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15  2010

 

 

 

 

1년에 한번씩 꼭 듣고 싶은 노래가 있다면

헨델의 [할렐루야]와 베토벤의 [심포니 9번]이다.

 

베토벤의 심포니 9번 합창 4악장 [환희의 송가]는

수난절과 부활절 중간에 듣는 습관이 되었다.

 

Beethoven Symphony no.9 in D minor Op.125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4악장

'환희의 송가'


4악장 Presto - Allegro assai (합창 - 환희의 송가)

 

동영상으로 보기를 원하면 아래 Play 단추를 클릭.

시간은 30분 정도입니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 들어보시기를.

 


 

 

 

 

 

 

 

 

 

 

 

 

 

 

 

잊을 수가 없어요 

미산 윤의섭
 

 


눈 덮인 소나무
가지 내리고
오솔길 지날 때면
산까치 울던
내 고향 산천을
잊을 수가 없어요

나의 냄새가
나무에 스며 있고
새소리 흉내 내며
꿈을 키우던
어린 시절 그 추억
잊을 수가 없어요.              

 


연말 연시.  또 한 해를 보내고

맞이하며 만감이 교차하는 세대

그들은 누구인가.

 

한민국의 현대사는 격동 그 자체.

분단과 6.25 전쟁.

이산 세대의 늙어가는 아픔. 

산업사회 진화로 이농세대의 탈향이

유난히 많은 나라.

세계 어느 곳에도 한인들이 없는 곳이 없는

이민의 나라.....

 

향수에 젖어 속으로 흐느끼는 마음의 노래를
누구와 함께 불러볼까?

 

 

 

 

 

 

 

 

 

 

 

 

 

 

 

 

 

 

 

 

Creative And Imaginative World Of Ben Goossens

 

 

크빈트 부흐홀츠처럼 상상력 많은 작가가 누가 있나요?

 

진짜 크빈트 작가처럼 기발한 그림을 좋아하는데요

심플하지만 상상력을 많이 표현하는 작가는 또 누가 있죠?

 

 

 

Ben Goossens 라는 작가가 있습니다.

 

마그리트 그림하고 느낌이 많이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작가 중에

한 명인데, 크빈트 부흐홀츠 역시 마그리트랑 비슷한

그림들이 있지요.

Ben Goossens 역시 상상력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추상주의 작가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해를 못하는 그림이지요.

원래 추상적이라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어려우니까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Ben Goossens가

좀 더 사람을 사람답게

표현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드네요

 


Spring will be there soon

 


A boys dream

 


Deep breath

 


Happy Easter

 


Broken heart

 

Like a virgin

Like a virgin

 

 

 

 

 

 

 

 

 

 

[체험기]

어둠 속의 전시회를 느끼다

 

 

몇 년 전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가 인기를 끌었다. 이 소설에서 갑자기 앞을 보지 못하게 된 사람들이 인간의 존엄성마저 지키지 못한 채 점차 극단의 이기주의와 극복하기 어려운 폭력 속에 내던져진 모습을 봤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나약함, 인간 존엄성의 본질 등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NHN 소셜 엔터프라이즈가 진행 중인 상설전시 '어둠 속의 대화'는 여러모로 '눈먼 자들의 도시'를 떠올리게 해줬다.
 

'어둠 속의 대화'는 시각을 통해 사물을 인지하는 관람객들에게 한줄기의 빛도 허락하지 않는, 완전한 어둠이 지배하는 세상을 경험하도록 한다. 어둠을 경험해 본 것은 처음이 아니지만, 순도 100%의 완전한 어둠 속에 던져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전시장은 그야말로 '미지의 세계'일 수밖에 없었다.
 

 

 `어둠 속의 대화` 전시회 입구.

이제부터 90분간의 여정이 시작된다.

 

8명이 한팀이 된 관람객들은 시각장애인들이 길을 걸을 때 사용하는 스틱 '케인'과 옆 사람, 그리고 로드마스터에게 의지한 채 어둠을 뚫고 나가야 했다.
 

숲 속, 다리, 골목길, 횡단보도, 시장, 서점, 카페 등을 하나 하나 지나치면서 어둠 속 여행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갑갑함에 바깥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욕구가 일었다.
 

혼자 남겨질 지 모른다는 불안감, 발을 헛디뎌 넘어질 수 있다는 공포가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기도 했다. 카페에서 마주친 점원들의 밝은 목소리가 안도감을 주기도 했다. 로드마스터의 따뜻한 손길이 진행 방향을 알려줄 때마다 깊은 편안함과 따스함을 느꼈다.
 

`어둠 속의 대화` 전시회.

90분의 여정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는 관람객들.

 

실제 내가 그런 어둠 속에 내던져진다면 어떤 기분일까. 막연히 참 힘들 것이라는 생각은 늘 했지만, 그것이 당장 내게 닥친 일이 아니었기에, 또한 진정으로 어떤 것인지 인지가 전혀 없었기에 이번 전시회는 충분히 새로운 경험이 됐다. 실제로는 시각을 통해 전달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전시회이지만, 그 외의 촉각, 후각, 미각, 청각 그리고 마음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종종 길을 지나며 마주치는 시각장애인들을 봐도 '그들의 어둠은 이미 그들에게 익숙해진 것'이라 치부하며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어둠이라는 세상에는 익숙해질 수 있겠지만 그 어둠 속에서 그들이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하는 외로움에는 미처 생각이 닿지 못했던 까닭이다. 특히 전시회 막바지에 맞닥뜨린 '반전'에 가슴 찡한 감동을 느꼈다.
 

이번 전시회는 NHN이 출자해 만든 자회사 NHN 소셜 엔터프라이즈가 진행한다.
 

그 자신이 시각장애인이기도 한 송영희 NHN 소셜 엔터프라이즈 대표는 "어둠 속의 감각이 신체와 생각의 변화를 이끌고, 이를 통한 상호작용이 감동으로 남는 전시회"라며 "전시 자체가 담고 있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사회에 전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설영 기자)

 

 

 

 

 

 

 

 

 

 

 

 

 

 

 

 

이 말은 저술가이여 지구촌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이동원 목사가 쓴 '가정행전'(규장 문화사 148쪽)에 나오는 소제목이다.

 

 

 

1.예수님도 결혼할 가능성이 있었다?

 

이동원 목사는 말하기를 『만약 십자가라는 사건이 없었더라면 예수님께서 결혼을 피하셨을까? 또한 십자가가 그분의 생애에서 매우 늦게 발생하는 사건일 정도로 예수님께서 오래 사셨다면 그분이 결혼을 피하실 이유가 있었을까? 이런 생각을 종종 하게 됩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결혼을 선택하셨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고 생각합니다』(143쪽)
 

그러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가?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이 땅에 오셨다.(막 10:45). 예수님에게 『만약 십자가라는 사건이 없었더라면』이라고 가정하는 것부터가 예수님이 오신 목적을 흐리게 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2.예수님도 성을 즐기신 분이다?

 

이동원 목사는 주장하기를, 성생활이란 매우 좁은 의미에서 성교만을 생각하지만 그러나 넓은 의미로는 남성과 여성의 우정 등이 모두 성적 삶의 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말하기를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도 성을 즐기신 분입니다. 그분은 여성들과 자리를 같이 하시고 그들과 아름다운 우정을 나누시기도 했습니다. 저는 넓은 의미에서 예수님께서도 성적인 삶이 있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143쪽)

 

그럼 우정이 섹스고, 섹스가 우정이란 말인가? 가뜩이나 정조관념이 혼란해지고 있는 이 시대에 이런 성적 문란을 부추기는 저서를 왜 발행 했어야 했는가를 묻고 싶다.

 

3.천국에도 성이 있다.

 

이동원 목사는 『천국에도 성이 있을까(145쪽)』라는 제목에서 『천국에서 남자나 여자나 모두 중성이 되면 너무 심심해서 어떻게 살까 하는 고민이 있었다』(146쪽)고 한다.

 

과연 천국에는 남녀 이성이 있어야만 심심하지 않고 즐거운 곳일까?(롬 14:17 참조)

 

4.성교를 성찬 예배에 비유하다.

 

이동원 목사는 마이크 메이슨이 쓴 책 「결혼의 신비」에서 『예배가 하나님과의 가장 깊은 친교라면 성행위는 부부의 가장 깊은 친교의 형태이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부부간의 성교를 예배에 비유하고 있다.

 

그리고 계속하여 말하기를 [예배는 △찬양을 드리고 △기도하고 △말씀을 듣고 △성찬을 하면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경지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성교에서 △옷 벗는 것을 찬양에 비유하고 △기도는 헐떡임 △말씀은 대화 △성찬은 삽입]에 비유했다.

 

이렇게 해서 부부는 합일의 자리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151쪽).

 

이렇게 이동원 목사는 성찬의 예배 순서와 부부간 성교 순서를 하나하나 대조하고 있다.

 

성찬의 순서를 성교의 순서와 대조하여 말하는 발상 자체가 참으로  참람(僭濫-분수에 넘치는 몹쓸 행동- presumptuous)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언)

 

 

 

 

 

 

 

사진이 안보일 때 이렇게 하십시오

 

1. 사진이 절반만 보일 때는 화면을 다시 한번 여십시오.(Refresh 단추 클릭)

2. 어떤 사진 한 장이 안보이고  X 표가 보일 때는 그림 위에 마우스포인터를 올리고 오른쪽 마우스를 클릭한 후 메뉴 중  Show Picture 를  클릭하십시오.

 

 

 

 

 

일본 해저 화산 폭발, 새로운 섬 만들어져

 

 

  

해저 화산이 폭발해 작은 섬이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고 10일

내셔널 지오그래픽 뉴스 등이 보도했다.

일본 도쿄에서 남쪽으로 약 1,300km 떨어진 해상이다.

매 폭발 시 해상에 작은 섬이 생성되었는데,

다시 섬이 해저로 가라앉았다고 언론은 전했다.

해저 화산 폭발 당시 화산재와 거대한 연기 등이 바다에 피어 올랐으며,

화산 분출 장면은 일본 해상 보안청 헬리콥터에 의해 촬영되었다.

1950년대 이후 해저 화산 주변 바다의 색깔이

수시로 변하는 광경이 포착되었는데, 지난 해 12월 인근 바다가

황록색으로 변했다고 언론은 설명했다.

(사진 : 일본 해상 보안청이 공개한 해저 화산 분출 사진)/

 

 

필리핀 국제 열기구 축제

 


11일(현지 시간) 마닐라 북쪽 팜팡가 주의 클락에서

사람들이 제15회 필리핀 국제 열기구 축제를 구경하고 있다.

나흘 동안 열리는 이 행사에는 아시아와 미국 및 유럽에서 온

열기구 22대 이상이 참가했다.

  

폭설 예고에 텅 빈 슈퍼마켓

 


9일(현지 시간) 미국 버지니아 주 페어팍스의 슈퍼마켓에서

한 여성이 아이를 데리고 장을 보고 있다.

지난주에 이어 또다시 폭설이 예고되자 주민들은 각종 생필품과

음식을 대량으로 미리 사두는 등 비상사태에 대비했다.

 

경찰관에게 맞는 아이티 주민

 


11일(현지 시간)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한 경찰관이 음식과 거주지 등을 요구하는 시위자를 발로 차고 있다.

 

‘러브 레터’ 읽는 아프간 미 해병

 


미국 해군 소속의 한 병사가 11일 아프가니스탄 남부

헬만드주 마르자 작전기지에서 입술 자국이 찍힌 편지를 읽고 있다.

미군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은 최근 탈레반 근거지인

마르자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작전에 돌입했다.

  

아프간 눈사태 현장

 


★*… 10일(현지 시간) 아프가니스탄 파르완의 눈사태 피해 현장.

이번 눈사태로 최소 157명이 숨졌다.

 

론 뮤엑의 조각작품

 

 

‘나뭇가지를 든 여인(Woman With Sticks)

 


'정지된 삶'(Still Life)

 

10일(현지 시간) 호주 멜버른의 빅토리아 내셔널갤러리에서 사람들이

조각가 론 뮤엑의 작품 '정지된 삶'(Still Life)을 감상하고 있다.

 


 

 


 

 

 

 

 


 

 

이승훈, 5000m 은메달 쾌거

 

 

 

 

 

 

 

이정수, 쇼트트랙 1500m 금메달

 

 

 

 

 

 

 

 

 

067+171

 

 

 

 

답은 '에디션에 따라 다르다'다. 이에 따라 사용자는 각 에디션이 제공하는 기능을 꼼꼼히 확인하고 구입해야 한다.

 

윈도우스7은 윈도우스xp, 윈도우스비스타 등 MS의 기존 OS보다 빠른 속도와 편리함을 제공한다는 것이 특징.

MS는 윈도우스xp 사용자가 많다는 점을 감안, 윈도우스7에서도 윈도우스xp용으로 개발된 오래된 애플리케이션을 설치·구동할 수 있도록 '윈도우스xp 모드' 기능을 탑재했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것은 모든 윈도우스7 사용자가 윈도우스xp 모드를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에 출시한 모델은 ▲윈도우스7 홈 프리미엄 ▲윈도우스7 프로페셔널 ▲윈도우스7 얼티미트 등 단 3종이다. 개인 사용자용 최하위 버전인 '윈도우스7 홈베이직'은 한국내 출시되지 않았다.

 

'윈도우스7 스타터'는 넷북 에디션으로 PC에 탑재된 형태로만 공급되며, '윈도우스7 엔터프라이즈'는 기업용 에디션으로 볼륨 라이선스 고객 중 소프트웨어 보증(SA)을 구매한 고객을 대상으로 한다.

 

이중 윈도우스7에서 윈도우스xp용으로 개발된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할 수 있는 에디션은 프로페셔널얼티미트.  출시 버전 중 최하위 버전인 홈 프리미엄에는 이 같은 기능이 없다.

 

 

 

 

 

 

 

 

 

 

 

 

 

 

 

 

국제 금식기도원 김록이 목사의

 

관상기도 훈련

 

 

 

 

 

 

 

 

 

 

 

 

 

 

 

 

 

 

 

 

 

 

 

 

 

 

 

 

 

 

 

 

 

관상기도(Contemplative Prayer)

 

 

 

 

"관상이란 깊은 사고로 생각이 머무는 자리, 궁극적으로는 생각 자체를 뛰어넘어 생각 자체도 쉼을 누리는 자리를 뜻합니다."
- 이동원 목회칼럼

 

"명상(冥想)이란 정신을 하나로 집중하여 모든 생각, 모든 관념을 비워 빈 마음을 이루어내는 작업이다. 불교에서는 명상의 목표를 우주와 진리와의 합일을 목표로 삼는다면 기독교에서는 하나님과의 합일을 목표로 삼는다. 글자 그대로 영적 체험이요, 신비체험이다."
- 김진홍의 아침묵상

 

"(관상)기도하는 것은 생각하는 행위에서 출발하는 것인 만큼 교파를 달리 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의 마음 속을 들여다 본다는 점에서 불교의 수행법인 참선과도 일맥상통합니다"
- 틸덴 에드워드 살렘 인스티튜트 설립자

 

 

 

 

 

 

 

 

 

 

 

 

 

 

이동원목사(지구촌교회)가 개최한 관상기도 세미나의 내용이다.

 

'기독교 영성의 길',

'관상기도의 복음주의적 성찰 및 적용',

'관상기도에 이르는 4단계',

'호흡(숨) 기도',

'침묵과 침묵의 기도',

'관상적 삶 가꾸기',

'관상리더십과 관상회의 인도법',

'자아상의 치유',

'학대와 중독에서의 치유',

'샬롬의 길' 등 모두 10강좌였다.
 

 

아래는 관상기도세미나에서 강의를 한 이동원목사와 인터뷰한 내용이다.

 

 

영성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영성과 ‘관상’(觀想) 기도의 상호 관계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요즘 영성이라는 말이 너무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영성에는 몇 가지 흐름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영성에 대해 게리 토머스(Gary Thomas)는 아홉 가지로 분류하고, 리처드 포스트(Richard J. Foster)는 여섯 가지 생수의 강에 비유합니다.

 

이를 좀더 단순화시켜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곧 하나님의 진리를 추구하는 복음주의(Evangelicalism) 전통, 하나님의 은사를 추구하는 오순절주의(Pentecostalism) 전통, 하나님의 정의를 추구하는 사회복음주의(Socio-evangelicalism) 전통, 하나님의 사랑을 추구하는 수도원주의(Monasticism) 전통입니다. 네 가지 전통은 각각 독특한 영성적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네 가지 색깔이 함께 어우러져 기독교 전체의 영성을 만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느 한 가지만 고집할 수는 없습니다. 관상 기도는 수도원주의 전통에서 나온 기도에 대한 표현으로서 과거 수도사들의 기도에 관한 노력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한 것입니다.

 

관상 기도라 하면 가톨릭적 느낌이 강한데, 복음주의적 관점에서 관상 기도란 무엇입니까?

 

사실 종교개혁 이전에는 개신교와 가톨릭을 구분할 수 없습니다. 또한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 안에서도 관상 기도의 전통이 실종되었습니다. 그러다 20세기에 들어와서 관상 기도가톨릭 안에서 새롭게 조명 받기 시작한 것이죠.

 

하지만 개신교 안에서도 관상 기도의 명맥을 유지해 왔다고 봅니다. 즉 퀘이커교나 재세례파의 전통에서 꾸준히 이어져 왔습니다. 그리고 20년 전부터 개신교 안에서 복음주의 학생 운동을 통해 큐티(개인 경건의 시간)의 활성화로 인해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큐티와 관상 기도에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습니다. 관상 기도가 구체적이고 정형화된 형태로 자리 잡게 된 때는 12세기입니다. 당시 카르투지오회 수도사인 귀고(Guigo) 2세가 ‘기도의 사다리’라고 해서 관상 기도를 4단계로 체계화했습니다.

그 첫 번째가 ‘렉티오 디비나’(Lectio Divina)로서 거룩한 독서인 성경 읽기, 두 번째가 ‘메디타티오’(Medidtatio)로서 묵상하기, 세 번째가 ‘오라티오’(Oratio)로서 기도하기, 네 번째가 ‘콘템프라티오’(Contemplatio)로서 관상하기입니다. 여기서 앞의 세 단계인 말씀을 읽고 묵상을 하며 기도를 하는 것은 오늘날의 큐티와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그런데 전통적인 관상 기도에서 큐티가 생략하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관상하기입니다. 이는 침묵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단계입니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관상 기도 세미나는 오랜 관상 기도의 전통에서 생략되었던 네 번째 단계의 관상하기를 다시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관상 기도는 개신교에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며, 그 동안 소홀히 다뤘던 부분을 보완하는 것이기 때문에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어색해 하거나 부담스러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특별히 목사님께서 관상 기도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가 한국 교회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한국 교회의 대표적인 기도는 통성 기도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한국 교회의 통성 기도를 평양대부흥 운동을 통해 자생한 한국 고유의 기도 형태라고 말합니다. 저의 개인적 신앙 생활과 목회 경험을 돌아볼 때, 통성 기도를 통해 많은 유익을 얻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도 교회를 꾸려가면서 통성 기도는 중요한 기도의 방법이 됩니다.

하지만 저는 통성 기도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기도의 영역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가지의 기도 운동이 필요합니다. 하나는 중보 기도 운동이며, 다른 하나는 관상 기도 운동입니다. 중보 기도를 영적 전쟁이라고 한다면, 관상 기도는 영적 안식입니다. 우리가 전쟁만 할 수 없듯이 안식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최근에 한국 교회는 중보 기도라는 영적 전쟁에 많은 강조점을 둬 왔습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 머무는 안식을 통해 진정한 쉼을 얻고 하나님과의 사랑을 더 깊이 경험해야 합니다. 마귀를 향한 대적도 필요하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영적 일치를 경험하는 것이 더욱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한국 교회가 이런 부분을 등한시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실 이것은 제 자신과 저희 교회에 대한 반성과 필요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를 위해 몇 년 전에 안식년을 가지면서 제 자신부터 관상 기도에 대해 구체적으로 경험하며, 이를 저희 교회의 상황에 맞도록 해야겠다는 노력으로 이어졌습니다.

가톨릭에서 하는 관상 기도는 개신교의 상황과 맞지 않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따라서 잘못하면 가톨릭의 것을 그대로 옮겨올 수도 있는데, 이를 개신교의 상황에 맞게 다듬었습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관상 기도 운동에 우리가 경계하고 조심해야 할 부분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따라서 관상 기도를 무턱대고 포기한다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고 복음주의적으로 승화시키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관상 기도에 대해 정의해 주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관상 기도를 관성의 기도, 관조의 기도, 마음의 기도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관상이 아닌 것이 무엇이냐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관상을 동양적 명상과 같이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그 둘의 출발과 목표는 다릅니다. 동양적 명상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림에서 출발하지만, 관상 기도는 거룩한 독서라는 성경 읽기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관상 기도의 목표는 하나님과의 영적이고 인격적인 일치와 연합입니다. 즉 요한복음 15장에서 말씀하시는 ‘내가 주님 안에, 주님이 내 안에 거하시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관상 기도란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하며, 하나님과 사랑의 일치를 목표로 깊은 묵상과 관조를 통해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안에 머무는 기도입니다.

 

관상 기도 방법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습니까?

 

일반적으로 큐티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다만 여기에 관상하기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관상에 들어가기 위한 중요한 방법은 침묵입니다.

관상 수련가가 말하기를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는 패스워드는 침묵이다.” “침묵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소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 가운데 계시지만 우리의 마음과 입술이 침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침묵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개신교인들에게 이런 침묵의 훈련이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일상적 기도 생활과 함께 깊은 침묵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합니다.

 

기도는 삶과 연결돼야 합니다. 관상 기도를 통해 추구해야 하는 삶의 자세와 태도는 무엇입니까?

 

관상 기도의 궁극적 목표는 관상적 삶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관상적 삶이란 한마디로 서두르지 않는 것입니다. 한 박자 느리게 사는 것이죠. 그 이유는 하나님 안에 머물면서 살기 위함입니다.

즉 기도가 삶이 되고 삶이 기도가 돼야 합니다. 하지만 현대인의 삶은 감정과 스트레스에 지배당합니다. 호흡하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갖지 못합니다.

마르바 던이 「안식」이라는 책에서 “안식하지 못하는 최고의 원인은 우리가 하나님이 되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 되기를 그쳐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모든 것들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역기능적 인생을 살고 있는데, 하나님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되게 하자는 것이죠. 이것이 진정한 관상적 삶입니다. 관상적 삶이라고 해서 일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일과 안식의 리듬을 회복해 주님 안에 머무는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목회 환경에서 관상 기도와 삶이 갖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한국 교회가 지나치리만큼 경쟁적인 것 같아요. 좁은 땅덩이에서 서로의 사역과 교회를 비교하다 보면 쉽게 경쟁적이 되고 맙니다. 이로 인해 목회자들은 적지 않은 부담과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저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관상 기도를 생활화하면서 이런 부분에서 많이 해방되었고 경쟁적 중압감에서 점점 자유하게 되었지요.

 

이런 개인적 경험을 통해 한국 목회자들에게도 관상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관상 기도와 삶은 목회자를 자유롭고 여유 있게 만들며, 조급함과 경쟁심에서 해방시켜 주며,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행복한 목회 활동을 하게 합니다. 따라서 지금 한국 교회의 상황에서 무엇보다 관상 기도와 관상적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관상적 리더십은 지배와 효율을 강조하는 현대 리더십 이론이 갖고 있는 병리적 요소로부터 목회자들을 자유롭게 합니다. 예수님의 리더십을 이야기할 때, 섬김의 리더십을 많이 강조하지만, 그것으로 예수님의 리더십을 모두 포괄할 수 없기 때문에 관상적 리더십이 더욱 큰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전도하고 돌아와 자신들의 사역 결과를 보고하려는 제자들에게 한적한 곳으로 가서 쉴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예수님께는 ‘한적한 곳’이라는 관상적 공간을 갖고 계셨습니다.

 

관상 기도 세미나에 대한 앞으로 계획은 무엇입니까?

 

관상 기도를 적용하면서 자신과 목회에 많은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관심 있는 분들을 중심으로 해서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이를 통해 한국 교회가 더욱 건강해질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은 리처드 포스트가 중심이 된 레노바레(http:// www.renovare.org)와 연결해 몇 가지 활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한국 교회에 관상적 영성이 자연스럽게 파급되고, 관상적 목회를 통해 내적 치유와 영적 자유를 경험하는 목회자들이 늘어나길 바랍니다.

 

 

 

 

 

 

침묵기도 훈련 중인 예수원 성도들

 

 

 

 

    


 

요즘 한국교회는 영성 운동, 영성 신학이라는 이름 아래 번지고 있는 관상기도라는 독감에 걸려 신음하고 있다.

 

한마디로 관상기도는 로마 가톨릭, 중세 신비주의, 힌두교, 불교의 가르침과 관련이 있는 혼합 종교의 새로운 양태이며 신비주의, 인본주의, 개인 및 집단 최면술이 포함된 자기 확신이라고 할 수 있다. 

 

관상기도는 '들음의 신비 체험' 즉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미 확정된 계시관에 심각한 혼란이 야기된다.
 

지금도 성경의 계시가 계속된다면 이미 확정되었다고 선언한 성경의 표준과 그 권위는 어떻게 되며, 사고와 생활은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해야 한단 말인가. 관상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이 법이 되지 않겠는가.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제켜 두고 계속 새롭게 들려오는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단 말인가.
 

이러한 논리를 주장하는 집단은 이단이다. 하나님의 계시가 종결된 이후 오늘날도 침묵 속에서 들려오는 음성이 과연 하나님의 음성인지, 자아의 소리인지, 귀신의 소리인지 누가 판단할 것인가. 그것을 분별할 잣대와 능력과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가.
 

관상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영적 지도자에게 검증 받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가르침은 로마 가톨릭에서나 주장하는 논리이며 우리 주님이나 사도들은 결코 가르친 적이 없는 교훈이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주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그가 의미하는 것을 명백하게 밝혀 놓지 않으셨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교회의 권위 있는 해석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로마 가톨릭의 이러한 거짓된 교훈은 관상 기도를 통해서도 동일하게 강조된다. 누군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그것이 사탄에게서 왔는지 하나님께로 왔는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해석하고 분간하기 위하여 영적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것은 사탄이 만들어 낸 오묘한 거짓말이다.
 

우리는 성경을 최종 권위로 믿는다. 성경이 모든 것을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에서나 여호와증인은 성경이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임을 부인한다. 그러므로 성경만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없으니 내(자기)가 이교에서처럼 관조(관상)를 하여 계시를 획득하려는 것이다.
 

관상 기도 옹호자들은 자기가 수십 년 동안 한 기도는 두 인격체 간의 대화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일방적인 넋두리며 자기도취적인 중얼거림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관상기도를 함으로써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 안에 충만이 거한다고 한다. 그러한 자들이 최종적으로 이를 곳은 어디인가.

결국은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처럼 로마 교황청과 힌두교, 불교, 모슬렘, 유대교 등의 모든 종교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다른 종교들도 결국은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라는 종교 다원주의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은 거의가 성경의 영감 무오나 예수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부활, 승천, 재림 등을 믿지 않는다. 반면에 교황의 절대 무오설이나 마리아 승천설 등은 모두 인정한다. 타 종교에도 구원이 있음을 인정하고 회교, 불교, 힌두교, 유대교와 연합을 추구한다. 세계교회협의회는 실제로 죽은 영혼들을 불러내는 초혼제를 열어 이를 성령의 강림으로 표현한 경험이 있지 않는가. 그들은 궁극적으로 로마 가톨릭과 이방 종교마저도 하나가 되는 것진정한 영성으로 생각한다.
 

주문하듯 중언부언 반복하는 것이 기도인가?
 

관상은 로마 가톨릭과 이교의 혼합 종교에서 온 것이지 성경의 말씀을 기반으로 하는 성경적 가르침이 아니다. 특히 관상 옹호론자들은 짧은 기도문을 끊임없이 반복함으로 신·인 연합의 경험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겠다고 한다.
 

성경에서의 연합은 관상 옹호론자들이 주장하는 신·인 합일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요한복음 17장 11, 22, 23절에서 '하나 된다'고 할 때, 그런 연합이 되게 해 달라는 기도가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연합이 계속 보존되도록 해 달라는 기도이다.

신인합일이 관상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여기서 연합보전되게 하고 유지되게 하는 조건은 주님이 아버지께로 돌아가고 난 후에 온 세상에 전파된 말씀이다.
 

하나 되게 하는 본질은 하나님의 메시지, 곧 말씀이다.  어느 시대든 주님의 교회로 연합하게 하는 것은 주님을 통한 구원을 믿음으로 받고 신앙을 고백한 것으로 된다. 이 방법 외에 다른 연합은 거짓된 연합이다. 말씀과 성령으로의 연합만이 참된 연합이다.
 

분명 관상(묵상)기도 행태는 이방 혼합종교에서 온 심성 종교이지,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의 양식은 아니다.
 

무아지경의 묵상이 성경적 기도인가?
 

관상 기도 옹호자들 중에는 침묵의 기도를 최상의 기도로 언급한다. 침묵의 기도 중에 그들은 무엇을 보았는가. 다음은 리차드 포스터의 고백 중 일부다.
 

"하나님은 마음을 활짝 열고 여러분을 초청하신다. 그분의 집에 슬리퍼를 신고 들어간다. 식탁으로 초청하신다. 그분이 베푼 잔칫상으로 부르시고 거룩한 도서실로 인도하신다. 그리고 침실로 초대하신다."
 

성경이 이러한 것을 가르친 적이 있는가. 성경의 사람들은 기도할 때 말씀과 동떨어진 것을 추구한 적이 없다. 모세도 그렇고 엘리야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로 언약을 파기했을 때, 여호와께서 진노하셨다. 그리고 모세에게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겠다"(출 32:10)고 하셨다.
 

출 32:13을 보면 모세는 철저히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고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간구한다. 불교처럼 자신을 비우고 무아가 되어 간구한 게 아니다. 힌두교에서 하는 것같이 머리를 비우면서 관상적 명상의 행위는 성경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관상적 묵상(명상) 영성 운동은 성경에 근거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마태복음 5장 3절의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과, 시편 46장 10절에서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고 할 때 '가만히 있어'라는 말씀을 근거로 제시한다. 그러나 누가 보아도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기도할 때 말씀에 집중하지 않으면 관상적 묵상이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고를 받은 신접자들의 명상이나 또 주술 같은 중얼거림이 될 소지가 많다. 이교인 통일교에서도 자기들 나름대로 관상을 하는데, 그 방식에 있어서는 오늘날 교회들이 하는 관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와 같이 위험성이 있음에도......

 

최근 관상(관조)은 소위 영성 신학이라는 기치 아래 상당히 퍼져 나가고 있다.

 

"음성 듣기를 원하는 분, 자신의 사업과 가정의 문제로 고민하는 분, 자녀의 문제로 고민하는 분, 암으로 고민하는 분,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싶은 분을 초청한다"고 한다.

심지어 하나님의 음성 듣기 훈련에 참석했던 어떤 목사는 그 세미나에 참석한 후에 "예전에는 흑백 환상을 보았는데, 이제는 컬러 환상까지 보게 되었다"고 한다.
 

일부 관상(관조) 운동을 하는 교회들과 로마 가톨릭, 불교, 힌두교, 통일교의 영성 운동이 그 방식에 있어서 거의 대동소이 하다.

 

예를 들면 호흡 기도(숨 기도), 최면술, 짧은 기도의 반복, 침묵 기도 등이 대동소이하며 다르지 않다. 이러한 운동은 종교 다원주의로 가는 초석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다.
 

우리 기독교는 뉴에이지적 명상 같은 혼합 종교에서처럼 자기 공로로 무엇을 알아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경 말씀의 토대에 견고하게 서서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통을 가지는 것이 기도이다.
 

지금 한국 교회에 고대 이교의 명상 종교가 현대적인 옷을 입고 신종 플루와 같이 변형적인 형태로 나타나 교회를 교란시키고 있다. 그것이 관상 기도다.

이제 우리는 교회에 침투한 관상기도, 침묵, 경청 기도, 요가를 퇴치하기 위해 백신을 놓는 작업을 시급히 서둘러야 할 때임을 알아야 하겠다. (장재언)

 

 

 

 

 

 

 

 

 

 

한국 학생들

 

 

 

교복을 입은 채 무리지어 '욕'을 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주위 시선엔 아랑곳 않고 거친 욕설을 내뱉는다. 오히려 주위에 있던 어른들이 민망해할 정도다.

 

'욕에 중독된 청소년', '무서운 10대들'이란 기사도 쏟아진다. 어떤 상황에서 청소년들은 욕을 할까? 거친 욕 문화가 퍼지는 이유는 뭘까?

 

학생기자 2명이 또래 청소년들의 하루를 따라가 봤다.

"욕으로 쉽게 친근감 느껴"

일상서 의식 못하고 사용
"선생님 불만 욕하면 후련"

억압에 대한 탈출구 생각
 

"존× 배고프다. 망할."

지난 1월8일 오전 등교길에 만난 부산의 ㅎ고등학교 2학년 김아무개군은 친구인 신아무개군에게 '욕'을 늘어놨다. 듣는 신군의 기분은 어떨까? 신군은 "'존×', '망할'이라는 욕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아침을 먹지 못해 '너무' 배가 고픈 것을 말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말엔 다양한 부사가 있지만 일부 청소년들은 주로 '존×'로 대화를 시작한다.
 

신군은 김군에게 "어차피 이제 태도 점수 나가리 아님?"이라며 수업에 들어가지 말자는 제안을 했다. '나가리'는 깨짐, 무효, 허사라는 뜻의 일본어다. 신군은 "욕도 욕이지만 은어로 쓰이는 일본어를 섞어 사용하면 멋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신군은 김군에게 "치사한 새×"라고도 했다. 신군은 "'새×'는 '개새×' 같은 동물을 가리키는 욕이라기보다는 별 뜻 없이 친구를 부르는 말" 이라며 "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섭섭함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상적으로 또래 집단 사이에서 쓰는 단어라는 것이다.
 

여학교인 전북의 ㅇ고등학교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이 학교 2학년 심아무개양은 "친한 친구 사이에 욕을 하지 않으면 자연스럽지 않다"며 "욕을 하면 쉽게 친근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습관적으로 욕을 쓰다 보니 오히려 욕을 쓰지 않는 학생은 '찌질이'나 '왕따'로 놀림을 받는다. 김군과 신군은 "욕을 고치려고 노력해 본 적도 있지만 다 욕을 하는데 나만 안 하면 괜히 소외되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 쉬는 시간
 

"지금 자면 다음 시간에 또 처잘 텐데." 쉬는 시간에 잠을 자려는 강아무개양에게 친구 심양이 하는 말이다. 강양은 "깨우지 마, 씨×"이라며 심양에게 화를 냈다. '씨×'의 의미는 알고 있을까? 강양은 "'씨×'의 정확한 뜻은 잘 모르지만 화가 날 때 자주 쓴다"며 "욕이 심하다고 느낄 때도 있지만, 분노를 나타내고 싶을 땐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욕'은 이처럼 자신의 극단적 감정을 나타내고 싶을 때 무의식적으로 나온다. 기분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욕'은 항상 이들을 따라다닌다.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화제로 대화를 나눌 때에도 욕은 어김없이 등장한다.

"나 어제 10시간 잤어. 씨×, 미쳤나 봐. 그래도 지붕뚫고 하이킥은 보고 잤다. 이나영 나왔어" "최다니엘 전 여자친구로 나왔는데 남장한 모습 쩔어. 이나영 존× 예뻐. 대박!"

ㅇ고등학교 2학년 심양과 정아무개양이 점심식사를 하며 나눈 대화다.

 

연예인의 외모에 대한 '확실한' 평가를 위해선 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얘기다. ㅎ고등학교의 신군도 "욕을 쓰지 않으면 대화에 재미가 없을 뿐 아니라 확실한 감정 표현을 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정말', '진짜'와 같은 일반적인 부사로는 '감정'을 제대로 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 수업 시간
 

"시험 문제 좀 알려줘. 뭐 나와?"

"나도 하나도 못 썼어."

"병×, 네가 그렇지."

 

ㅇ고등학교 2학년 박아무개양은 친구인 심양에게 쪽지시험 문제를 물어보며 '병×'이라고 핀잔을 준다. '병×'의 사전적 의미는 '모자라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심양은 "그냥 장난으로 하는 말이라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험과 성적에 대한 부담 때문에 억눌린 '스트레스'를 푸는 목적으로 욕이 쓰이기 때문이다.
 

학교와 선생님에 대한 불만도 욕으로 해결한다.

특히 선생님을 향한 욕설은 심각하다.

 

"추워 죽겠는데 왜 쫓아내고 지×이냐."

"대머리 주제에 깝싸네."

 

ㅎ고등학교 2학년 김군과 신군은 계속해서 거친 욕을 내뱉었다. 수업 시간에 떠들었다고 교실 밖으로 내쫓은 선생님에 대한 반발이다. '깝싼다'는 건방지고 주제넘게 군다는, '까불다'의 뜻이다.
 

ㅇ고등학교의 심양도 "선생님에게 불만이 있어 욕을 할 때에 통쾌함을 자주 느낀다"며 "욕을 하면 속이 후련해진다"고 말했다.

기성세대가 금지한 '욕'을 쓰면 억압에서 벗어나는 해방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충동적 감정을 다스리기 힘든 사춘기의 아이들을 끌어안아 줄 사회적 장치가 없는 탓도 있다.

# 수업이 끝나고
 

야간 자율학습 시간이다. 부산의 ㅎ고등학교 2학년 신군은 "우리 사이 이거뿐이가. 와 개매너다. 끄지라"며 김군에게 화를 냈다. 자습시간에 피시방에 가자는 것을 김군이 또 거절했기 때문이다.

김군은 "×아라, 그냥"이라며 '꺼져라'에 맞대응을 했다. '×아라'는 어른들도 입에 담기 힘든 성적인 욕설이다. 얼굴이 붉어질 만한 표현이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남학생들은 특히 동성 친구끼리 있을 때 욕을 더 심하게 한다. 성에 대한 노골적인 욕설을 통해 상대방을 더 깎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군은 "남학생의 욕설은 대부분 성적이다. 가끔 얼굴을 붉힐 만큼 야한 단어를 욕에 섞어 하는 친구도 있다"며 "나도 욕을 하지만 인신공격을 하거나 성적 비하 발언을 들을 땐 좀 힘들다"고 말했다.

 

성적인 욕설은 관심 있는 여자 연예인이나 여자 친구를 표현하기 위해서도 자주 쓰인다.

"존× 예뻐, ○○!!" "난 △△가 더 예쁜 것 같은데,×다!"

어제 저녁 텔레비전 음악 프로그램에서 본 여성 그룹 멤버들의 외모를 두고 신경전이 한창이다.

신군은 "'×다'는 예쁜 여자를 보면 꼭 해야 하는 말"이라며 "남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욕설이라 뜻을 말하기엔 조금 음란하다"고 쑥스러워했다.

 

예전보단 개방적인 성 문화가 널리 퍼졌지만 아직까지 10대들에게 성은 금기시되고 있다. '성'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할 수 없는 탓에 왜곡된 '성적 욕설'만이 청소년의 일상에 깊이 파고들고 있다.
 

이슬기(이일여고 2년), 진혜란(해강고 2년) [아하!한겨레] 2기 학생수습기자
 

 

 

 

 

 

 

 

 

 

 

 

 

 

 

 

 

 

유학 온

무슬림 대학생들끼리

기도회 갖고 포교 활동

 

대학생 선교단체들에 비상

 

 

 

 

신학기를 준비하는 대학생 선교단체들에 비상이 걸렸다.

 한기총 대표회장 이광선 목사는 지난달 28일 한기총 총회에서 “UAE 원전 수출로 경제 발전에 대한 기대도 크지만, 역으로 이교의 포교활동에 대한 우려도 크다.”고 밝힌 바 있다. 
 

중동국가 대학생들의 한국 유학으로 인한 무슬림 포교활동이 심각하다. 
 

한국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무슬림 학생들은 3,826명. 이는 일반 언어연수생 1,024명이 포함된 숫자다. 그러나 필리핀, 인도, 러시아 등에서 온 학생들은 조사에서 제외된 것이어서 실제로는 더 많은 무슬림 대학생들이 캠퍼스에서 활동하고 있다.
 

무슬림 사역 단체의 한 관계자는 “교과부가 진행 중인 'Study in Korea' 프로젝트로 이슬람 학생들이 더 많이 들어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이들은 선교적 사명을 갖고 한국 대학에서 공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의 모 대학에서는 무슬림 대학생 20여명과 방문자 10여명이 동아리모임을 만들어 정기적인 기도회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대입수학능력시험에 제2 외국어에 아랍어가 포함되면서 이슬람에 대한 우호적인 생각을 갖고 대학에 입학하는 청소년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말 치러진 수학능력시험에서 아랍어를 제2 외국어로 선택한 학생들은 29,278명으로 전체의 29.4퍼센트를 차지했다. 아랍을 배울 수 있는 학원도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수험생이 몰리는 것은 시험문제를 쉽게 내기 때문에 높은 점수를 맞을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한편 한국에는 20만 명의 무슬림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이슬람 예배소는 76개, 성원 9개, 센터 7개, 임시예배소 60여개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슬림은 또 한국 포교를 위해 [꾸란]을 한국어로 여섯 차례나 번역한 것으로 확인됐으며, ‘알라’를 ‘GOD(하나님)’으로 번역했다. 특히 [꾸란]원문의 폭력성을 약화시켜 번역함으로써 무슬림이 평화와 관용의 종교이며 국익에 도움이 되는 종교라는 인식을 심으려고 하고 있다. 
 

또한 포교 책자 200여종을 출판해 출판을 통한 포교활동도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9월부터 8개 아랍어 언어로 아랍어방송을 시작했다. 또 경기도의 한 지역에 이슬람문화대학 설립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무슬림들의 한국내 포교 활동이 전방위 적으로 포교활동을 강화하고 있어 한국 교회가 그 어느 때보다 대학생선교단체들의 사역을 적극 지원하고 협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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