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ll all my song shall be
nearer, my God, to Thee,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여전히 내가 부를 모든 찬송은 ‘나의 하나님 당신께 더 가까이’가 될
것입니다.
Nearer, my God, to Thee,
nearer to Thee!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나의 하나님 당신께 더 가까이, 당신께 더 가까이 (가려 합니다)
2절
Though like the wanderer,
the sun gone down,
내 고생 하는 것 옛 야곱이
방랑자처럼, 비록 해가 지고
Darkness be over me, my rest
a stone;
돌 베게 베고 잠 같습니다.
어둠이 나를 덮치더라도, 내가 쉴 곳은 하나의 돌 밖에 없습니다.
Yet in my dreams I'd be
nearer, my God, to Thee,
꿈에도 소원이 늘 찬송하면서
그래도 나의 꿈은 나의 하나님 당신께 더 가까이 있기를 바라나이다.
Nearer, my God, to Thee,
nearer to Thee!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나의 하나님 당신께 더 가까이, 당신께 더 가까이 (가려 합니다)
3절
There let the way appear
steps unto heav'n;
천성에 가는 길 험하여도
(바로)그곳에 길이 나타나게 하시고, 하늘에 이르는 계단을 보이시네.
All that Thou sendest me in
mercy giv'n;
생명 길 되나니 은혜로다
당신이 내게 보내신 모든 것은 은혜로 주신 것.
Angels to beckon me nearer,
my God, to Thee,
천사 날 부르니 늘 찬송하면서
천사들이 나를 더 가까이 부른다네. 나의 하나님 당신께 더 가까이
가옵니다.
Nearer, my God, to Thee,
nearer to Thee!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나의 하나님 당신께 더 가까이, 당신께 더 가까이 (가려 합니다)
4절
Then with my waking thoughts
bright with Thy praise,
야곱이 잠 깨어 일어 난 후
그 때, 온전한 정신으로 당신을 찬양함으로 밝게 빛날 것입니다.
Out of my stony griefs
Bethel I'll raise;
돌단을 쌓은 것 본받아서
나의 돌 베게 같은 슬픔으로부터 베델을 들어 올립니다.
So by my woes to be nearer,
my God, to Thee,
숨질 때 되도록 늘 찬송하면서
그래서 나의 간절한 소원은 나의 하나님 당신께 더 가까이 있는
것입니다.
Nearer, my God, to Thee,
nearer to Thee!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나의 하나님 당신께 더 가까이, 당신께 더 가까이(가려합니다)
예루살렘 돌로로사 그 마을에서는
좁은 길을 넓히려는 병정들
끌려가 죽음당할 한 남자를 보려하는 군중들
가시관을 머리 쓰고 고통스런 그 모습
채찍의 상처에선 피가 흐르고
고통의 걸음마다 죽음 부르는 사람들의 함성
고통의 길 돌로로사 그 작은 마을에
양과 같은 예수 왕중왕 주 예수
당신과 나에 대한 사랑으로 고통의 길 가네
고통의 길 돌로로사 갈보리 언덕으로
가시관을 머리 쓰고 고통스런 그 모습
채찍의 상처에선 피가 흐르고
고통의 걸음마다 죽음 부르는 사람들의 함성
고통의 길 돌로로사 그 작은 마을에
양과 같은 예수 왕중왕 주 예수
당신과 나에 대한 사랑으로 고통의 길 가네
고통의 길 돌로로사 갈보리 언덕으로
고통의 걸음마다 죽음을 부르는 사람들의 그 함성
고통의 길 돌로로사 그 작은 마을에
양과 같은 예수 왕중왕 주 예수
당신과 나에 대한 사랑으로 고통의 길 가네
고통의 길 돌로로사 갈보리 언덕으로
고통의 길 돌로로사 갈보리 언덕으로 ...
성지 이스라엘을 순례하는 사람이라면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까지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걸어보는 것을
영광으로 여긴다.
비아돌로로사(VIA DOLOROSA)로 불리는 이 길은 원래 “아픔의 길” 혹은 “슬픔의 길”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죄 없는 몸으로 재판에 회부되어 사형언도를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신 것이다. 그리고는 온갖
조롱과 멸시를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신 것이다.
순례자들을 위한 이 “십자가의 길”은 1294년 리칼두스 신부에 의해 대략 위치가 정해졌다고 하는데, 그 후 1540년경
프란체스코 수도사들에 의해 지금의 코스가 확정되었다고 한다.
당시 예수께서 걸으셨던 길과는 실제적으로 다를 수도
있으나 이 길을 걷는 우리에게 무한한 감동과 의미를 안겨준다. 이 길은 예수님께는 고난의 길이요 슬픔의 길이었지만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생명의 길이었고, 구원의 길이었다.
이 “십자가의 길”은 예수님의 빌라도 법정에서부터 골고다 언덕을 올라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까지의 전 과정을 모두
14지점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순례자들은 각 지점을 통과할 때마다 발을 멈추고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다.
제1처 : 예수님께서 십자가형을 선고 받으신 곳
제2처 : 십자가형을 받으신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신 곳
제3처 : 십자가를 지고가다 처음 넘어지신 곳
제4처 : 예수께서 모친 마리아를 만난 곳
제5처 :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십자가를 대신 진 곳
제6처 : 베로니카라는 여인이 예수님의 얼굴에서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은 곳
제7처 : 예수께서 두 번째로 넘어지신 곳
제8처 : 예수께서 우는 여인들을 위로하신 곳
제9처 ; 예수께서 세 번째로 넘어지신 곳
제10처 : 로마 군인들이 예수의 옷을 벗긴 곳
제11처 :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곳
제12처 :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신 곳
제13처 : 운명하신 예수님을 땅에 내린 곳
제14처 : 예수님의 사체를 무덤에 장사지낸 곳
순례자들은 십자가를 직접 메고 예수님이 걸으셨던 그 길을 따라 행진하며 올라가기도 하는데, 이 길을 걷노라면 당시
예수님이 당하신 고통을 체험하면서 한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가 비아돌로로사를 찾았을 때 기대와는 전혀 상반된 혼란의 길이라는 인상이 강하게 다가왔다.
지저분한
고도(古都)의 좁은 길, 그 양쪽으로 밀집하여 상점이 들어서고, 물건을 팔려고 떠드는 상인들이 순례자들과 엉켜 밀고 밀리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어서 조용히 묵상하며 걷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곳이 그렇게 걸어보고 싶고 그리워했던 길이란 말인가?
그러나 나의 실망은 곧 새로운 깨달음으로 바뀌었다. 이 복잡하고도 혼란스러운 비아 돌로로사는 바로 십자가를 지고 이 길을
걸으셨던 예수님께서 구원하시려는 이 세상을 상징하는 현장이라는 사실을 개달았기 때문이다.
만일 이 세상이 깨끗하고, 모든
사람들이 성자 같다면 예수는 세상에 오실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
그렇다. 예수가 그러했듯이 그 길을 걸어보자.
나는 주변에 시선을 빼앗기다 보면 집중력을 잃어 감동이 반감될 것을
염려되므로 가능한 한 땅만을 바라보고 찬송을 하고 기도를 드리면서 올라가보자. 그리고 그 위대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적
고통과 비전을 찾아보자.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며 발길을 옮겼다.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걷다.
첫 번째 장소,
곧 비아 돌로로사가 시작되는 곳은 예수님이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은 빌라도
법정이다. 예루살렘 동편의 사자문인 스데반 문을 통해서 들어간다. 문을 지나 약 250m쯤 완만한 언덕을 올라가면 왼편
계단 위에 아랍인 초등학교가 있다. 바로 이 학교가 로마 총독 관저가 있던 곳이요, 예수가 재판 받은 장소라고 한다.
이곳에는 당시의 박석(薄石:넓고 얇게 뜬 돌)과 이 재판이 자기와는 관계없다고 손을 씻었다는 빌라도의 물그릇이 남아 있다.
성 금요일 아침 일찍, 유대인 산헤드린 공회에 의해서 고소당하신 예수께서 가야바의 집에서부터 끌려와 재판 받으신
장소이다. 이곳의 서쪽에는 도로 포장된 광장의 박석이 있는데, 이것은 로마 군인들의 훈련과 사열, 휴식처로 쓰이던 장소라고
한다.
이 빌라도의 법정, 안토니 요새에서 예수께서는 조롱을 당하시고 사형선고를 받아 골고다를 향한 행진을 시작하신 것이다.
이곳에 서면 당시 예수께서 수많은 조롱자들과 로마 군인들에게 둘러싸여 인류를 위한 대속의 길을 출발하시는 것이 보이는
듯하다.
* 제1지점 : 예수께서 심문받던 곳(상),
십자가 형을 선고 받은 빌라도 법정 *
두 번째 장소는 ...
사형 선고를 받으신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신 곳으로 제1지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빌라도의 병정들은 이곳에서 예수를 채찍질하고, 가시 면류관을 씌우고, 온갖 조롱을 다 퍼부은 후 십자가를 지게
하였다. 이곳에는 지금 채찍질교회와 선고교회가 한 울타리 안에 기념교회로 서 있다.
채찍질교회는 1839년 로마 캐톨릭
소속 교회로 지어졌고, 1929년에 십자군 시대의 건축 양식으로 개조되었다.
이 작은 교회의 전면에는 십자가를 지신 예수의
성화가 그려져 있고, 제단 위 천장에는 가시면류관을, 앞쪽에는 채찍질하는 장면을. 남쪽에는 기뻐하는 바라바를, 북쪽에는
빌라도가 손을 씻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순례객의 마음을 찡하게 한다.
* 제2지점 : 채찍질교회(상), 선고교회 내에 걸린 십자가를 지신 성화(하) *
세 번째 장소는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다가 힘에 겨워 쓰러진 곳이다. 제2지점에서 약한 경사로를 따라
가다가 다시 약한 경사로를 따라 내려가 만나는 삼거리에서 왼편으로 꺾어지면 바로 제3지점이다. 이곳에는 폴란드 카톨릭에서
1856년 세운 작은 교회가 이 자리를 기억해 준다. 학자들에 의하면 십자가는 통상 약 70㎏ 정도의 무게가 된다고 하는데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이 돌길을 오르신 것이다.
제3지점 : 예수께서 첫번째로 쓰러지신 곳(상), 교회 내부의 성화(하) *
네 번째 장소는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다 모친 마라아를 만났다고 하는 곳이다. 제3지점으로부터 약
15m 거라의 왼편 좁은 문 위에 예수와 성모 마라아가 만나는 모습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 두 분이 만나 눈을 마주치면서
슬픔과 고통을 주고받는 모습이다. 이 장소에는 아르메니아(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의 지방)사람들이 세운 아담한 교회가 있다.
* 제4지점 : 예수께서 슬퍼하는 모친 마라아를 만난 곳(상. 하)
*
제5지점은 구레네 지방(오늘의 리비아) 출신인 시몬이라는 사람에게 십자가를 대신 지게 했다는 곳이다.
제4지점에서 약 20m쯤 내려가서 오른편으로 꺾어지면 골고다로 올라가는 가파른 언덕길이 시작되는데, 이 오른쪽으로 꺾어지는
왼쪽 코너 지점이 바로 제5지점이다. 이 장소에는 프란체스코회에 속하는 작은 교회가 서 있다.
* 제5지점 : 시몬이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지신곳(상),
대신 지고 있는 모습(하) *
제6지점은 베로니카라는 여인과 관련된 곳이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기진해서 이곳을 지날 때, 베로니카는
땀을 흘리는 예수에게 다가가 손수건으로 얼굴에서 흐르는 땀을 닦아드렸다는 곳이다.
이 여인이 누구인지 성서에 명확하게
나오지는 않지만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다가 예수의 옷에 손을 대어 병이 나은 여인으로 추측하고 있다.
땀을 닦고 돌려준
뒤 이 손수건에는 예수의 초상화가 새겨졌는데, 이 손수건은 로마 피에트로 대성당에 보존되다가 교황 요한 5세가 그림으로
남긴 뒤 치우라고 명령한 뒤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도 역시 카톨릭 소속의 가념교회가 세워져 있다.
* 제6지점 : 여인이 예수의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아준 곳 *
제7지점은 예수께서 골고다로 향하다가 두 번째로 쓰러지신 곳으로 제6지점에서 약 50m 정도 떨어져 있다.
바로 옆의 건물에 제7지점의 표시가 부착되어 있다. 당시에는 성벽 밖으로 이어지는 문이 있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부터 골고다 언덕으로 오르는 길은 더욱 좁아지고 경사는 급해진다.
* 제7지점 : 예수님이 두 번재로 쓰러지신 곳 *
제8지점은 예수께서 울면서 따라오는 예루살렘 여인들을 향하여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말씀하신 장소다. 이곳에는 희랍정교회에 속하는 수도원이 있다.
* 제8지점 : 예수께서 우는 여인들을 위로하신 곳(상),
예수님의 손바닥 자국(하) *
제9지점은 예수께서 골고다 언덕을 거의 다 올라간 지점에서 세 번째로 쓰러졌다는 곳이다. 이곳은
제8지점에서 직선거리로 4-50m 떨어진 곳인데, 지금은 시장으로 막혀서 시장길을 따라 꽤나 돌아가야 한다. 이곳은
28개의 돌계단 위에 있는 성묘교회로 들어가는 문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 제9지점 " 예수님이 세 번째로 쓰러지신 곳(상,
하) *
제10지점부터 14지점은 모두 골고다 언덕 정상에 세워진 성묘교회(聖墓敎會: Church of the
Holy Sepulchre) 안에 있다.
로마 병사들이 예수의 옷을 벗긴 곳(제10지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곳(제11지점), 예수를 매단 십자가가 서 있던 곳(제12지점), 십자가에서 예수를 내려놓은 곳(제13지점)들이다. 이
사건은 모두 예수가 골고다 언덕 위에 도착해서 일어난 일과 관련된 곳들이다.
그리고 제 14지점은 예수가 묻히신 곳으로 성묘교회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성묘교회는 기독교 유적지의
중심이 되는 곳으로 예수가 십자가에 달렸던 골고다 언덕과 묻히셨던 무덤 부분을 다 포함해서 그 위에 세워진 웅대한 교회다.
그러므로 성묘교회는 십자가의 길, 비아 돌로로사의 마지막 장소인 예수께서 처형당하여 묻히신 장소에 세워진 교회로 ‘예수님
무덤교회’라고도 한다. 이 성묘교회는 서기 313년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명으로 건축되어 역사의 변천에
따라 많은 영욕을 겪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예수의 옷을 벗긴 제 10지점 앞에 서면 “발가락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사야 1:6)인 예수의 모습을 연상하게 되고, 이어 11지점과 12지점에선 십자가에 못을 박히시고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고통의 한 소리 지르시고 끝내 운명하신 모습이
선하게 눈이 들어온다.
이어 아리마데 요셉이 빌라도에게 청하여 예수의 시체가 내려지고,(요 19:38~39) 요셉은 그 시체를 깨끗한 고운
베로 싸서 바위를 파서 든 자기의 새 무덤 위에 그 시체를 모신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시체를 장사 지낸 제14처야말로
죽음으로 끝난 비극의 장소가 아닌 신성한 장소가 될 줄이야! 아무리 큰 돌을 굴려 막아놓았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예수는 다시 살아나셨고, 여기에는 계시지 않다.”(막
16:6)
* 제10지점 : 로마 군인들이 예수의 옷을 벗긴 곳 *
* 제11지점 :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
*
* 제12지점 :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신 곳,
십자가가 세워졌던 바위구멍(하) *
* 제13지점 : 운명하신 예수님을 땅에 내린 곳(시신을 내료놓은 자리와 염하는 모습)
* 제14지점 : 예수님의 사체를 장사지낸 무덤 *
* 빈 무덤(사망권세를 이기고 무덤에서 살아나셨다!) *
그리스도는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또 재림하실 것이다.
비아 돌로로사, 슬픔의 길, 고난의 길은 결국 승리의 길인
것을!
우리 순례단은 예수께서 안토니오 요새에 있었던
빌라도의 법정에서부터 골고다 언덕까지 십자가를 지고 가신
좁고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마지막 숨을 거두신 성묘교회의 한 모퉁이에서 찬송가 348장(마귀들과 싸울지라~영광 영괄 할렐루야)을
목청껏 부르는 것으로 비아 도로로사 순례를 마쳤다.
가슴에 스며드는 감격과 감동을 안은 채 우린 오래도록 손을 마주잡고
있었다.
마귀들과 싸울지라 죄악 벗은 형제여
담대하게 싸울지라 저기
악한 적병과
심판 날과 멸망의 날 네가 섰는 눈앞에
곧 다가오리라
영광 영광 할렐루야 영광 영광 할렐루야
영광 영광 할렐루야 곧 승리하리라
마귀들과 싸울지라 죄악 벗은 형제여
고함치는 무리들은 흉한 적군 아닌가
무섭고도 더러운 죄 모두 떨쳐 버리고
주 예수 붙들라
영광 영광 할렐루야 영광 영광 할렐루야
영광 영광 할렐루야 곧 승리하리라
마귀들과 싸울지라 죄악 벗은 형제여
구주 예수 그리스도 크신 팔을 벌리고
너를 도와주시려고 서서 기다리시니
너 어서 나오라
영광 영광 할렐루야 영광 영광 할렐루야
영광 영광 할렐루야 곧 승리하리라
십자가의 길을 슬픔과 감격으로 오른 우리 일행이 기도를 올리고 있다. 남상학
단 20초였습니다. 1994년 1월17일 새벽 4시31분, 동트기 전 고요는 그 짧은 순간 아비규환으로 바뀌었습니다.
LA 북서쪽 20마일 지점 노스리지에서 시작된 규모 6.7 강진이었습니다.진동과 동시에 벽과 천장이 무너졌고 땅이 솟아올랐습니다.
깨지는 소리, 무너지는 소리가 한꺼번에 뒤섞여 폭탄소리처럼 남가주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반경 85마일내 건물 4만여채가 무너져 60여명이 숨졌고, 5000여명이 다쳤습니다.
이 때 교회마다 새벽기도하러 나온 성도들이 예배당을 꽉 메웠습니다. 동양선교교회의 임동선 목사(2016년 9월24일 93세로 별세)께서 새벽기도를 인도하던 어느 날 이었습니다. 갑자기 기도하러 나온 성도들이 많아진 모습을 놓고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기도할까 합니다. 하나님, 가끔 적당히 흔들어 주십시오."
그렇습니다. 우리는 갈 곳이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환란을 당할 때 어디로 가겠습니까? 갈 곳이 없습니다. 주님 앞이 아니면....
그리고 그곳이 가장 안전합니다. 또한 온전합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나아가 무슨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울다 못해 울보가 되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린아이가 울어대면 엄마는 모든 일손을 내려놓으십니다. 꼭 끌어앉고 젖부터 먹이십니다. 어린아이에게 논리가 필요한가? 계산이 필요한가? 학식이 필요한가? 경험이 필요한가? 그냥 울기만 하면 됩니다. 엄마가 아니면 나는 죽는다고 울면 됩니다.
예수믿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도 없는 눈물의 백신이 있습니다. 그냥 울면 안 됩니다. 주님 앞에서 울어야 합니다. 주님을 향해 울어야 합니다. 주님의 옷자락을 붙들고 울어야 합니다. 아니 십자가를 붙들고 울어야합니다. 그 눈물이 치료의 백신이 되는 것입니다.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애통의 눈물로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야합니다. 이 환란의 비바람이 지나가도록, 성령의 임재와 함께 울며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것이 이 재난을 피할 유일한 길입이다.
개인간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로 사회 단절의 고통이 미묘한 사회적 고통을 앓게 하고 있습니다. 국가간 통제로 국제 사회의 이동의 단절이 고난의벽을 만들었습니다.세계 경제의 지표가 나락으로 떨어져, 모든 기업과 사업체가 쓰나미를 만나고 있습니다.
수많은 생명이 죽어가는 위기 속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의 백신을 만들기 위해 과학자들과 의료진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때, 참으로 성도들이 찾아야할 백신, 교회 공동체가 찾아야할 백신은 무엇인가? 바로 영혼의 백신, 눈물의 백신입니다.
우리 육체에는 3가지 액체가 존재합니다. 땀과 피, 그리고 눈물입니다.
이 세 가지 액체는 생명을 유지하고 삶의 원동력이 됩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액체는 오직 건강한 생명체에서만 흘러나옵니다.
특별히, 하나님 앞에서 흘리는 눈물은 영혼을 살리고, 깨끗하게 하고, 활력을 더 해주는 활력소가 되는 것입니다.
내 영혼의 눈물이 마르지 않았는가? 스스로 자기 성찰과 자기 점검이 필요할 때입니다. 육체적으로 물질적으로 사재기 현상이 보편화된 지금, 성도들이 할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신의 영혼에 눈물이 있는가 살피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애통이란 말씀의 헬라어 원문은 동사로 펜쎄오'(πενθέω/pentheo)입니다.
그 원문의 뜻은 “내 안에 있어야할 하나님의 의가 없고 정작 없어야할 죄로 인하여 아파하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없어야 할 것은 있고 정작 있어야할 하나님의 의는 없습니다. 그러나 더욱 슬픈 것은 그러한 내 영혼의 모습을 자책하며 가슴을 찢는 통렬한 울부짖음과 눈물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총 31,089절로 되어 있습니다. 그 중 제일 짧은 구절이 요한복음 11장 35절입니다. 예수께서 우셨다 “JESUS WEPT”입니다.
성경에 예수님께서 웃으셨다는 기록은 없지만, 감람산을 중심으로 3번 우셨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첫째는 베다니 나사로 무덤 앞에서(요11:35), 둘째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견하시면서(눅9:14), 셋째로, 십자가 죽음을 앞두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히5:7) 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눅6:2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엘서 2장 13절의 말씀을 깊이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또한 에스겔 18 장 30절 말씀을 가슴에 비수처럼 꽂아야 할 것입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그것이 너희에게 죄악의 걸림돌이 되지 아니하리라.”
더욱이 이사야 55 장 7잘 말씀에 앞드려야 할 것입니다.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이런한 회개 촉구의 말씀은 영혼의 피, 눈물 없이는 감당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내 영혼은 눈물이 있는가? 내가 흘리는 눈물은 단순히 물 90%, 소금 7%, 점액소 1% 로 구성된 육체적 분비물일 뿐인가?
영혼의 눈물이 메말라버린 영적 건조증 환자는 아닌가? 하나님과 신령한 교제가 단절된 영적 녹조현상이 내 영혼에 나타나 있지 않은가?
찰스 스펄전 목사님은 "천국은 메마른 눈(Dry eyes)으로 들어 갈 수 없다"고 외쳤습니다.
내 영혼의 삭막함을 보고 울 수 있는 눈물, 이웃의 아픔을 보고 아파하는 눈물, 불의와 불경건한 세상을 바라보고 긍휼히 여기는 눈물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눈물 없는 심령, 사막화 되어 버린 자신의 영혼을 십자가 아래 내려놓고 울부짖어야 하겠습니다.
잃은 양떼를 위한 중보의 눈물, 영혼을 잉태하기 위한 해산의 눈물, 조국의 평화통일과 민족 복음화를 위한 애국의 눈물, 영혼 구령과 열방을 위한 선교의 눈물이 요청됩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천국을 소망하며 나그네 인생길 하루 하루를 거룩하게 살기를 원하며 자신을 날마다 쳐서 복종시키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거룩한 울보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울 때입니다. 주님 앞에 울며 부르짖을 때 흐르는 그 눈물의 백신이 우리를 살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울보입니다.(장재언)
이끌지 않고,
결과를 잊고,
계획하지 않고,
작게 생각하기.
이 네가지가 책의 핵심이다. 거참, 네가지 모두 세상적인 가치관과 정말 반대되는 개념이다.
재미난 책이다.
목사님께서 추천해 주시기도 했거니와, NB책모임의 세번째 책이다.
제목은 리더십이지만 내용은 반(反)리더를 말하고 있다. "이끄는 삶"이 아니라 "따르는 삶"을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이 그리는 큰 그림 속에 우리는 눈 앞의 사실들만 보며 아웅다웅 살고 있다. 전체적인 이치를 꿰뚫지 못하는 우리의 능력의 한계에 일침을 가한다. 동시에,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의 지침을 제시해 준다.
책모임 중, "계획하지 말라."는 범위에 대해서도
토론을 하였다. 내가 생각했던 그 범위란, 우리를 틀에 가두지 않기.였다.
분명, 저 구절은 하루하루 전혀 무계획적으로 살라는 말은 아닐 거다. 그건 하나님의 계획에 내 삶을 내맡기는 것과는 또 다른, 성실이란 개념의 문제일 테니까.
절대로, "불성실하게 살라."는 말은 아닐터이다.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가되, 내 의지로 세운 계획에 나를 가두지는 말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하나님이 푯대를 향해 가르키실 때 내가 삶의 방향을 자유로이 틀 수 있도록. 나만의 목표와 의지로 인해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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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쫓아다녀서 얻을 수 있는 것은 하찮은 것들이다. 위대한 것은 우리에게 다가온다. 말 그대로 뭔가 다른 것을 찾다가 문득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20
우리가 고통 없이 성공했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이 우리 앞서 고통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공 없이 고통 받고 있다면 아마 우리 뒤에 다른 사람이 성공을 거둘 것이다. 21
바쁜 가운데서도 주님의 뜻을 따랐던 자신의 작은 순종을 통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나니아도 전혀 몰랐을 것이다. 아나니아는 하나님의 전체 계획을 다 볼 수는 없었지만, 자신의 계획을 내려놓고 순종했다. 57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방대하고 복잡 미묘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성경을 건성으로 읽는 사람도, 성경이 진리지만 모든 것을 시시콜콜 다 말해주는 진리는 아님을 알게 된다. 성경은 모든 것에 관해 모든 것을 다 말해주지는 않는다. 58
우리는 마치 자신이 배의 선장이고 자기 운명의 주인인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실제 삶에서 겪에 되는 복잡한 경험들은 그런 생각을 의심하게 만든다.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에서 우리는 그저 세차게 일렁이는 강물에 떠 있는 나뭇가지에 불과할 뿐이다. 59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그저 부수적인 일일 뿐이다. 우리가 과정이라고 부르는 것을 하나님은 목적이라고 부르신다. 61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듯 보이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상황을 바꾸고 계실 것이기 때문이란다. 71
뮬러는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기도하며 하나님이 어떻게 필요를 채우시는지 지켜보았다. 뮬러는 한 번도 성급하게 행동하지 않았다. 밖에서 보면 너무 신중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만, 뮬러는 자신이 생각하는 리더로서의 모습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리더로 서고 싶었다. 71
다윗의 가장 뛰어난 자질은 거창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자신이 세웠던 계획을 조정하려는 의지였다. 85
오래전에 도보로 영국을 횡단한 한 작가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떄로 넘을 수 없는 장벽이나 울타리를 만나기도 했다.
그러면 그 작가는 모자를 벗어서 담장 너머로 던졌다. 그렇게 해야 어떻게 해서든 그 곳을 벗어날 방도를 찾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우리도 가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확실하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그 때 두려움이 엄습한다.
일이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으면 어떡하지? 실패하면 어떡하지? 자금이 부족하면 어떡하지?
비유적으로 말해서, 이런 생각이 들 때가 바로 우리의 모자를 벗어 담장 너머로 던질 때다. 물 위로 한 발을 내디뎌라. 그리고 계획을 세우신 분께서 그 다음 단계도 우리를 도와주실 것을 믿어라 94
우리의 계획은 거의 모든 경우 자신에게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들에 관심이 없으시다. 하나님은 하나님만의 '비밀 계단'을 갖고 계신다. 98
크다는 것은 강함을 의미하지 않고 작다는 것은 약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100
작은 방법으로 일한다고 생각하면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작게 생각할 때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린다.
또한 우리가 너무 작아서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크기 때문에 쓰임 받지 못한다는 말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118
우리가 수단과 목적을 혼동하고, 상황을 바꾸려고 애를 쓰게 되면 말 그대로 행동에 중독된다. 성화를 얻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하려는 사람들을 묘사하면서, 로렌스 형제가 중독이라는 단어를 썼음에 주목하라. 대신, 로렌스 형제는 다른 일을 하지 말고 그저 멈춰 서서, 보통은 우리 자신을 위해 하던 일을 이제는 하나님을 위해 하라고 제안한다. 참으로 놀랍다. 149
나만해도, 여러분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여러분이 내가 하는 선한 일을 알아주고 나를 좋게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내면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뭔가 중요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마음은 그것 자체가 하나의 작은 우상이 될 수 있다. 중요한 사람이 되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의 우주는 그 자체가 막다른 벽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인정받고 싶은 인간의 욕구는 너무나 강한 것이 사실이다. 177
예수 그리스도께 바르게 헌신된 사람이라면 아무도 당신을 알아보지 못할 때가 최고의 경지에 다다른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는 것은 오직 당신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능력뿐이어야 합니다. 185
내게는 지그재그처럼 갈팡질팡했던 경험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분만의 직선을 그리고 계셨다. (...)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는지 우리에게 늘 보여주신다는 보장은 없다.
욥기에서, 욥은 고소자 사탄과 하나님 사이의 대화를 알지 못한다. 여러차례 하나님이 자신의 질문에 직접 답해주시기를 갈망했던 욥은 폭풍우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경이로운 체험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욥에게 직접적으로 답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끊임없이 질문하신다. 욥은 끝까지 하나님의 질문들에 답변할 수가 없었다. 199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우리는 "큰 그림"을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이 불안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믿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요즘 계속 묵상하고 있는 말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믿을 수록 강력해 지는 그 증거를 붙들고 나아가자, 차근차근. 조급해하지 말고 이 순간을 만족스럽게 지내면서.
I'm too lazy for that.
그러기엔 전 너무 귀찮아요.
It's too much work.
너무 귀찮아
I'm too lazy.
좀 귀찮네요.
Creer up!
힘내!
Please stop crying
You're making me cry.
제발 울지마.
나까지 울 것 같단 말이야.
What a crybaby.
진짜 울보다
Stop crying.
그만 울어.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 펜데믹으로 사재기(Panic Buying)가 극성이다.
목요일 아침이다. 코스코(Costco)가 착한 일을 한다는 소식이다. 시니어들에게 아침 일찍 우선 구매의 편의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8시부터.
아침 7시에 출발했다. 여유있는 마음으로 [라 하브라](La Habra)에 있는 코스코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미 긴 줄이었다.(The line is pretty long) 줄 끝에 서있는 분에게 Are you in line? (줄 서고 계십니까?) 인사말을 건넸다.
날씨가 차갑다. 혹 이런 상황에서 새치기 하는 사람은 없을까? 만약 그렇다면 Don't cut in line, please.(새치기하지 마세요)라고 말해야지. 다행이 새치기 하는 사람은 없었다.
서둘러 새벽일찍 줄을 섰다가 고작 화장지(Toilet Paper) 한 팩을 사들고 돌아 왔다.
분명 [얼마나 오래 줄을 섰냐]고 물어 볼 사람이 있을 것 같다. 두 시간이었다... I had been standing in line for two hours. 혹 영국계 미국사람이라면 I had been queueing(큐잉) for two hours 라고 말을 해야한다....
미국 사람들은 줄서기에 익숙하다. 나도 길들여져서 줄을 잘 서는 편이다. 아니 현대는 줄서는 시대이다. 스마트폰이 새로 나온다고하면 밤새도록 텐트를 치고 베스트 바이(BestBuy)앞에 줄서있는 젊은 이들을 보았다. 유명한 영화가 들어와도 긴 줄을 선다. 등교시간 스쿨버스 앞에도 긴줄이 있다. 특히 DMV(차량국) 앞에 긴 줄서기는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어 있다. 그런데 좀 유명하다는 식당은 줄서기 보다 번호표를 나눠준다. 분명 줄서기보다 더 발전되고 효과적인 통제 수단이다. 이렇게 현대인들은 줄서기에 길들여지고 있다. 문명사회일수록 줄서기에 더 잘 길들여져있다.
줄서기를 하고 돌아 온 내 머리 속을 스치는 섬득한 생각이 있었다.
요한계시록 13장 16-18절의 말씀이다.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사고 파는 일)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라/
중남미는 오래 전부터 좌경화된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다. 베네주엘라는 물가가 수만배 뛰었다. 국민들이 먹고 살기가 버겁다. 모든 것을 무상으로 다스려서 국민 스스로가 자력으로 생활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배급을 받는다. 줄을 서야 한다. 줄 서기에 익숙해졌다. 인권을 외치고 싶어도 그러다가는 배급이 끊겨 목구멍에 풀칠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마치 마두로(베네주엘라 대통령)가 먹여주는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줄서기]의 노예가 되어버린 인간 사회의 부조리를 폭로함으로써 소련
몰락을 예고한 소설이 바로
블라디미르 소로킨(Vladimir Sorokin)이 1985년 발표한 [줄]이다.
소설에서 소로킨은 노예적 줄서기의 비극을 1896년 니콜라이
황제 대관식 때 모스크바 근교에서 벌어진 대형 참사와 연결했다.
황제가 내리는 설탕, 과자, 맥주 등의 선물을 받으려고 몰려들어 줄 선
민중은 하사품이 소진되었다는 소문에 동요하다가 2000명 가까운
사람이 압사했다. 정부가 이에 대해 진정성 있게 대응하지
못했다. 그러자 분노한 군중이 황제의 무능과 무감각을 규탄하면서
집단적 심판 여론이 형성되었다. 그것이 결국 혁명의 외침으로
이어졌다.
[일루미나티]는 인구를 줄여야 한다고 외친다. 심지어 전염병을 돌게하여서라도 [펜데믹]으로 몇십억 정도로 세계인구를 유지해야 한다는 시나리오를 작성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줄서서 배급을 받아야 할 만큼 사회적 불안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인류는 줄서기에 길들여져 가고 있다.
화장지 한 팩을 사려고 두 시간이나 줄서고 돌아 온 나는 분명 무엇인가 [줄서기의 노예]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수님께서 40일을 금식하신 후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셨다. 마귀에게 줄을 서면 배고픔도 영화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유혹이었다. 주님은 물리치셨다.
그런데 왜 오늘 이 시간 종말의 때에 목구멍에 풀칠이라도 해야겠기에 적그리스도의 대열에 줄 서있는 초라한 내 모습이 연상(聯想)되는 것일까?
코로나 바이러스를 통해 행여나 짐승의 표를 받기 위해 줄서는 바로 그 줄서기에 익숙해 지는 연습이라도 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다. 아니다. 치를 떨면서 나는 성령님께서 나의 심령에 불을 질러 주시라고 오늘 아침 기도드렸다.
글을 쓰지 않은 지 대략 1년 가까이 되었다. 현실적으로, 체력적으로 여유가 없었다고 변명하기엔. 그 공백이 참 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공의 지원서의 특기란에는 망설임 없이 '작문'이라고 적었다. 취미와 특기는 상이하지만 '글쓰기'를 특기로 꼽은 것은 그저, 나의 바람일거다. 평생 갈고 닦아 계발하고 싶다는, 나의 욕심이다.
짬을 내어 읽었던 책들은 쌓여 있으나 정리하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한자 한자 적어 내려가는 것에 부담감을 느끼는 것을 보아 나의 글쓰기도 꽤 녹이 슬었다. 그나마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할 책을 집어 들었으나 내용은 가볍지 않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꾸준한 필사가 큰 도움이 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만의 색채가 글에 녹아나는 것도 좋지만 좋은 글감의 인상적인 표현력과 훌륭한 내용을 숙지하기 위해서는 그대로 보고, 읽고, 적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자체만 해도 오래 걸리고, 상당히 노력을 필요로 하지만 이것이 축적되어 단단한 반석을 이루었을 때, 그 견고함은 아주 뛰어나다.
20 세계관 형성에 중요한 질문과 답. 세상은 어디에서 왔으며,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나? 인생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왜 세상은 이다지 고통과 죄악으로 가득한가? 구원이 실제로 있는지, 있다면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며, 세상과 역사의 목적과 의미는 무엇인가?
26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삶과 세계에 대해 종합적인 이해를 추구한다. 인생은 누구나 퍼즐 조각 같은 단편적인 삶의 경험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이 맞아 들어가 하나의 온전한 의미를 가진 그림으로 보기를 원한다. 세계관은 세상과 인생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의 기초다. 이런 종합적인 안목은 삶의 행보를 결정하는 데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46 창조, 타락, 구속. 만일 창조의 진리만 강조되고 타락과 구속이 빠진다면 자연신론이나 이신론에 근접할 것이다. 타락만 강조하는 세계관은 불교와 같이 세상을 부정하는 관점을 줄 것이다. 구속만을 강조하는 관점은 세상의 존재 이유나 역사의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할 것이다.
49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초를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변화를 받아 새롭게 되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과 둘째, 세상을 본받지 않는 것이다. 이는 세계관의 변혁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67 창조주 하나님의 뜻이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옳고 그름을 가릴 기준이라는 것이다. 특히 자유 의지를 가진 인간의 행사를 판단할 기준이 된다.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따라 행하는 것은 바르고,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것이다.
69 많은 경우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는 방법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은 아님이 분명하다. 나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선택에서 자유를 누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창조의 규범은 운명론적으로 우리를 꼼짝달싹 못하게 묶어놓는 굴레가 아니다.
81 여기서 특히 조심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적인 기준에서 생각하는 성공이나 찬란한 무엇과 동일시하는 일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문화의 표지는 화려하거나 큰 것이 아니라 샬롬, 즉 의와 화평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91 성경은 악이 하나님과 독립해서 존재했던 것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 준다. 어려운 표현을 쓰자면, 죄와 악은 형이상학적 실체가 아니다. 악은 방향이 잘못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성경이 분명히 말하는 바로는, 악이 세상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결단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악은 철저하게 후천적이다. 그것인 인간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린 순간 세상에 나타났다.
93 하나님이 지으시고 보존하시는 세상의 질서는 인간의 불순종 때문에 달라지지 않는다. 달라지는 것은 세상과 인간이 나아가는 방향 그리고 그 가운데 달라진 삶의 자세다.
107 하나님은 선과 악을 인간에게 강요하지 않으시고, 그것을 사람 앞에 두셔서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택하며 살도록 하셨다. 이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덫이나 함정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인간의 자유를 존중하시는 것이었다.
140 구속이란, 타락으로 죄악 가운데 죽은 자에게 새생명을 주시는 것이다. 구원에는 두가지 요소가 있는데, 소극적으로는 사죄, 즉 죄값을 십자가 죽음으로 갚아 주신 것이고, 적극적으로는 의롭게 된 새사람으로 지음 받는 것이다.
143 구속은 예수를 믿을 때 이루어지지만, 그 완성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긴 과정이다.
146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우리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 바르게 사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은혜로 구원을 받고 "그러므로" 바르게 살게 되었다.
인터넷 세계에 침투하고 지배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도 약탈적인 과학기술 자본주의자들 못지않게 사이버스페이스를 쓰레기장으로 만들 수 있다.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전도를 배가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사역 수단을 확장하려는 열망 때문에 과학기술을 활용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이 성경적인 현실, 곧 하나님은 모니터나 키보드나 CUP가 아닌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해 우리와 소통하신다는 현실을 거역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한 황해남도해주에서 홍수로 유실된 수도시설을 복구하기 위해 동원된 주민들. (자료사진)
북한 인구의 33%가 안전하지 않은 식수를 사용하고 있어 각종 감염병 등 건강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유엔이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유엔은 22일 ‘세계 물의 날’을 맞아 기후변화에 따른 물 부족 현상을 경고했는데, 국제사회는 북한이 재원을 무기보다 상하수도 시설 개선에 투입하면, 물 문제를 크게 개선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의 갈렙선교회가 최근 북한에서 입수한 동영상에는 여성들이 얼어붙은 두만강에서 물을 길어 어깨에 지고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나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주택가에 주차한 물차 앞에 어린이 등 많은 주민이 양동이와 물통을 들고 물을 배급받기 위해 서 있는 모습도 보입니다. 이 단체 김성은 목사입니다.
[녹취: 김성은 목사]
“멀게는 5km 이상 떨어진 사람들이 압록강, 두만강에 와서 물을 길어가고, 또 이것이 용의하지 않기 때문에 북한은 식수차를 동원해서 각 주민들에게 물을 배급제로 하는 게 지금 북한의 현실입니다.”
유엔이 22일 ‘세계 물의 날’을 맞아 기후 변화 등에 따른 물 부족 현상을 경고한 가운데, 북한도 식수 부족과 오염, 가뭄으로 물 부족 현상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유엔 북한상주조정관실은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2020 북한의 잠정적 필요와 우선순위 계획’)에서 북한 인구의 33%인 840만 명이 안전한 식수원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농촌 지역은 깨끗한 식수에 접근할 수 없는 인구가 50%로 늘어나 상황이 더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유엔은 기후 변화에 따른 지속적인 가뭄이 곡식 작황과 주민의 영양부족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북한의 안전한 식수와 위생 개선을 위해 올해 700만 달러가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유네스코는 올해 세계 물의 날을 맞아 발표한 ‘2020세계 물 개발 보고서’에서 지구촌이 극한 기상현상으로 인한 상하수도 파손으로 수자원 관리가 어려워지고, 물 오염으로 수인성 감염질환이 확산돼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 감염병 담당 의사 출신인 최정훈 한국 고려대 공공정책연구소 연구교수는 23일 VOA에, 북한은 1990년 중반 고난의 행군 이후 무너진 상하수도 시스템이 복구되지 않아 주민들이 해마다 다양한 수인성 감염병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최정훈 교수]
“물 사정이 긴장되면서 상수도에 전기 공급이 안 되다 보니 상수도와 하수도가 모두 비고 서로 파손돼 땅 밑에서 서로 섞이면서 오염이 되는, 그런 상황이 아직까지 지속되다 보니 물 오염으로 인한 수인성 감염병들이 만연하게 된 거죠.”
게다가 재래식 퇴비용 화장실의 보편화로 상수도는 물론 지하수도 대부분 오염됐지만, 상하수도 기반시설 교체는 엄청난 비용과 당국의 관심 부족으로 엄두도 내지 못한다는 겁니다.
국제적십자연맹(IFRC)은 지난해 보고서에서 북한에 가뭄이 지난 몇 년 동안 계속돼 농업용수 부족이 심각해지면서 곡물 수확량이 큰 타격을 받았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은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급격히 늘어난 10MW 미만 소수력 발전소를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의 지난달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소수력발전소는 지난 4년 동안 3배 증가했지만, 대부분 작은 강이나 하천, 개천에 세워져 가뭄에 매우 취약한 상황입니다.
국제사회는 북한 당국이 핵과 미사일에 투입하는 엄청난 비용을 이런 상수도 개선 등 민생에 투입하면 상황을 크게 개선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크리스토프 휴스겐 유엔주재 독일대사 등 여러 나라 대사들은 지난 12월, 유엔 안보리가 개최한 북한 관련 회의에서 북한 당국에 거듭 민생을 먼저 챙기라고 권고했습니다.
[녹취: 휴스겐 대사]
“Just imagine what could happen if the regime stopped building missiles and equipping the military, giving money to the politically elite, and for this money buy thousands of tons of rice build medical installations, build schools, and provide clean water to its population.”
북한 정권이 미사일 개발과 군비 증강, 정치적 목적으로 엘리트들에게 돈을 주는 것을 멈추고, 이 돈으로 주민들을 위해 많은 쌀을 구입하고 의료 시설과 학교를 짓고, 깨끗한 물을 주민들에게 제공하면 북한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 보라며 재원 배분의 재고를 촉구한 겁니다.
최정훈 교수도 탈북민이 한국에 와서 가장 놀라는 것 중 하나가 24시간 깨끗한 수돗물과 온수가 콸콸 나오는 것이라며, 북한 당국이 자원을 먼저 상하수도 개선에 투입하면, 물 문제는 쉽게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최정훈 교수]
“근본적인 문제는 북한 정권이 핵과 미사일에 들인 관심과 비용을 여기에 들였다면 이것 만큼은 확실히 근절할 수 있었죠.”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정정하다! 100세 노인이 창문을 넘다니.
알란은 정치 이야기가 가장 싫은 사람이다. 그러면서! 그런 사람 치곤 전세계 역사에 관여하지 않은 때가 없다. [우연히] 세계사의 한 가운데 서 있었을 뿐이었다곤 하는데. 그런거 치고 스케일이 장난 아니다.
이런 노인네가 100세 파티나 기다리며 양로원에 들어앉아 있었으니? 나니? 당연히 도망칠 수 밖에.
시체가 실린 포드 머스탱이 도난당했다는 사실은 물론 우려할 만한 일이었지만, 알란은 만사는 그 자체일 뿐이며, 앞으로도 일어날 일이 일어나게 될 뿐이라고 말했다. 191
어느 스릴러 소설에서나 일어날만한 일이 매 챕터마다 빵빵 터진다. 돈다발이 든 트렁크를 절도, 냉동고를 이용해 살인 후 드럼통에 시체 유기, 사체 훼손, 코끼리로 짓이겨 살해, 버스로 들이받고 치명상 등등.
근데 알란의 유유자적하는 태도를 보면 신선놀음 수준이다. 뭐 어때? 그래서? 모든 것을 단순화시키는 능력은 가히 따를자가 없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도련님]을 떠올리게 한다.
알란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쓸데 없는 기대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또 반대로 쓸데 없는 걱정을 하지도 않았다. 어짜피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될 터, 쓸데 없이 미리부터 골머리를 썩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271
이 얼마나, 정신 건강에 좋은 태도인가! 당연한 문장이지만 저게 안 되서 매일이 걱정 고민인 사람도 있거늘. (여기)
그래서 나도 별 걱정 없이 살기로 했다! 지금 대구에 남느니 서울로 가느니 결정해봤자 무슨 소용인가? 국시 치고 나서 내 마음이 어떤지, 그 때 내 마인드가 어떤지에 따라 달라질텐데? 내가 가야할 길은 이미 예비되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인도해 주실거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이 자리에서 기도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꾸역꾸역 해나가는 것일뿐. 예를 들어, 공부, 이것만도 제대로 안하고 있는데 ㅋㅋ 쓸데 없이 고민만 껴안아 봤자 소용 없잖아!
알란이 연극을 너무나도 잘 했다고 칭찬하자, 헤르베르크는 얼굴이 빨개지며 손사래를 쳤다. 진짜 바보가 바보 모습을 보이는 것은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그러나 알란의 생각은 달랐다. 그가 살아오면서 만난 바보들은 모두가 똑똑한 척하려고 애쓰지 않았던가? 318
이런식이다. 밍숭맹숭 사는 줄만 알았더니 알란 이 늙은이, 완전 천잰데?
하. 나는 왜 이 책을 읽어버렸지?
문득 여행 떠나고 싶게.
나래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국경을 따라 뻗어 있는 알프스 산맥 중 최고봉(4,810m).
몽블랑을 한눈에 보는 전망대
한국에서 산세가 가장 큰 지리산이 3도 5군에 걸쳐져 있듯이
유럽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산인 알프스도 여러 나라에 걸쳐져 있습니다.
동쪽의 오스트리아와 슬로베니아에서 시작해서
이탈리아와 스위스, 독일을 거쳐서 서쪽의 프랑스에까지 이르고 있는데
이중 가장 높은 봉우리인 몽블랑은
프랑스와 이태리 국경에 걸쳐 있습니다.
이 몽블랑을 환상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에귀 뒤
미디 전망대(Aiguille du midi).
전망대의 높이는 3,842m.
만년설로 뒤덮인 몽블랑과 아름다운 알프스를
한 눈에 바라 볼 수 있는 가장 멋진 장소입니다.
전망대까지는 걸어서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케이블카를 이용해서 올라가는데
프랑스의 샤모니(Chamonix Mt. Blanc)에서 출발합니다.
케이블카는 중간에 지지대도 없이 긴 로프만 가지고
한번에 1000m 대에서 3800m를 오르는데 40분 정도.
50여년 전에 만들었는데 이 케이블의 강철 와이어를 사람들이 끌고 올라가면서
만들었다고 하니 참으로 대단한 역사인 것 만은 틀림없습니다.
전망대가 있는
에귀 뒤 미디 봉우리는 세 개로 되어 있고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면 북쪽 봉우리에 도착.
지구에서 가장 높은 곳에 매달린 구름다리를 지나면 중앙 봉우리로 가게
됩니다.
로켓 같은 것이 서 있는 중앙 봉우리 정상까지 가려면 다시 리프트를 타야
됩니다.
희망을 가져본 적이 없는 자는 절망할 자격도 없다.
He who has never hoped can never despair. - 조지 버나드 쇼 -
1980년에 쓰여졌다.
제1장 온전한 인격
첫 번째 주제로 우리의 ‘인격적 통합성’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통합성(integrity)이란 무엇인가? 내가 제안하는 통합성이란 통합된 그리스도인이 지니고 있는 특성이다. 통합된 그리스도인이란 말과 됨됨이가 이분화되지 않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통합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뜻이며, 삶의 여러 부분이 단일한 전체로 연합됨을 말한다.(p6)
사회적 통합은, 상이한 인종이나 부족 또는 계급이 어떤 국가 또는 민족에 대한 충성심을 공유함으로써 통일되어 함께 조화를 이루며 생활하는 인간 공동체를 말한다.
개인적 통합이란, 인격의 상이한 부분들이 하나의 충성심으로 연합되어 있으며 또한 상호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상태를 묘사할 때 쓰는 말이다.(p6)
1. 예수 그리스도, 우리 지성의 주
사고의 성숙을 추구해야만 하는 이유는 다음의 세 가지 때문이다.
1) 지성의 적절한 활용은 우리의 창조주를 영화롭게 한다
우리의 창조주는 합리적인 하나님이며, 우리를 자신의 형상을 따라 합리적인 인간으로 만드셨다. 또 우리에게 그것을 이해시킬 목적으로 자연과 성경을 통해 합리적인 계시를 주셨다.(p10-11)
2) 지성의 적절한 활용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삶의 풍요롭게 한다.
믿음의 경우, 우리는 믿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 없이는 신앙을 가질 수 없다.
경배의 경우,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경배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떤 종류의 경배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지 알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복종해야 할 계명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복종할 수가 없다. 신뢰할 약속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가 없다.
증거해야 할 좋은 소식이 없다면 우리는 증거할 수가 없다. 그런데 약속, 명령 그리고 좋은 소식의 계시 모두가 성경 안에 있다.
성경과 성경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가 없다면 그리스도인다운 생활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리스도인다운 생활을 가능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다운 온전한 생활이란, 그분이 신적 주도권을 갖고 하신 말씀에 반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p12)
성경에 따르면 신앙이란 합리적인 신뢰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그에 대한 합리적인 계시에 기초한 신뢰이다. 이 신뢰는 우리가 신뢰하는 하나님이 신뢰할 만하기 때문에 합리적이다. 신뢰할 만한 것을 신뢰하는 것은 언제나 합리적이다. 게다가 하나님이 신뢰할 만한 이유는 그 분의 성품과 약속 때문이다.(p14)
3) 지성의 적절한 활용은 그리스도인으로 우리의 증거를 강화한다
2. 예수 그리스도, 우리 감정의 주
전적부패란 모든 사람이 나쁠 대로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선해야 할 만큼 선한 자는 아무도 없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요점은, 타락이 우리에게 전체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모든 부분, 즉 우리의 지성, 우리의 감정, 우리의 양심, 우리의 성, 우리의 의지에 영향을 끼쳤다.
인간성의 모든 부분이 타락으로 인해 비뚤어지고 왜곡되어버렸다. 우리의 감정은 무엇이 선한지에 대하여 전혀 신뢰할 수 없는 길잡이가 되었다. 우리의 지성과 감정은 신뢰할 수 없다.
우리 혼자 힘으로는 올바르게 사고할 수 없다. 우리 혼자 힘으로는 올바르게 느낄 수도 없다. ‘내 생각은 분명 맞다’ 또는 ‘내 느낌은 분명 옳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내가 사고하고 느끼는 것은, 무엇이 선하고 올바른지를 분별하는 데 매우 주관적이고 위험스러우며 신뢰할 수 없는 기분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지성은 그리스도의 주 되심 아래 종속되어야만 하며, 우리의 감정 또한 그리스도의 주 되심 아래 종속되어야만 한다. 예수님은 우리의 지성을 통제하셔야만 하며, 또한 우리의 감정을 통제하셔야만 한다.(p20-21)
3. 예수 그리스도, 우리 의지의 주
1) 두 가지 의지가 있다는 사실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여기에는 두 가지 의지가 있다. 하나는 하나님 아버지의 의지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아들이자 동시에 사람의 아들인 예수의 의지이다.(p23)
하나님의 의지에 대한 인간의 의지의 관계는 반역도 아니고 흡수 관계도 아니다. 그것은 복종, 그것도 자발적인 복종이다. 예수님의 아버지를 거스려 자신의 의지를 행사하지도 않으셨고, 반면 자신의 의지를 거두어 들여 아버지께 흡수되기를 갈망하지도 않으셨다. 그 분은 자신의 의지를 계속 지닌 채 그것을 아버지께 복종시키셨다.(p24)
2) 나의 의지를 하나님께 복종시켜야만 하는 이유
그분은 아버지의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의 사랑은 온유하며 동정적이다. 그는 최선의 것 외에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신다. 그는 우리가 우리의 잠재력을 그를 섬기는 데 사용함으로써 인간으로서 완성되기를 원하신다.
그의 의지는 적극적이고 건설적이며 사랑에 찬 것이다. 그것이 우리 아버지의 의지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에 반역하는 것은 몹시 어리석은 짓이다. 왜냐하면 나의 아버지의 뜻에 복종함으로써 나는 나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이다.(p25-26)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 – 즉 우리의 인격적 성숙 – 은 우리의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예수님의 주권적인 사랑의 통치, 곧 주되심 아래 종속시키는 것이다.(p26)
제2장 직업과 소명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을 때, 그 부르심은 이러한 개념 둘 다를 포함하는 것이다. 즉 한편으로는 은혜로운 잔치로 초대하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권위 있는 소환이다.
내 생각에, 우리의 부르심 또는 우리의 소명에 대해 성경에서 말하는 바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무언가를 하라고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가 되라고 부르신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해서, 성경에 따르면 소명이란 단순히 우리의 직업보다는 우리의 성격과 우리가 어떠한 사람인가 하는 것에 더 많이 관련된다.(p28)
1. 우리의 기독교적 소명
1)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그리스도께로 부르신다
2) 하나님은 우리를 자유에로 부르신다
3) 하나님은 우리를 교제에로 부르신다.
호젓한 곳에서 나 혼자 즐기는 내적 평정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화해는 물론 서로와의 화해이기도 한 것이다
4)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함에로 부르신다.
여러분이 거룩함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를 닮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도록 하라. 우리는 성품과 행위가 그리스도를 닮도록 부르심받는다.(p32)
5) 하나님은 우리를 증거에로 부르신다
6) 하나님은 우리를 고난으로 부르신다
7) 하나님은 우리를 영광으로 부르신다.
첫째, 우리는 그리스도께 속하여 그 분과의 교제와 그 분이 주시는 자유를 즐기고, 그를 닮아 가는 가운데 자라도록 그리스도께로 부르심을 받는다.
둘째, 우리는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 서로서로 사랑하도록 부르심을 받는다.
셋째, 우리는 세상을 섬기고 우리의 빛을 비추도록 부르심을 받는다.
2.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섬김
1)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외 없이 섬기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2) 그리스도인으로 우리의 섬김은 일생의 직업을 포함한다.
진실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의 직업과 관련하여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의 삶을 섬기는 일에 바쳐야 한다는 점이다.(p37)
직업을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으로 우리를 부르신 섬김 그 자체로 보아야 한다.(p37)
3) 사역들은 매우 다양하다
3. 일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일이 타락의 결과가 아니라 창조의 결과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p42)
1) 일은 일하는 자의 성취를 위함이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과 그 분의 지배권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창조적 일에 대한 우리의 잠재력은 우리에게 있는 하나님 형상의 본질적인 부분이다. 그러므로 일은 우리 인간성의 불가결한 부분이다.(p43)
2) 일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함이다
성경은 일을, 공동체를 위해 공동체에 의해 수행되는 공동체의 사업으로 본다. 일은 공동체를 위한 섬김이다. 일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섬김이다.(p44)
3)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의존한다. 그러나 그 분은 우리에게 의존하신다. 루터는 이를 구체적을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표현하였다. “하나님은 당신을 통하여 소의 젖을 짜기까지 하신다.” 소에는 많은 양의 젖이 있지만 누군가가 그것을 짜 내지 않으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p45)
일이란 육체적 일이건 정신적 일이건 또는 둘 다이건, 일하는 자에게는 성취를, 공동체에는 유익을, 하나님께는 영광을 가져오는 것으로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데 에너지를 쏟는 것이다.(48)
제3장 사회적 책임
1. 하나님에 대한 좀더 나은 교리
1)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일 뿐 아니라 창조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그의 특별한 백성으로 택하셨을 때에도 다른 민족들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으셨다. 우리가 구약 성경에서 보는 바대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라면, 또한 구스인(이디오피아인)들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p52)
2) 하나님은 칭의의 하나님일 뿐 아니라 정의의 하나님이시다.
2. 인간에 대한 좀더 나은 교리
그리스도인들은 헉슬리와는 다른 이유로, 즉 인간이 미래에 진화될 모습 때문이 아니라 창조에 의해 이미 되어진 모습 때문에 인간을 섬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아 유일하게 하나님을 닮은 피조물이다.(p55)
우리가 우리 이웃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그의 육체와 영혼, 그리고 그의 공동체의 복지에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그들의 존엄성 때문이다.(p56)
3. 그리스도에 대한 좀더 나은 교리
나는 성경적 그리스도(무엇보다도 가난한 자들, 혜택 받지 못한 자들, 세리와 죄인들, 굶주린 자들과 버림받은 자들을 헌신적으로 사랑하셨던 분)를 온전히 변론하고자 한다. 특히, 우리가 이른바 크리스마스 그리스도(성육신의 그리스도로서 실제로 우리 세상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육신과 피와 인간성을 취하신 그리스도)를 회복할 것을 호소한다.(p59)
우리가 선포하는 메시지대로 행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그 메시지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행동을 설명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우리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말씀은 추상적이므로 구체저긴 사랑의 행위로 구현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행위는 모호하여서, 복음의 선포에 의해 해석되는 것이 필요하다(p60)
4. 구원에 대한 좀더 나은 교리
1) 우리는 구원자와 주님을 분리해서는 안 된다
2) 우리는 사람과 믿음을 분리해서는 안 된다
칭의는 오직 믿음에 의해서 이루어지지만, 그 믿음은 홀로 설 수 없다. 선행으로 나타나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거짓임이 증명된다.(p63)
5. 교회에 대한 좀더 나은 교리
사회가 부패해 갈 경우 사회를 탓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사회를 그대로 방치하면 사회는 저절로 그렇게 된다.
문제는 ‘교회가 어디에 있느냐’에 있다. 사회가 부패해 간다면 그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우리는 교회에 대한 더 나은 교리가 필요하다. 그것은 교회가 세상 가운데 있고, 세상이란 교회가 봉사하고 증거하도록 부름받은 영역이라는 것이다.(p65)
1) 일반적 견지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복음 전도와 사회 활동 둘 다에 부름받았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은 각자 다른 전문 사역에 부름받았다
3) 긴급한 경우에 우리는 양자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책임을 기억해야만 한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제사장과 레위인은 “우리는 종교적인 사람이 되도록 부름받았다. 우리는 사회적 양심을 갖도록 부름받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얻어맞고 누워 있는 이 가련한 사람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말함으로써, 강도 만난 자에 대한 자신들의 수치스러운 무관심을 변명할 수 없다.
그와 같이 긴급한 경우에는, 자신의 전문 사역 분야가 아니더라도 그들은 봉사해야 할 책임을 갖고 있다. 우리는 이와 반대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말할 수 있다.
즉 사회 봉사 또는 의료에 부름받은 사람에게 증거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나는 의사가 되도록 부름받았다. 증거하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없다. 그렇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증인이자 종이다. 그리고 우리의 전공이 무엇이든지 간에 긴급한 경우에 기회가 올 때, 우리는 양자를 다 행해야 할 책임이 있다.(p66)
4) 지역 교회는 이러한 다양한 사역이 함께 모이는 자리이다
제4장 세상과 구별되는 삶
유사함은 인간의 특성이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기란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를, 다르게 되도록 부르시기 때문이다.
로마서 12:2에서는 우리에게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명령한다. 즉 우리는 마음을 새롭게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한다. 그것은 다르게 되라는 부르심이다.(p69-70)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된다는 것은 나머지 인류와 구별되어 하나님의 독특한 백성이 된다는 뜻이다.9p70)
1. 소금과 빛
1) 그리스도인들과 비그리스도인들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소금과 빛의 비유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비그리스도인 공동체를 분리시킨다. 이 두 공동체는 상호 대비되어 존립한다.
2) 그러나 이 두 비유는 그리스도인들이 비기독교적 세상과 비그리스도인 공동체에 침투해 들어가야 한다고 가르친다.
소금이 광에만 쳐박혀 있다면 쓸모가 없다. 이처럼 우리는 사회에 버무려져야만 한다. 우리는 고상하고 작은 교회라는 광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비기독교적 사회에 침투해야만 한다.
소금의 효과는 소극적이다. 즉 부패를 방지하는 것이다. 빛의 효과는 적극적이다. 즉 어두움을 비추는 것이다.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의 효과는 우리의 사회적 책임을 특히 강조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사회가 점점 타락해 가는 것을 막는 소금처럼 말이다. 반면에 어두움을 비추는 빛의 효과는 예수님의 빛을 퍼뜨리는 우리의 복음 전도라는 책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생각된다.(p73)
3) 그리스도인들이 비그리스도인 공동체에 침투해 들어갈 때는, 자신의 독특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
2. 예수님은 우리를 좀더 큰 의로 부르신다
그리스도인의 의는 마음의 내적 의이다.(p77)
3. 예수님은 우리를 좀더 넓은 사랑으로 부르신다.
사마리아인이 일종의 문화적 장벽을 넘어선 봉사를 행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이 강조하셨던 점이다.
우리의 이웃은 인종적・종교적 배경과는 상관없이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면 우리는 문화, 종족, 국가, 종교 또는 그 무엇과도 상관없이 그를 섬기도록 부름받는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계속해서 44절에서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우리가 우리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율법의 요구에 대한 참된 해석이다.(p78)
사랑은 그리스도인 공동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여기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신 대로 그리스도인 공동체 밖에도 사랑은 있다.(p79)
4. 예수님은 우리를 좀더 깊은 경건으로 부르신다
5. 예수님은 우리를 좀더 고상한 야망으로 부르신다
예수님은 결국 두 가지 가능성이 있을 뿐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는 자신과 자신의 물질적 안락에 관심을 갖는 것이고(이것은 부와 권력과 명성에 대한 우리의 갈망을 설명해 준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 그리고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 하나님의 나라 및 그의 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p84)
주기도문은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시작한다.
그러나 여러분도 알다시피, 물질적 필요는 이 다음에 나온다. 즉 물질적 필요를 간과해서도 안 되지만, 우리의 생각을 몰두해서 기도해야 할 최우선 순위는 하나님과 그의 나라, 하나님의 이름과 뜻이어야 한다는 것이다.(p85)
여러분의 안전을 위한 타협을 포기하라. 마지못해 하는 마음에서 돌아서라.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삶에서 최우선에 놓으라 그를 여러분의 주로 삼으로. 그의 기준을 따르라.
그러면 여러분의 소금이 짠 맛을 낼 것이며, 여러분의 빛이 비췰 것이다. 그리고 비그리스도인들이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릴’(마5:16) 것이다.(p88)
제5장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
1. 구약의 하나님은 선교의 하나님이시다
구역은 하나님이 우주의 창조자이며 모든 민족의 주이고 모든 인간의 하나님임을 계시한다.(p92)
2. 복음서의 그리스도는 선교의 그리스도이시다
3. 사도행전의 성령은 선교의 영이시다
4. 서신서의 교회는 선교적 교회이다
5. 요한계시록은 선교적 완성이다
세계적인 동영상 공유 플랫폼인 ‘유튜브’에 최근 자신의 채널을 운영하는 탈북민들이 늘고 있습니다.
기존에는 탈북민 단체 관계자들이 주로 활동했는데, 최근에는 탈북 과정과 이후 생활 등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는 젊은 탈북민들이 늘고 있습니다. 박형주 기자가 보도합니다.
2008년 탈북한 박유성 씨는 최근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탈북‘유튜버’ 가운데 한 명입니다.
탈북 이후 한국의 대학에서 영화영상을 전공해 영상제작 등에 익숙한 박 씨는 현재 구독자 5만 명이 넘는 유튜브 채널‘북한남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탈북 여정에서부터 한국생활 적응기, 미국 방문기, 탈북민을 처음 본 외국인 반응 등을 20대 청년의 발랄함으로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유튜브 채널 ‘북한남자’]
“안녕하세요. 북한에서 깃털처럼 가볍게 날아온 남자, 북한 남자 박유성입니다. 미국에서 1년 반 정도 생활했는데…”
한국의 모 방송사에서 방영하는 ‘탈북민 토크쇼’에 패널로 참여했던 박 씨는 기존 방송매체에서 원하는 이야기가 아닌 진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유튜브 방송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 씨]
“북한에 대해 말하고 싶고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는데요, 어디 가서 부탁을 받거나, 출연료를 받을 경우 제약이 있더라고요. 그 쪽에서 원하는 이야기를 해야 하고, 편집되기도 하고. 하지만 제가 온전히 제 채널을 가지고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만들 게 됐습니다.”
박 씨처럼 유튜브 방송에서 최근 두각을 나타내는 젊은 탈북민들은 기존 방송사에서 제작하는 북한 소재 프로그램에 참여해 얼굴이 알려졌던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들은 남북한의 차이나 분단 상황을 정치나 이념의 관점에서 다루기보다는 20대 젊은이의 시각으로 접근해 비슷한 세대 구독자들에게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유튜브 방송 초창기 시절부터 활동했던 탈북민들은 대부분 탈북민 단체 관계자들이었습니다.
서울에서 활동하는‘NK 지식인연대’김흥광 대표가 운영하는‘김흥광 튜브’가 대표적인데, 구독자 수가 15만명에 이릅니다.
[녹취: 김흥광 튜브]
“이 북한 사진에서 한 가지 공통점이 있죠. 거의 백퍼센트 마스크를 끼고 있습니다. 이 마스크가 어디서 왔느냐? 중국산이라고 봐야 할까요?”
최근 한국의 보수 야당인 미래통합당 후보로 총선에 출마한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가 운영하는 ‘태영호 TV’, 한국의‘탈북 여성 박사 1호’로 불리는 이애란‘자유통일문화원’ 원장이 운영하는‘이애란 TV’ 등도 구독자 수가 10만 명이 넘는 인기 유튜브 채널입니다.
이 채널들은 주로 북한에서 직접 입수한 정보와 영상, 사진, 문서 등이라며 북한 내부 동향을 전하고, 북한 정권의 인권 탄압 문제를 제기하며,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 등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내놓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유튜브 채널 등에서 전파되는 북한 관련‘가짜 뉴스’에 대한 ‘팩트체크’를 표방하며 활동하는 채널도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왈가왈북’입니다.
[녹취: 왈가왈부]
“일단 그들의 말은 명확한 근거 없는 개인적 주장, 대북 소식통으로 포장되고, 그런 사람들의 발언을 받아서 언론화 시키고, 대중화 시키는 것이..”
지난해 5월 시작한 이 채널은 주로 언론에 소개된 탈북자들의 발언을 검증하는데, 북한 영화 전문가 유영호 씨와 탈북 작가 김련희 씨, 평양 강건종합군관학교 출신 탈북자 홍강철 씨 등이 제작자입니다.
그밖에, 탈북 언론인 출신인 한국 `동아일보’의 주성하 기자가 운영하는‘주성하 TV’와 `연합뉴스’ 통일언론연구소의 유튜브 채널‘연통 TV’ 등도 탈북민들이 진행자나 출연자로 등장해 북한 관련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탈북민들이 이렇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아진 데 대해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미국 로드아일랜드대학 미디어교육연구소에서 탈북 난민들의 미디어 교육을 연구하고 있는 윤지원 교수입니다.
[녹취: 윤지원]
“이민자 등 소수자들이 자기 검열을 계속하면서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을 ‘뮤티드 그룹(muted group)’이라고 합니다. 탈북자들이 이렇게 내 이야기를 해도 괜찮구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채널들이 있구나”
윤 교수는 탈북민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이 보수와 진보, 기성세대와 젊은세대 등으로 확연하게 분화하는 경향이 있지만, 탈북 사회만의 특징이 아닌 사회 전반적인 경향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탈북민들의 유튜브가 정보가 제한적인‘북한’ 문제와 관련한 다양한‘정보 제공자’로서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미시건대 한국학연구소에서 ‘북한 뉴스와 정보원’에 대해 연구한 오동건 언론학 박사입니다.
[녹취: 오동건 박사]
“다양한 정보원을 통해서 다양한 의견들이 서로 토론하면서 사실을 찾아가야 하는데 (북한 문제에 대해선) 이런 것이 어려웠던 거죠. 그런데 탈북자들이 다양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것은 정보원 자체가 늘어난다는 것에서 다양성이 늘어날 수 있다. 다양성을 통해 사실을 찾아갈 수 있다…”
오동건 박사는 다만 좀 더 균형 잡힌 정보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의견을 달리하는 다양한 채널을 서로 비교하며 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AP’ 통신 평양지국장을 지낸 우드로 윌슨센터의 진 리 국장도 VOA에, `북한 관찰자’로서 탈북민들이 북한 등 자신들의 경험에 관해 이야기할 채널들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며, 이런 것들이 다양하고 진솔한 정보를 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탈북민들이 제작하는 콘텐츠에도 각자의 정치적 시각과 관심사가 투영된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박형주입니다.
나는 고난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믿는다. 고난을 불러올 만한 많은 요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더욱 커져갈 기독교에 대한 문화 전반의 적대감도 그 중 하나다.
그 적대감에 놀랄 필요도, 아니 그 적대감을 해소하려 노력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고난이 와도 흩어지지 않도록 바위처럼 견고한 공동체 생활을 세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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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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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마약테러 혐의로 기소하고 1500만달러의 현상금을 걸었다.
미국이 현직 국가 정상을 범죄 혐의로 기소한 것은 이례적으로, 마두로 정권을 무너뜨리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윌리엄 바 미 법무장관은 26일 기자회견을 열고 마두로 대통령과 전·현직 베네수엘라 정권 고위 관계자 14명을 마약테러, 마약밀매, 부패 등의 혐의로 기소한다고 밝혔다.
마약테러(Narco-Terrorism)란 마약 생산업자들이 테러리스트와 같은 조직을 갖추고 폭력과 협박으로 국가 권력을 위협하는 것을 말한다. 미 법무부는 이날 보도 자료에 마두로 대통령을 '전(前) 대통령'이라고 표시했다. 미국은 베네수엘라 야권 지도자인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을 합법적인 지도자로 인정하고 있다.
법무부는 마두로 대통령 등이 콜롬비아 옛 최대 반군인 콜롬비아무장혁명군 잔당들과 함께 "미국의 복지를 해치기 위해 코카인을 넘쳐나게 했다"며 한 해 250t 이상의 코카인이 베네수엘라를 통해 미국으로 흘러들어온다고 했다.
미 국무부는 이날 마두로 대통령의 체포와 유죄 선고로 이어지는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1500만달러의 현상금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파나마의 독재자 노리에가가 미국의 침공으로 축출되어 실각한 예가 있다.
노리에가는 미국 정부와 서로 배신과 ‘이중 플레이’를 하며 20세기 중남미사의 어두운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이다.
군 장교였던 그는 1950년대부터 중앙정보국의 중요 정보원이었다. 1968년 쿠데타로 집권한 오마르 토리호스 장군의 충복이었으며, 83년 군부 최고 실력자로 부상해 민간인 대통령들을 조종하며 89년까지 독재정치를 했다.
그는 중앙정보국에 쿠바 등 중남미 좌파 세력이나 마약 카르텔 정보를 넘기며 돈을 받고, 니카라과의 우파 콘트라반군에 대한 미국의 현금과 무기 지원 통로 역할을 했다. 그 이면에서는 공작에 이용될 파나마 여권을 쿠바에 파는가 하면 콜롬비아 마약 카르텔과 동업하면서 코카인 밀매로 돈을 챙겼다.
노리에가는 시간이 갈수록 미국 쪽 말을 듣지 않고 민족주의적 슬로건을 내세웠다. 미국에서는 마약을 밀매하는 그를 처벌하라는 여론이 일었다.
노리에가가 1989년 대선 결과를 조작하며 미국에 전쟁을 선포하는 와중에 파나마 군의 발포로 미군 병사가 사망하자, 아버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그해 12월 “참을 만큼 참았다”며 병력 2만7천명으로 파나마를 침공했다.
미군의 공격으로 노리에가는 미국으로 압송돼 마약 밀매 등의 죄로 복역하다가 2010년에는 프랑스로 보내져 마약 밀매 관련 돈세탁을 이유로 다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듬해 파나마로 추방돼 정적 살해 등에 대해 내려진 징역 60년형을 복역 중 수술을 이유로 가택연금 상태에 있다가 83세로 사망했다.
1. 도리도리
2. 좌우로 회전,
3. 앞뒤로 끄덕임, 4.
좌우 옆으로
분노는 말과 행동이 돌발적으로 격렬하게 표현되는 본능적인 감정이다. 이러한 분노는 표현하는 방식에 따라 드러내거나 혹은 마음속에 품고 있는 방식으로 표현되는데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병적으로 표출되는 것을 분노조절장애라고 한다.
◇분노 조절은 왜 생길까?
분노조절장애는 스트레스 상황에 장기간 노출되거나 화가 과도하게 쌓인 것이 잠재돼 있다가 감정을 자극하는 상황이 올 때 감정을 폭발시키는 특징을 보인다. 마음속에 억누르던 화가 어느 순간 폭발해 병적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특히 성장 과정에서 정신적 외상이 있을 경우 분노조절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분노조절장애에는 크게 충동적인 분노 폭발형과 습관적 분노 폭발형 두 가지로 나뉜다. 충동적인 분노 폭발형은 흔히 말하는 다혈질 스타일로, 도저히 화를 참을 수 없어 분노가 폭발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습관적 분노 폭발형은 목소리 크면 이긴다는 스타일로, 분노 표출이 효과적이었던 경험을 통해 시간이 갈수록 분노 표출 빈도가 높아지는 경우다. 특히 정신과 정문의들은 성장과정에서 정신적 외상을 경험한 경우 분노 조절에 더욱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한다.
◇ ‘분노 신호’를 확인해보자
분노를 다스릴 방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의 의견은 대체로 일치했다. 김선미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선 자신이 화가 났다는 사실을 빨리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알아야 폭발적인 행동으로 표현하기 전에 재빨리 대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가 강조하는 포인트는 ‘분노 신호’다. 화를 내는 사람들은 얼굴이 갑자기 붉어지거나 가슴이 두근거리는 경험을 많이 한다. 또 배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느낌이 들고 목소리가 떨리게 된다.
이런 분노 신호가 생길 때 재빨리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떠올려야 합니다. 김 교수는 “분노가 느껴지는 상황을 잠시 피하거나 머릿속으로 숫자 10까지 세는 ‘타임 아웃’이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분노 폭발은 자극 뒤 30초 안에 일어난다. 그래서 그 전에 빠르게 감정을 제어하는 방법입니다. 그는 “평소에 운동이나 취미 생활로 화를 다른 에너지로 소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추천했습니다.
화병(火病) 전문가인 김종우 강동경희대병원 한방신경정신과 교수는 ‘3초, 15초, 15분을 기억하라’고 권했습니다. 김 교수는 “분노가 일어나고 정점에 도달하는 시간은 불과 15초이고 짜증이 증폭될지, 가라앉을지 결정되는 시간은 3초"라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3초에 도달하기 전 문제를 깨닫고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거나 회피하면 심각한 상황에 이르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15분이 지나면 분노 호르몬과 같은 신체 반응도 완전히 사라져 분노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
김 교수는 긍정 심리학자 데이비드 폴레이의 저서 ‘3초간’에 수록된 3단계의 ‘3초 법칙’을 대안으로 제시했습니다. 그는 “1단계에서는 지금 내가 내뱉고 싶은 말이 원래 집중해야 하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2단계는 미소를 짓고, 3단계에서는 다른 일로 주의를 돌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른 분노 조절 방법은?
병원에서 간헐성 폭발장애를 치료할 때는 감정기복이나 충동을 조절해주는 약물 치료와 감정조절을 훈련하는 치료를 한다. 감정조절 훈련은 면담을 통해 자신의 분노를 알아차리고 행동이 아니라 언어로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 밖에도 소리 내서 울어서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신경전달물질인 ‘카테콜아민’의 분비가 늘어나는데, 눈물은 카테콜아민을 배출시켜 마음에 안정을 가져다준다. 울고 싶은데 눈물이 나지 않는다면 슬픈 영화를 보고 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또한, 분노의 감정이 생겼을 때, 감정을 글로 옮기면 객관적으로 감정을 볼 수 있어 통제력을 얻는 데 도움이 된다. 글로 자신의 감정을 배출하면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막을 수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 해소와 우울증 예방에도 효과적이다.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경우에는 전문가를 찾아가 상담치료나 인지치료를 받는 게 좋다.
미국 일리노이주 노스레이크의 월마트 주차장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019) 검사를 위한
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소가 설치된 가운데 의료 관계자들이 의료장비를 착용하는 것을 돕고 있다.
중국 베이징의 옥연담공원(Yuyuantan Park)에 벚꽃이 활짝 핀 가운데
시민이 착용했던 마스크를 벗어 공기를 들이 마시고 있다.
통행금지령이 내려진 이탈리아 산피이오라노의 가정집에서 아이가 아빠의 발톱에 색칠하고 있다.
독일 함부르크의 아파트에서 주민들이 트레이너를 따라 운동을 하고 있다.
우간다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32일 간 통행금지령을 내린 가운데 캄팔라에서 경찰들이 정부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
상인들을 거리에서 내쫓고 있다.
이탈리아 만타의 시골 마을에서 신부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과
싸우는 주민들을 위해 축복 의식을 행하고 있다.
미국 뉴욕 퀸즈 자치구의 엘머스트 병원 앞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시민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테스트를 받기 위해
줄 서 있는 와중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있다.
페루 리마의 아구아둘체 해변에서 새 수백 마리가 백사장 위로 날아다니고 있다.
팔레스타인 가자시티의 해변에 해가 지고 있다.
미국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이 급속도로 확산하는 가운데
뉴욕 맨하탄의 병원 뒤에 임시 시신 보관소가 설치되고 있다.
중국 상하이의 거리에서 시민이 손수 제작한 보호 장비에 아기를 넣어 이동하고 있다.
미국 미시간주 웨스트블룸필드타운십에서 가족들이 차 안에서 6살 아들의 생일을 축하하고 있다.
온두라스 테구시갈파의 마을에서 군인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확산 방지 대책으로 격리된 주민들을 위해 음식을 배달하고
있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병원에서 의료 관계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확진자 시신을 들것으로 실어 나르고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의 아파트 건물에 "가능하면 집에 머무르시오"가 적힌 천막이 설치됐다.
인도 자바섬 수라바야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신부가 결혼식날 몸을 소독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확산 방지를 위해 통행 제한령이 내려진
파키스탄 하이데라바드에서 시민들이 무료 식품 배급을 받기
위해 모여 있다.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인근 마을 과수원에서 인공적으로 얼린 사과 나무에 고드름이 매달려 있다
독일 도르트문트의 베이커리에서 점원이 화장실 모양을 한 케이크를 들어 보이고 있다.
미국 뉴욕 프리포트 마을에 눈폭풍이 강타한 후 여성이 눈 덮인 길 위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남성이 중고 신발들을 카트에 실고 이동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 신부가
마스크를 착용한 채 결혼식 스냅사진을 찍고 있다.
파키스탄 페슈와르에서 시민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를
막기 위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일본 도시 '나라'에서 사슴 한 마리가 길을 건너고 있다.
태국 방콕의 쇼핑몰에서 음식을 기다리는 시민들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기 위해 간격을 두고 앉아 있다.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확진자를 위한 야전 병원이 설치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확산 방지를 위해
'자택 대기령'이 내려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레스의 고속도로 모습.
칠레 산티아고에서 사람의 통행이 끊긴 틈을 타
도시까지 먹이를 찾아 내려온 퓨마가 담장을 뛰어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국가비상사태법에 따라 장례식이 금지된 가운데
롬바르디아 지역에서 사제가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축복하고 있다.
미국 메릴랜드주 락빌에 위치한 노바백스의 실험실에서
연구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샘플을 관찰하고 있다.
스웨덴 예테보리의 병원 인근에서 부족한 병상을 해결하기 위해
군인들이 야전병원을 설치하고 있다.
터키 앙카라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으로
격리된 주민들을 위해 시 당국 관계자들이 음식을 나눠주고 있다.
프랑스 뮐루즈에서 의료 관계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확진자를 긴급 후송하고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의 실험실에서 연구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백신 실험을 하고 있다.
세네갈 다카르에서 방역 관계자들이 신종 코라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확산 방지를 위해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알제리 수도 알제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관련
방역 관계자가 보호장비를 입고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인도 뭄바이에서 주민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환자 치료에 헌신하고 있는 의료관계자들을 향해 박수를 보내고 있다.
프랑스 뮐루즈에서 병원에서 의료진이 환자를 긴급 후송하고 있다.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 북부 지역에서 규모 5.4 지진이 발생한 후 차가 부서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