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5, 2009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 김동규

 

 

눈을 뜨기 힘든 가을 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 좋아

휴일 아침이면 나를 깨운 전화

오늘은 어디서 무얼 할까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가끔 두려워져 지난 밤 꿈처럼

사라질까 기도해

매일 너를 보고 너의 손을 잡고

내 곁에 있는 너를 확인해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걸

널 만난 세상 나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걸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백 가지를 물어도 한가지 답

백문일답

대학생 여름 수련회 때마다
수 많은 청년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고백과 질문

이 나라를 변화시킬 분은 누구십니까?
예수 그리스도...

한국이 통일되기를 원하시는 분은 누구십니까?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의 해결자이신 분은 누구십니까?
예수 그리스도...

누가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1925년 3월 전남 신안군에서 태어난 김준곤 목사는

무안중학교, 대한예수교장로회 신학교와

조선대 문학과를 졸업하고

1955년 광주 숭일중고등학교 교장,

1956년 1년 동안 애양원 나환자 순성신학교 교수를 지냈다.

1958년 미국 풀러신학교에서 연구수학을 한 후

귀국하여 서울 정동제일교회에서

CCC(한국대학생선교회)를 설립했다.

  1966년 조선호텔에서 정일권 국무총리와

삼부 요인이 참석한 첫 국가조찬기도회를 열었다.

그가 창설한 국가조찬기도회는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으며

1972년 춘천 성시화운동을 한국 최초로 시작했다.

 

저서로 ‘성서조감’ ‘예수칼럼’ '순론'이 있다.

 

2009년9월29일 84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민족 복음화의 꿈                   
김준곤 목사

어머니처럼 하나밖에 없는 내 조국
어디를 찔러도 내 몸같이 아픈 조국

이 민족 마을마다, 가정마다, 교회마다 사회의 구석구석
금수강산 자연환경에도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시고
뜻이 하늘에서처럼 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이 땅에 태어나는 어린이마다
어머니의 신앙의 탯줄,

기도의 젖줄

말씀의 핏줄에서 자라게 하시고

집집마다 이 집의 주인은 예수님이라고 고백하는 민족
기업주들은 이 회사의 사장은 예수님이고

나는 관리인이라고 고백하는 민족

두메마을 우물가의 여인들의 입에서도
공장의 직공들,  바다의 선원들의 입에서도
찬송이 터져 나오게 하시고

각급 학교 교실에서 성경이 필수과목처럼 배워지고
국회나 각료회의가 모일 때에도 주의 뜻이 먼저 물어지고

국제시장에서 한국제 물건들은 한국인의 신앙과 양심이
으레 보증수표처럼 믿어지는 민족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고 예수그리스도를 주로 삼으며
신구약 성경을 신앙과 행위의 표준으로 삼는 민족
민족의식과 예수의식이 하나 된  지상 최초의 민족

그리하여 수십만의 젊은이들이
예수님의 꿈을 꾸고 인류구원의 환상을 보며
한 손에는 복음을 다른 한 손에는 사랑을 들고
지구촌 구석구석을 누비는 거룩한 민족이 되게 하옵소서

 

 

 

 

 

 

 

 

84세에 세상을 떠나신

김준곤 목사님을 추모하며..

 

그의 80세 생일에 인터뷰한 내용을 소개합니다.

 

 

 

 

인생 80에 새로운 길을 떠난다. ‘청춘은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라고 했던가. 80 성상이 흐르면서 육신은 노쇠해졌지만 마음은 여전히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와 같이 설렌다. 사랑하기에 너무나 아름다웠던 지난 날들. 주님이 함께 한 지난 날이 가슴 시리도록 아련하다.

 

한국대학생선교회(CCC) 명예총재 김준곤 목사는 올해 80번째 설을 맞는다. 매년 설을 맞을 때마다 김 목사는 기도한다.

 

“우리 민족을 예수 믿는 민족이 되게 해주세요.”

 

8세 때 복음을 접하고 18세 때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이후 한번도 빼놓지 않았던 기도가 바로 ‘예수 한국’이었다. 한국 기독교의 절정기를 상징했던 엑스플러74 대회와 80민족복음화대성회에서 연 인원 수백만명의 청중에게 김 목사는 ‘예수 한국,세계 선교’를 외쳤다. 질풍노도와 같았던 청년기와 세계를 향해 뛰었던 중장년기를 지나 이제 인생의 종점에 다다랐지만 ‘예수 한국’을 위한 간절한 기도는 멈추지 않는다.

 

‘복음의 막노동꾼’으로 산 지난 시절을 돌아보며 김 목사는 말한다.

 

“예수를 위한 삶을 사세요. 그것이 위대한 인생입니다. ”남은 삶 동안 자신이 할 일은 지금까지처럼 복음의 막노동꾼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라고 노 목회자는 말한다. 김 목사는 설을 맞아 귀향하는 모든 크리스천이 이웃을 향한 사랑을 실천할 것을 당부했다.

 

“교회는 이제 스스로 복을 받는 것을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에게 복을 전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사랑은 실천입니다. 목회자도 사랑에 대한 설교를 그만하고 직접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고향에 복음을 가지고 가세요. 이웃에게 사랑의 복음을 전하세요. 이번 설에 사랑하는 고향에 복음의 나무를 심으세요.”

 

김 목사는 스스로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어떤 질문에도 대답할 수 있다고 한다. 100가지 질문을 해도 거리낌 없이 대답할 수 있단다. 그 대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예수 그리스도!”

 

“자녀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나요?”

“예수 그리스도!”

 

“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

 

‘백문일답’(百問一答)의 삶이 바로 김 목사의 삶이었다. 그는 이 땅의 모든 크리스천이 ‘백문일답’의 삶을 살것을 당부했다.

 

“젊은 시절,길을 찾기 위해 미친 듯 책을 읽었어요. 모든 것을 접촉해 보았어요. 고민했어요. 그러나 어떤 것을 해도 마음은 공허했어요. 헛되고 헛된 인생이에요. 모든 것이 상대적 진리라고 깨닫는 순간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분이 인생의 길이요,진리요,생명이었어요.”

 

예수 그리스도를 빼면 자신의 80 인생은 공간에 불과하다고 말할 정도로 김 목사는 예수와 함께 지난 시절을 살았다. 그가 평생 붙든 것은 예수와 민족, 세계였다.

 

일제시대와 6・25전쟁,독재와 민주화 운동,번영과 침체 등 우리 역사의 증인으로 살아오면서 김 목사는 철저하게 ‘민족이 살 길은 예수를 믿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슬픈 우리 역사에서 누구보다도 아픈 가족사를 지녔던 김 목사는 가슴 깊이 사무친 한을 사랑으로 승화시켰다. 세상을 저주하기보다는 예수 사랑으로 이 땅에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는 데 인생을 걸었다.

 

김 목사는 외국에서 조국을 비난하는 한인 크리스천들을 만나면 “잘나도 내 조국,못나도 내 조국이고 사랑하는 조국이요”라고 말했다. 예수 의식과 민족 의식으로 한국인들의 의식이 개조되어야 이 세상이 바뀐다고 믿었다.

 

한국과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한 김 목사는 1958년에 한국대학생선교회를 만들어 이 땅에 예수 혁명을 꿈꿨다. 하나님은 김 목사에게 민족복음화의 환상을 보여줬다.

 

1962년 2월 중순 그는 서울 삼각산 움막 기도실에서 밤을 새도록 기도했다.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는데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슬픈 이 민족을 생각하며 기도하니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영하 20도의 강추위 속에서 김 목사는 내의에 땀이 흥건하게 밸 정도로 간절히 기도했다. 그때 하나님은 그에게 민족복음화의 환상과 기도를 주셨다.

 

 ‘민족의 가슴마다 피 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

 

민족과 피 묻은 그리스도,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라는 가슴 뛰는 복음 격문이 그때 만들어졌다. 어머니의 몸과 같은 이 민족에게 복음을 전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하고 싶어졌다. 민족복음화를 위해서 자신의 몸을 불사르고 싶었다.

 

이후에는 앞만 보고 달렸다.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다. 수많은 청년이 자신들의 삶을 바치며 복음 막노동꾼의 삶에 동참했다. 복음은 요원의 불길처럼 전국으로 퍼져갔고 교회는 폭발적인 성장을 보였다. 구름 같은 한국 선교사들이 전 세계에 나가 피묻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데 일생을 걸었다.

 

 ‘이 땅에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는 김 목사의 염원은 상당 부분 달성됐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정체를 보이기 시작한 한국 교회의 상황과 리더십을 상실한 사회의 모습은 김 목사가 다시 한번 눈물 흘리며 일사각오의 기도를 하게 만들었다.

 

“하나님은 한국 교회를 축복하셨어요. 그래서 이 땅을 부흥시켰어요. 그러나 한국 교회는 지금 심각한 영적 비만증에 걸려 있어요. 영적 비만증에 걸린 한국 교회가 살길은 하나예요. 주어야 해요. 정말 아낌없이 퍼주어야 해요. 어리석은 부자가 되어서는 안돼요. 모든 시간과 돈과 자원을 주님을 위해 바쳐야 해요. 교회가 살 때 이 민족이 살아요.”

 

김 목사는 모든 크리스천과 교회들이 ‘킹덤(Kingdom) 의식’을 지닐 때 새로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고 강조한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이 땅에 편만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예수의 마음을 품고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이 사회에 펼쳐질 수 있도록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에 의식있는 크리스천들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김 목사의 지론이다.

 

김 목사가 주장하는 것은 ‘쌍손 선교’다. 한 손에는 복음을, 다른 한 손에는 사랑을 들고 크리스천들이 북한을 비롯해 전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하나님이 이 땅을 축복해주신다는 것이다.

 

인생 80에 김 목사는 새로움을 꿈꾼다. 한국 교회가 10만명의 선교사를 전 세계에 파송하는 꿈을 꾸고 있다. 꺼져가는 민족의 구령 열정을 다시 한번 북돋워 이 땅 방방곡곡에 예수의 나라가 건설되는 꿈을 다시 꾸고 있다.

 

김 목사는 그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의 꿈을 모든 크리스천과 함께 꾸기를 소망하고 있다. 노 목회자는 12만여명의 한국 교회 목회자들에게 한 마디 했다.

 

“주님은 바울과 베드로를 부르신 것과 같이 당신들을 지명해서 불렀습니다. 절대로 유명해질 생각을 하지 마세요. 죽어야 합니다. 주님과의 밀월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 쳐다보지 말고 주님과 함께 하는 순애보를 만드세요. 가족도 떠나고 친구와 성도도 떠납니다. 모두 떠날 때 주님은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희망이며 힘입니다. ”

 

성도들에게도 당부한다.

“예수 사랑을 실천하세요. 사랑은 나눌수록 커집니다. ‘백문일답’의 삶을 사세요. 예수를 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

 

고목나무 속에 찬란한 내면이 있다고 했던가. 비록 육신은 병들어 소멸되어가고 있지만 김 목사 내면에 흐르는 ‘예수 사랑, 민족 사랑’은 더욱 빛나고 있는 듯했다. ‘민족 복음화’에 대한 그의 기도가 큰 영적 물결이 되어 이 땅에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도래하기를 기원해본다. (국민일보 이태형 기자)

 

 

 

 

 

 

 

 

 

 

 

 

 

김준곤 목사는 평생을 대학생 선교와 민족 복음화를 위해 헌신해왔다. 그가 일궈온 삶의 사역들을 정리해 봤다.
 

민족을 가슴에 품은 ‘영원한 청년’
 

85세의 일기로 별세한 한국대학생선교회(한국CCC) 총재 김준곤 목사는 일평생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 많은 눈물의 씨앗을 뿌렸다.
 

1950년 10월 사랑하는 아내와 딸, 부친이 북한 공산군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뒤에도 그는 가족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기보다 혼란한 나라의 모습에 애통해 하며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특히 62년 2월 서울 삼각산의 민족기도원에서 영하 20도의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무릎 꿇고 기도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이 민족이 단 한 번만이라도 뿌리째 복음화를 이룰 수 있도록 눈물로 간구했다.
 

특히 고인의 삶에 있어 청년·대학생 사역은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문준경 전도사로부터 순교자의 신앙을 물려받은 김 목사는 48년 장로회신학교를 제1회로 졸업했다. 57년 미국 풀러신학교 유학 중 국제대학생선교회(CCC) 설립자인 빌 브라이트 박사를 만난 고인은 이듬해 11월 한국CCC를 창설했다.

 

그때 직접 제자 양육에 나설 것을 다짐한 김 목사는 고려대 서울대 이화여대를 중심으로 개인 전도 사역을 시작했다.

이를 통해 하용조(온누리교회) 홍정길(남서울은혜교회) 김인중(안산동산교회) 목사, 윤수길 선교사, 정정섭(기아대책 회장) 주수일(칠성섬유 회장) 박세환(예비역 육군대장) 장로 등 현재 한국교회를 이끄는 수많은 인재들을 키워냈다.
 

90년대 초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초대 이사장을 맡아 나눔과 헌신의 삶을 살아온 고인은 각막을 기증하며 마지막 길을 떠났다.
 

2005년에도 민족 복음화를 위한 구체적인 전략서를 펴내면서 그는 “젊은이들을 훈련시켜 민족 복음화와 10만명 선교사 파송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그날까지 쓰임 받고 싶다”고 고백했다.
 

국회조찬기도회의 시작(1965년 2월 27일)

 

1964년 미국 국제기독교지도자협의회 로빈슨 총무와 하버슨 국제 CCC 이사로부터 한국에서도 국회조찬기도회를 시작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이듬해 2월 당시 김영삼 민중당 원내총무, 김종필 공화당 의장, 정일권 국무총리 등 20명의 크리스천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국회조찬기도회의 취지를 설명했다. 당시 이들의 만남은 한국의 여야 국회의원들이 복음 안에서 함께 예배를 드린 최초의 모임이었다. 이는 이듬해 3월8일 제1회 국가조찬기도회 개최로까지 이어졌다.
 

엑스플로 '74대회(1974년 8월 13~18일)
 

당시 300만 명으로 추산되는 크리스천들이 서울 여의도광장에 모여 기도했다. 5박6일 동안 철야기도를 하고, 낮에는 전도 훈련을 받았다. 당시 숙박시설이 부족해 서울 시내 5000개의 학교 교실에서 참석자들이 잠을 잤다. 이 대회는 한국교회 성장의 기폭제였다. 교회들을 무작위로 정해 주보에 실린 성도 등록 현황을 분석한 결과, 한국교회 전체적으로 33%가 성장했다.
 

한·일 목회자 전도 훈련(1985년 5월 20~24일)
 

60년대 초부터 일본 선교에 관심을 갖고 국제 CCC 설립자 빌 브라이트 박사와 함께 일본의 주요 대학을 순회하며 강연을 했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 목회자 300명씩을 초청해 서울 부암동 CCC 본부에서 전도 훈련을 실시했다. 또 개인과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자매결연을 맺어 한·일 협력 선교의 계기를 마련했다.
 

뉴 라이프 마닐라 2000(1990년 7월 6일~8월 13일)
 

필리핀 마닐라에 3000여명의 대학생 단기 선교팀을 파송했다. 이는 한국교회 최초의 단기 선교이자, 공식적으로 대학생과 평신도 단기 선교사의 시대를 열었다. 한국 CCC는 매년 10여개국에 대학생들이 여름과 겨울방학을 이용해 단기 선교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99한국교회 원단 비상구국금식기도성회(1998년 12월 30일~99년 1월 2일)
 

외환위기 이후 나라가 어려워지자 전국 331개 대학에서 한국 CCC 회원 1만2000여명이 서울 여의도 에어돔(중소기업전시관)에 모여 민족의 위기 극복과 한국교회 부흥을 위해 기도했다. 이 성회에서 대학생 등이 헌금한 1억원을 불우 이웃을 섬기는 10개 단체에 기탁했다.
 

북한 젖염소보내기운동(2000년 7월 6일)
 

전국 350여 대학에서 1만여명의 대학생들이 굶주림에 처한 북한 동포를 돕기 위한 젖염소보내기운동을 결의하고 1만342마리(32억원)를 작정했다. 이후 매년 젖염소를 보내고 있으며 2005년 4월까지 21억원이 모금되어 2000여 마리의 젖염소와 착유 설비 등을 북한에 보냈다. 2006년 5월 황해북도 봉산군 은정리에 'CCC은정 젖염소 목장'을 짓기도 했다.
 

성시화운동 세계총재로 사역(2005년 6월부터 지금까지)
 

2005년 6월 성시화 운동 총재를 맡아 지금껏 '전 교회가 전 복음을 전 시민에게 전하자'는 '3전 전략' 운동을 펼쳐왔다. 특히 100명 미만의 작은 교회들을 살리는 일에 큰 관심을 갖고 성시화 운동을 전개했다. 교회가 가진 인적 자원과 재정 자원으로 미자립 교회와 어려운 이웃을 돕자는 것이다.

"교회는 물탱크가 아닌 파이프라인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내내 강조했다. (언)
 

 

 

 

 

로댕조각 [생각하는 사람]은 단테의 [신곡]을 주제로 한
[
지옥의 문]이라는 작품 중 지옥의 문 앞에서
인간의 고뇌와 삶을 바라보는 [
시인]의 모습입니다.


 

 

사진이 안보일 때 이렇게 하십시오

 

1. 사진이 절반만 보일 때는 화면을 다시한번 여십시오.(Refresh 단추 클릭)

2. 어떤 사진 한 장이 안보이고  X 표가 보일 때는 그림위에 마우스포인터를 올리고 오른쪽 마우스를 클릭한 후 메뉴중  Show Picture 를  클릭하십시오.

 

 

 

 

 

 

 

물들고 싶은 사람

 

"같이 놀면 물든다" 하여

"무슨 물?" 하였습니다.

"……"

 

'물듦'과 '물들임'이 만나면 물들다가 물들이고

물들이다가 물들게 되는가 봅니다.

때론 개운함으로 물들고

어쩌다 찜찜함으로 물들이는 때가 있나 봅니다.

 

간혹 물들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물들고 싶은 사람'을 만나서는,

'물들고 싶은 생각'을 만나서는,

'물들고 싶은 자연'을 만나서는,

그 사람이 피운 삶의 향기에,

그 생각이 달군 삶의 보람에,

그 자연이 펼친 삶의 여백에

'눈독 들이는 것' 말입니다.

 

그러나 눕혀놓은 어둠에만 물들고

심지 없는 나섬에만 물들고

나뒹구는 허공에만 물들고…….

 

물들고, 물들고…….

 

물들기 쉬운 세상입니다.

물들이는 사람은 오간 데 없고

물든 사람만이 넘치는 세상입니다.

 

오늘은 그 누구의 행실에 생각을 세우고는

매화에 물들고,

산수유에 물들고,

오래오래 '꽃물 들고' 싶습니다.

 

그럼, 날 꽃물 들일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 사람에게 가서 살포시 '눈독'을 들이고 싶습니다.

 

― 목포 영흥고등학교 어느 국어 선생님의 글

 

 

 

 

"우리가 만든 최고의 운영체제"

Windows 7 is the best PC operating system we have ever built!
 

이 말은 오는 10월22일 전 세계에서 출시되는 `윈도7`에 대한 스티브 발머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경영자(CEO)의 자신감이다.
 

MS는 2001년 `윈도XP`를 내놓은 뒤 2007년 후속 버전인 `윈도비스타`를 출시했지만 쓰라린 실패를 경험했다. 시스템간 충돌과 느린 속도 등 사용상 문제점이 속속 노출되면서 시장에서 외면받은 것이다. 출시된 지 9년이 지난 XP가 아직도 전 세계 PC 운영체제(OS)의 절반이 넘는 62%를 차지할 정도다.
 

비스타에 대한 반성을 토대로 MS는 빠른 속도와 시스템 안정성을 최대한 강조한 윈도7을 서둘러 출시하게 됐다.

 

윈도7 특징 가운데 하나는 터치 기능이다. 이는 터치 기능이 장착된 태블릿PC 보급화를 이끌며 LCD 등 관련 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TV와 동영상, 음악 등을 PC에서 간단하게 불러올 수 있는 홈네트워크 기능도 윈도7의 강점이다.

 

 

 

윈도우스7은 윈도비스타의 장점을 계승하고 단점은 보완했습니다. 사용자 경험을 강화한다는 명분아래 새로운 기능도 대거 추가됐구요. 주요 기능들을 정리해봅니다.(언)
 

수퍼 바

윈도우스95 이래로 작업 표시줄은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창을 전환하는 기능으로 사용됐다. 시간이 흘러 PC를 사용하는 습관도 변한 만큼 윈도우스7에서는 더 많은 작업을 간편하게 할 수 있도록 작업 표시줄이 새롭게 디자인됐다. 눈으로 보기가 더 편리해 졌고 많은 부분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 멀티태스킹도 간편해졌다.
 

 

향상된 가젯

가젯은 윈도비스타에 처음 도입된 인기 있는 미니 프로그램으로 윈도우스7에서는 더욱 재미있고 설정도 자유로워 졌다. 사용자 의견을 바탕으로 사이드바를 제거해 가젯을 바탕 화면 어느 곳이나 배치할 수 있다.
 

 

점프 목록

윈도우스7의 새 기능인 점프 목록을 사용하면 자주 사용하는 문서, 사진, 음악 또는 웹 사이트를 빠르고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점프 목록을 열려면 윈도우스7 작업 표시줄에 있는 프로그램 아이콘을 마우스 오른쪽 단추로 클릭하면 된다. 시작 메뉴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점프 목록에 표시되는 항목은 프로그램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면 익스플로러8 의 점프 목록은 자주 보는 웹사이트를 보여 준다. 윈도미디어플레이어12 는 자주 재생된 음악을 보여 준다. 점프 목록에 자주 사용하는 항목이 없다면, 어떤 파일이든 내가 원하는 파일을 점프 목록에 고정할 수 있다.
 

점프 목록은 파일 바로 가기만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새 전자 메일 메시지 작성이나 음악을 재생하는 것과 같은 작업도 바로 실행할 수 있게 해준다.
 

윈도우스 검색

윈도우스7에서는 많은 파일을 더 빠르게 찾을 수 있다. 시작 메뉴 검색 상자에 검색어를 입력하면 PC에 있는 관련 문서, 그림, 음악 및 이메일 목록이 바로 표시된다. 카테고리별로 검색 결과를 분류해 보여 주고, 입력한 키워드가 강조돼 표시, 한 눈에 검색 결과를 알아볼 수 있다.
 

다양한 주변 저장 장치나 한 대 이상의 PC를 연결해서 활용하는 사용자가 늘고 있는 만큼, 윈도우스7 은 외장 하드 드라이브, 네트워크로 연결된 PC 및 라이브러리까지 검색할 수 있도록 했다. 검색 결과가 많아 찾기 어렵다면 날짜, 파일 유형 혹은 다른 조건을 추가 선택해 검색 결과를 좁힐 수 있다.
 

윈도우스 디스크 이미지 버너

ISO는 CD 이미지로 많이 사용되는 파일 형식이다. ISO는 사용자가 보유하고 있는 CD를 하나의 파일로 만들어 쉽게 관리할 수 있게 해준다. 윈도우스7은 자체적으로 이 파일을 읽고 CD에 쓸 수 있어 별도의 CD작성 프로그램이 필요 없다. ISO파일을 더블 클릭하면 CD를 작성할 수 있다.
 

시스템 복구 디스크 만들기

윈도비스타에는 컴퓨터를 잘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도 빠른 시간에 복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스템 복구 기 능이 포함됐다. 윈도우스7은 이를 발전시켜 복구 디스크를 작성할 수 있는 기능도 담았다. 평소 시스템 복구 디스크를 작성해 놓으면 문제 발생시 이 복구 디스크를 넣고 부팅하는 작업만으로도 자신의 컴퓨터를 복구할 수 있다.
 

문제 단계 레코더

초보자를 위해 윈도우스7 기능중에는 문제 단계 레코더(Problem Steps Recorder: PSR)도 있다. 문제 단계 레코더를 사용시, 윈도우스7은 문제 단계 레코더를 통해 오류가 일어나기 전 키보드 입력, 마우스 사용 등 사용자의 모든 행동을 기록하고 분석한다. 저장된 파일은 메일을 통해 쉽게 다른 사람에게 보낼 수 있고 메일을 받은 사람은 동영상을 확인 하듯 컴퓨터의 오류를 확인하고 원격으로 수리할 수 있다.
 

USB 장치

이동식 플래시 드라이브나 기타 USB 장치를 처음 연결할 때에 윈도우스7은 단 몇초만에 사용 준비를 완료한다. 기존에 USB 장치를 사용할 때보다 훨씬 빨라진 것을 느낄 수 있다는게 한국MS 설명.
 

디바이스 스테이지

디바이스 스테이지는 프린터, 마우스, PMP, 휴대폰 등 컴퓨터에 연결되는 주변 기기들을 쉽게 관리할 수 있는 기능이다. 연결된 주변 기기 상태를 사진이 표시된 하나의 창으로 보여줘 사용자들은 상태를 확인하거나 설정을 바꾸는 등 여러 작업들을 수행할 수 있다. 사용 중인 장치에 업데이트가 있다면 디바이스 스테이지는 이를 자동으로 확인해 사용자에게 알려 준다.
 

자격 증명 관리자

윈도우스7은 사용자 ID/PW를 한 곳에 관리해  편리한 인터넷 사용을 돕는다. 각 계정 별로 한 눈에 확인이 가능해 자신이 가입한 사이트의 ID와 PW를 떠올리기 위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게 한국MS 설명. 필요하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다른 PC에서도 공동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관리 센터

윈도우스7은 한 곳에서 모든 보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관리 센터를 추가했다. 문제 해결, 복구, UAC 등 보안상 사용하게 되는 기능들을 각각 찾아 다닐 필요 없이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다. 초보자도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만들어져 컴퓨터 사용중 발생하는 각종 메시지도 모아뒀다가 한번에 확인하고 해결할 수 있다. 
 

64비트 지원

윈도우스7은 32비트 시스템과 64비트 시스템 모두 지원한다. 64비트 PC는 32비트 시스템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 더 많은 RAM(4GB 이상)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한 번에 여러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있는 경우 64비트는 응답 속도가 더 빠르다. 동시에 많은 프로그램을 열어놔야하거나 프로그램을 자주 전환해야 하는 경우, 또 대용량 메모리를 사용하려면 64비트가 좋다. 그러나 한 번에 한두 개 프로그램만 실행하거나 64비트 PC에서 지원되지 않는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32비트 시스템이 적합하다.
 

전원 관리

윈도우스7은 노트북 배터리를 더 오래 쓸 수 있도록 만들어 졌다. 윈도우스7에서는 백그라운드 작업이 적게 실행돼 PC 프로세서가 과도하게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전력 소비가 적다.
 

네트워킹

윈도우스7은 어디서든 노트북 컴퓨터에서 네트워크 목록을 확인하고 연결하기가 쉬워졌다. 작업 표시줄에서 네트워킹 아이콘만 클릭하면 사용 가능한 네트워크 보기에 Wi-Fi, 모바일 인터넷, 전화 연결 또는 기업 VPN과 같은 모든 유무선 옵션이 표시된다. 연결하고자 하는 네트워크를 한 번 더 클릭하면 연결된다.
 

윈도우스 미디어 센터

윈도우스7 사용자는 윈도 미디어 센터를 통해 TV 시청, 녹화, 음악 감상, 사진 앨범 보기, 온라인 콘텐츠까지 쉽고 편하게 즐길 수 있다. 윈도우스7에서는 윈도비스타 사용자들이 제안한 새로운 기능들과 사진 수정 기능을 추가해 윈도 미디어 센터를 새롭게 업그레이드했다.
 

윈도우스 미디어 센터는 디지털TV 및 HDTV를 비롯해 글로벌 TV 표준과 TV 수신 카드를 지원해 PC에서 바로 TV를 시청하며 녹화도 가능하다. TV 프로그램 목록이나 음악 라이브러리에서 원하는 콘텐츠를 찾는 것도 쉬워졌다.
 

원거리 미디어 스트리밍 

윈도우스7에는 홈PC의 사진, 음악, 동영상을 외부 PC 에서 사용할 수 있는 원거리 미디어 스트리밍 기능도 포함돼 있따. 이 기능을 통해 외부에서 안전하게 홈 PC의 미디어 라이브러리에 접속할 수 있다. 원거리 미디어 스트리밍을 통해 홈 PC와 연결할 경우 윈도 미디어 플레이어는 홈 PC의 미디어를 바로 재생할 수 있다.
 

윈도우스  터치

윈도우스7과 터치스크린이 있으면 마우스 없이 손가락만으로 뉴스를 보고, 사진을 보거나, 파일과 폴더를 찾고 볼수 있다. 윈도우스7은 그 동안 윈도에서 사용할 수 있었던 터치 기술이 보다 강화됐다. PC 구석구석을 사용할 수 있으며, 시작 메뉴와 작업 표시줄도 사용하기 쉽게 커졌다.
 

아이콘도 손으로 터치하기 편하게 바뀌었다. 윈도우스7 프로그램에도 터치 기술이 적용돼 윈도 그림판에서 손가락으로 그림도 그릴 수 있다. 멀티 터치가 지원되는 모니터가 있다면 멀티 터치 동작도 지원한다.

 

 

 

 

 

 

 

 

 

 

 

 

 

10월의 화재 경보

 

 

 

10월의 휴식

 

 

 

10월의 무게

 

 

 

 

 

 

 

 

10월, 당신

박상현(朴相賢)

 

 

9월을 보내며 당신을 맞는 오늘

하늘은 온통 파란색으로 색칠 했고

온 세상 시원하게 숨통을 틔워 줍니다

 

밝은 햇살과 함께 당신을 맞는 아침

마음 상쾌하고 하늘을 날을 것 같아

기쁜 마음으로 당신을 맞습니다

 

처마끝에 날아와 앉은 까치가

당신 오심 알리는 노래를 하네요

당신 오심 반기는 듯 날갯짓을 하며

당신 안에서 이 나라가 세워졌으며

당신 안에서 한글이 만들어졌으며

당신 안에서 이 나라 창군을 하였습니다

 

온 산 붉게 물 들여 발가벗은 여인처럼

아름다움 뽐내며 유혹의 손짓 보내는 당신!

 

그러한 당신이 나는 너무너무 좋아요

나뭇잎 떨어진 가지 사이로 밝은 햇살 비춰 주고

잊지 못할 그리움, 추억 속에 깊이 묻어 두고

당신 가슴에서 사랑의 노래 만들어 보리

흘려 보낸 세월 속, 수없이 만난 당신

이제 당신과 만남 몇 번이나 더 있을까?

 

흘러가는 세월 멈출 수 없고

늙어 가는 몸 막을 수 없으니

떠나가는 9월, 그냥 편안하게 보내고

찾아오신 당신 반갑게 맞을까 합니다

 

우리에게 풍요와 사랑, 그리고 낭만과 고독

햇살같이 한없이 내려주시는 고마운 당신!

바로, 10월 당신!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있었던 우주 최대의 러브 스토리이다.”

 

“내 생애에 일어난 최대 사건은 그리스도 사건이다. 그리스도는 나의 생명이요, 사랑이요, 소망이요, 나의 평안이요, 지혜요, 힘이요, 모든 것의 모든 것이다. 그리스도 외의 절대 다른 모든 것을 상대화시켰다.”

 

“주님과 나 사이는 오다가다 비교 종교의 선택에서 만난 사이가 아니다. 절대적인 영원한 사랑의 대상으로 그가 나를 택했다.”

 

“한국 민족 의식 속에는 우라늄보다 귀한 에너지가 있다. 예수 의식과 민족 의식이 하나로만 될 수 있다면 한민족은 세계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삼으며 신구약 성경을 신앙과 행위의 표준으로 삼는 민족, 민족의식과 예수의식이 하나 된 지상 최초의 민족, 그리하여 수십만의 젊은이들이 예수의 꿈을 꾸고 인류구원의 환상을 보며 한 손에는 복음을 다른 한 손에는 사랑을 들고 지구촌 구석구석을 누비는 거룩한 민족이 되게 하소서.”

 

“민족의 가슴마다 피 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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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한국교회 복음주의 운동을 이끈 영적 거인이 떠났다. 하지만 그의 말과 글은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

한국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민족복음화’나 '태신자' ‘순모임’ ‘사랑방 모임’ ‘기도한국’ ‘성민(聖民) 코리아’ ‘예수 혁명’ 등은 한국대학생선교회 설립자 김준곤 목사(1925~2009)가 깊은 묵상과 기도에서 길어 올린 주옥 같은 말들이다.

 

생명을 담은 그의 언어는 수백만의 청년들의 가슴에 불을 붙였고 ‘한 손엔 복음 들고 한 손엔 사랑을 들고’ 가정과 교회, 세계로 향하게 했다.

 

“이 땅의 인구 25% 성도들은 출애굽한 모세의 지팡이, 다윗의 물맷돌, 기드온의 칼을 가졌다. 통일한국, 예수한국, 선교한국, 성령한국, 필승 코리아의 환상과 기도를 드리자. 에스겔 37장의 민족부활의 환상과 신명기 28장의 축복도 우리 몫으로 준비되어 있다.”(2006년 1월호 신앙계)

 

김 목사의 언어가 강력한 파급력을 지녔던 것은 해박한 지식과 고뇌, 간절한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 목사는 1940년대 일본군과 소련군의 감시를 피하면서 2000권의 서적을 탐독했다(‘하나님을 주로 삼는 민족’ 중).

 

또 여러 대형 집회와 전도훈련을 앞두고 15일, 20일, 40일 등 금식기도를 끊임없이 했다(1986년 7월호 월간목회).

 

그는 데이비드 흄, 칼 마르크스, 프로이드, 하비콕스, 우치무라 간조, 도스토예프스키 등 수많은 철학자와 심리학자, 사회학자, 신학자, 문학가의 말을 인용하며 지성사회에 일침을 가했다.

 

그의 언어는 쉽고 짧으면서도 구체적이어서 손에 잡힐 듯 이해가 빨랐다. 10년 넘게 김 목사의 총재특보로 일한 김철영 목사는 “2000년 북한동포돕기운동 설교 때 ‘밥을 같이 먹으면 식구입니다’라는 한 문장을 위해 2시간 넘게 기도하시면서 고뇌하시는 모습을 본 적 있다”면서 “김 목사님이 쓰셨던 한 단어 한 단어는 깊은 금식기도와 성령의 감동에서 빚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김목사님을 가까이 대한 적은 없지만 내 성경 옆에는 김목사님의 저서 '예수칼럼'과 '순론'이 늘 같이 했었다.

 

‘예수칼럼’이나 ‘기도의 비상사태’ 등에 나타난, 강력하면서도 확신에 찬 필체는 숱한 고난과 고뇌, 즉 ‘존재의 제로점’에서 만난 예수님에서 비롯되었다. 6·25 당시 공산군에 희생된 아내와 부친, 일제와 공산군으로부터 받은 생명의 위협, 1982년 위암으로 사망한 딸 등은 예수를 더욱 붙잡게 했다.

 

“주님을 호흡하며 살자. 하나님과 영원을 상실한 영은 무한정 목 타고 외롭고 고달프고 숨이 막힌다. 영원한 소망과 하나님이 끊어지면 영혼의 질식현상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예수라는 강을 비켜갈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는 살 길이 도저히 없다. 우리 앞에는 하나의 길밖에는 없다.”(‘영원한 첫사랑과 생명언어’ 중)

 

그는 어린 아이처럼 예수를 향한 순수한 열정을 갖고 있었다.

“나의 언어의 대부분이 예수를 설교했고, 내가 쓴 수천 통의 편지와 길가며 쓰고, 밥 먹다 쓰고, 자다가도 일어나 쓰는 글도 예수이며....  한 줄 유서도 예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며, 내 묘비명도 예수일 것”(1981년 11월6일자 조선일보 ‘일사일언’ 중)이라는 글처럼 그의 피 속에는 분명 예수의 DNA가 들어 있었다.

 

“주님과 나의 러브스토리는 만날 때마다 영원한 첫사랑이다. 그 언어들은 영이요, 생명이다. 처녀성만큼 신선하고 유일하다.... 불러도 불러도 대답 없는 내 이름을 부르시다가 심장이 터져 돌아가신 주님을 내가 맨 처음 만났을 때 다르게는 살 수 없는 내 운명이 영원 전부터 결정된 것을 알게 되었다. 주님과 나의 순애보는 지금이 시작일 뿐이고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영원한 첫사랑과 생명언어’ 중)

 

그를 가까이 했던 어느 목사님의 말.

 “김 목사님은 정말 새로운 언어와 문장을 만드는 데 뛰어난 분이어서 글 하나하나에 생명력이 가득 차 있다”면서 “한 사람의 생애를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를 보여준 분”이라고 했다.

 

그는 갔다. 그러나 그의 생명력 있는 말은 우리 곁에 남아있다.

김 목사의 대표적인 설교는 한국대학생선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kccc.org). (장재언)

 

 

 

 

 

 

 

 

 



 

가끔 혼자여도

가끔 눈물이 나도

또 가끔 외로워도

그게 사람이란 거니까

오늘도 괜찮습니다.


가끔 이렇게 혼자여야

지나치는 바람도 느끼고

눈 앞의 시원한 하늘도 보죠.
 

혼자여서 진정

홀로가 아님을 느끼니까

오늘도 행복합니다.
 

 

 

 

 

 

 

 

 

 

 

여의도순복음 제2교회 예배모습

 

지난해 2월 ‘여의도순복음교회 송파성전’이 ‘여의도순복음 송파교회’로 독립한 이후 여의도순복음교회 제자교회들의 독립이 속속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교세가 가장 큰 제2성전(강남성전)이 1일 독립을 했다. 이로써 총 22개의 지성전 중 16개가 제자교회로 독립을 했다. 나머지 6곳도 연내로 독립 예정이다.

16번째 제자교회로의 독립
 

여의도순복음 제2교회는 1일 오전 ‘창립 24주년 축복성회 및 최명우 담임목사 취임축하예배’를 갖고 16번째 조용기 목사 제자교회로의 독립을 선언했다.
 

최근 여의도순복음총회 출범 이후 제자교회 독립예배 때마다 설교를 전하고 있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는 이날도 설교를 맡아 축하 인사와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특별히 조 목사는 이날 설교에서 제2교회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을 표해 제자교회로 독립하는 제2교회 교인들의 마음에 새로운 각오와 헌신의 결단이 일게 했다.
 

조 목사는 창세기 15장1-6절 말씀을 본문으로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 설교하면서 “별 볼일 없던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천막에서 나와 하늘의 무수한 별을 보았을 때 꿈과 믿음과 소망을 갖게 됐다”며 “이와 같이 우리는 육신의 장막에서 벗어나와 하늘의 하나님을 바라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조 목사는 “제2교회는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처음으로 세운 지성전이어서 그만큼 특별한 관심과 정성을 기울였다”면서 “이제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장막에서 나와 독립을 하는 만큼 담임 목사와 성도들이 더욱 하나님만 바라며 믿음으로 새로워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이날 담임으로 취임한 최명우 목사는 “강남ㆍ서초 지역의 복음화에 대한 사명을 주신 조용기 목사님께 감사드린다”면서 “제2교회가 시대적 아픔을 끌어안을 수 있는 깊은 영성과 메마른 영혼이 숨 쉴 수 있는 성령의 뜨거움이 충만한 교회가 되도록 헌신하겠다”고 인사말 했다.
 

이날의 담임목사 취임식은 여의도순복음총회 제2지방회(회장 김경문 목사)에서 주관했으며, 총회장 이영훈 목사는 축사를 맡아 담임목사 취임 축하의 말을 전했다.

 

 

 

 

 

현대ㆍ기아차만 미국서 질주

9월 판매 26% 급증 … GM 45%↓ㆍ도요타 13%↓

 

 

현대ㆍ기아차가 미국 시장에서 나 홀로 판매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중고차 현금보상` 프로그램이 지난 8월 말로 종료돼 미국 자동차 산업 수요가 전체적으로 감소하며 일본과 미국 업체들이 총체적인 부진을 기록한 가운데 거둔 성과여서 주목된다.
 

현대차 미국법인(HMA)은 4일 9월 판매량이 작년 같은 달보다 27.2% 증가한 3만1511대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기아차 미국법인(KMA)도 작년 9월보다 24.4%나 판매가 늘어 2만1623대를 판매했다.
 

현대차 미국법인 측은 "미국 정부의 중고차 현금보상 프로그램이 종료돼 자동차 산업 수요가 위축됐지만 싼타페 구매 고객 등에게 추가 판촉 프로그램을 시행한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기아차는 신차 효과 덕을 톡톡히 봤다. 기아차는 최근 미국 시장에 쏘울과 포르테 등 소형차급을 투입해 판매 성장을 이끌어냈다. 여기에다 올해 말 조지아 공장까지 본격 가동하게 되면 `Made in USA` 효과로 더욱 판매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ㆍ기아차그룹 관계자는 "올해 들어 9월까지 국외 공장에서 생산해 판매한 물량이 100만대를 넘어섰다"며 "기아차 미국 조지아 공장 가동이 임박한 데다 외국 시장 실적이 계속 개선되는 양상을 보이면서 앞으로 국외 공장 생산ㆍ판매 물량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GM과 크라이슬러 등은 여전히 어렵다. GM은 전년 동기 대비 실적이 45%나 나빠져 15만6673대를 판매했고, 크라이슬러 역시 42%나 줄어 6만2197대밖에 팔지 못했다. 미국 빅3 중 유일하게 상황이 좋았던 포드도 9월 판매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5.1% 감소해 11만4241대에 그쳤다. 특히 크라이슬러는 미국 자국 브랜드임에도 현대차와 기아차 실적을 합친 판매대수 5만3134대에 바짝 추격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을 최대 시장으로 공략 중인 도요타 등도 부진했다. 도요타 혼다 닛산 등은 미국 정부의 `중고차 현금보상` 혜택을 가장 많이 봤기 때문에 9월 실적이 상대적으로 부진했다. 도요타는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12.6% 감소한 12만6015대, 혼다는 20% 줄어든 7만7229대, 닛산이 5만5393대를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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