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9일,
수천 명의 사람들이 캘리포니아 주 오렌지 카운티의 파이럿츠 코브에서 침례를 받고자 모였다.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에
있는 하베스트
크리스천 펠로우십(Harvest Christian Fellowship) 교회의
그레그 로리 담임목사는
오전 8시에 침례를 받고자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트위터에 올렸고, 모인 군중은 2만여 명으로
추산했다.
이날 침례를 받기 위해 기다린 사람들이 0.5마일이나 되는 줄을 서
있을 정도로 역대 최대 규모로 나타났다.
하베스트 크리스천 펠로우십 교회는 이번 침례식에서 약 4천5백 명
이상이 침례를 받았다고 밝혔다.
벱티스트 프레스는 ‘예수
혁명 피렛스 코브 해변 침례식’(Jesus Revolution Pirate's Cove
Beach Baptism)으로 알려진 이 행사에 역대 가장 많은 수의 사람들이 참석했다고 전했다.
또, 수천 명의 침례를 받은 교인 중에는 로리 목사의 손녀인 스텔라도 있었다고 밝혔다.
캘리포니아 남침례회 회장 겸 오렌지 카운티 침례교 연합(OCSBA)의
선교 책임자인 빅터 차야시리소본(Victor Chayasirisobhon)은 협회의 152개 회원
교회 중 적어도 20개 교회가 행사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님이 강력하게 움직이시는 것을 보는 것은 정말
좋습니다. 대위임령을 완수하기 위해 하나가 되어 그 일이 그렇게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것을 보는 것은
언제나 대단한 일입니다”. 라고 소감을 전했다.
한편,
로리 목사는 “피렛스
코브의 분위기는 정말 압도적으로 아름다웠으며, 놀라운 이야기가 많다.
85세의 한 노인이 ‘예수
혁명’ 영화를 보고 그리스도를 영접했으며, 영화가 촬영된 장소에서 침례를 받기
원했다.”라고 전하면서, "그의 가족들에게 이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었고 이 일에 대해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라고 말했다.
이기철 시인(1943년1월9일생_영남대 국문과교수)이 펴낸 열두 번째 시집 [정오의 순례]는 사유의 깊이를 보여주는 마흔 네 편의 연작시로 구성되어 있다.
사유와 철학에 빗댄 연작시를 선보이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감각적인 시풍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요즘 시단의 흐름에 역행하는 인문주의자의 고집을 읽을 수 있다.
그의 시 몇편을 뽑아 특집으로 엮어보았다.
내일 이 땅에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화성엔
가지 않을 거야
거기엔 내
좋아하는 참깨와 녹두콩을 심지 못하므로
오늘 핀
도라지꽃 그릴 한 다스 색연필이 없으므로
일기책 태운
온기에 손 쬐며 쓴 시를
최초의
목소리로 읽어 줄 사람 없으므로
지구 아니면
어느 책상에 앉아 아름다운 글을 쓰겠니?
노래가 깨끗이
청소해 놓은 길
어느 방향으로
책상에 놓아
내일 아침의
왼쪽 가슴에 달아 줄 이름표를 만들겠니?
생각하는 마음
때문에 세상 한쪽이 더워진다고 쓴 말을
어디에
보관해야 정오까지 빛나겠니?
샘물이 솟는
곳에서 살고 싶다던 사람을 서서 기다리면
나무에 남은
온기가 절반은 식어도
모르는 사람의
손이 따뜻하리라
우리 삶이 먼 여정일지라도
걷고 걸어 마침내 하늘까지는 가야 한다
닳은 신발 끝에 노래를 달고
걷고 걸어 마침내 별까지는 가야 한다
우리가 깃들인 마을엔 잎새들 푸르고
꽃은 칭찬하지 않아도 향기로 핀다
숲과 나무에 깃든 삶들은 아무리 노래해도
목쉬지 않는다
사람의 이름이 가슴으로 들어와 마침내
꽃이 되는 걸 아는 데
나는 쉰 해를 보냈다
미움도 보듬으면 노래가 되는 걸 아는 데
나는 반생을 보냈다
나는 너무 오래 햇볕을 만졌다
이제 햇볕을 뒤로 하고 어둠 속으로 걸어가
별을 만져야 한다
나뭇잎이 짜 늘인 그늘이 넓어
마침내 그것이 천국이 되는 것을
나는 이제 배워야 한다
먼지의 세간들이 일어서는 골목을 지나
성사(聖事)가 치러지는 교회를 지나
빛이 쌓이는 사원을 지나
마침내 어둠을 밝히는 별까지는
나는 걸어서 걸어서 가야 한다
시(詩)
감상 :
우리는
모두 어디까지 걸어가고 싶은 걸까. 걷고 또 걸어서 발톱에서 피가 나도록 걸어서 도달하고 싶은 곳은 어디일까?
성공을 내려놓고 명예를 내려놓고 어느 부분에서는 미움도 보듬어 노래가 되는 지점에서 굳이
칭찬하지 않아도 향기로 피는 꽃처럼 끝없이 걸어가야 한다. 이제는 햇볕을 뒤로 하고 그늘 속 천국을 지나 어둠을 밝히는 찬란한 별까지 걸어서 가야
한다. 시인 문상금
나무들이
밤에도 움직이지 않고
제 간격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
나를
긴장시킨다.
어떤 명령도
나무들의 뿌리를 옮겨 놓지 못하는
나무들만의 저
푸른 질서.
땅 속에서
누리는 뿌리의 삶이 고요해서
잎새들의
공중의 삶은 소란하다.
땅의 피를
빨아올려 하늘로 옮겨주는 나무들,
침묵을 길어
음악을 만드는 악사들,
둥치를 감고
오르는 호박 새순이 어디로 뻗을 것인지를
나무들은
안다.
새들이
날아오고
마을 곳곳에
집 짓는 톱날 소리
치차(齒車) 소리처럼 들려와도
벌레들은 그
단단하고 따뜻한 집을 가지에 매단다.
나무들이여,
너의 나이테는 아직 열 살이기에
내일을 약속
받을 힘이 있다
욕망이 작아
가지에 매달려도
흔들림이
오히려 편안한 벌레들의 집은
나를
긴장시킨다.
그대가 노벨
문학상을 받던 해
나는 한국의
경상도의 시골의 고등학생이었다
안톤 슈낙을
좋아하던
갓 돋은
미나리 잎 같은 소년이었다
알베르 카뮈,
그대의 이름은 한 줄의 시였고
그치지 않는
소나타의 음역(音域)이었다
그대 이름을
부르면 푸른 보리밭이 동풍에 일렁였고
흘러가는
냇물이 아침 빛에 반짝였다
그것이 못
고치는 병이 되는 줄도 모르고
온 낮 온
밤을 그대의 행간에서 길 잃고 방황했다
의거가 일고
혁명이 와도
그대 이름은
혁명보다 위대했다
책이 즐거운
감옥이 되었고
그대의
방아쇠로 사람을 쏘고 싶었다
다시 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 열광과 환희는,
그러나 나는
후회하지는 않으련다
아직도 나는
반도의 남쪽 도시에서 시를 쓰며 살고 있지만
아직도 나는
백 사람도 안 읽는 시를 밤새워 쓰고 있지만
이 병 이
환부 세월 가도 아주 낫지는 않겠지만
새로 사온 등
푸른 고등어를 보면
나에게도
저렇게 등이 푸른 때가 있었을까
만 이랑 물결
속에서 대웅전 짓는 목수의 대팻밥처럼
벌떡벌떡
아가미를 일으키던 고등어
고등어가
가보지 않은 바다는 없었으리라
고등어가 가면
다른 고기들이 일제히
하모니카
소리를 내며 마중 나왔으리라
고등어가 뛸
때 바다가 펄떡펄떡 살아나서
뭍의 뺨을
철썩철썩 때렸으리라
푸른 물이랑이
때리지 않았으면
등이 저렇게
시퍼렇게 멍들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나에게는 흔한 일이지만
그래, 바다의
치맛자락이 만 겹이었다고
아직도 입을
벌리고 소리 치는 고등어
고등어가
아니면 누가 바다를 끌고
이 누추한
식탁까지 와서
동해의 넓이로
울컥울컥 푸른 바다를
쏟아놓을 수
있을까
우리가 이
세상에 와서 일용할 양식 얻고
제게 알맞은
여자 얻어 집을 이루었다
하루 세 끼
숟가락질로 몸 건사하고
풀씨 같은
말품 팔아 볕드는 본가(本家)를 얻었다
세상의
저녁으로 걸어가는 사람의 뒷모습 아름다워
세상 가운데로
편지 쓰고
노을의
마음으로 노래 띄운다
누가 너더러
고관대작 못되었다고 탓하더냐
사람과 사람
사이를 세간이라 부르며
잠시 빌린 집
한 채로 주소를 얹었다
이 세상
처음인 듯
지나는
마을마다 채송화 같은 이름 부르고
풀씨 같은
아이 하나 얻어 본적에 실었다
우리 사는
뒤뜰에 달빛이 깔린다
나는 눈매
고운 너랑
한
생을 살고
싶었다
발이 쬐끄매
더 이쁜 너랑 소꿉살림 차려놓고
이 땅이 내
무덤이 될 때까지
너랑만 살고
싶었다
너를 이
세상의 것이게 한 사람이 여자다
너의 손가락이
다섯 개임을 처음으로 가르친 사람
너에게
숟가락질과 신발 신는 법을 가르친 사람이 여자다
생애 동안
일만 번은 흰 종이 위에 써야 할
이 세상 오직
하나 뿐인 네 이름을 모음으로 가르친 사람
태어나 최초의
언어로,
어머니라고 네 불렀던 사람이 여자다.
네 청년이
되어 처음으로 세상에 패배한 뒤
술 취해
쓰러지며 그의 이름을 부르거나
기차를 타고
밤 속을 달리며 전화를 걸 사람도 여자다
그를 만나
비로소 너의 육체가 완성에 도달할 사람
그래서 종교와
윤리가
열 번
가르치고 열 번 반성케 한
성욕과 쾌락을
선물로 준 사람도 여자다
그러나 어느
인생에도 황혼은 있어
네 걸어온
발자국 헤며 신발에 묻은 진흙을 털 때
이미 윤기
잃은 네 가슴에 더운 손 얹어 줄 사람도 여자다
깨끗한 베옷을
마련할 사람
그 겸허하고
숭고한 이름인
여자
천천히 걷는
들길은 읽을 것이 많이 남은 시집이다
발에 밟히는
풀과 꽃들은 모두 시어다
오전의 햇살에
일찍 데워진 돌들
미리 따뜻해진
구름은 잊혀지지 않는 시행이다
잎을 흔드는
버드나무는 읽을수록 새로워지는 구절
뻐꾸기 울음은
무심코 떠오르는 명구다
벌들의 날개
소리는 시의 첫 행이다
씀바귀 잎을
적시는 물소리는 아름다운 끝 줄
넝쿨풀은 쪽을
넘기면서 읽는 행이 긴 구절
나비 날갯짓은
오래가는 여운이다
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혼자 남는 파밭
종달새
날아오르면 아까 읽은 구절이 되살아나는
보리밭은
표지가 푸른 시집이다
갓 봉지 맺는
제비꽃은
초등학교
국어책에 나오는 동시다
벅찬 약속도
아픈 이별도 해본 적 없는 논밭
물소리가 다
읽고 간 들판의 시집을
풀잎과 내가
다시 읽는다
저녁이 되면
먼 들이 가까워진다
놀이 만지다
두고 간 산과 나무들을
내가 대신
만지면
추억이 종잇장
찢는 소리를 내며 달려온다
겹겹 기운
마음들을 어둠 속에 내려놓고
풀잎으로 얽은
초옥에 혼자 잠들면
발끝에 스미는
저녁의 체온이 따뜻하다
오랫동안 나는
보이는 것만 사랑했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 것도 사랑해야 하리라
내 등뒤로
사라진 어제, 나 몰래 피었다 진 들꽃
한 번도 이름
불러보지 못한 사람의 이름
눈 속에 묻힌
씀바귀
겨울 들판에
남아 있는 철새들의 영혼
오래 만지다
둔 낫지 않은 병,
추억은
어제로의 망명이다
생을 벗어버린
벌레들이 고치 속으로 들어간다
너무 가벼워서
가지조차 흔들리지 않는 집
그렇게
생각하니 내 생이 아려온다
짓밟혀서도
다시 움을 밀어 올리는 풀잎
침묵의 들판
끝에서
추억은 혼자
분주하다
구르는 것이
일생인 삶도 있다
구르다가
마침내 가루가 되는 삶도 있다
가루가 되지
않고는 온몸으로 사랑했다고 말할 수 없으리라
뜨겁게 살 수
있는 길이야 알몸밖에 더 있느냐
알몸으로
굴러가서 기어코 핏빛 사랑 한 번 할 수 있는 것이야
맨살밖에 더
있느냐
맨살로
굴러가도 아프지 않은 게
돌멩이밖에 더
있느냐
이 세상 모든
것, 기다리다 지친다 했는데
기다려도
기다려도 지치지 않는 게 돌밖에 더 있느냐
빛나는 생이란
높은 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치열한
삶은 가장 낮은 데 있다고
깨어져서야
비로소 삶을 완성하는
돌은 말한다
구르면서 더욱
단단해지는 삶이,
작아질수록
더욱 견고해지는 삶이 뿌리 가까이 있다고
깨어지면서
더욱 뭉쳐지는 돌은 말한다
성공하려고
시를 쓴 건 아니다
물살같이
가슴에 아려오는 것 있어 시를 썼다
출세하려고
시를 쓴 건 아니다
슬픔이 가슴을
에일 때 그 슬픔 달래려고
시를 썼다
내 이제 시를
쓴 지 삼십 년
돌아보면
돌밭과 자갈밭에 뿌린 눈물 흔적
지워지지 않고
있지만
나는 눈물을
이슬처럼 맑게 헹구고
아픈 발을
보료처럼 쓰다듬으며 걸어왔다
발등에 찬 눈
흩날려도
잃어버린 것의
이름 불러 등을 토닥이며 걸어왔다
읽은 책이
모두 별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지식이란
부스럼 투성이의 노인에 다가가는 것
앎은 오히려
저문 들판처럼 나를 어둠으로 몰고 갔으니
그러나
노래처럼 나를 불러주는 것
이기는 일보다
지는 일이 더 아름다움을
깨우쳐준 것은
시뿐이다
나무처럼 내
물음에 손 흔들어주는 것은
시뿐이다
고요의 힘인,
삶의 탕약인
손 흔들고
떠나갈 미련은 없다
며칠째 청산에
와 발을 푸니
흐리던 산길이
잘 보인다
상수리 열매를
주우며 인가(人家)를 내려다 보고
쓰다 둔 편지
구절과 버린 칫솔을 생각한다
남방(南方)으로 가다
길을 놓치고
두어 번
허우적거리는 여울물
산 아래는
때까치들이 몰려와
모든 야성(野性)을
버리고 들 가운데 순결해진다
길을 가다가
자주 뒤를 돌아보게 하는
서른 번 다져
두고 서른 번 포기했던 관습들
서쪽 마을을
바라보면 나무들의 잔 숨결처럼
가늘게
흩어지는 저녁 연기가
한 가정의
고민의 양식으로 피어오르고
생목(生木)
울타리엔 들거미줄
맨살 비비는
돌들과 함께 누워
실로 이
세상을 앓아 보지 않은 것들과 함께
잠들고
싶다.
개미를 보면
나는 너무 멀리까지 와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나비를 보면
나는 너무 많은 약에
길들였다라는 생각이 든다
잔디를 보면
냉이꽃을 보면
나는 너무 많은 봄을 놓쳐 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나생이
둥굴레풀 꽃다지 민들레
고사리 우엉잎
도꼬마리 이질풀
아, 나는
너무 많은 이름들을 놓쳐버렸다
구름을 보면
나는 아직도 내 앞에 걸어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다는
생각이 든다
강물을 보면
파도를 보면
나는 아직도 내 앞에 출렁거릴 것이
많이 남았다는
생각이 든다
가난도 지나고
보면 즐거운 친구라고
배춧국 김
오르는 양은그릇들이 날을 부딪치며 속삭인다
쌀과 채소가
내 안에 타올라 목숨이 되는 것을
나무의
무언(無言)으로는 전할 수 없어 시로 써보는 봄밤
어느 집 눈썹
여린 처녀가 삼십 촉 전등 아래
이별이 긴
소설을 읽는가보다
땅 위에는
내가 아는 이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서까래 아래
제 이름 가꾸듯 제 아이를 다독여 잠재운다
여기에 우리는
한 生을 살러 왔다
누가 푸른
밤이면 오리나무 숲에서 비둘기를 울리는지
동정 다는
아낙의 바느질 소리에
비둘기 울음이 기워지는 봄밤
잊혀지지 않은
것들은 모두 슬픈 빛깔을 띠고 있다
숟가락으로
되질해온 생이 나이테 없어
이제 제 나이
헤는 것도 형벌인 세월 낫에
잘린 봄풀이
작년의 그루터기 위에
또 푸르게
돋는다
여기에 우리는
잠시 주소를 적어두려 왔다
어느 집인들
한 오리 근심 없는 집이 있으랴
군불 때는
연기들은 한 가정의 고통을 태우며 타오르고
근심이 쌓여
추녀가 낮아지는 집들
여기에 우리는
한줌의 삶을 기탁하러 왔다
입은 왜 먹고
말하고 사랑하는 일을 함께 하면서도
피곤하다고,
이젠 그만두겠다고 항의하지 않는가
항문과 고환은
가장 누추한 일을 하면서도
왜 파업하지
않는가
심장은 뛰고
손가락은 집고 식도는 삼키고 위는 움직인다
피는 돌고
위는
저작(咀嚼)하고 침은 삭힌다
눈과 코,
입술과 성기는 충실한 일꾼이면서
왜 쾌락을
위한 대가를 원치 않는가
새의 부리는
닦지 않는데 눈부신가
발은 머리가
되지 못했다고 불평하지 않고
손톱은 손이
되지 못했다고 화낸 일 없다
속이 어둡다고
구두를 거부한 발가락은 없다
몸은 언어를
갖지 않았다, 그러나 일한다
일은 그들의
밥이고 빵이다.
이 세상 작은 이름 하나라도
마음 끝에 닿으면 등불이 된다
아플만큼 아파 본 사람만이
망각과 폐허도 가꿀 줄 안다
내 한 때 너무 멀어서 못 만난 허무
너무 낯설어 가까이 못 간 이념도
이제는 푸성귀 잎에 내리는 이슬처럼
불빛에 씻어 손바닥 위에 얹는다
세상은 적이 아니라고
고통도 쓰다듬으면 보석이 된다고
나는 얼마나 오래 악보 없는 노래로 불러왔던가
이 세상 가장 여린 것, 가장 작은 것
이름만 불러도 눈물겨운 것
그들이 내 친구라고
나는 얼마나 오래 여린 말로 노래했던가
내 걸어갈 동안은 세상은 나의 벗
내 수첩에 기록되어 있는 모음이 아름다운 사람의 이름들
그들 위해 나는 오늘도 한 술 밥, 한 쌍 수저
식탁 위에 올린다
잊혀지면 안식이 되고
마음 끝에 닿으면 등불이 되는
이 세상 작은 이름 하나를 위해
내 쌀 씻어 놀 같은 저녁밥 지으며
아무에게도
편지 않고 석 달을 지냈습니다 내 디딘 발자국이 나를 버리고 저 혼자 적멸에 들었나 봅니다 그간 마음에 서까래를 걸고
춘풍루 한 채를 지었다지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세간이라 이른다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 그 깊은 골짜기에 내려서지 않으면 어찌 먼지 낀 세간이 보이겠습니까 전화가
울릴 때마다 귀는 함박꽃 같이 열렬했지만 마음의 회초리 열 번 쳐 세상의 풍문에 등 돌렸습니다 법어(法語)를 읽다 주장자(柱杖子)를
부러뜨린 선승이 계신다구요 물소리를 가르고 그 속에 뼈를 세우기가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기와 같다구요 세상이 날려보내는
말들이 비수가 되어 꽂힐 때마다 자갈돌 쌓아 올려 석탑을 이루는 석공의 인고를 생각했습니다 오래 소식 주지 마셔요 깊을
대로 깊은 병이 암을 지나 보석이 될 때가 오면 햇빛같이 사실적인 편지 드리겠습니다 자꾸만 인생무상이라고 쓰려는 마음을
꾸짖으며 추운 가지에 둥지 튼 새를 쳐다봅니다 또 소식 드리지요
저 하루살이
떼들의 반란으로 하루는 저문다
나는
자줏빛으로 물든 이런 저녁을 걸어본 적 있다
강물이
잃어버린 만큼의 추억의 책장 속으로
내가 그
저녁을 데리고 지날 때마다
낮은 음색의
고동을 불며 청춘의 몇 악장이 넘겨졌다
누가 맨 처음
고독의 이름을 불렀을까
적막 한
겹으로도 달빛은 화사하고
건강한 소와
말들을 놓쳐버린 언덕으로
불만의 구름
떼들이 급히 몰려갔다
위기만큼
우리를 설레게 하는 것은 없다
깨어진 약속의
길들이 향수병을 터뜨리고
넘어진 빈
술병에는 싸구려 달빛이 담겼다
저 집들에는
몇 개의 일락(一樂)과 몇 개의 고뇌와
몇 겹의
희망과 몇 겹의 비탄이 섞여 있다
거실에서는
덧없는 연속극들이 주부들의 시간을 빼앗고
이제 어디에도
고민하며 살았던
시인의 생애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
시간은 언제나
뭉텅뭉텅 가슴속의 추억을 베어낸다
그것마저
이제는 아무도 슬픔이라 말하지 않는다
어린 새가
공포로 잠드는 도시의 나뭇가지 위로
놀은 어제의
옷을 입고 몰려오고
나는
자줏빛으로 물든 이런 저녁을 걸어본 적 있다
어둠 속에서도
끝없이 고개 드는 사금파리들
그 빛 한
움큼만으로도 언덕의 길들은 빛나고
그런 헐값의
밤 속에서 호주머니 속 수첩에 기록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
결코 길들일
수 없었던 통증의 저녁도
순한 아이처럼 길든다
아픈
시대처럼, 말을 담고도 침묵하는 책장처럼
어떤 사소한
글이라도 그에겐 혈흔이다
어떤 글은
병이 되어 그의 생을 쉬이 저물게 한다
아무리 작가는
말을 만드는 사람이라 해도
문학이 암보다
고통스럽다는 말은 만든 말이 아니다
가슴으로 한
말이다, 피 뱉듯 한 말이다
동서고금의
시인 작가들이 다 생을 채색하며 살다 갔지만
그들이 남긴
수천
수만의 미사여구도 읽고 난 뒤
수삼일 안에
캄캄한 페이지
안에 갇힌다
그러나 어제
암으로 죽은 작가의 말 한 마디는
나의 뇌리에
정으로 박혀 있다
손잡아 길
인도할 사람 없는 칠흑의 밤길을
등불도 없이
걸어간 사람의 말이 또 불면을 데리고 온다
어디 뻘과
진창 구렁텅이 물웅덩이가 있는지도 모르고
별의 말을
캐며 가는 사람
사람들이
시장으로 달려갈 때
그들은 문장 속으로 걸어간다
사람들이
황금을 암보다 무서워할 때
그들은 문학을
암보다 고통스러워한다
멋지게 잘
사는 꿈 한번 꾸지 않은 사람 있으랴
미식과 숙면과
향연을 마다할 사람 있으랴
그러나 스스로
고통을 수저질하며 사는 사람 있다
먼저 간
작가여
바람이
잎사귀를 흔드는 지상에서
오늘 밤에도
그대 남긴 말
다섯번째 베껴
쓰는 사람
여기 있다
*-"문학이 암보다 고통스럽다"
작고한 소설가
박영한이 죽기 전에 한 말.-
나는 별이
뜨는 풍경을 삼천 번은 넘게 바라보았다
그런데도 별이
무슨 말을 국수처럼 입에 물고 이 세상 뒤란으로 살금살금 걸어 오는지를 말한 적이 없다
별이 뜨기
전에 저녁쌀을 안쳐놓고 상추 뜯으러 나간 누이에 대해 나는 쓴
일이 없다
상추 뜯어
소쿠리에 담아 돌아오는 누이의 발목에 벌레들의 울음이 거미줄처럼 감기는 것을 말한 일이 없다
딸랑딸랑
방울을 흔들며 따라오던 강아지가 옆집 강아지를 만나 어디론가 놀러 가버린 그 고요함을 말한 일이 없다
바삐 갈아
넘긴 머슴의 쟁기에 찢겨 아직도 아파하는 산그늘에 대해, 어서 가야 하는데, 노오란 새끼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 벌레를
잡지 못해 가슴을 할딱이는 딱새가 제 부리로 가슴 털을 파고 있는 이른 저녁을 말한 일이 없다
곧 서성이던
풀밭들은 침묵할 것이고 나뭇잎들은 다소곳해질 것이다
부엌에는
접시들이 달그락거리며 입 닫은 딱새의 말을 대신 해줄 것이다
별이 뜨면
사방이 어두워져 그때 막내별이 숟가락을 입에 문 채 문간으로 나올 거라는 내 생각은 틀림없을 것이다
별이 뜨면
너무 오래 써 너덜너덜해진 천 원짜리 지폐 같은 반달이 느리게 느리게 남쪽 산 위로 돋을 것이라는 내 생각은 틀림없을
것이다
별이 뜨면
벌들과 딱정벌레들이 둥치에서 안 떨어지려고 있는 힘을 다해 나무를 거머쥐고 있는 것을 어둠 속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별이 뜨면
귀뚜라미가 찢긴 쌀 포대에서 쌀 쏟아지는 소리로 운다고 터무니없는 말을 나는 한 마디만 더 붙이려고 한다.
이것들이 다
별이 뜰 때, 별이 뜨면 생기는 일들이다
오늘도 나는
산새만큼 많은 말을 써버렸다
골짜기를
빠져나가는 물소리만큼 많은 목청을 놓쳐버렸다
손에 묻은
분필 가루를 씻고
말을 많이
하고 돌아오며 본
너무 많은
꽃을 매단 아카시아나무의 아랫도리가 허전해 보인다
그 아래, 땅
가까이
온종일
한마디도 안 한 나팔꽃이 묵묵히 울타리를 기어 올라간다
말하지 않는
것들의 붉고 푸른 고요
상처를
이기려면 더 아파야 한다
허전해서
바라보니 내가 놓친 말들이,
꽃이 되지 못한 말들이
못이 되어
내게로 날아온다
아, 나는
내일도 산새만큼 많은 말을 놓칠 것이다
누가 나더러
텅 빈 메아리같이 말을 놓치는 시간을 만들어놓았나
아서라, 너는
왜 노란색에다 네 잠언을 매달려고 하느냐
누가 검정
색은 어둠이라고,
붉은색은 열정이라고 말했느냐
오늘 다음 올
날을 내일이라고 명명한 사람은 누구냐
누가 네
침대에 함께 자는 사람을 아내라고 말했느냐
아서라,
너는
왜 세상을 네 말의 상자 속에 집어넣고 그것을 시라고
말하느냐
소년이 아이를
낳으면 왜 안 되느냐
뿌리가 하늘을
쳐다보면, 새가 거꾸로 날면 왜 안 되느냐
들판에는 가끔
오는 편지처럼
가끔 피는 꽃
장롱의 성은
남성이냐 여성이냐, 집의 내역을 잘 알면서도
장롱은 왜
온종일 함구해야 하느냐
풀들이
자아도취의 꽃을 피울 때
흙들이 내는 소리를 너는 듣느냐
아서라,
수요일은 왜 한 주일에 두 번 오면 안 되느냐
그만 먹어라,
아무리 먹어도 배부르지 않은 음악을
단층은 너무
단정해 눕기가 거북해
발들을 이
층으로 길어 올리는 계단은 그래서 바빠
주문처럼
불길한 말은 쓰지마
너무 익숙해져
버리면 타성이 와
봄이 일찍
떠나면 나무의 눈물이 보여
그 때 너는
무슨 자세로 돌 위에 앉을래?
‘커피와 카페’는
이제 한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문화가 됐다.
스타벅스라는 하나의 커피 브랜드가 ‘스세권(스타벅스+권역)’ 용어를 탄생시키고 부동산
가격에까지 영향을 줄 정도다. ‘커피와 카페’는 단순 음료와 공간이 아닌, 하나의 문화가 됐다.
한국에서는 작년 커피
수입액이 13억 달러를 경신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고, 커피 점포 수는 10만 곳에 이른다.
커피와 복음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연결해 하나님 나라 확장과 세계 선교 완성에 기여하려는
국제 커피선교회
C-Connection(커넥션)은
미국 한인들을
중심으로 창립돼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국제
커피선교회는 지난 7월 1일 서울 강남역 인근 SAGA (사랑글로벌아카데미) 캠퍼스 신관에서 창립 감사예배를
개최했다.
30여 명의 이사와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창립감사예배에서는
C-Connection 이사장에
김세대 장로(CBS 재단이사,
선한목자교회 원로), 사무총장에 오화석 안수집사(사랑의교회)를 각각 위촉했다.
주요 이사로는 멕시코 조원희 선교사, 이강철 전 케냐 선교사, 방상용
목사(세리토스선교교회), 대표 동역목회자 민상기 목사(국군중앙위례교회), 이현철 목사(푸른동산교회) 등 3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선교회의 핵심가치는
‘Christ, Community, Culture,
Coffee’ 등 4C이며, 주요 사역은
선교사 훈련 및 파송, 카페 교회 지원, 장애인 보살핌 사역, 선교적 커피 유통채널 확보 등이다.
주요 미션은 △커피 생산지에서 소비지까지 커피 관련 개인·단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그
네트워크를 통해 커피에 복음을 실어 보내며 △지속가능한 글로벌 선교 플랫폼을 구축한다 등이다.
최근 선교회 창립 감사예배 차 방한한 선교회 대표 김경록 선교사에게 선교회 비전을
청취했다. 이 자리에는 선교회 이사장 정성욱 교수(덴버신학교)도 함께했다.
-국제 커피선교회와 본인을 소개해 주신다면.
“저는 1997년
미국으로 떠났고, 25년 동안 미국 이민교회에서 사역해 왔습니다. 지난 5월까지 한 교회 담임목사로 있다가
사임 후 선교회 대표로 풀타임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목회 시절부터
선교에 대한 비전을 품고 단기 선교와 동원 사역을 계속해 왔습니다. 특히 커피라는 매개체를 통해 선교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후부터, 커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커피로 어떻게 선교가 가능한가요.
“전문인 선교 사역은 지난 1990년대 후반부터 진행돼 왔습니다. 저희 C-커넥션
선교회도 일종의 전문인 선교 사역입니다.
하지만 전문인 선교 하면 대부분 의료 선교를 떠올리고, 의료 선교 외에는 전문 선교단체들이 만들어져 있지도 않은
실정입니다.
선교사님들은 선교지로 나갈 때 각자 기술이든 뭐든
전문 영역을
갖추고 있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나가기 전 스스로 준비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파송 이후 전문 사역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더라도, 후원과 지원을 받을 수 없다 보니 기술 습득이 쉽진 않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커피라는
전문 분야를 좀 더 체계화하고, 파송
전부터 또는 파송 후에도 이런 부분에 있어 선교사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합니다.
질문하신 것처럼
‘왜 커피인가?’ 하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1990년대 이후 전 세계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선교하는 지역이
10/40창(북위
10-40도 지역 아시아·아프리카 지역, 이슬람권·불교권 대부분이 해당- 편집자 주) 아닙니까? 그 10/40창과 커피
생산국, 즉 ‘커피
벨트’가 거의 일치합니다.
우리가 가장 집중적으로 선교하고 있는 국가들이 모두 커피를 생산하고 있다면, 선교사님들이
그 국가로 나가실 때 현지인들과의 접촉점을 만들기 위해 커피를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아이디어를 갖게 됐고,
현대인들에게 커피는 기호식품을 넘어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수품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커피 생산국이든 소비국이든, 어느 곳에서든
커피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킬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 있습니다.”
-
선교사님들이 해외에서 커피를
직접 재배하거나 판매하는 것일까요.
“저희 선교회에서는 선교사님들을 찾고
훈련시켜서 파송하는 부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선교사 파송은 크게 ‘투 트랙’입니다.
첫째는 아까 말씀드린 중남미와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커피 생산국가들로 나가는
선교사님들에게 전문 커피 영농 기술을 훈련시켜
드립니다.
현지에서 커피를 재배하는 농민 등 관련 종사자들 같은 경우 기본 커피 재배법은 알지만,
지금 한국이나 미국 등 주요 커피 소비국가들에서 어떤 커피를 좋아하는지 잘 모릅니다. 그리고 더 좋은 커피를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한 방법과 기술들에도 무지한 상황입니다. 그분들을 도와드리려면, 커피 소비국들에서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아야
가능합니다.
미국
커피품질연구소(Coffee Quality Institutes/ CQI)라는 곳에서
커피향미 감정평가사(Q-grader,
큐그레이더)라는 자격증을 발급하는데,
자격증을 받는 전 세계에서 거의 절반 가까이가 한국인입니다. 그런데 이 자격증이 한국에서는 별로 쓸모가 없어요. 한국
사람들은 자격증은 무조건 따고 보자는 문화가 있기도 하고요(웃음).
사실 이 자격증이 가장 필요한 곳은
커피를 재배하는 농장들입니다.
한국인들에게 자격증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크리스천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 청년들이 커피 생산국들에 선교사로 나갈 수
있다면, 그곳 커피 재배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커피 생산국으로 나가는 선교사님들에게
큐그레이더 훈련 등을 시켜드리고 있습니다.
둘째로 커피
소비국가들로 나가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이슬람권이나 중국, 인도 등입니다. 이곳들은 지금
‘전문인 선교’가 아니고서는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커피 전문가로 선교지에 들어가실 수 있도록 훈련시켜 드립니다.
커피 선교가
그런 국가들에서 가장 효과적인 선교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선교사님들이 현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굳이 밖으로
나가실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현지인들이 제발로 찾아와 돈을 내면서 커피를 마시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카페는 특성상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줍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세울 수 없는 이슬람권 국가들에서 카페는 교회의 역할과 공간을 제공해줄
것입니다. 카페에서 예배든 성경공부든 제자훈련이든 다 해결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효과적인 선교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커피는 처음 이슬람권에서
만들어진 것 아닌가요.
“맞습니다. 많은 분들이 커피를 서구 유럽의 문화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이슬람권에서 시작됐습니다. 커피가
만들어진 곳에 커피를 들고 선교하러 가는 것입니다. 이미 터키(튀르키예)를 비롯한 이슬람권에서 한국과 미국 선교사님들이
활약하고 계십니다.
지금 저희가 마시는 커피와 이슬람권 사람들이 마시는 커피는 맛에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터키식 커피는 저희가 마시기 힘들
정도입니다. 에스프레스보다 더 가늘게
커피를 갈아 끓여서 가루와 함께 마시는데, 매우 진하고 걸쭉합니다.
그런데 터키도 지금 한국처럼
커피 바람이 뜨겁게 불고 있어, 젊은 층과 도시를 중심으로 서양 커피 문화가 계속 유입되고 많은 청년들이 그런
문화를 즐기고 찾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교회마다 카페를 만들지만,
활용도는 높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커피
선교에 대해 아직 부정적인 여론들도 좀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은 워낙 유행이 빨리 지나가기도 하고, 그동안
커피 선교라는 이름으로 개인이나 단체가 여럿 활동했지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진 못한 것 같습니다. 커피에 대한 전문 지식이
부족하거나 충분히 준비되지 못한 상황에서 시작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제게도 ‘카페 교회 하고 싶다’고 찾아오시는 목사님들이 많으시지만, 저는 대부분
반대합니다. 너무 쉽게 생각하고 접근하시기 때문입니다.
목회와 카페 두 가지를 병행해야 하기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충분히 준비하고
각오하시지 않으면, 목회와 카페 둘 다 안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인을 비롯해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의
로망 중 하나가 카페 하나 갖는 것이기도 합니다(웃음).”
-카페는 어떤 면이 어려운가요.
“목회자가 카페를 시작하면, 목회보다 카페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합니다. 직원이
없으면 하루종일 카페에만 매달려 있어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지금 카페 간 경쟁이 너무 심하기도 하고요.
다른 카페들과 경쟁할 만큼 전문 지식과 기술과 능력을 갖춘다면 가능하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그냥 교회에서 커피 내리는 수준으로 카페를 운영한다면 경쟁도 안 되고 선한 의도로 활용하기도 힘들 것입니다. 정말
카페를 하고 싶다면, 좀 더 각오를 다지고 준비를 거쳐야 합니다.”
-한국에서 선교사를 모집할 계획이신가요.
“일단 저희 선교회가 조금 더 많은 분들에게 알려지길 원합니다. 저희 선교회의 정체성은
네트워크와 플랫폼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분들이 커피
선교를 시도하셨지만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은, 선교적으로 동력화할 만한 네트워크가 충분히 만들어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두 명만 해서는 힘든 부분들이 있습니다.
저희는 네트워크를 통해 커피 관련 각 분야 전문 인력들이 선교회를 통해 연결되어서,
선교사님들이 필요하실 때 적재적소에 훈련하고 파송시킬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키워 나가는 상황입니다.
네트워크란 커피 관련 모든 자원들입니다. 인적 자원일 수도, 기술이나 재정일 수도
있습니다. 커피를 잘 다룰 수 있는 바리스타부터 로스팅, 장비 등의 관계자들이 모두 필요합니다.
선교사님들은 현지에서 혼자 모든 일들을 다 처리하셔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중국부터
몽골, 인도, 이슬람권 등 선교지마다 바리스타, 로스팅, 장비 유지·보수 등 각 분야 커피 전문 인력들로 구성된 단기선교
팀을 만들어 훨씬 더 효과적으로 선교사님들을 도와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원료인 커피콩 문제도 쉽지 않습니다. 원두 수입 문제는 상당히 복잡한 부분입니다. 돈도
많이 들고, 농산물이기 때문에 수입하더라도 1년 내 최대한 짧은 시간에 다 소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두 교회, 한두
카페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네트워크를 통해 최대한 많은 분들이 모일 때 더 선한 일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지금 진행 중인 사역과 비전을 말씀해
주신다면.
“저희 안에서 커피 전문가들을
훈련시키고, 커피 생산국에 있는
선교사님들 중 커피 농장을 운영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멕시코 치아파스 농장에서 카페 공장을 운영하시는 분이 대표적입니다. 그 커피를 미국에서 수입해 사용하기도
합니다.
커피 소비국가로는 중국이나 터키 선교사님들이 있고, 한국과 미국에서는 파송 선교사님들을
찾을 뿐 아니라, 플랫폼을 위해 더 많은 전문가들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사실 미국보다 한국에 더 많은 자원들이 있습니다. 한국 커피 시장이 전 세계 1위로
평가될 정도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처음 커피를 시작하고 배울 때보다 한국의 커피 수준이 많이 높아졌습니다. 최근 10년
사이 한국 커피 시장이 엄청나게 발전하면서, 전 세계 커피 시장에서 가장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보셔도 됩니다.
그런데 한국 커피 전문가들 중 많은 크리스천 청년들이 자신의 전문 기술이나 지식들이
선교로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모릅니다. 선교라고 하면 본인들이 돈을 벌어서 후원한다는 생각 정도인데, 지금 전문인 선교 시대는 본인들이 가진
지식과 기술들을 통해 직접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번 방문을 통해 최대한 많은 교회들을 방문해 선교회를 소개하고 알리고 싶습니다.
커피 관련 전문가인 청년들이 한 번쯤 커피 주요 생산국·소비국 선교지들에
단기 선교를 다녀와도 좋을 것입니다.
저는 굳이 모든 사람들이 해외 선교사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해외 선교지를 한 번이라도 다녀온 청년들은 분명히
비전 자체가 바뀔 거라고 확신합니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국교회가 지금까지 선교를 위해 많이 헌신하고 노력했습니다. 이제 지금
선교의 패러다임들이 계속 변화하고
있습니다. 전통적 선교에만 머물거나 비즈니스 선교를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변화하는
전문인 선교의 패러다임에 맞춰 커피
선교 사역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협력할 수 있는 방안들을 좀 더 마련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정성욱 교수님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세계 선교가
마지막 땅끝까지 이뤄지려면 선교전략이
달라져야 합니다. 김경록 대표님 말씀대로 전통적 선교 전략으로는 더 이상 안 되는 상황이 됐습니다. 좀 더 선교 최전선에
들어가서 선교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이
‘커피 선교’입니다.
비즈니스 선교,
전문인 선교로 가야 선교가 효과적으로 이뤄질 텐데, 커피 선교는 여러 면에서 앞으로 세계 선교에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이 일에 한국교회가 공감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오늘날 ‘관용’이라는 말은 새로운
사고방식인 것처럼
칭송을
받고 있다. 기독교 세계에서와
기독교 교리에서 관용에 대한 점점 더 많은 요구가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 의미한 바와 성취된 바는 흔히
관용이라기보다 타협이다. . . .
하나님의 율법과 그의 말씀을
타협하는 것은 죄이다.
중요한 교리들과 타협하는 것도 또한 죄이다.
거짓 교사들과, 사람들을 건전한 교리로부터 떠나게 하는 자들과 타협하는 것도은
죄이다.
성경은 때때로 일치보다
분리에 관해 말한다. . . .
예수께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 대해 관용하셨지만 결코
타협하지는 않으셨다.
나는, 그들이 뒤에 더 큰 것들에 대해 타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지금 작은
것들에 대해 타협하는 소위 ‘화평케 하는 자들’을 주의한다. 많은 목사들은 사람들이나 그들 자신의 지위나 인기를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서 어떤 문제들에 대한 입장을 취하지 않을
때가 있다.
진리를 희생하는 관용은
타협에 이른다.
타협은 항상 본래의 표준을 낮춘다. 진리는 경계선을 가지고 있지만, 오류는 그것이
없다. 불행하게도 타협은 이제
덕(德)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진리는 감정 상하는 일이 되었다.
밀톤 죤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배교(背敎)는 진리의 거부이며, 이단은 진리의 왜곡이다.
위조품이 진짜에 더 가깝게 될수록, 그것은 더 교활하게 된다. 참된 신자는 배교를
받아들이도록 유혹을 받지 않을 것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단의 위협에 굴복하였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회개치 않은 이단을 거절하라고 분명히 명령하신다.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거절하라)”(딛 3:10).
교회가 어떻게 배교에 떨어지는가?
클레이 나털(Clay Nuttal)은 말한다.
역사는 배교(背敎)가 한 시대에 걸쳐 일어나고 하룻밤에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증명한다.
여러분은 “교회가 단지 두 명의 목사를
바꾸면
자유주의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가.
첫번째 목사는 그 교회를
부드럽게 하고,
그 다음
목사는
그것을 배교로 인도한다는
뜻이다.
자유주의로 향해 움직이는 교회들을 확인하는 길이 많이 있지만, 그 길에 있는
자들은 친구들로부터의 경고 듣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이 배교를 향해 움직이는 것은 그들이 거기로
가기를 원하기 때문이아닐까.
사람들은 심지어 여러분이 그들에게 그들의 교단이 천국이나 불붙는 지옥이
없다고
하는 자유주의 교리를 믿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때도 그 명백한 사실에 직면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충성된
경고 자들을 향하여 그들이 거짓 교리를 취급한다기보다 개인적 문제를 논하고 있다고 본다.
경고 자들을 소홀하게
생각한다는 말이다.
그들은 우리를 ‘사랑이 없다, 천박한 정신을 가졌다’고 부른다.
사람이 어떻게 배교에 도달하는가?
사사기 2:10에는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고 기록되어 있다.
‘무엇이 쥐를 죽였는가?’
쥐를 죽인 것은
100%의 독약이 아니다. 100%의 햄버거에 든
오직 2퍼센트만의
독약이었다. 햄버거의 98%는 먹어도 되는 음식이었지만 단지 2%의 독약 때문에
쥐는 죽었다. 진리와 거짓의 혼합물은, 격리되고 분간될 수 있는 순수한 거짓보다 보통 훨씬 더
치명적이다.
하지만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그러나 그 안에 좋은 점이 매우 많다”고 흔히
말한다.
관용은 이제
중립성을 의미한다
다원주의(多元主義)는 강요된 중립성이 되었다. 거기에서는 아무도 다른 이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 있는 어떠한 생각도 표현해서는 안 된다.
어떤 목사는 예배하는 이들에게 구도자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도록 성경책들을
교회에 가져오지 말라고 요청하였다.
이것은 전도를 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도’는 많은 죄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선교단체들은 새로운 접근방식을 시도하고 있는데, 거기에서는 회심자들이 그들의
문화 안에 있는 다른 이들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옛날의 종교적 신념들과 행위들을
그대로
지니도록 허용한다.
배교(背敎)의 길
배교한 교회들은
종교적 연합의 역사에서 결코 어떤 단체도 배교나 현대주의나 자유주의로부터
나온
적(떠난
적)이 없으며 결국 그리로 돌아가지 않은 적도 없다.
어떤 단체들은 좀더 시간이 걸렸고 다른 단체들은 그 과정에 있을
뿐이다.
역사적
기록이 증거하는 바는, 한 단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옛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을 늦추거나 지연하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슬프게도 이것은 또한 교육기관들과 선교회들과 교회들에서도 그러하다.
안전의 요소를
유지하기 위해 돌아감을
허용하는 것은
멸망으로 가는 길이다.
어떤 기구적 유대 관계도 계속되도록 남겨져서는 안 된다.
영원히 자유주의를 떠나기
위해서, 우리는 ‘부수고 불태우는’ 방침, 즉 돌아갈 모든 가능한 수단을
파괴하는 방침을 추구해야 한다. .
1920년대의 옛 자유주의와 배교를 떠날 때, 복음주의자들은 이 시도에
실패했다.
그들의 ‘포용주의’의 방침은 현대주의적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분명하도록 기존하는
다리들을
남겨두었다. 슬프게도, ‘분리주의자들’이라고 조롱을 받았던 어떤 단체들은 자유주의로 돌아갈 다리들을재건립(再建立)하고 있다.
그들의 오류는
단절했어야 할유대(紐帶)
관계들을 그대로 내버려둔 데 있었다.
이것은 약속의 땅으로 돌아갈 때의 이스라엘의 큰 죄이었다. 그들은 이방인들을
진멸하고 쫓아내지 못했고 불순종의 댓가를 지불했다.
이 다리들이 그들로 하여금
우상 숭배로 나아가게 하였다. 역사
기록이 증거하는 바는, 한 번 돌아가기 시작하면 아무 것도 그것을
뒤바꿀 수 없었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불신앙자들을 ‘자유주의자들’로, 자유주의자들을 ‘온건한
자들’(moderates)로, 또는 온건한 자들을 ‘보수주의자들’로 부를 때,
명칭을 바꾼다고 해서 변화되는
것이
아니다.
옛 복음과 새 복음
개리 길레이
목사는 말하기를, 새 복음은 결함이 있는 철학(필요하다고 느끼는
것들을 중시함)과 잘못된 방법론(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에 몰려 따라감)에 기초하며 그것은 결국...
자기
존중(self-esteem)과
개인적 성취의 변이된 복음으로 구체화된다고 말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여 말한다.
옛 복음은 노하신 하나님에 관한 것이었으나,
새 복음은 상처 입은 우리에 관한
것이다.
옛 복음은 죄에 관한 것이었으나,
새 복음은 필요한 것들에 관한 것이다.
옛 복음은 의(義)에 대한 우리의 필요에 관한 것이었으나, 새 복음은 성취에 대한
우리의 필요에 관한 것이다.
옛 복음은 멸망하는 자들에게 거슬리는 것이지만, 새 복음은 그들에게 매력적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새 복음에 모여들고 있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과연 실제로
구원을 받고 있는지는 매우 의문이다.
우리가 우리의 교회들에서 필요로 하는 것은 이 시대의 정신을 반영하는
변질된
치유적 복음이 아니고, 십자가의 어리석은 것을 전파함으로써 죄인들에게
바른 해답을 던지는 용기이다.
경찰이 범죄를 관용해야 하는가,
의사들이 질병을 관용해야 하는가,
법관들이 거짓 증언을 관용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관용해야 하는가?
그런데
다른 맥락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미치광이 짓이 영적 문제들에서는
허락되고 있다.
극단적 중립
사람들은 극우(極右)와 극좌(極左)에 관해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지극히 거짓되고
지극히 불순종적이며 지극히 위험하다고 폭로할 필요가 있는 것은 바로
극단적 중립이다.
W. B. 라일리 박사는 “중도적 인물은 20세기의 신학적 위협이다”라고
말했다. 진리와 오류
즉
[선과 악] 사이의 싸움에서
중립성(혹은 온건함)은
덕이 아니다.
침묵의 죄
스스로 기독교적이라고 주장하는 개인이나 단체가 정통적 기독교의 역사적 성경적
교리들로부터 심각하게 떠날 때, 우리는 침묵
해서는 안
된다. 말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욕을 돌리는
것이며 그 오류의 전파 자들과 그것을 듣는 자들을 사랑하지 않는 일이다.
침묵하는 파수꾼은 없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파수꾼이 의무를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안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나라의 목자들을 ‘눈 먼 파수꾼들’이라고 부르셨고 그들을
‘벙어리 개요 능히 짖지 못하는 자’라고 말씀하셨다(사 56:10).
그들의 그릇된 교리를 비난하지 않으셨고, 오직 그들이 경고했어야 할 때
잠자고 있었음을 비난하셨다.
나는 2024년도 달력을 주문하면서 다음과 같은 성구를 삽입했다.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에스겔
17장 3절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는 진리(1절)
전도서 7장은 ‘역설의 장’이란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본문에는 상식을 깨는 7가지
역설적이 나오는데 그 중의 첫째 진리가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는 진리입니다.
이름은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고
어떻게 보면 목숨과도 같습니다. 목숨과 재물을 어떻게
바꾸겠습니까? 부자와 나사로의 얘기에서 부자의 이름은 성경에 안
나오지만 가난한 나사로의 이름은 나옵니다. 믿음으로 주어진 가장
복된 일은 그 이름이 하늘나라의 생명 책이 기록된 것입니다.
물질보다 이름이 소중하고 권세보다 인격이 소중합니다.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다.”는 진리(1절)
왜 죽는 날이 낫습니까? 하나님
안에서는 죽음이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실한 믿음 안에서는
죽음조차 최선의 결과이고 최종적인 치유입니다. 성도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잠깐
동안은 슬프지만 곧 슬픔을 뒤덮는 소망의 빛이 그 마음에 임하게
됩니다. 언젠가 기쁜 모습으로 재회하게 될 날이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 재회의 날을 기다리며 열심히 살면 큰 힘과 평안을
얻습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는 진리(2절)
잔칫집은 자신을 망각하게
만들지만 초상집은 자신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잔칫집에서 한바탕 먹으면 남는
것은 배탈 밖에 없지만 초상집에 갔다 오면 인생의 엄숙한 자각을
하게 됩니다. 초상집에 가서 초보 철학자처럼 “이제 곧 나도 죽을
텐데 저 죽음의 건너편에는 무엇이 있을까?”를 진지하게 생각하면
그 초상집은 어떤 교실보다 훌륭한 교실이 됩니다.
초상집에는 죽은 자의 가족을
위로하기 위해서도 가야 하지만 죽음으로부터 지혜를 얻기 위해서도
가야 합니다. 사람들은 보통 출생을 축하하지만 기독교는 죽음도
축하합니다. 그것이 복음만이 가지는 위대한 저력입니다.
“슬픔이
웃음보다 낫다.”는 진리(3절)
맑고 건강한 웃음은 좋은
것이지만 가식적인 웃음은 차가운 현실에서 도망치려고 발버둥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가식적인 웃음보다는 차라리 진지한 슬픔이 더
낫습니다. 슬픔 속에는 오히려 진실이 있고 슬퍼하는 사람들은 대개
정직합니다.
또한 슬퍼하며 눈물을 흘릴 때
진정한 치유도 일어납니다. 눈물이 마른 것은 감격도 상실한
것입니다. 눈물은 마음의 창을 닦는 세정제이고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치료제입니다. 진실한 눈물을 박카스 병으로 한 병만 채울 수
있어도 암과 그 외의 수많은 병이 떠나갈 것입니다.
“지혜자의 책망이
우매자의 노래보다 낫다.”는 진리(5-7절)
여기서 우매자의 노래란
‘어리석은 자의 아첨’을 뜻합니다. 어리석은 자의 아첨은 자신을
점차 멸망으로 이끌지만 지혜로운 자의 책망은 자신을 일깨웁니다.
인간관계에서 서로의 잘못을
지적해줄 수 있는 깊은 단계에 이르기 전에 책망부터 하면 피차
불편해집니다. 서로의 잘못을 지적해주는 책망의 단계에 이르려면
책망 전에 먼저 죽도록 충성하는 삶을 보여주십시오.
그 단계에까지 이르도록 가까운
사람이 바로 자신의 배우자입니다. 좋은 부부는 책망을 주고받아도
별 탈이 없습니다. 그처럼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하면서 책망할 수
있는 단계까지 이르는 교제를 추구하십시오.
“끝이
시작보다 낫다.”는 진리(8절)
한국인은 거창한 시작을
좋아하지만 사실상 시작보다 끝이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이 다 그랬습니다.
기독교는 종말론적인 종교입니다.
“이제 곧 내 삶의 끝이 온다.”는 엄숙한 사실 앞에서 겸허하게
서십시오. 그처럼 종말을 인식하며 결산의 그 날을 바라보고 오늘의
순간을 진지하게 사십시오.
살다 보면 풀기 힘든 문제를
당할 때도 있지만 그때도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가면 반드시 문제는
풀립니다.
그 다음에 보면 어느덧 더
성숙해 있고 하나님과 사람이 보기에 훨씬 복된 존재가 되어
있습니다.
그처럼 최종승리가 보장된
존재로서 마무리를 잘하는 심령이 되십시오.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낫다.”는 진리(8-9절)
하나님은 인내를 이루게 하려고
시련을 허용하시고 그 시련 가운데서 주님의 형상을 만들어
가십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산다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습니다. 필생의 꿈과 희망이 사라진 것 같이
느껴질 때 어떻게 쉽게 기뻐하고 인내겠습니까? 그래도 인내하고
변함없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아무리 힘든 고난이라도 그
상황이 끝없이 계속되지는 않습니다. 모든 고난의 터널에는 끝이
있습니다. 그때까지 인내하면 찬란한 영광의 때가 성큼 다가올
것입니다.
신학이란 무엇인가?
“신학”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을 연구하다"를 의미하는 두 개의 헬라어 단어에서 온 것입니다.
기독교 신학은 단지 성경에 계시된 그대로 하나님을 이해하려는 시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무한히 그리고 영원히 더 높으시기 때문에, 그 어떤 신학도 하나님과 그분의 방법을 완전히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묘사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미흡할 뿐입니다 (로마서 11:33-36).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가능한 만큼 그분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신학은 체계적이고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하나님에 대해 우리가 알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을 알아 가는 예술이자 과학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학이 분열을 만든다고 믿기 때문에 신학을 회피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제대로 신학을 이해할 경우 신학은 사람들을 연합시킵니다. 적절하면서도 성경적인 신학은 좋은 것입니다.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16-17).
그렇다면, 신학에 대한 연구는 하나님이 자신에 대해 드러내신 것을 발견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캐내는 것과 같습니다.
이 일을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만물의 창조주, 만물의 보존자, 만물의 심판자로 알게 됩니다.
그분은 알파와 오메가이며, 모든 것의 시작과 끝입니다. 누가 그를 바로에게 보냈는지에 어떻게 답변해야 할지를 모세가 하나님께 묻자,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출애굽기 3:14)고 답변하셨습니다.
“스스로 있는 자”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인격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다른 존재들에게 이름을 주셨듯이,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스로 있는 자” 라는 이름은 자유롭고, 목적이 있는, 충족한 인격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힘이나 우주의 에너지가 아닙니다. 그분은 의지와 지각을 지니신 전능하고 자존하시며 스스로 결정하시는 존재이십니다. 그분의 말씀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에게 자신을 계시하여 주신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신학을 연구하는 것은 우리의 사랑과 순종을 통해 그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여기서 과정을 주목하십시오: 우리는 그분을 사랑할 수 있기 전에 그분을 알아야 하고, 그분께 순종하기를 원하기 전에 그분을 사랑해야 합니다.
부수적으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고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께서 주시는 위로와 소망으로 인하여 우리의 삶이 지극히 풍성하여 집니다.
부실한 신학과 하나님에 대한 피상적이고 부정확한 이해는 우리가 바라는 위로와 소망을 가져오는 대신에 오히려 우리의 삶을 악화시킵니다.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에 대해 알지 못하고 이 세상에서 살려고 노력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잔인한 것입니다. 세상은 고통스러운 곳이고, 그곳에서의 인생은 실망스럽고 괴롭습니다.
신학을 거절하면 방향 감각이 없는 삶으로 스스로를 몰아 넣게 됩니다. 신학이 없이는, 삶을 낭비하고 우리의 영혼을 잃게 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우리가 기쁨으로 영원히 함께 살아갈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고 순종하기 위하여, 신학, 곧 하나님에 대한 강렬하고 인격적인 연구에 불타 올라야 합니다.
조직신학은 무엇인가?
‘조직적(Systematic)’이라는 것은 어떤 것이 체계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조직신학은 다양한 영역을 설명하는 체계화된 신학 부서입니다.
예를 들면, 성경의 많은 책들은 천사들에 관한 정보를 줍니다. 어느 하나의 책도 천사들에 대한 모든 정보를 주고 있지 않습니다.
조직신학은 예를 들면 성경의 모든 책들로부터 천사들에 대한 모든 정보를 취하여 그것을 천사론이라 불리는 체계로 조직화합니다. 이것이 조직신학입니다. 곧 성경의 가르침을 부문별로 체계적으로 조직화 하는 것입니다.
성부론(Paterology, Theology Proper)은 하나님 아버지에 관한 연구입니다.
기독론(Christology)은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연구입니다.
성령론(Pneumatology)은 성령 하나님에 관한 연구입니다.
성서론(Bibliology)은 성경에 관한 연구입니다.
구원론(Soteriology)은 구원에 관한 연구입니다.
교회론(Ecclesiology)은 교회에 관한 연구입니다.
종말론(Eschatology)은 종말에 관한 연구입니다.
천사론(Angelology)은 천사들에 관한 연구입니다.
기독교 마귀론(Christian Demonology)은 기독교적 관점으로 본 마귀에 관한 연구입니다.
기독교 인간론(Christian Anthropology)은 인간에 관한 연구입니다.
죄악론(Hamartiology)은 죄에 관한 연구입니다.
조직신학은 우리가 성경을 조직적인 방식으로 이해하고 가르치는 데 도움을 주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조직신학 외에도 신학이 구분될 있는 다른 방법들이 있습니다.
성서신학은 학문으로서 성경의 책(또는 책들)이 집중하는 신학의 다양한 측면들을 강조합니다.
예를 들면, 요한복음은 그리스도의 신성에 훨씬 더 많은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매우 기독론적인 성향이 강합니다(요 1:1,14; 8:58; 10:30; 20:28).
역사 신학은 수 세기의 기독교 역사 가운데 있었던 교리들과 그 교리들의 발전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교의 신학은 체계화 된 교리를 가진 어떤 기독교 집단의 교리에 관해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예를 들면, 칼뱅주의 신학과 세대주의 신학입니다.
현대신학은 근세에 발전되었거나 중점이 된 교리들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어떠한 방법으로 신학을 공부하든, 중요한 것은 신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20여년 동안 북한에 대한 정세 판단은 붕괴론과
개혁개방론을
오락가락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조만간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는 주장이 풍미했다. 이는 다가올
흡수통일을 준비해야 한다는 논리와 연결됐다.
2000년대 초반엔 북한이 곧
개혁개방에 진입하는 것밖에 다른 대안이 없다고
했다. 이 논리를 내세운 이들은 한국의 포용정책이 북한의 개혁개방에 탄력을 줄 것이며, 그러면 북한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00년대
중반이 되자 북한은 이미 개혁개방을 했다는 식의 판단이 주류가 됐다. 이를
널리 알리는 것이 주요 정책 사업 중 하나였다. 아울러 북한 개혁개방에 따른
남북경협의 확대는 한국 경제에 활로를 열어줄
것으로 여겨졌다.
2000년대 말에 들어서자 북한이
조만간 붕괴할 것이라는 판단이
재차 주류가 됐다. 김정일 와병과
권력승계 문제 때문이었다. 통일 준비는 당면 정책과제로 다뤄졌다.
돌이켜 보면 지난 20여 년 동안의
이러한 정세판단은 하나같이
정확하지 못했다. 현재
우리가 당면한 북한은 1990년대 초반과 비교해 크게 변화했지만
개혁개방도
붕괴도 하지 않았다.
한국은 왜 이러한 판단
실패를 지속했을까.
첫째, ‘붕괴’냐 ‘개혁개방’이냐의
이분법(二分法)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북한 정권은 새로운 생존 조건에 직면해 적응하고 변화했다. 다시 말해
구체제는
‘붕괴’했지만, 정권은 살아남았다. 아울러 북한은 ‘개혁개방’을
하지 않은 채로도 엄청나게 변화할 수 있었다. 이것이 현재
북한 상황이다.
둘째, 지난 20여 년간 정세 판단의 주된 방향이
한국의
집권 정치세력의 성격과 연동해
변화했다는 것이다. 이 말은 한국의 정치세력이
자기 입맛대로 만든 북한정세판단이었다는
말이다.
사실 정세 판단을 기초로 정책을 입안하는 것이지,
정책목표에 맞춰 정세 판단을 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20년 동안 한국
집권정부가 북한 관련 지식의 생산과 유포에 주요한 역할을 하는 가운데 정부교체 때마다 붕괴론
또는 개혁개방론의 어느 한쪽으로 쏠림이 심했다. 정세 판단의 쏠림이 심할수록, 그에 비례해 정책도
크게 실패했다.
결론을 먼저 밝히면 ‘북한은 개혁개방하기 어려운 이유 때문에
붕괴하기 어려우며, 역으로
붕괴하기 어려운 이유로 개혁개방하기 어렵다’.
세 가지 이유로 이러한 상황이 발생한다.
첫째, 정치 차원에서
개인 독재와
일당 구조.
둘째, 경제 차원에서
독재의 경제논리와
외화벌이를 통한 정권 재정 확충.
셋째, 사회적 차원에서
공안기관의 강화 및
공개총살과 같은 ‘본보기 폭력’의 강화가
그것이다.
독재정권에는 다양한 양태가 있다. 역사를 보면 양태에 따라 내구성이 달랐다. 독재정권의
내구성이 특히 강한 경우는 두 가지다.
첫째, 독재자가 주변의
엘리트를 확고하게
장악하면서 동료가 아니라
부하로 부리는 경우다.
둘째, 정권이 단일 정당을 매개로 주민을
선별적으로 포섭하는
경우(co-optation)다.
북한은 이와 같은 두 가지 특징을
동시에 보여주는 흔하지 않은 사례다.
.
미국의 정치학자
밀란 스볼릭(Milan
W. Svolik)에 따르면 1946년부터 2008년까지 하루라도 권력을 잡았다가 비헌법적 방법으로 권력을 상실한
지도자는 303명이다. 그 가운데 205명의 독재자, 즉 전체의 3분의 2가 정권
이너서클 내부자(內部者)에 의해 제거됐다.
대중봉기나 민주화 압력에 의해 권력을 상실한 경우는 62명으로 5분의 1에 그친다. 나머지는 암살 혹은 외국의 간섭에 의해
제거됐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면 독재자에게 1차적 경계 대상은 바로 주변의
엘리트다. 독재자는
엘리트가 역모하지 않고 협조하도록 포섭해야 한다. 독재자와 엘리트 간의 관계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비확고한
독재(contested autocracy)와
확고한 독재(established autocracy)다.
비확고한 독재의
전형은 공산정권에서 정치국원을
중심으로 하는 집단지도 체제다.
이 경우 독재자와 동맹자 사이에 견제와 균형이 존재하며, 독재자가 엘리트의 역모에 의해
제거당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확고한 독재의 전형은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 김정일 등이다. 이 경우 독재자가 행사하는
권력이 주변 엘리트 전체가 행사하는 권력의 총합보다 크다. 이는 주변 엘리트가 단결해 역모를 꾸며도 독재자를 이길 수
없음을 의미한다.
장수한 독재자일수록
확고한 독재자일 가능성이 크며 이와 같은 독재자가 권력을 상실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권력을 잃더라도 그것은 이너서클 엘리트의 역모와는 상관없는 방식으로 발생한다. 자연사, 대중봉기,
외국의 간섭 등에 의해 권력을 상실한다.
그런데 앞서 지적했듯 일반적으로 독재정권 정변에서
대중 봉기나 외국의
간섭이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확고한 독재, 또는
북한식 ‘수령제’는 일반적인 독재에 비해 불안정해질 확률이 5분 1에
그친다는 것이다.
북한 정권의 내구성이 강화된 또 다른 이유는 일당독재 체계를 바탕으로 정권이
주민집단을
선별적으로 포섭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일당 체제가 가진 조직상의
세 가지 특징 때문이다.
북한은 우선
당원(黨員)이 되어야 한다.
초급 당원을 지나
고급 당원이 돼야 누리는
이득을 누리는
식으로 봉사와 이득을 위계적, 순차적으로 배정했다. 이렇게 되면, 상급 당원이 될수록
현존 정권의 영속성과 이해관계를
공유한다.
북한은 또 당원인
것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직책의 숫자를
늘렸다. 이를 통해 당원이 되고자 하는 욕구, 당원과 현존 정권의 운명공동체로서의
일체감을 높였다.
북한은 독재국가 중에서도 유별나게 거의
모든 간부의 직책 임명을
당적(黨籍)으로
통제한다. 또한 북한은 주민집단을
정치적 충성도에 따라 등급화하고 그에 상응하게 공공재
배분을 차별했다.
독재에는 독특한 경제논리, 즉
독재의 경제논리가 있다. 독재자가 권력을 유지하려면 소수의
충성집단에 충분한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 독재자는 다수
주민으로부터 경제잉여를 추출해 핵심 지지 집단에
재분배한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은 경제성장이나 주민복지를
희생해야 가능하다. 통치집단 구성원의 충성을
유지하는 데 충분한 잉여를 확보하고 배분할 수 있다면 경제가
침체하더라도
독재정권은 위협받지 않는다.
또한 독재 국가에서 독재자-엘리트-주민 사이의 권력 배분 상태는 경제잉여의 배분 상태와
대체로 일치한다. 만약 어떤 그룹이 자신의 상대적 권력에 비해 너무 작은 이득을 얻을 경우 이 그룹은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이득 배분 상태를 바꾸고자 시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권력의 집중도가 심할수록 기회와 재화가 권력집단에
집중된다.
북한에서 독재의
경제논리는 1990년대 경제난을 거치면서 변모했다. 국가의 중앙재정이 붕괴하면서 독재자와 국가는 과거처럼 계획
및 배급체계를 직접 활용해 정권 핵심 집단에 경제적 특혜를 배분하는 방식에서 한계에 직면했다.
물론 계획과 배급은 완전히 철폐되지 않았지만 그 불완전성을 보완하고자 두 가지 장치가
추가로 동원됐다.
하나는 특권적사업권을 배분해 정권 기관 운영 및
충성 집단의 소득을 보장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광물 수출이나 원조 유입과 같은
외래 수입을 증가시켜 투자와 생산을
하지 않고서도 정권 유지 자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다.
특권적 사업권
배분을 보자. 김정일은 당·군
및 보안 관련 주요 기관처럼 정권유지를 위해 불가결한 특수기관에 독점적 사업권, 특히 무역권을 배분했다.
이들은 분야별 독점 무역권을 바탕으로 상업적 활동을 전개해
독과점 이윤을 벌어들였다. 벌어들인 이윤은 해당 기관의 운영자금, 간부의 부정 축재 및 종업원의 소비 특권 유지, 그리고
김정일에게 건네는 ‘충성자금’ 상납에 사용된다.
북한에서 이러한 체계를 수립한 선구자는 다름 아닌 1970년대 후계 추진 과정에서
정치자금이 필요했던 김정일이다.
김정일이 분배하는 독점적 사업권, 특히
무역권은 각종 기관과 집단이 정권 유지에 얼마나
긴요한지에 따라 차별적으로 배분됐다.
1995년 이후 선군(先軍) 정치 시대에는 군대가 정권 유지에 가장 중요한 집단으로
대두하면서, 가장 많은 특혜를 차지했다. 2009년 이래
김정은 후계 체제 수립 과정은 장성택
최용해 등의 당료 그룹을 새로운 주류로 등장시켰고, 이에 상응한 이권 재배분 과정에서 갈등이 빚어졌다.
이처럼 북한 정권의 재정체계는 조세수입이 아니라 특권기관의 ‘자체
벌이’를 바탕으로 한 운영자금 확보와 상납(충성자금)에 의존하는 체계로 점차 진화했다. 이러한 재정체계는
다차원적으로 불투명한데, 그 불투명성은 결국 권력을 가진 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따라서 경제구조 자체가 부익부빈익빈을
촉진하는 기능을 내장하고 있다. 또한 독재자가 가장 큰 재력가가 되고, 개별적 특권 기관과 그 연루 집단은 부유하지만,
국가재정은 영속적으로 붕괴 상태가 지속된다.
국가재정 붕괴는 경제성장과 인민생활 향상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국가의 공공재 공급 기능이
소멸한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평양은 흥성하지만, 국가의 공적 기능은 마비되고 인민경제 전반은 계속적으로 정체에 빠지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경제 체제에서 시장 확대는 정권기관이 영토 내의 부를 정권 유지 자금으로
동원하는 데 기여하는 장치 기능을 한다. 독재자가 정치적 필요에 따라
배분한 독점적 사업권, 주로
무역권을 기초로 정권
기관들은 ‘무역회사’를 설립해 상업적 활동에 참여했고, 이들이 북한의 시장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시장지배적 행위자’로
등장했다.
북한에서 ‘무역회사’는 권력기관의자회사(子會社)로서, 정치권력의 배려에 의해 독과점의 특혜와
초과이윤을 보장받고, 정권유지에 필요한 다양한 사업에 궁극적으로 자금을 제공하는 정치·경제 단위다.
정권기관의 무역회사들은
시장의 상층구조를 형성하며 상업적 유통 및 직접 생산의 하부구조를 직접 지배하거나 자생적으로 발생한 시장적 활동과 행위자를
포섭해 하부 구성 요소로서 종사시켰다.
국가기관의 외화벌이 관련 부서가 시장의 상품 유통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위치해
있고, 그 밑에 큰 ‘돈주’들이 있고, 그 아래 몇 단계를 거쳐 맨 밑바닥에 소매 장사와 원천 생산자가 존재한다.
개혁개방을 하지 않고서도 정권 유지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북한의
외래지대(地代) 유입을
증가시키려는 노력을 보자.
독재자가 경제적으로 당면하는 문제 중 하나는 앞서 서술한 독재의 경제논리 때문에 생산성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독재자가 생산성을 증가시키는 정책을 취하고자 한다면 특권기관에 제공한 독점권 배분 철폐, 각종 크고 작은
관료적 인허가의 폐지, 재산권 보장과 계약 준수 보장 같은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그런데 이는 독재의 경제논리를 지탱하는 구조와 조치를 해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독재정권의 존속을 정치적 경제적으로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따라서 독재자는
내부 생산성 증가 없이 독재정권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원, 특히 외환을 조달하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그러한 방법 중 대표적인 것이
자원수출과
원조유입이다. 이처럼 내부 경제의 생산성이 아니라 자원수출과 원조유입 등에 의해 지탱되는 국가를
외래지대 의존 국가(rentier
state)라고 한다.
여기서 지대란 석유처럼 ‘자연의 선물로부터 벌어들인 수출 또는 획득된 소득’ 또는 ‘비생산적
경제행위를 통해 자산을 획득할 수 있도록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기회’라는 뜻이다.
북한은 1990년대 이래
외래지대 의존 국가의 길을 밟아왔다. 최근의 외래지대 추세를
보면 이렇다.
2010년 이래 북한에서 ‘원자재 지대’, 그러니까
원자재가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70%에 달한다(석탄 50%, 기타 광물, 가공도가 낮은 광물 상품 및 농수산물 등 1차산업 상품 포함).
나진 선봉
및 청진 등 항만을 중국 또는 러시아에 임대하고 받은 임대수입, 러시아로부터 한국으로 가는 가스관을 설치하고 통과 수입을
확보하는 계획 추진, 금강산 관광을 포함한 관광 진흥 정책, 한국과 인접한 개성에 경제특구 설치 등은 ‘위치 지대’다.
중국의 대북 원조, 한국의 ‘평화보장’을 위한 대북 원조, 대량살상무기 개발 및 외교적
활용을 통해 확보한 원조는 ‘전략적 지대’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까지 다루었듯 북한의 독재는 정치적, 경제적 구성에 있어 다른 국가의 경우보다 강한
내구성을 확보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덧붙여 지적해야 할 것으로는 정치변동 주체의 부재와 정권의 강압능력 강화
등이 있다.
1990년대 재앙적 경제위기가 발생했는데도 국내 정치의 동요 없이 정권을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북한 내
정치 행위자 분포의 특징 때문이다. 독재정권에서 등장 가능한
정치행위자로는 정권 강경파, 정권
온건파, 온건 야당과 급진 야당이 있는데, 이 중에서 1990년대 현실적으로 북한에 존재했던 것은
정권 강경파뿐이었다.
따라서 치명적인 것으로 보이는 위기가 도래했는데도 정권 강경파는 시간을 벌면서
재(再)안정화를 모색할 수 있었다.
아울러 김정일은 정권 재편을 통해 노골적 강압기구인 군부를 통치의 근간으로 삼았다. 또한
급작스레 악화된 경제난으로 마비에 빠진 당 기구와 국가 기구를 대신해 1995년부터
핵심 무력기구인 군부를 체제 유지의
근간으로 설정하고 선군정치를 시작했다.
또한
무자비한 탄압 과
공안기구의 대대적 강화에 나섰다. 무자비한 탄압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공개처형이다.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정보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공개처형의 빈도수는 1990년대 초부터 점차 증가하기
시작해 1995년이 되면 122회로 전년 대비 2.5배 증가하며, 1996년에는 227회로 다시 1.9배 증가하고,
1997년 229회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 1998년 151회로 0.7배 감소하고, 1999년 93회로 0.6배,
2000년에는 90회, 2001년은 42회로 계속 감소한다. 이후 2000년대에는 대체로 약간 줄어든 수준에 머물고 있다.
공개처형 숫자로만 보면 북한의 내부 위기는 1995~1998년에 정점에 달했으며,
2001년 이후 상대적으로 안정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2012년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에도 이러한 추세에서 그다지 변화된 것이 없다. 김정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다고는 해도
김정은은
절대적 독재자로서의 위상을 구축해가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회사는 망해도 소유주는 흥하는 구조’라고 하겠다.
기득권 집단은 20여 년 동안 국가의 공공기능이 붕괴하고 인민경제가
침체한 것을
바탕으로
치부하고
흥성했다.
기득권 집단의 개인은 참담한 북한 현실을 대체로 잘 알고 있고, 유감스러운 생각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의 기득 이권을 위협할 만큼 현실이 크게 바뀌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이 같은 상황은 엘리트 내부의 권력 균형이 깨지는 정치적 변화가 발생하기 전에는 변화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세습 정권인 김정은 정권에서
당분간 내부 정치 변혁은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앞으로도 상당 기간 우리가 당면해야 하는 북한은
‘개혁개방’도 ‘붕괴’도 하지 않은
북한일 것이다. (언)
(이 글은 한국 통일연구원 자료를 중심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레바논(Lebanon)에서
2번째로 큰 도시
트리폴리(Tripoli)에서
한 행인이 떠돌이 개가 물고 다닌 비닐봉지 안에서 아기를
구조했다. 개가 쓰레기더미에 버려진 비닐봉지를 물고 거리로 나와
사람들의 주의를 끈 덕분에 아기가 구사일생했다.
지난 19일 아랍에미리트 영자지
더 내셔널에 따르면, 이날
레바논 북서부에 있는 지중해 연안 도시
트리폴리에서 한 행인이
떠돌이 개가 물고 있는 검은 비닐봉지에서 아기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 행인은 개에게 비닐봉지를
받아서 열었고, 봉지 안에서 어린 아기를 발견했다. 아기 얼굴과
몸에 상처가 있었다.
행인은 아기를 바로 이슬람
병원으로 데려갔다. 이슬람 병원은 아기를 더 큰 트리폴리
시립병원으로 전원 시켰다. 아기의 상태가 심각했지만, 다행히
병원에서 안정을 찾았다.
아기가 태어난 지 몇 시간
밖에 되지 않은 신생아라는 보도와 생후 4개월이라는 보도가
엇갈렸다. 누가 아기를 유기했는지 경찰이 수사 중이다.
비닐봉지에 신생아를 유기한
사건은 레바논 나라 전체에 큰 충격을 안겼다. 아기가 회복했다는
후속보도가 이어지자, 아기를 입양하겠다는 입양신청이 쇄도했다.
아기가 발견된 날은 이슬람력으로
새해가 시작하는 날이라서, 공공기관이 모두 쉬기 때문에,
떠돌이 개가 아기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자칫 아기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었다.
레바논 기자 가산 리피는 아기를
버린 사람보다 “아기를 끌고 나온 개가 더 사람의 도리에 맞는”
행동을 했다며, 고아원이나 경찰서 앞이 아니라 개떼가 많은 지역에
아기를 유기한 유기범의 의도를 비판했다.
감비아를
위한 기도
감비아는
10세기에 이슬람 상인들이 초기 대규모 정착지 중 일부를 사하라
횡단 무역 거점으로 세우며 세상에 드러났다.
이곳은 노예, 금, 상아를 사하라 전역에 보내는 수출 중심지로
성장했다. 16~17세기 사이에 유럽 열강들은 감비아와 무역을
이루기 시작했다.
1664년 영국은 감비아를 식민지로 삼아서 대서양 횡단 노예무역을
300년간 약 300만 명의 사람들을 노예로 팔았다. 독립투쟁을
하여 1965년 영국연방 내 독립국이 되었다.
독립 후 쿠데타를 막는 데 도움을 준 세네갈과 가까워지면서
1981년 세네-감비아 연방을 결성하기도 했다. 야야 자메흐는
1994년 쿠데타로 집권한 뒤 철권통치를 휘둘러오다 2016년
선거에서 아다마 배로에게 패배한 뒤 정권 이양을 거부하다 쫓겨나
적도 기니로 망명했다. 대통령 공화제이며, 아다마 배로가
2022년에 재선되어 5년 임기의 연임 중이다.
경제의 주요 수입원이 수산업과 관광업이다. 노동인구의 75%가
주요 작물인 땅콩 등 농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대부분 생계형이다.
감비아강은 교통로이며, 강 하류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다양한
동물들은 관광자원으로써 중요한 경제 기반이다.
주요 수출품은 땅콩과 수산물이다. 해외로 이주한 감비아인의 송금이
국가 수입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크다. 국민의 절반이 빈곤선
아래의 가난하게 살고 있다. 1인당 소득 2,100달러
기독교수들이 20일 충북 충주
한국교통대에서 열린 ‘제38회
전국교수 선교대회’에서 강의를 듣고 있다.
“다음세대인 우리 학생들이
신앙을 지키기 힘든 시대잖아요. 저희를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을
했으면 좋겠습니다.”(박원권 계명문화대 광고디자인학 명예교수)
“학생들과 기독교 문화의 차이를
절감합니다. 이들의 신앙을 끌어올리고 싶은 열망은 가득한데
현실적으로 어렵네요.”(장시웅 동의대 컴퓨터공학 교수)
현장에서 다음세대를 가르치는
기독교수들은 교회와 멀어진 ‘다른 세대’ 다음세대에 대한 위기감을
체감하고 있었다. 선교학에서는 기독교인이 2~5% 이하면
미전도종족 선교지로 여기는데 한국 캠퍼스가 ‘미전도종족 선교지’로
전락한 지는 오래된 얘기다. 지금도 많은 청년이 대학 진학과
동시에 교회를 떠난다.
20일 충북 충주
한국교통대(총장 윤승조)에서 개막된 ‘전국대학교수 선교대회’.
전국 각지에서 온 200여명의 기독교수는 팬데믹 후 캠퍼스 사역
전략을 배우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전국대학교수선교연합회(전대선·회장 박신현)가 주관한 선교대회는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사 60:1)를 주제로 21일까지 이틀
일정으로 열린다. 대회는 다음세대의 신앙 실태와 성혁명 물결에
따른 동성애 현상 등을 주제로 한 강연부터 캠퍼스 사역 활성화를
위한 세션별 세미나 등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첫 번째 주제강연 강사로 나선
수원 한국대학생선교회(CCC) 대표 이종태 목사는
‘젠지(Z세대)에게 바통을 던지자’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
목사는 역설적으로 캠퍼스 사역의 활성화를 위한 전략은 없으며 오직
복음만이 정답이라고 했다. 그는 “오로지 다음세대의 신앙 현실을
겸허히 수용해야 한다. 복음이 이들의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되도록
하는 것이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신학이 아닌
일반 학문을 전공한 교수들의 강의도 눈길을 끌었다.
남승호 서울대 언어학 교수와 김용수 한양대 원자력공학 교수는 각각
‘대학 내 종교의 자유 침해 및 대응’ ‘포스트코로나 시대
느헤미야 교육 선교로의 초대’를 주제로 강연했다.
권욱동 대구대 스포츠레저학
교수는 ‘지역교회와 함께하는 캠퍼스교회’ 강의에서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 4:12)는 말씀처럼 지역교회와
캠퍼스가 연합했을 때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는 나타난다”고
강조했다.
참석자들은 캠퍼스 사역자로서의
사명을 확인했다. 정인모 부산대 독일문학교수는 “교수로서 전공
연구나 교육도 해야 하지만 먼저 학생들에게 하나님을 전하는 캠퍼스
사역자의 역할을 올바로 감당하고 싶다”고 밝혔다. 박원권 교수는
“선교대회를 통해 다음세대인 학생들의 신앙이 다시 바로 설 수
있도록 기독 교수들이 선두에 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네이버가
생성형 인공지능
기반 서비스
라인업과
출시 계획을 21일 발표했다.
챗GPT와 유사한 ‘클로바X’,
인공지능 기반 검색서비스
‘큐:(Cue:)’를
출시하고
네이버 블로그
등 콘텐츠 제작 과정에서 인공지능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능도 제공한다.
네이버는 내달 네이버 ‘하이퍼클로바’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하이퍼클로바X’와
이를 기반으로 한 대화형 에이전트
‘클로바X(CLOVA X)’
베타 서비스를 출시한다.
하이퍼클로바X는
GPT와 같은
초거대 언어모델이다.
‘클로바X’는
오픈AI의 챗GPT,
구글의 바드와
마찬가지로
질문을
입력하면
답을
생성하고,
창작과
요약
등 다양한 글쓰기를 할 수 있다.
클로바X는 다양한 서비스들과 플러그인 형태로 연동해 여러 기능을 호출할 수도 있다. 네이버는 “플러그인 생태계는 서비스
고도화와 함께 확장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오는 9월에는 생성형 인공지능 기반 검색 서비스
‘큐:(Cue:)’의
베타 서비스를 출시한다.
‘큐:’는 하이퍼클로바X를
토대로 검색에 특화한 생성형 인공지능 서비스다.
네이버에 따르면
‘큐:’는
복합적 의도가 포함된 긴 질문을 이해하고 검색 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기능이 핵심이다. 이후
답변 생성에
필요한 신뢰도 있는 최신 정보를 활용해 입체적 검색 결과를 제공한다.
네이버는
검색을
중심으로 네이버 서비스들과 연계를
확대해 이용자가 쇼핑, 장소 예약 등을 ‘큐:’를 통해 쉽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큐:’는 베타 서비스를
시작으로 연내에 네이버
검색에도
일부 적용할 예정이다.
네이버는 인공지능 기술을
창작자 도구에도
접목한다. 오는 9월 네이버는 콘텐츠 제작 툴 ‘스마트에디터’에 하이퍼클로바X를 결합한 글쓰기 도구를 일부 창작자를
대상으로 제공하고, 추후 확대 적용한다. 글쓰기 소재 추천, 키워드를 선택하면 초안 작성, 이용자가 쓴 글을 더 좋은
표현으로 편집하는 기능 등을 갖추고 있다.
오는 10월부터 네이버는 기업 고객 대상 서비스도 확장해 기업이 생산성 향상 도구를 구축하거나 맞춤형 인공지능 서비스를
만들 수 있도록 했다.
인터넷 기업들이 인공지능 서비스를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앞서 지난 5월 구글이 생성형 인공지능 챗봇 서비스 바드를
발표했다. 구글 역시 인공지능 기술을 검색엔진에 접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앞서
구글은
구글 G메일,
구글독스(Docs)
등 자체 제품에 인공지능을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19일 뉴욕타임스가 관계자발로 전한 보도에 따르면 구글은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뉴스를 만드는 서비스를
테스트하고 있으며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언론사들에 관련 제안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검색 엔진
빙에
챗GPT를 적용한
빙챗 서비스를
선보였다.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
등 제품에
인공지능을
적용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르호보암은 솔로몬 왕의 아들이었다. 솔로몬 왕이 40년간 이스라엘
제국을 통치한 후 별세하자 왕자 르호보암이 41세의 나이로 즉위했다.
르호보암이 40년간 왕자로 지내면서 직∙간접적으로 배우게 된 부왕
솔로몬의 치적과 과오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로, 솔로몬 왕의 가장 큰 치적은 국방을 튼튼히 하는 한편(왕상10:26-29)
해상 무역을 통하여 국부를 쌓은 것이다(왕상10:11, 15, 22-23, 9:26-28).
둘째로, 또다른 치적은 왕궁과 성전 건축 뿐아니라 지방도시와
국경도시 건설에 박차를 가한 것이다(왕상9:10,15-19, 전2:4-10).
그 반면에, 솔로몬 왕의 과오도 크게 두 가지로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었다;
첫째로, 가나안 족속을 건설 현장에 노예로 부려 먹었으며(왕상9:20-23)
지나친 종교행사(왕상8:63, 9:25)와 사치향락에 빠진 것이 그 하나였다(왕상10:16-21,
11:1-3).
둘째로, 그는 또한 이방신과 우상을 숭배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큰
잘못을 범했다. 그 때문에 나라의 기틀이 내부에서부터 무너져 내리는 엄청난 불행을 훗날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왕상11:4-8).
르호보암은 아비 솔로몬의 치적을 답습하는 한편 자기 나름대로 새
시대를 열고 싶었다. 그래서 국부의 원천인 무역항(에시온게벨, 왕상9:26-28)을 지키고자 권력과
군사력을 강화했으며(왕상12:21, 대하12:13) 백성들의 노력동원을 계속 강요했다.
새 시대를 열기 위해서 젊은 인재들을 등용하여 그들의 정책을 밀어
부쳤다(왕상12:8-15). 그 결과 솔로몬 시대부터 강제노역과 무거운 세금에 시달려온 이스라엘
10지파가 다윗 왕조를 버리고 에브라임의 큰 용사 여로보암을 세겜에서 왕으로 삼아 분리독립을
선언해버렸다(왕상12:16-20,25-33).
아비 솔로몬 같이 되고 싶었던 욕심도 새 시대를 열고 싶었던 야망도
모두 허사로 돌아가버리자 르호보암 왕은 실의에 빠져서 아비 솔로몬 시대의 잘못을 되풀이하고 말았다.
모친인 암몬 여인 나아마(왕상14:21)의 영향을 받았는지 밀곰 등
우상과 아세라 목상을 섬겼으며(왕상11:5, 14:23) 그 땅에 남색 등 성적 타락이 있었다(왕상14:21-24).
호화 사치와 방탕의 모습은 왕비 18명, 후궁 60명, 아들 28명, 딸 60명(대하11:21)이라는
사실에서 잘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르호보암 왕에게도 나름대로 치적은 있었다. 그것은 국가
비상시에 하나님 앞에 몇 차례 겸손했었다는 것이다.
첫째로, 왕국 분열 초기에 18만 대군을 동원하여 북쪽 이스라엘
10 지파를 치려고 하다가 하나님의 만류를 받아 들여서 즉시 이를 중지한 것이다(왕상12:21-24).
둘째로, 애굽 왕 시삭이 6만의 기병으로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왔을 때
하나님께 겸비하여 위기에서 벗어난 것이다(대하12:2-12). 셋째로, 압살롬의 딸 마아가가 생산한
왕자 아비야를 세자로 책봉한 후 다른 왕자들 모두를 지방으로 분산
배치시켜버림으로써(대하11:20-23) 예상되는 왕자의 난 등 유다 왕국의 분열을 미연에 방지한
것이다.
어쨌든 그와 같은 공로가 있었기에 르호보암 왕은 17년간 왕위에
있었으며 그의 다윗 왕조는 BC586년 신 바벨론 제국에 의하여 멸망 당할 때까지 향후 350년간 더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비상시에만 하나님께 매어 달리고 평상시에는 하나님을 떠나
살았던 르호보암 왕이었기에 조국의 통일은 요원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르호보암 왕은 오늘 날 영적으로
통일의 조건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주는 좋은 사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아일랜드(Ireland)의 수도
더블린(Dublin)에는 인상적인 건축물이 있다.
1592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세운
트리니티 칼리지의 도서관이 바로 그곳이다.
목조 성당을 연상케 하는 도서관 내부에는 책장에 가득 꽂힌
고서(古書)에서 풍기는 편안한
향기가 그윽하다.
65m 길이의 메인 룸(main room)은 1712~32년에 지어졌는데, 장서 중 가장
오래된 서적 약 20만 권이 꽂혀 있다.
도서관의 긴 방(long room) 책장 사이사이에는 소크라테스부터 셰익스피어까지 인류를
대표하는 사상가들의 하얀색 흉상이 놓여 있다. 마치 인류의 보고(寶庫)를 지키고 있는 영혼처럼 보인다. 이 도서관에는 약
700만권의 장서가 있다.
우리는 왜 책을 읽을까.
혹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질까.
단지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일까.
독서는 지금 여기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 또는 다른 시대로
나를 데려가 타인의 삶을 간접적으로
살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수단이다.
이를 통해 공감 능력이 확장되고
사고(思考)의 폭도 넓어진다. 전문가들은 “독서 경험이
축적되면 내면이 단단해져 살아가면서 부딪히게 되는 여러 난관에도 쉽게 휘둘리지 않게 된다”고 입을 모은다.
물론 동영상 등 다양하고 간편한 미디어가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 책은 매체로서의 매력도가
점점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독서만이 줄 수 있는 매력과 강점도 많다. 책에 적힌 글자 하나하나에 담긴
메시지를 머릿속에서 이어 가며 사고력을 키우는 훈련은 오직 독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저자가 곳곳에 심어둔 참신한 단어와
문장을 직접 발견하는 재미도 크다.
조직을 이끄는 경영인은 수없이 많은 이해관계와 상이한 생각들이 쉼 없이 부딪치는 걸
바라보고 결단을 내려야 하는 위치에 있다. 이는 경영인이 더 많은 책을 읽고 선각자의 지혜를 통해 공감 능력을 키워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마크 저커버그 등 수많은 성공한 경영인들은 성공의 원천으로
독서를 꼽는다.
‘이코노미조선’은
최고경영자(CEO)와 경제학자 100인에게 ‘내 인생의 책’과 선정
사유를 묻고 이를 커버스토리에 담았다.
이를 통해 경영인들이 매우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경제·경영서와
자기 계발서, 처세서도 있었지만, 소설·철학서·역사서도 많이 추천했다.
이는 신간을 통해 새로운 트렌드를 배우는 것도 필요하지만, 비즈니스도 궁극적으로는 사회와
인간에 관한 것이어서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다는 방증이다. CEO가 다양한 사회 현상에 대해 세심하게 관찰하고, 인간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던 셈이다.
특히 기원전부터 시작해, 발행된 지 50년 이상이 됐지만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고전(古典)’의 비중이 36%에 달했다. 고전은 오랜 시간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작품이다.
설문에 많은 참여자들은 “고전을 통해 통찰력을 얻고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를 배웠다”고
했다. 한 대형 출판사 대표는 “고전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서 검증된 작품으로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라고 했다.
한 인문학자는 “고전은 책꽂이에 꽂혀만 있는 존재가 아니다. 한 권을 읽더라도 제대로 푹
들어가서 거기서 원하는 메시지가 내 삶에 녹아서 새로운 변화가 이뤄질 때까지 파고들어야 한다”고 했다.
‘개권유익(開卷有益·책은 펼치면 이롭다)’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중국 송나라
태종(太宗)이 독서를 좋아해 매일 세 권씩 책을 읽겠다는 규칙을 정했다.
측근이 건강을 염려하자, 태종이 “책은 펼치면 이로움이 있다. 나는 조금도 피로하지
않다”고 답한 데서 유래했다.
한 권의 책에는 저자의 인생 일부가 녹아 들어가 있다. 가벼운 인터넷 글쓰기와는 성격이
다르다. 인간이 뽑아낸 정수가 바로 책이다.
비록 여기 추천하는 책은 성경과 관계되는 책이 아니지만 100인이 추천한 서적과 함께 다른 세상, 다른 사람의 삶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기
바란다.
늦은 봄이나 초여름에 채취한다. 맛은 달고 쓰며 성질은 평하다. 풍사(風邪)를 몰아내고
열사를 없애며 관절을 이롭게 한다.
풍한습비, 사지경련, 각기 부종, 풍으로 인한 가려움증과 상기증, 어지럼증, 두통을
치료하고 음식이 잘 소화되게 하고 소변을 잘 나가게 하며 목이 마르는 증상을 치료한다.
해수(咳嗽), 중풍으로 인한 구안와사(눈과 입이 한쪽으로 비뚤어지는 증상 -口眼喎斜),
고혈압을 낫게 한다. 어린 가지를 푹 고아서 고를 만들어 먹거나 40-80그램을 물로 달여서 먹는다.
뽕잎에는 단백질이 풍부하고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하는 루틴 성분이 메밀의 17배, 칼슘은
양배추의 17배, 가바 성분은 녹차의 10배, 철은 무청의 150배 정도가 들어 있다.
또 뽕잎에는 52퍼센트나 되는 식이섬유가 들어 있는데 이 식이섬유는 장을 튼튼하게 하고
변을 부드럽게 하여 변을 빨리 나오게 하여 변비를 없애 준다.
뽕잎은 맛이 떫고 약간 쓰다. 어린 순은 그대로 쌈을 싸서 먹을 수 있다. 단백질이
18-40퍼센트 들어 있는데 식물의 잎 중에서 이만큼 단백질이 많이 들어 있는 것은 흔치 않다.
누에가 뽕잎만을 먹고 단백질 덩어리인 고치를 만드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단백질은
여러 종류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누에고치는 단백질의 구성성분이 매우 우수하다.
뽕잎의 단백질은 25종류의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에는 숙취를 없애주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알라닌과 아스파라긴산이 마른 뽕잎에 3퍼센트 정도 들어 있으며 뇌혈관의 혈액순환을 좋게 하고 콜레스테롤을
낮추어 주며 치매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티로신이 0.8퍼센트 들어 있다.
칼슘은 양배추의 60배가 넘고 철은 무청의 150배, 인은 무의 10배, 섬유질은
무말랭이나 고구마만큼이나 들어 있다.
식이섬유가 마른 뽕잎 무게의 반 이상이 들어 있는 것이다. 이 밖에 비타민 에이, 비,
씨, 디 등이 골고루 들어 있다.
이를 녹차와 비교하면 칼슘은 60배, 철분은 2배, 나트륨은 13배, 칼리는 1.4배나
더 많이 들어 있다. 비타민은 녹차보다 약간 적게 들어 있지만 식이섬유는 녹차보다 다섯 배나 더 많다. 커피나 녹차에 들어
잇는 카페인은 전혀 들어 있지 않다.
뽕잎은 옛 의학책에 신선약(神仙藥)이나 선약 중의 선약이라고 할 정도로 귀한 약효가 있는
것으로 적혀 있다. 각기병과 부종, 소갈(당뇨병), 중풍, 멍이 들거나 삔 데, 탈항, 종기, 청맹(눈이 보이지 않는
것), 동상, 화상, 머리털이 빠지는 것 등을 치료한다고 하였다.
뽕잎은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 중풍 등을 예방하고 치료한다. 뽕이라는 이름은 뽕잎을
먹으면 뽕뽕 하고 방귀가 잘 나온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뽕잎 가루를 식후에 반 숟갈씩 먹으면 변이 온통 푸르게 나올
정도로 엽록소가 많이 들어 있다. 이 엽록소는 염증을 치료하고 고름을 밖으로 빼내어 주고 노화를 막아주는 작용이 있다.
뽕잎에는 미네랄이 50가지 이상이 들어 있다. 대표적인 것은 칼슘, 철분, 칼륨인데
칼슘은 무보다 60배, 철분은 160배나 많다. 칼슘은 뼈를 튼튼하게 하고 골다공증을 예방 치료하며 철분은 혈액의 주요
구성성분이며 칼륨은 소금이 혈액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아주고 고혈압을 예방하는 작용이 있다.
뽕잎에는 식이섬유소가 52퍼센트 이상 들어 있는데 이 양은 녹차의 11퍼센트에 견주어
4배 이상이 많다. 요즘 사람들은 씹는 것을 싫어해서 섬유질 섭취가 부족하여 변비로 고생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러
사람들이 뽕잎을 꾸준히 먹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변비가 없어졌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비단실은 단백질 덩어리다. 누에가 비단실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뽕잎 속에 단백질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마른 뽕잎에는 24퍼센트 이상의 단백질이 들어 있다. 이 단백질은 20여 종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에는 필수 아미노산이 10여 종 이상 들어 있다. 혈액의 응고를 도와주는 글루타민이 3.3퍼센트, 숙취를
없애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아스파긴산이 2.2퍼센트, 노인성 치매를 예방하는 것으로 알려진 세린이 1.2퍼센트,
세포의 노화를 막아주는 것으로 알려진 글루타치온도 상당량 들어 있다.
뽕잎에는 중풍을 예방하고 고혈압 치료의 원료로 쓰는 루틴, 가바 등의 생체활성 성분도
다량으로 50여 종 이상이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혈관 강화
동의보감과 본초강목 같은 옛 의학책에는 뽕잎이 풍에 좋다고 적혔다. 풍을 맞았다는 것은
뇌졸중으로 뇌 속의 혈관이 막히거나 터진 것을 말한다.
뽕잎에는 곡식 중에서 루틴이 가장 많이 들어 있는 메밀보다 루틴이 18배나 많이 들어
있는데 루틴 성분은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또 혈압을 낮추는 가바라는 성분도 많이 들어 있다. 옛
의학책에는 뽕나무로 지팡이를 만들거나 젓가락을 만들어 써도 중풍을 예방한다고 적혔다.
당뇨병 예방
누에가 당뇨병에 좋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뽕잎에는 혈당을 떨어뜨리는 성분이 10여
종이 넘게 들어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디옥시노지리마이신이라는 성분인데 이런 성분들은 쌀밥이 포도당으로 바뀌는 속도를
낮추어 혈액 속으로 당분이 천천히 들어가도록 한다.
일본에서 연구한 것을 보면 유전적으로 당뇨병에 걸리게 되어 있는 쥐한테 젖을 떼자마자
뽕잎을 먹였더니 당뇨병에 걸리지 않았고 보통 먹이를 먹인 쥐는 모두 당뇨병에 걸렸다고 한다. 그 흰쥐를 해부하였더니
인슐린을 만드는 췌장의 베타세포가 뽕잎을 먹인 것은 그대로 있었으나 보통 먹이를 먹인 것은 없어져 버렸다고 하였다.
또 혈액 속의 인슐린 함량도 뽕잎을 먹인 것은 정상적으로 높았으나 뽕잎을 먹이지 않은
것은 매우 낮았다고 하였다. 이 연구는 나이가 들면 유전적으로 당뇨병에 걸리게 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뽕잎을 먹으면 당뇨병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또 당뇨병에 걸리게 하는 약을 날마다 먹이면서 뽕잎을 함께 먹이면 당뇨병에 걸리지 않는데
이는 뽕잎이 베타세포의 파괴를 막아주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혈압 안정
한국보건의료관리연구원에서 조사한 결과를 보면 농촌 지역의 사람들이 도시에 사는 사람보다
고혈압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 사람이 무려 6배나 많다고 하였다.
뽕잎은 혈압을 낮추어 주는 것 외에 혈관 안에 있는 지방 덩어리인 고지혈증과 혈관벽의
동맥경화를 막아 주고 치료하며 혈액의 흐름을 좋게 하여 혈관을 튼튼하게 하고 혈압을 안정시켜 주며 장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혈압을 낮추어 준다.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질을 낮춘다
콜레스테롤이 무조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콜레스테롤은 성호르몬의 원료이기도 하고
세포에 기름 성분을 운반하는 등의 여러 가지 역할을 한다. 그러나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으면 동맥경화, 고지혈증, 고혈압,
지방간 등의 갖가지 병이 생긴다.
혈전이란 혈액이 끈적끈적하게 더러워져서 막힌 것이다. 혈전은 혈관벽에 덕지덕지 달라붙어서
혈액이 순조롭게 흐르지 못하게 하고 심하면 혈관을 막아 버린다.
오래 된 수도관을 잘라 보면 곳곳에 녹이 슬고 수도관이 삭아서 수돗물이 잘 흐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수도관의 녹처럼 콜레스테롤은 혈관 벽에 붙어서 혈액이 흐르지 못하게 한다. 콜레스테롤을 먹여
고콜레스테롤증이 된 흰쥐한테 뽕잎을 농축하여 먹이면 혈전은 흔적만 남기고 없어진다.
동맥경화 예방
혈전이 계속해서 쌓이면 동맥벽의 탄력이 줄어들어 동맥경화증이 생긴다.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 경화증은 흔히 돌연사의 원인이 된다.
관상동맥 경화로 인한 협심증으로 가슴을 찢는 듯한 통증에 시달리다가 목숨을 잃게 되는데
이것이 뇌혈관에서 생기면 뇌졸중으로 반신불수가 되거나 목숨을 잃게 된다.
흰쥐를 인공적으로 동맥경화증을 일으키고 동맥을 염색해 보면 검은 색의 띠가 나타난다.
이런 쥐한테 뽕잎을 농축하여 먹이면 띠는 흔적만 남고 사라져 버린다. 뽕잎은 동맥경화증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
중금속 제거
납, 수은, 카드뮴 같은 중금속은 우리 몸에 들어오면 간, 뇌, 신경조직 같은 곳에
축적되어 갖가지 질병을 일으킨다.
녹차를 넣고 물을 끓이면 물 속에 있는 카드뮴이 80퍼센트 없어지는데 뽕잎을 넣고 끓이면
94퍼센트가 없어진다.
또 녹차는 물 속에 있는 납을 90퍼센트 없애지만 뽕잎은 98퍼센트를 없앤다. 보리차가
옥수수차가 60-70퍼센틀 없애는 것에 견주어 뽕잎이 월등하게 중금속을 제거하는 효과가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뽕잎이나
뽕잎 농축액은 몸 속으로 들어온 중금속을 흡착하여 몸 밖으로 배출하는 작용이 있다.
대소변을 잘 나오게 한다
뽕잎차를 마시면 금방 소변이 시원하게 잘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변비도 대개
없어진다. 뽕잎에는 상당히 센 이뇨작용이 있고 많은 식이 섬유가 변통을 좋게 한다.
노화 억제
뽕잎은 세포가 늙는 것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뽕잎 속에는 폴리페놀이 많이 들어 있는데
이 성분은 노화를 억제하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포는 대사과정에서 활성산소가 많이 생기는데 이것을 바로
제거하지 않으면 세포가 손상을 입게 된다. 이 활성산소를 없애 주는 것이 폴리페놀이다.
암 예방
뽕잎은 상당한 항암효과가 있다. 암세포를 배양하여 거기에 뽕잎을 삶은 물을 부어 주면
암세포의 발생이 30-70퍼센트 억제된다. 자라면서 간암에 걸리게 되어 있는 쥐한테 뽕잎을 먹였더니 암으로 죽는 비율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라브리란?
라브리(L'Abri
Fellowship)는 국제적인 기독교 공동체 및 연구 센터입니다.
"라브리"는 불어로 "피난처"라는 뜻이며, 라브리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부딪히는 온갖 문제의 대답을 찾기 위해 누구나 잠시 머물렀다 갈 수
있는 영적 피난처입니다.
프란시스 쉐퍼
박사 부부 (Francis & Edith Schaeffer)가 1955년에
스위스의 알프스 산기슭
위에모(Huemoz)란
동네에서 라브리를 시작한 이래로 현재는 전 세계에 열한 군데 기숙사 및 자료 센터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라브리의 철학
라브리는 영적 생활이나 사고하는 것 뿐만 아니라 인간
생활 전체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누구든지 찾아올 수 있으며,
라브리는 찾아오는 분들이 안고 있는
고민에
대답을 찾도록 도와주어
하나님이 살아
계심과 그 분의
말씀이 진리임을
드러내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물론 이러한 일을 완벽하게 수행한다고 말하는 것을
아닙니다. 다만 주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성경을 바르게 가르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라브리의 기본적인 입장은, 역사적이고 성경적인
기독교가 진리(眞理)라는 것과, 그것이 사실임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라브리는 무조건 믿으라는 말을 하기보다 먼저
학생들의 질문과 문제들을 신중하게 논의합니다.
라브리는, 기독교가 진리라면 그것은 종교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우주와 역사 그리고 인간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도 정직한 대답을 준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라브리는 "정직한 질문에 정직한 대답"을
주려고 노력합니다. 이것은 종교, 역사, 심리학, 교육, 정치, 사회 등 현대 인간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라브리가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돕는다는 뜻입니다.
라브리는 성경적인 기독교는 하나의 종교나 이념이
아니라, 죄지은 모든 인류를 위한 구원의 복음이며, 만물의 존재 양식에 부합하는
진리라고 믿습니다.
이와 같은 철학 위에서 라브리는 다음의
세 가지를
강조합니다.
영적 실체는 일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순간순간
과시되어야 한다.
성경적인 세계관은
모든 인간 지식과 상관성을 가진다.
사회적인 윤리, 즉
사랑과 공의는
공동체 안에서 실천되어야 한다.
Hello, everybody!
It's good to be with you.
미국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제도와 시설이 정말 잘되어 있습니다.
And I think there've been a lot of efforts to
accommodate and to make everything accessible for handicapped
individuals.
(그리고 장애인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모든 것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장애인의 통행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아주 세심한 배려를 하지요.
If a handicapped person needs to cross the
street, the curb has to be at an angle so they can role off that
sidewalk and to cross the street.
(장애인이 길을 건널 경우 보행로와 도로의 턱이 완만한 경사를 이루어서 장애인들이
횡단보도를 통해 길을 건널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횡단보도가 있는 곳에서는 큰길과 행인들이 다니는 인도가 만나는 곳에 턱을
없애서 휠체어가 유모차가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해놓고 있습니다.
If it’s a sharp drop, then a wheelchair can’t
cross the street and to get to the other side.
(턱이 높으면 휠체어가 길을 건너서 반대편으로 갈 수 없습니다.)
Sidewalks and crossings have to be built so that
a person in a wheelchair can easily wheel to the other side.
(보행자 통행로와 횡단보도는 휠체어를 탄 사람이 쉽게 건널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합니다.)
The crosswalk is equipped with a signal that is
pronounced and announced out loud.
(그리고 음성 안내가 되는 신호기를 장착한 횡단보도 신호등이 있습니다.)
And now they even tell you how many minutes or
seconds you have to cross the street.
(요즘에는 길을 건너는데 몇분 또는 몇 초가 남아 있는지 음성안내를 해줍니다.)
엘리베이터, 즉 승강기에도 장애인을 위해 배려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지요?
On an elevator to accommodate handicapped people
number one the door has to be very wide to open up so that wheel
chair can get in.
(엘리베이터에서는 장애인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우선 출입문이 넓어서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도록 넓게 열려야 합니다.)
And secondly, the numbers are raised and in
braille so that a sight impaired person can push the correct button
and get to the floor they need to.
(그리고 둘째로, 층 번호가 볼록하게 점자로 되어있어 시각장애인들이 버튼을 제대로 눌러서
원하는 층으로 올라갈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Usually any kind of parking lot has a certain
number of handicapped parking places.
(주차장에는 대부분 일정 수의 장애인용주차구역이 있습니다.)
In order to park there, you're supposed to have
either a handicapped plate on your vehicle, or a little sticker that
hangs for your rear view.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를 하기 위해서는 자동차 번호판이 장애인용 번호판이거나, 백미러에
걸려있는 조그만 스티커가 있어야 합니다.)
*
handicapped plate: 장애인용 자동차번호판
Many times people think "Oh, I can't find a
parking place, so I'll just park here." and you can be fined. You
can get a ticket for parking in the handicapped parking.
(종종 사람들은 “이런, 주차장을 찾을 수 없군. 그러니까 여기다 그냥 주차해야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벌금을 물게 되지요.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를 하면 위반 딱지를 받게 됩니다.)
[영어 표현]
Many public places are handicapped accessible.
(많은 공공 장소들은 장애인 접근이 가능합니다.)
일반 대중이 이용하는 버스에도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탈 수 있게 되어 있지요.
Yes, many public bus systems have a wheel chair
lift so that folks in the wheelchair can ride the bus.
(네, 많은 대중버스들이 휠체어 승강기를 장착하고 있어서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버스를 탈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버스 정거장에 휠체어를 탄 사람이 기다리고 있으면, 버스 운전사가 내려서 직접
휠체어승강기를 작동시키고, 버스 안 휠체어 고정 장치에 휠체어를 고정시킨 다음 다시 운전을 하고 가기도 하지요.
Many restaurants have special tables that are a
little bit higher to accommodate people in wheelchairs.
(많은 음식점들은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높이가 좀 높은 특별한 식탁을
갖추고 있습니다.)
And many public places have rest rooms that are
specially for handicapped individuals.
(그리고 많은 공공 장소에는 장애인을 위해 특별히 마련된
화장실이 있지요.)
For instance, airports or in the rest stops along
the high way or other public places, there are special rest rooms
with wider doors.
(예를 들어 공항이나 고속도로 인근 휴게소, 또는 다른 공공장소에는 문이 넓은 특별한
화장실이 있습니다.)
The sinks are lower, and the controls on the
sinks might even easier to.
(세면대가 낮게 되어 있어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세면대 시설을 이용하기 쉽게 되어
있습니다.)
비행기 탑승할 때도 장애인 승객이 불편하지 않게 도움을 주지요?
Yes, if a person who requires a wheelchair flies,
the airline transports the person in the wheelchair to the plane and
has them seated usually before other passengers and gets them
settled.
(네, 휠체어가 필요한 사람이 탑승할 경우 항공사에서는 승객을 휠체어에 태워 비행기로
안내하고 다른 승객들보다 먼저 좌석에 앉아 자리를 잡게 합니다.)
And then when get to the other end, a wheelchair
is waiting by the airline.
(그리고 비행기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휠체어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Even amusement parks and theaters and other
places, usually they can accommodate
handicapped people.
(놀이공원이나 박물관 같은 공공 시설을 이용할 때 장애인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accommodate: ~을 돌보다, ~에게 친절을 베풀다, ~에게 편의를 제공하다
종종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기다리는 줄 맨 앞에 이용하게 하거나 특별한 배려를 해줍니다.
장애인이 이동을 도와주는 사람들도 같이 줄을 서지 않고 관람을 할 수 있지요?
Yes, that's a good incentive for helping people
with disabilities. You get to go to the front of the line.
(네, 장애인을 돕는 사람들에 대한
혜택을 베풉니다. 줄 맨 앞으로 갈 수 가 있습니다.)
*
incentive: 동기, 장려,
혜택
그리고 회사나 정부기관 등에 장애를 가진 직원들이 근무할 경우, 근무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시설을 갖춰야 하지요?
There're many accommodations in an office setting
to help with people who have disabilities.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도울 수 있도록 사무실 환경에 많은 배려를 합니다.)
For instance, there're talking computers or
calculators.
(예를 들어, 말하는 컴퓨터나 계산기 등이 있습니다.)
엘리베이터에는 시각 장애인을 위한 음성 안내장치와
점자 버튼이 있고요.
The elevators are labeled in braille.
If a person with a disability is hired, there are
certain reasonable accommodations that you as the employer are
required to assist with.
(장애를 가진 사람이 고용되었을 때 고용주는 특정의 합리적인 편의 제공의 의무가
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Bye everybody, it's good to be with you again.
이름을 물어볼 땐
“What’s your name!” 하지 마세요.
틀린 표현은 아닌데 조금 재미 없는 표현이기는 하죠?
처음 만나는 사람과 대화를 하며 이름을 물어볼 때 원어민들이 많이 쓰는 표현을 배워봅시다.
(통성명 후 이름이 기억나지 않을 때)
What was your name, again?
이름이 뭐라고 하셨죠?
I’m really bad with names.
이름을 잘 기억 못해서요.
(통성명을 하지 않고 대화를 나누다 이름을 물어볼 때)
I never got your name.
아직 이름을 못들었네요.
So, what’s your name?
성함이 어떻게 되신다고요?
I didn’t catch your name. /
I never got your name.
성함을 못 들은 것 같은데요.
I never had a chance to get your name.
이름 물어 볼 기회가 없었네요.
우크라이나 오데사 지역에서 러시아의 공격으로 농장 창고 건물이
심하게 손상된 것으로 보입니다. 올레 키퍼(Oleh Kiper) 지역 주지사는 미사일 공격으로 2명이 다치고 장비가 손상되었으며 완두콩 100톤과 보리 20톤이 파괴됐다고 말했다.
케냐의 야당 지도자 Azimio La Umoja One Kenya Alliance의
Raila Odinga 지지자들이 케냐 나이로비에서 정부의 세금 인상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는 동안 한 시위자가 연기 속을 걷고 있다.
이라크 시아파 성직자 무크타다 알 사드르의 지지자들이
이라크 바그다드의 스톡홀름에서 예상되는 코란 방화를 앞두고
대사관이 습격당하고 불이 난 후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자칭 도네츠크 인민 공화국의 전 최고 군사령관이자 민족주의
블로거인 Igor Girkin(Strelkov)이 금요일 일찍 구금되어 극단주의 혐의로
기소되어 모스크바에서 열린 그의 재판 전 체포에 대한 요청을 고려하기 위한
청문회에서 유리 피고인의 우리 안에 앉아 있다.
그리스, 만드라에서 산불로 불타버린 집 마당에서 한 사람이 걷고 있다.
스위스의 Ana Maria Crnogorcevic(왼쪽)이 뉴질랜드 더니든에서 열린
여자 월드컵 A조 필리핀과 스위스의 후반전 경기에서 필리핀의
Hali Long 옆에서 공을 헤딩하고 있다.
관광객과 현지인들이 터키 이스탄불의 비잔틴 시대
하기아 소피아 모스크를 방문하고 있다.
Trinamool Congress(TMC) 정당의 지지자들이 콜카타에서
연례 순교자의 날을 기념하기 위한 집회에 참석
중국의 창 야니가 일본 후쿠오카에서 열린 세계수영선수권대회
다이빙 여자 3m 스프링보드 결승에서 경기를 펼치고 있다.
인도 북동부 마니푸르주 암리차르에서 진행 중인 인종 폭력 속에서
여성에 대한 성폭력에 대한 촛불 집회에 의회 직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인도 경찰은 수개월 간의 인종 폭력으로 최소 120명이 사망한
북동부 주에서 폭도들 앞에서 두 명의 여성을 알몸으로 행진한 혐의로
네 명의 남성을 체포했다.
이스라엘 인어공동체 회원들이 이스라엘 텔아비브 인근
바트얌의 지중해에서 인어 꼬리를 달고 수영을 하고 있다.
인도 서부 마하라슈트라 주 라이가드 지역에서 집들이
쓸려간 산사태로 가족이 잔해 속에 갇힌 후 한 여성이 통곡하고 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시위대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정부의
사법 제도 개편 계획에 항의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유럽에 폭염이 몰아치고 있는 프랑스 렌의 도심 쇼핑가에서
한 여성이 폭염과 싸우기 위해 차양막 아래를 걷고 있다.
구조대원들이 우크라이나 미콜라이프에서 러시아 미사일 공격으로
심하게 파손된 주거용 건물 현장에서 작업하고 있다.
새 총리에 대한 두 번째 투표가 있는 태국 헌법재판소가 의회에서
일시적으로 의회에 출석하지 말라고 명령한 후 전진당(Move Forward Party)의
피타 림자로엔라트(Pita Limjaroenrat) 대표가 의회에서 신분증을 들고 있다.
전진당(Move Forward Party) 지지자들이 태국 방콕에서 시위를 벌이는 동안
민주주의 기념비에 모였습니다. 태국 헌법재판소는 총리 후보인
피타 림자로엔라트(Pita Limjaroenrat) 당수가 선거법 위반 여부에 대한 판결이
나올 때까지 국회의원 직무를 정지시켰다.
그리스 아테네 인근 뉴 페라모스에서 소방관이 산불을 진압하려다
불길을 피해 달아나고 있다. 소방관들은 그리스 일부 지역과
카나리아 제도에서 화재 진압에 나섰고, 스페인은 폭염 경보를 발령했으며
이탈리아 사르디니아의 일부 어린이들은 스포츠를 자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나이로비의 마타레 정착촌에서 여성들이 세금 인상에 대한 정부의 항의 도중
총에 맞아 사망한 케냐의 야당 지도자 라일라 오딩가의 지지자들.
크림 반도 키로프스키 지역의 탄약고에서 폭발이 발생한 탄약고 위로
연기 기둥이 피어오르고 있다. 크림 반도의 러시아 비상 관리들은
군사 시설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4개 마을에서 2,200명 이상이 대피했다고 말했다.
2023년 7월 18일 영국 노스 웨일즈의 Coleg Menai에 있는
Performing Art 스튜디오에서 흰색 구를 위한 다이아몬드 플렉시글라스와
광섬유 조명으로 구 아래 연기와 불 효과를 생성하는
횃불 조명으로 만든 조명 그림
이스라엘 예비군이 텔아비브에서 정부의 사법 개편 법안에 항의하기 위해
자발적 예비군 복무 중단을 선언하는 선언문에 서명하고 있다.
생제르베 몽블랑(Saint-Gervais Mont-Blanc)에서 시작하여
프랑스 쿠르슈벨(Courchevel)에서 결승점을 이루는 166km에 걸친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 사이클링 레이스의 17번째 스테이지에서
콜 드 라 로즈(Col de la Loze) 패스에서 팀 차량과 오토바이가 군중 속에 갇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