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you walk through the storm
Hold your head up high
And don't be afraid of the dark
At the end of the storm
There's a golden sky
And the sweet silver song of the lark
Walk on, through the wind
Walk on, through the rain
Though your dreams be tossed and blown
Walk on, walk on, with hope in your heart
And you'll never walk alone
You'll never walk alone
Walk on, walk on, with hope in your heart
And you'll never walk alone
You'll never walk alone
폭풍 속을 걸을 때면
고개를 바로 들고
어둠을 두려워 하지 말아요
폭풍이 끝나면
맑은 하늘과
종달새의 아름다운 노래가 있어요
바람 속을 계속 걸어가요
빗속을 헤치고 계속 나아가요
비록 꿈이 날아가 버릴지라도
걸어요, 희망을 갖고 계속 걸어요.
그대는 결코 혼자 가는 게 아니예요
그대는 결코 혼자가 아니예요
걸어요, 희망을 갖고 계속 걸어요.
그대는 결코 혼자 가는 게 아니예요
그대는 결코 혼자가 아니에요
Sissel(시셀).....
1969년 6월 24일,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출생.
"시셀"은
영어 식 발음으로 "시셀 슈샤바(Sissel Kirkjebo)" 이며 노르웨이 발음은 "교회의
언덕"이란
뜻의 "시슬 쉬르셰뵈"라고 발음한다고 합니다.
1.
내가 떠난 뒤에도 그 집엔 저녁이면 형광등 불빛이 켜지고
사내는 묵은 시집을 읽거나 저녁거리를 치운 책상에서
더듬 더듬 원고를 쓸 것이다 몇 잔의 커피와,
담배와, 새벽녘의 그 몹쓸 파지들 위로 떨어지는 마른 기침소리
누가 왔다 갔는지 때로 한 편의 시를 쓸 때마다
그 환한 자리에 더운 숨결이 일고,
계절이 골목집 건너 백목련의 꽃망울과 은행나무 가지 위에서 바뀔 무렵이면
그 집엔 밀린 빨래들이 그 작은 마당과
녹슨 창틀과 흐린 처마와 담벽에서 부끄러움도 모르고
햇살에 취해 바람에 흔들거릴 것이다
눈을 들면 사내의 가난한 이마에 하늘의 푸른빛들이 뚝 뚝 떨어지고
아무도 모르지, 그런 날 저녁에 부엌에서 들려오는
정갈한 도마질 소리와 고등어 굽는 냄새
바람이 먼 데서 불러온 아이 적 서툰 노래
내가 떠난 뒤에도 그 낡은 집엔 마당귀를 돌아가며
어린 고추가 자라고 방울토마토가 열리고
원추리는 그 주홍빛 꽃을 터트릴 것이다
그리고 낮도 밤도 없이 빗줄기에 하늘이 온통 잠기는 장마가
또 오고, 사내는 그 때에도
혼자 방문턱에 앉아 술잔을 뒤집으며
빗물에 떠내려가는 원추리 꽃들을 바라보고 있을까 부러져나간
고춧대와 허리가 꺾여버린 토마토 줄기들과 전기가 끊긴
한밤중의 빗소리........... 그렇게
가을이 수척해진 얼굴로 대문간을 기웃거릴 때
별일도 다 있지, 그는 마당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누군가 부쳐온 시집을 읽고 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물결을 끌어당기고 내밀면서
내뱉고 부르면서
강물은 숨쉬는가
2.
그 낡은 집을 나와 나는 밤거리를 걷는다
저기 봐라, 흘러 넘치는 광고불빛과
여자들과
경쾌한 노래
막 옷을 갈아입은 성장(盛裝)한 마네킹들
이 도시는 시간도 기억도 없다
생(生)이 잡문이 될 때까지
나는 걷고 또 걸을 것이다
때로 그 길을 걸어 그가 올지도 모른다 밤새 얼어붙은 수도꼭지를
팔팔 끓는 물로 녹이고 혼자서 웃음을 터트리는,
그런 모습으로 찾아와 짠지에 라면을 끓이고
소줏잔을 흔들면서 몇 편의 시를 읽을지도 모른다
박영근 시인
1981년 ‘반시(反詩)’ 제6집에 ‘수유리에서’ 등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취업공고판 앞에서’, ‘대열’, ‘김미순傳’등이 있다.
이재언 연구원이 23년간 556개의 섬을 세 번이나 돌아보고 난 후 섬에 관한 인문지리적
서적을 출간할 예정이다.
아래 사진은 그가 출간한 <한국의 섬>시리즈 서적으로 지역별로 13권이 출간될 예정이다.
"처음에는 섬을 버렸어요. 어릴 적 내가 살았던 섬은
똥돼지, 보리밥, 전기와 수도도 안 들어오는 열악한 환경이었죠. 그런데 목사가 되어 선교적인 마음으로 섬을 돌아보다 섬을
사랑하게 됐죠. 선착장, 물, 전기, 교통, 의료 등 열악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거든요. 선교복지 차원에서 섬을
연구하러 다니다 아예 연구원이 됐습니다."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이자 작가인 이재언씨의 얘기다. 우리나라에는 3400여개의 섬이 있다.
그 중 사람이 살고 있는 유인도(有人島)는 446개다. 그는 목회를 하며 무인도까지 포함, 556개의 섬을 혼자서 세
번이나 돌아보고 섬에 관한 인문학적 서적을 발간했다.
"6학년 때 아버지를 따라 목포에 구경나갔어요.
그곳에서 기차, 전기, 자동차, 건물, 음식을 처음 보면서 문화충격을 받았죠. 이런 세상도 있구나 했어요."
그는 섬을 떠나 서울에서 고학을 하다가 지인의 도움으로 신학을 공부하게 됐고 목사가 되어
고향인 완도군 노화도로 돌아와 주위의 14개 섬을 다니면서 선교와 복지사업을 시작했다. "기독교는 사랑이죠. 그래서 고향에
내려와 섬을 사랑하게 된 겁니다"라고 섬사랑 이유를 보탰다.
이때부터 섬의 중요성과 연구의 필요성을 느끼며 그 동안 잊고 있었던 섬의 매력에 빠져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 그대로의 섬의 흔적이 사라지기 전에 모두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전국의 섬을 돌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재언 연구원은 서울에서 고학하는 동안 신문을 배달했었다. 신문을 배달하면서 사마천의
<사기>와 이중환의 <택리지> 등을 읽으며 뜻을 키워 나갔다. 그의 서재 앞에는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라는
글귀가 씌어 있었다.
아는 지인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격언 한 말씀만 들려 달라"고 부탁하면 꼭 이 글귀를
말해준다며 23년간의 답사과정의 어려움을 설명해줬다.
이재언 연구원의 애마인 4.5톤
짜리 등대호 모습
"답사 중 9번이나 배가 고장 나 해경의 도움을 받기도
했어요. 2012년 6월에는 일행들과 서해안 탐사를 마치고 오던 중 신안군 압해도 복룡항에서 암초에 부딪혀 배의 침몰과
목숨까지 잃을 뻔 했습니다. 그 일로 순천 교도소까지 갔다 왔어요. 저한테는 시간, 사진, 위험, 경제 등 하나도 갖춰진
것이 없었지만 인내와 끈기, 역정, 기독교 영향 등으로 해냈습니다."
처음에는 <한국의 섬>이라는 제목의 3권 분량을 계획했다가 7권으로, 다시 지역별로 13권을
최종 목표로 세웠다. <한국의 섬 기행> 시리즈를 준비하다가 1년 가까이 '전남일보'와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을 모아
백과사전식으로 편찬했다. 책 속에는 섬에 관한 인문, 주산업, 관광, 역사, 문화, 전설, 지리, 애환 등의 거의 모든
지식이 들어있다.
이재언 연구원 집에 초대 받아 그가 보여준 견본서적은 학생들이 교과서로 사용해도 흠이 없을
정도로 정장이 예쁘고 내용도 알찼다.
울릉도를 돌다 자신을 촬영한 이재언
연구원
그에게 "목사님!"이란 호칭으로 부르자 "목사님이라고 부르면 판이 깨져요"라는 말에 "판을
깬다는 말이 무슨 뜻이냐?"고 묻자,"섬사람들한테 직업이 목사라고 하면 말문을 닫아 버려서 연구원이나 작가라고 하며
막걸리를 한잔 같이 들이켜야 속마음을 보여 준다"고 부연 설명해줬다.
없는 형편에 23년 동안이나 섬탐사 다니는 남편을 뒷바라지 하느라 힘들었을 사모님한테 당시의
심경을 물었다.
"아이고! 섬 이야기만 나오면 징글징글해요. 섬 탐사는
돈, 시간, 위험, 생명담보가 걸린 일이에요. 누가 좋아하겠어요.
처음에는 1.47톤짜리 조그만 배로, 지금은
4.5톤짜리 배지만 옛날에는 해도(海圖) 하나만 달랑 들고 나갔어요. 지금이야 장비도 좋고 핸드폰이나 있지만 바람이 안
불어도 걱정, 바람이 불면 더 걱정을 하고 살았어요. 사비를 수억 들었는데 정부가 나서서 해도 수십억 들었을 거예요."
제주 중문단지의 주상절리
다행히 한국교회와 미국교회에서 후원금이 답지했고 통역장교를 하던 장남이 월급을 고스란히 보내줘
기름 값에 보탰다. 남이 안 하는 일이라 쪽박을 차거나 대박을 치거나 둘 중 한 가지겠지만 언젠간 알아주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했는데 그에게 좋은 일이 생겼다.
5년 전 목사직을 사임한 그는 국립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으로 초빙을 받았고 출판지원까지 받게
되었다. 또한 '지리와 역사'출판사에서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지식 백과에 '한국의 섬'을 제공하여 재정 후원을 받기도 했다.
후임자가 나타나면 지도자로 가이드로 한 번 더 섬을 돌아볼 예정이지만 아직 후임자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그는 요즘 드론을
배우고 있다. 섬 상공에서 정확한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서다.
프랑스의
무슬림 지도자가 “방치돼 있는
수천 개의
가톨릭교회를 모스크(이슬람 사원)으로 바꿔
달라”고 공개적으로 요청하고 나섰다. 프랑스에서는 무슬림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들을 수용하기 위한
시설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무슬림이 가장 많은 나라다.
무슬림종교위원회(French Council of Muslim Faith)의 회장이자 파리에 있는
그랜드 모스크(Grand Mosque)의 이맘(기독교의 목회자)인 달리 부봐쾨르(Dalil
Boubakeur)는, 지난 16일 프랑스 유럽1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프랑스에 모스크는
2,500개의 뿐이고, 현재 건축 중인 것도 300개가 되지 않는다”면서 “이는 500만 명으로
추산되는 프랑스의 무슬림들을 수용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부봐쾨르는 “프랑스의 무슬림들에게 최소 5,000개의 모스크가 필요하다”면서 “비어 있는 교회를
모스크로 바꾸는 것이 가능한 선택 중 하나일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30년간 방치되고 있던 한
교회가 지난 2013년 모스크로 바뀌었으며, 지역 종교 공동체에서도 이를 환영했다고 설명했다.
부봐쾨르는 지난 4월에는 “프랑스에 있는 모스크의 수를 두 배로 늘려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었다.
인터내셔널비즈니스타임스에 따르면, 지난 2012년 조사에서 프랑스 인구의
64%가
가톨릭
신자이지만 미사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이들은
4.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었다. 지난 10년간 문을
닫은 가톨릭교회도 60개나 됐다.
여과 없이 이슬람을 받아들인 프랑스가 결국 유럽에서는 가장 먼저
이슬람에게 점령당하는 양상을 띄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연방대법원이 26일 대법관 9명 중 찬성 5표 대 반대 4표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판결을 내린 가운데 반대표를 던진
안토닌 스칼리아(Antonin Scalia) 대법관은
이 판결에 대해 신랄(辛辣)한
비판의 발언을 쏟아냈다.
크리스천포스트(Christian
Post)는 이 중 6가지의 발언을 전했다.
1. 연방대법원은 미국의 민주주의를 최정점에서 끌어내렸다.
(Supreme Court put a stop to American democracy at
its best.)
연방대법원이 이번 판결을 내리기 전까지, 공개적으로 이뤄진 동성결혼에 대한 활발한 토론은 미국
민주주의가 최정점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줬다. 양측은 이 이슈에 대해 열정적으로, 그러나 서로를 존중하며 시민들이 자신의
관점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미국인들은 양측의 주장에 대해 깊이 고민하면서 이 문제를 투표에 부쳤다. 11개 주는 직접
또는 대표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결혼에 대한 전통적인 정의를 고수하기로 결정했고, 나머지 주들은 그렇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승자든 패자든 양측의 옹호자들은 이번 투표의 패배가 다음 투표에서의 승리가 될 수 있고, 이번의 승리가 다음의 패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속해서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미국 정부의 시스템이 작동하는 방식이었다.
2. 연방대법원은 초법적인 권력을 주장하고 있다.
(Supreme Court claims super-legislative power.)
대법관들은 합법적인 권력 행사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초법적인 권력 행사다. 이것은 미국
정부의 시스템과 근본적으로 충돌되는 것이다. 국민들이 동의한 헌법에 의해 금지된 제한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주 정부는
그들이 원하는 법을 자유롭게 채택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비록 대법관의 이성적인 판단에서 불쾌하게 여겨진다
할지라도. 국민들을 9인의 대법관에 종속되도록 만드는 정부의 시스템은 민주주의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
3. 연방대법원은 미국을 대표하지 않는다.
복음주의자들도 대표하지 않는다 (Supreme Court is not representative of
America; not a single Evangelical.)
판사들은 그들이 적절하지 않은 특정 지지층의 정치적 관점을 반영한다 할지라도 법률전문가이기
때문에 선출된다.
따라서 당연히 연방대법관은 결코 미국의 한 단면만을 보여줄 수가 없다. 예를 들어 9명의
남성과 여성으로 구성된 연방대법원의 구성원은 하버드대나 예일대의 로스쿨에서 공부한 성공적인 법률가들이다.
그리고 대법관 9명 중 4명은 뉴욕 사람들이고, 9명 중 8명은
미국의 서부해안이나 동부해안에서 자랐다.
이 가운데서 자란 사람(거대한 미국의 중부 지역)은 1명 밖에 안 된다.
남서부에서 자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솔직히 말해서 캘리포니아주를 제외한 진정한 서부인들은 없고,
미국인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복음주의 기독교인들도 없다.
오순절 교단 소속도 없다.
미국을 대표할 수 있는 특성을 두드러지게 하나도 가지지 못한 이 조직이 오늘 사회의
대격변(大激變)을 초래할 투표를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들이 재판관으로서 역할을 하려 한다면, 미국인들이 전통적인 결혼의 정의를 금하는 것으로
이해되는 헌법 규정에 대해 비준한 적이 있는지에 대한 법적 질문에 대해 물음을 던져야 한다.
물론 오늘의 대다수의 대법관들은 이러한 기초 아래서 표를 던지지 않았다. 그들도 자신들이
그렇지 않다고 한다. 동성결혼에 대해 정치적 질문을 허용하기 위해 전혀 대표성이 없는 9인의 대법관들에 의해 고려되어야
하고 의결되어야 하는 것은, 대표성이 없이는 과세도 할 수 없다는 원칙보다 더 근본적인 것을 위반했다는 점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대표성이 없다면 진정한 사회 변화도 없다는 것이다.
(편집자의 관점에서 부언하자면, 앞으로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교회, 기독교사학, 기독교단체 등
기독교단체들은 세금감면 혜택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법관들이 모든 계층을 대표하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을 비롯해 전통결혼을 지지하는
자들로부터 이번 대법원의 동성결혼 합법화가 강력한 저항을 받는 등 진정한 사회 변화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4. 연방대법원의 교만함이 가장 경악스럽게 나타난
것은 미국 정부를 전복시켰다는 것이다.(The most astounding part of the
Court's arrogant overthrow of the government ...)
하지만 정말로 경악스러운 것은 교만이 오늘의 연방대법원의 미국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모습에서
나타났다는 것이다. 오늘 다수를 차지한 다섯 명의 재판관들은 모든 주가 지난 135년간 헌법을 위반했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 135년은 수정 헌법 제14조의 비준시켰던 때와 매사추세츠 주가 동성결혼을 합법화시켰던 2003년 사이의 기간이다.
그들은 제14조에서 이것이 비준될 당시 살아있던 모든 사람들과 그 이후의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서 간과됐던 근본적인 권리를 발견했다.
그들은 토마스 쿨리(Thomas
Cooley, 1824-1898, 25대 대법관),
존 마샬 할란(John
Marshall Harlan, 1833-1911, 플레시(Plessy
v. Ferguson 1896) 사건과 관련, 흑인과 백인의 좌석 구분에 대해 유일하게 반대했던 대법관으로, 지금은
수치스런 연방대법원 판결로 기록되고 있다.),
올리버 웬들 홈스 2세(Oliver
Wendell Holmes Jr., 1841-1935, 우수한 판례를 많이 남긴 유명한 대법관),
러니드 핸드(Learned Hand, 1872-1962, 가장
존경 받는 판사 중 한 명으로 항소법원에서 일했으며, 다른 어떤 하급판사보다 연방대법원과 법학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판사),
루이스 브랜다이스(Louis Brandeis,
1856-1941, 미국 최초의 유대인 출신 대법관으로 경제적 민주주의를 강조하며 최저임금법의 합헌성을 주장하고 철도회사의
독점사업과 맞서 싸우기도 하여 명성을 얻었다.),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William
Howard Taft, 1857-1930, 연방대법원장과 27대 대통령을 지냄),
벤자민 카도조(Benjamin Cardozo,
1870-1938, 미국 법원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대법관 중 한명), 휴고
블랙(Hugo Black, 1886-1971,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대법관 중의 한 명이었다),
펠릭스 프랑크푸르터(Felix Frankfurter, 1882-1965, 루스벨트 대통령의 친구였던
대법관), 로버트 잭슨(Robert Jackson,
1892-1954, 로스쿨을 나오지 않고도 대법관에 임명된 마지막 대법관),
헨리 프렌들리(Henry Friendly, 1903-1986, 제2지구 연방항소법원의 전설적인 판사)
등에게서 덜 떨어진 법의식(legal minds)을 보았다.
그들은 제14조를 비준했던 사람들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여겨질 경우에 민주적
절차에 대한 의문을 제거할 수 있는 권력을 그들에게 수여했다고 확신하고 있다.
이들 대법관들은 결혼을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제한하는 것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지 않은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들은 모든 세대와 모든 사회의 만장일치 판결을 받았고 15년 전까지만 해도 모든
이들이 동의했던 사람들, 그리고 지금 자신들에게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헌법에 맞서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5. 다수 의견은 화려해보이지만 논리와 정확성이 결여되어
있다.(The majority opinion's "showy profundities" lack logic
and precision.)
이번 판결에 대한 다수의 의견은 그 내용이 독선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가식적인 방식으로 길게
나열되어 있다. 화려해 보이지만 찬성의견이나 반대의견을 구별하기 위한 것이다. 연방대법원의
공식적인 의견을 나타내는 또다른 방식이다.
물론 화려해 보이는 다수 의견은 종종 뿌리 깊은 모순을 담고 있다.
먼저 판결을 "결혼의 본질은 그 영속적인 결합이라는 특성을 통해 두 사람이 표현, 친밀감,
영성과 같은 다른 자유들을 함께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정말인가? 누가 이전에 친밀함과 영성이 자유에 속한 것이라고 생각했는가? 친밀함과 영성이
뜻하는 것이 무엇이던지 간에 말이다. 만약 친밀감이, 친밀감의 자유가 결혼에 의해 확장되기보다 축소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근처에 있는 히피족들에게 물어보라. 표현은 자유이지만, 영속적인 결혼관계에 있는 자들은 현재의
행복한 결혼 상태가 자유가 증가하기보다 축소시킨다는 것을 증언할 것이다.
우리는 또 "권리는 헌법의 명령이 우리 시대에 긴급하게 남아 있는 자유를 정의하는 방법과
관련해 더 공식적으로 알려진 이해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말을 듣게 되는데, 헌법의 명령(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든지간에)이
긴급한 자유를 정의하는(그 정의가 무엇이든지 간에) 방법과 관련해 더 공식적으로 알려진 이해가 어떻게 권리를 태어나게 할
수 있는가?
우리는 "특별한 경우, 그것이 평등권조항이든 적법절차조항이든, 두 조항들이 권리의 식별과
정의에 있어서 한 점으로 수렴되는 바로 그 순간에 더 정확하고 광범위한 방법으로 권리의 본질을 정확히 담아낼 수 있다고
여겨질 수 있다"라는 말도 듣게 되는데, 이것이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정확하고 광범위한 방법으로 담아낼 수 있는
실질적인 적법절차가 가능한 권리의 본질이 도대체 무엇인가? 이것은 이 연방대법원이 정말로 좋아하는 그들의 자유와
재정지원혜택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또 평등권 조항은 연방대법원이 정말 싫어하는 대처법과의 차이를 제외한 다른 어떤 것도
확인해주지 않는다. 본질은 다 증발되어버렸다.
그리고 정말로 두 조항들이 권리의 식별과 정의에 있어서 한 점으로 수렴된다는 의견이 옳다면,
그 이유는 오직 다수 판결을 내린 대법관들의
호불호(好不好)가 아마도 서로 양립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 외에도 더 많은 것들을 지적할 수 있다.
세상은 시나 영감을 주는 철학에 대해 논리나 정확성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것은 법에 요구하는
것이다. 오늘의 다수 의견이 포함하고 있는 것들은 명확한 사고와 냉정한 분석의 결여로 연방대법원의
명성(名聲)을 갉아먹을 것이다.
6. 사람들은 연방대법원의 무능함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Will
the people remind the Supreme Court of its impotence?)
교만은 때때로 지나친 자존심으로 정의된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
연방대법원은 연방정부 조직 중에서 가장 덜 위험한 조직이다. 왜냐하면 연방대법원은 강압적인
힘이 없고 그렇게 할 의사도 없기 때문이다. 단지 법적인 판단을 내놓을 뿐이다. 연방대법원은 심지어 판결의 효력에 있어서도
행정부(executive arm)과 주정부들의 도움에 근본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국민들을 폄하한, 법에 기초하지 않은 뻔뻔한, 가까스로 과반을 넘긴 우리의 각각의 결정은
그들에게 질문을 남길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연방대법원의 무능함을 떠올리게 하는 단계로 한 발 자국 더 나아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연방대법원 판결에 대해 "미국의 승리"라면서
"모든 미국인이 평등하게 대우받을 때,
우리는 더욱 자유로울 수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문안 올립니다.
여름의 한 가운데로 들어가는 길목엔 꽃가루로 법석을 떨고 남겨진 쇠잔함이 동공
속을 떠돕니다.
나딩구는 꽃가루가 흰
솜
봉오리 티끌더미
되어 흩어지는 숲길엔 푸르름을 헤집고 고개
처 드는 푸른 잔디가 길을 터주면 모처럼 소식
전해줄 용기를 일깨워 줍니다.
여상한 숲길 산책이지만 계절의 변화는 삶의 활력을 불어 넣어 줍니다.
한 겨울 목메어 기다리던 철새들의 지저귐도 무던함으로 다가올 즈음 무더위의 기승도, 며칠을
타고 내리던 빗줄기도, 온 들녘을 들썩거리는 마파람도 엉키고 설키어 계절의 감각마저 흩으러 놓습니다.
사람은 나이
따라 깊이도 무르익으나 자연은 부활과 성장, 추수와 동면을 반복하며 부질없는 인생의
조급함을 꾸짖는 하니 이제야 나이
듦의 리듬을 찾은 듯 합니다.
흘러간듯 하나 머물러 있고
머물고 있는 듯 하나
저멀리 달아난 지난 달들이
어느새 5개월을 넘어서는 상하의 문턱에서
궁굼해하는 지인들을 위해
무디어진 손끝을 세워
간단한 기도의 소식 전해 올립니다.
2015년을 맞이해 이미 여러차례 중국을 다녀와서 여러 강의와 선교 대회를
인도하였습니다.
한국에서는 통일 세미나도 인도하였고 디아스포라 대회에서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또한 필리핀에서는
성서고고학과 지구촌 기독교에 대한 두학기 강의를 마쳤습니다.
여러 강의 준비와 교재 준비 그리고 강의 파워 포인트 준비
등으로 비록 여러 나라를 오고 갔지만
그 사이 사이는 온전히 강의와 말씀을 증거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눈이 내림으로 공항이 폐쇄되고, 모든 항공기가 다
취소되고 이미 집회와 강의는 취소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반드시 그 모든 상황을 극복해야 하는 우여곡절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보스톤 국내선이 안
되는 폭설 속에서 뉴욕까지 버스를 타고 새로운 비행기를 타고 가기도 했고, 중국에서
여러
번의 기차 연기와 취소 속에서도 12시간 이상을 달려 입술 동상이 걸리기까지 추운 지역에서 강의를 인도하기도 했습니다.
분단 70년을 맞는 지금 앞으로 통일의 물꼬를 틀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상고해보는
통일 세미나를 인도했고, 한민족의 정체성과 분단과 통일이 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상고해보면 디아스포라 청년 세대를 상고하는
세미나 속에 한민족 세계 선교의 본질에 착념하기도 했습니다.
급변하는 21세기 지구촌의 기독교의 실상을 소개하고 각 나라의 선교사역이 어찌해야 하는 지,
그리고 21세기 첨단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20-30년 전에는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성서고고학의 발달이 20-30년
신학공부하고는 차원이 다른 성경과 신학의 신지식 세계로 인도하는 21세기 성서고고학 강의를 준비하고 강의하면서 우리는
죽을
때까지 배우고 연구함을 중단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특히 중국에 있는 1억 명의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해외에 100만명 선교사 운동을 일으키는
거대한 역사를 이루기 위해 중국 가정 교회의 5대 그룹 핵심 리더들을 대상으로 한 지도자 훈련을 담당할 사역을 시작하기로
논의하였고 어마어마한 중국 교회와 그 배경 그리고 앞으로의 모습을 그리며 또한 새로운 신입생처럼 중국 교회에 대한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중국에서 강의했던 세계 선교의 역사, 지구촌 기독교, 교회사, 영성과 목회
등은 이미
대학교 강의 교재로 꾸며졌고, 수십
개에 달하는 파워포인트는 어디에 가서도 심도
있는 강의로 쓰여질 수 있는 자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딱히 어느 곳에서 후원해서 가는 것도 아니고 오고 가는 항공편이며 보스톤에 고정적으로
나가는 비용으로 인해 이제 더
이상 카드도 지불하기도 어렵고 높아만 간 빚들을 더이상 갚을 수 없는 한계에 다다르게 되어
과연 중국이나 다른 나라를 갈 수 있을지 깊은 고민 가운데 있습니다.
이제는 책상
위에 수북히 쌓인 고지서를 바라보며 오직 하늘을 향해 올리는 탄식의 기도만이 빈
공
간을 채웁니다. 필리핀의 김은주 선교사 또한 교직원 급여와 대학 운영으로 사람이 감내하기 어려운 고난 속에 있기에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의 딸은 작년 하바드 대학에서 언어학 (Linguistics) 으로 대학원 과정 1년을
마치고 본인의 뜻에 따라 지금은 콜롬비아 대학에서 언어 심리학(Psycho-lingustic studies) 과정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시아권 선교 동원의 역사를 이루는 마닐라 국제 선교대회 2015년 대회가 8월
21일부터 22일까지 열리게 됩니다. 필리핀 대통령과 하원의원이며 세계에 널리 알려진 파끼아오를 특별 강사로 초청하고자
합니다. 서울에서는 여의도 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님과 횃불재단 이형자 원장님등 너무나 귀중한 분들이 이번 대회에 오셔서
말씀을 증거하게 됩니다. 필리핀 한 알의 밀알교회에서는 전교인 한끼 금식하며 김은주 선교사와 함께 매진하면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는 마닐라 선교 대회 이후 계속해서 태국과 중국 그리고 아시아 각국과 여러나라의 집회와
선교대회 강의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일들은 끊임없는 기도와 중보 가운데 하나 하나 놀라운 주의 역사를 이루게 될
줄 믿습니다.
1. 필리핀 대학과 대학원을 통한 아시아 선교 지도자 훈련과
육성을 위해
2. 필리핀 2015 마닐라 세계 선교 대회를 위해
(2015년 8월 21-22일)
3. 보스톤에 새롭게 시작될 기도와 부흥 사역을 위해
4. 중국 가정 교회 전체를 세계 선교의 놀라운 자원으로
세우기 위한 선교 동원과 지도자 훈련 사역을 위해
5. 2015년 하반기에 있을 영어책과 한국어 책 저술 작업을
위해
현재까지 세계 각처에서 강의하며 앞으로도 어디에서나 강의할 교안과 PPT을 준비한 주제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Islam
2. Judaism
3. Mission Studies
4. Revivals and Awakenings
5. Pentecostalism
6. Church History
7. Spirituality and
Spiritual Formation
8. Biblical Archaeology
9. Global Christianity
10. Intercessory Prayer
11. Global South
12. Korea Reunification
13. Business As Mission (BAM)
14. Diaspora
15. Christian Leadership
앞으로 계속해서 세계 각국에 강의하고 또한 배포할 강의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Ancient civilizations
2. World Pagan Religions
(especially Near East Mythology in the Old Testament Time)
3. Systematic Theology
4. Biblical Theology
5. Dogmatism
6. Early Church:
Canonization
앞으로 저술하고자 하는 책의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남반구 기독교에 대한 분석과 전망
2. 미국 기독교의 위기와 세계 교회에서의 위치와 역할
3. 한반도 통일에 대한 지정학적 인과관계와 바람직한 통일
방안
4. 인류의 흩어짐(디아스포라)에 대한 전인류사적 고찰과
21세기 세계의 인구변동
필리핀과 아시아 그리고 미국과 전세계에 계속해서 선교의 동원과 복음 전도의 역사가 계속해서
주님 오실 그날까지 추수의 역사로 이어지기를 기도 드립니다.
오랜 세월 붓을 꺽고 살았으나 오늘은 모처럼 붓끝을 털어 기지개를 펴 봅니다.
땅끝에 서서
눈녹는 길목 숲
살찬 바람에 무릎이 시리우나
바위너설에 꺽인 노송
솔잎 낭가지 움추려도
먹새벽에 깊고 깊은 얼뿌리여
분단 70년
섬이 된 조국강토여
자잔한 먹고 누림에
세상풍조 조금살에
눈 먼 중생처럼
생명이 경각에 달려
끝자락 인생
지팡살이만 남았구나
얼음뗏장 나라
남극이 어드메며
홀로남을 땅끝 어디런가
맛찹게 잡은 소명
상글히 선 삶의 자리
세상의 중심이오
땅끝이기에
모든 주고 주어도
종국엔
생명까지 내어 놓기를
Elijah Kim, PhD
President, Pathos Foundation, Boston
President, Elijah International World Mission
Institute, Philippines
올해는 광복 70주년
한국전쟁 65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한국을 위해 참전하신 우방국 군사들과
전사하신 전우들을 감사한 마음으로 기억합니다.
부산에 건립된 유엔묘지에 봉안된 유해수만
2300기에 달합니다.
한 선비가 강을 건네 주는 사공에게 으스대며 물었습니다.
선비
: “자네 글을 지을 줄 아는가?”
사공 : “모릅니다.”
선비
: 그럼 세상사는 맛을 모르는구먼...
그러면 공자
왈 맹자 왈은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사공 : “모릅니다.”
선비
: “저런 인간의 도리를 모르고 사는구먼....
그럼 글을 읽을 줄 아는가?”
사공 : “아닙니다. 까막눈입니다.”
선비
: “원 세상에... 그럼 자넨 왜 사는가?”
이때 배가 암초에 부딪혀 가라앉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사공이 선비에게 물었습니다.
사공
: “선비님, 헤엄치실 줄 아십니까?”
선비 : “아니, 난 헤엄칠 줄 모르네.”
사공 : “그럼 선비님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사는 재미도 많고 보람도 많고
부와 명예도 많겠지만 우리가 덜컹 인생의 ‘암초’에 부딪히게 될 때 자기 목숨 하나 건지지 못한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설령 세상의 지식은 모자라더라도 살아남는 법을 아는 사공이 오히려 더 큰 지혜를 가진
자가 아닐까요?
교회의 존재 가치가 뭘까요?
궁극적으로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영생의 삶을 살도록 안내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영혼 구원에
있다는 말입니다.
회 칠한 무덤이란 말을 들어 보셨겠지요. 죽은 송장을 묻어 둔 곳을 아름답게
색칠한다고 해서 진정 아름다운 인생이 된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무덤을 가꾸는 일로 분주한 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30년 전 미국에 왔을 때 저를 초청하신 아버님께서 미국 도착한 바로 다음 날 저를
데리고 공동묘지를 구경 시켜주셨습니다. 아직까지 이유를 물어보지 않았지만 나름 교훈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미국의 화려함을 보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볼 줄 아는 삶 속에서의 영생을 가슴에 품게
했습니다.
교회는 영혼구원에 온 정성과 열정을 바쳐야 합니다. 교회도 사회도 개인도 회 칠한 무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돈이 없으니까 많이 불편하긴 합니다. 짜증날 때도 있고요. 그러나 불행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작은 것에 감사하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것을 가지고 살면서도 불행한 분들이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어디 불행이
제 맘대로 찾아 옵니까? 아닙니다. 내가 허락하니까 찾아 드는 것입니다. 불행이 무엇인지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진짜 불행이 무엇인지를 가르치는 곳이 교회이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영혼이 구원받지 못하면 불행한 것입니다. 이 불행을 면하게 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다른 것 다 잘해도 영혼구원에 실패하면 그 교회는 실패한 교회입니다. 영혼구원의 감격과 감사와
찬양과 열정을 가지고 사는 삶이 바르게 믿는 자의 삶인 것입니다.
인생은 누구나 암초에 부딪칩니다. 죽음입니다. 곧 찾아옵니다. 그러니 죽음을 넘어
영생으로... 그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야지요. 영원한 나라...
그런데 썩어질 세상 욕심을 위해 죽도록 살아오다가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진다면 이게 불행이
아니고, 그게 어리석은 삶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런데 교회가 지옥을 보여주고 천당을 열망(熱望)하게 하는 일에 열정을 잃었다는 생각 때문에
안타깝기만 합니다.
먹이 감을 보고 사냥개가 달립니다. 다른 개들은
덩달아 그 사냥개를 보고 달립니다.
다른 개들은 중간에 지쳐 중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사냥개는 목표가 있었기에끝까지 달려 먹이감을
쟁취(爭取)했습니다. . .
분명한 목표가 필요합니다. 교회는 분명한 삶의 목표를 제시하는 곳입니다. 무엇이
가장 중요한 삶의 목표인지를 가르쳐야 합니다. 세속적인 삶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는 곳이 교회가 아닙니다. 사람의 귀를
기쁘게 해 주는 소리가 메시지를 대신해서는 안됩니다. 영혼구원의 열정을 가진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영혼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아래 찬송을 한 번 불러 봅시다.(장재언)
나는 신학을 공부하는 도중에 한빛교회 교육전도사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임직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담임목사님께서 선물로 책
한 권을 주셨습니다.
그 책이 유명한 칼 바르트가 쓴 14권에 달하는
[church dogmatics-교회교리]의 제1권이었습니다. 1941년 판
독일어 원서였습니다.
그리고 그 첫 장에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는
글을 적어 주셨습니다. 나는 책을 선물하신 그 분의 뜻을 따라 위대한 신학자의
길을 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책에 적어 주신 글귀 때문에
아직도 대기만성의 이루어져 가는 현재 진행형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느 날 세기의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가 시카고신학대학에서 은퇴 강연을 마쳤습니다. 비록 그의
신학에 대해서 세계적으로 찬반이 분분하기는 하지만, 아무튼 그가 통찰력을 지닌
매우 뛰어난 신학자임은 분명합니다.
당시 그 대학의 학장은 학생들에게
"박사님은 매우 피곤하셔서 학생들의 질문을 다 받을 수가 없으니 내가 대신하여
딱 한 가지만 물어 보겠습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단도직입적으로 던졌습니다.
"박사님, 바르트 신학의 요점을 한 마디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이 물음은 수만 페이지의 복잡한 내용이 담긴 신학책들을 저술한
바르트에게 결코 간단한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학생들은 20세기 최고의 신학자가
들려주는 신학의 핵심을 듣기 위해 바짝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때 바르트는 조용히 눈을 감고 잠시 생각하더니, 미소를 지으며 학생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배우고 아는 모든 신학, 아니 성경의 교훈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Jesus Loves me this
I know, For the Bible tells me so."
바로 그것은 우리말 찬송가 <예수 사랑하심은>이었습니다.
그는 주일학교에서
배운 이 찬송가를 어린아이처럼 조용히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있네
그렇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신학자라도 크게 성공한
목회자라도 그 귀착은 성경입니다. 성경을 통독하고 그 말씀을 외워야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하면 더욱 좋고요. (언)
그는 영국의 왕은 이혼녀와 결혼할 수 없다는 법 앞에, 왕위를 미련 없이
던져 버리고 사랑하는 여인과의 결혼을 선택함으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그 사랑에 감동한 심슨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힘들 때마다 남편 에드워드를 생각합니다. 날 사랑하기 위해
대영제국의 왕관을 미련 없이 벗어 던진 사람, 나를 선택하기 위하여 대영제국이라는 찬란한 명예와
권세와 부와 인기를 포기한 사람, 세상에 그 누가 한 여인을 얻기 위해 그 많은 희생을 치를 수 있단
말인가... 날 선택하기
위하여 그런 엄청난 희생을 감내한 남편 에드워드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어떤 경우에도 불평을 토할 수
없다. 나 같이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은 자가 그 누구란 말인가.”
그러나 그보다 상상할 수 없이 위대한 사랑을 받은 자는 바로 하나님께
사랑을 받은 제 자신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그를 구주로 고백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 이 보다 더 큰 사랑을 받은 자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났던 회심의 그 시간과 장소가 귀하고 귀한
것입니다.
나는 아직 성지 순례를 가 본일이 없습니다. 만약 가게 된다면 신앙의
선배들이 회심하게 된 장소를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성 프란시스도 생전에 서방 수도원의 창시자였던 베네딕토(Beneditto,
480-543)가 은혜를 경험한, 로마 근교 수비아코(Subiaco) 동굴이라던가...
성 프란시스가 은혜를 받은 아시시(Assisi)에는
8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계에서 몰려드는 순례객들로 넘쳐나고
있다니 이곳도 한번 쯤 가 보고 싶습니다.
특히 위대한 신앙의 선배 어거스틴(Augustine)이 회심한 장소는
더욱 가보고 싶습니다.
하버드대 철학교수인 화이트헤드(Whitedhead)는 “현대의 모든
철학은 플라톤의 주석이고, 현대의 모든 신학은 어거스틴의 주석”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그의 전기에는 자신이 회심한 장소를 ‘밀라노의 정원’이라고만 했지, 그
자리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습니다만 카싸고(Cassago)라는 곳이 그곳이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다녀 온 분의 이야기를 함께 나눠보겠습니다. 왼쪽으로 아담한 성당이 있고
그 앞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광장(Piazza)이 있습니다. 건너편에는 굵은 쇠창살에 카싸고브리안자
시청(Commune di Cassago Brianza) 간판이 걸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간판
아래에는 왼쪽을 가리키는 화살표와 함께, 갈색으로 ‘어거스틴의 공원’(Parco S. Agostino)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성당의 오른편이 바로 어거스틴이 1천 6백 년 전에 회심한 장소라는
표시였습니다. 그곳에는 로마 시대의 유적들의 파편이 여러 곳에 펼쳐져 있고, 담벼락에는 어거스틴에
대한 세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정원은 평평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경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오랫동안 마니교에 심취했는데, 마니교는 이원론적 세계관에
근거한 ‘엄격한 금욕주의’를 지향했습니다. 영혼이 육체의 속박에서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고기나 술을
멀리하고 식사를 절제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어거스틴이 밀란으로 오게 된 것은 이교 세력의 대표자 원로원의
시마쿠스에게서 지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시마쿠스는 어거스틴이 기독교와 대항하기를바랐는데, 오히려 어거스틴은
거기서 영적 거성 암브로시우스를 만나고 말았습니다.
어거스틴은 극심한 영적 갈등 중에 있었기에 밀란의
시(市)
대변인 직을 사임하고 친구의 별장으로 휴가를 떠났습니다. 거기서도 영적 갈등으로 인해 전전긍긍하고
있던 중에, 마침 담 너머에서 아이들의 동요가 들려 왔습니다.
“손으로 들고
읽어 봐라”(Tolle lege)라는 노랫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는 그 노랫말을 통해
어거스틴의 마음을 사정없이 흔들어 놓으셨고, 어거스틴이 견딜 수 없는 심정으로 성경을 들고 폈더니
로마서의 말씀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롬 13:13). 이 말씀을 통해 어거스틴은
엎드러지고 말았습니다.
어거스틴의 심령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던, 어린아이들의 라틴어 동요
노랫말. 성령께서 그 동요의 가사를 통해 어거스틴의 심령을 강타하셨던 장소. 성령의 만져 주심 때문에
강퍅했던 어거스틴의 마음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렸던 장소.
이제까지 마니교에서 영적 혼돈을 겪었고 갈 바를 몰라 방황했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그의 눈에서는
통회(痛悔)의 눈물이 쉴 사이 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이제까지의 영적 혼돈과 번민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진리요 구주 되심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어머니 모니카 여사는
기쁨과 감사로 충만할 수 있었습니다. 오로지 아들 어거스틴의 변화를 위해 30여 년 동안 쉬지 않고
기도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기도하는 동안 세상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온통 회색 빛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간절한 기도를 응답하여 주셨음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녀가 경험한 희열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녀는 아들을 밀란으로 데려와 암브로시우스(Ambrosius,
340-397)에게 세례를 받도록 주선했습니다.
암브로시우스가 누굽니까? 당시 데살로카 주민이 로마의 수비대장을 죽인
사건에 때문에, 황제 데오도시우스(Deodosius, 347-395)가 진노하여 7천 명의 주민을
죽였는데, 암브로시우스는 황제의 그런 잔인한 행동을 엄히 징계했습니다. 부활주일부터 성탄절에
이르기까지 성찬을 금하고 교회 출입을 불허하자, 황제는 왕관을 벗고 베옷을 입고 눈물로 회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성탄절에 이르러서야 징계를 철회할 정도로 암브로시우스는 대단한 지도자였습니다.
(이 사건은 교황이 황제보다 우위라는 사상의 단초가 됨).
오늘 이 세대에 이런 지도자를 찾아 볼
수 있을까?
당시 어거스틴이 가장 존경하던 주교요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했던
암브로시우스에게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요 영광이었습니다. 마니교에 깊이 빠져
혼돈 중에 있었고, 마니교의 교리에 반하여 정욕에 빠져 동거생활로 아이까지 낳은 어거스틴이 드디어
하나님의 은혜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어거스틴은 새로운 결단을 했는데, 그것은 동거해
온 아내와의 결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적으로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아내가
슬피 울며 헤어지기를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워낙 어거스틴의 뜻이 강경함을 알고, 그 여인은
다시는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않겠다면서 슬퍼하며 그의 곁을 떠났습니다.
어거스틴은 그 후 고향으로 가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로마의 오스티아
항구로 왔습니다. 그런데 마침 로마는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출항을 금지하던 상황이었습니다. 기약 없이
배편을 기다리던 중, 어머니는 말라리아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팔 일 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당시
모니카는 56세요 어거스틴은 33세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임무를 마친 어머니를 불러 가신
것이었습니다. 모니카는 아들의 회심을 보고 “나는 이제 할 일을 다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어거스틴은 로마에서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고
고향 튀니지로 돌아가 수도원을 세웠고, 또한 히포의
감독으로 성도를 돌보며 평생을 학문 연구에 전력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고백록을 썼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치부를 공개하는 내용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나님과 세상 앞에
선언한 입니다.
그의 깊은 학문은 사도 바울의 은혜에 기초하게 되었고, 그를 통해 개혁자
마틴 루터나 칼빈 그리고 존 웨슬리가 큰 영향을 받게
됩니다. 한 사람이 치열하게 은혜를 경험하고 거듭나게
될 때 그로 인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는 평범한 삶이 아니라 영적으로 깊은 혼란과 번민의 오랜 과정을
헤매다가 자신을 찾아 오신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바울의 은혜 사상에
깊이 파고들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와 유사한 영적 번민의 길을 걸었던 개혁자 마틴 루터와 칼빈, 웨슬리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나는 엎드려 기도합니다..
어거스틴이 회심했던 밀란의 정원에 가보고 싶습니다고.....
그랬더니
모세에게 광야에서 들려주셨던 음성...
"네 있는 곳이 거룩한 곳이니 발의 신을 벗으라"(출 3:5)고
하십니다.(언)
네바다 주의
보물(Great Basin National
Park)
나무도 별로 없고
볼만한 것도 없는
고독하고 광활한 사막 속에
나무가 무성하게 있으며
해발 3,982m에 달하는
Wheeler Peak이
주변의 사막지대에서 급격히 솟아올라
북쪽에서 남쪽으로 사슬을 이루듯
봉우리가 이어져 있는
1986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스네이크 산맥의 Great Basin
National Park.
무엇이든 넘치고 흔하면 천해 보이고
흔치 않은 곳에 있으면 한결 돋보이듯
우리가 사는 캘리포니아에는
국립공원이 무려 8개나 있는데 비해
이웃 동네인 네바다 주에는
유일하게도 이곳 Great Basin
국립공원만이
몇 대째 내려오는 외아들만큼이나
금이야 옥이야 할 정도로
네바다 주에 하나밖에 없는 아주 귀한
국립공원이다.
하기야 국립공원이 하나도 없는 주가
허다하지만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
가장 쓸모가 없는 땅만을 가진 주로서
어디를 가던 볼거리도 없고
사막 인지라 변변히 내보일만한 곳도 없는
주가
바로 네바다 주다.
그래서 라스베가스나 리오처럼 도박으로
주 정부 살림살이를 하고 있는 형편인데
이런 곳에 13,000피트가 넘는 높은 산과
Lime Stone 동굴이 있다는 것은
여간 보배스러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항상 기온이 높아
가물고 메말라있는 열대의 사막 한 복판에
우뚝 솟은 Wheeler Peak에는
주 전체 어디를 가나 여간 해서 볼 수 없는
만년설이 있으며
조금 아쉽다 하는 것이라면
Boundary Peak 보다는 75피트가
낮아
Nevada 주의 최고봉 자리를 갖지
못했다는 것인데
어디 이 세상에 구색을 다 갖추기가 그리
쉬울 수가 있나,
Great Basin 국립공원 산속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랜 수명을 갖고 있다는
소나무 종류의 부리스톨 콘이 자생하고 있으며
등산 낚시, 캠핑등, 레저에도 큰 한 몫을
하고 있다.
Great Basin 국립공원은 원래
바다였는데
6억 년 전에 지각 변동으로 평지가 치솟아
이런 높은 산이 생기고
Lehman Caves라는 종유석 동굴까지
생겼는데
이 동굴 속에 들어가 보면
이곳이 바다였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간혹 조개껍질을 볼 수 있으며
지금도 동굴 속에는 물이 스며들어 아래로
흐르면서
종유석과 석순을 왕성하게 키우고 있는
중이다.
2015년 6월 12일
다녀온
네바다 주에 하나밖에 없는
아주 귀한 국립공원
네바다 주의 보물
Great Basin National
Park
사진입니다.
서울
양천구 목동에 소재한
도토리교회(담임목사 김의현)가 장로,
권사, 안수집사 임직식을 가지면서
한국 교회의 관행을 깬 7무(無)
임직식을 진행해 신선한 도전을 주고
있다.
이름도
신선한 도토리교회는 28일
주일예배에서 임직식을 통해 유화선
장로를 비롯해 권성준 박상균 박철형
윤상훈 채수웅 안수집사, 박미영
조현옥 권사 등 8명의 직분자를
세웠다.
이날
임직식은 외부 인사나 축하객이 없이
소속 노회인 서서울노회 노회장 이명철
목사(섬기는교회)만 참석해 임직식을
열었다. 도토리교회가 임직식을 하면서
기존 교회들이 해온 관행을 하지 않은
것은 ‘설교와 순서를 진행했다.
도토리교회 임직식은 '임직 헌금이
없다'
‘축하를
위한 화환이 없다.’,
‘축하를
위한 돈 봉투가 없다.’,
‘꽃다발이 없다.’(교회에서
일률적으로 준비),
‘임직패가 없다.’(임직 증서로
대신),
‘장로가운이 없다.’,
‘한복을
입지 않는다.’(임직하는 분들은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어 정장을 입음)
등 일곱 가지가 없다.
한마디로
한국 교회의 관행을 깬 파격적인
임직식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도토리교회는 교인들이 많이 참석하도록
하기 위해 토요일이나 주일 오후예배
대신 아예 주일오전예배에서 임직식을
진행한 것도 여타 교회들과 차별화된
점이다.
김의현
담임목사의 사회로 주일예배 겸
임직식으로 드린 이날 예배는 조설아
집사의 대표기도와 만나&러브하우스의
특송 ('우리를 사용하소서')에 이어
서서울노회 노회장 이명철 목사가
사도행전 13장1 절~3절을 본문으로
"따로 세운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이
목사는 설교에서 "어느 공동체이든
20퍼센트의 핵심 인사가 그 공동체를
이끌어간다는 파레트법칙이 있다.
교회도 예외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이
목사는 이어 "그러나 교회는 세상과
다른 법칙에 의해 움직여진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명예를 높이고,
군림하려고 한다."며 "그러나
하나님이 세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과성경을 잘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목사는 임직자들에게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의 모습으로 맡은 일을 잘
감당하기를 바란다."고 권면하면서
섬김을 강조했다. 또한 "경건의
훈련을 끊임 없이 하여 성숙함을
나타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삶의 기초로 두어야 한다."며
"오직 하나님의 다스림과 하나님의
말씀의 흥왕하게 해야 한다."고
권면했다.
김의현
담임목사는 “임직이라는 말은 ‘직무를
맡게 되다.’라는 뜻”이라며
“장로교회에서 목사, 장로,
안수집사, 권사를 항존직이라고
부른다. 항존직이란 항상 존재하는
직분이라는 뜻이기에 종신과는 다른
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맡겨진 직분에 대한 항존을 뜻하는
것이지 직분을 맡은 그 사람의 종신을
뜻하지는 않는다. 임직 절차를 통해
얻게 되는 직분은 결코 기득권이거나
서열이 아니다.”고 강조하고 “오히려
직분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사람을 세우는 책임이 따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기득권이나 서열이 아닌 더 많은
섬김의 자리이기 때문에 임직을 하면서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의
돈을 내는 것은 옳지 못하며, 자칫
매관매직으로 비쳐질 수 있는 점을
경계한 것이다.
개혁주의신학을 견지하고 있는
도토리교회는
'열매 맺는 도토리교회'를
비전 아래 ‘생명을 살리는 교회’ 를
지향하고 있다.
도토리교회는 “도토리를 쪄 먹으면
흉년에도 굶주리지 않는다고 한다.
도토리는 상수리나무 열매로써 다른
농작물이 흉작일 때는 풍작이 되고,
풍작일 때는 흉작이 되는 특성이
있다.”며 “도토리는 이 땅의 모든
이에게 하늘이 내려주신 생명의 양식인
것”이라고 소개했다.
도토리교회는 또
‘정화시키는 교회’를
지향한다. “도토리는 곡식과 과실의
좋은 점을 동시에 갖춘 열매로써 몸
안의 나쁜 영향을 미치는 중금속을
탁월하게 해독한다.”며 “도토리교회는
하나님의 선한 영향력으로 마음의
청결함을 회복하고 오염된 세상을
정화시키는 교회”라고 밝혔다.
도토리교회는
‘연약함을 자랑하는 교회’를
꿈꾼다. “‘도토리 키 재기’ 라는
말을 아시지요?”라며 “사람의
기준으로는 잘나고 못난 사람이 있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모두 도토리 같은
연약한 존재에 불과하다. 연약함을
고백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머무는
것을 경험한다.”고 그 의미를
설명했다.
이와
함께
‘자라나는 교회’를
지향하고 있다. 도토리교회는 “작은
도토리가 커다란 상수리나무가 된다.
상수리나무 아래에서는 무덤에서
요람까지 책임지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쉼을 경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도토리교회는 이와 함께
‘징검다리가 되는 도토리 교회’를
모토로 하고 있다. “하나님은
도토리교회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마땅히 있어야 할 삶의
자리(Position)를 떠나지 않는
충성을 원하신다.“며 ”만약 징검다리
하나가 이가 빠지듯 빠지면 냇가를
건너야 할 사람들은 불편하다. 다리와
다리 사이의 간격이 넓어지기 때문에
물에 젖거나 고생할 수도 있다.
다리의 다리 됨은 물에 젖지 않고
사람을 건너게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도토리교회는 또 사람들이 안전하게
마음 놓고 밟으면 지나갈 수 있는
발판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것을
‘섬김’이라고 말한다며 “세상과
사람들이 도토리교회를 밟고 안심하고
건널 수 있어야 한다.
건너게
했던 다리 보다는
도토리교회 징검다리를
건넌 다음에 만끽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남아야 한다.”고 말했다.
도토리교회는 마지막으로 “돌과
돌이 함께 모였을 때 하나의 다리가
된다.”며 “혼자
슈퍼스타 되거나 멀티플레이어가 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같은 길을 가는 영적 가족들이 함께
모여 손에 손을 잡고 다리를 만드는
공동체의 원리”라며 “우리 각각의
생긴 모양이나 크기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다 다르다. 밟고 지나갈 때
그 위치에 그렇게 있기만 하면 된다.
못생기고 작은 돌이어도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도토리교회는 “그렇게 모여 하나의
건강하고 튼튼한 다리가 될 때
사람들이 도토리교회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것”라고 말했다.
도토리교회는 2006년 1월 6명이
모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지역사회를 섬기고, 민족 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며,
윤경호 선교사(캐나다 벧엘), 주승규
선교사(일본 후쿠오카) 등 여러 명의
선교사들을 돕고 있다.
우리는 지혜로운인간인 호모사피엔스로 태어나
호모 오피스쿠스가 되어 호모 이코노미쿠스로 변해간다.
체스판의 킹이나,
퀸,
비숍이나 나이트,
폰처럼 어떤 일정한 규칙에 따라 정해진 사회적인 역할이 주어지면 사회라는 전쟁터에서 피터지게 싸워
이겨야만 한다.
이기는 쪽이 있으면 지는 쪽이 있어야 하는 것이 게임의 규칙이다.
월가의 빌딩에서 소지품 정리박스를 들고 회전문을 나오는 한
실직자의 모습이 노땅 브리츠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사십
대 초반의 린 메인슨은 광고회사의 공동경영자다.
그녀는 유방암으로 죽어간다.
행크는 첫실패작에 '모든 상사는 폭군이다'라는 이미지로 그녀를
등장시킨다.
워커홀릭 알파걸 린은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수술전날 그 하룻밤을 어떻게 보내야할지만 모른다. 마틴은 하필 그녀가 가장 힘겨운 시기에
충격적인 고백을 해야했을까? 남자들은 때론 배려라는게 어떤건지 모르는 존재다.
빈 주차장에서 교사당한 시체로 발견된 재닌의 딸 이야기는 자칫 남의 일로 비춰질 수 있는 일을 소설속에 끼워넣어서 그들의 문제로
다가선다.
딸을 잃은 그녀는 맥도날드의 플레이플레이스 안에 앉아 있는 고요하고 슬픈 존재로 변해버린다.
그녀는 볼 속에 가라앉아 있었다.
마치 색색의
볼이 그녀가 흘려놓은 보석 색깔의 눈물 같았다 (P162)
브리츠는 베니에게 인디언들의 고대유물 토템상을 상속하고 그것은 모두에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의사인 아내가 항상 옳은 것에
반발심이 나는 칼의 열등의식은 약물중독으로 이어진다.
어렸을적 실수로 인해 집단적인 문화를 좋아하지 않는 조의 모습은 불신은 아닌 그저 불편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아내에게 엠버와의 사이가 드러날 것이 겁나서 낙태를 생각하는 래리에게서는 우유부단함과 도덕성이 결여된 모습을 보여준다.
엠버의 모성은
위대하지만 엠버가 해고될때는 뱃속의 아이까지 62층에서 추락사 시켜버리는 기분이었다. 정리해고 당한후 어릿광대의 모습으로 회사에 침범한 톰은
성격장애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구조조정이 닥치자 이들은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친다.해고된 이후에 갚아야할 주택융자금,자동차할부금,카드대금은 현실적인 두려움으로
닥쳐온다.그들은 모두 집단적 권태를 느끼고 있다.오로지 해고되지 않기 위해서 발버둥 치고 있다.영혼이 궁핍해지고 상대에 대한 공감이나 감정 따윈
죽어버린 무감각한 상태로 살아간다.
커피는 극약의 맛으로 느껴지고,
늘 변함없는 불빛에서 치사량의 화상을 입을 것 같은
날,
아주 사소한 문제들도 정리해고의 사유로
받아들인다.
회의실의 분위기는 장례식장으로 표현되고 그들은 모두 우울증에 시달렸다.
교수대에 오르는 죄수의 심정이었다.
신자유주의라는 경제체제가 몰고온 화려한 빚잔치가 끝나자 그들은 황량한 허허벌판에서 내던져진 끊 떨어진 풍선과 같은 존재가 된다.
아무런
목적도 없고 방향도 모르고 그저 바람에게 몸을 내 맡길 수 없는 언제 터져벌릴지 모르는,
어디로 추락할지 모르는 가벼운 존재가 되어버린다.
현재 미국의 모습은
로마제국이 망하기 전과 같은 모습이다.
화려한 빚잔치의 끝에 달러는 기축통화로써의 위기에 처해있고,
미국인들은 버블 속에서
화려한 파티를 벌였다.
거품이 걷히자 그들은 어디로 갈지 몰라 우왕좌왕 하게 된다.
경지침체가 시작되자 그들과 무관할 줄 알았던 일들이 그들에게
현실이 되어 나비효과의 위력을 발휘한다.
저자는 광고계의 그들을
청부살인업자라고 부르고 있다.
30초의 예술이라고 불리
우는 광고는 세계각지로 퍼져나가 소비를 부추기는 언어의 마술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만든 30초짜리 언어는 세계인들의 대뇌피질에 세뇌를 시키고 있다.
광고계의 이들은 공급과잉을 불러온 경제의 주체에 속한다.
죠슈아 페리스의 첫 데뷔 소설로 문학성과 대중성의 균형을 이룬 작품으로 '21세기의 카프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저자 특유의 독특한
상황표현 방식이 매력적인 소설이다.
사회현상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새롭다.
저자는 그저 광고회사의 정리해고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경기 침체기에
있는 세계의 모든 직장인들의 아픔을 말하고 있다.
문명의 발달이 가져온 현대인들의 극단적인
위기를 말해준다.
실제 우리는 이런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눈 건강에 좋은 식품이 화제다. 영국의 눈 전문가로
알려진 롭 허건 교수는 눈에 좋은 음식으로 녹황색 채소와 밝은 채소, 오메가-3
지방산, 비타민 A를 꼽았다.
녹황색 채소는 눈 망막의 피해를 막는 루테인 성분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케일, 브로콜리, 시금치 등이 이에 속한다. 또 밝은 색
채소와 과일은 루테인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것으로 여겨지는 제아잔틴이 많은
음식으로, 옥수수, 오렌지 같은 밝은 색깔의 과일과 채소가 이에 해당한다.
오메가 3 지방산이 풍부한 연어, 참치, 고등어는
노인성 황반변성 같은 눈 질병을 막아 주고, 병의 진행 속도를 늦춘다.
마지막으로 비타민A가 풍부한 당근과 달걀은 눈에 좋은 건강을 제공한다. 호건
박사는 “아무 생각 없이 먹는 음식이 시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비타민A, C, E, 루테인 등이 많은 균형 잡힌 음식을 먹으면 실명의 원인이
되는 질병을 줄이고 진행을 늦출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뽑은 건강에 좋은
식품으로 마늘, 시금치, 견과류, 적포도주와 함께 브로콜리가 뽑혔다.
브로콜리는 뽀빠이의 영양 간식인 시금치보다 칼슘이
무려 네 배나 많이 들어있다.
또한 브로콜리는 노화를 막고 피부에 생기를 불어넣는
비타민 E와 만병의 근원인 변비에 좋은 식물성 섬유도 풍부해 여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약이나 다름없다.
또 오메가 3 지방산이 풍부한 연어, 참치,
고등어는 노인성 황반변성 같은 눈 질병을 막아 주고, 병의 진행 속도를 늦춘다.
마지막으로 비타민A가 풍부한 당근과 달걀은 눈에 좋은 건강을 제공한다. 호건
박사는 “아무 생각 없이 먹는 음식이 시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비타민A, C, E, 루테인 등이 많은 균형 잡힌 음식을 먹으면 실명의 원인이
되는 질병을 줄이고 진행을 늦출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