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21, 2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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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n Now / Nana Mouskouri
Over the time from above
So lonely for only your love
In the cold grey days of December
Come to my arms where you belong
다시 돌아온 그대를 만날 수 있을까요.
For you are the words to my song
Even now each night I remember Days of summer
In the cold grey days of December
My darling, I miss you even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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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생각하는 일이란 마음이 울렁거리는 일이다. 바람 불면 그곳이 어디든 따라 나서고 싶고, 바람 들면 온몸이 저절로 살랑살랑 나부끼게 되고, 바람나면 불타는 두 눈에 세상 보이는 것 아마 없으리. 바람을 생각하는 일이란 사무치는 일이다. 빈자리를 어루만지는 부재와 상실, 추억과 그리움으로 가슴이 시리고 뼛속까지 시리리. 그리고 바람을 생각하는 일이란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다. 물처럼 세월처럼, 시작도 없고 끝도 없고 지나고 나면 흔적도 없으리.
삶이, 사랑이, 시(詩)의 말이 바람이라고 생각한 적 있다. 바람(願)이라서, 바람(風) 같아서 간절한 것들이다.
이 시를 읽노라면 간절하게 그리운 부재가 떠오르고, 간절하게 따뜻한 배려가 떠오른다. 몸을 떠나 영혼으로 떠돌며 사랑하는 사람 곁을 지키던 영화 '사랑과 영혼', 그 애틋한 바람의 영혼도 떠오른다. 서로 떨어져 있어도 사랑의 괴로움, 사랑의 피로까지를 함께하는 바람의 마음. 그렇게 따뜻한 바람이라면 '가끔'이 아니라 매일매일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고 싶다. "목숨을 걸면 무엇이고/ 무섭고 아름답겠지./ 나도 목숨 건 사랑의/ 연한 피부를 쓰다듬고 싶다"('성년의 비밀')
이 시는 조용필이 부른 '바람이 전하는 말'의 노랫말과 흡사하다. 물론 이 시가 5년쯤 먼저다. 의사이기도 한 마종기(69) 시인은 고희를 앞두고도 여전히 젊고 댄디(dandy)하다. 어떤 선입관과 고정관념과 권위로부터 자유롭다. 동화작가 마해송과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여성 무용가 박외선 사이에서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서울에서 성장해 의과대학 재학 시절 시인으로 등단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40여 년간 방사선과 전문의로 지내며 시를 써왔다.
그는 올해로 시력 49년을 맞는다. 투명하면서 울림이 깊은 그의 시에 유난히 위로받고 행복해하는 마니아들이 많다. 오롯한 그리움과 따뜻한 진심이 느껴지기 때문이리라. 누군가 말했다. 그의 시는 '맹물' 같다고. 어느 날 마시면 상쾌하고 시원하고, 어느 날은 목이 메고 어느 날은 아무 맛도 나지 않는다고. "나는 이제 고국에서는/ 바람으로만 남겠네"('산수유')라는 그의 최근 시의 구절이 떠오른다.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라는 이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과 함께. 그는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시민임이 분명하다, 저 바람처럼. 정끝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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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마시는데
소리 없이 다가와 찻잔에 담기는 그대는 누구십니까?
낙엽 밟으며 산길을 걷는데 살며시 다가와 팔짱 끼고 친구 되어 주는 그대는 누구십니까?
비를 보고 있는데 빗속에서 걸어 나와 우산을 씌워주는 그대는 누구십니까?
바람 없는 강둑을 걷는데 물 위에 미소 짓는 얼굴 하나 그려놓고 더 그립게 하는 그대는 누구십니까?
푸른 내 마음에 그리움을 꽃으로 피우고 꽃과 함께 살자는 그대는 누구십니까?
커다란 별을 따서 내 가슴에 달아 주며 늘 생각해 달라는 그대는 누구십니까?
바람 타고 달려와 내 마음에 둥지 짓고 늘 보고 싶게 만든 그대는 누구십니까?
내 마음의 주인이 되어 보고 있는데도 더 보고 싶게 만드는 그대는 그대는 진정 누구십니까?
(작자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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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의 조각 [생각하는 사람]은
단테의 [신곡]을 주제로 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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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 탄 채 기도하는 '드라이브 뜨루'가 인기를 끌고 있다.
애리조너-리퍼블릭(Arizona Republic)의 보도에 따르면 쌘탠밸리의 헌트하이웨이 곁은
행상인들이 거북이나 매트리스, 타말리(멕시코 요리) 등을 널어놓고 파는 곳. 그러나 아울러 복음도 '팔리고' 있다.
자동차들을 무조건 환영하는 매튜 코델 씨(38)의 노변 정류소는 '차에 탄 채 기도하세요. 진입로
오픈'이라고 표시돼 있다. 동부행 고속도로와 게리 로드의 교차점인 이곳은 최근 몇 주 계속 개설돼 눈에 익은 명소. 아침 출근
길을 겨냥, 매주 월·수·금요일 새벽6시부터 오전10시까지 개방된다. 코델은 울타리가 둘린 데다 하얀 천막이 처진 빈 주차공간에서 다섯살 짜리 치화화 애견 '스카이'를 데리고 '기도 고객'들을 기다린다. 운전자들은 다양한 기도제목을 갖고 나타나 여기 들른다. 가벼운 질병 치유로부터 첫 학기 개강한 자녀들의 교내 안전 등등. 코델은 접근하여 열린 차창으로 가벼운 대화와 합심기도를 하고 나면 차는 부르릉 떠난다.
"사람들은 자기네 기도가 응답될 수 있음을 알지요. 정말 복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여성은 급성 흉통을 느낀 나머지 병원 응급실로 가다가 급히 들렀다. 그러나 코델이 함께 기도하는
동안 통증이 가라앉자 병원길 대신 귀가했다. 뇌에 중상을 입은 한 남성은 함께 기도하면서 금방 호전됐다.
코델은 목회자의 도움을 요청하지도 목회자를 자처하지도 않는다. 그는 올해 봄까지도 바디샵(차체정비소)을
운영하다 하나님께 부름 받았지만 8월 중순까지는 계획을 미루면서 미적미적하다 결국 순종하여 노변 선교사가 됐다.
과일행상인을 보고 노변기도사역 아이디어가 떠오른 데다 교회 담임목사님이 시작한 '안온지대' 벗어나기
시리즈 설교를 듣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기독교음악이 코델의 차안 스피커에서 쾅쾅 울려도 대다수 운전자들은 이곳을 그냥 스쳐 지나간다. 첫
방문자들이 나타나는 시각은 대체로 평균 아침7시.
최근 어느 아침엔 세르기오 알바레즈씨(32)가 검정색 닛산 센트라를 타고 나타났다. 그의 아내가 첫 딸
'브리애나 이사벨라'를 낳은지 2시간 채 안된 시각. 그의 손목엔 병원방문 밴드를 낀 채 모녀를 위한 축복을 부탁했다.
코델은 두 손으로 알바레즈의 한 손을 꼭 쥐고 눈을 감았다. "하나님 아버지, 얼마나 놀라운
기적인지요! 생명의 기적이군요. 주님, 이 아기를 축복합니다. 건강한 삶 속에 주님을 알게 해주세요. 온 가족에게 용기와 힘,
주님을 아는 지식을 주셔서 주님의 길로 양육하게 하소서."
기도가 끝나자 알바레즈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한 주 후엔 모녀를 데리고 오겠다고 약속했다.
코델의 비전은 신자들이 그처럼 딴 곳에도 기도스탠드를 만드는 것. 실제로 인근 챈들러의 한 교회는 최근
한날 저녁 그를 흉내낸 기도스탠드를 열기도 했다. 코델의 아내가 "혹시 카피해서 맘 상하냐?"고 웃으며 짐짓 묻자 "하이고, 천만에! 그게 바로 내가 바라던 바요. 이건 내 아이디어가 아니라 하나님 아이디어야."라고 대답했다.
Motorists Being Attracted to Drive-Thru Prayer Stand in Arizona
38-year-old Matthew Cordell has recently been setting up a roadside stop in Pinal, Florida, for motorists, with his hand-painted fiberboard which reads: "Prayer Stand, Drive Thru Open." He gets many prayer requests from those that pay him a visit.
"They pull in, I go up to the window, we can pray and they pull out, and people know they can have their needs met. It seems to be a real blessing," he said. A lady with chest pains going to the hospital went home after praying made her feel better.
Cordell, a former body-shop worker, said he felt inspired by a roadside fruit vendor and felt a spiritual calling. He said, "When it's something God wants you to do, you can't get away from it." |
모든 무슬림( 이슬람교 신자 )은 일생에 한 번 이상 메카(사우디 아라비아)로 순례할 것이 의무로 되어있다.
메카의 순례를 마친 자를 '하지'라고 부르며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는다.
무슬림 (이슬람교 신자 ) 이외의 사람은 메카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비무슬림 ( 신자 아닌 사람 ) 으로서 메카 내의 의식을 본 사람은 극히 적다.
13 억이 넘는 전세계의 무슬림들이 매일 5 번 메카의 카바 신전을 향해 예배를 드린다. 이 기도의 방향을 '기블라(qiblah)'라고 한다.카바 신전이 있는 아라비아 반도의 메카에는 매년 약 200 만 ~ 300 만 명의 순례자가 모여든다. 순례자들은 메카의 중심인 카바 신전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7 번 도는 의식을 치르며, 가능하다면 신전의 성묘에 입을 맞추거나 손으로 만지곤 한다.
속계(俗界) 에서 입는 옷을 벗어 버리고 무늬 없는 순례복을 입는다. 수렵, 손발톱을 자르는 일, 향수를 바르는 일, 모자를 쓰는 것, 성교 따위는 금지되고 이와 같은 터부 상태는 순례 의식이 모두 끝날 때 까지 지킨다.
성지 에서도 핵심은 카바 신전,직육면체 모양 신전 높이는 약 15m 카바(알라의 집)는 15 미터 높이의 카바 위에는 검은 헝겁이 덮여있으며 그 위에는 코란의 경구들이 금실로 수놓여 있다. 카바 주위를 7번 도는 행위를 예배 의식 중 하나로 한다. 동쪽 구석, 지면에서 1.5m 정도 높은 곳에 흑석(黑石)이 끼워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브라힘(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스마일이 알라의 명을 받들어 창건한 것이라고 한다. 흑석이 있는 모서리의 반대쪽에 잠잠 이라고 하는 성천(聖泉 성스러운 샘)이 있다.
카바에서 '검은 돌'을 만지는 행사, 미나에서 '사탄' 모양을 한 비석에 돌을 던지는 행사
카바 신전에는 검은 돌이 있다. 이것은 석신으로서의 알라를 상징하고 있다. 이슬람은 아브라함이 카바 신전을 세웠다고 주장한다. 노아 홍수 이후 알라는 아브라함을 부르게 되는데, 알라가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스마엘을 바치도록 명령했을 때 아브라함은 알라의 명령에 순종하여 아들 이스마엘을 제물로 바쳤다고 한다. 알라는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풀어 이스마엘을 다시 살렸다. 그 후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은 그 검은 돌이 있는 자리에 신전을 건립했는데 바로 카바 신전이라는 것이다.
순례자는 카바를 7 번 도는 사이(Sai)를 행한다. 이후 잠잠의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하즈가 진행되는 동안 순례자들은 미나라는 작은 마을로 향해 돌기둥으로 상징화된 악마(사탄) 를 돌로 쫓는 의식을 행한 뒤, 무함마드가 최후의 설교를 한 아라파의 언덕으로 올라가 예배를 드린다.
위키피디아로 몰려드는 인간의 홍수를 보세요. 누구인가 용케 촬영 했습니다. 촬영 금지는 물론 관광 비자를 안 내주는 나라. 돌에 맞아 죽지 않기 다행입니다.
당신은 이 사진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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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의 저자 스티브 도나휴가 최근 한국을 방문했다. 언론에 보도된 그의 강연내용과 그의 책을 인용하면서 글을 쓰기로 한다.
이렇게 가정해보자.
당신은 갓 스무 살이 된 청년이다. 아니, 굳이 나이는 상관없겠다. 그냥 지금, 당신의 나이다. 어느 겨울,
파리에 머물고 있는데 그 매서운 추위에 갑자기 질렸다. 따사로운 햇살이 막막 당긴다. 이 겨울만은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서아프리카 해변에서 보내리라 다짐한다. 친구와 함께 떠난다. 돈이 없어 약간의 돈을 주고
다른 사람의 차를 빌려 탄다. 따뜻한 남쪽 해변으로 간다는 목표 외에는 없다. 계획? 일정? 그런 건 다른
나라 얘기다. 그리고 남쪽으로 남쪽으로 향하다 보니, 지구에서 가장 큰, 면적은 미국과 맞먹는 사하라 사막을
관통하고 있다. 중간 정도나 왔을까.
진짜 얘기는 좋아,
이제부터. 그 사하라. 차량도 없다. 둘만 덩그러니 사막에 있다. 있는 건, 오직 짐과 잠을 청할 수 있는
캠프. 태양이 잦아들고 밤은 뱀처럼 다가온다. 그런데 뭔가가 다가온다. 주의 깊게 볼 수밖에 없다. 아니,
이 사막 한가운데, 인적이라니. 옷과 움직임을 보니 유목민 같다. 어느 책에선가, 여기 유목민들은
10인치가량의 단검을 들고 다닌다는 것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그 검이 사람의 배를 족히 뚫을 수 있다는
사실도.
그런 얘기가 떠오르는
마당에, 그 유목민이 오더니, 소금을 달란다. 있는 대로 다 준다. 그랬더니, 간다. 안도하는 한편으로 또
오지 않을까, 걱정된다. 친구에게도 얘기한다. 아니나 다를까, 10분 후,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헉. 다시
등장한 그 유목민. 이번에도 손을 내밀더니 후추를 원한다. 굉장히 공손하지만, 그 와중에 탐색하듯 우리를
훑는다. 그 시선에 온몸이 오그라든다. 아마 우리가 또 무엇을 갖고 있는지 살펴본 건 아녔을까. 세 번째로
온다면, 그때는 아마도….
다시 재깍재깍. 30분이
흐른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데, 기분이 여전히 찝찝하다. 눈을 들었는데, 헉. 다시 그 사람이다.
캠프사이트 바깥에서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 언제 왔는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는 아무 말이 없다. 손가락으로
우리를 가리키더니, 따라오란다. 뭐냐. 이 시추에이션. 겁난다. 따라갔더니 그 원주민들 모두 칼을 품고
있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첩첩산중이다. 당신, 어떻게 하겠는가. 따라갈 것이냐, 도망갈 것이냐, 아니면 이런
상황에서 어떤 확률이 있는지 검색을 해보겠는가. 아, 햄릿의 고민이 이랬을까.
북 치는 강연자, 스티브 도나휴의 등장 느닷없이, 예정에 없던 아프리카 드럼을 치면서 강연장의 시선을 모은 그는, “고맙습니다. 저는 한국말을 배우고 있는 중이에요. 한국말 좋아요.”라고 인사를 건네며 우리들의 사막으로 들어왔다.
그가 한국에 온 이유는
3가지. 첫째, 한국에서 책이 성공한 데 대해 감사하고자. 둘째, 한국에서 책이 성공하기 전까지 알지 못했던
한국의 문화 등을 배우기 위해. 셋째, 사람들과 만나서 많은 것을 배우고 상호 어떤 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 그리고선 다시 드럼을 치면서 박수를 유도한다. 앞서 언급한 사하라 사막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사막을 어떻게 건너는 것이 좋을지 얘기하고 싶단다. ‘아니, 한국에 무슨 사막이 있다고 그래? 미친 것 아냐?’라고 갸우뚱하진 마시라. 그가 말하는 사막을 건너는 건 이런 거다.
“목표가 애매모호하거나 또는 최종적인 결과라기보다는 일종의 과정처럼 느껴진다면, 그것은 바로 사막을 건너고 있는 것이다.”(p.17)
더 구체적으로는 이런 것.
“인생과 변화의 사막에는
항상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이 산들은 그때그때 우리가 해내야 하는 과제나 프로젝트, 그리고 구체적인 목표가
있는 꿈, 우리가 열망하고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최종 결과물들이다. 직장을 옮기는 것은 산이지만 직업을
완전히 바꾸는 것은 사막이다. 아이를 낳는 것은 산이다. 특히 여성의 입장에서는.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것은 사막이다. 꿈에 그러던 집을 짓는 것은 사막이다. 암을 이겨내는 것은 에베레스트 산의 정상을 오르는
것과 같다. 하지만, 만성 질환이나 불치병을 안고 살아가는 것은 사하라 사막을 건너는 것과
같다.”(p.29) 그러니까 인생은 앞서 언급한 상황과 같다 이거다. 정답도 없고, 도망가든 따라가든, 어떻게 해야 할지 당최 알 수 없는 상황. 인생에 미리 짜놓은 계획도 없고, 지도도 없을 때, 아니 짜놓고 지도가 있다손, 그대로 간다는 보장도 없는 상황. 자, 준비됐나요? 사막을 건널 준비!
나침반, 우리가 의존할 수 있는 것 도나휴는 묻는다.
“아까 그 상황에서
지도에 의존하면 알 수 있을까요? 지도가 있어도 도움이 안 돼요. (사막은) 지형 자체도 계속 움직이고요.
누군가가, ‘323 모래 둔덕에서 돌아가세요.’라고 알려준들 그걸 따라갈 수 있을까요? 인생이 바로 이런
상황과 비슷해요.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하죠. 지금만 봐도 경제 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많은 변화가
있어요. 그러나 어느 누구도 경제 위기라는 사막을 건널 수 있는 해법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그렇다. ‘인생은 사막’이라는 비유, 살다 보니 충분히 동의할 만하지 않은가. 그리고 인생의 지도가 있다손, 그 지도대로 따라갈 수 있을 거라고 누가 장담하나.
얼마 전, 프랑스 배우이자 아마도 세상 모든 감독의 뮤즈인
줄리엣 비노쉬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뭐가 일어날지 모른다. 촬영에 들어가면 그 장면은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다.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게 바로 인생 아닌가. 삶의 순간들이 바로 그러하다.”
도나휴는 그래서 지도 아닌, ‘나침반’을 권한다. 우리가
의지해야 하고, 각자의 내부에 존재하고 있다는 나침반. “중요한 것은
방향 감각이다. 먼저 자신을 안내해 줄 내부의 나침반부터 찾아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분명하게 보일 때까지 목표나 도착지는 염두에 두지 않아야 할 것이다.”(p.44)
도나휴가 전하는 나침반을 따라가야 하는 세 가지 이유. 그리고 경제 위기가 때론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자신의 경험으로 설명했다.
“북미에서 나의 생업은
강의다. 2001~2002년 북미 지역의 경기가 크게 후퇴했다. 한국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때 내 할
일도 팍 줄었다. 그냥 손 놓고 놀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럴 때 내 안의 나침반을 따라 가보니, ‘그동안은
청중과 내 얘기를 공유했는데 책을 통해서도 공유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책을 냈다. 여기
온 여러분들도 책을 읽게 된 셈이고. 아마 지도만 따라갔다면, 강의, 강의, 강의였을 것이다. 그러면 책도
쓰지 못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나침반은 만사형통일까.
“나침반을 따라가면 목적지를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가다 보면 지도상의 목적지보다 나은 경우가 많다. 사실 나침반을 따르는 건 굉장히 어렵다. 감도 잡기 어렵고.”
그는 책에서도 이렇게 설명한다.
“지도보다
나침반을 따라가는 것이 훨씬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올바른 방향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
단순히 목표나 목적지가 아니라, 살아가는 방법 또는 존재하는 방법을 담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인생의 사막을
건너서 따라가는 방향은 깊은 의미가 있고 명료해야 한다.”(p.40)
내 안의 나침반을 찾는 방법 내 안에 나침반이 있다는데, 어디서 찾을 것인가. 도나휴는 태어날 때부터 각자가 갖고 태어났단다. 존재 자체를 정의하는 나침반이 있단다. 그러면서 자신 안에 있는 나침반 하나를 끄집어낸다.
“내 안의 나침반 하나는
(남과) 달라야 한다는 나침반이다. 오늘 보여준 드럼이 바로 그런 것인데, 어느 누구도 강의를 하면서 드럼을
연주하지 않는다. (웃음) 나는 항상 독특하고 별다른 존재였다. 어머니한테 어릴 때를 물었더니 이런 사진을
보여줬다.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그의 어릴 적 포즈와 표정이 담긴 사진을 보여주며) 4살 때인데, 나는 절대
평범한 사진을 못 찍는다. (운전면허증과 같은 공식적인 사진 등에서도 그는 별의별 표정을 지닌 사진으로
승부하고 있다.) 이것이 내가 따르고 있는 나침반이다. 물론 이것을 따라 하라는 것은 아니다. (웃음) 모든
사람은 각자의 나침반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자신을 먼저 아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 아니겠나. 내 마음의 움직임, 혹은 소리를 따르는 것. 나침반은 내가 나를 아는 일에서 제대로 작동을 시작하지 않을까.
“사람은 각자 살아가는
방식이 있고, 그것은 스타일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이것이 나침반을 찾는 첫 번째 방법이다.” 두 번째는, 살면서 조그마한 것이라도 성공한 일이 있으면 심사숙고를 하고 파악해 보란다. 그 성공의 원인을 분석하면 자신의 특징, 재능이나 성공 요소를 파악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재능을
타고난다. 작은 성공이라도 그것을 생각하면 또 다른 성공으로 갈 수 있다.”
세 번째는, 길을 잃어라.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어렵고 아무것도
몰라서 지도가 도움이 안 될 때가 바로 나침반을 찾을 수 있는 상황이란다. 가령, 아이를 낳고 나면, 지도를
따라갈 수 없는 상황인데, 나침반을 보면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낫단다. 자신의 경험으로는, 어릴 때는 아이들
옆에 있는 것이 나침반이라면, 크면 아이들과 최대한 접촉을 피하라는 쪽으로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이
바뀐단다. 그리고선, 2년 전, 나침반을 찾았던 경험담을 얘기한다. 스무 살이 된 자신의 딸이 여행을 떠났다. 그의 생일 즈음, 호주를 여행 중인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생일 축하까지는 좋았는데, 갑자기 남자 친구와 호주에서 결혼을 하겠다는 선전포고(!)가 날아 들어왔다. 두 사람이 사귄 기간은 고작(!) 5개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란다. 호주로 가서 딸을 당장 데려오는 것도 생각했지만, 당장 대책이 안 섰다.
“딸의 남자 친구인 댄은
좋은 녀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서핑하는 녀석이었다. (웃음) 그때 든 생각이 ‘나침반이 필요해’였다.” 결국 그는 찬찬히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좇은 결과, 그들이 결혼하는 그곳에 가기로 했다. 동화처럼 아름다운 결혼식이 있었고, 한국에 오기 2주 전, 호주를 들렀는데, 손자를 안아보기까지 했다.
“결혼식을 가야겠다고 결정하고 갔더니, 예상하지 못한 일이 많이 벌어졌다. 결혼식 직후 온 가족이 식사를 하게 됐다. 그것은 11년 만이었다. 딸 애 결혼식을 통해 전 가족이 모이게 된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좋은 결과들과 맞이하게 된 거다.”
또 하나. 책에는 없는 내용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사하라 사막을
함께 건넌 친구 탤리스는 배 안에서 만난 친구다. 당시 도나휴의 애초 계획(지도)은 유럽에 가서 1년 동안
배낭여행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배 안에서 탤리스와 친해졌고, 1주일을 지낸 어느 날, 잠에서 깼더니 배
안에 아무도 없었단다. 탤리스도 없고. 배는 프랑스 파리에 도착한 상태. 원래는 그리스나 이탈리아를 가는
것이 목표였는데, 어쩌다 프랑스에 머물게 됐다. 일주일을 파리에서 보내고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그런데, 중간에 약간 시간이 남아 한 관광지를 둘러볼 수 있는 지하철역에서 내릴까 말까 망설였단다. 나갔다 다시 오면 지하철 요금이 더 들어간다는 생각과 구경하고 가자는 생각 사이에서 망설이던 즈음, 해당 역에서 문이 열리는데, 갑자기 그냥 박차고 나갔다. 그때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그곳에서 그의 이름이 불렸다. 탤리스였다.
“아마 지하철
문을 박차고 나가지 않았다면 사하라 사막을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 순간이 내 인생을 바꾼 것이다. 책에는
이 얘기를 넣지 않았지만, 아주 작은 사건 하나가 우리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그 순간이 얼마나 큰 위력이
있는지 알려주기 위한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준비되지 않은, 예고 없이 닥치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마음가짐과도 통할 수도 있겠다.
“캠프파이어 곁을
떠나려는 우리에게 필요한 신조는 ‘Semper Non Paratus(항상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지내기)’이다. (…) 항상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있다는 것이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무책임하거나, 알면서도
위험한 상황으로 치닫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우리를 책임감에서 완전히 해방시켜 줄 새 시대
슬로건이 아니다. 그것은 익숙한 캠프파이어에서 벗어나서 인생이라고 하는 사막의 불확실성을 좀더 쉽게, 덜
두려운 마음으로 그리고 대담하게 맞는 마음가짐이다.”(pp.162~163)
안정된 캠프에서 벗어나 세상과 만나기
아까 언급된 사막으로 돌아가자. 원주민의 따라오라는 수신호에
도나휴는 따라가고 싶지 않았다. 그나마 불 옆(캠프파이어)에 있으면 안전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탤리스가
따라가고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섰다. 모래 언덕에는 엄청나게 많은 별들이 쏟아지고 있었고, 앞서 가던 유목민이
어느 한 곳에서 미끄러져 내려갔다. 따라갔더니, 그곳엔 8명의 유목민이 더 있었고 1명은 큰 칼까지 차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제 끝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두려워서 온몸은 딱딱 굳어졌다. 어찌해야 할지 머리를 굴리는데 단서는 후각을 통해 찾아왔단다. 요리 냄새가 아주 끝내줬단다.
“큰 칼을 든 사람은 바비큐를 먹기 좋게 자르고 있었다. 알고 보니, 소금과 후추를 줘서 우리를 초대한 것이었다. 같이 먹자고. 결국, 그렇게 따라가서 수많은 별들 밑에서 유목민들과 함께 축제와 같은 밤을 보낼 수 있었다.”
그는 당시 그의 결정에 흡족해하고 있었다. 원주민을 따라 캠프를 벗어난 것을.
“모든 사람들에겐 이런 캠프가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런 캠프에서 떨어져 봐야 한다. 내 본거지는 북미다. 한국에 온 것은 캠프에서 떨어진 것이다. 오늘 밤이 지나면 이곳도 캠프파이어의 한 곳으로 목록에 오르겠지만, 안락한 일상에서 한 걸음 떨어져 나갈 때 예기치 못한 상황이 올 것이다. 당시 그 유목민들은 (축제를 함께 보낸 뒤) 길까지 안내해줬다. 그러면서 트럭을 얻어 타고 사하라를 건넜다. 여러분이 가고자 하는 곳의 운송 수단이 상상과 다를 수 있지만 방향이 같다면 타고 가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엔 해변에 도착했다. 나침반을 따르면 목적지를 모른다고 했지만, 멋진 곳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것.
“우리의 머리 위에서부터 저쪽 하늘 끝까지 수없이 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습기나 공해, 또는 도심의
불빛에 오염되지 않은 별이 빛나는 하늘이 도시 생활의 안락함과 캠프파이어를 뒤로 할 용기가 있는 사람을 위해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p.149) |
필리핀은 지금 노바디(Nobody) 열풍
김관형 선교사의 필리핀 이야기
한국의 드라마들이 필리핀을 휩쓴 지 오래되었다. 겨울연가, 가을동화, 주몽, 대장금, 내 이름은 김삼순 그리고 쩐의 전쟁 등이 재방(再放), 삼방(三放)을 하며 대단한 인기몰이를 했다. 사람들은 일도 잊은 채 TV 앞에서 웃고, 울며 코리안 드라마에 빠져버린다. 실은 필자 같은 사람은 드라마의 제목만 알 뿐이지 본 적은 없다. 그래서 필리핀 사람들이 자기들이 본 내용을 가지고 말하거나 설교 예화로 쓸 때는 ‘그런 이야기가 있구나.’ 하고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한편, 필리핀의 한 새댁은 ‘주몽’이 한창 인기를 끌 때 연애에 빠져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아들 이름을 ‘주몽’이라고
짓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원더 걸스’의 ‘노바디’가 필리핀을 강타하고 있다. 대학축제에서 장기자랑을 하면 60% 정도는 ‘노바디’를 들고 나온단다. 라디오 방송들은 종일 수십 차례 ‘노바디’를 내 보낸다. 그래서 백화점에서든, 학교에서든 그리고 군부대서든 쉽게 '노바디'를 들을 수 있다. 어느 교도소에선 재소자들이 ‘노바디’를 그대로 흉내 내어 유튜브에 실어 세계적인 화제가 되게 했다.
필리핀의 교도소들은 협소한 반면에 자유로운 면이 있다. 그래서 운동부족을 채우기 위해서 교도관들과 재소자들이 어울려 아침마다 에어로빅을 한다. 그것이 운동일 뿐 아니라 수감생활을 슬기롭게 이겨내는 방법이기 때문에 때로는 교도소 소장도 참가하여 독려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도 하는데 그들은 아침마다 '노바디'로 행복(?)하다.
그런데 얼마 전 '노바디'로 불행한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필리핀 청년들이 노바디를 모르는 청년을 가격해서 숨지게 했다.
그것이 사실인지는 모르나 사실이라면 아마도 취중에 그랬을 것이고, 만인이 다 아는 노바디를 모른다고 하니까 오기 부리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필리핀에선 노바디를 모르면 죽는다.’라는 말이 생겨났다. 70년대 초, 당시에 활동하던 라나에로스포라는 혼성 듀엣이 있었다. 그들은 ‘사랑해 (당신을)’라는 노래를 불러 드러내놓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직 자연스럽지 않았던 한국사회에 ‘사랑해’라는 말을 쉽게 하도록 만들어주었다. 그 노래가 필리핀에 상륙하여 번역되지도 않은 채 한국어 그대로 지금 노바디처럼 불려졌다.
그래서 지금도 한국어로 그 노래를 부르는 필리핀 사람들이 있다. 그 때 쯤 한국에선 필리핀 가수 Freddie Aguila가 불러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Anak(아들)’이라는 노래가 대학가에서 유행하기도 했다.
아무튼 ‘사랑해 당신을’을 한국어로 불렀던 사람들의 딸 또는 손녀들이 지금은 한국어로 ‘노바디’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필리핀은 우리와 문화교류의 동반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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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黑)마늘의 놀라운 약리(藥理)효과
(1) 흑(黑)마늘이란 생(生)마늘을 껍질 채로 고온다습의 상태로 특수한 방법으로 15∼20일 동안 발효(醱酵). 숙성(熟成). 시킨 식품(食品)이며. 이렇게 만든 마늘의 껍질을 벗기면 새까만검은 마늘이 나온다. 원래 하-얀 마늘 알이 새까맣게 되는 것은 장기간의 발효와 숙성으로 생(生)마늘과 달리 독특한 자극취(刺戟臭)가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식욕을 일으키는 향기를 내기도 한다.
(2) 최근에 일본에서 개발되어 한국에서도 다량 수입 애용하고 있는 흑(黑)마늘을 가정에서 간편하게 만들어 복용할 수 있는 방법과 그 약리(藥理)효과를 아래와 같이 제시한다.
(3) 약리(藥理) 효과
(가) 흑 마늘에는 생(生)마늘 보다 "SOD"(抗 酸化力)가 무려 10배나 많으며. (나) "폴리페놀" 도 약 10배 이상을 함유하고 있고. (다) 생마늘에서는 볼 수 없든 새로운 특효성분인 유황(硫黃)화합물(化合物)의 일종인 "S-아릴 시스테인"성분이 생기는 이점도 있으며. (라) S-아릴시스테인" 성분에는 만병과 노화의 중대 원인이라는 활성산소를 제거. 혈액을 정화 하여 동맥경화의 진행을 강력하게 억제하는 작용을 한다. (마) 생(生)마늘에는 독특한 강한 자극성(刺戟性)과 냄새(臭氣)가 있어 위장에 자극성이 있었으나 흑(黑)마늘은 발효. 숙성 과정을 거치면서 약리 효과는 생마늘 보다는 거의 10배 이상이며. 자극성과 마늘 특유한 냄새도 거의 없어 마늘을 기피하는 사람도 거부감과 부담감 없이 먹고 건강을 증진하고 각종 성인병의 개선 및 치유에 크게 기여(寄與)한다.
(4) 흑마늘의 효능
1. 고혈압예방 2. 당뇨병치료 3. 노화예방 4. 정력강화 5. 피로회복 6. 신경안정,진정효과 7. 소화촉진,위장기능 강화 8. 장 운동의 활성화 9. 간 기능회복 10. 신경통 완화 11. 알레르기 억제 12. 해독작용 13. 살균,항균작용 14. 면역력 강화! 15. 비만예방 등 피부질환보다는 순환기질병계통에 탁월한 식품 이라고 합니다.
(5) 흑마늘 만들기
흑 마늘을 제대로 발효. 숙성. 할려고 하면 상당한 복잡한 시설과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여기 본란(本欄) 에서는 각 가정에서 손쉽고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가) 깨끗한 통마늘을 보온 밥통에 넣고 보온 상태로 9일동안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나) 9일동안 보온유지하면 마늘 특유에 향이 무지 독합니다. 필히 베란다등에 두고 하셔야 될듯합니다.
(다) 9일후 뚜껑을 열어보면 이렇게 변합니다.
(라)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서 2주정도 숙성 합니다.
(마) 까맣게 변해있는 마늘이 신기 합니다.
주의사항
1. 압력밥솥 사용하실 때 압력으로 돌리시면 안되구요. 그냥 보온 상태로 8일 ~ 10일 정도 두시면 흑마늘 완성 됩니다. 중간에 절대 열어 보시면 안됩니다. 끝까지 참고 기다리세요 2. 완성된 흑마늘 상온에 15일 정도 말리신 후 드셔야 합니다. 밥솥에서 꺼내신 후 드시면 독성이 남아 있기 때문에 속이 쓰릴 수 있습니다.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 진 곳에서 15일 정도 건조 후 드시면 가장 좋습니다 잘 건조된 상태에서는 무독성입니다. 3. 흑마늘 효능은 일반 마늘에 10배 이상 입니다. 어린이 성장발육에서부터 온갖 질병들에 매우 좋습니다. 냄새가 없기 때문에 어린이들도 쉽게 먹을 수 있습니다. 4. 하루 섭취량은 어린이 3-4알,,,어른 5알 정도 매일 꾸준히 드시면 산성화된 우리 몸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반응은 다르겠지만 최소 3일 정도 드시면! 몸으로 그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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