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5,  2020

 

 

 

 

 

 

 

 

Entry into Jerusalem. In honor of tomorrow being Palm Sunday. This ...

 

 

 

 

 

 

 

 

 

 

 

 

 

 

 

 

 

 

 

 

 

 

 

향연처럼 피어오른 뭉개구름 위에

내 마음의 연정을 노래하는

저 아름다운 연은

그리움으로 춤을 추네

 

내 영혼의 청실과 그대 사랑의 홍실로

정교하게 씨줄 날줄로 엮어짠

내 꿈 속의 연이어라

 

푸른 온하늘 그대 품 뛰노는 심장에

사랑의 불을 짚인

주홍빛 내 영혼의 점화

 

불타는 노을로

채색되어

뜨거운 태양을 온통 삼키고 있는데

 

내 님을 향한 초록빛 그리움은

불붙는 단풍되어

내 온몸을 물들이고 있네

 

어느듯 조락의 가을

내 인생길에 낙엽되어

 

밤새 이슬로 젖은 풀잎을

덮어주는 비단 이불이어라

 

님이 뿌리고 간 영원한 사랑의 향취

내 영혼 온통 스며들어

주님향한 일편단심!

 

그대 서 있는 생명수 강가에

내마음을 실은 종이배를

언제까지나 띄워 보내오리다.

 

 

 

 

What a wonderful kite it is!

It is soaring high above like a love song,

Dancing with yearning above the floating clouds

Like burning incense with fragrance.

 

What a beautiful kite in my dream it is!

It is weaved exquisitely with indigo-blue thread

Of my renewed soul and crimson-red thread of

Thy agape love.

 

My pinky ignition of my spirit

Flaming with unquenchable love

Is kindled in Thy throbbing heart.

 

Hidden under Thy bosom

Like the vast, boundless and azure sky,

I am writing a love letter to You.

 

The blue sky colored with the evening glow

Looks like devouring the blazing sun.

 

Vivid and verdant greenish longing for Thee;

It is coloring my heart with awesome autumnal tints.

 

The prime of my life has gone forever,

My fragile life has become like falling leaves in the autumn.

 

They are a silky quilt spreading on the soaked wet grass

Covered with dew fallen at night.

 

Everlasting fragrance of Thy amazing grace

Penetrating into my soul quickened me,

My perpetual love for Thee is unchangeable.

 

I will keep floating love-boats made of paper

Loading with love songs toward the River of Life

And there You are standing above all

Beckoning me in.

 

 

 

 

 

 

 

 

 

 

 

 

 

 

내쉬빌, 마이애미 간호사들, 병원 지붕에서 환자와 가족을 위해 기도하다

-코로나로 수고하는 모든 의료진과 환자들을 위해 기도부탁하다-

 

 

 

*미국 테네시 주 내슈빌에있는 밴덜빌트 대학의료센터 옥상에 있는 헬기 착륙장에서 기도하는 간호사들, Gleaves는 동료 간호사 Sarah Kremer, Beth Tiesler, Tanya Dixon 및 McKenzie Gibson과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다. (이미지 제공 : Angela Gleeves / Facebook)*

 

내쉬빌에 있는 간호사 그룹은 병원의 지붕에 위치한 헬기 착륙장에서 COVID-19 전염병 환자들을 돌보아 달라고 하나님의 도움을 청하기로 결정하고 기도를 시작했다.

 

Vanderbilt University Medical Center의 간호사인 Angela Gleaves는 자신의 페이스 북 페이지에 자신과 4 명의 동료가 건물 옥상에 있는 병원의 헬기장에 서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을 게시했습니다.

 

글레브스는 “일하는 시간 중 여유가 있는 순간에 지붕에 있는 헬리콥트 파킹장가서 기도 할 시간을 가져라. 우리는 모든 병동 직원뿐만 아니라 우리 부서의 직원들을 위해 기도한다. 또한 우리가 돌보고 있는 환자와 그 가족을 위해 기도한다."

 

"우리는 또한 환자들을 돌보는 전 세계의 모든 동료들을 위해 기도했다. 함께 기도하는 놀라운 동료들과 함께하는 것이 좋았다. 우리는 기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었다”라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우리는 단지 우리가 병원뿐만 아니라 모든 환자와 가족을 위해 기도하고 있음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사진을 공유하고 싶었다. 많은 병원이 방문객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은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정말 힘든 시간이다“고 했다.

 

"기도하는 시간은 매우 좋았고 약간의 바람이 있었고, 이 순간 환자들을 돌보고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을 강요하는 것처럼 느꼈다" 고 그녀는 말했다.

 

Gleaves는 22년 동안 공인 간호사다. 그녀는 또한 비행 간호사로도 활동했다. 그녀는 의료 센터의 비행 커뮤니케이터에게 연락하여 헬기 착륙장에서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받았다고 말했다.

 

"그것이 우리가 처음 한 일이었고 이제 사람들은 '일주일에 한 번 할 수 있을까?'라고 Gleaves는 말했다. "우리는 모두 더 많은 직원들과 함께 기도 할 수있는 여러 장소에 대해 서로 문자를 보내 왔습니다. 항상 도망 갈 시간이 없기 때문에 힘들어요."

 

여러 Facebook 사용자가 650이상 공유 된 Gleaves의 Facebook 게시물에 댓글을 달았다.

 

댓글자인 Laura Phillips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은 매일 다른 사람들과 싸우고 있는 여러분, 친구, 모든 의료인을 축복한다.

 

"하나님을 찬양하라! 당신은 모두 축복받을 것이다. 여러분의 사심없는 서비스에 감사드린다”고 킴 프라이 존슨 썼다.

 

또한, 미국 폭스 뉴스에 따르면 마이애미 소재한 잭슨 사우스 메디컬 센터의 간호사들과 병원 직원들이 함께 기도하는 사진을 올리고 “이들은 ‘우리가 일할 때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며 보호하시고, 우리와 가족들의 안전을 돌봐 주소서 Our team said a prayer, asking God for guidance and protection while we are at work, and to keep us and our families safe,’ 라고 기도했다”고 보도했다.

 

 

 

 

* 미국 마이애미에 위치한 잭슨 사우스 메디컬 센터(Jackson South Medical Center)의 간호사와 병원 직원들이 코로나19 환자들이 시간을 내어 병원 건물 옥상에서 기도하는 모습*

 

 

 

 

미국 뉴욕 맨해튼 센트럴파크 인근 벤치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의료계 종사 여성. 2020.03.30

 

 

 

 

 

 

 

 

 

 

 

미국에서는 대학졸업식을 .. ..

Graduation Ceremony’라 말하지 않고  Commencement’(시작)라고 부르는 것은 의미가 깊습니다.

 

많은 대학교들이 졸업식을 할 때에는 명연설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래서 매년 졸업때가 되면 기대감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 바이러스 문제로 졸업식이 연기되거나 다른 방법으로 치러질 것 같아 아쉬움이 있습니다.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이렇게 연설했습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고.

 

사람들은 'Stay hungry'의 의미를 두고 다양한 해석을 합니다.  그 공통된 의미는 'always learn something new and achieve more'(늘 새로운 것을 배우고 더 많은 것을 성취하라), 'Don't be too easily satisfied, or grow too comfortable'(쉽게 만족하지 마라, 에 안주하지 마시오)로 압축될 수 있습니다.

 

‘헝그리 정신’은 못살던 때를 기억하라는 뜻이 아니라 항상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현실에 안주하지 말라는 의미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Stay foolish'의 의미는 어떤가. 멍청하게 가만히 있으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으라는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이 두 마디 말은 결국 '항상 만족하지 말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라'는 뜻으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한편 미국의 신학자 하비 콕스의 책 [바보들의 축제](Harvey Cox / Feast of fools)을 보면 새로운 내일을 위한 축제가 필요하다는 도전을 받습니다.

 

고난주간이 다가 왔습니다.

[호산나] 찬송소리가 예루살렘 성에 가까이 들리기 시작하면 내일을 여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바보 축제의 나팔 소리처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모습은 나도 바보같이 십자가를 짊어지러 비아돌로로사의 길을 택했으니 나를 따르는 자들이여 세상의 바보됨을 주저하지 마시오 라는 외침으로 들려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 마 5:39-42

 

산상수훈을 비롯한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과 몸소 보여주셨던 행동은 똑똑하고 영악한 현대인들이 그대로 답습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을 것입니다.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 노력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흔히 '바보같다'라고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왜 바보같이 당하냐'라는 다그침 듣고 살아왔던 요즘 청소년들이 '그저 바보처럼 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거부감없이 그 말씀대로 살기란 쉽지가 않을 것입니다.

 

나의 뺨을 때리는 사람에게 어떻게 다른 뺨까지도 때리라며 대줄 수 있으며, 내 시간과 소유를 무자비하게 빼앗으려는 사람에게 그 상대방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까지 갖다 바칠 수 있을까?

 

바보가 아니고서는 이렇게 행동할 수는 없을 것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저 단순히 말장난으로가 아니라 당신을 따르기로 했던 제자들에게 '이렇게 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곤혹스러운 명령은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말씀입니다.

 

한완상(대한적십자 총재역임) 는 그의 에서 2,000년 전 이 땅 위에 두 발을 딛고 사셨던 예수님이야말로 바보가 되기를 작정하신 분이라고 소개합니다.

 

'"바보는 바로 보살펴주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바로 선한 사마리아인 같은 사람이지요. 성직자들은 억울하게 피 흘리며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도 피해 갔지만, 돌쌍놈으로 욕먹었던 잡종 인간 사마리아인은 진정 바보였습니다. 그만이 죽어가는 불쌍한 사람을 바로 보살폈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통틀어 가장 바보답지 않아도 되셨을 분이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태어나셨을 때부터 죽음에 이르는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언행의 특징은 한마디로 '바보스러움'에 있습니다.

 

남에게 주기보다는 더 많이 갖기 원하는 우리의 욕심이, 남을 살리고 내가 죽기보다는 남이 죽든지 상관하지 않고 내가 먼저 살고 보려는 이기심이,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피곤함과 두려움을 피하고 싶어하는 자기중심적인 [자기 사랑]은 주님께서 당신의 삶으로 몸소 보여주셨던 그 '바보스러움'과는 애초부터 어울리지 않은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선언했던 위대한 고백, "나는 죽고 예수로 살겠다"는 것은 당시 유대인 사회에서 엘리트로 살면서 부귀영화를 누릴 수도 있었던 바울의 '자기 바보화의  선언'이었던 셈입니다.

 

결국 영적인 눈을 뜨지 못했던 그의 동료들, 소위 과거의 바울만을 알던 사람들은 그를 '예수에 미친 희대의 바보'로 평가했습니다.

 

바로 세상의 눈과 귀로는 결코 이해하지도 설명할 수도 없는 '바보스러움'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의 뒤를 따라 바보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바울은 실제로 세상 속에서 바보처럼 살다가 죽었습니다. 바보를 만나 바보가 되었니다.

 

그러나 그가 어떤 위치에 있든지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더 낮은 자리로 흘러가기를 주저하지 않는 그 '바보같은 사랑과 헌신'으로 말미암아 세상은 더 아름다워집니다.

 

혹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생각되어질 때조차도 예수님을 따라 '자기 바보화'를 살아내는 사람은 실은 엄청난 보물, 즉 예수 그리스도를 가진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크리스천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 때문에 '넌 참 바보같다'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큰 칭찬이 어디있겠습니까?

 

고난주간[바보주간]입니다. 예수에 미친 희대의 바보들의 축제가 시작되는 주간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바보가 되지 못하면 고난주간의 의미는 Nothing(무의미)입니다.

 

세상은 그런 바보 같은 사람들로 인해 감동받고, 그런 바보들이 늘어날수록 더 아름다워지는 것입니다.(장재언)

 

 

 

 

 

 

 

 

 

 

 

 

Christians observe 'Palm Sunday' in Kerala | India.com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하셨습니다. 우리보다 우릴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사랑의 채찍으로 코로나19재앙을 주심에 우리는 방역이나 손 씻기 거리두기 등 일만 아니라 “악한 길”에서 떠나는 일도 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인간의 오만으로 과학기계기술문명의 바벨탑을 쌓아 올렸던 일을 중지하게 하옵소서. 이 과정에 천지창조질서를 파괴하여 지구를 병들게 하고 가장 귀한 물과 공기를 오염시킨 일을 더 이상 하지 않게 하옵소서. 개인의 온갖 욕정으로 자신만의 쾌락을 추구하여 사재기 등으로 이웃을 사랑하지 못한 잘못을 알고 자기를 포기하게 하옵소서. 또한 하나님의 집을 찾아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하나님 얼굴”을 찾게 하옵소서. 주님 없이는 안 되기에 주 앞에 쩔쩔매는 겸손무릎으로, 찔찔 짜는 회개눈물로, 뻘뻘 피땀정성 강청기도로, 주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게 하옵소서. 마침내 이런 기도의 눈물입김이 가정과 직장의 지성소에서 그리고 교회의 제단에서 가득함을 경험하며 하나님아버지로부터의 용서를 받게 하옵소서. 바람과 파도를 잔잔케 하시던 주님의 꾸중으로 병마가 물러감을 보고 주 하나님을 찬양케 하옵소서. 새삼 찔리시고 상하시고 징계 받으시고 채찍 맞으신 주님의 십자가 피사랑 죽으심 이유 알고, 부활과 영생 주님을 바라보고, 목이 터져라 희망을 외치 하옵소서. 그리고 다시 오실 주님의 입장에서 성령께서 세상 속에 일하시는 중 선거이후 민주인권평화로 방향이 잡히게 하시고, 4.19혁명학생이나 4.16세월호 젊음들 그 가족이 위로받고 새 힘 얻게 하옵소서. 

 

 

 

 

 

 

 

  

‘붕어빵’으로 세계를 누비는 전도자 박복남 장로(목포 복음교회, 제주열방대학 전도팀장). 9년 전 붕어빵 전도법을 개발해 쉽고 행복한 관계전도법을 강의하고 실제를 보여주고 있다.

 

 

 

▲ 붕어빵 전도행전의 박복남 장로

  

지난 9년 동안 전국과 해외 2500 여 교회에서 전도간증과 붕어빵 전도방법을 전수해 온 박 장로는 26일 오전 7시 서울 강남구 역삼동 순복음강남교회(담임목사 최명우) 4층 요한성전에서 열린 제452회 세계성시화운동본부 월요조찬기도회에서 전도 간증과 함께 붕어빵 전도방법을 소개했다.

 

박 장로는 전남 신안군 하의명 후광리의 가난한 종가집 농부의 5남매 중 막내로, 1년에 제사를 14회나 지내는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1985년 심한 질병 가운데 예수님을 만났다. 그리고 목포복음교회에 출석하면서 전도활동에 열심히 참여했다. 80~90명의 전도대원 중 남자는 그가 유일했다. 마지막 때 하나님이 전도자로 사용하고 계신다고 고백했다.

 

박 장로가 전도사역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 계기가 있었다.

“형님이 식도암 말기로 진단을 받았어요. 그래서 제가 형님의 목에 손을 얹고 3개월 간 기도했는데 깨끗하게 나았어요. 병원에서도 놀랍다는 반응이었습니다. 형님은 지금은 암환자를 대상으로 열심히 전도하고 계십니다.”

 

 

 

▲ 세계성시화운동본부 월요조찬기도회에서 붕어빵 전도간증을 하고 있는 박복남 장로

 

박 장로는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예수님과 사마리아 수가성 우물가 여인과 대화를 인용하하면서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전도 사례를 소개했다.

 

교회에서 중등부 부장으로 섬기고 있는데, 중학교 교사인 중등부 교사 한분이 교장 선생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그분의 이름을 수첩에 기록해 놓고 기도했다. 하루는 꿈에 꽃을 보여주셨다. 그래서 꽃을 사서 교장 선생에게 선물하라는 것으로 생각을 했다,. 마침 신학기였는데 화원에 가서 꽃을 사서 정근모 박사가 쓴 [나는 위대한 과학자보다 신실한 크리스천이고 싶다]는 책과 함께 누가 보냈는지를 밝히지 않고 교장실로 보내드렸다.

 

그 꽃을 받은 교장 선생은 20여 명의 크리스천 교사들에게 누가 사다 줬는지 물었다. 아무도 없었다. 맨 마지막으로 기도 부탁을 했던 중등부 교사에게 교장이 물었고, 그 교사는 박 장로에게 전화해서 꽃을 보냈냐고 물었다. 그리고 교장 선생에게 보고를 했다. 교장은 박 장로에게 전화를 걸어 왜 자신에게 꽃을 보냈는지 물었다.

 

박 장로는 신학기이고 해서 교장실에 꽃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고 했다. 그랬더니 교장은 “내가 58년 동안 처음으로 꽃을 선물 받는 꿈을 꿨습니다. 꿈에 깨어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라고 했다.

 

 

 

▲ 자신의 봉고차에 붕어빵 기계를 설치해 가는 곳마다 전도하는 박복남 장로

 

 

그렇게 시작된 교장 선생과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식사자리로 이어졌다. 교장 선생은 “제 꿈을 이루어주셔서 감사합니다.”고 말했다. 박 장로는 “제가 꿈을 이루어드리는 통로가 되어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그후 5~6회 쯤 만났을 때 박 장로는 “교장 선생님에게 부탁을 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 들어 주시겠습니까?”라고 했고, 교장 선생은 “무슨 말씀을 하든지 하세요. 다 들어 드리겟습니다.”라고 답했다.

 

이전 만남까지는 교육에 대해 주로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날은 교회 9시 중등부 예배에 초청을 했다. 교장 선생은 처음으로 교회에 와서 박 장로의 안내로 교회 교육관의 24개 분반 교실을 둘러봤다. 그리고 11시 예배에도 참석했다. 교회에 대한 좋은 인상을 받은 그는 그 후로 새벽기도까지 참석할 정도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새벽마다 박 장로를 위해 기도하는 신실한 동역자가 되었다.

 

교장 선생은 교회 출석한 지 4~5주가 지나자 박 장로에게 “어떻게 전도할 수 있어요?”라고 물었고, 박 장로는 “제가 한 것처럼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교장 선생은 학교사들을 전도했다.

 

당시 중등부는 학생이 40여명 안팎이었다. 그런데 6개월이 못되어서 200여명으로 성장했다. 전국 교회가 복음교회 중등부 부흥의 비결을 배우러 올 정도였다.

 

“중등부가 부흥하다보니까 다른 부서도 부흥했어요. 장년 출석 1000명에 학생부는 1200명 출석했어요. 관계를 통해 전도하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확인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우리와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셨다면서 세상 사람들과 우리도 그런 관계를 만들면 그들도 예수를 믿게 될 것이라고 했다.

 

박 장로는 “예수님은 수가성 사마리아 여인에게 원색적으로 복음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의 대화 속에서 여인은 에수님이 메시아이심을 깨닫고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가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했습니다. 그 결과 마리아 수가성 사람들 거의가 예수를 믿었습니다.”

 

 

 

▲ 붕어빵 전도 시범을 보이는 박복남 장로(가운데)

 

박 장로는 전도할 때 성령님이 함께하신다고 강조했다. 뚜껑이 열릴 때 물이 들어가는 것처럼 사람들의 마음의 문이 열릴 때 복음을 듣기를 원하고 예수를 믿게 된다는 것이다.

 

올해로 9년째 붕어빵 전도사역을 하고 있는 박 장로는 사람들을 만나서 ‘붕어빵 전도’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상대방이 알고 싶은 내용을 설명만 하면 복음이 자연스럽게 들어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지방지 기자가 ‘놀라운 사실을 말씀을 드립니다. 붕어빵을 드시고 50만 명이 하나님께로 돌아왔다고 합니다.’라고 했어요. 전도의 미련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알게 하신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는 5월2일과 7월 2일을 붕어빵 전도데이로 정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처럼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기적처럼 붕어빵 한 마리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한다는 의미다.

 

박 장로는 관계전도는 상대방이 그리스도인을 보면서 좋은 마음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전도를 위해 현장에 나가는 것을 어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예수님도 현장을 나가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명절에도, 안식일에도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저도 9년째 365일 전도하고 있습니다. 무더운 여름에도 붕어빵을 구워서 선물하면서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합니다.”

 

어느 해에는 대구보건대에서 CCC학생들과 태풍이 불어오는 시간에도 붕어빵을 구워 선물하면서 복음을 전했다. 캄보디아에서는 붕어빵을 구워주면서 캄보디아 말로 ‘구원’, ‘십자가’, ‘예수’, ‘영접’ 등을 써서 보면서 복음을 전했다. 그 중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을 위해 기도해 주었더니 앞이 보이는 은혜의 역사가 나타났다.

 

 

 

▲ 뉴욕성시화총력전도 실내집회 때

붕어빵을 구워 선물하고 전도 실천한 박복남 장로(우)와 허인욱 박사(좌)

 

 

서울 교대 근처에 있는 더크로스교회의 부활절 집회를 인도했을 때 부모님 전도로 고민하던 성도의 부탁을 받고 그 부모님이 살고 있는 전라남도 영광으로 갔다. 그곳에서 붕어빵을 구워서 무료시식회를 시작했다는 그 앞을 지나가던 아주머니 한 분에게 붕어빵을 선물했다. 놀랍게도 기도와 전도를 부탁했던 그 성도의 어머니였다.

 

이어 붕어빵 바구니를 들고 동네에 들어갔는데 공교롭게도 그 성도의 부모님 집이었다. 그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고, 불교 신자였던 그 부모들은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가질 때입니다. 정확하누 시간에 붕어빵을 굽는 그 현장을 그 성도의 어머니가 지나가게 하신 것과 그 집을 찾아가게 되는 것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입니다. 저는 붕어빵이 예수를 믿는 통로가 되기를 원합니다. 반대로 붕어빵을 받는 사람은 붕어빵을 먹어보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겠지요.”

 

120년 역사의 경북 청도 풍각제일교회에서는 붕어빵 전도집회를 4회나 했다. 그 후 매주 3-4명씩 전도가 되었다. 1년에 150명이 성장했다. 농촌교회에서 1년에 배가부흥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우리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은 가능하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박 장로는 붕어빵을 구워서 선물할 때 위생을 강조한다. 장갑을 끼고 붕어빵의 지느러미를 잡고 전달하도록 한다. 위생종이와 냅킨도 준비한다.

 

“예수님도 찾아가는 전도를 하셨습니다. 허리에 수건을 두르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그렇게 섬겨야 합니다.”

 

박 장로는 또한 어디를 가든지 교장, 사장, 시장 등 탑 리더를 제일 먼저 만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교사학인 동국대에서도 총장을 제일 먼저 만났다. 박 장로는 무속인도 찾아가서 기도해 주고, 불교의 스님도 붕어빵 전도로 만나서 예수 믿고 승복을 벗었다.

 

“소통은 어렵지 않게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모든 전도의 벽을 넘게 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 변화되어 순종하면 나라와 도시가 변화됩니다.”

 

전방 부대 군인들을 위해서는 국방부장관을 지낸 권영해 장로와 함께 20회를 방문했다. 박장로로부터 붕어빵 전도방법을 배운 포항에서는 매주 해병대 부대원들에게 붕어빵으로 전도를 하고 있다. 그 부대 훈련병 900명 중 500명이 세례를 받을 정도다.

 

 

 

▲ 메릴랜드 한인회장을 역임한 허인욱 박사(좌)가

붕어빵 전도사역에 박복남 장로와 함께 동역하고 있다.

 

“내년 동경올림픽에서도 붕어빵 전도를 통해 동경을 찾는 이들을 예수의 사랑으로 녹이고 싶습니다.”

 

9년 동안 2500교회 집회를 했고, 초중고 대학생 수련회 등에서 1,000여 회 강사로 섬긴 박 장로는 미국 메릴랜드한인회 회장을 역임한 허인욱 박사와 3개월 일정으로 동역하고 있다. 캐나다, 도미니카 등 북미 나라들에서도 붕어빵 전도사역이 활발하게 일어나도록 하기 위함이다.

 

연 100억대 유통업 CEO였던 그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국내에서는 12인승 봉고차에 붕어빵을 구울 수 있는 기계를 장착하고 전국을 누비고 있고, 해외에서는 전기로 된 붕어빵과 와플을 제작할 수 있는 장비를 들고 가서 직접 구워서 선물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박복남 장로.

인생 후반전에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쓰임 받는 행복한 전도자의 모습을 보았다. 

 

 

 

 

 

 

 

 

 

 

 

 

 

 

 

 

 

 

490번 를 지어도 용서받을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마지막 때,

주님께서 심판주로 다시 오실 때는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 가운데 

알곡과 쭉정이를 가리는 키질(winnow)을 행하시는데..

 

 

 

 

 

이 키질의 척도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경외하느냐의 여부입니다.

 

신구약을 막론하고,

하나님과 언약 맺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가장 중심이 되는 동일한 계명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마음 다해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아 지금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주 너희의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모든 길을 따르며,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주 너희의 하나님을 섬기며.."

(신 10:12_표준새번역)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 22:37)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에 5:21)

 

종종 어떤 분들은 

하나님께서 어떤 높은 수준의 

레벨을 정해놓으시고

우리가 그 수준의 레벨에 오르면

알곡 신부로 여겨주시고

그렇지 않으면 쭉정이로 탈락시키는 것처럼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의 인본적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마음)으로 봐야만 

이 부분에 대한 오해가 생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른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원하십니다.

 

즉 우리와 마음을 나누는 교제를 하면서 

서로 사랑하는 관계로 살도록 우리를 지으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에도

그런 교제속에 마음을 나누고 동행하며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주님과의 관계는 반드시 

하나님을 향한 사랑 경외함이 

전제(前提)되어 있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정하신 레벨이 있다면 

오직 '이것'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부분에 대한 오해가 커서..

그냥 육적인 차원에서

내가 하루에 기도를 몇시간을 꼭 해야 하고..

하루에 성경을 몇장씩 꼭 읽어야 하고..

일주일에 예배를 몇번씩 꼭 드려야 하고.. 

교회봉사는 최소 이 정도는 꼭 해줘야 하고 등등..

 

이런 표면적인 신앙 행위들을

신앙인의 레벨를 가늠하는 척도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우리의 마음이란게..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종교적 상식에 근거한 

일반적인 인식의 차원을 

어떻게 초월한 것인지를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로 살아가고 있다고 가정하고,

아주 극단적인 예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여기 A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A는 어떤 특정한 한가지 죄를 

일정기간에 한번씩 반복해서 짓습니다. 

수년째 이 죄를 반복해서 짓고 있지만

죄를 짓고 나면 드는 마음은.. 

항상 후회와 자괴감..

 

무엇보다 하나님께 대한 죄송한 마음이 너무 커서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우울함과 절망감이 뒤섞인 심적인 반응은

죄를 지을 때마다 단 한번도 달라지지 않고

늘 똑같습니다.

너무나 힘겹고 고통스럽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절망속에 널부러져 있는 것이

결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님을 알고

추스리고 다시 일어나 주님앞에 나아갑니다.

 

그리고 어렵게 입을 열어

죄를 고백하고 너무나 염치 없지만

주님의 긍휼을 구하며 나아갑니다. 

그렇게 주님께 고백하며 나아가자.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고

뜨거운 눈물과 함께 다시 일어서서 

나아가던 방향대로 계속 나아가라는 

마음의 확증을 주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렇게 다시 일어선 A는 

그 죄를 반드시 끊어낼 수 있다는 

변함없는 믿음과 결단으로 

주님의 도우심 속에

계속 죄와 싸우며 살아갑니다. 

 

마태복음 18장 21절 이하에 보면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해줘야 하냐는 베드로의 질문에

예수님은 일곱번씩 일흔번까지도 

용서해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사람과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죄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본질적인 의미는 

490번까지만 용서하시고 

그 이상은 용서치 않으신다는

그런 표면적 의미가 아니라..

그만큼 죄를 지은 횟수와 상관없이

죄에 대해 어떤 마음과 자세를 가지고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성을 내포하는 말씀입니다. 

 

그럼 여기서 

70번씩 7번, 아니 그 이상 죄를 지었음에도 

용서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안에 있는 사람일까요? 

그렇지 않은 사람일까요? 

 

우리가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안에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척도 중 하나는 바로

죄를 짓냐 안 짓냐의 여부가 아니라..

에 대해 어떤 마음을 품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의 여부입니다. 

 

한 가지 죄가 반복되든, 

아니면 여러 죄가 짬뽕돼서 반복되든간에

죄를 490번 이상을 꾸준히 지었음에도

용서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죄를 대하는 마음과 태도가 

반복된 기간 속에서도 

변함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죄를 처음 지었을 때나..

490번째 지었을 때나..

그 죄를 짓는게 너무나 싫기 때문에 

반드시 끊어낼 수 있다는 마음의 결단을 하고

죄를 지을 여지가 있는 환경적 요소를 바꾸는 등 

 

이런 실제적인 행동과 함께..

주님앞에 변함없이 나아가 

그분의 도우심을 구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행동패턴은 

내가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안에 있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보통 죄를 반복해서 짓게 되면 

원수마귀가 공격하는 패턴은 동일합니다.

 

수십, 수백번 반복해서 죄를 지은 그 짙은 경험이 

나의 뇌리에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기에

"난 이제 끝났고, 지옥 확정됐어,

이 죄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할거야"라는..  

 

아주 잘못된 인식에 사로잡히도록 

감정과 생각을 집어넣습니다. 

 

또한 

"내가 이렇게 반복해서 죄를 지었으니

하나님도 이젠 나에게 실망하셔서

나를 손절하셨을거야.."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내 기준에 가둬놓고

내 감정따라, 상황따라 이리저리

마음대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럴거면

하나님께서 7번씩 70번도 더 용서하라는 

말씀 자체를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만약 내가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안에 거하고 있다면..

490번이 아니라 그 이상 죄를 지었더라도..

그럼에도 용서하길 원하신다는 

하나님의 마음을 절대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힘겹지만 그 믿음으로 주님앞에 나아가 

주님께 고백을 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다시 

마음을 회복시켜 주시고 일으켜 주시면

죄를 끊고자 하는 변함없는 마음의 결단과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노력을 다하면서   

가던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게 됩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그 죄는 조금씩 나에게서 멀어지게 되고

결국 그 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죄로 인해 수없이 반복되어진 그 뚜렷한 경험이 

뇌리에 축척되고 각인됨으로 인해 

스스로 이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하며

포기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음에도..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버린다면 

마귀에게 속아 죄의 종이 되기를 자처하면서

스스로 지옥 길로 걸어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죄를 대하는 

분명한 마음과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면..

하나님은 과거에 지었던 

수백 수천번의 죄를(반복된 죄라 할지라도) 

기억치 않으심은 물론이고..

(사 43:25, 히 8:12)

 

그 이후에도..  

그게 내가 예상하는 것보다 조금 오래 걸리고 

힘겹게 느껴지더라도

반드시 그 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역사해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전제는 반드시 내가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온전한 관계안에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척도 중 하나는 바로

죄를 대하는 변함없는 마음과 태도입니다. 

 

하지만..

내가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안에 있지 않으면

죄 용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왜 용서를 받을 수 없을까요? 

 

죄를 대하는 마음과 태도 자체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죄를 지었지만 별 죄책감도 없고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뭐.. 죄짓고 회개하면 되니까.."

라는 마음을 품는다면.. 

 

설령 그가 단 한가지 죄를 지었다 해도

그런 중심을 품고 있는 상태에서는

그 죄는 하나님앞에 그대로 남아있게 됩니다. 

 

종종 죄에 대해 올바른 마음과 태도가 

갖춰져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잘못된 메세지가 들어감으로 인해

죄에서 더욱 헤어나오지 못하도록 

올무가 씌워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죄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고

경각심도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죄를 무조건 용서해주시는 분이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죄짓고 살아가니까

죄를 지어도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없다고 얘기한다면.. 

 

그가 죄를 대하는 마음과 태도가 

어떻게 형성되어 질까요?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죄를 대하는 마음과 태도가 나올 수 있을까요? 

 

지금 교회안에는 

이런 잘못된 복음이 만연되어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로마서 1장 29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죄들을 나열하면서

그 가운데 "수군수군"하는 행위 역시 죄로 말씀합니다. 

 

여럿이 모여 

그 자리에 없는 다른 사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뒷담화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 카페에서 

그 자리에 없는 B집사에 대해

다른 집사님들이 그다지 좋지 않은 부분에 대해 

수군거리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고서도..

 

이에 대한 그 어떤 죄의식이나 가책도 없습니다.

이런 행동 자체를 

아예 죄로 인식을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안에 있다는 말은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이기에..

 

하나님을 경외하면 자연스레

내가 하는 생각, 말, 행동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어떠할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여럿이 모여 수군수군대는 일에 대해..

성격상 누구 뒷담화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안하는 경우는 있어도..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안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게 오늘날 교회안의 현실입니다. 

 

이처럼..

죄를 죄로 인식조차 못하는 일이나

죄를 아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일들은..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안에 

있지 못하기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하나님 사랑하고 경외하며

그분과의 온전한 관계안에 거하는 사람이라면 

나오는 세 가지 영적인 열매는 바로

믿음, 순종, 분별입니다.

 

이 세가지 열매는

앞서 살펴봤던 죄 문제에서 

축약적으로 다 적용됩니다.

 

죄를 지었을 때

그 죄로 인해 마음은 괴롭지만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하실까를 온전히 분별하고

그 분별에 의한 믿음의 결단으로 주님앞에 나아가

주님이 원하시는 행동(순종)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 믿음, 순종, 분별은 

삶 가운데 총체적으로 적용되어집니다.

눈앞이 깜깜한 어떤 상황을 맞이했을 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이했을 때..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믿음으로 주님앞에 나아가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마음을 지켜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삶의 전부이자 우선이 되기에

이런 믿음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또 내가 어떤 행동을 하길 원하시는

마음을 주님이 부어주셨을 때..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 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순종하는 행함이 나오게 됩니다.

때론 내가 처한 현실적 상황과 부딪히기에

영적인 씨름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주님이 뜻하신대로 행동합니다. 

 

하나님과 서로 마음을 나누고

사랑하는 관계안에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악하다 하시는 일을 악으로 분별하고

하나님이 선하다 하시는 일을 선으로 분별할 줄 알게 됩니다. 

 

이런 분별은 

설사 세상에서 오는 인본적 가치가 아무리

선하고 정의로워 보이는 모양을 하고 있더라도

미혹되지 않고 하나님의 관점대로 온전히 분별하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온전히 동행하며

사랑하는 관계안에 거하고 있다면..

믿음, 순종, 분별의 열매는 나오게 됩니다. 

 

여기서 무슨 세가지 열매가 나온다고 하니

또 사람의 관점으로 생각하면서..

어렵게 느끼는 분들이 있을 수 있는데..

이 세가지 열매 자체를 본질로 여기며 

이 열매를 맺기 위해 

인위적으로 힘쓰라는 말이 아닙니다.

 

내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그분과 실질적인 교제 가운데 살아간다면..

이 열매는 아주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는 열매일 뿐..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본질은 바로

우리의 마음(중심)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서로 마음을 나누고 

영원토록 사랑하고 교제하며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향한 이런 중심으로 살아간다면..

 

삶 속에서 70번씩 7번을 곱하는 죄를 지었다 해도.. 

또 로마서 8장 38-39절 말씀처럼

"사망이나 생명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다른 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을 수 있는 전제는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경외하는 그 중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날마다 겸비함으로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이 중요합니다.

날마다 내 자신을 들여다보며

내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경외하는지를 점검하고..

주님께 긍휼과 은혜를 구하며

그 은혜로 살아가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경외하는지

잘 모르겠다면..

주님앞에 나아가 

그분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십시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 8:17)

 

하나님은 당신을 찾는 자에게

기꺼이 찾아와 주시고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어느 누구도 그 은혜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6)

 

- 엘샤다이

 

 

 

 

 

 

 

 

 

 

 

 

 

 

 

 

부활절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과연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부활절 달걀에 색칠을 했을까요?

 

부활절을 언제부터 지켰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근거가 없습니다. 다만 유세비우스에 따르면, 서머나의 감독인 폴리갑과 로마의 감독 안티케투스가 서로 주고받은 서신에 "부활절 논쟁"이 있었다는 불확실한 기록만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성경이나 기타 문서에 초대 그리스도인들부활절 축제를 지켰다는 기록은 하나도 없습니다. 더욱이 부활절을 축제의 날로 잡아 기념하라는 말씀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대영백과사전」초판은 이렇게 말합니다.

 

"신약성경이나 사도적 교부들의 저술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이 부활절을 지켰다는 암시는 없다. 특정한 날을 거룩히 여기는 것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나 사도들도 이 축제일이나 기타 다른 어떤 축제일도 지키라고 명한 바가 없다."

 

뿐만 아니라 3세기경, 교회에서 지킨 부활 축일은 오늘날 '이스터'(Easter)란 이름으로 지켜지는 부활절과는 상당히 달랐습니다.

 

또 이 기념일은 그 당시에 '이스터'란 이름으로 불리지도 않았습니다. 이 기념일은 파스카 즉 유월절로 불렸고, 이 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한 것으로 전해질 따름입니다(히슬롭, 「두 개의 바빌론」).

 

그런데 이 '파스카'를 '이스터'라 불러 '춘분 뒤에 오는 만월(滿月) 직후의 일요일'에 축일로 지키기 시작한 것은 로마 카톨릭 교회였습니다.

 

 

이스터는 325년 로마 카톨릭이 제정

 

 

주후 325년 그리스 동방 정교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로마 카톨릭교회가 니케아 공회에서 부활절을 정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카톨릭 백과사전」, p. 505).

 

오늘날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도 로마 카톨릭주의에서 나온 '이스터'(부활절)를 '춘분 뒤에 오는 만월 직후 일요일'에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석연치 않은 점은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가리키는 단어는 'Resurrection' (성경에서 총 41회 언급)인데, 왜  부활절 '이스터'(Easter) 라고 부르게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의 죽음과 부활은 유다인들의 유월절 주간(유월절은 니산월 14일에 있었으며 이것은 유다 민력으로 7월에 해당하며 우리 달력으로는 3-4월에 해당하고, 그 주간에 무교절, 초실절 등이 동시에 있음)에 있었는데, 왜 부활절을 '춘분 뒤에 오는 만월 직후 일요일'에 지키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의문점을 풀기 위해 우리는 먼저 몇 가지 영어사전과 신학사전에서 '이스터'(Easter) 항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웹스터의 신국제 사전 제3판」(Webster's 3rd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1. 고대 이교도들의 봄 축제, 2.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축제일로서 3월 21일 춘분이 지난 뒤에 오는 만월을 기준으로 해서 그 다음에 오는 일요일에 거행된다. 부활절은 춘분과 음력이 연결된 일자이기 때문에, 그 날짜는 매해 달라진다.

 

◐「펑크와 와그날의 대학표준사전」(Funk & Wagnalls's The College Standard Dictionary)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독교 축제, 혹은 부활제가 거행되는 날

 

「시사 엘리트 사전, 1987년판」

"부활절(예수의 부활을 기념하는 축제일, 3월21일 이후의 만월 다음의 첫 일요일)

 

「현대 영한 사전, 1994년판」

"그리스도의 부활절, 춘분(春分) 3월 21일의 만월. 그 날이 만월이 아니면, 그 뒤의 만월 후 최초의 일요일이며 그 날짜는 정해진 것이 아님. 이 날을 '부활절'(Easter Day)라고 말하며 기독교 국가에서는 크리스마스 다음 가는 중요한 축제일임. 원래는 봄의 여신 '에오스트레'(Eostre)의 제일(祭日)임."

 

「성서대백과, 정인찬 편, 기독지혜사 1979」

"이스터라는 명칭의 어원은 불확실하다. 그러나 비드(Bede)에 의하면, 이 명칭은 고대 튜우튼 족이 4월에 희생제물을 바쳤던 봄의 여신 '이스터'(Eastre)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크리스천 의식은 아마도 이 이교도 축제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태양신 숭배' '바알 숭배' '월신 숭배'

 

고대 바빌론에서는 사탄을 숭배하는 신비 종교들이 극도로 성행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태양신 숭배' 혹은 '바알 숭배' 그리고 '월신 숭배' 등이었습니다.

 

태양신(솔, 호루스)은 최초의 적그리스도이자 바빌론 왕국을 세운 '니므롯'을 상징하는 것입니다(창10:8,9). 그의 이름은 '담무스'(Tammuz)라고도 하는데(겔 8:14) 그는 원래 니므롯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니므롯의 아내였던 세미라미스는 자기 남편 니므롯이 죽자, 그 니므롯이 환생하여 담무스가 되었다고 사람들을 속였던 것입니다. 이 담무스는 바알이라고도 불리며(렘 19:5), 마르둑, 벨, 오시리스, 쥬피터, 오리온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담무스의 어미이면서 그의 아내가 된 세미라미스는 월신으로 알려졌고 '하늘의 여왕'(queen of heaven, 렘 7:18; 44:17-25)이라 불렸으며, 여러 고대 국가에서 에오스트레(Eostre), 오스테라(Ostera), 아스다롯(삿 2:13), 아스타르테, 다이아나(아데미, 행 19:24), 시벨레, 비너스, 마리아, 이쉬타르(Ishtar) 등으로도 불렸습니다.

 

특히 고대 영국의 색슨족은 이 '이쉬타르'란 이름을 취해 이스터(Easter, 빛과 봄의 여신)라고 불렀습니다. 다시 말해, '이스터'(Easter)는 에오스트레, 오스테라, 아스타르테, 또는 이쉬타르 등을 현대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부활절 풍습: 부활절 계란, 부활절 토끼, 사순절 등

 

원래의 이스터는 하늘의 여왕을 기념하는 이교도들의 축제일로서, 이것을 상징하는 심벌로는 플레이보이지의 심벌인 '토끼'와 하늘의 여왕인 비너스 혹은 이스터의 탄생을 상징하는 달걀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스터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부활절 기간 중에 행해지는 관습들 역시 이교도들의 신비주의 종교에서 비롯된 것이 대부분입니다.

 

예를 들자면, 부활절 달걀을 삶아 색칠하여 먹는 것 등은 비기독교적인 이교도의 관습입니다. 어떤 이들은 병아리가 달걀에서 나오듯 그리스도께서 무덤으로부터 나오셨다는 의미로 부활절 달걀의 의미를 재해석하여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관습은 결코 성경이나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유래된 것이 아닙니다.

 

고대 바빌론 신화에는 하늘로부터 유프라테스 강에 떨어진 것으로 알려진 굉장히 큰 전설상의 달걀이 등장하는데, 바로 그 달걀에서 여신 아스타르테가 부화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러므로 고대 바빌론 사람들 사이에서 달걀은 거룩한 것으로 여겨졌으며, 여신 아스타르테(혹은 이스터)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한편 고대 영국의 드루이드 교도들은 달걀을 자기들 종교의 거룩한 상징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또한 아테네에서는 바카스의 제전이나 디오니시아카의 제전 때 알을 성별하여 바치는 종교행사가 거행되었습니다.

 

한편 힌두교도들은 금빛을 띤 창조의 알을 숭배했으며 중국인들은 종교축제 때에 염색하거나 색칠한 달걀을 사용하였고, 고대 이집트인들과 그리스인들은 종교의식에서 알을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비밀스런 목적을 위해 자기들의 사원에 알의 형상을 만들어 비치하기도 하였습니다.

 

또 로마에서는 풍작의 여신 케레스를 섬기는 행렬이 지나갈 때 계란을 앞세워 갔으며, 일본에서는 거룩한 달걀을 봄의 여신의 상징으로 색칠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이집트인들에게는 달걀이 태양 즉, '황금달걀'과 관련되어 있었고, 그들은 염색한 달걀을 거룩한 제물로서 사용하였습니다. 이러한 전 세계적인 바빌론의 알 숭배 사상의 자취는 한국에도 유입되어 '박혁거세 신화'에서도 발견됩니다.

 

「대영백과사전」은 달걀을 채색하여 먹는 이런 '알 숭배 사상'의 기원을 고대 이집트인과 페르시아인까지로 소급하여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이런 이교도들의 관습이 기독교와 연관을 맺게 되었을까요?

 

「카톨릭백과사전」에 나오는 다음 인용문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사순절 기간에 달걀 사용이 금지된 까닭에 사람들은 부활절 날 부활의 기쁨을 상징하는 붉게 칠한 달걀을 상에 가져 왔다. … 이 관습은 그 기원을 이교주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봄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경축하는 많은 이교 관습들이 부활절과 접목되었기 때문이다"(「카톨릭백과사전」제5권 p. 227, '부활절' 항목).

 

부활절과 관련되어 이교로부터 유입된 부활절 관습에는 부활절 달걀 외에도 부활절 초, 부활절 토끼, 부활절 백합 등이 있으며, 대표적인 예로 부활절 토끼의 경우를 들어보면, 「대영백과사전」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부활절 달걀과 마찬가지로, 부활절 토끼도 고대 이교로부터 기독교화 된 것이다. 토끼는 고대 이집트의 전설에서나 그 밖의 다른 지역에서 달과 관련되어 있다.

토끼에 해당되는 이집트 말 'um'이 '열린'(open)이란 의미와 '기간'(period)을 의미하고 있으므로, 이 토끼는 어떤 주기성 사상과 관련을 갖게 되었다. 즉 달과 인간에게, 그리고 젊은 청춘 남녀에게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으로 다산과 새로운 삶의 상징이 되었다. 이와 같이 토끼는 부활절 … 달걀과 관련되어 있다."

 

또 위에서 인용한 「카톨릭백과사전」은 "토끼가 이교의 상징으로 항상 다산의 상징이 되어왔다"고 말하며, 「그림으로 보는 세계 문화 상징 사전, 진쿠퍼 지음, 이윤기 옮김,

부활절 달걀과 부활절 토끼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기독교가 생기기 이전에, 부활절 달걀 혹은 토끼는 춘분에 즈음하여 생명의 새로운 탄생과 갱생을 가져다주는 상징이었다. 야생토끼나 집토끼는 게르만의 여신 오스타라(중세 영국의 에오스트레)를 나타내는 것이다. 아마도 이 여신의 이름이 이스터의 어원일 것이다."

 

부활절 기간에 그리스도인들은 보통 일출예배에 참석합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부활절 일요일 아침, 태양이 떠오르는 때에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셨기 때문에 이를 기념하여 영광을 돌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예수님의 부활은 태양이 떠오를 때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무덤이 이미 비어있는 것을 보았을 때는 아직 어두울 때였습니다.

 

한편 이 일출 예배의 모형은 해돋이 때 해맞이를 하던 고대 태양 숭배의 일부분이었습니다.

 

물론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해가 뜰 때 부활예배를 드리는 것이 결코 태양을 숭배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런 관습은 성경에 없는 것이며 이교에서 비롯된 혼합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에스겔 시대에 참 하나님을 아는 자들도 태양숭배에 빠졌고, 그것을 자기들 종교의 일부분으로 삼았습니다.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주의 집 안뜰로 들어가기로, 보니, 주의 전 문 앞 현관과 희생단 사이에서 약 스물 다섯 명이 주의 전을 등지고 낯을 동쪽으로 향하여 동쪽 태양에 경배하더라"(겔 8:16).

 

백성들이 동쪽을 향하여 태양을 경배했다는 사실은 그것이 곧 해돋이 때의 의식임을 보여줍니다.

 

엘리야 시대에 바알의 선지자들이 바라보았던 곳도 역시 동쪽이었습니다. 바알은 태양신도 되고 불의 신도 됩니다.

 

엘리야가 "불로 응답하시는 하나님, 바로 그분이 참 하나님이라"고 말하며 바알 선지자들에게 도전했을 때, 그는 단도직입적(單刀直入的)으로 바알 숭배와 맞섰던 것입니다.

 

이 바알의 선지자들이 바알을 부르기 시작한 때가 하루 중 어느 때였습니까? 그것은 바알, 즉 태양이 그 첫 모습을 동쪽 지평선 위로 나타낼 때였습니다.

 

그 시간은 '아침'(왕상 18:25,26) 즉, '동틀 때'였습니다(「로마 카톨릭의 어제와 오늘」, 랄프 E. 우드로우, 기독교문서선교회)

 

태양이 떠오르는 것과 관련한 의식들은 여러 형태로 많은 고대 국가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집트의 스핑크스는 동쪽을 바라보도록 위치를 자리잡고 있습니다. 일본의 후지산에서는 떠오르는 태양에 기도를 드렸습니다.

 

"순례자들은 산기슭을 오르는 동안 떠오르는 태양에 기도를 한다.... 종종 흰 예복을 입은 수백 명의 신토 순례자들이 그들의 거처에서 나와 떠오르는 태양에 시를 읊는 것을 볼 수 있다"(도빈스,「 세계 예배 이야기」).

 

고대 로마의 미트라 교도들도 태양신을 경배하기 위해 동틀 녘에 함께 만났습니다.

 

이스터란 이름에서 비롯된 봄의 여신은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심지어 'East-er'(동쪽-사람)이란 단어 자체도 이를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동쪽에서 태양이 솟아오르는 것과 부활절이란 이름 그리고 봄이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고대 전설에 따르면, 담무스는 죽임을 당한 뒤 지하세계로 내려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 이쉬타르(세미라미스)가 애곡함으로 인하여 그는 봄에 신비하게 소생하였다고 합니다.

 

"이쉬타르의 슬픔을 통한 담무스의 부활은 농작물의 다수확과 사람들의 다산을 보증하기 위해 매년마다 극적으로 재현되었다. 해마다 사람들은 이쉬타르의 은총과 은전을 얻기 위해 이쉬타르와 함께 담무스의 죽음을 슬퍼하고 이 신의 귀환을 축하해야 했다"(스미스,「인간과 그의 신들」).

 

새로운 식물이 움트고 나올 때, 고대인들은 그들의 '구세주'가 지하세계로부터 나와 겨울을 끝내고 새롭게 봄을 가져오는 것으로 믿었습니다(우르딘,「축제와 성일과 성인의 날들」).

 

심지어 이스라엘 백성들조차 해마다 이교도의 봄축제 의식과 교리들을 받아드렸는데, 이에 대해 에스겔"여인들이 앉아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더라"(겔8:14)고 기록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이는 단순히 자연계의 소생이나 또는 봄에 새로운 식물이 소생하는 것과 같은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일년 중 봄에 있었다는 사실로 인하여, 믿음에서 떠나 세상과 결탁한 4세기의 교회가 이교도들의 봄축제를 받아들여 기독교와 혼합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대영백과사전」은 이같은 혼합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기독교는 …  기독교의 큰 축제일을 기념하는 데에 있어서 이교도들의 많은 의식과 관습을 통합시켰다."(그런데 이들이 말하는 기독교는 천주교를 말하는 것임)

 

 

 

이제 사순절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주후 5세기에 그 당시 교회와 초대 교회를 비교하는 글을 쓰면서 마르세이유 수도원의 수사였던 카시아누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초대 교회의 순수함이 변질되기 전 까지는 사순절을 지킨 적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사순절 행사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사순절에 사십일 간 금식하는 관행 역시 바빌론 여신을 섬기는 자들로부터 유래된 것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담무스가 마흔 살이 되었을 때, 그는 멧돼지에게 받혀 죽었다고 합니다. 히슬롭은 이 사순절의 '40'일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이 40일의 하루는 담무스가 지상에서 살았던 한 해를 말하며 '담무스를 위해 애곡하는 날'로 정해 놓은 날이다."

 

고대에는 40일이라는 기간을 우는 날로, 금식하는 날로, 자신을 채찍질하는 날로 여겼습니다.

 

이는 담무스의 은총을 얻어 지하세계로부터 나와 봄을 맞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러한 관습의 준수는 바빌론에서뿐만 아니라 페니키아인, 이집트인, 멕시코인, 그리고 한동안은 이스라엘 백성에게조차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히슬롭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교도들에게 이 사순절은 담무스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연례 대축제에 없어서는 아니 될 예비기간이 되었던 것 같다"(「두 개의 바빌론」, 도서출판 안티오크).

 

쿠르드족 중 사탄 숭배자들은 지금도 매년 봄에 40일 동안 금식을 합니다. 쿠르드족은 이같은 관행을 일찍이 그들을 지배했던 바빌로니아인들로부터 물려받았습니다.

 

멕시코인들도 봄에 40일간 계속되는 축제를 엽니다.

멕시코의 이런 관습에 대해 험볼트는 자신의 책에서 다음과 같은 설명을 합니다.

"춘분이 지난 지 삼일 후부터 태양신을 위한 40일 간의 종교적인 금식이 시작된다."

 

이집트에서도 오시리스를 위해 40일간의 금식을 행했는데, 이것은 윌킨슨의 책「이집트인들」을 참고하면 알 수 있습니다.

 

봄축제와 관련된 이교도들의 여러 가지 관습이 이미 카톨릭 교회 안에 유입된 고로, 이 축제에 앞서 행해지던 이교도의 "금식"을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다른 단계로의 발전일 뿐이었습니다.「카톨릭백과사전」은 아주 솔직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4세기의 저술가들은 확실히 그렇다고 여길만한 주장이 없는 이 사도적 제도에 관하여 많은 관행들(예를 들면 사순절의 40일간의 금식)을 기술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교황이 공식적으로 고기나 그 밖의 다른 몇 가지 음식들을 먹지 않는 기간, 즉 "거룩한 금식기간"이라고 부르는 사순절을 준수할 것을 명령한 것은 6세기경이었습니다.

 

카톨릭 학자들은 이교주의로부터 받아들인 관습들이 교회 내에 잔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또 이를 시인하고 있습니다(「카톨릭 백과사전」, 제11권, p.390. '이교주의' 항목).

 

그러나 그들은 비록 이교도의 기원을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많은 것들을 기독교화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을 믿지 않는 어떤 이교도가 이교신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40일간 금식을 했다면,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고자 이와 같은 동일한 방법을 취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비록 이교도들이 동쪽을 향하여 태양을 경배하였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 역시 해 뜰 때 예배를 드릴 수 있지 않은가?"

 

"비록 이교도들이 달걀을 사용했지만 무덤 앞에 놓인 큰돌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기고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지 않은가?"

 

"비록 이교도들이 자기들이 섬기는 신들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이런 것들을 사용했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이런 것들을 사용한다해도 무슨 상관이 있단 밀인가?"

 

이 모든 주장이 합리적인 것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성경은 이에 대해 안전한 지침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너는 스스로 조심하여 ...

그들이 네 앞에서 멸망한 뒤에 그들을 따라감으로 올무에 걸려들지 말며 또 그들의 신들을 좇으며 물어 말하기를, 이 민족들은 그 신들을 어떻게 섬겼는고? 나도 그와 같이 하리라, 하지 말라.

너는 주 네 하나님께 그와 같이 행하지 말지니, 이는 그들이 주께서 미워하시는 일 곧 그분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일을 자기 신들에게 행하되 심지어 자기 아들딸들을 불살라 그 신들에게 드렸음이니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모든 말을 너희는 지켜 행하고 거기에 더하거나 빼지 말지니라."(신12:30-32).  

 

 

 

 

 

 

 

Why We Want to Skip Holy Week – Red Letter Christians

 

 

 

 

 

 

 

 

 

 

온 세상을 숨죽이는 너 코로나19 여

 

너의 눈치에

이도저도 못하고 서로서로를

멀리하게 하는 너 

 

너를 잡을 아무 백신도 없다지 

 

인간의 모든 낙을 빨아먹는 너

미친 듯이 뛰는 사람 속에 들어가

열 올려주고 기침하게 하고 우리의

심장을 파먹어야 네가 살 수 있다니 

 

너의 힘 앞에 벌벌 떨며 잃어버린 자유

누리지 못한 평안 

 

너를 통해

보이지 않았던 것 보여주니

참 고맙다 

 

망둥이처럼 뛰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 너

없이도 너 있을 때만큼

살았더라면 온 세상

그늘진 곳 없었으리 그래 

 

너의 거울을 통해

통달하지 못한 것 통달할 수 있는 이유 없는

인간으로 살 수 있었다면 아 아

네가 있은들 없은들 무슨 소용 있겠니 너

때문에 이렇게 약해지다니 우린 아무 것도 아니었나

 

 

 

 

 

 

 

 

 

 

 

 

어느 과학자의 물질적 분석에 의한 사람 몸의 가치.

인간의 몸은 다량의 석회질과 염분, 약 한 홉 가량의 마그네슘,

성냥개비 3,000개 가량의 인, 장난감 대포를 한 번 쏠 만큼의 포타슘,

비누 5장 정도의 지방, 큰 못 한 개 가량의 철분 등으로 이루어져 있어,

이것을 돈으로 환산하면 단 돈 $10불 이하이다.

 

 

 

Lent and Holy Week – Rehobeth United Methodist Church

 

 

 

 

 

 

 

 

 

 

 

 

전북 김제의 한 예배당 모습. 평일에도 동네 사랑방이 돼 주던 공간이 코로나19 사태 후 적막함이 가득한 공간이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어려움을 겪는 농어촌교회가 많아지고 있다. 도시에선 많은 교회가 온라인예배에 동참했지만, 농어촌교회는 대응에 애를 먹고 있다.

 

“요즘 맘이 참 거시기허죠. 교회 주변엔 코로나19 감염자가 없어서 예방 수칙을 지키며 예배를 드렸는데 도시 사는 자녀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준다네요. 교회 가지 말라고요. 지난주일 강단에선 ‘정 불안하고 자녀들 걱정시킬 거 괴로우시면 한두 번 쉬셔요’ 하고 안내했는데 가슴팍이 꽉 맥히는 거 같더라고요(한숨).”

 

전북 김제에서 사역하는 A목사의 목소리엔 막막함이 느껴졌다. 수십 년째 동네 주민들의 사랑방이었던 예배당은 최근 몇 주 사이 추수 끝난 논처럼 을씨년스러워졌다. 주일예배 후 음식을 먹으며 도란도란 정을 나누던 모습도 사라졌다. A목사는 “사회적 거리 두기가 확산되는 동안 농촌교회에선 ‘공동체적 거리감’이 생겼다”고 했다.

 

주일 예배당을 찾는 성도 수는 3분의 1로 줄었다. 온라인예배 얘길 꺼내자 “온라인이 다 뭐여요”란 답이 돌아왔다.

 

올해 65세인 A목사가 평균 연령 75세의 성도들과 함께하는 사역 현장에선 예배를 ‘온라인’이란 그릇에 담아낼 재간도, 성도들이 ‘온라인예배’를 받아먹을 능력도 없다.

 

온라인 헌금은 더 어렵다. 같은 지역에서 사역하는 B목사(67)는 “헌금을 계좌로 입금하는 건 촌에서는 이해도 안 되고 용납도 안 된다”고 했다. 그는 “늦은 나이에 신앙을 접하고 아직 교회 정착을 못한 어르신 성도일수록 외부에서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며 “정통교회와 신천지를 똑같이 취급하는 모습이나 교회가 코로나19 감염의 온상인 것처럼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염려가 커진다”고 토로했다.

 

정부 지원을 받는 것도 꺼려진다. A목사는 얼마 전 한 목회자로부터 ‘도에서 4월 5일까지 교회를 폐쇄하는 조건으로 70만원을 준다니 동사무소에 신청하라’는 얘길 들었지만, 차마 신청할 수 없었다.

 

“교회에 대한 인식이 안 좋다 보니 지원금을 받았다가 괜한 오해를 받으면 코로나19 사태가 마무리돼도 공동체를 다시 꾸려나가기 힘들 것 같아 안 했습니다. 지금은 성도들을 보듬으며 얼른 이 사태가 지나가길 기도할 뿐입니다.” 

 

 

 

 

 

 

 

 

 

 

자동차 예배와 지역주민 섬김으로 모범을 보이다.

오클라호마 주 툴사 시의 "승리교회"의 자동차 예배 모습

 

 

▲ 미국 오클로호마 주의 툴사 시에 소재한 승리교회당의 야간 모습이다. 지역 사회와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하는 두손을 교회당 꼭대기에 설치하여, 기도하는 교회, 섬기는 교회의 상징이다.

 

 

미국 현지시간 3월 31일의 FoX 뉴스에 코로나 19의 긴박한 상황 속에서 정부의 지침도 살리고 예배도 드리는 한 모범 교회를 소개했다.

 

미국 남부 지역에 위치한 오클라호마 주 툴사의 승리 교회(13,000성도 회집)의 담임목사인 폴 터티(Paul Daugherty)는 자동차 예배를 드리면서 수천 대의 자동차 안에 있는 성도과 말씀을 나누고 동시에 울리는 경적 소리와 함께 감격의 울음을 터뜨렸다. 

담임목사는 “나는 성도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기에 이상했다. 그러나 그들이 차안에서 경적을 울릴 때, 그들이 복음의 희망을 듣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나는 울기 시작했다”고 했다.

 

 

▲ 승리교회 주차장에 세워진 수백대 자동차와 그들 앞에서 설교를 하는 폴 터디 목사이다. 그는 매우 성경적이면서, 역동적인 설교가로, 특별히 기도에 뜨거운 가슴을 가진 목사로서 그의 설교가 미국, 전세계에 울려퍼지고 있다.

 

 

설교와 예배는 지역 FM 라디오 방송국을 통해 자동차 안에서 15,000명과 집안에서 120,000 명 이상을 온라인으로 생중계 되었다.

 

코로나19 이후 교회의 문을 닫으려고 했을 때, 폴 도터니 목사와 직원 교회 주차장에서 자동차 안에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그것은 질병 통제 및 예방 지침에도 부합하는 것이었다.

 

또한 승리 교회 성도들은 예배 후 그 교회의 봉사 사역 기관인 “툴사 드림 센터”Tulsa Dream Center)는 그 지역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주민들 10,000명 이상에게 식료품, 화장지 및 기타 필수품을 나누어주는 섬김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식료품을 받기 위해 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고, 직장을 잃은 어떤 이들은 “누가 누구에게 주느냐에 제한을 두지 말아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또한 주민들 중에는 " 우리 주변에 병든 사람, 직장을 잃은 사람, 어려운 노인들이 있지만, 교회의 사랑 나눔은 감격스런 일이다. 이런 멋진 일에 그 은혜를 보답해야 되지 않겠는가”라는 감동어린 반응이 일어났다.

 

교회 측은 주민들의 반응에 대하여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을 나누고 그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승리교회 담임목사는 “일부 교회들이 정부지침에 반항하지 않고 비록 교회 건물 내부와 다른 환경인 주차장에서 자동차 안에서의 예배이지만 사랑과 격려는 차고 넘쳤다”다고 밝혔다

 

승리교회는 그 지역의 시장, 경찰 서장, 오클라호마 주지사 Kevin Stitt 과도 서로 교통하며 교회와 당국, 당국과 교회, 교회와 지역주민 등 서로 윈-윈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 승리 교회 주차장에서 지역 방송국과 연결하여 자동차 안에서 예배를 드릴 때, 한 흑인 소녀가 자동차 선루프를 위로 올라와 설교하는 목사를 쳐다보는 귀여운 모습이다. 이 날 수천대 이상 자동차가 운집하였다.  

 

 

 

 

 

 

 

Lent & Holy Week • Saint Philip Catholic Church

 

 

 

인간의 존엄은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았음에 있고,

그 위대함은 이성적 존재라는 데에 있다.

힘이 없는 정의는 조화(造花)요, 정의가 없는 힘은 폭력일 뿐이다.

 

 

 

 

 

 

 

 

 

 

 

 

 

 

 

  

조희서 서울씨티교회 목사가 29일 서울 중랑구 송곡고등학교 운동장 구령대 위에서 기도하고 있다. 서울씨티교회는 이날 예배를, 차에 탄 채로 하는 드라이브인(drive-in) 형식으로 진행했다.

 

“노원구나 의정부 동두천, 이런 북쪽에서 오신 교인들 클랙슨 빵빵 두 번 눌러주세요. 다 같이 환영한다고 빵빵 눌러줍시다. 이게 새 시즌의 혁신적인 환영 인사입니다.”

 

29일 오전 11시 서울 중랑구 송곡고등학교 운동장에 100여대의 차량이 나란히 줄지어 섰다. 담임목사인 조희서 서울씨티교회 목사는 교회 강대상 대신 운동장 구령대에 올라섰다.

 

구령대 위에서 진행된 예배는 FM 라디오 전파로 송출됐다. 예배당 장의자가 아닌 자동차 좌석에 앉은 교인들은 차량 내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춰 조 목사의 설교에 귀를 기울였다. 교인들은 클랙슨을 울려 서로를 환영하고 창문 밖으로 손을 뻗어 ‘할렐루야’를 외쳤다. 서울씨티교회의 ‘드라이브인(drive-in) 워십 서비스’ 풍경이다.

 

서울씨티교회는 이날 주일예배를 차에 탄 채로 하는 드라이브인 형식으로 진행했다. 미국에서 시작된 드라이브인 예배는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 유행하면서 도입하는 교회가 늘고 있다.

 

서울씨티교회는 송곡고에 강당을 지어주고 이를 예배당으로 사용하고 있어 넓은 운동장을 주차장으로 쓸 수 있다는 이점을 활용했다.

 

차를 타고 온 교인들은 입구에서 체온을 확인하고 손 소독제를 사용한 후 안내에 따라 차량을 주차했다. 차에서 내려 교인들끼리 인사를 나누는 일은 금지하고 창문을 열 때는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했다. 차를 타고 오지 않은 30여명의 교인은 운동장 뒤쪽 스탠드에 2m 간격을 두고 앉았다.

 

 

  

서울씨티교회 예배 인도자들이 29일 서울 중랑구 송곡고등학교 운동장 구령대 위에서 기도와 찬송을 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드라이브인’ 형식으로 진행된 이날 예배에서 성도들은 자신의 차 안에 앉은 채 라디오로 설교를 들었다.

 

 

조 목사는 공예배를 지키면서도 사회와 공존하는 방안으로 드라이브인 예배를 시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 시책을 지키지 않고 예배를 드려 국민을 염려시켜서는 안 되지만, 교회의 본분인 예배를 너무 쉽게 포기해서도 안 된다”며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고 정부 지침을 잘 따르면서 하나님 앞에 모일 수 있는 제3의 길을 모색한 결과”라고 했다. 이어 “이제는 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혁신적인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교회의 드라이브인 예배가 더 많은 교인을 출석시키기 위한 방법은 아니다. 조 목사는 “몸이 안 좋은 사람을 비롯한 모든 교인에게 최대한 참석을 자제하되 꼭 현장에서 예배를 드리고 싶은 사람들만 참석하도록 여러 차례 전달했다”고 밝혔다. 교회는 교인들이 가정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영상예배도 함께 진행했다.

 

예배에 참석한 백선희(51) 집사는 “교회에서 체온을 재고 소독하는 등 수칙을 잘 지킨다고 해도 주변에 걱정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드라이브인 예배를 해서 안심이 된다”며 “자리가 멀어 목사님이 잘 안 보인 건 아쉬웠지만, 차 안에서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찬양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세계의 심장은 영국이고, 영국의 심장은 런던이고 런던의 심장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입니다”    

이 말은 영국의 전성기에 영국인의 의식을 농축시켜 표현한 말입니다.

 

이 같은 논법을 잠시 빌린다면 ‘기독교의 심장은 성경이고, 성경의 심장은 예수이고, 예수의 심장은 십자가이다’ 라고 하겠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고 사도 바울이 그렇게도 강조했던 이 십자가가 전해 주는 메시지는 과연 무엇입니까? 몇 가지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인간의 죄에 대한 메시지입니다. 죄인인 나와 거룩하신 하나님이 만나는 곳입니다. 만물 중에 가장 거짓되고 전적으로 부패한 인간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은 죄이고 죄의 값은 필연적으로 사망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죄를 묵과하실 수 없어 흠도 티도 없는 속죄양 예수님을 통해 인간의 죄를 대속, 처리한 것이 십자가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과 희생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풀 수 있는 최대의 사랑이 십자가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너무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자신의 심장을 우리에게 떼어주듯 가장 소중한 독생자 예수로 하여금 구원을 위해 죄 값의 희생을 치르게 하셨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 8:32)

 

셋째, 화목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혀 있던 죄의 담이 십자가를 통해 허물어지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와 이웃, 그리고 나 자신과도 화해가 이루어졌습니다. 십자가 죽으심의 마지막 순간에 이제까지 죄 때문에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던 지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져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해와 자유함이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손 내밀어 우리 죄를 사하시고 안아주신 화해의 만남이 십자가인 것입니다.

 

넷째, 구원의 능력입니다.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고전 1:30)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죽으심을 통한 그 능력으로 죄로부터의 구속 사업을 이루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한 희생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서는 결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수 없었습니다. 십자가는 바로 구원의 능력이고 지혜입니다.

 

다섯째, 못 박히신 예수님의 죽으심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하여 신약 성경에서는 175회 기록하고 있는데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은 예수 그리스도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사단의 세력은 예수님에 대하여 ‘구세주’, ‘메시아’, ‘그리스도’의 구속의 의미를 삭제해 버린 채 십자가 없는 메시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예수에게서 십자가를 빼 버린 변형된 그리스도 상을 가지고 있는 신학자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죽으심은 자원한 죽으심이었습니다. 얼마든지 미리 회피할 수 있었지만 예정된 죽으심을 자원함으로 홀로 고통의 잔을 마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죽으심은 우발적인 죽으심이 아니라 만세 전에 죄를 구속하기 위해 도살당할 어린양으로서의 미리 예정되고 예고된 죽으심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예수님의 성육신은 십자가로 통하고 있었고 죽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죽으심은 대속의 죽으심입니다. 내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저주와 형벌과 진노하심과 그리고 지옥과 죽으심을 나 대신 맛보셨습니다.

 

대속한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의 예표에 대해 이사야 53장은 너무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죄는 종이 되게 하고, 사슬에 매여 구속해 버리며 감옥과 지옥과 악마의 손아귀에 갇히게 하는 힘인데 이 죄의 세력에서 우리를 해방시켜주기 위해 대신 죽으심을 당하셨습니다. 사단과 죽으심의 세력을 깨뜨리기 위해, 하나님의 심판 기록에 우리가 죄의 형벌을 받아야 할 사형수라는 법적인 죄의 증문을 찢어 버리고, 말소하며, 죄악의 교두보를 없애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의 죽으심에 연합하여 우리가 죽은 바 되었지만 또한 그의 살으심에 연합하여 생명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시고 또한 그의 사심으로 인한 생명, 구원, 성령의 능력으로 더욱 구원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인간의 역사 가운데 예수의 십자가만큼 순수하고 진실한 사건은 없었습니다. 거기서 하나님과 내가 만나 울었고, 나의 옛 자아가 죽고 새롭게 탄생하였습니다. 거짓의 두루마기를 벗어버리고 진실을 얻게 됩니다. 마음 속에 십자가를 바라보고 주님의 고난을 명상해 보는 생활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피 묻은 손이 나를 안수할 때 나의 죄악은 말끔히 씻기고, 상처는 고쳐지고 만족을 얻게 됩니다. 아들과 함께 모든 좋은 것을 주시겠다는 약속 앞에서 우리는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의 후사이고,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담보로 우리와 맺은 계약의 의미입니다. 이 언약은 아무도 깨뜨릴 수 없고 지상 최대의 약속이고 하나님 최후의 언약이며 피로 보증한 새 언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와 영생과 풍성한 삶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 위에 믿음으로 굳게 서서 십자가를 바라보며 험악한 세상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김준곤 목사) 

 

 

 

 

 

 

 

 

 

 

 

Man cannot live by bread alone(사람이 떡(빵)으로만 사는 게 아니다).”

 

구약성경 신명기 8장 3절에 나오는 말이다. 그렇긴 하지만 “Bread is the staff of life(빵은 생명의 양식이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라 할 수 있겠다.

 

구약성경 이사야(isaiah) 3장 1절에서 유래된 말이지만, staff of life가 구체적으로 빵을 가리키게 된 것은 18세기부터다. staff엔 “지탱, 의지”라는 비유적 뜻이 있다. staff of life는 영국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 1667~1745)의 풍자 산문집 「통 이야기(Tale of a Tub, 1704)」에 쓰여 널리 알려진 말이다.

  

빵을 생명과 연결시킨 건 신약성경 요한복음(John) 6장 35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Then Jesus declared, I am the bread of life. He who comes to me will never go hungry, and he who believes in me will never be thirsty.”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cast(throw) one’s bread upon the waters는 “보상을 바라지 않고 남을 위해서 힘쓰다, 음덕을 베풀다.”는 뜻이다. 구약성격 전도서 11장 1절에서 유래된 말이다.

 

“Cast your bread upon the waters, for after many days you will find it again. (너는 네 식물(食物)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break bread with는 “~와 식사를 함께하다, ~의 음식 대접을 받다.”는 뜻이다. 신약성경 고린도전서 11장 23~24절에서 유래된 말이다. 

 

“For I received from the Lord what I also passed on to you: The Lord Jesus, on the night he was betrayed, took bread, and when he had given thanks, he broke it and said, ‘This is my body, which is for you; do this in remembrance of me.’”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on the breadline은 “(정부의) 구제를 받아서, 최저 생활수준으로 지내는”이란 뜻이다. 1870년대 뉴욕의 유명한 빵집이 아침에 빵을 만들어 당일로 팔지 못한 빵은 빈민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곤 했던 데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그 빵집이 문을 닫을 때쯤이면, 빵 집 앞에는 빵을 얻으려는 빈민들이 줄을 서곤 했다. 영국에선 breadline으로 표기해 poverty line(level)(빈곤선)이란 뜻으로 쓰인다. 1959년 「뉴스테이츠맨(New Statesman)」엔 이런 기사가 실렸다.

 

“The average African family in the urban areas lived calamitously below the bread-line.”

(아프리카 도시지역의 평균 가구는 비참하게 빈곤선 이해의 생활을 했다.)

 

the upper crust(상류사회, 귀족계급)는 19세기 중반부터 쓰인 말이다. crust는 빵이나 파이의 껍질을 말하는데, 가장 맛있는 부분으로 간주돼왔다.

 

upper crust는 가장 위의 껍질, 즉 최상(最上)을 가리키는 것으로 비유적으로 위와 같은 뜻을 갖게 되었다. crust는 옛날 로마인이 딱딱한 껍질을 가리켜 부르던 crusta에서 나온 말인데, crustacean(갑각류)도 같은 계열의 단어이다.

 

crusty는 별로 좋은 비유적 뜻을 갖지 못했다. “심술궂은, 까다로운, 무뚝뚝한, 더러운, 초라한, 비열한” 등 온갖 부정적 의미를 다 끌어안게 됐으니 말이다.

 

Bread is better than the song of the birds. (금강산도 식후경) 이렇게 노골적인 표현의 속담보다는 완곡하게 Happiness is the smell of bread baking. (행복은 빵 굽는 냄새다)이라고 말하는 건 어떨까?

 

마치 무슨 선문답이나 재치문답 같지만, 행복에 대한 그 어떤 어려운 진술보다 더 가슴에 와 닿는 말이다. 사소한 것의 기쁨, 바로 그런 기쁨들이 모여 행복을 구성한다. 빵 굽는 냄새가 행복이라면, 행복의 소재는 무궁무진하지 않겠는가.

 

loaf는 “빵 한 덩어리, 빈둥거리다.”, loaf through life는 “빈둥거리며 일생을 지내다.”, loaf on a person은 “남의 집에서 놀고 지내다.”, loaf one’s life away는 “일생을 놀고 지내다.”, on the loaf는 “빈들거리고”, loafer는 “게으름뱅이”라는 뜻이다.

 

loaf가 “빈둥거리다”는 뜻으로 쓰이게 된 건 1835년경 미국에서다. 독일어 Landlufer(vagabond)에서 비롯돼 1785년 landloper(부랑자)를 거쳐 오늘날과 같은 뜻을 갖게 되었다. 

 

Half a loaf is better than no bread. (모자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loaf는 “빵 한 덩어리”지만, half a loaf는 비유적으로 “바라는 것 따위의 반”을 뜻한다. 같은 뜻의 속담으로 Anything is better than nothing = Something is better than nothing 이 있다.

 

biscuit(비스킷)은 라틴어 panis biscoctus에서 나온 말로 ‘두 번 구운 빵’이란 뜻이다. 그 중간에 프랑스어 bescuit를 거쳐 영어로 편입되었다. 원래 긴 항해(航海)동안 빵이 상하지 않게끔 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graham cracker(그레이엄 크래커)는 빵 또는 과자가 있다. 크래커는 얇고 파삭파삭한 비스킷인데, graham은 정맥(精麥)이 아닌 전맥(全麥)이니, 즉 기울이 들어간 채로 만든 크래커이다. graham bread는 “전맥 빵”을 뜻한다.

 

고기와 술은 물론 흰 빵을 혐오했던 미국 목사 실베스터 그레이엄(Sylvester Graham, 1794~1851)이 주창한 식이법(食餌法)에 따른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당시 그를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오늘날은 건강 식이법의 선구자로 추앙받고 있다.

 

 

※ 주요 표현 정리 

- cast(throw) one’s bread upon the waters: 보상을 바라지 않고 남을 위해서 힘쓰다, 음덕을 베풀다.

- break bread with: ~와 식사를 함께하다, ~의 음식 대접을 받다.

- on the breadline: (정부의) 구제를 받아서, 최저 생활수준으로 지내는

- the upper crust: 상류사회, 귀족계급 

- loaf through life: 빈둥거리며 일생을 지내다. 

- loaf on a person: 남의 집에서 놀고 지내다.  

- loaf one’s life away: 일생을 놀고 지내다.  

- on the loaf: 빈들거리고 

- Half a loaf is better than no bread.: 모자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조례 10,834는 오늘날 사용되는 City Seal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1. 사자와 성은 스페인의 무기에서 유래했으며 1542-1821 년 스페인 통치에 따라 로스 앤젤레스를 대표한다고 설명합니다.

2. 뱀을 잡은 독수리는 멕시코의 팔에서 왔으며 1822 년부터 1846 년까지 멕시코의 통치에 따라 로스 앤젤레스를 대표합니다.

3. 곰 깃발은 1846 년의 캘리포니아 공화국을 보여줍니다.

4. 별과 줄무늬는 로스 앤젤레스를 미국 도시로 나타냅니다.

5. 올리브, 포도 및 오렌지는 로스 앤젤레스가 정원 공동체임을 상기시킵니다.

6. 봉인 주변의 묵주(Rosary)는 로스앤젤레스 초미션 파드레스(신부)기도할 때 용하던 묵주를 나타냅니다.

 

Ordinance 10,834 describes the City Seal being used today. It explains that the lion and the castle are from the Arms of Spain and represent Los Angeles under Spanish rule from 1542-1821. The eagle holding the serpent is from the Arms of Mexico and represents Los Angeles under Mexican rule from 1822-1846. The Bear Flag shows the California Republic of 1846. The stars and stripes indicate Los Angeles as an American city. The olives, grapes, and oranges are reminders that Los Angeles is a garden community. The Rosary around the Seal represents the part played by the Mission Padres in the early years of Los Angeles

 

 

 

 

 

 

 

 

 

27일 02시 34분 기준으로 코로나19 확진자 7431명에 사망자 434명이 발생한 네덜란드 정부가 30인 이하로 모이는 교회 예배를 허용했다.

 

 

 

 ▲ 네덜란드 교회당 외벽에 ‘이번 주 예배 없다는 공지 현수막이 붙어 있다. © 최영묵

  

네덜란드 헤이그이준기념교회 최영묵 목사가 전해온 소식에 따르면 “네덜란드 정부는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철저한 1.5미터 거리 유지와 손 씻기, 기침 없는 자, 악수 금지 조건으로 30인 이하 예배 가능하다고 발표했다.”고 밝혔다.

 

또한 “네덜란드 교회당 외벽에 ‘이번 주 예배 없다는 공지가 붙었다.”며 “보수적인 네덜란드교회가 다른 형태의 예배 방안을 안 찾고 이런 공지가 붙는 것은 안타깝지만 또 12시에 주기도문으로 함께 기도 운동을 한다.”고 전했다.

 

최 목사는 “독일은 2020기도 운동을 한다.”며 “코로나 사태 이후 독일교회가 함께 하는 기도운동이다. ‘2020년 날마다 20시 20분에 함께 기도’라는 슬로건 아래 기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좋은 음식이라도 소금으로 간을 맞추지 않으면 그 맛을 잃고 만다.

모든 행동도 음식과 같이 간을 맞춰야 한다.

음식을 먹기 전에 간을 먼저 보듯이

행동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생각하라.

생각은 인생의 소금이다. (에드워드 조지 얼리 리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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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리도리   2. 좌우로 회전,
3. 앞뒤로 끄덕임, 4. 좌우 옆으로

 

 

 

 

 

 

 

 

 

 

 

 

 

생강 혹은 말린 생강 5개 / 마늘 20개를 반씩 잘라 / 큰 컵 10잔을 부어 1시간을 끓여서을 섞어 드십시오.

이 때 곁들어서 Echinacea(에키네시아)를 복용하십시오. 코로나 바이러스 예방 그리고 치료에 도움이 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양성반응 환자가 완치 된 후 알려 드리는 처방입니다.

 

 

 

 

에키네시아국화과의 여러해살이 허브식물로 북미대륙이 원산지이며 햇볕이 잘 들고 배수가 잘 되면서 비옥한 토양에서 잘 자란다.

 

에키네시아는 꽃이 화려해서 전세계적으로 관상용으로도 널리 재배되고 있으며, 면역력을 증강시켜 감기나 각종 바이러스 감염치료제로도 사용되고 있다.

에키네시아의 학명은 Echinacea purpurea이다.


 

 

 

에키네시아는 키 높이가 60~150cm까지 자라고 줄기는 곧게 올라가며 자주빛을 띤 갈색이다. 에키네시아는 꽃과 잎의 모양이 루드베키아와 흡사한데, 잎은 긴 타원형으로 길이가 4~10cm이고, 너비는 2~4cm이며 가장자리에는 톱니가 있다. 6월에서 9월에 걸쳐 줄기나 가지 끝에 자홍색의 지름 10cm 정도의 꽃이 핀다.

 

 

 

 

에키네시아의 꽃과 뿌리줄기에는 borneol, caryophyllene, chlorgenic acid, cichoric acid, rutin, cynarin, echinacoside, ferulic acid, luteolin, stigmasterol, verbascoside, 비타민 C와 비타민 B가 들어 있다.

 

 

 

 

 

에키네시아는

면역력을 강화해서...

항바이러스작용 항알레르기 작용을 한다.

 

그래서

감기 발열,

감염증, 피부염, 질염,

상처, 욕창, 폐렴, 편도선염,

에이즈 등의 치료에 사용하고 있고,

유럽이나 북미대륙에서는

천연 감기약으로 널리 사용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단백분해효소의 발현을 억제해서

피부 탄력을 올려준다는 연구도 보고되었다. 

 

좀 더 자세하게....

 

 

 

 

 

에키네시아는 부작용없지만 때로 복통이나 백혈구감소증, 근육통, 호흡곤란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고, 루푸스 등의 자가면역질환자는 증상이 악화될 수 있다.

실제로 2~11살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약 7%에서 알레르기로 인한 발진이 생겼고, 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에키네시아는 말린 꽃과 줄기, 뿌리줄기 등을 한번에 2그램에서 4그램까지 달여서 먹거나 , 또는 쥬스로 마신다. 에키네시아 사용량과 부작용에 대해서는 아래 자료를 참고했다.

  http://www.webmd.com/vitamins-supplements/ingredientmono-981-echinacea.aspx?activeingredientid=981&activeingredientname=echinacea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확산 방지를 위해 금요 예배가 전면 취소된 이라크 바스라의 이슬람 예배당(모스크)에서 남성이 기도를 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확산 방지를 위해

금요 예배가 전면 취소된 이라크 바스라의 이슬람 예배당(모스크)에서 남성이 기도를 하고 있다.

 

 

이슬람 시아파 성지가 있는 이라크 나자프 인근 지역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사망자 시신들을 묻기 위해 묘지가 마련된 가운데 자원 봉사자들이 사망자 관 앞에서 추모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는 일본 도쿄에서 남성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걷고 있다.
 

 


인도네시아 동 자바의 모조케르토에서 신종 바이러스를 형상화한 헬멧을 착용한 경찰관이 근무를 서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확산 방지를 위해 초정통파(하레디) 유대교 신자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중부 도시 ‘브네이브라크’를 봉쇄한 가운데 스카프를 착용한 초정통파 신자가 장을 본 물품이 든 카트
 

이스라엘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확산 방지를 위해

초정통파(하레디) 유대교 신자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중부 도시 ‘브네이브라크’를 봉쇄한 가운데

스카프를 착용한 초정통파 신자가 장을 본 물품이 든 카트를 끌고 있다.

 

 

베트남 하노이에 설치된 선별 진료소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주민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테스트를 하기 위해 줄 서 있다.

 

 


이탈리아 베르가모의 한 병원에서 의료 관계자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확진자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있다.

 

러시아 상트페테부르크의 이주 센터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이주민들이 러시아 정부가 발급하는 노동허가증을 받기 위해 서두르고 있다.
 

 

 

전국 봉쇄령이 내려진 인도 뭄바이의 빈민가에서 주민들이 집 밖에 나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전국 봉쇄령이 내려진 인도 뭄바이의 빈민가에서

주민들이 집 밖에 나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전국적 봉쇄령'이 내려진 인도 하이데라바드에서 경찰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형상화한 헬멧을 착용한 채 순찰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어린 소년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를 막기 위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구호 물자를 기다리는 여성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확산 방지를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있다.

 

 

 


 

국제구호단체 '사마리아인의 지갑' 후원으로 미국 뉴욕 맨하탄의 센트럴 파크에 야전 병원이 지어진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확진자가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야간 통행 금지령'이 내려진 과테말라 수도 과테말라시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을 막기 위해 마스크를 착용한 노숙자가 통금 시간 전 임시 쉼터에 들어가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확산 방지 대응으로 전국적 봉쇄령이 내려진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소외 계층 여성들이 지역 사회에서 배급하는 구호 물자를 받기 위해 줄 서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확산 방지 대응으로

전국적 봉쇄령이 내려진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소외 계층 여성들이

지역 사회에서 배급하는 구호 물자를 받기 위해 줄 서 있다.

 

 

 

 

영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확진자가 급증한 가운데 런던의 거리에 세워진 의류 수거함이 시민들이 기부한 옷으로 가득 차 있다.

 

 

영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확진자가 급증한 가운데

런던의 거리에 세워진 의류 수거함이 시민들이 기부한 옷으로 가득 차 있다.

 

 

헝가리 발라톤빌라고스의 과수원에 서리 방지를 위한 촛불이 설치돼 있다.

 

헝가리 발라톤빌라고스의 과수원에 서리 방지를 위한 촛불이 설치돼 있다.

 

 

전국 봉쇄령이 내려진 인도 방가로르에서 경찰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형상화한 헬멧을 이용해 시민을 상대로 바이러스에 대해 교육하고 있다.

 

전국 봉쇄령이 내려진 인도 방가로르에서 경찰이 시민을 상대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형상화한 헬멧을 이용해 바이러스에 대해 교육하고 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집회 제한 조치가 내려진 가운데 경찰이 유대교회당(시나고그)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초정통파 유대교(하레디) 교도를 훈방하고 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집회 제한 조치가 내려진 가운데 경찰이 유대교회당(시나고그)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초정통파 유대교(하레디) 교도를 훈방하고 있다.

 

 

미국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최대 확산지가 된 뉴욕주에서 환자가 7만 5천 여명으로 늘어난 가운데 뉴욕시 랜드마크 중 하나인 '더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빨강과 파란색 빛을 비추고 있다.

 

이탈리아 밀라노 두오모 광장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관련 방역 관계자가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주요 지역에 봉쇄령이 내려진 파키스탄에서 7살 소년이 마스크를 팔고 있다.

 

아시아의 대표적 불교국가인 태국 방콕에서 마스크와 안면 가리개를 한 승려들이 시주를 하고 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공원에서 시민이 조깅하고 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공원에서 시민이 조깅하고 있다

 

 

 

'바다 위의 종합병원' 이라 불리는 미 해군 병원선 'USNS 컴포트'가 자유의 여신상을 지나 뉴욕항으로 들어서고 있다.

 

'바다 위의 종합병원' 이라 불리는 미 해군 병원선 'USNS 컴포트'가

자유의 여신상을 지나 뉴욕항으로 들어서고 있다.

 

 

'부분 봉쇄령'이 내려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음식 배달원이 보호장비를 착용한 채 횡단보도를 건고 있다.

 

'부분 봉쇄령'이 내려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음식 배달원이

보호장비를 착용한 채 횡단보도를 건고 있다.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의회에서 의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을 막기 위해 보호장비를 착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의회에서 의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을 막기 위해 보호장비를 착용하고 있다.

 

 

주욕 지역에 봉쇄령이 내려진 파키스탄의 카라치에서 시민들이 무료로 배급하는 음식을 받기 위해 손을 뻗고 있다.

 

주요 지역에 봉쇄령이 내려진 파키스탄의 카라치에서 시민들이

무료로 배급하는 음식을 받기 위해 손을 뻗고 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집회 제한 조치가 내려진 가운데 유대교 신자가 성묘교회 앞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집회 제한 조치가 내려진 가운데 유대교 신자가 성묘교회 앞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중국 장쑤성 화이안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여파로 개학이 연기됐다 개학한 학생들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수업을 듣고 있다.

 

중국 장쑤성 화이안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여파로

개학이 연기됐다 개학한 학생들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수업을 듣고 있다.

 

 

미국 뉴욕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확진자가 급증하는 가운데 세계적인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 물류창고가 위치한 스태튼아일랜드에서 직원이 아마존 사업 잠정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미국 뉴욕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확진자가 급증하는 가운데

세계적인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 물류창고가 위치한

스태튼아일랜드에서 직원이 아마존 사업 잠정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태국 방콕의 한 경찰서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일환으로 진압용 방패를 세워 두었다.

 

태국 방콕의 한 경찰서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일환으로 진압용 방패를 세워 두었다.

 

 

 

베네수엘라 시몬볼리바르 국제공항에서 정부 관계자들이 중국이 보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관련 지원물품들을 하역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시몬볼리바르 국제공항에서 정부 관계자들이 중국이 보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관련 지원물품들을 하역하고 있다.

 

 

 

 

전국 봉쇄령이 내려진 네팔 카트만두에서 경찰이 봉쇄령 지침을 어긴 시민을 체포하는 와중에 거리를 두고 있다.

 

전국 봉쇄령이 내려진 네팔 카트만두에서 경찰이 봉쇄령 지침을 어긴 시민을

체포하는 와중에 거리를 두고 있다.

 

 

프랑스 뮐루즈의 군 병원에서 의료 관계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확진자를 긴급 이송하고 있다.

 

프랑스 뮐루즈의 군 병원에서 의료 관계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확진자를 긴급 이송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다카의 강둑에 텅 빈 배들이 정박해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확산 여파로

방글라데시 다카의 강둑에 텅 빈배들이 정박해 있다.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확산 방지를 위해

시 당국자들이 거주 지역을 중심으로 방역작업하고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공항에서 중국 여행객이 탑승 전 보호장비를 착용하고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공항에서 중국 여행객이 탑승 전 보호장비를 착용하고 있다.

 

 

전국적 봉쇄령이 내려진 인도 첸나이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형상화한 헬멧을 착용한 경찰관이 시민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전국적 봉쇄령이 내려진 인도 첸나이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형상화한 헬멧을 착용한 경찰관이 시민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홍콩의 한 커피숍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을 위해 각 테이블 사이에 테이프가 붙여져 있다.

 

홍콩의 한 커피숍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을 위해

각 테이블 사이에 테이프가 붙여져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확산으로 봉쇄령이 내려진 인도에서 일용 노동자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뉴델리의 외곽 가지아바드의 버스 터미널로 모여들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확산으로 봉쇄령이 내려진 인도에서

일용 노동자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뉴델리의 외곽 가지아바드의 버스 터미널로 모여들었다.

 

 

전국적 봉쇄령이 내려진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의 빈민가 알렉산드라에서 국가방위대 소속 군인들이 봉쇄령 지침을  지키지 않는 시민들을 단속하고 있다.

 

전국적 봉쇄령이 내려진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의

빈민가 알렉산드라에서 국가방위대 소속 군인들이 봉쇄령 지침을

지키지 않는 시민들을 단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