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27,  2019

 

 

 

 

 

 

 

 

 

 

 

 

 

 

 

 

 

 

 

 

 

 

 

 

 

 

 

 

Jesus Is The Answer For The World Today

Above Him There's No Other Jesus Is The Way

Jesus Is The Answer For The World Today

Above Him There's No Other Jesus Is The Way

Jesus Is The Answer For The World Today

Above Him There's No Other Jesus Is The Way

Jesus Is The Answer For The World Today

Above Him There's No Other Jesus Is The Way

 

If You Have Some Questions In The Corners Of Your Mind

And Traces Of Discourgement And Peace You Cannot Find

Reflections Of The Old Past, They Seem To Face You Everyday

There's One Thing I Know For Sure That Jesus Is Away

Let Me Hear You Now

 

Jesus Is The Answer For The World Today

Above Him There's No Other Jesus Is The Way

Jesus Is The Answer For The World Today

Above Him There's No Other Jesus Is The Way

 

I Know You Got Mountains That You Think You Cannot Climb

I Know That Your Skies Have Been Dark,

You Think The Sun Won't Shine

In Case You Don't Know

I'm Hear To Tell You That The Word Of God Is True

And Everything That He Promised

I Tell You He Would Do It For You

Let Me Tell You That

 

Jesus Is The Answer For The World Today

Above Him There's No Other Jesus Is The Way

Jesus Is The Answer For The World Today

Above Him There's No Other Jesus Is The Way

 

Jesus, He Is The Answer For The World Today

Above Him There's No Other

Jesus, He Is The Answer For The World Today

Jesus Is The Way

Jesus Is The Answer For The World Today

Above Him There's No Other Jesus Is The Way

Jesus Is The Answer For The World Today

Above Him There's No Other Jesus Is The Way 

 

 

 

 

 

 

 

 

 

 

 

 

 

 

 

 

 

 

 

개울가에서 아픈 몸 데리고 있다가 

무심히 보는 물속 

살아온 울타리에 익숙한지 

물고기들은 돌덩이에 부딪히는 불상사 한번 없이 

제 길을 간다 

 

멈춰 서서 구경도 하고 

눈치 보지 않고 입 벌려 배를 채우기도 하고 

유유히 간다 

 

길은 어디에도 없는데 

쉬지 않고 길을 내고 

낸 길은 또 미련을 두지 않고 지운다 

즐기면서 길을 내고 낸 길을 버리는 물고기들에게 

나는 배운다 

 

약한 자의 발자국을 믿는다면서 

슬픈 그림자를 자꾸 눕히지 않는가 

물고기들이 무수히 지나갔지만 

발자국 하나 남지 않은 저 무한한 광장에 

나는 들어선다  

 

 

 

 

이신남 시인

 

으면 읽을수록 깊이가 있는 시다. 개울에서 또는 맑게 흐르는 계곡물에서 우리는 흔히 헤엄쳐 지나는 물고기를 예사로 보게 된다. 볼 때마다 참 빨리도 헤엄쳐 다닌다는 생각만 했을 뿐 정해 놓은 길도 없으면서 끊임없이 길을 만들어 헤엄친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물고기에게 배우다’는 제목이 주는 기분이 묘해 몇 번이고 되뇌며 읽어보다가 화자의 삶과 연관을 지어 보기도 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길을 상처하나 만들지 않고, 물론 시에서처럼 돌덩이에 부딪히는 불상사 없이 길을 만들어 내는 물고기들이 대단하다.

 

물고기들이 물에서 헤엄치는 그 방법을 사람들도 배워볼 수 있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 또한 부딪힘 없이 마음대로의 동선을 그리며 서로 즐기면서 따뜻한 정이 오가는 길을 만들 수 있으리라.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믿음]은 큰 믿음일까, 작은 믿음일까?

 

한마디로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진실로 존재하신다고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이 온 우주를 창조하셨고 운행하시며 다스리고 계심을 믿는 것입니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께서 지금 이 순간도 온 우주를 운행하시며 동시에 내 안에 계시어 나의 삶을 주관하신다고 믿는 것입니다.
 

자문(自問)해 봅시다. 나에게는 이 믿음이 있습니까? 있다면 그 믿음은 얼마나 큽니까?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눅 17:5)

사도들도 예수님께 이렇게 구한 것을 생각하면, 우리가 큰 믿음에 관한 바램을 가지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믿으면서도 늘 자신의 믿음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 그것이 믿음의 본질이니까요. 믿음의 대상은 눈에 보이거나 손에 잡히는 물질이 아니니까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이니까요. 그렇기에 믿음에는 100%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니까요.

'절대 확신'(absolute assurance)을 가진 것 같지만 늘 그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 없는 것이기에  늘 믿음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니까요.

 

때로는 온 천지에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해 보이다가도 때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자주 사도들처럼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라고 요청하는 사도들에게 예수께서 대답하십니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뽕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기어라" 하면, 그대로 될 것이다.

 

겨자씨는 당시 유대인들이 흔히 볼 수 있는 씨앗 중에서 제일 작은 것입니다. 이 대화를 유진 피터슨(Eugene Peterson)은 [메시지 성경](The Message)에서 이렇게 풀어 쓰고 있습니다.

너희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믿음이 아니다. 믿음에는 '더'도 없고 '덜'도 없다. 너희에게 낱 알 하나만한 믿음, 깨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너희가 이 뽕나무더러 "가서 호수에 뛰어 들어라"하고 말하면 그렇게 될 것이다.

You don't need more faith. There is no 'more' or 'less' in faith. If you have a bare kernel of faith, say the size of a poppy seed, you could say to this sycamore tree, 'Go jump in the lake,' and it would do it.

 

사도들은 자신들에게 상당한 믿음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충분하지 않을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 정도 부족하다고 생각했을까요? 그래서 그 부족한 분량을 채워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고, 모든 고난을 이겨낼 것이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이라는 말뒤집으면, 겨자씨만한 믿음도 그들에게는 [없다]는 뜻이 됩니다. 사도들은 자신들의 믿음이 2%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주님께서는 2%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대답을 듣고 무척 무안했을 것입니다.

 

겨자씨에 믿음을 비유하신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싶습니다.

 

믿음은 본질상 우리에게 겨자씨만한 것처럼 느껴진다는 뜻입니다. 복숭아씨처럼 뭔가 쥔 듯한 느낌이 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을 믿고 산다는 것은 그런 느낌이 아닙니다. 내 안에 계신 주님을 믿는 것은 마치 겨자씨를 쥔 것과 같다 할 수 있습니다.

 

이 비유를 통해 주님께서는 믿음에 대해 아주 중요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믿음의 크기]를 따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자라기를 망연(茫然)히 기다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마치 겨자씨를 손에 쥐고 자라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입니다. [땅을 파고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한 번도 씨앗을 심어 본 일이 없는 사람은 그 씨앗을 심는 일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작은 씨앗에서 싹이 나고 열매가 열릴 것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심어 보면 압니다. 과연 그 작은 씨앗 안에 엄청난 것이 담겨 있음을 알게 됩니다. 나는 지금 [취 나물] 씨를 얻어 책상위에 얹어 놓고 파종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기대감에 사로잡혀 있는지 모릅니다.

 

그처럼 큰 믿음을 구하는 대신 자신에게 있는 작은 믿음을 심는 것이 큰 믿음입니다. 겨자씨 만한 믿음만 있어도 뽕나무 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기어라"고 명령하면 그대로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2013년 8월20일 기억합니다. 조지아주에 있는 로날드 맥내어 아카데미(Ronald McNair Academy)에 AK-47 소총과 500발의 총알을 소지한 청년이 침입했습니다. 그는 바깥에서 몇 발의 총성으로 위협 사격을 한 다음, 교무실로 들어옵니다. 그 때, 교무실에서 그 청년을 마주한 사람은 앙뜨와넷 터프(Antoinette Tuff)라는 사무 직원이었습니다.

 

마이클 힐(Michael Hill)이라는 백인 청년은 어린이들을 살해함으로써 사회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 날 마이클 힐은 한 사람도 해치지 않고 경찰에 자수했습니다. 폭발 직전의 시한폭탄과도 같았던 그로 하여금 모든 무기를 내려 놓고 자수하게 만든 것은 흑인 아줌마 앙뜨와넷이었습니다.

 

당시 앙뜨와넷이 마이클과 나눈 대화가 911본부에 녹음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Youtube에서 들을수 있습니다. 앙뜨와넷은 총으로 무장한 괴한의 침입에 전혀 당황한 기색 없이 그를 위로하고 설득하고 타일렀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침착할 수 있었는지, 그 음성 녹음을 듣는 사람마다 놀랍니다.

 

앙뜨와넷은 경찰에게, 자신이 마이클과 함께 나갈 테니 사격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는 마이클에게는 자수하기를 잘했다고, 누구나 어려운 기간을 지나게 되어있다고, 자신도 33년을 같이 산 남편에게 지난 해 버림 받았다고, 자신에게도 여러 가지 장애를 입은 아들이 있다고, 그래서 자신도 여러 번 자살을 생각해 보았다고, 그러나 오늘 여기에 이렇게 살고 있지 않느냐고, 다 괜찮아질 거라고, 걱정 말라고 위로하고 타이릅니다.

 

마이클이 체포되고 모든 상황이 정리되자 CNN 방송의 앤더슨 쿠퍼(Anderson Cooper)는 앙뜨와넷을 인터뷰하면서 물었습니다.

 

"How did you know what to say to him? How did you know the right things to say?"(그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알았습니까? 무슨 말을 해야 옳은지를 어떻게 알았습니까?")

 

그러자 앙뜨와넷이 이렇게 답합니다.

 

"Well, to be honest with you, I didn't. I was just praying...in the inside of myself and saying 'God, what do I say now? What do I do now?' I just kept saying that on the inside because I knew that I had no words to say."

(글쎄요, 솔직하게 말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마음으로 기도했지요. '하나님, 지금 무슨 말을 해야 합니까?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마음으로 계속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앤더슨 쿠퍼가 다시 묻습니다.

 

"I've heard you say that your pastor had talked about being 'anchored in the Lord.' Is that something that got you through?"

(당신의 목사님이 '주님 안에 닻을 내리기'에 대해 설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당신을 지켜 준 것이 그것입니까?)

 

앙뜨와넷이 대답합니다.

 

"Yes. He had just started this actual series that Sunday on being anchored. And I had told myself Monday morning that I was going to get up and start studying that morning."

(그렇습니다. 목사님은 지난 주일부터 '주님 안에 닻을 내리기'에 대해 연속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월요일 아침 저는 생각했지요. 오늘 아침부터 그렇게 살아보자고 말입니다.)

 

이 사건을 접한 사람들마다 무장한 괴한 앞에서 어떻게 그렇게 침착했는지 궁금해 합니다. 그는 대답합니다. "내 인생에 그렇게 두려웠던 적은 없었습니다."(I've never been so scared in all the days of my life. Oh, Jesus.) 그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연약한 한 인간이었습니다. 아니, 어찌 보면, 저와 여러분이 그 사람보다 더 강할지 모릅니다.

 

앙뜨와넷어떻게 이런 끔찍할뻔한 사건을 잠재웠을까요?

그에게 있었던 겨자씨 만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월요일 아침에 말씀을 읽고 기도하면서 전 날 들었던 설교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인생의 풍파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에게 닻을 내려야 한다는 사실, 하루 종일 하나님에게 닻을 내린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항상 주님과 동행해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을 하면서 혹은 사람을 만나면서 마음으로 늘 주님과 대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했습니다.

 

그렇게 할 때 주님께서 자신의 삶을 인도해 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영적 실험을 시작한 두 번째 날에 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아주 작은 믿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에 의지했더니, 마음에 쌓인 분노로 괴물이 된 한 청년을 녹였고 그로 인해 수 많은 생명을 비극에서 건졌습니다. 앙뜨와넷을 통해 일어난 이 일과 뽕나무가 뽑히는 일을 비교해 보십시오. 무엇이 더 놀라운 기적입니까?

 

[하나님의 임재 연습](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이라는 영성 고전(spiritual classic)을 쓴 로렌스 형제(Brother Lawrence)가 있습니다. 그는 전쟁에서 얻은 부상으로 평생 장애인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수도원에서 허드렛 일을 하다가 죽었는데, 수도사보다도 더 깊은 영성과 인격에 이르렀습니다.

 

그 비결은 오직 하나였습니다. 매일 매 순간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도록 힘쓰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듯 늘 주님과 대화하면서 주님과 함께 일했습니다.

그렇게 살던 중에 남긴 후기의 편지 중 한 구절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이제 주님을 믿지 않습니다. 주님을 보고 삽니다.

I don't believe in the Lord any longer. I now see Him.

 

이 땅에서 주님을 보고 사는 것만큼 큰 믿음이 없습니다.(장재언)

 

 

 

 

 

 

 

 

 

 

 

 

 

 

 

 

 

 

 

 

 

 

 

 

지난 2018년 12월 9일 저녁, 중국 쓰촨성의 이른비언약교회(秋雨圣约教会, Early Rain Covenant Church)의 왕 이(Wang Yi) 담임목사와 사모를 비롯한 100여 명의 성도들이 체포됐다.

왕 이 목사 등 10명의 교회 지도자들은 중국 정부에 의해 ‘국가 권력 전복 선동죄’ 혐의로 형사 고발 당하고 구금됐다.

 

중국 최대의 가정교회 중 하나인 이른비언약교회를 이끌고 있는 왕 이 목사는 체포 전에 이미 중국 정부가 언젠가 자신에게 어떤 혐의를 씌워 형벌에 처하게 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구금되고 72시간이 지나거든 미리 써 둔 ‘믿음의 불복종 선언문’을 공개하고, 중국 교회와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지킬 것을 당부했다.

 

중국 정부의 신종교사무조례 발효 후 중국 교회에 대한 정부의 핍박이 거세지는 가운데 왕 이 목사와 같이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중국교회의 지도자들이 있다는 것을 한국교회가 기억하고 기도하며 도전 받기를 바란다.

 

 

 

나는 하나님께서 중국에 세우신 당국자들을 성경의 가르침과 복음 전파 사명에 근거하여 존중합니다. 세상의 왕을 자리에 앉히거나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이 만드신 여기 중국의 역사적, 제도적 상황에 순종합니다.

 

나는 기독교 교회의 목사로서, 올바른 질서가 무엇이고 좋은 정부가 무엇인지 성경을 밑바탕으로 이해하고 바라봅니다. 동시에 교회를 박해하고 사람들에게서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박탈하는 이 공산주의 체제의 사악함에 분노가 치밀고 분통이 터집니다.

 

그러나 나는 사회, 정치 제도를 변혁하라는 사명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목표를 이루라고 하나님이 하나님 백성에게 복음을 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끔찍한 현실, 불의한 정치, 독단적인 법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짊어지신 십자가를 나타냅니다. 모든 중국인은 예수님의 십자가로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그런 현실과 정치와 법률을 볼 때 우리는 세상의 제도나 문화를 변혁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로 죄를 용서받고 영원한 생명을 바라는 데서 진정한 소망을 얻고 완벽한 사회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목사로서 나는 복음을 굳게 확신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르칩니다. 악한 모든 것을 비판합니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께서 복음서에서 하신 명령과 그 영광스러운 왕의 측량할 길 없는 사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누구의 인생이나 너무 짧게 끝납니다. 하나님은 기쁘게 회개하고자 하는 사람 모두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그런 사람 모두를 회개로 이끌라고 교회에 엄중하게 명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이들을 기쁘게 용서하기를 갈망하시고 기꺼이 그렇게 해주십니다.

 

 

 

2018년 12월 14일, 왕이 목사 선언문(1)

 

우리는 그리스도에 관하여 세상에 증언합니다. 천국에 관하여 이 중국에 증언합니다. 천국의 영원한 삶에 관하여 이 땅의 덧없는 인생들에게 증언합니다. 이것이 중국교회가 기울이는 모든 노력의 목표이자 내가 받은 목회 사명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공산주의 체제가 일시적으로 중국을 지배하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존중합니다.

 

주님의 종 칼뱅(Calvin)이 말했듯이, 악한 통치자는 악한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고, 그 심판의 목표는 하나님 백성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촉구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나는 공산주의자들이 법을 집행할 때, 주님의 징계와 훈련에 굴복하듯이 기쁘게 굴복할 것입니다.

 

동시에 나는 이 공산주의 체제의 교회 핍박이 말도 못하게 악랄하고 불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교회의 목회자로서 나는 이 사악함을 공개적으로 엄중히 고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목회자로서 내가 받은 소명은 하나님과 성경을 거역하는 그런 인간의 법을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거역하라고 명령합니다. 나의 구세주이신 그리스도께서도 악한 법에 불복종하는 대가를 기쁘게 감당하라고 명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개인적으로 악한 권세에 불복종하든지 교회가 불복종하든지,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도 ‘권리를 얻기 위해 싸우는 투쟁’이 아니고, 시민 불복종 형태의 정치적 행동주의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나는 중국의 제도나 법률을 바꿔보려는 의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목회자로서 관심을 쏟는 한 가지는, 내가 이렇게 믿음으로 정부에 불복종하고 또 그렇게 불복종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세상에 증언할 때, 죄로 가득한 사람들 본성이 무너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2018년 12월 14일 - 왕이 목사 선언문(2)

 

목사로서 나의 불복종은 복음이 명령하는 일부입니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그리스도의 지상대명령은 우리에게 큰 불복종을 요구합니다. 우리가 악한 권세에 불복종하는 목표는 세상을 변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또 다른 세상에 관하여 증언하기 위해서입니다.

 

교회의 사명은 교회가 되는 것이지, 다른 어떤 세속 기관의 일부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소극적인 관점에서 교회는 세상과 반드시 분리되어야 하며, 세상의 제도가 되지 않도록 자신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적극적인 관점에서 교회는 다른 세상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이 세상에 증언하기 위해 행동해야 합니다.

 

성경은 인간의 양심과 복음에 관계된 모든 문제에서 인간에게 순종하지 말고 하나님께 순종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나는 영적으로 불복종하고 신체적으로 고난을 겪음으로써, 영적인 세상이 존재하며 영광의 왕이 계신다는 진리를 세상에 증언합니다.

 

나는 중국의 어떤 정치나 법률 제도를 바꾸는 것에 조금도 관심이 없습니다. 심지어 나는 교회를 핍박하는 공산주의 정부의 정책이 언제쯤 바뀔까 하는 질문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내가 지금 어떤 체제에서 살고 있고 앞으로 어떤 체제에서 살게 될 지 상관 없이, 세속 정부가 교회를 계속 핍박하고 오직 하나님의 소유인 인간의 양심을 더럽히는 한, 나는 계속 믿음으로 불복종할 것입니다.

 

인간과 사회는 오직 그리스도께 구원받고 은혜로우며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주권에 굴복해야 희망이 있는데, 이 진리를 실천하여 더 많은 중국인에게 알려주라는 것이 내가 하나님께 받은 사명의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중국 공산주의 체제가 교회를 핍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핍박을 사용하여 더 많은 중국인이 세상의 희망을 버리고, 영적으로 깨어나는 광야를 지나, 예수님을 알도록 인도하고 계십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런 방법으로 그 분의 교회를 계속 훈련하고 세워가신다면, 나는 하나님의 계획에 기쁘게 순종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언제나 은혜롭고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내 말과 행동 어느 것도 사회, 정치적 변혁을 바라거나 모색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사회 세력이나 정치 권력이 조금도 두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선을 행하는 이들이 아니라 악을 행하는 자들을 위협하기 위해 정부 권력자들을 세우신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은 잘못한 일이 없다면, 어두운 권세를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나는 종종 연약해지기도 하지만 그것이 복음의 약속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그것에 에너지를 다 쏟아 왔습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지금 중국 사회 전체에 전하고 있는 좋은 소식입니다.

 

나는 교회가 어둠의 권세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공산주의 정권이 교회를 두려워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왕이 목사님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선언케 하신 주님을 찬송하며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중국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시 경찰이 2018년 12월 9일(현지 시각)에 유명한 지하 교회인 추위(秋雨)성약교회를 급습해 목사인 왕이를 포함해 신도 100여명을 체포했다.

 

 

 

믿음의 불복종을 구성하는 요소

 

나는 성경이 어떤 정부 어떤 기관에도 교회를 운영하거나 기독교인들의 믿음에 간섭하는 권세를 주지 않았다고 굳게 믿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교회를 억압하고 기독교인의 믿음에 간섭하는 행정 시책과 법적 조치 일체를 거부하라고 나에게 명령합니다. 성경은 평화로운 수단으로, 온유하게 저항하고 적극적으로 참으면서, 기쁨 충만한 마음으로 그런 것들을 거부하라고 명령합니다.

 

나는 그것이 영적 불복종 행위라고 굳게 믿습니다. 기독교를 박해하고 복음을 억압하는 현대의 권위적인 체제에서 영적 불복종은 복음 운동의 필수 불가결한 일부가 되었습니다.

 

나는 영적 불복종이 마지막 때의 행위라고 굳게 믿습니다. 그것은 죄와 악이 지배하는 일시적인 세상 나라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증언하는 행위입니다. 정부에 불복종하는 기독교인은 십자가의 길로 걸어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본을 따릅니다. 평화로운 불복종은 기독교인들이 세상의 일부가 되는 것을 피할 뿐 아니라 세상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내가 영적 불복종을 실천할 때, 성경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과 은혜를 의지하라고 명령합니다. 나는 그렇게 굳게 믿습니다. 또한 나는 우리가 두 영역에서 주의하여 도를 넘지 말아야 한다고 굳게 믿습니다.

 

 

첫째 영역은 마음입니다.

 

 

사람들에 대한 증오가 아니라 그들 영혼을 향한 사랑이 영적 불복종의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환경을 변혁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변화시키는 것이 영적 불복종의 목표입니다. 어느 때든지 외적 억압과 폭력 때문에 내적인 평화와 인내를 잃는다면, 그래서 교회를 핍박하고 기독교인들을 학대하는 사람들을 증오하고 원망하기 시작한다면, 영적 불복종은 그 순간 실패로 돌아갑니다.

 

 

둘째 영역은 태도입니다.

 

 

복음은 믿음에서 나온 불복종은 반드시 비폭력적이어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물리적으로 저항하는 대신에 적극적으로 고통을 받고 심지어 불의한 처벌도 기꺼이 감내하는 것에 복음의 오묘함이 있습니다.

 

평화로운 불복종은 사랑과 용서에서 나옵니다. 십자가란 고통을 당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기꺼이 고통을 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불의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능력을 무한히 갖추고 계셨음에도, 그 모든 수욕과 상처를 고스란히 감내하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못 박은 세상에 평화의 감람나무 가지를 내미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거부한 세상을 거부하신 방법이었습니다.

 

나는 복음을 억압하고 교회를 핍박하는 이 체제 아래서 다른 이들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며, 믿음에서 나온 이런 불복종을 실천하라고 그리스도께서 나를 부르셨다고 굳게 믿습니다. 나는 그런 방법으로 복음을 전파합니다. 그것이 내가 전파하는 복음의 오묘함입니다.

 

주님의 종, 왕 이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천지만물을 섭리하심과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복을 주셨음을 잊고 인본주의의 극치를 달리며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는 중국 땅과 중국인들을 향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 이사야 1장 2절에서 3절의 말씀을 선포하며 기도합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중국의 세상 권세자들아,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고 이제는 돌이킬찌라.

마태복음 27장 44절 “함께 못박힌 강도들도 이와같이 욕하더라” 인류의 죄짐을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매어 달리신 예수님 곁에서 두 강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채 함께 예수님을 욕하였으나, 그 중 한 강도가 누가복음 23장 42절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할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며 마침내 자신을 포기하고 예수님께 의탁하였을 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3장 43절의 말씀대로 죄인이었던 강도를 구원하셨던 예수 그리스도 앞에 엎드릴찌어다.

 

모든 자고함과 완악함을 내려놓고 주께서 죄사함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간구할찌어다.

 

거절과 배반에서 돌이켜 즐겨 순종할 때 주홍같은 죄도 진홍같이 붉은 죄도 용서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을 찬송하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눈만 내놓고 온 몸을 가린 모슬렘 여성들

 

“아니 이런 곳도 있나?” 평생 처음 보는 놀라운 광경이었다. 눈만 내놓고 온 몸을 검은 옷으로 가린 여성들. 두건을 쓰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흰옷을 입은 남자들. 영화에서나 보던 수많은 모슬렘 남녀들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지난해 7월 섬기는 시애틀 뉴비전 교회 천우석 담임목사님과 장로님들과 함께 아프리카 잠비아 선교를 다녀왔다. 그곳에서 현지 주민들을 위해 4일 동안 밤낮으로 연합부흥회를 개최하고 그룹 성경 공부 인도, 성전 건축, 우물파기, 염소 나눠주기 그리고 어린이 학교 지원 등 여러 사역을 했다. 

 

그런데 시애틀에서 잠비아까지는 20시간 이상이 걸리는 장거리이고 직항 노선이 없어 두바이에서 하룻밤을 지내야 했다.

 

저녁에 도착한 두바이를 잠시라도 둘러보기 위해 샤핑 몰에 들렸는데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 두바이의 화려한 샤핑 몰보다 내가 더 놀란 것은 그곳에 있는 수많은 모슬렘들이었다.

 

특히 그곳에서 샤핑을 하거나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도 볼 수 없었던 독특한 모슬렘 복장을 다하고 있어 내가 정말 모슬렘 국가에 와 있다는 것이 실감되었다. 

 

머리에 히잡을 쓴 여성은 미국에서도 가끔 보았기 때문에 놀라지 않았지만 눈만 내놓고 아예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옷으로 가린 니캅 복장의 여성은 처음으로 봤는데 많은 여성들이 이런 복장으로 초호화 샤핑 몰을 걷고 있었다. 얼굴만 내놓고 온 몸을 검은 옷으로 가린 차도르 복장도 많았다.

 

남성들은 거의가 케피아 두건을 쓰고 위에부터 발목까지 내려오는 흰색 긴옷을 입은 깐두라 차림이었다.

 

 

 

▲ 두바이 샤핑 몰에서 본 모슬렘 남녀들

 

 

 

내가 중동을 방문한 것이 처음이라 이같은 모습에 놀랐지만 우리가 사는 현 시대에도 중동에는 많은 모슬렘들이 우리와 다른 독특한 복장을 하고 우리와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모슬렘 선교에 큰 도전이 되었다. 

 

두바이에서 이처럼 많은 모슬렘들을 보면서 나는 평생 처음으로 내가 만났던 모슬렘 소녀의 모습이 생각났다.

 

우리는 보통 이슬람교도인 모슬렘(Moslem)은 멀리 있는 아랍권이나 아프리카에 많은 것으로 생각하기에 한국이나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 모스렘들은 이젠 중동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에도 있고 우리의 가까운 이웃에까지 파고들어오고 있다. 학군이 좋아 많은 한인들이 살고 있는 시애틀 북쪽 머킬티오 시에서도 모스렘 사원을 건설하려는 것을 반대한 주민이 오히려 벌금을 내고 처벌을 받기도 하는 등 모슬렘 사원 건설은 이곳저곳에서 추진되고 있다.

 

수년전 나는 직접 모슬렘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 모슬렘은 우리가 영화나 선교보고 동영상에서 볼 수 있는 두건을 쓰고 수염을 기른 험상궂은 남자가 아니었다. 아주 작은 십대 흑인 소녀였다. 내가 일하던 신문사 옆 패스트 푸드 식당에서 일하는 소녀였다.

 

언젠가 점심시간에 그 식당에 갔는데 키가 아주 작고 흑인인 소녀가 주문을 받았다. 그 후 몇 차례 그곳에서 점심을 하면서 이 소녀에게 교회를 가는지 물었더니 자신이 모슬렘이라고 선뜻 대답했다.

 

그당시 모슬렘 선교를 위해 기도는 많이 했지만 직접 지역을 방문한 적이 없었고 모슬렘을 만나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소녀가 자신이 모슬렘이라고 밝힌 이 사실이 나에게는 충격적일 정도의 놀람이었다. 

 

모슬렘의 숫자가 미국에도 많이 있는 것이 실감되었고 이젠 바로 내 코앞에까지 온 것이다.

 

이야기를 해보니 이 소녀는 에티오피아에서 어릴 적 부모와 함께 왔는데 아직 한 번도 교회에 가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평생 처음으로 모슬렘 소녀를 만나게 된 것도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그녀에게 예수님을 전하기로 작정했다. 

 

그래서 일부러 자주 그 식당에서 점심을 하고 친절하게 이야기도 나누었다. 내가 요세미테 국립공원을 다녀왔을 때 이 소녀는 아직 구경하지 못했다고 해서 일부러 아름다운 사진을 프린트 해 줬더니 좋아하며 식당 벽에 걸어두고 동료들에게 자랑했다.

 

모슬렘 소녀에게 성경을 주면 당연히 거절하기 때문에 나는 아이디어를 짜냈다. 내가 만드는 ‘새 하늘 새 땅’ 기독 월간지를 점심시간에 가지고 가서 그 소녀가 손님이 없어 한가해 테이블을 치우고 다닐 때 내가 이런 책을 만든다고 설명하니 호기심 있게 가까이 왔다.

 

책을 펼치며 보여주다가 ‘이달의 말씀’ 페이지를 펴놓고 아주 좋은 글이니 읽어보라고 했다.

 

‘이달의 말씀’은 한글과 영어로 써 있는 성경 말씀이다. 따라 읽게 했더니 이 소녀는 성경말씀인줄 모르고 읽었다. 다 읽고 나서 이 말씀은 성경 말씀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이 모슬렘 소녀에게는 평생 처음 대하는 하나님 말씀이었다. 

 

그 후에도 점심시간에‘새하늘 새땅’다른 호를 가져가 영어로 쓰여 있는 성경 말씀을 보여주며 설명해주었다. 감사하게도 이 모슬렘 소녀는 거부하지 않고 귀담아 들었다. 

 

그 후에도 그곳에서 일하는 여러 종업원들에까지 그들의 이름을 기억해 불러주며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그리고 이 모슬렘 소녀에게 나도 결혼 전까지는 집안이 불교집안이라 교회를 간적이 없었지만 전도 받고 이젠 장로로서 주님의 일을 감당하고 있다며 예수님을 소개하고 교회에 나가도록 권면했다.

 

특히 예수님을 증거하는 가장 좋은 기회인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예수님의 탄생부터 부활까지 설명을 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예수님은 너를 사랑하시니 교회에 나가고 예수님을 영접하길 바란다”는 글을 쓴 크리스마스 카드와 함께 아내가 예쁘게 포장해준 조그만 선물을 전해주었다. 

 

식당에서 뜻밖에 선물을 받은 이 모슬렘 소녀는 감격한 것같이 기뻐했는데 선물 보다는 카드를 먼저 뜯고 읽어보더니 동료들에게 내가 자신에게 교회가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했다고 좋아하며 자랑하는 것이었다.

 

그 이후 모슬렘 소녀는 무슨 영문인지 보이지 않았다. 다시 학교로 돌아갔을까? 아니면 더 좋은 일자리를 구했을까? 

 

그 소녀가 교회에 나간다는 소리를 듣지 못해 아쉽지만 언젠가 이 소녀도 반드시 예수님을 영접하리라 믿는다.

 

 

 

 

▲ 검은 옷으로 몸을 가린 모슬렘 여성이 몸을 노출한 서구 패션 의상판매점 앞을 지나고 있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 소녀를 에티오피아에서 떠나 미국 시애틀에 오게하고 기독교 장로를 만나 처음으로 성경 말씀을 읽었고 예수님을 소개받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소녀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아니겠는가?

 

나는 이 소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심었을 뿐 하나님이 앞으로 물을 주고 가꾸어서 이 모슬렘 소녀가 나중에는 한 한국인으로 인하여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자랑스런 간증과 함께 선교 사명도 잘 감당 할 것으로 확신하며 기도한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은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은 이와 물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전3:6-9)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집안이 불교 집안이어서 교회에 가보지도 못했는데 결혼 후에 아내의 전도로 교회를 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대학 시절 대학 기독교 동아리 친구들이 나를 위해 전도하고 기도도 해주었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는 그 친구들의 뜨거운 사랑의 마음을 몰랐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그들이 고맙고 잊을 수 없다. 내가 지금 그들을 만나고 싶고 감사하고 싶은 것처럼 나로부터 하나님 말씀을 처음 대한 그 모슬렘 소녀도 언젠가는 나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전도와 선교에 앞장서리라 믿는다.

 

한 모슬렘 지역 선교사의 보고를 읽어보니“하나님의 역사로 알제리에서는 하루에 여러 명이 주님을 영접했고 불가리아 남부에서는 터키어를 쓰는 모슬렘 2만명이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해서는 안된다”며 “모슬렘과의 사랑, 진실, 믿음, 신뢰 등을 통해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한편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 절대 의존해서 점차 복음을 제시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언젠가 한국을 방문한 국제 오픈도어 Johan Companjen 총재는 유럽으로 몰려드는 모슬렘 인구와 이들에 대한 선교방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순수합니다. 그러나 모슬렘을 맞이하는 유럽인들은 매우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지난 9.11사태 이후 모슬렘은 곧 테러주의자라는 공식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유럽으로 이주한 모슬렘들이 피해를 입기도 합니다. 사실 이제 모슬렘선교는 중동이나 중앙아시아를 떠나 유럽 등 서구사회에 정착한 모슬렘을 향해 있어야 합니다.” 

 

이미 모슬렘지역은 중동과 중앙아시아를 벗어나 있다. 유럽과 미국 등에 모슬렘 디아스포라들이 포진되어 있고 이것이 선교의 키워드가 되고 있다고 한다.

 

미국 싱크탱크 퓨리서치센터의 연구프로젝트인 퓨(PEW) 포럼은 2010년 현재 전 세계 모슬렘 인구가 16억1931만명이라고 밝혔다. 세계 인구(69억명)의 23%다. 더구나 모슬렘은 급증하고 있어 2030년이면 세계 인구의 4분의1 이상(26.4%)을 차지할 것으로 퓨 포럼은 예측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10만 여명으로 추정되고 있으니 이제 우리는 모슬렘선교를 위해 중동과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우리 주위에 있는 모슬렘들에게 다가가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9-20)

 

■이동근: 시애틀 뉴비전교회(담임 천우석 목사) 시무 장로. 전 중앙일보 시애틀지사 편집국장)

 

 

 

 

 

 

 

 

 

 

 

▲ 2019 아프리카 권역 선교전략회의에서 아프리카 9개국 선교사들이 해외선교위원장 이형로 목사와 함께 난상토론을 벌였다. 사진은 7가지 영역별 발제 토론하는 모습.

 

 

아프리카의 기독교인 수가 세계 기독교인의 20% 넘는다는 것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에는 이미 복음의 씨가 싹을 틔우고 있다. 문제는 기독교인 숫자는 늘고 있지만 건강한 성장은 요원하다는 점이다.

 

해외선교위원회(위원장 이형로 목사) 주최로 지난 1 15~18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열린아프리카 선교전략회의’에서 선교사들은 아프리카선교의 건강한 성장을 위한 대안을 모색했다.

 

먼저 선교사들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로 현지교회를 이끌어갈 목회자를 위한신학교육’을 손꼽았다. 계속 성도가 늘어나고 교회는 세워지고 있지만 교회 리더 제대로 신학교육을 받은 이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나라별로 신학교도 세우고, 신학대학에서 가르치고 있지만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교회지도자가 아직도 많다. 아무 교육도 받지 않고 스스로목회자’라고 하고 교회를 맡고 있는 경우도 적지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목회자 재교육도 중요한 이슈로 부각 됐다.

 

윤원로 선교사(코트디브아르)  “초교파적으로 목회자 세미나를 열면 수백 명씩 모이는데 성경을 통독한 사람은 손들어보라고 하면 많지 않다”면서 목회자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성식 선교사(잠비아)현재 아프리카는 번영신학과 신사도주의의 홍수아래 덮여 있다”면서각종 신학교의 신학교육에 대한 점검과 평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곽여경 선교사(카메룬)카메룬의 경우 무허가 교회들이 주술적 도구를 사용하며 혼합주의 신앙의 성도들을 양산하고 있다”면서사설신학교에서 배출된 목회자들은 재정, 도덕성, 성문제가 심각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현지인 목회자들 글을 읽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성경에 근거해 설교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는 지적도 나왔다. 선교사들은하나님이 짝지어 주셨다며 여성 성도들을 성폭행 하는 등의 범죄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교회에 나오지만 문제를 일으키고 문란한 성의식을 가진 성도도 많다”고 설명했다.

 

성도들에게 제대로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것인지 가르치기 위해서는 제대로된 신학교육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이 선교사들의 이야기였다.

 

 이를 위해 성도들을 교육할 있도록 교단 교재를 영어나 불어, 스페인어 등으로 번역해 제공달라는 요청이 있었고, 인터넷을 통한 교육 시작과 신학교육을 위한 꾸준한 관심과 지원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세계 최대 감리교단이면서 미국 내에서 남침례회(SBC)와 더불어 가장 큰 규모를 가진 연합감리교회( UMC)가 ‘인간의 성(human sexuality)’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특별총회를 개최한다.

 

UMC는 2016년 총회 보고서 기준 미국,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등지에 79개 연회, 4만4천여 교회, 성직자 5만4천5백명, 교인 1261만명의 교세를 보이고 있다.

 

UMC는 2월 23~26일 미중부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컨벤션센터에서 특별총회(Special Session of the General Conference)를 개최할 예정인데, 이번 회의에서는 ‘인간의 섹슈얼리티’(human sexuality)에 대한 의제를 다루게 된다.

 

구체적으로는

△동성애 및 동성결혼의 인정 또는 묵인

△동성결혼의 주례 허용

△LGBTQ의 목사안수 허용

△교회 안에서의 동성결혼 허용

△동성애에 대한 규정의 장정 삽입 또는 삭제

△연회 또는 총회의 입장

△동성애에 반대하는 이들 또는 교회에 대한 처리 그리고 탈퇴 및 출구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매우 폭넓은 의제들을 포함하고 있다.

 

* LGBTQ는 성소수자를 뜻하는 용어로 사용되는데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 성정체성 또는 성적지향에 의문을 갖는 퀘스처닝 또는 퀴어 (Questioning, Queer)의 머리글자를 붙인 것이다.

 

 

 

 

▲ 특별총회 장소The America’s Center Convention Complex in St. Louis

 

 

 

 

 

▲ Commission on a Way Forward(전진위원회): 32 Members

 

 

이번 특별총회에는 수십개의 안건 들이 청원의 형태로 상정될 것으로 보이지만 UMC는 2016년 정기총회에서 논란 이후 감독회의에서 구성한 32인의 특별위원회(Commission on a Way Forward)를 통해 준비되고 추천되는 3가지 안건을 중점적으로 다루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세 가지 주요 안건은

One Church Plan(하나의 교회 플랜),

② Connectional Conference Plan(연대적 총회 플랜),

③ “Modified” Traditional Plan(수정 전통 플랜)인데 이중에서 “human sexuality에 대한 이슈로 연합감리교회가 나눠져서는 안된다”는 총감독회와 특별위원회 추천을 받은 One Church Plan 모델이 다수의 세를 얻고 있다.

 

 

 

 

 

세 가지 주요 안건의 제안되는 중점 내용은 다음과 같다.

 

One Church Plan(하나의 교회 플랜)

 

1. 성정체성 이슈는 연합감리교회를 나눌 문제는 아니다.

2. 해외지역총회에서 장정을 수정하지 않아도 된다. 현장화, 즉 미국 내의 지역총회에서 이루어진다.

3. 선교중심으로 성소수자들을 제한하는 언어들을 장정에서 삭제한다.

4. 양심의 자유에 따라 금지조항을 제거하지만 간섭하지 않을 것을 보장한다.

5. 각 연회별로 각 연회의 안수 정책에 대해 투표를 하고 관리하도록 위임한다.

6. 목회자들이 결혼을 주례할지에 대해 결정할 수 있다.

7. 자신들의 교회에서 동성애 결혼을 원하는 경우에 평신도들의 투표가 필요하다.

 

connectional Conference Plan(연대적 총회 플랜)

 

1. 3개의 독립된 지역총회를 만든다. – 안수 받은 목회자들과 선출된 감독들도 분리된다.

2. 지역 총회, 각 연회 그리고 각 교회의 투표에 의해 분류된다.

3. 연합감리교회의 연대를 유지하지만 통합은 약해진다.

4. 이에 대한 실행을 위해 1) 교회법을 수정, 2) 새 장정을 만들고, 3) 총회기관의 개편 및 축소 4) 분리 이후 일치성 유지, 갈등 해소의 과제가 있다.

 

“Modified” Traditional Plan(수정 전통 플랜)

 

1. 교회법을 더 엄격하게 한다 – 1) “동성애를 행한다고 스스로 공언한 자”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위해 더 많은 조항이 추가될 것이다. 2) 동성애 결혼과 성소수자 안수에 관한 처벌과 추방이 실행된다,

2. 성소수자 이슈에 대해 장정에 얼마나 충실한가를 위해 투표를 한다. (연회, 감독들, 안수사역위원회)

3. 은혜로운 출구인가 아니면 교단의 분립에 대한 논의가 발발하게 된다.

 

One Church Plan(하나의 교회 플랜)은 성관계는 오직 ‘두 성인 사이의 일대 일의 결혼으로 인정된다.’라고 정의하며 전통적으로 지켜 온 ‘남녀 사이의 결혼’을 ‘두 성인 사이의 결혼’으로 수정함으로 사실상 동성결혼을 허용하고 나아가 LGBTQ를 자인한 사람들에 대한 목사안수를 허용하고 있다,

 

다만 교회나 연회에게 동성행위 자인하는 사람들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하지 않으며, 목사들과 개체 교회들의 신앙 양심을 보호할 수 있는 용어를 포함시킨다고 다소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동시에 이에 대한 장정의 수정은 미국 내 지역총회에만 해당되고 해외지역 총회의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며 동성애 문제에 강력히 거부하고 있는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의 교회들을 향해 이원화된 태도를 취하고 있다. One Church Plan 이라는 이름과는 걸맞지 않게 교리는 둘로 몸은 하나로의 이중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 2016 총회 General Conference 2016

 

 

 

 

▲ UMC 내 동성애 이슈

 

 

 

connectional Conference Plan(연대적 총회 플랜)은 현재 미국 내 5개 지역총회(Jurisdictions conferences, 북동부, 남동부, 중북부, 중남부, 서부)를 재편해서 진보주의 총회, 통합주의 총회, 전통주의 총회로 3개의 ‘연대적 총회’(Connectional conferences)로 바꾸는 것을 기본 틀로 하고 있는데, 3개 연대적 총회는 ‘공통장정(교리, 보편 원칙들, 신앙고백)을 쓰되 결혼과 목사안수 기준에 관한 정의와 그 정의에 맞는 사안들을 정하고 이를 기초로 나머지 다른 사항들은 개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장정을 개정해야 하는 부분이 너무 많아 현실성이 떨어지고 실제로 많은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다.

 

“Modified” Traditional Plan(수정 전통 플랜)은 동성애에 관한 현행 교단의 입장(장정)을 고수하며 책임소재를 강화 하는 것을 골격으로 하고 있으며 ‘장정의 요구를 따를 수 없는 연회, 개체교회, 목회자들을 위해서는 은혜롭게 나갈 수 있는 출구를 제공하자”고 오히려 보수적으로 강화된 입장을 제안해 실제로 채택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는데 이 안은 동성애를 행하는 자는 안수나 파송을 받을 수 없고, 목회자는 장정이 정한 동성 결혼 금지조항을 따라야 하며 감독은 이유없이 처벌을 기각시켜서는 안 되고 동성결혼 집행의 경우 1차 1년간 무보수 정직, 2차 안수증 반납 등 강력한 처벌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이미 미국 내에서는 미국장로교(PCUSA)는 지난 2011년 총회 결의로 동성애자 목사안수를 허용하고 2014년 총회에서는 결혼의 정의를 '한 남자와 한 여자'에서 '두 사람 사이, 전통적으로는 한 남자와 여자 사이'로 바꾸며, 동성 결혼을 인정했고 이에 항의하는 교회들의 교단탈퇴가 이어지기도 했다. 이어 UMC도 분열의 조짐을 내포한 채 금번 특별총회의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UMC 내 한인교회(KUMC)및 미주자치연회 등에도 매우 큰 영향이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연합감리교회 한인총회도 특별총회에 대한 소식을 웹사이트(http://www.koreanumc.org)에 자세히 전하며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며 긴급히 논의하고 있고 미주자치연회(은희곤 감독)에서도 대외협력위원회(위원장 김영민 목사)를 통해 상황파악 및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지난 2017년 제32회 총회 입법의회에서 동성애대책위를 구성하고 조직과 행정법 제 11조 (교인의 의무)에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을 통해 구성된 가정의 신성함을 존중한다”는 조항을 넣었으며 재판법 제3조(범과의 종류) 동성애 찬성이나 동조를 중한 범과로 개정해서 정직, 면직 또는 출교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통과시킨 바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 촉발 된 동성애 이슈에 대한 문제는 기독교대한감리회 뿐만 아니라 한국내 주요교단에도 교리 및 허용여부에 따른 지속적인 진통이 예상되는데 이에 대한 광범위한 논의와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볼 수 있겠다.(언)

 

 

 

 

 

 

 

 

 

 

 

 

 

 

 

 

 

 

 

 

 

 

 

▲ 탈북민 출신 김영실 목사는 목회자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남한행을 결심했다. 지금은 개척목회의 꿈을 꾸고 있다.

 

 

 

북한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랐다. 부모가 공산당 간부였기 때문에 출신 성분이 좋은 사람들이 살 수 있다는 양강도 보천보, 삼지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삼지연은 지난 9월 남북정상이 백두산을 찾기 위해 비행기가 내렸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1990년 중후반 북한 전역을 휩쓸며 엄청난 아사자를 낳았던 고난의 행군기는 피해갈 수 없었다. 인생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부모가 사고를 당해 사경을 헤매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생계를 위해 부모를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고민할 겨를도 없이 압록강을 건넜지만 많은 탈북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점쟁이로 살았던 어두웠던 세월

 

부유했던 어린 시절 늘 자신감에 차 있던 소녀 김영실은 남보다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북한은 무속신앙을 금지하고 있지만 소위 신령님을 모시고 점을 볼 줄 아는 점쟁이로 산 시간이 있었다. 할머니가 받은 신 내림을 이어받았고, 스무살 나이에는 입소문을 타면서 점괘도 봐 주었다.

 

탈북을 하고 지금의 남편을 만난 중국 길림성 안도현에 처음 정착해서도 무속 능력은 계속됐다. 어쩌면 예수님을 믿기 불가능할 것은 같은 환경이었지만 그녀는 극적으로 예수님을 만났다.

 

사실 교회에 가기까지 같은 마을에 살던 아주머니의 공이 컸다. 평소 성격이 강한 탓에 매몰차게 거절해왔지만 “당신이 믿는 신이 평안을 주냐”는 말에 마음이 흔들려 조선족마을의 유일한 교회에 나가보았다.

“담임 전도사님이 창세기 2장을 설교하는데 에덴동산에서 죄를 지어 쫓겨났다는 데까지 듣는 순간 하나님께서 영을 육에서 분리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환상을 본 적이 과거에도 많아서 구분할 수 있었어요.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으려고 바위나 나무를 끌어안는 모습을 보는데, 멀리 빨간 십자가 다리가 보였습니다. ‘건너오라’는 우렁찬 소리를 듣고는 육체로 영이 회복됐습니다. 그 때 전도사님의 설교가 끝나가고 있었지요.”

 

설교가 끝나고 찬송가 ‘천부여 의지 없어서’를 불렀다. 도저히 알 수 없는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었던 것이 지금도 신기하다. 그녀는 그 때 각오했다. “내가 졸개 귀신이 아니라 큰 신을 섬겨야겠다.” 지금 돌이켜보면 성령 때문이었던 것 같다. 흔히 말하는 성령세례의 순간이다.

1998년 12월 22일 달력에 ‘나는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났다’는 문구를 기록해놓았기 때문에 더욱 잊을 수 없다. 예수를 믿으면서 그간 여러 차례 자신에게 보여주셨던 환상의 의미도 알 수 있었다.

 

핍박과 북송, 하나님의 계획

 

하지만 당장 남편의 핍박이 시작됐다. 교회는 안 된다면서 손찌검을 하기도 했다. 한번 시작된 성령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꺾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와중에 큰 일이 벌어졌다. 범죄피해를 당했는데 공안 수사과정에서 탈북자인 것이 발각돼 북송되고 만 것이다.

 

수용소에서 고초를 겪는 와중에도 사람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했다. 김영실 목사는 그 안에서도 예수를 전하다 세 차례나 발각됐다. 시범적으로 총상될 위기가 있었지만 수송열차에서 뛰어내려 다시 남편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살아 돌아온 아내를 보고 남편은 같은 하나님을 믿기로 결단했다.

 

하나님은 죽지 않고 더 살아가야 할 이유를 계속해서 주셨다. 김영실 목사는 하나님을 처음 영접하고 계속 감격해서 울었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목회자가 되기로 결단했다. 하지만 중국 내 신학교에서는 탈북자를 입학시켰다 폐교될 수 있어서 거부했다. 그 때 오로지 신학을 공부해야만 한다는 일념에 사로잡혔다.

“탈북자들이 가족을 찾거나 경제적인 이유로 한국행을 결심하지만 저는 중국에서 가정을 이루고 비교적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목회자가 되도록 인도하셨는데 그 일을 위해 남한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이 가진 계획이 있으실 것이라고 확신했고요.”

 

“구원해야 할 사람이 길 위에 있다”

남편에게 말하면 보내주지 않을 것이 뻔했다. 남편에게는 다른 도시에서 일하던 여동생을 만난다 하고 국경을 넘었다. 중국 국경수비대를 매수해 철조망 넘어 몽골로 간 것. 그러나 하루만 걸으면 군인들을 만날 것이라는 말은 거짓이었다. 신을 믿는 사람이 있냐고 했던 질문의 뜻을 그제서야 이해했다.

 

하루만에 물과 음식은 바닥났다. 낮에는 뜨거운 모래밭, 밤에는 추위와 싸워야했다. 출발할 때부터 받았던 “하나님께서 너를 통해 구원받을 사람이 길 위에 있다”는 기도응답을 따라 여동생과 다른 일행 2명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런데 1명은 끝까지 거부하고 행동도 제멋대로였다.

 

사막에서 사람의 두개골을 봤을 때 두려움은 잘 모를 것이다. 신기루에 속아 기진맥진하기도 여러 번. 소변도 안 나올 정도로 갈증은 극에 달했고, 모래언덕을 넘어도 끝이 없었다.

“나흘 째 되는 날 운명에 맡기고 각자 흩어지자고 다들 말하는데, 저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한명씩 지쳐 쓰러질 때도 계속 걸었어요. 그리고 손가락 한두마디 깊의 작은 물웅덩이를 찾았습니다. 말도 안 되는 것이죠. 그 아래에서 미세하게 물길이 솟고 있었어요.”

 

가까운 거리에 있던 여동생과 일행에게 물을 갖다 날랐다. 문제는 20리 밖에 남은 복음을 거부했던 한 사람이었다.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목숨을 건 일이었다. 바람에 발자국이 지워진다면 같은 조그만 목적지로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었다. 다른 일행은 만류했고, 김 목사는 그렇게 하고도 싶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계속해서 마음을 움직였다.

 

도저히 거부할 수 없어 물통 2개를 들고 되돌아갔다. 겨우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발견해 이름을 부르며 물을 마시라고 했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물을 적셔주었다. 겨우 정신을 차린 그는 김영실 목사를 이끈 하나님을 믿어보겠다고 다짐했다.

“그 자리에서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했어요. 안수기도가 뭔지 모를 때인데 안수 받았던 기억이 있어서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강하게 그 친구에게 역사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목회자의 꿈 마침내 이루었다

2004년 7월 몽골을 거쳐 입국해 국정원에서 조사를 받고 하나원에 입소했다. 당시 우리가 들어온 루트에 대한 소문이 나서 고위직이 직접 조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해 10월 경기도 포천에 거주지 배정을 받았고 곧바로 동네 교회에 출석하게 됐다.

 

다른 탈북민들은 남한 사회에서 돈을 버느라 정신없을 때 그는 곧바로 대학에 입학했다. 서울 방배동 백석대학교에 진학해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첫 등록금은 출석교회 담임목사님 가정에서 대 주었다.

“주의 종을 키우는 학교면 학비를 다 지원해 주는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에게 절대 뒷걸음질 하지 않겠다고 기도했는데,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어 휴학해 버렸습니다. 잠시 머뭇거리지 않았다면 교단 첫 여성안수 대상자였을 거예요.”

 

정말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12년 만에 학교를 졸업했다. 탈북민 목회자를 위한 교단과 교회의 관심이 더 많아져 자신처럼 고생하는 탈북민 후배들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도 솔직한 심경이다.

 

이제 김 목사는 개척목회의 비전을 꿈꾸고 있다. 탈북민 사역을 위해 부교역자 청빙도 있지만 고사하고 있다. 지금은 전국에서 요청하는 집회에 강사로 말씀을 선포하고 있다. 이제는 남편까지 함께 살며 복음동산의 꿈을 함께 꾸고 있다.

 

또 하나의 소망은 일찍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돌보는 공동체이다. 교회와 고아사역의 꿈을 동시에 이룰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다. 오갈 데 없는 영혼들이 안식할 수 있길 바라며 미리 지어놓은 교회명 ‘주사랑열방나눔교회’. 김영실 목사가 속히 담임목회를 할 수 있길 그려본다. (이인창 기자)  

 

 

 

 

 

 

 

 

 

 

 

 

 

 

 

 

 

 

인간을 가차없이 발가벗겨버리는 작업은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소설가들이었다.

리학에서는 "우리 마음이 얼마나 많은 착각과 오류, 오만과 편견, 실수와 오해로 가득 차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프레임’)있다고 말한다.

 

조던 B. 피터슨이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거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자신의 행동과 말을 관찰하기 위하여 “자신을 둘로 분리했다. 하나는 말하는 나, 다른 하나는 그런 나를 조금 떨어져 관찰하고 판단하는 나로.”(‘12가지 인생의 법칙’)

 

그 결과? 피터슨은 고백했다. “내가 하는 말 대부분이 진실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라고.

 

한국교회는 2000년대 들어 손가락질 당하는 새 이름을 많이 얻었다. 그런가 하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교회 출석은 거부하는 소위 ‘가나안’(교회 안 나가는 교인) 교인의 수가 놀랄만큼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라고 한다.  한국교회는 경쟁하듯 교회부흥을 입에 달고, 기를 쓰고 있는데도 신도 수는 줄어들고 있다. 그 원인은 도대체 무엇일까?

 

최윤식은 ‘2020 2040 한국교회 미래지도’에서 영적인 문제에 답을 주지 못하는 한국교회의 병리, 지도자의 자질 부족, 진리추구보다 교세확장에 관심을 갖고 있는 목회방향, 사회에서의 역할 포기 등을 원인으로 지적해준다.

 

자신에 대한 반성(회개)이 수반되지 않는 한국교회는 앞으로도 계속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와 목사들은 조던 B. 피터슨처럼 자신을 둘로 분리하는 자리로 나아가야하지 않을까.

 

복음을 증거하는 나와 그 증거하는 나를 관찰하는 나로···.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증거하는 복음을 나의 삶이 뒷받침하고 있음이 증명되어진다면 한국교회의 앞날은 밝아질 것이다.  가나안 교인들도 교회로 돌아올 것이다.

 

목회자들의 자기인식은 하나님의 종들이기에 심리학자들 보다 더 냉엄해야 하지 않겠는가. 혼과 영을 찔러 쪼개는 말씀이 있지 않은가? (언)

 

---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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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애플 본사 전경

 

 

애플이 동성결혼을 '질병'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이유로 기독교 단체가 만든 앱을 삭제했다고 미국 크리스천포스트가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애플은 텍사스에 위치한 기독교 사역단체 '리빙호프 미니트스리'(Living Hope Ministries)가 개발한 '탈동성애' 앱을 삭제했다.

 

이는 동성애 옹호단체인 '트루스윈즈아웃'(Truth Wins Out)이 청원사이트 Change.org에 '탈동성애앱은 위험하고, 편협하며 적대적'이라는 내용의 청원을 올린 데 따른 조치다.

 

이 단체는 "탈동성애앱은 동성애를 '중독', '질병', '죄' 등으로 잘못 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리빙호프의 리키 샬렛(Ricky Chalette) 사무총장은 크리스천포스트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가 한 개인의 잘못된 고발로 우리의 앱을 삭제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시한다. 그들의 결정이 어떠하든지 우리의 앱을 찾는 자들을 위해 지속적으로 이를 개발하고 서비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근 30년 동안 많은 개인들이 신앙과 어울리지 않게 느껴지는 감정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왔다. 성경공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더욱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책무를 다할 수 있도록 도왔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왔다. 여러 단체들을 지원을 통해 그들은 혼자가 아님을 깨닫고, 고민과 열정, 승리의 경험 등을 정죄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진솔하게 함께 나눌 수 있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문종성의 가스펠 로드] (5) 멕시코 빈민촌 어느 가난한 날의 일기 기사의 사진

 

 

멕시코 남부 도시 오아하까 외곽 빈민촌. 허름한 집들이 더덕더덕 붙어 있는 작은 마을에서 예배가 열린단다. 씀벅거리며 여기저기 고개를 돌려도 교회는 보이지 않는다. 들쭉날쭉한 돌담을 돌고 돌아 어느 작은 집 대문에 이르렀다. 그제야 비로소 작은 예배당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정에서 조촐하게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미자립 교회였다.
 

아이들은 낯선 이에게 호기심을 보였다. 멀리서 수줍게 웃어 보이다 도망가기를 수차례.
 

“예배 전에 과자 먹으러 가지 않을래?”
 

이 한마디에 개구쟁이 녀석들이 일제히 몰려나왔다. 손을 내밀었다. 덥석 잡는다, 꽉. 폴짝폴짝, 가게까지 가는 아이들의 걸음에 생기가 돈다. 그런데 막상 슈퍼에 들어가서는 머뭇거린다.
 

“괜찮아. 아무거나 골라.”
 

철없는 막둥이 녀석이 잽싸게 과자 하나를 집어들더니 하나 더 집어도 되느냐는 얼굴로 나를 본다. 바닐라 맛과 초콜릿 맛 어느 것 하나 놓치기 싫은 폼이다. 누나가 얼른 어깨를 잡고 말리는 시늉을 한다. 그러자 아이는 애써 어깨를 털며 내게서 나오는, 보다 정확하고 현명한 답을 기다린다.
 

“괜찮다니깐. 하나 더 골라도 돼. 먹고 싶은 거 있음 다 골라.”
 

신난 아이는 세상을 다 얻은 표정이다. 들어가지도 않는 주머니에 과자들을 낑낑대며 억지로 쑤셔넣는다. 귀여운 녀석 같으니.
 

예배가 시작될 즈음, 자리를 채운 사람은 고작 열명 남짓. 아이들까지 합한 수다. 하지만 여느 예배 못지않게 하나님에 대한 절절한 믿음을 고백한다. 기타 한 대로 예배가 진행된다. 하지만 같이 기도하고, 같이 찬양 드리는 이 은혜를 감사한다.
 

예배 후 다른 가정집을 방문했다. 사고로 다리를 다쳐 위로가 필요한 곳이었다. 판자촌에 위치한 집의 구조는 처참했다. 지붕이 없었다. 비라도 오는 날엔 어떻게 하는 건지 생각만으로도 우울했다. 좁은 방 하나에 모든 세간이 다 놓여 있었다.
 

오랫동안 씻지 않은 아이들. 집에 손님이 방문했다고 좋아라 한다. 아이 엄마는 누워 있는 남편을 뒤로하고 손님에게 뭐라도 대접하려고 한다. 교회에서 지원을 해 주기는 하지만 교회 사정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그저 서로가 위로한다. 험한 삶을 버텨 나간다. 이들은 동이 트면 길가로 나가 재활용품 수거 등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간다. 전기, 수도 시설도 없어 생활하는데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래도 예배가 있고, 심방이 있다. 오늘은 손님 덕에 우유를 마시는 날. 아이들 표정이 행복하기만 하다.
 

지붕 없는 판잣집에서 살아간다. 이들의 가난은 누구의 책임일까. 가지지 못한 자들의 무능력을 탓해야 할까. 아니다. 교회가 가난한 이들에게 손 내밀지 않고, 가난한 이들 역시 교회 문을 감히 두드리지 못한다면 그건 나 같은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이다. 예수님처럼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늦은 밤, 벌레 우는 소리와 휘영청 밝은 달이 마치 내 어릴 적 시골 같다. 나는 마을을 빠져나오면서 이곳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해 본다.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일터로 내몰리는 아이들. 이 아이들이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꿈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모의 운명을 물려받아야 할 이 조그만 아이들을 구제할 ‘선한 지혜’는 없을까? 예수님의 진리를 배우면서도 내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는 삶이 부끄러워진다.
 

문종성 작가

 

 

 

 

 

 

 

 

 

 

 

 



 

1. 도리도리   2. 좌우로 회전,
3. 앞뒤로 끄덕임, 4. 좌우 옆으로

 

 

 

 

 

 

 

 

 

 

 

 

 

 

 

 

일조량이 줄어들어 비타민 D가 부족해지기 쉬운 겨울, 매일 계란 하나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타민 D 요구량의 90% 이상을 햇빛 노출을 통해 얻는다

하지만 자외선 차단제 사용으로 햇빛만으로는 비타민 D를 전부 충당할 수 없을 땐 음식이나 영양제로 섭취해야 한다. 

 

비타민 D는 한국인이 가장 부족하게 섭취하는 비타민이다. 

국내에서 많이 소비되는 식품 중 비타민 D가 함유된 식품은 5%에 불과하다.

 

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KOFRUM)은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식생활영양과 최용민 연구사팀이 국민건강영양조사를 통해 생산되는 국민건강통계를 참고해 국내 다소비식품을 698종을 선정해 비타민 D 함량을 분석했다고 말했다.

 

국민 다소비 식품 중 비타민 D 검출률이 가장 높은 식품군은 계란류였다. 

분석한 5종의 계란류 중 계란 흰자를 제외한 4종에서 비타민 D가 검출됐다. 

특히 계란 노른자의 비타민 D 함량은 100g당 44.7㎍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계란 노른자의 비타민 D 함량이 100g당 7.8㎍이란 외국 연구결과에 비해 훨씬 높은 농도로 검출된 것이다. 

계란을 낳는 닭의 품종ㆍ사육조건ㆍ사료 차이 등에 의한 결과로 생각된다.

 

계란류 다음으로 비타민 D 검출률이 높은 식품군은 육류였다. 

분석한 85종의 육류 중 오리고기ㆍ돼지고기ㆍ햄ㆍ소시지 등 27종에서 비타민 D가 검출됐다. 

돼지고기의 부위별 비타민 D 함량(100g당)은 0.38~1.25㎍이었다.

 

우유ㆍ유제품류에선 분석한 30종 중 무가당 연유ㆍ고칼슘 우유 등 2종에서만 비타민 D가 검출됐다. 둘 다 비타민 D를 별도로 첨가한 제품이었다. 

 

콩류 제품도 마찬가지였다. 

26종의 콩류 제품을 분석한 결과, 검은콩 두유ㆍ검은콩 검정깨 두유에서만 검출이 됐는데, 이 또한 별도로 비타민 D를 첨가한 제품이다.

그외에 감자류 ㆍ전분류ㆍ당류ㆍ견과류ㆍ종실류ㆍ채소류ㆍ버섯류 ㆍ과일류ㆍ차류ㆍ음료류 등에서는 비타민 D가 일체 검출되지 않았다.

 

비타민 D는 골격의 성장과 유지, 무기질 중 칼슘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영양소다. 

연구팀은 "비타민 D 섭취가 부족하면 골밀도가 낮아지면서 골다공증ㆍ골절 위험이 증가하고, 심부전증ㆍ심장 돌연사의 위험이 높아진다"며 비타민 D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한국인의 비타민 D의 충분섭취량은 10 ㎍/일, 65세 이상은 15 ㎍/일이 권고된다.

 

 

 

 

 

 

 

 

 

 

 

 

약을 먹지 않아도 몸이 나아질 때도 있지만 약을 먹어도 몸이 낫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플라세보와 정반대의 효과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노세보 효과(nocebo effect) 입니다.

 

미국 하바드 의대의 허버트 벤슨 교수는 자기 자신을 절망의 이미지로 받아들여지게 되면, 몸에서는 장애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즉 마음을 부정적으로 먹으면 실제 몸 상태도 안 좋아지는 것이 노세보 효과입니다.

 

2006년 미국 보스톤의 브리그햄 병원 연구팀은 실험에 참가한 대학생들에게 머리 위로 전류가 지나간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어떤 집 위로 고압선이 올라간다고 하면 기분이 좀 나쁘지 않을까요? 

그리고 실험 참가자들에게 그 전류가 두통을 일으킬 수 있다는 말도 했습니다.  일상에서도 고압선 밑을 지나갈 때면 기분이 좀 찝찝하지 않습니까? 실험참가자들도 전류가 두통을 일으킨다는 말이 맞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대학생의 3분의 2이상이 실제로 두통을 호소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전류는 흐르지 않았습니다. 즉 두통을 일으킬 만한 물리적 요인이 없었습니다.  두통이 일어날 것 같다는 심리적 요인만 있었습니다.

마음만으로 두통이 생긴 것입니다. (심리변화행동연구소 소장 이남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