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9,  2018

 

 

 

 

 

 

 

 

 

 

 

 

 

 

 

 

 

 

 

 

 

 

 

 

 

 

 

 

 

 

 

 

 

 

 

 

 

 

 

 

 

 

 

 

 

 

 

 

 

Related image

 

 

오늘도 아기는 오시네

눈이 내리는 마을에 오시네.

 

우리들 오늘 누구나

스스로의 삶의 의미 스스로가 모르는

흔들리는 믿음과 불확실한 소망

 

사람이 그 말씀대로

사랑할 줄 모름으로 불행한 이 시대

어둡고 외로운 쓸쓸한 영혼을 위해서 오시네.

 

오늘도 아기는 오시네

눈이 내리는 마을에 오시네.

 

우리들 오늘 이 세계

눌린 자와 갇힌 자

빈곤과 질병과 무지에 시달리는 자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는 자

진리와 그 의를 위해 피 흘리는 자

마음이 청결하고 화평케 하는 자를 위해 오시네.

 

오늘도 아기는 오시네

눈이 내리는 마을에 오시네.

 

그 십자가

우릴 위해 못 박히신 나무틀의 고난

사랑이신 피 흘림의 영원하신 승리

죽음의 그 심연에서 부활하신 승리

성자 예수 그리스도 우리들의 구세주

베들레헴 말구유에 오늘 오시네.

 

 

 

 

 

해마다 찾아오는

크리스마스

반짝이는 카드에도

한 아름의 선물에도

우리 아기님

뵈올 수 없네

 

거룩한

아기 예수 어디

나셨을까

 

내 마음의

별 따라 가보자

도시의 외양간을

찾아서 가보자

 

냄새 나고

축축한 외양간을

찾아서 가보자

 

마음이 억눌린 이여

고달픈 육신 갇혀있는 이여

가난으로 촛불 한 자루

준비하지 못하는 이여

 

축제의 날엔

두 배로 슬퍼지는 이

지금 마음이 가장

쓸쓸한 이여

 

그대 맘을 찾아가

경배하리니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그 곳에 우리 아기

오시리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2.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4.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5.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한 해를 돌아보는 12월, 그리고 새해를 준비하는 12월에 가장 큰 영적인 질문은 무엇일까요?   나는 과연 크리스천으로서 능력 있는 삶을 살았는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새해를 능력 있게 살아 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20세기 위대한 설교가 중 한 명인 미국의 에이든 토저(Aiden W. Tozer)는 말하기를 “초대 교회는 단순한 조직체나 운동단체가 아니라 영적 능력 그 자체였다. 초대 교회는 성령의 권능으로 시작했고, 성령의 권능으로 움직였다”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크리스천들이 이 역동성 있는 믿음을 물려받지 못하고 무력한 상태에 있다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 능력을 회복하는 길은 무엇일까요?

 

 

1. 예수 안에서 주신 능력의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1절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여기 한편 손 마른 사람에 대해서 기독교 초기의 여러 문헌에는 그가 석공(石工)이었다고 합니다. 눅6:6에는 오른손 마른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인들에게 오른손은 권능의 상징입니다.

 

언제부터 오른손이 말랐을까요? 그의 손이 마른 상태를 가리키는 헬라어 ‘엑세람메넨’이 완료 수동태 분사로서 그의 손 마른 것이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후천적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본래 그는 손이 건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성도들은 예수 믿을 때 이미 능력을 받았니다.

 

보십시오... 막16:17-18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님의 지체요 예수님과 신비적으로 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께 붙은 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사탄이 만지지도 못할 만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탄의 거짓에 속은 것입니다. 우리 성도는 이미 능력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찬양할 때 '나 구원 받겠네'가 아니라 '나 구원 얻었네.' '나 성령 받았네 너 성령 받았네 우리 성령 받았네'가 맞습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고 믿음으로 성령 받았다는 이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의 능력은 바로 이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혹시 능력을 상실했다면 다시 이 진리로 돌아와 원점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2. 신앙의 병을 고침 받아야 합니다.

 

1절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이 석공은 본래는 건강한 사람이었지만 어느 날 부터인가 오른손이 힘이 빠지고 마르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이유로 질병이 온 것입니다.

 

이처럼 신앙에 병이 들면 영적 능력을 잃게 됩니다. 불신도 의심도 병입니다. 게으름과 나태도 병입니다. 염려와 근심도 병입니다. 미움과 증오도 병입니다. 교만도 욕심도 병입니다. 소리가 약해지고 열심을 잃은 것도 병입니다. 다 영적 기운을 막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능력이 떨어지면 어디에서 문제가 있는지 살펴 아야 합니다. 계2:5에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 생각하고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기도가 약합니까? 죄 가운데 있습니까? 무엇이 문제입니까?

 

3. 율법의 송사를 조심해야 합니다.

 

2절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이들은 예수님을 고소하려고 흠을 찾는 바리새인들입니다. 그 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병을 고치면 안식일을 범한 것으로 고소하려고 했습니다. 이들은 형식과 외식에 치우쳐 율법의 중심을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바로 행하시는 예수님을 고소하려 했습니다. 율법주의나 율법적인 양심이 우리 능력을 약화시킵니다.

 

양심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바울은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딤전1:18-19)고 말씀했습니다.

  

양심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양심이 너무 예민하면 죄 아닌 것도 죄로 인식하여 정죄에 빠지고 양심이 너무 둔해도 죄를 죄로 인식하지 못해 또 죄에 빠지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복음적인 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복음적 양심이란 정죄 받아 마땅한 죄인이지만 예수님의 속죄 공로로 사함 받았다는 확신입니다.

  

이 진리를 알지 못하고 나는 죄인이라는 끝없는 참소를 받아들이는 한 우리는 어떤 능력도 잃고 맙니다. 애굽의 장자 재앙처럼 우리 심령을 죽이려는 죽음의 재앙에서 피할 곳은 오직 예수 보혈뿐입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그래도 나는 보혈을 믿는다'라는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 보혈의 기초가 잘 놓여 있어야 합니다.

 

4. 항상 예수를 시인해야 합니다.

 

3절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왜 예수님께서 손 마른 사람을 회중 한 가운데 서게 하셨을까요? 지금 회당에는 예수님을 고발하려는 세력들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공개적으로 그것도 한 가운데 서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사람들 앞에서 자기 믿음 시인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마10:32-33에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하셨습니다.

  

믿음 없는 사람 같으면 "일어섰다가 낫지 않으면 어쩌지?" 하며 용기가 나지 않을 것입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고쳐주시려거든 저 편으로 불러 아무도 모르게 고쳐주시지...” 그랬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말씀에 순종하여 회중 가운데 섰습니다.

 이래야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적이란 사람들 앞에 하나님 살아계심과 예수님이 우리 구주이심을 공개적으로 시인할 때 나타납니다.

 

김익두 목사님이 회개하고 변화된 후 전도사 때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심방 길에 김전도사는 앉은뱅이 거지를 만났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앉은뱅이를 고쳐보겠다고 사람이 없는 과수원 울타리 밑으로 거지를 업고 가 외쳤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 그리고 손을 잡고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조금도 나음이 없었고 도리어 거지에게 미쳤다는 소리만 듣고 급히 도망쳤습니다.

 

너무나 부끄러운 김전도사는 산으로 올라가 금식과 철야를 하며 능력을 달라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산에서 내려온 김전도사는 그 앉은뱅이를 다시 만나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앉은뱅이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영광 받으시길 원하시기 때문에 공개적이기를 원하십니다.

 

 

5. 얽매이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4절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당시 유대인들은 생명이 위독한 경우 외에는 안식을 범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을 알기에 그들은 주님의 질문에 잠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를 얽매이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러지 말라. 저러지 말라. 사람이 만들어 놓은 전통과 제도 체면 습관 때문에 믿음이 억압 받아서는 안 될 것 입니다.

 

춤추는 다윗을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하고 놀라웠으면 춤을 추었겠습니까? 미갈은 다윗을 업신여겼다가 일생 자식이 없는 불행을 맛 보았습니다(삼하6:23). 다른 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얽매이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활발한 믿음이 없으면 열매가 없습니다. 능력이 없습니다. 생명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능력 받고 능력 행하기 좋은 제도나 분위기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6. 남을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5절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말라 비틀어진 손이었지만 주님의 말씀대로 내밀었더니 회복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주시는 교훈은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서 봉사하면 남도 살리고 나도 풍족해집니다.

 

기도로 섬겨보세요. 내 영혼에 성령이 충만해집니다. 봉사로 섬겨 보세요. 나에게도 건강과 기쁨이 넘칩니다. 물질로 섬겨 보세요. 주면 또 생기는 기적이 나타납니다. 은사로 섬기고 직분으로 섬겨 보십시오. 그것이 내가 사는 길이요 모두가 사는 길입니다. 거기에 능력있는 삶이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쓰임 받는 자세로 섬겨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항상 대기 자세 서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도구일 뿐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장재언)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내가 전도하지 않는 이유는 둘 중에 하나이다.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거나 지옥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지옥에 대해 

가장 많이 이야기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보다 지옥의 실체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옥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곳인지...

 

예수님은 우리가 지옥에 떨어지면 

영원토록 어떠한 고통을 받지 알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간절하셨습니다.

누구보다도...

 

우리가 지옥에 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모든 설교 가운데 지옥에 관한 설교를 빼놓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지옥에 관한 설교는 

단순히 복음 전할 때 불신자들에게만 해야 하는 설교가 아닙니다. 

 

오늘날 교회가 반드시 회복되어야 하는 메시지가 바로 '지옥에 관한 설교'입니다.

 

혹 우리가 나가는 교회에서 지옥에 관한 설교를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이 오셔서 지옥에 대한 설교를 누구에게 하셨습니까?

단순히 불신자들에게 한 것이 아닙니다.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제자들에게 이 설교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에게 가서 설교를 하셨지만

제자들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지옥이 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를 믿는다 하지만 

교회를 다닌다 하지만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모든 자들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예수님은 누구보다 잘 아셨던 것입니다.

  

병을 고쳐도, 예언을 해도, 

찬양을 해도, 말씀을 전해도,

진짜 제대로 예수님을 모른다면 

지옥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보다 강력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누구보다 타협하지 않고 말씀을 외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설교를 생각해보세요.

 

"네 발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찍어 버려라. 네가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차라리 한 발은 잃었으나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낫다." 마가복음 9:45

 

예수님의 설교는 단순히 달콤하기만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설교는 단순히 부드럽기만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은 아셨던 것입니다. 

이 한번의 설교를 통해 

어떤 사람은 천국에 가고 

어떤 사람은 지옥에 갈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그 어떤 누구보다 말씀을 전할 때 절실하셨습니다.

어떤 누구보다 전도를 할 때 절실하셨습니다.

 

나의 전도와 나의 이 한번의 말씀이 

이 사람의 인생, 아니 인생을 넘어선 영원이라는 시간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예수님은 어떤 설교자보다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눈물로 외쳤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싫어할 수 있지만 

미쳤다고 말할 수 있지만 

가감 없이 외치신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진짜 지옥을 알고 있다면 

오늘날 교회의 메시지가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마가복음 1장14절.

 

 

 

 

 

 

 

 

 

 

 

 

1. “선교”라는 용어의 어원과 의미

 

“선교(mission)”라는 용어는 성서에서 온 것은 아니다. 이 말은 라틴어 “mitto”(mittere, missio)에서 유래된 것으로 그 뜻은 ‘보내다, 파견하다’이다. 명사형일 때 ‘내보냄(sending out)’을 의미함은 물론이다. 정부가 외교관을 보낼 때는 특별한 임무를 주어 보낸다. 그런 경우 mission이라는 말이 사용된다.

 

종교적으로 mission이라는 말은 ‘사명과 위임을 주어 보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 임무는 아직도 믿지 않는 사람이거나, 믿다가 더 이상 신앙을 유지하지 않는 사람이나, 방황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이 뜻은 헬라어 ‘아포스텔로(ἀποστέλλω)’와 ‘펨포(πέμπω)’에 해당한다. 아포스텔로는 구약(70인경)에서는 700 회 이상 사용되었고, 신약에 약 135 회 사용되어 있다. 펨포는 구약에 단지 26 회만 사용되었고, 신약에는 약 80 회가 사용되었다.

mission과 missions 를 구분하여 쓰기도 한다.

 

피터즈(George W. Peters)는 mission을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총체적인 성경적 과업’으로 사용한다. 교회 안팎의 사역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용어로 쓰고 있다. 교회는 이 세상에 보내진 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missions 는 특수화된 용어라고 그는 말한다.

신약 시대 교회가 변경(邊境)과 그의 직접적인 복음 영향권 너머에 공인된 사람을 보내어 복음의 빈곤 지역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함과, 타신앙 내지는 무신앙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에게로의 회심자를 얻어내는 것과, 속한 단체나 나라에서 기독교의 열매를 거두며 활동하며 성장하는 지역 교회를 세우는 일을 의미한다고 한다.

 

보쉬(David J. Bosch)에 의하면 Mission(사명 선교)은 ‘하나님의 선교, 즉 세상을 사랑하시는 자인 하나님의 자기 계시, 세상에서 또 세상과 더불어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참여, 교회가 세상에 참여될 특권을 갖는 것이다’라고 정의한다. Missions(해외 선교)는 ‘하나님 선교의 구체적인 시기들, 장소들, 욕구들, 참여 등이다’라고 말한다.

 

 

2. ‘선교’의 정의 및 범위

 

 

앞에서 ‘선교’의 일반적인 의미를 살펴보았다면, 신학적인 의미에서 ‘선교’를 정의하면 다음과 같다.

 

1) 복음주의적 견해

 

보통 선교라 함은 하나님의 복음이 아직 전해지지 않은 해외 또는 타문화권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 또는 복음을 전하기 위한 모든 방법과 활동을 말한다. 이에는 전도자를 해외에 파송하여, 전도하고, 교회를 개척하여, 성장시키며, 복음적인 사업을 수행하는 것 등을 포함한다.

 

선교를 이렇게 단순히 ‘복음 전파’의 측면에서, 특별히 한 개인의 영혼 구원의 측면에서 이해하는 것을 고전적, 전통적 견해라 할 수 있다. 이를 또한 복음주의적 견해라고 하는데, 이에 의하면 선교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교회 개척이며,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복음이 실제로 전달되지 않는 전도나 선교는 있을 수 없게 된다.

 

선교에 대해 복음주의적 견해를 가진 이들은 사회의 구조적 변화에 대해 교회가 직접 참여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복음주의자들은 구조적 변화를 바람직한 것으로 여기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전도의 결과로 이러한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복음주의자들이 강조하는 것은, 혁명보다는 점진적인 인간 성숙이 사회구조의 변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주의자들은 선교 활동 중, 농업 기술 교육, 의료 봉사 및 일반 교육 등을 통해 사회에 참여하고, 이런 활동들이 차츰 차츰 한 국가의 하부구조의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한다.

 

2) 에큐메니칼적 견해

 

이에 반해 선교를 ‘샬롬’과 ‘인간화’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견해가 있는데 이를 에큐메니칼 선교관이라 한다.

 

즉, 선교란 단순히 한 개인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고, 불평등과 차별이 존재하는 인간들 사이 또는 그룹들 사이에 진정한 화해를 이루고, 나아가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곳에서 모든 인간들이 참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이해하는 견해이다. 이런 에큐메니칼적 선교관은, 복음주의적 선교관이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에 관심을 가지는 것에 반해, 복음이 전해져 있는 곳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종래의 선교관이 교회 개척이나 교회 확장에 목표를 둔, 교회 중심의 선교관이라고 비판하고, 교회는 ‘이 세상에 평화(shalom)를 건설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손에 들려 진 수단’에 불과하다고 한다.

 

선교(evangelism)의 주체는 교회가 아니라 메시야(즉 그리스도)이시며, 선교의 목적은 곧 “샬롬”의 수립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샬롬은 개인의 구원보다는 훨씬 더 많은 것을 의미한다. 즉 평화, 온전함, 공동체, 조화, 정의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런 뜻에서 선교는 세 가지 측면을 가진다.

 

케리그마, 코이노니아, 그리고 디아코니아가 그것이다. 케리그마는 그 샬롬의 선포요, 코이노니아는 그 샬롬에 동참한 사람들이 상호 교제와 친교 가운데 사는 것이며, 디아코니아는 겸손한 봉사로써 그 샬롬을 실증하는 것이다.

이 세 측면이 선교에서 통합될 때 그 선교는 올바른 선교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 전파’만이 아니라 ‘친교’나 ‘봉사’도 선교의 목표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을 기초로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곧 ‘선교는 하나님의 사역’이라는 점이 강조된다. 곧 교회가 선교의 출발점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출발점이며, 선교의 주도권 또한 교회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해 있다.

 

이렇게 하나님이 선교의 주역이시기 때문에 ‘교회의 선교’, 또는 ‘우리들의 선교’라는 말은 사용될 수 없는 개념이 된다. 전통적인 선교관에서처럼, 제도로서의 교회가 그 제도를 지나치게 절대화한 나머지 하나님에게만 속한 복음과 그 선교를 교회 자체를 위한 수단으로 삼을 때,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도 위반되고 교회 본연의 사명에도 위배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교’ 개념에 따르면, 선교는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하고 계시는 것으로서, 교회는 선교의 도구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의 기능은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함으로써 세상의 사건에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일이다. 교회가 이런 일을 성취하지 못한다면 교회는 쓸모없는 도구가 될 뿐이다.

 

샬롬과 더불어 선교의 목표로 받아들여진 개념은 “인간화”이다. 즉 사회 구조를 인간화하는 것을 선교의 한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화와 교회 개척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답게 살게 하는 일과 사회 구조의 근본 변화를 선교의 목표로 삼고, 선교의 방향은 인종 문제 사회변혁, 학생 항거 운동 등에로 바꾸어져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선교에 대한 이해가 이와 같이 달라짐에 따라 구원에 대한 이해에도 변화가 온다. 전통적으로 구원이라는 말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새롭고 영원한 신분이라고 이해하여 온 데 반하여, 새로운 선교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오늘의 구원’을 강조한다.

 

다른 말로 바꾸면 인류는 가난과 압제와 질병과 비인간적인 노동과 인종차별과 기아 등으로부터 구원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머지않아 가게 될 하늘에 있는 빵이 아니라 지금 당장 먹을 수 있는 빵이라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교에는 복음 전파뿐만 아니라 친교와 봉사가 포함되어야 하며, 나아가서는 이 땅 위에서의 다방면에 걸친 정의가 실현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선교관에 대하여 비판의 소리도 높다.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우선 순위 1 번에 놓을 것인가? 하는 것이 맨 먼저 제기되는 문제이다.

 

그렇게 볼 때 에큐메니칼 선교 이해는 ‘선한 사업들’ 때문에 가장 중요한 일 곧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그 일을 소홀히 하게 된다.

 

가난한 자들에 대하여 깊은 열정을 가지는 것은 좋으나 잃어 버린 자들에 대한 열정은 없고, 나아가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도록 일깨우기보다는 교회 갱신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

전혀 복음에 접해 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세계 도처에 흩어져 있고, 아직도 선교사들이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교사를 보내는 일에는 관심이 적다.

 

3) 통전적 견해

 

선교란 무엇인가? 에 대해 이렇게 두 가지 상반된 견해가 존재하지만 이 두 입장을 잘 조화시킨 것으로서 맥거브란(Donald A. Mcgavran) 의 정의를 들 수 있다.

 

선교란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혀 충성을 바치지 않고 있는 자들에게 문화적 장벽을 너머 복음을 전하는 것이며, 그들을 일깨워 그리스도를 그들의 주와 구주로 받아들여 그의 교회의 책임있는 구성원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복음 전도와 정의실현을 위해 일하며,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 위에서도 이루어지도록 일하는 것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선교의 폭은 매우 넓어진다. 단순한 복음 전파만이 아니라 교육, 문화 활동, 사회 활동 등 그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하나님이 땅 위에서 이루실 뜻의 성취를 위한 것이라면 모두 선교 활동에 포괄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중심은 어디까지나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알고, 믿고, 따르며 그의 교회의 일원이 되어 일하게 하는 데 있게 된다.

 

이러한 선교를 통전적 선교라 부르기도 한다. 이런 입장에 서게 되면 사람의 구원을 말할 때도 영혼의 구원이라는 말보다는 전인적(全人的) 구원을 말하게 되며, 영혼과 육체 전체의 구원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사회에 관심을 가질 때에도 사회 전반에 걸친 관심을 가질 것이다. 단지 궁극의 목적은 복음을 통한 구원에 초점이 맞추어 질 것이다. 이런 선교가 행해질 때 사회나 인간사 전반에 걸친 개선과 발전은 당연한 귀결로 도래될 것이다.

 

 

3. 성경 속에 나타난 선교

 

 

선교가 위와 같이 정의될 때, 선교가 성경 속에서는 과연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지를 알아보자.

 

선교의 모습을 성경에서 찾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성경을 어떤 관점에서 인용하느냐에 따라 그 해석 및 적용은 크게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보수적 입장에서는 그 출발점으로 신학은 ‘연역적으로’ 정립되어야 한다 하고, 에큐메니칼측에서는 ‘귀납적 방법’이 흔히 사용된다.

 

실제 처한 상황이 그 출발점이 되어 성서를 그 처한 상황에 비추어 읽으려는 것이다. 양자 중 어느 한 쪽만을 택한다는 것은 잘못이다.

 

왜냐하면 ‘연역적 방법’을 추구한다 해서 성서가 말하고 있는 내용을 의심의 여지없이 입증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고, 또한 귀납적 방법은 실현 가능성은 있으나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연구자가 좋아하는 혹은 찾고 있는 ‘해답’을 주는 성서적 자료만 언급하려는 경향이 쉽게 일어난다.

 

그러므로 성서 속에 선교에 대하여 철저한 정의와 변치 않는 개념이 있다고 보기보다는 성서에 대해 개방적인 자세에서 인간 구원을 위한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으로서의 선교 이해라는 보다 넓은 바탕 안에서 다양한 접근과 강조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려 해야겠다.

 

 

1) 구약 속에 나타난 선교

 

 

구약의 선교론에서 중요한 논쟁점은 "구약에는 ‘타문화 전도’라는 관점에서 선교가 있느냐"의 문제이다.

 

여기에 대해 2 가지 반대되는 견해로 나누어진다. 화란의 선교학자 블라우(Blauw)와 독일의 신학자 겐시헨(Gensichen)과 한(F. Hahn)은 구약에는 선교 명령이 없다고 한다. 블라우는 구약의 선교 사상을 보편주의(universalism)로 해석한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전세계의 하나님으로 구약에 나타난다. 그러나 대부분의 복음주의자들과 일부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구약에도 선교의 사상이 나타난다고 믿는다.

 

특히 순드클러(Benkt Sundkler)는 "구약의 선교는 구심적이요, 신약은 원심적"이라고 주장한 최초의 선교학자이다.

 

미국 기독교 개혁파의 리더(Richard R. De Ridder)는 그의 저서,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Discipling the Nations)"에서 구약의 선교를 생각하지 않고는 신약의 선교는 불가능하다고 함으로써 선교에 있어서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을 주장한다.

 

구약 성경은 해외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의미에서 선교 활동은 없으나 하나님께서 온 세계 민족 중에서 그의 백성을 불러모으신다는 사상은 창세기로부터 말라기까지 나타난다. 이러한 구원의 범위의 세계성이 곧 구약 선교의 뿌리이다.

 

얼핏 보기에 구약에는 선교 사상의 기초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이방 세계는 이스라엘에 대한 끊임없는 위협과 유혹의 대상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구약 성경을 충분히 연구하면 이방 나라의 장래가 중요한 관심사임이 분명해진다. 성경의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성경은 온 세상을 그 대상으로 삼았으며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온 세계에 미치는 것으로 전개되었다.

 

성경은 땅에 거하는 모든 것을 포함한 모든 세계를 하나님의 피조물로 자주 언급한다.

 

창세기 1:1은 분명히 마태복음 28:19,20에 나타나는 지상 명령의 필연적인 기반이 된다. 창조관은 자연히 하나님께서 온 세계를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시 24:1, 33:13).

 

그리고 성경은 주님만이 유일한 하나님이라고 강하게 주장하기 때문에 여기에 선교 활동에 대한 강한 가능성이 포함되어 있다(신 4:39, 사 45:5,6).

 

이스라엘의 성별(聖別)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필요한 일시적인 구별이었으며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폐지될 것으로 간주되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부름을 받았을 때 그 안에서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3)는 확신을 얻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부르시고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세우신 것은 이스라엘만을 구원하시려는 데 그 궁극적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진정한 목적은 세계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들을 선택한 것이다.

 

이사야 43장 10절의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라는 구절이나 12절의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등의 말씀에서 명백히 나타난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증인으로 선택된 무리였다.

 

구약은 기본적으로 에베소서와 골로새서가 찬송가의 형태로, 그리고 종말론적 환상 속에서 표현하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하나님은 모든 민족 위의 주권자이시다. 창조자이시며, 역사의 주인이시며, 구원의 근원이시다.

이런 의미에서 구약은 신약의 선교 이론의 근거이다. 이방인에 대한 유대인의 선교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교 신앙은 선교를 모든 민족에게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 만한 모든 요소를 다 갖추고 있다.

 

구약의 다양한 우주론적 본문들을 조사한 겐지헨(H.W. Ginsichen)은(그 중에서도 특히 창 12:1-3, 암 9:2이하, 시 72:8이하, 사 2:2이하, 미 4:1이하, 제 2이사야(사 40-55) 여호와의 종의 노래, 말 1:11) 그가 발견한 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구약이 비록 하나님 백성의 선교적 사명에 대해, 민족들에게로 나가는 것에 관해 아무 것도 모른다 할지라도 구약은 구속사의 기본 틀에 속하며 결과적으로 그 구속사 안에서 선교는 가능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구약에 나타난 선교 사상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1) 모세 오경의 선교

 

모세 오경은 율법서이지만 온 세상의 이방 나라들과 이방 나라들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이 나타나 있다.

 

모세 오경에서 “이방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선교의 직접적 명령은 없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이스라엘에만 국한되지 않고 전세계적이며, 하나님의 역사(役事)는 이스라엘을 통하여 전세계에 알려져야 한다는 것이 오경에서 이미 나타난다.

 

첫째로, 창조 기사는 선교의 가장 중요한 기초이다. 창조 기사는 하나님과 인간과 자연을 말하며, 또 신관은 유일신을 말한다. 창조의 사상은 세상에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해야 할 선교의 기초이다.

 

둘째로 타락의 사건은 선교의 원인이 되게 한다.

세째로, 창세기 11장까지는, 하나님은 특정 민족이나 국가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열국의 하나님임을 말한다.

 

네째로, 아브라함의 소명은 구약에 나타난 첫 선교의 명령이다. 창세기 12장부터는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선택하시는 하나님, 즉 세계주의(universalism)에서 특수주의(particularism)로 전환한다.

 

다섯째로, 출애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부르신 것은 구약 성경에 나타난 선교의 절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섯째로, 이방인이 유대 나라에 가입된 것(출 12:38)은 장차 이방인들이 구원받을 것을 미리 암시한 것이다.

 

(2) 역사서에 나타난 선교

 

애굽에서 나그네로 살던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정착하여 신정국을 수립했다. 가나안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주위 문화에 동화되느냐, 아니면 분리되느냐 하는 긴장과 갈등의 연속이었다.

 

역사서에서도 역시 이방인들이 유대 사회에 상당수가 가입되었으며, 룻과 같은 여자는 구원 역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기생 라합은 이방인으로 구원받은 인물이었으며, 사르밧 과부에게 베푼 엘리야의 이야기(왕상 17:8-16), 아람 장군 나아만에게 전도한 이스라엘 계집종의 이야기(왕하 5:2-5)는 이방인 사회에서 무명의 평신도가 입으로 증거한 구약적 선교의 모델이다.

 

솔로몬이 인구 조사할 때 이방인의 숫자는 153,600명이나 됐다(대하 2:17).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의 대결은 영적 전쟁으로 역사의 하나님과 지방적인 자연신과의 대결이다.

 

역사서에서 선교 사상의 절정은 솔로몬의 성전 봉헌 기도에 잘 나타난다. 그의 기도에서 성전은 이스라엘만의 것이 아니라 만민의 집으로 언급되었다(왕상 8:41-43, 사 56:7).

 

(3) 시편에 나타난 선교

 

시편은 메시야의 시로서 장차 오실 메시야를 예언하는데 이 메시야는 우주의 왕이시며,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경륜 아래 있음을 말한다.

 

시편의 중요한 사상은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이 세계적임을 강조한다(시 2:7-12, 22:27-31, 47:7-8, 67:3-7, 72:8-11, 96:1-13 등).

 

특히 시편 135:4에는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목적이 잘 나타난다. 시편에 나타난 중요 사상은 이스라엘의 선택이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의 선포이다. 특히 시편 67:2에는 구원을 만방에 알리는 도구로서 이스라엘의 역할을 말한다.

 

특히 시편에서 이방 나라들이 하나님께 나와서 경배할 것을 예언하였다(시 68:31, 47:9, 72:10 등). 피터스(George W. Peters)에 의하면 시편에는 이방의 모든 나라에도 구원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사상이 175회 나타난다고 하였다.

 

(4) 선지서에 나타난 선교

 

선지서에는 하나님은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셔서 이방이 구원받을 것을 말함과 동시에 이스라엘은 특권에 상응하는 책임을 다하지 못함으로 남은 자만 구원받을 것을 예고한다.

 

특히 선지서 중에서 이사야서는 선교의 본문으로 알려질 정도로 선교 사상이 강하게 나타난다. 선지서에 나타난 선교 사상은 ....

 

첫째, 하나님은 만민의 하나님이시다(사 2:1-4, 민 4:1-4, 렘 3:17, 사 25:6-9, 60장, 슥 8:20 이하).

 

따라서 하나님의 구원의 범위가 세계적임과 동시에 하나님의 심판도 전세계적이다(암 1:3-2:3).

 

둘째, 선지서의 선교는 이방인들이 자발적으로 구원을 사모하여 하나님께로 나아온다. 신약은 사도들과 전도자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땅끝까지 밖으로 나아가는 점에서 원심점이라면, 구약은 밖에서 예루살렘에 들어오는 점에서 구심점이다.

 

세째로, 선지서의 선교는 종말적 사건이다. 이방인이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은 먼저 종말적 사건으로 묘사되었다. 이스라엘을 뒤덮는 어두운 역사의 현실에서도 하나님께서는 항상 미래의 하나님으로 위로와 희망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신다. 종말의 때는 남녀 종들에게 성령을 주시며(욜 2:28-32), 여호와를 아는 지식으로 가득하게 하신다(합 2:14).

 

네째로, 선지서의 선교는 메시야의 고난을 통하여 성취될 것이다. 구약학자 영(E.J.Young)은 다음의 몇 가지 사실에서 메시야 예언과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동일시한다.

① 메시야는 왕적 권위를 가졌으며,

② 종말적이며,

③ 초자연적이며,

④ 구원론적이며,

⑤ 메시야는 인간이면서도 신이다.

 

 

(5) 요나서에 나타난 선교

 

요나서는 하나님께서 자기 고립, 즉 특수 집단 정신과 이스라엘의 종교적 협소성을 얼마나 싫어하시는가를 보여준다.

 

아주 경건한 사람이며, 느헤미야와 에스라의 개혁 시대에 성장했던 요나는 니느웨에 회개의 선포자로 가기를 거부하고 달아난다. 이교도 항해인들은 인정 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들은 요나를 구하고 그의 하나님을 진정시키려고 한다.

 

그 이후에야 요나는 이교도인이며 타락한 니느웨의 거민들에게 전파한다.

그리고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자비롭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으로 드러내시며 요나는 그래서 화를 낸다.

 

하나님은 아주 어렵게 요나의 편협함과 경건의 협소성을 그로 하여금 깨닫게 하신다.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 이만 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욘 4:11). 계시의 하나님은 그분의 구원으로부터 어떤 사람도 배제하지 않으시는데, 이것은 구약에서도 그러하며, 신약에서는 더욱 더 그러하다.

 

 

2) 신약에 나타난 선교

 

(1) 예수의 목회

 

사랑은 신약성서 메시지의 본질이며, 특히 예수의 경우에는 더 그러하다.

 

비록 복음서에서 예수가 이방인들에 대해 별로 언급한 것이 없어서 난처할 때도 있지만 선교의 진정한 기초는 다른 측면, 즉 예수의 경계선 없는 사랑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 점이 당시의 다른 종파들과의 차이점이며 선교상의 개념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사회에서 버림받은 자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를 선포함으로써 유대 가치관에 도전하고 특히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을 부각시킴으로서 근본적 개혁을 했다.

 

또한 예수는 탕자의 비유를 들어 행위와 성취의 오만으로 인한 인간 스스로의 모든 의롭다함에 대하여 뿌리를 잘라 버렸다. 또한 그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통해서 유대 민족적인 모든 독선과 혈통의 자만심을 폭로하였다.

 

선교의 성서적 근거를 모색한다면, 그것을 성서적 언약 백성과 그 주변 나라들의 어떤 사람들과의 만남에 대한 우발적인 구절에서 찾기보다는 사랑과 자비의 종교인 성서적 종교 속에서, 그 본질적 요소인 사랑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 가장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종교가 선교적 종교일 수밖에 없다.

 

(2) 지상위임령

 

역사라고 하는 것은 가득 찬 현재를 의미한다. 이것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증언되었다.

 

그리고 뚜렷하게 때가 가득하게 찬 것에 대한 깨달음이 초대 교회로 하여금 선교에 참여하게 했다. 바리새파, 엣세네파, 그리고 혁명파들이 현재를 아무 것도 아닌 것, 텅 빈 것으로 보았던 반면, 예수의 제자들은 나사렛 예수의 사역과 더불어 시작된 현재의 가득함을 볼 줄 아는 자들이었으며 그리하여 공관 복음서는 이 시기를 카이로이(kairoi)라 칭하였다.

 

현재에 대한 희망과 비젼이 그들로 하여금 선교에 적극 참여하게 했으며 예수 부활 이후의 시기에도 카이로스 안에 살고 있다는 확신은 변하지 않고 오히려 더 확대되고 깊어졌다. 부활과 성령 강림은 현재가 계속 가득하다는 것을 의식하게 해주었고, 또한 이 두 사건 때문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세계와 관련을 가지며, 선교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기초 위에서 마태 28:18-20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러 해석의 가능성들이 있지만 다음의 몇 가지는 부정할 수 없다.

즉 이 본문은 지금 여기 우리에게 예수의 권위에 근거하여 주는 위임령이 있다는 것이며, 이 위임령은 예수의 제자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시대가 출발하였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며, 또한 이 위임령은 제자들로 하여금 세계 선교에 참여하라는 것을 의미함이 부인될 수 없는 점으로 계속 남는다.

 

교회는 세계에서 선교 활동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때’에 공헌한다. 하나님이 모든 민족에게 보내시는 것은 ‘이념’ 또는 ‘영원한 진리’가 아니다. 하나님은 역사적 인물들, 사람들을 보내신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통하여 계시하시고, 그 아들로 인한 제자들 안에서 또한 자신을 계시하신다.

 

(3) 다른 사람을 위한 교회 - 선교

 

우리는 고통과 선교 참여의 묘한 조화 속에서 선교의 성서적 근거를 제시하는 세 번째 요소를 발견하게 된다.

 

구약에서 선교 관념은 바벨론 포로시기에 특히, 고난의 종이란 사람으로 해서 가장 높고 가장 깊은 점에 도달했듯이 신약에서의 가장 높고 깊은 선교 관념은 인자의 고통으로 특히, 많은 사람들을 위한 대속물로 자기 삶을 내어 준 골고다에서 절정에 달한다. 예수 자신의 고난과 죽음으로 인해 예수는 가장 신실한 선교사였다.

 

교회의 선교에 대하여 이 점은 신약 시대에 매우 중요한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나사렛의 랍비, 예수를 따르는 것은 그의 지도 아래 앉아서 율법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고난에 함께 참여하는 것을 의미했다.

 

바울 노선의 선교와 고린도에 있던 그의 대적자들의 선교와의 차이점은 십자가에 놓여 있다.

 

고린도후서는 명백하게 선교를 십자가와 동일시하여 보여준다. 골로새서를 통해 볼 때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자기 육체에 채우면서 고난 가운데 기뻐한다(골 1:24).

 

예수가 가끔 사용한 누룩, 빛 그리고 소금의 비유적 표현은 모두 다 어떻게 보든지 간에 경계선을 넘는 것과 퍼져 스며들어가는 개념을 말한다.

 

엘톤 트러블러드는 이 세 가지 은유에 대하여 이렇게 관찰한다. 가장 놀라운 것은 이 세 가지 다 제 용도에 쓰여지지 않고 그냥 보관되면 그 본래 기능을 발휘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각각 가진 본질은 과감하게 소모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리젠이 말하기를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으로 찾으시는 가장 깊은 의미는 약한 증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힘없는 대변자가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이다. 인도를 받고 구원을 받아야 할 사람들은 말하자면, 항상 복음의 증인을 십자가에 달리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4) 하나님의 선교

 

신구약 성서를 신중히 검토하면 하나님 자신이 선교의 주체자임이 나타난다.

 

구약은 민족들이 이스라엘을 향해 모이는 것으로, 선교를 구심적으로, 나아가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로만 이해하고, 반면에 신약의 선교 이해는 이스라엘 또는 교회에서부터, 그 중심에서부터 선교사들이 세계 속으로 흩어져 나아가는 ‘인간의 일’로 파악해 온 것이 관례이다.

 

이렇게 되면 자칫 하나님과 인간은 서로에게 배제당할 수 있는 위험이 따른다.

그러나 기독교인의 경험은 하나님이 자기 삶을 주장하시도록 맡기면 맡길수록 그는 더욱더 자기 이웃을 섬기고 사랑하고 용서함에 있어서 이유를 갖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복음의 빛 안에서 또한 구약의 빛에 의해서도 교회의 선교가 하나님의 활동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더욱더 우리는 그 선교를 우리의 활동이라고 마땅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선교에 참여하는 것은 다음의 이유 때문이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 예수에게 주어졌고(빌2:9), 죽음으로부터 다시 일어난 그의 놀라운 행위에 의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었기 때문이다(롬1:4).

 

또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기 때문에(고후 5:19)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하여 둘로 한 몸을 이루었기 때문이다(엡2:16).

 

만약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하면 그 교회는 선교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의 증인과 함께 그 행위가 불신앙인들을 설득시킬 것이며(벧전 2:12), 그리고 불신앙인들의 어리석음과 무지를 잠잠케 해줄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새생명 때문에 선교는, 말하자면, ‘일어나는 것’이며 선교는 ‘되어지는 것’이다. 바울의 언어로 표현한다면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기를 널리 퍼지게 하신다는 것이다(고후 2:14).

 

하나님은 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안에서 존재하시고 살아있는 믿는 자들 안에서 그리고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스스로 활동하고 계신 것이다.

 

 

 

 

 

 

Labrador puppies

 

 

 

 

Obedience School field trip downstairs.

 

 

They all just came to what!

 

 

Funny Dogs - 31 Pictures

 

 

Seis hermosos cachorritos.Inspiran mucha ternura.Son como bebes humanos.ð???ð???ð??´ð??´

 

 

Cuantos

 

 

 

 

 

 

 

 

 

계시록 22장12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계시록 1장 7절

 

“보라, 그분께서 구름들과 함께 오시느니라. 모든 눈이 그분을 보겠고 그분을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의 모든 족속들이 그분으로 인하여 통곡하리니 참으로 그러하리로다. 아멘”

 

 

베드로후서 3장 10절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야고보서 5장 7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히브리서 9장 28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골로새서 3장 4절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타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사도행전 1장 10~11절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으니라”

 

 

마태복음 26장 64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I. 선교와 교회개척

 

 

선교초기에는 교회개척 외에도 많은 급선무들이 병행되긴 해도 전통적으로 교회개척이 선교의 기본과제 중의 하나였다.

 

경건주의자들(The Danish-Halle Mission)이 인도에서 선교개척을 할 때나 윌리암 케리의 선교원리에도 현지교회의 설립을 주요목표로 지적했고 그들의 사역에서 그 원리를 실천하였다.

 

그러나 선교회 중심의 선교가 강하던 시기에는 선교회의 성격상 (초교파적,사적조직) 교회개척이나 육성보다 인간 구원 쪽에 더 많은 관심이 표명되었었다.

 

개신교선교운동의 전성기였던 19세기에 와서 선교의 기본적 목표를 교회개척과 육성에 두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특히 헨리벤이나 루프스 엔더슨에 의해 3자 원리에 입각한 토착교회의 개척과 형성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교회개척이 선교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인식되게 되었다.

 

서구교회의 신학이나 제도나 의식을 이식한 교회로써 서구교회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교회보다는 그 지역에서 복음화의 궁극적 책임을 수행할 수 있는 교회의 설립과 육성의 중요성이 지적된 것이다.

 

이같은 주장은 에딘버러선교대회(1910년)에서도 개교회(local church)를 교회답게 육성하는 것이 세계복음화의 첩으로 거론되었다.

 

이 생각은 예루살렘대회(1928)을 거쳐 1938년 마두라스 선교대회에도 재차 강조되었는데 세계복음화를 위한 충분한 교회가 개척되지 않았음을 인정하고 아직도 세계선교는 미완성의 사역(the Unfinished Task)으로 남아 있다고 보았다.

 

제2차 대전직후,서구의 세력이 전통적인 선교지에서 붕괴되고 그 지역의 전통문화와 종교의 부흥이 일어나 기독교 선교의 앞길에 암운이 가리웠던 시기에 여러 지역에서 기독교가 말살되지 않고 명맥을 유지하거나 계속적인 부흥운동이 가능했던 것은 현지에 개척되고 육성되었던 교회들을 통한 것이었다.

 

현재에도 기독교선교의 성패의 주요한 원인은 우리가 개척해야 될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고 육성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바라는 데로 여러 지역에 교회를 성공적으로 개척할 수 있는 것이지만,우리가 교회개척에 실패하면 2000년대의 세계복음화는 상당한 곤란에 직면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II. 교회개척에 대한 역사적 교훈

 

 

역사적 교훈은 하나님의 교훈이다. 그러므로 역사적 교훈을 거부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교훈을 거부하는 우매자가 된다.

 

선교가 이미 역사 속에서 행해져 온 일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교훈을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교회개척과 육성문제에도 이미, 서구교회가 많은 역사적 교훈을 남겼기 때문에 우리가 우선 그 발자취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

대체로 말해서 몇 지역을 제외하고는 서구개신교 교사들이 교회개혁에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다고는 보기 어렵다. 여기서는 편의상, 그들의 성과가 노력만큼 나타나지 않았던 몇가지 이유들만 지적하면서 우리가 받아야 할 교훈들을 생각해 보기로 한다.

 

1.우월감

 

서양선교사들이 의식적/무의식적으로 가졌던 인종적/문화적 우월감이 현지인들과의 진지한 교제와 하나됨에 장애가 되었다. 그러므로 타문화에 대한 이해와 적응을 통한 타문화인과의 동류의식 속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성장시키지 아니하면 현장에 뿌리를 내리는 선교를 하기 어렵다.

2. 식민주의/문화적 제국주의

 

서구선교운동이 식민지 확장과의 연루문제는 대개 불가피한 경우가 많았다.

"지상의 보화를 찾아 동방과 서인도 제도로 갔다. 상아들이 없었다면 누가 하늘의 보화를 가진 선교사들을 데리고 갈 수 있었겠는가.선교사들은 복음을,상인들은 선교사들을 데리고 갔다."는 말처럼 양자는 불가분리적인 연결이 있 데 식민지운동과 함께 진행된 선교 때문에 서양에 대한 반감과 거부가 선교사들에게도 작용하여 그들의 선교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우리는 타문화권에서 강한 척하거나 잘난 척해서는 된다.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돕고 섬기면서 전도하고 교회를 개척해야 하는 것이다.

3. 친권주의

 

식민운동과 선교가 병행되었다는 비난에 대해서는 선교사들이 변명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러나 서구교회의 교회개척과 육성을 두고 비판을 면치 못한 것 중 하나가 그들의 친권주의적 사고방식과 형태였다. 선교가 진행될때는 대개 다음의 4단계 거친다.

(1) 개척(pioner) (2) 부모(parent) (3) 동역자(partner) (4)동참자(participant)이 4단계 가운데서 성공적인 교회개척과 선교는 빨리 네번째 단계로 나가는 것인데 선교사들이 가부장적 의식을 가지고 지나치게 오래 현지교회를 주도하므로써 결과적으로 현지교회가 자립하고 성숙하는데 지장을 초래케 하고 오랫동안 서양교회에 의존하도록 하였다.

4. 선교비 문제

 

잘못된 정책이나 선교사의 판단 때문에 막대한 선교비가 낭비되어 교회 개척과 육성이 제대로 되지 못하였다. 선교사들이 구입한 토지나 시설들이 불필요하거나 잘못됨으로써 필요이상,과다하게 사용하였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선교사들이 모든 곳에서 범한 과오라 할 수 있다.

 

5.지도자육성문제

 

교회개척과 육성의 핵심적 문제가 지도자(사역자) 육성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지역에서 이 일에는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교회가 있어도 사역자가 없거나 교회를 개척해야 될 지역에서 다른 여건은 갖추어졌으나 사역자가 없어서 개척이 불가능하기도 하였다. 또한 충문한 지도력이 있는 지도자들이 부족하여 교회 전반의 부흥에 장애를 가져왔었다.

 

 

III. 제안

 

 

1.교회개척 사역자의 증가

 

선교사들 중에 교회 개척에 헌신할 사람들의 수가 많지 못하다. 앞으로는 교회개척에 전적으로 헌신할 선교사의 수를 증가시켜야 한다. 타문화권의 목회자(pastor)보다 개척자(Pioneer)가 훨씬 더 필요하다.

 

2. 교회개척방법

 

a. 선교사의 개척:  선교사 자신이 친히 교회를 개척하는 방법이 있다. 최근에 선교사 자신이 교회개척이나 육성에 직접 간여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아직도 여러 지역에서 선교사의 교회개척이 필요한 곳이 많다.

 

b. 현지사역자 : 현지사역자(신학생,전도사,목사)를 훈련시켜 교회를 개척하도록 한다. 현지지도자양성은 신학적 수준의 향상도 중요하나 실제로 전도하고 교회를 성장시키는 영성과 힘을 함양하는 것이 요긴하다.

 

c. 현지교회: 현지교회가 인력과 재청을 책임지고 개척하게 한다. 물론 대부분의 현지교회가 재정적으로 어려우나 그 환경에 맞는 수준으로 교회건물, 시설 및 사역자의 후원 하게 하여야 한다.

 

3. 삼자원리의 활용

 

모든 곳에서 천편일률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어도 삼자원칙에 입각한 교회를 개척하게 하는 것이 일반적 원리다.

 

a.자치하는 교회(지도자육성)

선교사는 언제까지 현장에 머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언젠가는 선교사는 떠나야 한다. 그 교회의 주도적 사역은 현지사역자에 의해서 수행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교사역은 현지사역자 육성을 통한 자치적 사역단계로 올리는 것을 중시하여야 한다.

 

b.자립하는 교회(청지기 직)

재정적 자립 없이 자치는 실제적으로 힘들다. 재정적 자립은 항상, 현장수준으로 시작해야 한다. 경제적 수준이 향상된 후에 실천한다는 계획은 성사되기 어렵다. 어렵지만 그것이 교회를 건강하게 육성하는 방법이다.

 

c. 자전하는 교회(전도훈련과 실천)

교회는 처음부터 스스로 전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예수를 믿고 바로 전도하는 교회로 훈련시켜 나가야 한다. 처음부터 전도하지 않는 교회를 후에 전도하게 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4. 모델(한국교회)

 

a.한국교회는 1890년에 네비우스가 3자원칙을 소개해준 뒤에 선교사들이 그의 원리를 적용하려고 노력했는데 다른 2가지 원칙에 비해 잘 적용된 편은 아니었어도(기간), 이미 자치단계에 이르렀다.

 

b.이 원리는 처음부터 강행되었다. 예를 들면, 평양에서 전도한 마포삼열은 미리 평양의 요지를 구입해 두었다가 후에 교회를 세우도록 했는데 그때마다 교회에 땅을 구입하도록 하였다. 다만, 자기가 산 값만 받고 한국교회에 넘겨주어 한국교회로 하여금 자립하는 정신을 키웠다.

c.성경공부와 사경회 등을 통하여 전도의 사명과 열심을 가르치고 주입시켰다. 또한 세례문답 때에도 전도하는지 여부를 묻는 일도 있었다. 개인전도, 축호 전도, 노방전도 및 문서전도를 통하여 꾸준히 전도하는 교회로 육성되었다.

 

 

IV. 한국교회의 타문화권

 

 

선교는 특히 자립하는 교회개척에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무비판적인 동정이나 선교사 업적 위주의 사역 때문에 적절한 곳에 적절한 방법을 따라 교회를 개척하지 못하고 돈으로 만은 교회들을 지원하는 것으로 개척과 선교를 대신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그 같은 안일하고 소모적인 교회개척과 선교는 지양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아 지금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주 너희의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모든 길을 따르며,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주 너희의 하나님을 섬기며,

너희가 행복하게 살도록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일이 아니겠느냐?"

 

(신명기 10:12-13_표준새번역)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켜야 할 율법들을 다 반포하신 후에

또 한번 강조하시는 말씀이다.

 

여기서 하나님이 가장 먼저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의 길을 따르며,

마음과 뜻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다.

 

그 다음에, 지켜야 할 명령과 규례를 말씀하신다.

 

많은 경우 

구약은 율법, 신약은 은혜, 

이렇게 이분화시켜서

구약은 우리와 별 상관없는 

과거 이야기로 치부할 때가 많다. 

 

하지만 신구약을 막론하고,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의 

첫째되는 계명은 언제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마음 다해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 22:37)

 

경외함과 사랑함은 하나다. 

하나님의 공의의 속성과

사랑의 속성을 나눌 수 없듯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절대 나눌 수 없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만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이들이 많다.) 

 

이 첫째 계명이

구약에선 '율법'의 중심을 이루고 있고,

신약 이후엔 '복음'의 중심을 이룬다. 

 

그런데 이 첫째 계명을 

중심에 온전히 두지 않음으로써,

구약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이방족속과 엮임으로 

그게 올무가 되어 배도로 나가게 됐고,

신약 이후에는,

(공의 없는)사랑의 하나님, 복주는 하나님, 

기도응답용 하나님, 

자기가 믿고 싶은 하나님 우상을 섬기며

다른 배도로 나가게 됐다. 

영적인 배경은 똑같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것이 

모든 것의 근본이다. 

 

사무엘상 15장 22절에 보면,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말씀한다. 

 

순종은 내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 관점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똑같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린 가인과 아벨이지만,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만 받으셨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순종한 사람은 

아벨 뿐이었다.

가인 역시 하나님께 드린 

행위가 있었지만 그건 순종이 아니었다. 

 

순종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할 때

나올 수 있는 행위다. 

 

그 어떤 제사(예배) 행위가 많고 화려해도

하나님 경외하고 사랑해서 나오는 순종이 아니면,

그 사람의 행위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고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 온전한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고 사랑해야만 

스스로를 돌아보는 겸비함이 생긴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 관점에서 순종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 경외함과 하나님 사랑 없이,

하나님 관점의 순종이 아닌

자기 관점의 행위(외식)만 늘어가다 보니,

스스로에 대한 겸비함을 잃어버렸고,

죄에 대한 인식은 사라져버렸다. 

 

하나님 경외함 없는

은혜, 축복, 사랑, 자비만 넘쳐흐르다 보니...

사형에 해당될 정도의 악독한 죄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심에도(롬1:29-지금 성경을 펼쳐십시오. )

삼삼오오 모여서 다른 사람에 대해 

수군 수군대는 것쯤은 죄로 여기지도 않고 

교회 안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행해진다.

 

그렇게 온갖 죄악과 미혹들이 

심령(교회)안에 쏟아져 들어오고,

결국 배도(背道)의 길로 나아간다.

 

개인이나 교회나,

하나님을 떠나 배도하는 과정이 이렇다.

구약에서의 배도는 대부분, 

이방족속 신들을 섬기는 것이었지만,

오늘날 배도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럴듯한 자기가 만든 "하나님 우상"을 섬긴다. 

 

크게 보면...

주님 오시기 전, 이 시대는 

철저하게 '중심'의 키질이 이뤄지는 때다.

하지만 대 환란 시대는,

철저하게 '행동'의 키질이 이뤄지는 때다.

 

지금은 온갖 죄악과 미혹이 횡행하는 현실로부터,

중심만 잘 지켜내면 되지만,

대환란에 들어가게 되면, 

중심만 지켜내는 건 사실상 의미가 없고,

그 중심을 어떻게든 행동으로 증명해 보여야만 

남은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시대다. 

 

아직 은혜가 부어지고 있는 지금, 

하나님 경외함과 사랑함을 잃어버린 이들은

훗날 대 환란에 남겨졌을 때 

그제야 자신을 돌아보고 뼈저리게 후회하며

행동으로 증명해 보여야만 할 것이다.   

 

 

 

 

 

 

 

 

 

 

 

 

 

독일 철도(Bahn) 가격 인상

 

 

12월 9일부터 독일 철도(Bahn)는 운행 시간표를 개편하면서 가격을 전체 평균 0.9% 인상합니다.

 

1등석, 2등석 열차표의 이른바 유연 요금(Flexipreis)은 1.9% 인상되며, 구간 시간 열차표(Streckenzeitkarte) 및 반카드 100의 가격은 평균 2.9% 오릅니다.

 

반카드 25와 반카드 50 상품의 가격은 그대로 유지됩니다. 열차 안에서 표를 구입하는 경우 내야 하는 추가 요금도 종전 12.5 유로에서 19유로로 인상됩니다.

 

베를린과 뮌헨 사이의 고속 구간에는 종전까지 매일 양방향 모두 기존에 3편의 초급속 열차(Sprinterzug)가 운행되던 것이 5대로 증편된다고 합니다.

 

새로운 열차 모델인 ICE 4도 이 구간에 투입될 예정입니다. ICE 4 열차는 뒤셀도르프-프랑크푸르트 공항-슈투트가르트 구간에도 최초로 운행됩니다.

 

이 구간에는 또한 종전까지 양방향 11편 운행되던 직행열차가 14편으로 늘어납니다. 베를린과 오스트리아 빈 사이에도 열차가 운행되는데, 운행 시간은 8시간 미만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유럽 연합 내 지역제한없는

온라인 쇼핑(Geoblocking)

 

 

전자제품, 공연 관람권, 렌트카, 호텔숙박, 클라우드 서비스 할 것 없이 유럽 연합국 내에서 상품 또는 용역을 제공하는 판매자는, 12월 3일부터 유럽 연합 전체 소비자에게 접근 가능하게 해야 합니다.

 

쇼핑 사이트 내에서 외국으로부터 주문하는 소비자들을 배제하거나 조건이 다른 타국 사이트로 연결하는 이른바 지역 제한(Geoblocking)이 폐지됩니다.

신용카드 또는 직불카드 또한 지역에 따른 불평등 없이 발급되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판매자가 모든 유럽 국가에 제품을 판매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판매자는 다른 유럽 연합 국가에서 주문하는 소비자에게 주문한 제품을 합의된 장소에서 픽업할 수 있는 옵션을 부여해야 합니다.

 

예외 사항으로는 운송 서비스와 음악, 온라인 게임, 전자책과 같은 판권이 있는 상품들에는 계속해서 지역제한(Geoblocking)이 허용됩니다. 앞으로 2년 안에 이러한 부문으로도 지오블로킹 철폐를 확장할 것인지 검토한다고 합니다.

 

 

꿀벌 보호를 위해

네오니코티노이드

(니코틴계 신경 자극성 살충제)

사용 금지

 

네오니코티노이드 성분이 포함된 살충제들은 꿀벌과 같은 수분벌레(Bestäuber)들에게는 직접적인 위협이 됩니다. 때문에 클로티아니딘, 이미다클로프리트, 티아메토삼 성분이 포함된 식물 보호 약품들은 12월 19일부터 판매 및 야외에서의 사용이 금지됩니다. 다만 온실 내에서는 이용이 가능합니다. 

 

 

화장품에서 땅꽁기름 알러지 위험 감소

 

12월 25일 부터는 화장품에 알러지를 일으키는 땅콩기름 프로틴 성분이 최소량만 포함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반하는 경우 해당 제품의 판매가 금지 처분됩니다. 땅콩 기름은 특히 샴푸, 샤워젤, 바디로션, 목욕 비누 등에 사용되는데, 연방 위험 평가청(BfR)에서는 유아에게 땅콩 기름 제품을 이용하지 않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예술은 훌륭한 작품일수록 아름답고 감동을 주는 영원한 것이라고 말한 어느 화가의 독백처럼 뮌헨 태생인 민화화가 스피츠웩은 진솔하고 소박한 서민들의 일상적인 삶의 이야기를 그렸다.

 

 

독일풍의 짙은 작가의 작품들은 오랜 세월이 흘러가도 여전히 독일인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고있다. 그 중에서도 '가난한 시인'(Der arme Poet) 유화그림은 유례없이 특별한 인기가 있다. 이 그림은 당시 가난한 시인의 삶을 유머러스하게 잘 표현한 그림이다. 

 

구멍이 뚫린 천장에 비를 피하기 위해서 우산을 펼쳐놓았다. 가난한 시인은 책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는 곳에 드러누워 명상에 잠겨 시를 구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벼룩을 잡아 엄지와 검지로 누르는 표현은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그 속에서 가난과 인간의 외로움 그리고 소박하고 따스함과 편안함을 주는 그림이다.

 

1855-1860년에 그린 그림 '영원한 구애자'(Der ewige Hochzeiter) 는 19세기 중엽 독일미술양식으로 그린 스피츠웩의 대표작이다. 좁은 골목길, 아치형 통로의 포도넝쿨 돌계단으로 되어있는 목조건물들이 소박한 당시 정경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림에서 하이라이트는 고지식하고 성실해 보이는 정장차림인 젊은 청년이 집 앞에서 물동이를 내려놓은 귀여운 아가씨에게 모자를 벗고 공손하게 쳐다보면서 아름다운 꽃다발을 주는 장면이다. "이 꽃은 말린 꽃으로 영원히 변치 않습니다. 내 사랑도 그렇게 영원히 그대를 사랑할 것입니다.“ 라고 사랑의 고백을 한다.

 

당시 남여 교제는 몰래 숨어서 하는 봉건적인 시대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대낮에 한 청년이 집 앞에서 아가씨에게 용기를 내어 애정고백을 하는 모습이다. 같은 건물에 살고 있는 아낙네와 청년이 창문에서 내려다 보고 있고 물동이를 이고 가던 아가씨들도 걸음을 멈추고, 물동이를 내려놓고 그들을 비판적인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그들은 대단한 사건이라고 심각하게 쳐다보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당시 문화적 배경과 시대적 정신을 조감 할 수 있다.

 

스피츠웩의 작품들은 전체가 결정적 분기점인 화이트, 레드, 그린 칼라로 작가가 프랑스여행에서 돌아온 후 당시 유행했던 바비종(Barbizon)양식으로 표현했다.

 

1860년에 그린 '연애편지'(Der abgefangene Liebesbrief)도 재미있다. 위층에 살고 있는 청년이 창문을 열고 아래층에 살고있는 아가씨에게 연애편지를 끈에 동여매여 신중하게 내리고 있다. 

 

바로 옆집 지붕에는 사랑을 속삭이는 행복한 비둘기 한 쌍이 보인다. 청년도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아래층에 있는 아가씨는 창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모른 채 바느질을 열심히 하고 있다. 그 곁에 있는 하인이 갑자기 위에서 무언가 위에서 내려오고 있는 것을 보면서 놀라 입을 헤벌리고 있다. 

 

세 사람은 과연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호기심을 자아내게 한다. 퇴색된 조그만 초록색창문, 문양이 있는 목각집, 모두가 인간적인 소박함이 깃들어있다.

 

 

 

 

1850년에 그린 그림 '책벌레'(Der Buecherwurm),는 제목자체가 재미있다. 백발 노안의 학자가 자신의 서재 후미진 곳에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오른손에, 왼손에 책을 들고 시선은 오직 책에만 두고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책은 옆구리에도, 무릎에도 끼고 있는 모습이 '책벌레'를 연상케 한다. 열쇠구멍으로 보인 것처럼 그린 희미한 불빛정경이 황혼의 원로학자와 어우러져 유모러스하다.

 

스피츠웩은 체계적인 학교의 미술교육보다 독학으로 자신의 세계를 확립한 독특한 작가이다. 작가의 작품들은 어떠한 제도적인 격식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분방함과 유머와 해학적인 풍자로 필치를 특징으로 담고 있다.

 

스피츠웩의 작품들은 진지하고 순수하고 재미있다. 그림속의 구석구석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삶 그 자체에서 초월적인 자세보다는 현실에 좀 더 가까이 있고 싶고 사람들과 더불어 생활하고 느끼는 그러면서 감상자와 이해를 공감할 수 있는 그림, 그 속에서 실망하지 않고 모든 희비극을 긍정적으로 유머러스하게 풍자한 그의 작품들은 항상 따뜻함과 사랑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피츠웩의 그림들과 가까이 하고 싶고 그 그림 속에서 인간의 깊은 정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스피츠웩의 아버지는 독일 Oberbayern 시골에서 부유한 가정의 아들로 어머니는 뮌헨에서 과일 도매상을 하는 가정의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뮌헨에서 섬유도매상으로 대단한 성공을 이룬 사업가였다. 

 

그들 사이에 둘째로 태어난 스피츠웩은 가정의 풍요로움 속에서 모든 면에 성실하고 근면한 모범적인 유년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체계적이고 현실적인 전형적인 독일인 이였다. 청년시절의 스피츠웩은 아버지의 계획대로 순종하며 안정된 직업인 약사가 되었지만 스피츠웩은 그의 직업에 만족하지 못하고 화가의 길을 택했다. 

 

개성이 강한 작가는 체계적인 미술학교 교육을 거부하고 자유로운 창작세계를 독학으로 이뤄냈다.

 

 

 

 

같은 시기에 같은 뜻을 가진 화가 동지들을 많이 알게 되어 1824년 그들은 독일에서 처음으로 '시민예술연합모임' 을 탄생시켰다. 회원이 된 스피츠웩은 독일과 스웨덴, 스위스, 비엔나 등 세계 곳곳에서 전시를 하였다.

 

1858년 스피츠웩은 그가 살던 Dienergasse에서 Neuhauser Gasse로 옮긴것이 계기가 되어 새로운 아틀리에서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유럽 전 지역을 여행하면서 많은 스케치와 유화작품들을 남겼다. 1867년 런던에서 열린 세계미술박람회(Weltausstellung) 에 4개의 작품을 출품하여 화가로서의 인정을 받게 되었다.

 

1871-1880년은 스피츠웩의 전성기였다. 그는 대중들에게 대단한 인기와 사랑을 받은 민화화가로 많은 작품들이 팔려나갔다. 1885년 4월25일 스피츠웩은 그의 자택 Heumarkt에서 세상을 떠났다.

 

지금도 거리를 걷다보면 스피츠웩 애호가들의 경영하는 약국 'Spitzweg-Apotheke' 라고 쓴 간판이름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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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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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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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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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순 절

대한예수교오순절성회

자 감

기독교대한자유감리회

하나님교회

기독교한국하나님의교회

 

 

 

 

 

 

 

 

 

 

여행가 정상진씨와 배상환 원장

 

 

여행가 정상진씨의 ‘사무엘 정 투어 에피소드’와 라스베가스 서울문화원 배상환 원장의 신간 ‘라스베가스가 다섯 시면 서울은 몇 시죠?’ 합동 출판기념회가 지난 4일 라스베가스 휄로쉽교회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책을 사랑하고 문화를 아끼는 110여 명의 한인들이 참석해 출판을 축하했다. 행사가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책 구매와 두 저자의 사인을 받기 위한 행렬이 두 줄로 길게 늘어섰다. 이날 두 저자가 준비한 책들은 완판됐다.

 

‘사무엘 정 투어 에피소드’는 저자 정상진씨가 2016년 2월 5일부터 2018년 4월 6일까지 라스베가스 지역 신문 한미일요뉴스에 총 104회 연재했던 글을 묶은 책이다.

 

또, ‘라스베가스가 다섯 시면 서울은 몇 시죠?’는 배상환 원장이 2015년 4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지역 신문 ‘한미일요뉴스’에 썼던 편집장 컬럼 56편을 묶은 것으로 저자의 열여섯 번째 책인 동시에 ‘라스베가스 시리즈’ 중의 한 권이다.

문의 (702)379-0222 배상환

 

 

 

 

 

 

 

 

 

 

 

 

 

 

화웨이 CFO 체포까지 촉발한

2012년 의회보고서 재주목

초당적 공감대의 토대…

시장진입 차단·제재위반 조사 진행중

 

 

미의회 보고서

 

 

 

완저우(孟晩舟) 화웨이 최고재무책임자(CFO)

 

 

중국의 통신장비업체 화웨이가 미국과 중국의 다툼을 악화할 거대 갈등요소로 떠올랐다.

 

특히 최근 완저우(孟晩舟) 화웨이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이란제재 위반 혐의로 체포되면서 긴장이 더 고조됐다.

 

그러나 사실 화웨이에 대한 미국 정가의 극도로 부정적인 인식을 고려할 때 이런 사태는 예견된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화웨이에 대한 이런 부정적 인식뿐만 아니라 제재 명분까지 제시하고 있는 미국 의회보고서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 하원 정보위원회가 2012년 10월 8일 발간한 '중국 통신사 화웨이와 ZTE가 제기하는 미국 국가안보 문제에 대한 조사 보고서'에서 화웨이는 위협 그 자체로 묘사된다.

 

조사 결과를 요약하면 화웨이는 자발적으로 중국 정부와 공산당의 지령을 따라 기밀을 훔치고 지식재산권을 침해하며 미국의 적성국과 수상한 거래까지 하는 기업이다.

 

이 보고서는 우선 화웨이가 미국 법규를 준수하지 않는다는 신뢰도 높은 증거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화웨이가 중국 정부 또는 공산당으로부터 통제를 받기 때문에 이런 행태가 이어지고 있다고 의심했다.

 

보고서는 "화웨이는 기업구조와 의사결정 과정에 대해 뚜렷하고 완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서 국가지원을 받기 위해 중국 정부에 계속 의존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공산당이 화웨이 사내에 당 위원회를 설치·유지하고 있으나 화웨이가 위원회 성격과 기능을 밝히는 걸 거부한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이런 상황을 토대로 의회는 중국 정부가 화웨이를 통해 미국에 적대적 행위를 할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경계했다.

 

보고서는 "중국이 악의적 목적을 위해 자국 통신업체들을 이용할 수단, 기회, 동기를 갖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화웨이가 중국 정부의 지령에 따라 기밀정보 수집과 같은 정치공작에 동원될 뿐만 아니라 첨단기술 절도, 이적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결론도 도출됐다.

 

하원은 화웨이가 미국 내에 있는 기업들의 지식재산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상습적으로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화웨이가 이란 정부와 거래하고 있으면서도 이란 내 사업체에 대한 구체적 정보를 내놓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화웨이의 이 같은 거래가 이란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나 미국 무역법규에 위배될 수 있다고 적시했다.

 

화웨이의 국가안보 위협 가능성을 담은 이 보고서는 미국 정가에서 초당적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미국 의회는 이를 토대로 정부, 공공기관, 민간 기업에 화웨이를 견제하라고 초당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미국 공공기관들은 의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화웨이 장비 구매를 중단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상대로 무역 전쟁에 들어가면서 화웨이에 대한 공세는 급물살을 탔다.

 

AT&T와 버라이즌 커뮤니케이션스 등 미국 통신회사들은 화웨이가 미국 내에서 스마트폰을 출시하지 못하게 했다.

 

연방통신위원회(FCC)는 미국 통신사들이 화웨이 장비 구입에 연방정부 보조금을 쓰지 못하게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국방부는 군사기밀 보호를 위해 군 복무자 전원이 화웨이 휴대전화기를 사지 못하도록 금지령을 내렸다.

 

미국은 국경을 넘어 동맹국, 특히 미군 주둔국의 정부나 기업들이 화웨이 장비를 거부하도록 압박하는 작업에도 착수했다.

 

재무부와 상무부는 이란과 북한 등에 미국이 유지하고 있는 무역제재를 화웨이가 위반하고 있는지 조사도 벌여왔다.

 

최근 화웨이 창업주의 딸이자 최고재무책임자(CFO)인 멍완저우 부회장이 체포된 사태의 배경엔 화웨이에 대한 미국 측의 이런 인식과 시각이 깔려있다.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제임스 루이스 부회장은 보고서 내용을 기정사실로 소개했다.

 

루이스 부회장은 "화웨이가 좋은 물건을 만드는 훌륭한 회사이지만 중국 정보기관의 한 조직으로 활동한다"며 "화웨이는 처음부터 그랬고 중국 정부가 화웨이를 매우 크게 지원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주장했다.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견제는 중국의 기술 수준에 대한 미국의 경계심이 커지면서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화웨이에 대한 인식의 틀이 되는 의회보고서도 기술패권 경쟁과 안보 우려가 뒤섞인 이 같은 구도를 적시하고 있다.

 

보고서는 "화웨이와 같은 중국 통신업체들이 통신시장에서 급속히 지배적 주자가 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문제가 더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런 전개가 다른 산업이라면 덜 우려스럽겠으나, 이들 업체가 정보수집이나 다른 악의적 목적으로 악용될 수 있는 민감한 장비와 기간시설을 장악하려고 한다면 시장 다양성 결핍은 미국과 다른 나라들에 국가적 우려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르웨이여성도 2016년부터 남성과 마찬가지로 1년간 복무할 의무를 갖고 있다.

전쟁 상황이 아닌 서구 선진국에서 '남녀 동일복무'란 정책을 만든 것은 처음이다.

 

노르웨이 정부는 "노르웨이 사회의 기본 가치는 '국민의 권리와 의무는 성별과 상관없이 동일해야 한다'는 것"이라면서 "이번 법안은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걸음 중 하나"라고 밝혔다.

 

여권(女權)으로 세계 최고인 이 나라에선 모든 분야에서 여성 인재가 제대로 대우받고 진출해야 한다는 철학에서 여성 의무복무제가 나온 것이다.

 

노르웨이 정부는 "현대 전쟁은 정보전 등 고급 두뇌가 필요한 양상으로 바뀌고 있다"고 했다.

 

지금까진 적대국과 테러 세력에 둘러싸여 준전시(準戰時) 상황에 놓여 있는 이스라엘이나 아프리카의 에리트레아·차드 같은 분쟁지역 국가들이 주로 여성을 의무 징집해왔다.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당시 아랍연합군과 전쟁을 치르며 부족한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여성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모병제인 미국에서도 여군의 효용을 재평가하고 있다. 미 전체 병력 137만명 중 여군의 비율은 15%에 이르고, 의회엔 여군 확대 법안이 올라와 있다.

 

미 방위정보센터(CDI)는 1998년 "여군과 남군이라는 특성이 아니라 개인이 가진 역량에 의해 관리되고 평가받아야 한다"는 지침을 정했고, 2000년대 들어 중동 전쟁 등에 여군을 실전 투입하고 있다.

 

국 청년은 군에 입대해 18개월, 즉 1년 반만 군 복무를 하게 됐다. 현재 21개월, 즉 1년 9개월 복무인데, 2020년 입대 병사부터 1년 반만 복무하게 된다.  현재 62만 명에 가까운 군 병력을 문재인 정권 임기 마지막 해인 2022년까지 50만 명으로 조정할 계획이다.

 

 

 

 

 

 

 

 

 

 

 

 

 

 

 

 

 

 

 

 

 

 

5일 CNN이 공개한 북한 양강도 김형직군 영저리 인공위성 사진에서 6·12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이후에도 미사일 은닉 터널 등 시설 확대 작업이 꾸준히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CNN 캡처

 

북한이 영저리(영저동) 비밀미사일 기지에 지하터널을 새로 뚫고 시설물 확장에 나서는 등 최근 미·북 대화국면에서도 여전히 장거리미사일 능력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일 CNN은 독자적으로 확보한 위성 사진을 근거로 북·중 국경지대인 양강도 김형직군 영저리 장거리미사일 기지에서 약 7마일(11㎞) 떨어진 지점에 지난 8월과 10월 사이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새로운 지하시설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등 이전과 다른 활발한 활동이 포착됐다고 전했다.

 

특히 CNN의 의뢰로 위성 사진을 분석한 미국 미들버리 국제학연구소 연구팀은 영저리 시설이 미국을 겨냥한 핵탄두 장거리미사일 발사장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소의 동아시아 비확산프로그램 책임자인 제프리 루이스 박사는 CNN 인터뷰에서 “6·12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이후에도 공사는 계속됐다”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나타내면서도 핵 미사일을 계속 생산·배치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우리 군과 정보당국은 “영저리 미사일 기지는 한·미의 감시대상 중 한 곳”이라고 말했다.

 

군 관계자는 “영저리 기지는 이미 1999년 말에 식별된 미사일 기지”라고 밝혔다. 한·미 군 당국은 북한이 1990년대 중반부터 양강도 영저리에서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는 징후를 첩보위성으로 포착했으며, 1999년 말 중거리 노동미사일 기지로 식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날 미 상원은 전체회의를 열고 북한이 불법활동을 중단할 때까지 대북 제재를 완전히 이행하는 것을 미국의 대북 정책으로 규정하고 제재 해제 시 30일 이내에 보고서 제출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아시아 안심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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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해 보아야 할 것들’ 버킷 리스트(The Bucket List)라는 책이 소개되면서 죽기 전에 해볼 것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에 그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중에 하면 되겠지’ 하고 미루지 맙시다. 세월은 쏜살같이 빠르게 지나가고 후회만 남습니다. 나에게 주어지는 삶의 기회를 최대한 활용합시다. ‘임종을 앞두고 후회의 눈물을 흘리느니 기회가 주어졌을 때 열심히 살아라.'

 

영국의 저술가 새뮤얼 스마일스(Samuel Smiles)의 말입니다.

 

 

 

 

 

 

 

 

 

 

 

 

 

 

 

 

 

 

 

 

 



 

1. 도리도리   2. 좌우로 회전,
3. 앞뒤로 끄덕임, 4. 좌우 옆으로

 

 

 

 

 

 

 

 

 

 

 

[주간동남부] 대장암, 진실 혹은 거짓 6가지 - 건강 - 애틀랜타 조선일보 : 2.jpg

 

 

 

 

한국은 대장암 발병률 세계 1위를 기록 중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대장암 발병률은 인구 10만명당 45명으로 조사 대상 184개국 중 가장 높았다.

 

발생 연령도 점차 낮아져, 대장암이 더 이상 노년기 질병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도 많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대장암 관련 궁금증을 갖는 사람도 늘고 있는데, 관련 속설 6가지의 진실 여부를 고대구로병원 대장항문외과 민병욱 교수 도움말로 알아봤다.​

 

[주간동남부] 대장암, 진실 혹은 거짓 6가지 - 건강 - 애틀랜타 조선일보 : 1.jpg

 

 

 

1. 대장 용종은 모두 암이 되나요? X ​ 

 

대장 용종이 모두 암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장용종의 조직학적 특성에 따라서 암으로 발전할 수 있어 내시경 중 용종이 발견됐다면 바로 제거하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대장암 수술을 받은 후에는 5년간 1년에 한 번씩 용종 발생 여부를 확인해야 하고, 일반인도 45세 이상은 대장내시경을 정기 검진을 권장한다.

 

 

2. 대장 용종 수가 많다고 암 발병률 높아지나요?

 

대장의 용종 수가 많다고 대장암 발병률이 높아지는 건 아니다. 질병과 연령에 따라서 용종의 수가 많고 적을 수 있다. 단, 대장암 가족력이 있는 경우는 유전자 검사를 권장한다. 유전적 대장암 중 하나가 다수의 용종을 동반하는 대장암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장내시경 시 용종이 많았다는 이야기만으로 대장암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3. 생소한 소장암, 소장에도 암이 생기나요? O​ 

 

소장에도 암은 발생한다. 소장암 발병률이 매우 낮아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대장보다 소장이 3~5배 긺에도 불구하고 대장암 발병률이 훨씬 높다. 그만큼 대장이 소장에 비해 독소와 노폐물이 오랜 시간 노출된다는 것이다. 또한 내시경 검사가 대중화된 것도 영향이 있다. 내시경으로 대장은 전체적 확인이 가능하나 소장은 내시경적 접근이 어렵다. 따라서 소장암은 암 발견율이 낮고, 대장암은 아주 초기 암이라도 발견이 쉬워졌다.

 

4. 뚱뚱하면 대장암에 잘 걸리나요? X​ 

 

그렇지 않다. 비만과 대장암의 연구는 활발히 진행 중이지만, 아직 비만과 대장암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찾지 못했다. 기름지고 자극적인 음식, 육류나 지방섭취를 즐기는 식습관은 대장암 위험요인으로 볼 수 있지만, 단순한 비만이란 체질로 대장암을 단순히 연관시키기는 어렵다.

 

5. 변비나 치질이 심하면 암 걸릴 확률이 커지나요? △​ 

 

치질을 방치하면 직장암이 될까 걱정하는 사람이 많지만, 둘은 별개의 질환으로 연관이 없다. 다만 변비는 대장암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변비로 인해 대변의 독성물질과 노폐물들이 대장 점막에 노출되는 시간이 자연스레 길어지기 때문이다.

 

6. 유산균이나 프로바이오틱스가

대장암 예방에 도움이 되나요? △​ 

 

유산균이나 프로바이오틱스는 장내 세균의 적정 비율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에 변비 개선 등을 위한 섭취는 효과적이다.

 

하지만 이미 적정 비율로 잘 유지되고 있는 경우 섭취 시 도리어 균형이 깨지기도 한다. 따라서 세균의 균형이 무너졌을 때 나타나는 설사나 변비, 배변습관 불규칙 등 개선을 위해 섭취를 권장한다.

 

하지만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경우 정상세균총이 무너졌다는 의미로 면역력 저하로 인해 암과 연관이 있을 수 있어 전문적인 진료를 받고 유산균이나 프로바이오틱스도 처방 받아 먹기를 권장한다.

 

 

[주간동남부] 대장암, 진실 혹은 거짓 6가지 - 건강 - 애틀랜타 조선일보 : 3.jpg

 

 

대장암결장직장에 생기는 악성종양을 말한다. 암이 생기는 위치에 따라 크게 '직장암'과 '결장암'으로 나눈다.

 

항문부터 시작해 약 15㎝ 안쪽 구간에 생기면 직장암, 나머지는 결장암이다. 이를 통칭해 '대장암' 또는 '결장직장암'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대장암에 걸리면 배변 습관에 변화가 생긴다. 갑자기 변을 보기 힘들어지거나 변을 보는 횟수가 바뀔 수 있다.

 

또한 피가 묻어나는 혈변이나 검은색 변을 볼 수 있다. 대장암 덩어리 때문에 대장이 좁아져서 변이 연필처럼 가늘게 나오거나 잦은 설사를 하기도 한다.

 

그밖에도 복부 팽만이나 복통, 체중 감소, 피로감, 식욕 부진, 소화불량, 구토 등의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변비도 대장암의 주요 증상이다. 대장에 암이 생기면 장의 연동운동이 더뎌지기 때문이다.

 

대한대장항문학회 조사에 따르면 실제 대장암 환자 7명 중 1명이 대장암 진단 전에 변비를 경험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치질과 대장암의 공통점이 혈변이기 때문에 단순 항문질환인 치핵(치질)을 의심하고 방치하기 쉽다.

 

김지훈 교수는 "40대 이후 중장년층의 경우 과거에 없던 치핵이 갑자기 생기거나 변비와 설사, 평소와 다른 배변습관 변화 등의 증상이 발생하면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 후 대장암 검사를 해 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대장암은 대부분 대장에 생기는 용종에서 시작하므로 용종만 잘 제거해주면 암을 예방할 수 있다.

 

실제 ​대장암의 80~90%는 대장에 생긴 작은 혹인 용종(폴립)에서 시작한다. 대장 용종이 자라서 4~5년 지나면 대장암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대장내시경 검사를 통해 대장 용종을 미리 제거해야 한다.​

 

김지훈 교수는 "대장내시경을 하면 용종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수 있고, 용종을 떼어낼 수도 있기 때문에 검사와 예방을 동시에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대장암이 발견되면 발생한 부위를 중심으로 대장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을 시행한다.

최근에는 배를 절개해서 열지 않고 배에 지름 0.5~1cm의 구멍 4~5 개를 뚫어 진행하는 복강경 수술이 가능해져 환자의 수술 부담이 크게 줄었다.

 

김지훈 교수는 “직장암의 경우 항문과 가깝다 보니 예전에는 항문을 떼어내고 장루(인공항문)를 만드는 복회음 절제술을 많이 진행했다”며 “그러나 최근 기의 발달로 항문에 가까운 직장암이더라도 수술 전 방사능 치료와 항암 치료를 선행해 가급적 항문을 살리는 쪽으로 수술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장내시경 검사는 나이별로 권고되는 시기가 있다. 50세부터는 5년에 한번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대장암 가족력이 있으면 40대 때부터 대장 내시경을 받는 것이 도움이 된다.

 

Tip. 대장암 유발 요인

 

- 부모 및 형제가 대장암인 경우

- 용종(폴립)

- 유전성암

- 동물성 지방, 붉은 육류 중심의 식습관

- 굽거나 튀기는 조리방식

- 비만과 음주

- 만성 염증성 대장질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