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2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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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기도하신 요한복음 17장의 전문

 

 

  

아버지...., 때가 되었습니다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소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맡기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세 내게 하라고 명하신 일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완수하여

이 땅에서 아버지를 영화롭게 했습니다

그러니 아버지여 이 세상이 존재하기 전에 내가 아버지와 누렸던 영화를 지금도 누리게 해주십시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성품을 자세히 알려주었습니다

그들은 본래 아버지의 사람들이었는데

아버지께서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이제 그들은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을 그들에게 전달했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받아 들였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나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을 거절하는 세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들은 당연히 아버지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모든 것이 아버지의 것이고

아버지의 것이 다 내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습니다

 

나는 세상에 더 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께 돌아가도 그들은 여전히 세상에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그들을 지켜주셔서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해주십시오

 

나는 그들과 함께 있는 동안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켰습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도 잃지 않았습니다

다만 성경의 예언대로 멸망하기로 작정된 배반한 사람은 예외가 되었습니다

 

이제 나는 아버지께로 돌아갑니다

내가 세상에 있을 때에 이 말을 하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이 그들 안에서 충만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나는 아버지가 주신 말씀을 그들에게 전달하였는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은 말씀 때문에 그들을 미워했습니다

 

내가 세상의 방식을 따르지 않았듯이 그들도 세상의 방식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기도하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 달라고 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악에 빠지 않게 지켜 달라고 구하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진리로 그들을 거룩하게 구별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을 거룩하게 하는 진리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사명을 주셔서 세상에 보내셨던 것처럼

나도 그들에게 사명을 주어 세상에 보냅니다

  

내가 그들을 위해 나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했던 것은

그들도 진리로 거룩하게 구별되어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나는 그들만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전하는 증언 때문에 나를 믿게 될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서 하나가 된 것처럼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하사 하나가 되고 아버지께서 참으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께서 내게 주 영광을 나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어 함께 하려는 것입니다.

 

이는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듯이

그들도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려는 것입니다

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나를 사랑하심과 같이

그들도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에 증언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나는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누리던 영광을 그들에게 나누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의로우신 아버지

세상은 아버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나와 제자들은 아버지를 알았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도 믿게 되었습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어떤 분이신가를 알렸고 계속해서 알려 주겠습니다

그리하여 나를 사랑하신 아버지의 사랑이

그들 안에도 그 사랑이 있게 하고 나도 그들안에 있게 될 것입니다

 

아멘 

 

 

 

 

 

 

 

 

 

 

 

 

 

 

 

 

 

 

 

 

며칠 전이다. 작은 물건 하나를 사려고 홈디포(Home Depot-건축자재상)를 방문했다. 들어 서자마자 백인 여자 종업원이 큰 소리로 인사한다.

 

"Welcome to Paradise!"(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미국에 오래 살았어도 이런 인사는 처음 들었다.

 

나도 '천국'에서 일하는 그 여자에게 엄지 척하며 답을 했다.

"You are The Angel.(당신은 천사이군요.)

 

온 종일 "천국"다녀 온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홈디포는 분명 "천국"은 아닌데 천국처럼 여기며 일하는 그 분이 아름다워보였다. 그리고 홈디포는 분명 천국은 아닌데 천국을 다녀 온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자니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이미"와 "아직"이라는 뜻을 포함한 천국생활을 지금 하고 있다. 지옥과 천국에 대한 언급은 성경에 많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교회에서는 천국과 지옥에 관한 설교를 하지 않는다. 아니 리고 있다. 그럴까? 일 년 단 한 번도 천국이나 지옥에 관한 설교를 듣어보지 못한 교인들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유튜브에는 천국과 지옥을 보고 왔다는 간증(믿음의 고백)도 있고, 교계 종이신문에 ‘천국과 지옥에 다녀왔다’ 면서 간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경에는 천국에 대한 언급이 많다.

마태복음 22: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마태복음 20: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마태복음 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마태복음 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태복음 3: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마태복음 10:7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마태복음 13: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마태복음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태복음 13: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마태복음 18:23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지옥을 언급하는 성경말씀도 있다.

마가복음 9:48 지옥에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

누가복음 10:15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질 것 같으냐? 아니다. 지옥에까지 내려갈 것이다.

마태복음 16:18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 지옥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다.

잠언 15:11 지옥의 깊은 곳도 여호와 앞에 드러나는데 사람이 어찌 자기 생각을 여호와께 숨길 수 있겠는가!

이사야서 14:9 지옥의 거주자들이 너를 맞을 준비를 하느라고 야단들이다. 오래 전에 죽은 세상의 영웅들과 왕들이 다 일어서서

마태복음 11: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질 것 같으냐? 아니다. 지옥에까지 내려갈 것이다. 네게 베푼 그 엄청난 기적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오늘까지 소돔이 남아 있을 것이다.

이사야서 14:15 그러나 너는 지옥의 가장 깊은 구덩이에 빠질 것이며 잠언 5:5 그런 여자는 지옥을 향해 죽음의 길을 치닫고 있으면서도

잠언 2:18그녀의 집이 사망으로, 그녀의 길이 지옥으로 기울어졌으니

요한계시록 20:14그리고 죽음과 지옥도 불 못에 던져졌는데 이것이 둘째 죽음다.

 

2009년 입신 간증 책을 발간한 신성종 목사(교수)가 있다.

이 책에 대한 비판은 별로 없고, 신뢰가 유지되고 있다.

목사며 교수였고 신학박사인 신성종 목사(은퇴)의 학력은 연세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총신신학연구원을 졸업한 뒤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석사를, 템플 대학원에서 문학석사 및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력이 말하듯 지성적인 신학자인 그가 ‘내가 본 지옥과 천국’이라는 책을 출간하여 화제가 된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는 그 간증 이후 변변한 화장실도 없고 바퀴벌레가 도처에 기어 다니는 인도와 캄보디아에서 선교사로 사역하고 있다고 한다.

하나님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성령에 대하여 그리고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 지식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확신이 없던 터에 지옥과 천국을 체험하고 변화된 모습이다.

 

신 박사는 말한다.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오늘을 사는 내가 무엇에 가장 우선순위를 두고 살 것인가를 확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매일 순간순간을 성령님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신성종 목사가 본래부터 신령하거나 영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지성적인 사람이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신 목사에 대한 이야기가 한국교계에 돌기 시작했다.

“신성종 목사님이 입신(入神)했다고 하던데…. 소식 들었어요?”

 

입신(신의 경지에 들어갔다는 용어)...  2009년 초 ‘신성종의 내가 본 지옥과 천국’(크리스천서적)이란 책이 나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예장 합동 측 목회자이자 신학자인 신 목사가 입신했다니, 지옥과 천국을 보았다니…

매일 한 끼씩 금식하면서 간절히 “하나님, 제게 천국을 보여주세요”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환상을 보았다. 천국과 지옥실재하며 그곳에 누가 있는지를 보았다. 환상은 8일간 지속되었다. 충격적인 내용이 너무 많았다.

자신은 간신히 구원 받아 천국에 들어갔다고 간증했다. 상급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목회하면서 수많은 ‘하나님의 일’을 했다고 자부한 그였는데.

 

놀란 그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모두 네 영광을 위해서 한 것이다. 나를 위해 한 것이 아니다.”

 

그 말이 환상 속에서도 그의 가슴을 쳤다고 한다.

 

천국과 지옥은 있다.

예수님께서도 여러 차례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강조하셨다.

예수믿는 사람은 누구인가?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확실하게 믿고 사는 사람들이다. (장재언)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태초가 무슨 뜻인가?"

"시간의 처음이다."

 

"시간은 무엇인가?"

"영원의 한 부분이다."

 

시간이 몇시인지는 누구나 안다. 시계를 보면 된다

그러나 시간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시간은 경험의 지평이다 (대니얼 부어스틴)

시간은 계속 생성되는 기억에 불과하다 (나보코프)

시간이란 아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때에도 꾸준히 일어나고 있는 그 무엇이다(리처드 파인만)

 

시간은 모든 것이 한꺼번에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방식이다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르팀 하이데거)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까지 명백히 비가역적인 순서대로 사건이 일어나는 비공간적 연속체이다 (아메리칸 헤리티지 영어사전)

 

시간은 하루가 1000년 같고 1000년은 하루와 같은 것이다 (베드로)

시간이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는 것이다 (바울)

 

시간이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모세)

시간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나는 시간 이전에 존재하였고 천지가 없어지고 시간이 소멸된 후에도 존재한다 (예수님)

 

시간은 확실히 비가역적이다.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의미다.

시간에는 경계가 있다

지금 몇 시 인가? (What time is it?) 

크로노스(Kronos)카이로스(Kairos)의 시간이 다르다

 

"7시 30분입니다" 크로노스의 시간이다

"종말 1분전입니다"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사람의 시간은 약 100년이다

그러나 90이 넘으면 대부분 스스로 거동할 수 없고 치매에 걸린다

 

100년 후의 미래에 우리는 어디에 있을까?

2119년에 우리는 모두 죽어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은 천국 아니면 지옥에 있을 것이다

시간은 그런 면에서 원인과 결과가 있다

시간은 공간이자 역사이며 축적된 삶의 결과를 남긴다

 

천국에 거주자가 과거로 돌아가 좀 더 상급을 위해 삶을 고칠 수 없다

지옥의 거주자가 과거로 돌아가 지옥에 오지 않도록 삶을 고칠 수 없다

우리가 소유한 시간은 현재뿐이고 그 결과는 영원하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고 보이지 않는 영원하다(고후4:18)

 

시간 밖에서는 시간이 없다

보이지 않는 그곳은 영원이라는 장소다.

영원이란 끝이 없는 기간을 의미하거나 끝이 알려지지 않는 기간을 의미할 것이다.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는 시간척도가 있다.

 

시간은 창조의 특성이다.

창조주가 우주와 태양계를 창조하기 전에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무시간은 영원이며 신의 특징이자 능력이다.

그러므로 필멸은 사람의 특징이자 한계다.

 

영원하신 하나님에게는 시간이 한 단계 한 단계로 일어나지 않는다.

신은 순차적인 존재가 아니라 동시적인 존재다.

 

만약 우주를 창조하고 세상의 역사에 관여하는 신이라면 모든 시간속에 일어나는 일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에게는 1000년이 하루에 불과하다.

이것이 성경만이 유일하게 언급하는 예언이다.

 

미래에 일어나는 일을 알 수 있으며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진술하고 기록한다.

어느 때 신이라 불리는 불멸의 존재가 사람의 몸을 입었다면 매우 우주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누구나 상향적인 존재는 원하지만 하향적인 존재로 변신하는 것은 희생이 따른다.

그리하여 시간속에 매여있던 자들이 영원의 선물을 받게 되었다

 

천국에는 시간이 존재할까?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계21:25)

 

낮만 영원히 계속되고 밤이 오지 않으니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이란 낮과 밤, 계절의 순환, 지구의 공전과 같은 물리적인 변화다.

 

지옥에는 시간이 존재할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계14:11)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불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day and night) 괴로움을 받으리라" (계20:10)

 

"낮에나 밤에나 꺼지지 아니하고 그 연기가 끊임없이 떠오를 것이며" (사34:10)

 

문학적인 표현인지는 모르지만 천국과 다르게 지옥에는 낮과 밤이 존재한다 말한다.

즐거운 시간은 시간가는줄 모르지만

괴로운 시간은 시간이 더디게 간다.

그러므로 지옥에서 시간을 인식하는 것은 고통배가시킨다.

시간이란 강을 건널 때 나침판이 있는데 그것이 성경이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시90:12)

창조주를 기억하라...

 

제임스 글릭TIME TRAVEL 

 

 

 

 

 

 

 

 

 

 

 

 

 

 

 

 

 

 

 

 

1. 예수님 재림 전, 성도가 죽으면 가게 되는 하나님 나라는 어떤 곳인가요?

2.  예수님 재림 전, 불신자가 죽으면 어딜 가게 되나요?

3. 예수님 재림하실 때, 성도들의 몸이 거룩하게 되어 다시 살아나고 그 안에 영이 다시 들어간다고 하는데, 그 후에 이 지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서게 되나요? 아니면 그 거룩한 '몸'이 다시 천국으로 들려올라가나요? 그리고 재림하신 이후의 삶과 재림하기 전에 죽은 성도들이 가는 천국의 삶이 같나요, 다른가요?

4. 예수님 재림하신 후 불신자들은 어디로 가게 되나요?

 

 

 

신학적으로도 가장 어려운 과제 중의 하나인 인간의 '중간상태', 즉 죽음과 부활 사이에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중간상태란 다른 말로 인간이 죽은 직후에 되는 모습인지라 모든 신자가 가장 궁금해 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완전한 부활 즉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되는 마지막 때에 대해선 기술(記述)이 비교적 많은 반면에 죽음 직후의 상태에 관해선 분명하고도 구체적인 설명이 드뭅니다.

 

중간 상태와 마지막 때의 명확한 구분 없이 설명하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질문자님이 걱정한대로 전체로 따져 들어가면 더 애매해질 수 있습니다.

 

신자는 가장 먼저 눈에 안 보이는 전체적인 하나님 나라는 영원토록 완전한 모습으로 실존해 있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삼위 하나님은 물질적 가시적 영역뿐 아니라 영적 비가시적 영역을 망라하여 전 우주를 태초부터 영원까지 거룩하게 통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천국에 관한 구체적인 의문들도 바로 이 확신 위에서 풀어나가야 합니다.

 

예수를 믿어야 영생을 얻고 믿지 않으면 영생을 얻지 못한다면 또 그 영생의 핵심이 죽음 이후라면 반드시 천국과 지옥은 이 땅과 별도로 따로 존재하고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비록 신자가 천국과 지옥의 모습과 그곳에서 인간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는 구체적으로 몰라도 그런 곳분명히 있고 또 그곳에서의 하나님의 통치도 완벽할 것이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천국과 지옥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몰라도 아무 문제가 없을 뿐 아니라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천국과 지옥 자체를 전혀 몰라도 된다거나 알 필요 없으니 관심을 두지 말라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바를 넘어서 섣부른 추측을 해서 오류에 빠지는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미'와 '아직'의 천국

 

 

성경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가장 핵심적으로 가르치는 바는 시간적으로 '이미''아직'의 두 측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17:3)입니다.

 

한 죄인이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에 이미 그는 영생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이 땅에서부터 천국 안에서 사는 것이며 죽음은 그 영생의 연장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 땅의 하나님 왕국은 사단의 왕국과 함께 일정 시점까지 병존하고 있어서 완전한 영생을 누릴 수 없습니다. 신자는 이미 종말론적 시대에 살고 있으나 아직 최종적인 상태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 이후로 천국은 역동적으로 이 땅에 도래했고 신자는 성령의 내주하심에 따라 하나님의 통치를 이 땅에서부터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 공중 권세 잡은 사단이 여전히 있고 신자 또한 죄의 본성이 남아 있어서 완전한 천국은 현재와 같은 모습의 이 땅에선 구조적,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왕국은 하나님 쪽에선 영원토록 완전하게 실현되고 있습니다. 비록 이 땅의 인간에게 천국은 이미 왔지만 아직 완전히는 오지 않았다는 그 자체도 하나님의 입장에선 완벽한 통치입니다.

 

단지 인간 쪽에선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두 측면은 인간 개인에게나 인류라는 전체 공동체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신자 개인으로 봐선 죽음으로 물질적 육신은 소멸되고 그 이후에 가는 곳에 육신이 따라 가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구체적인 모습은 아무도 모릅니다.

 

또 성경은 마지막 날에 새롭게 변화된 이 땅으로 부활한 성도가 (신령한) 육신의 모습을 입고 다시 온다고 가르치지만 그 구체적인 모습도 아무도 모릅니다.

 

신자 개인에게도 '이미'와 '아직'의 두 가지 영생이 있는데 그 중간상태와 '아직' 이후의 영생의 모습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인간 공동체적 측면, 즉 이 땅 전체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 날에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변화될 것이라는 것과 그 변화가 새로운 창조(사65:17)의 모습이 될 것이라는 약속은 분명히 있지만 그 창조의 과정과 그 후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어떨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 땅에 대해서도 '이미'의 천국만 알뿐 '아직'의 천국과 그 중간상태를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이 네 가지 측면을 딱 부러지게 구분해서 설명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필연적으로 지금껏 신학적인 수많은 쟁론이 있어 왔지만 어느 누구도 딱 부러지게 이것이 맞다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신자로 일부러 혼동하게 해서 천국에 대한 신비감만 더 고조시키려 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예수를 믿어 영생을 얻었다면 죽음 이후부터 중간 상태와 나아가 완전한 부활까지는 전혀 걱정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는 모든 영역에서 항상 완전하기에 하나님만 전적으로 신뢰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온전한 믿음으로 들어가는 길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뿐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눅16:19-31)도 바로 그 진리를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지옥에 떨어진 부자 나사로가 천국에서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거지 나사로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나사로를 다시 세상에 내보내어 자기 형제들에게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알려주어 생전에 회개토록 하여 죽고 난 후에 후회하지 않게 해달라고 아브라함에게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답이 무엇이었습니까?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찌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천국에 갔다가 온(잠시 죽었다 산 것이 아니라 실제로 천국에 오래 가 있다가 땅으로 되돌아 온) 나사로라면 얼마나 설명을 정확하게 하겠습니까?

 

그런데도 그 전에 성경에 계시된 천국과 그곳으로 인도하는 메시야에 대해 믿지 않으면 아무리 설명을 잘해주어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들은 오직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비유대로 당신께서 죽었다가 살아나도 믿지 않지 않습니까?

 

바울 사도는 삼층천(천국을 의미하는 히브리 식 표현)까지 갔다 왔습니다. 바울이 거짓 실토를 할 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도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이는 가히 사람이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 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고후12:2,4,6)

 

우선 천국에서 보고 들은 것은 인간의 말로는 제대로 표현해낼 수 없다고 합니다. 아무리 잘 설명해도 표현이 정확하게 안 될뿐더러 직접 가보지 않은 사람으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할수록 오히려 사람들이 지나치게 생각 즉 잘못된 기대를 할 수 있음을 염려했다고 합니다.

 

또 그가 죽은 후에 간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채로 에스겔과 같이 순간적으로 시공간을 이동하여 천국을 갔다 왔습니다.

그러나 몸이 같이 갔는지 같이 가지 않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육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영만 갔다 온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어떤 신령한 육신을 입었었는데 확실히 알지 못하고 본인마저 심지어 단지 그랬지 않나 추측만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아직 죽기 전이라 인간 육신의 지정의로만 판단했기에 천국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그의 설명으로 봐서는 천국에도 분명히 감각적으로 지각이 되는 어떤 시공간과 그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형체들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천국이 이 지상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긴 하지만 그 안에 있는 자들은 나름대로 자유롭게 활동하고 또 지정의적 사고를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질료(Substance)로 구성되어, 어떤 구조(Structure)로 이루어진, 어떤 차원(Dimension)인지, 구체적으로 몰랐지만 그런 요소들이 없던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신자에게는 완전한 부활이후 뿐 아니라 죽음 직후의 중간상태도 여전히 또 다른 미지의 '아직'의 천국입니다.

 

따라서 신자는 '아직' 천국에 대한 소망을 귀하게 가꾸되 그런 소망이 커질수록 오히려 이 땅에서 '이미'의 천국을 제대로 누리며 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죽을 준비는 하나님이 완벽하게 마련해 놓았으니 인간은 철저하게 제대로 살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요14:1-4)

 

꼭 재림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죽으면 예수님이 영접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천국 보좌에 앉으셔서 구원과 심판을 주시는 하나님과 그 천국 가는 유일한 길인 예수님을 믿는다면 구태여 그 처소가 어떠할지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대신에 그런 천국 소망을 가진 자들이 아직도 세상에서 소망이 없는 자들, '이미'의 천국도 누리지 못하는 자들을 향해 그 소망을 증거 해야 합니다.

 

그 길은 두 가지뿐입니다. 천국에 대한 설명이 아닙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벧전3:15) 해야 합니다.

 

소망의 구체적 내용이 아니라 소망을 가진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그분의 통치는 완전하다는 것을 증거하고 그 통치 아래로 초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마5:16)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의 통치(다른 말로 천국)는 이 땅이든 눈에 안 보이는 영적인 영역이든 영원토록 완전합니다.

 

그 사실을 확신한다면 천국을 신학적으로 상세하게 구분하여 구체적으로 알 필요까지 없고 또 알 수도 없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범위 안에서 이 땅에서부터 '이미'의 천국을 누리고 죽음 이후의 '아직'의 천국을 소망만 하면 됩니다.

 

그런 맥락에서 구체적인 답변을 드릴 수 없지만 질문하신 순서대로 간략하게 성경이 말하는 바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재삼 말하지만 성경이 중간상태와 완성된 이후의 천국에 관해서 또 개인과 공동체적인 천국의 명확한 구분이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예수님 재림 전, 성도가 죽으면 가게 되는

하나님 나라는 어떤 곳인가요?

 

현재의 육신이 따라가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는 의미에선 영적인 세계라는 말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 영적인 세계 안에서도 우리가 알 수 없는 나름대로의 질료와 형체들이 분명히 있고 그것을 인지할 수도 있을 것이므로 단순히 다른 차원의 세계라고 이해하시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신학자 벌콥은 "죽음은 존재의 멸절(滅絶)이 아니라 육신적 생명의 종결이다. 존재의 중지가 아니라 생의 자연적 관계들의 분리이다. 생명과 죽음은 존재와 비존재로서 서로 반대되지 는 않으며 다만 존재의 상이한 양식(樣式)으로서만 반대된다"고 말했습니다.

 

죽음이 어떤 것이며 죽음 이후의 그 개인과 가는 곳이 어떠한지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확실한 것은 인간은 죽음 이후에도 이 땅과는 다른 존재 양식으로 그 양식이 존재할 수 있는 곳에서 계속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천국 자체의 외형적 모습도 요한 사도가 묘사한 것을 넘어서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계4:2-6)

 

그러나 요한이 실제로 천국을 갔다 온 것이라기보다는 환상으로 보았고 또 그로선 최선의 설명을 했겠지만 여전히 우리로선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우선 그도 이 땅의 육신이 살아 있는 상태라 "~ 같다"라고 밖에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특정한 당신의 뜻을 계시하고자 인간 지정의의 이해 수준에 맞게끔 보여주었을 수도 있습니다. 나아가 "이후에 마땅히 될 일을"(1절) 보여주신다고 했습니다.

 

미래의 어떤 시점에 일어날 일이지만 정확히 언제인지는 말씀하지 않아서 모른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죽음 이후에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님)

그러나 마땅히 될 일이므로 반드시 일어나는 확실한 약속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우리가 감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외형적 차원에서 천국이 이 땅과 어떻게 다를 것인가를 따져봐야 확실하고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대신에 신자는 이 땅과 확실히 다른 것 하나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한 마디로 죄가 없는 곳입니다. 신학적으로 구원칭의, 성화, 영화의 3단계로 나누는데 사람이 죽으면 마지막 단계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칭의는 죄의 형벌로부터 자유하게 되는(free from the penalty of sin) 순간적 구원으로 예수를 믿음으로 얻게 되는 영생입니다.

성화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면서 죄의 능력에서 자유하게 되려고(free from the power of sin) 노력하는 진행 중인 구원입니다.

마지막 영화는 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옮기어져(free from the presence of sin) 완성되는 구원입니다.

 

흔히들 천국이 눈물과 한숨과 슬픔과 고통이 없는 곳으로 묘사되는 근본 이유도 단순히 먹고 살 것을 걱정하지 않는 유토피아 같은 곳이라는 뜻이 아니라 죄 자체가 없기에 당연히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죽음 이후에 신자가 가는 곳은 죄가 완전히 없으며 성삼위 하나님의 실체를 보고 알 수 있으며 그분과 완전한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이 땅과는 다른 차원의 영역입니다.

 

 

예수님 재림 전,

불신자가 죽으면 어딜 가게 되나요?

 

성경의 주제를 단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예수님"입니다. 구약은 왜 예수님이 꼭 수난의 종으로 인간의 모습을 띄고 이 땅에 오셔야만 했던가를 밝힌 책이라면 신약은 예수님이 오셔서 사역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일과 그 결과를 밝혀놓은 책입니다.

 

신학적으로 성경은 반드시 하나님의 인류구속사적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바로 모든 해석의 열쇠는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이라는 뜻입니다.

 

또 그 말은 성경 해석의 일관된 기준이 골고다 십자가를 지향할 뿐 아니라 예수님 당신도 기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즉 어떤 주제에 대해서 예수님이 과연 어떻게 해석했느냐를 먼저 따져보는 것이 성경 해석의 가장 근본이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불지옥이 과연 성경적인가라는 과제도 예수님이 어떻게 해석했느냐를 따져보면 쉽게 답변할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지옥이라는 단어를 성경 전체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것도 아주 참혹한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면서 말입니다. 직간접으로 언급한 내용이 마태복음에만 무려 12군데 이상 나오며 평행복음서까지 따지면 이보다 훨씬 많습니다. (마 5:22 / 5:29,30 / 7:19 / 7:23 / 8:12 / 10:28 / 13:49,50 / 18:6 / 22:13 / 23:15 / 25:30 / 25:41)

 

반면에 신약 성경의 다른 서신서에는 오직 야고보서 3:6을 제외하고는 직접적인 언급이 없습니다.

 

간단하게 몇 구절만 살펴봅시다.

"형제를...미련한 놈이라고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5:22)

그 앞 구절에 따르면 옛사람들(구약)은 살인은 심판을 받으리라고 했지만, 예수님은 그보다 훨씬 더 엄격하고도 무시무시하며 구체적인 심판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또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다"(5:29,30)고 했습니다. 눈이나 손 하나가 잘려나가는 것보다 지옥의 고통이 훨씬 더 심하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휠체어 타며 핸디캡으로 사는 것도 아주 고통스러운데 그것과는 전혀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슨 희생을 치르더라도 자신이 핸디캡이 되는 한이 있어도 지옥 가는 것만은라는 것입니다.

 

비록 비유의 뜻이긴 하지만 예수님은 그만큼 지옥의 참혹하고 고통스런 실체에 대해 구체적 묘사를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불신자들 즉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8:12)고도 했습니다.

 

고통이 심한 곳에서 이를 갈고 있다면 불신자가 죽어서 단순히 잠만 자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비록 예수님이 하나님은 "몸과 영혼을 지옥에서 멸하시는 자"(10:28)라고 했지만 불신자가 죽으면 당장 그렇게 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그런 권능을 갖고 계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오히려 불신자의 영혼이 지옥에 머물면서 언젠가는 완전히 멸하게 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상 끝에 천사들이 와서 의인과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13:49,50)고 한 것입니다.

 

혹시라도 이 말씀으로 인해 불신자의 영혼이 세상 끝이 올 때까지는 무덤에서 쉬고 있다가 부활 후에만 고통을 당한다고 해석해선 안 됩니다.

 

불신자는 죽은 직후부터 바로 지옥으로 들어가 부활 때까지 울며 이를 갈게 됩니다. 지금 예수님은 최후의 심판 때를 별도로 강조하여 부활한 영과 육이 함께 불못에서 세세토록 고통을 당하게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한 개인으로 봐선 육신의 죽음은 사실상의 세상 끝이 되고 악인은 당연히 바로 풀무 불에 들어가게 되지만 언제 부활을 거쳐 최후의 심판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인류 공동체로 봐도 언제 세상 끝이 시작될지, 또 그 시작되는 시점과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고 사단을 결박하여 부활한 불신자와 함께 영원한 불 못에 던져 넣어 그 심판이 완성되는 시점 간에 간격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걸릴지도 아무도 모릅니다.

 

성경이 왜 이렇게 모호하게 표현되어 있는지 탓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 자체가 벌써 한 개인에게 주는 말씀이자 인류 전체에게 주는 말씀이니까 그렇습니다.

 

또 학술 교과서나 과학 논문처럼 주제별로 정리해 놓은 책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천국과 지옥이라는 제목으로 별도로 구분이 안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구분해 놓으면 좋을 것 같지만 그렇게 되면 벌써 영원토록 살아 역동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하나의 매뉴얼에 불과하게 됩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어 유지 보존 전승 번역된 책이라 읽는 자도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읽으면 구원을 얻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체계적으로 정리된 책이라면 성령의 감동과 인도가 필요 없습니다. 단순히 신자는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됩니다. 구원도 신자의 노력으로 얻게 되고 예수님의 십자가도 무용지물이 되어버립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언급을 봅시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마25:41)

 

불신자의 영이 지옥으로 떨어져 영영한 불로 마귀에게 고통을 당한다는 성경적 개념은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직접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그것도 아주 강조한 개념을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성경 특히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아예 신자라고 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만에 하나 불지옥에서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는"(눅16:24) 모습들이 비유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단이 지배하는 지옥이라는 별도의 공간이 있으며 그곳에서 불신자의 영은 죽은 직후부터 고통을 당하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신학자의 해석이 아니라 예수님이 지옥에 관해 하신 말씀 전체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신약의 다른 서신서에 지옥이라는 직접 언급이 없다고 사도들이 그 실체를 부인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바울 서신서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언급들만도 다음과 같습니다. (롬2:3-9 / 고후5:10 / 살전5:3 / 살후1:6-9)

 

 

예수님 재림하실 때, 성도들의 이 거룩하게 되어 다시 살아나고 그 안에 영이 다시 들어간다고 하는데, 그 후에 이 지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서게 되나요?

아니면 그 거룩한 '몸'이 다시 천국으로 들려올라가나요?

그리고 재림하신 이후의 삶과 재림하기 전에 죽은 성도들이 가는 천국의 삶이 같나요, 다른가요?

 

 

부활 후에 지상에 하나님 나라가 서는가? 성도들이 다시 천국으로 들려 올라가는가?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인인 인간을 구속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과 그 실현을 기록해놓은 책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구약은 예수님이 오셔야만 했던 이유를, 신약은 오셔서 하신 일이라는 주제로 대별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의 천국은 완성되지 않은 채 남았습니다. 그 천국은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신천신지(新天新地)가 이 땅에 도래하는 것으로 종결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고 그분과 죄가 하나도 개입되지 않는 친밀한 교제를 회복하여 창조의 구속사적 완성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21:1,2)

 

본문에서 새 것을 의미하는 헬라어 단어는 시간적으로 새로운 것을 뜻하는 '네오스' 대신에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뜻하는 '카이노스'가 사용되었습니다.

 

이전 하늘과 땅의 변형이나 갱신이 아니라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새 질서의 창조를 의미합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사65:17)고 예언한 그대로입니다.

 

또 이사야는 창조라는 단어를 창1:1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뜻의 '바라'를 사용했습니다. 신약에서 요한이 신천신지가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말한 계시의 확실성을 구약에서 이사야가 이미 보증한 셈입니다.

 

신자가 성경을 대할 때에 성경은 항상 인간의 이해 수준에 맞추어 이 땅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밖에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전히 문제는 그 외적 모습과 과정은 어느 누구도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는 뜻입니다. 다만 부활한 신자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옮겨진다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요한의 표현대로 하늘에서 내려온다면 아마도 이미 먼저 죽어 천국에 있는 성도들은 그 신천신지로 옮겨져서 아니면 옮기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오는 셈입니다.

 

반면에 땅에 그 때까지 남아 있던 성도들은 그 곳으로 옮기워지니까 우리 식 표현으로는 들리어 올려가는 셈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르고 내린다는 것은 공간 이동상의 방향만, 그것도 수직 방향으로만 따진 것에 불과합니다. 단순히 어법상의 표현 즉 말로 설명하려니까 그렇게 밖에 표현하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나아가 그 도래가 새로운 창조라면 현재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이 땅의 영역 즉 지상에 천국이 내려오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다른 말로 천국의 지상 도래나 성도의 들림이 어떤 방향 아니 어떤 모습이 되던 관심을 가질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자로선 이미 죽은 성도나 그날까지 남아서 이기는 자에게는 신천신지가 유업으로 주어진다는 것만 믿고 그 소망을 간직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성도들이 자꾸 공중 들림에 관해 관심을 갖는 이유는 아래 성경 구절의 해석이 정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게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찐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살전4:13-18)

 

이 구절의 의미를 정확히 알기 위해선 몇 가지 사전 지식이 필요합니다. 바울 당시의 초대 교회는 예수님의 재림이 바로 자기들 당대에 곧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그 재림 이전에 죽은 자들의 영원한 운명에 대해서 걱정했습니다. 아직은 신약 성경이 완전히 정경화 되어 천국에 대한 신앙적 지식이 정립되기 전이라 일반 교인들로선 이미 죽은 사람들은 음부에서 자는 것으로만 이해했고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없으리라 염려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이 본문을 기록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그 염려를 불식시키려는 것이지 공중 들림의 구체적인 모습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휴거(Rapture)를 설명하는 것이 본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가 말하는 바는 누구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아무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죽어도 그리스도 안에, 살아도 그리스도 안에 있기에 부활 때에 죽은 자가 살아 남은 자보다 차별 대우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본문에서 가장 눈여겨 볼 대목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입니다.

나아가 살아남은 자가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지는 것보다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에 주목해야 합니다.

 

본문에 따라도 주신 질문의 답변은 부활한 성도가 다시 천국으로 들려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내려오는(정확히는 옮기워지는) 것입니다.

 

살아남은 자가 공중 들림을 한다는 것도 재림하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모습일 뿐입니다. 다시 천국에 가거나 공중에서 이 땅을 함께 통치한다는 식의 해석(세대주의자들의 해석)은 성경적 근거나 타당성을 갖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공중 들림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에 제자들 곁에 있는 천사들이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1:11)고 했습니다.

또 구약의 에녹, 엘리야의 승천 기록이 있고 또 신약에도 빌립이나 사도 바울의 공중 들림과 비슷한 체험도 있으며 무엇보다 예수님의 승천이 부활 시에 성도의 공중 들림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증해 줍니다.

 

그러나 휴거의 구체적인 모습과 시기는 여전히 아무도 모르고 알 수도 없습니다. 인간의 상식으로 따지면 지구는 둥근데 모든 인간이 다 그분의 공중 재림을 알고 또 성도들이 동시에 공중 들림을 하는 일은 도무지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그 일이 북반구와 남반구에서 또 동양과 서양에서 동시에 일어날 수 없고 그렇다고 순차적으로 일어난다면 이미 전 세계에 TV로 중계될 텐데 이상한 현상이 벌어질 것 아닙니까?

 

성경을 싱상으로만 풀자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너무 문자적 자구에 묶여서 잘못 해석하는 잘못을 범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나아가 성도들도 너무 구체적인 모습에 관심과 호기심을 가져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단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예수님은 영광 중에 가시적, 인격적으로 하늘로 통해 강림하시되 성도들은 그에 버금가는 영광스런 모습으로 그분을 영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권위 있는 개혁파 신학자들 가운데는 공중 들림이 없는 것으로 해석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또 계시록의 천년왕국이 지상에 따로 구별되어 실현되지 않을 것으로, 즉 신약시대에서 예수님의 재림까지가 바로 천년왕국으로 해석하는 분도 많습니다. 휴거도 대 환난과 연결하여 환난 전, 환난 중, 환난 후 휴거설을 주장하는 학자들로도 나뉩니다. 구체적인 시기와 모습은 평생을 성경만 연구한 종말론 전문가들도 알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미 죽은 성도들

재림 전과 재림 후의 삶이 같은가 다른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같은 부분도 있고 다른 부분도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질문을 하게 된 배경은 예수님 재림 때에 구원이 궁극적으로 완성된다고 하니까 성도가 죽은 직후의 상태는 혹시라도 불완전한 구원이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게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먼저 아셔야 할 것은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으면 성도 개인으로선 완전한 구원은 이미 완성된 것입니다.

 

성경은 신자의 영혼이 육신으로부터 분리 될 때에 그리스도의 면전에 들어간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기를 원한다."(고후5:8)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졌다."(빌1:23)

 

특별히 십자가상의 강도에게 예수님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고 온전한 확신을 심어주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에 이른다"(12:23)고 했습니다.

 

이에 따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는 성도가 죽을 때에 "거룩함으로 완전해진 의인의 영혼들은 최고의 하늘에로 받아들여지며 그 곳에서 그들은 빛과 영광 중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며 그들의 육신의 완전한 구속을 기다리는 것이다"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즉 죽음 이후의 성도는 완전한 구원을 이루었지만 단 하나 재림을 맞이하지 못한 것만 다릅니다.

 

그럼 재림 이후는 재림 전과 어떻게 달라집니까?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8:11)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빌3:20,21)

 

가장 중요한 차이는 천국에 있던 영혼이 부활 후에는 육신의 구속마저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육체의 부활에 관한 당위성과 그 의미 및 구체적 모습은 고린도전서 15:12-58까지 자세하게 설명되어져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세세토록 왕 노릇하기에 적합한 신령한 육신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활 육신의 구체적 모습이 어떠할지는 복음서의 부활하신 예수님의 기록을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이델베르그 요리 문답에선 "육신의 부활이 당신에게 어떤 위안을 주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다음과 같은 답을 들고 있습니다.

 

"금생 이후에 내 영혼이 즉각적으로 그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 취하여 올려질 뿐만 아니라 나의 이 육신도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일으킨 바 되고 나의 영혼과 또 다시 연합하게 될 것이며 또한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육신과 같이 될 것이다."

 

재림 전과 재림 후의 죽은 성도의 삶은 죄가 아예 없는 곳에서 완전한 영생을 누리며 하나님과 맞대면 하여서 그분과 교제하며 세세토록 찬양한다는 면에선 변함없이 동일합니다. 재림 후에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옮기워지고 또 그곳에 적합한 신령한 육신을 덧입게 된다는 것만 다를 뿐입니다.

 

 

예수님 재림하신 후 불신자들은 어디로 가게 되나요?

 

 

그냥 지옥에 가서 사단에게 괴롭힘을 받는다고 하기에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사단을 완전히 멸하신다고 많이 들은 것 같은데, 그럼 재림이후 사단의 존재가 완전 사라진다면 불신자들의 영 또한 같이 사라지거나(소멸), 그 때에 다시 구원하시거나(?), 사단은 없지만 하나님이 주는 고통을 받게 되거나, 그 중 하나일 텐데..

 

예수를 믿어야 영생을 얻고 믿지 않으면 영생을 얻지 못한다면 또 그 영생의 핵심이 죽음 이후라면 반드시 천국과 지옥은 이 땅과 별도로 따로 존재하고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서론에서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를 믿는 신자와 믿지 않는 불신자와는 그 영원한 운명이 완전히 반대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또 그것은 죽음 직후에서 중간상태와 부활 이후까지의 모든 과정을 망라해서 그래야 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을"(히9:27)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롬2:6-8) 하십니다.

선행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뜻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구하는 즉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자와 세상의 썩을 것을 구하는 자를 구별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죽음 이후에 불신자가 다시 회개기회전혀 없으므로 영원한 운명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죽음 이후에 인간의 영혼이 가는 이 땅과는 다른 두 영역에서 상호 옮겨질 여지는 전혀 없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연옥이나 선조(先祖) 혹은 유아 림보(limbo) 같은 천주교에서 주장하는 사후 영혼의 중간정거장은 성경의 뒷받침이 없습니다.

 

그래서 웨스트민스터 요리문답서는 사후의 악인의 영혼들은 "지옥에로 내던져지며 거기서 그들은 큰 날에 심판 받기로 예비된 고통과 완전한 흑암에 머물러 있게 된다"고 했습니다.

 

또 "육신을 떠난 영혼들을 위한 이 두 곳(천국과 지옥) 이외에 성경은 아무 곳도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부활 때까지 불신자의 영혼은 지옥에서 그 구체적인 모습은 모르지만 분명히 고통 가운데 지냅니다. 그 후 예수님의 재림 시에 육신의 부활을 입습니다. 구약에서 다니엘 선지자는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단12:2)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신약에서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으로 그 사실을 확증했습니다. "또 인자 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9) 부활을 예언한 다니엘서가 말하는 바로 그 인자(메시야, 단7:13)이신 예수님이 당신의 재림 때에 모든 신자와 불신자를 부활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신자의 부활은 최후의 심판을 받기 위한 것입니다.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 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계20:11-15)

 

부활한 불신자는 불못에 던지워져 둘 째 사망을 당한다고 합니다. 신자와 불신자 공히 육신의 죽음이 있는 것과 또 신자의 부활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임에 대비해서 불신자만 당하는 영원한 형벌이라는 뜻에서 둘째 사망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흔히 신자는 두 번 태어나고(육신적 출생과 예수를 믿어 성령으로 거듭남) 한 번만 죽지만(육신), 불신자는 한 번만 태어나고(육신) 두 번 죽는다(육신과 영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둘째 사망 후에는 하나님의 은총과는 완전히 결여된 채로 죄의 완전한 지배로 이뤄진 무궁한 혼란의 상태에서 육과 영혼의 극심한 고통을 당합니다.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계20:10)

 

사단과 불신자의 영이 완전히 멸절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활한 불신자는 사단이 이미 던지워진 불못으로 함께 던지워져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당합니다.

흔히 사단이 완전히 멸해진다고 하는 말은 존재 자체가 완전히 멸절되는 것이 아니라 불못에 영원토록 완전히 던지어졌기에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지상에서 신자를 훼방하던 사단과 죄와 사망이 이젠 더 이상 신자에게 아무 영향을 끼칠 수 없게 된다는 뜻입니다.

 

신자와 불신자의 영원한 운명정반대가 된다는 뜻이 바로 이것입니다. 신자는 하나님 품 안에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는 반면에 불신자는 사단과 함께 불못에서 영원한 고통만 당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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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카튼은 1584년 11월 4일 영국 더비셔(Derbyshier)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변호사였다. 그는 13살 나이에 캠브리지 대학에 가서 1603년과 1606년에 학사 학위와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6년 동안 캠브리지의 엠마누엘 대학에서 특별 연구원으로 지냈고 많은 청교도들을 양성하였다. 그는 리처드 십스의 감동적인 설교로 청교도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가 그 길을 가기까지는 자신의 세속적인 야망, 학자로서의 성공을 포기해야 했다.

 

그의 설교는 단순 명쾌하였으며, 그의 유일한 소망은 사람보다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었다. 그는 27세에 링컨셔 보스턴의 성 보톨프(St. Botolph) 교구주관자 대리(vicar)가 되었다. 그러나 교구 감독은 카튼이 청교도주의에 영향을 받았다고 매우 싫어하였다. 그는 경건한 신앙인이었던 Elizabeth Horrocks와 결혼하였다.

 

존 윈드롭의 친구인 카튼은 1633년에 뉴잉글랜드로 떠났다. 같은 해 그는 보스턴 교회의 목사로 선택되어 1652년 사망할 때까지 그곳에서 사역하였다. 그는 개혁되지 않은 영국 국교회에 저항하는 양심적인 비국교도로 알려졌다.

 

카튼은 주일날 아침마다 요한복음, 전도서, 스바냐, 스가랴 등 많은 성경 본문으로 설교했다.

 

그는 아가서와 그리스도의 비유, 요한2,3서에 대한 강의를 하였다. 그는 자기 집에서 매일같이 학생들에게 강의했다. 그는 수요일, 목요일, 토요일 오후에도 설교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하루 여섯시간씩 기도했고, 성경 연구를 하였다. 그가 보스톤에 있는 동안 회중정치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결국 회중주의의 아버지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카튼은 아마도 17세기 전반 동안 가장 잘 알려진 뉴잉글랜드 목사였고 영국에서까지 명성이 있었다. 그는 뉴잉글랜드의 회중교회주의와 신앙고백을 한 "가시적" 성도들에게 제한되는 교회 회원자격에 대한 강력한 변호자였다. 그의 수많은 설교와 논문들이 그의 생존시에 출판되었다.

 

제이 그린(Jay Green)은 1960년대에 요한일서에 대한 카튼의 주석을 출판하였다. 영국 진리의 깃발사에서는 카튼의 은혜언약에 대한 책을 재출간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카튼매더는 말하기를 "만약 뉴잉글랜드 보스톤에 제일가는 자리를 둔다면 그 자리는 카튼에게 주어져야 할 것이다. 그는 보스톤의 영광이요, 보스톤의 아버지이다"라고 하였다.

 

 

 

 

 

 

 

Fall things: pumpkins, leaves, hay, waning light, and new seasons of your favorite reality shows

 

 

 

 

 

 

 

 

 

 

 

성경을 부정하고

성경의 경계를 벗어나고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영광과 권위와 주권과 위엄과 경배에 있어서

하나님을 인간이나 자연물 혹은 인공물로 대체하고

 

구원에 있어서 믿음이 아니라 행위를 앞세우고

은혜가 아니라 공로를 주장하고

 

믿음의 눈이 아니라 육안으로 보이는 가시적인 것들을

전부로 여긴다면

그것은 참된 기독교가 아닙니다.

 

비록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는 자라도

믿음으로 읽지 않고

인문학적 기술로만 성경을 해체하고 분석하고 해석하게 되면

필히 거짓된 기독교에 이를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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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한인들의 이민 역사가 반세기를 훌쩍 넘어섰다. 60년대부터 1987년 사이에는 연평균 5만명 가까이 미국으로 이주해오며 그 숫자가 절정에 달했다.

 

이후 한국의 경제력이 세계 10대 수준으로 올라간 이후 이민은 점차 '잊혀진 일'이 돼가고 있다.

 

그러나 1세는 물론, 상당수 1.5세 입장에서도 가장 불편한 일을 꼽으라면 언어 소통이 첫손에 꼽힐 것이다. 수천만명에 달하는 중남미계 이민자들은 스페인어만 구사해도 미국내 일상생활에 아무런 불편이 없는 상황이다.

 

반면 미국과 정치ㆍ경제ㆍ외교ㆍ군사ㆍ문화ㆍ스포츠 교류가 활발한 한국 입장에서는 영어가 삶의 필수요소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하고 인공 지능ㆍ구글 번역기가 나왔지만 사람이 직접 경험하고 배우는 것과는 차이가 크다. 잘 모르고 쓰는 '콩글리시'도 적지 않다.

 

영한사전은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지만 한영사전, 특히 한인 입장에서 잘 틀리고 애매하고, 평소 궁금했던 단어ㆍ숙어에 대한 명쾌한 설명은 여전히 부족한 현실이다.

 

 

▶Dodgers:

 

25년전 한양대생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 첫 한인으로 데뷔한 이후 지금의 류현진 투수까지, 상당수 한인들은 무슨 뜻인지도 모른채 사용하고 있다.

 

몸을 재빨리 피하는 날쌘돌이 또는 병역기피자란 의미다.

 

다저스가 뉴욕의 브루클린에 있던 시절, 인근 양키스 팬들이 트롤리 전차에 뛰어가 무임승차한 뒤 이벳츠 필드로 향하는 팬들을 'Dodger'라고 놀린데서 유래됐다.

 

LA로 이전한 이후에도 명칭은 똑같다. 이밖에 가수 유승준처럼 병역, 또는 세금의무를 회피한 사람에게도 쓸수 있다. 한편 dodge ball은 '피구' 종목을 일컫는다.

 

 

▶'내로남불'은 영어로?:

 

남달리 고집이 센 문재인 대통령이 말도 많던 조국 후보의 법무장관 임명을 강행한 이후 한국사회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다.

 

명사는 hypocrisy(위선)ㆍdouble standard(표리부동ㆍ이중 기준)로 쓰는 것이 무난하다.

 

숙어로는 People (who live) in glass house shouldn't throw stones라고 한다. '유리집에 사는 사람이 돌을 던져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형용사는 treacherous를 사용한다.

'X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Pot calling kettle black(냄비가 주전자보고 까맣다고 한다)이라고 한다.

 

이같은 경우를 비난하는 형용사는 egregious(지독한)가 적당하다.

 

화가 난 사람들은

'엿 먹어라'는 악담을 퍼붓는 경우가 있다.

영어로는 stick it upup yoursscrew youturn blueeat it 이라고 다양하게 말하면 된다.

손가락을 위로 치켜올리며 의미하는 물건이 무엇인지는 독자들도 대충 짐작할수 있을 것이다.

 

또 평소와 달리 얼굴색이 파랗게 변하면 좋은 일이 아닐테고, 먹으라는 것도 보통 음식이 아님은 물론이다.

 

그렇지만 본인이 남에게 사용하라는 취지가 아닌, 미국인이 하는 말은 알아들어야 한다는 취지다.

 

그럼 진짜로 우리가 먹는 '엿'은 무엇일까. 설탕 과자라는 의미의 taffy, 즉 Korean taffy로 하면 된다.

 

 

'너나 잘해' 표현:

 

남에게 쓸데없는 참견을 당했을 경우 Do your homework.(당신 숙제나 하시오) Mind your own business(네 일이나 신경써) Butt out(엉덩이 빼)이라고 하면 100% 가까운 의미전달이 가능하다.

 

이중 어려운 단어는 하나도 없다. 하지만 막상 말로 하려면 입안에서만 뱅뱅 도는(on the tip of my tongue) 경우가 많을 것이다.

 

Are you a boy?: 당신은 소년입니까? -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비아냥 투다. 미국인들은 "너같이 쩨쩨한 놈도 사내 녀석이냐?"는 경멸조로 자주 사용한다. 실제 비꼬는지 여부는 억양으로 알아듣는다.

 

여자에게 Are you a girl?이라고 한다면 말괄량이ㆍ왈패라는 뉘앙스다.

 

 

▶기사 도입부 '리드':

 

스펠링은 lead가 아닌 lede다. 아마 대부분의 언론인들도 착각하고 있을 것이다. 발음은 똑같다.

 

 

▶JapㆍNip:

 

일본인을 경멸하는 영어식 표현이다. 최근 한일관계가 역대 최악의 국면으로 치달으며 서로를 깔보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식민지 시절 '후테 센진'(말 안듣는 조선인)으로 불렸던 한국인들은 최근 친일파를 두고 '토착 왜구'란 표현을 쓴다.

 

쪽발이ㆍ왜놈 같은 거친말은 영어에도 존재한다. 2차대전때 하와이 진주만 폭격 이후 분노한 미국인들은 이후 Japan을 줄인 Jap(잽), Nippon(일본)을 줄인 Nip(닙)으로 일본인들을 폄하한다.

물론 우리가 쓰면 안되는 말이지만 알아듣는 것은 꼭 필요하다.

 

 

 

 

 

 

 

 

 

 

 

 

 

 

 

 

 

 

 

 

 

 


 


 


 

 

Germany

 

Steingaden

 

 


Wallfahrtskirche, Die Wies

 


 


 

! 마이 갓!
 

교회에 들어 서는 순간 사람들이 탄성을 내지른다.

로코코 예술의 화려한 예배당 풍경 때문이다.

창문을 통해 들어 온 빛은 벽과 천장에 부딪히고 사람의 심장에 박힌다.

그 찬란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로코코 양식은 프랑스 귀족사회의 생활에서 고안된 화려한 미술양식이다.

독일에서는 1720년 경부터 수십년간 로코코 양식이 건축계를 지배했다.

프랑스에서 처음 시작됐지만 독일에서 꽃을 피운 것이다.
 


 


 

특히 독일인들의 과묵함은 화려한 로코코 양식에 장중함까지 더했다.

건축물이 가볍지 않고 묵직하게 보이는 이유다.
 


 

 

 

비스 교회는 외부와 내부 모두 로코코 예술의 절정이라 할 수 있다.

교회는 도미니쿠스 침머만이 건축하고 그의 형인 요한 밥티스트 침머만이 내부 장식을 담당했다.

형제가 의기투합해 독일 로코코 건축의 금자탑을 쌓은 것이다.

비스 순례 교회는 198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교회로 가는 길은 조용하다. 독일 남부 한적한 시골길에 위치해 있는 작은교회.

그러나 주차장은 매우 넓다. 단체로 몰려 오는 순례객과 관광객이 매년 백만명이 넘기 때문이다.
 

 

 


 

 

교회 바로 앞에는 도넛을 파는 식당도 하나 있다. 독일 전통의 기름에 튀긴 동그란 도넛이다.

도넛은 설탕에 묻힌 것이 있고 묻히지 않은 것이 있다. 물론 설탕을 뿌린 것이 맛있다.
 


 

 

 

가격은 2유로. 맛이 얼마나 좋은지 더 먹으려 하다 포기하고 말았다.

슬프게도 나는 당뇨와 함께 살고 있다.
 


 

 

 

 

식당 옆은 소박하고 평화로운 농촌 풍경이 펼쳐져 있다.

목장이다. 누렁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소 몇 마리는 배가 부른지 교회 앞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다.

두덩에 누운 소라는 우리말이 생각나는 풍경이다.

목장 앞은 오래전부터 순례길이었다.
 


 

 

 

양옆으로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고 길게 이어진 예쁜 순례길.

이 길은 “쇠사슬에 묶인 예수상을 보기 위해 걷는 순례길이다.


 


 

 

예수상은 1734년 슈타인가덴 수도원에서 만든 것이다.

 


 


 

그러던 1738 6 14일 농부의 아내 마리아 로리(Maria Lory)

예수상이 눈물 흘리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순례객들이 몰려 오기 시작했다.

 

기록에 의하면 매년 7만여명의 순례자가 이곳에 와서 치유 받고 위안을 받았다고 한다.

쇠사슬에 묶인채 눈물 흘리는 예수상은 순례자들에게 큰 은혜를 주었다.

 

 

 

 


 

이후부터 비스 교회로 가는 길은 기독교인들의 순례길이 되었으며 전통적인 눈물 축제도 시작됐다.

281년의 역사가 있는 순례길이요 눈물의 축제다. 비스 교회는 일반 순례자들만 오는 것은 아니다.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 또는 자전거 동우회 등 특별한 사람들도 이곳을 방문한다.

 

 


 

 

 

순례길은 복잡하지 않은 시골길이어서 누구나 걸을 수 있다.

또한 교회에서는 원하면 누구나 결혼식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리려면 신랑과 신부 중 적어도

한 명은 카톨릭 교회에 속해 있어야 한다.

만약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로코코 교회에서 올린 결혼식이라 자랑하며 다녀도 좋을 것이다.


 


 

 


 

 

교회 제단 중앙에는 1780년 경 그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있다.

십자가 아래에는 막달라 마리아가 무릎 꿇고 앉았고 어머니 마리아는

왼쪽에서 기도하고 있으며 제자 요한은 예수님을 바라 보고 서있다.

예수님은 인간이 저지른 죄값의 고통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 가신 것이다.


 

 


 

벽의 그림 중에는 마태복음 18장에 나오는 빚을 탕감 받은 종의 이야기도 그려져 있다.

누가복음 15장에 등장하는 잃어버린 양을 찾은 목자가 양을 어깨에 메고 가는 그림도 보인다.

또한 죽었다가 다시 살은 아들을 위해 살진 송아지를 잡는 아버지의 모습도 그려 놓았다.


 

 

 

 

누가복음 18장에 등장하는 바리세인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를 그린 그림도 있다.

자신을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세리의 진지한 애통과 회개하는 모습이다.
 


 

 

 

 

수세기 동안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많은 은혜와 위로를 받았다.

그 중에는 예수를 믿는 사람도 있었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을 모르던 사람도 제단 그림을 보면 마음의 문을 열었다.
 


 

 

 

 

성가대 찬양을 통해서도 은혜를 받았다.

쇠사슬에 묶인 예수상을 보고는 그동안 지은 죄를 회개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어 올리는 짧은 주기도문.
 

그 고백 속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 사진: 서정

 


 

 

 

 

 

 

 

 

  

韓 중고생 흡연율 6.7%보다 낮은 4%

부모 교육·관여도 높아지며 일탈 감소 

 

“과거보다 신중한 세대

더 책임감 있어” 

학업 스트레스로 자살률은 되레 급증 

 

미국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10대들은 오픈카를 타고 음주와 마약, 섹스를 일삼는 ‘일탈’의 상징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이는 옛일이다.

 

오늘날 미국의 10대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 어느 세대보다 엄격하고 책임감 있는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음주와 흡연, 임신 등이 현저하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부모에 대한 의존도가 과거에 비해 훨씬 높아지면서 ‘말 잘 듣는’, ‘길들여진’ 10대들로 ‘교육’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미국 질병관리본부(CDC)가 10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18년 말 현재 30일 동안 ‘담배를 피운 적이 있다’고 응답한 10학년(한국의 고등학교 1학년)의 비율은 4%에 불과해 과거 최고치인 30%에 비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국 중고생의 흡연율 6.7%보다도 낮은 것이다. 반면 전자담배의 사용은 증가했는데, 조사 시점을 기준으로 10학년 가운데 16%가, 12학년(한국 고3) 가운데 21%가 ‘전자담배를 사용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술이나 약물에 대한 의존도도 크게 낮아졌다. 이번 조사에서는 10학년 학생 중 19%만이 지난 30일 중 ‘술을 마셔 본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

이는 1990년대 음주 경험이 있다는 답변이 40%가 넘었던 것과 비교하면 절반 이상 줄어든 것이다.

 

미시간대 연구팀의 조사에서도 지난 수십년 동안 술과 담배를 포함한 거의 모든 종류의 약물을 접하는 10대들의 수가 현저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성관계를 가져 본 적이 있는 11학년(한국 고2) 비율은 1991년 62%에서 현재 42%로 감소했다.

 

성관계를 가진 10대들은 특히 피임에 신경 쓰는 경향이 두드러졌고 이에 따라 10대 출산율도 절반 이하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계획되지 않은 임신을 예방하기 위한 캠페인을 전개한 ‘결정의 힘’(Power to Decide)의 책임자인 빌 앨버트는 “우리의 우려와 달리 요즘 10대들은 더 엄격해지고 더 책임감 있다”며 “이는 부모들의 교육과 관여가 많아지면서 일탈 행동이 줄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 앨버트는 “요즘 10대들은 과거와 달리 자전거를 탈 때 헬멧을 꼭 쓰는 ‘신중한 세대’”라면서 “이는 아주 긍정적인 뉴스”라고 덧붙였다.

 

10대들의 일탈은 현저하게 줄고 있지만 한국과 마찬가지로 학업 스트레스 등으로 인한 우울증과 불안감이 커지면서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청소년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2009년 이전까지 10만명당 9~10명 수준을 오르내리던 청소년 자살 규모는 2010년(10.5명)부터 계속 높아지는 추세로 바뀌었다.

 

뉴욕타임스는 “2017년 청소년 자살은 10만명당 14.46명까지 치솟았다”며 “이는 20년 만에 최고 수준”이라고 밝혔다.

 

자살하는 10대의 대부분은 총기를 사용해 목숨을 끊은 것으로 집계됐다. 동시에 약물을 접하는 청소년이 줄어들었음에도 과다 복용으로 인한 사망자는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CDC 관계자는 “10대의 자살률은 2010년부터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면서 “이는 학업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청소년 자살을 막기 위한 다양한 상담과 치유 프로그램 마련이 우리의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강조했다.

 

 

 

 

 

 

 

 

 

 

해마다 300만권 이상의 성경인쇄하고 있는 국내 최장수 인쇄 기업 ‘보진재’가 경영악화를 이유로 인쇄사업에서 철수한다고 밝혀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보진재는 지난 3일 전자공시시스템 ‘다트’를 통해 오는 11월부로 인쇄업 분야 영업을 정지한다는 소식을 알렸다.

 

“계속적인 적자 구조를 탈피하기 위한 인쇄업 철수”라는 영업정지 사유가 전해지면서 인쇄 산업의 위기를 실감하게 하고 있다.

 

보진재 관계자는 “10년째 적자가 이어졌다. 중단 사업부분 자산매각을 통해 회사의 수익성 및 재무구조 개선에 나설 계획”이라면서도 “사업구조 재편과 관련해서는 아직까지 전해진 바가 없다”고 사내 분위기를 전했다.

 

보진재는 지난 1912년 창업주 김진환 1대 사장이 설립한 이래 107년째 국내 인쇄 산업의 ‘큰손’으로 활약해 왔다.

 

현재는 창업주의 3대손인 김준기 사장이 보진재를 이끌고 있다.

1933년에는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을 인쇄했고 1955년부터 10년간 초등학교 국정 교과서를 찍기도 했다. 

 

특히 성경 인쇄에 있어서 상당한 기여를 했다. 보진재는 1920년대부터 성경과 찬송가 인쇄를 시작했다.

한 때는 전 세계 성경의 30%가 이곳에서 인쇄되기도 했다. 얇은 종이에 글씨를 새기는 '박엽지 인쇄 기술'이 여타 인쇄소에 비해 탁월했던 것이 주효했다.

대한성서공회(사장:권의현)도 지난 1956년부터 보진재를 통해 성경을 인쇄하기 시작했다. 올해로 63년째다.

 

대한성서공회의 한 관계자는 “인쇄로 가업을 이어온 보진재가 인쇄업계에서 지니는 위상은 상당하다. 성경과 관련해서도 국내뿐 아니라 해외 성경도 오랫동안 이곳을 통해 나왔다. 해외 성경의 경우 1973년부터 이곳에서 인쇄가 시작됐으니 벌써 46년째”라며 보진재의 인쇄사업 철수에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성서공회는 현재까지도 적지 않은 양의 인쇄 업무를 보진재에 맡기고 있다. 한 해 성서공회가 찍는 성경은 해외용 600만 부, 국내용 50만 부에 달한다. 이 가운데 절반 조금 못 미치는 분량이 보진재에서 인쇄되고 있다. 보진재에서도 성경이 차지하는 수익 비중이 전체의 10%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보진재는 최근 성서공회에 사업 철수 소식을 전했고 공회에서는 대응을 고심 중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예장백석·장종현 총회장)이 한동대학교 조교수였던 김대옥 목사이단적 사상 주장한다고 판단했다.

 

예장백석은 9월 2~4일 열린 42회 정기총회에서 "김대옥 목사는 성경을 임의적·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핵심적 교리에서 크게 잘못된 사상을 가르치며 이슬람과 동성애를 옹호하는 이단"이라며 교인들이 김 목사에게 가르침을 받지 않도록 교류와 참여를 금지해야 한다고 결의했다.

예장백석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이대위·김정만 위원장)는 김대옥 목사 설교 세 편, 저서 세 권을 대상으로 이단성을 분석했다.

 

포항의 한 교회에서 2017년에 한 '건강한 신앙을 위한 성숙한 성경 읽기', '예수님의 성경 읽기를 배운다', '예수께서 오신 이유'라는 설교와 <땅 위에 하늘을 짓다>·<갈릴리로 오라>(CLC), <구약성서와 꾸란의 대화>(예영커뮤니케이션)가 대상이다.

 

이대위는 김대옥 목사가 '인간론', '구원론', '신론' 등 핵심적 교리에서 크게 잘못된 사상을 가르쳤다고 했다. 설교에서 인간의 원죄를 부정하고 인간이 죄인인 점을 부정한다는 것이다. 설교 한 부분을 근거로 들었다.

 

"오늘날 교회는 이상하게, 그 죄 용서의 복음의 예수님을 믿고 산다는 교회가 이상하게도 예수님이 보호하시고 자유케 보내신 그 여인들을 뒷골목에서 돌로 쳐 죽이는 일을 비일비재하게 행하고 있어요.

'이거는 죄야, 동성애가 죄야, 뭐 낙태가 죄야, 뭐가 죄야'

왜 그렇게 교회가 죄에 사로잡혀 있는지. '죄론'에 사로잡혀 있는지.

예수님이 그토록 죄 없다 하기를 애써 탄핵까지 받아 가면서, 신성모독이라는 탄핵까지 받아 가면서도 죄 없다, 죄 없다, 죄 없다 하면서 사유하고 계시는데, 그 예수님을 믿는 교회가 여전히 정죄의 초점으로 성도들을 다루고 있다고 한다면, 교회는 다시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진짜 예수님이 오셔서 교회의 신학을 바꾸고 교회의 메시지를 바꾸고, 교회의 성도들 삶을 바꿔 주셔야만 합니다."

 

이대위는 이 부분이 '구원파'와 같은 맥락의 이단 사상이라고 했다. 이 설교는 김대옥 목사가 2017년 대림절에 '예수께서 오신 이유'라는 제목으로 한 설교의 한 단락이다.

 

반동성애 활동에 앞장서는 네이버 블로그 GMW연합 역시 이 설교를 짜깁기해 김 목사가 동성애를 옹호한다고 주장하는 동영상을 올린 적 있다.

 

하나님의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회복의 메시지라는 취지로 한 말은 '타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다원주의 구원론'이라고 이대위는 해석했다.

 

김대옥 목사는 저서 <땅 위에 하늘을 짓다>에서....

 "(하나님의 복음은) 한국인, 기독교인, 장로교인 등의 범주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온 지구인을 위한 기쁜 소식이다.

심지어 불교도, 이슬람교도, 힌두교도, 무속 신앙인과 같은 타 종교인들이라도 그 기쁜 현실로부터 배제되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온전한 형상을 회복하도록 초청하는 엄청나게 좋은 소식"이라고 썼다.

 

이대위는 이 부분을 예로 들며 김대옥 목사가 예수를 믿는 길 외에 다른 구원의 방법이 있다고 가르쳤다고 했다.

 

'희년 복음' 또한 이단성의 근거가 됐다. 이대위는 김대옥 목사가....

△복음을 경제적 분배 차원으로 변질시키며 경제적 질서를 전복하는 희년 복음 주장

△재산 분배에 의한 물질적 구원을 주장

△부자들은 재산 분배에 의한 물질적 구원

△부자들은 재산을 나눠 주는 것으로 구원받음을 주장

△성경의 율법을 경제 분배의 정의를 위한 것이라 주장했다며 복음을 재산 분배 수준으로 전락하게 하는 이단적 주장이라고 했다.

 

이대위는 김대옥 목사가 이슬람과 동성애를 옹호해 왔다고도 했다. 김 목사가 ....

△동성애를 죄라고 명시한 성경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동성애를 죄라고 말하지 않고

△정통 신학은 여성을 혐오한다고 주장하며

△성적 지향이 달라 동성애를 하는 이들 역시 하나님 백성이고 진정한 자유와 회복이 뒤따라야 한다고 하면서 동성애를 옹호한다고 했다.

 

특히 동성애의 경우, 한동대에서 논란이 된 모임 '들꽃' 지도교수를 담당했는데, 이 들꽃이 친동성애, 페미니즘 젠더 이데올로기를 주장해 교계에 논란이 됐다고 문제 삼았다.

 

 

 

 

 

 

 

아메리칸 갓 탤런트 시즌 14의 우승자 Kodi Lee(코디 리 22).

 

 

 



태어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는데다 자폐증까지 앓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 코디 리(22·한국이름 이태현)가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아메리카 갓 탤런트(AGT)’ 시즌 14 우승을 확정지었다.

 

코디 리는 이날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생방송으로 2시간 동안 진행된 미국 NBC 방송의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 ‘아메리카 갓 탤런트’ 최종회에서 5명의 결선 진출자를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앞이 보이지 않아 어머니의 도움으로 첫 등장했던 그가 마지막곡으로 선택한 곡은 영국 싱어송라이터 프레야 라이딩스의 ‘로스트 위드아웃 유(Lost Without You)’였다. 어머니를 위한 곡이었다.

 

약 3분간의 공연이 끝나자 객석은 ‘코디’를 외치는 엄청난 환호성과 박수갈채로 뒤덮였다.

 

심사위원들도 모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배우 가브리엘 유니언은 “그의 노래는 사람들이 가능하다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을 이룰 수 있다고 믿게 만든다. 마법 같다”며 감동을 감추지 못했다. 독설가로 유명한 사이먼 코웰도 “그는 놀라운 재능을 갖고 있다. 완벽한 스타다. 여러분들이 기억하게 될 참가자 중 한 명일 것”이라고 평했다.

 

그는 첫 무대부터 관중은 물론 심사위원들의 심금을 울렸다. 수준급 피아노에 혼신을 다한 듯 진한 울림을 주는 노래 실력에 무대마다 관중들은 기립박수를 보내고 심사위원들도 최고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의 곡이 끝나면 감격에 벅차 눈물을 흠치기 일쑤였다.

 

70. 80년대를 풍미했던 사이먼&가펑클의 폴 사이먼은 자신의 히트곡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Bridge over troubled water)를 편곡해 코디 리가 본선서 쓰도록 허용하기도 했다.

 

 

 

 

코디 리는 아메리칸 갓 탤런트에 출연한 첫 번째 자폐증 참가자이자 결승에 진출한 최초의 시각장애인 참가자이다. 그러나 그의 무대에서 장애는 보이지도 않고 걸림돌도 아니었다. 대중들은 코디 리가 역대 아메리카 갓 탈렌트 경연서 최고의 감동을 선사했다고 평가했다.

 

코디의 어머니인 티나 리는 아들이 음악을 통해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했다. 자폐증을 앓는 그에게 음악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식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의 가족에게 이번 우승은 더 특별했다. 티나는 코디 리가 이 프로그램 출연을 계기로 문장을 만들어 말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코디 리는 한국계 아버지와 흑인인 어머니 티나 리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계 3세이다.

코디 리는 이날 상금으로 받은 100만달러(약 12억원)를 어디에 쓸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그랜드 피아노를 색깔별로 사고 싶다”는 소박한 계획을 밝혔다.

 

 

 

 

 

 

 

 

 

 

 

최성은 목사가 지난 9월 8일 지구촌교회 제3대 담임목사로 취임했다. 교회를 개척한 이동원 원로목사와 그의 후임인 진재혁 목사에 이어 지구촌교회를 이끌게 됐다.

 

최 목사는 전임 진 목사와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목회해 왔다. 이번에 24년 만에 다시 한국에 왔다.

 

 

설교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이 십자가에 못박하신 것 외에는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는 것, 이것이 설교자가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자세가 아닐까요? 강단이 변질되는 가장 큰 원인은 순수한 복음에 물을 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 한 분만으로 충분하다'는 고백이 설교자의 가슴에 있다면, 그 어떤 백 마디 말보다 더 큰 울림을 전할 것입니다."

 

오랫동안 한국을 떠나 있었던 것에 대한

걱정은 없으십니까?

 

"없지 않지만, 미국이든 한국이든, 인간이 처한 상황은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어느 나라에 사는 누구라도 복음이 필요한 것은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에 복음의 분명한 메시지, 곧 '텍스트'(Text)를 계속 선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상황이라는 '콘텍스트'(Context)를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복음의 본질이지 않습니까? '영원불변'한 하나님의 말씀인 텍스트를, '오늘 여기'라는 콘텍스트 속에서 균형을 잃지 않고 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가 위기라고들 합니다.

목사님은 어떻게 진단하십니까?

 

"여러 면에서 위기인 것만은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 하나로 '반기독교 문화'를 꼽고 싶습니다. 한국은 이미 1980년대 후반부터 기독교 후기 사회로 빠르게 진입했습니다. 다만 그 때는 그래도 교세가 컸기에 당장 피부로 느끼지 못했을 뿐이죠. 그래서 미리 준비하지 못했고, 그 결과가 지금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는 유럽에서 먼저 나타났던 현상이기도 합니다.

 

다시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붙들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엔 이런 말들이 우리 가슴을 뛰게 했지만 지금은 가장 인기 없는 주제가 되어 버렸어요. 대신 개인의 치유와 회복을 우선합니다. 당연히 이것이 중요하고 우리의 신앙에서 매우 필수적인 부분인 것만은 변함이 없으나,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교인들로 하여금 그런 균형을 맞추도록 하는 것이 또한 설교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설교의 초점이 지나치게 개인에만 맞춰지면 하나님 나라를 보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균형 잡힌 설교로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이뤄가는 사명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매우 구체적으로 전달해야 합니다. 바로 '기독교 세계관'입니다. 그런 확고한 세계관이 있어야 그것을 가지고 교회 안에서만이 아닌 밖에서도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그동안 이런 점에 소홀하지 않았는지, 저 스스로도 반성해 봅니다."

 

미국에 있는 한국인 기독교인들은

한국을 어떻게 바라보나요?

 

"'짝사랑'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리워하는 마음이 큽니다. 그들이 자주 쓰는 '조국'(祖國)이라는 말에 그런 감정이 진하게 배어 있어요. 그런 조국이 없다면 이민자로서 그들의 정체성도 사라지는 것이기에, 한국을 걱정하는 마음이 한국에 있을 때보다 훨신 더 큰 것 같습니다.

 

또 한국을 밖에서 볼 수 있으니 좀 더 객관적인 시각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민 교계가 한국을 위해 기도를 정말 많이 하고 있어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도 사실 이민자들이 주인공이었습니다. 야곱, 요셉, 느헤미야, 에스더, 다니엘 등이 다 그런 이민자들이었으니까요. 하나님께서 광야의 훈련을 통해 이민자들로 하여금 조국을 더 사랑하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최성은 목사

침례신학대를 졸업하고 미국 남침례신학대학원(The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학석사(M.Div)와 박사학위(Ph.D)를 취득했다. 수원중앙침례교회 대학부 전도사를 거쳐 2004년 10월 미국 남침례교단 소속 미국 내 선교사로 다리놓는교회(Bridge Community Church)를 개척했다. 2011년부터 9년 동안 미국 워싱턴주 타코마제일침례교회 담임목사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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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한국에서 파송된 선교사의 아들이 남미에서 대통령 선거 후보로 나서게 됐다. 볼리비아 야당인 기독민주당(PDC) 대선 후보인 정치현(49) 목사가 주인공이다.

 

한국인이 해외에서 대권 후보로 도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선교사 2세가 복음 전파를 위해 파송국 선거전에 뛰어든 것도 드문 일이다.

 

 

정 목사는 말라기 1장 11절 말씀을 인용했다.

정 목사는 “만군의 여호와는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그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면서 “해외 각지에서 복음 전달 사명을 위해 노력하는 선교사와 자녀분들 모두 스스로 밟고 있는 땅에서 역사를 만들어 내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언어적 재능과 문화적 이해도라는 선교사 가족의 자산을 갖고 그 나라를 섬기려는 마음이 있으면 빛나는 한국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1970년 한국에서 태어난 정 목사는 1982년 부친 정은실(82) 선교사와 함께 볼리비아 산타크루즈에 정착했다.

 

부친은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세계선교부 파송 선교사로서 순천노회 출신이며 볼리비아기독대(Ucebol)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볼리비아기독대는 신학과와 의학과를 중심으로 한 종합대학으로, 선교사가 세운 학교란 점에서 ‘볼리비아의 연세대’로 불리곤 한다.

 

아들 정 목사는 볼리비아 하비에르국립대에서 의학을 전공한 외과의사다. 볼리비아기독대학병원장을 맡고 있는 동시에 산타크루즈 밴디션교회를 이끌고 있다.

 

볼리비아 대선은 오는 10월 20일로 예정돼 있으며 2005년부터 15년간 집권한 사회주의 노선의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의 4선 연임 저지 여부가 쟁점이다. 정 목사는 침체된 볼리비아에 한국의 새마을운동과 기독교 정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볼리비아 사람들도 다 압니다. 한국이 6·25전쟁 직후 세계 최빈국에서 한강의 기적을 통해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는 사실을 말이죠.

 

많은 사람이 제게 그 비결을 물어보는데 전 두 가지로 대답합니다.

새마을운동기독교 정신입니다. 볼리비아가 빈곤에서 탈출하고 나태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한국의 새마을운동 정신과 훈련과정 도입이 필요합니다.

한국의 기독교는 남미의 신비주의적 종교들과 다릅니다. 장로교의 성경 말씀 위주 신앙은 이성에 어긋나지 않으면서 절제와 봉사를 강조합니다. 이 정신의 확산을 위해 노력할 겁니다.”

볼리비아는 리튬 철광석 희토류 등을 다량 보유한 자원 강국이다. 정 목사는 “한국의 현대차 삼성전자 등과 협력해 리튬전지를 이용한 하이브리드 및 전기자동차 생산 시설을 유치하고 희귀 금속을 이용한 스마트폰 제조 공정도 도입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1. 생명의 지혜 - 하나님을 아는 지식 -

 16. 믿음 - 감화와 확신 -

  2. 성경 - 하나님의 특별한 학교 -

 17. 회개 - 옛 사람 죽음, 새 사람 삶 -

  3. 말씀과 성령 - 말씀하시는 말씀 -

 18. 그리스도인의 삶 - 자기 십자가 삶 -

  4. 삼위일체 하나님 - 한 본질 세 위격 -

 19. 이신칭의 -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 -

  5. 피조물 -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 -

 20. 성화 - 그리스도의 중보로 거룩함 -

  6. 사람 - 하나님을 예배하는 존재 -

 21. 그리스도인의 자유 - 순종의 자유 -

  7. 하나님의 섭리 - 하나님의 손 -

 22. 기도 - 하나님과의 친밀한 대화 -

  8. 원죄, 자유의지 - 하나님의 은총 -

 23. 하나님의 예정 - 영원한 작정 -

  9. 율법 - 올바른 삶의 규범 -

 24. 최후의 부활 - 부활소망 영원한 복 -

 10. 복음 - 영생의 언약 -

 25. 참 교회 - 그리스도와 연합된 교회 -

 11. 중보자 그리스도 - 중보의 필연성-

 26. 교회의 직분 - 경건과 사랑 -

 12. 그리스도의 사역 - 신성 인성 교통 -

 27. 교회의 권세 - 교리 입법 사법 -

 13. 구속자 그리스도 - 비하와 승귀 -

 28. 성례, 세례 - 은혜의 보이는 표 -

 14. 그리스도의 대속 - 하나님의 의 - 

 29. 성찬 - 성도들의 영적 잔치 -

 15. 성령 - 권능, 은밀한 사역 -

 30. 국가 - 하나님 섭리가 통치 -

 

 

 

 

 

 

 

 

 

 

 

 

 

 

 

 

 

 

 

 

 



 

1. 도리도리   2. 좌우로 회전,
3. 앞뒤로 끄덕임, 4. 좌우 옆으로

 

 

 

 

 

 

 

 

 

 

 

 

 

 

 

몇 분 혹은 몇 시간 동안 지속되는 가슴(가슴뼈 바로 뒤)에서 타는 느낌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식사를 마칠 때마다 이 증상이 나타납니까? 주의하세요. 만성적인 속쓰림일 수도 있습니다.

 

위산 역류나 위식도 역류질환(GERD)의 증상인 속쓰림은 식도열공탈장(hiatal hernia: 식도열공헤르니아)이나 헬리코박터균 감염으로 인해 위산이 식도로 올라갈 때 발생합니다. 이를 경험하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불편함을 줄 수 있습니다. 또한 인후통, 장기적인 기침 및 쉰 목소리와 같은 다른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좋은 소식은 간단한 가정 치료법으로 만성 속쓰림이 해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약물 개입 필요성을 없애줍니다. 다음은 속쓰림을 없애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나열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방법이 가장 적합한지 시도해 보세요.

 

 

속쓰림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위산 역류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위산 역류는 전형적으로 하부 식도 괄약근이 불규칙적으로 이완되어 위산이 식도 뒤로 이동하는 경우 발생합니다. 이것이 고통스러운 속쓰림의 원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산의 과잉 생산으로 인해 역류가 발생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위산양이 적어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특히, 졸링거-엘리슨 증후군(Zollinger-Ellison syndrome)에 걸렸을 때와 같이 위산이 과다 분비되어 속쓰림이 발생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러나, 적은 위산의 양 이외에도 위산 역류의 원인은 다양합니다. 그중 하나는 식도열공탈장인데, 이는 위 일부가 횡격막에 위치한 구멍의 틈을 통해 위로 돌출되는 것을 말합니다.

 

 

속쓰림을 없애는 방법: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자연적인 해결책

 

만약 속쓰림을 빨리 없애고 싶다면, 그 치료법은 바로 부엌 찬장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음은 속쓰림을 빠르게 완화하거나 아예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몇 가지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유기농 생사과 사이다 식초(ACV: 자연발효 사과식초)를 사용해 보세요 — 

 

위산 역류는 실제로 위산이 매우 적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따라서 자연발효 사과식초는 역류가 발생하지 않도록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간단히 식초 한 큰술을 물 한 컵에 섞어서 마시기만 하면 산도가 좋아집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에 관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한 연구는 자연발효 사과식초가 일부 사람들의 속쓰림 증상을 완화했지만, 그 효과는 60분에서 75분 정도만 지속되었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베이킹소다(중탄산 나트륨)을 사용해 보세요 — 

 

이는 일반적인 해결책으로 권장되지는 않지만, 속쓰림로 인해 심한 통증이 있을 때 유용할 수 있습니다. 베이킹소다 반 티스푼을 물 반 컵에 녹여서 마시면 됩니다. 이렇게 하면 위산을 중화하고 타는 듯한 속쓰림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알로에 베라 주스를 마시세요 — 

 

식사 전 알로에 베라 주스 반 컵을 마시는 것은 실제로 염증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속쓰림을 완화할 수 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알로에는 위식도 역류질환(GERD) 증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알로에 베라 주스는 완하제 성분이 있으므로, 사용하는 브랜드가 이 효과를 제거했는지 확인하세요.

 

신선한 생강 뿌리 차 한 잔을 즐기세요 — 

 

많은 양의 식사를 할 것이라면, 식사를 시작하기 최소 20분 전에 생강차 한 잔을 마시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끓는 물 두 컵에 생강 뿌리 약 5cm(2인치) 정도를 5분간 담근 후 마시면 됩니다. 생강은 항염증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식도 괄약근을 조여 위산의 역류를 예방합니다.

 

특정 음식이나 허브를 식단에 포함하면 위산 역류와 속쓰림을 완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다음은 그러한 음식과 허브의 몇 가지 예입니다.

 

 

회향(펜넬) — 순한 감초와 같은 풍미를 가진 이 바삭바삭한 채소는 위 기능을 향상시켜 산 역류 환자에게 이상적입니다. 채소 샐러드에 섞어 먹거나, 간식으로 생채소를 먹어보세요.

파파야 — 한 연구에 따르면 효소 파파인은 소화를 촉진하여 속쓰림, 과민성 대장 증후군(IBS) 및 변비가 있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파인애플 — 파인애플 속에 브로멜린은 항염증 특성을 가진 단백질 분해 효소의 역할을 합니다. 브로멜린 보충제 또한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발효 채소와 같은 발효 식품 — 이들은 장내 세균을 균형 있게 유지하고 소화를 도와 장이 다시 좋은 박테리아가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입니다. 고품질의 프로바이오틱스(유산균) 보충제 또한 실행 가능한 선택안입니다.

감초 뿌리 — 감초는 실제로 염증성 프로스타글란딘을 차단할 수 있기 때문에 약간의 이점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초에는 활성 글리시레트산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주의해서 사용하세요.

다량의 감초는 부신에 영향을 미치는 고알도스테론증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고혈압, 마비 및 근육 약화와 같은 증상을 유발합니다. 대안으로, 문제 성분을 제거한 감초 뿌리를 시도해 보세요.

이뇨제나 자극성 완하제를 복용하는 경우 감초 사용을 자제하세요. 또한, 감초는 칼륨 수치를 낮추고 신체의 호르몬 활동에 영향을 미쳐 호르몬 치료를 받는 여성이나 에스트로겐 의존성 암, 자궁 내막증 및 기타 생식 조건이 있는 여성에게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느릅나무(Slippery elm) — 이는 염증성 장 문제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항산화제를 함유하고 있습니다.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 병원(Penn State Hershey)에 따르면, 느릅나무는 위장기관에 위치한 신경 종단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입, 목, 위 및 내장을 코팅하고 진정시킵니다. 느릅나무를 섭취하면 더 많은 점액이 생산되어 위장기관이 궤양 및 과도한 산성으로부터 보호됩니다.

카모마일 — 취침 전에 카모마일 차 한 잔을 마시고 속쓰림이 완화되는 데 도움이 되는지 확인해 보세요. 카모마일은 염증을 진정시키고 숙면을 도와줍니다.

 

마지막으로, 속쓰림을 완화하기 위해 특정 영양소 섭취를 최적화할 수 있습니다. 해당 영양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 아스타잔틴 — 이 해양 카로티노이드는 위약과 비교할 때, 특히 헬리코박터 파이로리 감염(H. pylori infection)이 심한 사람들에게 산 역류 증상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적절한 양을 결정하려면 의사와 상담하세요. 이 보충제를 다량 복용하는 것에 관해 기록된 유일한 부작용은 피부가 약간 붉어지는 것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부작용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엽산 및 기타 비타민B 복합체 — 이러한 영양소를 충분히 섭취하면 산성 역류 발생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아스파라거스, 간, 시금치, 오크라와 같은 음식에서 이러한 영양소를 얻을 수 있습니다.

8가지 생활 습관 변화로 속쓰림을 극복하는 방법

 

속쓰림은 때로 특정 습관에 의해 유발될 수 있습니다. 일상생활의 간단한 변화도 이를 완화하는 데 필수일 수 있습니다. 다음은 속쓰림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되는 몇 가지 생활 습관입니다.

 

  1. 건강한 몸무게를 유지하세요 — 만약 비만이나 과체중이라면, 체중 감량을 고려하세요. 살은 위장에 압력을 가하여 더 많은 산이 식도로 강제로 이동하게 할 수 있습니다.

  2. 편안한 옷을 입으세요 — 너무 꽉 끼는 옷은 위에 압력을 가하고 속쓰림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3. 적은 양으로 자주 드세요 — 이를 통해 위는 음식을 더욱 효과적으로 소화하고, 소화 효소 생산을 조절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또한 과다한 음식물 섭취는 하부 식도 괄약근을 열리게 하므로 이는 좋은 전략입니다.

  4. 가능하다면, 불필요한 약물 복용을 피하세요 — 일부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약(OTC)과 처방 약은 속쓰림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항우울제, 항불안제, 혈압약, 항생제, 골다공증약, 니트로글리세린 및 진통제가 이에 포함됩니다.

  5. 왼쪽으로 누워 주무세요 이것은 산이 식도 괄약근으로부터 멀리 있게 하여, 다시 위로 올라갈 위험을 감소시킵니다.

  6. 특히 식사 후에는 올바른 자세를 유지하세요 — 이렇게 하면 소화 산이 위의 상단이나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7. 금연하세요 — 하부 식도 괄약근은 흡연 시에 이완 및 개방되는데, 이는 산 역류를 유발합니다. 또한 위산 생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8. 산 역류를 유발하는 음식을 파악하세요 — 특정 음식이 산 역류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음식이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음식 일기를 작성하세요. 그러면 적극적으로 피할 수 있습니다.

 

속쓰림은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관리할 수 있습니다

 

속쓰림은 귀찮고 고통스러운 질환이 될 수 있지만, 약물에 의지하는 것은 실행 가능한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오히려, 그 해답은 내장의 자연적인 위 균형과 기능을 회복시키는 데 있습니다.

 

실제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이 내장 건강을 다루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가공식품에는 미생물을 변화시킬 수 있는 당분이 함유되어 있어서, 해로운 미생물의 과도한 성장을 촉진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건강한 식단을 섭취하는 데 좀 더 적극적으로 행동해서 상태를 완화하거나 심지어 발생하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