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15,  2017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가지 않은

나의 전체(全體)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중 지니인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주시다.

 

 

 

 

 

 

 

 

 

 

 

 

 

 

 

 

 

 

 

 

 

 

 

 

 

 

 

 

 

나는 찰스 스윈돌(Charles Swindoll) 목사님을 늘 기억하게 된다. 그 분의 생일이 내 생일보다 4일 뒤에 있기 때문이다. 그의 생일은 10월18일(1934년생)이다.

 

 

 

그뿐 아니라 비전통신 편집실이 위치한 Fullerton, CA에서 목회((1971–94))를 하다가 60살이 되는 1994년에 교회를 물려 주고 미국 텍사스 주 달라스 북쪽에 위치한 신흥개발도시 프리스코(Frisco) 시에서 새로운 사역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도 60세부터 컴퓨터 선교사역을 시작했다.

 

스윈돌 목사님은 60세에 스톤브라이어 교회(Stonebriar Community Church)를 개척했고 이와 동시에 [꿈을 위한 종합 기본 계획(Master Plan for a Dream)]이라는 제목으로 향후 10년에서 15년에 걸쳐 진행될 엄청난 건축 계획을 추진하였다.

은퇴란 말은 그에게 있어 새롭고 더 큰 사역에의 도전이었다.

 

 

 

 

불과 개척 5년 스윈돌 목사에 의해서 개척된 이 교회는 6,000명에 이르는 대형교회로 성장했고, 향후 10년 내에 교회가 위치한 도시 인근에 1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거주하게 될 상황을 고려해서 지역사회 복음화를 위한 적극적인 사역 계획을 수립한 것이다.

 

어느 한국 목사가 스톤브라이어 교회를 방문해서 스윈돌 목사와 대담을 나누었는데, 은퇴 계획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 스윈돌 목사는 단호한 어조로 “No”라고 답변하였다고 한다. 이제 막 70대에 진입한 노령의 목회자에게서 충천하는 독수리의 기상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스윈돌 목사는 남가주 오렌지 카운티(Fullerton)에 소재한 초대형 교회를 목회했고 지금은 세계적인 달라스 신학교의 총장으로 재직하면서 스톤브라이어 교회를 목회하는 일과 함께, 1979년 이후 [삶을 위한 통찰력(Insight for Living)]이라는 라디오 방송설교를 통해서 현재 16개 언어로 11개 국가에 산재한 2,100개의 방송국을 이용하여 신자와 불신자 모두에게 말씀을 전파하고 있다.

 

 

 

 

한편 7년 전 세상을 떠나신 옥한흠(1938년12월5일-2010년9월2일) 목사님을 기억한다.

2003년 12월 21일. 서울시 강남구 서초동에 위치한 한 교회에서는 그 교회뿐만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를 위해서도 매우 뜻 깊은 일이 있었다.

제자훈련을 목회철학의 뿌리로 삼아 교회를 개척, 사반세기를 지내며 [서울 사랑의 교회]를 세계적인 교회가 되도록 이끌어 온 옥한흠 목사가 담임목사로서의 고별설교(65세 은퇴)를 한 것이다.

 

70세 정년을 5년이나 앞당겨 단행된 그의 은퇴는 교회의 노령화를 방지하려는 깊은 충정과 한국교회의 문제점 중 하나로 지적되는 비합리적인 목회의 세습 관행을 질타하는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과연 목회자는 언제 은퇴하는 것이 적절한가? 어떻게 은퇴하는 것이 좋을까?

 

한국과 미국의 기독교계를 대표하는 위의 두 분의 은퇴(?)를 놓고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봉사나 직책이나 직업을 떠나는 것을 은퇴라고 정의한 웹스터(Webster) 사전의 정의에 근거해서 생각해 보면 은퇴는 곧 사임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목회자의 은퇴 행위와 직결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목회자의 사임 행위이다.

 

그러면 목회자가 자신이 맡고 있는 직책을 떠나려 할 때 고려해 볼 수 있는 점들은 무엇일까? 과연 목회자에게도 은퇴 곧 사임이 있는 것일까?

 

게리 멕킨토쉬 교수는 100명 이하 교회에서는 아버지 같이, 200명 이상 교회에서는 방향을 제시하는 관리자 같이, 대형교회에서는 사역을 위임하여 CEO 같이 목회를 하여야 한다고 권면한다. 이와 같은 자신의 역할에 합리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때 그 교회를 사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목회자의 사역에는 사임이나 은퇴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영어로 사임 혹은 은퇴를 Retire라고 표현하는 데 목회자의 사임과 은퇴는 Re-tire(타이어를 바꿔 끼는 일)가 되어야 할 것이다. 

 

회자에게는 은퇴가 있을 수 없다. 다른 사역이 있을 뿐...(장재언)

 

 

 

 

 

 

 

 

 

 

 

 

 

 

월드시니어 선교회(대표간사 허인욱, WSM)는 내년 1월과 2월 열리는 시니어 선교학교(Senior Mission Training School)에 참가할 단기선교 지원자들을 모집한다.

 

도미니카의 월드 그레이스 미션센터(대표 김현철 선교사)에서 진행되는 시니어 선교학교는 2018년 1월 8일(월)부터 1월 25일(목), 2018년 2월 5일(월)부터 2월 22일(목)까지 각각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다.

 

등록비는 900달러이고 선교학교 종료 후 2박 3일간의 휴양지 관광을 선택할 시 250달러가 추가된다.

 

또 WSM은 도미니카로 25일 파송하는 박환영 선교사와 동행할 단기선교 참가자들도 함께 모집중이다. 이 단기선교 프로그램은 1주일간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선교활동을 진행하고 참가비는 왕복항공료 포함 1,000달러이고 선교 후 2박 3일간 휴양지 관광을 선택하면 250달러가 추가된다.

 

한편 WSM은 지난 2일 모임에서 선교회 대표간사로 허인욱 현 총무간사를 선출하고 박춘근 장로를 총무간사, 황문규 목사를 고문으로 각각 선출했다.

 

WSM은 매달 첫째 월요일 정기모임을 갖고 있다.

문의 (443)326-6888 허인욱, (410)245-1319 유영종 목사 

 

 

 

 

 

 

 

 

 

 

 

 

 

 

시니어의 삶에 장애가 되는 원인 혹은 증상 곧 신드롬이 있습니다.

 

무두셀라 신드롬(Methuselah’s Syndrome)이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메뚜기 신드롬(locust Syndrome )입니다.

 

사람은 어릴수록 [꿈](Dream)을 먹고 살고, 나이가 들수록 [추억](Reminiscence)을 먹고 산다고 합니다. [살 날]이 많은 아이들은 당연히 [무엇을 하면서 살까?]에 관심을 갖게 되고, 반대로 [산 날]이 많은 노인들은 [무엇을 하면서 살아 왔는지]에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앞 날이 창창한 아이들은 [지나간 짧은 시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앞으로 긴 시간 동안 함께 살아가게 될 [미래]와 친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항상 미래에 대한 밝은 [청사진]을 그립니다.

 

그러나 노인들은 미우나 고우나 함께 지내온 세월들에 친숙합니다. 기약 없는 [새 날]보다는 함께 지내 온 [지난 세월들]에 더 애정이 갑니다. 그래서 지나간 추억을 아름답게 모자이크 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추억을 냉정하게 둘로 나누어 보면 [좋은 기억들]이 있고 [나쁜 기억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나쁜 기억들]은 잊어버립니다. 그러면서 [그 때가 좋았다], [비록 그 때는 어려웠지만, 우리는 너희들처럼 살지 않았다]는 말을 반복하며 과거 속에 살아갑니다.

 

젊은 날에 미인 아닌 여인이 없고, 맨 주먹으로 호랑이를 때려 잡지 않은 사나이가 없습니다. 지금 살아가는 모습을 봐서는 [그 때도 별 볼 일 없었을 것] 같은 위인인데도 말입니다.

 

바로 이런 과거에 붙들려 살아가려는 심리적 현상이 우리의 발전의 발목을 붙잡는 것입니다. 행복을 현재보다 과거의 추억 속에서 찾으려 든다는 말입니다. 실상 과거가 현재나 미래보다도 나을 것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지나간 삶은 아주 행복했다고 착각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현상을 [무드셀라 증후군](Methuselah’s Syndrome)이라고 합니다. 성경 역사상 가장 오래 산 [무드셀라](창세기 5장)의 이름을 따서 만든 말입니다.

 

출(出) 애굽의 축복을 받은 히브리 민족들도 그랬습니다. 수 백 년 동안 강제노동과 부역에 시달리다가 마침내 [자유]를 얻게 된 그들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광야의 여정이 힘들다는 것 때문에 과거 [애굽에서의 종살이]를 그리워하다가 가나안 복지는 구경도 못하고 광야에서 생애를 마치고 말았습니다.

 

과거를 아름답게 기억하는 것도 좋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용기 있게 전진하는 일입니다.

 

또 하나 우리에게 방해가 되는 것은 [메뚜기 신드롬]입니다. 

 

이 증상은 작은 일이나, 큰 일이나 앞에 놓인 일을 보고 무조건 나는 [왜소]矮小)]하다고 [의기소침](意氣銷沈)해 하는 심리현상입니다. 앞에 놓인 일을 바라보며 기대감과 흥분과 도전의식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항상 필요 이상의 염려에 빠집니다.

 

그러면서 이솝의 우화에서처럼 여우가 키가 모자라 포도를 따먹지 못하게 되자 [저 포도는 신 포도일 거야]라고 괴변을 늘어 놓는 변명에 익숙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의 긴 여정을 마치고 드디어 가나안 땅 입성을 눈 앞에 두고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정탐꾼의 대다수가 이렇게 보고합니다.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수기13:33)

 

이 말은 곧 우리는 정복해야 할 땅의 사람들에 비하면 메뚜기 같은 존재라는 말입니다. 가나안 정복은 불가능하다는 보고이지요.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보고를 채택한 것이 아니라 소수의 보고 즉 갈렙의 보고였습니다.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면 그 땅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메뚜기 신드롬을 내쳐버리고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GE의 [잭 웰치](Jack Welch)는 20세기의 슈퍼 CEO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경영하는 회사에 어려운 일들이 많이 등장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빛나는 그의 매력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는 어떠한 난관에 부딪혀도 끝까지 그리고 줄기차게 밀고 나갔다는 점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자신감과 용기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의 책 [끝없는 도전과 용기](JACK: STRAIGHT FROM THE GUT)라는 제목 자체가 어쩌면 잭을 가장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시니어가 될수록 과거에 묶이게 하는 무두셀라 신드롬을 버려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내일을 향해 도전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늘 왜소하게 만드는 메뚜기 신드롬도 버려야 하겠습니다.

 

바울과 같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 4:13) 

(I can do everything through him who gives me strength.)

라는 확신을 가지고 새로운 내일을 향해

힘차게 도전하십시다.(장재언)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약 4:9-10)

 

 

슬퍼하고 애통하는 마음은 내 영혼의 중심을 잡아주는 영혼의 닻과 같습니다.

죽은 개와 같은 자였지만 왕의 밥상에서 먹고 마셨던 <므비보셋>의 마음입니다.

 

가슴을 두드리며 감히 고개를 들지도 못하며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고백하던 <세리>의 마음입니다.

 

개 취급 당해도 좋으니 주님 밥상 밑에 떡 부스러기라도 주워먹겠다던 <수로보니게 여인>의 마음입니다.

 

지극히 값비싼 나드 한근이 담긴 향유옥합을 깨뜨려 자신의 머리카락에 눈물을 적시어 예수님의 발을 씻겨드린 <베다니 마리아>의 마음입니다.

 

배 오른 편에 그물 던져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물고기를 많이 잡았을 때 '주여, 이 죄인을 떠나소서' 고백했던 <베드로>의 마음입니다.

 

여러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 죄인 중의 괴수, 만물의 찌끼라고 고백했던 <사도 바울>의 마음입니다.

 

이처럼 '슬퍼하고 애통하고 우는 마음'을 잃어버리는 순간, 내 영혼은 닻줄이 끊어진 배처럼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이리저리 표류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꾸라고 강력 명령하고 있습니다. 진실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생명과 같은 말씀입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낫고, 슬픔이 웃음보다 낫다는 전도서의 말씀이 마음에 깊이 새겨집니다.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되고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는 혜안(慧眼)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宴樂)하는 집에 있느니라 (전 7:2-4)

 

 

아버지 하나님,

영원한 사망과 지옥불못

이미 사형을 언도받은 시한부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피값을 지불 하셔서,

죽어 마땅한 제 영혼을 살려주셨습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숨을 쉬면서도

나같은 죄인 살리신 이 놀라운 은혜가

무디어질까봐 두렵습니다.

 

웃음을 애통으로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꾸어

늘 세리의 마음으로 가슴을 두드리게 하소서.

자격없는 죄인을

하나님의 자녀삼아주신 것과

주님의 거룩한 신부삼아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작은 사람이었다.

니커보커스 바지에 무릎까지 올라오는 양말, 부풀어 오른 하얀 셔츠 차림, 키는 150센티미터를 조금 넘었다.

 

나는 휘튼대학의 채플 지정석에 앉아 2주 동안 그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한 번은 1학년 때였고, 또 한 번은 4학년 때였다.

 

그는 20세기 말, 세상을 위해 우는 복음주의권의 양심이었다. 그의 동료들 대다수는 세상은 구원할 가치가 없다고 여겼고, 지구는 쇠퇴기에 접어들어 어차피 멸망할 운명이니 그 중에서 소수의 영혼이나 구해내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핼 린지가 「대행성 지구의 마지막 때」(The Late Great Planet Earth)를 펴내 출구전략을 퍼뜨리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프란시스 쉐퍼는 「거기 계시는 하나님」(생명의말씀사 역간)을 써서 그 행성에 아직 갇혀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보살피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프란시스 쉐퍼의 말을 듣는 일은 고역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귀에 무척 거슬렸다. 그가 펜실베이니아주 동부 억양으로 질러대는 고음은 [벅스 버니를 잡으러 다니는 사냥꾼] 엘머 퍼드의 말을 빠르게 재생해놓은 것 같았다.

 

신입생 시절, 근대인의 사상과 저작을 잘 몰랐던 우리는 그 목소리가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4학년이 되어 듣는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웃기지 않았다.

 

칸트, 헤겔, 사르트르, 카뮈를 공부한 우리에게 그 소리는 오히려 실존주의적 비명으로 들렸다. 에드바르 뭉크의 그림 <절규>에서 소리가 난다면 아마 쉐퍼의 목소리와 비슷할 것이다.

 

1984년에 세상을 떠난 쉐퍼는 인류가 스스로 만들어낸 감옥에 갇혀 내지르는 실존주의적 부르짖음을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 “슬픔의 사람”에 가까웠다.

 

내가 어려서부터 배운 기독교는 슬픔을 적대시하는 종교였다. 슬퍼한다는 건 신앙이 없거나 구원받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예수님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신 분이고 우리는 언제나 행복한 모습을 보여줄 의무가 있었다.

 

그런데 프란시스 쉐퍼가 나타났다. 그는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절망적으로 빛을 잃은 상황에서 그 이유를 아는 자로서 편안하게 행복을 누릴 수가 없었다. 나는 그에게서 빛을 잃어버린 인류의 절망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그는 잃었던 생명을 찾았으나 광명을 잃어버린 삶이 어떤 것인지 잊지 않았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인식하는 보수적 그리스도인들의 모습과 얼마나 다른가. 오늘날 세상에서는 종교적 우파를 신정정치를 추구하고 가난한 자들과 짓밟힌 자들에게 무관심한 무리로 희화화한다.

 

하지만 상투적 이미지가 대개 그렇듯, 정치에 적극 참여하는 보수적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이미지 역시 괴롭지만 옳은 부분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계획을 하나님의 계획과 혼동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어떻게든 정치적인 우세를 점하려다 보니 적들을 사악한 존재로 매도하는 경우도 매우 많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문화전쟁에 참가하는 전사들 중 상당수는 문화전쟁의 첫 방아쇠를 당긴 장본인이 바로 쉐퍼라 여기고 있다.

 

물론 쉐퍼는 말년에 쓴 두 권의 저서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와 「기독교 선언」에서 낙태와 안락사를 단호하게 반대했고, 미국문화의 자살이라 할 만한 상황이 임박했으니 정치적 개입을 포함한 심각한 조치를 실행해서라도 그것을 막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문화전쟁 참전 촉구를 쉐퍼의 최고 업적으로 생각한다면 그의 사람됨과 활동을 상당 부분 놓치게 된다.

 

 

쉐퍼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들은 문화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진 차세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싸움을 독려하는 구호로 울려 퍼졌을지 몰라도, 그 이전까지 펴낸 그의 모든 저작의 논지는 그와 달랐다.

 

쉐퍼 사역의 본질은 세상과 싸우라는 외침이 아니라 세상을 보살피라는 외침이다. 싸움에 뛰어들어 쉐퍼를 자신들의 대변인으로 내세우는 사람들은 그가 전한 메시지의 일부만 받아들인 것이다.

 

쉐퍼는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에서 전투적 태세를 취하기에 앞서 사회를 이 지경으로 이끈 인간의 곤경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기독교 선언」과 그 이후의 책만 알고, 「이성에서의 도피」, 「거기 계시는 하나님」, 「도시 속의 죽음」(이상 생명의말씀사 역간)을 모르는 사람은 쉐퍼의 생애와 활동을 결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전기와 후기의 쉐퍼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쉐퍼는 내게 세상의 심판자가 아니라 세상을 위해 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처음 가르쳐준 기독교 지도자였다.

 

그는 철학의 역사와 그것이 영화, 소설, 연극, 음악, 미술을 통해 끼치는 영향력에 깊은 관심을 갖고 사려 깊게 연구하는 본을 보여주었다.

 

쉐퍼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1966년 영화 <욕망>에 표현된 실존주의적 딜레마를 휘튼대학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당시만 해도 휘튼대학은 학생들의 영화 관람을 금지하고 있었지만, 그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그는 교계의 율법주의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 방식을 고집했다. 문화적 진술에 담긴 절박함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시 속의 죽음」은 구약성경의 예레미야애가를 미국에 적용한 책이다.

한 사회의 문화적 죽음을 놓고 슬피 우는 내용이다.

 

쉐퍼는 당대의 가장 탁월한 사상가들과 예술가들이 소위 ‘절망의 선’ 아래 갇혀 있다고 보았다. 하층부의 절망에 갇혀 상층부의 계시에 이를 도리가 없다고 본 것이다.

 

쉐퍼는 추종자들에게 현대예술에 나타나는 부조화를 비웃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 예술가들은 하나님을 제거하고 인간적, 이성적 수준에서만 모든 근거를 찾았던 근대라는 시대정신의 논리적 결론을 표현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우울하고 어둡고 추상적인 예술작품을 대하고 나서 그리스도인이 취해야 할 올바른 반응은 고개를 가로젓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창조한 사람이 처한 빛을 잃은 그 상태를 슬퍼해야 한다.

 

쉐퍼는 불신자와 싸울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이해하고 공감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보기 드문 기독교 지도자였다.

 

프란시스 쉐퍼는 ‘왜?’라고 묻기를 겁내지 않았고 해답을 찾을 때까지 쉬지 않았다.

 

‘우리의 가장 뛰어난 사상가들이 왜 절망에 빠져 있을까?’

‘우리 시대의 예술은 왜 이렇게 어두울까?’

‘어쩌다 낙태와 안락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세대가 나오게 되었을까?’

‘어떤 사고 과정이 인간 생명의 가치를 이렇게 철저히 경시하도록 만들었을까?’

 

이 질문들에 대한 그의 답변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가 해답을 추구하며 보여준 열정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은 대개 이해하지 못하는 대상을 미워한다. 미지의 대상에 대한 혐오 때문에 선입견이 생겨나고 증오범죄가 발생하며 사회적 악도 늘어난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그들이 왜 그런 일을 하는지 알아보는 것이 훨씬 더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이다. 비록 이데올로기적으로는 우리의 원수지만, 그들은 여전히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 하셨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에는 원수들이 혐오스럽게 행동하는 이유를 이해하려 애쓰는 그리스도인이 너무나 적다.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은 페미니스트, 세속 인본주의자, 동성애 활동가, 정치적 자유주의자들을 비판하느라 바쁜 나머지 그들이 왜 그런 믿음을 갖고 있는지 헤아려볼 여유가 없다.

우리의 자녀들과 이웃에 위협적인 존재라고 단정해버린 사람들에게 공감하기란 어렵다.  원수로 선언해버린 사람들을 위해 울기란 어렵다.

 

어디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까? 우리 영혼이 얼마나 부패했으며 그런 우리에게 다가오시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아래까지 내려와야 했는지를 더욱 온전히 파악하는 것이리라. 자신의 모습 때문에 울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세상을 위해서도 울 수 없을 것이므로.....

 

근년에 프란시스 쉐퍼의 영향력이 쇠퇴한 것은 사실이다.

그가 아주 오랫동안 분석 대상으로 삼았던 근대성이 탈근대주의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쉐퍼에게도 비판자들이 있고, 그 중에는 그리스도인들도 있다. 그러나 그가 교회에 끼친 가장 큰 영향은 그가 남긴 말이 아니라 눈물일지도 모른다.

그가 당대에 안타까워 울었던 문제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니, 우리도 그로 인해 울어야 하지 않겠는가.

 

(글 쓴이:** 존 피셔(John Fischer)는 12장의 앨범을 발표한 싱어송라이터이며 15권의 책을 쓴 작가다.)

 

 

 

 

 

 

 

 

 

 

 

 

 

 

 

 

 

1937년에 2학년생들이었던 전도유망한 미국 하버드 대학생 268명의 일생을 72년간에 걸쳐 추적한 연구결과가 미국에서 가장 유서 깊고 권위 있는 평론지 가운데 하나인 시사월간지 ‘애틀랜틱 먼슬리’(Atlantic Monthly)에 공개된바 있다. 

 

하버드대학 생리학ㆍ약학ㆍ인류학ㆍ심리학 분야의 최고 두뇌들이 연구진으로 동원되었고 하버드 의대 베일런트(Vaillant) 교수가 주도했다. 연구를 재정적으로 지원한 백화점 재벌 W T 그랜트(Grant)의 이름을 따 ‘그랜트 연구’라고도 불린다.

 

이 연구는 ‘잘 사는 삶에 일정한 공식이 있을까’라는 기본적인 의문에서 출발했다.

 

먼저 연구대상이 된 남학생 268명은 수재 중에서도 가장 똑똑하고 야심만만하고 환경에 적응을 잘하는 이들이었다.

 

최고 엘리트답게 그들의 출발상쾌했다. 연방 상원의원에 도전한 사람이 4명, 유명한 소설가도 있으며 대통령이 된 존 F 케네디(Kennedy), 워싱턴포스트 편집인으로서 닉슨의 워터게이트사건 보도를 총괄 지휘했던 벤 브래들리(Bradlee, 현재 부사장)도 끼어 있었다. 

 

연구가 시작된 지 10년이 지난 1948년 즈음부터 그들 가운데 20명이 심각한 정신질환을 호소했고 50세가 될 무렵엔 약 3분의 1이 한때 정신질환을 앓았다. 그러므로 “하버드 엘리트라는 껍데기 아래엔 고통 받는 심장이 있었다”고 이 잡지는 표현했다.

 

또한 연구진은 하버드대 생뿐만 아니라 평범한 남성 456명과 천재 여성 90명의 삶을 수십 년간 함께 추적했다. 총 814명의 삶을 어린 시절부터 죽을 때까지 전 과정을 지켜보며 만족스러운 삶 또는 그렇지 못한 삶에 이르는 원인을 통찰했다. 

 

연구에서는 행복하게 늙어가는 데 필요한 7가지 요소로는 ...

고통에 적응하는 성숙한 자세, 

교육, 

안정적 결혼, 

금연, 

금주, 운동, 

적당한 체중으로 정리되었다.

 

또한 연구결과 47세 무렵까지 형성돼 있는 인간관계가 이후 생애를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변수임이 밝혀졌다.

 

베일런트(Vaillant) 교수는 “어떠한 데이터로도 밝혀낼 수 없는 극적인 주파수를 발산하는 것이 삶”이라며...

과학으로 판단하기에는 너무나 인간적이고,

숫자로 말하기엔 너무나 아름답고,

학술지에만 실리기에는 영원하다 고 말했다.

 

그리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이며, 행복은 결국 사랑” 이라고 결론지으며,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가장 안정적인 성공을 이뤘다”고 하였다. 

 

진정한 인생의 행복은 좋은 대학이나 명예나 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곁에 얼마나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렇다. 행복은 성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창조된다.(장재언)

 

 

 

 

 

 

 

 

 

 

 

 

 

 

한대수 음악가/사진

 

 

뉴욕의 가을을 만끽하면서 장 보러 집을 나서다가 깜짝 놀랐다. 무슬림 수천 명이 차도를 막고 앉아 기도를 하고 있었다.

 

여기가 뉴델리인지 뉴욕인지 분간이 안 된다. 맨해튼에서 지하철로 15분 거리인 퀸스 우리 동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니.

 

알고 보니 9월 20일은 이슬람의 가장 큰 기념일 '아슈라'였다. 뉴욕시가 차도를 막고 기도를 하게끔 허가했다는 것도 쇼킹하다. 동네 주민 모두 놀라움에 입이 딱 벌어졌다. 그만큼 인도의 파워가 커졌다.

 

인도인은 주로 힌두교이지만 14%가 무슬림이다. 숫자로 따지면 1억7200만명이다. 최근 20년 인도와 무슬림 국가인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에서 미국으로 가장 많이 이민을 왔다. 이들 상당수가 뉴욕에서 살고 있다.

 

 

 

무슬림 수천 명이 차도에 앉아 기도 모임을 열고 있다.

여기가 뉴욕이오? 뉴델리요?

 

 

1980년 말에 캘리포니아에서 뉴욕까지 하루 8시간씩 운전하며 대륙 횡단했을 때, 매일 모텔 신세를 졌다. 하룻밤 18달러짜리 모텔이었다. 그런데 모텔 주인들이 절반 이상 인도인이었다. 알고 보니 미국 모텔업의 절반은 인도인이 장악하고 있다. 특히 파텔 가족은 인도 재벌 그룹이다.

 

내가 50년째 쓰고 있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신용카드 고객센터에 전화를 하면 뭄바이에 있는 인도 직원이 답을 한다. 신용카드 고객 서비스 센터를 인도로 옮긴 것이다.

 

어느 날 이가 아파 동네 치과에 갔는데 의사가 인도 사람이었다. 치료도 잘했지만 또다시 놀랐다. 뉴욕에 있는 시립 병원 의사 가운데는 인도인이 많다.

구글이나 애플 같은 첨단 기술 회사의 컴퓨터 엔지니어 중에도 인도나 파키스탄 출신이 많다. 구글의 현재 CEO는 인도인인 순다르 피차이이다. 2015년 창립자 래리 페이지를 대신해 그 자리에 올랐다. 이만큼 인도 파워가 전 미국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인도인이 미국에서 성공한 비결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교육열이 대단하다.

미국 내 인도 교포 70%가 대학 졸업자다. 머리가 좋다. 백인은 겨우 28%가 대졸이다. 퓨리서치라는 회사에 따르면 인도인들은 주로 과학이나 공학 쪽에 종사하며 평균 연봉은 8만8000달러이다. 전국 평균 연봉 4만9000달러의 두 배에 가깝다.

 

그리고 인구 증가율이 대단하다. 우리 동네만 봐도 인도인 부부는 아이를 5명씩 낳는다. 적게 낳으면 3명이다. 종교적으로 피임을 못 하게 돼 있지만 돈도 잘 벌고 라이프 스타일이 완전히 가족 중심이다.

 

2000년대 초만 해도 미국에서 중국인이 가장 활발한 소수민족이었지만 지금은 인도인이다. 모두 영어를 잘하고 100년가량 영국 지배를 받으며 살아남은 터라 서양 생활 방식에 빨리 적응한다.

 

머리도 좋다. 뉴욕에 45년 산 내 생각에 유대인이 최고 사업가, 중국인이 그다음인 것 같다. 그리고 이제 인도 파워가 미 대륙에 상륙했다.

 

20년 후엔 인도인이 뉴욕 시장을 할지도 모른다. 런던 시장은 이미 사디크 칸이라는 파키스탄인이지 않은가.

 

백인 인구는 계속 줄어든다. 1950년 90%였던 미국 내 백인 인구가 2010년 이후 70% 이하로 내려가고 있다. 반면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같은 남아시아 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무엇인가? 숫자다... 아이를 안 낳으면 멸종이다...

 

 

 

 

 

 

 

 

 

 

 

 

 

 

 

 

 

 

 

 

 

 

 

 

 

 

 

 

 

 

 

 

우간다 황톳길에서

 

황톳길을 걸으니

발이 질질 끌립니다

날렵한 발걸음도

마들가리 바지 자락

가을 장마 마기질에

흙탕물 튀는 줄 모릅니다

 

땅은 깍이고

강둑도 깍이고

살갗숨 날숨따라

미련둑도 깍이니

발걸음이 가벼워졌습니다

 

한번 말 붙이면

친구 아닌 사람이 어디 있으며

한번 미소 지으면

손 내미는데

자그락 노닥거리듯

차깔한 방안에서

홀로 기다립니까

 

외인의 장막을 헐고

안주의 자리를 뜨니

드넓은 하늘이 안겨주고

가로막을 산이 없으니

마을마다

산골마다

나다니는 이 발길

내일도

토막여행 떠나 보렵니다

 

 

 

 

 

 

이디 아민의 철권 통치로 나라의 이름이 알려진 곳, 길고 긴 독재 정치의 철권 앞에 자유라는 존엄성을 박탈당한채 살아온 1970년대 자유의 물결이 일것으로 기대했던 나라. 그러나 곧이어 수립된 정권이 지금까지 정당이 허용되지 않는 철권 정치의 세월을 견디고 서 있는 나라가 있다.

 

콩고 민주공화국에도 자유 바람이 불고, 민주의 촛불은 케냐에서 터지고, 인종청소 뒤에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마련한 르완다는 기지개를 펴며, 브룬디는 새로운 국가 재건에 나서고, 심지어 사회주의 통치를 벗어나 새로운 민주 정부를 세운 탄자니아가 주변에 있건만 우간다의 봄은 어느때인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긴 터널 뒤에 세계가 주목하는 영적 중흥기를 맞이하고 나라가 우간다임은 분명하다. 우간다에 일고 있는 놀라운 부흥을 말하기 전 우간다라는 나라는 어떤 곳이고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잠시 살펴보고자 한다. 그러한 배경이 이해되면 지금의 놀라운 부흥이 무엇인지 속속들이 파악될 것이라 믿는다.

 

사하라 지역을 다니다 보면 지중해서 기후에서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도시는 사막의 생존지역인 오아시스였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오아시스가 무엇인지도 모를 만큼 수자원이 풍성한 나라가 바로 우간다이다. 전국토에 넘쳐나는 호수와 늪지대 그리고 풍요하고 비옥한 땅을 가로지르는 강들은 분명 우간다를 “녹색 진주”라는 별칭을 얻기에 충분해 보인다.

 

남서쪽으로는 탄자니와 르완다를 접경하며, 서쪽으로는 콩고민주공화국을 접경하며, 북으로는 수단 그리고 동쪽 그리고 남동쪽으로는 세계에 잘 알려진 빅토리아 호수가 자리잡고 있고 이는 동쪽으로는 케냐는 동남쪽으로 탄자니아를 맞대고 있다.

 

케냐처럼 전국토가 아프리카 고원지대에 위치해 있으며 놀랍게도 해발고도가 1800미터 이상이 많아 매우 신선할 뿐 아니라 산과 계곡이 많다. 서쪽으로 국경에는 화산지대인 비룽가 산맥, 루웬조리 산맥이 있다. 우간다는 동아프리카 지구대에서 갈라져 나온 서부지구대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에게 알려진 엘버트 호수와 엘버트 나일 강이 바로 서부지구대에 나온 것이다. 비룽가 산맥에서는 무하부라 산이 무려 4,126미터를 넘으며 루웬조리 산맥에서는 마게리타 산이 최고봉인 5,109미처 만년설을 뽑내고 있다. 동부 쪽에는 엘곤산으로 4,321미터의 고도를 자랑한다.

 

지도에서 보아도 온통 호수 투성이인 우간다는 가장 큰 빅토리아 호수를 필두로 앨버트 호수, 키오가 호수, 조지아 호수, 비시나 호수와 에드워드 호수 등 너무나 많은 수량을 품은 풍성한 수자원을 자랑한다.

 

케냐와 탄자니아와 우간다 3개국을 접경하고 있는 빅토리아 호수는 북미의 5대호의 수페리어 호수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담수호이다. 빅토리아 호수에서 발원한 빅토리아 나일 강이 키오가 호수를 지나서 또 다시 앨버트 호수를 통과하여 다시 앨버트 나일강으로 흐르며 이는 백나일(White Nile River) 이 되어 지중해로 흘러 나간다.

 

비옥한 토양을 자랑하는 우간다는 풍부한 지하자원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국립 박물관에서 보여 주듯 석유자원도 생산한다. 철, 알루미늄이 풍성하다. 구리도 풍성하나 여러이유로 생산이 중단되었다.

 

고원지대에 수많은 호수는 우간다의 기후에도 영향을 끼치는데 이는 온화한 아열대 기후를 가져온다. 수도 캄팔라를 중심으로 1월 최고 기온 28도, 7월 25도로 매우 신선한 날씨를 보인다. 우간다는 중부와 북부 지역에는 사바나로, 남부는 농경지대로, 나머지는 드문드문 숲과 목초지를 갖고 있다.

 

케냐처럼 다양한 형태의 국립공원을 갖고 있는데 비용은 절반이나 3분의1도 안될 정도로 경비가 저렴하다. 면적이 3,885평방 킬로미터에 달하는 최대의 카바레 국립공원이 있는데 이를 머치슨 폭초 국립공원이라고도 부른다. 이외에도 사냥이 금지된 지역과 크고 작은 국립공원들이 여러개 있다. 이 국립공원에는 케냐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동물들이 야생의 상태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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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간다에는 케냐처럼 수십개의 종족이 존재하며 언어도 마찬가지이다. 케냐처럼 반투족이 전국민의 70%를 차지할 정도 다수이다. 그 다음을 따르는 종족으로 간다 족이 있고, 소가족, 은콜레족, 키카족, 기수족, 르완다족 그리고 니오로족등이 있다. 나일 함족계 언어를 사용하는 부족은 주로 북쪽에 몰려 있고 그들 부족은 아촐리족, 랑고족, 테소족 그리고 카라모족등이다. 하지만 케냐처럼 영국 식민지의 영향으로 영어와 스와힐리어 그리고 부족언어가 섞여서 사용된다.

 

우간다는 평균연령이 세계에서 가장 낮고 젊은 국가 1위이다. 이와 더불어 전기사용량이 세계에서 제일 적은 나라일 뿐 아니라 전국민 가운데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인구가 10%에 불과하다. 이는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전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고 이를 공급하는 전선주 건설이 요원하기에 늘 정전을 달고 산다. 캄팔라 수도인데도 나는 계속 정전을 수도없이 경험해야 했다.

 

또한 에이즈 감염률이 세계 1위일정도도 질병 감염에 빈약하다. 이러한 지표는 농업을 근거한 국민경제가 세계에서도 가장 낮은 빈국 중에 빈국으로 케냐의 절반에도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642불(2017년 통계)이다. 정치적 내전과 부정부패와 불안정으로 1970년대부터 1980년 중반까지 이미 있었던 농업과 공업 생산마저 급감하였다.

 

1990년 중반 이후 부터 우간다 정부는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고 수출에 주력하였으며 국제통화기금 (IMF)와 같은 국제 통화기구들과 관계를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디 아민(1971-790의 통치기에 몰수를 당했거나 추방당했던 인도인들과 사람들에게 토지와 재산을 돌려 주었다.

 

 

 

 

 

자 이제부터 우간다의 부흥을 말해보자!

 

우간다에 일고있는 부흥의 불길은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지표까지 바꾸어 놓았다.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에는 주일이 아닌 평일에도 찬양소리와 생방송 예배 현장을 생중계하는 라디오 방송으로 부산하다. 세워진지 불과 2년 밖에 안된 가나안 기도의 집(Canaan House of Prayer)은 평일에도 수천명의 인파가 매일 드리는 오전, 오후, 저녁 집회로 임시로 친 텐트 안은 붐빈다. 탁트인 주차장에도 수많은 차량들이 가득하다.

 

가나안 기도의 집교회는 85,000 명의 교세를 가지고 있다. 빅토리 교회( Victory Christian Center)의 기도 담당 목사였던 그가 라디오 설교를 통해 새롭게 교회를 개척하면서 우간다 전체에서 제일 큰 교회로 무섭게 성장하였다. 두번째로 큰 교회로 알려진 미라클 센터(Miracle Center)는 25,000명의 교세로 수천명이 들어 가는 성전도 모자라 바로 옆에 대형 텐트를 치고 매일 여러번의 예배와 기도회를 열고 있다.

 

오메가 힐링 센터(Omega Healing Center) 교회는 들어 갈 수 있는 만명이 가능한 새로운 성전을 짓고 있는 중이다. 그 규모도 엄청나지만 지금 드리고 있는 교회가 우간다 전통의 나무로 천정 구조를 만든 그야말로 초라하기 그지 교회이다. 하지만 매주 화요일은 셀그룹 모임으로, 매우 월요일은 전도와 제자훈련으로 그리고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라디오 생방송을 진행하는 교회로부터, TV 방송을 중계하는 교회에 이르기까지 방문해 본 10여 개 교회 모두 매일 이른 아침, 오전, 정오 기도회, 저녁 기도회를 상황과 처지에 따라서 드리고 있었다.

 

 

 

이러한 교회들 중 인상에 남는 교회가 만민회당교회(Synagogue Church of All Nations(15,000명))와 크리스챤 라이프(Christian Life)교회이다. 특히 정오 기도회(또는 정오 예배)는 12시부터 3시까지 생방송으로 중계되며, 예배를 드리는데 참석인원도 천여명이 넘어 보인다.

 

생업을 하기도 어려운 이 가난한 나라에서, 이른 아침부터, 정오, 그리고 저녁에 이르기까지 만약 예배를 다 참석한다며 아이들의 교육은 어떠하며, 생계는 어떻게 벌 것이며, 가정 생활은 어찌 유지할지에 대한 궁굼증이 더해졌다. 장대비가 땅을 때리듯 내리는 와중에도 옹기종기 모여서 예배한 참석한 이들은 연발 “아멘”으로 화답한다.

 

기도하는 시간에 모두 각자가 몸을 흔들거나 움직이며 선포하듯 기도한다. 심지어 엄마 품에 안겨있는 아이조차 이 기도의 모습이 익숙한 듯 새근새근 조용하기만 하다. 많은 언론들이 우간다의 부흥을 말하는데 이 부흥이 진정한 부흥인가? 아니면 잠시 지나가는 종교적 열정의 현상일까?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일까?라는 질문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천막치고, 학교 운동장에서 또한 마을 광장에서 열리는 부흥회를 따라다니며 은혜 받았던 어린 시절이 떠 올랐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한국 교회는 그야말로 부흥의 중흥기였다.

 

어느 목회자든 개척 교회의 말뚝만 박아 놓으면 사람들은 구름떼처럼 몰려 들었다. 지금 보면 밋밋할 수 있는 찬송가를 수십번 반복하면 부르고, 손바닥이 뚤리도록 박수를 쳐도 지루한 줄 몰랐다. 8세부터 매일 밤 철야기도를 해도 그토록 할 기도가 많았던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기만 하다. 우간다의 부흥을 좀 더 찾아보고 분별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복음주의 교회는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하다는 우간다에서 매년 수백만명의 회심자들을 배출할 정도로 번성하고 있다. 이는 우간다에 거의 2백년 전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가 발을 내딛은 이후 지구상 어떤 나라보다도 가장 빠른 속도로 기독교가 성장하고 있다.

 

이미 나의 저서 “남반구 기독교 부흥(The Rise of the Global South)” 에서 밝힌 바와 같이 1970년대만 해도 사하라 남단 아프리카 대륙에 1억1천7백만명의 기독교인들이 있어지만 지금은 3억 9천이 넘는 기독교인들이 있다.

 

한국교회에 대해서도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고, OMSC를 인도하고 예일대 교수를 역임했던 조나탄 봉크 교수도 “지금의 아프리카 많은 환경들이 그들로 하여금 기독교를 실제적으로 만들었다”는 말이 실감이 날 정도이다. 아프리카에서 특히 우간다에서의 기독교는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유일한 희망의 종교이다.

 

지금의 우간다 상황은 불과 5년전과 비교하여도 케냐의 기독교가 급변하였듯이 거의 빛의 속도로 변화하며 성장하고 있다. 남북한 전체 면적의 10% 정도 더 되는 땅이 24만 평방 킬로미터의 국토는 여타 아프리카 나라들을 본다면 영토가 그리 큰 나라는 아니다. 가장 빠른 속도의 인구증가율을 보이는 나라답게 어느새 인구는 3천7백 8십만명을 넘어섰다. 우간다 인구의 적어도 다섯명당 한명은 ‘중생한 그리스도인(Born Again Christian)”이다.

 

이들중에는 정부 고위관료, 젊은 목회자, 연예인들과 중고등 및 대학교 학생에 이르기까지 전 연령층을 포괄하고 있다. 우간다 대통령의 영부인인 자넷 무세베니(Janet Museveni)도 중생한 기독교인으로 알려졌으며 그녀는 국회의원으로도 선출되어 활동하고 있다.

 

 

 

이전 무세베니 대통령이 다니던 교회는 동성애에 관한 문제로 교회는 급감하였다. 그런데 우리가 우간다 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형태의 복음주의 교회, 아프리카 독립교회, 순복음 교회(Full Gospel, 여기에서 순복음은 오순절 교단인 한국의 여의도 순복음교회와 같은 하나님의 성회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초교파적 교회를 총칭함), 오순절 교회, 은사주의 교회와 기도의 집 교회등이다.

 

이러한 교회들은 나름대로 해외에 연관성을 갖고 있다. 미국 전통의 흑인 부흥사들을 롤 모델로 하는 교회들이 많아 심지어는 교회 이름부터 설교의 내용과 제스처까지도 그대로 모방하는 교회들도 많다. 미국 주류 백인 부흥사들을 롤 모델로 하거나 번영복음의 메세지와 형태 그리고 목사의 설교 모습까지도 모방하고 따라가는 교회들이 많다. 우간다 최대 교회의 목사조차 신학교육을 받아 본적도 없지만 정규 교육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본인은 이렇게 큰 교회를 할 줄 예상도 못했다고 말할 정도이다. 그러기에 대부분 목회자들의 메세지는 축복과 신유, 기적과 능력, 번영과 변화를 줄 수 있다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예배에 참석하는 성도들조차도 어려운 설교를 소화하기 어렵기에 쉽고도 매우 반복적인 설교를 듣는 경향이 농후하다. 지난 20십년 동안 지속되었던 내전의 여파로 우간다 전체의 절반에 해당하는 북부 지역은 그 폐해가 대단하였다.

 

 

 

 

 

그럼으로 미국 복음주의 교회들의 오랜 선교의 배경와 사역을 보아 온 우간다 교회들도 인도주의적인 역할을 자청하고 있고, 학교를 세우며, 진료소와 고아원등 세워 수도인 캄팔라로부터 북부 전체에 이르기까지 그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구조활동이나 구호 활동을 하는 단체들조차도 교회가 들어서서 그 지역 공동체를 섬기고 도와 주기를 바랄 정도로 교회들의 영향력은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아직도 미국 선교부를 통해 재정적 지원을 많이 받고 있기에 에이즈 퇴치 교육 사역이나 의료 진료소 설립, 간호 대학, 의과대학, 그리고 공동체 개발 사업등이 미국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는 유럽과 한국 선교사들의 사역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 교회를 복사하는 것이 유행인 것처럼 보이는 우간다 교회는 정치적 영향력도 대단하다. 마치 케냐의 교회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경향을 볼 때 또 다른 형태의 모습이 우간다 교회 지도자들에게 나타난다.

 

가장 논쟁거리가 되는 미국 지원의 반에이즈 전략에 대해서 콘돔을 사용에 대한 금욕주의적 경향을 우간다 복음주의자들은 보이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부시 대통령 당시 2년 동안 금욕 프로그램을 위한 보조 비용은 2년간 받은 돈이 무려 2억3천9백만 달러였다.

 

이 액수는 가장 큰 액수였으며 금욕 프로그램은 ‘반에이즈 구출 프로그램(AIDS-relief program)’이란 이름으로 시행되었다. 우간다 교회가 인도주의적 프로그램을 전국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것은 복음전도나 개교회 성장에 연관이 있기만 크게 이러한 운동이 성장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복음주의 교회들의 반에이즈 캠페인은 교회 성장에 큰 도움을 주게 된 것이다. 1990년대에 우간다는 에이즈 HIV(AIDS HIV) 감염률이 전국민의 15%에 이를 정도로 세계에서 최고였던 나라이다.

 

우간다 정부의 지원하에 교회들이 우간다 국민들에게 질병(에이즈)에 대하여 교육하고 새로운 갱신 프로그램을 진행하였고 2002년에 이르러서 에이즈 감염율은 7퍼센트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아직도 에이즈 최대 감염국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200년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우간다의 이슬람 인구는 12%에 달한다. 하지만 이러한 수치만으로는 무슬림들의 존재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부인을 4명까지 둘 수 있기에 자연적 무슬림 인구 증가가 급격하며 사우디와 리비아(이전에는 가다피가 아주 적극적이었음) 그리고 중동과 터키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지역에 이슬람을 심어 샤리아를 법제화하는데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발견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간다 모든 마을이 있는 곳에 매4킬로마다 모스크를 세우고 있고 시내 중심가 뿐 아니라 어디를 가도 모스크의 위용은 진실로 대단하다.

 

캄팔라 수도 중심을 내려다 보이는 거대한 가다피 모스크(리비아 독재자 가다피가 후원했기에 그의 이름 따라 지음)와 이슬람 대학 및 이슬람 지원을 받는 교육기관에 이르기까지 이슬람의 급격한 성장은 더 이상 나몰라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리고 동아프리카 최대 난민 유입의 창구인 우간다는 수단과 소말리아를 비롯해 주변 각국의 난민들이 유입되면서 급격한 이슬람 난민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제는 독자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이슬람 세력은 개신교회가 주류를 이루는 우간다 사회 속에서 특히 우간다를 기독교 국가라고 부르는 요웨리 무세베니(Yoweri Museveni)대통령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이슬람을 비방하는 개신교회 지도자들은 두개의 TV 방송국과 7개 이상의 라디오 방송국을 소유하고 있기에 이슬람권에서는 개신교 주도의 방송에 대해서 불평하고 있다.

 

이슬람권의 불평을 과대해서 이슬람에 대한 근거없는 거짓말들을 일부 개신교 지도자들이 터뜨리고 있기도 한다. 이슬람의 급격한 세력화에 대해서 황당하고 근거없는 거짓말을 교회 지도자들이나 또는 부흥사들이 퍼뜨리는 행위는 궁국적으로 건강한 교회를 지향해야 할 우간다 기독교 공동체 전체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공교롭게도 대영제국 당시에 들어 온 인도인들을 비롯해 무서운 속도로 아프리카 거의 모든 나라의 건설 현장을 누비는 중국 노동자들과 남아공 사람들과 외국인까지 배척으로 운동으로 변질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증가하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경향은 아프리카 전통 종교를 기독교와 혼합하거나 기독교가 종족 종교화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시각이 현존하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간다의 부흥은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암울하고 절망적인 배경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디 아민과 그 이후에도 지속으로 진행된 독재의 긴 통치 속에는 신음하는 민초의 억울함과 고통, 비탄과 탄식이 섞여 있었다. 1970년대 무슬림이었던 독제자 이디 아민(Idi Amin)하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핍박을 받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나라를 떠나야 했다.

 

기독교에 편향적인 정부로 인해 기독교인과 무슬림간에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서로 어색한 입장이 되었다. 이슬람의 매우 중요한 이맘은 첫번째 부인과의 합의하에 두번째 부인을 갖게 하는 것을 금지한 법안을 법제화할 때 지하드를 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아프리카으 다른 나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슬람과 기독교인들간의 반목은 가장 악화되고 있다.

 

우간다의 놀라운 부흥은 신조어를 만들어 내었다. 우간다는 “아프리카의 진주((Pearl of Africa)라는 칭호를 얻은 것이다. 이러한 언어의 찬사를 바라보면서 이러한 부흥이 자생적이 부흥인지 아니면 미국 주도하에 일어난 미국적 부흥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자생적 부흥이라면 우간다를 중심으로 전 세계에 빛을 비출 등대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로저 롤스 윌리암스(Roger Rolls Williams)의 다큐멘터리 영화 “하나님이 우간다를 사랑하신다( God loves Uganda)”와 우익 기독교에 분위기와 동성애 혐오 가운데 동성애에 대한 갈등(오바마 대통령과도 크게 쟁점이 되었던 부분)을 그린 영화 “쿠추라고 불러 주세요(Call Me Kuchu)”와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

 

이 두영화는 우간다에서 스스로 게이임을 밝힌 데이비 카토(David Kato)의 삶과 죽음을 다루고 있다. 그는 동성애 행위로 감옥에 가고 반복적 동성애 공격자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법령에 대한 새로운 법개정을 제안하였다. 이 두편 다큐 영화는 아프리카 민족주의와 반서방주의 감정이 백인들에 의해서 들어오고 자양분이 되어진 종교적 도그마를 광범위하게 받아들여 만들어진 공존의 모습이라 볼 수 있다.

 

 

지금도 계속되는 이러한 동성애 논쟁은 우간다 개신교회가 가지고 있는 도덕적 보수적 성향과 오랜 아프리카 전통과 관습 즉 우간다의 전통적 문화도 매우 큰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어떤 이들은 지금의 우간다 교회의 배후에는 제도적 식민주의는 떠났으나 후기 식민주의의 많은 영역을 타파하고 전략적이고 신학적 식민주의 새롭게 건설하는 서구 선교사들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지금의 우간다 교회를 들여다 보면 젊은이들의 새로운 사고와 기성세대와 다른 모습의 신앙형태는 현미국 대중적인 교회에서 파도처럼 파송한 젊은 미국 선교사들과 교회의 영향이 많음을 보여준다. 미국 교회의 영향 아래 로버트 카얀자(Robert Kayanja), 마틴 쎔파(Martin Ssempa)와 미국에서 자라났거나 또는 교육을 받고 돌아 온 젊은 목회자들에 기인한 바 크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좀 더 고찰하면 1936년 동부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부흥이 일어난 연원을 살펴보아야 한다.

 

1936년 르완다를 중심으로 부룬디, 우간다 일부, 자이레, 탄자니와 케냐에 놀라운 부흥의 불길이 일어났었다. 이 부흥은 기독교 학교와 마을마다 번졌고 깊은 회개를 통해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켰다. 오늘의 부흥이 일시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영국에서 공부할 때 동부 아프리카의 부흥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가나 출신의 임마누엘 형제가 있었다. 그가 연구한 자료에 따르면 지금의 동부 지역의 선교 역사를 먼저 살펴 보아야 한다.

 

우간다의 선교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오랜 기간 동안 서방 세계에 문을 닫고 우간다에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은 우선 17세기말에 나일-햄족어 그룹들이 우간다 북부로 이주했을 때이다. 백년 뒤인 18세기 말에 남부까지 이들이 이주한다. 특히 아랍인들이 이 지역에 들어 온 주 목적은 상아 무역과 노예 무역을 하기 이해서이다.

 

우간다 최초의 유럽 탐험가는 존 해닝 스피크와 제임스 오거스터스 크랜트인데 이때가 1862년으로 그들은 부간다 왕국을 횡단하였다. 무테사 1세는 1877년 영국선교회 선교회의 선교사들이 들어 올 수 있도록 허락한다.이때에 이르러서야 유럽 선교사들이 합법적으로 들오 올 수 계기가 되었다. 스피크보다 우리에게 더 알려진 탐험가는 데이빗 리빙스턴이다.

 

 그는 빅토리아 호수를 발견하고 유럽인들에게 아프리카 대륙의 꿈을 지펴주었다. 1875년 4월 데이빗 리빙스턴을 만나러 온 영국 기자인 헨리 스텐리(Henry Stanley)는 우간다의 옛이름이며 지금 중앙 우간다에 있었던 부간다 왕 무테사(Mutesa)를 만난다.

 

스텐리를 통한 매우 간략하게 기독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무테사 왕은 매우 정열적으로 기독교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그는 스텐리에게 영국 빅토리아 여왕에게 서신을 보내 선교사들을 보내 달라고 요청한다. 이에 스텐리는 영국의 “데일리 텔레그래프(The Daily Telegraph)”는 1875년 11월 15일에 이러한 기사를 게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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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경건하고도 실제적인 선교사들이 오게 하시오! 문명의 낫을 위한 무르익은 추수가 보이지 않나요? … 백성들을 가르치고, 질병을 치료하고, 우물을 개발함으로 기독교인이 되게 할 수 있는 실제적인 교사들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선교를 위해 돈을 사용하는 것을 두려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러한 기사가 게재된 이후 첫번째 8명의 선교사가 교회선교회(Church Missionary Society)가 1977년에 도착하였다. 이들에 의해 부간다 왕국의 무테사 카바카(왕)의 궁전의 신료들에게 복음이 증거되었다. 무테사를 이은 므왕가(Mwanga) 왕은 궁전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이전에는 왕에게 충성을 다하더니 이제는 그리스도에게 충성하는 모습에 매우 분노하였다. 므왕가왕은 기독교 선교회에 가까이 가는 것을 금지하였고 이들에게 죽음의 고통을 안겨 주겠다고 선언한지 1885년 순교자가 발생하였다.

 

이들 순교자 가운데는 제임스 헤닝톤( James Hannington)이라는 영국 성공회 주교인데 그는 동부적도교구의 첫번째 주교였다. 헤닝톤 주교는 부간다 왕국으로 동부쪽에서부터 선교 사역을 진행하였다.

 

불행하게도 간다 왕국에는 적들이 왕국의 동부 루트를 통해 공격해 온다는 믿음이 있었다. 물론 헤닝톤 주교는 이 사실을 알리 없었다. 므왕가 왕은 용사들을 보내어 헤닝톤 주교들을 접촉하였고, 헤닝톤 주교는 “왕에게 말하시오! 나는 우간다를 위해 죽겠소”라고 말하였고 1885년 10월 29일에 죽임을 당한다. (Namirembe Cathedral)에 있는 묘비에 새겨져 있다.

 

1886년 6월 3일에 13명의 성공회교인과 12명의 천주교인를 포함하여 모두 26명을 죽일 것을 명령한다. 이날을 기념하여 우간다는 6월3일을 우간다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국경일로 지키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동부 우간다로 죽음까지 감내한 그들의 용기, 희생과 복음증거를 기억하는 순례행렬을 계속하고 있다. 이들이 순교당한 지역은 나무공오(Namugongo)인데 순교자의 배출은 므왕가 왕의 의도와는 전혀 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이들 순교자들의 모습은 그들은 죽음을 앞두고도 찬송가를 부르며, 적들을 위해 기도하며 아직도 남아 있는 기독교인들과 지켜보는 이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극소수에 불과했던 궁전과 전왕국에 놀라운 속도로 복음이 증거되어 힘을 얻게 되었다.

 

이들 순교자들은 기독교가 백인들의 종교가 아니라 진정으로 아프리카의 종교라는 지울 수 없는 감흥을 남겨 주었다. 이러한 이유로 아프리카 기독교 전파가 백인들에 의해 전해지기 보다는 아프리카 사람들 자신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이러한 결과로 우간다는 아프리카 전체에서 가장 높은 기독교 인구를 갖게되는 국가가 되었다.

 

어째튼 기독교를 핍박하던 므왕가 왕은 기독교를 다수로 믿는 간다족으로 도움으로 왕국을 유지하려 했으나 노도처럼 밀려오는 유럽 열강의 지배하에 들어 오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1889년 독일인 카를 페터스는 므왕가 왕과 보호조약을 맺게 되지만 1890년 영국은 이 보호조약을 무효화 시킨다. 1894년에 이르러 부간다(지금의 우간다)는 영국의 보호령이 되고 1890년에 이르러서는 지금의 우간다 전역에 해당하는 곳이 보호령이 된다.

 

1차 2차 세계 대전이후 1945년 아프리카 최초로 아프리카인에 의한 입법위원에 우간다는 참여하게 된다. 1955년에 영국식 각료체재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부간다 왕국의 간다족 통치자는 이러한 정부 조직 구성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어서 전세계에 신생국들이 들어 서면서 부간다 왕국은 우간다로부터 독립하기를 원했다.

 

1962녕에 이르러서 우간다 전체 자치가 부여 되면서 간다족 출신의 베네딕토 키와누카가 초대 수상이 되었고 그해 4월에 선거를 통해 랑고족의 밀톤 오보테가 통치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해(1962) 10월에 우간다는 공식 독립국가가 된다. 1년 뒤에 부간다 왕국의 통치자인 무테사 2세가 초대 대통령이 되었으나 수상과 대통령간의 알력 다툼이 일어나고 또한 종족 분쟁들이 분출하기 시작한다.

 

1966년에 이르러 오보테는 무테사2세를 몰아내고 1년 후에 새헌법을 공포해 스스로 대통령에 오르면서 아직도 잔존해 있던 왕국을 폐쇄하였다. 1971년에 이디 아민 장군은 쿠테타를 일으켜 대통령에 오르는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디 아민의 공포독재철권정치이다. 1972년 이미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디 아민은 아시아인들을 강제 추방 재산을 몰수하였고 전임 정권의 호의적인 주요 부족들을 박해하였으며 또한 기독교인들을 한없이 핍박하였다.

 

 1978년이 이르자 우간다 경제는 파탄지경에 이른다. 궁여지책으로 이디 아민은 1978년 이웃나라 탄자니아를 침공하는데 도리어 1년 뒤에 추방당한 무리들과 탄자니아 정부군에 의해 우간다에서 그는 쫒겨 나간다.

 

이후 추방당한 인사들을 중심으로 연립 정부가 세워지고 1980년 12월에 신임 대통령에 오보테가 집권한다. 이디 아민을 몰아내는데 1등 공신이었던 요웨리 무세베니는 오보테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고 반정부 무장 투쟁에 들어간다. 그런 사이에 오보테는 국제기구의 도움을 받아 경제재건에 힘썼으나 아촐리족과 랑고족의 갈등으로 추방되고 만다. 1985녀에 쿠테테가 일어나고 아촐리족 출신의티토 오켈로 장군을 정권을 접수한다.

 

그리고 해외에 머물던 요웨리 무세베니가 1986년 1월 대통령에 당선되어 지금까지 이른다. 그는 친 서방 정책을 통해 경제 재건과 부흥에 주력하였다. 무세베니 역시 이디 아민처럼 독재정치를 행하는 데 그것이 1995년 정당설립 금지하는 헌법을 공포한 것이다. 1996년에는 정당이 없는 상태에서 선거를 실시하고 그 뒤 의회가 구성되고 대통령 내각을 구성한다. 그러나 지금의 오랜 독재 정치는 케냐처럼 민주주의를 구가하기에는 요원해 보인다.

 

부흥의 배경에는 오랜 혼돈과 핍박 그리고 많은 역사적 질곡과 어려움이 있었음을 간과하지 말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흥의 나타나는 형태는 아름답지도 않고 더 더욱 많은 혼동스런 모습과 다양한 형태를 보인다. 그러기에 같은 부흥을 놓고도 조나단 에드워드는 감히 감내할 수 없을 정도로 공격을 받았다. 찰스 피니가 받은 수모와 모멸은 열거하기도 쉽지 않을 정도이다. 문제는 이 부흥이 하나님이 주시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쇼맨쉽과 사람들의 갈망이 만들어 낸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오래 전부터 우간다에 시작된 기도원 (Prayer Mountain) 소식을 듣고 그곳을 방문하였다. 산꼭대기에 세워진 기도원에는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교회별로, 개인별로 기도하는 무리들이 꽤 있어 보였다.

 

중앙에 있는 개방형 예배당에서 수십명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고 산 전체에는 여성용 숙소와 남성용 숙소 그리고 텐트 사이 사이에 수풀에서, 벤치에서 그리고 바닥에 무릎꿇거나 서서 기도하는 무리들을 종종 만나곤 했다. 저들에겐 미안하지만 저들의 기도하는 모습, 예배하는 모습을 촬영했다. 때론 울부짖으면 기도하는 저들의 모습은 1970년대 한국 교회 기도원에서 기도하는 무리들의 모습을 많이 닮았다.

 

긴 긴 철권 통치 가운데 우간다는 영적으로 그리고 교회적으로 이제는 세계 선교를 위해 깨어나고 있음을 기도원 동산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캄팔라에 만연하고 있는 싸구려 상업주의 기독교의 모습, 말씀이 바탕되지 않는 번영복음, 은사와 축복 그리고 신유만을 강조하는 도구적 기독교, 그리고 신학교육의 부재와 교회사적 가이드 라인이 존재하지 않는 양적 부흥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산 정상에 드려지는 기도는 우간다에 진정한 부흥을 주소서!라는 기도였다.

 

주여! 속히 부흥을 주소서!

우간다 캄팔라를 떠나며,

김종필 올림

 

 

PS.

1. 우선 저에게 이메일 답변을 주시는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사실 저에게 답변을 주시는 분들의 글을 읽노라면 이토록 자세하게 나의 글을 읽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이내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힘을 얻습니다. 주변머리 없는 긴 글도 읽어주실 뿐 아니라 깊은 생각의 여울을 저에게 나누어 주실 때면 글을 더 진중하게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엄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끊임없이 이동하고 있으며 잠자는 시간도 부족하고 인터넷 연결은 참으로 쉽지 않은 상태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행여 저의 글 가운데 부족한 면이 보여도 이해해 주시기를 바라며, 또한 수정할 사항이 있거나 의견이 있으면 가감없이 개진해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2. 너무나 놀라운 사실은 제가 방문하는 나라마다 그 나라에 계시거나 또는 그 나라를 방문했거나 또는 방문하고 있는 많은 분들로부터 이메일 답변을 받습니다. 참으로 반갑고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마치 저와 함께 선교 여행을 다니는 마음 같아 홀로 있지 않다는 안도감이 밀려옵니다.

 

3. 저는 비자 신청의 문제, 재정의 문제, 건강의 문제 그리고 다음 일정에 대한 준비의 문제 그리고 계속되는 국제회의 원고와 강의에 대한 부담을 안도 이번 일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를 위해서 기도 부탁 드립니다.

 

 

 

 

 

 

 

 

 

 

 

 

 

 

  

 

두란노, 조상연 목사 ‘비전통독 원데이 세미나’

 

 

비전 통독

 

조상연 목사가 창세기 성경 통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 초점으로 읽는 비전통독 원데이 세미나'가 4일 오후 2시부터 서울 서빙고동 두란노서원에서 개최됐다.

 

 

이날 세미나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초점으로 읽는 90일 성경 일독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비전 통독>과 <비전 통독 인도자 지침서> 출간을 기념해 저자 조상연 목사의 강의와 사례 발표, 교재 소개 등이 이어졌다.

 

<비전 통독>은 '말통(말씀통독) 목사'로 잘 알려진 조상연 목사가 로마서 3,500독, 바울서신 2,500독, 신약 1,500독, 구약 500독을 하며 배우고 깨우친 내용들을 담아낸 성경 통독 가이드북이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66권을 '구속사적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초점으로' 90일만에 일독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다.

 

구속사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에 대한 계시적 예언이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로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이루신 구원의 역사이다.

 

조상연 목사는 책에서 "성경 읽기는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과 같다. 성경을 아무리 읽어도 손에 잡히는 것이 없지만, 콩나물이 자라듯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믿음이 조금씩 자라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성경을 구속사에 초점을 맞춰 읽으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길이 보인다. 성경에서 길을 찾게 되면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는 비밀을 발견하게 된다. 그 비밀은 바로 새 언약, 새 계명인 참사랑"이라며 "성경 읽기를 통해 성경의 비밀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겨 진리와 생명의 길을 찾고, 비밀을 품을 수 있는 왕 노릇의 마음이 생길 때 새 언약을 완성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살게 된다"고 전했다.

 

성경 통독 또는 읽기를 중도에 포기하는 것에 대해 강연에서 조 목사는 "성경 읽기를 공부처럼 하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이라며 "성경을 읽으면 성경 지식도 자연스럽게 들어오고 성경의 구조도 생긴다.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는 책에서 하는 말이 맞다"고 밝혔다.

 

 

비전 통독

 

이날 세미나에는 100여명이 몰리면서 ‘성경 통독’에 대한 관심을 반영했다.

 

조상연 목사는 "대부분 통독이 '연대기적'으로 성경을 읽지만, '비전 통독'은 구속사 관점으로 성경을 관통하는 것"이라며 "읽기를 기초로 해서 공부와 큐티가 이뤄져야 날개를 달게 된다. 성경을 읽으면 영혼이 부흥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조 목사는 "영적으로 먹고 살기 피폐한 시대, 진리를 먹으려 하지 않는 시대이지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말씀을 찾고 읽게 된다"며 "성경을 읽으면 반드시 그대로 살 수 있는 믿음이 생기고 실천할 수 있는 에너지도 들어온다. 그러나 성경을 그냥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르다. 완전 별개인 지식과 믿음을 혼동해선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

 

앞서 사례발표에서 김에스더 사모(온천하 선교교회)는 "이전에 교회 성장이라는 욕심을 갖고 은사 받기를 사모하면서도 성경은 읽지 않는 날이 많았다"며 "작년 조상연 목사님이 운영하는 레제나하우스 세미나에서 통독을 시작했는데, 지금은 주일을 빼고는 매일 손에 성경을 붙들고 있다"고 말했다.

김 사모는 "통독을 하면 할수록 나 자신을 내려놓고, 말씀의 사람으로 세워지게 됐다"며 "교회에서 성경 통독 프로그램을 매년 새롭게 했지만 '출애굽'하지 못하고 홍해에서 허덕이면서 창세기 앞부분에 머무르던 성도들이 많았는데, 이제 80%가 1년 3독을 하고 있다. 30독 넘은 집사님도 계신다. 그러다 보니 교회에서 험담하고 큰 소리 내던 일들이 줄었고, 나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 말씀을 기다리게 됐다"고 했다.

 

 

비전 통독

 

김에스더 사모가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주혜선 집사(일산 예수향교회)도 "성경을 더 읽고 알고 외우고, 박식하게 꿰뚫어서 자랑하고 싶었지만 2% 부족한 느낌에 성경을 알면 알수록 말씀의 기준대로 살지 못하는 자신을 보게 됐다"며 "그러다 '말통 축제'에 참여해 설명할 수 없었던 것들이 구속사를 초점으로 성경을 통으로 반복해 읽으면서 서서히 풀어졌다"고 전했다.

 

주 집사는 "'성경을 짜면 예수님의 피가 흐를 것'이라고 한다. 성경은 예수님 그 자체이고, 말씀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있고 펼치기만 하면 누구나 읽을 수 있는데 그 진리 안에서 왜 나는 자유할 수 없을까 생각했었다"며 "내 생각과 기준, 상황을 말씀에 고집스럽게 대입하면서 내 필요만을 찾으려 했지만, 구속사적 성경 읽기를 통해 믿음이 충전됨을 배웠다"고 간증했다.

 

책을 발간하고 세미나를 주최한 두란노서원 측은 오는 11일 같은 시간과 장소에서 <비전 통독> 인도자 세미나를 개최한다. 

 

 

 

 

 

 

 

 

 

 

 

아기학교의 시간 운용은 30분씩 네 분야로...

자유놀이, 

예배, 

학습활동, 

반별 모임 시간으로 구분된다. 본편에서는 아기학교 예배를 어떻게 디자인해야 하는지 알아보겠다.

양광교회 아기학교 예배 순서는 인사와 손 유희, 출석체크, 찬양과 신체활동, 기도와 성경 이야기, 축복기도, 주기도문이다. 

 

먼저 인사와 손 유희, 출석체크는 아기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짧고 간단하며 사소한 것이지만 손 유희는 재미있는 리듬과 언어자극으로 아기에게 흥미를 주고 집중을 돕는다. 한 명씩 이름을 부르는 출석체크 시간에 아기들은 자기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나아가 예배로 초대받는 행복한 느낌을 갖는다.

 

두 번째, 찬양 시간은 연령에 따른 찬양 4~5개 선곡하되 엄마와 아기가 서로의 어깨를 도닦이는 교제 찬양, 엄마가 아기를 높이 올리는 것과 같은 활동적인 찬양으로 구성한다. 또는 막대 리본, 탬버린과 같은 교구를 활용하면 보다 풍성한 시간이 된다. 

 

세 번째, 성경 이야기는 아기의 눈높이에 맞추어 실물 설교, 그림 설교, 연극 설교, 인형극 설교 등 오감을 자극하는 다채로운 설교를 한다. 비록 말씀의 눈높이는 아기에게 맞춰져 있으나 청중에 엄마들도 포함되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설교자는 단순한 재미를 넘어 성경 본문의 핵심을 분명하게 파악하고 복음을 전달해야 하며, 이로써 육아로 인해 주춤해진 엄마들의 신앙도 성장하도록 돕는다면 엄마들에게 의미 있는 말씀 시간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축복기도는 필자가 아기학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간이다. 인도자는 축복 찬양을 부른 뒤, 엄마가 아기를 품에 안거나 아기 몸에 손을 대도록 지도하고 말씀 주제와 연관된 기도제목을 준다. 

 

그러면 2~3분간 엄마들과 교사들은 소리를 내어 아기와 가정을 위해 축복기도하고, 인도자는 마침기도를 한다. 이 시간은 엄마들이 영이 가장 살아있는 시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님이 가정에 주신 축복을 감사하며 마음에 새기는 귀한 시간이 될 것이다. 

 

 

 

 
 
 
 

 

 

 

 

 

 

 

 

 

 

 

 

 

 

 

 

 

오늘 할 일은 오직 하나님께 입은 그 은혜를 감사하고 찬송하는 것뿐이다.

 

우연히 열어 본 유튜브 하나....

 

불행하게도 한쪽 얼굴에 ‘화염상 모반’(Nevus flammeus)이라는 마치 불에 덴 상처 같은 큰 붉은 반점을 가지고 태어난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어린시절 부모에게 버림받아 보육원에서 자랐으며, 세상에서 사람들의 온갖 차별과 냉대를 받으며 자랐다.

 

25세 때 암에 걸려 모반이 없던 다른 쪽 얼굴마저 무너져내렸지만, 그녀의 아픈 환경과 외모까지 모든 걸 감싸주는 착한 남편을 만나 현재 예쁜 두 딸을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하지만 첫아이를 낳고 기를 때 자신의 모습 때문에 아이가 상처를 받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단다. 엄마 입장에서 그보다 아픈 건 없기 때문이었다.

 

 

 

 

누구도 자신이 아이를 잘 키울 거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결심했다.

 

‘아이는 상처를 받을 수도 있고 받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 상처를 받지 않고 자라게 하자.’ 

 

그래서 아이가 넘어졌을 때 자신이 “이것밖에 안 다쳤네, 감사하다”라고 말하니, 다음에 또 넘어졌을 때 딸이 말했단다.

 

“엄마, 이것밖에 안 다쳤어. 다행이죠?”

 

아이가 상처를 받는다는 마음으로 키우면 아이는 상처를 받으며 자랄 것이지만, 감사하도록 키우면 감사하는 마음이 아이에게 심어지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그녀가 말했다.

“제게 아픔이 없었다면 감사를 몰랐을 것입니다. 슬픔이 없었다면 기쁨도 몰랐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너무 힘들거나 아픔과 고통을 만날 때 고통의 씨앗이 너무 커서 그것만 봅니다. 그 속에서 작은 감사의 씨앗을 발견할 때 그것이 큰 것인것을...

제 감사의 씨앗이 따뜻한 햇살과 잔잔한 비나 바람만 맞았다면 그 나무는 작게 자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큰 역경과 아픔과 상처가 있었기에 더 크고 튼튼한 나무로 자랄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 제게 큰 복점을 주셔서 감사하고, 저를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리를 메운 많은 남녀 젊은이들이 그 말을 듣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았다.

 

 

 

 

서울 Y병원 입구에 이런 기도의 글이 걸려 있다.

 

 

하나님!

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고독하고 외로운 것도 감사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일이 계획대로 안 되게 틀어주신 것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저의 교만이 깨지기 때문입니다.

돈이 없어 사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못 사게 하신 것도 감사합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식들이 공부를 기대만큼 안 하고, 아내가 미워지고,

부모와 형제들이 짐스러워질 때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저의 우상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허무를 느끼거나 몸이 늙고 아프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불의와 부정이 득세하는 세상에 태어난 것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사모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제게 잘못하고 저를 비방하는 사람들이 있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그럴수록 더욱 겸손해지고 더욱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밤, 잠 못 이루고 뒤척이게 하신 것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병들고 고통받는 이웃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심을

더욱 감사합니다.

 

 

이름 그대로 전천후(全天候) 감사의 아름다움이여...

이래도 감사, 저래도 감사의 삶을 살아야겠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 시 50:14,15 (언) 

 

 

 

 

 

 

 

 

 

 

 

 

 

 

 

 

 

 

요즈음 북핵 문제만 나오면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트윗 정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 것을 접한다.

 

트위터 입장에서는 페이스북 등에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 정치가 반등의 기회를 준 것은 고맙지만, 트럼프 반대자들이 트위터까지 싸잡아 비난한다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애증의 대상일 것이다.

 

페이스북 창업자&CEO 마크 저커버그,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 그리고 트위터 공동창업자Square의 CEO인 잭 도시(Jack Dorsey).

 

글로벌 인터넷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상기한 3개의 기업의 독특한 색깔만큼이나 창업자들의 배경도, 인생철학도, 라이프 스타일도 모두 흥미롭다.

 

마크 저커버그나 래리 페이지는 언론을 통해 이미 친숙한 인물들이지만 140자 이내의 짤막한 메시지로 6년 만에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킨 트위터의 잭 도시 공동창업자의 인생 스토리는 더욱 흥미롭다.

 

2006년 도시가 첫 트윗을 날리며 등장한 트위터(Twitter)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총아로 부상했다.

 

창업 5년째인 2011년에는 매일 1억 개가 넘는 트윗이 올라왔고 수십만 명이 계정을 만들었다. 그러나 수익성이 문제였다. 페이스북이 다양한 방식으로 돈을 벌고 있는 동안 트위터는 히트상품을 찾지 못해 고전을 거듭했다. 2013년 상장 후에도 저수익 구조를 탈피하지 못했다.

 

진퇴양난에 처했던 트위터는 2015년 6월 구원투수로 잭 도시를 다시 불러들였다.

 

잭 도시가 창업 동료들에 의해 쫓겨난 지 7년 만이었다. 당시 그는 모바일 결제서비스 업체인 ‘스퀘어(Square)’를 창업해 큰 성과를 내며 경영자로서 능력을 입증했다.

 

도시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소프트웨어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을 중퇴한 뒤 프로그래머로 활동했고 이는 트위터가 탄생하는 기반이 됐다.

 

그는 간결한 의사소통이 젊은 층의 대세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도시는 트위터의 존재 이유를 “140자로 상징되는 간결함의 시간을 준다”라고 설명하는데 도시의 성공을 부른 10가지 단순한 인생 법칙에서 트위터처럼 쿨함이 느껴진다.

 

그의 10가지 인생법칙은 이렇다.

 

잭 도시의 10가지 인생법칙

1) 머저리 같은 인간이 되지 말자.

2) 주위의 어떤 사람도 당연시 하지 말자.

3) 현재를 즐기자

4) 정직해라, 항상.

5) 겸손해라.

6) 친절해라.

7) 사람들의 소망을 존중해라.

8) 끝이 난 걸 인정할 줄 알아라.

9) 실패할 땐 공개적으로 실패해라.

10) 멋진 머리스타일을 해라.

 

트위터 창업에서 Square의 성공까지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잭 도시의 인생 법칙 항목 하나하나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그리고 이런 법칙들은 그를 움직이게 한 너무도 간단한, 그렇지만 확고한 인생의 법칙들이었다.

 

트럼프 대통령 덕분인지 몰라도 올해 들어 트위터는 성장세로 돌아섰다.

 

“우리는 중요한 곳에 집중하고, 혼란스러운 부분은 없애고 있다. 지금 당장은 모든 사람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수도 있지만 트위터의 영향력을 고려하면 꼭 성장할 것이다.”

 

도시의 장담이 이루어질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트위터가 추구하는 간결한 의사소통이 장점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러나 트위터에도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일어나고 있다.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뉴스 속보와 동영상 등 신규 서비스를 도입한 것이다. 그리고 트위터가 11년간 고수해 온 글자수 ‘140자’ 제한 정책을 포기하고 이용자의 표현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280자로 늘리는 실험을 시작했다. (언) 

 

 

 

 

 

 

 

 

 

 

 

 

 

 

 

 

 

 

토크와 마력

 

 

 

자동차의 성능을 평가할 때 자주 사용되는 용어로 토크(torque) 마력(馬力)이 있다.

 

미국에서 사용하는 단위는 토크의 경우 lb-ft(피트파운드-Pound-foot (torque) 단위를 쓰고, 마력의 경우 hp(호스파워- Horsepower)를 사용한다.

 

먼저 토크란 미국식 단위 기준으로 풀어보면 엔진 커넥팅로드를 돌리는 1파운드 단위의 힘, 즉 엔진을 돌리는 힘으로 이해하면 좋다. 자동차 전문지 등에선 토크의 표현을 최대토크라 말하며 엔진의 분당회전수(RPM)과 함께 표기하는 것이 기본.

 

예를 들어 포드 머스탱의 경우 325 lb.ft@4250rpm의 토크를 가지는데, 이를 풀이해보면 엔진이 1분에 4천250번 회전할 때 구동축으로 최대 325파운드의 힘을 전달하는 것.

 

따라서 토크는 자동차의 가속력과 관련이 있고, 토크가 높은차는 주로 시속 0부터 60마일까지 얼마나 빠르게 도달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기준으로도 사용된다.

 

마력은 내연기관의 일의 효율을 나타내는 단위. 역사를 거슬러 살펴보면 영국 산업혁명 당시 제임스 와트가 발명한 증기기관의 성능을 측정하기 위해 처음 도입됐다. 당시 hp의 정의는 이름대로 말 1마리가 일을 할 수 있는 일률로 봤다.

 

제임스 와트는 말 1마리가 최대 180파운드를 당길 수 있다고 계산을 했고, 이를 일률을 나타내는 표준 단위인 와트(W)로 환산해 얻은 결론에 따라 1초간 약 500파운드의 물체를 1피트 움직일 때 드는 힘을 1hp(마력)으로 정했다. 마력의 경우 미터법을 쓰는 국가에서는 PS(Pferdestarke)로 표기하는데 PS를 HP로 바꾸려면 1.013을 곱해줘야 한다. 미국에서는 미터법을 쓰지 않으니 hp를 사용한다.

 

캐딜락 ATS 2.0 터보 엔진의 성능 그래프를 살펴보면 토크(붉은색 표기)가 1천700rpm부터 꾸준하게 5천500rpm까지 이어지는데 이런 경우 ‘플랫 토크’라고도 표현하며 대체로 전 구간에 걸쳐서 꾸준한 가속력이 뒷받침되는 것으로 본다.

 

마력은 5천500rpm에서 최고 272마력을 낸다. 이 차의 경우 초반 가속부터 스트레스가 적고 자주 사용하는 구간에서 넉넉한 토크를 바탕으로 한 주행이 가능하다. 이 처럼 토크와 마력의 특징만 이해하고 있어도 그래프를 통해 차의 주행 특징을 예측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엔진의 성능은 마력과 토크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차체 무게, 변속기, 타이어 등도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다각도로 성능을 판단하는 것이 좋다. 다소 물리학적인 지식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쉽게 토크는 자동차의 가속력, 마력은 최고시속과 관련이 있다는 정도만 이해해도 차 성능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무익한 종 이삭의 글

 

 

 

감옥에 갇힌 성도가 자신이 살아 나가기 위해 다른 지하 성도 한 사람을 고자질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살아남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일이 악화되었습니다. 도리어 고자질한 사람이 억류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병색이 짙어져 추방당했습니다. 대신 감옥에서 고자질 당한 사람을 몰래 도왔던 사람들이 얼마 후에 석방되었습니다.

 

그것으로 끝났다면 좋았겠지요. 그러나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다른 지하성도를 고자질한 그는 자신이 고발한 성도가 석방되자 또 다른 지하성도들 가정의 정보를 모두 털어놓았습니다. 아마 그렇게 다 털어놓았기에 석방되었을 것입니다.

 

오늘 북한 지하성도들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그 성도를 1989년에 만났습니다. 숨죽이면서라도 살아있던 그 분과 가족은 감옥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십일조를 마음대로 하는 그 날을 기다리던, 자유롭기를 기다리던 그는 이제 수용소에 갇혀 온 가족과 함께 무참히 고문을 당할 것입니다.

 

어젯밤에 이 소식을 전해준 이도 저 먼 땅에서 소리 내어 울고 있었습니다. 야고보를 죽인 후 유대인들이 좋아하는 걸 보고, 베드로도 죽이려 했던 헤롯의 이야기가 오늘의 북한의 이야기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우리는 무심한 태도로 듣고 있지는 않은가요?

 

1983년, 저는 중국 가정교회가 걸어온 아픔의 길을 보았습니다. 저는 기도하는 그들의 손에 떨어지던 눈물을 보았습니다. 북한성도의 아픔은 그보다 더 큼에도 우리는 남의 일처럼 바라만 보았습니다. 70년이 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금식도 하는데 뭐…”라며 뒤돌아서서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성도들에게 쌀이나 주는 것으로 대단한 일을 하는 양 의기양양한 태도를 보이곤 합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주님은 그 백성들을 보고 민망히 여기셨건만, 우리는 미안해하지도 않았습니다. 굶주림에 죽어간 350만 명은 부르짖고 있었습니다. 아니 지금 그 가정이 예수의 이름 때문에 끌려가 채찍질을 당하는데, 저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병든 북한의 그 무리들과 밟히고 있는 백성들 그리고 지하 성도들이 있습니다.

 

“하나니~임…

저들을 정녕 버리려 하시나이까?

 

저 땅을 버리려 하십니까?

말씀하셨잖아요. ‘나는 그 땅을 포기하지 않았다!’라고...

 

‘그 땅에 내 백성이 살아 있다!’고 하셨잖아요.

제가 잘 못 들었나요?

 

아니면 하나님이 이제라도 포기하려 하시나이까?

하나님. 차라리 저를 버리십시오.”

 

저는 모세의 마음으로 바울의 심정으로 주님께 아룁니다.

차라리 저를 버리고라도 저들을 살려달라고… 저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이 그 곳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셨다며 그 땅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북한을 떠났다가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다시 돌아가는 저들,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으신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 저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저들의 원하는바 용서와 은혜의 소리를 그들에게 듣게 하사 예배할 날을 허락해 주옵소서. 그들은 이 추운 겨울에 이불도 가져갈 수 있도록 허락받지 못하고 끌려갔습니다. 여덟 살 아홉 살 난 딸들과 함께 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목놓아 울어도 소용없는 저들, 차라리 죽음이 더 행복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발로 걷어차는 악한 자들의 채찍질과 저주스러운 욕지거리, 모욕과 학대…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는 당신이 택한 백성의 아픔을 어찌하시렵니까?

 

성도들로 찬양케 하옵소서. 저들이 부르짖을 때 하나님 들으소서. 엘리야의 하나님.
 

하나님. 종의 기도를 지금까지 들어오심을 인해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오늘 그렇게 고통스럽게 주의 이름을 부르는 성도들을 기억하사 저들을 놓아주옵소서. 아니 하나님 그 땅을 포기하지 마옵소서.

 

이제 여호와께서 모세의 손이 내려지지 않음을 아시듯 북녘 땅의 그리고 남녘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을 기억하옵소서. 이제 일어나 행하시옵소서. 한 사람의 기도를 기억하옵소서.

 

 

출처: 모통이돌선교회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월드 프리미어 상영에 이어, 11월 정식 개봉하는 신연식 감독의 신작 <로마서 8:37>이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 성경을 통해, 우리 모두의 ‘죄’를 이야기하는 특별한 작품으로 화제를 낳고 있다.  

 

우리의 죄와 마주한 ‘기섭’의 오늘을 위한 기도 <로마서 8:37>이 10월13일 저녁 7시 메가박스 해운대에서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첫 상영을 앞둔 가운데, ‘로마서 8:37’이라는 특별한 제목이 예비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성경을 통해 우리 모두의 ‘죄’를 말하다...영화 ‘곡성’부터 ‘로마서 8:37’까지

 

 

로마서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인 진리를 담고 있는 신약성서로,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로마서 8:37)는 성경구절은 영화 <로마서 8:37>의 스토리와 메시지를 모두 함축하고 있다. 

 

또한 마태복음 16:24, 시편 76:10 등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성경구절은 단순한 장치적 요소가 아닌, 영화 속 인물들의 서사와 함께 어우러져 강력한 메시지를 전해줄 예정이다.

 

신연식 감독은 영화 속에 성경구절을 넣은 것에 대해 “실제 삶에 성경말씀을 적용시키는 우리의 모습을 대비시키려는 의도이다”라고 연출의 변을 전해왔다.

 

감독은 전작 <러시안 소설>(‘13)에서도 ’그가 내 앞으로 지나시나 내가 보지 못하며 그가 내 앞에서 나아가시나 내가 깨닫지 못하느니라‘(욥기 9:11)로 영화를 시작하고 끝 맺으며, “앞선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이야기하는 화두”를 전달한 바 있다.

 

이와 같이 성경에서 시작한 영화들은 그간 기독교인, 비기독교인 모두에게 큰 관심을 받아왔다.

 

나홍진 감독의 영화 <곡성>(’16)은 예수의 부활을 의심하는 제자들을 질타하는 누가복음 24:37-39로 영화를 시작했다.

 

이에 종교적 은유와 충격적 반전의 결말이 더해져, 영화 속 숨은 메시지를 찾는 무수한 해석으로 지난해를 뜨겁게 달궜다. 한편 영화 <나니아 연대기 -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05)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악의 심판까지 성경의 내용을 판타지 세계로 완벽하게 소환해냈다. 

 

독실한 신앙인 C.S 루이스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는 환상의 나라 나니아에 들어가게 된 네 남매와 위대한 사자 아슬란의 모험을 그린다. 극중 사자 아슬란은 마녀에게 죽임을 당하고 다시 부활하게 되는데, 이는 성경 속 예수의 삶과 매우 흡사하다.

 

반면 영화 <다빈치 코드>(’06)는 성경에 대한 도발적인 해석으로 논란이 된 작품이다. 댄 브라운의 소설을 영화화한 <다빈치 코드>는 예수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며,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해 후손을 낳았다는 등의 주장으로 논란을 낳았다.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이자, 영화의 단골 소재이기도 한 성경은 그간 다양한 해석,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을 찾아왔기에, 성경구절을 통해 우리 모두의 ‘죄’를 이야기하는 영화 <로마서 8:37>에 대한 궁금증이 뜨겁다.

 

또한 그간 명맥이 끊겼던 한국의 종교 극영화로, 과거의 역사도 위대한 성직자도 아닌 평범한 목회자를 조명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 받고 있다.

 

기독교인, 비기독교인 모두가 응시해야 할 ‘오늘’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로마서 8:37>은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월드 프리미어 상영 이후, 11월 정식 개봉한다. 

 

 

 

 

 

 

 

 

 

 

 

 

 

 

 

 

 

 

그는 ‘아프리카 1호 선교사’였다. 1984년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파송된 임연심 선교사는 케냐에서도 오지(奧地)로 불리는 투르카나에서 고아들에게 성경을 가르쳤다. 아이들은 교사, 은행원, 회계사, 교육청 공무원 등으로 성장했다. 의료선교사가 되겠다고 서원했던 아이는 진짜 의사가 됐다. 문맹률이 95%인 투르카나에서는 모두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사역은 돈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전략으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죽음같이 강한 사랑으로, 사랑으로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던 그의 선교열정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 그는 현지인 제자들을 중심으로 25개 교회를 개척했고 문맹률이 높은 이곳을 위해 투르카나어와 스와힐리어로 성경낭독기를 제작했다. 그러나 2012년 모래바람이 부는 척박한 땅에서 풍토병으로 고열과 호흡곤란에 시달리다 61세를 일기로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 

 

 

 

 

지구촌 곳곳엔 임 선교사처럼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헌신하는 한국의 독신여선교사들이 2000여명에 달한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AM)에 의하면 2016년 12월 현재 한국교회의 해외 파송 선교사 2만8395명(이중소속 포함) 중 여성선교사는 1만4634명으로 51.5%를 차지한다. 이들 여선교사 중 독신2342명으로 16%이다. 

 

국내에서 타문화권 선교를 위해 파송된 독신여선교사는 1931년 장로회 총회 소속 김순호 선교사가 최초다. 이후 독신여선교사들은 교단과 선교단체의 파송을 받아 가족들이 함께 들어가기 힘든 오지, 빈민촌 등 지구촌 곳곳에서 사역하고 있다. 한국이 선교강국이 되기까지 묵묵히 사역해온 이들의 헌신을 조명해본다. 

 

남들이 가지 않는 곳으로  

 

이들은 선교사가 많이 들어간 지역보다 미전도 지역에 관심을 가졌다. 러시아 북부 야말반도의 살레하르트는 혹독한 추위는 기본이고 1년에 260일은 하루 종일 해가 뜨지 않는 극야의 땅이다. 91년 한국오엠국제선교회 파송으로 이곳에 온 송은섭 선교사는 미전도종족인 네네쯔 민족을 위한 성경 번역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선교편지에서 “선교사가 이미 들어간 곳보다 미전도 지역에 관심을 가지길 바란다. 환경이 열악하고 사역하기 어려운 만큼 기쁨의 열매를 많이 거둘 수 있다”고 썼다.

 

 

 

 

체감 온도 영하 60도. 썰매에서 내리면 얼굴에 20㎝ 길이의 고드름이 붙어있을 정도로 춥고 얼굴엔 동상의 흉터가 남았지만 그는 네네쯔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 성경 번역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마가복음과 데살로니가전서를 번역했고, 현장 검증을 위해 야말반도의 최북단 마을 툰드라에서 유목민과 함께 생활하기도 했다.

 

순록이 끄는 눈썰매에서 떨어져 몸의 반쪽이 마비되는 고통을 겪기도 했으나 치료 후 다시 선교 현장으로 갔다. 성경 번역과 함께 찬송가 번역도 하고 있다. 2004년 교회를 개척해 ‘네네쯔 예배모임’을 인도하고 있다. 

 

 

 

 

 

독신여선교사들은 종종 남성보다 용감하다. 이들은 내전으로 불안한 곳이나 현지인들조차 꺼리는 곳에서 선교의 열매를 맺기도 한다. 김자선 선교사는 86년 고신교단 파송을 받은 후 필리핀 최북단 라굼에서 사역하고 있다. 라굼은 육로로 닿을 수 없는 산간계곡이며 필리핀 사람들조차 가기 꺼리는 정글이다. 91년 독신여선교사 강정인 선교사와 팀을 이뤄 순회 전도를 했다. 현지인들을 위해 5개 언어로 된 찬송가를 만들고 신학교도 세웠다. 생명을 걸고 헌신한 결과였다.

 

 

 

 

 

김정윤 선교사는 85년 한국월드컨선선교회의 파송을 받은 후 우간다의 클루바병원과 네비교구 보건소에서 의료선교를 하고 있다.

 

‘우간다 나이팅게일’로 불리는 그는 사역초기 전 인구의 3분의 1이 에이즈로 목숨을 잃고 하루에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안타까운 실정을 보고 보건 및 질병예방교육, 우물 설치 및 나무심기를 통한 보건위생사역, 이동진료를 했다. 사역초기 진흙으로 만든 집과 녹슨 양철 지붕의 단칸방에서 여러 달을 보내야 했다.

 

92년 8년여의 노력 끝에 간호학교를 세웠고 32명의 간호학교 학생 모두가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1년에 1000명 넘는 주민을 검진하고 예방교육을 한 결과 에이즈 환자도 줄었다. 영성훈련센터를 통해 청소년들의 영성훈련과 현지인 선교사를 양성하고 있다. 

이들이 이토록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순종과 죽음같이 강한 사랑의 실천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하나님 앞에 홀로선 여성들 

여선교사는 결혼의 유무와 관계없이 언어와 현지 문화에 대한 적응력이 빠르고 어린이 및 여성과 노인사역에 장점을 갖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헌신할 수 있다.

 

 

 

 

 

인도에서 20여년간 독신으로 선교하고 있는 배정희 선교사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독신여성선교사는 현지인과의 소통과 친밀한 관계가 자연스럽게 사역으로 이어질 수 있는 장점이 있으며 선교 제한 국가 혹은 이슬람권 국민들에게 남성보다 접근하기 수월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독신여성선교사는 분명한 정체성과 부르심의 확신이 있다”며 “떠나기 전 선교지에 대한 이해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본적으로 말씀과 선교사의 삶, 사역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서적들을 많이 읽고, 선교 현장에서 경험과 이론으로 전략을 세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전략은 국가, 지역, 사역지에 따라서 현장에 맞도록 행하며 계속적으로 시행착오를 보완해 나가야 한다.

 

 

 

 

 

여성선교사들은 건강관리에 취약하다. 꾸준히 운동하는 게 쉽지 않고 혼자이기에 규칙적인 식생활도 어렵다. 선교국 혹은 선교단체는 선교사들의 건강관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줘야 한다. 건강관리도 사역의 일부분으로 계획해야 한다. 

한편 선교전문가들은 한국교회는 선교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선교인력이 부족한 상황 속에 여성선교사의 비중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선교전략과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효한 비자 소지자라도 '여행 허가서' 승인 없이에 해외를 나갔다가 여행 허가서 신청 자체가 취소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주의해야 한다.

 

최근 반이민 정책의 기조로 여행 허가서(Advanced Parole) 신청 규정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민변호사협회에 최근 접수된 사례에 따르면 취업비자(H-1B)나 주재원비자(L-1) 등 유효한 비자 소지자라도 여행 허가서 승인 전에 해외로 출국하게 되면 이민서비스국(USCIS)이 여행허가서 신청 자체를 기각시키고 있다.

 

기존 정책은 H비자(취업관련) K비자(약혼자 비자) L비자(주재원 관련) V비자(영주권자 배우자) 소지자들의 경우 비자가 유효하기 때문에 여행 허가서 없이도 해외 출입국이 가능했었다.

 

즉 지금까지는 취업이민(I-485) 또는 여행 허가서를 신청하고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도 해외 왕래가 가능했던 셈이다.

 

송주연 변호사는 "현재 유효한 여행 허가증을 소지하고 출국하더라도 이를 연장하는 신청서가 계류 중이라면 이 또한 거절된다"며 "신청자가 어떤 상황에서 출국을 하는지와는 무관하게 여행허가증 계류 중에 출국하게 되면 여행허가증은 무조건 거절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자칫하면 해외로 나갔다가 입국마저 거절될 수 있다. 비이민비자 소지자가 영주권을 신청한 뒤 여행 허가서 승인 전에 출국을 하면 신청서뿐 아니라 영주권 신청까지 거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기주 변호사는 "한 예로 불법체류자였다가 시민권자와 결혼했을 경우 I-485 신청 중 여행 허가서가 승인됐더라도 그 전 비자 상태가 불법이었거나 해외 여행 또는 미국 내 체류기간 동안 범죄 기록이 발견된다면 설령 여행 허가서가 있다 해도 입국이 거절될 수 있다"며 "최근 이민국이 출입국 관리를 엄격하게 검토하고 있기 때문에 웬만하면 영주권이 나올 때까지 해외로 나가는 것을 자제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USCIS 규정에 따르면 영주권 신청 계류 중에 여행 허가서를 통해 외국을 나갔다 올 수는 있지만 어떤 여행이라도 조금이라도 문제점이 있다고 판단되면 이민 신분이나 영주권 신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여행 허가서와 '재입국 허가서(re-entry permit)'를 혼동해서도 안 된다. USCIS 한 관계자는 "현재 여행 허가서 신청서를 잘 살펴보면 '승인 전 출국하면 신청서가 거절될 수 있다'는 내용이 명시돼있다"며 "또 영주권자가 영주권을 신청하면서 받았던 '여행 허가서'를 재입국허가서와 착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경우 외국에서 1년 이상 거주하면 영주권을 상실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각양각색 신을 섬겼던 로마, 기독인은 어떻게 극복했나

처음으로 기독교인이라 불렸던 사람들/래리 허타도 지음/이주만 옮김/이와우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기독교인으로 사는 건 어렵지 않다. 동네마다 교회가 있고, 클릭 몇 번이면 인터넷 설교를 골라 들을 수 있다. 기독교를 향한 비난 여론이 늘었어도 물리적 조건만 놓고 볼 때 기독교인 되는 게 힘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예수 사후(死後) 로마 제국에서 시작된 기독교는, 그렇게 쉽게 택할 수 있는 종교가 아니었다.

 

유대인은 물론 이교도로부터 지탄받았고, 일상에서 불편함을 감수하며 따라야 할 규범이 적잖았다. 때론 순교를 각오할 용기도 필요했다. 그럼에도 40년경 1000명에 불과하던 기독교인은 1세기 7000∼1만명, 2세기 20만명, 3세기 500만∼600만명으로 늘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저자 래리 허타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대 신학 명예교수가 질문의 답을 찾아 나선다. 초기 기독교를 집중 탐구해온 권위자인 그는 1∼3세기를 ‘기독교 역사를 통틀어 가장 흥미로운 시기’로 규정한다. 당시 로마는 각양각색의 신을 섬겼다.

집이나 신전 등 곳곳에서 자기가 믿는 신뿐 아니라 남이 믿는 신에 대해서도 예의를 갖춰 숭배하는 종교적 행위가 일상화된 사회였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과 예수만 섬긴다며 다른 신은 죄다 우상 취급하고 배척하는 기독인은 한마디로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사도 바울이 바울서신에서 우상 숭배를 피하라고 누누이 강조한 이유엔 이런 사회적 배경이 있었다. 그래서 여타 종교와 달리 기독교인에게 걸맞은 올바른 행동과 윤리적 가치가 요구됐다. 
 

저자는 또 당시 이들이 ‘체질적으로 텍스트를 중시하는’ 공동체였음에 주목한다. 그들은 모였을 때나 혼자 있을 때나 성경 봉독을 중시했고, 이를 위해 수천 자에 달하는 성경 사본을 필사하고 배포하는 일에 힘을 아끼지 않았다.  
 

책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를 문화 역사적 맥락에서 조명하는 최근 흐름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

 ‘기독교인의 정체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그 시대를 이해하는 동시에 지금 나의 신앙을 되돌아보게 한다. 

 

 

 

 

 

 

 

 

 

 

 

 

시카고 제4 장로교회(Fourth Presbyterian Church)의 존슨 커쉬너(45) 목사는 "기독교가 천국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냐?"는 질문에 "아니"라고 답했는 데 다저스 투수 커쇼는 천국 가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이라고 말했다.

 

 

 

 

메이저리그 LA다저스의 클레이튼 커쇼(29)가 또 다시 크리스천으로서 깊은 신앙심을 드러냈다. ‘21세기 최고 투수’라는 찬사를 듣는 그가 야구에서뿐만 아니라 믿음에서도 에이스다운 면모를 뽐내고 있다. 

 

크리스천포스트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커쇼는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방송된 라디오 프로그램 ‘페이스 온 더 필드’(Faith on the Field)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신앙심에 대한 고백의 시간을 가졌다.
 

그는 우선 다른 사람들에게 믿음을 전하는 일을 강요해선 안 된다고 전했다. 커쇼는 “다른 사람들을 개종하는 일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라면서 “우리는 단지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볼 수 있도록 하면 된다”고 말했다. 

 

 

 

커쇼는 그러면서 “천국으로 이르는 진정한 길은 예수다. 우린 단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기만 하면 된다”면서 “그게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지상과제”라고 덧붙였다.
 

커쇼는 1988년 음악가인 아버지와 그래픽 디자이너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열 살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어머니 손에서 자랐다.

야구에서 엄청난 재능을 보였던 커쇼는 야구선수로 성공해 어머니를 편하게 모시겠다는 일념으로 연습에 매진해 명실상부한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로 성장했다. 

 

 

고등학교 시절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인 이후 더욱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다. 그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지만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하나님의 능력을 잘 알지 못했다”면서 “신앙을 통해 나의 재능과 성공이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됐다. 그 때부터 내 신념을 담아 공을 던지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믿음의 투구를 한 탓일까. 커쇼는 2016 시즌까지 시즌 MVP는 물론 사이영상을 3번이나 수상했다.

 


 

선수로서 커리어도 최고지만 야구 외적으로도 활발히 자선활동을 벌이며 야구팬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

고등학교 때 만난 아내 엘렌 멜슨과 함께 2010년 결혼 직후 신혼여행 대신 잠비아로 선교봉사 활동을 떠난 일화는 유명하다.

 

현재는 ‘커쇼 챌린지’라는 자선 단체를 만들어 세계 곳곳의 불우 아동을 돕고 있다. 삼진 1개를 잡을 때마다 본인 500달러, 기업 보조금 100달러 등 총 600달러를 기부금으로 전달하고 있다. 

 

 

커쇼는 자선활동에 대해 “내가 하는 건 자선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뿐”이라면서 “우리는 단지 하나님을 위해 사용되는 그릇”이라고 말했다. 

 

 

 

 

 

 

 

 

 

 

 

 

 

 

 

 

 

 

 

 

 

 

 

 

 

 

 

 

 

 

 

&#39;2017 월드 솔라챌린지&#39; 태양광 자동차 경주대회에 참가한 네덜란드의 &#39;레드 시프트&#39;. 호주 최북단 다윈에서 최남단 아들레이드까지 사막지대 3천23㎞를 종단하는 일정이다. (솔라챌린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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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월드 솔라챌린지' 태양광 자동차 경주대회에 참가한 네덜란드의 '레드 시프트'.

호주 최북단 다윈에서 최남단 아들레이드까지

사막지대 3천23㎞를 종단하는 일정이다. (솔라챌린지 제공)

 

 

케냐 야권연합(NASA) 지지 시민이 수도 나이로비에서 시위 도중 경찰 트럭에 치어 쓰러지고 있다. 이달 말 대통령 재선거에 야권연합의 라일라 오딩가 후보가 불참을 선언한 가운데, 시민들은 오딩가가 불출마 사유로 내세운 선거관리위원회 개혁 부진에 항의하고 있다.&nbs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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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 야권연합(NASA) 지지 시민이 수도 나이로비에서 시위 도중

경찰 트럭에 치어 쓰러지고 있다. 이달 말 대통령 재선거에 야권연합의

라일라 오딩가 후보가 불참을 선언한 가운데, 시민들은 오딩가가 불출마 사유로 내세운

선거관리위원회 개혁 부진에 항의하고 있다.  

 

 

케냐 전투경찰이 수도 나이로비 도심 시위대에 최루가스를 분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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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 전투경찰이 수도 나이로비 도심 시위대에 최루가스를 분사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탕에랑 조류시장에 판매용으로 나온 올빼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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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탕에랑 조류시장에 판매용으로 나온 올빼미들.

 

 

지난 10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서 경제전문지 &#39;포춘&#39;이 개최한 &#39;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39; 회의 현장. 쥐스탱 트뤼도(가운데) 캐나다 총리와 부인 소피(왼쪽) 여사가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고문과 나란히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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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서 경제전문지 '포춘'이 개최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회의 현장. 쥐스탱 트뤼도(가운데) 캐나다 총리와

부인 소피(왼쪽) 여사가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고문과 나란히 앉아있다.

 

 

 

영국 런던시 관계자들이 웨스트민스터 궁전 북쪽 &#39;빅벤&#39; 시계탑을 보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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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시 관계자들이 웨스트민스터 궁전 북쪽 '빅벤' 시계탑을 보수하고 있다.

 

 

일본 미야자키 현과 가고시마 현 경계에 있는 신모에다케 화산에서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신모에다케 화산이 분화한 것은 2011년 이후 6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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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야자키 현과 가고시마 현 경계에 있는 신모에다케 화산에서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신모에다케 화산이 분화한 것은 2011년 이후 6년 만이다.

 

 

영국 런던 배터시 발전소에서 오리가미(종이접기)를 주제로 공연하는 &#39;댄스 엄브렐라&#39; 페스티벌 참가자. 오는 28일까지 런던 시내 주요지점에서 관련 행사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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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 배터시 발전소에서 오리가미(종이접기)를 주제로 공연하는

 '댄스 엄브렐라' 페스티벌 참가자. 오는 28일까지 런던 시내 주요지점에서 관련 행사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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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스내티샴 인근 웨스트이스튜어리에서 새 떼가 날아오르고 있다.

 

중국 장쑤성 화이안의 안개 낀 공원에서 사람들이 춤 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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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장쑤성 화이안의 안개 낀 공원에서 사람들이 춤 추고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카탈루냐 의회에서 한 의원이 동료 의원들이 서명한 독립선언서를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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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카탈루냐 의회에서 한 의원이

동료 의원들이 서명한 독립선언서를 들고 있다.

 

타이완 타이베이 국경절 기념식에서 무용 공연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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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타이베이 국경절 기념식에서 무용 공연이 펼쳐졌다.

 

일본 가고시마현 다네가섬 우주센터에서 준천정위성 '미치비키' 4호를 실은 H2A 로켓이 발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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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가고시마현 다네가섬 우주센터에서 준천정위성

'미치비키' 4호를 실은 H2A 로켓이 발사되고 있다.

 

산불 피해를 입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캔우드 주민이 불 탄 집에서 결혼반지를 발견한 후 감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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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피해를 입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캔우드 주민이

 불 탄 집에서 결혼반지를 발견한 후 감격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불 발생 지역에서 소방헬기가 물을 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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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주 산불 발생 지역에서 소방헬기가 물을 뿌리고 있다.

 

프랑스에서 공공개혁에 반대하는 공무원들의 총파업과 시위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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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공공개혁에 반대하는 공무원들의 총파업과 시위가 열렸다.

 

미국 워싱턴 연방의사당 뒤로 동이 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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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 연방의사당 뒤로 동이 트고 있다.

 

칠레 산티아고에서 '콜롬버스데이'를 거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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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산티아고에서 '콜롬버스데이'를 거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시카고와 미네소타의 프로미식축구 경기 하프타임 쇼에서 영화 '스타워스'에 나오는 스톰트루퍼스 부대가 행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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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시카고와 미네소타의 프로미식축구 경기

하프타임 쇼에서 영화 '스타워스'에 나오는 스톰트루퍼스 부대가 행진하고 있다.

 

중국 장쑤성 렌윈강의 한 공장에서 미국과 유럽으로 수출할 판다 인형을 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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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장쑤성 렌윈강의 한 공장에서 미국과 유럽으로 수출할 판다 인형을 팔고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카탈루냐 분리독립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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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카탈루냐 분리독립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슬로바키아 수도 브라티슬라바에서 열린 백야 축제에 영국 예술가 루크 제럼의 작품 &#39;달의 박물관&#39;이 전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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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바키아 수도 브라티슬라바에서 열린 백야 축제에 영국 예술가

루크 제럼의 작품 '달의 박물관'이 전시됐다.

 

핀란드 에스푸의 메트로아레나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핀란디아 트로피 대회에서 러시아의 마리아 소츠코바가 여자 피겨 프리스케이팅 경기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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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에스푸의 메트로아레나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핀란디아 트로피 대회에서 러시아의 마리아 소츠코바가 여자

피겨 프리스케이팅 경기를 펼치고 있다.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에서 270km 떨어진 성 바오로와 베드로 교회에서 한 여성이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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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에서 270km 떨어진 성 바오로와

베드로 교회에서 한 여성이 기도하고 있다.

 

시리아 락까의 전선에서 시리아민주군(SDF) 소속 장갑차가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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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락까의 전선에서 시리아민주군(SDF) 소속 장갑차가 이동하고 있다.

 

미국 오클라호마주 털사에서 허리케인 네이트가 동반한 폭우로 홍수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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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클라호마주 털사에서 허리케인 네이트가 동반한 폭우로 홍수가 발생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여성 수천 명이 참가한 평화 행진이 사해 주변에서 열렸다. 이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이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 노력할 것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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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여성 수천 명이 참가한 평화 행진이

사해 주변에서 열렸다. 이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이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 노력할 것을 요구했다.

 

가나 아크라의 한 주유소에서 유조차 폭발 사고로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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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 아크라의 한 주유소에서 유조차 폭발 사고로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푸에르토리코 코메리오에서 허리케인 마리아의 영향으로 파괴된 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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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에르토리코 코메리오에서 허리케인 마리아의 영향으로 파괴된 집들.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만에서 제49회 바르콜라나 요트 대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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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트리에스테 만에서 제49회 바르콜라나 요트 대회가 열렸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카탈루냐 분리독립 반대 시위 현장에서 경찰관의 시위 참가자의 볼을 어루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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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카탈루냐 분리독립 반대 시위 현장에서

경찰관의 시위 참가자의 볼을 어루만지고 있다.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시청 광장에서 열린 총기난사 희생자 추모 음악회에서 평화를 상징하는 흰 비둘기들이 날아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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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시청 광장에서 열린

총기난사 희생자 추모 음악회에서 평화를

상징하는 흰 비둘기들이 날아오르고 있다.

 

 

 

 

 

 

 

 

 

 

 

 

 

 

 

 

 

 

 

 

 

 

 

 

 

 

 

 

콩팥은 콩 모양, 팥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이름이 붙은 평균 길이 11㎝의 장기입니다.

 

최근 완두콩이 콩팥 건강에 좋다는 논문이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콩팥을 인체에서 노폐물을 거르는 필터로만 알고 있지만 콩팥은 신체 내의 수분, 산염기, 전해질의 균형을 조절하고 각종 무기질의 농도를 일정하게 하며 뼈와 피의 성분 형성을 조절하는 등 인체의 ‘자동 환경 조절 시스템’ 역할을 합니다.

 

이 장기는 70~80%가 손상돼도 나머지 부분이 역할을 대신하므로 병이 악화된 뒤 발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1960년대만 해도 환자도 적었고 마땅한 치료법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고혈압, 당뇨병 환자가 급증하면서 콩팥 질환자도 가파르게 늘고 있습니다. 신장의 남아있는 기능이 10~15% 이하로 떨어져 인공적으로 피를 거르는 투석(透析)이나 이식을 받아야 하는 환자가 80년대에 2,000여명이었지만 현재 5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콩팥질환은 네 단계로 대처해야 합니다.

 

첫째는 성인병을 예방하거나 관리해서 예방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병의 초기 단계에 적절한 식이요법, 약물요법 등으로 병의 진행을 늦추는 것입니다. 혈당과 혈압만 조절해도 병을 10년 이상 늦출 수 있습니다.

 

셋째, 병이 어느 정도 진행됐다면 심장병, 뇌중풍 등 치명적 합병증을 예방하는 것입니다.

 

넷째는 투석, 이식 등으로 삶의 질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 만성 콩팥병 의심해 보세요

아래에 해당하면 꼭 소변검사를 받아보세요. 당뇨병, 고혈압이나 가족력이 있으면 정상 소변검사보다 더 정확한 미세 알부민 검사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①고혈압이나 당뇨병이 있다.

②눈 주위나 손, 발이 붓는다.

③소변이 붉거나 탁하다.

④소변에 거품이 많이 생긴다.

⑤자다가 일어나 소변을 보는 일이 잦다.

⑥소변 양이 줄어들거나 소변보기가 힘들어진다.

⑦쉽게 피로해진다.

⑧입맛이 없고 몸무게가 줄어든다.

⑨몸 전체가 가렵다.

 

자료제공=대한신장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