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va Dawn
고귀한 시간 ‘낭비’-예배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예배에 참예한다. 참된 예배를 드리고, 내가 아니라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가 되고자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소원이다.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고 해서 그것이 참된 예배일까?
당신은 혹시 예배를 이용해 자신의 만족을 추구하고 있지나 않는가?
이제 우리의 안일한 일상적 예배 관을 벗어날 때가 되었다.
이번에 만난 책은 영성신학자 마르바 던(Marva Dawn)의 「고귀한 시간
낭비-예배」(김병국 전의우 옮김, 이레서원)다. 제목이 아주 도전적이다.
어떻게 예배를 ‘낭비’라 말할 수 있는가! 책을 쥐는 순간 당신의 기분이 조금
상할 수 있다. 그러나 책을 읽어가면서 그녀가 왜 ‘고귀한 시간 낭비’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가를 알게 된다. 원제는 「A Royal "Waste" of Time」(훌륭한 시간 낭비)이다.
이렇게 제목을 단 것은 한 학생이 교회 오르간과
찬양대에 관심이 줄어드는 현실을 놓고 “우리가 여기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라는 질문을
했고, 그 질문에 영감을 받은 그가 채플의 설교제목을 ‘고귀한 시간 낭비’로 정한 데서 온 것이다.
그녀는 우선 시간낭비와 고귀한 시간낭비를 구분한다.
우선 그는 예배를 시간낭비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그 예배가 어떤가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진다. 단지 하나님께 점수를 따거나 성공한 교회임을 과시하는 예배라면 그것은 저급한 시간낭비일
뿐이다.
이와 달리 하나님을 예배의 주체요 대상이요 무한한 중심으로 삼고,
오직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기에 가장 합당하신 하나님께 온전히 드릴 때
그것은 고귀한 시간낭비다.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고귀한 시간낭비의 예배에서 우리는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의 고귀한 광휘(splendor)에 빠져 드는 독특함을
맛볼 수 있다. ‘고귀한 광휘 빠져 든다’는 것은 마르바가 아주 좋아하는 표현이다. 그의 광대하심과
숭고하심과 광채를 놀랍게 경험하는 것이다. 예배뿐 아니라 말씀 묵상과 연구, 기도, 찬양연습 시간에도 임재 하시는 그분의 광휘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
고귀한 시간낭비는 하나님을 우리 예배하는
삶에 두는 것이자 그분의 임재 속에서 가능한 한 우리의 최고를 드리며, 섬김의 삶으로 나가게 한다.
이 예배는
우리의 낮아짐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하고, 그리스도의 가난에 동참하도록
한다. 더 이상 자신의 힘이나 성취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며 이웃사랑에 시간을
들이도록 성령은 우리에게 능력과 겸손의 옷을 입히신다. 이런 의미에서 고상한 시간낭비는 교회에 경이감을
부활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마르바는 교인들에게 예배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설문조사를 하지 말라고 한다. 상식을 뒤엎는 주문이지만 교인들이 원하는 것이 그들에게 해로울 수 있다는 말에
수긍이 간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소비주의자의 선택에 영합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을 똑바로 양육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민주주의를 지향하지 않는다.
교회는 성령주의(Spiritocracy)와
은사주의(charismacracy)를 지향한다.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의 권위아래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며,
그리스도가 우리를 통치하게 하고, 성령님이 주시는 은사에
따라 봉사하게 한다.
고귀한
시간낭비를 위해서 우리가 버려야 할 것도 많다.
먼저 우리 자신의 욕심이다. 마르바는 예배를
이용해 교인수를 늘리려는 목회자의 흑심을 과감히 거부한다. 진정한 예배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잃게 만드는 포스트 모더니즘도 경계
대상이다. 상대주의의 옷을 입은 이것은 목회자로 하여금 진리의 복음을 더 적게 제시하게 하고,
오락적 형식을 더 많이 도입해 내용을 희생시키며, 예배와 전도, 전도와
마케팅을 혼동하게 만든다.
더욱이 과거와 권위를 부정해 교회가 지금까지 축적해온 지혜와 역사를 흔들어놓는다.
급기야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으로 전락시킨다.
현재 기독교에 대한
저항이 많은 것도, 우리 주변에 유교적 기독교인이나 혼합주의적 교인이 많아지는 것도 이런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마르던은 텔레비전도 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엄청난 정보를 제공해 주지만 사실 그 정보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게다가 그것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라지 못하게 하며 그저 정보를 받아들이고 버리는 기계로 만들 뿐이다. 이것이 예배에도 영향을 미쳐 예배자를 하나님의 광휘에
잠기게 하기보다 기계적인 예배자로 만들고, 프로그램을 즐기듯
예배를 시청한다.
우리만 시간낭비를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도 이렇듯 우리의 잘못된 삶을 바로 고치기 위해 낭비(extravagance)를 하신다. 우리에게 사랑과 용서와
자비를 아낌없이 주시는 것이다. 그 낭비를 통해 우리 각자는 그리스도인으로, 교회는 보다 바람직한 교회로
다시 태어난다.
마르바는 고귀한 낭비를 통해 예배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참으로 경배하고, 우리의 삶을 오직 그분을 위해 드리는
불꽃이 되라고 한다.
오늘도 당신은 버거킹처럼 만들어진 예배를 드리는가.

이제 그것으로부터 과감히 벗어나
하나님의 임재에 들어가 그분의
통치에,
그분의
광휘에
잠기라.
당신이
하나님께 잠겨 시간을 ‘낭비’하는 동안 하나님을, 교회를, 그리고 세상을 정말 ‘헤프게’ 사랑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