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14,  2016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광복된 것을 기념하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경축하는 날.

 

 

 

 

 

 

 

 



 

 

 

 

 

 

 

 

 

 

 

 

 

 
 
 
 
 

 
 

 

 

 

 

 

 

 

 

 

 

미켈란젤로는 말년에 신앙 시 소네트

(인간·시간·죽음·영원에 대한 고찰을 근거로 쓴 시 형식)

여러 편 썼다네.

그에게 미술과 시는 하나이며, 그는 시인이자 예술가였다네.

 

파울리네 예배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십자가 처형 드로잉>,

Christ on the Cross with the Virgin and St John

Black chalk, white heightening, 412 x 279 mm

British Museum, London

그의 영혼의 외침을 그린 것이라네

 

그는 나이가 들면서 드로잉과 시를

자신의 신앙을 순화시키고, 자신을 늘 따라다니는

십자가 처형의 이미지를

자신의 종교적 시와 동등하게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네.

 

마리아와 주님이 가장 사랑한 제자 요한이

십자가 아래서 자신들의 몸을 웅크려,

죽어가는 주님의 다리를 따뜻하게 해주는 장면을

그는 드로잉 했네.

그리스도의 머리는 헝클어져 있고

얼굴에는 죽음의 그늘이 찾아와  

지친 모습으로 십자가에 매달려 있네.

그리스도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기 전,

요한에게 어머니 마리아의 여생을 부탁했네....

 

나는 북한에서 찍어 온 미켈란제로의 <십자가 처형 드로잉> 같은

가슴 아픈 사진 한 장 때문에 비참해 지고

가슴이 떨려 잠 못 이루네.

 

그나마 화려하게 장식된 십자가 반지를 벗어 버린 것이

다행이란 생각을 했네.

십자가에 다이아몬드를 박을까.

금빛이 더 빛나는 십자가 반지를 낄까?

안방 가장 잘 보이는 저 벽에 목수가 대패질 잘한

에나멜 칠한 반짝이는 십자가를 걸어 둘까.

손님들이 입을 모아 당신은 안목이 높으셔서

저렇게 멋진 십자가를 달아 놓으셨네 하겠지.

수치다. 이것은 수치다.

대형교회일수록 대형 십자가

작은 교회인들 화려하게 불 밝히려고 하지 않나

 

목에도 손 목에도 손가락에도 모자에도 자동차에도

부적처럼 걸려있네.

가슴이 훵하다.

왜 가슴에 품을 십자가는 없을까.

 

미케란제로는 <십자가 처형 드로잉>을 그리고

소네트 시를 쓰면서 인생을 마감했네.

 

북한 성도들은 십자가를 가슴에 담고 싶어

막대기를 꺾어 주님 달리신 처형의 십자가 만들고

형제자매 만나면 옷깃을 열고 재빨리 십자가를

가슴에 품게 하네.

그들이 바라는 십자가는 금으로 만든 것일까

나무 막대기 십자가를 만들면서 말이네.

 

아니네.

십자가를 버려야 하겠네.

저기 걸려있는 교회당 꼭대기의 십자가도 내려야 하겠네.

장식이라는 십자가는 모두 불태워야 하겠네.

 

그리고 북한 성도가 만든 나무막대기 십자가를

가슴에 품어야 하겠네.

십자가 처형의 드로잉을 그리고 소네트를 쓴

미켈란제로처럼.(언)

 

 

 

 

 

 

 

 

 

 

 

 

 

 

 

 

 

 

 

 

 

 

이들은 어떻게 한국 땅에 도착했을까.

난민. 한국 사회나 교회에서는 아직도 생소한 주제다.

 

 

"안산 단원경찰서에 와 있다. 난민 신청했다 4년 전 대법원까지 패소하고 미등록 체류하던 분이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린 것이다. 단속되자마자 자살을 예고하는 문자를 보내왔다."

 

 

[구권효 기자] 한가히 시간을 보내고 있던 주말, 페이스북 타임라인에서 이런 글과 마주쳤다. 경찰서에 있는 저 사람은 무슨 사연이 있기에 한국 땅을 밟았으며, 지난 4년을 숨죽이며 살다가 붙잡힌 그 속내는 어떨까. 가슴속이 팍팍해졌다.

 

글쓴이는 난민인권센터 김성인 사무국장. 2009년 난민인권센터를 만들고 지금까지 이끌어 왔다. 경찰에 붙잡힌 사람은 어떤 이유로 4년간 미등록으로 체류할 수밖에 없었을까. 난민법 체계에 구멍이 있는 건 아닐까.

 

이런저런 의문을 가지고 인터뷰를 요청했다. 수화기 건너 김 국장은, 안 그래도 기자에게 할 말이 있었다는 듯 선뜻 만나자고 했다. 8월 10일, 난민인권센터가 있는 서울 응암동 혁신센터에서 그를 만났다.

 

1층 카페에 자리를 잡자마자 김성인 국장은 이야기를 쏟아 냈다. 이러는 이유가 있었다. 언론이 난민 이슈를 다루는 방식은, 난민이 처한 상황의 열악함을 드러내 사람들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는 이런 방식을 원하지 않았다.

 

난민 신청자 개개인의 상황이 눈물겹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그가 잘 안다. 그럼에도 김 국장은 "이제는 좀 큰 틀에서 볼 때가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그에게서 난민 이슈에 대한 전 세계적인 큰 흐름을 들을 수 있었다.

김성인 국장은 기독교인이다. 그가 한국에서는 아직 생소한 난민 문제에 뛰어든 것도 기독교 세계관에 기반하고 있다. 그는 난민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한국교회의 구제·환대를 언급하며, 그 한계에 대해 솔직하게 논의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환대의 한계. 우리는 어디까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난민 인정 심사의 낡은 잣대

 

근대 이후 국가는 인권을 보호한다. 국가가 여러 이유로 자국민 인권을 보호할 수 없을 때를 대비해 국제사회는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난민협약)'도 만들었다. 난민협약은 1951년 제정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생긴 난민들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문제는 이 난민협약의 한계가 보이고 있는데, 이를 보완할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

 

"그때 정한 다섯 가지 박해 사유(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 구성원, 정치적 의견)가 지금까지 적용되고 있어요. 1950년대에는 그것이 적절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요즘에는 자국을 떠나는 상황이 복잡합니다.

 

난민이 많이 발생하는 아프리카나 중동은, 오랜 내전, 경기 침체, 기후 변화, 생산 시설 붕괴, 정부 독재, 실업률 증가 등등 삶을 살아갈 만한 기반이 붕괴돼 있는 거예요. 미래가 없는 거죠. 이런 복잡한 상황을 피해 자국을 떠나요. 그런데 이런 건 난민협약의 다섯 가지 박해 사유에 들어가기가 애매해요. 박해보다는 더 나은 삶을 위해, 경제적인 이유로 이주한다고 보는 거죠. 이러면 난민에 대한 이미지가 또 안 좋아지는 거고요."

 

한국은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난민법을 제정해 시행하는 나라다. 그러나 정부는 엄격한 잣대로 난민을 심사한다. 극심한 내전에 시달리는 시리아에서 온 사람도 난민 인정은커녕 심사도 받을 수 없게 했던 법무부다. 변화하는 난민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협약과 법 대상을 아주 좁게 본다.

 

"난민 인정받으려고 온 사람들 개개인 사연을 보면 기가 막히죠. 한 사람 한 사람 너무 안타까워요. 지금까지 개인 사연을 소개하며 사람들 동정심을 유발하는 방법으로 이들을 도와 왔어요. 언제까지 이런 방법으로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큰 틀에 문제가 있는데 이걸 안 건드리고 개개인에만 집중하는 건 이미 한계에 부딪혔다고 봐요."

 

넘을 수 없는 그 이름 '안보'

 

중동과 아프리카 몇몇 국가 내전으로 난민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9월, 터키 해변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네 살 꼬마 아일란 쿠르디는 전 세계를 움직였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과 미국·캐나다 등이 시리아 난민에 대해 전향적인 수용 원칙을 천명했다. 한국에서도 난민 상황을 안타까워하는 여론이 형성됐다.

 

그것도 잠깐. 11월 파리 테러로 난민에 대한 태도는 급격하게 얼어붙었다. 유럽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도 국가 안보를 최우선하는 극우파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조작극으로 밝혀졌지만 인천공항에서 아랍어로 쓰인 쪽지가 발견되고, 국회에서는 테러방지법이 통과됐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는 충격이었어요. 이건 단순히 한 국가가 EU를 탈퇴했다는 게 아니라, 근대 철학의 근거지에서 '환대'가 무너졌다는 거예요. 자기의 위험, 국가의 안보 앞에 다른 사람을 대접했던 문화가 사라져 버린 거죠. 유럽과 미국에서 이주민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극우적인 의견이 환영받고 있어요.

 

 

 

▲ 지난 6월, 영국은 국민 투표를 통해 EU를 탈퇴했다. 탈퇴 이유 중 하나로 경제적·안보적 상황에 대한 이주민 배격이 꼽힌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겪은 혼란과 비슷한 것 같아요. 낙원일 줄 알았던 사회주의 환상이 깨지고 사람들은 패닉에 빠졌죠. 지금은, 그래도 인간을 믿고 위험에 처한 사람을 보살펴야 한다는 문화에서 더 이상 환대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퍼지고 있는 거예요.

 

한국은 유럽·미국 등 서방국가와 분명 상황이 다른데도 그들의 불안·공포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어요. 게다가 철학이나 사상적 배경도 부족하죠. 정부가 국가 안보를 빌미로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키려 분위기를 조장한 면도 있고요. 법무부나 난민을 담당하는 부서도 굉장히 소극적이에요. 난민법의 구멍을 메워야 하는데 총대 메고 돌파할 의지가 있는 사람이 없어요."

 

 

예수님은 자기 몸을 내어 줬는데

 

김성인 국장은 이런 현상이 교회에도 심각한 도전이 된다고 말했다. "나그네를 환대하라"는 성경이 강조하는 정신이다. 마태복음 25장에는 "지극히 작은 자"를 대접한 일이 곧 예수님을 대접한 일이 된다.

 

"한국교회는 구제를 많이 해요. 그런데 더 이상 불쌍한 사람 개개인을 도와주는 시혜적 차원에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워요. 이주민들도 교회에 가면 뭐라도 주는 걸 알아요. 그러니 더 불쌍한 척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교회는 또 도와주고. 난민 이미지가 그렇게 고착돼요. 선의가 항상 옳은 건 아니죠.

 

난민은 시혜가 아니라 인권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그들이 한국 땅에서 독립적으로, 주체적으로 살 수 있도록 돕는 거예요. 교회가 깊이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요즘 대형 교회는 웬만하면 스스로 봉사 단체를 만들어서 일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 구제가 난민들을 주체적인 삶의 자리로 이끄는 것인지, 오히려 자립 기반을 해치는 방식이 아닌지 고민해야 해요."

 

물고기 주기는 쉽지만 낚시법 가르치는 건 쉽지 않다. 전문성이 필요하다. 난민 분야는 특히 난민 인권에 대한 이해와 당사자의 상황 등 고려할 부분이 많다. 김성인 국장은 교회가 전문 기관을 지원하는 게 차라리 낫다고 본다.

안보 앞에 무너진 환대,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좀 더 근본적인 고민도 있다. '국가 안보', '자기 안위' 앞에서 환대는 무너져 내렸다. 그런 시대다. 한국교회는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한국도 난민들을 굉장히 배격하고 있어요. 교회는 어떻습니까. '이주자 = 불법체류자 = 무슬림 = 테러'라는 등식이 너무 쉽게 형성되고 있어요. 돈을 조금씩 나누는 건 어려워하지 않지만 이렇게 자기 안위가 걱정되면 배격하는 거예요. 경제적 손해는 감수해도 자기 안전까지는 양보하지 않죠. 예수님은 자기 몸을 내어 주셨는데.

 

자기 안전이 위험하다고 그들을 배격한다면 지금까지의 환대는 뭐였던 건가요. 유럽이나 미국도 기독교가 배경인 나라잖아요. 그런 곳이 무너졌어요. 한국교회도 이 지점부터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난민인권센터는 2009년부터 난민에 대한 △법률 조력 △긴급 구호 △제도 개선 △인식 개선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난민인권센터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후원으로 운영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문의: 02-712-0620

- 후원 계좌: 국민은행 233001-04-225091(예금주: 난민인권센터)

 

 

 

 

 

 

 

 

 

 

 

 

 

 

 

 

 

 

 

 

 

 

 

 

<날은 저물고 길은 멀다>라는 책에서 엔도 슈사쿠는 ‘후미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후미에란 1629년 일본의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가 도입한 ‘가쿠레 기리시탄’(숨은 그리스도인)을 색출하기 위해 썼던 방법을 말한다.

예수님의 모습을 새긴 목판이나 금속판을 길거리에 놓고, 사람들을 불러서 밟고 지나가게 하는 방법이다.

 

교인들은 차마 밟지 못하고 멈칫거리거나,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면 신자로 판명해 처형했다. 이 때문에 수많은 신자들이 죽임을 당했지만, 막부에서는 그 숫자가 너무 많아서 다 죽이는 것이 꺼림칙했는지 배교하면 살려 주겠다고 했지만, 대부분은 배교를 거부하고 순교했다.

 

그런데 어떤 그리스도들은 살기 위해 예수님을 그린 목판을 밟고 지나갔다. 그들은 순교를 면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배교자며 배신자며 반역자인가? 순교자만 그리스도인인가?

 

오늘날 예수님의 목판을 밟고 지나가지 않은 그리스도인은 얼마나 되는가? 목사 중에 나와 보라. 장로 중에 나와보라. 집사 중에 나와보라. 성가대원 중에 나와 보라.. 이 배교자들아.  그렇다면 교회에는 순교자가 없어서 교회가 아닌가?

 

<죄와 벌>의 작가 도스토옙스키가 만난 예수님은 누구셨던가? 도스토옙스키는 1847년 러시아 차르체제에서 급진적인 정치서클에 가담했다가 사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다.

 

극적인 순간에 죽음을 면했지만, 4년 동안 시베리아에서 강제노동을 하고, 뒤이어 4년 동안 군복무를 선고받았다. 당시 그는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책도 펜도 없이 지내야 했는데,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신약성서 한 권뿐이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을 만난 도스토옙스키는 마흔 살이 다 되어 페테르부르크에 돌아와 자신이 발견한 은밀하고 과감한 사랑을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예수님보다 더 아름답고 심오하고 동정심 있고 이성적이고 인간적이고 완전한 존재는 없다고 믿습니다. 나는 질투 섞인 사랑을 고백합니다. 예수님과 같은 존재는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있을 수도 없습니다. 나는 또 말하고 싶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예수님이 진실 밖에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면, 그 진실이 참으로 예수님 밖에 있다면, 나는 차라리 진실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남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도대체 도스코옙스키의 마음을 사로잡은 예수님은 어떤 분이었을까, 궁금하다. 그 해답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이반의 입을 통해 발설된 ‘대심문관’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16세기 스페인의 세비야에서 대심문관(추기경)은 어느 여름밤 종교재판을 통해 유다인을 포함해 무수한 사람을 이단으로 몰아 죽였다. 수백 명의 무고한 이들이 이단자로 몰려 화형에 처해진 다음날 이곳에 예수님이 나타났다. 대심문관이 예수님에게 지하감옥에서 따져 물었다. “당신은 어째서 우리를 방해하러 온 거요?”

 

추기경은 기적과 신비와 권위만이 세상 사람들을 교회에 묶어둘 수 있다고 말한다. 말씀이 아니라 빵을 주고, 지상의 삶보다 내세를 믿게 하고, 교회 가르침에 어긋난 이들을 벌주는 권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심문관이 보기에 예수님이 광야에서 사탄의 요구를 들어주었다면, 세상은 더 살만해졌을 것이라 믿는다. 빵 때문에 도둑질 하고 슬피 우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라 말한다. 그러니 이제 와서 교회가 제공한 빵이 사실 ‘돌’에 불과하다고, ‘하나님의 말씀’에 다시 귀를 기울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윽박지른다.

 

예수님의 입을 막기 위해 예수님을 이단자로 처형하려는 대심문관에게 예수님은 한 마디도 대꾸하지 않았다. 다만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대심문관의 입술에 부드러운 키스를 해주고, 그 자리를 떠났다.

 

예수님은 결코 천군만마를 이끌고 세비야에 온 것이 아니었다. 이천 년 전처럼 누추한 모습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예수님은 유다의 키스를 왜 대심문관에게 돌려주었을까? 그래도 진리는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창백한 입술을 가진 대심문관도 가엾은 사람이라는 뜻이었을까?

 

아마 이때도 예수님은 고뇌의 빛을 머금고, “다만 사랑할 뿐”이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모든 종교의 각질을 벗고, 모든 교회의 교리를 넘어 “다만 사랑할 뿐”이라고.

 

헬레니즘 시대, 카타콤에서는 예수님을 그리스풍의 젊은이 모습으로 그렸다. 수염도 없이 미끈하게 잘 생긴, 가장 아름답고 가장 순수하며 가장 거룩한 청년 예수다.

 

비잔틴 시대에 들어와서 성당 천정화와 제단화에 새겨진 예수님은 군주의 모습이며, 천상천하를 호령하는 대심판관의 모습이다. 그가 가장 사랑했던 가난한 백성들과 전혀 다른 황제의 모습을 가진 예수, 왕관을 쓰고 금박 옷을 입은 예수상을 보면서, 그들의 신심에 예수님은 기뻐했을까?

 

여전히 예수님은 볼품없는 얼굴로 고뇌의 빛을 지우지 못했을 것이다. 이게 아닌데, 하고 말이다.

 

언제나 ‘사랑 때문에’ 누추하고 남루한 채로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 예수님을 우리는 얼마나 사랑할까? 이때에 도스토옙스키처럼 말하고 싶다.

“교회가 나에게 아무리 영광의 예수를 가르친다 해도, 나는 차라리 누추한 예수님과 함께 남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진절머리 나고 지저분하고 형편없는 오늘날의 교회와 순교자가 되기는커녕 예수님의 목판을 밟고 지나간 배도자 같은 여리고 여린 크리스천들이라 해도 오늘도 누추한 모습의 주님은 "다만 사랑할 뿐"이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장재언)

 

 

 

 

 

 

 

 
 

 

 

 

 

 

 

 

 

 

 

 

이 정도 규모를 가지고 농사라는 표현을 하면 야단 맞지 않을는지 모르겠다.   아니다. 호미 질을 하고 삽질을 하고 장갑을 끼고 흙을 주물렀으니 농사는 농사다.. 

 

모종이 구해지지 않아 시기를 놓쳤다고 생각했다.

다행이 뒤 늦게 모종을 구해 담장 밖에 텃밭을 일구었다.

 

사정이 생겨 담장 안 쪽에 있는 뙈기 밭으로 모종을 옮기게 되었다.

시기를 놓친데다 모종을 두 번이나 옮겼으니 영농(營農 ?)의 재미는 기대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며 정성을 다했다.

오이 앞에는 커다란 화분에 할라뻬뇨(매운 멕시칸 고추)를 심었다.

멕시칸 고추는 잎이 초록을 넘어 검푸른 색깔을 띄우며 잘도 자라주었다.   고추를 따먹어 보니 과연 청양고추만큼 매웠다.

뿐 아니다. 오이넝쿨 아래에는 들깨나무가 십여 그루 자라고 있다. 깻잎을 따내도 따내도 끝도 없이 자라기만 한다.

 

나는 오이가 자라서 주렁주렁 매달리기를 기대하며

뙤약볕에서 지붕을 얽어 맸다.

그런데 자고 나면 어린 오이가 하나 둘 사라진다.

그 어린 오이가 다 자라기도 전에 밥상에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밥상에 올라 온 연유(緣由)는 오이는 너무 자라면 맛이 없어서란다.

 

나는 오이반찬을 안 먹어도 좋으니 주렁주렁 매달린 오이를 좀 보자고 우겨댔다.  언쟁까지 벌였다.

주렁주렁 매달리는 걸 즐기려면 표주박이나 수세미를 심어야 한다는 핀잔을 들어 가면서.

그런데 내년에는 표주박이나 수세미 모종을 어디서 구하지?(언)

 

 

 

 

 

해가 뜰 무렵에 찍은 사진

 

 

 

 

한낮에 찍은 사진

 

 

 

열매 중 대표로 뽑힌 포토제닉(photogenic) 오이

 

 

 

 

맵기로 유명한 멕시칸 고추 할라뻬뇨(jalapeno) 

화분에서도 잘 자라고 있다.

 

 

 

해 질 무렵에 찍은 사진.

노란 오이 꽃도 꽃은 꽃이다,

 찾아보기 힘든 꿀벌들이 날아와 오이농사가 잘 되었다고

노래 부르고 떠난다. (언)

 

 

 

 

 

 

 

 

 

 

 

 

 

 

 

 

 

 

 

 

통일된 베트남교회를 통해 보는 통일한국교회

 

1954년, 베트남이 남북으로 분단되자 대부분의 교회가 남쪽으로 이주했다. 북쪽 정부인 월맹의 시각에서 교회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남쪽정부를 돕는 미제의 앞잡이로 인식되었다.

 

게다가 미국은 정글에서 사는 소수민족을 훈련시켜 공산당의 정규군 및 게릴라인 베트콩과 싸우게 했는데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인이었다. 이런 배경 때문에 교회는 반동세력이며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베트남교회는 공산화 이후에 한 번도 인정받지 못하다가 2000년에 겨우 한 교단만 공식 기독교로 공인을 받았다. 그 후 1975년 전에 조직되었던 교단만 공인을 받고, 그 이후 설립된 교단이나 교회는 가정교회 상태로 남아있다.

 

 

베트남교회와 성도들에 대한 핍박

 

“1975년 공산화 후 교회에 대한 핍박이 시작되자 많은 사람들이 변절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고, 또 외국으로 떠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정부는 큰 도시에 한 교회만을 남겨두고 모두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500~700명 모이는 교회성도가 30~40명으로 줄고, 목회자들은 죽임을 당하고, 헌금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이 가정에 모여 예배하면서 비밀로 모이는 가정교회가 형성되었습니다. 이들의 숫자는 많지 않았지만 믿음이 강했습니다.”

 

공산화되기 전부터 예수를 믿었던 한 목회자는 공산화 이후 핍박으로 인해 교회가 당했던 아픔과 어려움을 담담히 들려줬다. 그러면서 가정에 모여 은밀하게 예배하며 믿음을 지켰던 성도들의 신앙이야말로 “숫자는 많지 않았지만 믿음이 강했다”고 거듭거듭 강조했다.

 

“1975년부터 1985년까지 기독교인들은 대학에 다닐 수 없었습니다. 의사, 교사, 공무원도 할 수 없고 노동만 해야 했습니다. 새벽에 30분 정도 숨어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매일 노동에 동원되었습니다.

 

이렇게 먹을 것이 풍성한 우리나라에서 먹을 것을 주지 않아 바나나껍질과 마 껍질 등으로 연명하면서 주일에도 노동에 동원되어 시달렸습니다. 저도 복음을 전하다 많은 핍박과 감옥에도 세 번에 걸쳐 9년 동안 갇혀 있었습니다.

1986년과 1987년 그리고 1989년~95년까지 감옥에 갇혀 있다 석방되었습니다. 감옥에 있는 동안 먹을 것도 없고, 더운 날씨에 벼룩과 모기 각종 벌레에 물려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계속해 감옥에 갇혔다 석방되기를 반복하는 동안 집도 빼앗기고, 여권과 거주증, 심지어 이름까지 삭제되어 신분조차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제게는 여권이 발급되지 않아 가까운 이웃나라조차 갈 수 없습니다.”

 

비까지 내려 온 몸을 끈적끈적하게 만드는 습한 날씨에 베트남교회와 자신이 당한 핍박에 대해 들려주는 목회자의 고백이 왠지 낯설지가 않았다. 검은 빛에 주름진 그의 얼굴에서 북한과 중국에서 만났던 성도들의 모습이 투사되어 보여졌다.

 

지금 베트남의 기독교는 한마디로 박해와 개방의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헌법에는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고 있으나 교회의 모든 것을 사회주의 이념과 활동에 종속시킬 것을 요구하며, 모든 교회의 활동은 교회 내에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모든 교회 활동과 임직은 사전승인을 받아야 하며, 전도하는 것은 믿지 않을 자유를 침범한다는 이유로 금지된다.

 

1990년 이후 기독교인의 억압, 고문, 투옥 등이 증가해 1992년 한 해만도 60명이 넘는 기독교인들이 투옥되었다. 교회는 등록을 요구 당하면서 신자들은 정부와 타협할 것을 강요당하고 있다. 공산정권의 탄압을 받아 온 북부지역의 교회는 큰 고통을 받고 있으며 많은 교회가 폐쇄되거나 파괴되었다.

 

 공개적인 복음전도, 순회사역, 문서제작 등이 금지되고 외국의 기독교인들과 접촉할 시 경계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핍박이 계속됨에도 베트남교회에 부흥의 불씨가 살아나고 있다.

 

 

 

 

 

 

고난 중에도 타오르는 복음의 불길

 

“병든 사람들이 치유되고 못된 짓을 하는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변화되어 새사람이 되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았습니다. 한 교회를 포크레인으로 밀어버리려 할 때 성도들이 모두 바닥에 드러누워 ‘교회를 밀어버리기 전에 우리를 밀고 지나가라’고 하며 교회를 지키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고난이 올 때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일사각오로 믿음을 지키는 이들을 통해 겉으로는 교회 문이 닫힌 듯 보이나 실상은 교회가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 신앙의 초보적인 지식을 위한 자료나 성경 등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1995년 미국과 수교를 맺으면서 베트남선교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성경이 사람을 바꾸어 놨습니다.”

간단하고도 명료한 첫마디였다.

 

“성도들은 조용하고 은밀하게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성경이 없으니 말씀을 암송하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신학교 없는 상태에서 우리들은 집에 모여 미국과 한국성도들이 보내준 성경을 가지고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특히 한국인들이 우리에게 성경을 많이 공급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푹목사에게 핍박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미국인과 한국인들이 어떻게 성경을 공급할 수 있었는지 물었다.

 

“한국사역자들이 베트남 성도들과 접촉을 할 때 관광객처럼 가방을 들고 식당에 들어가 식사를 한 뒤 성경이 든 가방을 그 자리에 놓고 나옵니다. 그러면 사전에 약속 한 베트남 사역자가 그 가방을 가지고 나오는 형태로 성경을 공급해 주었습니다.”

 

모퉁이돌선교회가 베트남에 배달했던 성경을 직접 받아 본 현지 사역자로부터 듣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던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하나님은 고난을 이기며 믿음을 지키는 이들을 버려두지 않으시고 마치 로뎀나무 밑에서 기진했던 엘리야에게 까마귀를 동원해 고기를 먹이시고 힘을 얻고 달려갈 수 있게 하셨던 것처럼 베트남교회와 성도들의 필요를 세계교회로 감당할 수 있게 하셨다.

 

베트남교회는 전도폭발을 통해 부흥하고 있다

 

“저희 교회는 2001년부터 교회 건물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2년부터 한국에서 오신 한국 선교사로부터 전도폭발에 대해 듣고 배웠습니다. 2006년부터 교회에 전도폭발훈련을 시작해 많은 성도들이 헌신해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600~700명 어른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5개의 기도처가 있으며 토요일마다 전도 팀이 나가 복음전하는 사역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에 교회를 세우려고 기도와 헌금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베트남교회는 한국교회의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저희 교회가 속한 교단만도 한국교회에서 200여개 이상의 교회를 건축해 주었습니다.”

 

여전히 어려움이 많지만 베트남 교회는 전도폭발을 통해 부흥이 일어나고 있다. 특별히 전도폭발훈련을 받고 난 뒤 수 많은 젊은이들에게 복음을 전해 사역자들로 헌신케 하고 있는 쭈남 할아버지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 때인지도 모르게 마약을 흡입하기 시작해 중독이 된 저는 가족들도 포기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렇게 마약을 흡입해 감옥에 들어갔다가 나와 다시 또 마약에 손을 대 감옥에 갇히기를 반복했습니다.”

 

두 손을 모은 채 이야기를 시작한 쭈남 할아버지는 검은 얼굴에 머리까지 하얀 백발이어서 나이가 많아 들어보였다. 말씀을 하실 때도 이가 다 빠져 발음이 새어 나올 뿐만 아니라 한쪽 눈의 눈꺼풀도 조절되지 않아 감겨 있을 때가 많았다. 할아버지는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한번은 제가 있는 감방에 특이한 죄수가 들어왔습니다. 폭력적이고 거친 죄수들 뿐인 곳에서도 그 사람은 아주 조용하고 평안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당신은 어떻게 이런 곳에서도 그렇게 평안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자신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제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부터 마약중독자들에게 주는 안정제를 먹으면 제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파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에도 쭈남은 마약중독의 고통이 견딜 수 없어 죽음을 선택하려던 순간 친구의 초대를 받아 교회를 가게 되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그 죄를 용서받고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설교자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예수를 믿으면 죽어서도 영원히 살 수 있다고? 아니 그 동안 내가 그렇게 많이 다녔던 절에서는 한 번도 죽음에 대한 답을 듣지 못했는데, 죄인인 나도 예수 믿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단 말이지~~~”

쭈남의 마음은 뛸 듯이 기쁨으로 차 올랐다.

 

그 때부터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교회에 가서 말씀을 듣고 성경을 공부했다. 그리고 40년 넘도록 그를 지독하게 괴롭혔던 마약중독의 사슬이 단숨에 끊어졌다. 문제만 일으키던 골치덩이였던 쭈남의 변화에 가장 먼저 가족들이 놀라 예수를 믿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기도하던 그 때에 한 선교사를 통하여 전도폭발훈련을 받게 되었다. 전도폭발훈련을 마치고 그가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마약중독자들이 수용되어 있는 병원이었다.

 

쭈남이 한 사람에게 다가가 “우리 인간은 죄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죄인 된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 죄 값을 치르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기만 하면 우리 죄가 사함 받고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 믿기 원하십니까?”라고 전하는 동안 어느 사이 병실에 있던 마약중독자들이 모두 다가와 빙 둘러서서 듣고 함께 예수를 영접하는 일들이 일어났다. 하루에 50명 이상씩 예수를 믿고 주께로 돌아왔다.

 

그는 병원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점점 더 지경을 넓혀 나가 오토바이를 타고 5시간 이상 가서 복음을 전하고, 버스와 배를 타고 15시간 이상 멀리 떨어진 지역까지 가서 복음전하는 사역을 20년 동안 계속해 오고 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오직 복음전하는 사역에 전념하는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께 하루 한 명 이상 전도하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그 약속을 지금까지 지킬 수 있게 하시고, 천 명 이상 전도할 수 있도록 역사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지금도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 놓고 매일 기도하며 전도하고 있습니다.”

 

63세의 쭈남 할아버지가 들려준 고백이다.

 

겉모습은 깡마르고 깊은 주름으로 쭈글쭈글한 얼굴이지만 그의 가슴에 타오르는 복음에 대한 열정은 베트남 열도를 뒤덮고도 남을 듯 하였다. 이처럼 통일 시 아니 지금 북한이 어떤 형태로든 문이 열려 베트남과 같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되어, 전도폭발 등을 통해 복음 전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게 된다. 

 

 

 

 

 

 

 

 

 

 

 

 

 

 

 

 

 

 

 

 

 

 

 

슬럼프에 빠져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던 마이클 펠프스는 자신을 위기에서 구한 것이 릭 워렌 목사의 ‘목적이 이끄는 삶’이었다고 밝혔다. AP뉴시스

 

개인 통산 21번째 금메달을 거머쥔 미국의 수영선수 마이클 펠프스(31)가 2년 전 슬럼프에 빠졌을 때 새들백교회 릭 워렌 목사의 저서 ‘목적이 이끄는삶’이 그를 잡아줬다고 고백했다.

 

미국 스포츠 전문채널 ESPN은 ‘마이클 펠프스의 진전’이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펠프스가 2014년 수영장 밖의 자신에 대한 정체성의 혼란으로 폭음을 하게 됐고 그의 인생을 포기할 생각까지 했었다고 보도했다.

 

 

 

 

 

ESPN에 따르면 펠프스는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은퇴한 후 삶의 목적을 상실했다.

수영이 인생이 전부였던 그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랐다. 과음을 일삼았고 대마초와 도박에 빠지기도 했다.

 

골프에 도전하기도 했지만 포기했다. 펠프스의 부모는 그가 9세 때 이혼했는데 이는 펠프스에게 정체성 상실이라는 깊은 상처를 안겼다.

 

그러던 2014년 9월 말, 음주운전으로 체포됐다. 이는 지난 10년 사이 두 번째 음주운전이었다. 그는 슬럼프에 빠졌고 자존감은 극도로 낮아졌다.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파탄에 이르며 자살 충동을 느꼈다.

 

펠프스는 NBC방송 프로그램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의 최선의 선택은 여기서 삶을 끝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당시 심경을 전하기도 했다.

 

수렁에 빠진 펠프스를 구하기 위해 손을 내민 것은 그의 오랜 친구이자 전 미식축구 선수인 레이 루이스였다.

 

루이스는 펠프스에게 치유 센터를 소개했고, 책 한 권을 건네줬다. 릭 워렌 목사의 베스트셀러 ‘목적이 이끄는 삶’이었다.

 

펠프스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들여 2015년 10월, 애리조나 주에 위치한 심리치유 및 중독 치료 센터인 ‘메도우즈’에 입소해 첫날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던 4일째 되던 날, 펠프스는 루이스에게 전화를 걸어 “놀라운 책이다. 나를 살렸다”고 외쳤다. 펠프스는 회복 속도가 빨랐고 책은 그의 삶 전체를 바꿨다.

 

완전히 회복한 펠프스는 센터의 동료환자들에게 이 책을 읽어주었고 ‘설교자 마이크’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펠프스는 “리우올림픽에서 100% 기량을 발휘할 준비가 됐다”며 “내 인생의 다음 장으로 넘어와 행복하다.  수영 경력을 이어갈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펠프스의 방송 이후 워렌 목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짧은 메시지를 올렸다. “펠프스가 올림픽이 시작되기 전에 영적인 깨달음을 얻어 기쁘고 반갑다. 그가 올림픽 대표 선수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이반석 목사(모퉁이돌선교회 총무)

 

 

통일이 되면 북한교회 재건 또는 개척을 누가 해야 할까? 지난 수 년 동안 통일을 준비해 온 모퉁이돌선교회는 통일 시 북한에 외부인들이 들어가 자유로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상황이 될 때, 북한교회에 가장 적합한 목회자는 누가 되어야 할까? 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누가 목회자로 세워지느냐에 따라서 교회의 모습이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일이 되면 과연 누가 북한교회 목회자가 되어야 할까? 아니 누가 적합한 목회자일까?

 

1906년 9월 10일, 평양을 중심으로 조선에 와 있던 190여명의 선교사들이 모여 교파를 초월한 ‘조선예수교회’라는 한 교회만을 세우자고 결정하였다. 비록 일본의 식민지배와 공산치하로 인해 북한교회의 건물은 무너지고 모두 사라졌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무형의 교회가 존재하고 있다.

 

통일이 되면 한국의 많은 교단과 교회가 북한에 교회를 세울 것이다. 이렇게 될 때 하나의 교회로 존재해 왔던 북한지하교회는 그 형태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때 누가 목회를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를 함께 고민하며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지금까지 공산주의의 지배하에서 살아온 북한지하교회 사역자가 북한교회를 담당해야 할까? 아니면 탈북민 목회자에게 통일 후 북한교회를 맡겨야 할까?

그도 아니면 남한에서 목회를 하다가 북한교회에 대한 사명을 느낀 목회자들이나, 해외 목회자들이 그 사역을 맡아야 할까? 아니면 북한선교사역에 뜻을 가졌으나 환경이 허락되지 않아 타국에서 선교를 하던 선교사들이 북한에 들어가 교회개척사역을 맡아야 하는 걸까? 쉽지 않은 문제이다.

 

첫째, 통일 시 남한의 목회자가 북한에 가서 교회개척을 하는 경우이다. 먼저 남한의 목회자들은 문화충격과 세계관 차이에 당황하게 될 것이다. 그리할 때 남한교회에 팽배한 물량공세로 목회할 가능성이 우려된다. 그리고 언어에 원활한 소통이 어려운 점도 있다.

 

이미 남북한은 70년 이상 분단되어 이질화된 언어와 문법이 많이 달라져 있다. 이런 상태에서 전도할 시 많은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 문화도 서로 다른 것이 많다. 더군다나 북한 사람들은 통일이 되었을 때 심한 패배의식에서 비롯된 무기력과 허탈감에 빠져 있을 것이고, 남한 사람들에 대하여 열등의식과 적대감을 표할 수 있다.

 

그것이 지나치면 분노가 되어 지배층으로 보여지는 목회자들에게 표출되는 것을 과연 감당 할 수 있을까? 또한 남한에 팽배한 개인주의, 경쟁심, 개방적이고 남한의 자본주의가 우월하다는 것이 은연중에 표현될 때 하나님보다도 자본주의적인 것들이 먼저 전달되지 않을까도 염려된다.

 

둘째, 탈북한 목회자가 북한으로 돌아가 교회재건과 개척을 하는 경우이다. 대다수의 탈북목회자들이 통일 후 북한에 가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북한사람들에게 환영보다는 ‘우리가 고생할 때 피해있다가 이제 돌아와 교회주인이 되려 하느냐?’는 질타를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들이 고향의 가족과 이웃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목회를 하더라도 한 때 우리를 배반했다는 꼬리표가 따라 다닐 수 있다.

 

이런 상황이 심한 경우 다시 남한으로 돌아올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남한에 정착해서 교회사역을 하는 탈북목회자들 중 통일 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북한에 갈 수 있는 목회자가 얼마나 될까? 뿐만 아니라 탈북목회자들 중 대다수가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서 신앙생활하며 자라지도 않았고, 북한에서 지하교회를 직접 보았거나 신앙생활을 하지도 않았다.

 

얼마전 모처에서 탈북목회자들을 만났을 때 ‘북한에 지하교회가 없다’라고 하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모퉁이돌선교회에서 나눠 온 북한에서의 지하교회 활동이 믿어지지 않는다며 삼엄한 북한의 통제에서 예수 믿는 사람이 정말 있냐고 되묻기도 했다.

 

필자가 그들에게 ‘하나님이 김일성 보다 약하십니까?’ 질문을 하자 ‘북한이 어떤 곳인데… 김일성 밖에 존재할 수 없는 북한’이라며 지하교회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그들과의 만남을 뒤로 하고 돌아오면서 북한지하교회를 부정하는 이들에게 북한교회 개척을 맡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셋째, 해외사역자가 북한에 들어가 사역하는 것은 어떠할까?

 

해외 사역자들은 북한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무척 힘들 것이다. 통일이 되어도 북한의 어려운 상황은 일순간에 변하지 않을 것이기에 해외사역자들은 대부분 평양이나 큰 도시에 머물면서 사역할 가능성이 크다.

 

이로 인해 북한사람들과 거리가 생기고, 문화적으로도 생각하는 방식, 세계관 등이 개방을 경험해보지 못한 북한사람들과 충돌 및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 결국 가치관의 혼란 등으로 북한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넷째, 북한지하교회성도들과 지도자들은 어떠할까? 북한지하교회성도들은 극도로 통제된 사회에서 신앙을 지켜왔기에 목회자 훈련과 지식이 부족하다. 이들에 대해 한국교회는 목사안수도 받지 않았다며 목회자로 인정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목회학 석사를 받아야 목사안수를 받을 수 있는 남한교회의 기준에 맞추도록 북한교회를 닥달할 것이다.

 

현재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킬 북한지하교회지도자는 없다. 북한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초등학교밖에 다닐 수 없는 사람이 많으며, 공산주의체제 하에서 왜곡된 교육에 의해 일반상식도, 세계역사도, 기초적 신앙상식이 부족한 사람이 많을 텐데 이 지하교회지도자들을 어떻게 할까?

 

더군다나 지금까지 계급투쟁에 따라 지시와 명령에 익숙한 북한사역자들은 통제로 인해 수동적이며 타율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어, 자발적으로 목회활동에 참여하는 것에도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

 

당의 지시에 따라 살아온 이들에게 능동적인 교회목회를 강요할 때 과연 어떤 현상이 일어날지 궁금하다. 최근 들어 제한적으로 시장경제를 체험하고 있는 그들이 남한교회의 경제적 지원 앞에서도 당당하고, 균형 있고, 지혜로운 목회자가 되어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떳떳한 모습으로 교회를 이끌어 나갈 수 있을지 염려된다.

 

이처럼 지금까지 언급했던, 남한교회, 탈북민, 해외교포, 그리고 북한지하교회 지도자들 모두 통일 시 북한교회를 담당하는데 있어 어려운 점들이 많음을 살펴봤다.

 

분명한 것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요 하나님의 교회이다. 성령이 역사하여야 할 교회가 이러한 배경을 가진 각자들이 통일 시 주체가 되어 북한에 있는 교회를 운영하려고 한다면 그 교회는 너무나 빨리 세속화되어 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주체이든지 성령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령의 능력과 지혜를 힘입어 순종함으로 오직 성령하나님이 주관하는 교회가 북한에 세워지기를 간곡하게 기도하면서,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부지런히 남북한의 문화에 대해 배우고 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2016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조정 선수들이 현지에서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2016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조정 선수들이 현지에서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나선 브라질 여자 수구대표팀이 러시아와 예선 경기를 펼치고 있는 동료들을 응원하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나선 브라질 여자 수구대표팀이

러시아와 예선 경기를 펼치고 있는 동료들을 응원하고 있다.

 

 

 

프랑스 남부 비트롤 인근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로 3천300 헥타아르를 태우고 난 다음날 촬영한 현장.

 

프랑스 남부 비트롤 인근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로

3천300 헥타아르를 태우고 난 다음날 촬영한 현장.

 

 

 

공격을 받아 위쪽 부리를 잃은 큰부리새가 지난 10일 코스타리카 알라후엘라의 &#39;주 이브&#39; 동물보호소에서 3D 프린터로 제작한 인공 부리를 사용해 음식을 먹고있다.

 

공격을 받아 위쪽 부리를 잃은 큰부리새가 지난 10일

코스타리카 알라후엘라의 '주 이브' 동물보호소에서 3D 프린터로 제작한

인공 부리를 사용해 음식을 먹고있다.

 

 

 

이탈리아 해안경비대가 지중해 중부 해역에서 난민을 구조하고 있다.

 

이탈리아 해안경비대가 지중해 중부 해역에서 난민을 구조하고 있다.

 

 

 

아기를 바구니에 담아 이동하고 있는 인도 알라하바드 주민.

 

아기를 바구니에 담아 이동하고 있는 인도 알라하바드 주민.

 

 

 

중국 청두의 한 전통 진료소에서 주민들이 부항을 시술받고 있다. &nbsp;

 

중국 청두의 한 전통 진료소에서 주민들이 부항을 시술받고 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서쪽 50km 지점에 있는 한 사설 동물원 근무자가 갓 태어난 백호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nbsp;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서쪽 50km 지점에 있는 한 사설 동물원 근무자가

갓 태어난 백호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물탱크를 정비하고 있는 인도 뭄바이 주민.

 

물탱크를 정비하고 있는 인도 뭄바이 주민.

 

 

 

지난 10일 중국 쓰촨성 난충에서 물소들이 무리지어 강을 건너고 있다.

 

지난 10일 중국 쓰촨성 난충에서 물소들이 무리지어 강을 건너고 있다.

 

 

 

 

 

 

14일 파키스탄 독립기념일을 앞두고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한 상인이 국기로 얼굴을 칠한 채 영업을 준비하고 있다. &nbsp;

 

14일 파키스탄 독립기념일을 앞두고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한 상인이

국기로 얼굴을 칠한 채 영업을 준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도심의 분수대 주변에 앉아있는 시민들. &nbsp;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도심의 분수대 주변에 앉아있는 시민들.
 

 

 

 

9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진행된 2016 하계올림픽 여자 역도 63kg 급에서 북한대표 최효심 선수가 힘차게 역기를 들어올리고 있다.

 

9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진행된 2016 하계올림픽 여자 역도 63kg 급에서

북한대표 최효심 선수가 힘차게 역기를 들어올리고 있다.

 

 

 

지난 9일 포르투갈 마데이라 섬 최대도시 푼샬에서 발생한 대규모 화재 장면. &nbsp;

 

지난 9일 포르투갈 마데이라 섬 최대도시 푼샬에서 발생한 대규모 화재 장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진행된 2016 하계 올림픽 수영 남자 자유형 100m 준결승에서 사진기자들이 경기 장면을 담고 있다. &nbsp;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진행된 2016 하계 올림픽 수영 남자 자유형 100m 준결승에서

사진기자들이 경기 장면을 담고 있다.
 

 

 

 

예멘 사나의 실향민 캠프에 앉아 있는 한 남자. &nbsp;

 

예멘 사나의 실향민 캠프에 앉아 있는 한 남자.
 

 

 

 

중국 산시성 북부 도시 다퉁에서 건축물 폭파 해체 작업이 진행중이다.

 

중국 산시성 북부 도시 다퉁에서 건축물 폭파 해체 작업이 진행중이다.

 

 

 

지난 9일 독일 중부 도시 에르푸르트에서 푸치니 오페라 &#39;토스카&#39;에 플로리아 토스카 역으로 출연하는 네덜란드 출신 소프라노 가수 켈리 고드가 리허설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9일 독일 중부 도시 에르푸르트에서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에

플로리아 토스카 역으로 출연하는 네덜란드 출신 소프라노 가수 켈리 고드가 리허설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스 내 마케도니아 접경지대에 있는 이도메니 난민촌 인근의 해바라기 밭.

 

그리스 내 마케도니아 접경지대에 있는 이도메니 난민촌 인근의 해바라기 밭.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2016 하계 올림픽 승마 경기장.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2016 하계 올림픽 승마 경기장.

 

 

 

싱가포르에서 펼쳐진 51주년 국경일 퍼레이드 현장. 인도네시아 극단주의 단체의 공격 모의가 알려진 뒤 육&middot;해&middot;공을 포괄하는 삼엄한 경비 속에서 행사가 진행됐다. 매년 8월 9일 싱가포르는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으로부터 독립한 날을 기념한다.

 

싱가포르에서 펼쳐진 51주년 국경일 퍼레이드 현장.

인도네시아 극단주의 단체의 공격 모의가 알려진 뒤 육·해·공을 포괄하는

삼엄한 경비 속에서 행사가 진행됐다. 매년 8월 9일 싱가포르는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으로부터 독립한 날을 기념한다.

 

 

 

정부군의 만행에 반대한다며 16년동안 단식투쟁을 벌여온 인도의 여성운동가 이롬 샤르밀라(44&middot;가운데)가 마니푸르주 북동부에서 법원에 출두한 뒤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이날 단식을 중단한 샤르밀라의 기록은 세계 최장기 단식투쟁으로 남았다. 샤르밀라는 지난 2000년 11월 정부군이 버스정류장에서 주민 10명을 사살하는 것을 목격한 뒤 군 특별권한법에 반대하는 단식투쟁을 이어왔다.&nbsp; &nbsp;

 

정부군의 만행에 반대한다며 16년동안 단식투쟁을 벌여온

인도의 여성운동가 이롬 샤르밀라(44·가운데)가 마니푸르주 북동부에서 법원에

출두한 뒤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이날 단식을 중단한 샤르밀라의 기록은 세계 최장기 단식투쟁으로 남았다.

샤르밀라는 지난 2000년 11월 정부군이 버스정류장에서 주민 10명을 사살하는 것을 목격한 뒤

군 특별권한법에 반대하는 단식투쟁을 이어왔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진행된 2016 하계 올림픽 여자 역도 63kg 급 결승전에 나선 아르헨티나 대표 호아나 팔라시오스가 힘차게 역기를 들어올리고 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진행된 2016 하계 올림픽 여자 역도 63kg 급 결승전에 나선

아르헨티나 대표 호아나 팔라시오스가 힘차게 역기를 들어올리고 있다.

 

 

 

이스라엘 구금시설에서 단식 투쟁을 진행중인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에 대한 지지 시위에 나선 팔레스타인 여성이 요르단강 서안지역 라말라시에서 진압병력과 대치하고 있다.

 

이스라엘 구금시설에서 단식 투쟁을 진행중인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에 대한

지지 시위에 나선 팔레스타인 여성이 요르단강 서안지역 라말라시에서

진압병력과 대치하고 있다.

 

 

 

8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진행된 2016 하계올림픽 승마 마장마술 종목에 나선 호주대표 샘 그리피스가 장애물을 통과하고 있다.

 

8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진행된 2016 하계올림픽 승마 마장마술 종목에 나선

호주대표 샘 그리피스가 장애물을 통과하고 있다.

 

 

 

델타항공 전산 마비 사태로 전세계적인 결항 사태가 빚어진 가운데, 일본 도쿄의 나리타 공항 이용객들이 델타 창구 앞에 몰려있다. 사태 여파로 1천여명이 나리타 공항에서 밤을 보냈다.

 

델타항공 전산 마비 사태로 전세계적인 결항 사태가 빚어진 가운데,

일본 도쿄의 나리타 공항 이용객들이 델타 창구 앞에 몰려있다.

사태 여파로 1천여명이 나리타 공항에서 밤을 보냈다.

 

 

 

스페인에서 진행된 국제 동성애자 축제 &#39;서킷(Circuit)&#39; 참가자들이 물놀이 공원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스페인에서 진행된 국제 동성애자 축제

'서킷(Circuit)' 참가자들이 물놀이 공원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몬순(우기)을 기념하는 힌두교 성월 &#39;쉬라반&#39;에 맞춰 진행되는 &#39;티즈(Teej)&#39; 축제 참가자들이 인도 찬디가르에서 전통의상을 입은 채 춤을 추고 있다.&nbsp;

 

몬순(우기)을 기념하는 힌두교 성월 '쉬라반'에 맞춰 진행되는

 '티즈(Teej)' 축제 참가자들이 인도 찬디가르에서

전통의상을 입은 채 춤을 추고 있다. 

 

 

 

지난 8일 중국 허난성 정저우에서 트럭에 실린 타조들이 머리에 두건을 뒤집어 쓴 채 이동하고 있다. &nbsp;

 

지난 8일 중국 허난성 정저우에서 트럭에 실린 타조들이

머리에 두건을 뒤집어 쓴 채 이동하고 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진행된 2016 하계 올림픽 비치발리볼 이탈리아-이집트 경기에서 이탈리아의 마르타 메네가티(왼쪽)가 공을 네트 너머로 보내고 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진행된 2016 하계 올림픽 비치발리볼

이탈리아-이집트 경기에서 이탈리아의 마르타 메네가티(왼쪽)가

 공을 네트 너머로 보내고 있다.

 

 

 

 

 

 

 

 

 

 

 

 

 

 

 

 

 

 

 

 

 

 

 

 

“북한 어린아이들은 어떻게 할거냐?”

1985년부터 북한선교를 감당해온 모퉁이돌선교회를 향해 물으시는 하나님의 질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고심하던 중에 해외선교기관의 책임자로부터 일본에서 발행된 만화메시야가 세계 여러 나라의 언어로 출간되어 놀라운 호응을 얻고 있음을 듣게 되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북한어린이들을 위해 만화메시야 출간을 결정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한국어로 먼저 번역하고 북한어 번역을 거쳐 ‘만화구원자’를 출간하였다.

 

2009년 한글과 북한어로 출간된 이후 하나님께서는 중국의 소수민족인 위글어와 터키어, 아랍어, 이란어 그리고 히브리어로 이스라엘까지 배달할 수 있도록 역사하고 계신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놀라운 일을 함께 나눈다.

 

 

 

 

 

 

만화구원자 500권이 북한에 보내졌다!

 

“이거 읽어보니까 하나님이 이 세상 만물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겠고, 책이 정말 생동하게 만들었고 지내(정말) 잘되었습니다. 창조이야기가 진짜 생생하게 한 눈에 안겨옵니다.

 

야~ 이 그림도 얼마나 잘 그렸습니까?

이거 보시오~ 이 세상 우주만물을 이렇게 생생하게 잘 나타내고, 사탄도 실제처럼 잘 그려서 한 눈에 안겨옵니다.”

 

3년 전 6월, 북한이 바라 보이는 산골마을에서 만난 강을 건너온 북한소녀의 말이다. 소녀는 만화성경 ‘구원자’와 ‘창조 이야기’를 읽으며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였다. 그 아이에게 만화성경은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알려 주고 읽어보니 어떠냐고 물었다.

 

“우리 어머니가 중국에 와서 하나님을 믿고 돌아와 제게 성경을 읽게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어도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이 만화 구원자와 창조 이야기를 읽고 나니까 성경이 잘 이해됩니다.

 

조선의 얘들도 이거 읽고 성경 읽으면 훨할겁니다(쉽다). 학교에서 공부를 배우며 짐승이나 사람, 하늘이란 것이 어떻게 만들었을까? 궁금했었는데 이거 읽으니 궁금하던 것이 이해가 되어 정말 좋습니다. 조선에 아이들이 책을 읽으면 정말 머리에 쏙쏙 들어오겠습니다. 아이들이 이 땅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 잘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거 걔고(가지고) 가서 조선에 있는 사람들 보여 줬음 좋겠는데 재간이(가져갈 방법) 없어서… 우리 동생도 하나님 믿는데 이거 보여주면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재미있게 되어 있습니다.”

 

밥상을 앞에 둔 소녀는 밥 먹을 생각은 하지 않고 만화성경을 읽을 수 있는 기쁨에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이처럼 북한의 460만 모든 어린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창조자 하나님이 전해지기 원하신 하나님은 통일을 준비하는 모퉁이돌선교회에 “북한 어린이들은 어떻게 할거냐?”고 물으셨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2009년 제작된 만화메시야 시리즈는 구약3권(제네시스, 킹스, 메신저), 신약2권(메시야, 액츠) 총 5권으로 출간되었다. 그 중에 500권이 2010년 북한에 보내져 나누어졌다.

 

특별히 만화구원자의 마지막 뒷면에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수 있도록 기도문이 수록되어 있다.

 

그 후 지금까지 만화성경 구원자 시리즈는 국경을 넘나드는 성도들을 통해 북한에 보내지고 있다.

저도 성경을 배달하고 왔어요!

 

“이 쥐새끼 같은 간나, 중국에 뭐하러 갔나 말이야~”

 

북한경비병들은 중국에 갔다 돌아오는 12살 철수(가명)를 붙잡아 사정없이 때리며 자백할 것을 강요했다.

 

“배가 고파 먹을 것을 구하러 갔다 왔슴다.”

 

철수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철수의 품에서 책 한 권이 떨어졌다.

“이거이 또 뭐야?”

 

경비병은 검은색 표지로 된 책을 집어 들며 소리쳤다.

경비병은 철수를 매질하다 말고 철수가 떨어뜨린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곁에서 보고 있던 다른 경비병이

 

“그거이 뭔대 그렇게 보고 있는 기야?”라고 하며 다가가더니 함께 책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머지 또 한 사람도 두 명의 병사에게 다가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세 명의 경비병들이 모두 책을 보는데 빠져 있자 철수는 재빨리 그 자리를 도망쳐 나왔다. 그리고 다시 중국으로 넘어 오는데 성공했다. 철수는 자신을 돌봐주며 성경을 가르쳐준 선교사를 찾아왔다.

 

“선생님, 방금 제가 뭐하고 온줄 압니까?”

“뭘하고 왔는데?”

 

“내래 조선에 성경배달하고 왔슴다.”

“철수야, 너 지금 조선에 갔다 왔다는 거야?”

 

“네, 내래 지금 만화구원자를 가지고 조선에 갔다 왔슴다. 내래 성경배달하고 온 겁니다~”라며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

 

이같이 접경지역에서 북한선교를 하고 있는 현지일꾼들은 북한사람들을 만나 복음을 전하고 성경공부를 가르쳐야 하는 경우, 가장 먼저 만화구원자를 읽게 한다. 특별히 1주일 혹은 3일 정도 있다 북한으로 돌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만화구원자를 읽게 하고 복음을 전한다.

 

위글족 어린이들에게도

만화메시야가 필요합니다!

“위글족 어린이들을 위한 만화메시야가 더 많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있는 어린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만화메시야를 좋아합니다.”

 

위글어 만화메시야 500권을 준비해 보낸 것을 받은 현지 일꾼의 재촉이다. 이슬람의 문화가 깊이 뿌리 내린 위글족 어린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특별히 외부인의 접촉과 출입이 제한된 상황에서 만화메시야는 복음을 전하기에 좋은 도구가 될 뿐 아니라 직접 대면해서 성경말씀을 배우기 어려운 어른들에게도 필요하다.

 

이 외에도 태국에 위치한 난민보호소에 수용되어 있는 탈북민들과 탈북아이들에게 현지사역자들을 통해 만화구원자를 공급해 주고 이를 통해 주님을 영접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새누리당 이정현 신임 대표가 지난 4·13 총선에서 당선된 다음 날 자전거를 타고 순천역 시장을 돌며 감사인사를 하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 총선 당시 홀로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 곳곳을 누볐다. [중앙포토]

 

 

31년-17계단.

 

이정현, 파란만장 정치역정

밀짚모자 쓰고 두 달간 전국 훑어

허름한 백반집 불쑥 들어가 대화

“난 무수저” 호소, 영남서도 통해

설마하던 친박, 막판 단일후보 지지

2004년 광주 낙선 때 대통령과 인연

박 “어쩜 그리 말 잘하시냐” 발탁

휴대전화 컬러링 7년째 ‘거위의 꿈’

 

 

9일 새누리당의 새 선장으로 선출된 이정현 신임 대표가 정치권에 입문해 당 대표가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31년이다.

 

1985년 민정당 구용상 의원 비서관으로 출발한 그는 그 기간 당과 청와대에서 사무처 간사병()·을()·갑(), 수석부대변인, 홍보수석, 최고위원 등 모두 16번을 승진했다.

 

그가 디딘 17번째 계단이 바로 당 대표다. 그의 선출은 여당 사상 일대 사건이다. 새누리당(전신 포함)에서 호남 출신이 선출직 당 대표가 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흙수저’를 넘어 ‘무수저’를 내건 그의 “일하고 싶다”는 호소가 영남이 주류인 새누리당에서 통한 결과다.

 

“저는 노래 ‘거위의 꿈’을 좋아한다. 노랫말처럼 ‘모두가 등 뒤에서 비웃어도’ 저는 꿈을 키워 이 자리에 섰다.”

 

당 대표 선출이 확정된 직후 이 대표는 수락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수 인순이의 노래 ‘거위의 꿈’은 그의 휴대전화 컬러링이다. 그는 7년 전 이 노래의 가사를 처음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 뒤로 한번도 컬러링을 바꾼 적이 없다. 그는 수락연설에서 “분노하는 사람들, 꿈을 잃고 좌절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을 태우고 거위처럼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서 벽을 넘고 싶다”며 “이 꿈이 현실이 되도록 지금부터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정치인 이정현을 얘기할 때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를 빼놓을 수 없다.

 

둘의 인연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 대통령이 당시 한나라당 대표로 탄핵 역풍에 몰린 당을 121석 정당으로 살려낸 직후다. 박 대통령은 광주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이 대표에게 위로차 점심을 샀다. 이 대표는 “호남을 포기하지 말라”고 격정을 토했다. 그의 말을 경청하며 꼼꼼히 메모한 박 대통령은 “어쩜 그리 말을 잘하시느냐. 꼭 검토하겠다”고 화답했다.

 

이후 박 대통령은 그를 당 수석부대변인에 임명했고, 그때부터 그는 박 대통령의 ‘입’이 됐다.

 

박 대통령과 이별할 뻔한 위기도 있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직후다. 박 대통령의 패배로 실업자 신세가 된 그에게 당시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정무부지사직을 내밀었다. 당시를 말하며 이 대표는 “떨렸다. 봉급다운 봉급을 받아 본 적이 없는 나에겐 그야말로 큰 유혹이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그때 전화기를 잡고는 ‘(제안을) 거절 못하면 정치인 박근혜와 영영 헤어져야 한다. 흔들리지 말자’고 기도했다”고 한다. 며칠 뒤 이 사연을 전해 들은 박 대통령이 “왜 가지 않았느냐”고 오히려 채근했다.

 

이 대표가 “자꾸 그러시면 정치 그만둘라요”라고 하자 박 대통령은 “고맙다. 잊지 않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렇게 ‘박근혜맨’으로 남은 이 대표는 이후 비례대표 의원-청와대 정무·홍보수석을 거쳐 새누리당의 불모지인 전남 순천에서 재선, 3선에 성공했다.

 

그런 이 대표지만 처음 그가 당 대표 경선에 뛰어들겠다고 했을 때 당 관계자들은 “대표? 최고위원이 아니고?”라고 냉소했다.

 

하지만 그는 저인망식 선거운동으로 이변을 만들어 나갔다. 선거캠프도 꾸리지 않고 보좌관들과 선거를 치러내는 ‘단기필마’ 전략을 썼다.

 

그는 비둘기색 점퍼에 밀짚모자 차림으로 두 달간 배낭을 둘러멘 채 방방곡곡을 다녔다. 배낭에는 책과 서류 조금, 속옷 2벌, 우산 하나, 셀카봉, 세면도구를 넣었다.

 

식당에 불쑥 찾아 들어가 모르는 시민들에게 말을 걸었다. 경기도 연천군청 근처의 허름한 백반집에서 밥을 먹고 주인과 얘기를 나누며 어려움을 들었고, 전북 전주에선 후천성 장애인을 만나 생활고를 청취했다.

 

이 대표는 “가정어린이집 문제가 한창 들끓었을 때는 경기도 시흥에서 학부모와 교사를 직접 만나 얘기를 들었고, 한 달 전에는 거제로 가서 조선소의 재재하청업체에서 일하는 분들과 함께 막걸리를 마시면서 고민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시외버스를 타려고 하는데 한 중년 여성이 ‘여보, 이정현이야’라고 외치며 달려와 부부와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런 방식이 주효했는지 각종 여론조사에서 그는 1위로 떠올랐다. ‘설마’하던 친박계 인사들도 결국 그를 사실상의 단일 후보로 지지하기에 이르렀다.

 

이 대표 스스로 경선기간 내내 되뇌었던 “호남 출신인 나의 당선은 그 자체가 혁명”이라고 한 ‘주문’이 현실이 됐다.

 

새누리 당 대표·최고위원 경력

이정현(58) 대표 ▶전남 곡성 ▶ 광주 살레시오고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한나라당 상근 부대변인 ▶2007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 공보특보 ▶청와대 홍보·정무수석 ▶제18·19·20대 국회의원

 

 

 

 

 

 

 

 

 

 

 

 

 

 

한마디로 꿈과 희망을 잃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자포자기라고 합니다.

자신을 극도로 비하하면서 자해와 우울장애에 시달리다가 최악의 경우에는 자살하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자신의 꿈과 희망을 모두 버리고 어떤 절대자의 뜻에 따라 살기로 결심하는 것을 자기포기(self-abandonment)라고 합니다.

 

물에 빠진 사람은 자기포기를 빨리 할수록 살아날 가능성이 많습니다. 구조대원은 물에 빠진 사람에게서 힘이 다 빠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구조를 시작합니다. 지기포기가 안 된 사람 구하려다가는 둘 다 죽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영양소 중에 근육 긴장과 관련된 마그네슘이라는 영양소가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에서 호르몬이 나옵니다. 그 호르몬이 대사 되는 과정에서 마그네슘이 굉장히 많이 소모됩니다.

 

마그네슘은 우리 몸에서 세포 기능을 건강하게 유지하는데 너무나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마그네슘의 역할은 무려 300가지나 되는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에너지를 만들 때 꼭 필요합니다.

 

생물 시간에 배웠던 세포에서 나오는 에너지(ATP)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 ATP는 마그네슘이 없으면 만들어지지 않고, 마그네슘이 꼭 있어야만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마그네슘이 부족해지면 기력이 빠지고 피곤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 정말 중요한 마그네슘의 역할은 몸의 근육들을 천천히 이완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마그네슘이 떨어지면 근육이 수축되고 굳어지게 됩니다.

 

가장 많이 뭉치는 근육은 목이나 어깨 쪽의 근육인데, 마그네슘이 부족하면 이 근육들만 굳는 게 아니라, 몸 속의 모든 근육이 굳을 수 있습니다.

근육은 내부 장기에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 혈관도 근육으로 쌓여 있습니다.

만약에 마그네슘이 부족하여 혈관벽이 수축된다고 어떻게 될까요? 혈관이 좁아지면서 혈압이 올라가겠죠.

 

이렇게 스트레스는 마그네슘과 같은 영양소를 고갈시키고 그것에 의해서 연쇄적으로 근육이 수축되고 혈압이 오르는 현상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물론, 호르몬에 의해서도 혈압이 올라가고 이런 작용이 벌어지지만, 이 마그네슘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현대인일수록 마그네슘을 많이 섭취해야 합니다.

 

 

 

 

 

 

마그네슘이 가장 많이 들어있는 음식은 다시마입니다. 그러니 다시마를 열심히 챙겨 드세요.

그게 어렵다면 마그네슘이 들어있는 영양제로 보충해도 큰 도움이 됩니다.

 

많은 분들이 피곤해져 목이 뻣뻣해지면 저녁에 술 한 잔을 하시는데, 술을 마시면 마그네슘이 떨어지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마그네슘이 스트레스를 받아 한 번 떨어지고, 술을 드시면서 또 떨어지게 됩니다. 이럴수록 마그네슘을 더 많이 보충하셔야 합니다.

 

마그네슘의 또 한 가지 역할은 근육뿐만 아니라 마음도 이완시켜 줍니다. 어떻게 영양소가 마음을 이완시켜 줄까요?

우리의 신경이 흥분을 할 때, 어느 정도의 역치(threshold value) 이상이 되어야 신경이 흥분하게 되는데 마그네슘이 충분히 보충되면 이 역치를 올리게 됩니다.

그래서 신경 흥분이 덜 되고 민감도가 가라앉게 됩니다.

 

마그네슘이야말로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동시에 편하게 만들어주는 정말 중요한 영양소입니다.

 

 

 

 

 

 

 

 

 

 

 

 

 

 

 

 

 

 

 

 

 

 

 

 

포켓몬 고 같은 게임은 물론 스마트폰이나 내비게이션 등을 이용하면 언제든 위치를 찾을 수 있다. 이는 GPS(Global Positioning System) 기능이 있기 때문. 어떤 구조 덕에 위치를 알 수 있게 될까.

 

가장 큰 오해는 위성이 지상에 있는 수신기를 모니터링하고 여기에 장소를 알려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인공위성이 아무리 높은 기술이 있더라도 수억 명에 달하는 사람이 갖고 있는 스마트폰이나 내비게이션을 모두 모니터링할 수는 없다. 우주에서 지상을 봐도 정확한 위치를 말하는 것 역시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실제로는 인공위성이 알려주는 건 장소가 아니라 인공위성 자신의 위치와 현재 시간이다. 그렇다면 GPS 수신기는 어떻게 자신의 위치를 알게 될까.

 

GPS의 원리는 위성과의 거리를 측정하는 데 있다. 평면에서 두 점 사이의 거리를 알면 위치를 2개소 특정할 수 있다. 원형 2개가 교차하는 점에는 2점 밖에 없기 때문.

 

마찬가지로 공간에선 3점까지의 거리를 알면 공 3개가 교차하는 2점 중 하나를 특정할 수 있다. 2점 모두 자신의 위치일까. 물론 아니다. 하나는 지구가 아닌 우주 공간인 만큼 지상에 가까운 게 정답이다.

 

또 GPS 위성은 오차 1나노초 이하, 그러니까 10억 분의 1초에 불과한 원자 시계를 이용해 거리를 측정한다. 전파 속도는 빛과 같은 30만km/sec, 그러니까 3억m, 1나노초 사이에 30cm 밖에 진행되지 않는다. 인공위성이 전파를 송신하고 지상에서 수신할 때까지의 시간 차이를 나노초 단위로 측정하면 거리를 1m 이하 정밀도로 측정할 수 있다.

 

GPS 수신기는 GPS 위성 3대로부터 전파를 수신하면 위성 3개와의 거리를 통해 현재 위치를 계산할 수 있다.

그렇다면 스마트폰에도 원자 시계가 들어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 스마트폰 시계는 나노초 단위로 정확하지 않다. 이런 이유로 GPS 수신기는 4번째 GPS 위성을 이용한다.

 

이렇게 위성 데이터 4개를 방정식으로 풀면 현재 위치와 현재 시간을 동시에 계산할 수 있게 된다. 이 시간은 나노초 단위이기 때문에 GPS 수신기 시계는 월등하게 정확하다. 따라서 스마트폰은 시계를 맞출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 위성 4개로부터의 거리를 알면 현재 위치는 2점 대신 1점으로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GPS는 위성 4기로부터 오는 전파를 이용해 현재 위치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 정확한 시계는 위치를 아는 것 외에 다른 목적으로도 이용된다. 이를테면 증권 거래다. 전 세계 각지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어느 쪽이 먼저인지 결정하게 된다. GPS 수신기의 1나노초는 이를 위한 측정에 사용된다.

 

잘 알려진 것처럼 GPS는 미국이 운용 중인 위성 시스템 명칭이다. 지구상 어디에 있어도 4기 이상 위성으로부터 전파를 수신할 수 있도록 GPS 위성 30기가 지구를 돌고 있다. 하지만 도시나 산간 지역 등에선 위성 4기 전파를 수신하지 못하거나 전파 반사로 인해 오차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스마트폰 지도에서도 위치가 어긋나거나 잠시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

 

 

 

 

 

 

 

 

 

 

 

 

 

 

 

 

 

 

 

 

 

 

 

 

 

 

 

 

 

 

 

 

 

 

 

 

ATM은 언제나 정확하게 현금을 뽑을 수 있게 도와준다. 예금을 찾을 때 지폐가 요청보다 더 나오는 것 같은 행운(?)은 기대하기 어렵다. ATM이 이렇게 정확하게 현금을 인출할 수 있는 이유는 뭘까.

 

영상을 보면 ATM이 정확하게 작동하는 방법을 확인할 수 있다. 지폐를 스캔하는 센서가 관건이다. 카드를 삽입하고 현금을 받을 때까지 1분 남짓 짧은 시간에도 기계 내부에선 400개에 달하는 부품이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래 Play 단추를 클릭하여 열어보세요.

 

 

 

 

 

 

 


 

 

 

 

 

 

 

 

[오늘의 대화]

 

A:How're you doing?
B:I'm doing great!


A:Where are you coming from?
B:Seoul, Korea.


A:What's the purpose of your trip?
B:Vacation.


A:Where are you staying?
B:I will visit the national parks in California and Arizona.


A:How long will you be staying?

B:Two weeks.


A:How much money do you have?
How much money are you bringing into US?
B:$3,000 and credit cards.

 

 

[대화/표현 해설] & [대화 듣고 따라 하기]

 

이제 문장을 하나씩 다시 듣고 따라 하면서 의미를 살펴볼까요?

 

A:How're you doing?
안녕하세요?

 

B:I'm doing great!
아주 좋습니다!

 

A:Where are you coming from?
어디서 오시는 길입니까? (국적이 어디인가요?)


* Where's your home? (거주지가 어디입니까?), Where do you live?(어디에 사십니까?)라는 말과 비슷한 표현입니다.

B:Seoul, Korea.
한국의 서울입니다.

 

A:What's the purpose of your trip?
여행 목적은 무엇인가요?
* purpose: 목적
* trip: 짧은 여행, 방문; “What’s the purpose of your visit?” “What’s the purpose of you visit to the United States?”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B:Vacation.
휴가 여행입니다.


* vacation: 휴가여행; “I’m here on vacation. (휴가여행을 왔습니다.)”라는 표현을 줄인 말입니다. 유럽, 특히 영국에서는 휴가여행을 ‘holiday’라고 하더군요. 입국 심사대에서 여행 목적을 물을 때 “Holiday?”라고 간단히 물어보기도 합니다. 대답은 “Yes, I’m on holiday.” 또는 간단하게, “Yes, holiday.”라고 하면 되지요.
여행 목적에 따라, 사업이나 업무를 보기 위해 입국할 경우, “I'm on business.”라고 하면 되고, 친척을 방문하기 위해 입국할 경우에는, “I'm visiting relatives.”라고 하면 됩니다.

 

A:Where are you staying?
어디에 계실 건가요?
* Where are you staying? 어디에 머물 건가요? (“Where are you going to stay?” “Where will you be staying?”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B:I will visit the national parks in California and Arizona.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 주의 국립공원들을 방문할 겁니다.


* national parks: 국가 지정 공원, 국립공원. 캘리포니아 주에는 Yosemite, Death Valley, Sequoia and Kings Canyon, Redwood 등 다섯 개의 국립공원이 있고, 애리조나 주에는 Grand Canyon, Saguaro 선인장 국립공원 등 네 개의 국립공원이 있습니다.

 

A:How long will you be staying?
얼마동안 계실 건가요?

B:Two weeks.
2주 동안입니다.


* “I’ll be staying for two weeks.”라는 말을 간단하게 줄인 표현입니다.

A:How much money do you have?
현금은 얼마나 갖고 계신가요?


* “How much money are you bringing into US?” 즉, “미국에 현금은 얼마나 가지고 들어 오시나요?”라고 물어보기도 합니다.
B:$3,000.
3천 달러입니다.

 

 

[미니 대화]

 

 

이제 대화 내용 중에서 “여행 (방문) 목적이 무엇입니까?”라는 표현을 활용해서 영어로 간단히 대화를 주고 받는 연습을 해볼까요?

 

A:What's the purpose of your trip?
B:I'm here on vacation.

 

A:여행 목적이 무엇입니까?
B:휴가여행을 위해 왔습니다.

* * * * *

A:What's the purpose of your visit?
B:I'm visiting my friend. .

 

A:방문 목적이 무엇입니까?
B:친구를 방문하러 왔습니다.

 

* * * * *

 

A:What's the purpose of your trip, business or pleasure?
B:Business. I’m here for a conference.

 

A:여행 목적이 업무나 관광 중 무엇입니까
B:업무입니다. 회의 때문에 왔습니다.

 

[한국말을 영어로]

 

이제 여러분들께서 한국말 표현을 영어로 바꿔서 말해보는 시간입니다.

안녕하세요?


How're you doing?

아주 좋습니다!
I'm doing great!

어디서 오시는 길입니까? (국적이 어디인가요?)


Where are you coming from?

한국의 서울입니다.
Seoul, Korea.

 

여행 목적은 무엇인가요?
What's the purpose of your trip?

 

휴가 여행입니다.
Vacation.

 

어디에 계실 건가요?
Where are you staying?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 주의 국립공원들을 방문할 겁니다.
I will visit the national parks in California and Arizona.

얼마동안 계실 건가요?
How long will you be staying?


2주 동안입니다.
Two weeks.

 

현금은 얼마나 갖고 계신가요?
How much money do you have?

 

3천 달러입니다.
$3,000.

 

 

 

 

 

 

 

 

 

 

 
 

 

 

 

 

 

 

 

 

 

 

 


 



 

 

 

 

 

 

 

 

 

지방하면 다이어트를 망치는 원흉으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은 지방이 아예 없거나 저지방 식품에만 몰린다.

 

국제식품정보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67%의 사람들이 되도록 지방을 적게 먹으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런 대중적 믿음과는 달리 지방이 많은 음식 중에는 건강에 좋은 것들이 있다.

이런 지방은 포만감을 오래 지속시키고 탄수화물이나 당분에 대한 식탐을 줄인다. 또한 몸속 세포를 유지하고 보수하고 치유하며 염증을 퇴치하는 효능도 있다.

 

미국 경제 매체인 ‘치트시트닷컴’이 고지방 식품이지만 꼭 먹어야 할 5종류를 소개했다.
 

달걀

 

=단백질의 보고로 꼽히는 달걀을 식단에서 결코 빼놓아서는 안 된다. 보통 달걀흰자에는 노른자보다 지방이 적게 들어 있어 더 건강에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요 영양소는 노른자에 다 들어있다.
 

달걀에는 5g의 지방이 들어있는데 이중 몸에 별로 좋지 않은 나쁜 지방으로 알려진 포화지방은 1.5g 정도로 나머지 지방은 건강에 좋다. 달걀에는 콜린이 풍부한데 이 성분은 뇌와 신경계, 심혈관계를 조절하는 데 필요한 비타민B군 복합체의 하나이다.
 

생선

 

=연어, 고등어, 청어, 송어, 정어리, 날개다랑어 등은 지방이 많은 생선이다. 하지만 이 지방은 오메가-3 지방산으로 불리는 것으로 건강에 좋은 효과가 있다. 오메가-3 지방산은 심장질환과 우울증, 치매, 관절염 위험을 낮춘다. 미국심장협회는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한 생선을 1주일에 최소한 2번 먹으라고 권장한다.
 

 


 

아보카도

 

=아보카도 반쪽에도 지방이 15g이나 들어있다. 하지만 이중 10g은 몸에 좋은 단일불포화지방으로 콜레스테롤 수치를 개선시키는 효과가 있다.

 

연구에 의하면 단일불포화지방이 풍부한 식품은 복부지방의 축적을 막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아보카도에는 항산화제와 20가지가 넘는 비타민과 미네랄이 들어있어 건강에 여러모로 좋은 효과를 발휘한다.

 

아몬드, 호두

 

=오메가-3 지방산과 단백질, 섬유질 등이 풍부한 대표적 견과류가 아몬드와 호두다. 아몬드와 호두는 포만감을 지속시키고 식욕을 억제하는 효능이 있다. 특히 아몬드는 칼로리가 가장 적은 견과류로서 다이어트 할 때에도 좋은 식품으로 꼽힌다.

 

올리브 오일

 

=단일불포화지방이 풍부하게 들어있어 총 콜레스테롤 수치뿐만 아니라 나쁜 콜레스테롤(LDL) 수치를 낮춤으로써 심장질환 발병 위험을 감소시킨다. 또한 인슐린과 혈당 수치를 조절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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