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1  2010

 

 

 
 
Franz Peter Schubert (1797 - 1828) 
Piano trio in E flat major, D. 897, "Notturno"
 
Only time will tell / Nana Mouskouri
오직 시간이 말할 것이다 

 
슈베르트의 삼중주 녹턴(야상곡)에 
나나 무스쿠리가 가사를 붙여 불렀습니다

Love changed our lonely lives
Caught us by surprise
Opened up our eyes
Somehow we both knew
Something rare and true
Something bright and new
Could be ours forever
But love love can not be planned
More you try to learn Less you understand
Words could not dispel
What we know so well
Only time will tell.....
 
Like a tree As it grows 
We will reach For the sky
Like a breeze Gently blows
We’ll be free You and I
For we know Time alone
Holds the key.......

Only time alone will tell
Darling, only time will tell 
 

사랑은 우리의 외로운 삶을 바꾼다
우리를 놀라움에 사로잡히게 한다
눈을 열어
우리를 서로 알게 한다
희미한 것과 분명한 것을
밝고 새로운 것을
우리들의 모든 것을 영원하도록.
 

하지만 사랑은 짜 맞추는 것이 아니다.
더 알려고 애써야 하는 것
우리가 잘 안다 해도

말로 풀 수 있으랴
오직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사랑은 자라는 나무 같아
하늘에 이른다
부드럽게 부는 산들바람
나도 당신도 자유를 누릴 거야
우리가 아는 것은 그저

시간이 열쇠를 쥐고 있다는 것 뿐

오직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사랑이여,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나나 무수쿠리

 

 

 

 

 

 

 

 

 

 

가시관(冠)과 보혈(寶血)

김남조

 

옷은 제비뽑아 나눴으되
머리의 가시관이 남았더니라
나를 십자가(十字架)에 못박아
신포도주와 초를 먹이고
창으로 찔러
피와 물이 흐를 때도
가시관이 내살에 박혔더니라

나를 무덤에 옮겨
향유 바르고
베를 감아 뉘인 다음
돌문을 닫았을 때
빛 한줄기가
가락지처럼 감싸는
가시관이 있었노라
가시마다 보혈이 맺혔었노라
그로부터 오늘까지
내사랑은 가시관을 쓰노라

너희가 모두 죄인이로되
고통을 모르는 자는 멀리 있고
고통을 아는 이는
내둘레에 머무는구나
나는 피와 꿀을 따르어
너희의 목마름을 일일이 고치노니
가장 오래 애통하던 사람도
예와선 울음을 그치는도다

닭 울기전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말한
그 측은하고 귀한 내백성들아
해마다 내가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는다면
너희 영혼은
어디에 집을 짓겠으며
내사랑은 어떻게 풀겠느냐
나의 만백성아

 

 

 

김남조 시인

 

경상북도 대구에서 1927년 출생.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숙명여대 교수를 역임하였다.

1950년 연합신문에 《성숙》, 《잔상》으로

등단하였고, 1953년 첫 시집 《목숨》을

출판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하였다.

초기에는 인간성과 생명력을 표현하는 시풍을,

이후에는 신앙을 바탕으로 한 카톨릭적

사랑의 세계와 윤리 의식을 표현하였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1. 하나님은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God uses people who realize they are weak.

 

 

2. 하나님은 충성스런 사람을 사용하신다.
God uses people who are faithful.

 

 

3.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그 말씀대로 사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God uses people who study and live by his word.

 

 
4. 하나님은 하나님의 타이밍을 인내로써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God uses the person who is patient and waits on his timing.

 

 
5. 하나님은 잃어버린 영혼들에 대해 염려하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God uses the person who cares about lost souls.


 

6. 하나님은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God uses the person who sets himself or herself apart.

 


7. 하나님은 타인과 함께 일할 줄 아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God uses the person who knows how to work with others.

 
그레그 로리 목사의 7가지 중요 포인트 중에서

 

 

 

Greg Laurie 목사는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 옆 리버사이드에 있는 약 1만5천명이 모이는 Harvest Christian Fellowship 교회를 담임하고 있다.(언)

 

 

 

 

 

 

때늦은

 

진화론만 가르치는 교과서

개정 추진위 출범

 

 

 

교과서 진화론개정 추진회(교진추)는 23일 서울 도림동 도림교회에서 출범식을 갖고 김기환(도림교회 장로·사진) 한국진화론실상연구회장을 2년 임기의 초대 회장에 추대했다. 교진추는 창조과학계 전문가 및 정·교계 인사 20여명을 자문위원으로 선임했다.
 

김 회장은 무신론적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있는 진화론적 가설만 가르치는 우리나라 초·중·고 교과서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주요 교단, 선교단체들과 연계해 진화론의 허구를 밝히고 관련 이론을 정립하는 데 모든 역량을 쏟을 계획이다. 아울러 주요 교단 총회에 관련 특별위원회 조직 설립을 요청하고 국내 최고 수준의 강사진도 지원한다.
 

현재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총회는 창조과학 및 진화론 연구 특별위원회가 조직돼 있다. 예장 합동 총회도 관련 대책위원회 설립을 서두르고 있다.
 

교진추는 교육부 재정부 중보기도부 등으로 내부 조직을 꾸리고 사단법인을 추진하는 한편 산하 한국진화론연구소를 활성화하고 진화론의 허구를 알리는 서적 발간에 힘쓰려 한다.

 

또 매달 세번째 토요일 오후 도림교회에서 기도회도 갖는다. 홈페이지(textrevise.or.kr)를 통해서도 교과서 진화론개정 추진 상황을 알릴 계획이다(02-842-2696).
 

 

 

 

 

 

 

디스토피아(Dystopia)는 역(逆)유토피아라고도 한다. 가공의 이상향 즉 현실에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나라]를 묘사하는 유토피아와는 반대로 가장 부정적인 암흑세계의 픽션을 그려냄으로써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문학작품이나 사상을 가리킨다.

 

대표 작품으로는, A.L.헉슬리의 《멋진 신세계》(1932), G.오웰의 《1984년》(1949) 등이 있다.

 

이러한 디스토피아는 현대사회 속에 있는 위험한 경향을 미래사회로 확대 투영함으로써 현대인이 무의식 중에 받아들이고 있는 위험을 명확히 지적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칼럼을 통해 디스토피아를 다루면서 지구의 미래를 함께 염려해 보기로 한다.(장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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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사회 '유토피아(Utopia)'.

모두가 평등하며 화폐도 필요 없고 창고에서 자유로이 물품을 꺼내 쓸 수 있는 이곳은  토머스 모어의 소설 <유토피아>에 처음 등장했다.  그러나 모순되게도 이 말은 그리스어의 '아니다(OU)'와 '장소(topos)를 합성해 즉 '어디에도 없는 나라'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늘 이상향을 꿈꿨다. 특히 사회가 불안정할 때 이상 세계에 대한 열망은 더 커졌다.

혼란의 동진 시대를 살았던 도연명은 모략과 탐욕 없는 이상사회를 꿈꿨으며 플라톤의 아틀란티스, 홍길동의 율도 국도 당시 사회 불안 속에서 생겨났다.
 

1888년 미국의 벨라미가 발표한 <회고:2000년에서 1887년까지>는
유토피아를 다룬 문학 사상으로 가장 널리 읽힌 작품이다.

19세기말 주인공이 사고로 깊은 잠에 빠졌다가 21세기에 깨어나 보니 세상이 사회주의적 이상향으로 탈바꿈해 있더라는 내용이다. 이 작품은 큰 반향을 일으켜 미국 전역에 이 사상을 추구하는 조직만
100군데가 넘게 생겼다.
 

유토피아가 천상과 생명의 세계라면 분명 지하와 죽음의 세계도 있으리라는 믿음 아래에 역(逆)유토피아, 즉 '디스토피아(Dystopia)'도 생겨났다.  디스토피아는 한마디로 실패한 유토피아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는 창조적인 사고를 억압하기 위해 언어를 개조하고 사생활을 감시해 마침내 인간성을 파괴시키는 사회를 묘사했다. 소설주인공 윈스턴이 하루 24시간 텔레 스크린에 감시 당했듯, 오늘의 우리도 각종 폐쇄회로 TV와 도청장치, 신용카드와 휴대폰, 인공위성 등으로 끊임없이 추적 감시 당하고 있지 않은가.
 

20세기후반 컴퓨터의 등장과 함께 컴퓨터가 인간을 지배하리라는 디스토피아를 예견하는 영화가 무수히 상영되는가 하면,  인구증가에 따른 자원 고갈, 환경파괴도 디스토피아의 가능성을 더해 주는 위협적인 요소이다. 

물론 디스토피아를 그린 작품들은 어디까지나 경고일 뿐, 비관적인 미래가 오지 않도록 노력하자는 염원이 담긴 것이다.
 

개개인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켜 줄 이상사회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희생 없이는 불가능하다.  모든 인간이 자신의 욕구를 채우려 할 때  지구 상에는 아무도 살아남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유토피아는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인지도 모른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언)


 

 

 

 

 

 

 

로댕조각 [생각하는 사람]은

단테의 [신곡] 중 [지옥의 문]이라는 작품에 나오는데

지옥의 문 앞에서
인간의 고뇌와 삶을 바라보는 [
시인]의 모습입니다.


 

 

 

 

 

 

 

 

 

 

200년 동안

사탄과 피로 계약한 하이티

 

하이티는 국경일(8월14일)을 맞이하여 부두교 신에게 희생제를 드리는 행사를 치른다. 

국경일은 1804년 8월 1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우크만(boukman)이라는 흑인 소년이 귀신과 계약을 맺는 형식으로 돼지를 죽이고 그것의 피를 마셨다. 그리고 하이티 주민들은 프랑스로부터 그들의 땅을 해방시켜주는 것으로  200년 동안 그들의 땅을 부두교 신에게 바치기로 동의했다.

 

이런 기념일엔 부두교 제단에 한 아이를 희생 제물로 드리는 것이 전통으로 내려왔고 2009년 한 지방에 있는 병원에서 아기가 없어졌는데 부두교에 희생제물을 드리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리스티드(Jean Bertrand Aristide, 2001년 2월 취임) 대통령은 부두교를 공식 종교로 선포했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부두(Voodoo)에게 두 번이나 그 땅을 헌납하는 의식을 행했다.

 

 

 

 

 

부두교는 중앙 아프리카 Yoruba 족의 Ju-Ju교에서 파생한 종교로, Voudon교라고도 불린다. 서인도 제도, 특히 하이티(Haiti)를 거점으로 17세기 초엽부터 이 지역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으며, Ju-Ju교의 경우처럼, 최고의 신은 Damballah라는 거대한 비단뱀으로 상징된다.

 

다신교이기 때문에 온갖 잡신이 다 있는데, 이 신들의 총칭은 라오(Loas)다. 하지만 외형상 기독교의 탈을 쓰고 있는 이 지역의 다른 종교와는 달리 Haiti의 부두교는 공개적으로, 당당하게 그들의 신을 드러내놓고 숭배한다.

 

 

 

원인은 Haiti 섬의 역사에 있다.

 

1804년, 미국과 카리브 해의 흑인들은 유럽 정착민들에 의해 철저하게 감시되고 있었던 반면, Haiti의 흑인 노예들은 반란에 성공하여 자유의 몸이 되었다. 사실 Haiti는 폭동이 성공한 유일무이한 곳이었다.

백인과 기독교의 지배에서 벗어난 Haiti의 흑인들은 Voodoo교를 국교로 정했고, 이러한 상황은 Haiti가 공화국이 된 1820년 까지 계속됐다.

 

1863년 여덟 명의 부두교 승려가 여자 두 명을 납치하여, 그 중의 하나는 제물로 바친 후에 요리까지 해 먹었다가 잡히는 사건이 발생하여, 로마 카톨릭 교도였던 당시의 대통령 Geffrard의 분노를 사게 되었고, Geffrard는 Voodoo교를 폐지하려고 마음 먹었다. 그러자 이에 앙심을 품은 부두교 승려들은 port-au-Prince의 한 교회에서 대통령의 딸을 살해해 버린다.

 

 

 

그후 Haiti의 지도자들은 어지간해서는 Voodoo교를 건드리는 법이 없었다. Salnave나 Soulouaue 같은 대통령들은 부두교 신자였고, Antoine Simon 대통령의 딸은 부두교 승려였다.

대통령 궁에서 까지 부두교 의식을 집전했다. 최근의 경우를 보면 Papa Doc이란 별명으로 유명한 대통령 Francois Duvalier는 부두교와 비밀 경찰을 동시에 운용하여, 1957년부터 죽음을 맞이한 1971년 까지 가공할 독제체제로 Haiti 전체를 공포에 떨게 했다.

당시 Duvalier가 죽음의 신인 Baron Samedi의 현신이라는 말까지 있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부두교 의식은 그의 아들인 Jean-Claud에 의해 정권이 전복된 1986년 2월 까지 거행되었다고 한다.

 

 

 

부두교는 이렇게 Haiti 국민의 삶의 일부가 되었고, 남미 난민의 이주와 함께 미국으로 스며들어 주로 흑인들 사이에 전파되었으며, 2차 대전을 기점으로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LA, 시카고, 뉴욕은 물론 기타 지역에서도 부두교를 접할 수 있게 되었는데, 전통적으로 흑인 인구가 가장 많은 뉴올리언즈가 역사적으로 강세를 보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남미 이민들이 대거 모여들어 마이애미에 "Little Haiti"를 건설함으로써, 부두교는 이전과는 전혀 양상을 띄게 되었다.

 

전형적인 부두 종교 의식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승려의 재량에 따라 정해지며, 각 승려마다 여러 신들 중에서 자기가 특별히 모시는 신이 따로 있다. 즉 일종의 분업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각 승려마다 다르긴 하지만 피의 의식을 곁들이는 것이 보편적이다.

 

 

 

 

부두교의 신인 라오(Loas)가 피를 요구하기 때문인데, 제물로 바치는 동물은 갈갈이 찢기는 게 보통이다.

종교 의식은 드럼과 심벌즈를 동원하여 광란의 현장을 연출해 내는데, 럼주를 내키는 대로 마실 수 있고 춤과 음악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종교의식 도중 신 들린 현상 역시 자주 발생한다. 춤과 술, 마약에 의해 탈진하여 그 자리에서 기절하는 경우도 흔하다고 한다.

 

 

우리는 하이티를 구해야 한다.

지진으로 폐허가 된 하이티를 구해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급한 것은 사탄에게 붙들려있는 하이티 사람들의 영혼부터 구원해야 한다.

 

 

부두인형 

저주할 때 바늘로 찔러 넣고 주술을 외운다.

 

 

 

 

 

 

 

 

 

 

 

1. 기도 드리기 전의 3단계

 

1)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단계(소원)

2) 그 원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살피는 단계(진리)

3) 그 내용을 종이에 기록하는 단계(기록)

 

 

2. 기도 드리는 중의 3단계

 

1) 당신의 마음을 잠잠케 하는 단계(기대)

2) 하나님과 대화하는 단계(대화)

3) 기도가 응답되기 위해

      당신이 해야 하는 일에 헌신하는 단계(헌신)

 

 

3. 기도 드린 후의 3단계

 

1) 기도 응답해 주신 하나님께 무조건 감사하는 단계(감사)

2) 하나님의 응답이 어떤 것이 되더라도

     기쁘게 받아들이는 단계(수용)

3) 기도 드린 대로... 응답 받는 대로 ......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단계(복종)

 

 

하나님의 을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라면,

그 뜻을 실행하는 것이 순종이다.

 

결국

믿음과 순종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결정하는

영적 본질이다.

 

타락의 본질이 불신앙과 불순종이라면

구원의 본질은 신앙과 순종이다.

기도는 믿는 것이요 순종하는 것이다.

간구하고 믿고 그리고 끝까지 인내하는 기도 자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케냐의 단호한 결정

극단성향의 이슬람 성직자 추방


 

늘 시간이 있을 때마다 다른 종교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고 심지어 살인까지도 선동해 온 이슬람 성직자가 케냐에서 추방 당했다.

 

케냐 당국은 압둘라 엘 파이살(45)이라는 이슬람 성직자에 대해 그의 발언 내용과 과거의 행적 등을 문제 삼아 자마이카행 비행기에 태워 추방시켰다.

 

이에 앞서 그는 영국에서도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을 죽여야 한다고 선동 했다가 징역형을 선고 받고 4년간 복역하고 출소하자마자 영국에서 추방되었다.

 

그는 영국에서 추방된 후 주로 아프리카 여러 나라를 돌면서 강연 등의 활동을 하다가 케냐로 들어왔다.

 

케냐 정부는 그가 종교간의 갈등과 증오를 조장했을 뿐 아니라, 지난 2005년 7월에 런던에서 발생해 52명이 사망한 이른바 7/7테러의 주요 배후 인물 가운데 하나라는 의심이 있기 때문에 추방했다고 추방의 이유를 밝혔다.

 

 

 

 

 

 

 

 

  

 

파랑 리본을 가슴에 매단 강영숙 교수가 호소문을 낭독하고 있다. 이들은 북한인권 개선과 로버트 박 무사귀환을 위한 파랑리본 달기 캠페인을 전국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북한인권 개선’, ‘김정일 회개’ 등을 외치며 북한으로 들어간 로버트 박 선교사(한국명 박동훈)의 구명과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해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20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 위치한 통일부 앞에서 열렸다.

 

여기에는 북한민주화 운동본부(대표 김태진)와 한국자유연합(대표 김성욱), 로버트 박이 몸담았던 글로벌 정의 기도네트워크 등이 함께했다. 기자회견 장소에는 AP 등 주요 외신들이 주로 참석했다.

 

이 자리에는 로버트 박과 1년이 넘게 같이 사역해 온 강영숙 교수가 참석해 로버트 박의 무사귀환과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해체를 위한 호소문을 낭독했다.

 

호소문은 “정치범수용소를 폐쇄하고 수감자들을 석방하라는 요구를 담은 서한을 들고 북한으로 들어간 로버트 박을 지지하면서 그의 생명과 안전, 조속한 송환을 촉구한다”며 “로버트 박이 자신의 생명과 맞바꿀 정도로 소중히 여긴 동포의 생명과 자유 앞에서 엄숙한 심정으로 그의 뜻에 동참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강영숙 교수는 “한국 사회와 정부가 마땅히 최우선적으로 관심을 갖고 해결해야 할 북녘의 불의와 고통은 아무리 외쳐도 그 깊은 침묵을 깨기에 역부족이었다”며 “로버트 박은 이에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내려놓고 한국인과 전세계인들에게 북녘의 참상을 종식하기 위해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해달라고 북한에서 애처로이 간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요 일간지들의 보도에 따르면 로버트 박은 북한에 입국하자마자 체제를 비판하다 군인들에게 심한 구타를 당했으며, 3일 만에 평양에  압송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소문은 “로버트 박을 북으로 보낸 것은 정치논리에 밀린 한국 지도자들과 한국인들의 북한인권에 대한 무관심과 무정함이었음을 고백한다”며 “북한의 지속적인 대학살에 한국인들은 동족으로서 책임이 있고, 북한 동포들과 탈북자, 정치범수용소 수감자들은 헌법상 우리의 국민이며 함께 생명권과 생존권을 보장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

△한국 정부와 통일부는 북한의 가공할 정치범수용소 해체와 수감자 석방에 앞장서라

△북한의 국경을 개방하도록 만들어 굶주림에 허덕이는 동포들을 살리라

△대한민국 국회는 북한인권법을 즉시 통과시키라

△대한민국 대통령과 외교통상부는 재중 탈북 난민 보호를 즉각 중국에 요청하라

△대한민국 정부는 로버트 박 생명의 안전과 송환을 위해 즉각 행동하라  등을 구호로 외쳤다.

 

이외에 북한민주화 운동본부는 창립 당시 추진했던 단체 이름인 ‘북한정치범 수용소 해체본부’로의 명칭 변경이 조속히 이뤄지기를 통일부 측에 촉구했으며,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해체를 위한 구체적인 노력들이 통일부에서 일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이 안보일 때 이렇게 하십시오

 

1. 사진이 절반만 보일 때는 화면을 다시 한번 여십시오.(Refresh 단추 클릭)

2. 어떤 사진 한 장이 안보이고  X 표가 보일 때는 그림 위에 마우스포인터를 올리고 오른쪽 마우스를 클릭한 후 메뉴 중  Show Picture 를  클릭하십시오.

 

 

 

 

 

 미국 고속도로에 독도를 홍보하는 대형광고판이 등장했다.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LA) 도심에서 동쪽으로 약 40㎞

떨어진 60번 고속도로 옆에 세워진 옥외용 대형광고판에는

독도 사진과 함께 `독도는 한국 땅(Dokdo Island Belongs to KOREA)'

이라는 문구가 실렸다.

 

한 재미교포가 미국 고속도로에 독도를 홍보하는 대형광고판을 세워 네티즌들의 높은 호응을 받고 있다.

LA 동쪽 소도시 다이아몬드 바에서 대형 찜질방을 운영하는 한인 동포 알렉스 조(50)씨는 지난 25일 LA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60번 고속도로 옆에 독도를 홍보하는 광고판을 세웠다.

이 대형광고판에는 지난 25일부터 독도 사진과 함께 '독도는 한국 땅(Dokdo Island Belongs to KOREA)'이라는 문구가 실렸다.

이 광고 소식은 고속도로를 지나는 사람이 사진을 찍어 한국의 포털 사이트에 올리면서 뒤늦게 알려졌다. 조씨는 29일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한국 네티즌의 큰 호응을 보고 겸연쩍었다”며 “내가 대단한 애국자인 양 비쳐서 당혹스럽다”고 했다.

조씨는 “지난해 영업실적이 그런대로 괜찮아 광고를 할 수 있었다”며 “2개월 후 계약을 연장할지를 결정할 생각”이라고 했다.

 

 


 

067+171

 

 

 

 

 

삶의 무게

짐 지고 아기 안고 가방 든 중국 여성

 

 

중국 동부 난창에서 30일 한 여성이 짐을 지고

아기는 안은 채 기차를 놓칠세라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먹을 걸 주세요 하이티 어린이의 간절한 눈빛

 


28일 아이티에 임시로 차려진 이재민 천막촌에서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이 나눠주는 식량을 기다리고 있는

아이의 눈빛이 애처롭다.

 

미나리꽝에 묻어온 봄 내음

 


 낮 기온이 영상을 회복한 31일 전북 전주시 평화2동의

한 미나리꽝에서 봄미나리 수확이 한창이다.

허벅지까지 차오는 물이 아직 차갑지만

농심에는 벌써 봄이 온 듯하다.

 

 

고물 팔아 1억원 기부한 '행당동 고물 할머니'

 



 

고물 팔아 1억원 기부한 '행당동 고물 할머니'

폐품을 주워 이웃을 돕는 '행당동 고물 할머니'로 알려진

고복자(77) 할머니가 10년간 모은 전 재산을 또 한번

기부해 감동을 주고 있다.

사진은 1996년 언론에 소개된 고 할머니의 기사.

 

교회 가는 鄭총리

 


 정운찬 국무총리가 31일 오전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평소 다니는 서울 잠실동 남포교회로 들어서고 있다.

 

반발하는 학사모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상임대표 최미숙) 회원들이 28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후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전교조에 국민혈세 지원을 중단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책가방 필요 없어요


27일(현지 시간) 앙골라 루안다에서 한 여성이

사람들에게 팔 책을 옮기고 있다.

 

 

 

 

 

 

 

    


 

 

 

 

사람들이 나를 영어로 덩키(donkey) 한국말로는 나귀라고 부릅니다.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감람 산은 크게 네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장 낮은 봉우리는 해발 802m이고, 가장 높은 봉우리가 해발 820m입니다.

감람 산은 예루살렘보다 약 90m 정도 높아서 산 정상에 서면 예루살렘을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감람 산에는 벳바게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벳바게는 예루살렘에서 바라보았을 때 감람 산 뒤편에 있고, 감람 산 정상에서 동쪽으로 10분 정도 내려가는 거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약 1km 정도 더 걸어가면, 나사로와 마르다 그리고 마리아가 살고 있는 베다니라는 마을이 나옵니다.

 

저는 그 마을에 살고 있었지요.

 

제가 사는 마을을 가리킬 때 벳바게의 [맞은 편](카테난티)이라고 한 말에는 [적대 적]이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유대의 성전중심의 체제에 대해 반골기질을 가지고 있는 지역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저는 곱게 자랐지요.

 

그러던 어느 날 야고보와 요한이 찾아와 나를 끌고 벳바게로 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따라 나섰지요.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 사람들이 내 등에다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 깔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란 분이 타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누가 내 등에 타셨는지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내 등에는 누구든지 태우고 무엇이던지 싣게 되어있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분을 태우고 예루살렘으로 떠나는 길은 삽시간에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내가 가는 길 앞에 옷을 벗어 던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비포장도로만 걸어 다니던 나는 옷이 깔려 있는 길바닥을 걷게 되자 너무나 느낌이 좋았습니다. 고맙기도 했구요. 어떤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깔아주었습니다.

그뿐입니까.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습니다.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이것은 분명 임금님의 행차였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도 외쳤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그 바람에 나는 흥분했습니다. 내가 왕이 된 느낌이었습니다. 무릎을 높이 들어 껑충껑충 마치 개선장군처럼 걸었습니다. 목을 뽑아 꺼덕꺼덕 거들먹거리기까지 하였습니다.

 

드디어 그 화려한 퍼레이드가 끝나고 비아돌로로사(골고다로 가는 길)라는 길 앞에서 나는 그 분과 헤어졌지요. 집으로 돌아와 잠이 들었는데 꿈에서도 그 화려한 퍼레이드가 보여 잠을 설쳤습니다.

 

다음 날.

아침잠에서 깼습니다. 마음 한 구석에 뿌듯한 자부심이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는 우물 곁으로 잔뜩 점잔을 빼며 다가섰으나 누구 하나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왜 겉옷을 벗어 길에 펴지 않습니까?

내가 누군지 모른단 말입니까?

 

화가 나서 막 소리쳤습니다. 사람들은 기막히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습니다. 어떤 이는 막대기로 꼬리를 내리치면서 빨리 꺼져버리라고 버럭 고함까지 질렀습니다.

 

세상에 이런 몰지각한 사람들이 다 있나. 내가 누군지를 모르다니.

 

나는 방향을 틀어 시장 쪽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반응은 매한가지였지요. 고개를 까닥 대며 한껏 폼을 잡고 시장 한가운데를 걸어갔지만 아무도 쳐다보지 않습니다.

 

이 사람들아.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란 말이야.

어제 일을 잊었는가?

 

사람들은 코웃음을 칠 뿐 나를 외면했습니다. 자존심에 금이 간 나는 몹시 혼란이 일어났고 수치스러워 고개를 들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지요. 이 아들이 겪은 이야기를 들은 엄마가 말했습니다.

 

이 바보야. 예수님이 등에 타고 고삐를 붙잡아주지 않은 너는

그냥 나귀새끼라는 짐승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왜 모르니.

리고

쏟아지는 숱한 칭찬과 환호, 박수소리는 모두 다 예수님께 보내는 것이었지가 아니야.  얘야. 착각이 지나치면 꼴값도 못하게  된단다.

 

그러면서 엄마는 제발 사람들로부터 이런 소리는 듣지 마라고 애원하듯 말씀하셨습니다.  Don't be such an ass! (장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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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사람들이 자주 쓰는

Don't be such an ass.

꼴값 떨고 있네. 라는 뜻입니다.

 

 

 

 

 

 

계세요?

 

동네 피노키오문구점에 공책을 사러 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아무도 없어서 "계세요?"하고 주인장을 불렀습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식사를 하러 가셨나? 다시 한번 크게 부릅니다.

"아주머니 계세요?"

조용.....

 

 - 아니, 이렇게 문까지 열어놓고 어디 가셨다냐?

 

저는 할 수 없이 공책도 못 사고 그냥 문구점에서 나와 다른 골목에 있는 영재문구점으로 갔습니다.

 

만나러 갔는데 만날 사람이 없으면 허탕치고 그냥 와야 합니다.

그런데, 언제든 가면 만날 수 있도록 항시 대기하고 <계시는>분이 계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주기도문)

 

<계시는>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바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가기만 하면 언제든지 항상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딴 데 가지 말고 꼭 기다리고 <계신> 하나님께 갑시다. (최용우)

 

 

 

 

 

 
 
 

 

 

 

 

 

 

 

Marva Dawn

 

고귀한 시간 ‘낭비’-예배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예배에 참예한다. 참된 예배를 드리고, 내가 아니라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가 되고자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소원이다.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고 해서 그것이 참된 예배일까? 당신은 혹시 예배를 이용해 자신의 만족을 추구하고 있지나 않는가?

이제 우리의 안일한 일상적 예배 관을 벗어날 때가 되었다.

 이번에 만난 책은 영성신학자 마르바 던(Marva Dawn)의 「고귀한 시간 낭비-예배」(김병국  전의우 옮김, 이레서원)다. 제목이 아주 도전적이다.

어떻게 예배를 ‘낭비’라 말할 수 있는가! 책을 쥐는 순간 당신의 기분이 조금 상할 수 있다. 그러나 책을 읽어가면서 그녀가 왜 ‘고귀한 시간 낭비’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가를 알게 된다. 원제는 「A Royal "Waste" of Time」(훌륭한 시간 낭비)이다.

 

이렇게 제목을 단 것은 한 학생이 교회 오르간과 찬양대에 관심이 줄어드는 현실을 놓고 “우리가 여기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라는 질문을 했고, 그 질문에 영감을 받은 그가 채플의 설교제목을 ‘고귀한 시간 낭비’로 정한 데서 온 것이다.

 

그녀는 우선 시간낭비와 고귀한 시간낭비를 구분한다.

우선 그는 예배를 시간낭비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그 예배가 어떤가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진다. 단지 하나님께 점수를 따거나 성공한 교회임을 과시하는 예배라면 그것은 저급한 시간낭비일 뿐이다.

이와 달리 하나님을 예배의 주체요 대상이요 무한한 중심으로 삼고, 오직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기에 가장 합당하신 하나님께 온전히 드릴 때 그것은 고귀한 시간낭비다.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고귀한 시간낭비의 예배에서 우리는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의 고귀한 광휘(splendor)에 빠져 드는 독특함을 맛볼 수 있다. ‘고귀한 광휘 빠져 든다’는 것은 마르바가 아주 좋아하는 표현이다. 그의 광대하심과 숭고하심과 광채를 놀랍게 경험하는 것이다. 예배뿐 아니라 말씀 묵상과 연구, 기도, 찬양연습 시간에도 임재 하시는 그분의 광휘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

 

고귀한 시간낭비는 하나님을 우리 예배하는 삶에 두는 것이자 그분의 임재 속에서 가능한 한 우리의 최고를 드리며, 섬김의 삶으로 나가게 한다.

 

이 예배는 우리의 낮아짐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하고, 그리스도의 가난에 동참하도록 한다. 더 이상 자신의 힘이나 성취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며 이웃사랑에 시간을 들이도록 성령은 우리에게 능력과 겸손의 옷을 입히신다. 이런 의미에서 고상한 시간낭비는 교회에 경이감을 부활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마르바는 교인들에게 예배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설문조사를 하지 말라고 한다. 상식을 뒤엎는 주문이지만 교인들이 원하는 것이 그들에게 해로울 수 있다는 말에 수긍이 간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소비주의자의 선택에 영합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을 똑바로 양육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민주주의를 지향하지 않는다.

 

교회는 성령주의(Spiritocracy)와 은사주의(charismacracy)를 지향한다.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의 권위아래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며, 그리스도가 우리를 통치하게 하고, 성령님이 주시는 은사에 따라 봉사하게 한다.

 

고귀한 시간낭비를 위해서 우리가 버려야 할 것도 많다.

먼저 우리 자신의 욕심이다. 마르바는 예배를 이용해 교인수를 늘리려는  목회자의 흑심을 과감히 거부한다. 진정한 예배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잃게 만드는 포스트 모더니즘도 경계 대상이다. 상대주의의 옷을 입은 이것은 목회자로 하여금 진리의 복음을 더 적게 제시하게 하고, 오락적 형식을 더 많이 도입해 내용을 희생시키며, 예배와 전도, 전도와 마케팅을 혼동하게 만든다.

 

더욱이 과거와 권위를 부정해 교회가 지금까지 축적해온 지혜와 역사를 흔들어놓는다. 급기야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으로 전락시킨다. 현재 기독교에 대한 저항이 많은 것도, 우리 주변에 유교적 기독교인이나 혼합주의적 교인이 많아지는 것도 이런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마르던은 텔레비전도 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엄청난 정보를 제공해 주지만 사실 그 정보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게다가 그것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라지 못하게 하며 그저 정보를 받아들이고 버리는 기계로 만들 뿐이다. 이것이 예배에도 영향을 미쳐 예배자를 하나님의 광휘에 잠기게 하기보다 기계적인 예배자로 만들고, 프로그램을 즐기듯 예배를 시청한다.

 

우리만 시간낭비를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도 이렇듯 우리의 잘못된 삶을 바로 고치기 위해 낭비(extravagance)를 하신다. 우리에게 사랑과 용서와 자비를 아낌없이 주시는 것이다. 그 낭비를 통해 우리 각자는 그리스도인으로, 교회는 보다 바람직한 교회로 다시 태어난다.

 

마르바는 고귀한 낭비를 통해 예배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참으로 경배하고, 우리의 삶을 오직 그분을 위해 드리는 불꽃이 되라고 한다.

 

오늘도 당신은 버거킹처럼 만들어진 예배를 드리는가.

 

 

 

이제 그것으로부터 과감히 벗어나 하나님의 임재에 들어가 그분의 통치에, 그분의 광휘에 잠기라.

당신이 하나님께 잠겨 시간을 ‘낭비’하는 동안 하나님을, 교회를, 그리고 세상을 정말 ‘헤프게’ 사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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