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19,  2019

 

 

 

 

 

 

 

 

 

 

 

 

 

 

 

 

 

 

 

 

 

 

 

 

 

 

 

 

 

 

 

 

 

 

 

 

 

저, 귀여운 햇살 보세요

애교떠는 강아지처럼

나뭇잎 핥고있네요

 

저, 엉뚱한 햇살 보세요

신명난 개구쟁이처럼

강물에서 미끄럼 타고있네요

 

저, 능청스런 햇살 보세요

토닥이며 잠재우는 엄마처럼

아이에게 자장가 불러주네요

 

저, 사랑스런 햇살 보세요

속살거리는 내 친구처럼

내 가슴에 불지르네요  

 

 

 

 

 

 

 

 

 

 

 

 

 

 

 

 

 

 

 

 

 

영국 천주교에서는 조선을 [순교자의 나라]라고 부르며, 흥선대원군은 순교자의 나라가 되게 한 인물이라고 버드 비숍이 쓴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 이라는 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Korea and Her Neighbors, 1897년.. Isabella Bird Bishop, 1831~1904년)

 

조선 말기에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1-1898)은 ‘쇄국정책’으로 나라의 문을 틀어막고 안으로는 동학과 천주교를 탄압하고 박해하여 엄청난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는 천주교 선교사 12명을 잡는다는 명목으로 당시 천주교인 8000명과 그를 돕는 부녀자와 아이들까지 최소 2만명에서 최대 12만명까지 처형한 엄청난 사건입니다.

 

한편 황현의 [매천야록(梅泉野錄)]에 보면 흥선대원군이 천주교도들을 처형할 때 [마을 장정들로 하여금 마을 마당 한복판에 통나무 기둥을 세우고 범인을 묶어매어 꼼짝을 못하게끔 한다. 그러고서 물에 적신 창호지를 범인의 얼굴에 붙인다. 한겹 두겹 붙여나가면 숨을 쉬기가 차츰 차츰 어려워진다. 그렇게 해서 서서히 죽어가게 했다.]고 합니다.

 

 

이때 얼굴에 붙이는 종이를 ‘도모지(塗貌紙)라 했는데, 천주교도들은 아무리 도모지를 얼굴에 붙여도 한 사람도 배교(背敎)를 한다거나 다른 천주교인들이 어디에 있는지 입도 열지 않았다 합니다.

 

아무리 해보아도 안 된다’라는 뜻의 ‘도무지’ 라는 말이 여기에서 유래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단어인데 참으로 가슴 아픈 사연이 담긴 단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실제 삶에서 조금만 힘들어도 [도무지] 않된다는 말을 쉽게 사용합니다. [도무지]라는 말이 [순교를 각오한 결의]에서 나온 말인 것을 알고 나면 그 말을 함부로 사용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정말 ‘목숨을 걸고 해도 안 되는 일’이라면 ‘도무지’가 맞지만, 그 외에 조금 힘든 일을 가지고 ‘도무지’라고 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특별히 크리스천들은 마귀들이 나를 향해 공격할 때 [도무지] 안 넘어간다며 포기하고 달아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도무지]라는 말은 내 입에서 나와야 할 말이 아니라 마귀의 입에서 나와야 할 말입니다. 저 사람은 아무리 찍어도 [도무지] 안넘어온다는 말이 이단의 입에서 나와야 하겠습니다. (장재언) 

 

 

 

 

 

 

 

 

 

 

 

 

 

 

 

 

 


 

"끝없이 달고 사는 링거가 지겨워."

"어쩌라고…."

"나 차라리 죽게 해줘."

"무슨 소리야? 이제 치료비도 마련되었고 좋아질텐데!"
 

눈물이 뺨으로 흘러 환자복이 젖을 정도로 그치지 않는 아내는 그렇게 힘들어했습니다.

 

긴급처방 스테로이드 주사를 달고 5일,

끝이 날만 하니 방광염으로 고열에 오한,

항생제 링거를 또 7일,

그 때문에 속이 울렁거려 먹지 못해 영양제 수액 또 2일,

바늘 뺀 자리가 아물기도 전에

다시 그 자리에 애초 계획된 면역글로브린 주사제 5일,

이것 끝나면 기다리는 표적항암주사제 링거.

 

'한 달 중에 20일을 주사제 링거를 달고 사니

간병하는 나도 그 불편함이 말로 못하겠는데,

하물며 아픈 당사자인 아내가 참고 있는 통증과 증상들은 얼마나 힘들까?...'
 

 

 

지겹도록 달고 살던 링거과 항생제 주사 이 사진에는 하나지만 보통 2개, 3개씩 달기도 했다. 팔의 혈관들이 지겹다고 깊이 꼭꼭 숨어버려 바늘을 찌를 때마다 찾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잠깐만…."

"왜 그래?"

"에휴, 또 꼬리뼈 부분에 살이 갈라져 피가 나네."
 

기저귀를 갈다가 보니 문제가 또 생겼습니다. 실금(失禁)이 되어 흘러내린 소변이 꼬리뼈 부분을 불어터지게 해 살이 갈라졌습니다. 더구나 침대에서 누워서 볼 수밖에 없는 배변이 자꾸 상처 부위를 오염시킵니다. 혼자 거동을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겪는 욕창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심정이 어땠어요?"

"왜 하필 나일까? 속상했지요.

나는 나쁜 짓도 안 했고 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데…."
 

 TV에서 암 환자를 인터뷰하는 부분이 나왔습니다. 폐암 진단을 받고 한쪽 폐를 덜어 낸 수술을 한 사람이 그렇게 말하며 울먹였습니다. 하긴 나도 돌아보니 그런 생각, 그런 비슷한 원망을 숱하게 했었습니다. 어려운 난관에 닥친 많은 사람들이 그럽니다.

 

"왜 하필 나인가? 왜 하필 지금인가? 왜 하필 그 자리에 내가 있었을까? 조금만 빠르거나 조금만 늦었어도 피할 수 있었는데…" 하면서.


 

내가 세상을 살펴보니 빨리 달리는 사람이라고 해서 경주에서 언제나 일등을 하는 것은 아니며 강하다고 해서 언제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해서 언제나 생활비를 많이 버는 것이 아니며 총명한 사람이라고 해서 언제나 부를 얻는 것도 아니고 유능하다고 해서 언제나 높은 지위를 얻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사람에게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사람은 언제 불행한 일을 당할지 그 때를 알지 못한다. 물고기가 그물에 걸리고 새가 덫에 걸리듯이 사람도 갑자기 재앙이 밀어닥치면 거기에 걸리고 만다. -   전도서 9장 현대인의성경]

 

 

"여보, 여보."

"응, 나 여기 있어, 왜 그래?"

"나 배가 많이 아파…."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55분, 아내가 깨우는 바람에 일어났습니다. 병원 용어로 ‘방광 과반사’ 현상으로 손발이 차갑고 식은땀이 배었습니다. 이건 제때 소변을 빼주지 않아서 생기는 증상입니다.

더 지체하면 호흡곤란이 와서 숨을 못 쉬고 졸도까지 한다는 걸 나중에 알았습니다. 얼른 간호사에게 넬라톤용 라텍스 호스와 소독장갑을 받아서 가림막을 치고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나온 소변량은 900밀리, 배가 아플 만도 했습니다.
 

다시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아보지만 잠이 오지 않습니다. 한참 자야할 시간에 깨어 설쳐버렸더니 잠이 안 옵니다.

 

‘난 내일도 모레도 그 다음날도, 그다음의 다음 날도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겠지?' 그런 생각이 몰려오니 숨이 헉! 막힙니다.

마음 한구석에는 내일이 오지 않아도 되는 날이 기다려집니다. 일부러 내가 끝내지 않고 하늘이 허락한 자연스러운 마지막 오늘이...

 

"이게 다 먹은 거야? 왜 벌써 안 먹어?"

"그만 먹을래."

"안돼!, 이렇게 조금 먹고 독한 약 어떻게 견디려고? 속 아파, 조금만 더 먹자, 제발."

 

아내는 들어서 옮기고 씻기고 할 때마다 내가 무거워 고생한다고, 체중을 늘리지 않겠다고 밥 먹는 양을 줄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화를 냈습니다.

그랬더니 아내는 또 다른 작정을 하는 것 같습니다. 밤에 소변 때문에 나를 자주 깨우는 게 미안하다고 물도 줄여 먹기로, 혼자서는 물도 못 마시는 사람이 어떻게 나 모르게 그게 가능하다고... 오죽하면 그런 작정을 할까만.



 


잊혀지지 않는 야경.

새벽에 깨어버린 잠을 다시 자지 못하고 밖을 내다보면 이랬다.

병원 벽 어딘가에 그 야경 장면이 사진으로 찍혀 걸려 있었다.

낮에도 보면서 다시 떠올리는 밤의 기억.
 

 

하루를 마칠 무렵이면 종일 꾹꾹 눌러 담은 무거운 마음들이 터지려고 합니다. 저녁 밥상을 치우고 산책을 나섰습니다.

걷다보니 저녁 후 산책 나온 가족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야기하며 가는 모습이 부럽게 눈에 들어옵니다. 나도 한때는 아내와 저렇게 걸었습니다.

저들도 나중 어느 날엔 이 날들을 그리워하겠지요? 때론 삐걱거리며 때론 팔짱을 끼고 낄낄거리며 힘들다, 배고프다, 춥다 칭얼거리기며 걷던 날들을.
 

'나도 아내와 같이 산책을 하고 싶다. 저 사람들은 지금 자기들이 누리고 있는 행복이 얼마나 귀하고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아까운 것인 줄 알까?'

맘이 아파서 그만 가던 길 돌아서서 병원으로 향하는데 전도서의 말씀들이 생각납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너에게 주신 덧없는 삶을 사는 동안 너는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인생을 즐겨라.

이것은 이 세상에서 네가 수고한 것에 대한 보상이다. 너는 무슨 일을 하든지 최선을 다하라.

네가 앞으로 들어갈 무덤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으며 지식이나 지혜도 없다. - 전도서 9장 9~10절

 

지금 그럴 수 있는 건강이 있는데도 안 하고 사는 사람들이 안타깝습니다. 슬리퍼 질질 끌면 어떻고 무르팍 툭 나온 옷이면 어떻습니까? 사랑할 형편 되는 동반자나 가족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이렇게 홀로 걸으며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는데... 하기는 나도 더 불행한 누구나 더 힘들지 모를 그 어느 날에 비하면 지금을 감사하며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너는 아직 젊을 때, 곧 고난의 날이 오기 전에, 아무 낙이 없다고 말할 때가 되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네가 너무 늙어 해와 달과 별이 보이지 않고 슬픔이 떠날 날이 없을 때 그를 기억하려고 하면 늦을 것이다. (중략)

 

육은 본래의 흙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  전도서 12장1,2,9절 현대인의성경]  

 
 

 

 

 

 

 

 

넉넉해서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고단한 병원생활 중에도 웃음을 주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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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유엔 평화친선대사로 활동하며

자신의 경험담으로 전쟁의 참혹함을 알리고 있고,

1997년부터는 평화 자선단체를 만들어

전쟁고아를 위한 병원과 학교, 집을 지어주는

활동을 하고 있다.

분노 대신, 용서와 평화를 선택한 것이다.

 

그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얼마 전(2019년 2월) 독일 드레스덴에서

인권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미국의 한 출판사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모든 사람들은 인생을 사는 동안

갑자기 화염에 휩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희망을 가질 수 있고,

저 또한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독일 드레스덴에서 인권평화상을 수상했다.

 

 



 

네이팜탄의 폭격에 옷을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뛰쳐나오는 한 소녀의 사진. '전쟁의 공포'라는 사진의 제목처럼, 사진 속 소녀는 '끔찍한 베트남 전쟁의 상징'으로 남았습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죽고 싶을 정도의 큰 고통을 견뎌야 했던 사진 속 소녀 ‘킴 푹(Kim Phuc)’. 그녀는 자신의 처지에 분노하는 대신, 전세계에 희망을 전하는 '평화의 상징'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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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행복한 모습

 

 

손자와 함께 행복한 킴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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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자 닉 우트(오른쪽)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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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소녀의 이름은 판티 킴푹(Kim Phuc). 지금으로부터 47년 전, 그러니까 1972년에 고향인 사이공(현 호찌민)의 작은 마을이 폭격 당했다. 미군은 살상력이 큰 화염 무기 ‘네이팜탄’을 투하했다.

 

 

당시 9살이던 소녀는 발가벗은 채 절규하며 도로를 뛰었다.

“저는 그냥 울기만 했습니다. 저는 9살이었거든요. 아무 것도 알지 못했죠. 그냥 울기만 했습니다.”

 

이 모습이 AP통신 사진기자 닉 우트의 카메라 앵글에 잡혔다. 이 사진 한 장은 베트남 전쟁을 멈추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고, 다음해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사진기자 닉 우트는 소녀를 병원에 데려갔다. 신체 30%에 3도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14개월 동안 17번의 피부 이식 수술 끝에 소녀는 살아남았다.

 

쿡은 1992년 쿠바 유학 도중 남편과 함께 캐나다로 망명했다. 판티 킴푹은 이 사진이 싫었다고 했다. 사진을 볼 때마다 당시의 끔찍했던 고통이 선명하게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울 수 없는 과거라면, 이 사진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유엔 평화친선대사로 활동하며 자신의 경험담으로 전쟁의 참혹함을 알리고 있고, 1997년부터는 평화 자선단체를 만들어 전쟁고아를 위한 병원과 학교, 집을 지어주는 활동을 하고 있다. 분노 대신, 용서와 평화를 선택한 것이다.


 

 

 

 

 

 

 

 

 

 

 

대한민국위기입니다. 경고음이 계속 울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경제적 위기에 대한 우려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곧바로 터져 나오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본격적인 위기상황에 돌입했습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52시간 근로시간제 등으로 압축되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한 번도 역사에 입증된 적이 없는 탁상공론(卓上空論)이라는 소리를 듣더니 드디어 ‘소주성(소득주도성장의 약자)’이 무너지고 있다는 결론입니다. 현 정권은 경제의 상식을 아는지 조차 의심이 됩니다.

소득을 올려 소비를 늘리고, 그래서 생산이 늘어나는 선순환(善順環)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임금이 오르니 일자리와 소득이 줄고 생산마저 줄어드는 악순환(惡循環)이 일어나는 상황입니다.

 

생산(生産)업이 늘어나야 일자리가 늘어날 것인데, 임금수준은 올라가지만, 생산성은 높아지지 않으니 고임금체계를 견디지 못하여 한국 기업들이 생산은 줄이고 해외투자를 급격하게 늘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현실은 경제 미래, 한국 젊은이들의 미래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바람에 베트남 같은 나라가 한국기업의 엄청난 투자에 환호하고 있습니다.  늘어만 가는 한국의 청년실업자들의 귀에 저들의 환호가 어떻게 들려지는지 한국정부는 알기나 하는 지 모르겠습니다.

 

한국 정부명운을 건 북한과의 평화협정이라구요?

 

한국 정부가 경제가 망가지는 한이 있더라도 정부의 명운을 걸고 해결해 보고자 한 것이 북한과의 평화협정 체결이었습니다.

 

마치 지난해 말에는 완전한 평화협정이 체결될 것처럼 확신하고 모든 정책을 거기에 걸고 밀어붙였습니다.

 

[원 세상에!...  ] 이루어질 수도 없는 남북철도연결 공사 착공식을 열기도 하였습니다. 남북 정상회담 3차례, 미북 정상회담 2차례 등 무엇인가 이루어질 것 같은 분위기를 형성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뿐이었습니다. 하노이 회담의 실패는 관계를 원점으로 돌리다시피 하였습니다. 북한에 대한 세계의 제재(制裁) 중단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의 하소연에도 불구하고 모든 나라가 외면하자 [한국 대통령]은 ‘김정은의 대변인’이라는 굴욕적인 언사(言辭)까지 나왔습니다.

 

국정치도 점점 파국을 향해 달려갑니다.

청와대는 [대변인]의 부동산투기 문제가 터져 거의 신뢰를 잃어버렸습니다. 새로 지명되는 장관급 인사들의 부도덕함은 사람들의 마음을 싸늘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서민의 정부라고 하더니 지명되는 장관 헌법재판관 모두 수십억대의 재산가들이라, 서민들이 혀를 내두릅니다.

 

선거법 같은 가장 기본적인 정치적 법안을 합의 없이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을 보면서, 정말 집권당이 100년 장기집권체제를 꾸미려는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게 만듭니다.

 

다시 동물 국회가 살아나고 있습니다. ‘빠루’까지 등장하였습니다. 군사독재시대에 보던 모습이 그대로 연출되고 있습니다. 국회의 시계는 거꾸로 돌기 시작하였습니다. 민의도 따라서 거꾸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위기 해결의 길

 

사정이 이러한데도 한국 정부는 전혀 정책 기조를 바꿀 생각이 없습니다. 경제가 나빠지자 계속 지난 정부 탓을 하다, 이제는 해외여건 탓을 합니다. 자기 탓은 없습니다.

 

일본은 일자리가 넘치는데 사람이 없다고 아우성이라는 소문은 문정부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지??? 그것 역시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가짜뉴스일요?

 

한국의 지금의 형편은 흔히 말하는 대로 위기가 기회가 될 것 같지 않습니다.

다윗이 위기를 만난 때가 있었습니다. 남의 아내를 빼앗아 일어난 위기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위기를 벗어나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 남았습니다.

그는 좋은 영적 참모를 두었습니다. 나단같은 조언자였습니다. 다윗은 나단의 정곡(正鵠)을 찌르는 조언을 받아들였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겸손과 회개, 결국 하나님 앞에 서야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 녹색지구를 지키는 청청 여선교회 레이디 결단식에 참석한 회원들

 

 

“나는

하나님의 창조세계 보전을 위해

언제 어디서나

푸르고 맑은 여선교회를 만들도록

결단합니다”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 교회 여성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 오던 감리회 여선교회전국연합회가 10년 전부터는 하나님의 창조세계 보전을 위해 생태와 환경문제에 집중해 왔다.

 

2009년 시작된 ‘생명살림 한마당’은 산업화를 지나오며 발생하는 광범위한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교회여성으로 어떻게 환경을 개선시킬지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어느덧 10년을 맞은 ‘생명살림 한마당’을 기념하고 녹색지구를 지키려는 의지를 되새기는 다양한 행사가 16일 오전부터 감리회본부앞 희망광장에서 있었다.

 

‘청청(靑淸)’을 키워드로 한 여선교회의 ‘제10회 생명살림 한마당’은 청청(靑淸)포럼 청청(靑淸)예배 및 결단식, 청청(靑淸)공연, 청청(靑淸)생명마당체험 등으로 꾸며졌다. 

 

 

 

 

▲ 결단예배에 앞서 성가수녀원에서 청청포럼이 개최됐다

 

 

먼저 성공회 대성당 내 성가수녀원에서 진행된 청청(靑淸)포럼에 백삼현 여선교회전국연합회 회장과 엄일천 총무, 환경운동가 유미호 센터장이 패널로 참석하여 생명살림한마당 10년을 돌아보고 생명살림 운동을 어떻게 발전 시켜나갈지를 토론했다.

 

엄일천 총무는 “우리는 여전히 대중의 동의와 결단을 구하고 있으며, 실천을 위한 다양한 벙법을 제안하고 시행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듭하고 있다”고 평가하며 생명살림운동이 계속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엄 총무는 지난 10년간 “느리지만 우리는 멈추지 않았고 혁명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했지만 생명살림의 내용도 참여자들의 의식도 조금씩 변화되었음을 발견하여 새힘을 얻었다”고 돌아보았다.

 

기독교환경교육센터의 유미호 센터장은 “생명의 밥상을 차려 남김없이 먹을 수 있도록 밥상을 차렸을 뿐 아니라 1회용이 사용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준비했다”면서 여선교회의 생명살림 운동이 전국연합회 뿐만 아니라 연회, 지방 여선교회까지 운동이 확대되도록 할 것과 전문인력 양성, 지방회별 순회 교육워크숍 개최 등을 통해 “생태감수성을 높이고 교육실천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이들을 양성하여 역량을 강화하고 생명살림의 네트워크로 엮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전했다.

 

 

 

 

▲ 청청예배 및 결단식이 본부앞 희망광장에서 있었다.

 

 

오전 11시, 감리회본부앞 희망광장에서는 청청(靑淸)예배 및 결단식, 청청(靑淸)공연, 청청(靑淸)생명마당체험이 이어졌다.

 

예배에서 말씀을 전한 박인환 목사(선교국 환경선교위원회 위원장)는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를 우려하며 “계속 산림을 파헤치고 논과 밭을 메꾸어 아파트를 짓고 자원을 고갈하여 생태계의 질서가 깨어져 지구가 지속가능하지 못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박인환 목사는 “지금까지 개발하고 소비하던 방식에서 잠시 멈추어야 하며 지속가능한 환경보전을 위한 국가적인 정책과 계획이 필요”하며 “조금 불편한 것을 감수하고 조금 더 수고하며 살 결심을 하기만 하면 환경을 위해 실천할 수 있는 일은 많다”고 강조했다.

 

여선교회는 예배도중 녹색지구를 지키기 위해 청청여선교회, 청청레이디 실천가이드를 천명하는 ‘생명살림 실천 선언’ 견단식을 가졌다. 내용은 △실내행사시 친환경 제품 구입하기 △1회용품 사용금지 △음수대에 다회용 컵 비치 △친환경음식을 만들되 음식잔반 최소화 하기 △행사장내에 분리수거함 설치하기 등을 실천하기로 했다.

 

야외에서 행사를 갖더라도

△쓰레기 발생을 억제할 수 있는 방안 모색

△대중교통이용하기

△개인도시락과 수저 지참하기

△간식 개별포장 지양하고 종이봉투 사용하기

△행사후 자율청소하고 쓰레기 가져가기 등을 실천 가이드로 삼기로 했다.

 

이어 참석자 각자의 이름을 넣어 ‘나는 하나님의 창조세계 보전을 위해 언제 어디서나 푸르고 맑은 여선교회를 만들도록 결단합니다’라고 쓰인 카드를 나무에 매어 달며 녹색지구를 지키는 ‘청청여선교회 청청레이디’ 결단의식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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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지구를 지키려는 여선교회원들은 이번 행사를 기획하면서 행사관련 물품 준비시 재활용이 용이하거나 친환경 제품을 구입해 사용했으며 일회용품이 사용되어지지 않는 행사로 기획됐다. 심지어 행사를 마친후 공동식사에서도 개인 도시락과 수저를 휴대하지 않은 참가자는 식사를 할 수 없었다. 참가자들은 텀블러를 지참하도록 해 1회용 컵은 찾아볼 수 없었고 음수대에는 다회용 컵을 비치해 쓰레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했다.

 

이렇듯 생명살림 의지를 실천하고자 한 여선교회는 젠가로 만드는 플리스틱없는 세상, 헌옷으로 화분걸이 만들기, 녹색문구로 손수건 만들기, 나무 컵받침에 색칠하기 등 생명살림을 실천할 수 있는 체험장을 행사장 곳곳에 마련하고 체험을 완료한 참석자들에게 소정의 상품을 전달하기도 했다.

 

2009년 몽골은총의 숲 지원과 온실가스감축선언, 생명밥상과 빈그릇 실천 등으로 생명살림한마당을 시작한 여선교회는 2010년 생명문화공연, 감리회초록가게가 참여한 환경물품 판매, 2011년 한국교회 환경선언발표, 녹색교회시상 및 친환경바자회, 2012년 창조질서 보전위한 행동강령발표, 자전거 발전기체험, 2013년 광화문 일대 환경캠페인 전개, 2014년 착한소비운동, 연회별 에너지절약 사진전, 2015년 땅의 회복위한 로하스(EM)주기와 생명농업 후원식, 생태숲 체험, 2017년 3인3색 자연스러운 수다, 숲체험, 2018년 일회용품없는 생명살림, 그린룻렛 그린보이스 그린쉐어 등을 실시해 왔다.

 

 

 

 

 

 

▲ 좌로부터 백삼현 회장, 유미호 센터장, 엄일천 총무

 

 

 

 

 

 

▲ 설교를 전하는 박인환 목사(선교국 환경선교위원장)

 

 

▲ 축사 : 오일영 선교국 총무

 

 

 

 

 

 

 

 

 

 

 

 

 

 

 

 

 

 

 

 

 

 

 

청청공연 : 극단 CEU(Clean Up Earth)dml '쓰레기 100 to 0'

 

 

 

 

 

 

 

 

 

 

 

 

 

 

 

 

 

 

 

 

 

 

 

 

 

 

 

 

 

 

 

 

 

 

 

 

 

 

 

 

 

 

 

 

 

 

 

 

 

일명 젊음의 메카, 홍대 길거리의 분위기가 수상하다. 주말이면 밤낮 상관없이 다양한 놀거리로 가득한 이 핫플레이스가 기독문화축제 '수상한거리 페스티벌'로 시끌벅적한 것.

이른 오전부터 저녁까지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찬양의 열기와 다채로운 기독문화가 전해지고 있는 축제의 현장을 찾아가 봤다. 

 

 

 

 ▲18일 오전11시부터 오후9시까지 홍대 '수상한거리' 일대에서 '수상한거리 페스티벌 시즌6'이 열린다. 피카소 카페 앞에는 버스킹공연과 플리마켓이 진행되고 있다. 

 

 

 

자연스레 복음 흐르는 통로 역할 '톡톡'

 

 

"기독교문화를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어서 기대이상으로 재미있어요", "강압적이지 않고 함께 즐기자는 분위기여서 좋아요",  "자연스럽게 복음이 흘러가는 것 같아요"

 

18일 홍대입구·합정역 인근에는 기독문화축제 '수상한거리 페스티벌 시즌6'이 한 창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이 축제의 장에서 찬양과 다채로운 기독문화를 즐기며 이같이 말했다. 

페스티벌이 펼쳐지는 '수상한거리'는 합정역 3번 출구 방향으로 걷다보면 나오는 골목길에 들어서자마자 찾을 수 있다. 길거리 일대에 위치한 피카소 카페 앞에는 게임활동존, 버스킹, 플리마켓 등이 진행되고 있다. 

 

오후 1시 경 버스킹 공연이 펼쳐진 행사장 초입은 일명 버스킹존이다. 크리스천들에게 익숙한 찬양을 밴드 스타일로 재해석한 '버스킹덤'의 연주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공연을 즐기던 김인아(여, 28)씨는 "해외에서 SNS를 통해서만 페스티벌 소식을 알고 있다 한국에 돌아와 처음 행사에 참여했는데, 다양한 찬양과 공연을 즐길 수 있어 좋다"며 "기독교문화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 가치관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 자리가 자랑스럽다. 누구나 기독문화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김씨의 소개로 처음 이번 행사에 참여했다는 자은혜(여, 20대)씨도 "기독문화를 자연스럽게 알리는 이 행사가 좋다"며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 중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이 축제에 관심을 가진다. 기독교에 대한 안 좋은 인식도 사라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도 축제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찬양소리와 시끌벅적한 행사분위기가 방해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근처 편의점 관계자는 "2년 전부터 이 행사를 봐 왔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며 "오히려 이 축제를 가까이 즐길 수 있고, 조용했던 거리 일대가 시끌벅적해져서 좋다"고 말했다.   

 

버스킹존 인근에 위치한 공연장 '스테이라운지' 앞에는 초등학생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가족단위로 온 사람들이 줄 서 있었다. 오후 2시부터 시작되는 문동진 감독의 '드로잉쇼'를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아이와 함께 공연 시작을 기다리던 이수연 집사(여, 40대)는 "아들(9세)이 평소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찬양 부르는 것을 좋아해 아이가 다양한 찬양을 체험할 수 있도록 이번 축제를 찾았다"며 "또 경기도 여주에서 교회 중등부아이들과, 교사들과 다같이 즐기러 왔다. 이 시간을 통해 아이들이 다양한 기독교문화를 배우고 시각을 넓히길 바란다"고 전했다.    

 

공연장 '스테이라운지' 건물 앞 길바닥에 붙여진 포스터를 따라 걷다보면 또 다른 공연장 '무브홀'이 있다. 이 곳에서는 블랙가스펠 그룹 '헤리티지 매스콰이어'의 공연으로 열기가 가득했다. 헤리티지는 'Get on up', '좋은날' 등을 부르며 청년들의 환호를 끌었다. 

 

 

 

 

 ▲합정역 인근 공연장 '무브홀'에서 헤리티지 매스콰이어가 공연하는 모습

 

 

헤리티지와 함께 찬양을 즐긴 홍정민(여, 31)씨는 "평소 헤리티지 팬이었다. SNS를 통해 소식을 듣고 남자친구와 이 페스티벌에 참여했다"며 "헤리티지 무대 이후 시작될 천관웅 목사, 같이걸어가기, 김복유씨의 찬양무대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홍대 인근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다채로운 기독문화축제는 홍대 예배문화운동 수상한거리(백종범 목사)가 주최한 '수상한거리 페스티벌 시즌6'으로 이날 오후 9시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오후 6시에는 '같이걸어가기' 콘서트가 무브홀에서, 오후 7시엔 '너의 목소리가 보여 시즌3' 우승자인 조셉 붓소(최준섭), 카페 피카소에서는 그레이스힐의 '내려놓음'의 진보라가 무대를 선보인다. 오후 8시부터는 '잇쉬가 잇샤에게'로 알려진 CCM싱어송라이트 김복유가 무브홀에서 페스티벌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다.

 

주최측 백종범 대표는 이번 '수상한거리 페스티벌'에 대해 "청소년,청년들에게 다양한 기독교문화를 보여주며 이들이 자신의 달란트를 생각해 보고 비전을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또, 문화가 창조되는 홍대에 기독교문화가 흘러 하나님 나라 회복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  박혜정 기자 

 

 

 

 

 

 

 

 

 

 

 

 

 

제 아내의 친구가 치매에 걸렸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치매를 앓고 있던 중 그 분의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편의 장례식에 치매에 걸린 아내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런데 그 치매에 걸린 친구가 [왜 우리 남편은 안오냐]고 하더랍니다. 장례식의 슬픔보다 그 친구의 치매가 더 가슴을 아프게 했다고 합니다. 그 후 얼마 안되어 결국 그녀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기 남편이 죽어 장례를 치르는데 [내 남편은 왜 장례식에 안 오냐]고 하는 것이 치매입니다. 가장 끔찍한 질병입니다.

 

이런 일화도 있습니다. 어떤 남편이 치매에 걸려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거기에서 다른 치매에 걸린 여인과 사랑에 빠졌다고 합니다. 아내가 가끔 면회를 가면 남편은 진짜 아내는 못 알아보고 ‘새 여자친구’와 알콩달콩 노는 모습을 보고 쓸쓸하게 돌아다고 합니다.

 

암(癌)은 어느 정도 극복이 되어 불치병에서 벗어났는데, 치매는 아직까지는 약이 없는 불치인 것 같습니다. 다른 병도 걸리면 안 되지만 그래도 우리는 열심히 성경암송도 하고 머리를 써서 치매만큼은 절대로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치매(癡呆)는 ‘생각’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비유를 하자면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같은 상태가 치매입니다.

 

갓 태어난 어린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생각이 통제가 안 되기 때문에 ‘치매’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점점 커가면서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우고 연습하고 또는 실수를 하면서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기릅니다. 해야 할 것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안 하는 사리판단을 하면서 생각을 통제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어 어느 순간 ‘생각’을 통제하는 기능이 고장 나거나 느슨해지면 그때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대로 즉흥적인 행동을 하게 됩니다.

 

요즘에는 완전 치매는 아니지만 자신의 생각을 부분적으로 통제하지 못하는 ‘분노장애’ 또는 ‘조울증’같은 병들이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생각은 ‘마음’이라는 그릇에 담습니다. 우리는 마음의 그릇에 아무 생각이나 담지 말고 ‘좋은 생각’만 담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4:23)고 했습니다. 

 

 

 

 

 

 

 

 

 

 

 

 

 

 

 

박용 뉴욕 특파원

 

‘동해물과 백두산이∼.’

9일(현지 시간) 세계 3대 ‘오일허브’로 꼽히는 미국 텍사스만의 석유화학기지인 루이지애나주 레이크찰스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3조6000억 원이 투자된 롯데케미칼루이지애나 석유화학 공장 준공식은 한국계 성악가의 한미 양국 국가 독창으로 시작했다.

 

행사장 천막을 때리는 장대비를 뚫고 전해지는 목소리는 한미 경제동맹의 상징으로 떠오른 공장의 무게감을 전하는 듯 깊고 묵직했다. 

 

7년간 이 사업에 매달린 롯데 관계자들의 표정은 숙연했다. 준공식에 참석한 이병희 롯데그룹 상무는 “애국가를 듣는 순간 울컥했다”고 말했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지금까지 들어본 국가 중 가장 훌륭했다”며 축사를 시작했다. 성악가의 실력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 공장은 한국 기업이 미국 현지에 건설한 최초의 대규모 석유화학 플랜트다. 미국의 풍부한 셰일가스와 한국의 축적된 석유화학 기술이 없었다면 문을 열지 못했다. 롯데는 공장 건설을 위해 20여 개의 한국 기업을 참여시키고 울산 등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한국인 기술자와 한국에서 만든 설비를 들여왔다.

 

롯데는 셰일가스 부산물인 에탄을 200km 떨어진 저장소에서 가스관을 통해 이 공장으로 가져와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 등 석유화학 제품을 만든다.

 

기존의 원유에서 나오는 나프타로 만든 제품 가격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얘기다. 바다를 건너오는 운송비만 없다면 미국산 셰일가스 제품을 당해낼 회사가 많지 않을 것이다.  원가경쟁력이 떨어지는 회사들부터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이 공장의 첫 생산품이 한국 울산공장에 도착했다. 한국도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시작된 ‘셰일가스 혁명’의 본격적인 영향권에 들어간 것이다.

 

미국은 셰일가스 덕분에 세계 최대 산유국으로 도약했고, 에너지 수출국으로 전환하고 있다.

 

‘셰일혁명’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건설한 자유무역과 다자안보 체제에서 발을 빼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신(新)고립주의 노선의 핵심 동력으로 보는 해석도 있다.

 

지정학 및 안보 전문가인 피터 자이한은 저서 ‘셰일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The absent superpower)’에서 “미국이 더는 에너지를 수입하지 않아도 된다면 미국과 세계의 운명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끊어진다. 세계에서 오지랖을 휘날리며 오만 가지 일을 다 처리해 주는 미국이 빠져 버리면 나머지 나라들은 각자도생(各自圖生)해야 한다”며 ‘미국 없는 세계의 무질서’를 예상했다. 

 

그는 한국어판 서문에서는 “한국은 세계 5대 석유 수입국이자 세계 7대 천연가스 수입국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경제적 성공을 달성했다”며 “미국은 분명히 세계에서 손을 뗀다. 한국을 비롯해 모두가 새로 살길을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상황을 단순화한 일방적 주장이라는 비판이 있긴 하지만 돌다리도 두들겨 보는 신중한 정책 담당자들에겐 허투루 흘려들을 수 없는 섬뜩한 경고다.

 

 

 

 

 

롯데케미칼 루이지애나 공장 준공식에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백악관까지 초대하며 애정을 드러냈던 트럼프 대통령은 14일(현지 시간) 루이지애나주 헥베리의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터미널을 직접 찾았다.

 

그는 연단에 서서 “여러분은 미국 에너지 독립의 미래를 구축해 우리나라를 부강하고 더 안전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독립했다. 우리는 다른 이들이 필요하지 않다”고 선언했다. 객석에서 우렁찬 함성과 박수가 나왔다. 박수 소리를 들으며 불현듯 등골이 서늘해졌다.  -  박용 뉴욕 특파원  

 

 

 

 

 

 

 

 

 

 

 

 

 

 

한국 서번트 리더십훈련원(대표 협성대 유성준교수)의 5월 한국서번트리더십학교 강좌가 협성대학교 국제회의실에서 진행되었다.

 

미국 세인폴 신학대학원의 조직신학 교수전영호교수의 ‘왜 기독교인들의 모임을 에클레시아라고 정의하는가(본질, 특징, 사명)’ 주제강연을 양승준 교수(협성대 기독교교육)가 정리하였다.  

 

 

 

 전영호교수

 

 

왜 기독교인들의 모임을 에클레시아라고 정의하는가

 

 

1. 에클레시아(Ecclesia)로서의 교회 

 

 교회를 에클레시아라고 한다. 에클레시아는 사도바울이 사용한 단어이다. 바울은 헬라의 시의회를 의미하는 에클레시아를 교회라는 뜻의 용어로 사용했다. 에클레시아는 데모크라티아(Demokratia)와 연결하여 이해된 단어이다.

 

데모크라티아는 데모스(Demos: 다수, 시민)와 크라티아(Kratia: 지배, 통치)로 이루어진 단어로 민주주의를 뜻하는 데모크라시(Democracy)다. 공동체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공동체의 구성원 스스로 대화와 타협을 통해 의사를 결정하여 실행에 옮기는 것을 의미하는, 현대적 의미의 민주 정치와 같은 맥락이다.

 

에클레시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지 단어의 합성어 조합인 "~로부터 from”의 뜻을 지닌 전치사 에크(ἐκ)와 "부르다 call summon”의 뜻을 지닌 동사 칼레오(καλέω)를 합쳐 "~로부터 불려나온 사람들” 혹은 "~로부터 부름 받은 사람들”이라고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에클레시아가 신약성서 시대의 실생활에서 어떤 의미로 쓰여 졌는지 탐구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기원전 5-6세기경부터 이미 사용되던 이 단어를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차용하여 "교회”라는 뜻으로 사용하였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이 단어를 차용하기 전 에클레시아는 "시민들의 모임 혹은 총회”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리스 도시국가를 일컫는 폴리스(πόλις)에서 직접민주주의가 시작되었다. 한 도시국가의 시민권자들이 모여서 폴리스의 중대사를 직접 의논하는 자리, 예를 들어 “아테네는 델로스나 스파르타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페르시아의 침입 앞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와 같은 일들을 시민들이 모여서 결정하는 자리가 에클레시아였다.

 

신약성서 사도행전 19장32절, 39절에서 ‘민회(lawful assembly)’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시민들의 총회, 합법적인 집회나 모임을 뜻하는 정치적인 용어이다.

 

다시 말해서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 시절 에클레시아는 아테네의 모든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주제에 대해 듣고 토론하고 법령을 통화시키기 위해 정기적으로 모이는 집회였다.

 

이는 사도 바울 시대에 이르러서도 민주주의의 이상과 시민들의 총회 및 책임감과 같은 특징들을 지닌 채 남아 있었다. 비록 여성과 노예는 소외된 아테네 남자 시민들만의 공적인 모임이었지만(미국 건국자들도 마찬가지) 고대 그리스인들은 에클레시아에 참여함으로써 명예롭고 영광스러운 인간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확신했다.

 

 

 

 

▲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언덕 아래에 있는 아고라 광장은 고대 아테네 민주정치의 상징이다. 아테네 시민은 이곳에서 1년에 40여 차례 민회를 열어 나랏일을 함께 의논하고 결정했다.

 

 

우리가 잘 아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정치적 동물”이라고 말한다.

 

이 말의 함의는 폴리스, 즉 에클레시아를 통해서만 좋은 삶(good life)을 이룩할 수 있고 에클레시아를 떠나서는 인간다운 삶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다른 단체들이나 관계들은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만, 폴리스(에클레시아)만은 아름답고 좋은 삶을 살기 위해 필요불가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아테네 시민들은 폴리스(에클레시아)에 참석한다는 것보다“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음을 중시했다.

 

단순히 행사와 모임에 참석하는 ‘attend’가 아닌 여러 사람이 같이 하는 일이나 활동, 행사에 끼여서 함께 하는 ‘participate’의 의미를 핵심으로 여겼다. 즉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받았다면 그것을 행사해야만 참다운 인간의 모습을 나타낼 수 있다.

 

참여의 능력은 인간 조건(Human Condition)이며 아름답고 의미 있는 삶은 참여하는 능력을 발휘하는 가운데,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행위에서 추구하고 발현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에클레시아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과 참여하는 일 자체를 매우 큰 명예와 영광으로 여겼다.

 

그렇다면 왜 초대교회 교인들은 교회를 가리켜 에클레시아라는 말을 사용했는가? 지금의 교회를 에클레시아로 정의하고 표현할 때 그 안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야 하는가?

 

초대교회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그리스도를 기억하며, 성령님과 교통하는 자신들의 모임에 에클레시아를 사용했다. 그 모임은 사적인 모임(private gathering)이 아니라 공적인 모임(public gathering)이었고, 후에 이방인들까지 포함하는 모임으로 확장되었다.

 

아렌트(Hannah Arendt)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정치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을 엄밀히 구분하는 정치철학자이다. 아렌트는 18세기 후반에 시작된 근대사회의 발생으로 공적인 삶과 사적인 삶 사이의 고대적 구분이 붕괴되었다고 주장한다.

 

즉 근대성에 기초한‘사회’는 공적영역의 자유를 새로운 소비중심주의 및 순응주의 문화로 훼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공영역의 위축에 대응해 아렌트는 고대 그리스 폴리스 모델에 관심을 갖고 연구한 학자이다.

 

우리는 ‘공적인(public)’이란 말을 ‘정치적인(political)’이라는 단어와 거의 동의어로 사용한다. 그러나 공적이라는 단어는 정치적이라는 단어와 동의어가 아니다. 정치적이라는 말은 라틴어 ‘poplicus’에서 유래했는데, “사람들에 관련된”이라는 뜻이다.

 

그 단어의 변별적인 의미는 ‘pubes(어른)’라는 라틴어와 관련해서도 드러난다. ‘pubes’는 ‘puberty(사춘기)’의 어원이기도 하다. 원래 공적인 삶은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이행하여 자신을 돌보고, 타인을 돌볼 준비가 된 사람들의 활동무대로 이해되었다.

 

반면에 ‘사적인(private)’이라는 단어가 ‘privare’라는 라틴어에서 왔다는 것, 거기에서 ‘박탈당한(deprived)’이란 단어가 파생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현대인이 그토록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사생활이 고대에서는 성인들이 뭔가를 박탈당한 형태로 여겼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만나고 익숙하고 편안한 장소에 가는 것을 선호한다. 즉 동질성의 공동체(community of sameness)를 추구하며, 편안한 장소(comfort zone)에서 편안한 사람들과 만나려고 한다.

 

똑같은 사람들, 편한 사람들만 계속 만나면서 동일한 경험과 태도와 생각을 주고받는 사생활의 영위처럼 사람을 멍청하게 만드는 일이 어디 있을까?

 

고대에 완전히 사적인 사람을 그리스어로 ‘idiotes’- 바보(idiot)의 어원이다-라고 하면서 어리석은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으로 여겼다. 고대 그리스의 에클레시아를 교회로 표현한 것은 다양한 사람들, 낯선 사람들이 참여의 능력을 발휘해 서로 얼굴을 마주하며(face to face) 자유롭게 섞일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금의 교회가 에클레시아를 살려내려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뭉쳐야 한다. 한 분 하나님을 섬기지만 다양성 있게 섬길 수 있어야 한다.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는 자로서, 자신의 능력을 행사하며 참여해야 한다. 다양한 잠재성들이 아름답게 꽃 피우고 열매로 영그는 것을 축하하며, 참다운 하나님의 창조물로 거듭나야 한다.

 

이것이 고대 그리스 시민들이 에클레시아에 참여하며 얻고자 했던 명예와 영광의 발현, 즉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 참여해 모임과 비전과 책임을 공유하고 실천하며 얻고자 하는 명예와 영광인 것이다.

 

 

 

2. 커뮤니타스(Communitas)와 임뮤니타스(Immunitas) 

 

 

전박사님의 두 번째 강의 주제는 에클레시아(ecclesia)의 심도 있는 앎과 실천을 위해 커뮤니타스(communitas)와 임뮤니타스(immunitas)의 깊은 탐구이다. 커뮤니타스(Communitas)의 사전적 의미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평등한 구조화되지 않은 공동체 또는 공동체 정신에 대한 라틴어 명사이다.

 

커뮤니타스는(Communitas)는 자신을 밖으로 드러내려고 하는 움직임이다. 즉, 자신만의 세계를 벗어나서 자기 안에(inside)만 머무르지 않고 바깥(outside)을 향하는 것이다.

 

임뮤니타스의 사전적 의미는 세금과 공공 서비스의 자유, 면제이다. 그러나 공동체와 결부된 임뮤니타스는 자신, 자아라고 하는 본질이 드러난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다른 이들과 관계성을 갖고 접촉하며 영향을 받는데, 이러한 관계, 접촉, 영향으로부터 왜곡되지 않은 자신을 찾는 것이 임뮤니타스다. 임뮤니타스에서 파생된 ‘면역(immune)’이라는 단어처럼, 인간의 면역체계(immune system)는 자신의 몸에서 이질적인 것들과 자신을 오염시킬 수 있는 것을 거부하며, 오염되지 않은 자신의 온전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올바른 교회 공동체로서 에클레시아는 커뮤니타스와 임뮤니타스의 상호관계를 필요로 한다. 다른 이들을 향하는 커뮤니타스와 다른 이들의 영향으로부터 자신을 잃지 않는 임뮤니타스가 공존해야 한다.

 

만일 커뮤니타스만을 강조한다면, 자아가 상실된 공동체에서 ‘군중 속의 고독’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집단 안에서 인간은 결국 소외감과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타인들의 생각과 관심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며 그 집단에서 격리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외부지향형’ 인간으로의 변화만을 추구한다. 자신의 취향을 포기하고 집단에 녹아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이는 겉으로 드러난 사교성과는 달리 내면적으로 고립감과 불안으로 번민하는 고독한 군중을 만들어 낸다. 최근에는 극한의 “군종 속의 고독”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조차 포기하고 스스로 혼자이려는 사람들(혼족)이 많아지고 있다.

 

반면에 임뮤니타스만을 강조한다면 면역 시스템의 시대, 즉 안과 밖, 친구와 적, 나와 남 사이에 뚜렷한 경계선이 그어진다. 낯선 것은 무조건 막아야 한다는 맹목성이 드러나 아무런 적대적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은 타자도, 아무런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 타자도 이질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제거의 대상이 되고 만다.

 

베네치아 건축대학 교수인 아감벤(Giorgio Agamben)은 로마시대의 호모 사케르(homo sacer)를 현대 정치를 비추어 쓴 "호모 사케르"로 주목받았다.

 

그는 정치가 그 기원으로부터 생정치였다고 주장하면서, 로마시대의 특이한 수인(囚人)이었던 '호모 사케르'란 사회적, 정치적 삶(bios)을 박탈당하고 생물적 삶(zoe) 밖에 가지지 못한 존재였음을 밝힌다.

 

아감벤은 그러한 삶을 "박탈의 삶"이라 하고 생정치는 이 "박탈의 삶"을 표적으로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나폴리 대학 정치철학 교수인 에스포지토(Roberto Esposito)는 ‘면역화 패러다임’을 통해 모호하게 정의된 정치와 삶의 유기적 연계성을 탐구한다.

 

그는 임신-출산의 생물학적 과정을 예로 들어 면역화 패러다임을 설명하는데, 산모의 면역체계는 자기 몸속에 존재하는 태아의 상이한 면역체계에 내성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태아를 유산의 위험에서 막아주기도 한다.

 

이 경우에 면역은 이질적인 것을 가로막는 방어벽이나 무기 같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질적인 것과 상호소통 할 때 사용하는 ‘여과장치’ 같은 것이다.

 

이렇게 보면 산모가 자신의 몸과 태아에게 실천하는 생명의 보호는 태아의 생명에 대한 순수한 긍정과 완벽히 일치하는 것으로서, 산모의 면역은 신생아에게 삶을 선물(munus)의 ‘형태’로 증여하는 것이자 나(산모)와 타자(태아)의 ‘집단적 현존’임과 동시에 ‘사회적 흐름’인 공동체성을 가능케 해주는 원인이다.

 

이런 면역화 패러다임에 입각해 삶(비오스)과 정치(노모스)의 관계를 보면, “양자는 한쪽이 다른 쪽의 세력권에 종속되는 외재적 형태로 덧붙여지거나 병치되기보다는 어떤 단일하고 확고한 전체의 두 가지 구성요소, 서로와의 관계맺음을 근거로 해서만 의미를 갖게 되는 두 가지 구성요소로 나타난다.”

 

요컨대 한 사회의 면역체계는 삶과 권력을 연결시켜주는 관계일 뿐만 아니라 삶이 지니고 있는 보존능력이기도 하다.

 

아감벤과 에스포지토의 쟁점들은 커뮤니타스와 임뮤니타스의 상호관계를 통해 에클레시아를 이루어가는 원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을 확산시킨다. 커뮤니타스는 인간을 어떤 것에 연결할 수 있게 하며, 인간 자신을 초월하도록 한다. 이는 속박이 아니라 자신을 밖으로 내보낼 수 있는 힘을 경험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공동체에 소속하고 연결하면, 자기 존재의 틀(frame)이나 상자(box)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하는 힘을 제공 받는다. 자기 존재의 틀과 박스 안에만 머물러 있으면 발전하거나 초월할 수 없다. 커뮤니타스에 속해야만 자기에게 매몰되지 않고 자기 밖으로 이탈할 수 있다. 반면에 임뮤니타스를 통해 개인의 개성, 독특성, 나의 핵심을 보존하며 공동체와 연결되고 관계를 맺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커뮤니타스와 임뮤니타스의 공존을 실천했다. 예수는 공생애를 통해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며(hanging together) 새로운 공동체인 커뮤니타스를 이루었고, 내면을 돌보고 성찰하며 자기정체성을 확고히 하면서 임뮤니타스를 이루었다.

 

결국 그리스도인들이 이루어야 할 기독교 공동체는 커뮤니타스와 임뮤니타스의 경계선에 위치해 양쪽 극단(pole)에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 임뮤니타스에만 가까우면 자신만 존재하고, 커뮤니타스에만 가까우면 자신을 잃게 된다. 진정한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개인의 강한 정체성과 더불어 공동체에 연합하기 위해 밖으로 향하는, 둘 사이의 긴장은 매우 중요하다.

 

 

 

3. 에클레시아(ecclesia)와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 

 

 

다양성(diversity)은 연합(unity)과 상관관계가 있어야 한다. 다양성이 공동체에서 연결될 수 있는 상황, 환경, 조건들이 있어야만 연합할 수 있고 의미(meaning)를 만들 수 있다.

 

많은 학자들의 연구에서 발견되는 것은 “함께 연결되어 있을 때 의미가 발견된다(meaning appears when things are hanging together)”는 것이다.

 

예를 들어, 퍼즐 맞추기(jigsaw puzzle)에서 퍼즐 판과 퍼즐 조각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어야만 퍼즐 맞추기가 가능하다. 퍼즐 조각(fragment)이 따로 놀거나, 맞출 수 없는 퍼즐 판은 의미가 없다.

 

커뮤니타스는 자신을 내보내려고 하는 것으로, 자기 자신을 초월해서 자기 안에(inside)만 머무르지 않고 밖으로(outside) 연결하도록 하는 관계 맺기이며, 임뮤니타스는 밖의(outside) 것들이 자기 안으로(inside) 들어오지 않도록 막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역동적으로 관계하고 공존해야만 참다운 관계를 누리면서 살 수 있고, 올바른 상호관계를 가질 수 있다.

 

구체적으로, 교회가 생존하고 존립하고 활성화되려면, 서번트 리더십을 통해 공동체 밖에 있는 개인과 연결시키는 섬김(serving)이 있어야 한다. 안에서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밖에 것들과 연결하는 것이다.

 

그러나 밖에 것들에 연결시키기만 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밖으로 나가(reach out) 관계 맺기(relationship)를 해야 하지만, 관계 맺기에서 거리를 두는, 자신의 면역체계를 유지하는 임뮤니타스가 필요하다. 내가 밖에 것과 연결되기만 하면 나 자신이 흡수되어 나를 잃게 되고 만다.

 

섬김을 실천할 때 너무 타인들에 귀착되면 감염되어 탈진(born-out)할 수 있다. 이러한 섬김은 내가 비어(empty) 버리게만 되는 위험한 일이다. 나를 버리고 내려놓는(letting go)를 지혜롭게 잘하기 위해서는 내가 생각 하는 것보다 더 굳건한 핵심이 내 안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나의 강한 정체성과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커뮤니타스(communitas)와 임뮤니타스(immunitas)를 통해 공적인 세계의 질서(koinos kosmos)와 사적인 세계의 질서(idios kosmos)가 병행되어야 한다. 우리의 삶이 공적 생활에서 다른 사람들을 섬기며(serve) 의미 있는 연결을 하려면, 내 자신(idios)과 관계성 있는 공적인(koinos) 연결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자신이 고립되지 않으면서 의미를 찾고, 자신이 흡수되지 않고 참여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의미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사적인 세계와 공적인 세계가 함께 연결되어 섬김의 리더십(servant leadership) 발휘되어야 한다.

 

정리하면, 에클레시아는 고대 그리스의 정치, 경제, 사회의 측면과 생활에서 새로운 가치의 집단으로 인정을 받았다. 많은 이들이 무의미한 삶을 살다가 참여와 연합을 이루고, 치리하는 주권을 갖고 가치 있는 멤버가 되는 평등한 모임이었다. 혼자가 아닌 함께, 그리고 에클레시아 안에서 변화(transformation)를 경험했다.

 

초대교회는 자신이 고립되거나 격리된 보이지 않는 존재로서의 개인(individual)이 아닌, 커뮤니타스에 소속되어 참여하고, 가치 있는 일을 함께 하며 변화를 경험하는 개인(personal)이 날마다 더해졌다(행 2:42-47). 그 결과 이방인까지 소속하며 참여할 수 있는 공동체로 확장되었다. 

                                        정리:양승준(협성대학교 기독교교육 초빙교수)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에베소서 4:1) 

 

 

 

 

 

 

 

 

 

 

 

 

 

 

 

 

 

 

 

 

 

'핑퐁'이라는 이름의 개는 반 농 캄 마을의 한 들판에서 땅을 파고 짖기 시작했다.

 

태국 북부에서 출생 직후 10대 엄마에 의해 땅에 묻힌 아기를 개가 구출한 사연이 화제다.

 

'핑퐁'이라는 이름의 개는 반 농 캄 마을의 한 들판에서 땅을 파고 짖기 시작했다.

 

이를 이상히 여긴 주인이 그 장소에 가보니 한 아이의 다리가 땅 밖으로 빠져나와 있었다.

주인은 아기를 구한 뒤 병원에 신고했다. 아기는 임신 사실을 숨기려 했던 15살 엄마가 땅에 묻고 떠난 것이다.

가해자의 부모는 아이를 대신 양육하기로 했다

핑퐁의 주인 우사 니사이카는 핑퐁이 어릴 적 교통사고로 인해 다리 한쪽이 없다고 말했다.  15살 엄마는 살인미수 및 영아유기 혐의로 현재 기소된 상태다.  

 

 

 

 

 

 

 

 

 

 

 

 

 

 

 

 

 

 

 

 

 

 

예, 출애굽기에서 제사장제도를 세울 수밖에 없던 이유는 딱 한가지죠. 창세기에서 벌어진 일 때문에 그렇겠죠.

 

창세기 3장에서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고 원죄라는 죄를 짊어지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과 인간의 거리는 멀어지게 되었고 결국 차단(遮斷)이 되어 버린 것이라고 볼 수가 있는 거죠.

 

그래서 이 하나님 즉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죄된 인간은 절대로 그 앞에 설 수도 없는 존재라는 것 그것은 분명하거든요. 그런 점에서 그 하나님 앞에서 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게 되는 것은 중간자가 필요하게 된 거에요. 중간에서 중재하는 역할 하는 사람, 그래서 모세가 그 역할을 했습니다.

 

이제 모세가 죽음 다음에 당연히 그 중간자 역할을 해줄 사람이 필요한 거죠. 그래서 제사장제도가 성립되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중재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게 되었습니다. 또 인간이 저지른 죄를 그 이스라엘이 저지른 죄를 하나님 앞에서 설 수 있는 백성으로 서게 만들어 가기 위해서 그 죄를 또 사함 받게 해주는 중재자의 역할을 서 있는 것이 바로 제사장들 사명인거죠.

 

하지만 지금 우리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다 성취시키셨거든요. 우리의 죄도 다 해결해 놓으셨고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그런 존재로 다 만들어 놓으셨던 점에서 이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절대로 어떤 중재자도 필요 없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원자로써 또 함께 하시는 성령으로써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길을 걸어가게 만드신 유일한 존재십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은 이제, 저는 뭐라 생각 하냐면 우리가 모두가 다 성도들과 함께 왕 같은 제사장인데 100% 그리스도인이면 목회자든지 아니면 성도든지 간에 모두가 왕 같은 제사장인 것입니다.

 

그런데 목회자위치라는 것은 왕 같은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하면서 가야 되는데 어느 누군가는 먼저 이 역할이 어떤 역할인지 깨달아서 왕 같은 제사장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려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도 그 길로 갈 수 있도록 이끌어 가는 존재가 필요하기 때문에 목회자들이 먼저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서고, 선 다음에 다른 사람들도 새 가족부터 시작해서 새로 들어온 모든 사람들까지 그리고 또 오래된 성도들까지 이끌어서 왕 같은 제사장은 이렇게 사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이끌어가는 그런 역할이라고 봅니다.

 

 

 

 

 

 

 

 

 

 

 

 

 

 

 

 

 

 

 

 

 

 

 

 



 

1. 도리도리   2. 좌우로 회전,
3. 앞뒤로 끄덕임, 4. 좌우 옆으로

 

 

 

 

 

 

 

 

 

 

 

 

 

 

 

 

 

 

 

중년 이후의 건강은 탄탄한 하체가 기본이다. 하체부실하면 당뇨병을 비롯해 성인병에 걸리기 쉽고 노년 낙상사고의 원인이 된다.

 

노인들이 넘어지면 젊은이와 달리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뼈 골절로 장기간 입원하면 가뜩이나 줄어든 근육감소가 빨라지고 폐렴까지 오면 사경을 헤매기 쉽다.

 

젊을 때부터 중노년 건강을 ‘저축’한다는 마음으로 하체단련하는 게 좋다. 대표적인 하체 근력 운동이 바로 스쿼트(Squat)다.

 

스쿼트를 하려면 우선 양발을 어깨너비보다 약간 넓게 벌리고 선다.

이 상태에서 발끝이 10도 정도 바깥으로 향하도록 놓는다. 이 자세를 취해야 다리에 충분한 힘이 가해지면서 근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스쿼트는 다리 양쪽으로 힘을 싣는 동작이라는 점에서 양쪽 다리의 균형이 맞아야 한다. 양쪽 다리의 불균형을 막기 위해서는 한쪽 다리씩 힘을 가하는 운동을 병행하는 것이 좋다.

 

우리 몸은 중년 이후 자연스럽게 근육이 감소한다. 건강한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젊을 때부터 하체 근육을 길러 놓으면 중노년에 요긴하게 쓸 수 있다. 오래 병상에 누워 있더라도 회복 속도가 빠르다.

 

동물성 지방 등 열량 섭취는 갈수록 느는데, 몸에 근육이 없으면 에너지를 쓰는 기능이 떨어진다. 근육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몸에 남는 에너지가 많으면 지방으로 축적돼 비만의 원인이 된다. 혈당을 저장해 쓰고 남은 포도당이 혈액 속을 떠돌면 당뇨병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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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생리학 전문가인 김리나 박사는 발과 종아리 근육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김 박사는 “몸을 지지하는 뿌리 역할을 하면서 추진력의 시초가 되는 곳이 바로 ”이라며 “발 코어 (foot core) 라고 불릴 정도로 우리 몸의 안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위”라고 했다.

 

발과 발목은 울퉁불통한 지면에서도 적응하고 다양한 방향으로 신체활동을 하기 위해 유연해야 한다. 발의 안쪽은 유연하고 바깥 부분은 단단해야 하는데, 견실한 종아리 근육이 원천이다. 발이 건강하면 발목의 움직임도 원활해져 부상의 위험을 덜 수 있다.

 

종아리 근육 강화를 위해 다리 뒤꿈치 들기 테스트 및 운동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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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양손을 벽 혹은 의자에 의지하고 선다. 한 다리는 편안히 접어서 들고 몸은 수직으로 세운 후 뒤꿈치를 들고 내리기를 반복한다. 뒤꿈치를 들 때는 최대로 들며, 뒤꿈치부분이 새끼발가락 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뒤꿈치를 수직으로 똑바로 든다.

 

우선 종아리 근육 테스트를 위해 뒤꿈치 들고 내리기를 25회 반복한다. 견고하고 건강한 발을 갖고 있다면 큰 무리 없이 25회를 할 수 있다. 25회까지 하기 어려운 사람은 종아리 근육(후경골근, 비복근, 가자미근)의 수행력이 감소된 상태이다. 종아리 근육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하루에 10회씩 3세트 반복하면서 꾸준히 늘려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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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쿼트종아리 운동은 비용이 들지 않는다. 집에서 TV를 보면서 쉽게 할 수 있다. 퇴근 후 소파에 파묻혀 있을 게 아니라 자주 일어나 이 운동을 하면 자연스럽게 비만도 예방할 수 있다. 나아가 당뇨병을 비롯한 성인병, 암 예방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