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31 2015






 

 









 



 

 




The sky shall unfold
Preparing His entrance
The stars shall applaud Him
With thunders of praise
하늘이 펼쳐지고
그의 입장을 기다리네
별들은 그에게 갈채를 보내리
천둥 같은 찬양으로

The sweet light in His eyes, shall enhance those awaiting
And we shall behold Him, then face to face
그의 눈 속의 감미로운 빛은, 기다리는 것들을 돋보이게 하고
그리고 우리 주를 보게 되리라,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고

O we shall behold Him, we shall behold Him
Face to face in all of His glory
O we shall behold Him, yes we shall behold Him
Face to face, our Savior and Lord
오, 우리 주를 보게 되리라, 우리 주를 보게 되리라
얼굴을 마주 대하여, 그의 영광 속에서
오, 우리 주를 보게 되리라, 네 우리 주를 보게 되리라,
얼굴을 마주하여 우리의 구원자, 주님을

The angel shall sound, the shout of His coming
And the sleeping shall rise, from their slumbering place
And those remaining, shall be changed in a moment
And we shall behold him, then face to face
천사들은 그의 오심을 소리쳐 외치고
잠자는 자들은 일어나리, 그들의 졸고 있는 자리로부터
그리고 남은 자들은, 한 순간에 변화되리
그리고 우리 주를 보게 되리라,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We shall behold Him, o yes we shall behold Him
Face to face in all of His glory
We shall behold Him, o yes we shall behold Him
Face to face Our Savior and Lord
오, 우리 주를 보게 되리라, 오 그래요 우리 주를 보게 되리라,
얼굴을 마주하고, 그의 모든 영광 속에서
오, 우리 주를 보게 되리라, 오 그래요 우리 주를 보게 되리라,
얼굴을 마주하고 우리의 구원자, 주님을

And We shall behold Him, our Savior and Lord
Savior and Lord!
그리고 우리 주를 보게 되리라, 우리의 구원자, 주님을
우리 구원자, 주님을..... 





 




 

 
 




 




 




 
 
 

 
 

 



 










시인 초년병 시절, 한 선배 시인에게
‘유명한 무명시인’이 되겠다고 말했었다
‘니가 뭘 몰라’ 묘하게 웃던 선배는 그 후
세상 속으로 들어가 이름이 주렁주렁해졌다

그 말이 씨가 되어
나는 지금도
‘중견’이라는 수식어가 어색하게 붙여지는
은둔과 칩거의 무명시인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
무명으로 남는 일이 훨씬 더 힘들다는 것을 안다
'무명’은 이루었지만
아직 유명을 이루지는 못했다

내가 한, 내 말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이제 유명해질 일만 남았는데
어떻게 해야 유명해지는지를 몰라
나는 여전히 헤매고 있다, 하지만

주렁주렁한 이름 대신
시가 주렁주렁해 지는 일
더 어려운 그 일에 매달려 여전히
고집 부리듯, 변명하듯
세상의 변두리에서 쌉쌀하게 살며
아직도 덜 뜬 시의 눈을 뜨게 하려고
아직도 덜 뜬 나의 눈을 닦아내곤 한다
 






‘현대문학’에 ‘지게’, ‘지게꾼의 노을’을 발표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청동거울 속의 하늘’, ‘초록비타민의 서러움 혹은’ 등이 있으며, 현재 한국과 캐나다에서 활동 중이다.
△《현대문학》등단
△《여원》에 단편 <모래성> 당선
△《여성중앙》에 단편 <끊임없이 도는 풍차> 당선
△ <저녁노을 붉은 꽃>, <끈> 등 드라마 당선(KBS,SBS)
△ 월간 《어머니》 편집장. 풀잎문학 주간, 관악문화신문 논설위원·컬럼니스트 서울신문 컬럼니스트, 진단시동인 역임
△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국제펜클럽한국본부, 현대시인협회 이사
△ 계간 《다층》 편집동인, 한국전자문학도서관 웹진 <블루노트> 주간
△ 도서출판 학마을, 문화탐험 <하나플러스> 대표
△ 하버드대학 번역대회 수상
△ 시집『사랑의 아포리즘』, 『고독 바이러스』


 

 

 





 

시와 시인이 엄청난 숫자로 늘어나면서 오히려 시가 읽히지 않는다. 사물이 다르고 사람이 달라 세상이 다르게 보이니 시가 내 마음도 네 마음도 모르는 활자가 돼버린 느낌이랄까. 그런데 ‘유명한 무명시인’은 달랐다. 내 생각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시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주렁주렁한 이름 대신/ 시가 주렁주렁해 지는 일’, 나 또한 얼마나 갈구해 왔던가.
 

유명해지고 싶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 이름이 주렁주렁해’지고 싶은 욕망을 누르는 것은 출세지향적인 우리 사회에서는 불가능할지 모른다. ‘유명한 무명시인’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쓰인 것으로 보인다. 한 마디로 시는 자기 모색이지, 출세를 위한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시인은 예민한 감수성으로 세상을, 집단을, 타자를 보고, 결국 자신을 보는 자다. 시를 통해 나를 찾고 그 너머 실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진정한 시 쓰기이며, 그 과정에서의 자기 응시, 이것이 시인이 맨 먼저 갖춰야할 조건일 것이다. 시를 쓰면서 스스로 달라질 것이 없다면 시가, 문학이 다 무슨 소용일까.
 

우리에게 필요한 시는 ‘이름이 주렁주렁한’ 시인의 시가 아니라, 가장 인간다운, 진지한 작가정신과 삶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육성의 언어다.
 

시를 읽고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세상의 변두리에서 쌉쌀하게 살며/ 아직도 덜 뜬 시의 눈을 뜨게 하려고/ 아직도 덜 뜬 나의 눈을 닦아내’려는 시인이 많아지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고집 부리듯, 변명하듯’(김순아 시인)




 



 

 

 



 


 

 

 














 






 






 

 

 



 

일본을 비롯한 환태평양화산대의 일명 ‘불의 고리’ 주변으로 지진과 화산 활동이 잇따르고 있다. 연쇄적 작용이라고 의심이 들게끔 4월과 5월 활동이 눈에 띄게 부쩍 늘었고, 특히 동태평양, 서태평양, 남태평양은 물론 알래스카 일대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고리 전체가 꿈틀거리고 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대재앙의 전조가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 점점 불안해지는 일본 열도

 

31일 일본 기상청에 따르면 전날 오후 8시24분 도쿄도 남쪽 북태평양 해상의 오가사와라 제도 인근에서 규모 8.1의 강진이 발생했다. 1885년 이후 일본 주변에서 발생한 지진으로는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규모 9.0)에 이어 두 번째를 기록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

수도권의 가나가와현 동부에서 진도 5를 웃도는 진동이, 도쿄 도심에서 진도 4의 흔들림이 생기는 등 일본 열도 전체가 흔들렸고 열차 운행도 중단됐다. 이 지진으로 모두 12명이 부상했다.

한국의 남해안과 동해안, 제주도 일부에서도 흔들림이 감지됐다. 그러나 진원 깊이가 682㎞여서 피해가 적었다.

 

일본 기상청은 필리핀해판(플레이트) 밑으로 파고들어가는 태평양판에서 지진이 발생해 지진파가 판의 표면을 따라 잘 전달되는 성질 때문에 진원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도 흔들림이 컸다고 밝혔다.

 

더구나 이 지진은 일본 남부 가고시마현 구치노에라부섬에서 폭발성 분화가 생긴 지 하루 만에 발생한 것이어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학계에서는 지진과 화산 활동이 서로 매우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보고 있다.

 

일본에서는 5월에 눈에 띄는 지진과 화산 활동이 몇 차례 더 있었다.

지난 25일에는 도쿄와 가까운 간토지방 사이타마에서 규모 5.5의 지진이 발생했고,

15일에는 그 위쪽의 후쿠시마현에서도 규모 5.1의 지진이 관측됐다.

5일에는 역시 도쿄 인근의 하코네산에서 화산성 수증기가 발생해 당국이 ‘분화 경계’를 발령했다.

 

학계에서는 이들 지진이나 화산 활동이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일 가능성에 우선 무게를 두고 있다. 과거에도 통상 큰 지진이 발생하면 길게는 5년 정도까지 여파가 이어져왔기 때문이다.

아울러 아직 뚜렷한 연관관계를 찾아내지는 않았지만 태평양을 둘러싼 ‘불의 고리’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일본 차원이 아닌 환태평양 전체 연쇄적인 현상일 수 있다는 추정이다.

 

일련의 활동이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교토대학의 아구치 마사토 교수는 NHK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구치노에라부섬 화산 폭발도 일련의 긴 활동의 초기 단계에 해당할 수 있다”면서 “앞으로도 큰 규모의 폭발이 생길 우려가 있어 2~3년은 경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환태평양 전체가 불안 조짐

 

‘불의 고리’ 가장 위쪽에 위치한 알래스카 남서부 해안에서 지난 28일 규모 7.0의 지진이 발생했다. 시차를 감안하면 구치노에라부섬 화산이 터진 뒤 얼마 안 돼 발생한 지진이다.

 

미국에서는 과거에도 대지진이 종종 발생했던 캘리포니아 지역이 요동치고 있다.

5월 7일에는 하루에 규모 2.7~3.7 지진이 일곱 차례 일어났고, 같은 달 14일에도 규모 3.1 지진이 발생했다. 현지 당국에서도 지나치게 활동이 잦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남미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4월 22일 칠레 남부의 칼부코 화산이 분화해 당국이 주민 6500명을 긴급 대피시켰다. 칠레 당국은 “화산 분출이 단발성에 그치지 않고 수개월 이상 간헐적으로 비슷한 분화가 이어질 것”이라며 지금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남태평양 역시 5월 중에 파푸아뉴기니와 솔로몬 제도, 뉴질랜드에서 6.0~7.5의 강진이 이어져왔다. ‘불의 고리’ 전체에서 화산과 지진이 비슷한 시기에 한꺼번에 발생한 것은 태평양판 전체가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인도판과 유라시아판이 맞닿은 네팔에서 지진이 발생한 것도 동일본 대지진 여파 등의 태평양판과의 연관성 때문이 아니냐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태평양판은 필리핀해판과 맞닿아 있고, 필리핀판은 다시 인도판과 닿아 있다.

 

인터넷 등에서는 돌고래 집단 자살 등의 자연현상과 맞물려 ‘대재앙’의 전조가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지진이 잦아지면서 일본 정부와 손해보험사들은 2016년부터 가정용 지진보험의 요금을 단계적으로 20~30% 올리기로 했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번개와 음성들과 우렛소리가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얼마나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온 이래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 요한계시록 16:18

 

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 누가복음 21장11절
 




 







 






 




 







 



 

백발이 성성하고 기력이 쇠한 노사도가 에베소의 강렬한 태양 빛이 쏟아지는 어느 늦여름에 어두침침하고 허름한 지하 예배실에서 빙 둘러 앉은 에베소 교인들을 향하여 한 마디 말을 힘없이 내뱉었다.

“서로 사랑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왔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에게서 나서 하나님을 알지만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요일 4:7, 8 <현대인의 성경>)

 

 




▲ 사도요한기념교회 입구인 박해의 문

 


 

체코의 종교개혁자 ‘제롬’에 의하면 사랑의 사도 요한은 나이가 들어 기력이 쇠해서 설교하는 것이 힘들어 졌을 때, 가끔씩 나와서 에베소 교인들에게 한 마디씩 권면하는 것으로 설교를 대신했다고 한다.

그는 에베소 교인들을 권면할 때마다 온화한 얼굴로 ‘나의 아들들아 서로 사랑하라’는 말을 반복했는데, 항상 같은 말만 반복해서 하니까 에베소 교인들은 식상한 나머지 이렇게 건의를 했다고 한다.

 

 ‘사도님, 왜 똑같은 말씀만 계속 되풀이 하십니까?’라고 그 이유를 물었을 때, 노사도는 ‘이것이 예수님의 명령이니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에베소로 이주

 

AD 190년경 로마의 감독 빅토르(Victor)에게 편지를 보낸 에베소의 감독 폴리크라테스(Polycrates)와 교회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유세비우스(Eusebius)의 기록에 따르면 AD 60년대 중반의 유대-로마 전쟁 혼란 속에 세베데의 아들 요한은 에베소로 이주했다고 전해진다.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옆에 있는 세베대의 아들 요한에게 자신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부탁한다고 말씀하셨다.

요한은 마리아를 예루살렘에 있던 자기 집에 모시고 살다가, 바울의 전도 여행으로 말미암아 복음이 소아시아 지방에서 흥왕하게 되자, 바울을 이어 에베소 교회를 맡아 목회하던 디모데의 초빙을 받아 AD 60년대 중후반 경에 노구의 마리아를 모시고 에베소로 이주했다.

AD 431년에 있었던 에베소 종교회의 회의록에 요한이 마리아를 위해 집을 한 채 지어 주었다는 기록도 있다.

 

AD 60년대 중반 경에 유대인들은 로마 제국에 대항하는 반란을 일으키다가 실패했다. 그 후 로마의 황제 베스파시아누스(Vespasianus)의 무서운 박해가 시작되었다. 유대 땅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네로 황제는 제국 내에서 인정받던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을 ‘유대 반란 진압’이라는 사명을 주어서 유대 땅으로 파병했다.

 

하지만 베스파시아누스 장군과 군사들이 유대 땅에 다다랐을 때 로마로부터 급한 전갈이 날아들었다. 원로원에서 네로 황제를 황제의 자리에서 파직하며 그를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었는데, 네로 황제는 급히 몸을 피해 숨었지만 조여 오는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칼로 자신의 목을 잘라 자살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바로 베스파시아누스 장군과 군사들은 유대 반란 진압을 멈추고 급히 로마로 회군해서 황제 자살이라는 초유의 사건으로 혼란에 빠져있는 로마를 안정시켰다. 그리고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은 네로를 이어 황제가 되었다.

 

그는 황제로 즉위한 후에 ‘유대 반란 진압’이라는 사명도 잊지 않았다. 자신의 아들인 티투스(Titus) 장군을 진압군 사령관으로 파병했다. 티투스는 예루살렘 성을 에워싸 포위하고 숨 쉴 틈 없이 공격했다. 곤경에 처한 예루살렘 성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시기에 극심한 기근에 시달려야 했다.

이때 로마와의 전쟁과 기근 때문에 죽은 사람의 수가 110만에 이르렀고, 노예로 팔린 17세 미만의 아이들도 9만이 넘었다고 한다. 심지어 기근 때문에 자식까지 구워먹는 반인륜적인 행위까지 자행되었다고 하는데, 계곡에 던져진 시체들을 본 티투스가 “하나님, 이것은 제가 저지른 만행이 아닙니다!”라고 탄식했다고 전해진다.

 

티투스가 이끄는 로마군이 마침내 예루살렘을 함락시켰다. 예루살렘 성전을 불태우고 유대인 반란군을 진압했다. 예수께서 예언하셨던 것처럼 예루살렘의 성전은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게’ 파괴되었다. 이 유대 반란의 패배의 결과로 유대인은 자신의 국가를 잃어버리고 흩어져 로마 제국의 전역으로 퍼져나가게 되는 디아스포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상황 직전에 사도 요한은 마리아를 모시고 에베소로 건너 와 정착하여 에베소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에베소에서의 사역

 

바울이 AD 64년 네로 황제의 기독교 박해 때 로마 제국에 다시 체포되어 순교한 직후 에베소 교회의 목회는 그동안 바울을 따라 다니며 전도여행에 동참했던 디모데에게 맡겼다. 그러나 디모데가 ‘5월 아데미 축제’ 때 축제에 모인 열광하는 군중들을 향하여 말씀을 선포하다가 군중이 던진 돌에 맞아 순교를 당했다. 마침 에베소에 와 있던 사도 요한이 디모데를 이어서 에베소 교회를 맡아 목회를 하게 된다.

 

AD 91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와 아들 티투스 황제를 이어 티투스의 동생인 도미티아누스(Domitianus)가 황제의 자리를 이었는데 그는 어느 황제보다 더욱더 기독교를 박해했던 황제였다. 초대 황제였던 옥타비아누스 이후로 황제들은 죽은 후에 원로원에 의해서 신(神)으로 선포되었다.

선정을 베풀고 백성에게 인정받은 황제는 죽은 후에 로마 제국을 지키는 수호신들의 목록에 추가되었고, 시민들은 신전에서 죽은 황제의 이름으로 향불을 피우며 제국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했다. 그의 아버지와 형 모두 사후에 신격화되었고 이런 영예는 이전에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클라우디우스에게만 주어진 것이었다.

 

보통은 황제가 죽은 후에 신으로 선포되지만, 도미티아누스는 자신이 살아 있는 때부터 신이라고 선포했다. 본인 이름의 ‘도미티아누스 신전’을 만들어서 시민들에게 경배받기를 원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을 색출해서 박해하는데 도미티아누스 신전을 이용했다. 병사들을 시켜서 무작위로 사람들을 신전으로 데리고 와서 도미티아누스 동상 앞에 경배하며 분향하기를 강요했는데, 끌려온 사람이 경배를 하지 않으며 황제 숭배를 거부하면 기독교인이라고 단정하여 감옥에 가두고 박해를 가했다고 한다.

 





살아 있을 때 자신을 신이라고 선포했던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신전

 


 

에베소에서 사역하던 사도 요한도 도미티아누스 신전 앞을 지나다가 로마 군사들에게 연행되어 와서 황제의 동상 앞에서 경배하기를 거부하므로 다른 기독교인들과 같은 운명에 처해지게 되었다. 사도 요한도 로마로 연행되어 가서 독배를 마셨으나 아무런 해를 받지 않아서 펄펄 끓는 기름 솥에 던져졌지만 기적적으로 죽음을 면했으며 나중에는 어쩔 수 없이 밧모섬으로 유배시켜 혹독한 채석장의 중노동을 맛보게 했다고 전해진다. 요한은 밧모섬에서 계시를 받아 <요한계시록>를 기록했다.

 

그리고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측근에 의해서 암살 당한 후에 밧모섬 유배에서 풀려나 에베소로 돌아온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하고 제자들을 양육하다가 AD 100년경에 95세라는 나이에 주님 품으로 돌아가게 된다. 요한의 시신은 아야술룩 언덕 위에 묻히게 되었고 4세기에는 무덤이 있던 그 자리에 작은 요한 기념교회를 지었다.

 







사도요한
기념교회에 있는 네 개의 기둥

 


 

그리고 그 작은 기념교회가 있던 자리에 6세기 들어 ‘아야 소피아’를 건축한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요한 기념교회를 건축했는데, 소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로 십자가 형태의 건물이었다.

안뜰, 현관, 본당, 부속 예배당, 세례장, 이렇게 다섯 부분으로 되어 있고, 본당 제단에는 특별히 복음서의 저자들을 상징하는 네 개의 기둥과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세 개의 기둥을 사용하였다.

교회 안에는 4세기경에 목조로 지은 작은 예배당과 요한의 무덤이 있다. 예전에 교회로 사용하였던 목조 건물 안에는 예수님, 성모 마리아, 사도 요한의 프레스코가 그려져 있다.

 

성경의 교훈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2장에서 에베소 성도들을 향하여 ‘모든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잘 알고 있으며, 악한 자를 용납하지 않은 것과 거짓 사도를 드러낸 것과 주의 이름을 위해 참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잘 알고, 또한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한 것’을 칭찬하고 있다.

그리고 반면에 ‘너의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고 책망하고 있다.

 

요한이 사역하던 당시는 기독교가 전해진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라 자연히 명확한 교리가 확정되어 있지 않은 상태라 유난히 이단 사상과 거짓 교훈, 그리고 그렇게 가르치는 거짓 사도들이 많이 활동하던 시기였다.

에베소 교회도 그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는데, 다행히도 사도 바울이 개척하여 요한이 주로 맡아 목회하던 교회여서 그런지 이단 사상과 그렇게 가르치는 거짓 교사들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취했던 것 같다. 요한은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 잘했다고 칭찬하였던 것이다.

 

올바른 신앙과 거짓 신앙을 정확히 연구·분석하여서 어떤 신앙이 올바른 신앙이며 어떤 신앙이 거짓 신앙인지를 분별하려면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차갑고 냉철한 머리가 필요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내 편이고, 어떤 사람이 아닌지를 계속 점검하고 감시하는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거짓 신앙을 정확히 분별하는 것도 중요했고 잘한 것이라고 칭찬받아 마땅한 말이지만, 문제는 에베소 성도들은 머리만 차가워진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뜨거워야 할 가슴마저도 싸늘하게 식어갔던 것이었다.

 

에베소 교회가 첫 사랑을 잃어버리게 되는 역사적인 사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기독교 박해 때 그들이 신앙을 버린 것이고, 또 하나는 교리적인 싸움으로 성도 간의 사랑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AD 64년부터 네로 황제가 기독교 박해를 시작했었는데 이 때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바울과 신앙을 저버린 일이 있었다(딤후 1:15~18). 이때 어떤 성도들은 순교를 각오하면서 신앙을 버리지 않고 있다가 실제로 트로피무스를 비롯해 70여명이 순교를 당했고, 어떤 성도들은 박해의 칼날을 두려워하여 배교를 하기도 했다.

 

에베소 교회에는 또 다른 심각한 문제가 있었는데, 케린투스와 같은 영지주의 이단들의 영향이 그것이었다. 영지주의는 기본적으로 이원론을 주장하여 물질세계는 근본적으로 악하고 영적인 모든 것은 선하다고 가르친다.

영지주의에서 파생되어 나온 이단 사상이 니골라 당의 가르침이다. 니골라 당은 극단적 이원론주의자들로 영은 선하고 육은 본래 악하다는 전제 하에 악한 육체가 저지르는 모든 행위는 죄일 수가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교회의 거룩함과 순수성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박해와 이단 사상과의 싸움 가운데서 에베소 교회는 하나님을 처음 만나고 섬겼던 처음의 사랑을 잃어버렸고, 자연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없이 이단 사상과의 치열한 싸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아군과 적군을 정확히 구분하여 사랑할 사람은 사랑해야 했지만, 사랑과 긍휼, 자비는 없고 차갑고 날카로운 칼날만이 번쩍이던 상황이었다.

 

교회는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이 같은 이단을 미워하고 그들과 거리를 둘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분쟁 속에서는 자칫 하나님에 대한 사랑도 성도 간의 사랑도 모두 잃어버리는 우를 범하기가 쉽다. 교회도 극단적인 이원론에 빠져서 악한 것과 선한 것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하여 내 편 아니면 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틀린 것을 틀리다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틀린 것이 아닌 다른 것조차 틀리다고 생각하여 구별하고 싸워야 할 적으로 인식하는 어리석음을 주의해야 한다.

 

물론 너무나 분명한 신천지나 통일교 같은 이단 사상 및 이단 신앙을 분별하고, 그것들과 싸워야 할 경우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작금의 한국 교회는 지나치게 크게 중요치 않은 일로 소모적인 논쟁을 하며 갈등하며 반목하고 있다. 현재 개신교의 교단 숫자가 이를 잘 말해준다. 한국의 대표적인 교단인 장로교만 해도 200여개가 넘어가고 있는 실정이고, 다른 교단까지 합치면 개신교의 숫자는 그 숫자를 추정하기 힘들 정도로 많이 분열되어 있다. 이것이 한국 개신 교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약점이자 단점이다.

 

개신교가 하나가 되지 못하고 분열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필자 개인적으로는 자기중심적인 신앙, 다르게 말하면 사랑 결핍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믿고 있는 믿음이 가장 정확한 믿음이며,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가장 정확한 지식이고, 또 내가 경험한 것만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믿고 있는 믿음과 알고 있는 지식, 그리고 그들의 경험은 전부 수준 미달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교회는 마치 핵분열처럼 계속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에도 유대인들은 본인들이 믿고 있는 믿음, 유대 공동체 내에서 내려오던 전통만이 진짜라고 100% 확신했다.

다른 사람들 얘기는 전부 가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리스도이자 메시아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다. 2,00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들은 그렇게 믿고 있다.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극적으로 만나서 회심하기 전까지는 여느 유대인들과 다를 바 없는 유대인으로써 예수 믿는 추종자들을 핍박했던 사람들 중에 한 명이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려고 그 사람들을 바라볼 때 우리와 다른 것을 볼 것인가, 아니면 우리와 같은 것을 볼 것인가를 결정하고 그렇게 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과 공통분모를 먼저 보고 거기에 집중하여서 교제의 실마리를 풀어간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모습을 먼저 보고 거기에 집중하여 자신과 상대를 비교하며 자신과 상대를 분리하며 실마리를 헝클어 간다.

한국 교회는 위 두 가지 경우의 수 중에서 굳이 후자를 택하여 커다란 공통분모는 외면한 채 아주 작은 자신과 다른 부분에 집중하여 상대와 비교하며 분리하며 나누는 일을 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으면 그 결말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한국 교회는 현재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잃고,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도 잃고 있는 모습이다. 사실 형제들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며,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무궁토록 여전히 우리들을 사랑하신다. 하지만 그 사랑은 겸손한 마음과 가난한 심령을 가진 사람들만이 체험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교회는 겸손한 마음과 가난한 심령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에 많은 물질적인 복을 허락하셨는데 그 물질적인 복 때문에 사람들은 더 이상 하나님을 찾지 않으니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가 없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니 자연히 형제들을 사랑하지 못하고,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정죄와 비난의 칼날을 그들에게 들이 미는 것뿐이다.

 

한국 교회는 ‘욕조의 더러운 물을 버리려고 하다가 자칫 욕조에 있는 아기까지 내버리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도 요한은 교회 내 분열의 아픔을 치유하고 분열된 교회를 회복하기 위해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인 <요한일서>를 기록했는데, 거기서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했고, 그는 죽을 때 까지 에베소 교회에서 사랑의 메시지만을 전했지만 그때 받은 교회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고 한다.

 




▲ 사도요한기념교회에 있는 사도 요한의 무덤


 

처음 사랑과 순수한 복음을 잃어버린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지진과 말라리아 병으로, 나중에는 투르크인들의 칼날에 스러져 갔다. 소아시아 지역의 중심 교회였던 에베소 교회는 교회의 기능을 상실하여 결국은 요한계시록의 말씀대로 교회의 촛대가 다른 곳으로 옮겨지게 되고, 지금은 그 흔적만이 당시 아픔을 간직한 채 여행객을 맞는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왔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에게서 나서 하나님을 알지만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요일 4:7, 8 (현대인의 성경)

원제연 선교사  


 


 





 

 


 



 


 







 




 

 



 


 



 



 



 









 




 

 

 

Anthony Burger는 44세의 나이에 찬송을 연주하던 현장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생후 8개월 때 보행기를 밀고 가다가 불 속에 빠져 3도 화상을 입고 사경을 헤맨 후 살아났다. 11살부터 피아노를 치면서 음악에 심취하며 하나님을 찬양했다.

그 후 Bill Gaither(미국 최대최고의 찬양팀 인도자)를 만나서 미국을 신앙으로 이끄는 찬양팀에 합류했다. Burger가 피아노로 찬양을 할 때의 모습을 보면 이 한 곡 끝내고 죽어도 좋다는 열정으로 연주를 한다. 듣는 사람 모두가 벌떡 일어나 할렐루야를 저절로 외친다.


 




 

그러나 44세의 나이로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죽어야 할 사람이 많은 데 그처럼 은혜를 끼치는 연주자가 왜 그렇게 일찍 죽어야 하나.... 그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삶을 살았다. 멋지게 살았다는 것은 그렇게 죽는 것일까?

순서가 없는 죽음에의 부르심을 잘 준비하는 것이 잘 사는 길이란 것을 깊이 생각하게 한다.
 

 




 

하버드 의대 교수인 가완디가 책을 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원제  Being Mortal)....

 




 

 

그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윤리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하버드 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좀 독특한 경력의 아툴 가완디(Atul Gawande)....

 

우리가 늙고 쇠약해져서 더 이상 스스로를 돌볼 수 없게 되었을 때, 다시 말해 삶의 마지막 순간에서 '인간다운 죽음'을 맞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가완디는 설득력 있는 사례를 들어 소개한다.  오늘은 그의 책을 소개하는 것으로 칼럼을 대신하고자 한다.

 

자신도 의사지만, 그는 현대 의학은 '생명'에만 능숙할 뿐, '죽음'의 준비에는 완벽하게 실패했다고 단언한다. 신체적인 건강을 복구하는 훈련만 받았기 때문이란다.

노인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 그리고 삶을 가치 있도록 도와주는 환경에 현대 의학은 별 관심이 없다고 비판한다.

알지만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자식들이 더 이상 늙은 부모를 부양하지 않는 현대라지만, 가완디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안에 대해 말한다.

 

가장 비근한 예가 요양원이다. 휴양하면서 병을 치료한다는 사전적 정의와 달리, 요양원의 노인은 세 가지 역병으로 고통 받고 있다.

 

무료함,

외로움,

무력감.

 

아침 일곱 시에 직원들이 복도를 따라 퍼레이드를 벌이듯 행진해 들어와 서둘러 샤워시켜 옷을 입히고, 줄지어 약을 타먹게 하고, 단체로 밥을 먹이는 규제와 규율의 공간. 좀 길지만, 가완디가 취재한 사례 하나를 인용해보자.

 

뉴욕 외곽 체이스 요양원의 평판은 원래 크게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좀 더 적극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식물과 동물을 요양원 노인들의 일상 안으로 끌어들인 것.

'타깃'이라는 이름의 그레이하운드와 '진저'라는 이름의 작은 개, 그리고 고양이 네 마리와 잉꼬 100마리를 들였다.

 

주도면밀(周到綿密)한 계획을 짜고 한 일은 아니었다. 잉꼬가 배달되었을 때, 별도로 주문했던 새장 100개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니까. 잉꼬 배달부는 바쁘다며 잉꼬 100마리를 1층 미용실에 풀어놓고 떠나버렸다. 몇 시간 뒤 도착한 새장은 조립되지 않은 채로 납작한 박스에 포장되어 있었다.

이 아수라장의 와중에 생기 있는 변화가 시작됐다. 평소 '무기력'하던 노인들이 새장 조립을 자발적으로 시작한 것.

잉꼬는 방 하나에 한 마리씩 배치됐다. 극도로 내성적이던 할머니 거스는 "내 커피를 잉꼬에게 줘도 되냐고 '말'을 했고, 식사도 거부한 채 우울증에 시달리던 할아버지 L은 "내가 타깃과 진저를 산책시켜도 되느냐"며 처음으로 침대 밖으로 걸어 나왔다.

 

전문가들은 체이스 요양원의 새로운 시도를 수치(數値)로 요약했다. 다른 요양원에 비해 복용하는 처방약이 절반으로, 특히 할돌처럼 불안 증세에 먹는 향정신성 약품 처방이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치보다 더 중요했던 것이 있다.  무력감과 외로움에 시달리던 노인들에게 '살아야 할 이유'를 줬다는 것.

 

체이스의 사례는 그 일부일 뿐이다.

가완디 교수는....

'혼자 설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

'모든 것은 결국 허물어지게 마련이다'

'치료만이 전부가 아니다'

'누구나 마지막까지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어한다'

'두렵지만 꼭 나눠야 하는 이야기들' 등 매 장마다 최근의 사례를 인용하면서, 죽음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성찰하도록 돕는다. 하나같이 진실하고 감동적이다.


 

이 책을 좀 떠나서 생각해 보자.

서점에 진열된 책을 살펴보면 나이 듦을 주제로 한 베스트셀러가 수도 없이 많다.

 

보통은...

'내년에는 더 젊게'

'나이의 샘물'

'불로장생'

'여전히 성생활' ....

이런 '위선적' 제목이 붙여진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대가가 따르는 법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살아온 인생을 통해 알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모두 늙고 죽는다. 이 과정은 점차적이지만, 가차없다. 노화는 우리의 운명이고 언젠가는 죽음이 찾아온다. 하지만 그 과정은 가파르게 곤두박질치는 길이 될 수도 있고, 각자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을 좀 더 오래 보존하며 사는 완만한 경사길이 될 수도 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지옥으로 떨어지는 낭떠러지가 되게 할 것인가?

아니면 죽은 다음에도 소망이 아니 영생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천당으로 갈 확신을 가질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이다.

웰빙을 외치며 생명을 연장하자고 외쳐대며 엄연한 내일의 죽음을 잊어버리게 하여 준비 없이 지옥으로 떠나게 하는 허망한 외침을 틀어막아야 한다.

 

죽음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이 '슬픔'이 아니라 '성숙'이어야 한다. 그 성숙이란 영원한 하나님의 다스림의 영광스러운 내일을 바라보는 성숙이다. 지금 죽어도 내일 죽어도 우리는 예수 믿고 천당 가야 한다. 이것이 성숙한 삶이다.(장재언)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툴 가완디 지음 | 김희정 옮김

부키 | 400쪽 | 1만6500원  
 




 



 







 





 






 



 





 











 

 

우리 일행은 5 25일 메모리얼 데이 아침 6시부터 산행준비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아침밥을 배분받아

움직이는 차 속에서 대충 때우고 포마일 등산로 입구에서

4.6마일 Glacier 포인트까지 매우 가파른 길입니다.

 

수십 개의 스위치백을 돌고 돌면서 요세미티 전경을

눈에 담고, 가슴에 품으며, 디카에 저장합니다.

 

 

오르는 길에도 눈을 돌려 사방을 바라보니

전능전지 하신 창조주 하느님 우리 아버지

여기도 살아 계서 저와 함께 동행하고 계십니다.

 

앞산에 굉음 지른 요세미티 폭포가 물살을 희게 뿌리고

계곡 따라 펼쳐진 산천수목은 화려함을 자랑합니다.

위로는 우뚝 솟은 기암절벽이 우리일행을 마지하고 있으며

산속을 날고 있는 새들까지 지지배배 찬송으로 들립니다.

 

 

Glacier Point에 올라서니 관광객과 등산인들로 붐빕니다

전날에 산행지 발자취가 그대로 남아있는

Mist Trail (Vernal Fall, Nevada Fall)

John Muir Trail 이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둘째날의 발자욱도

Yosemite Fall Trail

(Top Yosemite Fall, Yosemite Point, Eagle Peak, North Dome)

한눈에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요세미티 산행 및 관광 길에 반듯히 들여야 할 곳이

Glacier Point로 알려 드립니다, 버스만 제외하곤

다른차량은 직접 갈수 있으며, 만약 셔틀을 이용 시

한 사람당 $25 차비투자가 따릅니다, 기억해 두십시오.

 

호텔, 식당, 편이시설도 갖추어 있습니다

빈부의 격차대로 살아보는 글레숴 포인트

폼생 멋한번 잡아봐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돈 벌어 어데 쓰지요, 여행은 고급으로, 음식은 거지같이 먹어라

이런 말도 귀담아두면 건강에 유익하리라 믿습니다

 

받아 든 점심도시락 벗기는 소리가 차속을 노크합니다.

허기진 공복을 채우느라, 옆사람 채면도불사

식기도는 하는 둥 마는 둥 우선 채워야 합니다.

 

마지막 휘날레, 최충근 목사님의 감사기도로 산행은 마칩니다

목적지 샌베난도 벨리에 도착, 무제한 불고기로 배를 다스리고

잘 가시오 또 만나요 인사로 막을 내린 2 3일 벨산 행사는

안전무사고로 잘 끝났습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태산) 


 


 


 


 


 


 


 


 


 


 


 


 


 


 


 


 


 


 


 


 


 


 


 


 


 


 




 


 



 



 

 

 




 



 










 








 





 




 

간디의 유명 일화(逸話)

 

 간디가 영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Episode 1

자신에게 고개를 절대 숙이지 않는 식민지 출신 젊은 학생을 아니꼽게 여기던 피터스라는 교수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간디가 대학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피터스 교수 옆으로 다가 가 앉잤습니다.

피터스 교우는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지요.

"이보게, 자네 아직 잘모르는 모양인데, 돼지와 새가 함께 앉아 식사하는 경우란 업다네"
이에 간디는 말했지요. "아~ 걱정마세요 교수님 제가 다른곳으로 날아갈게요"

 

Episode 2

복수심이 오른 교수는 다음 번 시험에서 간디에게 엿을 먹이려 했으나, 간디는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습니다.

 

교수는 분을 삭이며 간디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길을 걷고 있다가 두 개의 자루를 발견했다. 한자루에는 돈이 가득 들어있고, 다른 자루에는 지혜가 가득 들어있다. 둘 중 하나만 차지 할 수 있다면.....

자넨 어떤 쪽을 택하겠는가?"

"그야 당연히 돈자루죠."

"쯧쯧..... 나라면 지혜를 택했을거네"

"뭐, 각자 자신이 부족한 것을 택하는 것 아니겠어요?"


 

Episode 3

히스테리 상태에 빠진 교수는 ....

간디의 답안지에 신경질적으로 '멍청이(idiot)'라 적은 후 그에게 돌려준다.

채점 지를 받은 간디가 교수에게 말했다.

"교수님, 제 시험지에 점수는 안 적혀 있고, 교수님 서명만 있던데요."  
 

 




 





 









 




 



 












 

불만과 스트레스를 폭발시켜 해소하는 탈출구로 심취한 헤비메탈 음악. 헤드뱅잉과 샤우팅을 구사하며 인기를 끄는 락커가 되었지만 밤에는 가위에 눌리는 등 이상한 영적 현상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경제적 형편 때문에 꿈이었던 야구 선수를 포기해야 했던 저는 어린 시절부터 이러한 좌절로 인해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차게 되었으며, 고등학교 시절 불만과 스트레스를 폭발시킬 수 있는 탈출구로 헤비메탈 음악을 찾게 되었습니다.

 

완전히 이 음악에 빠지게 되었으며, 보컬로 학교 밴드에 들어가 매일 음악 듣고 연습하고 화려한 공연을 꿈꾸며 나날을 보냈습니다. 이 음악에 빠져 있다 보니 이미 그 당시에 제 자아는 머리길고 세상을 탐닉하며 화려하게 사는 락커로서 형성이 되어있었고, 이러한 자아에 걸 맞는 술, 담배, 폭력이 자연스럽게 삶속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저의 삶은 학생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유명한 락커가 되어 정말 멋있게 살아보리라 다짐을 했습니다.







 

 

▣  심취했던 헤비메탈로 인한 어떤 영적인 현상들


 

그 당시 헤비메탈 음악에 심취해 있을 때 저에게 일어난 일이 있습니다. 저는 밤에 가위에 자주 눌렸는데, 가위에 눌리면 귀 옆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남자와 여자 3명 정도가 옆에서 기분 나쁘게 계속 웃으면서 제 귀에 이야기 합니다. “이 바보같은 놈 봐라! 지가 뭐하는지도 몰라!” 이러한 기분 나쁜 소리를 한 달이면 여러 차례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밤에 잠이 깨었는데 뭔가 시커먼 박쥐같이 생긴 물체가 제 옆에서 날아가 장롱위에 앉아 방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헛것을 본 거라 생각했는데, 예수님을 만나고 영적인 세계를 안 후 이것이 저를 잡고 있던 악한 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학교에서 실력이 있다고 인정받는 락 밴드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전 관중들이 헤비메탈 공연에 있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하면 멋있게 보이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공연할 때면, 마치 약 먹은 사람처럼 몰입되어 노래하였으며 헤드뱅잉, 시기적절하게 흔들어주는 스테이지 매너로 공연을 본 사람들은 저희 밴드를 인정해주곤 하였습니다. 그렇게 크고 작은 공연을 꽤 많이 하였고, 특히, 70년대 하드락부터 당시 유행하던 스타일의 메탈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연주를 자랑하던 저희 밴드가 공연을 하고 나면 신선한 화제가 되어 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스피드 있고 정확한 박자를 자랑하던 드럼, 날카롭게 깔아주는 베이스, 묵직한 백킹톤에 화려하고 테크니컬한 트윈 기타 솔로로 당 대 지역 내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던 선배들의 밴드에 스카웃 되어 지역의 5개 대학을 대표하는 밴드들이 모여 공연한 두 번의 락페스티벌에 참가하였습니다.


 

저의 보컬은 주다스 프리스트의 롭헬포드, 로니 제임스 디오의 영향을 받아 무게감 있는 중음에서부터 고음인 3옥타브 솔까지의 음역대로, 음폭 진동이 큰 바이브레이션, 두성과 비음의 고음 샤우팅에 그로울링이 적절히 섞인 전형적인 헤비메탈 보컬스타일로, 엄청나게 긴 플레이 시간과 화려한 테크닉의 연주력을 요하는 Helloween의 13분짜리 대곡 Keeper of the Seven Keys를 비롯한 스피드 메탈 곡들과 Black Sabbath의 Heaven & Hell 과 같은 정통 헤비메탈 곡들을 연주하여 관중들의 호응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두 번 모두 공연의 피날레를 장식하고,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하였습니다.


 

공연을 하게 되면 무대가 주는 환락과 관중들의 환호, 내가 마치 스타가 된 것 같은 기분, 공연이 끝나면 찾아오는 여자들. 이러한 것들이 저를 이 음악에 중독되게 만들었으며, 락커로서 이러한 것을 즐기는 것에 대해 그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공연이 끝나면 밀려오는 허무감과 공허함, 락음악의 화려한 이면에 깔려 있는 그 특유의 우울함이 저를 지배했습니다.


 

실제로 유명한 락커들 중 이러한 우울함에 지배되어 자살을 하거나 마약 또는 알코올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 사례가 많습니다. 노래 가사도 자살이나 마약, 술, 담배, 음란, 폭력, 방탕한 파티에 관한 내용이 주류를 이룹니다. 유명한 밴드들의 삶이나 공연을 보면 가사처럼 그러한 부분들이 그대로 나타나고, 보는 사람들은 아무런 저항없이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따라하게 됩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 락커의 꿈과 직장생활의 괴리와 그리고 비관


 

락 음악에 빠져있는 저를 보고 안타까웠는지, 졸업을 앞 둔 무렵 의대에 다니는 무신론자였던 제 동생이 갑자기 집에 와서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그 말을 들을 때면 현대 의학을 공부하는 의대생이 이런 말도 안 되는 말을 믿고 전한다는 사실에 더욱 분개했습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저보다 생각이 깊고 모든 면에서 모범생이었던 동생이기에 나중에는 저 자신은 예수님을 믿지 않지만 동생의 신앙을 인정해주기로 하였습니다.


 

대학 졸업 후 직장 생활을 시작하였지만, 이 일은 음악을 위해 잠시 하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락커로서의 정체성과 현실과의 괴리감으로 인해 혼란스러움을 자주 느꼈으며, 돈을 빨리 모아서 이 지긋지긋한 생활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살았습니다. 완전 현실 부적응자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회사원인데 여름에 출근할 때 선글라스, 팔찌를 착용하고 머리를 올빽으로 하고 출근 한다던가, 다소 긴 머리를 파마하고 귀걸이를 하고 부츠를 신고 출근한다든가 그냥 제 맘대로였습니다. 난 락커이니까 그렇게 사는 게 맞다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그리고 일이 끝나면 사람들과 술 마시고 이러한 삶을 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삶에 회의를 느끼던 중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의 한 유명 락밴드에서 보컬을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오디션을 보았지만, 떨어졌습니다.

그 후 저는 전문적인 락커로서의 삶을 접고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과 또 한 번의 좌절로 괴로워하며 더욱 술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보니 제 삶을 지배하는 락음악이 주었던 우울함과 세상에 대한 비관이 극단적 감정으로 치닫게 되어, 이제는 더 이상 락커도 아니고 살아봐야 다람쥐 쳇바퀴도는 것 같은 뻔하고 재미없는 인생 살아서 뭐하나,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전에 자주 갔던 한강 잠실 고수부지가 떠오르며, 그 곳에서 술을 마신 후 물에 뛰어드는 제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그래서 그 날 업무가 끝난 후 소주 2병을 사서 가방에 넣고 바로 잠실 고수부지로 향했습니다. 도착 후 벤치에 앉아 소주 2병을 나발을 불고 5분쯤 있으니 머리가 빙글빙글 돌며 몸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비틀거리는 몸으로 물 있는 곳으로 내려가 뛰어들려고 하는데 갑자기 보기만 하면 예수님 얘기를 하던 동생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고 가려고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 통화가 되자마자 제 목소리에서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동생이 “형, 어디야?”라고 물었고, 전 아무 생각 없이 “어, 한강 고수부지.”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동생이 “형, 거기서 지금 뭐하는 거야, 제발 빨리 집에가!!”라고 저에게 간곡히 부탁을 하는 겁니다.

그 말을 듣고 집에서 울고 계실 어머니가 오버랩되며, 물로 향하던 발을 다시 둑으로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한 마리 야수처럼 소리 지르며 울부짖었습니다.


 

▣ 내 말을 듣고도 믿지 않는 완악한 자야


 

2004년 12월, 어머니께서는 담도암으로 1년의 시한부를 선고받으셨습니다. 속만 썩혀드리고 장남으로서 효도도 못했는데, 이렇게 떠나신다고 생각하니 정말 바닥까지 가라앉으며 세상에 의지할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2005년 1월 어느 밤. 무심코 책꽂이 한 쪽에 먼지가 쌓여 꽂혀있는 성경책을 보고 갑자기 읽고 싶다는 생각에 꺼내어 마가복음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 16장 14절 “그 후에 열 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이 말씀을 읽는데 갑자기 마음속에서 “내 말을 듣고도 믿지 않는 완악한 자야!” 이 음성이 천둥처럼 메아리치며 저에게 들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동생이 저를 볼 때마다 이야기하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이것이구나.’ 라는 것이 깨달아지며, 저에게 말씀하시고 있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보이는 겁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고, 부활하신 증거를 보여주는데도 불구하고 보고도 믿지 않은 제가 제자들과 같이 완악한 자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너무나 분명한 증거가 있는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하여 지금도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이전에 읽었던 성경의 모든 말씀이 생각나며 하나로 꿰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시구나. 그리고 지금도 살아계시는데 그 앞에서 방탕하고 제 멋대로 살았던 저의 잘못된 삶이 선명하게 비춰져서 눈물로 회개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니 제 마음속에 ‘락 음악을 하면서’ 우울했던 어두움이 떠나고 빛이 들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세상을 따라 살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을 위해 살리라 라는 결단이 되어졌습니다.


 

그 후 제가 제일 먼저 한 것은 동생을 통하여 한마음교회 작은교회 모임에 제 발로 찾아간 일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 이전에는 저와 아무 상관이 없고 만날 예수 부활만을 강조하던 이상한 부류의 사람들로 치부하였던 교회 지체들이 가족같이 느껴졌으며, 저와 같이 부활하신 주님을 주인으로 모신 영원한 가족이라는 사실에 감격되어졌습니다. 지체들과 함께 부활의 주님을 찬양하며 교제하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제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굴복되고 춘천 한마음교회에 왔을 때 목사님께서 저를 얼싸안고 기뻐하시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저를 맞아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보이지 않던 영적 세계가 실제가 되었고, 저는 그동안 락 음악을 하면서 제 삶을 지배하고 있던 우울과 절망의 감정들이 바로 악한 영들이 주는 생각과 감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없는 세상의 모든 락음악은 외형적으로는 멋있고 화려화고, 인간의 본성을 솔직히 표현하는 인간적인 음악인 것처럼 보여도 실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해있다는 것이 성경말씀을 통해 명확해 지면서 영적인 분별력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제 삶에 있어서도 항상 귀에 꽂고 듣던 음악이 헤비메탈에서 찬양으로 바뀌었으며, 다니면서 성경 말씀을 보고, 서울에서 춘천으로 가는 시외버스에서 찬양을 들으며 주님의 사랑에 감격되어 눈물을 흘리는 등 이전에 상상할 수도 없던 일들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 직장에서도 아내와의 첫 만남에서도 복음증거


 

직장에서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락 음악을 할 때, 술을 많이 마시고, 담배도 많이 피우던 제가 갑자기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니 모두 어리둥절하고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전 예수님을 생각하면 이러한 시선들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교회 예배 시간에 한 지체가 파워포인트로 복음을 정리하여 직장에서 전하는 간증이 나온 적이 있습니다.

저도 이 파워포인트를 바로 다운받아 어느 날 부서 전체 회의 시간 후에 본부장님과 상사, 동료 직원들이 다 있는 앞에서 나중에 깨지더라도 복음을 전하자라고 결심하고 복음을 전했을 때, 비웃음과 비아냥거림을 들었지만 기뻤습니다. 예전 같으면 두 팔 걷어붙이고 싸웠을 제가 이렇게 변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도 가지고 있던 옛사람의 습성이 있었으니 바로 담배와 술이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도 항상 마음 한구석에 거리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한 후 3개월 정도는 작은교회나 교회 대예배에 가기 전에 담배 냄새 날까봐 양치질을 하고, 가는 동안 껌을 씹고 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도 술, 담배를 하는 삶이 주님 앞에 부끄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했습니다. “주님, 이제는 더 이상 주님 앞에서 술, 담배하지 않고 끊게 해주세요.”라고.


 

그리고 몇 주 후 믿지 못할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날은 부서 전체 회식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상태라 안 마시려 했는데, 주위에서 자꾸 한 잔만 마시라고 해서 한 잔을 마셨는데, 마시다 보니 또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마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평소처럼 회사 옥상에서 아침에 담배를 피우려고 불을 붙였는데,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며, 도저히 못 피우겠어 서 그냥 끄고 내려와 일을 하는데 반나절이 지나도록 담배 생각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하루만 참아보자 해서 하루를 참고 다음날이 되도 생각이 안 나고, 이렇게 며칠이 흐르니 놀랍게 담배와 술 생각이 나지 않게 되었고, 그렇게 저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술과 담배를 끊게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던 그 해 2005년에 평생 불교신자로 사시다가 소천하기 1년 전에 주님을 영접하시고 동네 교회를 다니신 어머니께서 그 교회에서 지금의 장모님을 만나게 되셔서 아내와의 만남을 주선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외모, 현실적인 직업 등을 우선으로 생각하던 제가 이제는 부활의 복음으로 함께 할 수 없다면 결혼은 성립될 수 없는 것이기에 만나자마자 입에 침을 튀어가며 부활의 주님을 전했고, 싫은 내색 없이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던 아내가 너무 예뻐 보였습니다.



 

그래서 전 주님께 기도하면서 만났고, 만난 지 3개월 만에 일사천리로 결혼이 진행되었습니다. 결혼 후 아내는 처음부터 복음을 전하던 제 모습에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싫지가 않았다.”라는 이야기를 하며, 계속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주님께서 아내의 눈을 바꾸어 주신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제 아내도 부활의 복음으로 한마음 교회에 연결되어 지금까지 함께 믿음 생활을 해오고 있고, 주님이 딸을 선물로 주셔서 함께 복음을 전하는 가정을 이루게 해주셨습니다.


 

또한, 직장도 학생들에게 자유롭게 부활의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영어강사로의 길을 열어주셔서 현재 입시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부활을 증거하는 한마음교회의 사명이 제 사명이기에 같은 사명을 가진 교회와 함께 한다는 것이 일생에 최고의 행복이며, 기쁨입니다.


 

마지막으로, 제 삶을 우울과 절망의 구렁텅이로 이끈 락 음악에서 저를 빠져 나오게 해주신 주님께 이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Natalie Portman ...

"자신의 한계에 대해 잘 모르는 젊은 시절에 좀 더 어려운 일에 도전하라."

 


 

미 명문 하버드대 출신의 여배우 내털리 포트먼(33)이 모교 졸업식 전날인 27일 열린 하버드대 클래스데이(졸업 기념 행사) 강연에서 "지금 생각해보면 2010년 영화 '블랙 스완'에 출연할 때 나는 한심할 정도로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는 올해 하버드대 졸업생과 가족들을 상대로 "위험을 안고 시작하는 일이 오히려 인생을 바꾸는 성공을 가져온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스라엘계 미국인인 포트먼은 1994년 뤽베송 감독의 영화 '레옹'의 마틸다 역으로 데뷔했고, 1999년 하버드대 심리학과에 입학해 2003년 졸업했다.

그는 젊은 발레리나의 열정과 욕망을 그린 스릴러 영화 '블랙 스완'으로 2011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하버드대 출신 여배우로는 첫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이라고 하버드대 대학신문인 하버드크림슨은 밝혔다.

 

포트먼은 "블랙 스완에 등장하는 발레 동작을 소화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미리 알았다면 절대 주인공 역을 맡지 않았을 것"이라며 "하지만 당시엔 내 한계를 몰랐기 때문에 과감히 출연을 결심했고, 결과적으로 개인적으로나 직업적으로 최고의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나이가 들면 더 현실적으로 변하게 된다"면서 "졸업생 여러분은 (자신감에 충만해) 자신의 능력을 그다지 의심하지 않는다는 점을 자산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버드대 클래스데이 초청강연은 1968년부터 시작됐다. 첫 초청강연자는 흑인 인권운동가인 마틴 루서 킹 목사였지만, 강연 한 달여를 앞두고 불의의 암살을 당해 부인 코레타 스캇 킹 여사가 대신 연설자로 나섰다. 지난해엔 직장 내 양성 평등 운동의 기수인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가 강연을 맡았다.


 



 

Actress Natalie Portman addresses an audience during

Harvard College's Class Day, Wednesday, May 27, 2015,

on the campus of Harvard University, in Cambridge, Mass.

Portman, a 2003 Harvard graduate,

was the 2015 Class Day speaker for Harvard College. (AP)

 

 




 

 

[깨알지식]

내털리 포트먼이 겪은 '가면 증후군'이란 뭘까?


 

하버드대 출신 여배우 내털리 포트먼은 27일 하버드대 클래스데이(졸업 기념 행사일) 강연에서 재학 시절 받았던 스트레스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는 "1999년 심리학과에 입학했을 때 '뭔가 실수가 있었던 것 아닌가' '나는 이곳에 어울릴 만큼 똑똑하지 않은데'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면서 "그래서 '멍청한(dumb) 여배우'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일부러 신경심리학이나 히브리문학 같은 어려운 수업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워싱턴포스트는 "내털리 포트먼도 다른 하버드대 학생들처럼 '가면 증후군'(imposter syndrome)을 겪었다"고 전했다. 가면증후군이란 무엇일까.

 

가면증후군은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 스스로에 대해 "나는 자격이 없는데 주변 사람들을 속여 이 자리까지 오게 됐다"고 느끼는 불안 심리를 말한다.

 

1978년 미 조지아주립대 심리학과의 폴랜 클랜스와 수전 임스 교수가 만든 심리학 용어다. 이들은 명문대학 신입생과 사회 명사들을 상대로 심층 인터뷰한 결과, "성공한 사람 가운데 상당수가 충분한 실력이 있음에도 '나는 자격이 없으며 언젠가는 가면이 벗겨져 정체가 드러날 것'이란 두려움을 갖고 있다"면서 이 용어를 처음 썼다.

 

포트먼은 이날 강연에서 "나중에 보니 주변 친구들은 모두 학점을 따기 쉬운 과목만 듣더라"고 말해 좌중의 폭소를 자아냈다.

실제 포트먼의 학업 성적은 어땠을까.

스티븐 코슬린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는 "신경심리학 과목에서 수강생 중 가장 좋은 A+ 학점을 받았다"고 말했다.  



 

 

 








 





 



 


 


 





 









 



 



 






 









 

스포츠가 종교가 되었다. 아니 세계 공통 종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발행한 ‘체육백서’에 의하면 ‘주 1회 이상’ 규칙적인 스포츠 활동 참여 비율이 45.5%로 전반적인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국민들의 다양한 스포츠 활동 참여가 급격히 증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이 지난해 발표한 ‘한국인의 종교’ 보고서를 보면, 20대 종교 인 비율이 45%에서 31%로 급감함에 따라 10년 전에 비해 전체적으로 우리나라 종교인 비율이 전체 인구의 54%에서 50%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젊은 인구 층의 급격한 종교 이탈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또 하나의 종교로서 급부상하고 있는 스포츠도 무시할 수 없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한다. 스포츠가 기존 종교의 강력한 경쟁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김도균 교수(경희대)도 ‘또 하나의 스포츠로서의 종교’라는 제목의 소논문을 통해서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 주었다.


 

 


 


 

김교수에 의하면 스포츠와 종교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가장 오래되고 보편화된 사회 문화적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상호 배타적이며 무관한 일상의 행위나 사회제도로 간주돼 왔다. 하지만 ‘현대 스포츠’는 유사한 구조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김 교수는 “흔히 현대사회에서 스포츠는 하나의 새로운 대체종교 혹은 ‘종교에 대한 기능적 대행’이라고 지적돼 왔다”면서 “스포츠와 종교는 유사한 구조와 공통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스포츠가 내포하고 있는 종교적 특징이 추상적이라 할지라도 두 영역은 과거의 대립에서 벗어나 상호 영향을 미치며 전통적 활동과 정당성의 측면에서 밀접한 상호작용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나아가 김 교수는, 시간이 갈수록 스포츠가 더 매력 있는 종교로 자리매김해 기존의 종교들을 누르고 ‘세계 공통 종교’의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스포츠는 종교와 문화가치가 다른 타 문화권까지도 전도를 가능케 하는, 세계 공통의 언어라는 이유에서다.

 

김 교수는 “사람들이 예배를 보는 1시간은 못 견뎌도 3시간 이상 경기를 펼치는 야구경기에는 열중하고 경기가 주는 각종 상황을 제품으로 보고 소비하고 즐긴다”면서 “스포츠는 이제 가장 각광받는 육체적, 시간적, 경제적, 정신적 도구가 됐다”고 밝혔다.

 

또한 “과거의 영웅은 신이나 전쟁의 영웅이었지만 이제는 스포츠 스타에 열광하는데, 신을 숭배하듯 이들에게 열광하는 팬들의 추종은 상상을 초월한다”면서 “스포츠는 전 인류가 함께 즐기고 참여하고 공유하는 공통 종교로서 존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김 교수는 기존 종교들이 개념변화를 통한 신앙의 가치 창출을 통해 이에 적절히 대응할 것을 조언했다.

 

김 교수는 “종교 간의 경쟁, 산업 간의 경쟁이 허물어지고 각 산업의 경쟁자가 누가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Life Share에 대한 개념은 더욱더 중요해 지고 있으며 우리 종교가 어떠한 위치에 놓여 있는지에 대하여 생각하고 전략을 구상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같은 업종, 같은 제품 간에서만 경쟁이 이루어지는 Market Share(시장 점유율) 경쟁과 ...

고객의 시간을 점유하는 Time Share(시간 점유율) 경쟁을 거쳐서...,

어떤 제품을 생각할 때 특정한 브랜드를 머릿속에서 얼마나 떠 올리느냐 하는 정도를 판단하는 Mind Share(마음 점유율) 경쟁시대에 걸맞게....

삶이라는 맥락 속에 신앙이나 종교와 연결되는 삶의 원천을 찾아내고 이러한 원칙적인 핵심 일상 단위 속에서 자신의 종교에 대한 친밀도와 충성도를 더욱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미국 최고 반열에 든 배우이자 감독 로버트 드니로가 미국 뉴욕대(NYU) 예술대학 졸업식에서 축사를 하는 모습. 그는 시종일관 유머와 희망을 주는 메시지로 참석자들을 감동시켰다.

 

“졸업생 여러분, 해냈습니다. 그리고… 엿 됐습니다(You made it, and you‘re fucked).”

 

아카데미 연기상을 2번이나 받은 미국의 개성파 배우 로버트 드니로(72)의 ‘욕설(f-word)’ 졸업식 축사가 화제다.

22일(현지 시간) 뉴욕 맨해튼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열린 뉴욕대(NYU) 예술대 ‘티시 스쿨’ 졸업식에서 한 그의 15분짜리 연설은 ‘힘들지만 거역할 수 없는 예술인의 인생’을 특유의 직설과 유머로 표현했다.

시사주간지 타임 등 미 언론들은 “올해 최고의 졸업식 축사”라고 환호했다.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 등을 통해서도 빠르게 퍼지고 있다.

도대체 무슨 말이길래 그럴까. 그는 서두를 이렇게 뗐다.
 

“회계, 법학, 의학을 공부한 졸업생들은 안정된 직장을 잡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선택(예술)을 한 사람들은 (한마디로) 엿 됐다.”

예술인의 삶은 변호사 의사 공인회계사 같은 ‘안정된 인생’과는 거리가 멀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특히 예술(arts) 분야를 언급할 때 첫 알파벳이 같은 ‘어카운팅(accounting·회계)’과 자주 비교했다.

“회계학 전공자의 특기가 합리적 사고나 논리, 상식이라면 예술의 세계에선 열정(passion)이 상식을 능가한다. 여러분은 (회계학 같은) 그런 (안정된) 선택을 하지 않았다. 재능을 발견하고 열망을 개발하고 열정을 깨달아 왔다.

 

여러분이 만약 그것을 느끼고 저항할 수 없으면 그냥 (그 열망과 열정과) 함께 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술가의 삶을 ‘평생 거절당하는 인생(a lifetime of rejection)’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화려한 졸업식이 끝나면 여러분 앞엔 ‘거절당하는 인생’의 문이 열릴 것이다. 흔히들 ‘현실 세계’라고 부르는 영역이다. 앞으로 여러분은 아주 작은 배역을 따내기 위한 오디션이나 작은 일자리를 잡기 위한 면접 등등 수많은 분야에서 ‘거절’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배우이자 감독이 된 그조차도 여전히 수없이 거절당함을 경험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자 참석자들은 놀라는 표정으로 경청했다.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일대기를 다룬 최근 화제작 ‘셀마’ 시나리오를 읽고 나를 (주인공으로) 염두에 두며 쓰인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 감독에게 말했지만 감독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 영화 오디션에선 대본을 무려 7번이나 읽어야 했다. 감독을 위해 읽고, 제작자를 위해 읽고, 또 제작자와 그 부인을 위해 읽고…. 하지만 배역은 다른 배우에게 돌아갔다.

한 연극에선 욕심내던 배역을 무명의 배우에게 뺏기기도 했다. 이렇게 거절당하다 보면 나라는 존재는 감독이나 제작자가 마음에 드는 배우를 찾을 동안 시간을 때워 주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거절당하는 것을 내 잘못이라 생각하지 마라. 그 감독 머릿속엔 다른 스타일의 배우가 들어 있었을 뿐이니까 말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주는 희망의 메시지로 “예술인들의 최고 주문(呪文)은 ‘다음에(Next)!’”라고 외쳤다.

 

“배역을 얻지 못했다고? 그럼 다음에... 여러분은 다음이나, 아니면 그 다음 다음에 배역을 얻게 될 것이다.

 

나는 여러분이 결국 해낼 것이라는 걸 안다. 행운을 빈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다음에...(I know you’re going to make it. Break a leg. Next!) 말이다’.”


 



 




 

로버트 드니로 뉴욕대 졸업식 연설 전문 요약

번역·정리=오윤희 기자

 

오늘 여러분들을 축하하기 위해 이 자리에 불러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티시 졸업생 여러분, 여러분은 해냈습니다. 그리고 완전히 망했습니다(일동 비명, 웃음).

 

이걸 한번 생각해 보세요. 간호대학 졸업자는 모두 직업을 얻습니다. 치과대학 졸업자도 모두 완전 고용이 됩니다. 비즈니스 스쿨 졸업자도 일자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의과 대학 졸업자도 각각 모두 일자리를 얻겠지요. 뉴욕대의 로스쿨 졸업자?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만약 직업을 얻지 못한다 해도 그게 뭐 그리 대수이겠습니까? 그들은 변호사인데요.


 

영문학 전공자들의 전망은 아주 밝지는 않아요. 아마도 집에서 소설을 쓰고 있겠지요. 교사들은 박봉에 변변치 않은 직업이긴 하지만, 그래도 적어도 일은 할 수 있습니다. 회계학 전공자들도 모두 직장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술을 전공한 여러분의 경우엔, 과연 그것이 가능할지 의심스럽군요. 그러니 회계학 같은 다른 전공으로 갈아 타는 것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회계학 전공자의 특기는 합리적 사고와 논리, 상식입니다. 하지만 예술 대학에서 이성, 논리, 상식이라니요? 지금 장난하십니까? 여러분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열정과 재능을 이 분야에서 발견하고, 인식했습니다. 여러분은 회계학 같은 그런 (안정된) 선택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예술에 대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면, 싸워서 그것을 이뤄나가야 합니다. 예술 분야에서 ‘열정’이라는 것은 ‘이성’을 이깁니다. 여러분은 그저 여러분의 꿈을 좇아나가고 여러분들의 운명에 도달해야 하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댄서, 안무가, 음악가, 감독, 포토그래퍼, 디렉터, 프로듀서, 배우들, 그리고 예술가들입니다. 네 맞아요, 여러분은 예술가예요. 완전 망한 거죠. 하지만 좋은 뉴스가 하나 있는데, 그러한 시작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진로는 분명합니다. 쉽지는 않겠지만요. 여러분들은 그냥 계속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토록 단순합니다.


 

이것은 시작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을 위해서 새로운 문이 당당하게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는 그 문은 ‘평생 거절의 문’입니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졸업자들이 ‘현실 세계’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고통스럽겠지만, 고통이 없이 우리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거절은 고통스러운 경험입니다. 여러분은 감독, 배우, 안무 등의 일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무수한 실패를 경험하게 될 겁니다. 여러분은 배역을 따기 위해서 수많은 오디션을 거쳐야 하고, 여러분의 능력을 감독이나, 투자자들 앞에서 보여줘야 할 때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배역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과 그들의 생각이 반드시 같지는 않습니다.



 

저 역시 과거에 오디션을 본 적이 있습니다.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일대기를 다룬 최근 화제작 ‘셀마’ 시나리오를 읽고는 나를 (주인공으로) 염두에 두고 썼다는 확신이 들어 감독에게 말했지만, 감독의 생각은 저와 달랐습니다.


 

다른 영화 오디션을 본 적도 있는데, 그때도 제 생각과 감독이 배역에 대해 품은 생각은 서로 달랐습니다. 하지만 그가 옳았습니다. 감독의 생각은 항상 옳아요.(일동 웃음) 저는 그 배역을 따기 위해서 대본을 7번이나 새로 읽었습니다. 나는 감독을 위해서 읽었고, 프로듀서를 위해, 프로듀서의 와이프를 위해, 그들이 함께 모여 있을 때 그들 모두를 위해서 읽었습니다. 저는 결국 그 배역이 다른 사람에게 돌아갈 때까지 그걸 반복했습니다. 대체 그들이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찾았다는 사실은 기쁩니다(일동 웃음).


 

또 한번은 제가 배역을 맡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저를 돌려 보냈어요. 저는 배역을 잃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죠. 어느 이름 없는 배우가 다른 이름 없는 배우에게 역할을 뺏기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니까요. 저는 그걸 이해합니다. 이건 개인의 잘못이 아니에요. 때로는 감독에 의해, 때로는 극작가나 투자자에 의해, 때로는 동료 배우에 의해 당신의 진로가 바뀌곤 합니다. 그들이 하는 말을 모두 귀담아 듣고, 당신 자신의 소리도 들으세요.


 

당신이 맡게 될 역할이나 캐릭터에 대한 생각이 감독의 생각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감독은 오디션을 할 때나 당신이 대본을 읽을 때 당신에게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그들이 머릿속에 그리는 것과 당신이 잘 맞을지를 생각해 봅니다. 당신은 기회를 얻을 수도 있겠지만, 결국 최종 결정은 감독이 하는 것입니다.


 

배우로써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캐릭터에 충실하고, 여러분 스스로에게 충실해야 합니다. 그러면 최종적으로 당신은 배역을 얻게 되겠지요. 우리들은 배우, 댄서, 예술가로서 스스로를 표현하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 커다란 그룹과의 협력을 통해서 이뤄집니다. 그 그룹은 의상 디자이너, 감독, 사진가, 무대 감독, 헤어 디자이너 등을 포괄합니다. 그들 모두가 매우 중요한 부분을 담당합니다. 핵심적인 부분이죠. 그들의 영향력은 막강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지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신뢰, 존경심, 비전, 업무, 그리고 협력에서 나옵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어떤 배역을 얻고 싶어 하지만, 감독의 생각은 당신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감독과 토론하세요. 어쩌면 그들이 당신의 의견을 들어줄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솔직히 말해, 우리 배우들이 일하는 현장은 민주적이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결정을 내리고, 누군가는 모든 것을 총괄합니다. 바로 그 일을 감독이 합니다. 여러 차례 거절당하다 보면 나라는 존재는 감독이나 제작자가 마음에 드는 배우를 찾을 동안 시간을 때워주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거절당하는 것을 내 잘못이라 생각하지는 마세요. 그 감독 머릿속엔 다른 스타일의 배우가 들어 있을 뿐이니까요.


 

저는 여러분이 지금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의문에 대한 답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요, 여러분들이 지금 (감독이 되기 위해) ‘연출’로 전공을 바꾸기엔 너무 늦었습니다(일동 웃음). 저는 여러분의 마음 속에 신뢰를 심어주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지만, 만약 제가 손주들에게 충고를 한다면 예술을 전공하라고 하진 않을 겁니다. 아마도 회계나 다른 실용적인 것을 전공하라고 하겠지요.


 

그런 다음 저는 저 자신이 한 말에 반박할 것입니다.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요. 마음을 열고 새로운 경험,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 들이라고 말입니다. 여러분이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여러분들은 결코 알 수 없게 됩니다. 용감하게 나서서 기회를 잡으세요.


 

만약 누군가가 예술을 전공하려 한다면, 스스로를 성장시키고,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우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바로 이곳 티시 스쿨 같은 곳에서요. 그들은 자신의 재능과 불타는 열정을 발견하고, 다른 많은 사람들과 협력하면서 연기를 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자신이 맡은 역할에서 실패를 겪게 된다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지는 말라고 충고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자신이 맡은 바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맡은 배역으로 평가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 작품 자체에 대한 비판을 모두 자기 책임으로 돌릴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마틴 스콜세지나 다른 어떤 유명한 감독과 일을 하게 되더라도 이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자기가 맡은 역할에서 최선을 다 하기만 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여러분은 학교에서 전부 A를 받는 학생이었나요? 그렇다면 졸업을 축하합니다. 실제 현실에서 여러분들은 결코 두번 다시 전부 A를 받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인생에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졸업을 하고, 맞춤형 티셔츠를 입게 될 것입니다. 뒷면에는 ‘거절’이란 단어가 적힌 티셔츠를요.



 

하지만 그 티셔츠 앞면에는 ‘다음(기회)’라는 말이 적혀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원하는 배역을 얻지 못했다고요? 그렇다면 다음이 있습니다. 혹은 다다음 기회가 있을 수도 있고요. 만약 당신이 줄리어드에 입학하지 못했다고요? 괜찮아요, 다음에 예일이나 NYU 티쉬에 입학할 수도 있으니까요(일동 웃음).


 

여러분이 이 학교를 선택한 것은 여러분들의 첫 번째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여러분들의 ‘유일한’ 선택이었죠. 저는 티시를 졸업하지도 않았고, 대학을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티시를 졸업한 사람들을 많이 알고, 그들을 옆에서 지켜보았고, 이곳에서 공부한 사람들과 함께 일을 했습니다.

마틴 스콜세지도 1964년 이 학교를 졸업했죠. 여러분이 동료와 우정을 쌓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 특히 여러분이 배우 활동 초창기에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돈독한 관계를 만들어 놓길 바랍니다.


 

우리는 한번 일을 했던 사람들과 계속 다음 번에도 일을 하게 됩니다. 마틴 스콜세지와 저도 그랬습니다. 펠리니, 히치코크 같은 감독들도 자신이 일하면서 신뢰를 쌓았던 배우와 스텝들과 계속 같이 일을 했지요. 여러분의 동료와 우정, 그리고 근무 현장에서 단단한 유대 관계를 형성해 놓으세요. 우리의 앞날에 어떤 일이 찾아올지 모르니까요. 우정, 훌륭한 사람들과의 협업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또한 창조적인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아주 조그마한 디테일은 영화 전체에 걸쳐 커다란 인상을 끼치기도 합니다. 저는 마틴 스콜세지와 ‘택시 드라이버’라는 영화를 찍었습니다. 그는 영화를 위해서 제게 머리를 밀어버리라고 했지만, 저는 ‘택시 드라이버’를 찍은 뒤 곧 촬영에 들어가는 ‘라스트 모히칸’에서 긴 머리로 나올 예정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토의를 거듭하다가 특수 분장사인 딕 스미스에게 머리 분장을 부탁했습니다. 여러분이 영화를 보셨다면, 모히칸 스타일의 머리가 얼마나 영화 속에서 성공적이었는지 인정하실 거에요.


 

마틴 스콜세지는 작년 2014년도 졸업식 연설을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에게 연설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서 꿈을 이루십시오. 그리고 저는 아마 연출, 프로듀싱 전공자들에게 제 이력서를 들이밀고 있겠지요.(일동 웃음)


 

저는 연기와 미디어 아트 분야의 미래를 열어 나갈 여러분에게 이렇게 연설을 하게 돼 대단히 기쁘고, 영광스럽습니다. 여러분 모두는 잘 해낼 수 있을 겁니다. 나가서 자신의 꿈을 펼치세요, 그리고 항상 기억하세요, ‘다음...’이라는 말을요. 



 









 





 

 


 


 

 



 

 



 



 



 



 



 

 





 




 

“쓸데없는 얘기로 시간낭비 하지 말자고. 철학책 몇 권이면 다 아는 진실이야. 신은 없다. 나눠준 종이에 이렇게 써라.

‘신은 죽었다....’”

 

“하나님이 죽었다고 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학점을 위해 거짓 자백을 할 순 없어요. 하나님이 살아 있다는 거 아시잖아요? 그런데 왜 분노하십니까?”


 

독실한 기독교인인 대학신입생 조쉬 휘튼(쉐인 하퍼)과 무신론자 철학 교수 제프리 래디슨(케빈 소보)이 불꽃 튀는 논쟁을 통해 신을 증명하는 과정을 그려낸 <신은 죽지 않았다>가 관객을 찾아왔다.

 

올 상반기 유일한 종교영화인 <신은 죽지 않았다>(원제: GOD’S NOT DEAD l 수입: ㈜에스와이코마드l 배급: ㈜마운틴픽쳐스 l 감독: 해롤드 크론크)는 신선한 스토리와 주연배우의 열연, 기독교인들의 열렬한 지지와 단체 관람으로 흥행몰이를 이어가고 있다.

또한 영화의 엔딩 곡이자 아름다운 음색으로 진한 여운을 전해주는 ‘This Is The Time’의 두 번째 뮤직비디오까지도 공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하버드대 출신 의사 ‘밍 왕’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신은 죽지 않았다> 영화 속에서는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 조쉬 휘튼(쉐인 하퍼)이 고집스러운 무신론자 철학 교수 제프리 래디슨(케빈 소보)으로부터 수업 시작 전 종이에 “신은 죽었다”라고 쓰라는 강요를 받는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는 조쉬는 홀로 그의 요구에 반론을 제기한다.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려 단단히 화가 난 래디슨 교수는 조쉬에게 ‘신’이 존재함을 증명하여 학생들과 자신의 마음을 바꿔보라는 과제를 내준다. 만약 증명하지 못할 경우 낙제를 시킬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후 강의실에서 펼쳐지는 조쉬와 제프리 교수의 팽팽한 논쟁은 두 사람은 물론, 그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뜻밖의 변화를 일으킨다.

 

<신은 죽지 않았다>는 그 동안 기독교영화의 성경 속 이야기를 탈피했다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특히 이 영화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이웃에게 시선을 돌리고 있다는 점이 매우 신선하게 다가온다.

또한 영화 속 ‘신의 존재’에 대해 학생과 교수의 논쟁과 그들을 둘러싼 이웃들의 이야기는 현재 젊은 종교인들이 겪고 있는 고민과 믿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어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충분하다.

 

이 영화를 관람한 어느 분은 “하나님이 마치 나에게 ‘너는 누구를 증명하며 살고 있느냐’를 묻는 것 같이 느껴졌다.

<신은 죽지 않았다>를 주변에 추천하고 싶다”며 “우리 신앙을 돌아보고 정비하는 귀한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배급사 측은 “<신이 죽지 않았다>는 영화를 놓칠 수 없다는 기독교인들의 열렬한 지지에 개봉관 수가 늘어가는 기이한 현상이 일고 있다”며 “이러한 현상은 기독교인들이라면 반드시 관람해야 하는 영화를 확인시키는 대목이다”고 말했다.

 

한편 동명의 소설 <신은 죽지 않았다>는 아마존 닷컴 평점 4.5점을 기록하는 등, 독자들의 큰 호평을 받았다.  






 




 



 

 




 




 




 




 




 




 




 



 

 





 

 

 






 


 

 

 

 



 




 





 









 





 

 




 

철인 3종 경기를 할 만큼 운동매니아인 40대 중반 A씨는 동맥경화증이 생겼다. 고강도의 거친 운동이 체내 활성산소를 과도하게 발생시켜 세포막과 혈중 콜레스테롤 등의 지질이 산화돼 동맥경화가 일어난 것이다.

 

A씨처럼 운동을 많이 한다고 해서 무조건 건강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운동은 각 개인의 건강상태에 맞는 '최적의 강도'가 있다. 지나치게 약한 것도 문제지만 과도한 운동 역시 건강에 해가 된다.


 

운동 양보단 '세기'에 주목

 

운동 강도는 '저', '중', '고'의 세 가지 단계가 있다. 이 중 우리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데 가장 도움이 되는 세기는 '중강도 운동'이다.

 

대표적인 중강도 운동으로는 빨리 걷기가 있다. 평소 걸음보다 좀 더 빠른 걸음을 의미하는 빨리 걷기는 '땀이 나는 정도' 혹은 '조금 버거운 정도'의 걷기를 의미한다.

 

연령에 따른 중강도 운동

 

중강도 운동은 주로 연령에 따라 달라지는데 60대 이상은 가벼운 웨이트트레이닝이나 체조, 볼링, 수중 운동, 탁구 등이 중강도 운동에 해당한다.

반려견과의 산책, 계단 오르내리기, 청소기 돌리기 등의 생활 활동도 중강도 운동이다. 4.50대에는 골프, 배드민턴, 아이와 놀아주기, 자전거 타기 등이 중강도 운동에 해당하고, 2.30대는 웨이트트레이닝, 10분 이내의 조깅, 에어로빅 등이 중강도 운동이다.
 

중강도 운동이 건강에 좋은 이유
 

중강도 운동은 몸에 적당한 부하를 걸어 세포를 활성화시킨다. 회복하지 못할 정도로 활성화되는 것이 아니라 가장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 몸을 만드는 수준으로 몸에 부담을 준다.

 

또 신진대사를 활성화하고 심폐기능을 강화한다.  체온을 높이고 면역력을 향상시키며 자율신경의 작용도 원활해지도록 돕는다.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혈압을 낮추며 지방연소율을 높이고 효과도 있다. 이러한 효과는 중강도운동이 '건강 장수유전자'의 스위치를 켤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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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복심 5000명 발송비

Francis Chang

안은혜

김성현

최옥연

C.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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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가정집에 들어갈 때

우리나라의 문패처럼 문설주에 부착되어 있는

손바닥 길이 정도의 작은 케이스가 달려 있습니다.

이 작은 케이스가 바로 [메주자/Mezuza]]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어느 작은 가게의 입구에도 붙어 있습니다.   


메주자 안에는 성경의 신명기 6장 말씀이 들어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이신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을 다하고

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신6: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