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25,  2016

 

 

 

 

 

 

 

 

 

 

 

 

 

 

 

 

 

 

 

 

 

 

 

 

 
 
 

 

 

 

 

 

 

 

 

 

 

 

 

 

 

 

 

 

 

어쩌다 친구 꾐에 빠져

예배당 관사 높은 지붕에 올라간

날 두고 사다리를 치워 버린

친구가 원망스러웠을 때

 

혹여 예배당 지붕 위에서

이름 없는 귀신이 될까

두려움에 겁도 없이 지붕 밑으로 뛰어

고공 법을 구사하든 어린 시절

 

할머닌 늘 그랬다

"예배당이 니 할애비 집이냐?"라고

그러면 나도 속이 상해서 꼬박

"네 할애비 집 맞는데요!"

되받아치던 유년

 

꼭 크리스마스 즈음만

교회 나간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일 년 중 그때가 가까워지면

언제나 예배당을 기웃거렸다

 

정말 크리스마스에 나눠주던

사탕과 따끈한 빵이

그리워 간 것은 아니었다

 

여름날은 맨드라미가

붉은 얼굴로 깔깔거리고

봉선화 채송화도 단아한 모습으로 피어있던

그래서 늘 예배당은 내게 많은

신비를 지닌 비밀한 정원이었다

 

찬란하게 반짝이는 별이 달린 트리와

무대 위 올려지던 다윗 이야기며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세상에 오신

거룩한 이야기들

 

내 유년의 크리스마스는 항상

내게 행복을 선물하는 요람이었다

 

꼭 빵이 그리워 사탕이 그리워

예배당을 다닌 것은 아니었다  

 

 

 

 

 

 

 

 

 

 

 

 

 

 

 

 

 

고요한 밤의 오색 트리에 매달린

탄일종들이 일제히 울리고 또 울렸다 한들

거룩한 밤에 술 취해 주무시는 아버지 옆에서

새우깡을 먹으며 봤던 벤허를 또 봤었다 한들

어둠에 묻힌 밤에 루돌프 사슴을 불러대는

두 딸을 이끌고 홍대 앞 카페에 이렇게 이르렀다 한들

 

선물꾸러미를 어깨에 멘 여드름투성이를 앞세우고

반백의 노신사가 들어섰고

부부가 열댓살의 두 남매를 앞세우고 들어섰던가

두 남매의 입에서 할아버지라는 말이 튀어나오고

여드름투성이의 선물꾸러미를 두 남매가 메고 나갔던가

반백의 노신사는 자분자분 쩔쩔맸고

여드름투성이는 고개를 숙인 채 쑥스러워했고

남편은 멀찍이 거북해했고

아버님 도련님 하며 아내만이 부산스러웠던가

 

호남에서는 연이은 폭설로 길이 막혔다는

이른 새벽 이웃은 망상리조트를 향해 출발했다는

제주에서는 사십대 아버지가 두 딸과 조촐한 성탄파티 후

끝가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자살했다는

코가 석자나 빠진 루돌프들이 이끌고 가는

세상 참, 떼꾼한 크리스마스 또 돌아왔네

 

 

 

 

 

 

 

 

 

 

 
 
 
 

 

 

 

 

 

 

 

 

 

 

 

 

 

 

 

 

성탄의 기쁨을 전하는 불빛과 장식, 형형색색 화려한 장식물들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에게도 어김없이 성탄이 찾아왔다. 세상의 화려한 성탄이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으로 성탄을 바라보는 이들의 성탄 맞이는 어떨까.

 

서울지하철 4호선 명동역 4번 출구로 나와 노란색 보호도를 따라 계속 올라가면 예장통합 한국맹인교회(권호섭 목사, 이하 한맹교회)가 나온다. 한맹교회를 다니는 성도들의 80%는 시각장애인들이다. 나머지 20%는 대부분 그들의 가족으로, 시각장애인들의 눈이 되어주며 섬기는 역할을 한다. 담임 목회자인 권호섭 목사도 비시각장애인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교회지만 한맹교회에도 성탄트리가 있었다. 본당에 한 그루, 그리고 앞마당에 작게 3그루의 트리가 설치되어 있어 근처 남산 케이블카를 타러 온 관광객들이 잠깐씩 멈춰서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시각장애인 교회에 반짝이는 트리를 설치한 이유를 물으니 한방희 장로는 “우리는 보지 못하지만 오가는 분들이 트리를 보시고 성탄절이 왔음을 알 수 있으니까요. 신앙이 없는 분들이 보고 ‘아 예쁘다’ 하시고 성탄절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좋아요”라고 답했다. 그는 또 “눈은 보여도 신앙이 없는 사람들에게 성탄의 기쁨을 전할 수 있는 것이 곧 한맹교회 성도들의 기쁨”이라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옆에 있던 최명근 장로는 “시각적인 변화는 알 수 없는 대신 부르는 찬송이 달라지는 것과 연말 교회 행사가 많아지는 것을 통해 성탄 분위기를 느낀다”고 말했다.

 

이렇게 나름의 방법으로 성탄절 분위기를 느끼고 있는 한맹교회의 예배 순서와 풍경은 보통의 교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시각장애인 성도들이 예배당에 들어서면 앞을 볼 수 있는 성도들이 반갑게 맞으며 팔 한 쪽을 잡고서 빈 자리로 인도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시각장애인 성도들은 장의자에 앉은 후 손을 이용해 다른 성도들과의 간격을 조정한다.

 

또 한맹교회에서는 서로 인사하는 소리가 유난히 우렁차다.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하는 것은 물론이고 주변에 인기척이 나면 “누구신가요?”하고 묻는다. 아는 목소리가 들리기만 하면 곧바로 반가운 인사말이 오간다. 서로 볼 수 없는 만큼 크고 또렷한 목소리로 사랑하는 교우들을 반기는 것이다.

 

 

 

예배가 시작되면 이번엔 성도들의 손이 분주해진다. 성경 말씀, 찬송 가사, 주보 내용 등을 모두 점자로 읽기 때문이다. 앞이 보이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시각장애인들은 손끝으로 모든 것을 읽는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노트북 개념인 점자정보 단말기에 성경과 찬송 파일을 넣고 손으로 읽는 성도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예배 사회를 맡은 한방희 장로도 모든 순서를 점자로 읽으며 인도했다.

 

성가대의 찬양 순서가 됐다. 한맹교회 성가대 지휘자는 앞에 서지 않는다. 대신 대원들은 연습시간에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 충분히 곡을 숙지한 다음 MP3 파일 등을 이용해 곡을 다 외운 후 성가대석에 선다. 이날 ‘거룩하신 왕’을 부른 성가대는 노래를 시작해야 하는 부분과 강약 조절, 화음 등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노래를 부르다 쉬어가는 부분, 각 파트별로 나뉘어 부르는 부분이 지휘를 보면서 부르는 것처럼 모두 딱딱 맞아떨어졌다.

 

예배가 모두 마쳐질 즈음 성도의 교제 순서가 됐다. 앞뒤 좌우의 성도들과 축복과 사랑의 말을 건네는 것은 우리와 같지만 이들은 스스럼없이 손을 뻗어 서로 손을 잡고 어깨를 두드리는 스킨십이 굉장히 자연스럽다. 시선을 주고받으며 감정을 교환하지 못하는 대신 가벼운 스킨십을 통해 친교를 나누는 것이다.

 

예배를 마치고 성도들은 식사교제를 나눴다. 성도들은 식당에 올라가 식사했는데, 시각장애인들이 주축을 이루는 교회라 본당 진입로에는 발에 걸릴만한 턱이 없지만 1989년 지어져 노후화된 교회 건물 내부에는 계단들이 꽤 많았다.

 

성도들은 난간을 짚어가며 다니기도 하고, 눈이 보이는 성도들의 부축을 받거나 서로 서로 손을 잡아가며 계단을 오르내렸다. 하지만 오래 다닌 성도들은 교회 계단을 난간도 잡지 않고 익숙하게 오르내리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한맹교회는 1972년 1월 2일 시각장애인 7명에 의해 시작됐습니다. 그 후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 건축헌금을 모아 1989년 2월부터 이 자리에 교회를 지어 예배를 드리게 됐습니다.”

 

46년 동안 시각장애인들의 신앙생활 주춧돌 역할을 해온 한맹교회는 시각장애인들의 자활을 위해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왔다. 지금은 교회 재건축을 앞두고 잠시 쉬고 있지만 20여 년 동안 시각 장애인들이 전문 안마사로 자활할 수 있도록 안마와 침술을 교육했다. 최근 들어서는 60~70대가 되어 후천적으로 장애를 갖게 된 중도 시각장애인들이 많아져 이들의 자활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 교육하며 도왔다. 시각장애인들의 안마 및 침술 교육은 손에서 손으로 직접 전수하는 것이기에 그 정성이 더욱 크다.

 

이렇게 함께 예배하고 서로 도우며 신앙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한맹교회 성도들의 성탄절 소망은 무엇일까.

 

최명근 장로는 “우리 한맹교회 성도들이 행복한 신앙을 꾸려가는 모습을 보고 중도 시각장애인들과 삶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비 시각장애인들이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모습을 보고 ‘앞을 못 보는 사람들도 저렇게 행복하게 사는데 우리도 행복하게 살자’는 다짐을 할 수 있다면 참 감사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지승태 장로도 “육신의 눈으로 보든 못 보든 신앙인으로서 사람들에게 복음의 희망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똑같으니까요”라고 덧붙였다.

 

한맹교회 성도들의 마음 속 성탄의 메시지는 거리의 성탄 장식들보다 더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김가은 기자)

 

 

 

 

 

 

 

 

 

 

 

 

 

 

 

나는 매주 월요일에서 토요일 까지 컴퓨터 사역의 일환으로 오전에 교실에서 오프라인 강의를 하고 있다. 월요일아침 강의 시간에 맨 앞자리에 앉아서 공부하는 중급 수준의 86세 노익장 JS Kang이란 분이 계신다. 옆자리에는 82세의 부인이 앉아서 같이 공부한다.

 

30마일 떨어져있는 토렌스라는 곳에 살다가 이곳 풀톤으로 이사온 지 몇 달이 되었다. 그런데 아직도 교회를 정하지 못했다. 월요일만 되면 강의 시간 전에 나는 [어제는 어느 교회를 다녀오셨습니까?] 녹음기처럼 질문한다. 그는 웃으면서 거의 같은 내용의 대답을 한다. 첫째는 [찬양과 경배]가 너무 시끄럽다. 둘째는 설교가 마음에 안 든다.

 

북치고 장구치고 요란스럽게 예배 드리는 것도 문제가 되겠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마음에 안 드는 설교]가 더 큰 문제인 것 같다.

 

설교가 [마음에 안 드는] 것도 문제이고 마음에 안 드는 [설교]도 문제이다.

 

20세기의 위대한 설교자,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는 그의 [설교와 설교자]라는 책에서 수없이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

오직 설교로만! . .  오직 설교로만! . . .   

오직 설교만이 복음의 진리를 올바르게 선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럴 만도 하다. 교회 역사를 보면 종교개혁은 예배에서 설교의 위치를 회복시켰다. 그리고 점차 설교는 개신교회 예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대형교회(Mega Church)에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 그래서 메가처치는 설교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교회라는 지칭을 받고 있다.

 

메가처치를 정당화하는 논리는 대충 이런 식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올바르게 선포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잘 전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설교가 제대로 선포되는 교회는 건강한 교회다.

 

 

 

미국에서 제일 큰  Lakewood church 조엘 오스틴 목사

 

 

메가처치는 사실상 설교만 남은 교회다. 물론 메가처치에는 많은 프로그램이 있고 다양한 활동이 있다. 그러나 메가처치 교인의 상당수는 설교 때문에 온다. 실제로 메가처치의 설교자들은 다들 설교를 잘한다. 메가처치 교인의 상당수는 재미와 감동, 유익한 설교를 부담 없이 듣고 은혜의 포만감으로 교회를 나선다. 이들을 소위 선데이 크리스천이라고 부른다. 유난이 부담 없는, 쿨한 교회인 메가처치가 이들 선데이 크리스천의 온상이라는 것에 대해서 별 이견이 없을 것이다.

 

교회마다 이런 사람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다르겠지만, 파레토의 20/80법칙(Pareto principle)대로라면 대충 80%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다. 파레토의 법칙이란 어느 집단이든 활동적인 멤버 대 수동적인 멤버의 구성 비율이 20대 80은 된다는 것인데, 오늘날 적지 않은 교회성장학은 이 법칙에 근거하여 성장전략을 짜고 있다.

 

이 법칙이 맞는다면 메가처치 교인의 80%는 대부분 설교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로이드 존스와는 조금 다른 의미지만, 오늘날 메가처치에는 ‘오직 설교’만 있다.

 

 

가. 초대교회는 설교주의를 따르지 않았다

 

먼저 지적할 것은 초대교회의 예배에서 설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오늘날과 같이 절대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초대교회는 설교보다는 성찬을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겼다. 초대교회의 예배는 보통 2부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1부는 말씀 중심의 예배가, 2부는 성찬 중심의 예배가 드려졌다.

불신자의 예배 참석은 엄격히 금지되었지만, 특별히 2부 성찬 중심의 예배는 더더욱 참석할 수 없었다. 성찬은 오로지 세례 교인들만 참석할 수 있었다. 반면에 1부의 예배는 조금 더 허용적이어서 입교 예비 자들까지 참석이 가능했다. 이렇게 한 이유는 초대교회가 말씀 예배 보다는 성찬 예배를 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물론 초대교회도 말씀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나 말로 성서를 가르치는 것은 예배나 그리스도인의 삶의 한 부분일지언정 전부라고 여기지 않았다.

 

기독교 진리의 핵심은 ‘독생자가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따라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몸을 입고 오신 주’를 기념하는 것을 단순히 설교나 가르침을 듣는 것보다도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다.

 

요한이 생명의 말씀을 보고, 듣고, 손으로 만졌다고 고백했던 것처럼, 초대교회 성도들도 성찬을 '보이는 말씀,' 곧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여기며 극도로 중요하게 여겼다. 따라서 설교가 예배의 전부인양 여겨지는 개신교의 ‘설교주의’는 초대교회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현실을 놓고 초대교회로 돌아가보자.

 

나. 초대교회의 설교는 오늘날의 설교와 달랐다

 

앞에서 언급한 데로 초대교회의 예배는 말씀 중심의 1부 예배와 성찬 중심의 2부 예배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1부의 말씀 예배는 오늘날 교회에서 선포되고 있는 설교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띠고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설교, 또 마틴 로이드 존스가 그토록 강조하고 있는 설교는 웅변조(雄辯調)수사학적(修辭學的) 설교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설교를 초대교회에는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초대교회의 설교는 오늘날과 어떻게 달랐는가?

가장 중요한 차이는 당시의 설교가 오늘날과 같은 웅변조의 수사학적 설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처음 300년간 초대교회는 대부분 일반 가정에서 모였다. 뒤늦게 교회 건물로 추정되는 두라 유로포스나 도무스 에클레시아, 티툴루스 비잔티스 등의 존재가 확인되고 있지만 이것들도 일반 가정집을 개조한 것에 불과했다.

 

가정집에서 20명 남짓의 인원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초대교회의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예배 환경 때문에 초대교회에서는 오늘날과 같은 웅변조의 수사학적 설교가 어울리지 않았다. 고대의 수사학이 도입이 된 4~6세기까지 초대교회의 예배에서 웅변조의 수사학적 설교를 듣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초대교회의 설교 스타일은 어떠했을까?

 

먼저 설교자의 설교 능력은 크게 문제시되지 않았다. 설교자의 가장 큰 자질 중 하나는 성서를 잘 해석하여 읽을 수 있는 것이었다. 이것은 초대교회의 설교 중 중요한 부분이 성서를 길게 낭독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특정 본문에 대한 강론도 있기는 했다. 그러나 요즘처럼 성서를 쪼개고, 원어를 대조하고, 적절한 예화, 감동적인 표현, 천둥을 내리치는 열정, 풍부한 유머, 화려한 제스처 등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삶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에 대해서 예수와 사도들이 어떻게 말했는지 성서를 찾아서 읽어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그러나 설교자들에게 다른 능력이 요구되었는데, 그것은 순교의 잔까지 마실 수 있는 불굴의 신앙과 자신의 가르침을 으로 보여줄 수 있는 모범이었다.

 

둘째로, 설교의 목적은 삶의 변화였다.

은혜를 끼치는 설교나 성서 지식의 전달, 교리 교육 등은 설교의 주목적이 아니었다. 설교의 주목적은 세상 속에서 ‘신자답게 사는 길’에 대해서 가르치는 것이었다.

 

삼위일체, 그리스도의 속성 등과 같은 정통 교리 교육은 별로 없었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는, 예수의 대속적 죽음과 부활에 대한 복음 설교가 교회 안에서 거의 선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복음 설교는 불신자들에게만 선포되었으며, 교회 안에서는 소위 디다케(

Didache)라고 해서, 신자다운 삶, 곧 ‘생명의 길’이라는 이름의 예수 닮는 길에 대해서 주로 가르쳐 졌다.

신자다운 삶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시민 윤리적 가르침이 아니라 산상수훈에 대한 가르침이었다. 그래서 당시 설교는 성도들로 하여금 산상수훈을 실천하도록 부단히 촉구하는 시간이었다.

 

셋째로, 설교는 대화하는 방식이었다.

로버트 뱅크스가 묘사하는 1세기의 예배의 모습을 보면 설교는 대화하는 시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가령 가정에서의 문제라든지, 노예의 문제에 대해서 성도들이 물어오면 설교자는 그 문제에 대한 복음서나 사도의 글을 찾아 읽어준다. 그러면 성도들은 이에 대해 깨달음을 얻고, 그대로 순종할 것을 서약한다.

그러니까 설교 시간에는 대충 이런 식의 대화가 오고 갔다.

 

“목사님,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문제에 대해서 사도들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이렇게 합시다.”

“아멘!”

 

이러한 대화식 설교는 오늘날과 같이 30분 동안 쉬지 않고 목사 혼자서만 말하는 그런 설교와는 크게 달랐다.

 

넷째로, 초대교회의 설교는 실천을 통하여 선포되었다.

산상수훈에 나오는 두려운 경고,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가 설교자와 성도들을 늘 두렵게 했다.

 

그래서 그들은 말과 행동의 일치를 진리 선포의 중요한 조건으로 삼았다. <클레멘트 2서>의 저자가 강조하는 것도 행위를 통한 진리의 선포였다. 친밀한 작은 공동체로서의 초대교회 안에서 설교자의 삶은 오늘날 메가처치와 같이 은폐되거나 가려질 수 없었으며, 그대로 노출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몸, 삶, 말은 합쳐져서 설교가 되었다.

 

다. 수사학의 도입과 설교의 황금기

 

그런데 4~6세기에 수사학이 도입되었다. 수사학이란 한 마디로 ‘설득의 과학과 기술’이다. 이것은 논란이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수사학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정의일 듯싶다. 초대교회 지도자들도 수사학에 능통한 이들이 몇몇 있었다.

 

그러나 교회가 수사학을 설교의 방법론으로 받아들인 것은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 늘어난 군중들에게 성서를 가르치고, 복음을 전해야 하는 필요가 생겨서였다.

특히 어거스틴은 수사학과 성서의 메시지를 훌륭하게 결합시킨 인물로 기록되고 있다. 그때 교회의 설교가 웅변조의 수사학적 설교로 바뀐 것이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웅변조의 수사학적 설교가 도입되면서 설교는 한 사람퍼포먼스(performance)로 바뀌었다. 다들 자기를 쳐다보는 강단에서 대화도 없이 혼자서 장시간 동안 말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수사학의 기술이 필요하게 되었다. 때문에 수사학적 설교를 하는 사람은 진리를 전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임무를 부여 받게 된다. 그것은 사람들을 지루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을 지루하지 않게 하면서 장시간의 설교에 청중의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해서 예화의 활용이나 목소리, 제스처, 표정 등이 고안되었다.

또 엄청난 지식과 정보를 혼란스럽지 않도록 이해시키기 위해서 설교는 서론, 본론, 결론의 구조를 띠게 되고, 본론은 몇 가지 간단한 대지와 소지로 배열되어야 했다. 일관성 있는 사고를 위해서 발상부터 배열, 표현, 발표까지 일련의 설교 작성 프로세스가 중요해졌다. 그리고 이런 원리는 오늘날까지 설교학의 원리로 자리 잡고 있다.

 

교회의 설교는 바로 이러한 테크닉을 활용하여 기독교의 진리를 전하는 것이 되었다. 다시 말해서 4세기 이후, 설교는 ‘메시지+설득의 기술’이 된 것이다.

 

관건이 되는 것은 과연 기독교 진리가 설득의 기술을 통하여서 전달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의 진리와 그리스 진리 사이의 차이점을 기억할 필요를 느낀다.

 

만일 기독교 진리가 명제나 공식과 같이 그리스적 진리와 같은 성격의 것이라면 기독교 진리는 수사학 기술을 통해서도 전달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기독교 진리가 인격이라면 기독교 진리인격을 통해서만 올바르게 전달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지나치게 극단적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기독교 진리에 지적인 측면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바울의 말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그리스도에 대해서 듣고, 알고, 지식을 얻어야만 믿음이 생겨날 수 있다.

 

때문에 수사학 기술이 악마라도 되는 양 여길 필요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것이 절대로 본질을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필립 브룩스의 말처럼 설교는 반드시 ‘인격을 통과한 진리’라야 한다. 이것이 본질이다.

 

종종 수사학자들 중에는 키케로와 같이 진리를 강조하는 사람도 있었고, 플라톤이나 퀸틸리안처럼 인격을 강조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수사학은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기술일 뿐이었다. 진리나 인격이 없이도 잘 작동되는 것이 수사학 기술이다. 이것은 기독교 진리를 전달하는 데 있어서 참으로 치명적인 결함이다. 인격 부재의 상황에서도 수사학적 설교는 설득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메가처치와 같은 인격 부재의 상황에서도 설교가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기독교 진리의 능력이라기보다는 설득의 기술로서의 수사학의 힘이다.

 

오늘날 많은 설교학자들은 ‘설교의 위기’를 말하고 있다. 도대체 설교의 위기란 무엇인가?

설교의 위기란 한 마디로 설교한 대로 교회와 신자의 삶이 바뀌지 않는 것이 아니겠는가. 설교 따로, 삶 따로. 이것이 설교의 위기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설교의 위기는 수사학이 도입되었던 4-6세기부터 벌써 나타났던 현상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수사학이 도입되면서 설교는 황금기를 맞는다. ‘기독교의 진리’가 ‘설득의 기술’을 만났을 때 확실히 강력한 영향력이 나타났다. 암브로스, 크리소스톰, 어거스틴, 제롬 등은 위대한 설교가들로서, 황제조차 그들의 말 한 마디에 두려워 떨었다. 어떤 경우는 설교 때문에 폭동까지 일어났다. 당시 설교는 분명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슈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설교자들이 수사학을 배우면서, 초대교회의 능력은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하기 시작했다.

 교회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 설교의 황금기 때 교회의 능력은 형편없이 추락했다.

 

설교의 전성시대를 맞이한 한국교회는 왜 세상사람들로부터 존경 받기는커녕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가? 부정부패의 치부(恥部)를 들추어보면 반듯이 그곳에 크리스천이 있다.  왜 그럴까?  설교하는 자신도 변화가 없고 설교 그 자체가 크리스천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로마서 12장2절로 돌아가야 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변화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교인들이 내 설교를 듣고 그들의 삶이 변하고 있는가? 나는 교인으로서 예배를 드리고 난 후 삶이 변하고 있는가?  나는 과연 변화하려는 생각이 있는가?

 

설교를 복음으로 단순화 시켜야 한다. 모든 수사학의 기술을 복음으로 단순화 시켜야 한다.  오직 복음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장재언) 

 

 

 

 

 

 

 

 

 

 

 

 

 

 

 

 

 

 

 

 

이슬람국가(IS)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이라크 모술 인근 바르텔라 마을의 마르 쉬모니 기독교 교회에서 24일 저녁 성탄 예배가 치러졌다.

 

이 교회에서 성탄 예배는 2013년 이후 3년 만이다.

아시리아계 기독교도가 주로 살던 이 마을은 2014년 8월 IS에 장악됐다가 올해 10월 이라크 정부군의 작전으로 탈환됐다.

 

IS는 이 마을을 점령하자마자 기독교 교회를 이단이라면서 첨탑의 십자가를 떼고 성구와 성상을 불태웠다. 피란하지 못한 기독교도에겐 무거운 세금과 개종을 요구했으며 거부하면 죽이기도 했다.

 

다시 예배를 볼 수 있게 된 신자들은 감격과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나다 야쿠브 씨는 AFP통신에 "행복을 뭐라고 형용할 수 없다"며 "새 삶을 찾은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마을 주민 상당수가 돌아오지 못해 여전히 빈집이 많지만 교회 앞에는 성탄 트리도 세워져 분위기를 한껏 돋웠다.

이라크군은 혹시라도 있을 IS의 테러에 대비해 교회 주변을 삼엄하게 경계했다.

 

이 교회의 무사 쉬모니 주교는 로이터통신에 "이라크는 어두운 구름에 싸여 있지만 어떤 일이 일어나도 우리는 이곳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며 "신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말했다.

 

 

모술 부근 바르텔라의 교회

24일 이라크 모술 부근 바르텔라의 교회에서 성직자들이 신도를 맞고 있다. 

 

 

 

 

 

 

 

 

 

 

 

 

 

 

 

 

 

 

 

 

 

 

시리아인 누르(24)는 학교를 졸업하고 돈을 벌려고 6년 전 한국으로 왔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취직을 선택했다. 한국은 기회의 땅이었다. 경기도 일산에 있는 한 공장에 들어가 중장비 수리를 시작했다. 시리아에 있는 가족에게 매달 돈을 부쳤다.

 

누르는 5년째 고향에 가지 못하고 있다. 2011년 발발한 시리아 내전 때문이다. 전쟁은 많은 것을 바꿨다. 누르의 큰형은 2012년 반군에 가담해 싸우다 목숨을 잃었다. 그의 고향은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남부 지역으로, 정부군 점령지다. 가족들은 모두 고향을 떠나 피난길에 올랐다.

 

누르는 한국에 거주하면서 좋은 친구들을 만났다. 경기도 일산 예훈교회 식구들도 그 중 하나다. 무슬림인 누르는 가끔 예훈교회 주일예배에 '놀러' 가기도 한다. 이번 크리스마스이브 때도 그랬다. 경기도 일산 예훈교회(김용훈 목사)에서 열린 성탄 전야제 행사에서 누르를 만날 수 있었다.

 

예훈교회는 올해 성탄 전야제 행사를 조금 특별하게 준비했다. 누르를 포함해 인근에 거주하는 시리아인을 초대한 것이다. 경기도 일산 외곽에는 자동차 폐차장, 중장비 정비소 등 여러 공장이 있는데, 시리아인이 집단으로 거주하며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예훈교회는 오랜 전쟁으로 고통받는 시리아를 함께 기억하기 위해 이들을 불렀다. 시리아 전통 음식을 대접하고 교제를 나눴다.

 

 

 

 

예훈교회 교인들은 이태원을 돌며 구한 재료로 할랄 푸드를 만들었다. 

저녁 7시, 교인들은 식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식탁 위에는 찜닭, 잡채, 가지김치 등이 놓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음식이지만 모두 할랄 푸드다. 김용훈 목사는 "오늘 초대 손님인 시리아 친구들을 위해 할랄 푸드를 준비했다. 모두 무슬림이기 때문에 이를 배려하고 싶었고, 시리아 고향의 맛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날을 위해 예훈교회 교인들은 서울 이태원을 전전하며 재료를 공수했다. 시리아 전통 김치(마끄두스)를 대접하려고 아랍 사이트를 뒤지기도 했다. 아랍어를 할 줄 아는 진경호 씨가 요리법을 한국어로 번역해 교인들에게 알려 줬다. 마끄두스는 한국에 있는 가지김치 맛이 났다. 아랍 과자 기나페, 마끌루바 등 시리아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간식도 준비했다.

 

"앗살라무 알라이쿰(당신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있기를)." 시리아 친구들이 하나둘 오면서 교인들과 인사를 나눴다. 누르(24), 아흐말(26), 우바이(28), 빌렐(24)이다. 이들은 모두 시리아 내전이 발발하기 전 돈을 벌려고 한국에 왔다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가족들은 괜찮느냐는 질문에 "고향은 폐허가 됐다. 가족들은 피난을 갔고, 전화나 이메일로 안부만 묻고 있다"고 아흐말이 말했다. 그의 고향은 반군의 거점지 홈즈다.

 

마디브(34) 가족도 이날 예훈교회를 찾았다. 마디브는 지난해 부인 아이샤와 자녀 8명을 데리고 시리아에서 도망쳐 나온 난민이다. 그가 살던 알레포는 러시아·시리아 공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폐허가 됐다. 가게와 집도 공습을 피하지 못했다. 그는 현재 인천에 있는 자동차 정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열 식구를 먹여 살리기에는 빠듯하지만 마디브 가족 사례가 언론에 알려지면서 시민단체가 이들을 돕고 있다.

 

 

 

(왼쪽부터)우바이, 아흐말, 누르.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다. 

내전 때문에 고향에 있는 가족들을 걱정하며 지낸다.

 

 

누르와 마디브의 막내. 이날 처음 봤지만 금세 친해졌다.

누르·우바이 일행은 접시에 음식을 담아 예훈교회 교인들과 함께 앉아 밥을 먹었다. 무엇이 제일 맛있었냐는 질문에 찜닭이 제일 좋았다고 말했다. 시리아에서도 닭고기, 양고기를 즐겨 먹었다고 했다. 기나페, 마끌루바도 한 움큼 짚어 먹었다. 우바이는 과자가 맛은 있는데 터키식 과자라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마디브 자녀들도 오랜만에 푸짐한 식사를 만났는지 들떠 보였다. 아이들은 바닥에 과자, 과일을 흘린 것도 모르고 정신없이 먹었다.

 

이날 예훈교회 교인들은 시리아 친구들과 제기차기, 윷놀이 등 한국 전통 놀이를 즐겼다. 생소한 게임일 법도 한데, 시리아 친구들은 놀이에 쉽게 적응했다. 제기를 찰 때마다 사람들이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하자, 마디브 씨 자녀들이 폭소했다. 윷이나 모가 나오면 한국인 시리아인 누구나 할 것 없이 환호성을 질렀다. 교인들은 손님들을 위해 노래, 요요 공연, 짧은 연극 등도 선보였다.

 

평소 성탄절을 어떻게 보냈느냐는 질문에, 빌렐은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집에서 쉬었다"고 답했다. 빌렐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 보낸 성탄절은 처음이라며 즐겁다고 말했다. 아흐말도 크리스마스이브를 좋은 사람들과 함께 보낼 수 있어 즐거웠다고 말했다.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되다

 

예훈교회가 시리아인들과 인연을 쌓게 된 건 이 교회 교인 진경호 씨를 통해서다. 진경호 씨는 학생 때 튀니지에 1년 동안 단기 선교를 다녀온 후, 중동에서 통역병으로 군 복무했다. 자연스레 아랍권에 관심을 갖게 된 진 씨는 한국에 와서도 현지에서 만난 무슬림, 난민들을 잊지 못했다.

 

지난해 어느 날 진경호 씨는 교회 인근 마트에서 우연히 누르와 우바이를 만났다. 진 씨는 이들에게 아랍어로 몇 마디 말을 걸었고, 이때부터 친구가 되었다. 올해 가을부터는 누르 일행과 예훈교회 교인들이 매주 운동장을 빌려 같이 축구를 해 오고 있다.

 

김용훈 목사는 "예수님의 별명이 외로운 사람들의 친구였다. 올해 성탄 전야제는 특별히 시리아 친구들을 위해 준비했다. 원래는 야외에서 축구를 한 뒤 바비큐 파티를 열려고 했는데, 날씨가 추워져서 계획을 바꿨다. 무슬림 친구들이라 교회 오는 걸 부담스러워 할까 걱정했는데, 흔쾌히 와 줬다"고 말했다.

 

성탄 전야 행사를 마치고, 예훈교회 교인들과 시리아인들은 일산 번화가로 나갔다. 광장은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아 시민들로 붐볐다.

 

예훈교회 교인들과 시리아인들은 교회가 만든 피켓을 들고 시리아 내전 상황을 알렸다. "오랜 전쟁으로 고통받는 민간인을 기억해 주세요", "이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라고 소리쳤다. 교회가 제작한 에코백을 팔기도 했다. 수익금은 시리아 난민 어린이를 돕는 데 쓰기로 했다.

 

 

예훈교회와 시리아 친구들. 우연히 만나서 시작한 인연이 함께 저녁을 나누는 관계로 발전했다.

 

 

 

 

 

 

 

 

 

 

 

 

 

 

 

 

 

아기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신 크리스마스가 하늘에는 영광이 되고 이 땅 우리 모두에게는 구원의 기쁨과 참 평화를 누리는 행복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온 세상이 아무리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떠들어 대도 내 자신이 크리스마스가 무엇이며 크리스마스가 왜 있는가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내가 기뻐야 진정한 기쁨입니다. 크리스마스가 진정 기쁘십니까?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마 10:5~7)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파송하시며 복음을 전하게 하실 때에 전도의 대상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언약 밖의 사람 '이방인들'에게도 아니고, 이스라엘과 원수된 족속 '사마리아인들'에게도 아니고 마땅히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처하는 선민 '이스라엘 자신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전파하라고 하신 복음의 내용은 '천국이 가까왔다'였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복음이 가장 먼저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전해져야 할 대상은 바로 [내 자신]임을 깨닫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내게] 기쁨이 되어야 한다는 뜻과 같습니다.
 

내 자신의 삶 가운데 아직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고을들이 있습니다. 물론 내 마음의 정부가 바뀌었고, 대통령이 바뀌었고, 법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게릴라들처럼 잠복해 있는 사악한 옛 사람으로 인해 장악되어진 지역이 있습니다.
 

내 마음 속 땅끝까지 속속들이 다 파헤쳐서 그 숨어 있는 옛사람을 찾아 체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옛 사람은 더이상 내가 아니니까...

옛 사람은 사탄의 거짓에 속아 내 영혼을 영원한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하는 나쁜 유괴범이니까...

반드시 찾아내어 하늘법정으로 소환하여 철저히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시켜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복음이 전해져야 할 곳은 내 주변 가장 가까이에서 매일 한솥밥을 먹고 살아가는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입니다.
 

가족들 중 어느 한 사람이라도 복음이 명확하지 않다면 마음을 찢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가족들 중 어느 한 사람이라도 주님 오실 그날에 이 땅에 남겨져 무시무시한 대 환란을 겪는 다면 정말 끔찍하고 가슴 아픈 일이 될 것입니다.
 

가족들 중 한 사람이라도 낙오자 없이 주님 오실 그날에 전부 다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되는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도록 매일 끊임없이 들려주어야 할 것이 복음입니다.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마 10:23)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이 말씀은 마지막 대환란 속에 남겨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예언적 계시입니다. 극심한 핍박 속에서도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복음의 씨를 뿌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미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복음의 본질이 흐려져가고 기독교가 탄압받는 이 마지막 때에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외쳐야 할 복음의 핵심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의 절박한 복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온 세상이 떠들고 메리크리스마스를 외쳐도 나에게 큰 기쁨이 되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듯이 [나에게 복음]이 전하여 지지 않으면 그것처럼 불행한 믿음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제 자신에게 복음을 전하기 원합니다. 날마다 묵상하고 전하는 복음이지만 오늘 처음 듣는 것처럼 아침마다 새로운 복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제 마음이 복음 앞에 한 순간도 무디어지지 않도록 늘 새로운 심령으로 보좌 앞에 나아가기를 소원합니다.
 

마음이 곧 정복해야 할 가나안 땅입니다. 적당히 세상과 벗하며 손 잡고 있는 동맹관계를 끊어버리고 오직 저의 삶 속에 예수님만이 나의 대통령이 되시고, 말씀만이 나의 헌법이 되시는 그리스도 공화국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장재언) 

 

 

 

 

 

 

 

 
 
 
 
 

 

 

 

 

 

 

16세기 프랑스 예언가로 유명한 노스트라다무스가 2017년을 예언했다고?
 

영국 온라인 매체 선데이 익스프레스는 “일련의 추종자들이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을 분석해 내년에 일어날 주요 사건을 예측했다”고 보도했다.
 

예언은 주로 우울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이탈리아가 새로운 유로존 위기의 진원지가 되며 실업과 대출 증가로 재정적 어려움이 극대화되는 한해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미국의 위상이 점차 떨어지고 불안한 정국으로 몸살을 앓는다는 내용도 담겼다.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에는 `현재의 강대국`이 새로운 지도자를 맞은 뒤 힘을 잃고 불안감에 휩싸인다는 구절이 있다. 추종자들은 “현재의 강대국은 미국”이라며 “도널트 트럼프가 취임하는 내년 미국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가장 섬뜩한 대목은 노스트라다무스 지구 멸망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뜨거운 전쟁`이 내년에 일어난다는 해석이다. 추종자들은 이 문장을 지구온난화와 생화학전으로 보고 내년 지구 기온 상승과 지구촌 갈등이 극심해 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외에도 러시아, 우크라이나 갈등해소, 우주 여행 시작, 클라우딩 컴퓨터 보급 확대 등 사건이 2017년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아티초크. 누가 식초와 올리브오일을 곁들인 삶은 아티초크를 싫어하겠는가? 맛있다... 맛있을 뿐 아니라, 이 두터운 잎을 가진 야채는 당신이 꼭 알아야 하는  약효들을 많이 가지고 있기도 하다. 아티초크의 이 강력한 약효들을 알아보자.

 

 

아티초크의 약효 성분

 

 

아티초크는 모든 가정의 식탁에 올라야 하는 진정으로 효과가 좋은 식물이다. 이 야채를 어떻게 요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이를 요리하기를 피하면서 그 가능성과 혜택을 놓치게 된다. 아티초크는 전세계 어디서나 구할 수 있으며, 아주 많은 몸에 좋은 혜택을 제공하기 때문에, 이 좋은 것을 놓치는 것을 부끄러워 해야한다. 

 

 

 

1.  아티초크, 간에 좋다.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아티초크는 간의 회복을 빠르게 하고, 이 중요한 장기가 재생하는 것을 돕는다. 아픈 세포가 재생하게 할 뿐만 아니라, 담즙의 생산도 촉진한다. 간염, 간 경변, 허약한 간기능 같은 질병 치료에 뛰어나다. 달여 먹는 것이 이 모든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어떻게 만들지? 아티초크를 사서, 끓는 물 1리터에 넣고 부드러워질 때 까지 끓인다. 레몬 반쪽의 즙을 섞어서, 매 식사 후 마신다.

 

 

 

2.  체중 감량을 돕는다

 

 

 

ideal weight

 

 

아티초크는 지방을 태우는 것을 돕는 효능이 뛰어나다. 이뇨 및 정화 효능도 체내의 해로운 성분들을 제거하는 것을 돕는다. 위에 간을 위해 만든 것과 같은 달인 물을 매일 마신다. 그리고 건강한 식단으로 이 효능을 뒷받침 할 것을 잊지 않는다.

 

 

 

3.  심장에 좋다

 

 

 

woman heart

 

 

 

정기적으로 아티초크를 섭취하면 피가 맑아진다. 이 야채는 나쁜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을 줄이는데 아주 뛰어나다.

거기에다 심지어는 혈당을 낮춰주어 당뇨병 환자들에게도 아주 좋다.

 

 

 

4.  신진대사와 소화를 촉진한다

 

 

 

Indigestion

 

 

아티초크의 섬유질 성분과 정화 효능덕분에, 소화를 촉진하는데 뛰어나다. 우리가 몸이 무겁다고 느끼고, 식욕을 잃거나 변비로 고생할 때, 아티초크를 삶거나 쪄서 먹을 것을 추천한다. 이 식물은 장의 염증을 치료하고 신진대사를 조절하는 동시에 면역시스템도 강화한다.

 

 

 

5. 에너지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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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초크 하나에 얼마나 많은 비타민이 있는지 알고 있는가? 이 야채는 비타민 A와 B6의 보고이며, 칼슘, 인, 마그네슘, 칼륨, 나트륨, 철분 등의 미네랄이 가득하다.이 모든 것이 탄수화물을 몸이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로 바꾸는 데 필요한 것들이다.

 

 

 

6.  담낭의 치료제

 

 

bile-ducts

 

 

때때로 담낭(膽囊-Gallbladder)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않아 소화를 느리게 하고 담석 생성의 위험성을 증가시킨다. 담석을 치료하려면, 5개의 말린 아티초크 잎을 달인 물을 준비한다. 레몬즙 몇 방울을 섞어서 점심식사 후 마신다. 이 달인 물에 볼도 잎을 섞어서 약효를 높이는 사람들도 있다.

 

 

 

7.  요산의 수치를 낮춘다

 

 

Uric-acid copy

 

 

높은 요산(尿酸- Uric Acid) 수치의 결과로 고생하고 있다면, 결석들이 혈액에 쌓이고, 이것이 정맥과 동맥을 막아 통증을 유발한다. 이 노폐물들은 모든 육류에 있는 푸린 합성물이 높은 음식으로부터 생성된다. 정기적으로 아티초크를 바삭한 샐러드나 맛있게 삶아서 먹게 되면, 요산의 수치와 통풍 관련 문제들도 점차 감소하게 된다.

 

 

 

8.  두통을 치료한다

 

 

 

headache

 

 

 

전문가에 따르면, 어떤 종류의 두통은 간의 문제로 발생하게 된다. 간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거나, 독소가 많거나 너무 많은 지방을 저장하고 있다면, 두통과 함께 불안감 증세도 보이게 된다. 아티초크를, 특히 그 달인 물을 더 많이 먹기를 주저해서는 안 된다.

 

결과적으로,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은 아티초크를 먹기를 권할 수 밖에 없다.

 

비네그레트 드레싱에 새우와 전곡 밥을 곁들이거나, 혹은 온 가족이 단백질을 마음껏 섭취할 수 있도록 콩이나 렌틸과 섞는 것 같은 아티초크를 요리하는 아주 많은 방법들이 있다. 아티초크가 많은 양의 나트륨을 함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마치 미치광이처럼 행세해 협상을 유리하게 이끄는 '미치광이 이론(Madman Theory)'을 외교 전략에 활용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다. 상대에게 비(非)이성적인 미치광이로 보이게 하여 공포감을 갖게 한 후 협상에서 양보를 얻어내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WP는 트럼프의 미치광이 이론이 가장 잘 드러난 사례로 중국의 미국 수중 드론 반환 결정을 들었다. 지난 15일 중국 해군이 필리핀 해역에서 미 해군의 수중 드론을 무단으로 가져가자 트럼프는 "우리는 그들이 훔쳐간 드론을 돌려받길 원하지 않는다고 말해야 한다"고 거칠게 반응했다.

 

그러자 중국은 수중 드론을 나포한 지 5일 만에 반환했다. WP는 "트럼프는 '예측 불가하고 전통적 국제 규범을 무시한다'는 비판을 역(逆)으로 이용해 상대방의 양보를 받아내고 있다"며 "무슬림 입국 금지 주장, 대만 총통과의 통화, 친(親)러시아 성향 국무장관 발탁 등도 고도로 계산된 행위"라고 분석했다.

이 전략의 선구자는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었다. 닉슨은 대통령 재임 당시인 1969년 유럽과 동아시아, 중동 주둔 미군에 핵전쟁 경계령을 내렸다. 자신은 화가 나면 자제하지 못하고 항상 핵 버튼에 손을 올려놓고 있다는 악성 소문도 퍼뜨렸다. 당시 북베트남을 배후 지원하던 소련에 겁을 줘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러나 닉슨과 트럼프를 둘러싼 외교 상황은 전혀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WP는 "양극 체제였던 닉슨 시대와 달리 지금은 극단주의 무장 세력 이슬람국가(IS) 등 다양한 위험 요소가 존재하는 다극 체제"라며 "트럼프의 전략은 현재의 지정학적 상황에서 위험한 수"라고 했다.
 

한편 월스트리트저널(WSJ)과 NBC의 공동 여론조사 결과 '대통령 트럼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질문에 응답자의 45%가 만족스럽다고 답했다.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직전 각각 59%, 66%의 지지율을 기록한 바 있다.

 

 

 

 

 

 

 

 

 

 

 

 

 

 

 

 

10대시절 교회를 다녔던 미국 청년들 61%가

신앙을 버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가족협회(American Family Association)는  미국청년들이 성경의 근거가 없는 세 가지 종교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그들을 해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가족협회 수석 부대표 에드 비탈리아노는 “미국의 광대한 청년층이 기독교 신앙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음이 연구를 통해 계속적으로 확인되고 있다”며 “미국 기독교는 사회학자들이 말하는 ‘도덕적, 치료적인 이신론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언급했다.

 

비탈리아노 부대표는 2005년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재직하며 ‘혼 찾기: 미국 틴에저들의 종교적, 영적인 삶’ 제목의 책을 펴낸 두 명의 학자 크리스천 스미스와 멜린다 룬드퀴스트를 지적했다.

 

그는 이어 틴에이저와 종교에 관한 가장 세밀한 연구서로 알려진 이 책은 청년들이 핵심 기독교개념을 붙잡는데 실패하고 있음을 발견했다면서 당시 이 책은 기독교 사회에 폭탄이었다고 말했다.

 

비탈리아노는 이책을 근거로 미국 청년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믿음 세가지를 열거했다.

 

첫 번째 잘못된 믿음은 ‘도덕적인(Moralistic)'인 것으로, 미국 청년들이 믿음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선(goodness)과 관련돼 있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비탈리아노는 “하지만 전통적으로 성경을 믿고 있는 크리스천들은 선이 인간에 내재하는 특성이 아닐 뿐 아니라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과 관계를 가지는 데 충분치 않다”고 말했다.

 

두 번째로 미국 청년들이 갖고 있는 잘못된 이해는 ‘치료적(Therapeutic)’ 이라는 것이다.

비탈리아노는 “교회에 다니는 청년들이 기독교 신앙에 대한 핵심을 놓치고 있다”며 “현대 젊은이들은 예수를 따름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갖고 하나님을 더 좋아하게 되는 것 보다는 기독교 신앙이 단순히 자신들을 행복하게 만든다”고 믿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독교(christianity) -보다 더 정당하게 표현하자면 ‘교회교(Church-ianity)-가 치료의 종교형태”라고 덧붙였다. 그러한 믿음은 “죄, 복종,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은혜와 같은 개념이 빠져버린 것이라고 앞에서 언급한 ‘혼 찾기’ 책자는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모호하고 접근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드는 이신론(deism)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책의 저자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크리스천 틴 에이저들은 세상을 창조하고 우리의 도덕질서를 규정하는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특별히 개개인의 삶에 간섭하시는 하나님은 믿지 않는다.

 

그러한 견해는 많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유명한 음악가들과 TV스타들을 더 잘 알도록 만들지만 모세와 예수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알지 못하게 한다고 저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비탈리아노는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지금 진행되고 있는 영적인 재앙이다.

 

 

 

 

 

 

 

 

 

 

 

 

David Friedman
 

트럼프가 며칠 전 데이비드 프리드먼(David Friedman)을 이스라엘 대사로 내정했다. 프리드먼은 허커비보다도 훨씬 강경하고 시오니즘에 대한 목표의식이 뚜렷한 이스라엘 지지자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 이스라엘 모사드 국장이 극비리에 트럼프를 방문했다는 사실이 보도됐다. 이런 일들에 이방카의 남편 유대인 제러드 쿠슈너의 막후 영향력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결국 향후 트럼프 정부의 외교 목표가 점점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길들이기와 이스라엘 지지다. 이 두 노선이 트럼프 외교의 두 축이 될 것이다.
 

하나는 경제적 이익을 위한 것이고, 하나는 영적인 문제에서 기인한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이유는 단순히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여기엔 이보다 훨씬 심오한 것들이 내제되어 있다.
 

기독교 국가인 미국이 2차대전에 참전한 이유 중 하나도 홀로코스트로 박해 받는 유대인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후에도 미국은 이스라엘 독립을 돕고 끊임없는 군사적 경제적 원조를 해왔다.
 

물론 미국 내 막강한 유대계 로비가 작용했겠지만 이런 것의 영향력은 사소한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미국인들의 영혼 안에 이스라엘을 도와야 한다는 본능이 널리 작용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미국이 성경에 근본을 둔 기독교 국가이기 때문이기도 하며, 다른 한편 역사적으로 다수의 이스라엘 반대세력과 소수의 이스라엘 지지자들이 항상 존재해왔던 역사적 영적 원리와 상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도 그 영적 기류 속에서 큰 도움을 받았던 것은, 사랑과 공의와 희생정신에 대한 하나님 말씀이 가치관으로 자리잡았던 미국인들은 저 극동 변방의 코리아라는 작은 나라를 위해서도 수만 명의 젊은이들이 죽음의 희생을 감내했던 것이다.
 

이런 영적인 현상을 한국의 정치인들은 이해해야 한다. 눈을 좀 더 높이 들어 세계의 거대한 기류를 볼 줄 알아야 한다. 트럼프시대가 열린 오늘날 왜 한국도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어야 하는지 깨달아야 한다.
 

만약 한국이 주 이스라엘 한국 대사관을 미국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옮긴다면 우리는 트럼프와 미국으로부터 결정적인 외교안보적 도움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역사가 거의 마지막에 도달하려는 오늘날 역사의 중심은 이스라엘이 될 것이다. 이것은 예언이며 따라서 운명이다.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볼 지혜가 없는 민족은 도태 될 수 밖에 없다.
 

세계적 운명의 시간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오늘 날, 더 이상 동북아에 갇혀 친북세력에 휘둘리고 사대부적 친중 사상에 국가 운명을 농락당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10일 영국 텔레그래프는 "'한국의 이단'이 영국 교회 안에 침투해 들어와 있다. 이를 경계해야 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한국의 이단은 다름 아닌 신천지였다. 보도에 의하면, 영국성공회는 최근 런던의 약 500개 지교회에 파라크리스토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단체를 주의하라는 공식 경고문을 보냈다.

 

파라크리스토(Parachristo)는 '인류의 권익을 위해 운영되는 종교단체'라는 명목으로 올해 여름 영국 자선위원회에 정식 등록하고 런던 금융가인 캐너리 워프에 본부를 설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런던 도클랜즈 인근 보톡스 클리닉이나 개인 헬스장에서 성경공부 코스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텔레그래프는 그러나 파리크리스토가 실제로는 한국에서 '하나님의 사자'라고 주장하는 이만희가 세운 이단 신천지와 관련돼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신천지에 빠지게 되면 친구와 가족들로부터 점차 멀어지고, 자신의 실제적인 삶을 적극적으로 속인다고 말했다. 심지어 일부는 직장과 대학교 학업까지 포기하고, 한국과 스위스로 여행을 떠나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런던의 대형 복음주의 교회들에도 침투해 현지 교인들을 특별한 성경공부에 초대한다. 신천지에서 풀타임으로 헌신했던 한 영국인 남성은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승진을 위해 매우 바쁘게 지내고 있다고 말한 후 외박을 하면서 보냈다고 한다.

 

영국에서 가장 큰 대형교회이자 알파코스로 유명한 브롬프턴 홀리트리니티 교회 역시 파라크리스토를 경계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교인들에게 전달했다. 홀리트리니티 교회의 니키 검벨 목사는 지난 달 "파라크리스토는 이단이며 우리 교회와 다른 교회의 성도들을 모집하고 있다"면서 "이들은 거짓되고 잠재적으로 위험한 이단적인 집단"이라고 경고했다.

 

세인트매리 런던교회의 조 피터 목사도 교회 홈페이지에 "파라크리스토라는 사이비 종교를 조심하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피터 목사는 "이들은 친밀함을 갖고 접근한 후 캐너리 워프에서 성경공부를 하자고 초대할 것"이라며 "성경공부를 하고 시간이 지날 수록 속임수와 통제로 그들의 잘못된 신앙을 전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의혹이 제기되자 파라크리스토는 변호사를 통해 "신천지가 가르치는 것과 같은 내용을 파라크리스토에서 가르친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파라크리스토는 신천지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신천지 신도에 의해 세워졌다. 성경공부는 자유"라고 주장했다. 성도들이 직장과 학업을 그만둔다는 것에 대해선 "교인들의 선택은 개인적인 것으로, 사생활과 관련된 지시를 내리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또 '사이비 종교집단이 아니냐', '신도들에게 거짓말을 지시하지 않느냐'는 지적에 대해 "파라크리스토의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 세계에 전하는 것"이라며 "우리의 클라이언트들은 개인적 선택에 의해 성경공부를 하고, 본인의 삶을 스스로 결정한다"고 했다. 

 

 

 

 

 

 

 

 

 

 

 

 

 

 

 

 

 

 

 

 

 

 

 

 

 

 

 

 

 

 

 

 

 

 

 

 

 

 

 

 

 

 

 

 

 

 

 

 

 

 

광적(狂的)인 독재로 민생을 도탄(塗炭)에 빠트리고 

동족을 향해서는

연일 살벌한 공갈협박으로 날뛰고 있는

북한의 독재자 김정은에게

이 사진을 선물로 보낸다.

 

이 사진을 보고 아무쪼록 같은 길을

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 생전, 모든 독재자들은

철옹성(鐵甕城) 같은 아방궁에서 온갖 특권과 사치를 누리다가

결국 권좌에서 쫓겨나

차마 눈으로 볼 수 없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

현실을 역사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예외 없이..

김정은 너도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을 아느냐?

 

 

 

 

 리비아의 카다피

(Libya, Muammar Gaddafi)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카다피를

 '중동의 미친개'라고 혹평을 했다.

 

 

 

리비아의 카다피는 항상 처녀로 구성된 여자경호원이

근접경호를 하고 있다.  좀 다른 미인조...

 

 

 

 

패션모델같은 카다피의 여러 복장

 

 

 

 

 

 

 

 

 

 

 

 

 

권력의 상징인 카다피의 황금권총 그는

체포당시 이 황금권총을 갖고 있었다.

무슨 소용?

 

 

 

카다피의 여성 경호원들

 

 

 

 

시민군의 승리로 카다피는 축출 되었다

 

 

그리고는 국가원수의 체통도 버리고 도로 밑의

이 콩크리트 배수관 속에 숨었다

 

 

 

이런 모습으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카다피의 시신은 일반시민에게도 공개하였다.

 

 

 

독재자 카다피의 비참한 종말의 모습이다.

 

 

 

 

 

 

 

이집트의 무바라크

(Hosoni Mubarak)

 

 

 

이사람 이집트 무바라크 대통령도 어지간히

장기집권 독재를 하였다.

 

 

 

그의 동상은 여지없이 손상되어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재판관의 준엄한 판결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라크의 후세인

(Saddam Hussein)

 

 

 

 

황금 용상에 한껏 권위 있게 앉아 있는 모습.

 

 

 

 

 

후세인은 중동의 맹주로 그 위세가 대단했었다.

 

 

후세인은 권위의 상징으로 황금 총을 여러 정 갖고 있었다.

 

 

 

 

후세인 전용의 호화요트

 

 

그러나..... 사담 후세인의 체포장면↑

 

 

 

 

독재자들의 공통점은 생전에 동상을 세우고 우상화 하는 것.

 

 

 

 

권좌에 있었던 당당한 모습과 쫓겨난 후의 초췌한 모습

 

 

 

교도관으로부터 목에 사형집행의 밧줄이 걸려지고 있다.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스체쿠

(Romanian, Nickolai Chauchescu)

 

 

루마니아의 전 독재자 차우스체쿠

 

 

 

차우스체쿠가 장기 독재정치를 집권하던 어마어마한 대통령궁

 

 

 

북한도 몇 차례 방문하고 김일성에게 장기집권 독재정치의

노하우를 배우는 등 일성이를 스승님으로 모셨나 보다.

 

 

 

 

 

그가 통치하던 분노한 인민들에 잡혀서

무참히 살해되었다.

 

 

 

 

 

 

이탈리아의 독재자 무쏠리니

(Italya, Mussolini)

 

 

 

세계 제 2차대전의 전범 무쏠리니

 

 

 

역시 악당끼리... 무쏠리니와 독일의 히틀러, 이들의 심중에

어마어마한 계획이 있겠지.

 

 

 

패전 후 무쏠리니는 이같이 처형되었다.

 

 

 

무쏠리니의 심복들도 이같이 덕장에 동태말리는 신세가 되었다.

(가운데가 무쏠리니)

 

 

 

 

 

 

독일의 히틀러

(German, Hitler)

 

 

 

세계 제 2차대전의 전범 독일의 히틀러

 

 

 

 

히틀러는 전쟁을 일으켜 전세계를 전율에 떨게 하였을 뿐 아니라

수백만의 유태인을 학살한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악행을 저질렀다.

 

 

 

 

 

히틀러가 죽었다는 당시의 신문

 

 

 

패전 후 행방이 묘연했던 히틀러는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목숨 구걸 안하고 험한 수모 당하지 않고자

스스로 자살을 택하였다.

 

 

 

 

 

 

테러범의 괴수 오사마 빈 라덴

(Osama Bin Laden)

 

 

테러범의 괴수 오사마 빈 라덴

 

 

 

 

오사마 빈 라덴에 의한 끔찍한 911테러

미국인 3,000 여명이 희생 됐다.

 

 

 

 

 

테러의 황제 오사마 빈 라덴도 결국

자신이 저지른 죄값으로 비참한 생을 마감했다.

  

이상에서와 같이 독재자의 말로는 모두 비참했으며

미국이 제거해야겠다고 목표한 인물들은

지구 밖 까지 라도 추적하여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말을 내고야 만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김정은은 이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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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고 죽었으면 좋았을 세계"

생계형 성매매 여성의 얘기

 

영화는 병든 사회를 비춘다. 환부를 드러내 공론화하는 게 영화가 할 수 있는 심폐소생술이다. 〈죽여주는 여자〉는 100세 시대를 사는 슬픈 노인의 노래다. 가난과 고독, 중풍과 치매를 만난 이들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까. ‘광산 속 카나리아’처럼 시대상에 민감하게 지저귀는 이재용 감독을 만났다.

 

 

 

고약한 감독이다. 며칠 살짝 왔다 가면 된다고 해서 촬영장에 갔더니, 페이크 다큐멘터리 〈뒷담화: 감독님이 미쳤어요〉를 찍지 않나, ‘당신을 생각하며 썼다’고 해서 펴 봤더니 ‘노인 성매매와 죽음의 문제’를 연기해달라고 하질 않나.

 

그럼에도 배우 윤여정은 〈여배우들〉부터 맞춰온 그와의 연을 함부로 여기지 않는다. 결국 영화란 감독의 예술임을 인정한다. 감독의 디렉션에 맞춰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것이 배우의 몫임을 안다. 이 고집스러운 예술가 두 명이 만나 만든 작품이 〈죽여주는 여자〉다.

 

이 영화는 몬트리올 판타지아영화제에서 각본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아시아 티카 영화제에서도 작품상을 수상했다.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아 기립 박수를 받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개봉 첫날, 다양성영화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이재용 감독은 지금은 “하길 잘했다”고 한숨을 돌리지만, 불과 촬영 1주일 전만 해도 영화를 중단해야 하나 고민했다고 했다.

 

“100세 시대, 100세 시대 하는데 이것이 과연 축복인가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고민했죠. 앞으로 안락사나 조력살인을 이야기할 때 우리 영화가 언급될 것이고, 그렇게 될 때 그 여파를 감당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니 두렵더군요. 하지만 언젠가는 우리가 함께 논의해봐야 할 이야기고, 이 영화가 그 화두를 던질 수 있다면 의미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나리오 작업에 두 달, 그리고 촬영에 또 두 달이 걸렸다. 시작은 단순했다. 만약에 윤여정이라는 동일한 인물이 한국전쟁 이후 ‘삼팔선 따라지(전쟁으로 남한에 내려온 피란민들)’로 고아가 되어 살게 되었다면, 식모살이를 하고 공장에서 일하다가 양공주로 흘러 들어 가게 됐다면 그녀의 삶은 지금 어떻게 됐을까를 떠올려봤다.

 

 

 

 

“평소에도 자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입니다. 제가 윤여정이라는 배우를 평소 관찰한 모습들이 담기기도 했고, 제가 심어둔 유머코드나 농담들을 그녀가 잘 살려주리라는 믿음도 있었고요.”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고단한 하루를 보낸 뒤 패스트푸드점에 들른 소영(윤여정)은 길에서 데려온 필리핀 코피노 소년에게 가져다 줄 치킨을 산다. 계산대의 점원은 주문을 받고 의례적으로 “계산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소영은 혼잣말처럼 “아니 대신 내줄 것도 아니면서 도와주긴 뭘 도와줘”라고 중얼거린다.

 

“영화의 재미 중 하나는 디테일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제 영화를 한 번 볼 때와 두 번 볼 때 그리고 세 번째 볼 때 계속 새롭게 발견되는 장면들이 있길 바라요. 감독으로서 보물찾기처럼 숨겨두는 장면이죠. 누군가 그 장면을 발견했다고 하면 신이 나요. 제가 영화 하면서 느끼는 재미 중 하나입니다.”

 

 

나만 보기 아까운, 나만 알기 아쉬운

 

 

 

이재용 감독은 1998년 〈정사〉를 연출하면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순애보〉 〈다세포 소녀〉 등을 만들었고, 〈여배우들〉과 〈뒷담화: 감독이 미쳤어요〉를 통해 엉뚱한 상상력으로 영화계의 새 지평을 열었다. 〈여배우들〉은 친한 여배우들의 평상시 모습을 보면서 ‘나만 보기 아깝다’는 생각으로 만들었고, 〈감독이 미쳤어요〉는 모든 게 인터넷으로 가능한 시대에 ‘연출이 없어도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해봤다고 한다.

 

“제 기질이 약간 엇나가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슬픈 영화를 보면서도 거의 울지 않아요. 웃긴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거의 웃지 않고요. 도리어 아무도 울지 않는 장면에서 엉엉 울어요. 누군가에게 감정을 강요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두는 게 좋아요.”

 

 

 

배우 윤여정은 그의 이런 성품에 각별한 신뢰를 가지고 있다. 그가 설령 노인 문제를 다룬다고 해도 그것이 극단적으로 흐르지 않고 얼마간의 온기를 품고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다. 영화는 그 믿음을 배반하지 않는다. 윤여정이 연기한 소영은 그의 직업이 무엇이든, 그의 과거가 어떠했든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존엄을 잃지 않는다.

 

“작년 이맘 때 종로와 이태원, 남산과 장충동에서 영화를 찍었습니다. 우리가 촬영 기간으로 잡아둔 기간에 일어난 일들이 그대로 영화에 담기길 바랐어요. 그것이 결국 하나의 기록이 될 테니까요.”

 

 

 

 

소영이 성매매 손님을 만나는 조계사에는 당시 한상균 민주노총위원장이 숨어 있었다. 신원 미상의 여성이 혼자 사는 노인을 살해했다는 뉴스에는 ‘백남기 노인 중태 상태’라는 자막이 지나간다.

 

“우리는 한 영화를 보면서 이야기를 보기도 하지만, 그 시대를 보기도 합니다. 이태원에서 촬영하면서 좋았던 점은 이제는 쇠락해가는 도시의 어떤 모습을 담을 수 있었다는 거예요. 거기에는 투명인간 같은 사람들이 모여 살아요. 예전부터 살고 있었지만 제대로 기록되지 못한 존재들이죠.”

 

화두를 던지는 것, 그게 영화의 몫

 

 

 

 

극 중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혼자 사는 노인의 금품을 노리고 살해했으리라는 추측성 보도에 뉴스를 보던 이들이 혀를 찬다. 소영은 이렇게 말한다.

 

“그 사람에게도 다 사정이 있었을 거야.”

 

〈죽여주는 여자〉는 이 사정에 대한 이야기다. 소영은 어쩌다 생계형 성매매 여성이 되었을까, 독거노인은 어떻게 혼자서 죽어갈까, 반려자를 잃은 노인의 남은 삶은 어떻게 채워질까.

 

카메라는 소영을 비추지만, 정작 영화가 보여주고 싶은 건 그들의 속사정이다. 윤여정은 영화 작업을 마치고 “모르고 죽었으면 좋았을 세계를 알게 됐다. 그래서 감독에게 고맙다”고 했다.

 

“멀찌감치 에서 성매매 노인을 바라보고 있던 날들이 있었어요. 이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나 기록들도 찾아 봤죠. 인간 대 인간으로서 생각해볼 수 있는 이들의 삶이 있었어요. 소영은 자기 자식을 키우지 못하고 입양 보내잖아요. 그때 그녀의 어떤 부분도 함께 죽었을 거예요. 그 죄책감이 늘 있었을 거고요.”

 

살인 혐의로 경찰차에 탄 소영은 비로소 긴 여행이 끝났다는 듯 후련하게 담배를 태운다. 흩날리는 진눈깨비를 보면서 혼잣말을 한다.

 

“봄에 가면 안 되나. 나 추위를 많이 타는데. 요즘 감옥에는 반찬이 뭐가 나오려나.”

 

 “그 장면을 바라보면서 영화를 찍었던 것 같아요. 결국 그는 그 감옥 안에서 생을 마감해요. 한국전쟁이 있던 1950년에 태어나 2015년에 죽은 여자. 그가 남긴 기록은 그게 전부인 거예요.”

 

이재용 감독은 한 줄의 기록을 하나의 영화로 만들어 이 영화가 투명인간처럼 사는 이들에게 형체와 목소리를 그리고 이름을 남겨주었다.

이들이 고독에 익사하지 않고, 가난에 질식사되지 않기를. 눈이 시리게 파란 하늘을 비추며 시작한 영화는 잡초 사이에 피어난 한 송이 들꽃을 비추며 끝난다. (유슬기 기자

 

 

 

 

 

 

 

 

 

 

 

 
 
 
 
 

 

 

 

 

 

 

렛잇고


이런 let it go에는 봐준다는 의미도 있답니다...


그렇다면 문장으로는 어떻게 말하면 되는 것일까요?


한번만 봐주면 안돼? 
Can you let it go? / Can you let it slide?
 

이렇게 표현하면 된답니다!!

 


 

조금 더 정중하게 부탁한다면
Please를 넣어
Can you please let it go(slide)?
하면 정중하게 이번만 봐주시면 안될까요? 라는 뜻이
된답니다...

또한 조금
더 간절하게 말하고 싶다면
Can you pleas let it go(slide) this one time?
하면 이번 한번만 넘어가주시면 안될까요?
라는 뜻이 된답니다!!
  

 

 

 

 

Make Excuses

핑계 대다

 

Stop making Excuses!

‘핑계 대지 마!’

 

Stop trying to make Excuses!

그만 변명해!

 

Your excuses won’t work on me anymore!

더 이상 그 핑계 나한테 안 통해

There’s no excuse for~

~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헷갈리지 마세요!

 Excuse랑 다르게 조언은 ‘s’ 안 붙여요.

Advices (X)

Advice (O)

 

 

 

 

 

 

 

 

 

 

 

 

 

 

 

 

 

 

 

 

 

 

 

 

 

 

 

 

 

 

 

 

 


 

 

 

 

 

 

 

 

 

 

 

 

 

 

저용량 아스피린을 꾸준히 복용하면 췌장암 위험이 낮아질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예일대 보건대학원 암센터의 하비 리쉬 박사 연구팀이 중국 상하이의 37개 병원에서 2006~2011년 사이에 췌장암 진단을 받은 761명과 췌장암이 없는 794명을 대상으로 아스피린을 어느 용량으로 얼마나 오래 복용했는지를 조사한 결과 이 같은 사실이 밝혀졌다고 헬스데이 뉴스가 20일 보도했다.

 

췌장암 없는 그룹에서는 18%, 췌장암 그룹에서는 11%가 저용량의 아스피린을 꾸준히 복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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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복심 5000명 발송비

/F. Chang/ H. Kim/Kim Buckly/Grace An/JJ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