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8,  2016


 

 

 

 



 

 

 

 

 

 

 

 

 

 

이 찬송은 많은 사람들이 ‘복음성가’로 알고 있지만, 실은 인도의 옛날 찬송가다.

 

이 찬송의 작사자는 인도의 성자 선다싱(Sundar Singh, 1889-1929)인데 전해 오면서 수정되었다. 곡조힌두교 전통곡조다. 옛날 곡조라 아주 단순하다.

 

선다싱은 1889년에 인도의 푼잡 지방의 람처에서 힌두교 귀족 가정에서 출생했다. 선다싱의 고향에는 학교가 없고 영국 선교사가 세운 사립학교가 하나있었다. 국가에서 세운 초등학교에 보내면 날마다 20리 이상 먼 길을 걸어 다녀야 하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미션스쿨에 보내게 되었다. 선다싱은 성경공부 시간에 선생님이 주는 성경을 찢어버리도 하였다.

 

선다싱이 14살 때 어머니가 돌아갔다. 예의 바르던 착한 소년 선다싱은 갑자기 난폭한 소년으로 돌변하여 또래들과 싸움을 하기일쑤고 선생님들을 괴롭혔다. 그럴수록 선다싱의 마음에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에 대한 궁금증이 강렬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선다싱은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마음에 강하게 부딪혀 왔으며 마침내 그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었다.

 

“선교사들이 전한 기독교의 하나님이시여, 당신이 참 된 신이라면 나에게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소서….”

 

간절히 기도했으나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는 비장한 각오를 하였다.

 

‘오늘 밤을 새워 계속 기도해보리라. 그리고 응답이 없으면 내일 기차에 뛰어들어 자결하고 말리라.’

 

그는 목욕까지 하고 기도를 했다.

 

“오 하나님, 만약 당신이 살아계신 참된 신이라면 제가 기차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기 전에 그 증거를 보여 주소서.”

 

새벽이 되어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그의 눈에는 절망의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젠 포기하고 철도에 자살을 하리라…. 결심하는데 갑자기 밝은 빛이 방안을 대낮처럼 환하게 비추고, 그 빛 가운데 누군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님께서 인도인의 통용어인 힌두스탄 말로써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주님의 말씀은 계속되었다.

 

“선다싱아, 똑똑히 보아라. 십자가에 못박힌 나의 두 손과 창에 찔린 옆구리를 보라.”

 

선다싱은 ‘지금까지 살아계신 하나님을 부정하고 우상만 섬겨왔던 죄를 다 용서하여 주소서. 그리고 지금부터 저를 위하여 죽으신 주님만을 위하여 살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다.

 

I Have Decided To Follow Jesus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서지 않겠네

이세상 사람 날 몰라 줘도

이세상 사람 날 몰라줘도
이세상 사람 날 몰라 줘도

뒤돌아 서지 않겠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뒤돌아 서지 않겠네 

 

어떠한 시련이 와도
수많은 유혹 속에도
신실하신 주님 약속 나 붙들리라

세상이 이해 못하고
우리를 조롱하여도
신실하신 주님 약속만 붙들리라
결코 돌아서지 않으리...

 

선다싱은 아버지에게 주님을 만난 이야기를 했다. 종중회의(宗中會議)에서는 가문의 신앙을 크게 모독하는 행위를 결코 용서할 수가 없다고 죽음을 선언했다. 어머니는 울면서 도시락을 싸고 아버지는 거기 독약을 넣었다.

 

집을 떠난 선다싱은 도시락을 들고 정처 없이 가다가 배가 고파 도시락을 먹고 쓰러져 의식을 잃고 죽어갔다. 지나가던 선교사에 의해서 병원 치료를 받고 목숨을 건졌다. 그는 미션스쿨에서 열심히 공부하였다.

 

16세 때 모슬렘 국가인 아프가니스탄을 향하여 최초의 선교여행을 떠났다.

 

이때부터 그는 도복과 터번 차림에 신발을 신지 않은 맨발의 차림으로 전도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주님께서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참혹하게 죽기까지 하셨는데 맨발의 고통 쯤이야 하는 생각이 그로 하여금 맨발의 전도자로 나서게 한 것이다. 발이 가시에 찔리거나 상하여 언제나 피가 흘러 사람들은 ‘발에서 피가 나는 사도’ 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선다싱은 19세 때에(1908년) 혼자서 티벳선교에 나섰다. 그는 그때부터 1929년까지 20여년 동안 혹독한 추위와 눈과 맹수와 박해를 극복하면서 티벳선교에 주력하였다. 몇 번이나 죽음직전까지 갔을 때 천사가 나타나 그를 구해주었다.

 

1909년 그의 나이 20살이 되었을 때에 선다싱은 라호아에 있는 사도 요한 신학대학교에 입학하였다. 입학한지 3 년 만에 졸업을 하여 성직자의 자격을 수여받게 되었다.

 

"맨발의 성자 썬다 싱"

 

선다싱은 기도와 명상의 시간을 보낸 후에 다시 티벳선교를 떠나게 되었다.

친구들이 ‘언제 돌아올 텐가’ 물을 때면 언제나 선다싱의 대답은 “살아서 돌아오리라는 기대를 하지 않고 떠나네”였다.

 

티벳선교 여행은 늘 폭설이나 강풍, 맹수들의 공격, 티벳 사람들의 배척 등 생명을 노리는 많은 위험들이 있었다. 그는 늘 맨발로 다녔다.

 

어느 날은 티벳 사람과 동행하게 되었다. 한 참 산길을 걷고 있을 때 눈 더미 속에서 어떤 물체가 움직이고 있었다. 죽어가는 사람이었다. 선다싱은 동행자에게 번갈아 가면서 업고 가자고 했으나 동행자는 그러면 다 죽을 수밖에 없다며 혼자서 길을 가버렸다.

 

선다싱은 혼자서 그 사람을 업고 비틀거리며 산길을 등반하였는데, 등에 업힌 사람이 선다싱의 체온으로 깨어나 걸을 수가 있게 되었다. 선다싱의 사랑이 기적을 일으킨 것이었다.

 

한참 가다 보니 저만 살겠다며 먼저 간 티벳 사람이 얼어 죽어 있었다. 선다싱은 「자기를 위하여 살고자 하는 자는 죽게 된다」는 주님의 말씀을 확신하게 되었다.

 

선다싱의 거듭된 선교에 티벳 지역 사람들도 복음의 열매를 서서히 맺게 되었다. 선다싱의 아버지인 셔싱도 예수를 영접하고 크리스천이 되었다.

그 후에 선다싱은 영국과 미국으로부터 전도집회 초청을 받아서 복음을 전했다. 33세에는 예루살렘 성지 순례도 하게 되었다.

1923년에 아버지 셔싱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 후 계속 전도를 하며 다니던 선다싱은 1929년 그의 나이 40이었을 때에 티벳 선교를 가다가 실종되었다. 그의 행방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썬다싱은 현대 기독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어떠한 시련이 와도
수많은 유혹 속에도
신실하신 주님 약속 나 붙들리라
...

 

이렇게 찬송할 수 있는가 라고.....(언)  
 

 

 

 

 

 

 

 

 

 

 

 

 

I Have Decided To Follow Jesus

song by Marissa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서지 않겠네

이세상 사람 날 몰라 줘도

이세상 사람 날 몰라줘도
이세상 사람 날 몰라 줘도

뒤돌아 서지 않겠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뒤돌아 서지 않겠네 

 

어떠한 시련이 와도
수많은 유혹 속에도
신실하신 주님 약속 나 붙들리라

세상이 이해 못하고
우리를 조롱하여도
신실하신 주님 약속만 붙들리라

결코 돌아서지 않으리... 

 

 

 

 

 

 

 
 
 
 

 
 

 

 

 

 

 

 

 

 

 

 

 

어느 날

참 예쁘고 맑은 손 하나

꿈 속에서 보았네

 

삶의 때

묻었다 지워진 터

주름처럼 남고

아무 꾸밈도 숨김도 없이

그래서 더욱

깨끗하고 맑은 손 하나

우연히 보았네

 

왼 손톱은

가지런히 정리하고

오른 손 손톱은

깎다가 바빠서 그냥 두고...

그래서 오히려 더 정겨운 손

 

아무것도 바르지 않고

세월이 지나간 흔적만이

거울처럼

내 앞에 우뚝 다가서는

참 깨끗하고 맑은 손 하나

꿈에서 보았네

 

화려하고 음흉한 손 많은데

많은 것보다는 순수한 것

찬란한 것보다는 깨끗한 것

그런 것을 찾아 움직이는

 

참 예쁘고 깨끗한 손 하나

그리워지네

사랑하고 싶네 

 

 

 

 

 

 

 

 

 
 

 

 

 

 

 

 

 

 

 

 

 

 

 

 

 

 

 

 

 

 

 

 

 

 

 

 

 

 

 

 

 

 

 

 

 

 

 

 

 

 

 


 

 

 

 



 

극작가 손톤 와일더의 <우리 읍내> 라는 연극이 있습니다.

이미 떠난 이승에 미련을 못 버린 에밀리는 살아생전 지극히 평범한 어느 하루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 소원이 이뤄져 잠깐 이승으로 돌아간 에밀리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들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안타까움을 독백으로 표현합니다.
 

“나는 살아있을 때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전혀 깨닫지 못했어. 아무도 그런 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지...

이제 작별인사를 할 게. 안녕,

세상아... 안녕,

길거리의 나무들.. 안녕,

아빠 엄마 안녕, 재깍거리는 시계...

가을 정원의 해바라기. 안녕,

맛있는 샌드위치와 커피,

그리고 새로 다린 드레스와 뜨거운 목욕...

잠을 자고 깨어나는 일.

사람들이 이렇게 멋진 것들을 깨닫지 못하다니...”
 

지극히 평범한 일상인데 죽어본 사람은 그 평범이 평범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수년간 말기 암 환자를 진료한 한 일본인 의사가 천명이 넘는 암 말기 환자들의 죽음을 접하며 그들이 남긴 이야기를 정리하여 책으로 출간하였습니다.
 

‘죽을 때 후회하는 25가지’였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1. 자신의 몸을 소중히 하지 않았던 것
2. 유산을 어떻게 할까 결정하지 않았던 것
3. 꿈을 실현할 수 없었던 것
4. 맛있는 것을 먹지 않았던 것
5. 마음에 남는 연애를 하지 않았던 것
6. 결혼을 하지 않았던 것
7. 아이를 낳아 기르지 않았던 것
8. 악행에 손 댄 일
9. 감정에 좌지우지돼 일생을 보내 버린 것
10. 자신을 제일이라고 믿고 살아 온 것
11. 생애 마지막에 살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던 것
12.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마워요'라고 말하지 않았던 것
13. 가고 싶은 장소를 여행하지 않았던 것
14. 고향에 찾아가지 않았던 것
15. 취미에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던 것
16.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지 않았던 것
17.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았던 것
18. 사람에게 불친절하게 대했던 것
19. 아이를 결혼시키지 않았던 것
20. 죽음을 불행하다고 생각한 것
21. 남겨진 시간을 소중히 보내지 않았던 것
22. 자신이 산 증거를 남기지 않았던 것
23. 종교를 몰랐던 것
24. 자신의 장례식을 준비하지 않았던 것
25. 담배를 끊지 않았던 것
 

대부분 다 '껄' '껄' 하는, 하지 못한 일에 대한 후회들입니다.
 

후회란 보통 두 가지입니다.
한 일에 대한 후회와 안 한 일에 대한 후회입니다.
그런데 이중에서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가 훨씬 크다는 것을 조금 전 사례에서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 일에 후회는 상대적으로 짧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한 일에 대한 것은 ‘경험’이라는 소중한 자원이 남습니다.
그러나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는 정말 후회막급(後悔莫及) 한 일로 계속 남습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선 해 보고 욕먹는 게 안해 보고 욕먹지 않는 것 보다 낫습니다.

 

후회의 내용도 대부분 가족과 연관된 내용들입니다.

오늘 해야 할일이 있다면 바로 시행하자...

내일은 나의 날이 아니다. 어제도 이미 지나갔다. 오늘만이 나의 날이다.
 

이 구호를 외치는 것이 카르페 디엠이라는 말입니다.
과거는 지나갔고 내일은 나의 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살았다면 이 사람은 마지막 순간에 웃을 수 있고 여유를 가질 수 있습니다. 미련을 갖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살아야 세상에 대한 미련 없이 멋진 모습으로 삶의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세상을 떠난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도 ...

“나이가 드니 마음 놓고 고무줄 바지를 입을 수 있는 것처럼 나 편한대로 헐렁하게 살 수 있어서 좋고 안하고 싶은 것 안할 수 있어서 좋다. 다시 젊어지고 싶지도 않다. 안하고 싶은 걸 안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좋은데 젊음과 바꾸겠는가.

다시 태어나고 싶지도 않다. 난 살아오면서 볼 꼴 못 볼 꼴 충분히 봤다. 한번 본 거 두 번 보고 싶지 않다. 한번이면 충분하다. 한 겹 두 겹 어떤 책임을 벗고 점점 가벼워지는 느낌을 음미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소설도 써지면 쓰겠지만 안 써져도 그만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님도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라는 얘기를 하면서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이렇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은 하루하루를 성실이 보냈고 지금 여기를 살았고 일상의 것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느꼈던 사람들만이 고백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오늘 누리고 있는 일상(日常)이 나에게 가장 소중한 행복의 자원임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일 년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입학시험에 떨어진 학생에게 물어 보십시오.   일 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짧은지 알게 될 것입니다.

 

한 달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미숙아를 낳은 산모에게 물어 보십시오.

한 달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힘든 시간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한주의 소중함 을 알고 싶으면, 주간잡지 편집장에게 물어 보십시오.

한주의 시간이 쉴새 없이 돌아간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루의 소중함 을 알고 싶으면, 아이가 다섯이나 딸린 일일노동자에게 물어 보십시오.

하루 24시간이 정말로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한 시간의 소중함 을 알고 싶으면, 약속 장소에서 애인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물어 보십시오.

한 시간이라는 시간이 정말로 길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일 분의 소중함 을 알고 싶으면, 기차를 놓친 사람에게 물어 보십시오.

일 분의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일 초의 소중함 을 알고 싶으면, 간신히 교통사고를 모면한 사람에게 물어보십시오.

일 초라는 그 짧은 시간이 운명을 가를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순간소중히 여기십시오.

시간은 아무도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어제는 이미 지나간 역사이며, 미래는 누구도 알 수없는 신비일 뿐입니다.

오늘이야 말로 당신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를(Present)’를 '선물(Present)' 이라고 부릅니다.

 

- 코카콜라 전 회장이었던 더글러스 테프트의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신년사 -

 

 

 

그렇습니다.

우리는 ‘현재를(Present)’를 '선물(Present)' 이라고 부릅니다.

 

스펜서 존슨의 '선물(Present)'이란 책에도 이와 비슷한 문구가 있는데

더글러스 테프트가 먼저 한 얘기인지 스펜서 존슨이 먼저 한 얘기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 하나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학생들에게 자주 외치면서 유명해진 라틴어 카르페 디엠 (carpe diem) 지금 살고 있는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 어제도 내일도 아닌 현재인 오늘을 충실히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계속 놓치면서 내일만 계획하고 있진 않으신가요?

아님 어제 일을 반성하느라 오늘을 놓치고 있진 않으신가요?

 

오늘 하루만큼이라도 오늘에 충실한 하루를 살아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카르페디엠 (carpe diem)

 

 

케르페 디엠이란 무슨 말일까요?

'카르페 디엠'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송시에서 나오는

'오늘을 잡아라'라는 의미의 라틴어.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를 좀 더 자세히.....

거기서 선생 키팅의 대사 유명한 말이 되었지요.

카르페디엠은 전통과 규율에 도전하는 청소년들의

자유정신을 상징하는 말로 쓰였습니다.

 

미래를 위해서 현재의 삶의 낭만과 즐거움을 포기해야만 하는

학생들에게 현재 살고 있는 이 순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일깨워주는 말입니다.

 

호라티우스의 시에서는 '시간이란 덧없는 것' 이라는 의미로

영화에서는 '평범한 삶을 살지 말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현재를 즐겨라'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에서도 카르페 디엠이라는

말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거기서는 일단 질문을 던지죠.

현재를 어떻게 즐기라는 말인가??

 

이 글귀는 아마도 행복이라는 말로 풀어보는게 맞을거 같아요.

우리는 지금 무엇 때문에 돈, 사랑, 공부, 여행 등을 하는 걸까요?

그건 바로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하지만 행복이라는 의미가 조금씩 변질되어 가는거 같아요.

무조건 성공을 해야지만 행복해진다?

아닙니다. 자신을 계속 다듬고 무슨일이든지 노력하고

인생을 즐길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을 즐길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는

자기에게 주어진 순간순간에 대해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인생을 즐기는 진정한 태도입니다.

 

카르페 디엠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현재를 즐겨라는 말은

과거의 잘못된 행동이나 생각을 현재에서는

하지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그 목표를 향해서 순간순간 발걸음을 옮길 수 있을 때

현재를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바로 카르페 디엠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요? 

 

 

 

 

 

 

Life is... (삶이란...)

 

 

Imagine life as a game in which you are juggling five balls in the air.

인생을 공중에서 5개의 공을 돌리는 것(저글링)이라고 상상해보자.

 

You name them: work, family, health, friends, and spirit and you're keeping all of them in the air.

너는 그들을 명명한다 : 일, 가족, 건강, 친구들, 그리고 영혼(자아)

그리고 너는 그것들을 공중에 계속 머물게 한다.

 

You will soon understand that work is a rubber ball. If you drop it, it will bounce back.

너는 곧 일이 고무공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가 그것을 떨어뜨리면, 그것은 다시 튀어 오른다.

 

But the other four balls - family, health, friends, and spirit are made of glass.

하지만 다른 4개의 공들 - 가족, 건강, 친구, 자아)는 유리로 만들어져 있다.

 

If you drop one of these, they will be irrevocably scuffed, marked, nicked, damaged, or even shattered. They will never be the same.

만약 당신이 이것들 중 하나를 떨어뜨리면, 그것들은 닳고, 상처입고, 긁히고, 깨지고, 흩어져 버린다. 그것들은 같아질 수 없다.

 

You must understand that and strive for balance in your life.

너는 그것을 이해하고 삶에서의 균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How?

어떻게?

 

Don't undermine your worth by comparing yourself with others. It is because we are different that each of us is special.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함으로써 당신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왜냐하면 우리는 각각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Don't set your goals by what other people deem important. Only you know what is best for you.

너의 목표를 다른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의해 정하지 마라. 자신에게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것에 두어라

 

Don't take for granted the things closest to your heart. Cling to them as your life, for without them, life is meaningless.

당신 마음에 가장 가까이 있는 것들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라. 당신의 삶처럼 그것들에 충실하라, 그것들이 없으면 삶은 무의미하다.

 

Don't let life slip through your fingers by living in the past or for the future.

By living your life one day at a time, you live all the days of your life.

과거나 미래에 집착해 당신의 삶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게 하지 말라.

당신의 삶이 하루에 한번인 것처럼, 삶으로써 인생의 모든 날들을 살게 되는 것이다.

 

Don't give up when you still have something to give.

Nothing is really over until the moment you stop trying.

아직 줄 수 있는 것이 남아 있다면 결코 포기하지 말라.

당신이 노력을 멈추지 않는 한 아무 것도 진정으로 끝난 것은 없다.

 

Don't be afraid to admit that you are less than perfect.

It is this fragile thread that binds us together.

당신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하기를 두려워 말라.

우리들을 구속하는 것이 바로 이 덧없는 두려움이다.

 

Don't be afraid to encounter risks.

It is by taking chances that we learn to be brave.

위험에 부딪히기를 두려워 말고, 용기를 배울 수 있는 기회로 삼으라.

 

Don't shut love out of your life by saying it's impossible to find.

The quickest way to receive love is to give;

the fastest way to lose love is to hold it too tightly;

and the best way to keep love is to give it wings.

찾을 수 없다고 말해서 당신의 인생에서 사랑의 문을 닫지 말라.

사랑을 얻는 가장 빠른 길은 주는 것이고,

사랑을 잃는 가장 빠른 길은 사랑을 너무 꽉쥐어 놓지 않는 것이며,

사랑을 유지하는 최선의 길은 그 사랑에 날개를 달아 주는 것이다.

 

Don't forget that a person's greatest emotional need is to feel appreciated.

사람이 가장 필요로 하는 감정은 다른 이들이 당신에게 고맙다고 느끼는 것이다.

 

Don't run through life so fast that you forget not only where you've been, but also where you are going.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쁘게 살진 말아라.

 

Don't use time or words carelessly. Neither can be retrieved.

시간이나 말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 둘다 다시는 주워 담을 수 없다.

Life is not a race, but a journey to be savored each step of the way.

인생은 경주가 아니라 그 길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음미하는 여행이다.

 

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a Mystery, and Today is a gift; that's why we call it - the Present.

어제는 역사이고, 내일은 신비이며, 오늘은 선물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현재(present)를 선물(present)이라고 말한다. 

 

 

 

 

 


 

 

 

 

 

 

Carpe Diem 이 라틴어로 "오늘을 즐겨라" 라는 의미라고 많이들 아실텐데요.

현재는 아포리즘(aphorism-삶의 교훈 등을 간결하게 표현한 글)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원래는 '퀸투스 호라티우스 플라쿠스' (영어명 Horace) 라는 장중한 이름을 가진 고대 로마의 시인의 작품에 나오는 시 구절....

 

본래 라틴어로 쓰여진 시를 영어로 옮긴 전문을 보면 이렇습니다.

 

 

 

 

Ask not, it is forbidden to know, what end the gods have granted to me or you, Leuconoe.

Don't try the Babylonian fortune-telling either.

How much better it is to endure whatever will be!

Whether Jupiter grants you many more winters or this final one which even now wears out the Tyrrhenian sea on the rocks placed opposite.

Be wise, strain the wine, and prune back your far-reaching hopes.

While we speak, envious time will have fled.

Carpe Diem, trusting as little as possible in the future.

 

신들이 나나 그대에게 어떤 운명을 주셨는지 알려고 하지 말게. 루코노에(사람 이름),

그것은 금지된 일이라네.

 

바빌로니아의 점치는 놀이도 하지 말게나.

그 어떤 무엇이 다가오더라도 참고 견뎌내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은가!

주피터 신께서 그대에게 더 많은 겨울을 보내게 해 주실는지, 아니면 지금 티레니아해 맞은 편의 바위를 닳아 없애고 있는 이 겨울이 마지막일는지...

현명해지게. 와인을 줄이고, 너무 큰 희망을 가지지 말게.

우리가 말하는 동안에도 우리를 시기하는 시간은 이미 달아나버렸을 테지.

오늘을 꽉 붙잡게나.. 미래에 믿음을 걸지 말고.

 

 

 

 

Leunonoe 라는 사람에게 조언을 하는 형식으로 쓰여진 이 시는 마지막 구절의 Carpe Diem 덕분에 Horace 의 시 중에서 후대에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이 되었습니다.

라틴어로 Carpe 는 '붙잡다' 라는 단어고, Diem 은 영어의 "Day" 와 같은 뜻이라는군요.

그러니 Carpe Diem 하면 '오늘을 붙잡아라' 는 의미입니다..

 

한국에서는 "오늘을 즐겨라" 라고 많이 해석되고 있지만, 전체적인 시의 내용과 라틴어 원문을 해석하면 '오늘의 삶에 충실해라' 라는 뜻에 더 가깝습니다..

제 생각엔 "오늘을 즐겨라" 와 "오늘에 충실해라" 는 꽤 다른 뉘앙스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어딘지 긴가민가한 한국어 번역이 나오게 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고대 라틴 문학이다보니, 당연히 한국어보다 영어로 먼저 번역이 되었고, 영어로 번역된 구절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다보니 약간 알쏭달쏭하게 됐달까요?

최초의 영어권 번역자들은 라틴어의 Carpe Diem 을 영어로 Seize the day 라고 번역했습니다.

Seize the day 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라' 란 뜻입니다.

그리고 영어의 Seize the day 를 그대로 한국어로 옮기면 "오늘을 즐겨라" 가 되는 것이죠.

그렇지만 앞서 말했듯이 전체적인 시의 맥락을 보면, '즐겨라' 보다는 '충실해라' 가 더 맞습니다.

 

"그 무엇이 다가와도 참고 견디고", "와인을 줄이고", "미래에 믿음을 걸지말고" 이런 표현들로 봐서는 '불확실한 미래에 희망을 걸지 말고, 현재를 충실히 살아내라' 라는 의미가 강한 것 같지 않습니까? 

 

 

 

 

 

 

 

 

 

 

 

 

 

 

 

 

 

 

 

 

 

미국 작가 엘윈 브룩스 화이트가 1952년 쓴 동화 '샬롯의 거미줄'(시공주니어)이 최근 국내에서 100쇄를 돌파했다. 1996년 출간 이래 판매 부수는 약 45만부. 이 책은 1985년 창비에서 ‘우정의 거미줄’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돼 국내에 소개되며 3만부 넘게 팔리기도 했다.

 

100쇄. 무려 100번이나 다시 인쇄했다는 말이다. 책마다 달라서 한번 찍을 때마다 몇 부라는 정확한 기준은 없지만 그래도 판매량에 따라 쇄를 거듭할수록 더 많은 부수를 만들어 내는 경우가 많으니 대단한 수치라고 말할 수 있겠다.

 

출판계 불황에도 불구하고 100쇄를 넘기는 어린이 책이 있다.

 

아동문학가 권정생의 ‘몽실언니’(창비)는(몽실언니, 30년 이상 사랑받는 비결은? )2012년 100쇄를 넘겼다. 1984년 초판 출간 이래 100만부 넘게 팔렸다.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사계절)(동화라고 아름답기만 하면 되겠어요?)은 2011년 국내 아동 서적 분야에서 처음으로 100만부 넘게 판매돼 밀리언셀러가 됐다. 2000년 처음 출간돼 양장·애니북 합쳐 100쇄를 넘었고 지금까지 165만부가량 팔렸다.

 

이 밖에 권정생의 ‘강아지똥’, 김중미의 ‘괭이부리말 아이들’, 원유순의 ‘까막눈 삼디기’, 황선미의 ‘나쁜어린이표’, 프란치스카 비어만의 ‘책 먹는 여우’ 등이 100쇄를 넘긴 대표적인 어린이 책으로 꼽힌다.

 

스테디셀러가 되는 어린이 책의 요건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부모가 아이에게 사 주는 책’이라는 어린이 책의 특성상 부모와 아이 모두를 만족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출판평론가 한미화씨는 “어린이 책이 오랫동안 읽히려면 부모의 마음을 움직이는 동시에 아이가 ‘아, 이거 내 얘기야’ 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세대와 시공을 아우르는 이야기의 보편성이다.

 

돼지와 거미의 우정을 그린 ‘샬롯의 거미줄’이 대표적인 예. 이 책은 도축장에 끌려갈 뻔한 돼지 윌버를 거미 샬롯이 구해주고, 윌버가 그에 대한 보답으로 샬롯이 세상을 떠난 후 그 새끼들을 책임진다는 내용이다.

 

아동문학평론가 조월례씨는 “‘샬롯의 거미줄’을 관통하는 정신은 다른 친구를 향한 진심 어린 사랑이다. 그런 친구를 갖고 싶다는 보편적 욕망에 대리만족을 안겨줄 수 있는 이야기라 연령과 국적을 불문하고 널리 읽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린이들이 우울한 이야기보다는 밝고 즐거운 이야기를 좋아할 거라는 선입견도 어린이 책 스테디셀러의 법칙에서 어긋난다.

 

‘몽실언니’는 전쟁통에 부모를 잃은 소녀 몽실이가 가난의 참혹함을 견뎌내며 어른이 되어가는 이야기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주인공인 암탉 잎싹은 갖은 고난을 겪다가 결국 족제비에게 잡아먹힌다.

 

김태희 사계절 아동청소년문학팀장은 “지금 어린이 책 시장의 성장을 일궈낸 386세대 부모들은 다양한 주제의 어린이 책을 자녀들에게 읽히고 싶어했고 윗세대와는 달리 어린이 책이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을 금기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출판평론가 한미화씨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밝고 아름답고 선한 것만 보여주어야 한다는 ‘동심 천사주의’적 강박이 아동문학계에 팽배한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어린이에게 현실을 보여줘야 한다는 신념을 담은 이야기가 아동 문학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번 스테디셀러가 된 어린이 책은 좀처럼 신간에 자리를 내 주지 않는다. 어린이 책은 ‘내 아이에겐 검증된 책만을 읽히고 싶다’는 부모의 마음을 반영하는 보수적인 시장이기 때문이다.

 

김형보 어크로스 출판사 대표는 “어린이도서연구회 등 독서운동 단체에서 지정한 초등학생 권장도서, 교과서에 실린 책들이 오랜 기간 스테디셀러가 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시편 150편은 이런 말씀으로 끝는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

 

호흡이 있는 자? 몇 살 먹은 사람에게 호흡이 있는가?

10살? 20살? 30살? 여기 70살 먹은 사람도 호흡이 있다고 외치는 자들이 있다. 그래서 당연히 찬양하겠다는 것이다.

 70세 이상 늙은이도 호흡이 있다. 우리도 찬양한다는 분들이 있다.

 

그들은 찬양을 드리는 것은 목소리로 하는 것인데 어떤 목소리라야 하는가?

스스로 질문한다. 그 목소리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고운 목소리로 부르는 찬양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가?

쉰 목소리, 모기소리 같은 가는 목소리도 있다.

 

꾀꼬리 소리처럼 아름다운 소프라노가 있는가 하면

미안한 표현이지만 돼지처럼 툴툴대는 베이스도 있다. 

찌르레기의 쉰소리에, 맹꽁이의 코맹맹이 소리.

 

그러나 이 모두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다.

새들을 위시하여 모든 만물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그 소리로 찬양을 하건만 유독 인간만이,

하나님이 찬양을 받으시기 위해 창조한 인간만이

'목소리 타령'을 하는 것이다.

 

호산나 찬양대는 오소운 목사가

서울 종로 중앙감리교회에서 지휘하고 있는 노인찬양대다. 

70세 이상 된 남녀 노인들이 대원이다. 

최 고령자는 91세의 은퇴 원로목사다. 

30명 내외가 주일 오후 예배 때 찬양을 드리고 있다.

 

호산나 찬양대원 중에는 글을 모르는 할머니,

노래를 전혀 못 부르는 할머니도 있다.

 

오소운 목사의 찬양대 운영 방침은 이렇다.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 후 하신 말씀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는 말씀이다. 

 

창조함을 받은 만물들이

태초부터 저마다 제소리로 찬양을 하는데 

"보시기에 좋았다" 는 것이다.

"듣기에 좋았다"가 아니다.

"보기에 좋았다" 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오디오(Aoudio)에 대한 관심보다는 

비디오(Video)에 대한 관심이 크신 것이다.

 

그래서 오소운 목사는 

"호산나 찬양대는 오디오(Audio)보다는

비디오(Video)에 무게를 두는 찬양대" 라고 정의내리고 있다.

 

3년 여 긴 세월, 암으로 고생하는 80세의 할머니도

항암주사를 맞으며 나와 찬양을 하고, 

목소리가 남자와 같아서 저음만 내는

78살 할머니도, 굵은 남성 목소리로 찬양을 한다.

 

찬양대가 1-2절을 부른 후

온 회중이 함께 3-4절을 부른다.

주고 받는(Antiphonal-교창) 찬양

성전찬양대식의 찬양이다.

 

해설을 미리 준비하여 모든 성도들에게 나누어 주고

해설 뒤에는 곡조를 속으로 따라 부르게 한다.

 

찬양대는 팔끼고 뒤에 앉아 찬양대의 

'연주(?)를 심사' 하는 '어리석은 짓'을 못하게 한다.

 

찬양대의 찬양은

하나님께 드리는 입술의 열매(히 13:15)인데

회중들이 '잘했다, 못 했다' 할

심사의 대상이 아니다.

 

찬양은 "호흡이 있는 자",

"천지만물"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이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

인간과 만물에게

"찬양을 받으시기 위해서"다.(언)  

 

 

 

 

 

 

 
 

 

 

 

 

 

 

 

 

[오네시모의 독백]을 발견하다

 

 

바울의 서신서에 언급되는 인물 오네시모(Onesimus)가 라틴어로 쓴 독백(Monologues)이 담긴 소책자가 20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놀랍게도 내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라틴어를 이해하고 초대교회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나는 지금 매우 흥분한 상태이다.

​오네시모는, 매우 매력적인 그러나 비교적 알려진 신약성경의 인물이다. 그의 이름은 성경에 두 차례 언급된다. 골로새서 4장 7절과 빌레몬서 1장 8절에서 18절사이에. 빌레몬서는 매우 특이하게도 바울이 빌레몬에게 보낸 개인편지가 정경이 25절짜리 1장의 성경이다.

 

 ​바울은 로마의 자신의 심복 오네시모가 골로새 교회의 지도자이자 자신의 제자인 빌레몬의 종이었으며 그로부터 귀중품을 훔쳐 달아난 과거를 알게 되었다. 편지에서 바울은 옛 주인에게 오네시모를 용서하여 받아줄 것과 만약 빚진 게 있으면 본인이 대신 갚아줄 것임을 약속하고 있다.

 

아름다운 성도간의 이야기로 성경공부의 소재가 되고 있지만 대체로 거기서 그친다. 하지만 놀랍게도 훗날 오네시모는 당시 핵심교회인 에베소교회의 주교 또는 감독 되었고, 복음을 위해 순교한 것으로 전승은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AD 60~70년대로 추정되는 초대교회의 시기에 남긴 책이 내 손에 들어온 것이다.

책을 일견하니 21세기에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와 똑같이 1세기 오네시모에게도 인생과 구원과 신에 대해 씨름하던 고뇌가 느껴진다.

그가 살았던 로마제국과 예수 사후 교회의 성립시기에 바울의 심복으로 또 골로새와 로마교회의 주요인사로 그가 경험한 예수의 복음에 대한 솔직한 생각들이생생하게 살아 있는 게 아닌가. 그는 매우 감수성이 예민한 인물이었던 것 같다. 드문드문 보이는 감상적인 시들은 그런 그의 성품을 드러낸다. 

 

게다가 그는 로마법에 대해서도 상당한 지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법학을 전공한 나에게 더욱 흥미로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오네시모의 독백]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소개하기로 한다. 한참 교회의 위기를 말하는 21세기의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에게 시사하는 지점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 편저자 김영언 -

 

 

 

 

오네시모의 독백 1. 파로스 등대

 

 

 

 

파로스 등대 꼭대기에 횃불과 거울이 설치되나 보다. 앞으로 지중해로 오가는 대형상선들이 그 빛에 의지하여 나일강 하구에서 안전한 항해를 할 것이라는 관제소문이 돌고 있다. 눈부시게 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제국 전체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을 자랑하는데 가이사르가 행정력을 모으고 있다. 로마는 속주 신민들의 마음을 뛰어난 공공건축으로 얻어내고 있지 않은가.

 

제국의 반대편 이집트 파로스 섬에 어른 100명을 쌓은 높이의 등대가 설치된 것이 어언 300년 전이다. 사람들은 이 건축물을 가능케 한 것은 인간이 아닌 오로지 신의 능력이라며 기이한 성취를 찬탄하고 있다. 불가사의. 사람의 생각으로는 미루어 헤아릴 수도 없는 일. 그 단어를 써가며. (저자주 -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는 BC 3세기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섬에 세워진 거대건축물이며 모든 등대의 원형으로 여겨진다. 고대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다.)

 

허나 요즘 나에게 불가사의는 그 등대가 아니다. 정말로 믿기 어려운 일은, 신이 인간을 사랑하여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내려와 살다가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는 시리아 속주 변방에서 들려오는 터무니 없는 이야기이다.

 

예수의 수제자이자 예루살렘교회 지도자 베드로는 예수가 부활 후 갈릴리 호숫가에서 생선을 구워주던 날 그가 그냥 뛰어난 인간이 아니라 정말로 신의 아들이자 또한 신 자신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어디 베드로뿐인가. 오합지졸 같던 예수의 많아봐야 100명도 되지 않던 제자들이 집단최면이라도 걸린듯 목숨을 걸고 여기 제국의 심장에까지 오게 만드는 기이한 확신을 설명할 다른 방법이 없다.

 

신이 파로스의 등대 같은 능력을 보여주지 않고 죽음으로 인간에게 사랑을 고백한다는 이 기이한 이야기. 신은 도대체 왜 이런 어리석은 방법을 택하였는가. 그런데 어떻게 이 불가사의한 사랑이야기가 로마제국의 하층민 사이에 마른철에 불길같이 퍼져 나가고 있는가. <계속>

 

 

오네시모의 독백 2. PACTA SUNT SERVANDA

 

팍타 순트 세르반다.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로마법의 제 1원칙이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씨저가 루비콘을 건너고 공화정이 무너진 자리에 제정이 시작되는 흐름 속에서도, 로마가 다른 나라들과 결정적으로 달랐던 것은 이 사회를 지탱하는 지도자들이 Pacta Sunt Servanda의 원칙을 지켜왔기 때문이다.

 

다른 고대사회와 같이 절대적 군주가 혼자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비록 귀족과 유력 가들 사이에 제한되었다 할지라도, 원로원과 평민출신의 집정관 사이에 견제와 균형의 틀을 만들고 구성원들이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애를 썼기에 이 찬란한 로마에 수많은 이방나라들이 굴복하여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왜 저 멀리 식민지 유대민족의 신을 모든 민족의 신, 그것도 유일신이 되도록 강요하는가. 수년 전 네로 황제에게 역모 혐의를 받고 스스로 혈관을 끊은 이 시대의 최고철학자 세네카가 일갈한 바 있다.

이방인인 나 역시 무엇보다 그게 싫었다. 알고 싶었다. 왜인가. 왜 유일신 하나님이어야 하는가. 수많은 밤을 새웠다. 저들의 존경받는 조상 모세가 남긴 유대인의 법 토라(저자주–모세오경)와 선지자들의 예언을 읽고 읽었다.

 

Pacta Sunt Servanda. 그것이었다. 언약의 신 하나님. 과연 어느 신이 피조물과 약속을 하고, 약속을 지키고, 약속 지키기를 기대하는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분노하고, 인간의 한계를 깨닫고는, 신 자신이 약속한 것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내려와 죄를 대신 담당하겠다는 약속이 유대민족이 그 동안 믿은 언약의 전부였다.

 

그리곤 예수가 이 세상에 살다 갔다. 이사야와 다윗을 통해 약속했던 구원의 약속을 신이 정말로 지킨 것이다. 베드로가 그것을 깨달은 것이다. 바울이 바로 그것을 본 것이다. 약속을 지키는 신.

그것도 인간의 약함을 알고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약속을 이행하는 신. 팍타 순트 세르반다. 제정로마는 황제가 점점 신이 되가면서 Pacta Sunt Servanda 를 무너뜨리고 있다.

 

찬란한 로마는 그 전성기를 지나자마자 내리막을 걷고 있다. 얼마 남지 않았다. 로마를 대신하여 이제 막 기독교라 불리며 세력을 넓혀가는 이 불온한 사상이 이 세상의 마음을 얻게 될 날이. <계속>

 

 

 

오네시모의 독백 3. 가여운 목수 요셉

 

 

목수 요셉, 오 가여운 남자여. 동침하지 않은 아내의 임신소식을 듣고도 그를 보호해야 한 남자. 죽음의 위협은 아들의 출생 후 몇 년 그를 늘 따라다녔다.

 

유월절을 마치고 어린 예수가 성전에 홀로 남은 날 자신을 따라오지 않은 것을 책망하자, 아버지 집에 내가 있지 어디 있을 줄 알았느냐는 이 세상 말 같지 않은 대답을 들어야 했던 서글픈 아버지.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이게 전부라서 죽은 날은 커녕 죽은 해마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신의 아들을 품어야 했기에 인간 아버지의 흔적은 일부러라도 지워야 했을까. 예수의 공생애 기간 동안 마리아가 과부였으니 그는 분명 일찍 세상을 떴을 것이겠지만. 나무를 재단하는 그의 재주를 물려받은 아들 예수가 나무에 달려 피를 흘려야 했으니 이는 또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마리아와의 사이에 훗날 사도가 되는 야고보를 포함하여 적어도 6명의 자녀를 둔 아버지. 예수가 첫 아이였으니 동생들은 예수가 하늘로 돌아갈 때 모두 30을 넘지 않은 청년들이었을 터.

 

그러나 이 육신의 자녀들마저 자신의 친자식이 아니라 조카였을 것이란 얘기를 들어야 하는 슬픈 아버지. 아들 예수가 십자가에서 친동생들을 두고 비슷한 또래의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를 맡기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그럴듯한 설명과 함께.

 

그의 육신의 자녀들은 예수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종종 예수는 가족을 심하게 무시하는 듣기에 민망한 가르침을 남기곤 했다. 사랑하라는 이웃 중 가장 큰 것이 가족일 텐데도.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요셉의 자녀들이 형이자 오빠였던 예수를 신의 아들로 깨달은 것은 십자가를 지난 뒤여야 했다.

 

가여운 목수 요셉은 그리하여 구원받았을까. 제발 그러하길. 그가 신이 부여한 역할을 무리 없이 수행하였기에 주어진 것인지, 아내와 가족을 보호한 의로움 때문인지, 이스라엘의 율법을 성실히 지켰기 때문인지, 아니면 아들 예수를 신의 아들로 믿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계속>  

 

 

 

 

 

 

 

 

 

 

 

 

 

 

 

 

 

 

 

 

 

 

American Impressionist painter, draftsman,

genre painter, portraitist & printmaker
born 1844 - died 1926
 

 

 

 

 

 

 

Mary Cassatt - 1898
Fondation Rau pour le Tiers-Monde (Switzerland)
 

Drawing - pastel

 

 

 

Young Boy in Blue

Mary Cassatt - circa 1906
Private collection
Drawing - pastel
 

Height: 60.3 cm (23.74 in.), Width: 50.2 cm (19.76 in.)

 

 

 

Breakfast in Bed

Painting - oil on canvas

 

 

 

Children in a Garden

Mary Cassatt - 1878
Private collection


Painting - oil on canvas

Height: 73.34 cm (28.88 in.), Width: 92.08 cm (36.25 in.)

 

 

 

Children Playing with a Cat

Mary Cassatt - 1908
Private collection
 

Painting - oil on canvas

 

 

 

Elsie Cassatt Holding a Big Dog

Mary Cassatt - circa 1880
Private collection
 

Drawing - pastel

 

 

 

En Bateau, Le Bain

Mary Cassatt - circa 1908
Private collection
 

Painting - oil on canvas

 

 

 

Girl Arranging Her Hair

Mary Cassatt - 1886
National Gallery of Art - Washington (United States)
Painting - oil on canvas
 

Height: 74.93 cm (29.5 in.), Width: 62.23 cm (24.5 in.)

 

 

 

Young Girls
Pastel on paper laid down on linen, 1897
25 x 20
3/4 inches (63.50 x 52.71 cm)
Private collection

 

 

 

Jules Standing by His Mother
Oil on canvas, 1901
Public collection

 

 

 

Child In A Straw Hat
Oil on canvas, c.1886
25
1/4 x 19 1/2 inches (64.14 x 49.53 cm)
Private collection

 

 

 

Little Girl in a Large Red Hat
Oil on canvas, c.1881
Public collection

 

 

 

Motherhood
Pastel on paper, c.1890
Public collection

 

 

 

Mother And Child In A Boat
Oil on canvas, c.1909
45
1/2 x 32 inches (115.57 x 81.28 cm)
Private collection

 

 

 

A Kiss for Baby Anne (no. 3)

Mary Cassatt - 1897
Private collection
Drawing - pastel
 

Height: 43.2 cm (17.01 in.), Width: 64.8 cm (25.51 in.)

 

 

 

In the Park

Mary Cassatt - circa 1894
Private collection
 

Painting - oil on canvas

 

 

 

Jules Standing by His Mother

Mary Cassatt - circa 1901
Private collection
 

Painting - oil on canvas

 

 

 

Margot in a Dark Red Costume Seated on a Round Backed Chair

Mary Cassatt - 1902
Private collection
Drawing - pastel
 

Height: 64.77 cm (25.5 in.), Width: 53.98 cm (21.25 in.)

 

 

 

Margot in Big Bonnet and Red Dress

Mary Cassatt - 1902
Private collection
 

Drawing - graphite

 

 

 

Marie-Therese Gaillard

Mary Cassatt - 1894
Private collection
 

Drawing - pastel

 

 

 

Mother and Child

Mary Cassatt - circa 1908
Private collection
Drawing - pastel
 

Height: 67.95 cm (26.75 in.), Width: 55.88 cm (22 in.)

 

 

 

Mother and Children

Mary Cassatt - 1901
Private collection
Drawing - pastel
 

Height: 64.14 cm (25.25 in.), Width: 80.01 cm (31.5 in.)

 

 

 

Mother Combing Her Child's Hair

Mary Cassatt - 1898
Brooklyn Museum of Art (United States)
 

Drawing - pastel

 

 

 

Mother Combing Sara's Hair (no.2)

Mary Cassatt - circa 1901
Private collection
 

Drawing - graphite

 

 

 

Mother Jeanne Nursing Her Baby

Mary Cassatt - circa 1907-1908
Private collection
 

Drawing - pastel

 

 

 

Mother Jeanne Nursing Her Baby

Mary Cassatt - circa 1907-1908
Private collection
 

Drawing - pastel

 

 

 

Mother Playing with Her Child

Mary Cassatt - circa 1899
Metropolitan Museum of Art (United States)
 

Drawing - pastel

 

 

 

Mother, Sara and the Baby (counterproof)

Mary Cassatt - circa 1901
Private collection
Drawing - pastel
 

Height: 89.54 cm (35.25 in.), Width: 69.22 cm (27.25 in.)

 

 

 

Portrait of a Little Girl

Painting - oil on canvas

 

 

 

Portrait of Mrs Havemeyer and Her Daughter Electra

Mary Cassatt - 1895
Shelburne Museum (United States)
 

Drawing - pastel

 

 

 

Reine Lefebre and Margot before a Window

Mary Cassatt - 1902
Private collection
 

Painting - oil on canvas

 

 

Sara in a Large Flowered Hat, Looking Right, Holding Her Dog

Mary Cassatt - circa 1901
Private collection
Drawing - pastel
 

Height: 70.1 cm (27.6 in.), Width: 54.93 cm (21.63 in.)

 

 

 

Sara Looking towards the Right

Mary Cassatt - circa 1901
Private collection
 

Drawing - pastel

 

 

 

Sleepy Thomas Sucking His Thumb

Mary Cassatt - 1893
E. G. Buhrle Collection (Switzerland)
 

Drawing - pastel

 

 

 

Somone in a White Bonnet

Mary Cassatt - 1901
McNay Art Museum (United States)
 

Drawing - pastel

 

 

 

Summertime

Painting - oil on canvas

 

 

 

Baby Smiling up at Her Mother

Mary Cassatt - No dates listed
Private collection
 

Drawing - pastel

 

 

 

Summertime

Mary Cassatt - circa 1894
Terra Museum of American Art (United States)
 

Painting - oil on canvas

 

 

 

The Caress

Mary Cassatt - circa 1901
National Museum of American Art (United States)
 

Painting - oil on canvas

 

 

 

The Crochet Lesson

Mary Cassatt - 1913
 

Drawing - graphite

 

 

 

The Garden Reading

Mary Cassatt - 1898
Private collection
 

Painting - oil on canvas

 

 

 

The Mirror

Painting - oil on canvas

 

 

 

The Sisters

Mary Cassatt - circa 1885
Glasgow Art Gallery and Museum (Scotland)
 

Painting - oil on canvas

 

 

 

Woman Admiring a Child

Drawing - pastel

 

 

 

Young Mother and Two Children

Mary Cassatt - 1905
White House Collection (United States)
Painting - oil on canvas
 

Height: 92.08 cm (36.25 in.), Width: 73.66 cm (29 in.)

 

 

 

Young Mother Sewing

Mary Cassatt - 1902
Metropolitan Museum of Art (United States)
Painting - oil on canvas
 

Height: 92.4 cm (36.38 in.), Width: 73.7 cm (29.02 in.)

 

 

 

Young Girl Reading

Mary Cassatt - 1908
Seattle Art Museum (United States)
 

Drawing - pastel

 

메리 카사트(1844-1926):

 

미국의 화가 겸 판화가로 어머니와 아이들간의 섬세한 감정을 그려낸 작품들로 유명함.  펜실베니아주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좋은 교육과 유럽 여행을 경험하며 11살 때에 1855년의 파리 세계 박람회에서 전시되었던 잉그레, 들라크루와, 꼬로, 꾸르베, 후에 그녀의 스승이 된  드가 및 피사로의 그림을 통해 도전을 받았다.

미술가가 되겠다는 그녀의 희망을 집안에서 반대했지만 계속 필라델피아의 미술학교를 다닌 후 파리로 가서 미술교육을 받았다.(언) 

 

 

 

 

 

 

 

 

 

 

 

 

 

동생을 안고 다니는 소녀와  처음 보는 여행팀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는 순박한 어린이

 

 

동생을 안고 다니는 소녀와 처음 보는 여행팀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는 순박한 어린이

시애틀 은혜장로교회(담임 최용주 목사) 선교팀은 3월 8일부터 17일까지 서부 아프리카에 위치한 베냉과 토코를 방문해 말씀과 찬양으로 복음성회를 인도했다. 본지는 은혜장로교회 명화연 성도의 선교 기행문을 5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천사와 춤을

 

이 곳 아이들은 형제를 잘 챙기고 서로 양보한다. 산아제한을 하지 않아서인지 다동이 집안이 많아보였는데 형제자매가 손을 꼭 잡고 다니는 모습이나 아이가 아이를 안고 다니는 모습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경제 발전을 위해 이 두 나라에 산아제한이 필요할 수는 있겠지만 이 곳 아이들을 보면 역시나 형제가 많아야 아이들이 배려와 인내, 더불어 사는 방법을 배우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들이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얼마나 친절한지 모르는 사람에게도 손을 들어 인사하고 미소를 보냈다.

 

이렇게 예쁜 아이들이 예배드리는 모습은 더없이 천사 같다. 베냉 집회에서 본 아이들의 모습이 특별히 잊히지 않는다. 어린 아이들도 춤을 추고 뛰며 찬양하고 또 무엇이 그렇게 간절한지 열심으로 기도한다. 특히 머리에서 잊히지 않는 장면은 어린 아이를 등에 업은 어머니가 찬양 시간에 앞에 나와 춤을 출 때 등에 업힌 작은 아기가 고사리 손으로 어머니 등에 붙어 박수를 치던 모습이다.

 

 찬양 시간에 앞에서 춤추는 아이들이 예뻐 눈에 하트를 달고 보고 있었는데 한 아이가 다가와 내 손을 잡더니 춤추는 아이들 틈으로 데려갔다. 덕분에 이 예쁜 아이들과 함께 모래 바닥에서 춤을 추며 찬양하는 황홀한 추억을 남겼다. 이 아이들을 나보다 사랑하실 예수님도 그때 우리와 함께 춤추고 계셨을 것 같다.

 

 

찬양 시간에 아이들과 춤을 추고 있다.

찬양 시간에 아이들과 춤을 추고 있다.

 

베냉 집회 첫 날 예배가 끝나고 아이들에게 막대사탕을 나눠줬는데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집회 둘째 날은 훨씬 더 많은 아이들이 왔다. 둘째 날은 사탕을 못 나눠줬는데 셋째 날 내가 첫날 사탕을 나눠 줬던 것을 기억했는지 한 아이가 예배 중간에 와서 사탕을 달라고 했다.

 

주면 예배 중에 다른 아이들도 우르르 몰려와 난리가 날 것 같아 예배가 끝나면 주겠다고 했는데 그 친구는 내 말을 어떻게 알아듣고 정말 예배가 끝나고 와서 사탕을 받아갔다. 이 날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사탕을 많이 나눠줬음에도 못 받은 아이들도 있었다. 그 와중에 적극적으로 구하는 아이들은 사탕을 하나씩 쥐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니 하나님께도 적극적으로 구하는 자가 얻는다는 말씀이 생각났다.

 

사탕을 받아 간 아이들도 귀엽고 사랑스러웠지만 줄 수만 있다면 사탕보다 훨씬 많은 것을 주고 싶었던, 사탕이 아닌 내 마음을 가져간 아이들도 있었다. 찬양 시간에 함께 춤을 추던 여자 아이가 설교가 시작되자 내 자리로 따라와 내 무릎에서 설교를 같이 들었다. 내가 뭐라고 나에게 마음을 먼저 열어주고 내 손을 자기 몸 위에 얹고 함께 시간을 보냈던 이 친구는 오래도록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사탕을 요구해 받아 간 아이처럼 하나님께도 구하는 자가 구하지 않는 자보다 많이 받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사로잡는 사람, 곧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얻는 사람은 무언가를 구하는 사람보다는 하나님과 교제하고 싶어 하나님 곁에 머무는 자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성령의 임재가 가득했던 현지 집회

 

베냉에서 시작된 첫 번째 현지 집회에서부터 성령께서는 강하게 역사하기 시작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임재 가운데 쓰러졌고 어떤 이들은 쓰러진 후 땅에서 구르며 통곡하기 시작했다.   성가대 단복을 입고 노래 하던 한 소녀도 쓰러져서 통곡하다 방언이 터졌다. 그리고 한참을 그렇게 더 눈물로 기도했다.

 

이렇게 아직 나이가 어린 친구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성령 체험을 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벅찼다. 하나님이 앞으로 이 친구의 삶을 어떻게 사용하실까. 어린이와 청년은 이 나라의 미래인데 하나님께서 이 집회에 모인 친구들의 삶을 통해 앞으로 어떻게 영광 받으실까 기대가 됐다.

 

베냉 현지 성가대가 박수치며 찬양하고 있다

베냉 현지 성가대가 박수치며 찬양하고 있다

 

베냉 집회 둘째 날, 최용주 목사님은 목사님의 어린 시절 대한민국도 매우 가난해서 배가 고플 때는 수돗물로 배를 채웠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하나님을 잘 믿는 나라가 되었기 때문에 현재와 같이 부강한 나라가 되었고, 베냉과 토고도 하나님을 잘 믿으면 하나님께서 열방 중에 높이 세워주시리라 선포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머나먼 미국 땅으로부터 우리 선교팀을 베냉과 토고로 보내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 두 나라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고 강조하셨다. 환갑이 넘은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지금도 이렇게 강건하게 아프리카까지 와서 복음을 증거하며 살고 있다고 간증하며 간절히 기도하고 하나님을 잘 믿으면 하나님께서 건강도 주시고 일생을 책임져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한 마음으로 부르짖은 우레와 같은 주여 삼창 후 뜨거운 기도가 시작됐다. 너무나 간절히 기도하는 베냉 사람들을 보며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복 주시기를 진심으로 중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덥고 습한 여름 밤, 강대상 쪽으로부터 기도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넓고 시원한 바람이 한들한들 불어 왔는데 마치 한 사람 한 사람을 부드럽게 만지는 성령의 바람처럼 느껴졌다. 목사님은 환상 가운데 우리 중에 임하신 예수님을 보고 선포하셨다. 우리가 간절히 기도할 때 이곳에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악들을 제하시고 깨끗하게 하셨다고 말씀하셨다.

 

 

베냉 집회에 빽빽이 모인 현지인들이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베냉 집회에 빽빽이 모인 현지인들이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토고는 야외 집회 규정이 까다로웠다. 더운 날씨 때문에 저녁에 집회를 하는데 밤늦게 근처 주민들에게 소음으로 피해를 입히지 않기 위해 밤 9에는 모든 행사를 마쳐야 했다.

 

토고의 현지 목사님들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성령님의 능력과 역사를 믿고 바라고 계셨지만 시간제약으로 인해 절제가 필요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성령께서는 직접 일하기 시작하셨다. 예배 막바지에 귀신 들린 사람들이 소리 지르며 뒹굴기 시작한 것이다.

 

 목사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주셨고 귀신들린 사람들은 발악을 하다 곧 잠잠해졌다. 제약된 환경에서도 성령님을 바랄 때 직접 역사하시는 하나님, 그를 간절히 찾고 필요로 하는 영혼을 찾아오시는 사랑이 많고 아름다우신 주님을 찬양한다. 

 

 

 

 

 

 

 

 

 


 

 

 

 


 

 

 

 

 

 

 

 

 


 

 

 

 


 

나는 어렸을 때 외할머니 집에서 꽤 오래 살았습니다.

중학생 시절이었습니다. 외할머니가 언제 인가부터 바늘에 실을 꿰어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할머니가 직접 실을 꿰실 때는 미간을 찌푸리고 몇 번을 시도해야 어렵게 성공하시곤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본 후 용돈을 모아 할머니께 돋보기를 사 드렸습니다. 돋보기를 끼시고는 얼마나 신기해하시던지 지금도 그 표정이 눈에 선합니다.
 

그런 생각에 잠긴 나는 지금 그 때 할머니보다 나이를 더 먹은 시니어가 되었다는 위대한 발견을 합니다.  그리고 책을 볼 때나 뭔가 집안 일을 할 때 내 콧등에 언제부턴지 슬그머니 얹혀있는 돋보기를 발견합니다.

 

그러면서 나이가 들수록 돋보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노안으로 가까운 것이 잘 보이지 않을 때 돋보기를 쓰면 훨씬 더 잘 보이는 것 같이.

 

잘 안 보이는 것을 보기 위해 ‘돋’보기를 해 주는 돋보기..
우리 주변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만나는 것은 문제와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데서부터 진짜 문제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좋은 면은 축소해서 보고, 좋지 않은 면은 확대해서 보는 경향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정확하게 보도록 돋보기를 쓰는 것이 좋습니다.

정확하게 보게 되면 좋은 면을 ‘돋’보는 능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냥 볼 때는 안 보였는데 ‘돋’보려고 노력하면 잘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눕니다.

대화에서 미처 표현되지 못한 숨은 부분까지 ‘돋’보는 기술, 표현된 언어 뒤에 숨은 의도와 마음까지 읽어내는 능력을 ‘메타 커뮤니케이션’ 이라고 합니다. ‘너머’에 있는 것 까지 찾아낸다는 의미입니다.

 

메타 커뮤니케이션은 표현된 언어의 ‘사실’ 유무(有無)에 즉각적으로 묶이는 사람에게는 불가능합니다.

예를 들면 부부싸움은 소재가 문제가 아니라 표현(表現)된 말에 묶여서 감정싸움으로 변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 부부는 겉으로 볼 땐 코피 터지게 싸우는 부부 같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싸워본 적이 없는 부부입니다.
 

부부도 잘 싸우면 관계가 깊어질 수 있다고 말 하지 않습니까. 표현된 언어 뒤에 숨겨진 마음을 알게 되면 가능합니다. 마음은 단 한 번도 전달된 적이 없고 표현된 언어에 묶여 피차 감정적으로 격앙된 분노의 화살을 쏘아대는 부부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진심을 '돋'보는 능력이 필수적이란 말입니다.

 

한편 안경으로 된 돋보기도 있지만 볼록렌즈도 돋보기라고 칭합니다. 어린 시절 돋보기를 가지고 더러 장난을 치기도 했었습니다. 친구들 목덜미에 돋보기로 햇볕을 모으면 뜨거워서 놀라는 모습을 보고 깔깔대며 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종이에 불을 붙였던 기억도 있습니다. 볼록렌즈는 빛을 집중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파리대왕>같은 표류기 영화를 보면 안경을 돋보기처럼 사용하여 빛을 모아 불을 붙이기도 합니다. 

 

나이가 들어 간다는 뜻은 무엇일까? 나이를 먹었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

나이가 들어간다는 말은 그 만큼 인생을 살아왔으니  ‘돋’보는 능력의 소유자가 되었다는 말이 아닐까요. 그리고 볼록렌즈와 같이 정말 중요한 일에만 에너지를 집중하는 법을 안다는 뜻이 아닐까요.

 

어느덧 한 해가 지나 다시 어머니 날이 다가왔습니다. 여러분은 어머니 날에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나는 오래 전 세상을 떠나신 외할머니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외할머니가 끼셨던 돋보기를 생각합니다.

좋은 것을 '돋'볼 줄 아는 사람, 정말 중요한 일에 집중할 줄 아는 늙은이(마음은 젊지만)가 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장재언) 

 

 

 

 

 

 

 

 

 

 

 


 

 

 

 

 

 

 

 

 

 

 


 

 

 

 

 

어머니 날에 때 맞춰 핀 황홀하고 환상적이고

현란한 꽃 선인장


길쭉한 꽃자루 끝에 육중한 꽃 부리가

막 터진 화산의 폭발처럼 작열한다.
비 내리고 바람 찬 날을 우울하게 보내는가 했는데

햇살 은은히 뒤 뜰 담에 턱걸이하는 오후

별안간 진귀한 손님이 찾아왔다.

 

공작 선인장(Napalxochia Ackermanni) 꽃이다.

충격적인 미소와 그 침묵의 여운에 순간 내 쪽에서

어찌할지를 모르고 당혹해 한다.


고결한 연인이여 말하지 않는 선인장이여 그대 이름을

누가 불렀는가, 공작선인장이라고...
그 화사하고 감미로운 큰손으로 내 영혼

넌지시 앗아가는 거룩한 힘에 압도된다.

 

신의 영광을 찬미하는 황홀한 날개…

매혹적인 풍자는 이 꽃의 슬기겠다.

 

말레이 공작 선인장의 아낌 없이 드러낸

새로운 자태에서

나는 "선인장 권사님"으로 통한

아가신 어머니의 미소를 보고 있다.

 

 

 

 

  

 

 

 

 

 

 

 

 

 

 

 

 

 

 

 

 

 

트럼프의 돌변…타코 먹는 사진 올리고

"히스패닉 사랑해요!"

 

사실상 미국 대선의 공화당 후보가 된 도널드 트럼프가 멕시코의 기념일에 타코를 앞에 놓고 웃으며 엄지를 세운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공개했다. 심지어 '히스패닉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Happy #CincoDeMayo! The best taco bowls are made in Trump Tower Grill. I love Hispanics!)

 

멕시코 이민자를 범죄자 취급하며 이들을 강제 추방하고 장벽을 쌓겠다는 막말을 서슴지 않았던 그가 대선 본선에 오르자 히스패닉 표심을 잡으려고 돌변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트럼프 트위터 캡처]

 

트럼프는 5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 "해피 신코 데 마요! 트럼프 타워 그릴에서 만든 최고의 타코 볼. 나는 히스패닉을 사랑해요!"라는 글과 함께 트럼프 타워 사무실 책상에서 멕시코의 대중 음식인 타코 볼을 먹는 사진을 올렸다.

 

스페인어로 5월 5일을 의미하는 '신코 데 마요'(Cinco de Mayo)는 1862년 5월 5일 멕시코군이 푸에블라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상대로 승리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트럼프는 지난 경선 운동 기간 1천200만 명으로 추산되는 불법 이민자들을 강제 추방하고 멕시코와 미국 국경에 장벽을 세우겠다고 공언해 왔으며, 트럼프에 대한 히스패닉의 지지율은 최저인 상황이다.

 

 

 

[힐러리 클린턴 트위터 캡처]

 

 

 

 

 
 

 

 

 

 

 

 

 

 

 

 

 

 

국경 허문 인터넷, 문화 장벽은 더 높였다

 

스마트 / 프레데리크 마르텔 지음 / 배영란 옮김 / 글항아리 / 596쪽 / 2만6000원

 

 

프랑스 사회학자 프레데리크 마르텔은 《스마트》에서 “‘글로벌 인터넷’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Getty Images Bank

 

프랑스 사회학자 프레데리크 마르텔은 《스마트》에서 “‘글로벌 인터넷’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인터넷’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프레데리크 마르텔은 이렇게 주장한다.

 

인터넷으로 세계가 하나로 묶이며 지리적·문화적 경계가 점차 희미해진다는 게 지금까지의 통설이다. 대중문화의 세계화를 다룬 책 《메인스트림》으로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마르텔은 신간 《스마트》에서 우리가 알고 있던 이런 상식을 뒤집는다.

 

인터넷에서 글로벌한 분위기는 드물게 나타난다는 것. 마르텔은 “인터넷의 쓰임새는 지역별로 다르고 콘텐츠도 각 지역 현실에 맞게 변화해가는 경향을 보인다”며 “세계화된 플랫폼은 존재하지만 콘텐츠까지 세계화되지는 않는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인터넷 문화의 개별성을 보여주기 위해 세계 50개국을 발로 뛰며 사례를 수집하고 인터뷰했다.

 

세계 각국의 인터넷 활용 현장을 보도하듯 생생하게 풀었다. 통계와 이론 중심의 책과는 확연히 다른 부분이다.

저자는 먼저 실리콘밸리를 포함한 샌프란시스코의 인터넷 생태계에 이런 특징이 있다고 설명한다.

 

“연구자, 투자자, 창업자 상호 간 원활한 교류와 침투가 이뤄지고, 캘리포니아 지역 특유의 언어적·문화적 다양성이 존재하며, 창업과 기업활동에 대한 확신이 있기에 실패에 관대하다. 또한 자본주의와 노동에 대한 개신교적 윤리관과 부를 나누고자 하는 인식도 갖추고 있다.” 

 

다른 나라의 인터넷은 또 다른 특징이 있다.

중국 인터넷은 정부의 모방과 검열 때문에 독특한 자체 생태계를 생성했다. 중국 정부는 국민이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미국 유명 웹서비스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통제한다. 대신 중국에는 페이스북과 비슷한 런런, 트위터와 비슷한 웨이보, 구글과 비슷한 바이두처럼 미국을 본뜬 고유의 인터넷 서비스가 있다. 중국 정부는 인터넷 콘텐츠 내용도 강하게 통제한다.

가령 ‘톈안먼 사건’을 인터넷에서 언급하면 이는 자동 검열된다. 이 때문에 중국인만 아는 ‘국내용 콘텐츠’가 유통된다. 중국인은 많은 인구 덕택에 이들 콘텐츠만 봐도 충분하다고 여긴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의 인터넷 환경을 이해하는 데는 고유의 ‘국민군대 방식’과 이스라엘 특유의 도전정신인 ‘후츠파 정신’을 빼놓을 수 없다.

이스라엘의 신생 벤처기업 창업가는 대부분 차할(이스라엘 방위군) 정보부대에서 정보기술(IT)을 배운 사람이다.

이들은 제대한 뒤 벤처기업을 세워 이스라엘을 세계적 창업국가로 키웠다.

 

인도에서는 카스트 제도와 정략결혼 풍습이 인터넷을 통해 더 강해졌다. 매달 인도인 5만명의 결혼을 성사시킨다는 한 결혼 중매 사이트는 위계질서가 있는 인도의 전통적 사회계층을 인터넷에 그대로 재현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시아파와 수니파의 입장 차이가 인터넷을 통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런 의미에서 인터넷은 기존 지역·전통적 문화를 붕괴시키기보다 정반대 상황을 불러온다. 인터넷은 다양한 언어와 문화, 공동체를 아우르며 지역 차이를 강화한다.

 

저자는 “인터넷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으며 그저 감내해야 하는 미국 중심적인 것이 아니다”며 “우리가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지역적인 것”이라고 강조한다. 자국 문화와 정체성이 인터넷으로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인터넷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저자는 이렇게 강조한다.

“문을 열고 나가 스스로 인터넷의 주체가 돼라.”  

 

 

 

 

 

 

 

 

 

 

 

 

2012년 5월 13일자 비전통신

 

 

 

 

 

몇 달 전 경남 하동에서 휴학 중인 대학생이 자신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어머니를 때려 숨지게 하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 대학생은 “버스를 타고 오는데 운전기사가 운전을 난폭하게 했다”는 말을 어머니가 심각하게 받아들여 주지 않자 홧김에 어머니를 때려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국의 전통적 윤리 풍토에서는 어머니를 때리기만 해도 세지대변(世之大變)이요 시랑지폭(豺狼之暴)이라 하여 때를 기다리지 않고 목을 베어 버렸고, 법과는 별도로 마을 사람들이 그 집을 부수어 버리고 그 터에 연못을 만들어 버렸다.

 

이런 사기가 있다. 영조(英祖) 10년 용강 사는 조찬경(趙贊敬)이 그의 계모 김대아지(金大阿只)를 때린 사건으로 조정까지 상고(上告)되어 일대 논쟁이 벌어졌던 일이다.

김대아지는 딴 남자와 간통, 두 자녀를 두고 있는 처지였기에 이미 간통한 그 순간부터 어머니의 도(道)를 단절한 것이니, 어머니 때린 율(律)로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이 지배적인 여론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흥미 있는 것은 이 같은 법적인 해석이 아니었다. 비록 목을 베어 죽이지 않더라도 어미 때린 놈을 제 명대로 또 제 복대로 살게 할 리가 없다는 천명(天命) 응징이 기필(期必)된다 하여 영조임금님은 유배형(流配刑)을 내리고 말았다.

단지 계모를 때렸다는 이유로 유배형을 받았다는 말이다.  이런 윤리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한국의 사회풍토가 어찌 이런 역사가 말해주는 조상들의 엄격한 윤리는 쓰레기 통에 내동댕이쳐지고 학생이 선생을 폭행하고, 학부모가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선생의 멱살을 잡고 폭행하며 자식이 부모를 폭행 하다 못해 살해하는 이런 끔직한 일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는가?  윤리부재다.

 

경제만 살리면 다 잘 될 거라는 정치꾼들의 무지한 말이나, 인권을 바로 세우면 사회정의가 살아난다 해서 어린 학생들에게 [학생의 인권]을 비뚤어지게 가르쳐 선생님을 욕하고 구타하게 만들고, 노동자를 선동하여 [인권]을 주장, 사회혼란을 야기하는 파괴하고 투쟁하게 하는 붉은 물결을 어느 누구도 과감하게 차단하지 못하는 한국의 풍토가 너무나 걱정 된다.  역시 윤리부재다.

 

몇 일 전 독일의 신학자 몰트만이 한국을 다녀갔다. 그는 [희망의 신학]이란 책을 써서 나치의 유태인 학살로 절망에 빠진 역사를 향해 재기의 용기를 준 학자이다. 그런데 이번에 한국을 방문하여 [희망의 윤리]를 말하고 갔다. 그리고 [기도]를 강조하고 갔다.

 

몰트만은 성경 전체에서 일관되게 울리는 외침은 바로...

깨어서 기도하라.

기도해서 깨어라.

 

그는 [기도는 항상 깨어있음과 결합돼 있고, 우리의 모든 감각을 일깨우며, 주의력을 환기시키고, 눈을 활짝 뜨게 한다]고 말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어둡고 위협적인 뜻을 붙들고 씨름하면서 고심 끝에 [나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뤄지게 하옵소서] 하고 결단했지만, 제자들은 아무도 예수님과 함께 깨어있지 못하고 깊은 잠에 떨어져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제까지 제자들은 스승을 아무 두려움과 겁 없이 좇아왔는데, 신실했던 제자들이 빠져들었던 저 특별한 잠은 도대체 어떤 종류인가] 라고 반문하며 [자신의 스승이 그 어두운 밤에 ‘떨고 두려워하기’ 시작했을 때, 제자들에게 알 수 없는 무서운 어떤 위험이 엄습해 왔고, 행복했던 경험 대신 기댈 곳 없이 길을 잃었다는 감정으로 뒤바뀌었을 것]이다.

 

몰트만은 [이처럼 제자들의 모든 감각을 얼어붙게 만드는 잠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핵전쟁과 기후변화의 위험 앞에서 영혼의 마비증세를 일으키고 말았다]며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과 더불어 기도하고 있다면, 얼어붙었던 우리의 가슴이 깨어나고 눈과 귀가 열려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이 우리를 사로잡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기도 속에서 우리는 세상을 향해 깨어나고, 그때 하나님 앞에서 세상의 높이와 깊이가 드러난다]며 [우리는 그때 가난한 사람들의 궁핍함을 보게 되고, 괴롭힘을 당하는 피조물들의 신음소리를 듣게 되며, 더욱 민감한 주의력을 갖고 살아가게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깨어서 기도한다는 것에 대해 [신비주의적인 관점이 아니라, 메시아적 관점에서 눈을 뜨고 하나님의 미래를 바라보며 기도하는 것]이라며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가 아니라, 모든 감각과 지각이 깨어있는 상태에서 하나님을 기다리고 기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로마의 카타콤에서 기도했던 초대교인들은 팔을 뻗거나 얼굴을 들고 눈을 활짝 뜬 채, 뛰어갈 것 같은 자세로 기도했는데, 이런 자세에서 표현되는 것은 고요한 명상이 아니라 긴장감이 감도는 ‘기다림과 기대’였다는 것이다.

 

몰트만 박사는 [우리는 기도로 깨어나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을 기대해야 한다]며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님께서 [일어나서 가자]고 말씀하셨듯, 우리는 긴장감을 늦추지 않은 민감한 주의력을 갖고 선물로 주신 새로운 나날 속으로 발을 내디뎌야 한다]고 말했다.

 

깨어서 기도하는 것, 기도해서 깨어나는 것 이것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 될 것이다. (장재언)

 

 

 

 

 

 

 

 

 

 

 

 

 

 

 

 


 




 

 

 

 

 

 

 

 

 

 

 

수면 문제는 수년 간 심각한 건강 문제가 되고 있다고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말합니다.

18세부터 65세까지의 모든 성인 중 34~45%가 하루에도 종종 무심코 졸음을 경험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만일 운전 중 졸음이 오면 교통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어젯밤 분명히 잠을 충분히 잤는데도 온종일 피곤하고 나른함이 느껴지나요? 미국 매체 리틀띵스(Littlethings)가 당신이 항상 피곤하고 나른한 이유 10가지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습니다.
 


1. 주변이 어수선하다

 

 



어수선한 업무 공간이나 생활 환경은 정신 에너지를 고갈시켜 피로감을 유발합니다. 미국 LA 기반 주변환경정리전문가 페이 울프는 “집중해서 일할 수 있는 공간이 적고 앞에 놓인 산더미 같은 혼란에 압도되면 뇌가 집중할 수 없어 효율적이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이럴 때는 주변 정리가 필요한데 꼭 필요한 물건만 놔두고 눈에 보이지 않게 치우는 것이 좋습니다. 만일 당신이 어떤 특정 업무를 하고 있다면 그 업무에 필요한 물건만 나두고 나머지 모두 치우길 권장합니다.
 
 


2. 일광욕이 부족하다

 

 


 

미국 영양 교육자인 마크 너대니얼 미드는 “사람들이 오전에 햇빛이나 밝은 인공광에 노출되면 밤에 멜라토닌이 생성돼 더 쉽게 잠들 수 있다”고 말합니다. 햇빛은 또한 몸에 비타민D를 보충해줘 심신 기능이 규칙적으로 작동하도록 돕습니다. 좋은 수면 습관을 갖는 것만으로도 호르몬 생산과 세포 재생 등 생물학적 기능에 도움이 될 수 있다. 
 


3. 아침 식사를 소홀히 한다

 

 



아침 식사가 하루 세끼 식사 중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예전부터 나온 말입니다. 아침을 거르거나 대충 때우는 것은 심신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하루를 보내려면 전곡물과 약간의 단백질, 과일, 채소를 아침 식사로 먹는 것이 좋습니다.
 
 


4. 수분이 부족하다

 

 


 

목이 마르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당신 몸은 지금 아마도 수분 부족 상태일 것입니다.

엔지니어들에게 건강과 웰빙 솔루션을 제공하는 프랭크 킹 박사는 “탈수 증상은 만성적인 수분 부족을 일으켜 몸에서 독소가 빠지지 않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우리 몸은 60%가 물로 돼 있어서 수분이 부족하면 완벽하게 작동하지 못합니다. 만일 당신이 여전히 피로가 느껴지면 시원한 물 한 잔 마셔보는 것은 어떨까요. 
 


5. 주변에 부정적인 사람이 많다

 

 


 

다이어트와 생활 습관 외에도 다른 요인을 살펴봅시다.

만일 주변에 언제나 불평만 하고 징징거리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 역시 정신적으로 진이 다 빠지고 말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문제는 당신의 감정과 몸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비키 블라쵸니스 박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과 관계를 끊으면 시간을 낭비하지도 않고 평온하고 긍정적인 감정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 대신, 당신을 기분 좋게 만드는 사람과 대화하고 건강과 긍정적인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습니다. 
 

 

6. 자기 전까지 스마트폰을 본다

 

 


 

많은 사람이 8시간 동안 자고 있지만 여전히 심한 부진함을 느낍니다. 이는 수면이 시간도 중요하지만 질도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많은 사람은 잠들기 전까지 TV나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깊은 잠인 REM 수면을 방해합니다. 그러므로 잠자리에 들기 한두 시간 전에는 전자기기를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수면 문제가 있다면 종이로 된 기존 책을 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7. 너무 오래 잔다

 

 


 

많은 과학자가 늦잠을 수면에 취한 상태라고 부릅니다. 이는 하루 동안 나태함을 유발하기 때문이죠.

 

늦잠은 체내 생체 리듬을 방해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 몸의 일상 주기를 조절하는 뇌 부분에 혼동을 일으킵니다. 2008년 미 하버드대가 시행한 한 연구에 따르면 오히려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사람을 더 적극적이고 세심하고 일에 성공하며 일을 완수하게 만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심지어 주말에 늦잠 자는 것도 다가올 주간 일정을 방해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8. 운동이 부족하다

 

 


 

앉아있는 생활 습관은 중독되기 쉬워 위험합니다. 몇 시간 동안 계속 고정된 자세로 앉아있으면 몸에 무리가 갈 수 있습니다.

 목과 등, 머리에는 통증과 뻣뻣함이 느껴지고 이는 만성 통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활동하는 생활 습관을 유지하면 몸의 호르몬 균형을 유지하고 피로나 체중 증가, 기분 변동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매일 20분씩 가볍게 운동해봅시다. 만일 온종일 일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시간마다 5분은 쉬며 스트레칭하고 일을 마친 뒤에는 정기적으로 야외 활동을 합시다.
 


9. 음식 과민증이 있을 수도 있다

 

 


 

다이어트는 우리 몸이 건강해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 연구에 따르면, 유제품과 글루텐, 심지어 일부 과일과 채소는 일부 사람에게 나른함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음식 민감성 및 음식 과민증은 몸을 피로하게 하고 쇠약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만일 이런 증상이 있다면 병원에 가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10. 질병이 있을 수도 있다

 

 


 

몸을 나른하게 만드는 질환들이 있습니다. 알레르기와 건초열(꽃가루 알레르기)와 같은 일부 만성 질환은 심한 피로감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빈혈증과 당뇨병과 같은 또 다른 질환은 철분과 혈당 수치에 영향을 줘 부작용으로 피로가 생길 수 있습니다. 폐경기와 우울증, 불안증과 같은 2차적인 상태 역시 수면 장애와 비정상적인 나태함을 일으킬 수 있다고 의학정보 사이트 웹엠디(WebMD)는 소개하고 있습니다.  
 

 

 

 

 

 

 

 


 

++++

황복심 5000명 발송비

F. Chang

C.Kim

김성현

최옥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