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들을 무르익게 하옵시고 무거운 포도송이들마다 최후의 감미로운 그 물기를 빨아들이게 하옵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더 집을 지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홀로 있는 사람은 오래오래 고독에 잠겨있을 것입니다.
밤에는 잠을 자지않고 책을 읽을 것이며
또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그리고 가로수의 길목을 여기 저기 들뜬 마음으로
방황할 것입니다.
마치 떨어져 가는 나뭇잎처럼."
9월은
그리고 우리들의 가을은 「릴케」의 경건한 기도처럼 찾아 오는가?
하나님의 손길이 익어가는 가을,
곡식과 과실을 어루만지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가?
아름답고 조용한 가을밤이 오면 우리는 누구에게
그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무슨 사연들의 책들을 읽으려 하는가?
가을이 문지방에 올라서도, 세상이 어지럽고
살림이 어수선하면 축복의 노래를 부르려 하지 않는다.
홍수와 질병과 그리고 쌀의 기근, 겹치는 수난속에서
참고 견뎌온 여름의 기억속에서 사람들은 한숨을 쉰다.
고난의 생활은 계절의 변화마저도 둔화시키는 까닭일까.
그러나 가을은 「캘린더」의 숫자위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곡식을 여물게 하고 과실에 단맛을 오르게 하는 가을 햇볕은,
인간의 마음속으로도 흘러드는 법이다.
풀밭의 벌레소리가 고난에 찌든 우리의 베개곁이라고
울려오지 않을리 있겠는가?
9월은 결실의 달.
지루했던 여름을 그냥 저주해서는 안될 것이다.
실의와 고난의 떫은 맛들을 감미한물기로 익어가게 하고,
남루한 아름다운 빛깔로 물들여야 하는 때.
마음을 열어 9월의 햇볕을 보다 더 많이 받아들여야 할 일이다.
아무리 작은 풀이라해도 9월은 열매를 맺는 철….
누구나 자기생의 결실을 위해 경건한 기도를 올려보는 달이다.(무명)
우리 집 뒤뜰, 작년에 수세미가 주렁주렁 매달렸던 그 자리에 올해는 청포도 나뭇잎이 하늘을 뒤덮었습니다.
별다른 손질을 하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무성하게 자랐습니다. 내년에는 열매가 맺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벌써부터 기대가 큽니다.
청포도(靑葡萄)하면이육사(李陸史)의 "청포도(靑葡萄)"라는 시를 생각 안 할 수 없지요.... 학창시절을 생각하며 한번 읊어 봅니다.
청포도(靑葡萄)
이육사(李陸史)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기름부음 넘치는 찬양 인도자이며 예배에 관해 손꼽히는 세미나 강사이자 탁월한 피아노 연주가이기도 하다.
엘림성경학교의 음악 감독을 지냈고 뉴욕 시온 펠로우십 교회에서 13년 동안 담임목사로 사역했다.
그가 목회와 예배 사역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1992년 5월의 어느 금요일, 사역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목에 구슬이 걸린 것 같은 극심한 통증을 느끼게 됐다.
의사는 그에게 ‘후드 접촉성 육아종’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설교자일 뿐 아니라 탁월한 찬양 인도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정상적인 예배 인도와 설교 사역이 불가능해진 것이었다.
그는 이 낯선 이름의 병 때문에 성량의 대부분을 잃고, 삶의 기반이 모두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게 2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는 약한 성대로도 찬양과 말씀을 전하는 사역을 계속하였고, 성경 자체를 깊이 묵상하고 연구하여 책을 쓰는 사역에도 오래 매진하였다.
지금도 목이 완전히 회복되진 않았지만, 이 과정을 거친 그는 하나님과 회중 앞에서 바울처럼 ‘고난 받은 것이 내게 유익이라’는 속 사람의 고백을 드림과 아울러 더 깊은 믿음의 차원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지금은 미국 캔사스 시티에 있는 IHOP( 국제 기도의 집)에서 아내 마시와 함께 사역하고 있다. 부흥을 향한 열정과 예수님을 향한 개인적 친밀함을 전파시키는 그의 책들은 예배 사역자들에게 필독서로 꼽힌다. 한국어로 출간된 저서로는 <하나님이 당신의 이야기를 쓰고 계신다>, <그럼에도 주님 곁에 머물다>, <내 영이 마르지 않는 연습>, <찬양으로 가슴 벅찬 예배> 등이 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 받은 약속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약속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의 영계에 가까이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를 향해서 오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사무엘상 4장을 보면 블레셋 사람들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패배합니다. 10절을 보니 "블레셋 사람이 쳤더니 이스라엘에 패했다" 하였습니다. 11절에는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다" 고 하였습니다.
엘리가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의자에서 떨어져 목뼈가 부러져 죽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엘리의 며느리가 궤가 빼앗겼음을 들었을 때, 조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이를 출산하면서 엄마가 죽게 됩니다. 그 아이를 출산하면서 아이의 이름을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라는 뜻의 이가봇이라 지어주게 됩니다.
성경 안에서 볼 수 있는 비극 중 비극입니다. 언약궤는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었던 가장 고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원수가 이 언약궤를 빼앗아 갔습니다. 온 나라가 이를 손실함으로 인하여 아주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이가봇이라는 이름,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도다’라는 이름까지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저는 이 이야기에서 이 때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고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것은 이때가 아닌 훨씬 전에 떠났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의 백성들과 함께 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마음으로부터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수년 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그 백성들의 마음으로부터 떠나버린 것입니다. 영광은 떠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임재 뿐이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어떠한 것을 여러분과 나누기 원합니다. 대단히 중요한 이야기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이 있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5절을 읽을 때, 제 마음에는 엄청난 진동이 역사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진에 들어왔을 때,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쳤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제가 보았던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고 큰 소리로 외쳤으나 전쟁에는 졌다는 말입니다.
제가 이 절을 보면서 “주님, 이것이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주님, 하나님의 임재도 있고 우리가 그것에 대해서 큰 소리도 치는데 전쟁에서 질 수 있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의 답변은 “그렇단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본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가지고서는 넉넉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임재 가지고 만족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임재보다 더 많은 것이 우리는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영광은 다르다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도 대단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만으로는 안됩니다. 우리가 영적 전쟁을 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임재만으로는 다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구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제게 가르쳐 주십시오.”
주님께서 제게 보여주신 것은 출애굽기 33장이었습니다.
출애굽기 33장은 모세가 하나님과 엄청난 만남을 가지는 장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시내 산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홍해를 통과한 후 입니다. 그런데 시내 산이 불이 붙고 있었습니다.
그 산에서 연기가 그대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번개와 천둥이 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내 산 전체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트럼펫 소리가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시내 산에 하나님께서 친히 임하시는 광경입니다. 시내 산은 하나님의 불로 불붙고 있는 장면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무도 이 산에 가까이 오지 말라. 분명히 말할 찌어다, 아무도 이 산을 만지지 말라"
동물이라 할지라도 이 산을 만질 수 없고, 동물이 이 산을 만진다 하더라고 즉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야, 올라오너라”
그리고 모세는 그 불 속으로 올라갔습니다. 40일 동안 물도 밥도 없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원해야 할 것은 이러한 영광입니다. 물도 밥도 필요 없는 그러한 단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10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산에서 내려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모세가 10계명의 돌 판을 그대로 땅에다 던집니다. 그리고 금송아지를 부숴버립니다. 그 후 곧장 두 번째 40일의 금식에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불안에서 80일 동안을 금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먹을 음식도 물도 없었습니다. 어떠한 단계의 영광인가 하면 자기 스스로는 알지 못하였지만 그 얼굴이 사람들에게 비취니 빛이 너무나도 강하여 쳐다볼 수 없는 단계까지 들어갔습니다.
두 번째 시내 산에 올라가 하나님을 만날 때, 일어났던 일들이 오늘 우리가 읽고 있는 33장의 이야기입니다.
13절에서 모세가 말하길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컨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면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임재가 너와 함께 할 것이며 내가 너를 편케 하리라”
그러면서 말씀하십니다.
“모세야, 이것이 바로 네가 할 일이로다, 내가 너에게 나의 임재를 주겠다. 네가 가는 그 과정 안에 내가 내 임재로 더불어 너와 함께하리라. 나의 임재는 보증할 수 있느니라”
바로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에게 보증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위해 찬양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으로 인하여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얻기 위해서 하나님께 구할 필요가 없다 라는 것으로 인하여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위해서 우리가 춤추지 않아도 된다라는 것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주 예수의 이름으로 두 세 사람이 모여서 주님을 구하는 기도만 있으면 됩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두 세 사람이 함께 있을 때, 내가 너희와 더불어 함께 하느니라” 하셨어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나의 임재가 너희와 더불어 함께 하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가 있으므로 말미암아 감사드립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와 더불어 함께 가지 아니한다면 우리를 이끌지 마소서” 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여 하나님의 임재가 주의 백성들로 더불어 함께 가지 않는다면 제가 가지고 있는 이 자리를 내려놓겠습니다’ 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나는 이 백성들을 인도하지 않겠습니다" 라는 말입니다.
16절에서 모세가 말하는 것은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라고 했습니다.
세상 안에도 좋은 음악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도 음악을 따라서 즐기고 춤을 춥니다. 그들 안에도 세상적인 재미가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가지지 않은 것이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세상 안에는 절대로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더불어 함께 계십니다. 바로 우리가 있는 곳에 우리와 더불어 함께 거주하십니다.
“하나님의 집에 가자,” 고 할 때 너무도 기뻤습니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계시다’라는 말입니다.
만물은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변화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을 때, 태도가 나쁜 사람의 그 나쁜 태도가 빠져 나가게 됩니다. 불쾌했던 하루도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씻김을 받습니다.
17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의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즉, “모세야, 나의 임재가 너와 더불어 함께 하리라” 라는 말이지요.
18절을 보면 모세가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로 말미암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으면 저는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더불어 함께 하신다니 너무도 감사하군요. 그러나 이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더 필요합니다. 나는 영광을 원합니다.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주님 이 말에 절대로 오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임재를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반드시 내게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임재를 가져가지 마십시오. 제가 말하는 바를 오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임재를 너무도 감사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그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나의 모든 선한 것으로 내가 네게 보여줄찌라,”...
하나님의 영광은 무엇입니까? 19절이 그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입니다.
이 말은 “모세야, 이제 네가 무엇인가를 보게 된다. 이것은 네 마음에 비추어졌던 어떠한 인상이 아니고, 네가 영계 가운데 보는 어떠한 형상도 아니고, 네가 너의 육체의 눈을 통하여 이제 네가 보게 될 것이다.”
첫 번째, 영광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의 다섯 가지 감각 중 하나를 손대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실재적인 임재가 우리의 5감각 중의 하나를 손대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임하시면 실질적으로 무엇을 보든지, 무엇을 듣든지, 어떠한 냄새를 맡든지, 어떠한 것을 손대든지, 어떠한 것을 느끼든지, 실질적인 체험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시간이 모세가 하나님을 면대하는, 얼굴과 얼굴로 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영광 중에 두 번째 면은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입니다.
바로 이 부분은 하나님의 영이 내 영에게 말씀하시는 시간을 말합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내 영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성을 통하여 "하나님이 누구신가" 라는 실질적인 존재를 우리의 명철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을 모세에게 말씀하셨을 때는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하며 모세의 심령에게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 영이신 하나님이 인간에게 하나님의 그 존재 자체를 보여 주시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성령님께서 우리의 영을 통하여 아버지 하나님을 보여주시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야, 이제 네가 무엇인가를 보게 될 것이다. 눈을 크게 떠라, 내 자신을 네게 보여주리라. 그리고 이제 내가 선포할 말을 네 영에게 직접 말하리라. 네 영 안에 내 이름을 내가 넣어 주리라.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은 내 영광에 대한 말이라."
바로 여러분의 영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십시오.
“오, 그것을 얼마나 원했었는데, 하나님을 그렇게 보기를 원하는데, 내 영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을 말해 주신다면,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는 그 신비를 내게 보여주신다면!”
그래서 이러한 것을 향해 여러분이 갈급해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시되, 하나님의 영광의 단계에서 살게 하기 위해서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개입되기 시작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분명히 새 사람이 되고, 하나님께서는 무엇인가를 우리의 영에 집어 넣으시고, 무엇이라고 말로 표현을 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심령 안에 무엇인가가 운행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갈급함과 욕구가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존재 깊은 곳으로부터 말할 수 없는 갈급함이 터져 올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우리가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의 갈급함을 만족시키는 것 같지만, 진실로는 그렇지 않은 것을 우리가 발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후에도 갈급함은 그대로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끊임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갈급해 하는 것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는 지음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손대기까지는 우리의 영혼은 절대로 만족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심령 안에 우리는 거의 비슷한 소리들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손댈 수 있습니까? 이러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만 합니까?
19절 마지막을 한번 바라보세요.
“나는 은혜 줄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이 말씀은 “모세야, 나는 나의 은혜를 주고 싶은 자에게 언제든지 내가 원하는 시간에 주는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으로 말미암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의 영광의 단계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영계의 단계까지 노래하며 들어 갈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의 단계에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금식한다고 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단계에 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춤춘다고 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단계에 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나는 영광의 단계에 들어가기 위해서 수 없이 노력했습니다,’ 라는 사람 있습니까? 우리는 모두 방법을 다 해서 노력을 해 보았죠?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하나님께 여쭈어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존전(尊前)에 서서 두려워 떨며 하나님 앞에서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원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제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하나님, 제게 자비를 베푸시기를 원합니다. 제가 영광을 취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제가 취할 수 있는 길이 없음도 알고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하나님 앞에서 떨고 있습니다. 주여, 제게 주님의 그러한 영광을 보여 주시옵소서.”
20절을 보면 모세에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모세야, 네가 나를 본다면 네가 심장병에 걸려 즉사하게 될 것이다. 완전히 네가 타 버릴 것이다. 모세야 그러므로 내 영광을 네게 비춰주되 대단히 조심스럽게 내가 너에게 보여주어야 할 거야. 네가 잘못 움직이기만 한다면 즉각 죽게 될 것이다.”
모세는 말합니다, “주님, 알겠습니다.”
“모세야, 이제는 네가 순복(順服)할 시간이로다.”
“예, 주님 그러겠습니다.”
모세는 말합니다.
“내 영광이 지날 때, 반석의 틈에 두리라. 내가 지나도록 너를 내 손으로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바로 이 반석 위에 너를 숨기어 둘 것이다. 그래서 내 얼굴로부터 이 반석이 보호해 줄 것이다. 그러나 이 반석만을 너에게 준다면 넌 아직도 죽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내가 너에게 이중 보호를 줄 터이니 너를 내 손으로 덮음으로써 너를 보호할 것이다. 이 반석 뒤로 하여 내 손으로 하여 너를 또 보호할 것이다. 바로 나의 손으로 너를 도와줄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하나님께서 지나가셨습니다.
“모세야 거기서 정지하지 말아라. 모세야 거기에서 네 이야기를 그치지 말아라. 무엇을 보았니? 하나님의 영광이 어떻든? 모세야 어떤 일이 벌어졌니? 말해라, 내게 말해다오.”
모세가 말합니다.
“나는 영광에 대해서 말 안 할 꺼야. 할 수가 없어...”
어떠한 것들은 우리가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인 의견을 이 이야기에 대하여 가지고 있습니다. 제 의견으로 바로 이 사건은 거의 모세를 죽일뻔한 사건입니다. 자기의 생명 가운데 실 한 오라기 그 차이를 두고 살아난 것이죠. 하나님으로 인해서 거의 죽을뻔했다는 그 체험이 꼭 그것이 즐거운 체험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아주 심장이 터질 뻔한 체험이에요. 몸이 완전히 부스러지는 체험이었어요.
그럼에도 우리가 이렇게 모여 이 이야기를 함께 읽고 있습니다. 모세의 간증을 듣고 있는 것이죠.
“하나님이 나를 지나가셨어. 바로 반석을 지나치셨어. 그리고 하나님의 손을 움직이셨지.”
거의 죽을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여 나도 모세의 줄에 서서 나도 죽기를 각오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기를 원합니다,” 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목사님, 생각이 너무 과하시군요. 밥 목사님,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나도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이해하는 것은 모세가 이 영광을 체험하면서 죽을 뻔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 안에는 무엇인가가 불타고 있어요. 그리고 내 가슴에 불이 타고 있어요. " 왜 그럴까요?", "하나님! 나를 죽이려면 죽이십시오!,"하는 간구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봐야만 하겠습니다,"라는 간구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로 인하여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가져 가신다면 저의 일을 그만 두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임재가 꼭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임재가지고는 부족합니다. 오! 하나님 하나님의 영광을 보아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저의 정의를 말해드립니다. 하늘의 그러한 영계의 실제가 땅과 더불어 직결되는 순간을 영광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정의하는 것인지 말씀해 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에게 주관적인 현실이라면 하나님의 영광은 객관적인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예배를 드려봤습니까? 예배가 끝나고 나서 어떤 사람들은 얼굴에 말할 수 없는 광채를 띠면서 나갑니다. 얼마나 발길이 가벼운지 발이 땅을 닿지 아니하고 날아가듯이 걸어갑니다. 그리고 나가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와! 얼마나 굉장한 예배입니까? 오늘 정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저 사람이 머리가 돌아도 단단히 돌았구나! 나도 같이 예배를 드렸는데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하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보는 것은 오래 전에 죽은 예배를 가지고, 예배를 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체험한 사람들은 손을 들어 보십시오. 이것을 하나님의 임재의 영계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의 단계에 들어가면 그 임재의 단계에 있는 예배 가운데서는 각자가 받는 분량이 다 다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의 단계에서는 개인 하나 하나가 가지고 있는 믿음의 분량에 따라 하나님께 받은바 은혜의 분량이 다 다른 것입니다.
자신의 개성이나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성에 따라서 분량이 다 다릅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단계에서는 이 사람은 축복을 받고 이 사람은 축복을 놓치고, 이 사람은 뜨겁고 저 사람은 차고, 하는 단계이지요. 그래서 이 사람은 춤추고 저 사람은 앉아 있고, 이 사람은 성령으로 충만한데 저 사람은 옆에서 잠자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임재의 단계에서 역사되는 모양입니다. 각자가 받는 은혜의 분량이 다 다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모두에게 함께 보이기 시작합니다. 모든 육을 입고 있는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하나님의 성전에 임하기 시작하면 모든 사람이 똑같은 체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성전이 하나님께 드려졌을 때, 영광의 구름이 하나님의 성전을 덮었어요.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었죠. 그래서 어떠한 제사장도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서 그 자리에 멈추어 서 있을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그곳에는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하나님의 성산에 임하였을 때,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는 예수님의 모습이 변화되는 것을 바로 보았어요. 베드로가 요한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요한, 너는 이것을 믿지 않을 것이다. 너는 내가 미쳤다고 생각할꺼야. 그러나 내 눈 앞에 나타난 것은 정확하게도 모세와 엘리야였어.”
왜냐하면 세 제자가 모두 똑같이 모세와 엘리야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이 임하는 것을 똑같이 보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내가 기뻐하는 자로다,” 라는 소리를 함께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오순절에 하나님의 교회에 임했을 때, 모두에게 불의 혀와 같은 것들이 나타났습니다.
강력한 바람과 같은 소리를 함께 들었어요. 그리고 불의 혀를 함께 보았어요. 그러한 불이 그 곳에 있는 모든 자들에게 임했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함께 방언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영광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태어났습니다.
우리의 본질은 영광으로 인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성령으로 인해서 잉태되고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오, 주님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너무도 좋아 합니다. 하나님, 무엇을 하시든지 하나님의 임재를 거두어 가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에게 너무나 소중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영은 이러한 갈급해 하는 소리가 나옵니다.
내 안에 무엇인가가 아파하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뭐가 잘못 되었나보다, 내가 왜 이렇게 만족하지 못할까? 주님, 저는 만족했습니다. 주님이 제 심령을 만족시키셨는데요...하나님 외에는 제가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왜 이렇게 불만족스러울까요?
하나님, 이것이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은 다 행복해 보입니다. 하나님, 저는 행복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정말로 불쌍하군요. 제 심령 안에 무엇인가가 불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가서에서 사랑의 조각을 저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오, 주님! 저는 주님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주님을 향한 갈급함으로 제가 병이 들었습니다. 주님의 그 아름다움을 제게 보여주소서. 이것이 아니고서는 저는 아무것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에 제가 중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저와 함께 하셔야만 합니다. 주님 절대로 제 심령을 만족시킬
수 있는 다른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아야만 합니다. 내 눈에 있는 이것이 무엇입니까? 내 얼굴을 가리고 있는 휘장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여 이 휘장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하나님이여 내 눈의 티를 거두어 주시옵소서. 주님, 하늘로부터 임하시옵소서. 하늘의 문을 여시옵소서. 이 땅에 임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눈을 열어주시옵소서.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내게 임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성호를 우리의 영에 말씀해 주시옵소서. 우리가 하나님을 알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함으로 인하여 병이 들었습니다. 주님을 제가 보아야만 하겠습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겠습니다. 내 영혼에 자비를 베푸소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시옵소서.“
아멘!
우리 모두 하나님의 영광에 갈급하여 주님만을 추구하는 예배자로 섭시다!!
축복 대성회...
힐링 세미나...
힐링 아카데미...
행복 아카데미...
행복 세미나...
교회에서 행복이나 축복 등을 주제로 한
이런저런 집회나 행사를 자주 여는 것을 본다.
사실 행복이나 축복 등의 내적 가치들은
하나님께서 부어주실 때 비로소
그 가치로써의 진짜 역할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내적 가치를
삶의 목적으로 두고
인간이 자의(自意)로 추구하려고 하면
그 가치는 진리 안에서 바른 가치가 될 수 없다.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명자로써의 삶이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진짜 목적이고,
그 방향을 따라 삶을 살아가는 속에서
위로부터 그런 가치들이 부어주신다면
그때 비로소 행복이나 축복 등의 가치는
진리 안에서 진정한 가치로써 발현(發顯)되게 된다.
하지만 사람이 그 가치를
목적으로 두고 추구하려고 하면,
오히려 그런 가치를 기반으로 한
미혹이 누룩처럼 틈타게 되고
겉잡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런데 지금 대다수 교회들을 보면
대세적 흐름들이 그러한 것을 본다.
하나님이 목적이 아니라
행복이나 축복 등의 가치가 목적이 되어버려서
많은 교인들을 이 땅의 삶에만 관심을 두게 하는
전체적인 포커스가 그렇게 맞춰져 있다.
사랑, 축복, 연합, 은혜, 위로, 행복, 인권, 평화 등등....
이런 무형의 가치들은
그냥 보면 무조건 선해 보이지만
반드시 말씀에 근거한 진리적 기준을
중심으로 두고 있지 않으면,
오히려 이런 선한 모양 때문에
사람들을 혹하게 만드는 미혹의 수단이 된다.
결국 이런 무형의 가치들에
인본적 사상이 더해지면,
이 시대에 가장 악독한 미혹의 수단이 된다.
개인적 차원에서
이 땅에서의 삶에 머물게 하는
행복, 축복 등이 그 자체로 목적이 돼버리면
미혹의 수단이 되고,
교회적 차원에서
하나님을 배도하게 하는
사랑, 연합 등이 그 자체로 목적이 돼버리면
미혹의 수단이 돼버린다...
초림(初臨)하신 주님은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지만,
다시 오실 주님은
죄인이 아닌 의인을 구원하시고,
죄인을 심판하러 오신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그 죄인은
불신자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통칭한다.
이 땅에서의 행복과 축복만 간구하고 추구하면서
사명자로써의 목적을 져버린 자들에게
하나님은 돌이켜 회개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럼에도 끝내 돌이키지 않으면
그런 사람은 결국 토하여 내치실 것이다.
알곡과 쭉정이는
지금 이 시간에도 나뉘어지고 있다
한국의 이단대처 사역자들과 기자회견 중인 전능신교 피해자 가족
중국에서 사교로 규정한 전능신교(조유산·양향빈 교주)가 내부 문서를 통해 조선족 신도들은 한국으로 가서 가출하고 잠적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이단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종교와진리>는 2018년 8월 23일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전능신교 내부 문서에 교주 양향빈(현재, 미국에 거주)이 신도들에게 내린 지령에 의하면, ‘조선족들은 한국으로 가라!, 모두들 가출하여 잠적하라!’는 내용이 있다”며 “(그래서)한국으로 가출한 가족들과 연락도 되지 않고, 어디에 있는지, 몸은 건강한지,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아무 소식이 없고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가족들과 연락이 두절되며 큰 고통을 겪는 전능신교 피해자들은 한국을 방문, 제주도와 서울 청와대, 전능신교 보은 지부 등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할 계획이다.
<종교와진리>는 “중국 사이비종교 중 ‘전능신교’(전능하신하나님교회, 동방번개) 집단이 있는데 이들은 ‘가족 관계 단절서’라는 각서를 쓰고 대부분 가출하여, 행방을 모르고 있다”며 “이들이 어린 자녀를 떼놓고 한국에 와선, 난민이라 주장하며, 난민소송 진행 중이다”고 주장했다. 소송 중인 난민은 대략 1천여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매체는 “전능신교 내부 조직에는 ‘난민팀’이 있다”며 “한국에서 난민 소송 진행 중에 있는 신도들 대부분이 무비자로 제주도로 입국, 난민 신청을 한 후 약 3일 만에 서울로 입성하여 수년 동안 한국에서 지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능신교 피해가족의 기자회견은 총 3차례 진행한다.
8월 31일 제주도의회 도민의방 오전 10:00~12:00, 9월 3일 청와대 분수대 앞 오전 11:00~12:00, 9월 4일 충북 보은군 산외면 길탕리 285 정문 앞 오후 14:00~16:00다.
이번 기자회견은 사이비종교피해대책연맹, 기독교이단대책협회, 인천기독교총연합회 이단대책위원회, 기독교이단문제연구소가 주관한다.
한편 종교와진리는 전능신교의 한국 지부들이 총 9개가 있다고 일부 주소를 공개했다.
1. 서울 구로구 ○○○,
2. 서울 광진구 ○○○,
3. 서울 구로구 오리로 ○○○,
4. 강원도 횡성군 ○○○,
5. 대전시 동구 ○○○,
6. 경기도 안산시 ○○○,
7. 충북 보은군 ○○○,
8. 대구 남구 ○○○,
9. 충북 보은군 수한면 ○○○ 등이다.
전능신교 교인들이 포교할 때 사용하는 책자
중국계 이단으로 분류되는 전능신교(일명 동방번개파)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 이만희 교주)과 유사하게 동방번개파도 교회안으로 들어와 성도를 빼내는 ‘추수꾼’ 포교법을 쓴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A교회에 올 초 조선족 억양을 사용하는 사람이 새신자(동방신도)로 등록했다.
지역 특성상 조선족들이 적지 않아 B목사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동방신도는 교회에 등록한 후 예배에 열심히 참석했다.
주먹만한 크기의 왕만두를 교회로 갖고 와서 교인들과 함께 나눠 먹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교인이 B목사에게 슬며시 다가왔다.
“목사님, 조선족 새신자가 책을 보라며 줬는데 뭔 내용인지 잘 모르겠어요. 살펴 봐 주세요.”
B목사는 교인이 준 책을 보며 아연실색했다. 전능신교, 소위 동방번개파의 포교책자였다.
B목사는 동방신도를 불러 “왜 교회에 와서 동방번개 교리 책자를 나눠주는가?”라며 호통을 쳤다. 이 신도는 B목사에게 자신의 정체가 탄로난 뒤로 교회를 떠나버렸다.
동방신도가 교회 출석을 중단한 며칠 후 또 다른 교인이 B목사를 찾아왔다. 그녀는 옷가게를 하는 사람(옷가게신도)이었다.
옷가게 신도는 그 동안 있었던 일들을 설명했다. 자신의 옷가게에 동방번개파 조선족 신도가 찾아와 자주 비싼 옷을 사고, 매상을 올려 줘서 친숙해진 상태였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동방신도가 자신의 단체에 가서 말씀한번 들어보자는 요구를 거절하지 못해 몇 번 들었지만 계속 가진 않았다는 것이다.
B목사가 “교회 밖에서 성경공부 하는 걸 주의하라고 했는데 왜 갔는가?”라고 묻자 옷가게 신도는 “동방신도가 우리 집에 와서 자주 옷을 사주는 바람에 그가 하는 제의를 거절할 수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전능신교측이 만든 동영상(초대교회 성도들의 핍박 모습을 그래픽으로 처리했다)
B목사는 기자와 대화하며 “신천지보다 동방번개의 접근법은 정제돼 있지 않고 아직 투박한 상태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러나 교회 안으로 들어와 타깃을 정하고 상대가 거절할 수 없는 정도로 친분을 쌓고 포교행위를 하기 때문에 앞으로 그들의 활동을 한국교회가 주의해서 봐야 한다”고 경계했다.
경기도 안산의 한 교회에선 실제로 동방번개파에 한 가정이 빠진 경우도 발생했다.
역시 안산의 한 교회에 작년 10월경 조선족 신도(동방신도)가 등록했다. 등록한 이 신도는 식당을 하는 한 교인(식당신도)과 친해지는 전략을 썼다.
교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자주 밥을 먹었고 아는 사람들과도 함께 찾아가 회식도 했다. 매상을 올려주는 동시에 한가할 때는 식당신도의 어깨를 마사지를 해주며 피로를 풀어줬다고 한다.
친분이 쌓인 후 동방신도는 식당신도를, 마사지를 제대로 배운 중국선교사가 거주한다는 다세대 주택으로 안내한다.
이곳에서 지속적으로 뭉친 근육, 육체피로를 풀어줬고 그럴 때마다 주택 안에서는 동방번개파에서 제작한 드라마와 영상이 함께 상영됐고 자연스레 식당신도는 드라마를 보면서 동방번개파 사상에 세뇌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 식당신도는 자신이 다니던 교회는 성령의 역사가 떠난 곳이라며 동방번개파로 자식들과 함께 옮긴 상태다.
전능신교측이 만든 '크리스천 만담' 동영상
한국교회에 침투 전략을 펴고 있는 전능신교에 대해...
예장 통합측이 2013년 98회 총회에서 “여자 그리스도에게 순종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극단적인 이단 단체”,
예장 고신측이 2013년 63회 총회에서 “중국에서 넘어온 이단단체로, 양상빈이라고 하는 여성 재림그리스도를 믿고 있다”, “삼위일체론, 기독론, 구원론에 이르기까지 정통교회의 사상에서 벗어난 이단사상을 가지고 있는 단체”라고 규정했다.
그럼에도 신천지처럼 교회안으로 들어와 포교법을 쓴다는 점에서 한국교회의 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1.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생활(눅 14:27).
십자가는 자원해서 지는 것이며,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자기 삶을 내 안에서 사는 생활이다. 중생으로 출발한다.
2. 말씀 안에 거하는 생활(요 8:31).
성경 속에 거주하고 성경을 먹고 마시며 사는 순종 생활
3. 열매 맺는 생활(요 15:8).
열매에는 두 가지가 있다. 성령의 열매, 즉 품성의 열매와 전도의 열매이다.
4. 사랑(요 13:34).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자신을 예수의 사랑으로 사랑한다. 이 배지를 달지 않은 크리스천은 가짜이다.
베트남 축구영웅으로 떠오른 박항서 감독은 현재 하노이 미딩송다지역에 위치한 은혜의강교회를 출석하고 있다. 사진은 박항서 감독이 주일예배 후 성도들과 함께한 모습. 사진 두번째 줄 가운데가 박항서 감독이고 바로 옆에 송명철 선교사.
베트남의 국민영웅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박항서 베트남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이 송명철 선교사가 담임으로 시무하는 하노이 은혜의강교회에 출석해 매주 예배를 드리고 있다.
박항서 감독은 최근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베트남 축구팀의 유례없는 선전을 이끌어 내며 나날이 인기를 더하고 있다. 그의 인기는 베트남에서 한류스타보다 높다는 평가가 많다.
실제로 아시안게임 축구 준결승전에서 베트남팀이 한국 축구팀에 패했지만 베트남 국민들은 결승전에서 한국축구팀을 응원하는 등 박 감독으로 인한 긍정적인 영향이 크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박 감독은 영성을 채우기 위해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고 있어 성도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베트남 하노이 은혜의강교회를 담임하는 송명철 선교사는 “박항서 집사님은 원정경기 등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면 주일에 꼭 교회에 나와 예배 드린다”면서 “기도도 얼마나 간절하게 하는지 가장 늦게까지 남아서 기도하며 성도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송 선교사는 “박 집사님은 지금 베트남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인물로, 한국의 위상과 긍지를 높이는데 외교관 수십 명보다 더 훌륭한 일을 하고 계시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박 감독이 은혜의강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것은 베트남으로 옮겨온 직후부터다. 처음에는 가끔 예배 때 참여하는 정도였지만 2017년 송구영신예배 때부터는 예배는 물론 기도도 눈에 띄게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 송명철 선교사가 박항서 감독과 대화하는 모습.
송명철 선교사는 “박 집사님은 말이 별로 없고 조용한 분이라 많은 말씀을 하지는 않는다”면서 “시합을 앞두고는 저도 기도하고 있다고 격려해드리는데 지난 7월 1일에는 안수기도를 받고 갔다”고 말했다.
박항서 감독은 2017년 10월 25일 베트남 축구대표팀(23세 이하와 성인대표팀 겸임) 감독으로 공식 부임했으나 처음엔 환영 받지 못했다. 그러나 박 감독은 부임 3개월 만에 자신을 향한 불신을 일시에 잠재웠다.
베트남 대표팀을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베트남을 4위에 올려 놓았다.
세계의 선교 상황은 급격히 변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한국 선교는 서구에서 시작된 지난 200 여 년 동안의 선교적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키워드로 정리하자면 해외 및 타문화 선교, 복음전도와 교회개척의 우선성, 선교사를 통한 선교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일해오신 하나님 선교의 긴 역사 가운데 이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 선교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 나타났던 선교 사역임을기억해보자. 과연 미래에도 이 키워드 중심의 선교가 적합할까?
예를 들어보자. 한국 교회에 이미 다가온 가장 큰 선교적 과제는 통일을 전후로 한 동북아 국가들의 소통, 교류, 공존, 화목이 아닐까 싶다.
급격한 변화 가운데 필요한 것은 방법론이 아니다. 본질에 대한 성찰이 요구된다.
크게 세 가지 방향의 접근을 제시해본다.
첫째, 신학적 접근이다.
선교는 그 성격상 사람의 필요나 현장문화에서의 요구에 집중하기가 쉽다.
이럴 경우, 선교학은 결국 인간학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러나 선교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히려 현장에서의 필요에서 한걸음 떨어져서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생각해야한다.
즉 신학을 회복해야 한다. 과거, 교회가 선교적·사역적 열심으로 잘못된 신학을 만들거나 주장했을 때 일어났던 무수한 폐혜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 신학은 결코 탁상공론은 아니다. 인간 문화 속에서의 경험은 여전히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게 하는 해석의 상황을 제공해야 한다.
둘째 공동체적 접근이다.
에베소서에 의하면 교회는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역사와 세상을 변화시킴에 있어서 사용하시고자 오랫동안 준비해 오신 놀라운 비밀이다. 전체 하나님 백성의 모습과 그 사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운데 개인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대의 포스트모던 문화는 우리로 하여금 개인의 필요와 욕구에 집중케 하며 전체 하나님 백성을 향한 이해에 무지하게 한다. 내 개인이 하나님 음성 듣는 것보다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주신 선교적 사명을 이해함이 우선함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셋째 성경적 접근이다.
하나님 백성의 선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약의 일부 구절이 아니라 구약성경을 포함한 전체 성경적 기초에서 성찰을 시작해야한다.
예수님과 바울 모두 유대인이었고 복음서와 서신서 모두는 당연히 구약성경의 세계관을 전제한다. 선교는 총체적이며 사회적이며 공공적이다.
급변하는 변화 가운데 선교를 어디서 다시 시작해야할까?
성찰(省察)이다. 예수님의 공생애가 광야에서의 40일로 시작하였고, 바울은 사역 시작 전 아라비아 반도와 고향 다소에서의 긴 칩거가 있었음을 기억하자.
그 성찰은 하나님을 중심 주제로 하기에 신학적이며 과거의 교회사와 교리를 돌아보고 동시에 현재 전체 세계 교회와의 대화를 통해서 이뤄지기에 공동체적이며 동시에 인류학적이며 사도적 신앙과의 연결 가운데 확인될 것이기에 성경적 성찰이 될 것이다.
1. 인적 사항
① 사가랴는 ‘여호와께서 기억하고 계시다’라는 뜻. ② 세례 요한의 아버지(눅 1:59, 60).
③ 마리아의 친척인 엘리사벳의 남편(눅 1:5, 36). ④ 아비야 반열의 제사장(눅 1:5).
2. 시대적 배경
가이사 아구스도(Caesar Augustus, B.C.27-A.D.14년)가 로마 황제로 있던 시기, 그리고 로마에 의해 임명된 헤롯 대왕(the Great Herod, B.C.37-4년)이 팔레스틴 전역을 통치하던 당시의 제사장으로 활동한 인물.이 당시 유대는 로마 식민 통치 하에 정치적으로 매우 불완정했을 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극도로 타락해 있었다. 특히 헤롯은 겉으로는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등 종교 부흥을 위해 힘쓰는 것처럼 보였으나 유대 사회의 최고 지도자인 대제사장직을 자기권한 아래 둠으로써 종교를 정치 도구화하였다. 때문에 대부분의 종교 지도자들은 강한 정치적 색채를 띨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암울한 시기에 사가랴는 성실하게 반차에 따라 성전에서 봉사하는 매우 경건한 제사장이었다.
3. 주요 생애
4. 성품
① ‘주의 모든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한 의인’이라 칭함 받을 정도로 신실하고 실천적인 신앙의 소유자(눅 1:6).
②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받을 만큼 자신의 직무에 충실하고 당시 타락한 많은 종교 지도자들과는 달리 신실한 믿음을 소유한 자(눅 1:5-17).
③ ‘너의 간구함이 들린 지라’는 천사의 증거를 볼 때 아이를 얻기 위해, 즉 자신의 문젯거리를 놓고 기도에 힘쓴 자(눅 1:13).
④ 천사의 예언을 듣고도 자신의 나이를 먼저 생각하여 의심한 것으로 보아 한순간 믿음보다 인간적 생각과 이치를 앞세운 자(눅 1:18).
⑤ 아이를 낳자 천사의 지시대로 아들의 이름을 요한이라 지은 것으로 보아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돌이켜 믿음을 회복한 자(눅 1:57-63).
5. 구속사적 지위
① 하나님의 사자를 대면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할 세례 요한의 탄생을 예고 받은 자(눅 1:11-17). ② 하나님 앞에 의인이라 칭함 받은 자(눅 1:6).
③ 하나님을 신실히 섬기는 의인이면서도 잠시 하나님을 의심하는 인간적인 한계를 보여 준자(눅 1:6, 8).
④ 구약 최후의 예언이며 동시에 신약 최초의 예언인 ‘베네틱투스’라 불리는 찬양시를 남긴 자(눅 1:67-80). ⑤ 소원 기도로써 아이를 얻은 자(눅 1:13).
6. 주요 업적
①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 없이 행함(눅 1:6).
② 세례 요한을 낳아 하나님을 위해 일하도록 잘 양육함(눅 1:63, 76, 80).
③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하나님의 구원에 대하여 찬양으로 예언함(눅 1:67-80).
7. 주요 실수
① 천사의 수태고지를 듣고도 자신과 아내의 나이를 생각하여 이를 믿지 못함(눅 1:8-18).
② 천사의 예언에 나타난 메시야에 대한 내용을 간과해 버림(눅 1:8-20).
8. 평가 및 교훈
① 주의 사자가 사가랴에게 나타난 시기는 사가랴가 당시 제사장 계급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타락한 시두개인들과는 달리 묵묵히 자신의 직무에 충실하게 제사 직무를 행하고 있을 때였다(눅 1:8-11).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세상과 야합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직분에 충실한 자를 축복하신다. 우리 성도들도 각자의 위치에서 주께서 맡기신 일을 충실히 감당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더 큰 일을 맡기시고(눅 19:17), 종국에는 생명의 면류관을 허락하실 것이다(계 2:10).
② 주의 사자의 수태고지를 받은 사가랴는 자신과 부인의 나이든 것 때문에 이를 의심하였다(눅 1:18-20). 참으로 자녀 얻음을 위해 오래도록 기도했던 그가, 또한 ‘하나님 앞에 의인’이라 칭함 받은 그 조차도 하나님을 의심한 것이다(눅 1:6, 13, 18).
이는 하나님을 잘 섬긴다 하면서도 내 형편과 이성으로 납득이 안 갈 때 하나님을 의심하는 우리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 준다. 그러나 사가랴의 이같은 의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일을 반드시 행하셨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가, 아니 내가 의심하는 그 일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라면 분명히 성취되어질 것이다. 또한 본문의 사가랴처럼 우리가 때때로 우리의 간구가 더디 이뤄진다하여 그 응답조차 포기했을 때도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기억하사 자비를 베푸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③ 당대의 의인으로 널리 알려진 사가랴도 주의 사자를 통해 에언된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함으로써 벙어리가 되는 징계를 받았다(눅 1:18-22).
이처럼 인간의 의로움은 한계가 있으며 더더욱 불 신앙과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인간이란 하나도 없다(롬 3:10). 이러한 인간의 속성을 생각할 때에 무흠하신 그리스도께서 어찌할 수 없는 죄인인 우리들을 위해 대속제물이 되사 구원을 얻게 하신 사건은 그야말로 복음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이를 생각할 때 우리가 어찌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겠는가!
④ 불 신앙으로 말미암아 벙어리가 된 사가랴가 천사의 지시대로 아들의 이름을 ‘요한’이라 지었을 때 비로소 입이 열리고 말을 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다(눅 1:10-22, 64).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순종을 지극히 기뻐하심을 깨닫게 된다. 이에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본분임을 기억하여 주의 말씀아래 겸손히 부복하여야 하겠다(삼상 15:22).
⑤ 한동안 벙어리였던 사가랴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제일 먼저 하나님을 찬양하였다(눅 1:64). 이처럼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능력을 체험한 인생은 그 은혜에 감사의 찬양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성도들이 받은 가장 큰 은혜는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은혜다. 우리는 늘 이 은혜를 생각하여 우리의 입술을 통해 새 노래로 여호와께 감사의 찬양을 드리는 자들이 되자.
경기도 청평에서 신천지대책 청평범시민연대 회원들이 8월 25일 토요일 피켓을 들고 신천지 박물관 건립 반대를 천명하고 나섰다.
지난 주에 저의 목양칼럼 ‘광대 목회, 광대 설교’의 글이 네이버와 다음에 실렸는데 반향이 제법 컸다고 합니다.
많은 분들에게 신선한 충격이 되었지만 개중에는 비판하는 분도 있었다고 하지요. 비판의 골자는 설교자와 복음의 격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죠.
즉 약장수 같은 설교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백 번 옳은 말이라고 여겼습니다. 왜냐면 광대 설교론을 잘못 이해하여 설교자가 청중들에게 엔터테인먼트나 하는 유사광대노릇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새에덴교회 예배 모습
광대 설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 설교자의 바보스러움과 역설입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행동과 설교를 봐도 당시 정황에서 보면 바보스럽고 역설적일 때가 있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 역시 자신이 십자가의 복음을 전할 때 구경거리(광대)가 되었다고 했잖아요.(고전4:9-10)
두 번째 중요한 것은 성경 본문과 청중을 향한 애절함과 열정입니다. 억지로 청중을 웃기고 폭소를 자아내려고 하는 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설교가 개그콘서트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가수들도 대중적 소통과 감동을 위하여 청중을 향한 애절함과 예술적 투혼을 발휘하지 않습니까? 하물며 설교자는 시대와 소통하고 청중을 감동시키기 위하여 이런 애절함과 열정이 더 있어야 하겠지요. 바로 그 애틋한 열정과 신앙적 투혼으로 이 시대에 하나님의 마음과 아픔, 그리고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청중의 가슴에 울렁거리도록 전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세 번째는 필요에 따라 설교자의 자기 부인, 자기 비하가 필요합니다. 일부러 설교자가 바보가 되라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복음을 더 잘 드러내고 하나님의 마음을 더 잘 전달하기 위하여 자기 부인이나 비하를 통하여 하나님의 광대가 되자는 것이죠.
지금까지의 기존 설교학은 성경 본문 속에서 설교의 씨앗을 찾아내어 신학적 논리로 3대지 설교를 만들어왔습니다. 그리고 3대지의 메시지를 잘 전달하기 위해 본문과 적절히 연결되는 예화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다가 조금 발전한 설교가 ‘스토리텔링’이었습니다. 80년대 이후에 생겨난 미국의 새로운 교회, 곧 커뮤니티 처치는 대부분이 스토리텔링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미국의 설교학자 스콧 깁스의 표현대로 교회 공동체성이 상실되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남아공의 스텔른보쉬대학의 학자들을 중심으로 광대 설교이론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에 의하면 광대 설교를 하게 되면 몇 가지 결과가 나타난다고 하는데요, 첫째는 바보스러운 교회 공동체, 둘째는 역설적 교회 공동체, 셋째는 교회의 공공성과 공동체성이어야 한다고 하죠.
이것은 성경이 말씀하는 교회 모습이기도 합니다. 물론 설교자가 광대가 되지 않고 설교자의 격을 높이며 설교 전달 방법 역시 아주 중후하고 격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게 하면서도 교회가 바보스러운 공동체를 이루고 역설적 공동체를 이루며 공공성과 공동체성을 회복할 수 있다면 말이죠.
그러나 지금 한국교회는 설교자의 격이 정형화되고 고품격 콘텐츠의 메시지가 전달이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교인들은 영악하고 똑똑해 지는 걸까요?
왜 그토록 자기 선악의 논리와 윤리적 기준으로만 판단하며, 서로 증오하고 다투며 분열을 반복하고 있는 걸까요? 지금 한국교회는 과연 공동체 회복과 공공성의 교회를 세우고 있습니까? 서로 힘을 모아 교회 생태계를 지키려고 킹덤처치를 세우고 있는가요?
설교하는 소강석 목사
광대 설교론이란 절대로 엔터테인먼트나 각설이 타령식의 속화적 설교를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복음과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더 드러내고 시대와 청중을 향해 대중적 소통을 하기 위해서 애절함의 혼을 가지고 때때로 바보스러움과 역설적 자기비하를 하자는 것이죠.
그러면 진정한 광대 설교와 짝퉁 광대 설교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간단합니다. 청중을 울리건 웃기건 간에 그 목적이 하나님께 유익이 되고 영광이 되며, 동시에 청중의 가슴에 울먹이는 감동을 주기 위함에 있다면 진정한 광대 설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설교자의 자기 유익과 인기를 위하여 그렇게 하는 것은 사이비 광대 설교요, 짝퉁 광대 설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우리 교회는 철저하게 바보스러운 공동체를 이루어 왔지 않습니까? 우리 교회가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12년째를 해 왔잖아요. 더구나 우리 교회 부흥과는 전혀 관계도 없는 한국교회 생태계 보호를 위한 사역을 변함없이 해 왔지요.
이런 바보스러운 공동체를 이루지 않았더라면 저는 진작 우리 교회에서 쫓겨나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성도들의 바보스러움 때문에 우리 교회는 여전히 역설적 공동체를 이루고 있고 사나 죽으나 전도와 기도, 사명 밖에 모르는 젊은 교회로 매주 다시 태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공공성과 공동체성을 발휘하여 묵묵히 한국교회를 섬기며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결코 설교자의 격을 운운하다가 청중에게 전혀 감동을 주지 못하는 고지식한 설교자보다는 복음과 하나님의 사랑으로 시대와 소통하며 청중에게 울먹임과 감동을 주는 진정한 하나님의 광대가 되고 싶습니다.
웸세계복음 선교협의회(이사장 박요한 목사, 대표회장 강명이 목사)가 캄보디아 씨앰립교회, 번테스라이교회, 프놈수록교회 등 현지에서 원주민 대상 전도 집회를 열고, 하나님의 기쁜 소식을 전했다.
이날 집회에서는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 당하는 캄보디아 원주민 마을의 주민들에게 복음과 빵으로 삶과 새로운 나라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고, 이들의 삶 가운데 하나님을 드러낼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특히 원주민들은 이사장 박요한 목사와 대표회장 강명이 목사의 설교와 찬양에 감동을 받고, 수많은 원주민들이 하나님을 영접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이 집회에 참여한 목회자들은 복음과 빵으로 가난과 질병의 고통을 나누며, 모든 사역을 영광을 성삼위 하나님께 돌렸다.
앞서 동 협의회는 지난해 10월 화재민 마을에 부지 9900㎡에 연건평 1650㎡ 규모의 문화센터를 개원해, 한글학교, 영어학교 청소년쉼터, 유치원 및 초등학교, 한국무용 및 음악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이와 함께 동 협의회는 의료봉사교실도 개설해 질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위로하고, 캄보디아 현지 목회자들을 바르게 양육하기 위한 신학교도 세울 계획이다.
덴마크는 훌륭한 목회자이자 정치인이자 예술가이자 교육자인 그룬트비 목사가 있고. 세계적으로 알려진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키엘 케고르와 세계적인 동화작가 안데르센을 배출한 나라다. 덴마크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13명이고, 코펜하겐대학에서만 8명이 수상했다. 인구 540만 명의 작은 나라에서 대단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 덴마크한인교회 오대환 목사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국제공항에서 20분 거리의 한 주택가에는 ‘코리아센터’라고 적힌 아담한 2층 주택이 있다. 1926년에 건축됐으며 1960년대 개축한 집이라고 한다.
덴마크를 찾는 한국인들이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유일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1999년 문을 연 ‘한국인의 집’이다.
‘한국인의 집’을 운영하고 있는 이는 덴마크한인교회 오대환 목사다. 1991년 덴마크 땅을 밟은 오 목사는 1999년부터는 ‘한글학교’ 교장을 맡아 섬기고 있다.
한국 대사와 대사관 직원들은 임기가 되면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한다. 오 목사는 지난 27년 동안 300여 명의 한인들의 든든한 등대지기가 되어 한인들의 영적․ 정신적 지도자로, 멘토로, 상담자의 역할을 감당해왔다.
지난 17일 저녁 ‘한국인의 집’을 찾았다. 덴마크 축구클럽 4부 리그에서 뛰고 있는 스물일곱 살의 무명의 축구선수와 부산에 있는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는 학생은 이곳에 있는 설계사무소의 인턴으로 1년 간 일하기 위해 와서 이곳에 머물고 있다. 이 나라의 물가와 집세를 고려할 때 이만한 생활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덴마크에는 현지인과 결혼한 한국 여자들이 꽤 있습니다. 한국에 파견되어 근무했던 이들과 결혼해서 이곳에 와서 살고 있는 것이지요. 그들을 포함해서 한인들에게 가정적으로 갈등이 생기면 언제든지 이곳에 와서 쉬었다 가라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다. 덴마크를 찾았다가 여권을 잃어버린 사람들도 대사관을 통해 소개를 받고 이곳을 찾아와 머물다가 가기도 한다. 덴마크에 공부하려고 찾아온 젊은이들도 이곳을 찾는다.
▲ 한국인의 집(코리아센터) 앞에서 오대환 목사
오 목사는 ‘한국인의 집’에 거주하는 이들을 위해 직접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다가 음식을 만들고, 밥을 지어 내놓는다.
오 목사는 한글학교 교장으로도 열심이다. 7명의 교사가 섬기고 있고, 덴마크 사람들 중심의 성인반과 아빠가 덴마크 사람이고 엄마가 한국 사람인 아이들 중심의 아이들반 등 60여 명이 수강하고 있다. 현재 ‘한글학교’는 핀스처치 교육센터를 빌려서 토요일 오전 9시30분부터 12시 30분까지 진행하고 있다.
오 목사는 이 같이 교민사회의 융화와 복지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정부로부터 대통령 표창과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오 목사는 신학교 졸업을 앞두고 선교학 교수로부터 덴마크 선교사로 가면 어떻겠는가 하는 제안을 받았다. 그는 하나님의 뜻으로 믿고 1991년 1월 이곳에 첫발을 내딛었다.
“무척 추웠는데요. 저를 안내한 집사님이 파롬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 집 지하에 우리 가족 방을 꾸며 놨더라고요. 그 집에서 가정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지요.”
오 목사는 그해 6월에 덴마크한인교회 설립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한 달 만에 이민국으로부터 불법상태라면서 추방명령을 받았다. 그래서 다시 한국에 들어가서 비자를 신청하고, 2개월 남짓 있다가 독일 함부르크로 갔다. 그곳에 방을 얻어놓고 가족들을 불렀다. 3개월 만에 재회한 것.
그러면서 이곳 성도들과 통신으로 교제하면서 부인이 한국인인 현지인이 사정을 듣고 오 목사를 돕겠다고 나섰다. 그는 정부의 종교성장관실에 직접 들어가서 오 목사의 비자 발급 건을 종교성이 파악하고 있는지 물었다. 비자는 내무부장관이 발급 여부를 판단한다.
그는 오 목사가 한국에서 비자 신청을 했고, 접수되어 있는데 내무부가 처리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내무부에 강력하게 항의를 했다. 그러자 이 문제를 크게 확대하지 않으면 비자를 발급해 주겠다고 답변을 했다고 한다.
▲ 독일인교회, 프랑스교회, 덴마크한인교회가 함께 사용하고 있는 교회.
그러자 오 목사는 덴마크에 들어와서 조치를 기다릴 수 있게 해달라고 제안했다. 이민국은 불법 상태로 추방된 상태이기 때문에 6개월 안에는 다시 들어올 수 없다고 했다. 오 목사는 이민국도 책임이 있다고 항의를 했고, 이민국이 수용을 했다. 비자가 발급될 때까지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으로 비공식 입국을 허용했다.
비자 발급의 우여곡절 속에서도 28년의 세월이 흘렀다. 독일인교회에서 주일 오후 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사용한다. 독일인교회는 올해로 329년이 된 역사적인 교회다. 루터교회가 아닌 칼빈주의를 지향하는 개혁교회로 프랑스교회, 한인교회, 독일인교회가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3년 전부터는 가나교회도 이곳을 사용하고 있다.
“독일인교회, 프랑스인교회, 한인교회 등은 개혁교회총회를 구성하고 매년 총회를 거쳐서 유럽개혁교회와 함께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습니다. 한인교회는 매년 7000크로나(한국돈 130만원)를 회비로 내고 있습니다. 비자 때문에 가입을 했는데, 세계개혁교회 회원교회로 등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곳에 온 지 8년 만에 비자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었어요. 나중에 정년퇴직을 해도 복지걱정이 없을 정도로 연금혜택을 받기 때문에 노후 걱정을 안 해도 됩니다.”
덴마크한인교회는 대사관 직원, 코트라 직원, 대학교수들, 연구소 연구원, 소수의 교민들, 소수의 유학생들이 출석하고 있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귀국한다. 올해만도 5-6가정이 귀국했다. 그래도 새로운 가정이 3~4가정이 들어온다.
오 목사는 1992년부터 1996년까지 <사랑이 강물처럼>이라는 A3 양면으로 된 한국뉴스를 발행했다. 한국 뉴스를 단신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또한 <진리가 자유를>이라는 설교 내용 전문을 실어서 덴마크 한인들에게 한 달에 두 번씩 발송했다.
특히 <사랑이 강물처럼>은 전 한인에게 발송했고, 스웨덴, 독일, 스위스, 스페인, 오스트리아 등 유럽의 여러 한인교회들에게 발송했다. 무료로 보냈는데, 독자들이 우표를 구입해서 보내주기도 했다. 전동타자기로 제작하다가 워드프로세스로 작업을 했다. 발행을 중단하게 된 이유는 눈이 극도로 피로한 증세 때문이었다.
▲ 오대환 목사 발행했던 [사랑이 강물처럼]
오 목사는 ‘한국인의 집’을 매물로 내놓았다. 규모를 축소하려고 한다. “한국인의 집은 한인교회나 정부에서 공식적인 예산지원이 전혀 없습니다. 교회에서 사례비 일부와 집사람이 공항에서 일하면서 받은 급여의 일부 등으로 연간 2000만원의 재정이 소요됩니다. 연간 내는 가옥세가 한국 돈 500만을 내고, 3개월마다 240만원을 할부금으로 들어갑니다.‘
이처럼 전기세와 물세를 제외하고도 많은 재정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사용 빈도가 낮아진 것도 규모를 축소하려는 이유다.
덴마크하면 낙농국가라는 인식이 있다. 그런데 사실은 알고 보면 첨단기술공업국가다. 한국의 조선소에서 제작하는 선박 설계 도면과 선박 엔진이 덴마크에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6.25 때는 전투병은 파송 안 했지만 의료지원을 했다. 당시 유틀란트호라는 의료선을 부산항에 정박해놓고 군인들을 치료했다. 전쟁이 끝난 후 의료장비를 기증하고 왔다. 또한 서울 을지로 6가에 있는 국립의료원을 지어주었다. 당시 노르웨이, 스웨덴도 참여했지만 덴마크가 중심이 되었다.
덴마크는 루터교가 국가교회로 85퍼센트 국민이 루터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극소수만 정기적으로 예배를 참석하고 있다. 태어났을 때, 세례식 때, 결혼식 때, 죽었을 때 등 평생 네 번만 교회를 간다는 말이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을 정도다.
이 나라에서 ‘자유학교’(프리스쿨)를 통한 신앙인재를 키워내고 있다. 전국에 20여 개의 자유학교는 공립학교가 아닌 측면에서 볼 때는 대안학교다. 한국에서처럼 학력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학력을 인정받는 학교다. 대학에 입학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 오대환 목사는 지난 2016년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자유학교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신앙과 학습효과입니다. 공립학교보다 수준이 높고, 교사는 신앙고백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교사들이 참으로 성실하게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신앙인재를 키워내는 산실이 되고 있다. 자유학교 출신들 중에는 하버드대학교 세계적인 유수한 대학에 입학을 하고 있다.
오 목사는 공립학교 교육 체계도 한국의 공교육에서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폴크스쿨(초등학교)이 9년제인데, 7학년까지 숙제와 시험이 없습니다. 학교의 목표는 배움의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합니다. 그리고 ‘얀테의 법칙’이라고 해서 잘 났다고 생각하지 말라, 끝없이 올라가려고 하지 말고 옆에 있는 사람을 살피면서 보조를 맞춰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칩니다. 수직적 질서보다 수평적 질서를 강조하는 것이지요.”
오 목사는 이 같은 덴마크의 학교 교육의 긍정적인 면을 한국에 알리는 일도 하고 있다. 대안학교인 소명중고등학교를 비롯해 여기저기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오 목사가 덴마크에 대해 높이 평가하는 것 중에는 지구 온난화에 대비한 덴마크 정부의 노력이다.
“빙하에 창고를 만들어 세계의 씨앗을 저장하려는 계획이나, 지붕에 물탱크를 설치하여 허드렛물로 사용하는 것, 시내의 차선을 축소하고 나무와 잔디밭을 조성하는 것, 코펜하겐에서 기차로 1시간 30분 떨어져 있는 오덴사에 온난화를 대비하여 물 저장고를 만들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배워야 할 점입니다.”
덴마크 국회의사당 건물에는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국회의원들이 출근할 때마다 국민을 위해 고뇌하는 정치인이 되기를 다짐하게 한다고 한다. 덴마크 국회의원들 중에는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한다. 국회의원 보좌관은 없다. 다만 국회의원이 연구가 필요할 경우는 국회 사무처에 배치된 인력을 지원 받는다고 한다.
▲ '한국인의 집'에 생활하고 있는 청년과 함께 저녁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 오대환 목사(우)
전남 곡성군 석곡면 연반리 해주 오가 집성촌에서 태어난 오 목사는 어머니 등에 업혀 석곡교회를 다녔다. 고향인 연반리에 연반교회가 설립되어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주일학교 반사를 했다. 당시 중학교 1학년 120명 중에 오 목사만 교회를 다녔다.
이후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세운 순천 매산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순천중앙교회 주일학교 서기를 맡아 봉사하다가 순천제일교회로 학생회 활동을 했다. 학생회지 <계명성> 편집장을 맡기도 했다.
덴마크 한인들의 든든한 등대지기 오대환 목사는 지난 1월 98세의 노모와 지상에서 이별을 했다.
“어머님은 평생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특히 제가 목회자가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저를 깨우셔서 새벽기도를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선교사로 파송된 후에도 밤을 새워가면서 교회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어머니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사역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 목사는 덴마크에서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신자와 비신자 구분하지 않고 한인들을 사랑으로 섬기고 있다. 시집 간 딸이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친정을 찾듯이, 한인들도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오 목사를 찾고 있다. 그가 덴마크에 계속 머물러 있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덴마크 한인사회의 든든한 등대지기로 한인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밤하늘에 불을 비추고 있다.
열왕기상8:20-60을 보면 솔로몬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고 "(왕상8:20), "여호와의 언약 넣은 궤를 위하여 한 처소를 설치하고"(왕상8:21) 여호와의 단 앞에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마주서서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여호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솔로몬의 대표기도(공중기도)를 볼 수 있다.
그 기도의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이 있고(왕상8:22-23),
이어서 "하나님께서 하신 언약에 대한 확신" 곧 "말씀의 확신"이 있고(8:24-26),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종이 오늘날 주의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하는 "기도와 간구"가 있고(8:27-29), "회개와 용서와 사죄의 은총과 사유하심"에 대한 간구가 있으며(8:30-40),"중보기도"(8:41-53)와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한 축복기도"(8:55-60)가 있다.
솔로몬의 대표기도의 내용을 보면
1) 하나님에 대한 찬양,
2)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
3) 회개와 사죄에 대한 은총,
4) 기도와 간구
5) 중보기도 그리고
6) 축복기도로 되어있다.
일반적으로 기도의 내용은
1) 하나님에 대한 찬양(Adoration),
2) 회개(Confession),
3) 감사(Thanksgiving),
4) 간구(Supplication),
5) 중보기도(Intercession)로 되어있는데 솔로몬의 기도는 구체적으로 감사의구절은 별도로 나타나 있지 않으나, 기도의 전체적인 내용이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뜻을 담고 있다(8:27, 53, 61).
이와 같이 볼 때에 솔로몬도 일반적인 기도의 내용을 벗어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성경에 나오는 공중기도의 다른 예를 살펴보면, 특별한경우에특별한목적을위하여드린공중기도가있다.
"12사도중결원을보충하기위하여 드린기도"(행1:24-25),
"안수집사를 세우기위하여드린기도"(행6:6)등 여러형태의대표기도가 있음을 알수있다.
1. 기도인도란?
기도인도란 쉽게 말해서 많은 사람 중에 한 명이 회중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따라서 기도인도를 하시는 분은 회중 모두가 기도의 주체자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기도인도는 회중을 대표하여 드리는 기도이기 때문에 기도의 성격과 내용이 개인에 관계된 기도 내용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주의해야만 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기도인도의 자리가 사사로운 인간의 감정을 들추어내는 자리로 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기도인도는 어떻게 하는가?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기도의 형태가 그렇듯이 기도인도의 형태도 마찬가지입니다. (1) 찬양과 감사, (2) 죄에 대한 고백, (3) 회중 전체의 염원과 소망을 담은 간구, (4) 기도를 들어주실 것에 대한 신뢰와 확신, (5)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으로 끝을 맺습니다.
3. 기도인도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교회의 공식 예배의 경우 사전에 기도인도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한 달 전, 또는 한 주 전에 기도인도 담당자를 교회소식지에 기재합니다. 따라서 자신이 기도인도 담당자라는 것을 알고 그 때부터 준비하면 됩니다. 그러나 자신이 언제라도 대표로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항상 기도인도를 준비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4. 기도인도 시 기도에 꼭 넣어야 할 내용
기도인도는 주일예배의 경우 주마다 내용이 다를 수 있지만 다음의 내용은 꼭 기도내용에 넣어 주시기 바랍니다. (1) 그날 드려지는 예배와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과 말씀을 위한 내용, (2) 교회의 표어와 그 주간에 있을 교회의 중요한 사역에 대한 내용, (3) 나라와 민족, 그리고 고통 받는 이웃을 위한 내용, (4) 주일 예배를 돕는 찬양대나 여러 봉사자들을 위한 내용입니다.
5. 기도인도 시 유의해야 할 사항
(1) 기도시간이 적절해야 합니다.
기도인도시간이 길어지면 예배 시간의 전체적인 조화가 깨지지 쉽고, 회중이 지루해 하고, 설교시간을 제한하게 합니다. 따라서 기도인도 시간은 2~3분 정도 되도록 준비하면 됩니다.
(2) 탄원과 원망과 원성이 섞여 있으면 안 됩니다.
기도인도 시간을 통하여 교회에 대한 불만이나 불평을 늘어놓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께로 향하여 있는 성도들의 마음을 막을 수 있습니다.
(3) 설교 식으로 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간혹 기도인도자 중에 하나님께 대한 설교인지, 혹은 광고인지, 기도인지를 분간할 수 없이 기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같은 기도는 기도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것이기에 각별히 주의하셔야 합니다.
(4) 될 수 있으면 온 회중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평범한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5) 기도의 습관적인 잘못된 용어는 고쳐야 합니다.
사람마다 그 사람에게 독특한 습관이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혹은 ‘아버지’ 라는 말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고 부르는 매우 은혜로운 말이지만, 말끝마다 ‘아버지 하나님’을 연발하는 기도습관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또한 ‘주여’ 하면서 한 숨을 내쉬듯 하는 버릇은 듣는 이로 하여금 오해를 유발시킬 수 있으므로 은혜로운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이런 습관적인 말은 고치는 것이 좋습니다.
(6) 하나님, 예수님에 대하여 ‘당신’이라는 단어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당신’이라는 말이 상대방을 향한 극존칭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을 향해서 ‘당신’이라고 부르는 것은 좋은 언어적 표현이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하여 ‘당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하나님을 격하시키는 것이 되고 무례함을 범하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7) ‘지금은 처음시간’이라는 표현은 틀린 표현입니다.
예배의 시작을 알리면 이미 예배는 시작된 것입니다. 예배 인도자의 기도를 시작으로 찬송, 성시교독에 이어 기도인도자가 나와 기도인도를 하기 때문에 예배의 처음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처음 시간이오니(혹은 시작하는 시간이오니) 마치는 시간까지”라고 기도합니다. 또한 “예배의 시종을 주님께 의탁합니다”라고 합니다.
둘 다 ‘예배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마치는 시간까지’로 바꾸어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8) 기도인도 시 바르게 사용해야 할 표현들
① 당회장(당회의 의장이라는 의미임) → 담임목사
② 제단(십자가 밑에 성경을 놓아두고 촛대를 둔 곳, 제사를 지내는 단) → 교회
③ 예배를 보다(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것임) → 예배를 드리다 또는 예배하다.
④ 대예배(예배는 크고 작은 것이 있는 것이 아님) → 주일 낮예배 혹은 주일예배
⑤ 우리(우리라는 말은 낮추는 말이 아님) → 저희
⑥ 성가대(성가를 부르는 대원이 아니라 찬양하는 대원임) → 찬양대
(9) 기도는 하나님께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기도 시간에 예수님께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우리의 기도제목을 아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며 기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대상은 이 땅을 섭리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0) 기도시간에 드려지는 사죄의 기도는 빼도록 합니다.
이 부분은 예배에 따라 약간 다릅니다. 1-2부 예배의 경우, 이미 예배 인도자가 참회의 고백과 사죄의 선언을 합니다. 따라서 기도인도 시에 따로 우리의 잘못을 아뢸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3부 예배의 경우, 이 시간이 없기에 기도인도 시에 반드시 포함되도록 합니다. 그러나 너무 길어질 경우 예배 분위기가 정죄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짧게 하도록 합니다.
(11) 기도의 어미(語尾)를 통일합니다.
예배 중 드려지는 기도를 보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하여 주소서. ~해 주십시오.”등의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기도를 마칠 때 “기도하였습니다. 기도드립니다.”등의 표현도 사용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엄밀히 말하면 큰 문제는 없지만, 기도인도마다 달라지는 것으로 인해 교우들이 혼란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능한 간구 시에는 ‘하옵소서. 또는 ~하여 주옵소서.’로 마치고, 기도를 완전히 마칠 때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으로 마쳐주시면 교회가 은혜 가운데 예배에 집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12) 각 예배의 기도문은 미리 작성해서 기도시간에 읽도록 합니다.
평소에 미리 기도하며 적어오는 준비된 기도에도 성령의 감동이 있습니다. 나아가 잘 정리된 기도는 짧은 예배 시간에 성도들이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집중하게 합니다. 즉흥적 기도는 중언부언할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 귀한 주일예배에 저희를 불러주셔서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목말라 나왔사오니 영과 진리로 예배하게 하시고 하늘의 은혜와 소망으로 충만한 예배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한 주간 동안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하고 실수하고 넘어진 저희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 삶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내가 주인되어 판단하고 결정하였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동료들에게 친절하게 말하지 못하고 때로는 거친 말과 분을 내기도 하였습니다. 이 시간 예수님의 거룩한 보혈로 저희를 덮으셔서 순결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요즈음, ○○○ 사건으로 온 국민이 슬퍼하고 있습니다. 고통당한 사람들을 위로하여 주시고, 남은 과제들을 잘 해결하여 나라가 안정되고 평안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이 나라 대통령과 위정자들에게 지혜를 주셔서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한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전 교회가 ‘우리의 지경을 넓히소서’라는 주제로 믿음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는 이때에, 우리의 믿음의 지경이 넓어지게 하시고, 축복의 지경 그리고 영향력의 지경이 넓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이번 주간에는 교회내에 다양한 행사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행사가 주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시고, 생명을 구원하는 귀한 열매가 맺어지게 하옵소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OO찬양대의 찬양을 기뻐 받으시고, 말씀을 전하시는 담임목사님과 말씀을 듣는 저희들에게 하늘의 큰 은혜와 평강이 넘치게 하시며, 온 회중이 전심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예장통합 총회(기독교용어위원회) 제87회 총회에서 고쳐야 할 기독교 용어 18개와 사용하지 말아야 할 용어 19개 등 총 37개를 상정, 통과시켰습니다.
1. 당신 → 하나님,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 아버지, 당신께서 세우신 이 교회를…”과 같이 하나님을 ‘당신’이라 부르는 것을 종종 보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말을 직접 들으시는 분으로서 2인칭이다. 우리말 2인칭 ‘당신’은 결코 존대어가 될 수 없다. ‘당신’은 다만 3인칭에서는 극존대어로 쓰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3인칭이 될 수 없고 우리 간구를 들으시는 분으로서 2인칭에 해당되므로 ‘당신’이란 호칭은 안 된다.
2. 기도드렸습니다(기도하였습니다) → 기도드립니다(기도합니다)
기도를 끝낼 때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와 같이 동사 ‘기도하다’의 시제를 현재형으로 써야 하는데 요즈음 이를 ‘기도하였습니다’, ‘기도드렸습니다’와 같이 과거형을 쓰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는 것을 본다. 이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 기도(祈禱)는 글자 그대로 그 핵심이 하나님께 아뢰는 우리의 간구다. 간구의 내용은 소원이며 소원은 미래 지향적이다. 이러한 미래 지향적인 소원을, 즉 우리의 바람을 ‘기도하였습니다’로 끝낼 수는 없다. 기도의 핵심인 간구의 내용은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영원한 현재성을 띠고 있다. 그러므로 기도의 마무리는 과거가 아닌, 현재로 끝내는 것이 옳다.
3. 주여. 하나님 아버지시여 → 주님. 하나님 아버지
기도할 때 하나님을 향해 ‘주여’, ‘주님이시여’, ‘하나님이시여’, ‘하나님 아버지시여’라 부르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어법상의 문제가 있다. 즉 2인칭 존칭 명사에 호격 조사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현대 국어에서는 2인칭 존칭 명사에 호격 조사가 붙지 못한다. 2인칭에는 존칭이 아닌 경우에 한하여 호격 조사 ‘-아’나 ‘-야’가 붙을 수 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하나님은 존칭의 2인칭이 되기 때문에 이미 사어가 된 ‘-이여’, ‘-이시여’를 붙여서는 안 되고 그저 ‘주님’, ‘하나님’, ‘하나님 아버지’로 해야 옳다.
4. 우리 성도님들이 → 저희들이, 교회의 권속들이…등등
국어 존대법에서는 청자(聽者)가 최상위자일 경우 다른 어떤 인물에게도 존대를 쓸 수 없다. 공중기도에서 기도 인도자는 회중과 동일한 입장, 동일한 위치에 서 있는 것이다. 즉 기도 인도자는 회중과 동격이다. 그러므로 지존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에서 회중을 가리켜 ‘우리 성도님들’이라 존대를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단순히 ‘저희들’, ‘교회의 권속들’ 등으로 바꾸어야 한다.
5. 대표기도 → 기도 인도
예배 순서 가운데 기도 시간이 되면 예배 인도자가 “우리를 대표해서 ooo님이 기도하시겠습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ooo님이 기도하시겠습니다.”와 같은 안내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적절한 표현이 못된다. 온 회중이 머리를 숙여 무언의 기도를 할 때 한 사람이 소리를 내어 기도를 할 경우 우리는 이를 ‘기도 인도’라 부르는 것이 좋다.
⇒ 기도 인도자는 기도의 대표자가 아니다. 그는 대표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것이 아니며 그와 함께 머리를 숙인 온 회중의 생각을, 즉 그들의 소원을 보다 깊게, 보다 하나님 뜻에 맞게 그 절차를 정리해 주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다. 기도 인도자가 기도할 때 회중은 결코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에게는 대표성이 인정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에게는 대표성이 인정될 수 없다. 만인제사장의 사상은 하나님 앞에 대표성을 인정하지 않는 신학사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도 기도에 있어서 ‘대표’, ‘대신’은 불가하다. 그러므로 ‘대표기도’, ‘대신하여 기도…’는 ‘기도 인도’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
6. 사랑의 예수님 → 사랑의 하나님
기도 서두에 ‘…하나님’ 대신에 ‘사랑의 예수님’, ‘고마우신 예수님’ 등으로 하나님 아버지가 아닌 예수님을 호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기도를 끝낼 때 반드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하기 때문이다. 즉 예수님에게 우리의 소원을 아뢴 후 다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 우리 기도는 일차적으로 성부 되신 하나님 아버지께 성자 되신 예수님 이름으로 아뢰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이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6)고 하신 말씀에 근거를 둔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도 그 서두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되어 있다. 역시 이 속에도 성부 하나님의 개념이 내포돼 있다.
7. 참 좋으신 하나님 → 거룩하신, 은혜로우신, 전능하신, 진실하신, 자비로우신…하나님
기도 서두에 하나님을 부르면서 그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수식어를 붙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수식어로 요즈음 ‘참 좋으신’과 같은 말이 사용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이것은 재고를 요하는 말이라 하겠다.
⇒ 즉 성경에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수식어로 쓰인 말들을 보면 ‘거룩하신’, ‘만유의’, ‘생명의’, ‘신실하신’, ‘의로우신’, ‘자비하신’, ‘영원하신’, ‘위에 계신’, ‘능력이신’, ‘진실하신’, ‘구원하시는’, ‘하늘에 계신’, ‘사유하시는’, ‘은혜로우신’, ‘보수하시는’, ‘지극히 높으신’, ‘홀로 하나이신’, ‘천지를 지으신’… 등과 같이 대부분 객관적으로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말들이 수식어로 쓰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참 좋으신’은 이 범주에 들지 않는 수식어가 된다. 즉 ‘참 좋으신’은 하나님의 속성을 나의 주관적인 감정, 정서로 느끼는 바를 표현한 말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나의 얄팍한 주관적인 감정으로 그 속성을 표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를 과장하여 발전시킨다면 ‘사랑스러운 하나님’(‘사랑의 하나님’과는 판이한 뜻이 된다.), ‘미운 하나님’, ‘야속한 하나님’, ‘귀찮은 하나님’…등도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8. 변경된 새로운 기독교 용어에 대한 요약
1) 기도 관련 용어
① 당신→ 하나님, 하나님 아버지
② 기도드렸습니다(기도하였습니다)→ 기도드립니다(기도합니다)
③ 주여, 하나님 아버지시여→ 주님, 하나님 아버지
④ 우리 성도들이→ 저희들이, 교회의 권속들이
⑤ 대표기도→ 기도인도
⑥ 사랑의 예수님→ 사랑의 하나님
⑦ 참 좋으신 하나님→ 거룩하신, 은혜로우신, 전능하신, 진실하신, 자비로우신 하나님
2) 예배, 예식 관련 용어
① 사회자→ 인도자(예배시)
② 성가대→ 찬양대
③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용불가
④ 대예배→주일예배
⑤ 헌금→ 봉헌
⑥ 하나님의 축복→ 하나님이 주신 복
⑦ 하나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복 주시옵소서
⑧ 준비찬송→ 사용불가
⑨ 축제→ 잔치
3) 회의 관련 용어
① 고퇴→ 의사봉
② 자벽→ 지명, 임명
③ 증경→ 전(前)
④ 휘장분배→ 꽃 증정
4) 장례 관련 용어
① 소천하셨다→ 별세하셨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숨을 거두셨다.
② 삼우제→ 첫 성묘
③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④ 미망인→ 고인의 부인
⑤ 칠성판(七星板)→ 고정판 또는 시정판
⑥ 영결식, 고별식→ 장례식
5) 교회 생활 용어
① 당회장→ 담임목사(당회장→ 당회 때만)
② 예수→ 예수님, 성령→ 성령님
③ 사모→ 사모님(‘사모’는 주로 제자나 평신도들이 선생 부인이나 목사 부인을 높여 불러 주는 말이기 때문에 ‘사모님’이 될 수밖에 없다.)
④ 천당(‘천당’이라는 어휘는 우리말 성경에 없을 뿐만 아니라 ‘천당 사상’은 기독교 신학과 차이가 있다→ 하나님 나라, 하늘나라, 천국
⑤ 제단→ 성단, 제물→ 예물
⑥ 하나님의 몸된 교회→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⑦ 전야제→ 전야 축하행사
⑧ 태신자(이 용어를 사용하게 되면 앞으로 목사나 장로가 되기를 바라고 기도하는 사람은 ‘태목사’, ‘태장로’라고 해도 괜찮다는 결론에 이른다.)→ 전도대상자
⑨ 입신→ 사용불가
⑩ 지금도 살아 계신 하나님→ 지금도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등이다.
6) 추가적인 용어 정의
① 교인들의 신앙생활 가운데도 잘못된 용어가 많다. 입시 등을 앞두고 엿과 떡 등을 나누며 합격을 기원하는 것은 무속적인 행위이다. 기도를 하나의 치성적(致誠的)인 행위로 생각하는 것도 올바른 크리스천의 자세가 아니다.
② 시편을 읽을 때, 무심코 시편 ○장 ○절로 읽는 경우가 많은데, 시편은 반드시 시편 ○편 ○절로 읽어야 한다.
③ ‘중보’라는 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해당하는 말이기 때문에, 우리가 사용하기에 적절하지 않다. 그뿐 아니라 이러한 용어를 사용하려면 ‘이웃을 위한 기도’, ‘중보적 기도’라는 표현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④ 열린 예배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좀 더 쉽게 예배의 자리에 나아올 수 있도록 배려하는 형식과 접근 방법을 택한 구도자 집회를 말한다. 열린 예배가 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예배라기보다는 ‘전도집회’이다. 또한 예배는 인간이 임의로 닫거나 열 수 없고 받으시는 이의 뜻에 달려 있다.
⑤ 연말연시에 드리는 ‘영시예배’와 ‘자정예배’라는 용어도 옳지 않은 용어다. 단순히 예배가 시작되는 시각을, 예배 명칭으로 사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또 교회들마다 밤 11시나 11시 30분에 예배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 0시는 예배시작 시각도 될 수 없다. 이 때문에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는 의미의 송구영신예배가 옳은 표현이다.
⑥ 목회자들이 설교할 때 흔히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과, 기도할 때 사용하는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문법상 맞지 않기 때문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하는 하나님”이라는 용어가 맞는 표현이다. 이 용어들은 말하는 주체가 스스로 자신에 대해 존대를 나타내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⑦ “다같이 주기도문 외우겠습니다.”, “다같이 사도신경 외우겠습니다.”는 표현도 성도들이 단순히 주기도문을 외고 암송하는 것이 아니라, 뜻을 바로 새기며 음송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같이 주님 가르쳐 주신 대로 기도하겠습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로 표현해야 한다. 예배가 끝날 즈음, 예배 인도자가 이제 “아무개 목사님 축도로 폐회합니다.”도 잘못된 용어다.
⑧ 예배는 회의가 아니기 때문에 “목사님 기도로 예배를 마칩니다.”라며 분명하게 예배임을 밝힐 필요가 있다. 예배는 하나님이 나에게 베풀어주신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최상의 가치를 돌려드리는 응답의 행위이기 때문에 “이 예배를 주장하시고” 또는 “이 예배를 성령님께서 인도하시고”로 사용해야 한다.
요즘 무역 전쟁이 한창인 미국과 중국을 바라보면서 삼국지의 적벽대전(赤壁大戰)이 생각난다. 자만하고 교만하면 자기보다 열세인 상대에게도 무참히 깨지는 것이 전쟁이다.
하물며 만만치 않은 상대에게는 더욱 그렇다. 세월이 흘러 조조와 유비 그리고 손권이라는 영웅은 저승으로 가고 최후의 승자가 등장한다. 바로 사마의(司馬懿)다.
제갈량이 달랑 거문고 하나를 들고 텅 빈 성루에 앉아 사마의를 바라보고 있을 때, 그는 깊은 고민 끝에 말머리를 돌린다. 소위 제갈량의 공성계(空城計)다.
그의 후퇴는 배짱이 없어서도 아니고 병력이 적어서도 아니었다. 촉나라가 비록 운이 쇠하고는 있어도 제갈량이라는 당대 최고의 전략가를 결코 우습게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쟁은 승리 아니면 패배라는 공식이 있을 뿐이다.
사마의는 반드시 이긴다는 확신이 없는 한 무모한 도전을 피했다. 패배의 후유증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하늘의 기운마저 꿰뚫어 보았던 제갈공명도 사마의의 등장으로 무대에서 사라진다. 진정한 고수-사마의는 마침내 그런 신중함으로 천하 대권을 잡고야 만다.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 전쟁에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중국의 전략은 과연 조조의 교만함과 사마의의 신중함 중에서 어떤 것이었을까?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최근 중국에서 “우리가 트럼프를 잘못 봤다”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잘못 본 것이 아니라 우습게 보았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조조도 상대를 우습게 보다가 졸지에 100만 대군을 잃었다. 가방이 크다고 공부를 잘 하는 것도 아니고 덩치가 크다고 싸움을 잘 하는 것도 아니다. 무덤에 있는 사마의와 등소평은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는 작금의 무역 전쟁을 바라보며 땅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우리 모두는 예외 없이 죽어 관 속에 누웠을 때 하나님과 죽음과 양심 앞에 벌거벗고 겸허히 참으로 진실 되게 선다.
1923년 미국의 황금만능 시대에 시카고의 에지워터 비치 호텔에서 당시 미국의 8대 부자들이 한 탁자에 모인 일이 있었다. 당시 매스컴은 이 모임을 성공과 출세의 상징이요 신화처럼 보도했다. 그러나 그것은 드라마의 종장은 아니었다.
25년 후 네 명은 자살했고 네 명은 파산해서 국외에서 죽거나 징역을 살다가 죽었다. 크리스천은 밀월(密月)의 시간을 산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그리스도는 당신에게 누구인가? 이것은 영원한 운명이 걸려 있는 생사의 문제이다.
니체처럼 생명을 걸고 물어 보자. “눈물의 강이여, 가슴의 불길이여, 피할 수 없는 신이여, 나의 격량이여, 최후의 고통이여, 최후의 행복이여, 사랑과 생명의 약탈자여, 당신을 알고 싶습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 29:13)’
나일강 상류 수원지는 케냐, 에티오피아, 우간다, 르완다, 탄자니아이다.
2018년 6월 아랍 뉴스에서 크게 다룬 주제들 중 하나가 이라크와 이집트의 물 문제였다.
이집트에서 나일강 수위의 감소는 델타(이집트 북부지역) 지역 농부들에게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1940년대와 비교하면 1/3정도로 나일강 수량이 줄어든데다가 에티오피아가 ‘르네상스’댐 준공 이후 댐 저수를 시작하면서 이집트인들의 불안은 가중되었다.
더구나 금년 3월 워싱턴 포스트 지는 “나일강 줄기와 연결된 지류들을 통하여 오염된 하수를 정부가 통제하지 못하고 특히 정부의 관리가 소홀한 틈을 타서 한밤중에 나일 강에 독성이 든 화학 물질을 버리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이집트 농부들의 말을 들어보면 지난 5년 전부터 물의 오염을 더 많이 느끼고 있다고 했다.
이집트에서는 물로 인한 질병이 늘고 있다. 물을 통해 바이러스와 원충과 박테리아가 전달되었다.
금년 초 한국인 관광객이 이집트를 여행하다가 심한 설사를 한 후 사망한 일이 있었다. 안전하지 않은 물, 낙후된 하수시설, 위생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이집트 사람들 중에는 수돗물을 먹다가 간염이나 신부전을 앓았다고 했다. 2011년 이후 아랍 혁명 기간에 이집트의 수돗물이 기준량 이상의 염소가 첨가되어서 수돗물로 머리를 감는 일을 주의하라는 말을 들었다.
물 부족은 농지와 식량부족, 사막화, 환경오염 초래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물 문제는 정치, 경제, 안보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이집트에는 사막화, 물가 상승과 인플레이션, 농지와 물 부족 그리고 식량 부족과 직결되는 인구 증가와 기후변화가 주요 관심사다.
이집트 인구 증가율은 평균 2%이고 2017년 빈곤층은 3천만 명(27.8%)이었다. 이집트 국토는 95%가 사막이고 기후 변화로 바닷물이 이집트 북부 지중해에서 가까운 델타지역을 침수해 오면서 1990년대부터 농작물 수확이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에티오피아(나일강 상류)가 댐 저수를 하는 동안, 이집트로 내려가는 물의 양이 25%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 이집트 정부는 에티오피아에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표출하기도 했다.
에티오피아에서 1/3로 강물을 적게 내보내면 이집트 아스완의 수력발전 용량이 1/3로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바닷물 수위가 1m 높아지면 델타 지역의 민물이 1/3이상 줄어든다고 보았다.
예일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이집트는 2025년 물과 에너지 부족이 심각해지고 관개용수의 부족으로 델타지역에서 농산물이 60%로 줄어들게 된다고 예측했다.
문제는 1억이 넘는 이집트인들 대부분이 환경오염과 물 부족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이를 실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매일 아침 여성들이 수돗물을 사용하여 차량 세차를 하는 일이 여전하다. 이집트가 사우디처럼 바닷물을 활용하는 해수 담수화 시설을 건설해야 하고, 전통적인 수로에 의존하기보다는 이스라엘처럼 현대식 수로와 관개 방식을 도입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이집트의 나일강 물 몫을 늘리겠다'
이런 급박한 당면 과제를 놓고 2018년 1월과 6월 이집트 대통령은 에티오피아 총리와 회담을 추진하였고, 6월 10일 에티오피아 총리는 “이집트에 해를 끼칠 의도는 없었고 앞으로 이집트가 사용할 나일강 물의 몫을 늘리겠다”고 화답하면서 댐 저수율을 천천히 높이겠다고 하자 이집트 알씨씨 대통령은 이집트 내 수감된 에티오피아인들을 모두 사면했다.
고대 파라오들은 “이집트가 나일강의 선물”이라고 했고, 그들은 나일강을 신으로 간주하여 경배하기도 했다.
수천 년에 걸쳐서 그리고 현대에도 이집트는 나일강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나일강 물의 85%가 에티오피아에서 발원한다.
유엔은 2025년에는 이집트가 물 부족 국가가 될 거라고 예측했다. 그간 이집트는 나일강 물에 대한 감수 조치는 이집트 통치권에 대한 협박으로 여겼다.
이집트 전 인구가 1억이 넘고 카이로 인구도 2,500만이 넘기 때문에 만일 2%의 물이 줄어든다면 20만 팟단의 농지를 잃게 된다고 했다.
이집트에서 평균 가족 수가 5명이므로 1 팟단은 적어도 한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땅이 없어지는 것이다. 이집트인들에게 물 문제는 곧 국민의 생명 보호와 안보에 직결된 문제다.
이라크와 터키의 물 분쟁
이라크에는 바그다드로 흐르는 티그리스강과 남부의 시아파 도시들 주변으로 흘러가는 유프라테스강이 있다.
그런데 1975년 이후 터키가 댐건설을 확대하면서 이라크와 시리아로 흘러내려가는 물의 양이 점차 줄어들었다.
유프라테스 강물의 90%가 그리고 티그리스 강물의 50%가 터키에서 발원한다. 그동안 이라크에서 물 수위가 낮아지면서 하류와 아랍만(페르시아만)이 만나는 지점에서, 내지로 150킬로미터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2012년).
터키의 수력발전과 지역적인 가뭄으로 이라크와 시리아로 내려 보내는 물의 양이 줄어들었는데, 터키는 이라크의 물 부족은 이라크가 물 관리를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터키가 두 강의 물 사용과 댐 건설을 확대하면서 강 주변 지역은 물론 이라크 전체가 물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 이라크 남부는 한 여름에 50도가 넘는다. 그런데 금년 여름에 이라크에는 물과 전기 부족으로 더 뜨거운 여름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터키 댐 저수 시작해, 이라크 물 부족 가속화
터키가 을르수(슈루낙과 말딘 중간 지역) 댐을 2006년에 착공하여 2018년 2월에 완공하였고, 이 댐은 동남 아나톨리아 프로젝트였던 22개 댐들 중의 하나이다.
2018년 6월부터 댐에 저수하기 시작하면서 티그리스 강으로 내려오는 물의 양이 줄고 결국 이라크의 전력 사정이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주이라크 터키대사 파티흐는 양국 간의 공동 이익을 전제로 물 문제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2018년 6월 3일 이라크 의회는 임시회의를 열었다. 328명의 전체 의원들 중 50명이 참석한 가운데 살림 의장은 물 위기가 시작되었으므로 이라크 정부와 국제기구가 조속한 해법을 찾기를 바란다고 했다.
수자원 장관 하산은 을르수 댐을 저수하는 이번 여름이 이라크에 실질적인 손실을 가져다 줄 것이므로, 물 문제로 터키와 긴장관계를 갖기 보다는 협상과 대화를 통하여 이라크가 갖게 될 몫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라크의 두 강의 발원지는 이란과 터키이다. 이라크 수자원장관은 이미 터키와 협의를 통하여 6월 1일에 시작하여 11월 1일까지 댐의 물을 저수하기로 했는데, 터키가 이를 어기고 금년 3월부터 물을 저수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라크, 정정불안으로 민생문제 방치
2014년 IS조직이 모술 댐을 장악한 이후에 댐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2016년 주이라크 미국대사관은 모술 댐 붕괴의 위험성을 경고했고 댐이 붕괴되면 모술, 티크리트, 사마라, 바그다드가 피해를 입게 된다고 하자 이라크 정부는 2016년 이탈리아에서 전문 인력을 불러들였고 2017년 5월 보수 공사를 마쳤다.
그러나 이라크 정치인들은 아직까지 민생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다. 이라크는 5월 12일 선거 이후 투표함 재검표를 요구한 상태에서 투표함 보관 창고가 방화되었다. 전 국회의장은 선거를 다시 치러야 한다고 주장하였지만 선거관리위원장은 개표 결과에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주장했다. 정치와 치안이 아직 불안한 가운데 정치권은 시아파끼리의 합종에 만 관심을 둘 뿐 민생과 국민의 생명에 관심이 적었다.
2018년 들어서 이라크 내 IS 조직으로 인한 민간인 희생은 작년도 68%에 이어서 금년 6월에는 76%까지 감소했다. 2017년 12월 이라크 내 IS와 전쟁이 종식되었다고 하이다르 총리가 선언했지만 그 당시 키르쿠크, 니느웨, 쌀라흐 알딘, 사마라와 알안바르의 서쪽 사막지역에 IS 조직이 잔류하여 그 위험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군사전문가들은 이라크의 서부와 북부지역 그리고 평화스럽고 안정된 지역으로 보이는 곳까지도 아직 이슬람국가조직의 위험성이 남아 있다고 경고했다.
강물 수량 줄면, 해수 담수화 불가피
이라크 수자원 장관은 6월 2일 이라크의 물 위기를 해결하기 위하여 이라크 남부에 해수 담수화(tahliya miyah al-bahr) 시설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란과 터키에서 오는 물의 양이 45~50% 줄어들면서 기후변화와 사막화의 원인이 되는 물의 고갈 현상(jafaaf)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고대 문명의 발상지였던 이라크와 이집트가 물 때문에 국가 간의 싸움으로 번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나만의 소망일까?
1. 도리도리 2.
좌우로 회전,
3. 앞뒤로 끄덕임, 4.
좌우 옆으로
1일본 홋카이도 북부 아쓰마에서 지진으로 인한 산사태가 농가 주택들을 덮쳤다.
2시리아 북부 반군 지역 이들리브와 접한 터키 바브알하와의 카프르루신 난민촌에서 시리아 난민들이 지내고 있다.
3미국 캘리포니아주 델타에서 새크라멘토강을 따라 산불이 타오르는 가운데 다가오는 기차 불빛이 보인다.
4요르단강 서안 칸알아마르의 베두인 마을에서 여성이 목동이 양떼를 몰고 있다.
5일본 훗카이도 삿포로에서 지진으로 도로와 건물이 파괴됐다.
6독일 살부르크에서 열린 호버크라프트 세계 챔피언 대회에서 유럽 챔피언인 프랑스의 데니스 라고트 선수가 시범 주행을 하고 있다.
7코소보 쿠카지에서 열린 '에트노 페스트' 축제에서 한 참가자가 주파 지역 보스니아 전통 신부 복장을 선보였다.
8프랑스 르아브르 항에서 열린 초대형 화물선 'CMA CGM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호 취항식에서 무용수들이 공연을 펼쳤다.
9영국 런던 IMAX 극장에서 1978년과 1980년 배우 크리스토퍼 리브가 입었던 슈퍼맨 복장을 전시하고 있다.
10미국 뉴욕에서 열린 US오픈 테니스 대회 남자 단식 8강전에서 세르비아의 노박 죠코비치가 호주의 존 밀맨에게 3-0 (6-3, 6-4, 6-4) 승리를 거둔 후 기뻐하고 있다.
1키르기스스탄 촐폰-아타에서 열린 세계 유목민 스포츠대회에서 러시아(흰색)와 카자흐스탄(파란색) 선수들이 중앙아시아 전통 스포츠인 '콕바르' 경기를 벌이고 있다.
2태풍 '제비'가 강타한 일본 효고현 고베 외곽에 바람에 휩쓸린 자동차들이 쌓여있다.
3케냐 북부 로이양라갈라니의 풍력발전소 주변에서 투르카나 족 목동이 총을 메고 있다.
4미국 국립공원관리청이 지난달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산맥 외딴 지역에서 발견된 새끼 퓨마를 공개했다.
5이라크 바스라의 정부청사 주변에서 공공 서비스 개선과 실업난 해소를 요구하는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6태풍 '제비'가 강타한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에서 바람에 휩쓸린 배가 방파제와 충돌했다.
8이스라엘 예술가 시갈리트 란다우(오른쪽 아래)의 작품이 사해에서 건져 올려지고 있다. 고염도의 사해에 담가놓았던 발레복에 소금 결정이 맺혔다.
9매사추세츠주 민주당 연방 하원의원 예비선거에서 보스턴 시의원인 아얀타 프레슬리 후보가 마이클 카푸아노 현 하원의원을 누르고 승리가 확정된 후 기뻐하고 있다.
10미국 미시시피주 웨이브랜드 해안에서 한 소년이 바닷물을 헤치며 걷고 있다.
1일본 고치현 아키에서 태풍 '제비'의 영향으로 높은 파도가 치고 있다.
2브렛 캐버노 미 연방 대법관 지명자의 인준 청문회가 열린 상원 건물에 미국 텔레비전 드라마 ‘핸드메이즈 테일’ 속 등장인물의 빨간 망토를 입은 여권운동가들이 모여있다.
3화재로 소실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국립박물관을 드론으로 공중 촬영한 사진.
4'제44회 도빌 미국 영화제 (Deauville U.S. Film Festival of Deauville)'가 열리고 있는 프랑스 도빌 해변을 사람들이 거닐고 있다. 도빌 미국 영화제는 이름 그대로 프랑스에서 미국 영화를 소개하는 비경쟁 영화제이다.
5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 해안 도로에 태풍 '제비'에 떠밀려온 보트가 뒤집혀있다.
6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2018 인터넷 보안 컨퍼런스' 행사장.
7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선트러스트파크 야구장에서 열린 보스턴 레드삭스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프로야구 경기에서 브레이브스 수비수 닉 마커키스가 뜬 공을 잡아내고 있다.
8터키 달얀에서 여행객들이 이즈투즈 해안 관광을 하고 있다.
9'가장 오래된 부부' 세계 기록 보유자인 마쓰모토 마사오(108), 마쓰모토 미야코(100) 씨가 일본 가가와현 다카마쓰의 양로원에서 사진첩을 보고 있다. 부부는 최근 결혼 80주년을 맞았다.
10한밤중 칠레 비야리카 화산에서 용암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다.
11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열린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프로야구 경기에서 화이트삭스 매트 데이빗슨 선수가 9회 끝내기 홈런을 친 후 기뻐하고 있다.
12태국 잉고에서 이슬람과 불교 문화를 축하하는 행사가 열렸다.
1로이터통신 소속 초 소에 우(왼쪽) 기자와 와 론 기자가 3일 미얀마 양곤 법원에서 '공직 비밀법' 위반 혐의로 징역 7년 형을 선고받았다. 와 론 기자는 판결 직후 자신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며 공소 사실을 전면 비난했다.
2힌두교 크리슈나신의 탄신을 축하하기 위해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잔마슈타미 축제에서 힌두교도들이 공중에 걸린 치즈 항아리를 깨고 있다.
3인도 알라하바드 상감에서 갠지스강과 야무나강이 계절성 폭우로 범람했다. 어미개가 새끼를 입에 물고 대피하고 있다.
4중국 상하이의 한 중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가을 학기 개학식에서 학생들이 국기에 대해 경례하고 있다.
6러시아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열린 '스파스카야 타워' 국제 군악대 축제에서 참가자들의 공연이 펼쳐졌다.
7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열린 가을 학기 개학식에서 어린 학생들이 제복을 점검하고 있다.
8로이터통신 소속 초 소에 우(왼쪽) 기자와 와 론 기자가 3일 미얀마 양곤 법원에서 '공직 비밀법' 위반 혐의로 징역 7년 형을 선고받았다. 초 소에 우 기자의 부인 치트 수 윈 씨가 판결을 듣고 오열하고 있다.
9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유서 깊은 국립박물관에서 불이 나 소장된 유물이 소실되는 등 큰 피해가 발생했다.
10미국 뉴욕주 브루클린에서 열린 연례 인디언 축제에서 한 여성 참가자가 전통 의상을 입고 있다.
11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잔마슈타미 힌두 축제에서 힌두교도들이 공중에 걸린 치즈 항아리를 깨려고 손을 뻗었다.
12니카라과 마나과에서 반정부 시위가 벌어진 가운데, 무장한 경찰들이 불탄 경찰차 주변을 지나고 있다.
13폭우로 홍수가 발생한 중국 광둥성 산터우에서 주민들이 대피하고 있다.
14스페인 아빌레스에서 버스가 고가다리에 충돌한 사고로 명이 사망했다.
15파키스탄 하이데라바드 인더스강에서 어부들이 배를 띄우고 있다.
오늘날, 1500가지 이상의 연구 결과들이 코코넛오일이 지구 상에서 가장 건강한 음식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코코넛 오일의 장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의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마침내 이 놀라운 과일의 비밀을 밝혀 냈습니다. 바로 중쇄지방산(MCFAs 중간사슬 지방산) 이라는 특이한 지방입니다.
코코넛 오일은 다음과 같은 중쇄지방산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카프릴산 Caprylic acid
라우릭산 Lauric acid
카프릭산 Capric acid
또한 코코넛오일의 성분 중 62%가 이 3가지 건강에 좋은 지방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 성분의 91%가 건강에 이로운 포화지방으로 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우리가 섭취하는 지방은 소화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하지만 중쇄지방산은 완벽한 에너지원이 됩니다.
단, 3단계만 거치면 에너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다른 지방은 26단계를 거쳐야만 에너지로 소모될 수 있답니다!
다른 식물성 오일에서 발견되는 긴사슬 지방산(LCFAs)들과 달리 중쇄지방산은 :
- 소화가 쉽다.
- 신체에 좀처럼 지방으로 쌓이지 않는다.
- 세균과 곰팡이 살균작용을 한다
- 사슬이 짧아서 즉시 에너지로 환원된다.
- 간에서 소화된다: 즉 지방으로 쌓이지 않고 에너지로 쓰인다.
의학연구에 의해 신체에 코코넛 오일이 주는 장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알츠하이머 병의 자연 치유 방법으로 증명됨
중쇄지방이 간에서 소화되어 케톤체로 변하면 두뇌에서 에너지원으로 사용 됩니다.
케톤체는 포도당를 인슐린으로 바꾸는 과정 없이 에너지로 쓰입니다.
최근 연구가들은 두뇌가 스스로 인슐린을 만들어서 포도당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함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알츠하이머 환자는 이 기능을 잃어버리기에 포도당을 에너지원으로 하지 못하는 두뇌에 코코넛오일의 케톤체가 영양원으로 쓰여서 두뇌가 기능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2. 심장병과 고혈압을 예방합니다
코코넛오일은 천연 포화지방을 가지고 있습니다.
코코넛 오일의 포화지방은 몸에 이로운 콜레스테롤인 HDL을 높일 뿐 아니라 나쁜 콜레스테롤 LDL을 몸에서 제거합니다.
몸안에 HDL이 높아지면 심장 건강을 증진시켜 심장병의 위험을 낮춥니다.
코코넛 오일은 소변관과 신장염을 치료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중쇄지방산은 림프관의 박테리아를 죽이는 천연의 항생제 역활을 합니다.
4. 염증과 관절염을 완화합니다.
인도에서 이뤄진 연구에 따르면 버진 코코넛오일안의 산화방지제가
최신 약물치료 보다, 염증과 관절염을 더 효과적으로 완화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다른 연구에서는 코코넛 오일이 면역세포를 증진하고 진통제와 항생제 역활 모두 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5. 항암제
코코넛 오일은 암과 싸우는 2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코코넛 오일은 소화할 때 케톤체를 만들어 내는데, 암세포는 케톤체에서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하고 포도당에서만 에너지를 받습니다.
이는 케톤식이 암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둘째, 중쇄지방산은 박테리아를 막는 장벽을 만듭니다.
또한 소화되며 위암을 일으키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를 죽일 수 있습니다.
연구에서 인위적으로 암세포를 생성했을 때도 코코넛 오일이 암세포가 자라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6. 면역증진 (박테리아, 곰팡이, 바이러스 살균 효과)
코코넛오일의 라우릭산은 캔디다 곰팡이를 줄이고 박테리아나 바이러스가 살기 힘든 여건으로 만듭니다.
오늘날 수많은 질병이 나쁜 박테리아, 곰팡이, 바이러스, 기생충에 의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질병이 걸렸을 때, 곡식이나 설탕대신 코코넛 오일을 섭취해 주십시오.
설탕은 나쁜 박테리아를 증식시킵니다. 대신 코코넛 오일을 3큰술과 야채를 드세요.
7. 기억력과 두뇌 활동 증진
2004년 노화신경학 학회지에 발표된 연구에 의하면 코코넛오일의 중쇄지방산이 노인들의 기억력을 문제를 완화한다고 합니다.
실험에 참여한 모든 환자들이 코코넛 오일을 섭취하고 기억력이 향상되었습니다.
8. 체력과 인내력 향상
코코넛 오일은 쉽게 소화되고 오랫동안 에너지로 유지되며 신진대사를 활성화 시킵니다.
비정제 코코넛 오일은 즉시 에너지로 환원되어 사용됩니다.
오늘날, 많은 철인3종 경기 선수들이 코코넛오일을 훈련과 시합시 장거리 경기의 에너지원으로 이용합니다.
여러분도 집에서 코코넛 오일과, 아가베오일, 치아씨를 1:1:1로 섞어서 간단히 에너지 바를 만들 수 있습니다.
9. 소화력을 향상하고 위장 궤양과 궤양성 위장염을 완화합니다.
코코넛 오일은 몸이 지용성 비타민, 칼슘, 마그네슘을 흡수하도록 돕습니다.
코코넛 오일과 오메가3를 함께 드시면 2배 이상 효과늘 향상합니다.
코코넛 오일은 나쁜 박테리아와 캔디다 곰팡이를 죽여서 신체 안의 이로운 세균이 살 수 있도록 합니다.
캔디다 곰팡이가 많으면 위산과다, 위염 및 소화문제를 일으킵니다.
10. 쓸개와 췌장 질환을 줄입니다
코코넛 오일 중쇄지방은 췌장효소 없이 소화됩니다. 그러므로 코코넛 오일섭취는 췌장을 쉬게 합니다.
또한, 이렇게 소화가 순조롭게 하여 쓸개 질환도 완화 하는 것을 알려져있다.
긴사슬 지방을 중쇄지방으로 대체하면 신체 건강을 증진할 수 있다.
11. 피부문제 개선 (화상, 여드름, 비듬, 건선)
코코넛오일은 훌륭한 페이셜 클리너, 모이스쳐라이져 이며 썬블록이다.
또한 많은 피부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
카프릭산, 라우릭산은 내적으로 염증을 개선하고 외적으로 수분을 공급하여 여러가지 피부문제에 훌륭한 방안이 된다.
피부를 보호하고 풍부한 항산화물질이 피부를 개선하고 세균과 곰팡이를 없애는 작용이 피부 질환에 도움이 됩니다.
12. 건강한 잇몸과 충치
코코넛 오일을 이용한 오일 풀링은 수세기동안 입안의 세균을 없애고 구강 질환을 치료하는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코코넛 오일은 세균을 없애는 중쇄지방으로 이루어져있어 오일 풀링에 가장 좋은 오일 중 하나 입니다.
잇몸질환을 치료하기 원하시면 코코넛 오일로 일주일에 3번 20분간 오일풀링을 권합니다.
13. 골다공증 예방:
산화력을 가진 스트레스와 활성 산소는 골다공증에 가장 큰 원인입니다.
코코넛 오일에는 높은 비율의 항산화물질이 들어있어 활성산소를 없앱니다.
이것은 자연히 골다공증 치료에 도움이 됩니다.
또한 놀라운 사실은 코코넛 오일이 칼슘 흡수를 돕는다는 것입니다.
골다공증 환자들에게 코코넛 오일은 원인을 업애고 뼈가 삭는 것을 방지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죠.
14. 2형 당뇨를 완화합니다
세포들이 인슐린을 거부하고 포도당 에너지원을 받지 않는 것을 인슐린 저항이라 합니다.
이를 보충하기 위해 췌장은 더 많은 인슐린을 만들게 되고 과다 공급 사이클이 형성됩니다. 이는 2형 당뇨를 가져옵니다.
코코넛의 중쇄지방산은 세포들의 인슐린 반응을 개선하여 건강한 소화작용을 돕습니다.
췌장의 무리한 활동을 감소시키고 포도당 반응에 의존하여 인슐린 저항이 일어나지 않도록 돕습니다.
15.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 코코넛 오일
코코넛 오일의 에너지가 체중감량에 도움이 되는 것은 너무 잘 알려진 사실이죠. 지방을 분해하고 식욕을 조절하여 특히 뱃살을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1985년 독성학과 환경학적 건강지에 실린 연구 결과 카프릭산을 주입하면 급격히 그리고 꾸준히 음식 섭취가 줄어들어 체중이 줄어 든다고 밝혔습니다.
오일을 먹는 것이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다소 놀랍게 여겨질 수 있으나 코코넛 오일이 신체에 미치는 여러가지 효과를 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위에서 언급한 1985년 연구는 또한 카프릭산이 갑상선 활동에 도움이 되어 심박수를 안정하고 몸이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도록 도움을 준다고 밝혔습니다.
또 최근에 보스톤 의대는 비만연구 학회지에서 중쇄지방의 지방 연소 활동에 대해 이렇게 발표하였습니다.
카프릴산이 신체에 작용하는 기능이 마치 신체가 단식을 할 때처럼
가장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사용하게 하고 저장된 지방을 분해하여
이러한 효과가 중쇄지방이 인체의 체중감량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16. 근육을 만들고 체중을 감량한다.
중쇄지방은 지방을 분해할 뿐만아니라 근육을 만드는데도 도움이 됩니다.
실제로 많은 근육 생성에 도움 되는 제품들이 코코넛 오일을 포함하고있지요.
이를 위해서는 코코넛을 직접 먹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단백질 쉐이크게 3스픈의 코코넛 오일을 추가해 넣는 것을 추천합니다.
17. 모발 관리에 도움이 되는 코코넛 오일
비듬이나 건성 모발 개선에 코코넛 오일은 완벽한 지방산을 제공합니다.
집에서 코코넛 라벤더 샴푸나 컨디셔너를 만드셔서 사용해 보세요.
비듬을 없애려면 코코넛 오일 1큰술과 로즈마리 오일 10방울을 섞어서 3분간 마사지 해주시고 30분 후에 샤워합니다.
18. 캔디다 곰팡이와 이스트 감염
카프릭산과 라우릭산은 캔디다 질환과 이스트 감염의 천연 치료제 입니다.
캔디다성 질환을 더 효과적으로 없애려면 설탕 섭취를 중단하시고 코코넛 오일을 많이 섭취드세요.
19. 노화방지
식품과 효과 의학저널에 의하면, 코코넛의 항산화 작용은 노화 속도를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코코넛 오일은 간의 스트레스를 줄여줍니다.
또한 코코넛오일은 간에서 작용할 때 디톡스 효과가 있어 독소를 배출합니다.
코코넛 오일과 항상화물질이 가득한 열매를 드시면 더 좋을 것입니다.
20. 호르몬 발란스
코코넛 오일은 호르몬에 도움이 됩니다. 라우릭산과 같은 지방산을 특히 갱년기에 같은 호르몬이 불안정한 시기에 에스트로겐 수치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론다고 밝혀졌습니다.
건강한 호르몬 수치를 위해서는 설탕 섭취를 줄이고 코코넛, 아보카도, 아마씨 같은 좋은 지방을 섭취하세요.
코코넛 오일의 부작용
코코넛 오일이 피부에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매우 극히 드믄 경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