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꽃 줄기를 살펴본 적이 있는가? 덩굴 식물이라서 줄기 끝이 돌돌 말렸다가 펴나가면서 길을
찾는다. 다른 나무나 줄기에 기대어 서로 감싸 안으며 자라 올라간다.
나팔꽃이 자라는 걸 보면 마치 허공에 길이 나 있어 그 길을 따라 걷는 것 같다. 어떤
주저함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나팔꽃이 점프, 도약한다고 표현했다.
어찌 나팔꽃인들 주저하지 않겠는가. 암중모색을 거치며 커가는 거겠지. 숱한 시도와 좌절 속에서
자기 길을 찾는 거다. 구부린 몸을 더듬이처럼 물음표 삼아 타자를 향해 나아가는 거다. 타인에게 다가가 의향을 묻는 거
같다.
오전 중에 싱싱하게 피었다가 대낮에는 꽃이 입술을 오므린다고 붙여진 이름 '아침의
영광(morning glory)'.
나팔꽃은 한해살이식물이라 7~8월에 꽃이 피고 일찍 씨를 맺는다. 단단하고 검은 씨를 흑축이라
부르는데, 한약재로 사용한다. 꽃도 밤 자정쯤 봉오리 맺을 준비했다가 이른 새벽 4, 5시경에 핀다. 아침 이슬을 머금은
오전 중에 싱싱하게 피었다가 한창 대낮에는 꽃이 입술을 오므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영어 이름도 ‘아침의 영광(morning
glory)’이다.
누군가는 꽃이 나팔 모양이라 바람둥이 떠벌이라 말하지만, 오히려 어둠 속에서 고난을 겪는
이웃에게 희망을 주고 기쁜 소식을 전하는 복음 전령사 같다. 군말이 많은 한낮에는 알아서 입을 다무니, 쓸데없는 일에는
침묵하는 진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 같고 오직 임만을 바라보는 것 같다.
사랑은 외줄기 길이다. 사랑하면 상대방이 좋아하는 길을 함께 따라 걷고 싶다. 목적지 방향이
나도 아니고 그 사람도 아니고 오직 당신뿐이다. 자기주장을 접고 타자에게 다가가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의 길은 다양한 것
같아도 결국은 외줄기 하나뿐이다. 다만 둘이 사랑하는 마음을 합쳐 제3의 길을 낸다면 더욱 좋겠다.
완전한 사랑은 상대방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색하기에 중간에 제3의 길이 창조된다. 그 길은
결코 직선일 수 없다. 약간씩 구불거릴 수밖에 없다. 둘 사이에 관심이라는 긴장과 이완이 흐르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건강한 관계를 맺기 위한 최선의 선택은 타자의 욕망과 자신의 욕망 사이에
어떤 느낌표를 채우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건 타자를 당신이라는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의지이자 노력이다. 사랑하고 사랑
받으면 행복해지는 이유가 바로 삶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감격 때문이다.
살아오면서 한 번도 제대로 된 주인공 대접을 받지 못하다가 비로소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었으니 얼마나 행복하고 살맛이 나겠는가.
살아온 삶의 방식이 나와
달랐던 사람을 우리는 타자라고 부른다. 그 타자를 받아들여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묻고, 그 삶의 방식이 아무리 어색해도 온전히 받아들여 보겠다는 결심을 하는 게 사랑의 출발점이다.
어쩌면 자기 삶의 방식을 조금이라도 남겨 두길 원한다면 그는 영원히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사람끼리 사랑은 어떤 교류가 필요하다. 아무리 내리사랑이 넘치는 부모와 자식
간이라도 가끔은 서운한 느낌이 드는 건 바로 사랑이 정서의 교류이기에 그렇다.
건강한 사랑의 길은 밀고 당기기 중간 점에서 형성된다. 건강하게 자기를 유지하면서 상대에게
다가가려면 양보와 균형이 필요하다. 상대방에 대한 호기심과 질문, 또 명확한 이해가 요구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건강한 관계를 맺기 위한 최선의 선택은 타자의 욕망과 자신의 욕망 사이에
어떤 느낌표를 채우는 것이다. 그 느낌표가 바로 나팔꽃이 감아 올라가는 지지대 역할을 한다.
느낌표는 매개역할을 한다. 여기서 알아야 할 게 하나 있다. 우리는 ‘!’를 느낌표라고
약속하고 사용한다. ‘?’는 물음표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를 느낌표라 해도 되고 ‘/’를 물음표라 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 사회가 미리 정해 놓은 것 뿐이다. 그러니 맹목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이 뜻은 상대방과 교류하기 위해서는 싫어도 어떤 규칙을 따라야 한다는 거다. 내 규칙만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우리가 외국에 가서 살려면 먼저 그 사회가 쓰는 언어와 관습을 익혀야 한다.
마찬가지로 같은 한국인이라도 어떤 사회에 들어가 소통하려면 그 사회의 언어를 익혀야 한다.
예를 들어 새벽시장 중개인이 되려면 먼저 수화처럼 보이는 그 분야의 몸 언어를 배워야 한다. 그 언어를 모르고서는 한 치
앞도 나아갈 수 없다.
요즘 사회 문제가 되는 세대 간 갈등은 소통 언어에 차이가 있다는 걸 모르기에 발생한다. 먼저
언어에 차이가 있다는 걸 인정하고 서로 배우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때 가장 좋은 방법은 새로 나온 언어를 배우려고 나이 든
쪽에서 다가가는 거다.
누군가 노력하는 몸짓을 보일 때 둘 사이에 어떤 느낌이 생긴다. 그 느낌이 소통의 출발점이다.
어차피 모든 걸 배워야 할 사람이니 젊은 너희가 양보하라는 건 강요이며 설득이다. 설득은 폭력이다. 폭력은 반드시 갈등과
상처가 남는다.
누구도 상대방을 가르치고 설득하려 해서는 안되며 먼저 받아들이려는 태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여태 우리는 설득은 나쁘지 않다고 배웠다. 설득도 양보라고 믿었다. 그러나 솔직하게 고백하건대
설득은 강자의 논리였고, 편의주의였으며 계급언어였다. 그간 정치인들이 보여준 태도가 늘 가르치려 들었고 좀 나은 게
설득이었다.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되었다.
심지어 부부지간에도,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이런 소통 언어가 따로 있다. 누구도 상대방을
가르치고 설득하려 해서는 안 된다. 먼저 그냥 받아들이려는 태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남성과 여성의 언어는 그 색깔이 아주 다르다. 남성은 감정의 스펙트럼이 여성에 비해 좁고,
겹치고 감춰져 있다. 예를 들면, 남성은 슬픔과 상실감을 대개 분노로 표현한다. 여성은 말을 안 해도 상대방이 알아차릴
거라 믿는다. 이러니 오해가 빚어지기 딱 좋다. 상대방 언어를 배우려는 몸짓을 먼저 보여주어야 한다. 부부라고 해서 언제나
잘 통할 것이라고 안심해서는 금세 후회할 일이 벌어진다.
자주 만나는 사람일수록 대화거리가 더 많다. 그러니 부부지간이나 부모와 자식 사이에 대화거리가
부족하다는 건 위험신호이다. 둘 사이에 느낌표를 채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신호이다.
참고로 나팔꽃 줄기는 어떤 지지대를 감아 올라갈 적에 지구가 자전하는 방향과 일치하게 돈다.
대지의 모성을 따라 시계 반대방향으로 좌선한다.
윤경재 한의원 원장
하나님은
무소부재(無所不在) 하시므로 우리는 아무데서나 예배를 드리면
되지 않을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배는 아무데서나
드릴 수 없습니다. 부득이 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예배는
거룩하게 구별된 예배의 장소 곧 예배당에서 드려야
합니다.
또 교회는
문턱을 낮추어 사람들로 하여금
아무
부담 없이 자연스럽게
찾아 올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체육관교회, 커피숍교회, 주일마다 빌려쓰는 예식장교회,쇼핑센터교회가 생겨나서 안 믿는자들이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의 친교장소같이, 놀이 마당같이,노인정같이 사용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문턱을 낮추어 시대상황을 따라 '상황화'
한다고 하지만그렇게
교회 문턱을 낮추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Contextualization)
예배당을 투표 장소로 혹은 의자를 치워 놓고 탁구장으로 어떤 경우는
노인들 스포츠 댄스 연습장소로 사용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교회는 어떤 형편의
사람이 들어와도 좋은 곳이지만 어떤
일을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는
곳입니다. 교회의 교육관이나 특별한 공간을 따로 떼어 그런 목적으로
이용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의 본당이나
예배를 드리는 공간을 비신자들이 맘대로 드나들며
사용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오래 전에 라스베가스 동쪽 바위 산 아래 잘 지어진 몰몬교 사원이 너무
궁금해서 찾아 간 적이 있습니다. 본당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들어가 구경을 좀 해보려고
했습니다. 정장을 하고 지켜선 분이 나에게 몰몬교 신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장로교 목사라고 했습니다. 절대 들어갈 수 없다고 나를 내 쫓다시피 밖으로 나가게 했습니다.
돌아오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천주교에 팔리고 말았습니다만 로버트 슐러 목사가 세운
수정교회(Crystal Cathedral church)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거대한
교회 본당이 평일 인데도 문이 활짝 열려있었습니다. 게다가 다른 데서 구경할 수 없는 파이프 올간이
웅장한 소리를 내며 연주되고 있었습니다.
조금 지났는데 깃발을 든 인도자를 따라 관광객들이 줄을 지어
예배당에 들어 섭니다. 가이드와 담당 교회 직원이 번갈아 가며 무엇인가 설명을 하고 있었습니다.
교회라기 보다는 관광명소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방문객 중에 두 손 모으고 기도하는
사람은 죄송하지만 나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세상문화에 문턱을 낮출 대로 낮추어버린 그 교회는 그 건물을
잃어버리고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왜
우리는
[교회]라는 공간을 특별히 구별해야 합니까?
교회는 예배와 찬양과 기도와 성도들의 사랑의 교제와
거룩함으로 충만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영적인 기운이
충만해야 누구든 교회 안에 들어오면 기도하고 싶고 찬양하고 싶고 섬기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교회에
혹 호기심을 가지고 왔다가
"교회나 세상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 교회를 가볍게 여길 가능성이
많습니다.
지금 수많은 안티
크리스천들은 교회의 존엄성을
훼손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치고 교회에 출석해보지 않은 사람이 한명도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왜 그런 짓을 할까요?
그 사람들이 교회다닐때 교회가 세상과다르다는것을 분명하게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세상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을 교회
안에서도 본다면 굳이 교회에 와야 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교회는 세상과 많이 달라야
하고 구별되어야 하고. 경건하게 보존되어야
합니다.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에겐 문턱이 높으면 안되겠지만, 교회를 세상문화공간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교회의 문턱이 높으면 높을수록 좋은 것입니다.
교회는 신발을 벗는 곳입니다.(출애굽기 3장 1 ~ 8절) (언)
전 세계적으로 ‘왕따의
자살 문제’가
사회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미국과
일본의 외신 속에도 ‘왕따’로
인한 자살과 피해사례가
많이 나옵니다.
한국의
경우 동료 교사들에게
따돌림 당한 학교
선생님도, 대학생과
패션 디자이너도 심지어
초등학생도 왕따로
자살했습니다.
그리고 정치인은 ‘왕따’ 당했다며
탈당하기도
하고, 군대에서
총기사고의 원인이 ‘왕따’이기도
합니다. ‘왕따’ 시키는
사회 현상은 ‘사랑이
식어진다’는 성경이
말하는 마지막 때를
암시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합니다.
몇 년전, 한창
촉망받는 시점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세계적인
패션모델
김다울. 그녀가 미국의
케이블채널 올리브의 ‘올리브쇼’ 인터뷰에서
왕따와 자퇴 등 온갖
나쁜 수식어를 달고
다닌 문제 학생이었다는
사실을 털어놨었습니다.
“저
문제아였어요. 저를
이해해 주는 사람도
없었어요. 학교에서는
왕따였어요. 지금껏
살아오면서 제가 어떤
행동을 하면 사람들‘음
제 왜 저래’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런 그녀의 마지막은
자살이었습니다. 국내
유명 커뮤니티에 오른
‘세계적인 모델
김다울의
뉴욕스토리’ 영상을
접한 네티즌들은 “미운오리에서
이제 막 백조로
발돋움했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다니 안타깝다”며
애도의 뜻을
표했습니다.
‘왕따’와 ‘자살’은
함께하는 동료처럼 같은
수식어가 되고
있습니다.
무디와 무디 성회 장면
19세기 세계적인 복음
전도자를 꼽는다면
우리는 서슴지 않고
미국의D.L 무디를
꼽습니다.
그러나 무디의
최종학력은 초등학교였습니다. 어린
시절 교회학교 생활도
엉망이었습니다. 무디는 요한복음을
찾는데 창세기부터 찾기
시작 할
정도였습니다. 그가
신학교를 가려할 때도
거절당했습니다. 그것은
학교생활을 계속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는 곳마다
왕따를 당했습니다.
“너처럼 희망 없는
사람은 없을 거야.”
“너와 친구가 되는
것이 부끄럽다.”
그래서 무디는 늘
고독했고 언제나
혼자였습니다. 그런데
무디의
그런 '왕따환경'은
오히려 하나님 앞에
나가는 길이
되었습니다. 무디는
매일같이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만은
무디를 왕따 시키지
않고 반겨
주셨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무디가 어리석은
존재로 비쳐졌지만
하나님
눈에는 '보석'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무디가 '왕따환경'에서
시작한 또 다른
일은 누구보다도 독서를
많이 했습니다. 무디가
독서에
혼신의 힘을 쏟은
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무디는
다른 영적인 거장들의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책 속에서
경험한 간접 경험이
무디를 세계적인
전도자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어떤 부정적인
환경이라도 그곳이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인생의
장'이라는 긍정적이
생각은 그 사람을
성공길로
인도합니다. 참새 한
마리도 우연히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D.L. 무디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설교할 때 한 학생이
무디의 설교 내용 중
문법 틀린 것들을
적어서
주었습니다. 이를 본
무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내 문법이 틀린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문법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학생은 알고
있는 문법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까?"
그 학생은 충격을 받고
돌아갔습니다. 다음 날
아침 학생회 회장이
무디를 찾아와 정중하게
사과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습니다. 이런
동기로 케임브리지
대학에 역사상 유례없는
대각성 운동이
일어났으며 선교의
거대한 장을
열었습니다. 일곱 명의
우수한 학생이 중국
선교에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중에
중국 선교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가
있었습니다.
J. 레이놀즈는 "큰
재주를 가졌다면 근면은
그 재주를 더 낫게
해줄 것이며, 보통의
능력밖에 없다면 근면은
부족함을 보충해 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지금 처한
환경에서 무엇을
했고, 어떤 태도로 서
있었는지 생각해보아야
하겠습니다.
'왕따환경'이라도
괜찮습니다. 그 환경을
오히려 성장의 기회로
삼을 수 있습니다.
준비만 되면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입니다.
1917년에 태어난 윤동주(尹東柱)님은 나름대로 독립운동을 하다가 1945년 일본 후꾸오카
감옥에서 사망 했습니다. 일제가 붙인 죄목은 사상불온과 독립운동이었습니다.
그의 대표작은 우리가 잘 아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입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 들이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대답하기 위해 지금, 많은 이들을 사랑 해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맞이하고 있는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며 살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일이 없었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삶이 아름다웠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 그때 기쁘게 대답할
수
있도록 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게 가꾸어 가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자랑스럽게 대답하기 위해 내 마음 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 좋은
말과 좋은 행동의 열매를 부지런히 키워야 하겠습니다.....
오늘이 4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2018년이 시작된 지 엊그제 같은데 3분의 1이
이렇게 훌쩍 지났습니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제 나이가 77세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나는 오후 7시7분이라고 표현해
봅니다. 윤동주 시인이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이라고
표현하는 의미도, 내가 표현하는 [오후 7시7분]이라는 표현도 어두워지는 [밤]이라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서산 마루에 기웃거리는 태양. 어두움이 깃드는 시간입니다.
밤.....
어두운 밤이면 모두가 일 손을 놓고 휴식을 누리는 즐거움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시간. 그러나
일이 끝나는 시간이 어두운 밤이 아니란 것은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시편 134편1절을 보면 [보라 밤에 여호와의 성전에 서 있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성경의 역사를 주시해 보면 밤에 일어난 사건이 많습니다. 400년만의 침묵의 역사를 깨뜨리고
일어난 유월절 사건은 분명 밤의 역사였습니다.
히스기야 왕의 기도로 앗수르 군대가 멸망(왕상19:35)한 사건도 밤의 사건이었습니다. 저
유명한 사자굴에 들어간 다니엘 사건도 밤의 사건이었고, 초대교회가 10일 동안 모여 밤에 기도했을 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으니 이 역시 밤의 역사였습니다.
빌립보에 일어난 역사(행16:19-40)나 바울이 로마로 가다가 풍랑을 만났을 때 일어난
역사(행27:24-25 ) 역시 밤에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21세기는 [컴퓨터의 시대]이면서 [노인의 시대]입니다. 연령대로 봐서도 시니어들이 더 많이
활약 해야하는 시대가 오늘입니다. 더 많이 일해야 할 석양이 준비되지 않은 삶은 이제 의미가 없습니다.
석양에, 이 밤에 더욱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하는 시대가 바로 오늘이라는 시대입니다.
윤동주 님의 시를 보면 무언가 [질문]이 있어야
한다 하지 않았습니까. [사랑]이 있나?
[열심]이 있나? [열매]가 있나? 그러기 위해 준비하랍니다. 그래서 밤에 더 큰 일을 이루자고.
오후 7시7분.
어두움이 서서히 깔리는 초저녁. 이제 더 많은 일을 이루라는 마음의 고동소리를 들으면서 이
밤에 무엇을 먼저 다짐할까 기도합니다.
1. 복음을 빼앗기지 말아야지...
기도합니다.
모든 것을 다 얻었다 한들 복음을 놓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영적인 눈을 뜨지 못하면
교회는 다른 종교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결코 복음만은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아니, 섞어도 안됩니다.
반대로 복음 가진 한 명의 [남은 자](Remnant-그루터기)만
일어난다해도 전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시대마다 복음이 사라졌을 때 하나님께서
[남은 자]를
통해 복음을 회복하시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교회의 목표는 영혼 구원에 있습니다.
2. 이 저녁에 예배를 빼앗기지 말아야 하리.
하나님께서는 먼저 주의 종들에게 밤에 불을 끄지 말고 성전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진정한 예배의 축복이 우선적으로 회복돼야 하겠습니다. [보라 밤에 여호와의 성전에 서 있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3. 이 밤에는 기도를 빼앗기지 말아야 하리.
밤이라는 단어는 시간적으로도 그렇지만 삶에 있어서 어두움의 시간, 어려움을 당할 때를
말합니다. 실제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면 그때 하나님께서는 가장 중요한 일을 준비하고 있는 때입니다. 위기를 만나고 문제를
만났을 때 기도의 불을 끄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 역사는 주로 밤에 이루어졌습니다.
지금 나의 시간은
오후 7시7분...
곧
오후 8시가 되고 9시가 되고, 11시가 되고 열심히 일하다
보면 하루의 끝 밤 12시.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면 반듯이
새 날이 밝아올 줄 믿습니다. (장재언)
카나다 킹스턴에서 동쪽으로 세인트
로렌스강을 따라가면
1,864개에 이르는 크고 작은
섬들이 모여 절경을 이루고 있다.
이곳이 동부 온타리오의 대표적
휴양지 중의 하나인 천섬이다.
세인트로렌스강과 천섬 일대는
뉴욕주와 접경을 이루고 있다.
캐나다와 미국에 없어서는 안 될 수상교통로인 데다
19세기 후반부터 세계 도처에서
관광객이 몰려들기 시작,
명실상부한 여름철 국제리조트가 된
천섬과 강변 육지는
아름다운 별장으로 가득하다.
Rockport의 유람선을 타는 곳..
유람선에 몸을 싣고서..
그 유명한 Heart Island...
Heart Island에 있는
Boldt Castle(볼트성)으로
그 당시 초특급 호텔인 뉴욕의
Waldorf Astoria Hotel의 주인이며
호텔 재벌인 George C. Boldt가 중세의 성모양의 건축양식으로
1900년도에 그의 부인 Louise에게
사랑의 정표로 짓기 시작했다.
6층의 건물로 120개의 방이 있는 이 성은 완공 6개월을
앞두고 사랑하는 부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1904년에
모든 공사가 중단이 되었고 그 이후 Boldt씨는
그 섬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
미완성으로 남은 Heart Island의 Boldt Castle.
모습을 드러내는
Boldt Castle(볼트성)..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지은 아름다운 볼트성..
120개의 방이 있는 거대한 볼트성..
볼트성의 뒷모습..
볼트성의 side view
볼트성의 뒷정원
볼트성을 정면으로 바라볼수 있는 곳에 위치한 작은 돌섬
강물에 떠있는 작고 아기자기한 섬에 지어진 집들
집이 있는 왼쪽섬은 캐나다 영토,
다리를 건너 앞마당이 있는 오른쪽섬은 미국영토..
미국성조기가 있는 섬인 미국영토..
외롭게 떠있는 작은 집 하나..
작은 돌 섬에 방갈로를 지어 놓고..
미국 성조기가 보이는 미국영토의 섬
마치 수중위에 지은 성같은 저택..
아름다운 미국영토 섬에 있는 집..
섬 위의 아름다운 저택..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아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너무나 유명한 시인,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푸슈킨의
말입니다.
그는 모스크바 광장에서 한
소경걸인을 발견했습니다. 한겨울인데도 걸인은 얇은 누더기를 걸치고 있었습니다. 그는 광장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벌벌 떨다가 사람들의 발소리가 나면 “한 푼 줍쇼, 얼어 죽게 생겼습니다!” 하면서 구걸을 했습니다.
그의 모습은 가련했지만 모스크바에 그런 걸인은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때문에 그에게 특별히 동정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푸슈킨만은 줄곧 그를 주의 깊게 지켜보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 역시 가난한 형편이라 그대에게 줄 돈은 없소. 대신 글씨 몇 자를 써서 주겠소. 그걸 몸에 붙이고 있으면 좋은 일이 있을 거요.”
푸슈킨은 종이 한 장에 글씨를
써서 거지에게 주고 사라졌습니다.
며칠 후 푸슈킨은 친구와 함께 다시 모스크바 광장에 나갔는데 그 걸인이 어떻게 알았는지 불쑥 손을 내밀어 그의 다리를 붙잡았습니다.
“나리, 목소리를 들으니 며칠 전 제게 글씨를 써준 분이
맞군요. 하나님이 도와서 이렇게 좋은 분을 만나게 해주셨나 봅니다. 그 종이를 붙였더니 그날부터 깡통에 많은 돈이 쌓였답니다.”
푸슈킨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습니다. 친구가 물었습니다.
“그날 써준 내용이 도대체 무슨
말이었지?”
“별거 아닙니다. ‘겨울이 왔으니 봄도 멀지 않으리..’라 썼습니다.”
사람들은 이 걸인을 보고 느꼈을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처참한 날들을 보내고 있지만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봄을 기다리는(재기-再起하려는)
이 사람은 도와줄 필요가 있다.’
비록 나 자신이 기억해 내지 못하여도 여러 번 실패했습니다. 처음 걸음마를 시작 했을 때
나는 넘어졌고, 처음 수영을 배울 때 물에 빠져 죽을 뻔했습니다.
안 그랬나요?
처음 야구방망이를 휘둘렀을 때 방망이에 공이 맞던가요? 홈런을 제일 잘 치는 강타자들도 자주 스트라이크 아웃을 당합니다.
실패를 걱정하지
맙시다.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놓쳐버린
[기회]에 대해서 걱정합시다. (언)
성경 66권 전권을 암송하는
대학 교수가
있다.
그는 Wordsower International Ministries의 회원 이기도 한
Tom
Meyer이다. 캘리포니아 주 샤스타성경대학(Shasta Bible College and GraduateSchool)에서 성경 암송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메이어는 “한 학기에 분량이 작은 책으로부터 시작해
지역교회나 채플예배에서성경을 얼마나 정확하게 암송하느냐에 따라 학생들의 등급을 매긴다.”
크게 소리 내어 암송하던지 들으면서 암송하던지
쓰면서 암송하던지 상관이 없다면서 성경 본문을 묵상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새기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메이어는 아울러 학생들에게 성경 암송기술도 가르친다.
그가 예루살렘의 예루살렘대학(Jerusalem University College)에서두 개의 석사 학위를 취득하면서 배운 것과 동일한 기술이라고 했다.
그는 시온 산에서 랍비와 정통파 유대인들을 위한
학교인 예시바(Yeshiva) 학생들에게서는 물론 유대광야에서 그리스 정교회 수도사로부터고대 연상 기법(ancient mnemonic techniques)의 일부를 배울 수 있었다면서 이러한 기술의 핵심은 성경의 각 페이지를 마음에 사진처럼 찍으면서 본문을 크게 소리 내 읽는 것, 드라마틱한 방식으로 크게 소리 내 읽는 본문을 귀로 듣는 것, 성경 구절을 소리 내어 읽으면서 동시에 여러 번 쓰는것이라고 말했다.
메이어는 성경 전권을 암송하는 능력으로 미국 교회에 널리 알려져있는데 현재 미국 전역의 다양한 교회를 돌아다니며 성도들을 앞에서 성경을 암송하고 있다.
같은 선교회의 제이슨 나이팅게일(Jason Nightingale)과 함께 ‘네팔 지진복구 기금모금’을 위해 24시간 동안 연속으로 성경을 암송하는 성경 암송 마라톤을 벌이기도 했다.
메이어는샤스타 성경대학과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는데 이 학교의 졸업생이며 네팔 지진 복구 기금 모금을 위한 성경 암송 행사도 이곳에서 진행했었다.
샤스타 성경대학의 데이비드 니콜라스(David
R. Nicholas) 총장은 크리스천포스트에 자신도 학생 중 한 명이라면서 메이어는 성경 암송에 있어서놀라운 능력을 보였으며 우리학교의 뮤지컬 팀 ‘The Sounds of Shasta’ 와 순회하며 사역할 때 함께
동행 하면서 요나서, 요엘서, 야고보서 등과같은 성경을 암송하는 시간을 가졌었고 성도들도 놀라워하며 말씀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또 성경 암송이 설교와 강의 그리고 복음 전도에 매우 효과적이라고느꼈다면서 젊은 대학생들은 항상 유혹과 씨름하게 되는데 그 때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떠올리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기독교인들이 핵심적인 성경구절이나 본문을 안다면 복음과 성경적 진리를 가르치고 해설하고 선포하는 능력이 크게 향상될 것이라고 전했다.
오리건 주 살렘에서 지난 1974년에 창립된 워즈소어 인터내셔널(Wordsower International Ministries)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랑을 실천하는선교회이다.
선교회의 사명에 대해서는 홈페이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교회에 성경 암송으로 도전을 주며 세계의 고아와 과부 난민과 거리의아이들을 지원함으로 성경을 살아내는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워즈소어 인터내셔널은 성경 암송만 하는 것이 아니라 라이베리아, 가나, 케냐, 인도, 아이티 등에 고아원을 세우고
아이들과 과부들을 돌보며 또한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
신구약 성경 66권을 전부 암송하는 메이어는 일리노이 주 출신으로약 13년 전 샤스타 성경대학에 입학하기 전 그의 멘토인 피터 그린하우목사에게서 처음으로 산상수훈 암송을 권고 받으면서 그의 성경 암송에대한 관심과 성경 암송에 대한 노력이 시작 되었다.
그는 성경 암송에는지름길이 없으며 성경구절을 읽고, 큰 소리로 암송하고, 듣고, 손으로 쓰는 것, 이를 통해 마음과 눈과 귀와 손이 모두 함께 성경구절을 외우는것이 효과적이라고 강조한다. 또 기억한 것을 보존하는 비결은 말로 거듭거듭 반복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 추천사 "지성을 넘어 영성의 세계로 인도하는데 작은 씨앗"
매일 아침 2만2000명에게 이메일을 통해 시·소설·영화 이야기를 성경 진리로 엮어 들려주는 목사가 있다.
한재욱 강남비전목사가 바로
주인공이다. 한 목사는 이에 그치지 않고 주옥같은 문학작품, 영화 등에 담긴 하나님의 시선과 마음을 포착해 인문학을 성경적으로 해석한 `인문학을
하나님께`란 책을 냈다.
이 책은 `인문학만 잘 알면 모든 문제까지 해결될까`라는 저자의 고민에서 출발했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인문학은 인생에 명답을 주지만 정답을 주지 못한다"며 성경이 정답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저자는 "인문학이 하나님과
다른 길을 가는 것 같지만 결국 하나님이 지으시고 이끌어 가시는 사람을 담아내기에 하나님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인문학 대가인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추천의 글을 통해 "한재욱 목사는 `인문학은 땅의 신음`이라고 했다.
본질과 근원을 애타게 찾으려 하지만 찾지 못하는 신음, 이 아름다운 신음이 인문학이고 인문학으로도 어쩔 수 없는 틈을 하나님이 채울수 있다는
영성을 말했다"면서 "이 책이 지성을 넘어 영성의 세계로 인도하는 데 작은 씨앗이 되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김장환 극동방송 이사장(목사)도 추천의 글에서 "전 세계적으로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며 "이 책을 읽는 사람들마다
인문학의 주인공이자 정답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저자는 성균관대학교 재학시절 성대기독학생회(겟세마네) 회장을 역임했다. 침례신학대학교에서 M.Div와 Th.M(구약학) 과정을 마치고 미국
The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구약학 박사과정에 입학해 수학하던 중 목회의 부름을 받아
강남비전교회에서 담임목회를 시작했다. 규장 펴냄.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엡 6:10-13)
교회의 교리는 신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을 위한 성경의 진리 체계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말한다. 이러한 교리에 대한 교회교육의 유익성을 칼빈은 디모데후서
3:15-17에 근거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구원적 믿음을 확고하게 해준다.(15절)
삶의 올바른 형성에 대해 가르친다.(17절)
올바른 삶에 대한 경고와 훈련이다.(16절)
그리고 칼빈은 교회의 교리교육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다스리고, 생명을 지니게 하며, 항상
살아 활동하게 하는 교회의 정신과도 같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정신이 없는 몸을 생각할 수 없듯이 “하나님의교회는 교리교육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날 인본주의 사상과 탈(脫) 교리, 탈(脫) 경전을 부르짖는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의 영향으로 개혁주의 교회 안에서도 교리교육은 점차
외면을 당하고 있다.
이러한 탈(脫) 또는 반(反) 교리적 경향은 결국 오늘 우리의 신앙적 혼란과 위기의 이유이며 장차
교회적재난을 향한 지름길이 될 것이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거룩 안에 온전히
세움을 입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체계적으로 철저히 알고 의로 교육하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오늘 우리 교회가 반성하고 교리교육을 새롭게 시행해야 할 필요성을 다시 생각해 보고자 한다.
교리문답서는 구원적 신앙의 기본 진리인 ‘사도신경’, 윤리적 삶의표준인 ‘십계명’ 그리고 영적 삶의 방법인 ‘주기도문’을
가르치는 신앙교육서이다.
따라서 이러한 교리문답서를 통한 교리교육은 교회로 하여금 그 신앙을 성경에 나타난 구원적 신앙의 기본진리 위에 기초하게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성경적 신앙관을 확립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러한 올바른 신앙관을 확립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세계인 이 세상을 올바로 이해하고, 그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존재목적과 의의를 참으로 깨달으며, 또한 인간다운 삶의 행동적
기준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교리교육은 기독교신앙의 기본
진리의 터 위에 평생의 신앙의 집을 세움에 있어 너무도
중요한 것이다.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결정지어 준다.
다시 말하자면 교리는 모든 삶의 방향과 지침을 제공해
준다. 이러한 의미에서 교회의 바른 교리는 교회의 바른 삶의 토대와 기둥이라고할 수 있다.
물론 교리가 우리의 올바른 신앙생활을 위한 충분조건은아니다. 교리적 지식만으로는 올바른 신앙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교리적 지식 없이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기대할 수 없다. 교리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위한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건전한 삶이 없어도 건전한 교리가 가능한지는 몰라도 건전한 교리가 없이는 건전한 삶을
결코 보장할 수 없다. 따라서 교리연구는 이론적 연구의 과제가 아니라 바로 구체적인 삶의 과제이다.
올바른 성경공부를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올바른 성경 이해의 능력을
갖추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교리는 성경해석의 기본 원리와지혜를 제공해 줄 뿐만 아니라 성경이해의 객관적인 정확성을 견지해준다.
사실상 모든 성경을 올바로 해석하고 주제별로 정리하여 체계적으로 요약해 놓은 교리야말로 성경이해의 지름길이며 성경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교육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동안 한국교회는 전문적인 신학교육을 받지 않은 평신도중심의 ‘경건의 시간’(QT, Quiet Time)과 같은 성경을 개별
본문 또는 성경의 절 단위에 대한 개인적 이해와 적용에 치중함으로써 성경 전체에나타난 ‘하나님의 전 뜻’(행 20:27)에 대한 신앙적 이해가 어려워지고
있다.
교리교육은 방대한 성경 계시의 정글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올바른 성경공부를 수행하기 위한 안전한 길잡이며 개인적
성경공부 이전에 반드시 선행되어야할 기본
교육과정이다.
미국 재무성은 위조지폐를 찾아내기 위해 기관원들을 훈련시킬 때위조지폐들을 연구하게 하지 않고 수 없이 진짜 지폐들을 충분히 검토하도록 훈련시킨다고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독교 교리에 대한 정확한 이해야말로 이단의 정체를 정확히 간파하고 대항할 수 있는 가장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많은 이단들이 성경 자체를 왜곡시켜 이질적 사상체계를
주장할 때, 단순히 성경 구절만을 그대로 인용하여 대항하는 것은 이단을 대적함에 있어 실제적인 힘을 발휘할 수 없다.
모든
형태의 거짓된주장들을 분명히 밝혀 규명하고 그것들을 바른 진리와 구별하여 반박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교회의
참된 신앙과 생활을 파괴하기 위해 점점 더 복합적이고 미묘해져가는 이단사설의 주장들을 감안할 때에 교회가 바른 신앙과
진리를 파수하고 하나님을 대항하여 높아진 모든 이론과 사상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교리적 무장과 훈련을 제공하는 일이 시급하다.
오늘날 기독교 신앙을 위협하는 세력은 자연과학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철학으로부터 온다.
대학과 사회생활 전반이 무신론적 실존주의, 불가지론, 신비적 범신론과 진화론 등에 의해서 보고 듣고
읽는 것들로부터 무의식중에 일종의 세뇌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현대인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의 사상과 삶의 체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성경의
진리체계에 대한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제시가 없이는 오늘날 비기독교적 사상체계를 견지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효율적으로 복음을
전파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문제 해결에 있어 세상의 사상체계보다 기독교의 진리체계가참된 해결책이라는 것을 유력하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선교적 동기에서도 교리교육은 긴급히 요청되어 진다.
왜 한국교회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아직도 이단이나 세속주의를
대항할 수 없는 영적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이제
그리스도의 교리학교에 다시 입학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이르기 까지 더욱 새롭게 배우고 훈련을 받아야 한다.
먼저 무엇을 믿어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고백과 영적 무장과순종이 있어야만 한다.
이를 위한 모든 성도의 영적 하나님의 전신갑주인(엡 6:14-16) 성경적인
교회 교리교육에 새로운 목회적 관심을 반드시 쏟아 부어야 할 것이다.
1. 제네바 요리문답(The Geneva Catechism, 1541)
칼빈이 제네바에 부름을 받아 어린이들을 교육하기 위해 1537년 작성한
신앙교육 요리문답서이다.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요약한 핵심
주제들에 대한간략한 설명이 특징이다.(개혁신앙
부록 27호, 28호로 발행 됨)
2.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The Heidelberg Catechism, 1563)
우르시누스(Zacharias Ursinus, 1534-83)와 을레비아누스(Caspar
Olevianus 1536-87)에 의해 작성된 이 문답서는 성만찬에 관한 교리는 개혁주의를 따르고 있지만
몇 가지 교리는 루터파와 개혁주의의 중간노선을 취하는 것도
있다. 칼빈이 이문서를 극찬할 만큼 아주
명료하고 간단하고 경건한 내용이 특징이다.
3. 벨직 신앙고백서(Belgic Confession, 1561)
홀란드에서 가이 드 브레(Guido de Bres, 1522-67)가 작성한 것으로 이 문서는
1619년 도르트 총회에서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으로
받아들이기로 공식적으로 채택하였다.
4. 토르트 신경(Canon of Dort, 1618-9)
정통 개혁신앙 교리의 압권으로 알미니우스의 오류를 지적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신조이다. 예정론을
근간으로 한 칼빈주의 5대 교리라고 알려진 구원론에 관련된 다섯 가지 핵심 사항을 채택한 것이다.
5.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1647)
칼빈주의 정통신학의 최고봉에 위치하는 가장 체계적인 문서이다. 한국 장로교회는 이 문서를 성경
다음에 표준 신앙고백서로 채택하고 있다. 청교도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모여 작성한 이문서의 특징은 스코틀랜드 언약신약이
반영되고, 성화와 주일성수에 대한 엄격성이 강조되었다는 것이다. 이중 예정, 자유의지, 아담의 행위언약 등도 중요한 교리로
인식되고 있다.
6.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The Westminster Larger Catechism,
1648)
개혁주의 요리문답 가운데서 가장 긴 문서로 장년을 위한 대요리문답서와
함께 어린 자녀들을 위해서는 소요리문답서도 있다. 이
대소요리문답서는 거의모든 개혁주의 주요 교리들을
다루고 있다.
또한 주기도문과 십계명 해석도 포함되어 있다.
신조(信條)는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가를 핵심적으로 축약(縮約)해 놓
은 것이고 신앙고백(信仰告白)은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가를 성경적으로
교육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1. 신 조
개혁교회가 고백하는 중요한 신조에는 사도 신조, 니케아 신조, 아다나시우스 신조 등이 있다. 이러한 신조의 공통점은 그 내용이 성경의
내용과 일치하고 사도들의 신앙을 계승한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삼위일체 하나님과 교회와 종말에 대한 기독교 신앙고백을 함축하여 간략하게 정립한 것이라는 점이다.
2. 신앙고백서
신앙고백서는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가를 좀 더 세부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교회에서 기독교 신앙에 대하여 교육하기 위한 교육용으로
형성이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까 그 수가 많이 있다.
왜 그러냐면 기독교 안에 여러 교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교파들이다 신앙고백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특별히 신앙고백서를 형성한 교파는 루터파, 성공회 그리고 장로교회 / 개혁파교회 등이다.
3. 신조와 신앙고백서의 차이
신조는 먼저 개인적인 고백의 내용으로 사용되어 시제가 1인칭
단수의 개념이다. 반면 신앙고백서는 개인적이기 보다는 교회의 전체의고백으로 사용되어졌고 그래서 시제가 1인칭 복수이다.
신조는 원래 교회의 예배에 사용되도록 되어졌고 신앙고백서는예배보다는 가르치는데 필요한 문서로서 만들어졌다. 신조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고 하나님의 진리에 관하여 기술한다.
인간의 이름과 인간의 오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물론 예외적으로 마리아와 본디오 빌라도라는 것이 있지만) 반면신앙고백은 폭 넓게 국가에 관하여도 말하며 나아가 이단과 이탈한 신앙 견해에 대해 날카롭게 대항하고 여기에 대한 논박이 있다.
신조는 매우 짧다. 그리고 신앙의 중요한 점이
핵심적으로 언급되어진다. 반면 신앙고백서는 매우 광범위하며 신조에서 언급된 진리에대해 상세하게 설명한다.
이 같은 신조와 신앙고백은 모든 교인이 함께 공적으로 고백함으로써 교회가 주 안에 하나라는 신앙의 틀을 이루는 것이다. 그 이유가 신앙은 강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도는 자유롭고 양심적인 신앙고백을통해 자신의 인격을 스스로 하나님께 복종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신앙 양심의 자유는 대단히 중요하다. 신앙 양심의 자유는 누가말한다고 해서 무엇인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자기 자신과의 하나님과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앙고백이 자기 자신의 신앙 양심에 의해 발휘되고
나아가 자신의 삶 속에 실현되어질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양심이 있느냐 없느냐는 오로지 하나님과 개인과의 문제이다.
그러나 동일한 신앙고백을 통해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기 때문에 그 신앙고백은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신앙고백이어야 한다. 그래서 교회는 온 교회가
함께 고백할 수 있는 동일한 신조와 신앙고백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이것은 교회의 온 회중이 각자의 신앙 양심에 따라 동의하고 순종하고자 하는 것이어야 한다.
만약 이것이 되지 않으면 늘 교회가 흔들리게되고 한 신앙 공동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한 각 개인의 양심적 신앙고백에 의한 하나 된 교리에 의한 교회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교회는늘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누군가 소위 믿음이좋다는 사람에 의해 혹은 어떤 카리스마가 있는 목사에 의해 교회가흔들리거나 마음대로 움직여질 수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문제는 바로 온 교회가 이 하나 된 분명한 신앙고백이 이루어지지 못한데 있다. 한국교회의 다양한 문제는 여기서부터시작 된 것이다.
교회 전체가 진정으로 동일한 신앙고백을 할 때만 교회는 하나이며 교회법이 유효하다. 그러나 각자의 신앙고백이 다르면성경에 대한 이해와 해석에 있어 각자 다른 견해로 접근하기 때문에이는 결국 신앙의 차이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신앙의 일치를 위해 온 성도의 동일한 신조와 신앙고백이 필요한 것이다.
4. 신앙고백서를 부인하는 두 형태
하나는 전적으로 부정하는 형태이다. 오직 성경만을 절대적 권위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성경의 핵심을 요약 체계화 한 신앙고백을 거부함으로 결국에는 성경을 부정하는 것이다. 주로 자유주의 신앙과 신비주의 신앙에 빠지게 되면 이런 태도를 취하게 된다.
또 다른 하나는 전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지만 신앙고백서
채택을 거부하는 것이다.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고백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신앙고백서의 공적인 채택으로성경의 권위를 떨어뜨리거나 잘못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만일
이런 것이 아니라면 교회가 동일한 신앙고백에 의한 신앙공동체가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무지하거나 아예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보면 정통 기독교는 역사적인
올바른 신앙고백서를 채택하여 성경적인 신앙을 정립하여 왔다.
교회는 동일한신앙고백을 통해서 동일한 성경적인 신앙이 확립되는 것이다. 성경에대한 신앙고백 없이도 성경에 대한 권위가 유지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가 않다. 그와는 정반대로 분명하고 올바른 성경적인 신앙고백을 채택하지 않는 교회나 개인이 오히려 항상신앙의 오류에 빠지고 이단들에 의해 흔들릴 위험이 높다.
5. 신조와 신앙고백 교육의 중요성
그러므로 교회는 성경적인 신조와 신앙고백서를 채택해야 한다. 그래서 교회의 영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법이 되게 해야 한다. 이것이
교회 형성의 기본이다.
대다수의 한국교회가 신조와 신앙고백서 채택을무시하고 간판만 걸고 교회를 시작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이 무질서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한국교회가 신조와 신앙고백을 무시하고 전혀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신앙의 통일성도 질서도 없다. 교회가 신조와 신앙고백을 통해 하나가 될 때 교회의
온갖 혼란스러움이 제거 되며 영적으로 육적으로 질서 있는 교회가 된다.
그리고교회 안에서 어떤 소외됨이 있을 수 없다. 왜냐면 온 성도가 동일한 신앙고백을 통해 신앙이 일치되고 그 신앙고백 안에서 양심의 자유를 가지고 스스로 복종하는 교회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치된 신앙의 내용과 그 아래 하나 된 교회 질서가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나아가 신조와 신앙고백을 공부하는 것은 곧 성경을
공부하는것과 같다.
왜냐하면 신조와 신앙고백은 주로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 된성경의 광대한 내용을 가급적 짧은 시간 내에 숙지할 수 있도록 핵심을 함축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로마 가톨릭교회처럼 성경의 권위와 신앙고백서의 권위를 동등하게 여기면 안 된다. 신조와 신앙고백서는 성경을 근거로 한 성경을 통해 인정 될 수 있는 권위이지 신적 권위를 가진 성경 위에 있는 권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때문에 신앙고백서는 언제든지 미완성일 수 있다. 또한
성도들의 신앙생활의 가이드로써의 신앙고백서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또 다른 신앙고백서가 계속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전통적인 역사적 신조와 신앙고백은 오늘의 한국교회의 침체와 혼란을 극복하고 이단의 침투를 막을 수 있는 중요한 길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내용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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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과: 성경에 대하여
제2과: 하나님에 대하여
제3과: 사람에 대하여
제4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제5과: 구원에 대하여
제6과: 교회에 대하여
제7과: 내세(來世)에 대하여
제8과: 성도의 생활에 대하여
마지막 회
제8과: 성도의 생활에 대하여
1. 사람의 삶의 첫 번째 목표는 무엇입니까?
(답)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히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43:7, 21,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2. 성수주일(聖守主日)이란 무엇입니까?
(답) 주께서 부활하신 일요일을 구약의 안식일과 같이 주의 날로 온종일 구별하여 예배와 휴식의 날로 지키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 날은 복된 날이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일을 중단하고 교회로 모여 하나님께 예배하며
서로 교제합니다.
주일에는 물건을 사고 팔거나 텔레비전을 보거나 오락이나 운동을 하거나 집안 청소나 빨래 등의 일들을 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20:7,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이사야 58:13-14,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聖日)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3. 왜 우리는 모이기를 힘씁니까?
(답) 성경의 교훈대로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성경을 배우며 기도하고 서로 교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사도행전 2: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4. 찬송이란 무엇입니까?
(답) 하나님의 이름과 그의 하신 일을 인정하고 높이며 감사하는 노래입니다. 우리는 찬송을 부를 때 경건하게
불러야 하며 우리 자신의 육신적 즐거움을 추구하며 부르지 말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3:15,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5. 기도란 무엇입니까?
(답) (1)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2) 우리의 죄를 고백하며, (3) 우리의 소원을 아뢰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6. 주기도가 무엇입니까?
(답) 주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입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마 6:9-13).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아버지의] 나라이[가] 임하옵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7.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답)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겸손히,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로마서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태복음 7:7-11,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헌금이란 무엇입니까?
(답) 하나님께 바치는 돈입니다. 그것은 전도와 구제를 위해 쓰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18,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9. 구약성경이 가르친 헌금의 표준은 무엇입니까?
(답) (1) 소득의 온전한 십일조와 (2) 때를 따라 드리는 감사헌금입니다.
말라기 3:8-10,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 . .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10. 성도의 기본적인 덕들은 무엇입니까?
(답) 경건, 거룩, 의, 선, 사랑, 겸손, 진실 등입니다.
갈라디아서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에베소서 5: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빌립보서 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11. 새 계명이란 무엇입니까?
(답)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인데, 주께서 친히 제자들에게 명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12. 우리는 왜 술과 담배를 금합니까?
(답) 몸에 해롭고 신앙 생활에 아무 유익이 없으며, 특히 술 취하는 것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큰 죄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6:9-10,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13. 우리는 왜 조상을 숭배하는 제사나 차례를 금합니까?
(답) 조상을 숭배하는 제사나 차례가 귀신에게 하는 것이며 헛되고 가증한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복이
아니고 화를 가져오는 죄악된 일입니다.
고린도전서 10:20,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AD65년 4월12일 세상을 떠난 로마의 철학자 루키우스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는 네로의 스승이었지만 네로 황제에 의해 소크라테스처럼
비극적 죽음을 맞습니다. 그러나 그의 명언들은 200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빛납니다.
인류가 인공지능(AI)을 만들 만큼 문명을 발전시켰어도 행복이라는 측면에서는 수 천 년
동안 별로 나아지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오늘은 그의 명언을 음미하여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행복을 이끄는 지혜로운 삶에 대해.....
○사람은 항상 시간이 모자란다고 불평하면서 마치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We are always complaining that our days are few, and
acting as though there would be no end of them.
○불은 금을 시험하고, 불운은 용감한 사람을 시험한다.
Fire tests gold, suffering tests brave men.
○어렵기 때문에 못하는 것이 아니다. 감히 시도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It is not because things are difficult that we
do not dare, it is because we do not dare that they are difficult.
○부(富)는 현자의 노예이자 바보의 주인이다.
Wealth is the slave of a wise man. The master of a
fool.
○말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를 아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It is a great thing to know the season for speech
and the season for silence.
○당신이 행한 자선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당신이 받았던
호의에 대해서 말하라.
Be silent as to services you have rendered, but
speak of favours you have received.
○칭찬받을 때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에 따라 사람의 인격을
판단할 수 있다.
You can tell the character of every man when you see
how he receives praise.
○가장 강한 사람은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자이다.
Most powerful is he who has himself in his own
power.
○참된 우정의 가장 아름다운 속성은 이해하고 이해받는
것이다.
One of the most beautiful qualities of true
friendship is to understand and to be understood.
○모든 잔혹함은 나약함에서 샘솟는다.
All cruelty springs from weakness.
○우연히 현명해지는 사람은 없다.
No man was ever wise by chance.
○매일 밤 자기 전에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오늘은
어떤 약점을 극복했는가? 어떤 선행을 했는가?
Every night before going to sleep, we must ask
ourselves: what weakness did I overcome today? What virtue did I
acquire?
Cindy: Do you want any more
coffee?
신디: 커피 더 마실래?
Bruce: Oh no thanks.
I've had my fill.
브루스: 아니 고맙지만 됐어. 충분히 마셨거든.
Cindy: Are you sure?
신디: 정말이지 ?
Bruce: Yes. Two cups is my
limit.
브루스: 응 . 두 잔 이상은 못 마셔.
Cindy: How long are you going to
be washing the car?
신디: 차 닦는데 얼마나 걸릴까?
Bruce: Oh for about ten more
minutes.
브루스: 어 한 10분
정도.
Cindy: Do you feel up to taking
a drive to the beach
when you're finished?
신디: 끝나면 바닷가로 운전해서 나가볼까?
Bruce: Sure. That sounds like a
great idea.
브루스: 그래 . 아주 좋은 생각이야.
Cindy: We can take a walk on the
beach.
신디: 바닷가를 걸을 수도 있고.
Bruce: Okay let’s do that.
브루스: 그래 그러자.
기억할만한 표현
* two cups is my limit: 저는 ~ 이상은 못합니다
“One glass of wine is my limit. That’s all I can
drink.”
(저는 포도주 한 잔 이상은 못
마십니다. 그게 제 주량이죠.)
* how long is (one) going to be doing
(something)?:
~를 얼마
동안 할 겁니까?
“How long are you going to be watching TV?”
(당신 얼마
동안 TV 볼 거에요?)
* do you feel up to
(doing or having something)?:
~하고 싶으세요
“Do you feel up to
seeing a movie tonight?”
(영화 볼 마음 있으세요?)
요새는 무슨 날, 무슨 날, 날도 많습니다. 며칠 전에는 ‘세계 음성의 날(World Voice Day)’이었습니다.
2002년 유럽 후두(喉頭)학회 회장이었던 포르투갈 의사 마리오 앙드리아가 1999년부터 브라질 후두학음성학회가
시행하고 있던 ‘목소리의 날’을 세계로 넓히자고 주장한 것이 계기입니다.
이듬해부터 매년 4월 16일이면 지구촌 여러 나라에서 건강한 목소리의 중요성을 알리고 건강한 음성을 지키거나 되찾기 위한 캠페인을 펼치고 있습니다.
음성은 사람을 사람답게 해주는 보물입니다. 아이가 엄마의 목소리를 1분만 들어도 뇌가 발달한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사람은 목소리가 저마다 달라서 지문(指紋)처럼 성문(聲紋)이 수사에 이용되고 있는데, 이를 발전시켜서 보안시스템, 허위신고 방지
등에 활용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의학계에서는 목소리를 분석해서 특정한 병을 진단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인상에서도 목소리가 좌우합니다. 이와 관계 있는 것으로 ‘메라비언의 법칙’(Albert
Mehrabian Law)이란 게 있습니다.
미국
UCLA 심리학과 명예교수 엘버트 메라비언이 저서 《조용한 메시지》에서 주장한 것으로, 사람이 대화할 때 호감을 느끼는 기준 가운데 말의
내용은 7% 밖에 되지 않고 목소리의 톤과 음조 등이
38%, 표정이 35%, 태도나 자세가 20%를 차지한다는 겁니다.
미국의 이비인후과 의사 모튼 쿠퍼(Morton
Cooper) 박사는 저서 《목소리를 깨워라, 삶을 바꿔라/
change your voice change your life》에서 “많은 사람이 자신의
타고난 목소리에서 벗어난 음성으로 말하는데, 자신의 진짜 목소리로 말하면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건강에도 좋다”고
주장합니다.
쿠퍼 박사에 따르면 입을 다물고 끝을 약간 올리는 억양으로 ‘음ㅁ-흠ㅁㅁ’을 했을 때 나는 목소리가 자신의
진짜 음조라고 합니다. 이때 코와 입술 주위가 가볍게 떨리는 것이 정상입니다. 가슴이 아니라 배로 숨 쉬면서 자기 목소리로 말하면
자신감이 강화되고 건강에도 좋다는 건데, 많은 공감을 얻고 있는 이론입니다.
그 자연스러운 음조에 따뜻하고, 부드럽고, 밝은 단어가 함께 굴러가면 더할 나위 없겠죠? 오늘은 목소리와
말에 더욱 더 신경 쓰는 생활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6
문재인 한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평화의 집 2층
회담장에서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1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판문점에서 한국 군인과 북한 인민군이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경계를 이어가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인 T2와 T3
사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 평화의 집에 도착할 예정이다.
3
베를린 테겔 공항의 군사 구역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워싱턴으로 떠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태울
'에어버스 340' 이 보인다.
4
로힝야족에 대한 폭력사태가 발생했던 미얀마 라카인주 마웅다우에서
노동자들이
도로 작업을 하고 있다. 미얀마와 방글라데시는 지난해 11월
로힝야족 난민 전원을
2년 안에 귀국시키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난민들이 신변 안전과 시민권
문제로
귀국을 거부하면서 송환이 늦춰지고 있다.
5
필리핀 보라카이 섬이 폐쇄된 첫날 경찰들이 해변에서 떨어진 물속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다. 필리핀 당국은 대대적인 정화작업을 위해
보라카이 섬을 6개월간 폐쇄하기로 했다.
6
사제 서품을 받은 새 사제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는 동안 바닥에 엎드려 있다.
7
러시아 크라스노야르스크 외곽 '어스트 마나' 마을의 강에서 유빙이
보인다.
2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열린
국빈만찬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건배하고 있다.
3
캐나다 시내에서 무차별 차량돌진 사고로 10명이 사망한 다음날
시민들이 현장에 마련된 임시 추모단에서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있다.
4
인도네시아 아체주 란토 퍼러락의 무허가 유정에서 불길이 솟아오르고
있다.
5
방글라데시와 인접한 라카인주 마웅다우 지역에 설치된 가시 철조망 너머로
로힝야족 난민 아이가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6
미얀마 양곤의 쓰레기 매립지에서 화재가 발생한 가운데,
추가 투입된 군인들이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7
영국 북부 해러거트에서 열린 스프링 플라워쇼에서 여성 모델들이 꽃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8
눈이 덮인 볼리비아 일리마니산이 마을 너머로 보이는 가운데,
짐을 어깨에 멘 여성이 팝콘 파는 노점상을 지나 걸어가고 있다.
1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내외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내외가
워싱턴 DC의 백악관 발코니에서 관중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2
북한 선전용 마을인 기정동의 높이 솟은 탑 위로 인공기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3
시리아 동구타 다마스쿠스 인근 두마의 거리에서 주민들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4
브라질 브라질리아에서 원주민들이 권익 보호 운동의 일환으로
연례 캠핑 시위를 연 가운데, 검은색과 빨간색을 얼굴에 칠한 여성이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5
봄의 따뜻한 날씨가 찾아온 핀란드 서부 '라이파루오토'섬의 얼음 바다
위로 균열이 보인다.
6
잠정 폐쇄 이틀 전인 24일, 필리핀 중부 보라카이섬 해변 너머로
석양이 지고 있다.
7
불가리아 벨리차 인근 '댄싱 베어즈 파크'에서 구조되거나 야생에서
발견된 아기곰들이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