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형록 회장의 간증(팀
하스 회장, 미국 오바마정부 건축자문위원)
“결정적인 순간의 반응은 나를 만든다”
요절말씀 ; 히11:8-10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저는 여러분과 같이 평범한 사람이다. 첫째 딸과 한국에 온지 1주일되었다. 목포사랑의교회에서 3일간 말씀으로
섬겼다. 목포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딸과 아름다운 추억을 남겼다.
사탄은 그 기쁨을 그냥 두지 않는다. 목포에서 돌아와 호텔에서 말타툼이 났다. 그만하자는 나의 경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아빠에게 대들었다. 너무 화가 나서 실수하는 데까지 가서 목소리가 커졌다. 서로의 눈물이 글썽거릴
정도로 핏대가 올라갔다.
그러나 1초, 2초, 3초... 5초, 우리가 잘되기 위해 하는 올바른 반응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그때 그때 순간적인 시간에 바로 반응하고 바로 응답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아빠가 심적으로 어려워하는 것을 보더니 딸이 달려와서 아빠 마음을 아프게 하기 위해 한 것은 아니라고 통곡하고
사과했다. 같이 화해를 했다. 주님이 찾아왔다. 평화가 왔다. 기쁨이 왔다. 1,2,3... 5초의 시간에 어떻게
하나님 앞에 바로 반응하느냐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을 결정한다.
어려움과 환란 속에서 이 기도는 우리의 뿌리가 된다. 그 순간 우리의
vision(꿈)은 화목이었다. 또
줄기처럼 평화라는 calling(부르심)이 있었다. 거기에 가지와 열매를 주는
response(반응)이 있었다.
딸에게 있어서 그 반응은 아빠를 안아주는 것이었다.
우리 삶을 결정하는 세 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 삶에 동기를 주고 우리를 우리 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첫째 vision , 즉 꿈이다. 참 꿈은 뿌리에 있다. 흔들리지 않는 것은 뿌리가 땅에 있기 때문이다.
둘째, calling, 즉 소명이다. 소명은 꿈을 번창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줄기와 가지와 같다.
셋째, response, 즉 반응이다. 그것은 헌신, 결단이다. 그 반응 속에서만 가지와 열매가 일어날 수
있다.
꿈과 소명은 하나님의 것이다. 주일 말씀을 통해 확인할 수도 있고,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반응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반응은 여러분이 해야 할 것이다. 주님이 돌아가시면서 우리에게 공짜로 주신 것이
비전과 소명이라면, 그것을 내 것으로 하기 위해서는 영접해야 구원이 있듯이, 비전과 소명이 내 것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스스로 반응해야 한다.
우리가 공부를 학교에서 하고 부모도 자녀를 위해 투자를 하지만, 결정은 교육에 있지 않다.
한국은 이제 선진국이다. 선진국과 후진국과 차이는 간단하다, 기술
만
가졌다면 후진국이다. 문화를 가졌느냐
여부가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를 만든다.
받은 비전과 소명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문화가 결정된다.
여러분의 운명은 학교에서 공부한 18년에 달린 것이
아니고 인터뷰하여 취직한 그 회사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비전과 소명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여러분의 운명이 달려있다.
꿈과 비전이 있어서 그 부르심에 따라가기로 시작한다. 가다가 둘이 엘리베이터앞에서 멈추었다. 한 여인은 왜
엘리베이터가 항상 고장 나는지 불평을 한다. 다른 여인은 ‘에스컬레이터가 고장 난 것이 아니기에
이제 그
에스컬레이터가 계단으로 변한
것이다'고
생각하고
하고 계단으로 간다.
우리의 슬픔을 안고, 희망의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자. 그 반응을 여러분이 보이실 시간이다.
큰 꿈에 대한 반응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형제와 부모와 부부간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하나님은 더 관심이 많다.
그들과의 갈등의 순간, 우리가 1초, 2초 3초... 5초안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하나님은 관심이 더 많다. 그 때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진다.
‘젊은이여, 꿈을 가져라!’ 좋은 말이지만 꿈으로 모든 것이 되지 않는다. 꿈이 의사요 변호사인 젊은이가
있다고 하자. 반응도 실천도 하기 전에 마치 의사, 변호사가 된 것처럼 거만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그것 때문에 티격태격한다.
아무리 비전이 좋고 소명이 좋아도, 반응이 제대로 안되면 가지와 열매는 생기지 않는다. 하나님은 여러분 삶에
가지가 번창하고 열매가 나길 원하신다.
우리에게 그 결정적인 순간은 1년에 한번 오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 찾아온다. 그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
제대로 반응하려면, 기도로 뿌리를 내려야 한다. 그리고 그 뿌리가 커서 줄기가 되고, 싹이 터서 가지가 생겨야
열매가 생긴다.
비전과 소명이 중요하지만 반응이 더욱 중요하다.
“(히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으로 가라는 명령에 믿음으로 순종했다. 아직 끝이 아니다. 가야할
곳이 어딘지 모르는 채 떠났다고 성경은 말씀하신다.
무조건 순종하면 하나님이 놀라운 것을 주신다는 것만 중요하지 않다. 이 8절의 말씀은 비전과 소명과 반응의
관계를 설명해준다.
본문 말씀에서 비전은 약속의 땅이다.
소명은 가라는 명령이다.
반응은 순종하겠다는 결심이다.
무엇을 믿기에 올바른 반응을 하는가가 더욱 더 중요하다.
“(히11: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9절에 보면 그는 낯선 땅에 가서 나그네처럼 장막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어려움은 임시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히11: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 하나님이 준비하는 도성을 확신하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할지는 모르지만, 비록 천막생활을 하고 아픔이 있고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났다 할지라도 아브라함이
순종하는 그 시간에 하나님은 지체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도성을 짓고 계시다는 것을 아브라함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아브라함은 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나? 하나님은 확실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두 가지 질문을 자주한다.
-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나?
- 어떻게 하면 꿈을 이룰 수 있나?
저의 답은 이것이다. ‘천국의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지고 가라. 그러면 성공한다.’
1815년 스페인 왕이 장군에게 멕시코를 점령하라고 명령하며, 11척의 배, 500명의 군인, 100명의
선원, 16마리의 말을 주었다. 멕세코 부두에 도착해서 장군은 첫 번째 반응을 보인다. ‘배를 태워버려라’
명령한다.
부하들이 반응한다. 어떻게 돌아가나는 질문을 한다. 장군은 우리는 집에 돌아가되 적군의 배를 타고 갈 것이다.
5초안에 그러한 지도력 있는 반응을 해서 겨우 500명의 군인으로 목표를 달성했다.
500명의 군인은 먼저 근처 지역의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서 20만 명으로 세력을 키워 아즈텍 왕국을 쳐서
오늘날의 멕시코가 되었다.
왕이 내린 소명은 멕시코를 점령하라였다. 장군의 응답은
배를 태워라였다.
오정현목사님 말씀에 이제 반응하여 제가 걸어온 삶을 소개하려 한다.
돌이켜보면 내 삶에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이
참 많았다. 책에 나온 것처럼 부친이 목회를 한 부산의 나환자촌에서 13년간 자랐다.
부친은 목회하기 전에 학도병으로 자진 입대를 했었다. 전쟁에 병사가 부족하여 고등학생까지 모집할 때 부친은
자진입대로 반응하였다.
이 전쟁에서 살려주면 모든 삶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했다. 전쟁이 끝나고 서원대로 신학교에 입학했고, 졸업
후 나환자촌교회에서 목사님을 구할 때 자신이 가겠다고 반응을 했다.
13년간 목회할 즈음에 나환자촌에서 어떻게 목회를 하는지 보러 어떤 선교사가 왔다. 필라델피아 신학교 총장이
와서 1개월 반을 살았다. 그는 자녀 4명을 가지고 교육을 어떻게 시키려고 이렇게 나환자촌에 주저앉아있는가 물었다.
부친은 대답했다. 이것이 나의 장막생활이다. 나는 어떻게 자녀를 교육해야할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이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확실히 믿는다고 답했다.
그 선교사가 떠나면서 미국에 오면 자녀교육은 저절로 되는데 미국에 와서 공부하고 싶지 않느냐고 권유했다.
부친이 그 말에 바로 반응해서 저는 13살 때에 미국으로 이민
갔다.
13년간 나환자촌에서 지내면서 너무 어려웠다. 민간인신분이라 나환자촌 학교는 갈 수 없어 걸어서 30분, 다시
버스로 20분을
합쳐서 약 1시간 걸려 통학했다.
나환자촌에서 버스를 타러 나가려면 마을을 지나야 하는데, 아이들이
문둥이라 생각하고 돌을 던졌다. 그 돌에 머리를 맞아 지금도 머리카락 속에 흰 자국이 많다. 그래서인지 저는 27살
때부터 흰머리가 났다.
미국에서는 문둥이란 조롱 대신 인종차별을 받았다. 마틴루터 킹 목사가 1968년에 살해된 바로 다음해인
1969년에 미국에 갔으니 그 시대의 인종차별에 대해 여러분도 상상이 가능할 것이다.
저는 인종차별을 잘 이겨내고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였다.
29세
때 가장 큰 건축설계회사중 하나의
주인이 되었다. 나의 삶의 목표를 달성했다고 생각하고 이제부터 편안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려움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고객을 만나러 고속도로를 달리다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졌다. 제 차는 3차선에서 멈추어 섰고 차들이 옆 차선으로
쌩쌩 지나갔다. 의식을 잃었다. 병원으로 후송되어 검진하고
보니, 저의 심장이 매우 나빠서 살려면 심장이식수술이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갑자기 천근의 무게를 어깨에 맨 기분이었다. 내 앞에 있는 엘리베이터가 고장나버렸다. 너무 심하게 망가져
계단도 안보였다.
6개월을 병원에서 이식용 심장을 기다렸다. 6개월간 한번도 읽어보지 못한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세 번을 읽고 나니 하나님 말씀이 살아나서 육신이 되어 성령님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파도같이 내게 밀려온 하나님
말씀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22:39)’는 것이었다.
이 말씀이 나의 반응이 되면 참 삶을 살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 개의 율법을 주었다.
“(마22:39-41)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첫째, 네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은 내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둘째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제가 반응을 제대로 못해서 내 이웃과 내 가족에게 상처를 많이 주었구나 생각했다. 이 말씀을
읽기 전에는 오직
그들을 안 다치게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은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제 이 말씀에 반응을 제대로 하면 된다. 반응을 안 하면 가족 간에 아픔, 슬픔, 이혼이 찾아올 수 있고,
동료 간에 어려움과 질투가 생긴다. 하나님은
이런 것을 원치 않으신다. 아무리 좋은 비전과 소명이 있어도 우리가
반응을 안 하면 소용이 없다.
29살에 BMW를 타고 다녔지만 재산을 다 잃어버렸다. 보험금이 12억원 나왔지만 병원에서 다 계산되고, 수술
후 병원에서 오히려 5억원의 치료비를 저에게 더 달라고 했다. 병원에서 한
달치 먹을 약을 주고 나를 퇴원시켰다.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데 한
달에 1,500불(180만원)이다. 저는 그 돈이 없었다. 심장이식수술을 받은 환자를
찾아다니면서 남는 약을 달라고 구걸하면서 1년 반을 살았다
서너 살짜리 제 딸의 신발에 구멍이 나도 방법이 없었다.
병원에 있을 때 별다른 선택이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바른
반응을 할 수 있을까. 기도로 뿌리를 내리고 줄기와
가지가 나고 열매가 맺히는 것을 주님이 보여주셨다
나의 심장을 고쳐달라는 것이 처음 저의 기도제목이었다. 다른 분이 찾아와서도 저의 심장이 낫게 해달라는 것이
기도제목이었다.
어느 날 기도가 좀 더 차원
높은 기도로 완전히 바뀌었다. 나의 심장을 고쳐달라는 기도에서 나를 고쳐달라는
간단한 기도로 바뀐 것이다.
'Heal my Heart'에서
'Heal me'로 바뀌었다.
이제 이 기도에 반응한다. 내가 만일 심장이식수술을 받아 살아나가면 남의 심장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새사람이
되겠다고 결단했다.
저의 비전은 바르게 사는 것이요, 소명은 나의 심장이 아니라 내가 치유
받는 것이었다. ‘하나님, 나를
고쳐주시옵소서’
올바른 기도를 하니 새로운 비전과 소명을 보여주셨다. 이런 비전과 소명은 간단한 데서 온다. 설교나 책에서
올
수도 있고, 저의 경우는 신문에서 왔다.
이웃에 있는 자선단체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보고 저의 비전이 되었고 소명이 되었다. 비전과 소명이 있지만
반응을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아내에게 이런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하니 아내가 동의해주었다.
나를 위한 삶에서 이웃을 위한 삶으로 나아가고 싶다고 나를 새롭게 해달라고 외쳤다.
비전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소명은 ‘도움이 필요한 자를 도와주라.’
이에 대한 저의 반응은 새 비즈니스를 시작하겠다는 결심이었다.
약속의 땅이 어딘지 모르고 순종했다. 지금 순종하고 반응하면 하나님은 나를 위해 도성과 도시를 직접 짓고
계시다는 것을 확실히 믿었다.
여러분도 반응하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반응하라.
처음에는 어디를 갈지 몰라 우리
집 차고에서 장막생활을 시작했다.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있었다. 하나님 나라의
평안은 누군가가 우리 속에 임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지난 21년간 자신이 직접 도성을 지으셨다. 첫 5년간 필라델피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회사로
만들어주셨다. 그리고 가장 일하기 좋은 회사로 뽑혔다. 자랑스러운 상이다.
3년 전에 글로벌성공시대라는 한국 TV프로그램에 소개되었다.
2년 전에 미국정부 자문 건축회사로 선정되었다.
가라고 명령하실 때 무조건 순종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도성을 지으신다.
목사님이 보여주신 서적 “성경대로 비즈니스 하기 P31"이 4개월 전에 발행되어 나오게 되었다.
크리스찬 기업인과 직장인이 인품과 성품을 어떻게 가져야 하고, 몇 시에 출근을 해야 하고, 일은 어떻게 해야
하고, 투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돈은 어떻게 벌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 예비비는 무엇을 위해 써야 하는지 분명히
나와 있다.
2007년에 시작된 미국 불경기가 5년을 갔다. 한국의 IMF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웬만한 회사는 50-60%
해고를 했다.
모든 회사들이 해고를 할 그 때에, 우리는 해고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예비비는 어떻게 장만하고 써야 할지
잠언 31장에 나와 있다. 비가 오고 눈이 올 때 써라.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에서 직원이 내
이웃이었다.
“(잠31:20)
그는 곤고한 자에게 손을 펴며 궁핍한 자를 위하여 손을 내밀며”
“(잠31:8-9)
8 너는 말 못하는 자와 모든 고독한 자의 송사를 위하여 입을 열지니라
9 너는 입을 열어 공의로 재판하여 곤고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할지니라”
2년 뒤에 회사의 돈이 다 떨어졌다. 직원들을 불러서 이제 돈이 없으니 할 것은 하나밖에 없다고 선언하였다.
“믿든 안 믿든 기도하라.”
나도 차원
높은 기도를 하겠다고 말했다. 무엇을 기도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간증거리를 달라고 기도하겠다’고
답변했다.
지금 저는 간증을 하고 있다.
기도하고 1개월 반에 마이애미에서 가장 큰 건축프로젝트인 야구장건설 프로젝트를 땄다. 마이애미에 있는 많은
건축회사들이 왜 마이애미가 아닌 필라델피아에 있는 회사가 수주했느냐고 부러워했다.
2년간 아무도 해고하지 않고 회사를 지탱할 수 있었다.
어디에 갈지 모르지만 하나님 약속을 믿고 장막생활을
하면
하나님이 도성을 지으신다.
8년 전 어느 큰 신학교에서 저를 이사로 초청해서 하겠다고 해서 바로 반응해서 이사가 되겠다고 했다.
생각해보겠다고 하지 말고 바로 반응하라. 매일 매일 삶에 10-20초 더 이상 기다려 반응할 수 없다. 바로
반응해야 기쁨이 있다.
1년전 신학교에서 부이사장이 되어달라고 했다. 어떻게 회사에서 이웃을 위해 해야 하는지에 대해 4개월 전에
‘잠언 31장(P31)' 책이 발간되니, 신학교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100년전에는 신학교가 목사를 가르치고 기르는 학교였다. 그런데 이제는 졸업 학생수는 많고 목회할 교회가
없다. 그래서 선교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오늘날 미국과 한국은 가장 많은 선교사가 배출되는 나라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땅 끝까지가 어딘가? 지구가 둥그니 다시 자기 자리로 다시 돌아온 곳이 땅 끝이다. 땅 끝의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교회와 신학교가 아직 손을 대지 아니한 어마어마한 곳이 바로
비즈니스다. 아무도 손을 대지 않고 있는 곳이다.
세상과 타협하는 것을 정당화시킨다.
교회는 거룩한 곳이나 비즈니스는 그냥 하나님과 상관없는 곳이라 생각한다.
4달 전에 세 번째 프로젝트가 가동되었다. 저는 부르심에 응답했다. 자기가 다니는
일터에 가서 세상에 타협하지
말고 확실한 선교사 노릇을 해라는 것이다.
미국의 어느 신학교와 한국의 어느 신학교가 이에 뜻을 같이 하였다. 만 명의 기도의 용사가 이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 일터에 나갈 만 명의 선교사가 필요하다.
세월호같은 일이 안 일어나야 한다. 세월호 주인만이 문제가 아니다. 거기에서 일하는 25%의 기독교인이
반응을 안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의 회사에 하나님이 원치 않는 일을 받았을 때 삶 속에서 제대로 반응을 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삶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줄기가 올라가고 열매를 맺는 반응을 해야 한다.
친구 목사가 저에게 왜 이런 축복을 주었는지 질문을 하였다.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다시 친구 목사가 묻는다.
21년 전 생각나?
기억났다. 저는 이식 수술을 두 번했다. 21년 전과 16년 전. 21년 전에 이식수술할 때 안 좋은 심장을
받아서 했다. 5개월을 기다리는 데 죽는 자가 많고 심장이식수술하고 죽는 사람도 많다. 살아남을 확률은 50%다.
우리 중에 살아남을 자 누굴지 서로 얼굴을 본다.
5개월 기다린 후에 남들에게 거부당한 안 좋은 심장을 이식
수술했다.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으니 쓰레기통에
들어갈 그 심장이라도 이식
수술해서 살리자고 해서 수술을 했다.
16년 전에 한번 더 수술을 하면서 의사가 말했다. 이 심장을 잘 지켜라 . 법적으로 두 번밖에 심장이식수술을
못한다. 아무리 젊어도 이제 심장상태가 안 좋으면 하나님 나라로 보내야 한다. 잘 지켜라.
이때까지 그렇게 살고 있다.
4달 전에 책이 발간된 그 당시 딸이 하이킹
가자고 해서 걷는데 16년
만에 처음으로 가슴이 답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