그로부터 2백 년이 채 안된 313년에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 자유령을 선포하였고, 380년 2월 27일 테오도시우스 1세는 테살로니카 칙령을 선포하고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삼았다.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을 굳게 믿었던 복음의 능력으로 바울은 자신의 목을 쳐 사형시킨 로마를 예수의 이름 아래 무릎 꿇게 하였고 치욕스럽던 십자가를 인류 구원을 위한 위대한 징표로 바꾸어 놓았다. 할렐루야.(장재언) 











 






 



 

 


 
 



 

 



 
















스페인 안달루시아 주와 말라가 주에 걸쳐 있는

높고 좁은 길 '왕의 오솔길'

스페인 어로 '카미니토 델 레이(El Caminito Del Rey)'로 불리고

한국어로는 '왕의 오솔길'이라고 번역되는 이 길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길'로도 알려져 있다.

 

엘로코 협곡 높은 곳에 자리잡은 이 길은, 

원래는 1905년에 수력 발전소를 건설하면서

물자 수송과 건설 인력 이동 통로로 쓰려고 대충 만들었던 길이었다.

 

1921년에 당시 스페인 왕이었던 알폰소 13세가 

수력발전소가 완공을 축하하기 위해

 이 길을 걸었던 후부터 '왕의 오솔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

 

 

24일간 남편과 스페인, 모로코 베낭여행을 계획했고

스페인 말라가의 "왕의 오솔길"에 관심이 많았었다.

말라가 한인 숙소에 전화를 해보니 이미 예약이 완료되었고

대기자도 수만명 이란다.

 

그래도 별 볼품없는 동양의 할매 할배가 왔는데 떼를 써 보기라도 하자. 

무조건 가는거다~~!!

우리의 일정 중 가장 비싼 호텔까지 예약했는데 ...



 

 

전날 그라나다를 떠나 말라가에 짐을 풀고 히브랄파로성을 올랐다.

스페인의 휴양지답게 아름다운 바다가 조망되는 곳이다.




 

 

내려오다 보니 알카사르를 배경으로

학생들의 풀라멩고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리더자의 포스가 돋보였다.



 

 

 



 

 

다음날
 

Caminito Del Rey, 왕의 오솔길을 간다.

말라가에서 론다행 기치를타고 40분후 엘초로역에서 내렸다.

역은 무인역이다.

하루에 몇 번 안되는 기차가 쉬어가는 곳이며 역의 양쪽으론 바로 굴이다.


 

 

 

 

 

역의 바로옆의 숙소.




 

 

 

 

체크인 하는데 눈에 띄이는 이것.

왕의 오솔길 입장권이다.

와~~ 이런 행운이 있을줄이야~~~^^*

 

추측하건데 3월 28일 개장과 동시에 숙소에서 확보를 해놓은듯 했다.

후에 말라가 유학생을  만났을때 그도 바로 예약했는데 7월에나 들어갈수 있다 했다.

어디로 예약을 하는지 한국에서는 정보가 없어서 난감하기도 했다.

하루에 800명으로 제한 한단다.

세계 각지에서 홍보차 촬영팀이 많이 다녀갔단다.


 

 

 

 

이곳에 들려 체크하고





 

 

안전모 받고

 

 

 

 

 

 

안내 설명 듣고

 

 

 

 

 

예전의 위험한 길위로 안전하게 길을 만들어 놓으니 남녀노소 누구나 갈수있다.

엇갈리기에도 불편치않게 넓게...

 

짙은 옥색물이 멀리 발아래로 보인다.



 

 

 

 

 

오가며 동양인은 없다



 

 

 

 

 

 

화석


 

 


 

 

 

 

 

 

 

 

 

 

 

 

 

 

 

 

 
 

 

 

 

 

1코스가 끝나면

중간 2코스는 산책길이다.



 

 


 

 

 

 

3코스는 다시 암능길

 

 


 

 

 

 

 

 

 

암벽타기를 즐기는듯..

 

이쯤 되돌아 오는길이다.

반대편에선 시작점이다.

입구가 두곳.

우리가 간곳보다 반대쪽에서 더많은 사람들이 온다.




 

 


 

 

 

 

 

 

 




 

 

 

 

 

 

 

 

 

 

 
 



 

왕복 5시간정도의 길이다.

 

가기 전 동영상으로 보며 가슴이 콩닥였는데...

너무 쉬운길이야^^*

 

아직 한국인들에게 생소한 곳 이지만

스페인 여행중에 꼭 들려볼만한곳 인듯하다.

나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밤엔 숙소 수영장옆에서 잠깐 별돌리기도 했다.


 

 

 

다음날 렌페를 타고 론다로 향했다.

 



 






 

왕의 오솔길 (스페인)

 

동영상으로 스릴을 느껴 볼 수 있는 기회를 드립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나름의 완벽한 노후 플랜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뜻대로만 되지 않는 것 또한 사람 사는 세상의 이치. 어느 날 자고 일어나 생각해보니 “내 말년이 왜 요모양 요꼴이지?”이라고 자탄해보지만, 때는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

재정전문 자유기고가 멜리사 레옹 씨는 최근 파이낸셜 포스트지에 게재된 기고문에서 그가 은퇴자들과의 면담을 통해 수집한 은퇴 이후 재정적 충격에 대해 소개했다.

다음은 그의 기고문에 실린 ‘고달픈 노년을 자초하는 지름길 톱5’

 

1. 자녀에 대한 과도한 지원:

 

오늘날의 소위 ‘낀 세대(sandwich generation)’가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부양의무를 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 부담이 지나치면 자신의 은퇴계획은 엉망이 되고만다.

 

한 재정설계전문가는 “캐나다 부모들의 경우 자녀가 재정적인 도움을 청하면 대개 열 번 중 여섯 번은 돈을 준다. 그러나 자녀들은 자신들의 재정적 독립보다는 항아리 속에 있는 부모 재산에 더 관심이 크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자녀에게 돈을 주기 전에 은퇴 후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지켜가기 위해 필요한 자금이 얼마나 되는지를 먼저 따져보라”고 조언한다. 그는 “만일 올해 은퇴자금으로 7만 달러가 필요한 사람의 경우 연 평균 2%의 인플레를 가정하면 20년 후에는 그 금액이 10만4,300달러로 껑충 뛴다”면서 “자신의 은퇴 설계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때때로 중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2. 과도한 부채:

 

신용평가기관 에퀴팩스(Equifax)에 따르면 놀랍게도 부채 증가율이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연령층이 시니어들로 밝혀졌다. 적지 않은 캐나다인들이 모기지는 물론 크레딧 라인, 신용카드 빚 등을 안은 채 은퇴를 맞이하고 있으며, 그들 중 상당수는 부채 규모가 점차 늘고 있다는 얘기다.

은퇴 나이가 다가오는데 아직 갚아야 할 빚이 남아 있는 사람들은 좀더 일을 하거나 집을 줄이라고(downsizing)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한 재정설계전문가는 “빚과 은퇴는 기름과 식초처럼 함께 할 수 없다”며 “최악의 상황은 빚 갚을 자금의 원천이 RRSP밖에 남아 있지 않은 경우”라고 말한다. RRSP를 인출할 때는 그 금액에 대해 미뤄둔 세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3. 분수에 넘는 지출:

 

요트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거나 만리장성에서 자전거를 타는 등 꿈 같은 은퇴생활을 소개하는 여행 프로그램들이 시니어들을 유혹한다.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은퇴자들이야 상관 없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지출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그 동안 어렵게 모아둔 은퇴자금은 머지 않아 바닥을 드러내고 만다. 전문가들은 연간 인출 금액이 여유자금의 4%, 최고 5%를 넘지 않아야 안전하다고 강조한다. 즉, 그래야 향후 25~20년을 버틸 수 있다는 말.

한 파산신탁회사 대표는 “저축이나 소득이 충분하지 않으면 지출을 줄이는 것 외에 달리 방도가 없다”고 강조하고 “특히 시간 여유가 많은 은퇴자들이 도박의 유혹에 빠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절대 금물”이라고 경고했다.

 




 

 



 

4. 예상치 못한 질환:

 

선 라이프 파이낸셜(SunLife Financial)이 최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캐나다인 조기 은퇴자 중 41%가 그 이유로 ‘뜻하지 않은 건강 이상’을 꼽았다. 즉, 예상하지 못한 질환이 장기 근로를 전제로 세워둔 자신의 은퇴계획이나 저축목표를 망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은퇴 후에는 약값과 치과 치료비, 의료 장비 등 공공의료시스템이 커버해주지 않는 지출이 발생할 수 있다. 또 거동이 불편해지면 주 정부가 보내주는 복지사 외에 시간 당 20~30달러를 지불하고 사설 도우미를 고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노인 요양원에 들어가려면 월 1,500~5,000달러가 필요하다는 점을 계산에 넣어두어야 한다. 따라서 주택을 포함해 여유 있는 은퇴자금 풀을 예비해 두지 않으면 노년에 고생을 피하기 어렵게 된다.

 

5. 배우자 사망:

 

배우자가 먼저 세상을 뜨는 경우 자신의 현금 흐름(cash flow)이나 재정계획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를 미리 생각해 둘 필요가 있다.

 

앞에 나온 파산신탁회사 대표는 “최근 6개월 사이 여섯 명의 고객으로부터 배우자가 빚을 남기고 세상을 떴다는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면서 “특히 배우자 수입에 의존도가 높은 은퇴자들은 그가 먼저 사망할 경우에 대비해 자신의 자산과 부채 규모를 정확히 파악해 두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또 한가지 중요한 사항은 배우자 사망 시 자산이 순조롭게 자신에게 이전될 수 있도록 필요 서류를 업데이트 해두는 것을 잊지 말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

황복심 5000명 발송비

Francis Chang

안은혜

김성현

최옥연

C.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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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가정집에 들어갈 때

우리나라의 문패처럼 문설주에 부착되어 있는

손바닥 길이 정도의 작은 케이스가 달려 있습니다.

이 작은 케이스가 바로 [메주자/Mezuza]]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어느 작은 가게의 입구에도 붙어 있습니다.   


메주자 안에는 성경의 신명기 6장 말씀이 들어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이신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을 다하고

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신6: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