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06,  2019

 

 

 

 

 

 

 

 

 

 

 

 

 

 

 

 

 

 

 

 

 

 

 

 

 

 

 

 

 

 

 

 

 

 

 

 

 

 

 Mizuno Genzo (1937~1984)

 

눈 깜빡이는 시인 미즈노 겐조(水野源三 , 1937-1984), 그는 조용한 농촌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산과 들을 뛰어 다니는 건강한 소년이었지만, 그해 여름 홍역이 돌아 겐조도 감염되고 말았다. 고열이 내리고 의식을 회복했을 때는 이미 그 전의 겐조가 아니었다. 전신이 마비되었을 뿐만 아니라 언어 능력 조차 빼앗겨버린 것이었다. 이때부터 겐조의, 그리고 그 가족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겐조가 열두살 나던 어느 날, 마을의 한 교회 목사가 겐조의 집에 빵을 사러 왔다가 때마침 겐조를 알게 되어 한권의 책을 주고 갔는데, 그것은 성경이었다.

 

처음 읽어보는 성경. 소년 겐조에게는 자신을 몰입시키는 하나의 세계였다. 매일 거르지 않고 성경을 읽어나가는 동안 겐조의 사고방식은 변화되고, 자신이 살아있어야 하는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여 그 얼굴은 날로 밝아져갔다.

겐조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삶의 주관자로 마음에 영접했다.

 

그 후의 겐조는 더욱 변화되어갔고, 그의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들게 되면서 그의 얼굴은 웃음을 되찾게 되었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으로써 겐조는 누구에게나 만면의 웃음을 지어보이곤 했다.

 

몸이 부자유스럽고, 말조차도 하지 못하는 그가 어떻게 시를 짓게 되었을까?

그 계기가 된 것은 겐조를 진찰하던 의사가 "[예]라고 대답할 때는 눈을 감으라"는 주문을 한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겐조의 어머니는 이것을 단순한 대답뿐만 아니라,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적용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물(水)을 뜻하는 일본어인 みず(미즈)를 찾을 경우, 오십음도(일본의 가나 문자를 순서대로 배열한 도표)를 사용하여 그의 어머니가 손가락으로 아행(あ行)부터 차례대로 옆으로 짚어가면 아-카-사-타-나-하-마-야-라-와(- --------)의 마() 부분에 와서 겐조가 눈을 깜빡이면, 거기서부터는 밑으로 짚어가며 마-미-무-메-모(----)의 미() 부분에 와서 또 한 번 눈을 깜빡이는 방식으로 한자 한자의 글을 찾으며 문장을 만들어 가는 엄청나게 고된 작업이었다.

이렇듯 정말 엄청난 작업을 통해 그때까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겐조의 내면 세계가 표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그의 눈 깜빡임을 통해서 수백편에 이르는 시가 탄생하게 되었다. 미즈노 겐조가 [눈깜빡이는 시인]으로 불리우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그의 시 속에는 하나님께 대한 찬미와 기쁨이 가득 넘쳐흐르고 있다.

 

미즈노 겐조의 이야기는 NHK에 특집으로 다뤄졌고, 그의 시집은 일본 문단의 걸작이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미즈노의 시집 중에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또 원망해도 부족할 텐데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가 족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가 쓴 시 몇편을 소개한다.

 

 

 

내가 만일 괴롭지 않았더라면

 

 

내가 만일 괴롭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만일 모든 형제자매가 괴롭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은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우리 주님이 괴롭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전달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 하루도

 

 

신문 냄새에 아침을 느끼고  

냉수의 시원함에 여름을 느끼고  

풍경 소리의 서늘함에  

저녁을 느끼고  

개구리 소리가 드높아  

밤을 느끼네

 

오늘 하루도 끝이구나  

한 가지 한 가지 일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느끼며

 

 

 

 

하나님의 크신 손 안에서  

달팽이는 달팽이답게 가고  

 

닭장 들꽃은 닭장 들꽃답게 피고  

청개구리는 청개구리답게 울고  

 

하나님의 크신 손 안에서  

나는 나답게 산다

 

 

 

평화

 

 

나는

나라도 말하는 언어도 생각하는 일도  

각각 다른 수십억의 인간들이  

아버지되신 하나님의 곁으로 돌아오도록  

아침에도 기도 드리고

저녁에도 기도 드린다.

 

 

 

주님의 것이 되었기에

 

 

주님의 것이 되었기에  

지극히 작은 일이라도  

기도 드려 구하세요  

 

주님의 것이 되었기에  

지극히 작은 일이라도  

기도 드려 결정하세요

  

주님의 것이 되었기에  

지극히 작은 일이라도  

주님의 뜻대로만 행하세요  

 

주님의 것이 되었기에  

지극히 작은 일이라도  

악마의 유혹에 조심하세요  

 

주님의 것이 되었기에  

지극히 작은 일이라도  

주님의 은혜와 뜻을 찬양하세요

 

 

 

당신의 집 당신의 마음에

 

 

당신의 집 당신의 마음에  

사랑 어린 발길로 걸어오시는  

주 예수님 영접을 위하여  

준비를 서두르세요  

 

당신의 집 당신의 마음에  

사랑 어린 음성으로 나직이 부르시는  

주 예수님 영접을 위하여  

지금 곧 문을 여세요  

 

당신의 집 당신의 마음에  

사랑 어린 눈길을 보내시는  

주 예수님 영접을 위해  

모든 일을 다 끝마치세요

 

 

 

나의 마음 속에

 

 

나의 마음 속에 소망이 있네  

그리스도가 주셨다네  

근심 중에 있어도 변함이 없네

 

 

 

아직 안 보이는걸

 

 

기다리는 소망  

나의 마음 속에 기쁨이 있네  

그리스도가 베풀어 주셨다네  

세월 흘러 간데도 소멸치 않네  

세상에서 얻지 못할 기쁨 있다네  

 

내가 전진해나갈 한 길이 있네  

그리스도가 활짝 열어 주셨다네  

어둠이 드리워도 헤매지 않네  

저 천국에 이르는 기쁨이 있는 그 길

 

 

 

잊어버리기 전에

 

 

지금 들은 것

본 것

마음에 느꼈던 것

잊어버리기 전에

사라지기 전에

주님의 아름다운 일을

찬양하는 시를 만든다.

 

 

 

그렇지는 않아

 

 

걸어가는 사람은 나 혼자

그렇지는 않아

그렇지는 않아

나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이 나와 함께 걸어가신다.

 

고민을 하는 사람은 나 혼자

그렇지는 않아

그렇지는 않아

나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이 나와 함께 고뇌하신다.

 

기도드리는 사람은 나 혼자

그렇지는 않아

그렇지는 않아

나의 소원을 아시는

주님이 나와 함께 기도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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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노 겐조(水野源三. 1937~1984)

뇌성마비 장애를 가졌던 그는, 일본 나가노현에 埴科郡 坂城 출생하였고, 14세 때 세례 받고 크리스천이 되어 18세 경부터 시를 짓기 시작하여, 수백편의 시를 남기고, 향년 47세로 세상을 떠났다.

 

 

 

 

 

 

 

 

 

 

 

 

 

 

 

 

 

 

 

우리가 자주 부르는 찬송입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 나를 박대(薄待)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그런데 요즘은 "박대하시면"을 "외면하시면"으로 바꿔서 부르고 있습니다. 박대하거나 외면 하거나 모른 채 하신다면 우리의 신세가 말이 아닐 것을 알기 때문에 애절한 곡에 우리의 마음을 담아 찬송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올해도 새해가 화려하게 시작되네요. 항상 그랬습니다. 해돋이 구경을 간다고 바다가로 몰려가고,  뉴욕에서는 타임 스퀘어 광장에 모여 화려하기 그지 없는 불꽃 놀이와 함께 "해피뉴이어"는 성큼 다가옵니다.

 

번영신학의 힘을 얻어 교회는 풍성하고 지극히 넉넉한 새해를 축복합니다. 잘되고 잘되고 더 잘되라고.....

 

아브라함이 99세가 되는 해입니다.  

1. 아브람이 99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3.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4.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창 17:1-5)

 

이처럼 큰 축복과 번영의 약속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교회가 외쳐대는 축복의 말씀이 여기에 다 있구나. 매료되고 숨막히는 감동과 감격이 이 말씀 속에 있지 않은가?

 

 그런데 창16:16에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86세였더라” 했으니까 창17:1에  “아브람이 99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씀과의 사이에 하나님의 침묵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루도 아니고, 1년도 아니고 13년간 하나님께서 침묵하셨습니다.

 

13년의 세월 참으로 아브라함에게 힘든 시기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향해서 왜 침묵하셨을까요?

 

1. 말씀을 존중하지 않을 때 침묵하셨습니다.

 

창16:2에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아브라함은 사람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동안 여러 차례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 사라의 말을 들었습니다. 사라의 여종 하갈으로 얻어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아내 사라가 속히 자식을 낳지 못하자 급한 나머지 사람의 말을 들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침묵하십니다.

 

삼상15:23에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했습니다.

 

사람도 말을 들어주지 않고 존중해 주지 않으면 침묵하지 않습니까.

 

신28:1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지 않을 때는 하나님은 침묵하십니다.

 

2. 하나님보다 다른 것 애착할 때 침묵하십니다.

 

13년간의 아브라함의 잘못은 여종의 아들 이스마엘의 재롱을 낙으로 삼은 것입니다. 이스마엘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아들도 아니고 메시야 계보에도 없는데도 아브라함 그가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희망하였습니다. 아이 사랑과 치다꺼리로 13년을 보내며 날마다 약속하신 아들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에 애착을 가지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멀어지십니다.  멀리하십니다.  물질 명예 권세 쾌락 형통이 하나님일 수 없습니다. 아무리 고상하고 인류에 이바지할 일이라 할지라도 우상입니다.

 

그래서 요일2:15-17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했습니다.

 

마10:37-38에 예수님은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셨습니다.

 

바울처럼 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그 안에서 성장해 나가는 것을 가장 귀한 일로 여겨야하겠습니다.

 

3.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할 때

 

창18:1에 “아브람의 99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하셨는데 13년 만에 나타나신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일종의 야단치심이 담겨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소개합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왜 인간의 생각으로 행했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는 말씀은 이젠 딴 마음 품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맹세하고 한다는데 왜 너는 나를 믿고 기다리지 못했느냐는 질책이십니다.

 

갈4:28에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육의 사람이 아니라 영의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이라고 고쳐 주셨습니다. “아브람”은 ‘고귀한 아버지’요,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그런 다음 불과 1년 만에 약속하신 이삭을 기적적으로 낳게 하셨습니다. 이제 이스마엘에게만 고귀한 한 사람의 아버지가 아니라 모든 나라 수많은 민족의 열방의 아버지인 것입니다.

 

히브리 사람들에게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그의 존재를 바꾼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자녀인 것입니다. 예수 믿어 구원 받았습니다. 그러면 구원 받은 것이지 죄를 이기려고 무슨 일을 또 한다는 말입니까. 이제 우리는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긴 자사는 것입니다.

 

새해를 맞이 하면서 아브라함을 생각합니다. 그를 생각하니 하나님의 침묵처럼 무서운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아무리 큰 꿈도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면 헛되고 헛된 것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실까봐 두렵습니다.  하나님께서 외면하실까봐 떨립니다.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3:9)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빌2:12)는 말씀을 벽에 붙여 놓고 한해의 표어로 삼겠습니다.(장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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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란임비의 인도거리식당 메뉴표

쿠알라룸푸르에서

 2019.1.4.  

노종해 (CM리서치)

 

오늘은 선교사의 일상 식생활을 엿보도록 소개 합니다. 혹 단기선교나, 선교지 방문, 선교사로 헌신 하실 분들에게 엿보시라고 간단하고 실용적인 현지인들의 서민 식생활을 소개합니다.

 

KL도심 잘란임비의 인도식당에서 "로띠차나이"와 "떼따리" 음료를 아침식사로 즐겨 보았습니다. 철판에 밀가루 반죽을 공중에 돌리며 철판에 내리쳐서 얇고 널게 그리고 찰지게 만들며 구운 로띠(빵)이지요. 

말레이시안들은 보통 아침식사를 간단하게 "로띠차나이 1개와 떼따리"로 즐기지요.(홍차에 간유를 넣어 컵에서 컵으로 교차하며 들어부어 썩어지게한 음료)

 

 

 

 
 

오늘 아침은 특별히 로띠에 뗄록(계란)과 바왕(양파)을 넣은 "로티차나이 뗄록 바왕"을, 음료로는 "떼따리"를주문하고, 카레로는 생선카레를 선택하였습니다.

 

이렇게 주문하여 계산하니 Rm4.20링깃(1,300원) 이었습니다. 인도음식에는 언제나 카레가 따라 옮니다. 양고기 카레도 있고, 생선카레, 야채카레 등 종류도 다양합니다.

 

주방에서는 점심메뉴 준비하여 음식대에 진설로 분주히 오갔습니다. 무턴카레(양고기), 아얌카레(치킨), 우당카레(새우), 이깐카레(생선), 나시고렝(볶음밥),"미고렝"(볶음국수),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식단들 등 배열로 분주하고 있군요. 마치 뷔페 처럼 접시에 자율로 담아 보이면 계산하지요. 

 

조심할 것은 이것저것 조금씩 골골루 담으면 모두 계산이 되어 비용이 커진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한 두가지로 넉넉히 담아야 실비가 됩니다.

 

 

 

▲ 인도인 조리식단을 진열대에 배설하였군요

!-모두 코코넛유와 가루, 야채곡물 카레로 삶고, 튀기고, 굽고 등등

 

한.두가지를 접시에 담아 점심 적녁식사가 되지요. 보통 값은 Rm8링깃(2,400원) 정도 입니다. 한국 음식 값에 비하면 즐겁고 행복합니다.

 

오늘은 인디안 음식으로 선교사의 일상식생활을 소개했지만 다음에는 차이니스 거리식당을 소개합니다. 여기서는 눈팅으로 맛만 보여 주겠습니다. 맛이 보입니까?

 

 

 

▲ 2-3인이, "로띠차나이" 잔치를 벌려 보세요-"로띠 바왕 텔록", "로띠", "로띠 봉"과 인도카레, 음료는 "떼따리"-풍성하군요!-총계 Rm9(2,700원)

 

 

 

▲ 챠이니스 요리-"챠슈폭"(군삼겹살), "닥 라이스"(오리고기), "챠이니스티 빠나스"(더운 엽차)-총계 Rm15(4,500원)

 

어느덧 12시 점심시간도 되니 챠이니스 거리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치킨라이스", "닥라이스(오리고기)"와 "챠슈폭(군삼겹살)", "꿰띠아웃고렝(쌀국수볶움)"을 소개합니다. 선교사의 일상 식생활로 점심은 주로 "치킨라이스"로 즐깁니다. 

 

가격은 Rm6링깃(1,800원)이니 부담도 않되고 즐겁습니다. 특히 중북부지방도시 "이뽀"(Ipoh)시의 "이뽀 치킨 라이스"는 유명합니다.

 

콩나물과 마늘볶음이, 야체슾과 함께 나오는데 한끼식사로는 흡족하답니다. 한번 눈팅으로 맛보시고 쿠알라룸푸르 방문기회에 꼭 맛 보세요. 만족하실 것입니다. 삶은 닭고기도 부드럽고 잊을 수 없는 즐거운 맛입니다.

 

 

 

 

▲ 콩나물 이뽀치킨 라이스"라 간판에 표기 되었군요!-"Ipoh Bean Sprouts Chicken Rice"

 

 

 

▲ 콩나물 이뽀 치킨라이스"-흰쌀밥과 야채슾이 함께 나옵니다. 가격은 Rm6링깃으로, 1,800원 입니다. 와! 맛있겠다.

 

치킨라이스는 중국인들의 고향 지방마다 조리방식이 달라 이것저것 찾아 다니며 맛 보실 수 있습니다. 치킨라이스에는 2가지가 있습니다.

 

흰색의 스팀치킨과 붉은색의 로스트치킨 입니다. 기호에 따라 선택하면 되며, 값은 동일 합니다. 에어컨 있는 식당에선 2배를 줘야죠.

 

"닥라이스"(오리고기밥)도 있고, "챠슈폭라이스"(군삽겹살밥) 등 종류도 많습니다. 차이니스 거리식당을 둘러 보시면 메뉴가 많습니다. 값도 저렵하고, Rm10링깃(3,000원) 정도로 맛보고 즐길 수 있답니다. 선교사의 일상 식생활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말레이시아를 떠나면 틈틈히 생각이 나며, 입맛을 돋구는군요! 그 즐거운 식생활을 잊지 못해요!

 

 

 

 

▲ 쌀국수 꿰띠아웃의 비푸누들"-값 Rm8(소)-10링깃(대)로 2,400원-3,000원 입니다. 맛은 끝내 줍니다!

 

선교사는 에어컨 시원한 찻집 커피숍을 사무실로 활용합니다. 스마트폰이 이메일, 문서작성, 사진전송, SNS 등 선교사역 업무 활동을 충실히 도와 줍니다.

 

별도의 공간을 임대하여 사무실을 가질 필요  없었겠지요. "카페"와 "블로그"를 개설하여 운영하기 때문에 선교협력, 사역활동을 실시간 보도하며 선교협력을 기할 수 있습니다. 커피숍의 종업원도 있고, 따듯한 차도 있고, 먹거리도 있으니 훌륭한 선교사무실이 아니겠습니까?

 

요즘 저는 사무실에서 독서도 하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선교사의 삶과 사역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30년 선교사 사역을 회상하게 되어 아픔과 기뻤던 순간들이 아우러 지는군요.

 

어제(1월3일) 오후4시에는 "감리교본부 선교국"으로 부터, 2019년4월 연회로 "정년은퇴자"임을 메일로 통보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사역을 정리하며 은퇴를 준비해 왔으면서도 막상 정년은퇴자로 통보 받으니 정년은퇴란 실감 나지도 않았으며,순간 잠시 머리가 어지럽고 강제 퇴출 당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지금도 마치 더 힘써 사역을 일구어 나갈 것 같은 힘이 솓구쳐 올르는데, 다음주면 떠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새록새록 솟구치고 밤새 잠도 못 이루었습니다.

 

새벽2시 경에 얼떨결에 잠이들고  아침 7시에 부시시 눈을 뜨니, 앞일을 주님의 인도에 맡기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채워졌습니다. 이젠 자비량으로 부르시는 그날까지 국내에서도 사역을 이루어 가기로 결단하며 기도 찬양하였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니. 정년은퇴 통보를 선교지 쿠알라룸푸르에서 받게 된 것도 의미가 있으며 감사했습니다.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찬송이 마음 속에서 솓구쳤습니다. 주여 인도하소서! 할렐루야! 감사합니다.(rch)

 

 

 

 

▲ 2019년1월1일 새해 자정 첫시간 KLCC 공원에서 폭죽...

 

 

 

 

 

 

 

 

 

  

 

 

하나님께서는 하늘 보좌 위에 계시지만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계신 곳에 천사나 천사장과 같이 즉시 나아갈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절대적인 목적 중 많은 것을

일부러 우리의 도움을 힘입어 성취하시는 방법을 택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협력할 수 있는 자유와 특권과 공적인 지위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사탄의 계획을 무효화 시킬 수 있으며

사탄의 세력이 공격해 와도 능히 견뎌내게 합니다. 

 

 

 

 

기도는 "자연 법칙"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인간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 있을 때

하나님의 기적적인 응답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권면 하시는대로 우리의 임무를 다하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자녀들을 보호하시기 위해 기쁜 마음으로 역사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자녀들이 어려움이라는 산들에 직면했을 때

그 산들을 옮기기를 기대하십니다.

산들을 움직이는 일들은 오랜 기간 동안의 기도와 금식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말씀 하셨습니다. 

 

  

 

 

기도는 축복에 이르는 정도이며 남에게 축복을 베풀 수 있는 최대의 수단으로 남을 축복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북한은 대외적으로 미국과 국제사회에 호응할 것 같은 제스처를 쓰면서도 내부를 철옹성 같이 결속시키며 더욱 영적 우상국가로서의 면모를 다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북한은 '탄압과 핍박'으로 집약되는 반기독교적 정책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치.경제.외교.군사적 측면을 고려하여 기도하면서도 추호의 흔들림이 없이 영적전쟁적 관점을 견지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북한 정권이 얼마나 잔인하게 교회와 성도를 탄압하고 핍박해 왔는지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행해지고 있는 그 악행을 하나님께 고스란히 올려드리며, 날이 갈수록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영적전쟁을 계속하여 감당하기 원합니다.    

 

멀리 계셔서 모임에 직접 참석하지 못하시는 분들도 OKCN Audio Live 방송으로 참여하셔서 함께 기도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번 기도회는 통일의 소리 앱 방송(OKCN)에서 Audio Live 방송으로 진행됩니다. (강사 : 모퉁이돌선교회 이반석 목사)

 

전화기에 OKCN을 다운 받으시고 초기화면 왼편 위쪽에 보이는 '오늘의 방송' 바로 위에 있는 3선 표시를 Click 하시면 메뉴가 뜨는데,

 

'영상 LIVE'를 누르고 들어오시면 생방송을 시청하며 함께 기도하실 수 있습니다. (LA 시간 1/8일(화) 오전 10시부터 생방송됩니다) 

 

 

 

 

 

 

 

 

 

 

 

 

[문종성의 가스펠 로드] (3) 몬트리올, 폭우를 가른 우정의 라이딩 기사의 사진

 

20대 상아탑에만 갇혀 진정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라 방황하고 있을 때였다. 워킹 홀리데이도 좋았고, 단기 선교도 좋았다. 방법은 상관없었다. 캠퍼스 밖에서 답답한 가슴을 뻥 뚫어줄 만한 도전 과제를 찾는 데 골몰했다. 아름답기로 소문난 캐나다 퀘벡(Quebec)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땐 캐나다에 가지 못했다.
 

3년 뒤 나는 마침내 퀘벡주 몬트리올에 입성했다. 물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수단과 방법이 동원됐다. 시야를 방해하는 빗줄기, 난삽하게 들리는 프랑스어, 메이플 리프 플래그(Maple Leaf Flag)가 곳곳에 펄럭이는 캐나다에 들어서자 혼란스러웠다. 환상과 낭만으로 점철되었던 땅은 초행자가 열정으로 부딪히기엔 만만치 않았다.
 

미리 약속된 교회에 가기 위해서는 이곳 명물인 샘플레인(Champlain) 다리를 건너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덜렁대던 나는 그 옆에 있는 빅토리아(Victoria) 다리에 다다랐다. 어찌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굴렀다. 퍼붓는 빗줄기에 초라한 생쥐 꼴이 된 지 오래다.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로렌스(Lawrence) 강 한가운데 멈춰 서서 낙담한 채 한숨을 내쉴 때였다. 누군가 나를 ‘친구’라고 불렀다.
 

“한국에서 왔다고? 난 바레인 출신이야. 그나저나 비가 많이 오는군. 어디까지 가?”
 

스물 셋의 비디(Bidih)라고 했다. 맥길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친구였다. 토요일마다 자전거를 타고 몬트리올을 한 바퀴 돈단다.
 

“우선 다운타운에 가서 연락해야 해. 내가 가진 거라곤 여기 주소와 연락처밖에 없어.”
 

내겐 지도도 없었다. 비디는 차분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그리곤 앞장서기 시작했다. “나를 따라와!” 아무 의지할 것 없는 상황이었다. 묘하게 비디에게 믿음이 갔다.
 

당시엔 스마트폰이 없었던 때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았다. 처음 들어본 도로 이름에 다들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비디는 서점에 들어가서 한참 동안 지도를 눈에 담은 다음 나왔다. 악천후 속에서 고군분투했다. 난 그저 그가 이끌어주는 대로 계속 달릴 뿐이었다. 얽힌 실처럼 복잡한 대도시 도로 위에서 두 시간 가까이 헤맸다. 미안함에 내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괜찮아. 네가 부탁한 게 아니잖아. 내가 스스로 도와준 건데 뭘.”
 

그는 친절한 미소를 머금고 계속 자전거를 몰았다. 물 빨아들인 솜처럼 다리가 점점 무거워졌다. 손부터 시작된 경직은 어깨로 올라왔다. 그도 나도 지쳐 있었다. 이제 침묵만이 서로의 거리를 메웠다. 수많은 질문과 착오 끝에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만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정말 고마워. 너 아니었으면 난 아마 엄청 헤맸을 거야.”
 

“괜찮아. 예전에 아시아를 여행할 때 도움을 많이 받았었거든. 그때 생각을 했지. 나도 같은 상황이면 누군가를 도와야겠다고. 그리고 오늘 너를 만난 거야. 너를 도울 수 있어서 기뻐.” 작별 인사를 위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과 내 손이 맞닿을 때 느껴지던 가슴 찌릿한 감동이란.

인사를 하고 돌아서서 가는 비디의 머리 위로 여전히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마 5:41)’라는 말씀이 떠올랐다.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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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인간을 영원히 두려움의 끈으로 포박해버리는 죽음의 쏘는 가시를 제거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만나고, 부활의 능력을 깨달은 바울은 그래서 오연(傲然)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에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에 있느냐?”(고전15:55)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죽은 사람은 더 이상 두려울 게 없습니다. 그렇기에 진정한 믿음의 사람은 당당합니다.

 

로마서 8장에는 믿음의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자유가 가장 아름답고 장엄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환난, 곤고, 박해, 굶주림, 헐벗음, 위협, 심지어는 칼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예수 때문에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온갖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멀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런 고난과 시련은 더욱 강한 끈이 되어 그를 예수께 결속시켰습니다. 의지가 강하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주님의 사랑이 그를 붙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무한한 사랑이 고난의 아픔보다 더 컸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여 주신 그분을 힘입어서, 이기고도 남습니다.“(롬8:37)

 

‘이기고도 남습니다’라는 표현이 강력합니다. 이를 악물고 견디는 것이 아닙니다. 넉넉히 이기는 겁니다.

 

바울 사도는 마치 자기가 한 말을 곱씹기라도 하는 것처럼 다시 한번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합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롬8:38-39)

 

하지만 9장으로 넘어오면서 바울의 어조가 크게 달라집니다. 자유의 찬가를 부르던 그의 입에서 돌연 비가(悲歌)가 흘러나니다.

 

바울은 자기 속에 큰 슬픔이 있고, 마음에는 끊임없는 고통이 있다고 말합니다. 바울을 괴롭히는 슬픔과 고통은 자기 동족들에 대한 안타까움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는 열성이 있지만, 그 열성이 올바른 지식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바울의 판단입니다(롬10:2).

 

신앙은 민족주의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합니다. 하늘을 가를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신앙인에게도 조국은 있습니다.

 

바울은 자기 정체성의 뿌리이기도 한 동족들도 예수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러하지 못합니다. 바울이 큰 슬픔과 고통을 느끼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나는, 육신으로 내 동족인 내 겨레를 위하는 일이면, 내가 저주를 받아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달게 받겠습니다.“(롬9:3)

 

바울의 말은 매우 비장합니다. 마치 출애굽 이스라엘을 이끌던 모세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산에 올라가서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자, 불안해진 백성들은 아론을 찾아가 자기들을 이끌 신을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금으로 송아지 상을 만들고 그 앞에서 먹고 마시고, 흥청거리며 뛰놀았습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에게 진노하셔서 그들을 없애버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모세는 하나님의 진노의 팔을 붙들고 제발 재앙을 거두어 달라고 간구합니다.

 

“이제 주님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시려면, 주님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저의 이름을 지워 주십시오.”(출32:32) 바울의 심정이 이러했습니다. 동족을 향한 사랑이 참으로 뜨거웠습니다.

 

미국의 평화주의자 윌리엄 슬론 코핀 목사는 세상에는 세 부류의 애국자가 있다고 말합니다.

 

 “두 부류의 나쁜 애국자와 한 부류의 좋은 애국자다. 나쁜 애국자들은 무비판적 연인이자, 애정 없는 비평가다. 좋은 애국자들은 그들의 국가와 사랑싸움을 계속한다. 이들의 싸움은 연인이 세계와 싸우는 방식을 반영한다.”(파커 J. 파머,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김찬호·정하린 옮김)

 

나쁜 애국자는 나라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에 빠진 사람 곧 국수주의자들과,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사사건건 비평만 해대는 이들입니다.

이들은 아름다운 사회 혹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땀 흘리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좋은 애국자들은 국가와 사랑싸움을 계속합니다.

 

대한민국이 처한 형편은 이미 정치적 문제를 넘어 섰습니다. 영적인 위기입니다. 사탄과의 전쟁입니다. 그러기에 크리스천들이 나서야합니다.

크리스천 애국자가 필요 합니다. 모세와 같이 바울과 같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크리스천 애국자가 필요합니다.

 

평화, 평화, 인권, 인권을 외치지만 그 모든 것 그리고 통일도 정치꾼을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독일의 통일도 교회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크리스천들이 애국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통일을 이루셔야 가시적인 통일도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두 눈에 대한민국이 사탄에게 먹혀가는 모습이 정확하게 보이지 않습니까?

 

2019년은 하나님의 구원의 해가 되도록 크리스천들이 애국자가 되어야 합니다.(장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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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제 영성에 속지 말라](In the face of God)는 미국 복음주의 비평서 《미국제 복음주의를 경계하라》(Made in America: The Shaping of Modern American Evangelicalism, 1996년, 2001년, 나침반)의 개정판이다.

 

저자는 미국 장로교 목사이자 신학자인 마이클 호튼이다. 2005년에 기독교를 전문으로 하는 종합선교 규장이 역간하였다.

 

 

내용

 

저자는 미국의 복음주의적인 교회의 문제점 즉, 번영신학과 주관주의를 신학자의 관점에서 비판하면서, 십자가 신학, 성경말씀, 예전, 성(Sacrament) 그 대안으로 제시한다.

 

규장은 한국 기독교를 지배하는 풍조인 기복신앙을 비판하는 취지에서 이 저서를 소개했다 할 수 있다.

 

일부 복음주의적 대형교회들은 긍정적 사고방식, 심리치유, 영적 수행에 대한 주제들을 집중 공략함으로써 ‘구도자’ 시장에서 고객들을 선점하고 있다.

 

이것은 명확한 신학적 방향타 없이, 교회들이 점차적으로 대중적인 추세들에 아첨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기독교 진리와 대중 영성의 유행하는 취미 사이의 노선들이 점차 불분명해지고 있다.

 

오늘날의 기독교 문화는 권력과 영광에 취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이 모습을 숫자적 성장을 위해서라면 상업주의를 마다하지 않는 교회성장운동, 그리스도인이 된 명사들에 대한 열중, 파워 엘리트들과 줄을 대려고 애쓰는 행동, 정부 청사에 영향력을 끼치는 일에 대한 우쭐함에서 본다.

 

종종 대형 집회로 열리는 쇼 엔터테인먼트 화 된 찬양 집회에서,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었다가 거의 제자가 되는 일이 없는 대중 전도 집회에서 이 모습을 본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나’(me)로 대체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보려는,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려는,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보려는, 하나님의 감촉을 느끼려는 나의 욕망을 대변하는 노래들을 부른다.

 

그리고 감정의 사다리를 기어오른다. 그러면서 하나님 면전에 나아가는 자기 소견에 좋은 방식을 ‘찬양’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 찬양이 아니라 인간 자신을 찬양하는 것이다.

 

이러한 왜곡된 영성은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영성과는 너무나 판이하게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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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부┃미국제 영성에 미혹된 그리스도인

 

01_ 성경은 미국제 영성에 경계경보를 발한다 12

02_ 복음이 실용주의와 자아도취주의에 가위눌려 있다 47

03_ 꿩 잡는 것이 매라면 혼합주의라도 좋다 92

 

2부┃미국제 영성에 중독된 그리스도인

 

04_ 십자가 신학을 기피하고 영광의 신학만을 탐한다 128

05_ 영적 전투를 주술적 형태로 미신화시킨다 157

06_ 진정한 하나님을 버리고 내가 만든 하나님을 믿는다 180

 

3부┃미국제 영성을 거부하는 그리스도인

 

07_ 대중에 더 이상 아부하지 말고 당당히 십자가의 길로 하나님께 나아가라 208

08_ 인간의 입맛에 맞춘 쇼 엔터테인먼트 적 축제화된 집회가 아니라 오직 말씀과 성례로 은혜 받으라 226

09_ 성령과의 직통 교제가 아니라 말씀과 성례와 더불어 역사하시는 성령을 신뢰하라 257

10_ 부와 번영의 복음, 긍정적 사고방식의 복음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 복음만을 믿어라 294  

 

 

 

 

 

 

 

 

 

 

 

 

 

 

 

 

 

 

 

 

 

 

커쇼, 힐만 등이 속한  FCA 사역을 조명하는 CGNTV 특집타큐멘터리 ‘인플루언스, 위대한 영향력’이 오는 10-11일 방송된다,

 

스포츠 선교단체인 FCA 사역을 통해 선교 의미를 조명하는 CGNTV 특집타큐멘터리 ‘인플루언스, 위대한 영향력’이 오는 10-11일 방송된다,

 

 

 

 

2부작으로 소개되는 FCA(Fellowship of Christian Athletes)는 코치와 선수들이 믿음 안에서 성장하도록 돕고 있는 단체이다. 1954년 미국에서 설립됐으며, 500여개 캠프와 2만여개 성경공부 모임이 진행 중이다. 한국에서는 2017년 시작됐다.

 

메이저리그 LA다저스 클레이튼 커쇼와 지난해 한국시리즈 우승팀인 SK 와이번스의 트레이 힐만 감독 모두 FCA 출신이다.

 

운동실력만큼이나 많은 선행으로 알려진 커쇼는 “훈련은 할 수 있어도 능력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며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고 고백한다.

 

한국시리즈에서 SK와이번스를 우승으로 이끈 힐만 감독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장 쉬운 방법은 섬김”이라고 신앙관을 전한다.

 

다큐멘터리는 이영표 해설위원의 내레이션으로 스포츠 선교 활동을 조명한다. 또 미국을 비롯해 한국, 일본, 태국, 라오스, 남아공 등 스포츠를 매개로 한 역동적인 선교 현장을 찾아 선한 영향력이 어떻게 세상에 전파되는지 전하며, 차세대 선교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과 가능성을 제시한다.

 

 

 

커쇼, 이영표, 브리검, 린드블럼, 윌슨 등 국내외 스포츠 스타들의 신앙고백을 담은 ‘인플루언스, 위대한 영향력’은 오는 10-11일 오전 9시 30분 CGNTV에서 만나볼 수 있다.

 

1954년 미국에서 설립된 FCA(Fellowship of Christian Athletes)는 코치와 선수들이 믿음 안에서 성장하도록 돕고 있는 단체이다. 

 

 

 

 

 

 

 

 

 

 

 

 

 

 

 

 

몇 년 전 세이비어교회의 고든 코스비(Gordon Cosby (1917-2013)

) 목사님이 별세하셨습니다. 세이비어교회는 지역의 가난하고 소외된 약자들의 섬김을 우선시 하여 온 워싱톤 DC 중심가의 한 교회입니다.

 

2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살상을 직접 경험한 고든 코스비목사는 1947년 교회를 개척하여 2010년 은퇴하기까지 63년간 이 교회를 통해 현재 9개의 자매교회와 40여개의 수많은 선교기관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교회는 교인이 150명 이상이 된 적이 없습니다. 코스비목사의 설교는 언제나 미국의 야만성 그리고 냉혹한 시장자본주의 구조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습니다. 그는 미국을 'Empire'라고 부릅니다.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세이비어교회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난 복지사역 혹은 내적 치유에만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다름아닌 하나님의 통치를 통해 하나님의 정의가 드러나는 나라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이끌리는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이 세상 한복판에서 하나님 나라 방식이 가능함을 실존적으로 보여주고 드러내야 하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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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비어교회는 소그룹을 통해 노숙인, 마약·알코올 중독자, 에이즈 환자, 빈민 등 소외된 이웃들을 대상으로 200여개 사역을 촘촘히 진행하고 있는데 그것은 단순히 복지사역이나 세상을 섬기는 일이 아니라 자기성찰에 기초하여 '예수 믿기'에서 '예수 따르기' 혹은 '예수 살기'로 나아가는 '십자가 지기 운동'입니다.

 

세이비어교회의 이야기를 듣고 세이비어교회를 모델로 삼은 많은 목회자들과 교회들이 있지만 그 결과가 그다지 시원치 않은 것은 세이비어교회와 사역의 본질이 근본적으로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임을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사역과 영향력에 주목하기 때문입니다.

 

세이비어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는 한 목사가 그곳에서 자신이 보았던 이야기를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만난 50대 후반 여성을 만났다. 그녀는 이 교회를 30년 이상 다니고 있다. 단순한 교인이 아니라, 선교활동에 있어 매우 헌신적인 활동가였다. 그러나 정교인은 아니다. 정교인이 되려면 약 2, 3년간의 교육과정을 마쳐야 하고, 마지막에 선서를 한다.

 

거기에는 자신의 소유가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고 필요에 따라 하나님나라 사업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내어 놓겠다고 하는 글귀가 있는데 그는 이 구절에 걸려 마지막 관문인 선서를 하지 못했다.

 

부자청년이 가진 재산을 모두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좇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근심하며 떠나갔다는 청년과는 달리 근심을 안고 30년을 예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신앙고백과 실천에 철저한 교회이다. 이 교회는 교인을 4종류로 나누는데, 재정기여도에 따라 구분이 된다. inward/outward 라는 매일묵상 글이 메일로 오는데, 주제는 항상 돈이다."

 

 

 

 

하나님 나라 운동은 예수님께서 꾸준히 설파하셨던 맘몬과의 싸움입니다. 맘몬은 코스비 목사님이 말한 'Empire', 곧 제국이 보장하는 거짓 평화의 실체입니다. 제국은 언제나 남보다 많이 갖는 것이 성공이요, 비싼 것일수록 좋은 것이자 옳은 것이라는 시장 자본주의적 가치를 나타냅니다.

 

하나님 나라 운동은 그것이 거짓임을 드러내고 동시에 그것을 무효화하는 운동입니다. 세이비어교회의 매일의 묵상 주제인 것은 그들이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사고와 삶이 돈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하나님 나라 운동의 출발점이며 우선과제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소유가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고 필요에 따라 하나님나라 사업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내어 놓겠다"는 선서는 단순히 소유를 포기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하나님의 것으로 드린다는 헌신의 공표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다면 150명이 아니라 단지 몇 명이 모인다고 해도 놀라운 영향력을 발휘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고든 코스비 목사의 말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의 삶의 중심주제는 이것입니다: 예수가 시대들 속에서 그의 지상의 삶을 따르는 그의 제자들에게 무엇을 의도하셨을까? 21세기에, 지구적인 가난을 제거하고, 탐욕과 공포와 인종주의와 군사주의의 마귀들을 몰아내며, 우리가 인간이 되는 과업을 이루도록 도와주도록, 지금 우리를 사용하시라고 하나님께 기대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준비된다면, 하나님은 준비된 것보다 더 많이 하십니다."

 

고든 코스비 목사와 세이비어교회는 소유의 포기헌신이 무엇을 의미하며 또한 그것이 복음이 주는 자유임을 우리에게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그것은 오래 전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바로 그 모습입니다.

 

 

세이비어교회 개척자 고든 코스비 목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 "너희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12:5)고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이미 부유한 자리 잡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그의 신앙은 순종적인 들음이라는 형태로 표현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을 결정적으로 시험한 것은 아들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22:1이하)

 

이삭은 아브라함의 "사랑하는 독자"(22:2)였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도구이기도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삭은 육체를 따라서 난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약속을 따라서 난" 아들이었습니다.(롬9:7-8) 그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생명의 선물이었으며 아브라함 자신의 능력이 죽은 것과 같았고 그 아내의 태가 "죽은 것"과 같이 멈추었을 때 주신 선물이었습니다.(롬4:19)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포기하는 것과 같은 행동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위해서 그의 가장 소중한 소유라 할지라도 내어 버릴 수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친구"라고 불린 것입니다.(약2:23)

 

소유의 포기예수님 따르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도 보았듯이 소유포기하는 것은 단순히 소유의 포기가 아니라 자기 정체성포기하는 것이기에 자기를 부인하는 가장 실질적이고도 현실적인 실천입니다.

 

우리의 소유는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소유로 드러나는 정체성은 우리의 참 자아가 아니라 거짓 자아입니다. 우리의 모든 소유를 버리는 것은 그러므로 우리의 거짓 자아를 버리고 참 자아로의 출발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은 그렇게 참 자아를 되찾은 사람들의 예수 따르기 운동입니다.

 

세이비어교회와 교인들은 이 시대에도 여전히 소유의 포기예수님 따르기가 가능함을 보여주는 귀중한 본보기입니다. 또 코스비 목사의 말대로 하나님께서 준비된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해서 일하심을 보여주는 본보기이기도 합니다.

 

아직도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돈이 있어야 하나님의 일을 하고 사람들이 많아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몇만 명이 아니라 150명의 헌신된 사람들이 얼마나 큰 일을 할 수 있는가를 세이비어교회는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12:10)는, 사도 바울의 깊은 깨달음에서 나온 고백이 그들을 통해 이 시대에 울려퍼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당신의 친구라고 불러줄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소유의 포기와 예수님 따르기는 성경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 속의 우리들의 이야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정말 그럴 수 있다면 세이비어교회가 보여주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운 모습이 우리를 통해서도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아래 소개하는 내용은 [세이비어 교회]에 관한 책입니다. 리뷰를 읽어보시고 기회되는 대로 책을 구입하여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언)

 

 

 

 

 

 

 

세이비어 교회(The Church of the Savior)는 1947년 고든 코스비(Gorden Cosby) 목사님이 30세의 나이로 설립한 교회로서, 워싱턴의 백악관에서 불과 2마일 정도 떨어진 빈민 지역 아담스 모르간(Adams Morgen)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영성(Inward Journey)과 사역(Outward Journey)의 균형을 강조하고 있고, 행함(Doing) 이전에 존재함(Being)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그들의 삶과 사역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철저하게 지역사회를 섬기는 교회입니다.

 

코스비 목사님은 세이비어교회의 변함없는 핵심 가치관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하는 깊고 친밀한 삶에 이르게 될 때, 세상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우리의 공동체를 통해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모든 사역에 있어 기도의 삶(Contemplative Life)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과 친밀히 침묵을 통해 사귀는 기도가 너무 감동적이어서, 헨리 나우웬도 이곳에서 큰 도전을 받게 되고, “사랑받는 자의 삶”(Life of the Beloved)이라는 책을 이 교회에서 완성하기도 했습니다.

 

세이비어 교회의 교인들이 행하는 사역의 핵심적인 철학은 4가지입니다.

 

1) 영적인 삶을 통해서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추구하고,

2) 주님이 보여주신 긍휼의 마음으로 지역사회를 섬기며,

3) 주님이 섬기셨던 가난한 자, 버림받은 자, 소외받은 자들을 섬기는 일에 헌신하며,

4) 용기와 희생적인 삶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헌신하는 것이다.

 

세이비어교회의 첫 번째 사역은 ‘토기장이의 집’(Potter's house)에서 시작됩니다. 서점과 카페가 동시에 운영되는 곳이었는데, 1960년대 워싱턴 최초의 커피 전문점이었고, 비종교적인 사람들이 종교적인 질문을 할 수 있는 따뜻한 장소였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사역은 인근 주민들을 돕기 위한 사역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 사역을 희년 사역(Jubilee Ministries)이라고 부르는데, 희년 사역의 목적은 사회에서 혜택 받지 못하고 소외된 자들을 다시 정상인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데 있습니다. 단순한 구제가 아닌 가난한 자들이 자립해서 전인적인 공동체를 이루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먼저 ‘주거사역’(Housing)으로는

1) 희년 주거사역: 저소득 지역주민을 위한 교육 및 아파트 임대 사역

2) 사단법인 만나 지역개발: 저소득 주민들이 소득에 맞게 주택을 소유하도록 하는 사역

3) 미리암의 집: 에이즈로 죽어가는 여성들을 위한 주거 사역

4) 요셉의 집: 남성 노숙자들을 위한 요양시설

5) 사마리아인의 집: 마약, 알콜에 중독된 노숙자들을 위한 치료 및 주거 시설

6) 베다니의 집: 도움이 필요한 노숙자 가족들을 위한 주거 사역

7) 사라의 집: 노인들을 위한 주거 사역

8) 카이로스의 집: 노숙자 병원에서 퇴원한 환자들이 임시로 머무는 주거 시설

9) 방주의 공동체: 지체장애인들과 정상인들이 함께 생활하는 라르쉬 공동체

10) 안드레의 집: 세이비어교회 방문자들을 위한 주거 시설

 

‘치유사역’(Health Care Service)으로는 ...

 

1) 콜롬비아 로드 진료소: 건강보험이 없는 저소득 주민을 위한 치료 시설

2) 그리스도의 집: 노숙자들을 위한 치료 시설

 

‘영성사역’(Spiritual Enrichment)으로는

 

1) 토기장이의 집: 커피 하우스 및 서점

2) 여명 수양관: 침묵기도를 위한 수양관

3) 웰스프링 컨퍼런스 센터: 세미나 또는 수련회를 위한 시설

4) 추수의 시대: 가난한 사람들과 효과적으로 부를 나누는 사역

 

‘어린이와 가족들을 위한 사역’(Children and Family Service)으로는

 

1) 선한 목자 사역: 유치원생부터 12학년까지의 방과 후 사역

2) 패트리샤 사이타 예능교실: 방과 후 예능 교실

3) 가족의 장소: 어린 자녀를 가진 부모를 위한 육아교육

4) 어린이사랑 모임: 불우 어린이들을 양부모로써 돕도록 지원하는 모임

5) 행동하는 예술: 샤(Shaw) 흑인지역의 어린이를 위한 방과 후 예능교실

 

‘취업보조와 성인교육 사역’(Employment Assistance & Adult Educaton)으로는 ...

 

1) 희망의 아카데미: 검정고시 준비를 위한 학원

2) 희년 직업 소개 센터: 각종 직업을 소개하는 센터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세이비어 교회가 대교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철저한 입교 과정과 고도의 훈련을 받은 교인들이 70여 가지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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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이라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라는 속담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 속담은 “비루먹은 강아지 대호(大虎)를 건드린다”라는 속담과 같이 ‘철모르고 함부로 덤비는 것’을 비유한다.

 

그런데 이 속담 전체가 비유하는 뜻은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이 속담에 포함된 ‘하룻강아지’의 원래의 뜻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저 ‘태어난 지 하루밖에 안 된 강아지’로 단순하게 이해하고 있다.

“하룻망아지 서울 다녀오듯”, “하룻비둘기 재를 못 넘는다” 등의 속담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하룻강아지’를 다른 뜻으로 해석하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하룻강아지’가 ‘태어난 지 하루밖에 안 된 강아지’라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라는 속담은 앞 뒤 논리가 맞지 않는 아주 이상한 속담이 되고 만다. 태어난 지 하루밖에 안 되는 강아지는 눈조차 뜨지 못하고 그저 기어다니는 신세인데 어찌 무서운 범과 대적한다는 말인가?

이러한 이유에서 ‘하룻강아지’는 무언가 변질된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해 볼 수 있다. 속담과 같이 일반인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표현은 우연히 잘못 발음하거나 잘못 듣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와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룻강아지’는 ‘하릅강아지’가 변한 것이다. 물론 ‘하룻망아지’와 ‘하룻비둘기’도 ‘하릅망아지’와 ‘하릅비둘기’가 변한 것이다. 즉, ‘하룻’은 ‘하릅’의 변형이다.

 

그러면 이 ‘하릅’은 무엇인가? 요즘에는 이 단어가 거의 쓰이지 않지만 아직도 시골 노인들에게서 들을 수 있다. ‘하릅’은 소·말·개 등과 같은 짐승의 ‘한 살’을 지시하는 단어이다. 그러니 ‘하릅강아지’는 ‘한 살 된 강아지’이고, ‘하릅망아지’는 ‘한 살 된 망아지’이며, ‘하릅비둘기’는 ‘한 살 된 비둘기’이다.

'하릅'이라는 단어의 문헌적 용례는 아주 드물다. 17세기의 “시경언해(詩經諺解)”에 보이는 '하릅'이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 아닌가 한다. 19세기 말의 “한영자전”(1987)에 '하릅'‘하릅강아지’라는 단어가 나온다. 그리고 총독부 간행 “조선어사전”(1920)과 문세영 저 “조선어사전”(1938)에는 ‘하룻강아지’만 나온다. “큰사전”(1957)에도 ‘하릅강아지’는 보이지 않고 ‘하룻강아지’만 나온다.

이로 보면 20세기 이후에는 ‘하룻강아지’가 ‘하릅강아지’의 변형이라는 사실을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릅’이라는 단어는 최근에 나온 사전에까지 실려 있기는 하지만 실제 거의 쓰이지 않는다. ‘하릅’뿐만 아니라 ‘두릅’, ‘세습’, ‘나릅’, ‘다습’, ‘여습’, ‘이릅’, ‘구릅’, ‘여릅’ 등과 같이 짐승의 나이를 세는 관련 단어들도 잘 쓰이지 않는다.

 

개에게 있어 생후 일년이면 천방지축 까불고 겁 없이 짖어댈 나이이다. 그러니 ‘범’인들 무서워하겠는가?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는 까불면 아니될 일이다.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 무서워할 줄도 알아야 할 것이다.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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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단 로즈 목사, 처치리더스닷컴

 

 

미국 미주리주 리버티침례교회 담임 목사이자 미드웨스턴 침례신학교 역사신학 박사인 나단 로즈(Nathan Rose)목사는 최근 처치리더스닷컴에 ‘예배에 빠질 때(출석하지 않을 때) 생기는 영적인 위험 5가지’라는 제목의 칼럼을 소개했다. 다음은 주요 내용이다.

 

 

1. 당신의 영적 성장과 건강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놓치게 된다.

 

함께 드리는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다. 성경말씀의 선포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영적 성숙에 있어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예배를 놓칠 때, 영적 성장을 위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놓치는것이다.

 

2. 당신은 하나님께 불순종한다.

 

함께 드리는 예배는 기독교인들에게 선택사항이 아니다. 히브리서는 성경에서 분명히 이같이 말씀하고 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 10:24~25)

 

그렉 길버트(Greg Gilbert) 목사는 “최소한, 우리는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교회 모임에 참석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성령께서 기독교인들이 함께 모일 때 성령께서 역사하신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잘 지켜야 한다. 그분이 말씀하신 계명 중 하나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다.

 

3. 세상에 하나님은 예배드릴 만큼 가치가 없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디에 시간을 많이 보내는지를 통해서 우리의 진정한 우선순위를 살펴볼수 있다. 만약 잠을 더 자거나 스포츠를 위해 예배를 빠진다면, 하나님보다 이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정기적인 예배 시간을 다른 활동으로 대체하는 것은 실제로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에 있어서 그만큼 가치롭지않다는 것을 드러낸다. 불행히도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믿지 않는 자들의 태도와 행동이다.

 

4.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없다.

 

사람들은 함께 드리는 예배가 단순히 영적인 필요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만약 특정한 영적 필요가 없다면 예배에 참석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예배에 대한 이러한 관점이 가진 문제는 너무 개인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는데 있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의 삶은 봉사하며, 다른 이들을 격려하고 섬기는데 있다.

 

교회를 나가지 않는다면, 스스로보다 다른 이들을 섬기고, 격려가 필요한 다른 이들을격려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5. 미리 맛볼 수 있는 천국을 거른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을 예배하도록 지으셨다. 우리가 존재하는 가장 주된 목적 가운데 하나이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고 이 땅을 회복할 때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게 될 일이다.

 

계시록 22장 3~4절은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주일 아침예배는 주께서 당신의 백성들이 천국의 진정한 집에 도달할 때까지 그들을 인도하고 지탱하기 위해 제공해주시는 생명줄과 같다. 

 

 

예배당

 

 

 

 

 

 

 

 

 

 

 

 

 

 

 

 

 

 

 

 

 



 

1. 도리도리   2. 좌우로 회전,
3. 앞뒤로 끄덕임, 4. 좌우 옆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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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은 어떤 메뉴에도 본인의 향을 낼 수 있는 강력한 맛과 향의 허브입니다.  생강은 다양한 연령대에, 그리고 전 세계의 다양한 요리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강의 단지 독특한 맛 때문에 많은 사랑을 받는 것만은 아닙니다.

다양한 요리만큼이나, 생강은 우리의 건강에 다양한 효능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다이어트를 생각하신다면, 생강은 꼭 고려해 볼 가치가 있습니다.

생강은 날 것 그대로 먹기도 하고, 절이거나 또는 분말의 형태로 섭취합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가공되어 여러 형태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가장 간단하게 생강을 섭취하는 방법은, 뜨거운 물에 생강을 끓여서 생강차로 마시는 것입니다.

 

생강은 땅 밑으로 자라지만, 사실은 줄기 식품입니다

생강은 고대에서부터 통증을 완화하는데 사용되어 왔습니다.

 

생강이 당신의 건강에 얼마나 좋은지 다음의 9가지 효능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 생강의 9가지 효능 ★

 

 

1. 메스꺼움 완화

 

생강은 약물이나 수술 후의 메스꺼움이나, 또는 바다 멀미로부터 오는 메스꺼움을 효과적으로 진정시킨다. 또한, 입덧 진정에도 도움이 된다.

 

2. 소화를 도움

 

만성적인 소화 불량은 일반적으로 위장의 상부에서 통증이 발생한다. 소화를 천천히 하는 과정 중에 이러한 통증이 발생되곤 한다. 생강은 위의 소화 과정을 더 가속화시켜, 더 부드럽게 음식을 소화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식사 전에 몇 그램의 생강 분말을 섭취한다면, 이러한 효과가 50%까지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 근육통 완화

 

생강은 아픈 근육의 통증을 부드럽게 완화시켜 주는 것에 효과적임이 입증되었다. 특별히 운동 후의 근육 통증 완화에 굉장히 효과적이다. 매일 생강을 섭취하면, 모든 통증을 완화할 수 있다. 생강에는 소염제(항염증제)의 성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4. 관절염 완화

 

생강은 모든 관절의 염증을 줄이는 데에도 효과적이다.

실험 결과에 의하면 생강을 섭취한 그룹이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관절염의 통증을 덜 느끼는 것으로 입증 되었다. 또 다른 연과 결과로는 생강과 참기름, 계피 가루를 함께 섭취하면 아주 맛있는 향과 맛을 내며, 염증을 감소시키는 데에도 효과적임이 밝혀 졌다.

 

5. 혈당을 낮춤 

 

2015년 발표에 따르면, 매일 생강을 섭취하면 2형 당뇨병 (Type II diabetes)의 혈당 지수를 낮추는 것으로 밝혀 졌다. 심장 질환의 주요 요인으로 밝혀 진 산화 단백질(oxidized lipoprotein) 도 23%로 감소하는 것으로 밝혀 졌다.

 

6.  콜레스테롤 저하, 체내 지질저하 

 

콜레스테롤이나 LDL 지방 단백질은 식습관에 영향을 끼치고, 심장 질환을 일으키는 위험 요소 중의 하나이다. 3그램의 생강 가루를 매일 섭취하면, 이 LDL지방 단백질의 위험 수준을 낮출 수 있다.

 

7. 생리 통증 완화

 

생강은 여성이 생리를 시작할 때, 초기 통증을 완화시키는 것에 효과적임이 밝혀 졌다. 생강으로 얻는 효과는 소염진통제인 이부프로펜(ibuprofen) 만큼이나 효과 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8. DNA 손상 억제, 뇌의 기능을 도움

 

알츠하이머 질환이나 다른 뇌에 관련된 질병들은 뇌의 만성적인 염증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밝혀져 있는데, 생강은 이러한 뇌의 염증을 없애는데 효과적임이 밝혀졌다. 연구에 의하면 생강의 소염제의 성분이 위와 같은 뇌와 관련된 질병을 예방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생강이 중년 여성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생강이 기억력을 개선시키고, 반응 속도를 빠르게 하는 효과를 밝힌 논문도 있다.

 

9. 암세포를 제거함. 종양억제효과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생강에서 추출되는 진저롤(gingerol)의 6가지 성분이 몸의 암 세포를 제거하는데 효과적일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에 대한 정보는 아직 제한되어 있지만, 생강이 암 세포에 대항해서 싸운다는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생강은 몸을 따뜻하게 하는 효능이 있기 때문에, 열이 나거나 편도선이 부은 경우에는 섭취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생강차를 차게 마시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생강차를 만들 때는 생강을 물에 잘 씻어 말린 뒤 곱게 갈고, 그것을 뜨거운 물에 타 마셔야 효능이 있습니다.

또는 생강 자체를 물에 넣고 끓이는 것도 방법입니다. 기호에 따라 대추나 꿀 등을 함께 타서 마시는 것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