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금씨가 ' 집시의 기도'를 썼다는 걸 모두 몰랐다. 그는 특별했다. 내게 가끔 아프리카나 세계평화 얘기를 해줬다."
그는 고시원 구호방에서 '노숙자라고 병원에서 천대받으면서 죽는 것보다 고시원 에서 깨끗하게 죽고 싶다'는 뜻을 윤씨에게 전했다고 한다.
보라매병원에서 기저귀를 찬 채 누워있는 모습이 윤씨가 마지막으로 본 장금씨였다.
보라매병원은 작년 4월 29일 시립 성인남성 부랑인 시설 은평의 마을에 장씨를 의뢰했다. 장씨는 작년 6월 1일 부천대성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은평의 마을 관계자는 "장금씨는 '무연고 시신'으로 처리돼
벽제화장터로 갔다"고 했다.
가족들에게 내용 증명을 보냈지만 아무 통보도 오지 않았다고 한다. 김 국장은 "4년 전 통화 때 '부산으로 가 아내와 살겠다'고 해 이 생활을 벗어난 줄 알았다" 고 했다. 노숙 시인은 '집시의 기도' 한 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시청각장애인 지원법 제정을 위한 서명캠페인을 알리고 있는
밀알복지재단 홍보대사 배우 강신일 김인권 박시은
“단 사흘만 세상을 볼 수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고 싶나요?”
우리가 잘 아는 헬렌 켈러는 ...
“첫째 날은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볼 것이고,
둘째 날에는 밤이 아침으로 변하는 기적을 볼 것이며,
마지막 셋째 날에는 사람들이 오가는 평범한 거리를 보고 싶습니다. 단언컨대 본다는 것은 가장 큰 축복이다”라고 대답했다.
헬렌 켈러는 두 살도 되기 전에 열병으로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장애를 갖게 됐지만 7살 때 앤 설리번이라고 하는 위대한 스승을 만나 미국 최고의 대학에서 공부하고 평생을 장애인을 위해 헌신한 선구자가 됐다.
시청각장애인 헬렌 켈러는 훌륭한 스승의 교육과 지원이 있었기에 위대한 삶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 사는 시청각장애인들은 “우리는 헬렌 켈러가 될 수 없다”라고 낙담하고 있다.
그들은 왜 그렇게 말하는 것일까.
2017년 한국장애인개발원 통계에 따르면, 한국에서 등록 장애인은 약 250만명으로 이 중 청각장애인은 약 30만명, 시각장애인은 약 25만명에 달한다.
그런데 시청과 청각, 두 종류의 장애를 같이 가지고 있는 시청각장애인 통계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통계가 없는 만큼 이들에 대한 지원정책도 전무한 상황으로,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시청각장애인 손창환 씨는 “오로지 수화통역사의 수화를 촉감으로만 이해해야 한다. 이 같은 촉수화를 익히는 것은 일반 수화보다 시간이 훨씬 많이 걸리고 가까운 이동도 몇 배나 힘들지만 국가의 도움은 거의 없다”면서 “아직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 많은 시청각장애인들을 찾아내는 과정 자체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나사렛대 재활복지대학원장 김종인 교수는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법적 정의조차도 존재하지 않고 정확한 실태조사가 이뤄진 적도 없다”며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고 심지어 삶을 포기하는 실정에 이르게 된다”고 대책 마련을 강조했다.
미국의 경우 이미 1960년대 이른바 ‘헬렌켈러법’이 만들어져 국립센터 등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법에 따라 ‘헬렌켈러 국립센터’가 운영되고 시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과 자립생활을 지원받고 있다.
일본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수화통역사를 집중 양성할 뿐 아니라 시청각장애인들의 자조모임을 독려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그동안 시청각장애인 지원의 근간이 될 수 있는 법 자체가 없다. 다행히 지난 2월 이명수 의원 등 10명이 ‘시청각장애인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돼 현재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법률안에서는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정의를 명시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시청각장애인을 위해 취해야 할 복지시책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도 확보해야 한다.
법률이 제정되면 보건복지부장관은 3년마다 시청각장애인과 가족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해 복지정책 기초자료로 활용해야 한다. 이들에 대한 의소소통과 활동지원사 양성, 지원센터 등의 각종 지원사업이 추진되는 길이 열리게 된다.
하지만 이처럼 중요한 법안이 아직 국회를 통화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법안 통과를 위한 서명캠페인도 전개되고 있다. 법 제정뿐 아니라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인식 확산을 위해서도 여론화 과정이 필요해 보인다.
법률안 제정에 참여해온 밀알복지재단(이사장:홍정길 목사)는 현재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교회 안에서도 시청각장애인을 알리는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복지재단 내에서는 헬렌켈러센터를 운영하며, 우리 사회에서 고립되어 있는 시청각장애인을 발굴하고 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밀알복지재단 홍유미 팀장(헬렌켈러센터)은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고 법적 제도가 하루 속히 만들어질 수 있도록 밀알복지재단은 ‘우리는 헬렌켈러가 될 수 없습니다’는 서명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법안이 만들어져 시청각장애인이 세상에서 당당한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다.
당신은 혹 시청각(視聽覺)장애인을 위해 기도해 본 적이 있나요?
샬롬!
모퉁이돌선교회 주관으로
2019년 9월에 '미주 연합 기도훈련학교'(Austin)를 갖습니다.
캐나다와 미국 각 지역 기도팀 리더들과 멤버들이 함께 모여,
성경적 기도훈련을 받으며 하나님 뜻과 목적에 합당하게
기도하는 법을 배우고, 북한선교의 핵심과 본질을
다시 한번 공유하며 함께 기도하고자 합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분은 신청을 바랍니다. 신청을 받고 있습니다.
1. 강사 : 이삭 목사, 이반석 목사
2. 일정 : 2019년 9월19일(목)- 9월21일(토) 2박3일
(목요일 6:30pm 시작하여 토요일 4:15pm까지의 일정입니다)
3. 장소 : 텍사스주 오스틴
(12101 Pleasant Panorama View Austin, TX 78738)
4. 문의 및 접수 :
이 모두가 무모한 대결입니다. 이 대결에 따라 학위를 주는 것도 아니고 돈을 버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 프로가 시청률이 높은 장수한 프로가
되었습니다.
이유는 한가지 입니다. [도전]에 있습니다. 인간의 본능 가운데는 도전하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창세기의 말씀때문일까요? 토인비는 말했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도전(Challenge)과 응전으로 이루어졌다 라고...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빼앗느니라”(마 11:12, 개역개정)
하나님의 나라는 "믿습니다"라는 입술의 선언으로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며 살아가는 일이 그렇게 만만한 일입니까?
[무모한 도전]에서
개그맨들이 황소와 줄다리기를 하다가 물웅덩이에 빠지고, 전철과 달리기 시합을 하겠다며 되지도 않는 달리기를
하는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한심해 보이기도 하듯이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며 살겠다'고 생각하는 삶의 모습이 무모한 도전 같지 않습니까?
이러한 무모한 도전을 시작해야 할까요?
어쩌면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가 그분을 닮아가는 최고의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창조
세계 속에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며 정복하고 다스리는 일은 단지 자연계와 관계된 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밥을 지어 먹고 설거지를 하고, 아이를 위하여 기저귀를 갈고, 직장에 나가 자동차를 수리하고,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 영화를 보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대학을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모든 일이 이 땅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는 것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교회에
가서 예배하고 교제 나누는 것도 그것이 삶의 일부라는 측면에서 더 특별하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대표적인 방법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상이 악하다는 핑계로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실현시키는 일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타락 이후, 심지어 물로 세상을 심판하신
이후에도 여전히 동일한 명령을 하십니다(창 9:7).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로 우리를 구속하신 후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모든 족속에게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8:18-20).
따라서 우리는
이 세상 어디에서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 성취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의 한계를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한계가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도구가 되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을 송두리째 바꿀 수 없다면 나의 삶의 영역에서 그 일을 이루어내는 그
무모한 도전을
계속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찌 삽질 한 번으로 세상을 뒤엎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목표를 분명히 하고 힘든 호미질 한번 한번을 계속하면 세상은
나의 삶의 언저리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무모한 도전 같지만 하나님 나라를 위한 호미질을 계속해 보십시다. 저 사탄이 찢어지는 눈으로 흘겨 보는 그 앞에서 말입니다.(장재언)
프랑스어를 쓰는 이슬람 국가라니. 쉽게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주인공은 아프리카 서쪽 끝에서 대서양을 품고 있는 나라 세네갈이다.
축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나 한두 번쯤 접해봤을 이 낯설고 신기한 나라에서 묵묵히 복음을 전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깜짝 놀랄 만큼 많은 교회를 세운 것은 아니다. 초대교회의 역사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들과 함께 살며 친구가 되고 조금씩 마음을 연다. 그리고 진심으로 그들을 섬기며 삶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흘려보낸다. 홍요한 선교사(48)의 사역은 오늘도 조용하게, 그러나 꾸준하게 계속되고 있다.
20년 만에 지킨 선교 서원
홍요한 목사가 선교사로 헌신하겠단 마음을 품은 건 혈기 왕성했던 20대 초반이었다. 1994년 한양대에서 열린 선교한국대회, 은혜로 충만했던 그는 선교사로 복음 들고 떠나겠다고 하나님 앞에 서원했다. 하지만 타올랐던 불은 바쁜 일상 앞에 금방 잊혀졌다.
그렇게 선교사로 서원한 지 약 10년이 지났다. 2003년 우연한 기회에 DTS 제자훈련학교에서 교육을 받게 됐고 온누리교회에서 실시하는 선교훈련 JDS도 잊었던 선교 열정에 기름을 부었다. 10년 전 서원할 때의 뜨거움이 다시 되살아나는 듯 했다. 은혜로 가득 찬 빛나는 눈빛으로 아내에게 선교 가자고 말을 꺼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단 한마디였다. “미쳤냐?”
“사실 당시 아내는 둘째를 임신 중이었고 첫째 아이도 어렸었어요. 아내는 집안에서 힘들었는데 저만 밖에 나가서 선교훈련을 받고 열정이 넘쳐서 들떠있었던 거죠. 그때 아내의 반응을 보고 아차 싶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선교의 길은 아닌가보다 하고 생각했죠.”
하지만 하나님의 때는 따로 있었다. 2013년 아내도 JDS 훈련을 받고 선교에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고 전해왔다. 네팔과 터키로 아웃리치를 다니며 선교지를 직접 밟고 돌아오자 흔들렸던 마음은 이내 확신으로 바뀌었다. 부부가 선교에 대한 동일한 마음을 품기까지 꼬박 10년, 선교사로 서원한 이후로는 꼬박 20년이 걸렸다.
가족이 모두 선교사로 떠나기로 마음을 굳혔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가 그 다음 과제였다. 세상은 넓고 복음을 필요로 하는 곳은 너무도 많았다. 홍 선교사는 어떻게 지구 반대편 세네갈까지 가게된 걸까.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어요. 제가 아는 선교사님 한 분이 세네갈로 먼저 가시게 됐고 그 분을 통해서, 또 여러 통로로 세네갈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몰랐을 낯선 나라가 귀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거예요. 그런데 마침 ‘더 멋진 세상’이라는 기독교 NGO가 세네갈에서 함께 사역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해 오더군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땅에 가며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와는 너무 다른 이질적인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탐사를 통해 처음 접한 세네갈은 고향처럼 편하게 느껴졌다. 함께 갔던 가족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더멋진세상’을 통해 께르발라 주민들을 위해 사역하고 있는 홍요한 선교사.
아이들이 미래라는 믿음
세네갈은 한반도와 비슷한 넓이의 영토에 1600만여 명의 인구가 산다. 17~18세기부터 서양 열강들의 침략이 시작됐고 20세기 초부터 본격적인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했지만 여전히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쓴고 왈로프어 등 50여 종족언어를 함께 쓴다. 코트디부아르와 말리, 부르키나파소 등과 함께 불어를 쓰는 이슬람 국가 ‘프랑코포니아’에 속한다.
다만 세네갈의 이슬람은 중동 지역의 정통 이슬람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 아프리카 고유의 토착 신앙과 민족정서가 이슬람과 결합한 모습을 띈다.
남아메리카에서 가톨릭과 토착 샤머니즘이 뒤섞인 형태를 상상하면 이해가 쉽다. 또 이곳에선 ‘마라부’라고 불리는 종교지도자가 마호매트에 버금가는 권위를 가진다.
홍요한 선교사 가족이 세네갈에서 자리 잡은 곳은 본나바 마을. 이곳은 원래 ‘바’라는 성을 가진 일족의 집성촌이었다. 처음엔 고립된 사막마을이었지만 땅이 싸다보니 여기저기서 어려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홍 선교사가 이곳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사역은 다름 아닌 교육이다.
“세네갈은 70년대 우리나라 같은 느낌이 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랑 닮은 면모도 많고요. 그 중에서도 가장 비슷한 모습 중 하나는 뜨거운 교육열입니다. 교육열이 뜨거운 이유도 우리나라와 비슷해요. 국토에 자원이 나지 않기 때문에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는 길은 교육뿐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본나바 께르발라 학교는 원래 ‘갈대학교’라고 불렸다. 제대로 된 건물이 없이 싸리나무로 얼기설기 엮어 만들어 놓은 교실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홍요한 선교사와 ‘더 멋진 세상’이 두산중공업과 한 독지가의 후원으로 학교 건물을 짓자 아이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갈대학교 시절 30명 안팎이었던 학생들은 이제 500명에 육박한다.
홍요한 선교사의 아내 김미현 선교사는 미술을 전공한 경험을 살려 아이들에게 미술과목을 가르친다. 홍요한 선교사도 단기선교팀과 함께 영어를 가르치며 아이들과 접촉하고 있다. 아이들의 마음은 어른들보다는 더 말랑말랑하다.
“어른들에게는 이슬람이 삶이고 문화이고 생활습관이지만 아이들은 그래도 마음이 많이 열려 있어요. 그래서 특히 아이들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집중하며 만나고 있습니다. 예수를 영접한 아이들이 나중에 이 나라를 조금씩 변화시켜 나가길 바라며 기도하고 있어요.”
한 영혼을 바라보는 선교
그래도 세네갈은 이슬람 국가 중에서는 무난히 입국해 비자를 받을 수 있는 편에 속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의 마음까지 쉽게 열리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나라와 민족을 배반하는 것으로까지 취급받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만나 예수님에 대해 전하면 자기들도 예수를 알고 믿는다고 해요. 이슬람에도 예수가 등장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예수가 단순히 선지자 중 한 사람이 아니라 유일한 길이요 진리임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래서 홍요한 선교사는 이들과 친구가 되려한다. 어떻게든 전도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친구인 척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이들과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고 함께 울며 웃을 수 있는 친구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일생을 이웃들과 함께 살면서 조금씩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삶으로 나타내고 싶다는 것.
“여기 사람들도 외부인에 대한 상처와 불신이 많습니다. 가끔씩 구호활동을 하겠다며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돈만 좀 쓸 뿐 금방 떠나버렸거든요. 그래도 저희 가족은 이들과 계속 이웃으로 함께 사니까 신뢰를 얻은 것 같아요. 우리 가족이 기독교인인 것은 마을 주민 모두가 알지만 언제나 친근하게 ‘무슈 홍(미스터 홍) 항상 고맙습니다’라고 말해주세요.”
지금은 NGO인 ‘더 멋진 세상’, 그리고 코이카와 함께 일하며 여러 가지 마을 개발 사업으로 주민들의 신뢰를 비교적 쉽게 얻었지만 홍요한 선교사는 벌써 그 이후를 고민하고 있다.
큰 돈이 투자되는 사업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 없고, 돈이 끊긴다고 해서 복음전파의 사명을 저버릴 수는 없기 때문. 먼 훗날 이곳을 떠날 때 수많은 사업을 벌인 NGO 활동가로 기억되기보다는 단 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더 건지기 위해 땀과 눈물을 쏟은 그리스도인으로 기억됐으면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얼마 전 홍요한 선교사는 세네갈에서 25년 동안 사역하고 은퇴 후 본국으로 돌아가는 브라질 선교사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그 브라질 선교사는 25년의 사역 동안 단 2명의 진정한 제자를 낳았다고 덤덤하게 얘기했다. 누군가에게는 25년이란 세월에 비해 2명이라는 숫자가 초라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세네갈에서 선교사로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이런 삶이다.
“저도 그 삶을 닮고 싶어요. 단 한 영혼을 위해서라도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눈물 흘리는 선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이곳 서부 아프리카는 미개척의 땅이에요. 거리도 멀고 프랑스어와 부족어를 쓰는 낯선 곳이죠. 하지만 여기도 수많은 죽어가는 영혼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눈물이 있는 땅입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잃어버린 한 영혼을 위해 기도하며 좀 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이곳을 위해 기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땅 속에 있던 대나무가 어느 순간 비온 뒤 깜짝 놀랄 만큼 자라듯 놀라운 열매를 맺을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한현구 기자)
최근에 ‘메시아닉 운동’이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있다. 먼저 이 용어와 관련된 내용을 살펴보아야만 하겠다.
메시아닉 쥬(Messianic jew)
메시야닉 젠타일((Messianic Gentiles)
메시아닉 운동(Messianic Movement)
히브리 뿌리 운동(Hebrew Roots Movement)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
대체신학(Replacement Theology)
백투예루살렘(Back to Jerusalem)
이스라엘의 회복the Restoration of Israel)
‘메시아닉 쥬’라는 용어는 ....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이는 유대인들을 일컫는 용어이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는데, 메시아닉 쥬는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을 하지만, 기독교의 삼위일체나 기독론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이들은 안식일, 절기, 음식등 구약의 율법을 모두 지켜야 한다는 율법주의적인 구원관을 갖고 있으므로 기독교의 이신칭의적 구원론과 다르며, 교회론과 종말론에서도 기독교적인 관점과 차이가 많다.
즉 쉽게 설명하자면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한다는 것 외에는 사실 기독교의 신학과 너무나 상이하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메시아닉 쥬에도 몇가지 유형의 구별은 있을 수 있다.
(1) 정통기독교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아 유대인으로서 정통신학을 인정하는 부류
(2) 예수를 삼위일체로 믿지 않는 유대인의 메시야닉 쥬
(3) 극단적세대주의와 신사도운동과 같은 이단적인 교리의 영향을 받은 잘못된 메시야닉 쥬도 포함될 것이다.
그러나 메시아닉 쥬의 순수한 개념은 (2)번을 의미한다.
‘메시야닉 젠타일’은 ...
메시아닉 쥬와 구별하여, 유대주의를 따르는 이방인을 말한다.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으로서 예수를 메시야로 믿는 사람들을 뜻하는 용어로 사용하기도 하며, 혹간은 이 용어가 유대인이 아닌 이방적 기독교인들도 포함하기도 한다.
즉 이들 중에는 몇가지 유형이 존재하는데,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이방인들을 뜻하기도 하고, 유대주의를 따르는 이방인들을 뜻하기도 한다. 또 기독교인들 중에서 유대교의 율법을 따르자고 하는 소위 히브리뿌리운동을 전개하는 자들을 뜻하기도 한다.
후자와 같은 무리들을 ‘메시아닉’이라고 칭하며, 이들이 주장하는 히브리 뿌리 운동을 메시아닉 운동이라고도 부른다.
다시 정리하면 유대인들 중에서 예수를 메시야로 믿는 단체를 ‘메시아닉 쥬’라고 하며, 메시아닉 젠타일은 원래 이방인들 중에서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단체를 말하지만, 이방인들 중에서 유대주의를 지지하는 단체의 의미할 때에도 사용된다.
이 모든 단체를 넓은 의미로 ‘메시아닉’이라는 명칭으로 부르는데, 좁은 의미로서는 기독교인 중에서 유대주의를 지지하는 단체를 ‘메시아닉’이라고 부른다.
메시아닉 쥬는 세대주의와는 다르다. 그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는 것 외에 기본적인 사상을 유대주의로 갖고 있다.
그러나 메시아닉 운동을 주장하는 자들은 히브리 뿌리 운동을 지지하는 동시에 그 신학적인 성향은 세대주의 신학을 지지한다. 그리고 그들은 기독교의 신학을 대체신학이라고 부른다.
세대주의의 가장 중요한 교리는 이스라엘과 교회의 구분이며, 이들의 연관성과 지속성은 단절되어진다.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 그의 왕국을 하나님의 구약 백성에게 제공했으나 그들이 거부하였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메시야를 거절하였기 때문에 왕국은 일단 보류 또는 연기되어 때를 기다리고 있고, 하나님은 전혀 다른 세대, 즉 교회 시대를 시작하셨다는 것이다.
즉 세대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에 신약교회의 시대는 이스라엘과 왕국 사이에 삽입되어 있는 임시적인 시대가 되어진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선민이었던 이스라엘에 해당되는 옛 언약이 폐하여진 것이며 교회를 통하여 새 언약이 다시 세워진 것으로 믿는다.
이스라엘과의 옛 언약은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어김으로서 파하여진 것이며 단절되어진 것이다.
이스라엘과의 옛 언약이 잠시 보류되었거나 그 유효성이 지속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옛 언약은 없어졌고 폐하여졌으며, 신약교회 위에 새 언약이 세워진 것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눈을 뜨고 보아야 할 것이다.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히 8:13)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히 10:9)
물론 이외에도 신약성경은 너무나 명백하게 말하고 있다. 소위 메시아닉 운동을 하는 자들이든 히브리 뿌리 회복운동을 하는 자들이든, 그들이 신약성경을 새 언약으로 믿는 사람이라면 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유대주의와 기독교를 비교하여 새 포도주와 새 가죽부대라고 하셨는지를 이해하여야만 할 것이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하나님나라에 앉게 될 많은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깨달아야만 할 것이다.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8:11-12)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마19:28, 참고: 눅 22:30)
세대주의자들이 보는 대체신학(Replacement Theology)은 하나님이 범죄한 이스라엘을 잠시 보류하고 이방 교회로 대체(Replace)하였다고 보는 것이며, 세대주의나 메시아닉이 일반 기독교의 신학을 지칭하는 용어로서, 히브리 사상의 뿌리가 회복되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세대주의 신학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모두 메시아닉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역으로 메시아닉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세대주의 신학사상을 지지한다고 말할 수 있다.
요즘 회자되는 ‘메시아닉 운동’은 메시아닉 쥬와는 상관없이 하나의 교파 또는 교단과 같은 개념으로 그 세력을 넓히고 있어서 주의가 요구된다.
특히 한국에서 이런 명칭이 유독 성행하기 시작하는데, 이들은 기독교 신학을 유대주의의 뿌리를 잃어버렸고 헬라철학의 오류 위에 세워진 대체신학이라고 비난하며, 토라와 성경에 예언된 진정한 이스라엘의 회복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이스라엘 국가가 2,000년 만에 다시 세워지고, 또한 비밀리에 제3 성전이 추진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스라엘이 회복될 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시 절기를 지키며 성전에서 짐승의 희생제사를 드리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김종철 감독의 영화 회복, 제3의 성전등이 이러한 사상을 근거로 만들어진 영화이며, 김종철 감독은 메시아닉과 세대주의, 신사도운동 인사들과 함께 집회를 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유대주의적인 운동들이 세대주의와 신사도운동에 의하여 기독교에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지하 가정교회에서 시작된 소위 백투예루살렘이라는 운동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주장하는 세대주의 신학이 인터콥, G12등과 같은 선교단체와 신사도운동 교회와 단체들 그리고 온누리교회의 송만석장로가 대표로 있는 KIBI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또한 ‘토라의 회복’이라는 책을 쓴 김주성목사(부천 제자공동체교회)는 교회에 토라회복센터를 설립하고 토라회복과 히브리뿌리 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한국 메시아닉교회 연합이라는 교단을 창설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로버트 하이들러는 그의 저서 ‘메시아닉 교회’에서 초대교회는 유대교적이었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교회사를 부분적으로 왜곡시키는 잘못된 주장이다. 그런데 이 ‘메시아닉 교회’라는 책은 피터와그너의 신학교인 WLI(Wagner Leadership Institute)에서 출판하였다는 사실이 신사도운동과의 관련성을 의미한다.
초대교회 당시에 유대주의로 돌아가려는 성향에 대해서 갈라디아서는 다른 복음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거짓선생이라고 비난하고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스테판 사이저가 쓴 ‘시온의 크리스쳔군사들’(CLC)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추천사 첫머리에 정형남선교사가 쓴 흥미있는 내용이 있다.
“심히 안타깝게도 이 시대에 시온주의를 지지하는 기독교인들, 즉 ‘시온의 크리스천 군사들’이 아주 많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구호들을 외치고 있다.
‘이스라엘의 회복’, ‘예루살렘의 회복’, ‘Back to the Jerusalem’, ‘복음의 서진’, ‘땅끝 예루살렘’, ‘성경예언 성취의 주인공-이스라엘’, ‘성경예언 성취의 장-예루살렘’, ‘성경예언 성취적 사건-이스라엘 건국(1948)’, ‘성경예언 성취적 사건-예루살렘 탈환(1967)’,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무너져라 예루살렘 성전터의 두 이스람 사원’, ‘제3의 성전 재건 임박’, ‘마귀의 계략-예루살렘 분할’, ‘마귀의 계략-수도 예루살렘, 팔레스타인 건국’등이다.
그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 또는 아랍인보다 유대인을 편애하는 가운데 아랍권과 이스람권의 적대세력이 되고 있다. 그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혈과 육의 투쟁집단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그들로 인하여 중동과 세계평화에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그러나 성경예언 성취의 진정한 주인공은 ‘시온의 크리스천 군사들’의 주장과 달리 야곱의 혈통적 후손들인 이스라엘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함을 받은 교회이다.
또한 그 성취의 장도 예루살렘으로 대표되는 가나안 땅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이다. 땅끝은 예루살렘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곳은 그 어디든 땅끝이다. 땅끝은 성경의 원문에 의하면 땅끝(단수)가 아니라 땅끝들(복수)이다.
복음은 서진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동서남북으로 나아간다. 이른바 ‘이스라엘 회복’, 그 주인공은 야곱의 혈통적 후손들이 아니라 아담의 모든 후손들 가운데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함을 받은 교회공동체이다.” (시온의 크리스천군사들, CLC, 6쪽)
이러한 견해는 이필찬 교수도 동일하다. 이필찬 교수는 ‘백투예루살렘 운동 무엇이 문제인가’(새물결플러스) 라는 책에서 세대주의, 메시아닉, 이스라엘의 회복과 신사도운동등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으로 여러 책을 비판하고 있는데,
1) 폴터웨이의 ‘백투예루살렘’
2) 키이스 인트레이더의 ‘그날이 속히 오리라’
3) 로버트 하이들러의 ‘메시아닉 교회: 언약의 뿌리를 찾아서’
4) 대니얼 저스터의 ‘마지막때의 교회와 이스라엘’
5) 루벤 도런의 ‘한 새사람’
6) 송만석 장로의 ‘지금은 예루살렘 시대’
7) 최바울 대표의 ‘백투예루살렘 운동’의 제목을 보아도 그들의 연관성을 알 수 있다.
위에서 언급된 로버트 하이들러, 루벤 도런등은 모두 신사도운동 인사들이다. 루벤 도런은 밥존스, 폴 케인, 마이크 비클과 함께 캔서스예언자그룹의 일원으로 있었다.
키이스 인트레이터도 메시아닉 쥬 지도자로서 KIBI 송만석 장로, 벤자민 오, 마이크 비클등 신사도운동 인사들과 교류를 하고 있으며, 아이합에서 강의를 한다.
대니얼 저스터는 TJCII라는 단체의 대표이다. TJCII는 “제2의 예루살렘 공의회를 향하여”(Toward Jerusalem Council II)라는 약자인데, 예수전도단의 총재인 존 도우슨, 티쿤 연합회 대표인 대니얼 저스터, 바룩 하셈 메시아닉 회당 대표인 마르틴 왈드맨등이 함께 만든 단체로서, 교회 안의 반 유대주의의 견고한 진이 깨어지고, 1세기의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로 회복되어야 한다는 목적을 갖는다. 물론 온누리교회의 KIBI 송만석 장로와 인터콥 최바울도 신사도운동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며 세대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다.
특히 아이합은 세대주의가 주장하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마지막때의 중요한 징조로 주장한다. 또한 신사도운동이 말하는 다윗의 장막의 회복, 백투예루살렘, 한 새사람(One New Man)등은 모두 이스라엘의 회복을 뜻하는 유대주의, 메시아닉과 관련이 있는 사상이다.
스캇할렐이라는 곳이 있다. 소위 아이합(IHOP)이 추구하는 이스라엘 24/7 기도의 집이며, 그곳이 이스라엘의 메시야닉 쥬를 후원하는 대표적인 곳인데, 그곳은 릭 라이딩스가 대표로 있는데, 릭 라이딩은 미국 'IHOP의 'Israel-Mandate 주 강사이다. 이 단체는 온누리교회 송만석장로의 KIBI와 밀접한 교류를 갖고 있다.
2010년 10월 4-7일에 ‘이스라엘 성회’라는 제목으로 집회가 열렸는데, 주요강사가 김상복 목사, 이동원 목사, 하용조 목사였고, 외국의 강사는 예수전도단의 매튜 톨러, 스캇 할렐의 릭 라이딩, 요엘라라고 하는 가톨릭 수녀였다.
그 집회는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집회를 하였는데, 그 집회를 주최한 곳은 IMN(이스라엘사역네트워크)이었으며, 온누리교회 송만석장로의 KIBI, ICM 경배센터, Glory House, 수캇 다비드, 이용희교수의 에스더기도운동, 쿰 선교회, 선두주자 커뮤니케이션, 데이비드 차가 대표로 있는 KAM, 한사랑선교회, 사랑의 멧세지, 김종철 감독의 영화 회복팀, 사도적 기도의 집이라고 하는 AHOP, 대학선교네트워크(CMN), 손종태목사의 Onething Network 등이 참여하였다.
신사도운동과 메시아닉 쥬의 연계적 관련은 모닝스타 미니스트리의 릭조이너, 아이합의 마이트 비클, WLI등 많은 신사도운동 인사들과 단체들에서도 나타난다.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메시아닉 쥬, 메시아닉 운동, 중국의 백투예루살렘을 주장하는 지하교회뿐 아니라 세대주의 교회들까지 포함된 단체들이 신사도운동과 연계하여 기독교 정통신학을 대체신학이라고 부르며, 위협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결코 성경적인 내용이 아니다.
메시아닉이라는 명칭 아래에서 세대주의와 극단적세대주의가 혼합되고, 유대주의와 신사도운동이 혼합되고 있으며, 삼위일체론과 기독론등을 부정하는 이단들과 혼합되어서, 기독교의 정통신학을 대체신학으로 비하하며 위협하고 있으며, 심지어 그들은 2000년 기독교를 배교, 변질된 신학, 적그리스도, 사단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Chapter 1. 전도 & 선교
- Pattern 1. Jesus is ~ 예수님은 ~이십니다!
- Pattern 2. Jesus loves ~ 주님은 ~를 사랑하십니다!
- Pattern 3. Do you believe ~? ~를 믿나요?
- Pattern 4. God wants you to ~ ~를 해보면 어때요?
- Pattern 5. That’ because ~ ~하려고 노력 중 이에요!
Chapter 2. 기쁨 & 감사
- Pattern 6. I am glad ~라니 기뻐요!
- Pattern 7. Thank you for ~ing ~ 해 주셔서 고마워요!
- Pattern 8. I appreciate ~ 정말 감사합니다!
- Pattern 9. It’ nice of you to ~ ~하다니 당신은 멋진 사람!
- Pattern 10. Thanks to ~ ~ 덕분에
Chapter 3. 위로 & 격려
- Pattern 11. Never underestimate ~ ~를 과소평가 하지 말아요!
- Pattern 12. Keep -ing 계속 ~하세요!
- Pattern 13. Even though ~ 비록 ~하지만
- Pattern 14. You never know ~ ~ 일지도 모르잖아요!
- Pattern 15. No matter ~ ~와는 관계없이
Chapter 4. 가르침 & 권면
- Pattern 16. It’ good to ~ ~ 하는 것은 좋아요!
- Pattern 17. Don’ forget to ~ ~ 하는 것을 잊지 말아요!
- Pattern 18. Don’ be afraid of ~ ~ 를 두려워하지 말아요!
- Pattern 19. Make sure to ~ 반드시! (꼭!) ~ 하세요!
- Pattern 20. According to ~ ~ 에 따르면, ~에 의하면,
Chapter 5. 제안 & 조언
- Pattern 21. Feel free to ~ 마음껏 ~ 하세요
- Pattern 22. If I were you ~ 내가 (만약) 당신 이라면,
- Pattern 23. All you need is ~ ~만 하면 되요!
- Pattern 24. I recommend ~ ~을 추천합니다!
- Pattern 25. Why don’ you ~? ~을 하지 그래요?
Chapter 6. 의견 & 소통
- Pattern 26. It’ hard to ~ ~하는 것은 어려워요!
- Pattern 27. I bet ~ 장담 하건대,
- Pattern 28. I used to ~ ~ 하곤 했어요
- Pattern 29. I’e already ~ 이미 ~ 했답니다!
- Pattern 30. I am looking forward to -ing ~ 가 엄청 기대돼요!
Chapter 7. 관심 & 질문
- Pattern 31. I wonder why ~ 왜 ~ 인지 궁금해요!
- Pattern 32. Have you ever p.p ~? ~해본 적 있나요?
- Pattern 33. By the way, 그건 그렇고,
- Pattern 34. How often do you ~? 얼마나 자주 ~하나요?
- Pattern 35. I have a question about ~ ~에 관해 질문이 있어요!
Chapter 8. 도전 & 결단
- Pattern 36. I’ trying to ~ ~하려고 노력 중 이에요!
- Pattern 37. I’ willing to ~ 기꺼이 ~ 하겠어요!
- Pattern 38. Let me ~ 제가 ~ 해 볼게요!
- Pattern 39. I’ going to ~ 저는 ~을 할거에요!
- Pattern 40. I’e decided to ~ ~ 하기로 결단 했어요
- Prayer of Salvation (영접기도)
- The Lord’s Prayer (주 기도문)
- The Apostles’ Creed (사도신경)
- Amazing Grace (놀라운 은총)
- Sunday Worship Service (주일예배)
- Four Spiritual Laws (4영리)
- 탑승 수속 영어
- 회화신앙생활 관련용어
- 성경 주요 인명 지명과 발음공부하기
- 일반 신앙 생활 관련 용어와 발음 공부하기
- 상황별 기도모음영어로 자기 소개 하기
교회사의 탁월한 목회자와 설교자와 신학자치고 소위 ‘책벌레’, ‘독서광’이 아닌 사람이 없었다.
칼빈, 조나단 에드워즈, 스펄젼이나 로이드 존스등의 생애를 살펴보면 이러한 사실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독서는 그들의 영적 성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특징가운데 하나였다. 끊임없는 자기계발을 통해서 신앙성장과 성숙을 이루어 갔던 목회자들은 경건하고 신학적인 독서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독서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독서를 거의 하지 않거나 게을리 하는 목회자치고 성숙한 목회자를 찾아보기는 불가능하다. 부흥시대 때는 목회자들만이 아니라 성도들도 성경과 더불어 신앙서적들을 부지런히 읽고 묵상했던 것을 교회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신앙적으로 영적 거인을 제일 많이 배출했던 17세기 영국 청교도들은 ‘책의 사람들’이라 불리기도 한다.
성경책의 사람들일 뿐만 아니라 경건서적, 신학서적의 사람들이기도 했다. 수많은 신학서적, 경건서적, 설교집들이 간행되어 영국은 책의 나라가 되었고,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열심 있는 독서가들이 되었다.
청교도 시대에 가장 다독가이자 다작가의 한 사람이었던 리챠드 백스터는 그의 유명한 「신앙생활 지침서」속에서 성도들을 위한 독서목록 또는 목회자들을 위한 독서목록을 소개하고 있는데 성도들을 위한 독서목록은 오늘날 목회자들도 감당하기 힘든 분량의 책들이 소개되고 있다.
오늘날 1년에 1권도 신앙서적을 읽지 않는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보면 하늘과 땅의 차이가 난다. 청교도 시대는 바로 이러한 신앙독서의 전통 속에서 거인들의 시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독서에는 단계와 급수가 있다.
독서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실제로 독서의 방식을 잘 모르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무슨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를 몰라서 우왕좌앙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20세기 최대의 독서이론가인 모티머 아들러의 독서법을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독서에는 기본적으로 3단계가 있다.
책읽기 1단계는 책을 빠른 시간에 훝어보고 책의 내용을 미리 파악하는 개관독서법이다.
책읽기 2단계는 책을 씹고 씹어서 완전히 내 것으로 철저하게 소화하는 분석독서법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책읽기 3단계는 같은 주제를 놓고 여러 권의 책을 종합 비교하면서 읽는 종합독서법이다.
이와같이 독서에는 읽어야 하는 책의 종류와 수준에 따라서 적절한 독서법을 구사해야 한다.
목회자의 성숙을 위한 독서에는 3단계의 독서법을 모두 잘 알아야 하고 읽는 책의 종류에 따라 3가지 방법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목회자의 신앙성숙을 위한 독서방식으로서 특별히 다음과 같은 4가지의 독서 지침을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1.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읽어라.
목회자의 신앙적. 신학적 성숙을 위한 독서는 무슨 책을 읽느냐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어떤 방식으로 책을 읽느냐가 중요하다.
신앙성숙을 위한 독서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신앙성숙에 꼭 필요한 중요한 책은 완전히 소화하도록 읽어야 한다는 점이다.
읽고 읽고 또 읽어서 나의 피와 살이 될 때까지 읽고 생각하고 묵상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앙성숙을 위한 독서에 있어서는 많이 읽는 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빨리 읽는다고 속독을 한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정말 신앙에 유익이 되는 책은 종이가 마르고 닳도록 읽어야 한다. 완전히 내용을 흡수할 때까지 무슨 페이지에 무슨 내용이 나오는지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읽어야한다.
많은 책을 적게 읽기보다는 적은 책을 많이 읽어야한다. 많은 책을 대충대충 읽기보다는 한 권의 책을 많이 읽어야한다.
이렇게 한 권 한 권 소화시킨 책들이 평생에 열 권만 있어도 다른 책들을 보지 않아도 될 정도이다.
그 열 권의 책은 신앙생활의 거의 모든 부분에 도움을 주고 영향을 줄 것이다. 만일 30권만 평생에 이렇게 읽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복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준비가 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러한 독서론과 동일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서 아더핑크과 스펄젼의 글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20세기의 훌륭한 성경연구가인 아더 핑크는 후배들에게 보내는 편지가운데 자신의 독서론을 이렇게 피력하고 있다.
“한 두명의 저자에게 보내는 시간을 다른 20-30명의 저자보다 50-60배 더 많이 하라”
또한 역대 목회자가운데 최고의 독서가였던 스펄젼은 자신의 독서론을 이렇게 말한다.
“철저하게 읽으라. 흠뻑 몸에 밸 때까지 그 안에서 찿으라. 읽고 또 읽어 되씹어서 소화해버리라.
바로 여러분의 살이 되고 피가 되게 하라. 좋은 책은 여러 번 독파해서 주를 달고 분석해 놓으라”
실제로 스펄젼은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생애동안 무려 100번 이상 읽었다.
2. 한 사람의 저자를 집중적으로 읽어라
목회자의 성숙을 위한 독서에 있어서 두 번째 중요한 방법은 신앙과 신학에 도움이 되는 탁월한 한 사람을 발견하면 위의 방법으로 그 사람의 책을 전부 다 읽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한 사람의 탁월한 저자라 할찌라도 그의 책 모두가 다 좋은 것은 아니다. 각 분야에는 가장 뛰어난 전문가가 있기 마련이다. 분야별 최고의 책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아주 뛰어난 한 사람의 저자는 그가 다루는 주제마다 그리고 그가 쓴 책마다 그 분야의 가장 뛰어난 내용 일 때가 있다.
가장 뛰어난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곡은 그 곡이 어떤 곡이든지 간에 아주 탁월한 연주가 되는 이치와 마찬가지다.
그런 저자를 발견했을 때는 그 저자가 쓴 모든 책을 빠짐없이 읽는 것이 좋다. 그 저자의 사상을 통채로 이어 받는 것이 좋다.
어떤 영적 스승을 만날 것인가?
그러므로 이와 같은 독서를 통한 개인적인 신앙지도를 받으려고 할 때는 신앙의 스승을 잘 만나야 한다.
신앙의 스승을 잘 택해야 한다. 예술이나 무술이나 기술이나 학문이나 간에 스승의 인격과 실력의 크기만큼 제자가 자라기 마련이다. 스승의 그릇이 너무 작으면 그 스승에게서 배운 것이 전혀 도움이 안된다. 각분야에는 각기 최고의 달인들이 있다.
자기 분야에서 각기 완성의 경지까지 도달한 스승들이 있다. 각분야의 거장밑에서 사사를 받는 것은 그 분야의 거장이 되는 거의 유일한 지름길이자 바른길이다.
음악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악성이라고 한다.
무술에서는 고수라고 한다.
바둑은 입신의 경지라고 한다.
사실 인간의 모든 분야는 역사상 이러한 거장들에 의해서 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져 왔다. 그리고 이러한 거장들이 생길 때마다 그 밑에는 무수한 사람들이 그 거장의 영향력 속에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신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교회사에도 각 시대마다 가끔식 이런 영적인 거인들이 나타났었다. 바로 그러한 신앙의 거장들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지혜로운 영적 거인족인 청교도 선배들
그렇다면 독서를 통해 우리가 평생 배울만한 우리의 평생 스승이 될만한 영적 거인들은 누구인가?
아더핑크는 후배에게 보내는 어느 편지의 한 대목에서 이런 영적 거인들을 이렇게 소개한 적이 있다.
“존 오웬, 토마스 굳윈, 토마스 맨톤이 루터 칼빈보다 2배 더 유익하다”. “조나단 에드워즈, 존 오웬을 읽는데 2년 걸린다. 다른 책들은 보지 말라”
아더핑크가 말하는 이러한 사람들은 모두 청교도라 불리는 사람들이었다.
아더핑크가 소개하는 청교도들을 영적 스승으로 삼아보라. 영적 광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을 위대한 영적 고수들이다. 그들에게 배운 사람은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복음주의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제임스 팩커는 청교도를 40여년 연구한 끝에 청교도들을 둘레가 20-30m요 높이가 거의 100m 가까이 되는 지구상에서 제일 큰 생명체인 레드우드 삼나무가 밀집되어 있는 레드우드 공원에 비유한 적이 있다.
한마디로 20세기의 어리석고 난쟁이인 우리의 모습과 비교해 볼 때 청교도들은 지혜로운 영적 거인족들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교회사의 영적 거인들
17세기의 청교도들과 더불어 다음과 같은 영적 스승들을 소개한다. 이들은 2000여년 교회역사 가운데서 가장 훌륭했던 영적 거인들이다.
이들은 ...
어거스틴(5세기),
칼빈(16세기),
존 오웬(17세기),
조나단 에드워즈(18세기),
스펄젼(19세기),
로이드 존스(20세기) 등이다.
20세기의 영적 복음주의 지도자들
그러나 실제적으로 교회사에 나타난 영적 거인들을 독자들이 당장 접하기가 어렵다면 20세기의 훌륭한 복음주의적 영적 지도자들을 한 사람씩 마스터하는 것도 유익하다고 생각된다.
이와같은 인물로는 로이드 존스, 제임스 패커, 존 스토트, 프란시스 쉐퍼가 있다.
또한 약간의 독특한 신앙색깔을 가지고 있어서 보편적으로 모든 목회자에게 공감되지는 않지만 여러 가지 신앙과 사고의 통찰력을 가져다주는 사람으로서 시 에스 루이스, 자끄 엘룰, 에이든 토저도 있다.
한 번쯤 이들의 문하에 입문해서 배우면 신앙성숙에 크게 도움될만한 인물들이다.
3.독서의 균형을 맞추어라
목회자의 성숙을 위한 독서의 중요한 3번째 방법은 독서시간 배분에 있어서 책의 종류에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람은 자기가 읽는 책의 종류에 따라서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따라서 먼저 신학서적과 경건서적의 독서에 있어서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신학서적만을 읽는 사람은 머리는 활발하게 움직이지만 가슴은 자꾸만 식어지게 된다. 자칫하면 신학공부가 이렇게 될 수 있다.
신학교에 들어갈 때는 불덩이가 되어서 들어갔는데 신학교를 졸업할 때는 숫덩이가 되어서 나온다는 말은 바로 이러한 위험성을 경고하는 말이다.
반대로 신학서적은 읽지 않고 경건서적만 읽는 사람은 가슴은 쉽게 뜨거워질 수 있지만 그 열정은 곧 식어버리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변질되기가 너무 쉽다.
그러므로 신학서적과 경건서적을 읽는 것의 균형이 필요하다. 독서의 균형을 통해서 지성과 영성의 균형을 끊임없이 유지했던 대표적인 중요한 사례로서는 18세기의 조나단 에드워즈와 20세기의 로이드 존스를 들수 있다.
에드워즈는 아주 젊은 시절부터 독서에 있어서 균형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그래서 자신의 독서의 원칙을 하루나 혹은 반나절을 신학공부를 하면 하루나 반나절은 다른 공부를 하는 방식으로 지식의 추구에 있어서도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맞추었다. 우리는 에드워즈의 일기를 통해서 이러한 면을 보게된다.
“나의 참된 관심사에 비추어 볼 때 내가 공부하는 데 있어서 할 수 있는 한 비슷하게 다음과 같은 규칙을 지키는 것이 내게 가장 유익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즉 공부할 때, 하루의 절반 또는 많아도 하루는 다른 분야의 공부를 하고, 그 다음의 하루의 절반 또는 하루는 신학공부를 하는 방식으로 공부를 돌아가면서 균형 있게 하도록 하자(1725년 11월 16일)”.
아마도 조나단 에드워즈의 독서론에서 영향을 받은 듯한 로이드 존스 독서론의 한 대목은 다음과 같다.
“균형있는 독서를 하십시오. 균형이 깨진 독서처럼 거짓된 지식을 낳는 것도 없습니다. 만일 신학서적만 읽는다면 이러한 위험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균형있는 식사를 하듯이 독서에서도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라고 물을 것입니다. 제가 겸손하게 말씀드린다면 저에게 가장 큰 도움을 주었던 것은 신학서적과 전기 읽는 것을 서로 균형 있게 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언제나 그렇게 했습니다. 항상 휴일에 그랬고, 매일같이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특히 휴일 아침에는 신학책을 읽고 밤에는 전기를 읽으려고 노력합니다.
(로이드 존스, 청교도 신앙 p54”
독서의 균형에는 신학서적과 경건서적의 균형만이 아니라 고전과 신간 독서의 균형도 필요하다.
시 에스 루이스는 고전과 신간을 번갈아 읽을 것을 권한다. 적어도 신간3권에 고전 1권의 비율정도로는 고전과 신간읽기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함을 역설하기도 했다.
목회자들의 자기 성숙을 위한 독서 목록에 지금보다 고전을 더많이 올려놓으라고 권하고 싶다.
고전을 통해 신앙선배들의 영적 성숙을 보라. 그리고 우리 시대의 영적 성숙도와 비추어 보라. 그러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훨씬 더 객관적으로 잘 볼 수있다.
그래서 고전읽기와 신간서적 읽기의 균형 또한 신앙성숙을 위한 독서의 중요한 한 방편이라고 제안한다.
4.주제별로 읽어라
마지막으로 특정 주제에 대해서 깊이 알고 싶을 때는 여러 사람의 저자들을 비교 검토해서 읽는 것이 중요하다.
주제별로 공부하고 싶을때는 최대한 구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다 구해서 읽어라. 이것은 어떤 문제를 연구하거나 발표하기 위한 전문독서를 위한 방식이다.
가령 로마서를 강해하려고 한다면 강해설교를 시작하기전 로마서에 관한 책들을 집중적으로 읽는다.
또한 교회에 대한 주제별설교를 하려고 한다면 교회에 관한 모든 관련된 책들을 집중적으로 읽는다.
이렇게 성경의 한 책 혹은 하나의 주제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생길때마다 그 방면의 책들을 집중적으로 읽어가면 전체적인 지식이 체계적으로 정리되게 된다.
강해하거나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성경의 책수가 늘어가면 갈수록, 또한 주제가 늘어갈수록 이러한 독서는 곧 자신의 신앙성숙으로 연결되며 자신의 사역과도 직결될 것이다.
평생 독서의 스케쥴을 만들자
목회자의 자기개발을 위한 독서는 신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된다고 믿는다.
신학교 재학중에는 골고루 모든 신학분야의 기초공부를 하느라고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자기의 것으로 소화하기가 쉽지 않다.
어느 분야의 지식도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자기의 신앙과 신학성숙을 위한 것으로 소화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따라서 본격적인 신앙성숙과 목회를 위한 독서는 신학교 문턱을 나서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해야한다.
신학교 졸업은 목회자의 독서의 출발점이 되어야지 종착점이 되어서는 안된다.
목회자의 자기성장을 위한 평생공부는 졸업하면서부터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신학교를 졸업한 이후부터 목회자들은 평생의 자기개발과 성장을 위해서 나름대로 자기에 맞는 평생 독서 계획표를 세우는 것이 좋다.
평생 성숙을 위한 독서 계획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들어가면 좋을 것이다.
첫째, 기본적 신학독서 계획표
둘째, 영적 거인 독서 계획표
세째, 평생 고전(경건필독서, 신학필독서) 독서 계획표
네째, 강해하고 싶은 성경의 주석서, 강해서, 연구서 독서 계획표
다섯째, 강해하고 싶은 성경의 주제별 독서 계획표등을 나름대로 만들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체계적인 독서가 체계적인 성숙의 밑거름이다. 무계획적인 중구난방식의 독서는 신앙과 신학성숙의 부실공사만을 초래한다.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지식은 평생토록 자기 성숙과 목회방향을 잡지못하고 우왕좌왕하게 만드는 근본적 원인이다.
21세기 한국교회의 수준은 목회자의 수준에 달려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리고 목회자의 수준은 목회자의 독서 수준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깊이 음미해 볼 만한 명언이다. 더욱이 독서를 통한 자기계발을 원하는 목회자에게는 깊이 명심할 만한 금언이다.
고즈넉한 어느 한 시골서 5일 장이 서는 날. 이 날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모여들어 물건을 사고팔며, 그 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과 만나 정다운 이야기도 나누며 어떤 물건이 나왔나, 어떤 음식이 나왔을까, 어떤 옷들이 나왔을까, 어떤 놀이를 할까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구경할 수 있는 낭만이 서린 곳.
사람 냄새가 물신 풍겨나는 곳이 바로 시골 장터가 아닌가 싶다.
이 책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시골 장이 서는 날, 금순이 엄마는 떡을 팔기 위해서 새벽부터 일찍 일어나서 장으로 가셨다. 금순이는 엄마를 따라나서려 했지만 데리고 가지 않아 집에 있어야만 했다.
옆집 사는 돌이란 아이는 '금순이는 만날 만날 집만 본대요'라고 놀려댄다. 돌이는 장이 서는 날 어김없이 금순이가 집에 있는 것을 보고 약을 올리고 장에 구경하려 간다. 도저히 참기 힘들어 자리를 박차고 돌이를 따라 나서는 금순이는 장을 구경하려 간다.
장으로 가는 길에 징, 장구, 꽹과리, 소고 같은 것으로 신명나게 풍악을 울리는 풍물패의 모습을 보게 된다. 장에 도착해 선, 여기저기 놓여 있는 음식들, 생활용품들, 옷과 먹고 싶은 과자들,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 등 시끌벅적한 시골 장터 풍경을 구경하게 된다.
시골 장터에서는 금순이는 이것만 구경한 것이 아니다. 줄 위를 걸어 다니며 노래와 춤을 추는 사람을 구경하고, 윷판에선 어른들이 ‘도, 개, 걸, 윷, 모’라는 말을 하며 내기 윷놀이를 하는 모습, 한쪽에서는 엿을 공짜로 얻어먹기 위해 엿치기를 하는 모습,
여러 아이들이 연을 가지고 공터로 가 연날리기를 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어느 덧 구경을 하다 보니 날은 어둑어둑해져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 마을 어귀에서 탈놀이를 해 구경을 하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 비집고 들어가 구경을 하게 되었다. 무시무시한 탈을 쓴 광대들이 무서워 털고 있는데 갑자기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에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금순이.
이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다. 대형 백화점이나 대형 슈퍼마켓으로 사라져 가는 시골 장터를 보존해야만 한다는 것을. 시골 장터는 단지 물건을 사고파는 모습만 갖춰 진 곳이 아니다. 그 속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정과 조상들의 삶, 즉 민족고유의 혼이 녹아 있다.
옛사람들은 닷새마다 돌아오는 장날을 ‘촌놈 생일’이라 불렀듯, 장날이 돌아오면 자신이 생일을 맞은 듯 즐거워했다.
장날 장사꾼들의 구수한 입담, 곡식, 채소, 생선, 옹기, 궁금한 사람들의 소식을 알 수 있던 곳, 엿을 하나라도 얻어먹으려고 엿을 파는 아저씨를 졸졸 따라 다니는 꼬마들의 모습을 구경할 수 있는 곳, 물건 값을 한 푼이라도 더 깎으려고 파는 사람과 실랑이 하는 사람을 구경하고 있자면 사람 사는 삶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라고 느끼게 하는 곳이 닷새에 한번씩 서는 시골 장터가 아닌가 싶다.
지금 이 시대는 대형마켓과 백화점, 인터넷 발달로 주문만 하면 물건이 오는 세상이다 보니 이런 맛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사라져 가는 시골 장터를 이제는 다시 살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 해본다.
온라인 쇼핑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는 요즘, 온라인 쇼핑도 하고 기부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닷컴이 '고객이 사면, 아마존이 기부한다. (You shop. Amazon gives)'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시작한 ‘아마존 스마일’은 비영리단체(교회) 후원 프로젝트이다.
아마존닷컴 대신 아마존스마일 사이트(smile.amazon.com)로 들어가서 제품을 주문하면, 구입 금액의 0.5%가 고객이 지정한 비영리 단체에 후원금으로 기부되는 방식이다.
아마존스마일은 아마존닷컴과 같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사용해 로그인이 가능하며, 동일한 가격, 동일한 품목,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기존 고객이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후원하려고 하는 단체의 영문 이름을 알면 쉽게 검색할 수 있다. 검색창에서 Korean, Church, Children, Homeless 등과 같은 관심 키워드로 찾아 후원 단체를 선택할 수도 있다. 단 후원 단체는 1개만 지정할 수 있다.
후원 받기를 원하는 비영리단체는 아마존 스마일에 미리 등록해야 하며 주변에 꾸준히 알려야 한다.
이왕이면 온라인 쇼핑도 하고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기부도 할 수 있는 방법을 적극 활용해 보자.
8월의 어느 찌는 듯 무더운 여름 날.
나는 장모님, 조남순 전도사님의 하관식을 마치고 돌아와 많이 허탈해 했습니다.
겨우 49세. 내 나이 노년이 된 지금 돌이켜보면 장모님은 차라리 어리고 여린 여인이었습니다.
8월4일이었지요.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서 뇌 종양 수술을 마쳤으나 그대로 눈을
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수술실에 들어 가기 전 나와 나눈 인사말이 세상에 남겨 둔 마지막
말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자네 배고프지 않아?"
너무나 배고픈 시절이었습니다. 죽어 가는 자기 생각은 안 하고 사위 걱정하는
장모님은 그냥 나를 낳은 어머님이셨습니다.
돌아가신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나는 그 분의 모습이 있습니다.
첫째 그 분은
목적을
둔 여인이었습니다.
만주 도문에서 낳은 큰 딸인 제 아내와 둘째 딸을 양 손에 꼭 붙들고
사선(死線)을 넘어 남한으로 피난 오셨습니다. 두 딸이 내 삶의 전부라고 믿었습니다.
세가지 목적을 두셨습니다. 당신이 두 딸의 손을 꼭 붙잡았듯이 주님께서 둘 딸의
손을 꼭 붙잡아 주시기를 갈망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찬송 502장을 즐겨 불렀습니다.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주께서 항상 지키시기로 약속한 말씀 변치않네
하늘의 영광 하늘의 영광 나의 맘속에 차고도 넘쳐
할렐루야를 힘차게 불러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
둘째 그 분은 딸들을 신앙으로 교육(미션스쿨)하는 이화(梨花)
학교에 보내기를 목적했습니다. 두 딸 모두 이화출신이 되었습니다.
세 째 목표는 큰 딸은 목사 부인. 둘 째 딸은 박사 부인을
꿈꾸셨습니다. 그대로 이루셨습니다. 큰 딸은 장목사 부인이 되었고, 둘째 사위는 미국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모교인 서울대학교에서 권위 있는 해양물리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 그 분은
기도의 힘을 아는 여인이었습니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이미 신학을 공부한 후
여전도사님으로 동분서주(東奔西走)한 생활을 보내는 분이셨기 때문에 아침 일찍 집을 나가시곤
했습니다. 잠깐 다시 들릴 일이 있어 대문을 들어섰습니다. 그 때 장모님은 특별한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장모님의 어머님 되시는 지연수 권사님께서 마당에 앉아 배추를 다듬는 중에 칼을
손에 높이 든 채 그대로 눈을 감고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출근하는 딸의 뒤 모습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장모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 혼자 부지런히 뛰는 것이 아니고
어머님의 기도의 힘이 나를 밀어 주고 계신 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고.....
그 분은 늘 기도의 힘을 강조하셨습니다.
세 째 그 분은
안부를
묻는 여인이셨습니다.
누구나 다 안부를 묻는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나
인사하는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진실한 안부, 진실한 인사가 너무나 아쉬운
세상입니다.
제 결혼식에 참석한 전경연 박사(신약학 교수)께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 중 진심으로 축하하는 사람은 몇 명
안될걸."
세상에 물이 말라 가뭄입니까? 눈이 내리지 않아 가뭄입니까?
아닙니다. 마음이 말라 목이 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장모님에게서 진실한 안부를 묻는 삶을 배웠습니다. 입술에
바른 인사가 아닌 혼이 담긴 인사를 배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복(福)받으라"는 인사를 할 때 입술로만 하지
않습니다.
영혼(靈魂)이 잘 되고 범사(凡事)가 잘 되고 강건(康健)하라는
요한 삼서의 말씀으로 축복합니다. 장모님의 영향입니다.
오늘 장모님 세상 떠난 날인데 제 아내가 더 그리워하겠지요. 언젠가
시조시인(時調 詩人)이 된 제 아내가 시조를 지었습니다. 이 시를 다시 읽어 보며 장모님 기일을 보낼까
합니다.
얼굴
세월이 묻어나는
거울 속 얼굴하나
낯익은 모습인데
날보며 웃고있네
멈칫해
다시 또 보니
엄마같은 내 얼굴... (장재언)
우리는 왜
칼뱅의 책을 읽어야 할까요?
칼뱅은 1세대 종교개혁자 루터가 시작한 종교개혁을 완성한 2세대 종교개혁자의 대표로서 칼뱅의 저서를 읽는 것은 곧 개신교의 뿌리를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칼뱅은 개신교 가운데서도 루터파, 영국국교회와 구별되는 개혁파의 대표적인 지도자이므로, 칼뱅의 저서를 읽는 것은 개혁파의 신학과 개혁파 교회 목회의 기초를 놓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칼뱅은 신학자로서 2천 년 교회사를 통틀어 초대 교회의 아우구스티누스, 중세 교회의 토마스 아퀴나스, 현대 교회의 칼 바르트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인물이므로, 칼뱅의 저서를 읽는 것은 보편 교회의 신학을 계승하고 발전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칼뱅은 엄청난 양의 저서들을 남겼습니다.
칼뱅의 저서는 1863-1900년에 편집된 칼뱅 전집(Calvini Opera: CO) 59권에 담긴 내용만 해도 22,000쪽에 이르는 분량입니다.
칼뱅이 이 모든 저서를 30년도 안 되는 목회 기간에, 목회 시기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매주 주일 2번의 설교, 격주로 매일 설교, 매주 또는 격주로 신학강의 3번, 매주 1회 당회, 매주 1회 목회자 성경 연구 모임, 수시로 교인 심방, 종교개혁지도자로서 수많은 방문자와의 면담 등을 지속하면서 썼다는 것을 생각하면 경이롭습니다.
더구나 수많은 대적자로부터 도덕적 반대, 신학적 반대, 정치적 반대를 받으면서 편두통, 각혈, 늑막염과 결핵, 치질, 발열, 담석과 신장결석, 위장병과 장병, 관절염 등 걸어다니는 병원이라고 할 정도로 연약한 육체를 가지고 이런 엄청난 작품을 남겼다는 것은 불가사의합니다.
칼뱅은 다양한 장르의 저서들을 남겼습니다.
첫째, 16세기 판 교의학 또는 조직신학서인 『기독교 강요』입니다. 27세에 초판을 발간한 이래 23년 동안 5판에 걸쳐 증보한 칼뱅의 『기독교 강요』는 교회사 최고, 개신교 최고, 개혁파 최고의 교의학 교과서입니다.
둘째, 성경 주석입니다. 칼뱅은 요한 2, 3서와 요한계시록을 제외한 신약 전체의 신약 주석과 구약 전체의 2/3 정도에 해당되는 구약 주석을 남겼습니다. 칼뱅은 역사적, 문법적, 신학적 측면에서 간결하고 명쾌한 주옥같은 주석을 남긴 ‘주석가의 왕’입니다.
셋째, 설교입니다. 2,300편 정도로 속기된 칼뱅의 설교 가운데 남아 있는 1,500편 이상의 설교로 구성된 설교집은 성경에 기초한 주해설교, 강해설교의 본을 보여 줍니다.
넷째, 다양한 종류의 저서입니다. 칼뱅이 남긴 신학논문, 로마가톨릭, 재세례파 등과의 논쟁서, 신앙고백서와 교리교육서, 교회법 등의 주제와 관련된 수많은 작품은 16세기 종교개혁의 다양한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들입니다.
다섯째, 편지입니다. 평생 8,500통 이상의 편지를 썼을 것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현재 보존되어 있는 3.400통 정도의 편지는 칼뱅의 초상화일 뿐 아니라 일종의 16세기 종교개혁 보고서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칼뱅의 전작을 읽어야 합니다.
칼뱅의 다양한 장르의 글을 통해 우리는...
신학자 칼뱅,
목회자 칼뱅,
주석가 칼뱅,
설교자 칼뱅,
신학교수 칼뱅,
교리교육가 칼뱅,
교회법과 학교법을 제정한 법학자 칼뱅,
종교개혁가 칼뱅,
이단과의 논쟁가 칼뱅,
인문학자 칼뱅 등,
참으로 다양한 모습의 칼뱅을 만나게 됩니다.
위대한 인물을 스승으로 삼기 위해서는 위대한 인물의 위대한 책 모두를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칼뱅의 많은 저서는 칼뱅 당대를 넘어서 그리스도께서 보편 교회에 주신 보물이며 선물입니다.
칼뱅을 바르게 알고, 균형 있게 알고, 총체적으로 알기 위해 우리는 칼뱅의 전작을 읽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전통신]이 이번에 칼벵의 저서 [기독교 강요]를 30회에 걸쳐 요약 연재하게된 것은 여간 기쁜 일이 아닙니다. 끝까지 잘 연재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장재언)
1. 생명의 지혜 - 하나님을 아는 지식 -
16. 믿음 - 감화와 확신 -
2. 성경 - 하나님의 특별한 학교 -
17. 회개 - 옛 사람 죽음, 새 사람 삶 -
3. 말씀과 성령 - 말씀하시는 말씀 -
18. 그리스도인의 삶 - 자기 십자가 삶 -
4. 삼위일체 하나님 - 한 본질 세 위격 -
19. 이신칭의 -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 -
5. 피조물 -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 -
20. 성화 - 그리스도의 중보로 거룩함 -
6. 사람 - 하나님을 예배하는 존재 -
21. 그리스도인의 자유 - 순종의 자유 -
7. 하나님의 섭리 - 하나님의 손 -
22. 기도 - 하나님과의 친밀한 대화 -
8. 원죄, 자유의지 - 하나님의 은총 -
23. 하나님의 예정 - 영원한 작정 -
9. 율법 - 올바른 삶의 규범 -
24. 최후의 부활 - 부활소망 영원한 복 -
10. 복음 - 영생의 언약 -
25. 참 교회 - 그리스도와 연합된 교회 -
11. 중보자 그리스도 - 중보의 필연성-
26. 교회의 직분 - 경건과 사랑 -
12. 그리스도의 사역 - 신성 인성 교통 -
27. 교회의 권세 - 교리 입법 사법 -
13. 구속자 그리스도 - 비하와 승귀 -
28. 성례, 세례 - 은혜의 보이는 표 -
14. 그리스도의 대속 - 하나님의 의 -
29. 성찬 - 성도들의 영적 잔치 -
15. 성령 - 권능, 은밀한 사역 -
30. 국가 - 하나님 섭리가 통치 -
기독교 강요]는 반대 세력들에 의해 쫓기면서 숨어 지내던 3년 동안 만들어진 역사를 간직한 책입니다.
칼빈은 루터가 95개의 반박문을 제기한 후 16년 만인 1533년, 파리대학 학장 니콜라스 콥의 취임 연설의 원고를 초안해 준 일로 인해 살기등등한 반대 세력들에 의해 쫓기는 신세가 됐습니다.
이 일로 칼빈은 바젤과 시골 등지에서 숨어 지내야 했고, 도피생활에서 느낀 최악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최선의 기회로 삼아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집필하는 일에 전념한 끝에 ‘기독교 강요’를 출판하게 됐습니다.
기독교 강요는 세계 출판 사상 최대의 걸작으로 꼽히는 뉴턴의 ‘원리’(Principia)와 칸트의 ‘비판’(Kritik)을 뛰어넘는 고전 중의 고전으로 평가되는 책이기도 합니다.
성경의 본래 의미에 가장 정확하고 충실하게 접근해 있다는 프로테스탄트 개혁파 신학의 기초가 되는 책이기도 합니다.
기독교 신학의 전 영역을 포괄적으로 다룬 기독교 강요의 주제는 사도신경의 순서를 따르고 있습니다.
제1권에서는 ‘성부 하나님’,
제2권에서는 ‘성자 하나님’,
제3권에서는 ‘성령 하나님’,
제4권에서는 ‘교회론, 성례론, 통치론’을 다루고 있으며, 조직신학과 주경신학, 역사신학과 목회신학 전체를 포괄하고 아우르는 종합 신학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7:24-29 -
"24.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26.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27.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28.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29.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사도행전17:24-29)
서언:
생명의 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에서 비롯된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지식의 근본이다.
그러므로 참 경건이 없는 곳에 참 지식은 없다.
1.
오직 하나님의 “손”으로
이끄심을 받은 자만이
하나님을 알고 자기 자신을 안다.
(1) 우리가 가진 거의 모든 지혜, 말하자면 진실하고 건전한 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 초판 이후 마지막 판에 이르기까지 칼빈은 기독교 강요를 교리사에 있어서 가장 명구(名句)라고 할 만한 본 구절로 시작한다.
*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는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구속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다.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께서 부성적인 사랑(fatherly love)을 베푸셔서 천지를 지으셨을 뿐만 아니라 보존하시고 운행하시는 섭리를 포함한다.
구속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인류의 타락 이후 처음 사랑을 버리지 아니하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인류를 향하여 베푸신 긍휼과 자비를 아는 지식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셔서 자신의 기뻐하신 뜻에 따라 우리에게 오셨으므로 우리 모습의 연약함으로 그 분의 사랑을 거두지 아니하신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그 뜻 가운데서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신다. 그러므로 매사에 그러하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 사랑에 있어서도 알파요 오메가가 되신다.
*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함으로부터 비롯된다.
타락 전의 인류는 하나님의 형상을 순수하게 보존함으로써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그 위의 것들을 다스리라는 문화 명령을 받은 대로 수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타락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류는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자유의지를 가질 수 없는 존재로 전락(顚落)하여서 생각하는 것이나 행하는 것이 모두 허망하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류를 그냥 두지 아니하시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구원을 다 이루시고 그 의를 전가하심으로써 인류에게 다시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게 하셨다.
*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은 이렇듯 (1)'원래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사람', (2)'타락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사람', 그리고 (3)'회복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사람'을 아는 지식으로 이루어진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아는 이 세 가지 지식은 동시에 작용해야 온당(穩當)하다. 원래의 형상의 고귀함을 알지 못하고는 타락한 형상의 비참함을 알 수 없다. 이러한 비참함을 깨닫지 않고는 구원으로 회복된 형상의 복됨을 인식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에 관한 이 세 가지의 지식을 동시에 묵상하도록 힘써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에 스스로 이를 수 있는가? 칼빈은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역설한다. 우리가 창조, 타락, 구속에 있어서의 원래의 형상, 타락한 형상, 그리고 회복된 형상으로서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은 오직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 즉 창조주 하나님과 구속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부터만 주어진다.
(2) 사람은 먼저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낮아져서 그 분을 묵상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면밀히 관찰하지 않고서는 결코 자기 자신에 대한 명확한 지식에 이를 수 없다.
* 주님께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바로 바라보게 하는 “유일한 표준”이 되신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에 대해서 실망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알 수가 없다. 현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이나 철학자들은 인성의 고귀함이나 심오함을 내세워 스스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느 경우이든 우리가 올바른 지식을 갖게 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을 앎으로 그 분으로부터 지식을 얻을 때이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행 17:28, 전반).
2.
하나님을 앎으로
그 분을 영화롭게 함이
우리에게 즐거움이 된다.
(1)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이 함께 역사하므로 참 경건이 없는 곳에 참 지식도 없다.
* 참 경건은 하나님을 경외할 뿐만 아니라 그 분의 은혜를 깨달아 그 분의 사랑을 감사하고 흠모하는 것이다.
참 경건은 하나님의 계시를 위로부터 내려 받은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 분과 교제하며 교통하고 위로는 예배를 올려 드리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의 의로 인하여 하나님께 경외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며 예배드리는 성도의 삶이 곧 경건이다.
*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반적인 은총으로서 하나님을 알만한 지식과 종교의 씨앗과 양심을 각각의 영혼에 부여 받았다.
이러한 은혜는 타락한 인류에게도 계속되었으니, 모든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하나님 형상의 불씨들이 남아있다.
그러나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은 이러한 불씨들조차 물을 부어서 꺼뜨리는 삶을 살고 종국에는 영원한 멸망에 든다. 그러나 거듭나서 성령의 고삐에 매인 사람들은 이러한 불씨들에 기름을 부어서 활활 타게 만들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을 마주 보는 영화로운 자리로 나아간다.
(2)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 분께서 계신 것뿐만 아니라 무엇이 그 분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에게 적합하고 마땅한지를 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분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유익이 있는 지를 안다.
*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이 된다.
우리에게 유익하다 함은 우리에게 즐거움과 구원이 된다는 의미이다. -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는 거룩한 지식은 곧 우리에게 유익함이 된다. 우리 인생의 제일 큰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또한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데 있음이 자명할진대(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 1문), 우리의 지식도 참으로 그러하다 할 것이다.
* 오직 하나님께서만 스스로 아시되 우리는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는 바대로 안다.
모든 피조물은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되 오직 사람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받아서 하나님을 알만한 지식을 얻었다. 피조물은 알지 못한다. 사람은 알려짐으로써 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아신다. 우리는 알되, 하나님께서 아신 바 되시므로, 곧 알려짐으로써 안다.
* 피조물의 본래적 특성은 하나님에의 의존성에 있다. 사람도 하나님의 피조물인 바, 하나님께서 아신 바대로 자신을 알게 된다.
다른 모든 피조물들과는 달리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주어짐으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만한 지식이 있다.
우리에게는 피조성(被造性)과 하나님의 형상성(形象性)이 동시에 있다. 우리는 알되, 오직 알려짐으로써 안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신 바 되도록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내어 놓기에 힘써야 한다. 하나님을 알고자 하면서 자신을 내어 놓지 않으면 참 평강이 없어진다.
우리 자신의 연약함과 허물과 죄를 하나님 앞에 내어 놓아서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을 알게 하자.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에 대해서 아신 바 된 그 지식으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알도록
하자.
오직 그 지식만이 절대적이며 유일한 참 지식이 될 것이다.
-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호 6:3). -
* 모든 피조물들은 “눈부신 하나님의 영광의 극장”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의 훈장”으로서, “거울”로서 하나님을 찬미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들 위에 인류를 하나님의 권능과 선하심과 지혜의 표본으로 지으셨다. 인류는 하나님의 영광의 최고의 도구이다. 젖 먹는 어린 아이의 말 없는 웅변은 모든 피조물의 찬미를 압도한다.
결언:
오직 하나님의 섭리의 “손”으로 이끄심을 받은 자만이 하나님을 알고 동시에 자기 자신을 안다.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을 설파한 사도 바울의 가르침은 지식에 있어서조차 진리이다.
순서상으로는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먼저이나, 참 지식을 얻음에 있어서는 구속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먼저이다. 먼저 그 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셨음을 믿음으로써 아는 것이 경건한 지식의 출발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고 화려한 미와 위대한 은사들로 그를 장식하셨다. 그리하여서 영광의 극장의 최고 배우가 되게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헛된 사색을 멈추고 그 분이 하신 일을 목도하며 찬미로 나아가자! 그 분을 찾기 위하여 꼼꼼히 따지기보다 그 분을 더욱 경배하도록 하자!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행 17:27, 후반). (다음호 계속)
1. 도리도리
2. 좌우로 회전,
3. 앞뒤로 끄덕임, 4.
좌우 옆으로
고혈압의 원인은 소금이 아니라 비만?
짠 음식,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소금이 혈압 상승의 주범이라고 모두 믿고 있다. 그런데 소금이 고혈압의 원인이 아니라는 최근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이 2014.9.11일(현지 시간) 보도한 바에 따르면 프랑스 성인 8,67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소금 섭취와 고혈압 사이의 상관관계가 없었다.
연구자들은 소금보다 비만이 고혈압에 가장 큰 영향을 준다고 밝혔다. 반면, 소금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사람에 따라 달랐다.
물론 소금과 고혈압 사이의 연관 관계는 없었지만, 고혈압 환자가 다른 사람에 비해 소금을 많이 먹는 것은 맞았다.
연구자들은 고혈압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음주, 나이, 체중 등 여러 가지가 있다며 이 가운데 체중 증가가 가장 큰 영향을 준다고 밝혔다.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으면 혈압이 낮아졌다.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날로 늘어나는 고혈압 환자를 줄이기 위해 가장 시급한 방법은 체중 증가를 막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혈압의 원인은 소금이 아니라 설탕?
영국 일간 익스프레스는 미국 캔자스 세인트루크 미드 아메리카 심장 연구소(Saint Luke’s Mid America Heart Institute)가 “고혈압을 일으키는 주원인은 소금 속 나트륨이 아닌 설탕”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고 2014.9.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연구진은 세계 각지에서 수집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유의도 검증 분석(analysis of significance levels), 효과크기 분석(analysis of effect-magnitude measures) 등의 메타분석(meta analysis)을 진행한 결과, 고혈압을 일으키는 주된 원인은 소금 속 나트륨이 아닌 설탕의 당 성분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포도당과 과당의 중합분자인 수크로스(sucrose) 즉, 자당(蔗糖) 성분이 뇌 시상하부(hypothalamus, 사이 뇌의 일부로 제3뇌실 벽 배 부분과 제3뇌실 바닥 속에 위치)에 영향을 미쳐 심장박동수를 높이고 고혈압을 유발한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신체 물질대사 체계 유지에 중대한 작용을 하는 인슐린(Insulin) 호르몬 분비에도 영향을 미쳐 당뇨병을 유발시킬 위험도 매우 높은 것으로 함께 조사됐다.
설탕의 당분이 비만 유발 주범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이 연구 역시 미국 캔자스 세인트루크 미드 아메리카 심장 연구소의 주장과 같은 맥락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고혈압의 원인은 소금이 아니라 칼륨 부족때문?
◈ 사이언스지의 보도
미국 오레건주의 포오랜드 의과대학 교수인 레빗드 막 캬론박사를 중심으로 한 연구진이 전 미국 1만3백72명의 식생활과 건강상태를 연구한 결과 고혈압은 식품 속에 포함되어 있는 염분을 과잉 섭취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칼슘 섭취량의 부족 때문에 일어나며 혈압이 높은 사람은 혈압이 정상인 사람에 비해서 19.6%나 칼슘 섭취량이 부족하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자연염의 칼슘은 0.88인데, 정제염은 0.01, 결국 정제염을 먹으면 칼슘 부족 때문에 고혈압에 걸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학자들의 연구는 락락크박사 연구진의 연구 결과와 일치하는 것이다
◈ 뉴스위크지의 보도
뉴욕 코렐대학병원 의학센터 락락크 박사 연구진의 연구에 의하면 미국의 고혈압 환자수는 약 5천여만명인데 이들 모두가 소금을 적게 먹어야 된다는 과학적인 데이터는 없다. 고혈압 환자 중 약 3할 정도의 특수환자는 소금을 적게 먹어야 하나 그외의 약 7할의 일반 환자는 소금을 적게 먹으면 오히려 병세가 악화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짜게 먹는 것 `건강에 해롭지 않다`
건강한 사람에서 식사중 염분 섭취를 줄이는 것이 전반적인 건강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10일 덴마크 코펜하겐대학 연구팀이 `Cochrane Library`지 등에 밝힌 167종의 과거 연구결과들을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염분 섭취를 줄이는 것이 혈압이 정상이거나 높은 사람에서 혈압을 줄이는 반면 심장건강에 해를 입힐 수 있는 일부 호르몬과 다른 성분은 높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결과 종합적으로는 염분 섭취를 줄이는 것이 건강에 이롭다는 근거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염분 섭취를 줄이는 것은 혈압을 낮추는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현재까지는 이 같은 효과가 실제로 전반적인 건강을 개선시키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아 왔다.
소금 너무 적게 먹어도 탈...
음식을 짜게 먹으면 고혈압, 심장질환, 뇌졸중 등의 위험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건강상식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나트륨 섭취량을 지나치게 제한하면 마찬가지로 건강에 해롭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일일 나트륨 섭취량은 3~6g 사이, 소금으로 치면 7.5~15g 사이로 제한하는 것이 사망률과 심장질환 위험률을 낮추는 최적의 수치다.
캐나다 맥마스터대학교 임상역학 및 생물통계학과 앤드류 멘테 교수는 미국 건강정보지 헬스와의 인터뷰에서 “나트륨 섭취량이 지나치게 많은 것도 해롭지만 적은 것도 몸에 좋지 않다”며 “해로움을 최소화할 수 있는 섭취 적정량이 있다”고 말했다.
멘테 교수팀이 주장하는 나트륨 권장량은 심장질환 예방을 위한 가이드라인의 나트륨 하루 권장량인 1.5~2.4g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이 가이드라인의 권장량은 식탁염 0.5 티스푼 정도에 해당하는 양이다.
고염식(高鹽食)이 세균감염을 물리친다?
소금을 너무 많이 섭취하면 건강에 해롭다는 것이 사회적 통념이다. 고염식은 고혈압, 심장질환, 심지어 자가면역질환과 연루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새로운 연구결과에 의하면, 소금이 면역력을 증강시킬 수 있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Cell Metabolism》 최근호에 기고한 논문에서, "마우스의 피부에 고농도의 소금을 투여했더니 세균을 물리쳤으며, 인간의 경우에도 감염부위에 소금이 축적된다"고 보고했다.
"숙주의 방어를 위해 소금 축적이 진화되었다는 아이디어는 매우 흥미롭다. 이 아이디어는 너무 새로워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면역학계에서 이 개념이 통용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해 보인다"고 워싱턴 대학교의 그웬 랜돌프 교수(면역학)는 논평했다. (랜돌프 교수는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았다.)
과학자들은 최근에야, 인간이 다량의 소금을 섭취할 때 피부의 결합조직(connective tissue)이 소금의 저장소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싱겁게 먹는 노인, 인지기능 저하 위험↑
나이 들면서 소금 섭취량이 적으면 인지기능 저하 또는 손상 위험이 커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콜로라도대학 메디컬센터의 크리스텐 노박 교수 연구팀이 지역 노인복지시설에 거주하는 65세 이상 노인 5천435명을 대상으로 평균 4.6년 동안 진행된 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이 같은 사실이 밝혀졌다고 메디컬 익스프레스와 헬스데이 뉴스가 8일 보도했다.
혈중 나트륨 농도가 정상수준 이하인 저나트륨혈증(hyponatremia)은 인지장애 또는 인지기능 저하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노박 교수는 밝혔다.
혈중 나트륨 농도가 120~140mmol/L(리터 당 밀리몰)로 정상수준보다 다소 낮은 노인은 정상수준(141~142mmol/L)인 노인에 비해 인지장애가 나타날 위험이 30%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또 인지기능이 점점 떨어질 가능성도 다른 노인에 비해 37% 높았다. 이밖에 혈중 나트륨 농도가 143~153mmol/L로 정상보다 높은 경우도 점진적 인지기능 저하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나이가 많아지면 염분 섭취량이 다소 줄고 인지기능에 가벼운 변화가 나타나는 것이 공통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염분 섭취량이 확실히 인지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를 확인하려면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노박 교수는 덧붙였다.
전에 발표된 다른 연구결과들을 보면 가벼운 저나트륨혈증은 주의력 결핍, 낙상, 심혈관질환, 조기 사망 위험 상승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연구결과는 미국 신장병학회 임상 저널(Clinical Journal of American Society of Nephrology)에 발표됐다.
Self-Portrait, 1885 Oil on canvas, 65.2 x 54.3 cm
Kimbell Art Museum, Fort Worth, Texas
라이벌이 있다는 건 나쁘지 않다. 프랑스 화가 폴 고갱에게도 라이벌이 있었다. 야코프 메이어르 더한이라는 네덜란드 화가 친구였다.
그림 실력으로는 전혀 맞수가 되지 않았지만 고갱은 그에 대한 패배감을 평생 안고 살았을 뿐 아니라 그의 초상을 야만인의 모습으로 그리곤 했다. 왜 그랬을까?
1891년 원시의 순수미를 찾아 남태평양의 타히티섬으로 떠난 고갱은 1901년 타히티보다 더 외딴섬인 히바오아섬으로 이주해 말년의 걸작들을 남겼다.
고갱이 죽기 1년 전에 그린 이 수수께끼 같은 그림 속에도 야코프의 모습이 등장한다.
화면 가운데 여인은 토호타우아라는 원주민 여성으로 고갱은 그녀를 애니미즘(무생물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 것)의 화신으로 그렸다.
뒤에는 원주민 청년이 부처의 모습으로 앉아 있고, 그 왼쪽에 있는 남자가 바로 야코프이다. 고갱은 친구를 빨간 머리에 뾰족한 턱을 손에 괴고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앞을 응시하고 있는 유대 기독교인으로 묘사했다.
애니미즘을 모든 종교의 기원으로 보았던 당시 유행했던 사상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지만 친구를 욕심 많고 교활한 모습으로 묘사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타히티로 오기 전 고갱은 야코프와 함께 프랑스 바닷가 마을 르풀뒤의 한 여관에 공동 작업실을 차렸다.
야코프는 절대 고갱의 예술적 경쟁 상대가 될 수 없었지만 연애에 있어서는 한 수 위였다. 둘 다 여관 주인 마리 앙리를 좋아했지만 그녀의 선택은 야코프였다.
고갱은 어느 정도 예술적 성취는 이뤘지만 가난했고, 야코프는 네덜란드의 부유한 유대인 사업가 집안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마리가 야코프의 아이를 임신하면서 야코프는 고향으로, 고갱은 타히티섬으로 떠난 뒤 두 친구는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았다.
야코프가 죽은 지 7년 후 그린 그림인데도, 고갱은 여전히 그를 교활하고 욕심 많은 야만인의 모습으로 묘사했다. 예술의 라이벌은 그리움의 대상이지만 사랑의 라이벌은 죽기 전까지도 용서가 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3일본 국회에 휠체어에 기댄 중증 장애인 의원이 도착하자 취재진들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앞서 지난달 21일 치러진 제25회 참의원 선거에서 일본 국회 역사상 최초로 중증 장애인 두 명이 당선됐다.
4몬순의 영향으로 인도 라자스탄주 아지메르에 폭우가 내린 가운데 남성이 폭우로 침수된 도로 위를 밧줄에 의지해 건너고 있다.
5이슬람 율법을 법으로 적용하는인도네시아 아체 주 반다아체에서 미혼 여성이 남성과 가까이 지냈다는 이유로 공개 매질을 당하고 있다.
6스코틀랜드 수도 에든버러의 관광명소인 로열 마일에서 공연가들이 무지개색 우산을 쓰고 공연을 홍보하고 있다
7폴란드 바르샤바 시내에서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바르샤바 봉기 74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가 열린 가운데 행사를 위해 집결한 국민들이 당시 희생자들과 운동가들의 위한 묵념을 하고 있다.
8스위스 베브에서 25년을 주기로 열리는 '포도재배 농장주 축제'가 열린 가운데 축제에 참가한 시민들이 국경일을 축하하고 있다.
1케냐 수도 나이로비 두짓D2호텔이 테러 공격으로 문을 닫은 지 7개월 만에 다시 개장한 가운데 직원들이 하늘로 날아가는 풍선을 보며 환호하고 있다. 앞서 지난 1월 두짓 D2호텔에서 이슬람 무장세력이 동시다발 테러 공격을 가한 후 20여 명이 사망했다.
2파키스탄 카라치에서 가족이 폭우로 불어난 개울을 건너기 위해 손을 잡아주고 있다.
3중국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의장사열대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을 위해 중국을 방문한 이반 두케 콜롬비아 대통령의 환영식을 준비하고 있다.
4미국 캘리포니아 주 몬테레이 만에서 혹등고래가 바다사자를 집어삼키는 모습이 포착됐다. 출처: Chase Dekker
5버니샌더스 상원의원(왼쪽)과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CNN이 주관한 민주당 대선후보 2차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6중국 장쑤성 렌윈강 항에서 중단됐던 어업활동을 재개하기 위해 어선들이 정박해 있다.
7브라질 파라 주 알타미라 교도소에서 폭동으로 사망한 재소자의 관 옆에 친척으로 추정되는 소녀가 엎드려 누워 있다.
8인도네시아 무아로잠비 쿰페 울루에 있는기름 야자나무 농장에서 화재가 발생한 후 하얀 연기가 상공으로 솟아오르고 있다.
9두바이 알 쿠드라 사막 상공에서 사람들이 제작한 "러브 레이크(Love Lake)' 가 보인다.
10이스라엘이 점령한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위치한 유대인 정착촌에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1파키스탄 중서부 퀘타의 병원에서 남성이 피가 얼룩진 옷을 입고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이날 퀘타 근교 시장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해 31명이 죽거나 다쳤다.
2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 왕궁에서 국왕 공식 대관식이 열린 가운데 지난 1월 선출도니 압둘라 리아야투딘 알 무스타파 빌라 샤 국왕과 툰쿠 아지자 아미나 마이무나 왕비가 앉아 있다.
3홍콩 콰이청 경찰서 밖에서 경찰들이 '범죄인 인도 조례' 개정안에 반대하는 시위대에 공격 당한 남성을 인도하고 있다.
4중국 구이저우 성 비지에서 횃불 축제가 열린 가운데 참가자들이 횃불을 들고 다리를 건너고 있다.
5벨라루스 민스크 외곽의 상공에 찌르레기 떼들이 편대비행하고 있다.
6팔레스타인 자치령인 가자지구의 중심도시 가자시티의 수영장에서 이스라엘군에 의해 다리를 잃은 남성이 다이빙을 하고 있다.
7페루 리마에서 열린 '2019 팬 아메리칸 게임'에서 쿠바의 앤디 쿠르즈 선수가 도미니카 공화국의 헨드리 세데뇨 마르티네스 선수의 얼굴에 펀치를 날리고 있다.
8벨기에 해안 도시 오스트되인케르케 마을에서 새우잡이 어민들이 말을 타고 바다로 들어가고 있다.
1프랑스 동부 샹블리에서 열린 세계 열기구 대회에서 수 백개의 열기구들이 상공에 떠 있다.
3독일 프랑트푸르트의 역에 ICE 고속열차가 들어오고 있다. 한 남성이 역에 진입하는 고속열차 앞으로 모자를 밀치면서 8살 아이가 숨지고 어머니가 다쳤다.
4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부통령 후보를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 폭발이 발생한 후 무장경찰이 현장에서 보초를 서고 있다.
5스페인 팔마데마요르카 해안에서 제 38회 코파 델 레이(국왕컵) 요트 경기가 열리고 있다.
6미얀마 양곤 외곽의 아파트 단지에서 어린 아이들이 놀고 있다.
7한국 서울 경복궁 앞에서 한국 전통 의상인 한복을 입은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8스페인 성 마르타 마을에서 부활의 성인인 성 마르타를 기념하기 하기 위한 연례 의식이 열린 가운데 마을 주민들이 여성이 누워있는 관을 운구하고 있다. 이 마을에서 열리는 '모의 장례' 의식에서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돌아온 이들이 신에게 다시 살아난 것에 감사함을 표한다.
1후티 반군이 장악한 예멘 수도 사나에서 옥상 위에 몰려든 메뚜기에 둘러싸인 남성이 메뚜기를 잡으려 하고 있다.
2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해군 함정이 해군의 날 퍼레이드를 맞아 활짝 열린 궁전다리 사이로 지나가고 있다.
3인도 하이데라바드에서 힌두교 축제인 '보나루(Bonalu)'가 열린 가운데 여성 신자들이 강황과 인도멀구슬나무 잎으로 장식된 화분을 머리에 이고 이동하고 있다.
4한국 광주에서 열린 2019 월드 챔피언쉽 여자 혼계영 400m에서 프랑스의 팡틴 르사프르 선수가 경기를 펼치고 있다.
5이탈리아 시찰리아 동부 카타니아에 위치한 에트나 화산에서 분출된 용암이 흘러내리고 있다.
6태국 방콕의 미장원에서 남성이 마하 와치랄롱꼰 왕의 탄생 67주년을 기념하여 머리에 왕의 얼굴을 새기고 있다.
7인도 마하라시트라 주 바들라푸르 인근에서 기차가 침수로 인해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 있다.
9페루 리마의 라 팜필라 비치에서 페루 해군 '유니언(Union)'함 앞으로 서퍼들이 파도를 타고 있다.
11영국 런던 올림피아에서 열린 필름&코믹 콘 이벤트에서 영화 'IT'의 등장인물은 삐에로 페니와이즈 분장을 한 남성이 참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