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26, 2009

 

 

 

 

 

 

 

 

 

Count Your blessings,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 어린이 힙합찬양 -

 

이번 주 비전통신은 어린이 힙합찬양으로

시작합니다. 주님 주신 축복을 세어 보아라 입니다.

시작을 후렴부터 하네요~~

 

When upon life's billows you are tempest tossed

When you are discouraged, thinking all is lost

Count your many blessings, name them one by one

And it will surprise you what the Lord hath done

 

Count your blessings, name them one by one

Count your blessings, see what God hath done!

Count your blessings, name them one by one

Count your many blessings see what God has done!

 

Are you ever burdened with a load of care?

Does the cross seem heavy you are called to bear?

Count your many blessings, every doubt will fly

And you will keep singing as the days go by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장정일

 

 

그랬으면 좋겠다 살다가 지친 사람들

가끔씩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계절이 달아나지 않고 시간이 흐르지 않아

오랫동안 늙지 않고 배고픔과 실직

잠시라도 잊거나

그늘 아래 휴식한 만큼 아픈 일생이

아물어 진다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굵직한 굵직한 나무등걸 아래 앉아

억만 시름 접어 날리고

결국 끊지 못했던 흡연의 사슬

끝내 떨칠 수 있을 때

그늘 아래 앉은 그것이 그대로

하나의 뿌리가 되어

나는 지층 가장 깊은 곳에 내려앉은

물맛을 보고

수액이 채관 타고 흐르는 그대로

한 뒷박 녹말이 되어

나뭇가지 흔드는 어깨 짓으로 지친

새들의 날개와

부르는 구름의 밑바닥 쉬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사철나무 그늘 아래 또 내가 앉아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내가 나밖에 될 수 없을 때

이제는 홀로 있음이 만물 자유 케 하며

스물 두 살 앞에 쌓인 술병

먼 길 돌아서 가고

공장들과 공장들 숱한 대장간과

국경의 거미줄로부터

그대 걸어 나와 서로의 팔목 야윈

슬픔 잡아 준다면

좋을 것이다 그제서야 조금씩

시간의 얼레도 풀어져

초록의 대지는 저녁 타는 그림으로

어둑하고

형제들은 출근에 가위 눌리지 앉은

단잠의 배게 벨 것인데

한 켠에선 되게 낮잠을 자 버린 사람들이

나즈막히 노래 불러

유행 지난 시편의 몇 구절을 기억 하겠지

바빌론 강가에 앉아

사철나무 그늘을 생각하며 우리는

눈물 흘렸지요          

 

 

 

그늘! 나비 그늘, 꽃 그늘, 나무 그늘, 처마 그늘, 담 그늘, 당신 그늘, 심지어 위태롭게 서 있는 전봇대나 바지랑대에도 그늘은 있다. 그늘은 눈부시지 않고 어둡지 않다. 뜨거운 햇살은 가려주고 비바람은 대신 먼저 맞아준다. 여운, 깊이, 여유, 멋을 지닌다는 점에서 그림자와 다르다. 그래서일까. 그늘 아래 서면, 잠시, 시간도 잊고 이름도 잊고 일도 잊고 갈 곳도 잊는다. 그늘 아래 스스로를 부리듯 노동과 불안과 걱정을 부려두고, 잊거나 잃은 것을 떠올리며 눈물짓기도 한다.
 

시간과 계절은 너무 빨리 달아나고, 우리는 너무 빨리 늙고, 늘 배고픔과 실직의 공포에 시달리면서 출근과 스트레스와 피로와 시름과 술과 담배에 지쳐 있는데… 맨땅에 뿌리를 내린 채 사시사철 변함 없는 사철나무의 그늘이니 참 깊고 넓겠다. 시인 장정일(46)이 꿈꾸던 '사철나무 그늘', 누구나 그런 그늘 하나쯤은 꿈꾸기 마련이다. '가장 장정일답지 않는 시' 임에도 가장 많이 애송되고, 시인 스스로도 첫 시집을 여는 시로 삼았던 까닭일 것이다.
 

이 시는 "By the rivers of Babylon/ there we sat down/ ye-eah we wept,/ when we remember Zion"이 반복되는 보니엠(Boney M)의 노래 '바빌론 강가에서(Rivers of Babylon)'를 들으며 읽어야 한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시편, 137편)라는 성경 구절과 더불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벨탑과 공중정원이 있었다는 번영의 땅 바빌론은, '시온(Zion·예루살렘의 도시로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을 생각하며 견뎌야 했던 이방의 땅, 고난의 땅, 타락의 땅이다.

원조 '디아스포라'의 고난과 희망이 담긴 디스코 풍의 이 노래는, 80년대 내내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쉬던 공장노동자들의 휴식시간을 장악하기도 했던가.
 

불온하다는 말, 문제적이라는 말이 장정일처럼 잘 어울리는 시인이 또 있을까.

중졸의 학력과 방황의 청소년기, '삼중당 문고'를 읽으며 했다는 독학, 최연소 '김수영 문학상' 수상, 극작가, 소설가, 외설 시비, 무시무시한 독서량, TV 교양프로 진행, 교수….

그는 정복자처럼 자신의 삶을 찬탈했으며 게릴라처럼 80년대 시단을 점령했다. 그리고 어느 날 '시 쓰는 법을 까맣게 잊어버렸다'고 오리발을 내미는, 그가 이른바 '쉬인' 장정일이다. '동사무소 하급 공무원'을 꿈꾸며 들었을 '바빌론의 강가'를 다시 들으며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쉬는 마음'을 헤아려보는 아침이다.    (정끝별 시인)

 

 

 

 

 

 

 

걷지도 못하던 김인경

힙합으로 찬양

신앙 안에서 새생명 새소망 생겨나
좋으신 하나님 은혜로 백혈병 치유

 

 

나는 매일 춤을 춘다. 그것도 격렬한 힙합을.

12년 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었을 일이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2개월이 될 무렵 걷지 못할 정도로 힘이 빠졌다. 동시에 온몸이 안 아픈 곳이 없었다. 특히 허리를 톱으로 잘라내는 것 같은 고통 때문에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게다가 얼른 병명이 밝혀지지 않아 6개월 동안 제대로 된 치료도 받을 수가 없었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에 떠밀려 좋다는 약, 용하다는 곳은 다 찾아갔다. 절, 무당, 알 수 없는 신을 모시는 사람까지 다 찾아 다녔다.

 

나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여러 종교를 전전하던 중 주변 분의 권유로 교회도 다니기 시작했다. 그 즈음 엄마도 전부 다닐 수는 없으니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그때 문득 어릴 때 선교원에 다니면서 불렀던 한 노래가 생각났다.

 

 ‘좋으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계속 그 노래가 생각났다.

“엄마 나 교회갈래” 그때부터 나를 전도한 집사님을 따라 교회에 다니며 기도원에서 3일 금식기도도 했다. 기도원에서 설교를 들을 때 나을 수 있다는 메시지가 자주 들렸다. 자꾸 듣다 보니 내 머릿속에도 ‘나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생기기 시작했다. 엄마도 새벽기도를 다니셨다. 그 즈음 나는 불면증으로 매일 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기도원에 다녀오고 난 후 어느 날 잠깐 잠이 들었는데 사단의 우두머리 같은 사람이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너를 놔주겠다. 이제 너는 잠을 잘 수 있다’

그렇게 꿈을 꾸고 비몽사몽 간에 눈을 떴는데 큰 구렁이가 우리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보였다. 큰 구렁이가 베란다로 나가는데 하나도 무섭지 않고 오히려 평안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병원에 갔는데 재생불량성빈혈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후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분명 나아가고 있었지만 몸이 여전히 약했다. 병원과 집 뿐인 생활, 머리카락은 하나도 없고 친구도 없었다. 너무나 외로워 우울증이 생겼다.

또래의 건강한 청소년들을 보는 게 고통스러웠다. 사람이 많은 곳에 가기가 싫었다. 답답한 마음에 병원을 빠져 나와 매일 밤 철야예배에 참석했다.

“하나님 치료해주세요. 저 너무 외로워요. 학교에 가고 싶어요. 나도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매일 눈물로 기도했다. 나중에는 너무 고통스러워서 “하나님 저를 고쳐주시면 하나님의 일을 하겠습니다”라고 서원기도를 했다.

2년여 동안 그렇게 기도하던 어느 날 목사님의 안수기도를 받을 기회를 얻게 됐다. 목사님께서 안수하실 때 놀라운 일이 생겼다. 자존심이 강해서 부모님 앞에서도 눈물 흘리지 않던 내가 두 손을 들고 울면서 큰소리로 아멘을 외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치유해 주셨다.

백혈병을 이기고 난 후 검정고시를 보고 내 나이에 맞게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간절히 원했기에 누구보다 열심히 학교생활을 했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반장도 맡고 미술공부도 했다.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그러나 열심으로 이루는 것이 많을수록 하나님과 멀어졌다. 교회도 가지 않고 하나님을 잊고 살았다.

대학에 진학하고 1년여를 보냈을 때 인간관계에 큰 어려움이 생겼다. 그 어려움은 과거에 겪었던 고통과 나를 치유해주신 하나님을 생각나게 했다. 나는 다시 철야예배에서 무릎 꿇었다.

“하나님께서 치료해 주셨는데 감사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라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그것을 무시하며 살았던 몇 년의 세월을 회개했다.

그리고 완전히 잊고 살았던 서원기도가 생각났다.

 

“하나님 이제 제가 뭐 할까요? 어떻게 하면 되나요?” 물었다. 돌아오는 길에 월드미션팀을 모집하는 광고를 보고 지원해 중국에 단기선교를 다녀왔다. 이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춤에서 은사를 발견하고 지금은 크리스천 힙합 선교단 ‘멘토’에서 활동 중이다.

 

걸을 힘도 없어 학업을 중단했던 내가 지금은 매일 매일 격한 동작을 연습하고 전국과 호주, 뉴질랜드 등 세계를 돌아다니며 힙합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

앞으로도 세상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영성과 실력을 지닌 문화사역자로 살면서 내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하고 싶다.

 

 

 

 

 

풀러신학교 제후 핸슬스(Jehu Hanciles) 교수

 

LA 지역 어느 한인 교회.

단기선교 준비에 한창이다. 올해도 중남미에 있는 B 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선교팀을 모집하고, 준비 모임을 갖는다.

선교지의 영혼을 떠올리며 '이 산지를 내게 달라'고 부르짖고, 현지어로 번역된 '4영리 전도지'를 외우면서 선교 열정을 불태운다. 일부는 찬양 연습에, 일부는 단막극 연습에, 일부는 현지인들에게 나눠줄 선물을 챙기느라 분주하다.

 

비단 이 교회만의 모습일까.

 

풀러신학교 제후 핸슬스(Jehu Hanciles) 교수(선교학)는 교회의 전형적인 단기선교 방식을 두고 "종교적 투어리즘"이라며, "단기선교는 선교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영혼 구원을 향한 순수한 열정을 품고 먼 곳을 향하는 사람들에게 선교학 교수라는 이가 ‘그건 아니다’고 나무라는 이유는 무엇일까.

 

 

 

 

 

 

 

 

 

 

 

 

 

 

 

 

 

 

 

▲ 풀러신학교 제후 핸슬스(Jehu Hanciles) 교수(선교학)도

단기선교의 필요성과 장점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단기선교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장기 선교사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은 핸슬스 교수도 인정했다.

 

 

풀러신학교에서 만난 핸슬스 교수는 오늘날 단기선교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몇 가지 대안을 제언했다.   

 

'선교'와 '단기'라는 단어는 함께 쓸 수 없어

 

핸슬스 교수가 단기선교에 신중한 입장을 취하는 이유는 자칫 단기선교를 통해 선교에 대한 잘못된 인식들을 강화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우선 그는 ‘단기선교’라는 용어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선교’라는 단어와 ‘단기’라는 말이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단기선교라는 말이 오용되고 있다. 선교라는 큰 틀에서 봤을 때 단기선교는 선교가 아니다. 선교는 결코 단기적인 사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교는 해외에서 가끔씩 벌이는 이벤트가 아니라 교회의 일부분이다. 언어적·문화적 한계를 지닌 외국인이 1~2주 정도의 짧은 시간에 선교 현장에 영향력을 끼치는 건 불가능할 뿐더러, 프로그램 위주로 돌아가는 단기선교는 선교 현장과의 장기적인 파트너십 형성을 어렵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단기선교는 종교적 투어리즘의 일종이다."

 

핸슬스 교수는 또 단기선교가 선교를 지역적이고 영토적인 관점으로 제한하고, 일종의 이벤트로 여기는 왜곡된 선교관을 고착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선교를 지역적이고, 영토적인 관점으로 이해하면, 선교를 위해 어디론가 가야 한다고 여긴다. 자신이 있는 곳에서 선교적 삶을 사는 일은 외면한 채 해외에서 벌이는 선교 활동만을 선교라고 여기는 것이다. 선교 대상국을 보면서 그 나라의 다양한 종교, 빈곤의 문제로 안타까워하지만, 정작 동일한 이슈가 미국에도 존재하는데, 그런 점을 깨닫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핸슬스 교수는 선교 현장에서 일어나는 문화적 충돌도 언급했다. 현지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단기선교팀이 현지인들과 충돌을 일으키면서 문화적 갈등을 양산하게 되면, 선교팀이 떠난 뒤 현지 교인들과 장기 선교사들이 뒷수습하느라 애를 먹는다며 단기선교팀으로 인해 생기는 부수적 피해 사례도 거론했다.  

 

 

 

 

 핸슬스 교수는 선교에 대해 3가지를 강조했는데,

선교가 항상 한 방향으로만 진행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

선교를 위해 교회와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점,

효과적인 사역을 위해서는 현지 교회와 팀워크를 이뤄야 한다는 점이다.

 

 

그럼 단기선교는 그만 두어야 하는가? 

 

핸슬스 교수가 ‘단기선교 무용론’을 주장하는 것일까. 비싼 돈을 들여가며 짧은 기간 봉사하고 오는 것을 효율성이란 잣대로만 재단해 불필요한 일이라고 일축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단기선교를 간 사람이든, 현지인이든 짧은 만남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이 뒤바뀔 수 있는데, 그런 가능성을 덮어두고 ‘그건 선교가 아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핸슬스 교수는 단기선교의 필요성과 장점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단기선교를 통해 기독 신앙을 더 깊게 이해하게 되고, 새로운 영적인 도전을 받게 되면 개인은 물론, 교회 공동체에 미치는 유익도 크다고 했다. 드물지만 현지 교회와 연계해서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교회도 있고, 무엇보다 단기선교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장기 선교사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단기선교의 열매가 결코 적지 않다는 점도 인정했다.

 

다만 그가 강조하는 것은 단기선교를 선교라는 틀로 뭉뚱그려 정의할 것이 아니라, 단기선교의 성격과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그에 맞게 준비하고 실행에 옮기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단기선교보다는 '비전 트립'(vision trip)이라는 표현이 적합하다고 핸슬스 교수는 말했다.

 

핸슬스 교수는 단기선교의 실질적인 수혜자현지인이라기보다 선교 여행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현지인들에게 무엇인가를 주고,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보다 그 시간을 통해 경험하고 배우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된다는 것이다. 

 

“단기선교를 선교가 아닌 비전 트립 정도로 인식한다면 우리가 가서 그 땅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 우리가 무언가 줘야 하고, 가르쳐야 하고, 사람들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한 방향으로 흐르는 일방적인 선교가 아니라, 서로에게 유익한 존재들로, 어느 한쪽이 우월하고, 어느 한쪽이 가르치는 관계가 아니라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는 쌍방적인 관계로 자랄 수 있는 것이다.” 

 

이민 교회를 활용하라

 

핸슬스 교수는 지속적인 선교 사역을 위해서 현지 교회와 팀워크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며, 단기선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주변에 있는 이민 교회를 활용하라고 제안을 했다.

 

"꼭 미국을 떠나야 모슬렘이나 힌두를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다. 에티오피아를 선교하려면, 먼저 미국에 있는 에티오피아 교회에 먼저 찾아가라. 우리가 사는 지역에 아프리카 목사도 있고, 중남미 지역에서 온 목사도 있지만, 주변에 있는 이민 교회를 무시하고 선교 현장으로 직접 찾아간다. 돈 있고, 사람도 있으니 내가 바꿔야지 하고 생각한다. 지난 50년 동안 선교의 패러다임이 변해왔다. 일방적이고 지배적인 선교는 더 이상 무의미하다. 이제 이민 교회 및 현지 교회가 함께 팀워크를 이뤄야 한다."

 

 

 

 

 

 

 

로댕조각 [생각하는 사람]은 단테의 [신곡]을 주제로 한
[
지옥의 문]이라는 작품 중 지옥의 문 앞에서
인간의 고뇌와 삶을 바라보는 [
시인]의 모습입니다.


 

 

사진이 안보일 때 이렇게 하십시오

 

1. 사진이 절반만 보일 때는 화면을 다시한번 여십시오.(Refresh 단추 클릭)

2. 어떤 사진 한 장이 안보이고  X 표가 보일 때는 그림위에 마우스포인터를 올리고 오른쪽 마우스를 클릭한 후 메뉴중  Show Picture 를  클릭하십시오.

 

 

 

 

 

 

김나정/소설가

 

어릴 적 집에서 토끼를 길렀다. 마당 토끼장 안에서 눈이 빨간 토끼들이 코를 움실거리던 정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름도 붙여 주었다. 토실이, 토동이 등 토씨 여섯 형제였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칡넝쿨을 걷어오거나 토끼풀을 따러 갔다. 때론 동네 야채가게에서 채소 부스러기도 얻어왔다. 김장철이 되니 주인아줌마가 배추 잎사귀 한 무더기를 건네주었다. 기뻤다. 먹이를 물고 둥지로 돌아가는 어미 새라도 된 기분이었다.
 

겅중거리며 집으로 가다가 고양이 한 마리를 보았다. 자그마한 '길냥이'(주인 없는 떠돌이 고양이)였다. 비쩍 마른 게 불쌍해 보였다. 나는 배추를 안고서 고양이에게 다가갔다.

"야옹아, 이거 먹어" 하며 들고 있던 배춧잎을 내밀었다. 고양이는 딴청만 부렸다. 투우사처럼 배춧잎을 흔들어대도 꼼짝도 안 했다. 나는 속이 탔다. 바짝 다가가 고양이 입에 배추를 들이밀었다. 고개를 젓던 고양이는 하학~ 하더니, 발톱으로 내 손등을 긁고 달아났다.
 

배춧잎을 안고 서서 나는 엉엉 울었다. 손등에 난 생채기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내 호의를 몰라준 고양이가 원망스러웠다. 집으로 돌아오니 토끼들이 배춧잎을 아삭아삭 갉아먹었다.
 

그날 이후 나는 고양이는 나쁘고 토끼는 착하다고 단정 지었다. 얼마 후에야 나는 고양이가 배추를 안 먹는다는 걸 알았다.

 

나는 사람들에게도 '사랑'이란 이름으로 먹지 못할 '배춧잎'을 내밀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 놓고 고양이에게 그랬듯이 미워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본다.

 

 

 

 

 

 

 

 

 

음악과의 대쟁투

Dr. H. Lloyd Leno


 

시내 광야의 우상숭배로부터

 

“들어보세요! 백성들이 진영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떠들썩한 소동 소리를 들으면서 여호수아가 모세에게 말했다. 이것은 승전가도 아니고, 패전의 탄식도 아니다. 내가 듣기에는 노래하는 소리다! 라고 모세가 대답하였다. 모세가 진에 가까이 와서 보니, 사람들이 수송아지 주위를 돌면서 춤을 추고 있었다."

                                 (출 32:17~19, 새번역 성경)

 

하늘에서 타락하지 않은 하늘의 존재들과 교제하는 동안 벌써 하나님에 대해 잘못 선전하던 루시퍼(사단)는, 재빨리 이 땅 지구에서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퍼뜨리고 있었다. 가인의 받아들여질 수 없었던 제사와 함께 이 땅에 거짓 예배가 점차적으로 소개되고 있었으며 사단은 곧 여러 종류의 거짓 신들을 들여옴으로 이 일에 성공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구속의 경륜"을 통해, 인간이 그리스도와 사단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하신다는 것을 알리셨다. 사단에 의해 거짓 신을 예배하고 섬기는 의식은 인간의 기만적인 마음에 맞도록 온갖 기술과 방법들로 총동원되어 들어왔다. 그 옛날, 진리와 거짓 사이에, 진짜와 가짜 사이에 있었던 전쟁에 대하여 더 확실하게 이해하는 일은 오늘 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앞서 나온 성경 구절의 배경을 보면, 거기에는 세가지 다른 의견이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다.


(1) 백성들은 자기들이 예배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2) 여호수아는 (처음에) 그들이 전쟁을 하는 줄로 생각하였다.
(3) 모세는 그것이 둘 다 아닌 것을 알았다.

 

아무튼 그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 그들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졌지만, 한가지 서로 동의할 수 있었던 것은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여호수아는 그 소리를 전쟁하는 소리로 알아들었으나, 애굽의 문화에 대하여 보고 들었으며, 익히 알고 있던 모세는 이것이 이방 신을 섬기는 중에 나는 소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모세는 그 소요의 성질을 보다 올바르게 판단했는데, 그 소리는 싸우는 소리가 아니라 환락의 소리였다.

 

과연 이 소리의 차이란 무엇이었는가? 이 사건이 있기 바로 얼마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 바다의 둑에서 노래로 여호와를 찬양했었다. 그러나 이 두 가지의 활동들은 확실하게 서로 다른 형태의 것이었다. 왜 그것은 서로 달랐는가? 그 사이에는 어떤 의미심장한 차이가 있는가?

 

음악은 항상 어떤 형태의 예배에든지 들어 있었으므로 그 당시 그들의 문화 안에서 그렇게 강한 영향을 끼쳤던 종교 의식들을 살펴보자.
 

시내에서 애굽까지
 

먼저 시내 광야에서 일어났던 우상숭배 광경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그 일은 그저 어쩔 줄 모르던 군중들이 자신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한, 특별 활동에 불과했던가? 아니면 향수병에 걸린 애굽인들이 그들의 향수를 달래기 위해 열었던 파티에 불과한 것이었는가?

 

이스라엘 무리 중에는 애굽에서 따라 나온 “섞인 무리"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항상 제일 먼저 불평과 초조에 빠졌으며, 뒤따라 일어난 배도의 선봉이 되었다. 애굽 사람들이 신의 상징으로 존경했던 대상물 중에 황소나 송아지가 있었다. 애굽에서 이런 형태의 우상을 숭배하던 사람들이 송아지를 만들어 경배하자고 제안했다. 어떤 신이 이 동물에 의해 대표되었는가? 고대 애굽의 종교 역사를 연구해 보면, 그들의 주된 신인 “오시리스"(Osiris)를 대표하기 위하여 황소가 선택되었다. 이 사실의 의미심장함은 그들의 특별한 신을 섬기는 데 관계된 신앙과 음악과 춤의 형태를 보면 알 수 있다.
 

* 애굽신 오시리스

애굽 종교 역사가들에 의하면, “오시리스"라는 신과 그 신을 섬기는 신앙 이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1. 그 신은 선한 신이었다.

2. 그는 죽임을 당하였다.

3. 그는 부활하였다.

4. 그는 부활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다.

5. 그는 죽은 자들의 심판자가 되었다.
 

여러분들은 이 신앙의 이론에서 어떤 유사점들을 발견하는가? 거짓 그리스도의 도입을 위한 얼마나 영리한 계책인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그렇게 오랫동안 가고 없자,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을 멀리 떠난 듯이 느껴졌다. 아마도 그들은 더 “사실"적이고, 더 “땅과 가까운" 신을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아론에게 사정하고, 조르고, 위협했으며, 그 압력에 못 이겨 아론은 마침내 그들의 청을 허락하고 말았다.

 

그들이 우상을 섬길 때 사용하던 춤과 음악에 대해 연구하기 전에 성경 구절을 더 자세히 살펴보자.
 

출 32:6에 보면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고 되어 있다.

 

일어나서 뛰놀더라"라는 뜻이 과연 무엇일까?

한 성경 주석에 보면 “음탕한 행위는 이방신을 섬기는 예식에서 떼어낼 수 없을 만큼 깊이 연관되어 있었고, 육욕적인 쾌락이 종교의 구실이 되고 있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킹 제임스 성경과 표준 개역 성경에는 “뛰놀더라"는 히브리어가 여러가지 뜻으로 번역되었는데, 그 뜻은 주로 “순결함에서 음탕함으로 흘러감"이라는 뜻으로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이 단어는 창 39:14~17에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한 장면에 똑같이 쓰여졌다. “리빙 바이블 (The Living Bible)"에는 이 구절이 더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는데, "그들이 성적인 부도덕함이 병행되는 난잡한 연회에 먹고 마시려고 앉았다"고 표현되어 있다.
 

애굽에서 서아프리카까지
 

우상 숭배에 사용되던 음악과 춤에 대하여 더 자세히 연구해 보자면, 영국 박물관의 고대 이집트관에서 일하던 역사학자 “버즈(Budge)"의 연구를 살펴볼 수 있다. 그의 권위있는 정보에 의하면 애굽의 “오시리스" 신을 섬기는 예식에는 전통 음악과 춤이 주된 것으로 자리잡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더 나아가 이 애굽의 전통 음악은 수단과 서아프리카에 퍼져 현재 그 나라들을 대표할 만한 현존하는 중요한 음악과 춤이 되고 있다.

 

버즈 박사는 먼저 그 춤의 성격을 잘 관찰해 보라고 언명한다. 그는 설명하기를 그 춤을 출 때, 입는 옷 뿐 아니라 그 행동은 “음란함"과 “외설적인 것"과 “넌더리 나는 음탕함"을 명백히 표현하고 있다고 하였다. (버즈 저, “오시리스" 1961년 판, 뉴욕 대학 책 참조)

 

그는 특별히 고대 이집트인들 중 가장 유명한 여자 전문 춤꾼인 “과와지(Guawazi)" 와 그 춤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그들의 춤은 엉덩이를 좌우로 매우 빠르게 흔드는 것이 특징이다. 그들은 그것을 고대 이집트 궁정에 있던 전문 가수와 춤 꾼으로부터 전수받았다." 고 그는 말한다.

 

여기서 이집트 문화가 시사하는 바를 한번 더 강조하자면, 그들은 그들의 전통을 영존시키려고 노력했는데, 자세히 연구해 보면, 고대 이집트인들의 종교의식 행사와 서아프리카인들의 종교의식 사이에는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음악과 춤은 그들의 전통을 문화적인 유산으로 남기는 데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다. 우리는 고대 이집트에서 금송아지를 경배할 때 쓰이던 음악과 춤에 대해서, 그리고 이것이 다호메이(아프리카 서부 공화국)와 콩고를 포함한 서아프리카로 전수된 것을 알아보았다.

 

이제는 특별히 그 음악의 발전과 성격에 대해, 그리고 고대 이집트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고 그로부터 유래된 음악의 문화에 대하여 연구해 보자.

 

첫째로 우리가 주의해 볼 것은 이것인데, 명백하게도 아프리카의 음악은 곡조나 주제보다는 리듬과 그 리듬의 발전에 주의를 끌도록 포인트가 맞추어진 것을 알 수 있으며, 이 발전은 요즈음의 서방 음악의 경우에도 해당되고 있다.

 

또한 이집트로부터 유래된 그들의 춤의 의미심장함은 서콩고의 전통 춤에서 발견할 수 있다. 버즈 박사는 그의 저서에서 그들의 춤의 특징을 나타내는 용어 "dance du ventre" 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어깨, 엉덩이, 배, 가슴을 각각 다르게 혹은 동시에 흔들고 굴리며 율동하는 것"을 뜻한다고 했다.

 

또 다른 춤으로 “부두(voodoo)" 라는 것이 있는데, 엉덩이를 움직이는 것이 콩고의 춤의 특징이라면, 이 부두라는 춤의 특징은 상체, 특별히 목과 어깨를 비트는 것이 특징이다.

부두 그 자체는 춤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종교"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다 알려진 일인데, 그 유래는 다호메이에서 찾아낼 수 있다. “부두"와 “마녀 요술" 사이에는 근원과 신앙에 있어서 상당한 유사점이 있다.

“마녀 요술에 관한 보고"라는 책에서 휴즈 박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프리카 종교 의식과 마술에 대하여 연구해 보면, 그것은 어떤 의식을 혼란 시키는 방법 같은 것들로 되어 있는데, 그것은 고대 이집트에서 유래되었다."
 

서아프리카에서 뉴올린즈까지

 

이집트의 음악과 춤의 이동의 마지막 스텝은, 서아프리카 지방, 곧 지금의 기니아, 잠비아, 시에라 리온 , 라이베리아, 토고, 나이제리아, 카메룬, 콩고 제국의 일부 등으로부터 온 많은 노예들에 의해 미국으로 옮겨진 사실을 알 수 있다.

 

많은 노예들이 미국으로 잡혀 오는 도중에 첫 번 째로 서 인도제도, 특별히 히스파니올라 (서인도 제도 중에서 둘째로 큰 섬) - 그 지역의 많은 부분이 지금 뉴올린즈로 팔려서 예속됨 - 에 많이 정착하게 되었는데, 그들은 올 때 그들의 종교와 음악의 유산들을 가지고 들어 왔다.

 

지금의 도미니카 공화국인 산토 도밍고에서 온 고대 “부두" 예배 의식은 아직도 뉴올린즈에서 계속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은, 고대 이집트로부터 전수된 아프리카 음악이 미국의 음악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세계 각 곳의 음악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미국의 많은 도시들에서 아프리카 음악은 여행자들을 위한 오락의 원천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그것은 흑인의 인구가 가장 많이 거주하는 뉴올린즈 (미국 루이지애나주의 한 도시) 에서 보다 더 심각하게 그리고 강하게 영향을 미치며 사용되고 있다. 뉴올린즈는 많은 문화들이 섞이는 장소가 되고 있으며, 이국적인 문화의 도시로 알려졌다.

 

흑인음악 역사 연구가인 에일린 서던씨는 그의 저서에 뉴올린즈에 있는 아주 의미심장한 행사에 대해 이렇게 기술하였다.

 

“뉴올린즈의 가장 이색적인 광경 중에 하나는 뷰어갈드 광장에서 열리는 노예의 춤 행사인데, 전통 흑인 노예의 복장을 한 사람들이 주일이나 교회의 성일들에 광장에서 춤을 추는 행사이다. 그 행사는 1786년도부터 시작되어 온 것으로 추정되며, 오후 세시부터 그 춤을 추는 행사가 시작된다. 그 춤은 아주 흥분적이고, 출 수록 점점 와일드해지며 더욱 광란적이 되어 남자와 여자들이 기절할 때까지 추며 계속된다."
 

재즈의 근원

 

아프리카의 전통 음악과 춤이 공중에게 노출되자, 이것은 유럽의 전통 음악에 영향을 끼치는 일을 초래하게 되었다. 특별한 리듬에 의해 이런 춤의 율동이 강조되고, 이에 따라 다른 많은 성격의 오락이 곁들여지도록 된 음악이 있는데, 그것은 재즈이다.

권위있는 음악 문헌에 의하면, 목화밭에서 노동할 때 흑인 노예들이 부르던 노래, 시골이나 도시에서 흑인들이 부르던 블루스, 민스트렐 쇼 (흑인처럼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흑인 노래를 부르는 쇼)에서 연주되던 밴조(Banjo) 스타일의 음악, 당김음 (syncopation) 이 많이 들어간 브래스 밴드와 랙타임 음악 등은 재즈에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부두 음악도 재즈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Robert Tallant 와 Stern의 The story of jazz 참고)
 

역사적인 재즈 음악 교육가 탈마즈 씨는 그의 저서에서 아프리카 음악의 어떤 성분이 재즈에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분석에서 이렇게 정리해 놓았다.


1. 당김음 (Syncopation)
2. 다 박자 (Polymeter)
3. 즉흥적 (Improvisation)
4. 강렬한 강조 (Percussion emphasized)
5. 충동적인 연주
6. 같은 곡조와 리듬의 반복으로 감정을 흥분시킴
7. 리더 싱어가 있는 것
8. 춤과 음악의 혼합

 

위의 항목들을 보면, 다섯개 이상이 몸의 율동과 함께 하도록 되어있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들 중에 당김음 (syncopation)의 발전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는데, 재즈와 클래식 음악의 권위가인 건터 슐러 박사는 “당김음은 재즈의 근본적인 성분으로 아프리카 리듬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며, “아프리카 음악 유산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복합적인 폴리리듬 (polyrhythm; 대조 리듬의 동시 사용) 의 가장 가까운 그리고 가장 최선의 대용품" 이라고 말했다.

 

그는 덧붙이기를 박자구조에 있어서 당김음의 우세함은 서방의 음악으로부터 온 재즈에 특이성을 부여했으며, 이 당김음이 몸을 흔들게 만드는 음악의 원천이 되었다고 언급했다. 또한 그는 “초기의 재즈"라는 그의 저서에서 강한 “비트"를 사용하는 흑인들의 음악은 음악 성분에 있어서 리듬이 가장 최상이라는 것과 충동적인 리듬의 대중화를 이루어냈다고 언급했다.

어떤 음악이 인기가 되려면 그 당시의 사회상의 분위기와 효과적으로 연계되어 있어야 한다. 만약에 그 음악이 광고성이 있는 음악이라면 그것은 성공을 보장한다. 그러므로 뉴올린즈는 재즈가 발전될 수 있는 적당한 환경을 공급함으로 인해 재즈 음악 발전의 가장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
 

뉴올린즈와 재즈
 

프랜시스는 그의 저서 “재즈"에서 뉴올린즈의 어떤 환경이 재즈 음악의 성장을 자극하였는가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뉴올린즈는 번잡한 항구로서 넘쳐나는 많은 수의 클럽과 바가 있을 뿐 아니라, 많은 여인숙과 매춘을 하는 곳, 그리고 도박장과 살롱과 술집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그러므로 각 유흥업소와 무도장들마다 자기들만의 음악 그룹이나 연주가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유명한 클럽들에서 흑인 가수나 연주가들을 고용했고, 그러자 더 많은 장소들에서도 다투어 흑인 연주자들과 싱어들을 환영하게 되었다. 퍼레이드나 장례식, 축제 후에는 반드시 사람들이 공원이나 호수 등지에서 시끄럽고도 혼란한 음악과 춤들을 즐겼으며, 이 새롭게 들어 온 음악은 어디에서나 환영을 받았다.

자연히 성적인 타락 이 그것에 따라 함께 왔다. 그러자 발을 구르며 소리를 치는 것, 당김음으로 이루어진 구성, 괴성 등을 필요로 하는 재즈는 당연히 그들에게 필요하게 된 것이다."

 

또한 서던 박사는 그의 저서에서 “나팔과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사람들은 ‘블루스' 음악을 연주할 것을 강요당하였고, 군중들은 그들이 원하는 ‘지저분한 소리(dirty tone)' 를 들을 수 있을 때까지 술잔과 술병과 컵들을 두드려댔다"라고 쓰고 있다.
 

재즈의 또 다른 모습들

 

재즈의 뿌리에 대해서 언급한 후 서던 박사는 이 새로운 음악의 특성을 이렇게 요약했다.

 

“가장 조용한 종류의 재즈는 ‘블루스' 에서 직접적으로 파생되었다. 재즈는 사람의 목소리로 부르도록 고안된 것이나 연주가가 자신의 악기로 사람의 목소리를 대체하였으며, 그러므로 사람이 노래를 부르는 형식과 블루스처럼 다시 창조되어, 끌어올리는 것, 슬쩍 넘기는 것, 길게 끄는 것, 흐느끼듯이 하는 것, 가성의 효과 등이 첨가되었다."

 

재즈에 대해 다시 요약한다면, 이것은 앞서 존재했던 전 음악의 스타일을 따라 합성된 새로운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음악의 특성은 연주하는 악기의 종류 뿐 아니라, 악기의 연주하는 방법에 따라 만들어지는 이국적인 소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보통 일반적인 음악은 정확한 박자와 소리가 중요시되고 있지만, 재즈는 그렇지 않다. 재즈는 한 음에서 다른 음으로 갈 때 곧바로 그 음을 내는 대신, 날아 가듯이 끌면서 옮겨간다. 그뿐 아니라 박자를 마음대로 길게 끈다든가, 박자를 무시한 채 빨랐다가 느려졌다가 한다든가, 강약, 중 강약 등 형식을 갖춘 박자를 무시한 채, 완만하고 긴장을 풀리게 하는 “쉬운(easy)" 리듬으로 연주를 한다.

 

1917년에 미 해군단지가 뉴올린즈의 스토리빌에서 문을 닫음으로 인해 야기된 경제적인 불황으로 많은 뉴 올린스의 음악가들이 다른 도시로 직장을 찾아 옮겨 가게 되었는데, 그들은 주로 미시시피 멤피스, 특히 시카고에 많이 이주하게 되었다.

 

재즈의 발전으로 여러가지 같지 않은 형태의 음악과 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음악에 “재즈"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처럼, 각 춤에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들은 모두 성적인 의미가 함축된 율동들로써, "Squat", "Grind", "Fishtail" 등등이다.

또한 재즈는 여러가지 다른 형태의 음악들을 불러들이는 일을 하였는데, 그 중에 “소울(soul)" 이라는 음악이 생겼다. 이런 노래를 연주하거나 부르는 사람들은 똑같이 소리(tone)를 내는 것 뿐만 아니라, 음을 올렸다 내렸다 끌다 넘어가다 하는 방법을 사용함으로 듣는 사람의 감정에 영향을 끼친다.

193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 초에는 에너지를 좀 적게 요하는 “스윙 (swing)" 이라는 춤이 유행하게 되었다. 이 춤은 과한 에너지의 소비없이 즐길 수 있는 더 보수적이고 세련된 춤이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춤은, 그 춤을 출 때 연주되는 음악이 도덕적으로 느슨하게 되도록 분위기를 조성할 뿐 아니라, 남녀의 몸이 서로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게 됨으로 인해 리스도인이 즐기기에 바람직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음악과의 대쟁투

 

음악의 변천사와 역사를 보면 선과 악 사이에 있는 대쟁투를 한눈에 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락하기 전 하늘에서 음악을 지휘하는 천사장이었던 사단은 누구보다도 음악의 힘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앞의 글 내용을 통해 독자들은, 시내광야에서 애굽의 신인 금송아지를 숭배할 때 사용되던 음악이 어떻게 아프리카로 전수되었고, 또 그 음악이 흑인 노예들을 통해 어떻게 미국 뉴올린즈로 들어온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애굽의 음악은 흑인 음악에 영향을 끼쳤고, 결국 그것은 그 음악을 바탕으로 하여 생긴 재즈와 및 현재 유행하고 있는 미국의 다른 많은 음악들에 영향을 준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옛날 시내 광야에서 흥분적인 음악과 광란적이고 부도덕한 춤과 예식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을 선동하여 거짓 신을 섬기게 한 사단은, 오늘날도 음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역사한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로 가나안 변경에서 발람의 꾀에 빠지게 하고, 이방신을 섬기는 예식에 참여하게 하여 우상 숭배와 간음죄에 빠지게 한 것도 다 사단이 고안해 낸 유혹에 의해서였다.

사단이 그들을 유혹하고 미혹시키는 미끼로 사용한 것은 두말할 것 없이 자극적인 음악과 현혹적인 춤과 육욕적이고 현란한 눈의(안목의) 정욕적인 광경들이었다.

 

오늘날도 사단은 많은 매개체들, 특히 음악을 사용하여 세상을 지배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점령하려고 힘쓰고 있다. 그리하여 사단에 의해 자주 음악이 악용되어 악한 목적에 사용되고, 사람을 유혹하는데 가장 유력한 것이 된다.

사단은 음악을 젊은이들의 마음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로 삼을 수만 있으면 아무 음악이든 반대하지 않는다. 마음을 하나님께로부터 분리시키고 사단을 섬기는 데 시간이 바쳐지게 하는 것은 무엇이나 그의 목적에 적합할 것이다. 사단은 많은 사람들이 그의 능력에 의하여 감각을 잃고 있는 동안 그들을 정신 없이 심취되어 있는 상태에서 사로잡기 위하여, 가장 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수단을 통하여 역사한다.

 

음악은 좋게 이용되면 하나의 축복이다.

그러나 그것은 흔히 사단이 영혼들을 사로잡는 가장 매력적인 도구 중 하나로 쓰인다. 음악은 그것이 남용되면, 헌신하지 못한 사람들을 교만과 허영과 어리석음으로 이끈다.

헌신과 기도의 위치를 대신하도록 허용되면, 그것은 무서운 저주가 된다. 젊은이들이 함께 모여 노래를 부르게 되는데, 비록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자들일지라도 그들의 천박한 대화와 음악의 선택에 의하여 하나님과 그들의 신앙에 욕을 돌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거룩한 음악은 그들의 취미에 점점 맞지 않게 된다.
 

음악의 용도
 

음악은 원래 사람의 마음과 사상을 순결하게 하며, 정신을 고상하게 하고 향상시키는 일에 사용되도록 고안된 것이었다.

 

런데 영혼 속에 하나님께 헌신하고 감사하는 생각을 일깨우는데 사용되던 하늘의 음악과 또한 이스라엑 백성들이 옛날 광야를 여행할 때 부르던 거룩한 노래의 용도와 오늘날 흔히 쓰여지고 있는 음악의 용도 사이에는 얼마나 큰 대조가 있는가!

 

음악이 바르게 사용될 때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고귀한 주제(主題)로 높이고, 심령에 영감을 일으키며, 신앙을 향상케 하는 하나님의 귀한 선물이 된다.

음악은 행동의 조화를 촉진하고, 용기를 잃게 하거나 힘을 약하게 하는 어두운 생각과 앞날에 좋지 않은 일이 전개될 것 같은 불안감과 두려움을 없애는 힘을 가졌다.

또한 노래는 영적 진리를 마음에 감명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다. 죄와 낙담으로 무겁게 짓눌려 거의 절망에 빠지려던 사람이, 오랫동안 잊고 있던 어린 시절에 부른 노래의 가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돌이키게 되며, 인생에 새로운 의의와 목적을 가지게 되고 새사람이 되어, 용기와 즐거움을 다른 사람에게까지 나누어 주게 된 실례가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또한 찬양은 사단이 주는 죄의 유혹과 시험을 이기게 하는 효과적인 무기가 된다.

예수께서 지상 생활을 하실 때, 때때로 닥쳐오던 어려운 시험과 고난을 이기기 위해 시편과 성경구절들을 노래로 부르시며 이용하신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찬양과 노래를 부르는 것은 기도를 드리는 것과 마찬 가지로 예배의 행위이다. 사실 노래는 많은 경우에 기도이다. 이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은 앞으로 더욱 많은 찬송을 불러 하나님을 찬양하며 노래로 주님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신앙 생활을 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 음악에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재능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대신에 자신을 높이기 위하여 사용하고 있는 예를 본다. 그것은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하는 영광을 인간이 가로채는 것이 됨으로 각별히 조심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 음악을 잘못 즐기는 경솔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가지 말라고 금지하신 오락의 장소로 자주 가서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연합하려고 한다. 이런 것들은 사단이 음악을 이용하여 그리스도인들을 멸망하게 하려는 방법들이다.

이와 같이 함으로써 적당하게 사용하면 큰 축복이 될 음악이 사단이 사람의 마음을 유인하여 의무를 떠나게 하고 또한 영원한 사물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데 사용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의 하나가 된다.
 

미래의 하늘의 음악

 

멀지 않은 장래에, 우리의 구세주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는 하늘의 문 어귀에 인도하실 때에 우리는 보좌를 두른 하늘 합창대가 부르는 찬송과 감사의 노래를 들을 것이다.

 

그러나 이 천사들의 노래 소리는 지금도 우리 마음으로 들을 수 있다. 우리가 항상 하늘과 연결되어 있을 때에 우리의 마음은 하늘의 가수(歌手)들에게 접근될 것이다.

하늘과의 교제는 땅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늘의 찬양의 기본 곡조를 배우는 것이다. 만일 하늘의 찬양대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이 지상에서 하늘의 곡조를 먼저 배워야 하며, 하늘의 마음과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사랑과 그리고 당신에게 대한 헌신으로써 가득 찬 순결한 마음에서 나오는 찬양의 노래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신다.

우리의 생활이 항상 찬양으로 가득 채워지는 신앙 생활이 되게 하자!

(Dr. H. Lloyd Leno )

 

 

 

 

 

 

 

 

 

 

 

 

 

이명박 대통령은 23일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세계 평화와 국가위기 극복을 위한 기도 대성회’에 보낸 영상축하메시지에서 자신과 나라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성도님들께 감사했다.

 

 영상축하메시지를 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은 “저는 아세아 국가들과 함께하는 정상회의를 위해 태국에 와 있다. 지금 전세계가 경제위기와 자연재해, 분쟁을 겪고 있는 데 기도대성회로 모여 세계 평화와 나라를 위해 기도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우리나라 교회들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기도로 지원했다.”고 거듭 감사의 뜻을 나타내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9.11 테러가 발생했을 때 등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해 왔다. 특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라를 위해 기도해 주신 것에 감사를 드린다.”고 말하고 “(기도 지원에 힘입어) 어느 나라보다 경제 위기를 빨리 극복하고 도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특히 “새벽 5시에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말하자 열화와 같은 박수로 이 대통령을 격려했다. 이 대통령은 “G20 의장국이 되어 내년도 우리 나라에서 회의를 주최한다.”며 성공적 개최를 위해 기도로 지원해 줄 것을 당부했다.

 기도회에는 68개국 1168명의 해외 교회 지도자들을 포함 10만 명이 참석했다.  

 



 

 

 

 

 

 

 

 이번 호에는 글의 분량이 너무 많아 장재언칼럼을 쉬겠습니다.

 

 

 

 

 

 


 

 

 

지구촌 인구 4명중 1명이 무슬림인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BBC 방송은 지난 8일 미국의 싱크탱크인 퓨 포럼(PEW FORUM) 보고서를 인용해“세계 무슬림 인구는 15억7000만 명으로, 이는 전체인구의 25%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특히 무슬림 인구의 61.9%가 인도네시아와 파키스탄, 인도, 방글라데시 등 아시아 및 태평양 지역에 몰려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전했다.
 

퓨 포럼은 232개 국가 및 지역의 인구 조사 데이타와 인구통계 보고서 등을 수집한 후, 3년간의 연구 끝에 이 보고서를 펴냈다.
 

그 동안 세계 무슬림 규모는 10억-18억 명으로 다양하게 추산돼 왔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최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이어 아랍 및 북아프리카 지역에 20.1%가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15.3%가 사하라 사막 이남의 남아프리카에 분포돼 있다. 무슬림이 가장 많은 나라는 인도네시아로 2억300만 명에 달했다.
 

미국에는 전체 무슬림의 0.3%인 46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는 미국 인구의 0.8%를 차지한다. 또한 유럽에는 2.4%인 3800만 명으로, 이는 유럽 인구의 5%에 달하고 있다.
 

아마네이 자말 교수(프린스턴대학)는 “이 연구를 통해 무슬림이 주로 아랍에 몰려 있고, 아랍이 곧 무슬림이란 등식이 깨졌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퓨 포럼은“무슬림의 전체 규모가 예상보다 훨씬 크다”면서 “세계 무슬림 인구가 얼마나 증가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를 분석하는 연구의 기초 자료로 이 보고서가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최초의 민영교도소인 '기독교 소망교도소'가 내년 6월 완공을 앞두고 공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경기도 여주군 외룡리. 푸른 숲으로 둘러 쌓인 공사현장에는 공정율 40%의 소망교도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설계부터 교도소 같지 않게, 세계 최고의 시설로
 

올해로 골조공사를 마무리 짓고 내년 10월 개소를 목표로 한 소망교도소는 수용자를 단지 '가둬두는 곳' 에서 벗어나 '내적 변화를 꽤 할 수 있는 곳'을 목표로 7개 동으로 구성됐다.
 

방마다 커다란 창이 눈에 띄는 수용동은 각종 소그룹 활동과 개인휴식이 가능한 ‘교육-생활관'의 개념을 적용했고,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교회당은 예배는 물론 각종 문화 활동이 가능한 공간으로 지어졌다.
 

또, 모든 식사는 국영교도소와 달리 식당에서 이뤄지도록 했고, 각종 강의와 상담이 이뤄질 교육동에서는 자원봉사자들과 함께하는 각종 교육프로그램이 진행된다.
 

김삼환 목사 ((재)아가페 이사장)은 "설계부터 교도소 같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별장 같은 분위기 속에서 억압하지 않고 수용자에게 접근해 이들의 내적 변화를 꽤 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범률 6%...재범률을 크게 낮출 것으로 기대
 

특히, 소망교도소는 재범률을 크게 낮출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2008년 범죄백서에 따르면 국가 교정시설 출소자의 재입소율은 약 50%에 달하는데 반해, 2005년부터 여주교도소에서 시범 운영중인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한 이들의 재입소율은 현재까지 6%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정부가 소망교도소에 10억 8천만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소망교도소에 대한 사회적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건축에 소요되는 비용은 총 300억원, 현재 이중 절반 정도가 후원 약정된 상황이다. 재소자의 삶을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이 사업에 한국교회 전체의 동참이 요구되고 있다.


 

 

 

 



한 해의 끝자락을 눈에 보여주는 이 사진을 보면서

잠언의 말씀을 생각해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언16:9) 
 

 


 

 

 

 

 

 

 

 

 

한국전문인선교협의회 조용백 목사

 

이 귀한 글을 비전통신에 싣게 된 것을 필자 조용백목사님께 감사 드립니다.  날로 변하는 세계선교에 관한 너무나도 명쾌한 방향을 제시해주셔서 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장재언)

 

 

한국의 선교 구조는 98%를 차지하고 있는 평신도 자원들을 놀리고 있다.

 

한국은 20세기 초엽에 교회가 개척되기 시작해서 한국적으로 선교다운 선교를 하게 된 것은 최근 15년을 전후해서 꽃을 피우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아직은 선교의 초년생 같아서 고치고 다듬고 보완해 나가야 될 것이 많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많은 외국의 선교 전문가들은 한국 교회에게 하나님께서 21세기 세계선교의 촛대를 허락하셨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한국선교가 조로(早老)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걱정들을 하는 것을 심심찮게 듣는다. 이러한 분석은 무분별한 서구선교형태의 졸속적 모방, 재정의 중복 투자, 선교전략의 부재, 국제적 네트워크와 연합 인식의 부재, 구태의연한 선교정책, 물량주의, 거품경쟁 등 여러 양상을 놓고 볼 때 일견 귀를 기우려 봄직한 소리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한국선교가 적시적소(適時適所)의 방향을 어떻게 잡는가 하는 것이다. 즉, 세계 선교동향의 정확하고 방대한 자료들을 놓고 하나님의 마음이 이 시대에 어디에 가장 우선적으로 가 있는가를 찾는 것이 필요한 때이다.

 

여기의 조그마한 글은 21세기의 문턱에서 이런 고민을 하고 출구를 찾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준비한 것이다.
 

1. 종족 개념 선교의 확산 및 정착
 

먼저는 세계선교가 미전도종족(Unreached People) 선교의 개념이 확실히 정착이 될 것이다. 여기에 대한 성경적 근거는 신구약을 통해서 매우 확실하다. (창12:1-3, 마24:14, 계7:7-9등) 즉,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수 있는 중요한 근거 중의 하나는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이 증거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선교적 책임이 미전도종족의 복음화로 집중되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나라단위 중심으로 선교를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었다.

“어느 선교사 하면 어느 나라로 파송”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많은 국제 선교 연구소나 전문기관들의 보고서를 참고해 보면 나라단위의 복음전도와 교회개척은 이미 1980년대 후반에 종결되었다고 한다. 이제는 한 나라 안에 있는 수 많은 종족들에게로 우리들의 눈의 초점이 맞추어지기를 하나님께서 고대하고 계신다.
 

2. 도시선교의 중요성 대두 및 활성화
 

내년(2000년)이 되면 전세계의 인구 백만이 넘는 대도시에 거주하는 인구가 전세계 인구의 56%가 된다는 사실을 아는가?

 

이는 지난 30여년 동안 제3세계에서의 집중적이고도 엄청난 이농(離農)현상의 결과이다. 대부분의 선교지들의 이농현상들은 70,80년대의 한국의 이농현상은 상대도 안될 정도로 가히 폭발적이다. 이러다 보니 도시는 미전도종족의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대도시 인근의 지역에서 미전도 종족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대도시에 몰려든 탓이다. 그리고 이들은 도시 특유의 세속화, 도시화 현상 때문에 영적 공황을 초래하고 가치관의 혼돈을 겪기 때문에 복음의 수용도가 농촌의 그것보다 훨씬 높다.

 

그래서 현대 미전도종족 선교는 마을지역에서보다 대도시에서 오히려 효과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대도시로 모여든 사람들을 복음화시켜서 자기의 고향의 복음 전도사로 내려보내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을 다이빙의 스프링 보드를 연상하여 대도시의 미전도종족 사람들을 스프링보드 식으로 사용하여 연고지로 점프해 들어간다고 하여 ‘스프링보드(spring board) 전략’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대도시는 정치, 경제, 상업, 정보, 통신, 문화 등 모든 분야의 중심지이다. 따라서 자연히 영적인 중심지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새로운 선교지역에서 항상 도시를 중심으로 사역을 한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왜냐면 여러 사례들과 선교역사에서 배우듯이 도시가 영적으로 복음화 되면 인근의 여타지역들은 복음의 물결에 쉽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21세기 선교의 교두보는 대도시이다.
 

3. 비거주 선교(Non-residential Mission) 개념의 확산 및 비거주 선교사의 활성화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는 선교사 하면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교회개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전통적으로 그렇게 불렀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가면서 한 선교지역에서 오랫동안 머물며 사역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지금도 전세계는 종교적 근본주의와 국수적 민족주의 등의 영향으로 선교사의 전면적인 허입을 금지하는 국가가 89개국이나 된다.

 

2010년경에는 이러한 나라들이 139개국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기독교 배타지역들이 많이 늘어나면서 자연히 선교는 비거주 사역이 중요한 자리매김을 하게 될 것이다. 이에는 정보의 신속한 교류와 Networking의 급속한 발전도 비거주 선교의 효율성을 증대시키는데 한 몫을 톡톡히 할 것이다.

 

지금부터 10년 후면 지금의 10대 20대의 청소년들이 선교의 주역으로 자리바꿈할 시대이다. 그런데 이들이 영향을 받고 자라난 시대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시대이다. 이 시대의 특징은 전체성이나 공동체성을 강조하기 보다는 개인의 개성이나 장점들을 최대한 발휘하는 세대이기 때문에 선교에 있어서도 전문성이 강조되게 되어 있다.

 

즉, 선교라는 전체적인 구조를 생각하며 그 안에 사역하기 보다는 자기의 전문적 부분이 선교지에서 사용되는 것에 더 매력을 두는 세대들인 것이다. 한곳에 오래 머물면서 실현되는 것 보다는 자기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선교지역을 찾아 다니기 시작할 것이다. 여기서 몇 개월, 저기서 몇 년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들은 이러한 유동적 선교 패러다임을 훨씬 안정적으로 생각하는 세대들인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비거주 선교사는 한층 더 늘어날 전망이다.

 

과거의 선교는 선교현지 사정을 무시하거나 선교사의 자문화적 시각으로 바라보며 선교를 하여 많은 부작용을 초래했었다.

 

그래서 선교현지를 조사(research)하여 그들을 복음화 시킬 수 있는 최적의 전략들을 개발하고 선교사와 교회들을 동원시키는 새로운 사역의 형태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리서치 네트웍 전문 선교사들이다.

이들은 다수의 미전도 종족들과 선교현장들을 찾아 다니며 리서치와 선교전략개발, 선교사 네트웍과 코디네이팅등을 전문으로 하는 비거주 선교사들이다. 지금 한국의 AAP(한국미전도입양운동본부)와 한국전문인선교협의회(KAT), 그리고 미국 남침례교단 선교부 등에서 사역중이고 개발 중인 주제들이다.

 

그러므로 비거주 형태의 선교사 중에서는 정보(사람, 지식, 자원들)네트워킹 선교사 개념이 등장하며 정착될 것이고(실제로 미국이나 유럽, 한국의 전문 선교연구기관이나 정보 유통 협의체나 기관 등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 개념으로 일하는 전문 선교사이다), 컴퓨터 매체를 이용한 사이버 스페이스(Cyber Space) 선교사들이 맹활약을 하게 될 것이다.
 

4. 전문인 선교(Tentmaking Mission) 개념의 확산 및 활성화
 

한국의 선교 구조는, 좀 심하게 말하면, 98%를 차지하고 있는 평신도 자원들을 놀리고 있다. 상대적으로 2%정도의 비율밖에 안 되는 목사출신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이것저것 물불 안 가리고 다 하면서 코피 터져라 혹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일단 이러한 불균형적 선교구조는 하나님께서 별로 내키지 않게 생각하는 구조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서구는 이미 보편화 된 것이지만 한국은 더 많은 평신도 전문인 자원들을 선교지에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자꾸만 문이 닫히는 선교지역에 유일하게 들어갈 수 있는 자원들도 전문인 선교사들이고 보면 이들의 역량을 교회에서 키워주고, 교단에서나 선교단체에서 제도적으로 전문인 사역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틀을 하루빨리 잡아가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볼 수 있다.

 

KAT(한국전문인선교협의회)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서구에서는 전문인선교사의 사역 종류가 170여종에 이르는데 한국의 전문인 선교사 사역 종류들은 고작 30여 종류밖에 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선교사역의 특성화, 전문화에 대한 감각을 한국교회가 보완할 필요가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요, 선교지의 ‘교회개척’이라는 복잡하고 유기적이며 문화 총체적인 작업을 전도와 회심, 그리고 교회건물과 조직 설립이라는 단순한 도식 위에 놓은 결과라고 자성(自省)하는 일각의 목소리들을 진지하게 들어 볼 필요가 있는 때임을 암시하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5. 단기선교의 전략화와 고효율화
 

해외선교가 “건강한 선교“, 또는 ”고효율, 저비용적 선교“를 하려면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현지 교회 혹은 현지의 한인 교회들의 자원들을 ”충분히“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군대적 용어로 말하자면 장기 선교사는 육군 보병이라고 볼 수 있다. 적진을 충분히 알지 못하고 또는 주요 기지나 거점의 능력을 상실시키는 전초작업을 하지 않고 육군 보병을 보내는 어리석은 일은 현명한 지휘관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군 보병의 희생은 정보의 부재나 거점 확보의 미비, 그리고 적의 주력 화기 및 진지 능력 상실의 실패에 따라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일어났던 유고 내전의 양상을 보면서 필자는 이 부분의 중요성을 크게 느낀 바가 있다.

NATO군이 코소보 내의 유고군에 대해 교전을 하면서 먼저는 수만 회의 전폭기의 출격과 미사일의 공격으로 적의 주요 거점들을 초토화시키는 것을 보았다. NATO군은 이 과정에서 아군의 보병을 단 한명도 코소보 내에 보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전기지실에서 일어나는 버튼 전쟁(button war)으로 인해 코소보 내의 유고 전투능력은 80%정도가 파괴되었고 그들이 전투능력을 거의 상실했을 때에 NATO는 연방군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NATO 연방군이 코소보내에 진주했을 때는 거의 별다른 저항없이 그 지역을 접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선교도 마찬가지이다. 이제 장기 선교사를 “블랙박스(black box)“인 지역에 믿음으로 보내는 시대는 지나갔다. 정탐여행(expedition trip)이나 전문적인 리서치(선교지역연구) 팀을 훈련시켜 선교지에 먼저 보내어 그 지역을 살피고 분석하고 최적의 선교전략을 도출해 내는 작업은 병과에 있어서 척후, 통신, 정보 등의 분야에 해당된다.(정탐여행)

그리고 달란트를 가지고 있는 전문인들을 통해서 현지인들의 가장 갈급한 필요들(felt needs)를 채워주는 것은 교회개척을 한층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탁월한 방법이다.(전문인 달란트 단기선교여행)

한국에는 이러한 일에 준비된 전문인 선교 헌신 인력들이 많이 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적절한 훈련과 자기가 가야 할 곳의 풍부한 정보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도 요즘은 국내에서 해결되고 있다. 그리고 단기선교는 미사일이나 대공포 혹은 폭격기와 같다. 이러한 것들로 적 진지를 사실상 무력화 시킨 후에 보병을 파견하는 것이다. 그러면 보병의 역할은 적들이 물러간 전쟁의 잔해에서 전리품들을 줒어 오는 것과 같은 정도의 아주 효율적인 전과(戰果)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미사일이나 대공포, 혹은 여러 폭탄들을 어떻게 적재적소에 쓰느냐 하는 것을 고려해야만 한다. 이러한 일들이 교회내의 전문인 사역자들을 선교사역의 정황에 맞게 여러 분야들을 효과적으로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이것이 단기선교로 선교지를 전략적이고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는 주요 방법 중의 하나이다.
 

21세기는 한국이 건강한 선교를 함으로 인해서 ‘물이 바다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온 땅에 충만해 질 수 있도록’하는 하나님의 역사를 선교를 위해 헌신하며 수고하는 이 땅의 모든 동역자들과 함께 이 세대에 눈으로 똑똑히 목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어네스트 헤밍웨이를 표지 커버스토리로 다룬 타임지.

타임지는 20세기를 망라한 연대별 분야별로 100권의 책을 선정했다. 

 

The top 100 books of TIME

         

        Ⅰ. 문학

        1. D.H.로렌스/ 아들과 연인/ 1913
        2. 루쉰/ 아큐정전/ 1921
        3. 엘리엇/ 황무지/ 1922
        4.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1922
        5. 토마스 만/ 마의 산/ 1924
        6. 카프카/ 심판/ 1925(?)
        7.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927
        8. 버지니아 울프/ 등대로/ 1927
        9. 헤밍웨이/ 무기여 잘있거라/ 1929
        10. 레마르크/ 서부전선 이상없다/ 1929
        11.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1932
        12. 앙드레 말로/ 인간조건/ 1933
        13.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1939
        14. 리처드 라이트/ 토박이/ 1940
        15. 브레히트/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1941
        16. 카뮈/ 이방인/ 1942
        17. 조지 오웰/ 1984/ 1948
        18. 사뮈엘 베게트/ 고도를 기다리며/ 1952
        19.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롤리타/ 1955
        20. 유진 오닐/ 밤으로의 긴 여로/ 1956
        21. 잭 케루악/ 길 위에서/ 1957
        22. 파스테르나크/ 닥터 지바고/ 1957
        23. 치누아 아체베/ 무너져내린다/ 1958
        24. 귄터 그라스/ 양철북/ 1959
        25. 조지프 헬러/ 캐치 22/ 1961
        26.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1962
        27.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 동안의 고독/ 1967
        28.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1980
        29.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1984
        30. 살만 루슈디/ 악마의 시/ 1989

         

        II. 인문

        1. 지그문트 프로이트/ 꿈의 해석/ 1900
        2. 페르디낭 드 소쉬르/ 일반언어학강의/ 1916
        3.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1920
        4. 라다크리슈난/ 인도철학사/ 1923~27
        5. 지외르지 루카치/ 역사와 계급의식/ 1923
        6. 마르틴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1927
        7. 펑유란/ 중국철학사/ 1930
        8. 아놀드 토인비/ 역사의 연구/ 1931~64
        9. 마오쩌둥/ 모순론/ 1937
        10.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이성과 혁명/ 1941
        11. 장 폴 사릍르/ 존재와 무/ 1943
        12. 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1945
        13. 호르크하이머,아도르노/ 계몽의 변증법/ 1947
        14. 시몬 드 보봐르/ 제2의 성/ 1949
        15.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1951
        16.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철학적 탐구/ 1953
        17. 미르치아 엘리아데/ 성과 속/ 1957
        18. 에드워드 헬렛 카/ 역사란 무엇인가/ 1961
        19.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야생의 사고/ 1962
        20. 에릭 홉스봄/ 혁명의 시대/ 1962
        21. 에드문트 후설/ 현상학의 이념/ 1964
        22. 미셸 푸코/ 마과 사물/ 1966
        23. 노엄 촘스키/ 언어와 정신/ 1968
        24. 베르터 하이젠베르크/ 부분과 전체/ 1969
        25.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앙티오이디푸스/ 1972
        26. 에리히 프롬/ 소유냐 삶이냐/ 1976
        27. 에드워드 사이드/ 오리엔탈리즘/ 1978
        28.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979
        29. 피에르 부르디외/ 구별짓기/ 1979
        30. 위르겐 하버마스/ 소통행위이론/ 1981

         

         

         III. 사회

        1. 브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무엇을 할 것인가/ 1902
        2. 프레드릭 윈슬로 테일러/ 과학적 관리법/ 1911
        3. 안토니오 그람시/ 옥중수고/ 1926~37
        4. 라인홀트 니버/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1932
        5. 존 메이너드 케인스/ 고용.이자.화폐 일반이론/ 1936
        6. 윌리엄 베버리지/ 사회보험과 관련 사업/ 1942
        7. 앙리 조르주 르페브르/ 현대세계의 일상성/ 1947
        8. 앨프리드 킨지/ 남성의 성행위/ 1948
        9. 데이비드 리스먼/ 고독한 군중/ 1950
        10. 조지프 슘페터/ 자본주의.사회주의.민주주의/ 1950
        11. 존 갤브레이스/ 미국의 자본주의/ 1951
        12. 대니얼 벨/ 이데올로기의 종언/ 1960
        13. 에드워드 톰슨/ 영국노동계급의형성/ 1964
        14. 마루야마 마사오/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 1964
        15. 마셜 맥루헌/ 미디어의 이해/ 1964
        16. 케이트 밀레트/ 성의 정치학/ 1970
        17. 존 롤스/ 정의론/ 1971
        18. 이매뉴얼 위러스틴/ 세계체제론/ 1976
        19. 앨빈 토플러/ 제3의 물결/ 1980
        20. 폴 케네디/ 강대국의 흥망/ 1987

         

         

        IV. 과학

        1. 알버트 아인슈타인/ 상대성원리/ 1918
        2. 노버트 비너/ 사이버네틱스/ 1948
        3. 조지프 니덤/ 중국의 과학과 문명/ 1954
        4. 토머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 1962
        5. 제임스 워트슨/ 유전자의 분자생물학/ 1965
        6. 제임스 러브록/ 가이아/ 1978
        7. 에드워드 윌슨/ 사회생물학/ 1980
        8. 칼 세이건/ 코스모스/ 1980
        9. 이리야 프리고진/ 혼돈으로부터의 질서
        10. 스티븐 호킹/ 시간의 역사/ 1988



        V. 예술,기타

        1. 헬렌 켈러/ 헬렌 케러 자서전/ 1903
        2. 아돌프 히틀러/ 나의 투쟁/ 1926
        3. 마하트마 간디/ 자서전/ 1927~29
        4. 에드거 스노우/ 중국의 붉은 별/ 1937
        5. 아놀드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1940~50
        6. 안네 프랑크/ 안네의 일기/ 1947
        7. 에른스트 한스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1948
        8. 말콤 엑스/ 말콤 엑스의 자서전/ 1966
        9. 에른스트 슈마허/ 작은 것이 아름답다/ 1975
        10. 넬슨 만델라/ 자유를 향한 긴 여정/ 1994

         

 

 

 

 

 

 

 

 

 

 

 

 

요도감염(방광염, 신장염, 전립선염)의 방지

 

크랜베리(cranberry) 주스의 규칙적인 섭취로 '요도 감염'을 일으키는 항생제 내성균을 억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에 발표되었다.
 

미국 Rutgers 대학, New Jersey 대학 및 Michigan 대학의 공동 연구로 이루어진 본 연구 결과에 의하면 크랜베리 주스가 항생제 내성을 가지고 있는 대장균(E. coli)을 효과적으로 억제했다고 한다.
 
연구책임자인 Rutgers 대학의 Howell 박사는 "크랜베리 주스를 섭취한 사람들의 소변을 검사한 결과 요도에 부착되어 있던 항생제 민감성 세균 및 항생제 내성 세균들이 배설되는 것이 관찰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크랜베리 속에 들어있는 특정 성분(프로안토시나니딘)이 균 들의 활동성을 저지하여 방광으로부터 소변을 통해 배출되도록 촉진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며 그 결과 요도 감염률을 낮추는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고 말했다.
 

핀란드의 울루대학 미생물학 연구팀 또한 영국의 의학전문지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 최신호에 발표한 연구보고서에서 요도염 병력이 있는 여성 1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험 결과 이 같은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조사대상자들을 3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에겐 매일 50㎖의 크랜베리 주스를, 또 한 그룹에겐 건강에 도움이 되는 장내(腸內) 박테리아가 들어있는 유산균 음료를 매일 100㎖ 마시게 하고 나머지 그룹에게는 그 어느 것도 주지 않고 6개월을 지켜 본 결과 크랜베리 주스를 섭취한 그룹만 요로감염률이 다른 그룹에 비해 50%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실험이 진행되던 6개월사이에 요로감염이 한번 이상 발생한 사람은 크랜베리 주스 그룹이 8명 (16%), 비교그룹이 18명(36%), 유산균 음료 그룹이 19명(39%)로 각각 나타났다고 이 연구팀은 밝혔으며, 이는 크랜베리 주스가 요로감염 재발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크렌베리-안토시아닌의 항산화 효과
 

보라색 과일에는 안토시아닌이라는 색소가 풍부한데 이 색소는 질병과 노화의 원인으로 지목받는 활성산소를 효과적으로 증화하는 작용이 매우 뛰어난다.

크렌베리에 많이 들어 있는 안토시아닌은 플라보노이드계 색소로 동맥에 침전물이 생기는 것을 막아 피를 맑게 하며 심장 질환과 뇌졸중 위험을 감소시킨다.

 

최근에는 안토시아닌이 소염, 살균 효과가 뛰어난데 아스피린보다 10배나 강하지만 위에는 전혀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게다가 망막에서 빛을 감지해 뇌로 전달해 주는 로돕신 색소의 생성을 도와 비디오 증후군의 여파로 생기는 눈의 피로를 줄여 주기도 한다.
 

University of Scranton의 연구책임자인 Joe A. Vinson 박사는 크렌베리 주스를 매일 세 잔씩 3개월 동안 마시면 좋은 콜레스테롤 고밀도 지단백(HDL)의 양이 상당히 증가하고, 혈청 항산화능력(plasma antioxidant capacity)이 증가되며 이 두 현상은 심장병의 위험률 감소와 연관이 있다고 했다. 이는 크렌베리 속의 강력한 항산화 물질의 일종인 polyphenols 수치가 높기 때문이다. 또 크렌베리는 소변의 ph를 저하시키고 옥살산의 배출과 요산의 상대적 과포화를 증가시킨다. 이는 크렌베리 성분이 소변을 산성화하기 때문이다.
 

중풍에 의한 뇌신경 세포의 손상 방지
 

미국화학학회(American Chemical Society)에서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크렌베리 추출물로 처리한 신경세포의 경우 그렇지 않은 세포보다 사멸률이 43~49% 정도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이 결과를 크렌베리 추출물이 중풍에 의한 뇌신경 세포의 손상을 방지하는 기능이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현재 크렌베리에서 이러한 효과를 지닌 성분을 분리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 성분이 산화 및 산화에 의한 프리 라디칼(free radicals)의 축적을 예방하는 것으로 밟혀진 플라보노이드 물질의 한 종류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최근 영국에서 크렌베리는 충치, 잇몸병 등 각종 치주질환의 예방용도로 각광받고 있다. 실제 영국 치아건강재단(BDHF)의 경우 크렌베리가 유해한 세균들이 치아에 달라붙지 못하도록 억제함을 입증했던 로체스터대학 연구팀의 논문을 근거로 음용을 권장하고 있다. 로체스터대학팀의 연구논문은 크렌베리가 충치와 잇몸병의 발병에 관여하는 플라그의 생성을 저해하는 작용을 발휘할 수 있음을 입증하기도 했다.
 

최근엔 껍질과 씨까지 갈아 동결건조한 100% 크렌베리 파우더가 시중에 나와 있기도 하다. 크렌베리 1.7kg을 동결건조해 파우더 형태로 제품화해 적은 양으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게 업체의 설명이다. 하루에 1~2티스푼을 우유나 요구르트에 섞어 먹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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