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23,  2016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Symphony No.9 in D minor Op.125 " Choral)

4-2 악장 Presto - Allegro assai

(합창 - 환희의 송가)

 

 

 

오, 벗들이여! 이 선율이 아니오!
좀더 기쁨에 찬 노래를 부르지 않겠는가!

 

환희여, 아름다운 신의 광채여, 낙원의 딸들이여

우리 모두 정열에 취해 빛이 가득한 성소로 들어가자!

 

가혹한 현실이 갈라놓았던 자들을

신비로운 그대의 힘으로 다시 결합시키는도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노라.

그대의 부드러운 날개가 머무르는 곳에..

 

위대한 하늘의 선물을 받은 자여,

진실된 우정을 얻은 자여

여성의 따뜻한 사랑을 얻은 자여,

다 함께 모여 환희의 노래를 부르자!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자연의 가슴에서 환희를 마시고

모든 착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그녀의 장미 핀 오솔길을 환희 속에 걷는다.

 

환희는 우리들의 입맞춤과 포도주

죽음조차 빼앗아 갈수 없는 친구를 주고

땅을 기는 벌레마저 기쁨을 선물 받고

천사 케루빔은 신 앞에 선다.

 

환희여, 수많은 태양들이

천국의 영광스런 계획을 따라 빛나는 창공을 가로지르듯

 

형제여, 그대들의 길을 달려라

영웅이 환희에 찬 채로 승리의 길을 달리듯.

환희여, 아름다운 신의 광채여, 낙원의 딸들이여

우리 모두 정열에 취해 빛이 가득한 성소로 들어가자

 

가혹한 현실이 갈라놓았던 이들을

신비로운 그대의 힘으로 다시 결합 시키는도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노라.

그대의 부드러운 날개가 머무르는 곳에..

 

백만 인이여, 서로 포옹하라!

전 세계의 입맞춤을 받으라!

 

형제여! 별의 저편에는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이 계신다.
억만의 사람들이여, 엎드려 빌겠는가?

세계의 만민이여, 창조주가 계심을 알겠는가?


별들이 수놓아져 있는 천공의 저편에서

사랑하는 주님을 찾으라!

별들이 지는 곳, 그곳에 주께서 계신다.

 

백 만인이여, 서로 포옹하라! 전 세계의 입맞춤을 받으라!

형제여! 별의 저편에는 사랑하는 아버지 창조주가 계신다.

환희여,

아름다운 하나님의 광채여,

낙원의 딸들이여

환희여,

아름다운 하나님의 광채여.... 

 


O friends, not these sounds!
Let us strike up something more
pleasant, full of gladness.
 

Joy, beautiful divine spark,
Daughter of Elysium,
We enter, drunk with fire,
O heavenly one, your holy shrine.
Your magic once again bonds together
What custom strictly divided,
All Mankind become brothers
Where your gentle wings hold sway.

He who has the great good fortune
To be friend to a friend,
He who has won a dear wife,
Let him mix his rejoicing with ours!
Yes__  and whoever has but one soul
Somewhere in the world to call his own!
And he who cannot, let him steal away,
Weeping, out of this company.

Joy is drunk by every creature
From Nature's breast;
Every good one, every bad one
Follows her rosy pathway.
She gave us kisses, and wine,
And one friend, tried unto death;
Even to the worm ecstasy is given,
and the cherub stands before God.

Gladly, as his Suns fly through
The magnificent plan of the heavens,
Run, my brothers, your own course
Joyfully, like a hero off to conquest.

Joy, beautiful divine spark, etc.

Let me embrace you, O millions!
This kiss is for the whole world!
Brothers, above the starry firmament
A loving Father must surely dwell.
Do you fall down, O millions?
Are you aware of your Creator, world?
Seek Him above the starry firmament!
For above the stars He must dwell.  

 

 

 

 

 

Beethoven교향곡 중에서 <운명>과 함께 최고의 대작으로 손꼽히는 [9번 합창]을 사람들이 일컬어 인간의 힘으로 쓸 수 있는 가장 완벽하고 위대한 곡 그리고 가장  감동을 이끄는 교향곡이라 합니다.

 

교향곡 4악장의 마지막에 [쉴러] 작시인 합창이 들어가는데 교향곡에 사상 처음으로 성악을 도입한 명곡으로서 베토벤은 교향곡 악보에 친필로 [만민들이여 서로 껴안으라]고 써 놓았습니다.

[서로 껴안으라]고 하는 그의 사랑의 메시지는 인류를 살리고, 지구를 살리고, 너와 나를 살리는 유일한 자원은 다름아닌 오직 하나 사랑입니다. 합창의 내용은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사로 되어 있습니다.

 

환희(歓喜)송가(頌歌 )9번 교향곡은 1824년 5월 빈에서 베토벤이 스스로 지휘봉을 잡고 초연하였다고 하는데 당시 청력을 잃어가던 베토벤은 마지막 악장을 마쳤을 때 청중들의 감동의 눈물과 함께 엄청난 기립박수가 쏟아지는 것도 몰랐다고 합니다. 

 

 

 

세계 최초의 1000인 합창단인 피셔 합창단가장 많을 때는 2500명 까지 모여 공연을 했다고 합니다.

지휘를 맡고 있는 고트힐프 피셔(Gotthilff Fischer)에 의해 만들어진 이 합창단은 수많은 합창단을 결합하여 하나의 합창단으로 만드는데 성공하였고 이로 인해 70년대 최고의 지휘자로 각광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공연을 연습할 때 마다 소규모 시에서는 도시가  마비될 정도였을 뿐 아니라 음식 조달도 잘 안돼 금식 아닌 금식을 한 채 공연을 해 가는 곳마다 이들에게 보내는 감사와 찬사는 대단했다고 합니다.

 

피셔 합창단의 역사는 2차 대전이 끝나고 얼마 후인 19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20세였던 고트힐프 피셔는 고향인 넥카 강가에 있는 다이치사우어에서 자신의 합창단을 구성하였고 당시에도 이미 5개의 합창단을 결합하여 500명의 대 합창단을 만들어 지휘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신명기 2장 6-15절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은 '대가(代價)를 치르는 신앙’이 탁월해야 합니다. 구원이 사람의 노력이나 공로로 얻는 것이 아니라는 진리를 잘못 적용해서 공짜 의식에 젖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닙니다. 구원이 있기까지 ‘예수님의 피’라는 엄청난 대가가 치러졌음을 늘 기억하고 대가를 치르려고 하십시오.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성숙한 성도가 될 수 없고 가나안의 꿈과 비전도 이룰 수 없습니다. 물이 자기를 증발시켜 수증기가 되어 바람에 자신을 맡길 때 먼 곳에 비를 내려 그곳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자기를 증발시킬 줄 아는 사람이 메마른 사회에 유익한 비를 내려줄 수 있습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성도답게 살지 못하는 모습이 왜 생깁니까? 하님의 뜻을 따라 대를 치르려는 선택과 결단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가를 치르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에 부족함이 없게 하십니다.

 

40년의 광야 기간 동안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하는 일마다 복을 주시고 함께 하심으로 부족함이 없게 하셨습니다(7절). 40년 광야 기간은 ‘저주스런 형벌기간’이라기보다는 ‘은혜로운 훈련기간’이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광야 40년 동안 부족함이 없게 하셨던 은혜를 상기시켰습니까? 힘이 생겼다고 분수를 모르고 더 많이 얻으려는 욕심을 가지고 함부로 주변 민족들을 약탈하지 말라는 뜻도 있습니다. 특히 에서의 후손과는 욕심을 품고 더욱 싸우지 말라는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처럼 싸우지 않기 위해서 적지 않은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당시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땅 남부로 직행하는 길을 에돔 족속이 막고 있어서 한참 먼 우회길인 아라바를 지나 홍해의 아카바만 최북단에 위치한 2개의 항구 도시인엘랏과 에세온 게벨 옆을 통과한 후 모압이 차지한 광야 길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그때 롯의 후손으로 이스라엘과 가까운 족속인 모압 족속과도 싸우지 말라고 했습니다(8-9절).

 

영적인 신세대가 되십시오

왜 하나님은 에돔이나 모압과 싸우지 말하고 했습니까? 그들이 형제 족속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상당한 군사력을 가졌던 그들과 싸우면 전투력의 약화로 가나안 정복전쟁은 더 힘들어졌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에돔 및 모압과 싸우지 않고 한참 우회하는 길을 택해 38년을 광야에서 지내야 했고 마침내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사해 남동쪽에 있는 세렛 시내를 건너므로 광야생활을 끝내고 가나안 진입 모드에 돌입했습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세렛 시내까지의 직선거리는 약 130km로서 1주일이면 가는 길을 38년 걸린 것은 에돔 및 모압과의 전쟁을 피하려고 한참 돌았기 때문이지만 결국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 때문이었습니다.

 

그 기간에 20세 이상의 구세대 군인들은 다 광야에서 죽었습니다(14절). 그들은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을 향해 나아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해서 결국 가나안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어간 것입니다.

 

구세대 군인들이 출애굽 직후 아말렉과의 르비딤 전투(출 17:8-16)에서 승리하는 등 어느 정도의 전쟁 경험이 있어서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그들의 일부라도 있으면 가나안 정복전쟁에 도움이 될 것 같은데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 그들을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다 광야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한 명도 남지 않게 되었을 때 마침내 신세대 군인들을 통해 가나안 정복전쟁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가나안 정복전쟁에 구세대 군인들을 한 명도 쓰지 않았습니까? 그들의 경험을 무시해서도 아니었고 그들이 너무 늙어서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불신과 불순종 때문이었습니다.

 

육신적으로는 나이를 가지고 구세대와 신세대를 구분하지만 영적으로는 믿음과 순종 여부로 구세대와 신세대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가지고 순종하는 신세대를 통해 가나안 정복전쟁을 수행하고 마침내 가나안의 축복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기도응답도 순종하는 믿음이 전제되어야 나타납니다. 엘리야도 순종하는 믿음으로 간절히 기도했기에 하늘의 불을 끌어내리는 위대한 선지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현대는 기적이 사라진 시대라고 말하지만 기적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기적을 일으킬만한 순종하는 믿음을 가진 영적인 신세대가 사라진 것입니다.

순종하는 믿음을 가진 영적인 신세대가 되면 가나안의 비전을 성취하는 날이 성큼 다가올 것입니다. 

 

 

 

 
 

 

 

 

 

 

 

 

 

 

 

땅을 보고 기도하시오

하늘 보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그 곳에 하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늘에

계신 줄 알고

하늘 보고 기도했을 때

그림자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땅을 보고 기도하십시오

님은 땅을 쓸고 계셨습니다

 

고개들 힘조차 없어

땅으로만 꺼져 드는 영혼 안아 주시려고

땅에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처절하게

신음하고 있을 때

님께 안기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땅으로 내려가십시오

더 내려가십시오

더 깊이... (박경희 시인) 

 

 

 

 

 

 

 

 

 

 

 

 

 

 

 

 

 

 

 

 

자라나는 어린이와 10대 자녀들에게 심각한 정신적 상처를 주고 가슴을 멍들게 하는 이른바 ‘왕따’와 ‘집단 괴롭힘’이 학교 주변뿐 아니라 온라인과 소셜미디어(SNS) 상에서도 기승을 부리고 있어 한국 뿐 아니라 미주 한인사회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스마트폰과 SNS에 매달리는 청소년들이 많은 가운데 이같은 ‘사이버 왕따’(cyber bullying)는 주먹질이나 집단 괴롭힘 같은 신체폭력과는 달리 SNS를 통한 언어폭력 등으로 나타나면서 이를 견디지 못한 청소년들이 자괴감에 시달리거나 심지어 우울증을 호소하고 심할 경우 자살까지 시도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어 그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18일 한국에서는 SNS 상에서 괴롭힘을 당한 한 중학생이 투신자살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인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올해 중학교 3학년 남학생이 아파트 14층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경찰 조사결과 이 학생은 지난 5월 다른 중학교에서 학교 폭력을 당한 뒤 한 차례 전학을 한 후 9월 중순 다른 반 동급생이 카카오톡으로 과거 학교 폭력 피해사실을 언급하며 “찌질한데 여자친구도 있느냐”고 놀려 학생부에 신고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피해학생이 페이스북에 여자친구의 사진을 올리자 가해학생이 놀리는 비난 댓글을 달았고 언쟁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같은 사이버 왕따가 피해학생을 죽음으로 몬 것으로 보고 있다.

 

 

 

 

LA의 한인 중학생 김양은 지난 여름방학 기간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로부터 소셜미디어에서 왕따를 당한 뒤 정신과 치료상담을 받았다. 몇몇 친구들과 카카오톡 단체 메시지방을 개설해 교류하던 김양은 어느 날 친구들이 자신만 소외시킨 채 새로운 단체 카톡방을 개설한 뒤 자신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은 사실을 우연히 알고 충격을 받았다.

 

김양은 친구 중 한 명이 그에 대한 험담내용을 실수로 김양에게 잘못 전송하는 바람에 이를 알게 됐고, 평소 소심한 성격에 충격을 받아 우울증과 대인기피증 증세가 나타나면서 이를 우려한 부모의 손에 이끌려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만 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사이버 왕따문제 피해를 당한 학생들이 가정이나 주변에 숨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부모들이 더욱 관심과 주의를 갖고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특히 학교 폭력과 같은 물리적 괴롭힘은 흔적을 남겨 주의를 기울이면 알 수 있지만 사이버 왕따의 경우 겉으로 드러나는 피해를 알아차리기가 힘들기 때문에 자녀의 변화를 더욱 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자녀가 소극적으로 변하거나 ▶학교 가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싫어하거나 ▶집에 왔을 때 감정의 변화가 심해 공격적으로 변하거나 할 경우엔 왕따를 당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전문가들은 만약 피해가 발견됐을 경우, 부모는 일단 자녀를 안심시키고 학교 측이나 교육구에 신고를 하는 등 자녀와 함께 전문 상담기관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교회가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이런 현상이 청소년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 기도하며 전문적인 상담과 설교와 교육을 적극적으로 실시해야 할 것이다.(언) 

 

 

 

 

 

 

 

 

 

 

 

 

 

 

 

 

 

현대사회로 접어들면서 우울증과 같은 현대적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늘고 있다.

 

지난해 한국 국립서울병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전체 신규환자 중 우울 또는 불안장애 등을 호소하는 비율이 37퍼센트에서 무려 51퍼센트까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 이것이 하나의 관리해야 하는 질병의 종류로 자릴 잡아가는 듯 보인다.

 

현대적 정신질환과 관련하여 약물을 통한 치료 방법도 있지만 거부 반응을 보이는 환자도 있기에 심리적 치료가 병행된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만 지난 몇년간 큰 효과를 보이며 자릴 잡아오는 것 중 하나가 에니어그램(Enneagram)이다.

 

특별히 이 기법은 몇몇 한국 교회를 중심으로 성도들의 심리 분석이나 은사 발견을 위한 방법으로 선호되고 있고, 별도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영성훈련적 차원에서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한 예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국내 선교부에서는 웹사이트를 통해 총회상담학교 교육과정으로 에니어그램 자격교육(기초과정)을 개설하고 목회자, 사모, 신학생을 대상으로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다.

 

어느 언론 매체는 고영순 교수(크리스치유 상담대학원 대학교)와의 인터뷰를 통해 ‘에니어그램과 영성은 성경적 통찰을 가능케 한다’라는 부제를 적은 기사를 통해 “신앙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성의 틀을 벗어나고 있지는 않는가 생각할 수 있는 시간…, 그리고 조용히 자신을 찾아 안식하고 쉼을 얻을 수 있는 멋진 강좌가 있는 곳이었다”라고 언급하며 에니어그램과 관련한 영성 중심 강의를 소개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현재 교회 안에서 에니어그램영성 훈련의 한 도구로 활용되는 사례많다. 분명한 것은 지금 현대 교회가 에니어그램 뿐 아니라 여러 심리적인 툴(tool)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에니어그램이 과연 무엇이길래 교회들이 이처럼 반겨하는 것일까?

이 방법은 성격 유형을 나타내는 지표로 사람을 9가지 성격으로 분류한다. 이름의 유래는 희랍어에서 9를 뜻하는 ennear와 점, 선, 도형을 뜻하는 grammos가 만나, ‘9개의 점이 있는 도형’이라는 뜻의 합성어이다.

 

이 방법의 기원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사전적 추정으로 ‘에니어그램 시스템’은 ‘구전을 통해 전해진 옛 선인들의 지혜’라는 것으로 여기는 시각이 보편적.

지역과 시간적으로는 기원전 2천500년 근동 지방이라고 보는 설이 다수다.

 

선인들의 지혜로 내려오던 에니어그램을 서구 문화에 소개한 것은 러시아 신비주의자인 구르지예프.

그는 자신의 연구에 수피즘의 일파인 나크쉬밴디스를 통해 에니어그램 시스템을 소개받아 적용했고, 이후 볼리비아의 이차소가 에니어그램 시스템을 기반으로 인간의 9가지 성격을 파악하는 기법을 개발했다.

 

이후 종교나 철학 등에서 보는 시각을 벗어나 심리분석으로 이를 이용하는 사례 등이 늘면서 오늘날에는 기업, 학교, 가정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심리분석의 주요한 툴로서 사용되고 있다.

 

과연 에니어그램교회에서 사용될 수 있는 것일까?

이런 궁금증에 대한 답을 듣기위해 남가주 지역에서 에니어그램에 관해 전문적 지식을 가진 송경화 사모(클레어몬트 한인교회)에게 들어 본다.

 

송 사모는 서울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2009년에 에니어그램 자격을 취득했다. 현재는 클레어몬트 신대원에서 목회상담학 박사과정에 있으며, 남가주주님의교회에서 열린 은사개발세미나에 주강사로 에니어그램을 소개하기도 했다.

“에니어그램 성격분석으로 내면의 자아발견과 교회내 인간관계에 도움”

 

송사모는 “에니어그램은 나 자신을 찾아가는 영적인 여정, 내면에 알 수 없었던 내 모습을 알게 되고 내 깊은 하나님과 만나는 그런 공간 까지 안내하기 때문에 나 자신에 대한 인식을 넓힐 수 있다.”, “ 또한 교회에는 항상 인간적인 관계가 많다. 자기를 이해하고 남을 이해하면 교회내 갈등 등을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을 알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사 이런 것들을 개발해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들을 활용할 수 있다”라며 이 기법이 가진 장점을 소개했다.

 

종합해보자면 내가 가진 은사를 발견하고,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며 내적인 자아를 찾아 신앙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교회에서 에니어그램을 활용하면 좋을 이유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에니어그램을 교회에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정태홍 목사(성경적상담연구소)는 교회들이 에니어그램의 실체를 알고 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목사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신성한 자아’ 강조와 이교도에 뿌리 두었기에 교회서는 활용 말아야”

 

우선 정목사는 교회들이 에니어그램의 기초적인 지식조차 말하지 않고 이를 수용하는 심각성을 지적한다. 그는 지금 교회들이 에니어그램을 선전하면서 “교회에서는 나를 알고 상대를 이해하며 주님과 가까워지는 훈련”, "자아를 발견하거나 타인을 아는 도구 등으로 포장하고 있다"고 전하며, 그 안에 담긴 에니어그램의 실체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고 지적 했다.

 

그는 에니어그램에서 말하는 자아는 ‘신성한 자아’를 뜻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이 ‘신성한 자아’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교회는 지금까지 바로 이 ‘신성한’이라는 기법이 숨긴 뜻을 말하지 않고 ‘자아’만 주장한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정목사는 “이 기법을 보급시킨 장본인 중 하나인 조지 그루지예프는 그의 자서전에서 분명 에니어그램이 이교도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 기법은 무엇보다 영지주의와 카발라에 기초하고 있다. 그들은 인간 안에 신성이 있다고 믿으며 존재적 신성화를 꿈꾼다.

그들에게 예수는 그저 ‘영적인 안내자’ 중 하나일 뿐”이다고 언급하며, “교회가 이를 가르친다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신성과 그 신성을 계발하는 구상화를 통해 존재론적 신성화에 도달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라 덧붙였다.

이렇듯 에니어그램과 관련해 교회에서 활용할만한 효과가 있다는 측면과 아예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 팽팽하다.

 

이 같은 비성경적이라는 주장에 관해 송경화 사모는 “에니어그램을 반 또는 친성경적이라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이는 심리학에 대한 충분한 전문성을 가지고 누가 어떤 목적에 따라 사용하는지에 따라 성격이 바뀌는 도구일 뿐이다.

따라서 크리스천들 본인이 영성, 정신건강으로 위하는 목적으로 사용한다면 유익을 줄 수 있는 자원”이라고 말했고, 정태홍 목사는 “교회에서 에니어그램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는 영성에 대한 시대적 흐름 때문. 기독교 신앙의 바른길이 아닌 시대적 영성에 휘말리고 있으며, 이 기법은 그런 영성에 어울린다. 이는 우리 안에 신성을 계발하는 도구이고, 존재론적 신상화로 가는 것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오렌지카운티에 거주하는 제니킴 자매는 현재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앞으로 목회상담에 다양한 심리적 검사요법을 활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녀는 “칼은 누가 쓰느냐에 따라 성격이 바뀐다. 요리사에겐 맛을 내는 도구이고, 강도에겐 생명을 빼앗는 무기이다. 크리스천들이 너무 심리적 검사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이를 선하고 도움되는 방향으로 사용한다면 분명 좋은 도움되는 일이 많을 것이다”라며 사용에 무게를 두는 입장을 전해왔다.

 

지난해 교회를 개척한 폴리 목사(가명)는 “관계형성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무분별하게 이런 심리 검사 등을 교회로 가져오는 것은 옳지 못하다. 모든 것은 성경 안에 있다. 나 자신도 결국 성경 안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쉽게 쉽게 사람들을 꼬드겨 보려는 심리가 이런 것들을 교회로 불러오는 것이 아닌가?”하며 우려를 내비치기도 했다.

 

교회들마다 선호하는 이러한 심리 테스트 등이 정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점검하고, 동시에 그 안에 유의해서 볼 부분은 없는지를 살펴 아야 할 것이다.

 

 

 

 

 

 

 
 

 

 

 

 

 

 

 

 

 

 

 

 

높이 달린

감나무의 감

달빛 받아

이쁘기 한량 없고

 

이밤도

소리없이 요절하는

감나무 잎은

달빛이 애처로와 떨어 진다오

 

달빛의 그리움에

사르르 감나무 잎 날려주는

우는 감나무

나무만 앙상하게 남겨 지는데

 

이쁘게 가는 금빛감

후회없이 날리는 금빛잎

달빛 밝아서

감나무는 나무만 남는 다오

 

달빛에 반해서

감이랑 잎이랑

다 그리움으로 날려 버린

달밤에

애수의 감나무

 

그리움도 사랑도 다 주고

앙상한 몸 그대로

달빛에 하얗게 젖어

하늘만 바라 보네요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집트에 보내 400년간 종살이하던 이스라엘백성을 구출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집트의 바로 왕은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주지 않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집트에 10가지 재앙을 내립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개구리 재앙이었습니다.

 

어디에나 개구리가 있습니다. 침실에도 개구리, 부엌에도 개구리, 거실에도 개구리, 빵 반죽 통에도 개구리.......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그들이(이스라엘 백성) 가는 것을 네가 거부하면 보라 내가 개구리로 네 온 지경을 치리라.”(출8:2)

 

빵 굽는 오븐을 여는 이집트 여인을 생각해 보십시오. 갑자기 개구리가 튀어나오자 그녀는 비명을 지르고 맙니다.  잠을 자기 위해 이불을 젖히는데 그 안에 개구리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한 마리는 옷에 올라가 앉아 있고 주머니 속에도 역시 개구리입니다. 개구리들이 발가락 사이에 끼어 짓이겨지며 학교로 가는 이집트 소년들의 발길에 채입니다.

 

마침내 이집트 왕 바로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종 모세를 불렀습니다.

 

“개구리들이 나와 내 백성에게서 떠나게 하라. 내가 백성을 가게 하리니”(출8:8)

 

모세는 기뻤습니다. 모세는 정말 지금 당장 그렇게 하겠습니까 라고 바로에게 다짐하자 바로는 “내일 그리하라”고 말합니다.

 

아니 ‘내일’이라니, 그건 생각하지도 못했던 대답이 아닙니까? 개구리가 그의 음식에도, 침대에도, 옷속에도 그리고 집안 구석구석에 널려 있어서 그와 그의 백성들은 죽을 지경인데...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간구를 듣고 언제고 그 개구리들을 즉시 없애실 준비가 되어 있었고 이제 남은 결정은 오직 바로에게 달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내일’이라고 말합니다. 개구리와 하룻밤만 더 지내게 해 주시오 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그토록 지긋지긋한 개구리들과 함께 하룻밤을 더 지내고자 했을까요?

 

바로는 불순종하는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고 있습니다. 그는 순종하지 않고, 자만하며, 육적이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 즉 불순종 하는 인간의 좋은 표본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여러 차례 경고를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대부분의 불순종의 사람들처럼 그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개구리였습니다.

 

고난, 의심, 무거운 짐, 고통, 질병, 슬픔, 두려움, 혼란, 절망, 전쟁, 비탄의 개구리들.....

이것들 모두가 다 우리의 불순종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를 괴롭게 하는 개구리들을 제거하시려 하십니다. 그런데 바로와 같이 우리들 대부분은 “내일 제거해 주십시오. 부디 하룻밤만 더 개구리와 함께 묶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홈리스 피플에게 당장 깨끗한 아파트로 잠자리를 옮겨주겠다고 말했는데도 오늘밤 마약 한 대를 말아 담배를 피운 다음, 내일가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 아니겠습니까.

 

이집트 왕 바로는 ‘내일’이라고 말했으나, 성경은 “오늘 너희가 그분의 음성을 듣거든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라”(히3:7-8)(Do Not Harden Your HEARTS)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전도폭발 훈련을 받으면서 길거리에 나가서 전도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예수 믿으세요 라고 말하면 대부분 이렇게 말했습니다.

“믿어야지요.”

저는 기뻐서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말합니다.

“저, 지금 당장은 안 되고요, ‘나중에’ 하겠습니다.”

그는 개구리와 함께 하룻밤을, 더러운 개구리와 함께 이 세상에서 하룻밤을 더 보내기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창세기에서 리브가라는 여인이 이삭의 아내가 되기 위해 아브라함의 종과 즉시 떠나는 극적인 장면이 있습니다.

 

리브가의 친척들이 “리브가야, 이 사람과 함께 갈 거냐?”(창24:58) 그때 리브가는 간단히 대답했습니다.

“가겠습니다.”(I will go)

만약’도, ‘그리고’도, ‘그러나’도 없었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삶의 자세가 무엇입니까?

 

“가겠습니다.”,

“일어나 예수님께로 가겠습니다.”,

“가겠습니다. 더 이상 개구리와 함께 지내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결단하고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 이외에 더 큰 일이 무엇이 있단 말입니까? (장재언) 

 

 

 

 

 

 

 

 

 

 

 

 

 

 

 

 

 

시민단체, 할랄산업 성과 부풀려 추진하는

 검단스마트시티 조성 철회 요구

 

 

 

▲지난 12일 대구 서구 상리동에서 검은색 옷을 입은

무슬림들이 1400여년 전에 사망한 후세인 일가를 기리는

‘아슈라’ 집회에 참석해 손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행진하고 있다. 매일신문 제공

 

 

무분별한 이슬람 자본 유치, 할랄식품 육성, 국내 무슬림 세력화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슬람대책전국연합(대표 임채영 목사) 등 전국 88개 시민 단체는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할랄산업 성과 부풀리기를 중단하고 중동 자본을 끌어들여 추진하는 검단스마트시티 조성계획을 조속히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검단스마트시티는 인천시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가 함께 추진 중인 서울 여의도 1.6배 크기의 부지 개발사업이다.

 

이들 단체는 “검단스마트시티가 조성되면 무슬림들의 집단거주지가 형성돼 영국 등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각종 테러와 사회 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무슬림들의 국내 거주 인구가 대한민국 인구의 5%가 넘으면 이들은 자기들만의 문화와 율법(샤리아)을 주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할랄 산업은 우리 경제의 미래 대안이 될 수 없다”면서 “할랄산업 육성은 국가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가져 올 것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12일 대구에서는 무슬림 80여명이 검은 색 옷을 입은 채 자기의 가슴을 세게 치는 ‘아슈라’ 의식을 거행해 시민들을 놀라게 했다. 아슈라는 이슬람력으로 1월 10일이라는 뜻으로 1400여 년 전 후세인 일가가 이라크 왕조에게 몰살당한 것을 기리는 행사다.

 

범국민구국연합과 이슬람대책전국시민연대, 대구애국단체총연합회는 이날 오후 1시 대구 동성로 야외무대에서 ‘이슬람(IS) 대구 진출과 북핵 반대 대구 시민 총 궐기대회’를 개최했다. 현재 대구에는 무슬림 5000여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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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전 7시부터 미국 전역의 인터넷이 광범위한 장애를 겪은 것은 웹 카메라와 다른 스마트 기기들로 연속적인 대규모 해킹 공격을 일으킨 해커들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해커들은 트위터, 레딧, 넷플릭스, 에어비앤비 등 유명 사이트를 먹통으로 만들었다. 이는 미국의 주요 인터넷 호스팅 서비스업체인 딘(Dyn)이 디도스(DDoS, 분산서비스 거부) 공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는 일반적인 해킹 공격의 형태이지만, 이 정도의 대규모 피해를 일으킨 적은 매우 드물다. CNN, HBO Go, 페이팔 같은 사이트도 장애를 겪었다.

아래 지도는 8시 전 피해를 입은 미국, 유럽 일부의 상황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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딘의 수석 전략 담당자인 카일 요크는 해당 공격이 미라이(Mirai)라 불리는 멀웨어에 감염된 “수천만개의” 기기들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소유주들 모르게 수십만 개의 웹 카메라, 홈 라우터 등이 해킹 공격에 동원됐다.

 

DVR을 비롯한 스마트 기기들도 공격에 사용됐는데, 소비자들이 까다로운 암호를 걸어두지 않는 등 해커들에게 뚫리기 쉬운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파퓰러 미캐닉스는 지적했다.

 

딘 측은 9시 45분경 복구됐다고 발표했으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이후에도 2번의 추가 디도스 공격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어나니머스뉴월드프라이데이 등 2개의 해커 집단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에콰도르에 머물고 있는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아 어산지의 인터넷 사용을 제한한 것에 대한 ‘보복’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한평우 목사

 

 

칼타고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기원전 2세기에 로마가 힘차게 도약하던 웅지를 단칼에 꺾어버렸던 영웅 한니발이다. 그는 기상천외하게도 칼타고에서 그 먼 로마까지 코끼리 부대를 앞세우고 공격했다. 저들은 그 높은 알프스 산을 어떻게 넘었을 까는 아주 신비한 일로 학자들은 여기고 있다.

 

아마도 이태리 아오스타(Aosta)로 연결되는 알프스의 줄기 베르나르도(S.Bernardo) 산을 넘었을 것으로 본다. 그는 로마에 쳐들어와 모든 싸움을 이기고 10여 년 동안을 로마를 섭렵하며 사람들을 벌벌 떨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이름이 우리처럼 세 자로 끝나는 이름이기에 친밀함을 느끼곤 했다. 우리는 이런 작은 것에 쉽게 동질감을 느끼고 친숙함을 찾으려 한다. 전혀 모를 때에는 나의 종씨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한니발의 이름의 의미는 놀랍게도 "바알을 찬양 한다"는 기독교적인 시각으로 보면 좀 섬뜩한 이름이다. 선교사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그런 이름이었기에 로마의 장군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Scipio Africanus236 - 184Bc)에게 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칼타고에서 정말 중요하게 기억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 분이 바로 기독교 사에서 귀감이 되는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 여사다. 모니카 여사가 신앙 생활했던 교회의 터가 칼타고의 바다를 접한 곳에 지금도 남아있다.

 

 

 

 

2세기에 칼타고 감독 키프리안(Cyprian200-258)이 순교 당한 자리에 세워진 교회 터다. 그 교회의 터는 강대상의 자리만 덩그러니 남아있고 나머지는 바다를 향해 넓은 잔디밭으로 펼쳐져 있다.

 

그는 교회를 말살하려는 강력한 태풍에 맞서 항전하면서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함성처럼 외치던 위대한 지도자였다. 그리고 그 함성을 어거스틴이나 마르틴 루터 그리고 칼뱅도 인정하고 개혁의 기치를 들면서 똑같이 외쳤다. 키프리안은 북 아프리카의 영적 거성으로 복음의 진리를 지키기다가 장렬하게 순교했다.

 

그 교회는 북 아프리카의 수많은 영적 자녀들을 품었던 곳이었을 텐데 지금은 그 자태를 찾을 길이 없는 쓸쓸한 모습으로 길손을 반기고 있다. 마치도 기회가 주어질 때 열심히 신앙 생활해야 한다고 무언의 격려를 하는 것 같다. 교회를 둘러친 야트막한 담벼락에는 누가 만들어 놓았는지 이곳을 지켰던 모니카 여사에 대한 동판이 빛을 발하고 있다.

 

이곳은 이제 이슬람 국가가 되어 버렸는데 말이다. 그 동판에는 이런 글이 씌어있다.  “383, 9,11. 사랑하는 아들 어거스틴을 로마로 유학을 보내면서 눈물로 작별한 곳”이라고...

 

 

 

 

바로 교회 앞마당이 지중해다. 아들이 배를 타고 떠나면서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어머니 모니카 여사도 마주 손을 흔들며 눈물을 뿌렸던 현장이리라. 한 번의 눈물이 아니라 아들을 로마로 유학 보내고 그를 위해 끊임없이 눈물로 기도한 어머니다. 방탕한 아들이 주님의 품으로 돌아올 때까지 말이다.

 

그녀는 시골에서 아들을 도시 칼타고로 유학을 보냈다. 그녀의 아버지는 시골 마을의 관리였는데 아들의 유학을 그리 탐탁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 그러나 꿈을 가진 어머니 모니카의 고집으로 도시 칼타고로 유학을 보냈고, 칼타고에서 또 다시 세계의 수도인 로마로 멀리 유학을 보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한국의 어머니 못지않은 대단한 교육열을 지닌 어머니였다. 지금도 칼타고에는 현대 문명의 혜택과 상관없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하릴없이 길가에 앉아 있는데 무려 1600년 전에 로마로 유학을 보냈다는 것은 학문에 대한 대단한 열정과 희생을 의미한다.

 

어거스틴은 베르베르족(누미디아)으로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사람이었다. 일찍이 누미디아 사람들은 로마의 용병으로 유명했다. 그런 전통은 로마 제국이 망할 때까지 계속되었을 것이다. 이들은 지금 튜니지, 리비아, 알제리, 모르코 등 수천만 명이 흩어져 살고 있다. 그렇게 많은 민족들이 존재하면서 독립국을 형성하지 못한 민족은 터키 북쪽과 이란 땅에 살고 있는 쿠르드 족과 함께 유일하다고 한다.

 

그녀는 모든 어머니들처럼 아들을 위해 눈물어린 기도를 계속 드렸다. 이유는 그녀의 기도와는 다르게 아들은 방탕의 길을 계속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들은 이미 십대부터 여인과 동거했고 로마에서도 그런 삶을 지속하고 있었다. 급기야는 어거스틴은 아들을 낳기 까지 했다. 더더구나 그는 당시에 유행했던 마니교에 심취해 있었다. 고로 인간적으로 보면 돌아오기 힘든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기도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제 로마에서 어거스틴은 수사학 교수가 될 정도로 그는 성공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밀란(Milan)의 시 대변인이 되었다. 참으로 기뻐할 수 있는 정황이었지만 어거스틴이 해결해야 할 두 가지 문제로 인해 어머니는 기뻐할 수 없었다. 마니교에 집착하는 일과, 불신자 여인과 동거하는 일이었다.

 

세상 적으로는 출세했기에 박수를 보내야 될 일이었지만 모니카에게는 아들의 성공 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더욱 중요하게 여겼다. 그녀는 아들을 위해 기도만 한 것이 아니라 직접 먼 로마까지, 그리고 밀란 까지 삶의 현장으로 찾아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유학생 목회를 하면서 느낀 것은 유학 보낸 자녀의 신앙을 위해 전화로 부탁하거나 메일을 보내는 부모님들은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하물며 1600년 전에 자녀의 신앙을 위해 그런 열정을 가지고 행동했다는 것은 놀랍기만 하다. 북 아프리카에서 로마나 밀란까지 가기에는 너무 먼 길인데 말이다.

 

그녀의 끈질긴 기도는 급기야 아들이 돌이키게 되었고 당시 밀란 의 감독 암브로시우스(Ambursius340-397)에게 세례를 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다. 이런 결과를 통해 어거스틴은 유명한 명구를 만들었다. 즉 “눈물로 기도하는 자식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 다”는 명구다.

 

모니카 여사는 당시의 위대한 주교 암브로시우스에게 아들이 세례 받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뜨거운 눈물을 많이 흘렸을까? 그녀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다. 그녀는 변화된 아들과 함께 고향 칼타고로 귀국하려고 로마의 오스티아(Ostia) 항구로 왔다.당시 오스티아 항구는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화려한 도시였다. 인위적으로 만든 항구로 해군 기지로 사용했고, 국제적 화물선들이 왕래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때에 군인들의 봉급문제로 황제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자 황제를 제거하고 황제라고 참칭한 마그넨 티우스(Flavius magnentius303-353)가 바닷길을 봉쇄하고 있었다.

 

그래서 모니카 여사는 오스티아 항구에서 머물면서 뱃길이 해제되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 기간에 모처럼 아들과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눌 수 있었다.

 

그녀는 계엄령이 풀리기를 기다리던 중 말라리아에 걸렸고 소생될 수 없음을 직감하고 여기다 묻어달라고 유언을 했다. 그러면서 세상 끝 날에 부활될 터인데 고향에 묻힐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것은 아들이 자신의 장례로 힘들게 될 것을 고려한 배려였다.

 

어거스틴의 눈물어린 간호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9일 만에 오스티아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 때 그녀의 나이는 56세였고 어거스틴의 나이는 33세였다.

 

어쩌면 임무를 마친 사람을 하나님께서 불러 가셨는지도 모른다. 방탕한 아들을 향한 끊임없는 기도로 돌아온 아들은 그 후 위대한 신학자가 될 수 있었다. 수세기에 한 명 나올까 말까할 하나님의 신실한 사람으로 말이다.

 

지금 나는 오스티아 안티카(Ostia Antica)에서 상상의 나래를 펴고 1600년 전의 그 때를 돌아보고 있다. 수많은 뱃사람들의 외침에 섞여 하염없이 흐느끼는 어거스틴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그는 눈물로 우리에게 교훈 하고 있다. 이제 순종하려니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고 말이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수도원을 세우고 평생 동안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오로지 학문에만 올곧게 정진함으로 바울의 사상을 이해한 탁월한 학자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수많은 후배들에게 성경의 바른 교리를 가르치고 있다. 연약한 여인의 기도를 들으시고 주님께서는 놀라운 열매를 맺게 하셨던 것이다. 그 학문이 개혁자들에게 전수되었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바른 진리를 좇게한다.

 

그녀의 무덤일지 모르는 오스티아에 남아있는 작은 납골당의 도자기를 쓰다듬어 본다. 모니카 여사를 추억하면서. 그리고 읊조려 본다.기도하는 아들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모니카 여사의 믿음의 외침을.(한평우 목사 ) 

 

▲ 한평우 목사는 1982년 로마한인교회에 부임하여 지금까지 목회를 하면서 1993년 유럽목회연구원을 설립하여 한인 선교사와 목회자들의 영적 재충전을 돕고 있다. 

 

 

 

 

 

 

 

 

 

 

 

 

 

 

 

 

 

 

 

 

 

 

 

 

월드 시니어 선교회(대표 박환영·사진)가 23일(일) 오후 6시 메릴랜드 엘리컷시티에 있는 벧엘교회(담임목사 백신종)에서 제1회 월드 시니어 선교대회를 개최한다.

시니어 선교회는 은퇴 뒤 삶을 선교에 힘쓰려는 시니어들의 모임으로, 62세 이상을 정회원으로 하고 있다.

23일 열리는 행사에는 김현철 도미니카공화국 월드미션센터 대표가 강사로 나서 선교회의 비전을 제시할 예정이다.

 

박환영 대표는 “시니어 시기에는 자녀들이 독립하는 등 시간적 여유가 많아져 선교에 힘쓰기 좋다”며 “120세 장수시대가 열린 것은 하나님께서 마지막 추수 때에 시니어들을 통해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제1회 월드 시니어 선교대회를 계기로 사역 범위를 넓혀나갈 것이라며 버지니아와 리치먼드 등 각 지역에 지회를 확장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의: 443-388-2775

▷행사장소: 벧엘교회(3165 st John’s Lane Ellicott City, MD 21043)

 

 

 

 

 

 

 

 

 

 

 

 

햄버거 체인 인앤아웃(In-N-Out)이 미국 음식점 전문잡지인 레스토랑 뉴스(Restaurant News) 설문 조사에서 미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리미티드 서비스(limited-service) 레스토랑'에 선정됐다고 크리스천포스트가 보도했다.

 

레스토랑 뉴스는 매년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품질, 청결, 분위기 등을 조사해 미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레스토랑을 선정하고 있다.

 

이 중 리미티드 서비스 레스토랑은 고객이 카운터에서 돈을 낸 후 빠른 시간 안에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레스토랑으로 부페, 카페테리아, 스테이크 하우스 체인 등을 포함한다.

 

인앤아웃 버거는 컵의 하단에 성경구절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요한복음 3장 16절, 마태복음 6장 19절, 고린도전서 13장 13절 등이다.

 

성경구절은 컵 외에 햄버거를 싸는 봉지, 프랜치 프라이를 담는 상자 등에도 있다. 

 

컵 아래 성경구절을 넣은 것은 1980년대 창업주의 아들인 리치 스나이더(Rich Snyder)가 사장으로 있을 때 이 회사의 기독교 신앙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이뤄졌다. 

 

기독교인이 운영하는 또 다른 회사인 칙필레이(Chick-fil-A)는 5위를 차지했다.

 

맥도날드는 100위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고(111개 조사 대상 중 110)위, 척키치즈(Chuck E. Cheese)는 꼴지를 차지하는 수모를 당했다. 

 

 

 

 

 

 

 

 

 

 

 

 

 

 

 

 

 

 

 

 

 

 

 

 

 

 

스티브 잡스는 56세의 나이로 2011년 10월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만 5년이 되는 해이다.

그를 추모하는 뜻에서 이 글을 소개한다.

 

 

 

 

 

 

 

2005년 스탠포드 졸업식 축사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Truth be tol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먼저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이곳에서 여러분들의 졸업식에 참석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태어나서 대학교 졸업식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네요. 오늘, 저는 여러분께 제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세 가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별로 대단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딱 세가지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먼저, 인생의 전환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So why did I drop out?

 

전 리드 칼리지에 입학한지 6개월 만에 자퇴했습니다. 그래도 일 년 반 정도는 도강을 듣다, 정말로 그만뒀습니다. 왜 자퇴했을까요?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그 것은 제가 태어나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 생모는 대학원생인 젊은 미혼모였습니다. 그래서 저를 입양보내기로 결심했던 거지요. 그녀는 제 미래를 생각해, 대학 정도는 졸업한 교양있는 사람이 양부모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어나자마자 변호사 가정에 입양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They said: "Of course."

 

그들은 여자 아이를 원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 대신 대기자 명단에 있던 양부모님들은 한 밤 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어떡하죠? 예정에 없던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그래도 입양하실 건가요?" "물론이죠."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그런데 알고 보니 양어머니는 대졸자도 아니었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졸업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입양동의서 쓰기를 거부했습니다. 친어머니는 양부모님들이 저를 꼭 대학까지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후 몇개월이 지나서야 화가 풀렸습니다.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17년 후, 저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멍청하게도 바로 이 곳, 스탠포드의 학비와 맞먹는 값비싼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평범한 노동자였던 부모님이 힘들게 모아뒀던 돈이 모두 제 학비로 들어갔습니다.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결국 6개월 후, 저는 대학 공부가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인생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대학교육이 그 것에 얼마나 어떻게 도움이 될지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양부모님들이 평생토록 모은 재산이 전부 제 학비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그래서 모든 것이 다 잘 될 거라 믿고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지금 뒤돌아보면 참으로 힘든 순간이었지만, 제 인생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자퇴를 하니 평소에 흥미 없던 필수과목 대신 관심 있는 강의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그렇다고 꼭 낭만적인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전 기숙사에 머물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 집 마룻바닥에 자기도 했고 한 병당 5센트씩 하는 코카콜라 빈병을 팔아서 먹을 것을 사기도 했습니다. 또 매주 일요일,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7마일이나 걸어서 헤어 크리슈나 사원의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맛있더군요. 당시 순전히 호기와 직감만을 믿고 저지른 일들이 후에 정말 값진 경험이 됐습니다.

 

 

Let me give you one example:

예를 든다면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그 당시 리드 칼리지는 아마 미국 최고의 서체 교육을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학교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터, 서랍에 붙어있는 상표들은 너무 아름다웠고요.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어차피 자퇴한 상황이라, 정규 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서체에 대해서 배워보기로 마음먹고 서체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 때 저는 세리프와 산 세리프체를 배웠는데, 서로 다른 문자끼리 결합될 때 다양한 형태의 자간으로 만들어지는 굉장히 멋진 글씨체였습니다.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따라 하기 힘든 아름답고, 유서 깊고, 예술적인 것이었고, 전 그 것에 흠뻑 빠졌습니다. 사실, 이 때만해도 이런 것이 제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될지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매킨토시를 처음 구상할 때, 그 것들은 고스란히 빛을 발했습니다. 우리가 설계한 매킨토시에 그 기능을 모두 집어넣었으니까요. 아마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만약 제가 그 서체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매킨토시의 복수서체 기능이나 자동 자간 맞춤 기능은 없었을 것이고, 맥을 따라한 윈도우도 그런 기능이 없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에는 이런 기능이 탑재될 수 없었을 겁니다.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만약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다면, 서체 수업을 듣지 못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가 오늘날처럼 뛰어난 인쇄술을 가질 수도 없었을 겁니다.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그 순간들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없었습니다.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지금 여러분은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 다만 현재와 과거의 사건들만을 연관시켜 볼 수 있을 뿐이죠.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현재의 순간들이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지 연결된다는 걸 알아야만 합니다.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여러분들은 자신의 배짱, 운명, 인생, 카르마(업?) 등 무엇이든지 간에 '그 무엇'에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이런 믿음이 저를 실망시킨 적습니다. 언제나 제 인생의 고비 때마다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두 번째는 사랑과 상실입니다.

 

 

I was lucky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저는 운 좋게도 인생에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일찍 발견했습니다. 제가 20살 때, 부모님의 차고에서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차고에서 2명으로 시작한 애플은 10년 후에 40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2백억 달러짜리 기업이 되었습니다. 제 나이 29살, 우리는 최고의 작품인 매킨토시를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저는 해고 당했습니다.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내가 세운 회사에서 내가 해고 당하다니! 당시, 애플이 점점 성장하면서, 저는 저와 잘 맞는 유능한 경영자를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1년은 그런대로 잘 돌아갔습니다.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의 비전은 서로 어긋나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 둘의 사이도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우리 회사의 경영진들은 존 스컬리의 편을 들었고, 저는 30살에 쫓겨나야만 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공공연하게.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저는 인생의 촛점을 잃어버렸고, 뭐라 말할 수 없는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전 정말 말 그대로, 몇 개월 동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답니다. 마치 달리기 계주에서 바톤을 놓친 선수처럼, 선배 벤처기업인들에게 송구스런 마음이 들었고 데이비드 패커드(HP의 공동 창업자)와 밥 노이스(인텔 공동 창업자)를 만나 이렇게 실패한 것에 대해 사과하려했습니다. 저는 완전히 '공공의 실패작'으로 전락했고,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그러나 제 맘 속에는 뭔가가 천천히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전 여전히 제가 했던 일을 사랑했고, 애플에서 겪었던 일들조차도 그런 마음들을 꺾지 못했습니다. 전 해고당했지만, 여전히 일에 대한 사랑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사건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 저는 성공이란 중압감에서 벗어나서 초심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자유를 만끽하며, 내 인생의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기로 갈 수 있게 됐습니다.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 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이후 5년동안 저는 '넥스트', '픽사', 그리고 지금 제 아내가 되어준 그녀와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픽사는 세계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를 시작으로, 지금은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되었습니다.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세기의 사건으로 평가되는 애플의 넥스트 인수와 저의 애플로 복귀 후, 넥스트 시절 개발했던 기술들은 현재 애플의 르네상스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로렌과 저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애플에서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이런 엄청난 일들을 겪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정말 독하고 쓰디 쓴 약이었지만, 이게 필요한 환자도 있는가봅니다. 때로 세상이 당신을 속일지라도, 결코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전 반드시 인생에서 해야할만 일이 있었기에, 반드시 이겨낸다고 확신했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아보세요.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먼저 다가오지 않듯, 일도 그런 것이죠.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노동'은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런 거대한 시간 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가 위대한 일을 한다고 자부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일을 위대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때는, 사랑하는 일을 하고있는 그 순간 뿐입니다.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지금도 찾지 못했거나, 잘 모르겠다해도 주저앉지 말고 포기하지 마세요. 전심을 다하면 반드시 찾을 수 있습니다. 일단 한 번 찾아낸다면,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처럼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더 깊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그 것들을 찾아낼 때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현실에 주저앉지 마세요.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세번째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17살 때, 이런 문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루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 길에 서 있을 것이다. 이 글에 감명받은 저는 그 후 50살이 되도록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아니오! 라는 답이 계속 나온다면, 다른 것을 해야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Because almost everything?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왜냐구요? 외부의 기대, 각종 자부심과 자만심. 수치스러움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들은 '죽음' 앞에서는 모두 밑으로 가라앉고, 오직 진실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모두 잃어버린 상태라면, 더이상 잃을 것도 없기에 본능에 충실할 수 밖에 없습니다.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저는 1년 전쯤 암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침 7시 반에 검사를 받았는데, 이미 췌장에 종양이 있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췌장이란게 뭔지도 몰랐는데요.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의사들은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이라고 말했습니다.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신변정리를 하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이었죠.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그 것은 내 아이들에게 10년동안 해줄수 있는 것을 단 몇달안에 다 해치워야 된단 말이었고, 임종 시에 사람들이 받을 충격이 덜하도록 매사를 정리하란 말이었고, 작별인사를 준비하라는 말이었습니다.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전 불치병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 날 저녁 위장을 지나 장까지 내시경을 넣어서 암세포를 채취해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저는 마취상태였는데, 후에 아내가 말해주길,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췌장암으로써, 의사들까지도 기뻐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합니다. 저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습니다.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그 때만큼 제가 죽음에 가까이 가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가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경험을 해보니, '죽음'이 때론 유용하단 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을 때보다 더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죽길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싶다는 사람들조차도 당장 죽는 건 원치 않습니다.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다 죽을 것입니다. 아무도 피할 수 없죠. 삶이 만든 최고의 작품이 '죽음'이니까요. 죽음이란 삶의 또다른 모습입니다. 죽음은 새로운 것이 헌 것을 대체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지금의 여러분들은 '새로움'이란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여러분들도 새로운 세대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줘야할 것입니다.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너무 극단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여러분들의 삶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낭비하지 마십시오.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도그마-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얽매이지 마십시오.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타인의 잡음이 여러분들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세요.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과 영감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이미 마음과 영감은 당신이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죠.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제가 어릴 때, 제 나이 또래라면 다 알만한 '지구 백과'란 책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먼로 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랜드란 사람이 쓴 책인데, 자신의 모든 걸 불어넣은 책이었지요.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PC나 전자출판이 존재하기 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타자기, 가위, 폴라노이드로 그 책을 만들었습니다. 35년 전의 책으로 된 구글이라고나 할까요.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그 책은 위대한 의지와 아주 간단한 도구만으로 만들어진 역작이었습니다. 스튜어트와 친구들은 몇 번의 개정판을 내놓았고, 수명이 다할 때쯤엔 최종판을 내놓았습니다.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그 때가 70년대 중반, 제가 여러분 나이 때였죠. 최종판의 뒤쪽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아마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히치하이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요.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그 것이 그들의 마지막 작별인사였습니다.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저는 이제 새로운 시작을 앞둔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분야에서 이런 방법으로 가길 원합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Thank you all very much.

고맙습니다. 

 

 

 

 

 

 

 

 

 

 

 

 

 

 

 

 

 

 

 

 

 

 

아직도 많은 크리스천들이 요가에 빠져있는 모습을 본다.

요가는 단순한 운동이나 다이어트 방법이 아니다. 요가는 몸으로 하는 힌두교식 기도이다.

 

이를 지속적으로 하게 될 때 흑암의 세력에 노출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제 ‘요가’는 단순히 유행처럼 지나가는 바람같은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집이나 직장 인근의 요가센터, 구민 복지관, 백화점 문화센터, 학원, 노인 대학, 심지어 교회에서도 요가를 가르친다. 미국 교회에서 직접 요가를 가르치는 모습을 내 눈으로 보았다.

 

이 ‘요가’는 과연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도 되는 단순한 심신수련의 한 방법일까? 크리스천은 이것을 그냥 받아들여도 무관한 것일까? 교회는 이것을 너그럽게 허용해도 별 지장이 없는 것일까?

 

 

 

 

먼저 요가의 의미를 살펴보자.

요가의 의미는 ‘결합시키다’라는 뜻이다. 이 ‘결합’이란 자연과 인간의 결합을 의미한다. 그리고 요가란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인도의 심신 수련법으로 잘 알려져 있다. 즉 요가는 몸으로 하는 ‘힌두교식 기도’, ‘명상’이다.

 

요가의 수행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그것은 다름아닌 불교와 힌두교의 수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즉 다이어트나 명상과 함께 붙어다니는 요가는 단순한 건강 단련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종교적인 의식의 하나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요가가 힌두교식 기도라는 사실을 모르고 행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일종의 이방 종교 의식을 우리 삶 속에서 행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런 요가가 비만 해소와 다이어트에 효과적이며 몸을 유연하게 하고 정서를 안정시키는데 효과적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많은 사람들이 요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요가에는 불살생, 불탐, 주문 외우기, 고행, 요가 호흡, 불교의 선, 인도철학, 윤회설, 수행 등의 혼합된 양상들이 내포되어 있다.

 

요가를 지속적으로 하게될 때 우리의 몸과 마음, 생각은 자연스럽게 불교, 힌두교 등의 이방 종교에 사로잡히게 된다.

 

건강을 위한다 혹은 심신의 수련과 차분한 정서를 갖고 학습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별 생각없이 하는 요가가 흑암의 세력과 나쁜 영들에 노출되는 통로가 되며, 심지어는 이방 신들과 접촉하는 결과까지 유발하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나 교회 안에서 또한 크리스천의 삶에서 요가를 허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요가를 통해 얻어지는 차분함은 결코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이 아니다. 요가를 함으로 자신도 모르게 이방 종교식 기도를 하며 이방 신들과 접촉하는 통로를 열어 놓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일종의 건전 문화처럼 자리 잡고 있는 요가는 크리스천과 불신자들의 삶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하나의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교회는 세상 문화를 말씀으로 검증해보지 않고 쉽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 사단은 문화라는 틀을 통해서도 사람들의 삶을 파괴시키기 때문이다.(언) 

 

 

 

 

 

 

 

 

 

 

 

 

 

 

 

 

 

 

 

 

 

 

 

 

 

 

 

 

 

 

 

 

 

 

 

 

 

필그림교회 교인 97% 교단(PCUSA)탈퇴 찬성

노회에서의 최종결정 남아있어

 

필그림교회(양춘길 목사)는 10월 16일(주일) 교단 관계해소(탈퇴) 의사를 묻는 임시 공동의회를 열었으며 1,178표 유효표중 반대 37표 찬성 1141표로 97% 찬성으로 통과 되었다.

 

 

 

▲임시 공동의회가 열린 주일 “오직 예수”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한 양춘길 목사

 

 

지난해 11월 교회주관으로 열린 공동의회에서는 98%의 교인이 교단을 떠나는 것을 찬성했으며, 이번 노회에서 파송한 행정전권위원회가 직접 교인들을 교육한 후 주관한 공동의회에서도 지난해 결과와 비슷한 97%의 찬성을 얻었다.

 

필그림교회가 현재 속해있는 미국장로교 동부한미노회가 통과시킨 교단관계 해소 정책에 의하면 교단을 탈퇴하기 위해 공동의회에서 교인의 80%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이제 남은 과정은 노회가 파송한 행정전권위원회가 노회재산인 교회재산에 대한 계획, 교단에 남기를 원하는 교인들에 대한 목회적 돌봄을 고려하여 방안을 노회에 추천하게 되고 노회석상에서 필그림교회의 교단탈퇴 여부가 최종적으로 결정된다.

 

노회와 필그림교회는 2012년 교단탈퇴 의사를 밝인 후 진행과정에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으며, 12월 초에 열리는 동부한미노회 정기노회에서 관련 안건이 최종 처리될 수 있을까 주목받고 있다.. 

 

 

 

 

 

바로알자 신천지 카페(http://cafe.naver.com/soscj)에 기독교와 신천지의 핵심 교리를 비교한 도표 소개.

 

기독교와 신천지의 구원론은 무엇이 다른지, 재림론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교회관은 무엇이 다른지, 기독론과 성령론에선 어떤 차이가 있는지 짧고 간결하게 짚어냈다.

 

이 도표에서 기독교의 구원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과 부활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정리했다. 반면 신천지는 이만희 교주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신천지로 들어와야 구원을 얻는다고 비교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진리의 영이라는 게 기독교의 근본 교리인 반면 신천지는 예수님이 약속한 진리의 성령은 오직 이만희 교주에게만 임하고 사도들에게 임한 성령은 요엘이 약속한 성령인데, 서로 다른 성령(소위 진리의 성령과는 다른 일반 성령)이다고 정리했다. 게다가 신천지는 성령은 한분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수많은 영들이다고 주장한다고 비교했다.

 

재림과 관련 성도들이 볼 수 있고, 깨달을 수 있고, 예수께서 사탄의 세력을 멸하시고 온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전통적 주장과 달리 신천지는 이만희 교주에게 예수님의 재림이 영적으로 이뤄지며 이 교주를 통해서만 재림 예수님을 깨달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고 한다. 이만희 교주와 예수의 영이 하나되어 사탄의 세력을 이기고 세상을 통치한다는 게 그들의 재림관이라는 것이다.

 

성경론에 대해선 기독교가 성경의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비밀은 예수님의 초림과 성령의 오심으로 모두 풀렸다고 하는데 반해 신천지는 성경의 비밀이 2천년 동안 봉해져 있었는데 이만희 교주를 통해 비로소 풀렸고 새로운 영적 이스라엘을 통해 신천지를 이룬다고 주장한다고 비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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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북한 체제는 한미일 3국이

아무리 강력한 제재 안을 내놓더라도

결코 붕괴하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북한 대외무역의 90%를 점하고 있고

원유와 식량을 제공하고 있는

중국이 있는 한 붕괴하지 않는다.

 

북한 붕괴론에 근거한 박근혜 정부의 외교ㆍ안보정책이

내치용이란 의구심을 그래서 떨쳐버리기 어렵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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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닥불 피워 놓고

마주 앉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인생은 연기속에

재를 남기고

말없이 사라지는

모닥불 같은것

 

타다가 꺼지는

그 순간까지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타다가 꺼지는

그 순간까지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얼마 전부터 어깨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한 이 모 씨는 이제 막 50대를 넘긴 중년의 남성이다. 오십견(frozen shoulder)이 일찍 찾아온 것으로 생각하고 병원을 찾은 이 씨는 검진 결과를 듣고 나서 깜짝 놀랐다. 의사가 심장에 이상이 있는 것 같으니 대형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아보라고 조언했기 때문이다.

 

 

 

연관통은 질병의 원인 부위와 통증을 느끼는 부위가 서로 다른 것을 말한다

 

심장에 이상이 있으면 가슴이 아파야지 왜 어깨가 아프냐는 이 씨의 질문에 의사는 “아마도 연관통(聯關痛)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답변하면서 “폐가 안 좋으면 가슴보다 등이 아픈 경우가 있는데 그런 증상이 바로 연관통”이라고 말했다.

 

 

여러 장기가 감각신경을 공유하기 때문에 발생

 

연관통이란 질병의 원인 부위와 통증을 느끼는 부위가 서로 다르게 느껴지는 통증을 말한다. 이 같은 증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뇌에 연결되어 있는 감각신경 한 줄기에 여러 개의 장기·조직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러 장기·조직이 같은 감각신경을 공유하게 되면 뇌에서는 통증이 어디에 생긴 것인지 정확히 구별하지 못하는 상황이 종종 나타나게 된다.

 

다시 말해 감각신경은 뇌에서 내려올 때는 한 줄기였다가 몸으로 내려와서는 여러 갈래로 나눠지면서 신체의 각 부위로 퍼지게 되는데, 이 때 신체의 부위 중 한 곳에 이상이 생기게 되면 그 부위와 같은 감각신경을 공유하는 다른 신체 부위가 먼저 아플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목과 어깨가 같은 감각신경을 사용한다고 가정했을 때, 목에 문제가 생겨도 뇌는 그 통증이 목과 어깨 중 어디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를 확실하게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깨가 아프다’라고 착각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연관통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치아갈이’와 ‘턱관절의 이상’으로 발생하는 편두통이 꼽힌다. 보통 두통이 생겼을 때 많은 사람들이 머릿속 문제라고 생각하여 병원을 찾지만 MRI나 CT, 그리고 뇌파검사를 해도 별다른 원인이 없다는 진단 결과를 받게 된다.

 

이런 경우 병원에서는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은데, 통증의학 전문가들은 치료를 해도 잘 낫지 않는 편두통 환자들이 내원을 하면 우선 치과로 가서 검진을 받을 것을 권유한다.

 

실제로 이런 권유를 받고 치과에 가서 진료를 받은 환자 들 중에는 입을 크게 벌리지 못하거나 하품을 할 때 턱관절에서 소리가 나는 증상을 보인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외에도 입을 벌리면 한쪽으로 입이 틀어지면서 간헐적으로 턱이 빠지는 증상을 가진 경우가 있었는데 이런 증상들을 가진 환자들의 경우 대부분이 편두통을 앓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장기의 문제를 조기에 알 수 있는 긍정적 효과도 있어

 

연관통도 일종의 질병인 만큼 앓지 않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어쩔 수 없이 병이 찾아오게 된다고 하더라도 이를 자신의 건강관리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연관통이 건강관리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연관통도 질병의 하나인데 어떻게 건강을 관리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이에 대해 통증의학 전문가들은 “신체의 많은 장기들 중에는 이상이 오더라도 초기에는 별다른 임상적 징후들을 나타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라고 설명하며 “하지만 연관통을 가진 환자들 중에는 통증으로 인해 장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연관통을 잘 활용하면 몰랐던 체질의 특성이나 질병의 발생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가 찍힌 곳은 원인 부위이고

붉게 표시된 곳은 통증이 발생하는 부위다

 

 

연관통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많이 보유하고 있으면 있을수록 임상적 진단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신경계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는 체질을 가진 사람은 연관통을 앓는 기간이 길어질 수 있고, 만성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는 지속적인 자극에 의해 연관통의 범위가 광범위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인 부분도 연관통의 정도가 심해지면 무용지물이 된다. 따라서 통증이 더 심해지기 전에 치료를 해야 하는데, 대체적으로는 교감신경을 안정시켜주는 주사요법을 시행하면 혈액순환이 촉진되면서 통증이 완화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물론 주시요법은 근본적인 치료방법이 아니다. 일시적으로 통증을 잡아주는 효과만 볼 수 있기 때문에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정밀 검사를 통해 어떤 장기에 문제가 있는지,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통증의학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한편 통증 중에는 연관통과 유사하게 착각할 수 있는 통증이 존재하는데, 이를 방사통(radiating pain)이라고 한다. 방사통 역시 막상 아픈 부위와 원인 부위가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 증상을 보이기 때문에 연관통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은데 발생 기저는 완전히 다른 질병이다.

 

방사통은 목이나 허리 등 연결부위의 디스크 증상으로 인해 목에서 팔까지, 또는 허리에서 다리까지 연결되어 통증이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반면에 연관통의 경우는 장기와 연결된 감각신경을 공유한 해당 부위에 국소적으로 통증이 나타나므로 이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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