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24  2010

 

 

 

 

 

 

 

얼굴
 

수원시립합창단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얼굴
내마음 따라 피어나던 하얀 그때 꿈을
풀잎에 연 이슬처럼 빛나던 눈동자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얼굴
무지개 따라 올라갔던 오색빛 하늘 아래
구름속에 나비처럼 날으던 지난 날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곤 하는 얼굴
 

 

 

 

 

 

 

 

 

 

 

 

 

 

 

 

 

 

 

 
 
 

 

 


한용운

봄 물보다 깊으니라
가을 산 보다 높으리라
달보다 빛나리라
돌보다 굳으리라
사랑을 묻는 이 있거든
이대로만 말하리.



 

한용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한용운


사랑을 '사랑'이라고 하면, 벌써 사랑은 아닙니다.
사랑을 이름지을 만한 말이나 글이 어디 있습니까.
미소에 눌려서 괴로운 듯한 장미빛 입술인들

그것을 스칠 수가 있습니까.

눈물의 뒤에 숨어서 슬픔의 흑암면을 반사하는

가을 물결의 눈인들 그것을 비출 수가 있습니까.
그림자 없는 구름을 거쳐서,

메아리 없는 절벽을 거쳐서,

마음이 갈 수 없는 바다를 거쳐서 존재? 존재입니다.

그 나라는 국경이 없습니다. 수명은 시간이 아닙니다.
사랑의 존재는 님의 눈과 님의 마음도 알지 못합니다.
사랑의 비밀은 다만 님의 수건에 수놓은 바늘과,

님의 심으신 꽃나무와, 님의 잠과, 시인의 상상과,

그들만이 압니다 

  

 

 

 

 

 

 

 

 

 
 

 

 

 

두 점의 그림이 있다. 반세기의 시차를 두고 그려졌다.

 

먼저 배운성의 1935년작 <가족도>.

 

식민지시대의 대표적인 가족화로 꼽힌다. 안마당과 대청마루에 앉고 서고 도사린 3대의 일가족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각 인물의 개별 사진들을 모본 삼아 그린 일종의 ‘합성그림’인데, 단체 가족사진에서처럼 구성원 간 위계질서가 강조돼 있다. 집이 배경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을 ‘품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또 하나의 그림은 안창홍이 1982년에 그린 <가족사진>이다.

 

 

한 사람은 앉고 두 사람은 서 있는, 스튜디오 사진의 전형적인 구도다. 특이한 것은 인물의 얼굴이다. 가면을 씌워놓은 듯 표정 없는 흰색의 안면 위로 동굴처럼 검게 뚫린 눈과 입. 인물들이 차려 입은 식민지 시대 풍의 정장들과 어우러져 기괴하고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미술평론가 박영택씨가 쓴 <가족을 그리다>는 한국의 근현대사 속에서 가족이라는 원초적 공동체가 겪었던 가파른 변화가, 가족을 시각적으로 재현하는 회화양식(가족화)에는 어떤 형태로 투영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과정은 한국회화의 상투화된 모성 이미지와 단란한 가족상에 담긴 가부장 이데올로기를 폭로하면서, 식민지와 전쟁이란 극단의 체험이 남겨놓은 트라우마와 대면하고, ‘시공간 압축’으로 표현되는 사회변화의 급진성이 작가들의 미적 표상체계에 야기한 동요와 균열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가족이란 공동체가 겪은 변화가 가팔랐으니 가족을 형상화한 그림들 역시 현기증 나게 변하기는 마찬가지다.

 

배운성과 안창홍의 그림이 보여주는 것도 이것이다. 조부모-부모-자녀 세대로 구성된 17명의 대가족이 등장하는 배운성의 그림은 혈통을 중시하는 전통의 가족의식뿐 아니라, 치밀하게 고려된 인물 배치와 자세를 통해 ‘효’라는 가족 이데올로기를 은밀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런 대가족은 식민지 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급속히 사라진다. 이런 점에서 글쓴이는 배운성의 그림을 “점차 망실되어 가는 도정에 위치한 불안한 가족의 얼굴”이자 “거의 마지막 잔해처럼 간직된 대가족의 초상”이라 부른다.

 

전통의 대가족이 더 이상 지탱 불가능한 현실이 되어버렸음을 감지한 데서 비롯된 불안과 안타까움이, 모든 구성원(개까지도 포함된)이 집이라는 ‘절대공간’에 철저하게 녹아 든 완벽한 구도의 합성그림을 낳았다는 얘기다.

 

47년 뒤 안창홍의 그림에 등장하는 것은 부모와 외아들로 구성된 3인 가족이다.

 

여기서 집은 배경으로조차 등장하지 않고, 피사체가 된 인물들에선 일말의 생명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글쓴이는 이를 두고 “가족의 해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이미지”라 규정한다. 과거의 가족 이미지가 한결같이 따뜻하고 평화로운 장면을 연출하는 것으로 상투화됐다면, 안창홍의 작품에선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한다는 것이다.

 

이 그로테스크한 작품에는 어머니의 가출과 아버지의 재혼이라는 작가의 비극적 가족사가 녹아 있다. 하지만 그 개인사가 시각화되어 관객 앞에 노출되는 순간, 작품은 병든 사회를 살아가며 허깨비가 되어버린, 더는 이상적인 삶의 모델로 인정받지 못하는 “죽어버린 가족의 기념비”가 된다.

 

책은 이와 함께 한국전쟁이 야기한 죽음과 이산의 아픔, 산업화의 격랑 속에서 가속화하는 가족의 해체, 1990년대 본격적으로 싹튼 근대 가족제도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작가의 심미적 자의식 안에 어떻게 녹아 들었고, 또 어떤 형태의 작품으로 형상화돼 있는지를 장욱진, 이중섭, 박수근, 이왈종, 이만익, 임옥상, 오윤, 방정아, 김옥선, 백지순 등의 사례를 통해 생생히 드러낸다. (소피아)

 

 

 

 

 

 

 

 

 

 

 

 

 

 

 

 

 

 

도로시 글래디스 스미스 작

 

가족의 사랑은 바람과 같습니다.

본능적이고 꾸밈이 없으며 부서질 듯 연약하지만 아름답고

때로는 서로에게 화를 내도 결코 멈출 수 없는 사랑. 

그것은 우리 모두의 숨결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힘입니다.

우리의 마지막 기적입니다.  <제임스 맥브라이드>

 

 

 

 

 

 

 

 

 

 

 

 

 

 

 

 

 

 

 

 

 

 

내가 초등학교 시절 엄마는 통이 아주 넓고 길이가 무척 긴 바지를 즐겨 입었다.
 

'돼지 굽' 이라 불리우던 앞 뒤 굽의 높이가 비슷한 구두에 바지를 받쳐 입으면 키가 무척 커 보였다.
 

그런 스타일이 그 시절 유행이었다. 어린 나이었지만 젊은 엄마가 유행을 따라 옷을 입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엔 살이 퐁퐁하고 머리는 구불구불하게 멋을 냈다.
 

엄마가 통 넓은 검은 바지에 몸에 꼭 붙는 셔츠를 입고 나서면 처녀 같았다.
 

하지만 우리 할머니는 유행이 못마땅했는지 처녀 같은 엄마가 못마땅했는지 종종 그런 엄마를 보시며 혀를 차시곤 했다.

"에무나이 저 저 쓰봉이 저렇게 길어서리 방안을 질질 쓸고 다닌다 쯧쯧."
 

그렇지만 할머니가 아무리 야단을 쳐봐야 소용없는 일이었다. 엄마의 통 넓은 바지는 그 후에도 오랫동안 방안을 쓸고 다녔다.
 

하도 오래 전 일이라 어디였던지 정확한 지명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엄마는 경기도의 한 작은 마을 언덕배기에 있던 교회엘 다녔다.
 

의자도 없이 마루바닥에 앉아 예배 드리던 가난한 교회였다. 풍금이 한 대 있었던 기억이 난다.
 

교인들이 찬송가를 부를 때면 풍금소리가 교회 가득 울려 퍼졌으니까. 곰곰 생각하니 한 번은 풍금을 만지면서 소리를 내자 비싼 풍금이 고장 나면 어쩌려고 손을 대느냐며 엄마에게 야단을 맞았던 일도 떠오른다.
 

어느 날 엄마는 금색에 가까운 노란 한복을 입고 교회엘 갔다. 새해 첫 예배를 드리는 주일이었다.
 

예배를 마친 후 몇 명 안 되는 교인들과 떡국을 나누어 먹으며 안부를 나누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가와 사진을 찍었다.
 

집에 남아 있는 그 당시 찍었던 빛 바랜 사진을 보면 식탁 위에는 여기저기 빈 그릇들이 보이고 엄마는 무엇이 그리도 기쁜지 그림책에 나오는 해처럼 활짝 웃고 있다.
 

그 무렵 엄마는 로마서에 홀딱 반해서 성경책을 가슴에 끼고 잠을 잘 정도였다고 했다.
 

지금 내 나이쯤 엄마는 미국에 이민을 오셨다. 그 시절 미국 이민 온 사람들 대부분이 그랬었지만 엄마도 몸으로 때우는 노동을 먼저 배워야 했다. 엄마가 일하는 곳에 몇 번 따라간 적이 있다.
 

일을 마친 후 바닥에 빙 둘러 앉아 먹는 점심을 먹을 때는 마치 소풍을 나온 것 마냥 즐거웠다. 철없던 시절의 이야기다.
 

어느 햇볕 좋은 여름날 오후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신문을 읽는 엄마의 팔뚝에 눈길이 멈췄다. 군데군데 보이던 상처자국 때문이었다.
 

상처자국을 보면 잠시 잊고 있던 엄마의 수고가 생각나 가슴이 격하게 움찔했다. 엄마의 노동은 아주 오랫동안 계속됐다.
 

엄마는 흉내쟁이다. 전라도 사람을 만나면 전라도 사투리를 경상도 사람을 만나면 경상도 사투리를 그리고 이북 사람을 만나면 이북 사투리를 똑같이 흉내 낸다.
 

어디 그뿐이랴. 장안의 유명한 고구마 전도왕 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K목사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개그맨 보다 더 웃기는 C목사의 흉내도 거의 비슷하게 낸다.
 

엄마가 한번 발동이 걸리면 조용하던 집안은 갑자기 시끄러워 진다.
 

크게 웃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아빠는 억지로 웃음을 참느라 코만 벌렁거리고 나는 체면이고 뭐고 웃다가 데굴데굴 구른다. 강아지들은 영문도 모른 채 왕왕 짖다 너무 흥분되어 지들끼리 으르렁거린다.
 

그리고 엄마의 웃음 소리가 들린다. "이히히 히히!"
 

엄마는 빨강색이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린다. 나는 파랑 색이 더 잘 어울린다.
 

엄마는 말하는 걸 좋아하고 나는 듣는 것을 좋아한다. 엄마는 서늘한 날씨에도 시원한 국을 먹고 나는 한 여름에도 뜨거운 국만 먹는다.
 

돼지고기 안 먹는 엄마는 순대는 먹고 순대 안 먹는 나는 돼지고기를 좋아한다. 엄마는 떡을 좋아해 떡보라 불리고 나는 빵을 좋아해 빵 순이라 불린다. 나는 가성으로 노래를 부르고 엄마는 육성으로 노래를 부른다. 엄마는 방언기도를 하지만 나는 방언기도를 못 한다.
 

엄마와 나는 성악가 호세 카레라스를 사랑한다. 브레아 몰에 가면 카페테리아에 들러 꼭 프레첼을 먹는다. 우리 둘 다 베이글은 플레인을 좋아한다. 너무 맑은 날엔 가슴이 싸한 슬픔을 동시에 느낀다.
 

둘이 똑같이 비를 좋아한다. 이층집 보다는 단층집을 선호하고 카펫 보다는 마루바닥을 좋아한다. 엄마와 나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모태신앙 출신이다. 무엇보다 엄마와 나는 지나가는 사람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생김새가 꼭 닮았다.
 

엄마는 내가 살면서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지켜주신다.
 

작별을 결심하는 딸의 연인이 되어 /

햇살 기우는 저녁 바닷가를 거닌다. /

한 걸음 앞선 그녀의 등에 스쳐가는 잔 파도 /

두 손에 겨우 차던 내 작은 핏덩이 /

세상을 배워가는 첫 걸음이 안쓰러워 /

속 가슴 저린 마음을 땅거미에 감춘다./

 

엄마의 시다. 딸을 향한 엄마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엄마 죄송합니다."
 

엄마의 피부는 더 이상 팽팽하지 않다. 하얀 머리카락은 이미 사십 대부터 염색을 하지 않으면 검은 머리카락보다 훨씬 더 많다.
 

날씬했던 허리 둘레는 두루뭉실하고 뱃살은 넉넉하다.
 

얼굴엔 검버섯이 송송 보이고 단단하던 팔뚝 살은 흐물흐물 힘이 없다. 엄마의 겉 모습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하지만 속은 여전히 단단하다.
 

나는 아직도 엄마의 시사 정치 사회 경제 역사 그리고 연예 지식까지 반도 못 따라간다. 새벽 잠결에 들리던 엄마의 웅얼웅얼 기도소리 기억은 수도 없이 많다.
 

나의 나 된 모습은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난 사십 삼 년 삶을 사는 동안 단 하루도 빠지지 않았을 엄마의 기도 덕분인 것을 안다.
 

엄마는 나의 영어 이름을 '사라'로 지어 주셨다. 사라는 성경에 나오는 인물로 아브라함의 부인이다.
 

'사라'는 만국의 어머니라는 엄청난 의미를 갖고 있다. 무남독녀인 딸을 생각해서 의미심장한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성경의 사라가 자녀를 낳았을 때 나이가 구십 일세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나 사라(Sarah)의 엄마는 아직도 "할머니"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다.
 

혹시 성경 속의 사라 그녀처럼 나도 구십 일세에 아기를 낳는 건 아닐까. 상상만으로도 공포의 고함이 저절로 질러진다.
 

"엄마 그때까지 꼭 살아 있어야 돼. 나 기운 없으니까 엄마가 대신 길러줘야 돼!" 그나저나 아브라함은 어디서 찾나.
 

해피 마더스 데이!(장슬기)
 

 

 

 

 

 

 

 

 

 



 

밀레니엄 세대를 상대로 최근 집계 발표한 라이프웨이 리서치에 따르면....

 

이들의 61%는 가족을 삶의 최우위에 두고 있고

차 순위는 친구들(25%),

교육(17%),

커리어/직장(16%),

배우자/파트너(13%) 순이었다.

 

영성/종교는 13%로 그쳤다.

 

이어 재정(12%),

행복(12%),

자녀양육(11%),

건강(10%),

활동(9%),

웰빙(9%),

미래(5%),

자연/애완동물(5%),

시간선용(4%) 등이었다.
 

신앙을 중시한다는 사람들은 교회권 사람들(31%), 대학원 졸업자들(23%), 크리스천으로 자임한 사람들(18%) 등이었다.

놀랍게도 그리스도를 구주로 신뢰한다고 한 사람들의 3분2는 최우위에 신앙/종교/영성 등을 놓지 않았다. 신앙을 중시한 사람은 비교회권 사람들의 3%, 아무 교파/교단 소속이 없는 사람들 가운데는 2%였다.
 

한편 가족을 우위에 둔 사람들은 백인과 교육층, 기혼자, 기독교인들 가운데 더 많았고, 친구를 더 중시하는 사람들은 고소득층 젊은이들, 백인/아시안계, 고교이상 학력자, 싱글 등이 더 많았다.
 

이들 중 나이가 더 많거나 중산 이상층, 고학력자, 비신자 층 밀레니얼들은 건강을 가장 중시했다. 행복을 더 중시하는 사람들은 고소득층, 서부사람들, 비신자들 가운데 더 많았다.

한편 미래를 우위에 둔 사람은 흑인들, 미혼자들이 더 많았다. 탐 레이너 라이프웨이 리서치 대표는 교회가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가족가치관을 강하게 중시하는 교회들은 밀레니얼에게 더 근접하기 쉽다는 게 그의 생각. 또한 젊은 성인들을 멘토링해 주는 나이든 성인들은 밀레니얼들을 그리스도에게 한층 효과있게 소개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응답자들은 때때로 우위 대상을 따로 다루기보다 한데 묶어 답했다. 가족/친구/행복을 가장 중요하다고 또는 휴가/자유시간/친교 등을. 혹은 음악/자원 등을, 경력/친구/가족/건강 순으로 중시하기도 했다.
 

 

 

 

 

 

 

 

좀 지난 이야기를 해 보겠다.

 

미국 언론들은 ‘변화(Change)’와 ‘희망(Hope)’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오바마를 미국의 44대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숨은 주역이 현재 나이가 9세에서 28세에 달하는 밀레니얼(Millennial) 세대라고 다투어 보도한바 있다.
 

어린 학생들은 자신들의 부모들에게 무조건 오바마를 찍으라고 종용했고, 투표권이 있는 대학생과 사회 초년생들은 진정으로 미국이 변해야 한다는 희망으로 투표한 결과로 분석했었다.
 

이들 밀레니얼 세대는 미국 역사상 가장 부유한 세대인 베이비부머 세대(2차 세계대전 후 출생한 세대)의 자녀들로 좋은 교육과 물질적인 어려움이 없는 환경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이들은 미국 역사상 초유의 9·11테러와 이라크전쟁, 아프칸전쟁, 금융위기 등과 같은 국제적인 정치, 사회, 경제적인 이슈를 경험했다.
 

아마도 이런 복합적인 영향으로 이들의 머릿속에는 변화와 희망이 가장 중요한 화두로 자리 잡았을 수 있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현재 이들은 7000만명에 달해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베이비부머 세대(7700만명)와 거의 유사한 규모다.

 

따라서 이들이 의식소비패턴은 이미 미국 경제를 변화시키고 있으며 아울러 향후 미국 소비시장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많은 경제 및 사회학자들이 진단하고 있다.
 

참고로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의 70%는 소비지출이 차지하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는 무엇보다도 부유한 부모가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양육한 세대이기 때문에 자신이 옳고 특별하다는 생각으로 자존심과 성취욕이 강하다.
 

따라서 유행에 휩싸이기보다는 자신만의 세계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유명 브랜드 제품보다는 자신만의 독특한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 제품을 구입하려고 제품 비교를 많이 하며 일반 시민적인 룩을 나타내는 의류를 선호하고 있다.
 

이런 경향은 서바이버(Survivor), 어메이징 레이스(Amazing Race)와 같은 일반인이 주인공인 리얼리티 프로그램과 아메리칸 아이돌(American Idol)과 같은 일반인 장기자랑 프로그램의 인기를 더욱 높여주고 있다. 아울러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많은 밀레니얼 세대가 며칠 밤을 새워가면서 응모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기술에 대한 포용력이 강해 하이테크 제품 구입에도 열성을 보이고 있다. 하이테크 제품을 친구보다 먼저 구입하기 위해 다른 생활비를 줄이면서 긴축 생활을 하고 외식보다는 집에서 간단하게 요리할 수 있는 냉동식품을 선호한다.
 

개인보다는 팀 지향적이기에 사회적인 책임의식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최근 일고 있는 환경 이슈에 대한 관심은 어느 세대보다도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환경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려면 하이브리드 차량을 구입하기보다는 자전거를 타거나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고 믿고 있다.
 

아울러 자신과 같은 또래와 항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관심사다. 핸드폰으로 통화하기보다는 텍스트메세지로 항상 연결되어 있고, 친구들의 구전(口傳)이 제품 구입에 가장 중요한 참고사항으로 작용하고 있다.
 

유투브(YouTube), 페이스북(FaceBook), 마이스페이스(MySpace) 등과 같은 소셜사이트 참여가 중요한 일상사이며 정치에 대한 관심도 부모 세대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언)

 

밀레니엄 세대 즉 Y세대는

인터넷 세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코맥 매카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더 로드>, 영화가 거의 막바지에 이를 때쯤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한 장면이 등장한다.

 

하늘엔 죽음의 빛이 가득하고, 황량한 해변에는 고래와 인간의 해골이 널려 있다. 이 이름 없는 해변에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앉아 있다. 이 두 사람은 형언하기 어려운 위험과 싸움과 덫이 가득한 종말 이후의 폐허를 지나 걷고 또 걸어 마침내 이 해변에 도착했다.
 

열 살 난 아들은 바다를 본 적이 없다. 아들이 물었다.

 

“저 건너편에는 무엇이 있어요?”
 

허기에 지치고, 온갖 위험을 피해오느라 쇠약해진 아버지가 대답했다.

 

“아무것도 없단다.”
 

그러나 암울하고 망해가는 세상이지만 어딘가에 여전히 선한 것이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 아들이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뭔가가 틀림없이 있을 거예요.”
 

아들의 소망을 짓밟고 싶지 않은 아버지는 한껏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어쩌면 그곳에도 아버지와 아들이 있을 거야. 아마 그들도 우리처럼 바닷가에 이렇게 앉아 있겠지.....”
 

영화 <더 로드>는 한 아버지와 아들의 지고한 사랑을 대형 스크린에 담음으로써 2006년 출간된 매카시의 책에 나타난 종말과 구원의 메시지를 제대로 그려냈다.

 

그리고 바닷가에 앉아 있는 아버지와 아들의 장면을 통해 관객 모두에게 인류 보편의 질문을 던진다.

 

 

 

 

 

 

 

 

 

영화 더 로드의 한 장면

 

 

 

 

 

 

사진이 안보일 때 이렇게 하십시오

 

1. 사진이 절반만 보일 때는 화면을 다시 한번 여십시오.(Refresh 단추 클릭)

2. 어떤 사진 한 장이 안보이고  X 표가 보일 때는 그림 위에 마우스포인터를 올리고 오른쪽 마우스를 클릭한 후 메뉴 중  Show Picture 를  클릭하십시오.

 

 

 

 

 

 

 

땅이 탐스럽다

 


 나무를 심는 사람이 그러하듯, 씨 뿌리는 사람은 거룩하다. 씨앗은 생명의 근원이다. 씨앗의 관리자는 농부다. 그들은 근면해야 한다. 부지런하지 않은 이는 농부가 아니다. 그냥 시골에 사는 사람이다. 뙤약볕이나 빗줄기를 피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농부의 하루는 네 토막이다. 오전, 오후에다 조전(朝前)의 노동이 가볍지 않다. 밤의 일거리는 따로 있다.

 

농경의 시작은 새벽 이슬을 맞으며 소 끌고 나가는 것이다. 농부는 모두 새벽형 인간이다. 농부의 밤은 두레와 품앗이의 시간이다. 사랑과 정을 나눈다. 이어지는 잠은 감미롭다. 숨결은 깊고, 우렁차게 코를 곤다.
 

농부는 지혜롭다. 늘 자연과 교감하고 대화하기 때문이다. 산에서 정직을, 물에서 배려를, 나무에서 나눔을, 태양에서 평등을 익힌다. 농부는 성자다. 하늘을 받들고, 땅을 존중한다. 이웃을 아끼고 동물과 공존한다.

 

5월, 씨앗은 야무지고, 땅은 북슬북슬 탐스럽다. 농부여, 뿌려라, 열릴 것이니! (글 손수호)

 

찌걱산 거닐다 바람나겠네

 


세 물길 갈리는 태백 삼수령 넘어 세 골짜기 마을의 봄 태백시 삼수동 귀네미골.

퇴비를 뿌리는 등 배추 파종을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바지락 캐는 아낙들

 


 

여름의 문턱인 입하가 지나자 전남 강진만 갯벌에서

아낙네들이 늘어서 바지락을 캐는 모습이 아름답다.

모래와 펄 흙이 섞여 있는 곳에서 잘 자라는 바지락은

요즘이 가장 살이 많이 오르고 맛이 좋은 철이다.

 

미 육군사관학교 졸업식

 


22일 미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한 생도들이 연설이 예정돼 있는

오바마 대통영을 기다리고 있다. 가운데는 여성생도.

  

“TV 주인, 방송사서 시청자로”

 

한국 네티즌본부카페 작성: ← 변조방지표시

구글의 최고경영자(CEO) 에릭 슈미트 씨(왼쪽)가 20일(현지 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구글 개발자 회의에서 협력업체

CEO들과 함께 구글TV를 소개하고 있다.

왼쪽에서 두 번째부터

어도비의 샨타누 나라옌, 베스트바이의 브라이언 던,

디시 네트워크의 찰리 얼젠, 로지텍의 제럴드 퀸들런,

소니의 하워드 스트링어, 인텔의 폴 오텔리니 CEO.

 

월드컵 대표팀 떴다

 

작성 :  한국 네티즌본부카페← 변조방지표시

 월드컵 축구 대표팀이 정장을 차려입고 축구장 위를 걷고 있다.

22일, 파주 NFC(Paju National Football Center)에서 월드컵 대표팀은

의류브랜드 '갤럭시'가 협찬한 대표팀 공식 수트‘프라이드11'을 입고

포즈를 취했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월드컵 때

정장을 입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北의 도발 용납할 수 없다!

만든 곳→ 한국 네티즌본부카페

 천안함 사건에 대해 민군합동조사단이 북한 어뢰에 의한 침몰로

공식 발표한 가운데 대한민국특수임무수행자회 회원들이 20일

서울 국방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강력한 응징과 보복을 촉구하고 있다.

 

백령도에서 천안함 내용 담긴 대북전단 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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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침몰이 북한 어뢰공격에 의한 것이라는 조사결과가

공식 발표된 20일 오후 자유북한운동연합과 납북자가족모임 회원들이

백령도 심청각에서 천안함 사고 내용이 담긴 대북전단 50만장과

연평.대청해전 동영상CD 등을 북으로 날려보내고 있다.

‘천안함 전사여, 대한민국은 복수하리라’라는 제목의 전단에는

'북한 정부는 남한에 잠수정을 침투시켜 수중음파어뢰로

천안함을 폭파해 46명의 꽃다운 청춘을 희생시켰다'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이날 대북전단 살포는 지난 16일

북한의 ‘전단 살포시 육로 통행 차단’ 경고가 나온 이후

처음 이뤄진 것이어서 북한의 대응이 주목된다.
 

기름을 태워 생긴 검은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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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현지 시간) 미국 멕시코만에서 해수면 위의 기름이 태워지고 있다.

BP社의 딥워터호라이즌 폭발로 유출된 기름의 확산을 막기 위해

인위적으로 해상의 기름을 태우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부르카 금지법안' 프랑스 각의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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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의상 차림의 프랑스 여성이 18일 파리 동쪽 몽트뢰유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가 추진중인

'부르카(무슬림 여성의 얼굴을 가리는 베일) '착용 금지 법안'을 비난하고 있다.

손에 든 것은 프랑스 여권, 그러나 프랑스 정부는 19일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주재로 각의를 열어, 부르카 착용을

강요한 사람에게는 1년 징역형과 1만5000유로의 벌금형을,

부르카를 직접 착용한 여성에게는 150유로의 벌금형을 부과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무슬림들은 부르카 착용금지가

여성의 표현 자유와 종교적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며 반발한다

 

 

 

 

 

 

 

 

 

 

 

 

 

독서클럽, 이 번호는  쉽니다.

 

 

 

 

 

 
 

 

 

 

 

 

청호 윤봉석

 

이 세상은 우리들의 필요를 위해서는 풍요롭지만

탐욕을 위해서는 궁핍한 곳입니다

 

나누는 일을 이다음으로 미루지 말고

이다음은 기약할 수 없는 시간입니다

 

내가 평소 타인에게 나눈 친절과

따뜻한 마음씨로 쌓아 올린 덕행만이

시간과 장소의 벽을 넘어 오래도록 나를 이룰 것입니다

 

습관적인 만남은 진정한 만남이 아니랍니다

그것은 시장 바닥에서 스치고 지나감이나 다를 바 없고요

 

좋은 만남에는 향기로운 여운이 감돌아야 하고

그 향기로운 여운으로 말미암아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것

사람이 향기로운 여운을 지니려면 쉬지 않고

자신의 삶을 반듯하게 올바르게 가꾸어야 한답니다

그래야 만날 때마다 새로운 향기를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나이가 있지만 꿈은 나이가 없이 영원합니다

우리가 꿈꾸기를 멈추는 순간부터 나이가 드는 겁니다

꿈은 죽지 않습니다 영원합니다

 

하루를 살아도 언제 어디서나 좋은 추억을 기억하며

잠시 머물렀던 자리라도 많은 이들이 생각나는

그런 아름다운 좋은 인연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기약 없이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자신을 힘들고 지치게 합니다

그러나 기다림은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희망이 살아가는 힘과 용기를 만들어 줍니다

마음에 조바심은 뒤로 젖혀두고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풍요롭고 넉넉한 가을 들녘처럼

나이 들고 철난 중년의 여유로움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따듯한 사랑으로 늘 함께 하고픈 사람과

하루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아시길 바랍니다

 

사회생활이란 타인과의 공생을 말합니다

혼자만 잘나서는 어떤 조직사회도 원만히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입니다

배려는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는 마음입니다

어렵고 힘든 사람에게 마음이 담긴 배려는

큰 위안이 될 것입니다

 

세월은 빠르게 흘러가지만 그냥 가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퇴적층처럼 쌓여 정신을 기름지게 하고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바로 그 세월입니다

문제가 없는 사람에게는 도전이 없습니다

도전을 모르는 사람은 인생의 맛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고

반대로 할 수 없는 일을 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은 하지 않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만을 열심히 합니다

지혜로운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청명한 하늘을 쳐다보세요

높은 지식은 현명한 지혜를 따라잡을 수 없고

명예로운 학식도 오랜 세월 속 경험을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부모님의 넓은 마음에 비하면

우리는 아직도 한없이 부족할 뿐입니다

웃어른의 충고에 말 한마디는 교훈이며 철학입니다

 

자신을 낮추세요 자신이 남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할 때는 교만이 되고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할 때는 독선이 되는 법입니다

나보다 남이 더 낫다고 자기 몸을 낮추는 사람이

겸손한 것이며 남과 타협이 잘되는 사람입니다

사교성이 좋은 사람은 인품에서 향이 나는 사람입니다  

 

견우와 직녀가 일 년에 한 번씩 칠월 칠석날

오작교를 건너 만난다는 슬픈 사랑의 전설적인 이야기입니다

은하수를 가운데에 두고 있어 건널 수가 없어

보다 못한 까막까치들이

하늘로 올라가 머리를 이어 다리를 놓아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작교라고 합니다

 

오늘도 무거운 삶일랑 내려놓으시고 오작교를 사이에 두고

그리워하는 사랑처럼 행복한 삶 열어 가시기 바랍니다(윤석봉)

 

 

 

 

 

 

 

 

 

 

 

 

 

 

 

 

 

Sergei Lee(모스크바 선교사)

 

 

러시아의 기독교는 988년 전래되어 벌써 1천 년의 세월을 넘고 있다. 지금은 형식적인 부분이 많다고 할 수 있으나 그 역사가 백성들의 삶 속에 젖어 있는 기독교 문화는 대단하다. 일반적으로 문화의 형태는 그들의 언어 속에서 가장 잘 표현된다. 다음의 내용들은 기독교 문화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하며 몇 가지의 내용들을 골라 소개한다.

 

 

1>슬라바 보구(Слава Богу):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말이다.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인데 예배의식 속에서나 일상 생활에서도 많이 듣는 말이다. 좋은 일이나 행복한 일이 있을 때에“슬라바 보구”라고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잊지 않는다. 승리 속에서 이들은 먼저 “슬라바 보구” 한다. 감사하고 기쁜 일이 있을 때에 말한다. 이것은 그들의 예배 의식 속에서 철저하게 교육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이 인생의 목적임이 몸으로 배워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는 오직 입술의 영광만이 남아있지만…….

 

2>스빠시버(Спасибо): “감사합니다”라는 러시아 말이다. 이 말은 “스빠씨젤(Спаситель)”이라는 말 속에서 파생된 것인데 그 뜻은 “구원자”이다. 다시 말하여 구원자를 통하여 감사라는 말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종교적이고 귀한 말인지 모른다. 아이들도 “스빠시버”, 어른들도 “스빠시버”, 작은 일에도 “스빠시버”, 작은 선행에도 “스빠시버”, 나도 스빠시버, 너도 스빠시버, 우리모두 스빠시버. 참으로 재미있는 낱말이다. 이 말의 근원을 알고 사용하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참으로 뜻 깊은 말이다.

 

 

3>라지 보가(ради Бога): “하나님을 위하여!” 라는 뜻이다.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을 영광을 위하여 선을 베풀도록 권면하는 말로도 사용된다. 사람들이 무엇을 부탁할 경우에 정중하게 응답하는 말로 “라지 보가” 라는 말을 쓴다. 어디서나 “라지 보가”로 통하는 생활의 한 단면이다. “주의 영광을 위하여”

 

4>붙지 다브리(Будьте добры): “선을 행하십시오”. 다른 말로 하면 은혜를 베풀라는 말이다. 이것은 지극히 종교적인 의미인 것이, 선을 행함 속에 주어지는 은혜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행함으로 인하여 구원을 얻는다는 신앙도 상당히 작용을 하는 듯하다. 도움을 요청할 때에 “붙지 다브리” 하면 대부분은 순수하게 응하여 준다. 얼마나 좋은 말인가? “붙지 다브리”

 

5>므이 프레트폴라가엠, 아 복 라스폴라가엠

(Мы предпологаем а Бог располагает): 종종 사람들의 입 속에서 교훈을 줄 때에 사용되는 말인데, 이것은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계획을 세우나 그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라는 말이다. 성경의 말씀이 그들의 머리에 새겨져 무슨 일이나 계획을 세울 때에 사용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는 일이 안되었을 때에 이 말을 생각하면서 포기하거나 체념하는 상황에서 많이 사용하지만, 아무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살피고 생각하는 일에 사용되는 것이다.

 

6>다이 복 즈다로비여(Дай Бог здоровья): 하나님께서 상대방에게 건강과 복을 주시기를 바라는 축복문이다. 어떤 도움을 받았을 때에 감사의 인사말로 하는데 매우 많이 사용하는 일상 용어이다. 구걸하는 자에게 10루블이라도 주면 성삼위 성호를 그으면서 수십 번 축복을 빈다.

 

7>복 류비트 바스(Бог любит Вас):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서로 처음 만났을 때에나 헤어질 때 종종 사용하는 축복의 인사말이다. 주로 신앙인들 사이에서 주고 받는 축복과 인사말이다.

 

8>납쇼 볼랴 보지이(На всё воля Божьи): 이 말은 인생의 모든 것과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을 때에 어려운 선택의 길에서 사람들은 종종 이 말을 사용함으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자세를 갖는다.

 

9>나 즈다로비여(На ждаровия): 음식을 먹고 난 이후에 잘 먹었습니다 라고 인사하면 은혜를 베푼 사람은 “나 즈다로비야”(건강 하세요)라고 화답한다. 이 말은 상당히 다양하게 사용되는데, 재채기를 하였을 때에도 건강하라고 인사하는 문구이기도 하다. 좋은 선물을 받았을 때에도 이 말로 감사의 인사를 한다.

 

 

10>스~보검(C Богом):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헤어질 때 하는 인사와 축복의 말이다.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기를 비는 기원이다. 신앙인들 사이에서는 일상용어이다. 전화를 끓을 때에도 하나님이 함께하기를 기원하는 축복문이다.

 

11>ㅂ쇼~ 아보시: 러시아인들의 입에서 종종 오르내리는 말이다. 러시아에서는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다는 푸념과 포기와 좌절 속에 내는 말이다. 얼마나 많은 인내가 필요하고, 비상식적인 일에 태연하게 대처해야 하는 가를 말해준다. 러시아 사회의 현실을 한 마디로 나타내주는 말이 아닌가 생각한다.

 

12>에따 라시야(Это Рассия): “이것이 러시아이다”라는 말인데, 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할 때에,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고 해석도 안되고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만났을 때에 하는 말이다. 이 말은 모두에게 누구에게나 통하는 말이다. 자신들의 피곤하고 고단한 삶과 잘 되지 않는 상황을 종합하여 사용하는 말이다. 외국인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 무책임한 일을 당하였을 때, 상식 이하의 일이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났을 때에 쓰는 완전 용어이다.

 

“러시아는 말로서 설명할 수 없는 나라이다. 오직 느끼고 경험할 뿐이다”라고 푸쉬킨은 말했다고 하는데 세월이 지날수록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이 외에도 성경을 근거한 말들이 많다. 사람들의 악한 행위를 볼 때에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Человек что посеет то и пожнет)”.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들을 수 있는 말이고 그들의 의식의 저변에 깔려있는 말이다. 나도 종종 즐겨 사용한다.

 

 

 

 

 

 

 

 

 

 

 

 

 

경기 침체에도 사람들이

종말 영화를 보려고 줄을 선다.

 

 

나는 미국생활 30년인데도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본 적이 없다.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 때도 있다.

그러면서도 영화 이야기로 칼럼을 쓸 수 있는 것은 인터넷 덕분이다.

 

지난 그 어떤 때보다 지갑을 굳게 닫아야 할 이때 왜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극장으로 몰려갈까?

 

또 힘들게 번 돈을 왜 종말에 관한 영화에 쓸까? 두 가지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경제가 쇠퇴하면 종종 영화관객이 증가한다. 이러한 현상은 과거 특히 대공황 때에도 나타났다.

 

둘째, 자연사이건 급작스런 사고사(죽음)이건 인간이 죽은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묻는 사람들이 그 어느 때보다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테러, 지진, 십대 아이돌이 등장하는 뱀파이어, 좌충우돌하는 로봇, 배회하는 좀비 등 별의별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미국 대공황 때 실업률은 25퍼센트에 육박했고, 많은 사람들이 내일 먹을 끼니 걱정을 했었다. 그러나 이처럼 어려운 시기에도 전체 인구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6000만~8000만의 미국인들이 매주 극장을 찾았다는 것이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말했다.

“그 어느 때보다 미국인의 사기가 저하되었을 때 단돈 15센트로 극장에 가고, 아기들의 미소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고통을 잊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경제공황이 여러 차례에 걸쳐 밀어닥칠 때마다 영화는 사람들의 도피 수단이 되었다. 또한 할리우드는 그 시대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따라서 프랭크 캐프라 감독과 막스 형제(미국 영화배우 4형제/편주)는 영화와 코미디를 통해 간접적으로 사회를 비판했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 같은 영화는 보다 명확하게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킹콩>과 <프랑켄슈타인> 같은 유명한 공포영화에도 사회적 병폐에 대한 고발이 내재되어 있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미국인들의 발길이 극장을 향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70년대의 석유파동과 2000년대 초 닷컴 붕괴를 포함하여 총 7차례에 걸친 경기침체 때 박스 오피스 매출은 상승하였고,  2009년에 이르러 다시 그 기록을 갱신했다.
 

미국영화협회 회장 댄 글릭먼은 <타임>지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불황기 때마다 영화산업은 번창했다. 영화는 최고의 치료요법이며, 영화 관람료는 정신과 상담비용보다 훨씬 저렴하다.”
 

비싼 돈을 받는 정신과의사들도 실제생활에는 언제 재난이 닥칠지 예측하지 못한다. 그러나 영화는 박스오피스 기록이 경신될 때마다 이 시대에 뭔가 안 좋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감 잡을 수 있게 한다.
 

2009년 12월 영화 <2012>가 개봉했을 때 <프레스노 비> 신문은 학계와 종교계 지도자들에게 사람들이 왜 종말 영화에 열광하는지 물었다.

 

칼 스테이트의 사회학 교수 마가렛 곤솔린은 염려가 지배하는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존재의 의미를 갈망하고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알고 싶어 하기 때문이지요.”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CT의 영화평론가 브렛 맥크랙킨은 사람들이 종말에 관한 영화를 보도록 “내몰리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모든 인간에겐 정의감이 내재되어 있다. 종말과 같은 극적 상황에 처해서도 그 감각이 보존될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노여움이 끔찍한 재앙으로 임할 때 역시 신은 살아 있다며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경기침체 때 관객은 현실의 침체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랄 뿐 아니라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과한 후 또 다른 세상, 이를테면 사후세계나  “세상의 저편”에 이르는 영화를 보기 원하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감각을 주셨다고 전도서 기자는 말한다(전 3:11).

 

또한 하나님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궁금해 하도록 우리를 지으셨다. 그리고 인간이 때가 되어 숨을 거두건 종말을 맞이하건 그 모든 상황을 통해 자신의 도덕성을 정확히 가늠하게 하셨다.

 

인류 종말이라는 묵시적 주제를 다룬 영화들은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의 미래에 대한 궁금증을 충족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레프트 비하인드(Left Behind, 2008) 시리즈(홍성사 역간)라는 책이 650만 부가 팔렸던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풀러 신학교 총장 리처드 마우는 이렇게 말한다.

 

“어려운 시대일수록 인간의 조바심이 두드러지게 표면화된다. 지금은 힘든 시대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선과 악의 모든 갈등을 궁극적으로 해결할 영원한 세계가 도래하기를 갈망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과연 이 세상 저편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런 질문에 관해 할리우드는 알지 못하고 영화를 만들지 모르지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이미 밝혀져 있다.  그 답은 이렇다.

 

아버지와 아들이 그곳에서 기다리고 계신다.(장재언)

 

 

 

 

 

 

 

 

 

 

 

 

 

 

 

 

 

 

 

 


 

황호택논설위원(동아일보)

 

천안함 사병 46명을 희생시킨 북한 정권을 응징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국가로서 존속하기 어렵다.

 

북한은 우리를 종이호랑이로 보고 또 다른 도발을 획책할 것이다. 북에 군사적 타격을 안겨주는 것이 가장 속 시원한 응징이다. 천안함을 공격한 잠수정의 발진 기지나, 빌 클린턴 정부 시절에 폭격하려고 했던 북의 핵시설을 타격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

 

김정일을 직접 겨냥하는 것도 가능하다. 북의 도발 책임을 간혹 ‘강경파 군부’에 돌리는 분석도 있지만 북 잠수정이 김정일의 허가 없이 남쪽 군함을 향해 어뢰를 쏠 수는 없다는 것이 정확한 분석 같다.

 

리비아가 반미 테러리스트를 지원하고 훈련시켜 미군과 미국인들을 공격하자 미국이 카다피를 직접 겨냥한 사례도 있다.

미국은 1986년 4월 영국 기지에서 공군기를 출격시켜 카다피의 숙소와 테러리스트 캠프를 폭격했다.

카다피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지만 양녀가 죽고 두 아들이 부상을 당했다. 김정일은 카다피처럼 당할 것이 두려워 이 사건 후로 사무실과 숙소를 은폐하고 두더지처럼 땅속으로 숨어 다닌다.
 

그러나 군사적 응징은 북한과 일전을 각오해야만 한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그것으로 김정일 정권의 종말이 오겠지만 우리도 적지 않은 피해가 예상된다.

 

북의 방사포 5100여 문(2008 국방백서) 중 수백 문이 서울을 향하고 있다. 경제인 중에는 군사적 보복이 경제에 미칠 부작용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흉기를 들고 날뛰는 미치광이 집단을 다스리는 방법은 똑같이 칼 들고 설치는 것보다는 더 현명한 지략(智略)이라야 한다.
 

‘핵폭탄’보다 강력한 대북삐라

 

북한의 노동당 통일전선부에서 일했던 장진성 씨(시집 ‘내 딸을 팝니다’의 저자)는 “북은 핵을 갖고 있지만 남에는 핵폭탄보다 위력이 강한 삐라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김일성 김정일 세습 정권에 세뇌 당한 주민의 의식상태는 백지에 가깝다. 세습독재 정권의 허위를 깨부수는 삐라의 내용은 백지에 얼룩을 묻히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삐라가 한 사람 두 사람 백 사람을 거치며 걷잡을 수 없이 확산돼 종국에는 정권의 붕괴로 이어지리라는 것이다. 그는 삐라를 통해 북한 정권의 허위를 깨달았고 KBS 사회방송과 극동방송을 청취하기 시작했다고 술회했다.

 

북한에서는 최근 가까운 사람들끼리는 삐라에 적힌 내용을 거리낌 없이 주고받는다고 한다. 현실의 삶이 갈수록 각박해지면서 삐라의 호소력이 커지고 있다는 증언이다.
 

노무현 정권 때는 삐라에 미국의 1달러짜리 지폐를 붙여 북에 풍선으로 날려 보내는 작업을 당국이 못하게 말렸다. 정부가 이것을 지원은 못할망정 말릴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 삐라에 달아주는 1달러짜리 지폐나 북한 돈이야말로 진정한 북한 주민 지원이다.

금강산이나 개성공단에서 북으로 들어가는 돈은 김정일과 그 측근 그리고 군부의 주머니만 불려줄 뿐이다.
 

2004년 비무장지대에서 대북방송 확성기를 철거한 것도 큰 실책이었다. 대북방송은 비무장지대에 근무하는 북한군은 물론이고 북쪽 70km 지역에까지 들렸다.

 

북한 군인들은 대북 확성기 방송을 통해 일기예보를 청취하고 국제사회가 돌아가는 것을 이해했다. 북한 병사들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이 너무 컸던지 북은 통일부 채널을 통해 확성기와 전광판을 철거해 달라고 애걸하다시피 했다.
 

당시 정세현 통일부 장관이 북의 요청을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올렸고 이종석 사무처장이 뒷받침해 대북방송이 중단됐다. 북은 반대급부로 생색내듯 통일전선부가 운영하던 대남(對南)방송 ‘구국의 소리’를 중단했다. 북한의 병사들에게 세상 돌아가는 진실을 알려주던 방송을 효용성이 사라진 고철덩어리와 맞바꾼 셈이다.
 

은 대북방송 철거 애걸했다
 

북한 주민 수백만 명이 굶어 죽은 고난의 행군(1995∼97년) 기간에 군량미를 풀었으면 대량 아사를 막을 수 있었지만 김정일이 못 풀게 했다는 증언도 있다.

 

백성은 옥수수죽도 제대로 못 먹는데 김정일의 와인창고에는 프랑스제 고급 코냑과 와인이 1만 병 가량 쌓여 있다(후지모토 겐지 ‘김정일의 요리사’).

김정일은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악덕 군주다.

“역사와 문명에서 하차(下車)한”(노벨상 수상작가 헤르타 뮐러) 정권을 교체하는 것은 우리 세대에 부과된 시대적 소명이다.
 

얼마 전 방한했던 콜린 파월 전 미국 국무장관은 “북한은 역사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변화를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북한의 변화를 하염없이 기다릴 것이 아니라, 그 변화를 촉진해 주민의 고통을 덜어줘야 한다.

 

지금이 대북확성기 방송과 풍선 삐라의 살포를 재개할 완벽한 타이밍이다. 거짓과 날조의 신화에 기반을 둔 김정일 세습독재 정권은 진실의 어뢰라야 침몰시킬 수 있다.(황호택)

 

 

 

 

 

 

 

 

오늘의 한마디 표현

I beat you fair and square. 

나는 정당하게 당신을 이겼어요.


 

 

아래 문장의 대화를 들어보세요.

 

 

2. 오늘의 영어표현 해석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스포츠이다.

Beat someone은 `누구를 이기다`라는 뜻이다.

Fair에는 `공정한[하게], 금발의, 박람회`,

square에는 `직각의[으로], 정정당당한[하게]` 등 여러 뜻이 있다.

One on one은 `일대일로`라는 뜻이다.


 

A: What do you say to a game?
B: Basketball? One on one? You got it!
A: I`m not going to be easy on you like last time.
B: Dream on! I beat you fair and square the other day!


 

A: 한 게임 할까?
B: 농구? 일대일로? 좋아!
A: 지난번처럼 쉽게 날 이기진 못할 걸.
B: 좋을 대로 생각해!  지난번은 정당하게 이긴 거야!

 

 

 

 

 

 

 

 

 

 

 

 

 

 

 

 

 

 

 

 

 

 

 

 

소시지나 베이컨처럼 가공 처리한 고기를 하루 50g씩 매일 먹으면 심장병과 당뇨 위험이 현저히 높아지며....

 

가공하지 않은 고기도 구워 먹되 소금을 찍지 말고 허브나 후추로 간을 맞추는 것이 좋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공공보건대 리네타 미카 박사팀은 10개국 100만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20차례의 연구를 재분석해 하루에 50g의 소시지 즉 가공 처리한  고기를 먹은 사람들은 심장병 위험이 42%, 당뇨 위험이 19% 높다고 밝혔다.

 

미카 박사는 “가공 처리한 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가공 처리가 안된 스테이크 같은 고기를 먹는 사람들보다 심장병과 당뇨 위험이 높다”면서 “소시지 베이컨 살라미 런천미트와 같은 식품을 매일 먹는 사람들은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특히 고기를 가공 처리 할 때 들어가는 소금이 혈압을 높여 심장병을 부르는 것으로 보인다. 또 나트륨 처리한 저장 음식은 동맥경화증을 높이고 포도당 내성을 줄이기 때문에 심장병과 당뇨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을 동물실험을 통해 밝혀냈다.

 

영국심장협회 영양학자 빅토리아 테일러는 “고기가 먹고 싶으면 가공하지 않은 고기를 불에 구워 먹되 소금을 찍지 말고 허브나 후추를 사용하라”고 권했다.

가공하지 않고 불에 구워먹는 소고기 양고기 돼지고기는 콜레스테롤과 포화지방양은 같지만 심장병과 당뇨 위험은 훨씬 덜했다.

 

이 같은 연구결과와 관련, 영국 양돈협회(BPEX) 대변인은 “가공 처리한 고기는 영양적으로 문제가 없는 식품”이라면서 “다른 요인이 심장병과 당뇨 위험에 관련됐을 가능성을 확인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 연구결과는 저널 ‘순환기학(Circulation)’에 소개되었으며 영국 공영방송 BBC가 18일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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