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9,  2010

 

 

 

 

 

 

광야 / 김수희

 

 

광야에 홀로 남겨
그림자 숨기며 살았어도
절망할 수 없었던 따뜻한 이유는
당신이 있기 때문이다.

화려한 포장에 내 모습 가리워져
가난한 이름만 남았어도
다시 일어나서 미소 짓는 이유는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검푸른 사구를 혼자 헤치며
침묵의 용기로 날 지킨 건
동행할 수 있었던 뜨거운 가슴의
당신이 있기 때문이다

화려한 포장에 네 모습 가리워져
가난한 이름만 남았어도
눈물을 닦으면서 행복한 그 이유는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화려한 포장에 네 모습 가리워져
가난한 이름만 남았어도
다시 일어나서 미소 짓는 이유는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위에 있는 사진을 보십시오.

 

우리는 계속해서 길을 가는 인생입니다.

그 남은 길이 짧던/길던 말입니다.

 

그런데

 

때때로 자신의 과거 때문에
자신의 현재까지
미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혹은

 

되돌릴 수 없는 이미 흘러간 시간을
가장 아쉬워하고 연연해하는 반면
가장 뜻 깊고
가장 중요한
지금이라는 시간을
소홀히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과거는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다시 돌아오는 법이 없는
이미 흘러간 물과 같을뿐더러
그것이 아무리 최악의 것이었다 해도
지금의 자신을 어쩌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관심을 집중시켜야 할 것은
지나온 시간이
얼마나 훌륭했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남겨진 시간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입니다.

자신이 그토록 바라고 소망하는 미래는
자신의
과거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실.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삶은

 

스피노자의 말처럼

<내일 지구가 깨어진다 해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한 그루를 심겠다>는

자세로 오늘을 성실하게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이 여름을
한 번 울기 위하여
매미 유충은 땅 속에서
17년 간의 세월을 보낸다고 했다.

깜깜한 지옥 어둠과 고독을 이겨내며
한철을 위한 준비가
기도처럼 오래오래 이루어졌으리.

지금
한여름 불볕 뜨겁게 내리쬐는 한낮
거리의 가로수에 매달려
매미는 17년 동안 숙성시킨 침묵의 향기를
저 쨍쨍한 울음소리로 토해내고 있다.

여름 지나면
목숨도 그칠,
짧은 생의 핏빛 절창(絶唱)이
8월 염천(炎天)을 건너고 있다.

 

 

 

 

 

 

 

 

 

 

 

 

 

 

 

 마이너스통장 만들어 연해주 고려인들 돕고,

재소자 학비 대기도

 

 

 

재능기부단체 SCG 이끄는 억대 연봉의 컨설턴트
한때 연봉의 80%까지 기부, 기부보험 들고 유산까지 기부 약정
마이너스통장 만들어 연해주 고려인들 돕고, 재소자 학비 대기도
‘IMF 사태’ 이후 출세지향 인생에서 기부인생으로 전환
쓰레기 줍기와 선거참여운동으로 탈이념 대학문화 주도
M&A 기법으로 새로운 틀의 남북통일방안 제시
 

 

한때 연봉의 80%까지 기부,

기부보험 들고 유산까지 기부 약정

 

 

기부 청년’(일단은 이렇게 불러두자) 고영씨와의 인터뷰는 오늘 오후 3시에 잡혀 있다.

그가 기부 운동가라는 사실은 나를 불편하게 했다. 점심식사 후 청계천을 거닐다가 불우 어린이 돕기 캠페인을 그냥 지나치지 않은 데는 분명 그 점이 작용했을 터다.

 

몇 백 원짜리에서부터 1만원짜리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류의 상품이 있는데, 수익금이 지구촌 불우 어린이들에게 돌아간다고 했다. 내가 덥석 1만원짜리 티셔츠를 고르자 행사 관계자들의 박수와 환호가 터졌다. 불우한 어린이들의 처지를 진지하게 생각하거나 진정 마음이 아파서 한 행위는 아니었다. 끽해야 자기과시거나 허영심이리라.

 

 

 

 

2009년 6월17일 서울 마포구청 앞에서 SCG 인턴들과

기념촬영한 고영 대표(왼쪽 첫 번째).

 

 

매일 30분씩 묵상

 

찻집이면서 문화공간으로 유명한 카페 민들레영토 홍익대지점에는 젊음의 활기가 넘쳤다. 이윽고 키가 훤칠하고 잘생긴 젊은이가 나타났다. 30대 중반에 억대 연봉을 받는다는 컨설팅의 귀재, 마이너스통장을 만들어 기부하고 유산(遺産)까지 기부한 사람, 공익봉사활동인 재능기부운동의 선구자….

 

고영(高暎·34).

지금까지 ‘Face to Face’에 등장한 사람 중 가장 젊지만 그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는 누구 못지않게 화려하고 강력하다. 아니, 신선하다.

 

“많이 바쁘죠?”라는 질문에 “바쁜 척하고 있습니다” 하면서 시원스럽게 웃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그는 최근 3년간 매년 한 권씩 책을 펴냈다. ‘아고라에 선 리더십’(2008년), ‘새로운 자본주의에 도전하라’(2009년), ‘나비형 인간’(2010년)이 그것이다. 그는 4월 출간된 ‘나비형 인간’을 주제로 몇몇 대학에서 강연도 했다. 나비형 인간은 자신의 재능으로 누군가를 도와 성공시키는 것을 즐기는 사람을 뜻한다.

 

그가 소속된 회사는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그전엔 헤이그룹(Hay Group)이라는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 다녔다.

 

그의 존재를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SCG(Social Consulting Group)라는 단체다. 2007년 그가 만든 이 단체는 프로보노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프로보노는 라틴어 ‘Pro Bono Publico’의 약자로 ‘공익을 위하여’라는 뜻이다. 전문적인 지식이나 서비스를 공익 차원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는 매일같이 30분가량 묵상을 한다. 시간과 장소는 정해져 있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하고 샤워할 때도 하고 전철 안에서도 하고 길거리를 걸을 때도 한다. 묵상과 기도는 어떻게 다른가.

 

“기도할 때 주제가 있는 건 소원을 빌기 때문이죠. 제가 하는 묵상은 하루를 시작할 때 마음을 다잡거나 하루의 활동을 되돌아보는 겁니다. 비전을 이루기 위해 오늘은 뭘 해야 하나, 어떤 만남을 갖고 어떤 얘기를 해야 하나 깊이 생각하는 거죠.”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피부가 깨끗하다. 호소력을 지닌 큰 눈은 아니지만 눈빛이 맑다. 진분홍색 바탕에 작은 점이 총총히 박혀 있는 넥타이가 희멀건 얼굴과 흰색 와이셔츠에 잘 어울린다. 이런 귀공자형의 언행은 자칫 잘난 체하는 걸로 비치거나 위화감을 주기 쉽다. 그런데 그의 표정과 말투는 단단하면서도 부드럽다.

 

“내가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나 자신을 드러내려 하는, 욕망에 기초한 행동을 반추하면서 올바른 행동에 대해 생각하는 겁니다. 많은 사람이 아침에 책 한 권 더 읽거나 노하우나 스킬을 익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게는 내가 왜 인생을 사는지 생각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더 중요합니다.”

 

묵상이라는 말에서 조금 짐작은 했지만, 종교를 묻자 기독교인이라며 기독교 신앙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기독교인들은 자기 죄와 복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합니다. 소원을 많이 얘기하는데, 그런 식의 고민에서 더 나아가 본질적인 주제, 본질적인 물음을 늘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개 잊어버리고 살거든요.”

 

 

‘통장 잔고 때문에 인생을 사나’

 

그가 부디 종교인의 상투적인 어법을 쓰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가 말한 ‘본질적인 주제’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했다. 그는 일화로 답변을 대신했다.

 

어느 날 밤 11시에 아는 후배한테 연락이 왔다. 후배의 아버지가 백혈병 말기인데 수술을 받지 않으면 위독하다는 거였다. 그런데 생활보호대상자일 정도로 집안이 어려워 치료비가 없었다. 친척들도 안 도와준다고 했다. 후배의 얘기를 듣고 그는 자신에게 질문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가. 내 통장의 잔고는 누굴 위한 건가. 지금 후배 아버님을 돕지 않으면 돌아가실 텐데 그 집안에 남겨질 상처는 어떻게 할 건가. 나는 통장 잔고 때문에 인생을 사는가.

 

그는 “소유의 문제, 소유를 축적하는 것에 대해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밤잠을 설치면서 고민하다 다음날 후배한테 1000만원을 기부했다고 한다.

 

“자신의 삶에 대해 끊임없이 묵상하는 습관이 없었다면 당장 쥐고 있는 것에 대한 아까움 때문에 그렇게 못했을 겁니다. 큰 자비가 아니라 자신에게 질문을 던질 줄 아는 태도가 그런 행동을 하게 만든 게 아닌가 싶습니다.”

 

 

 

 

 

14평 방에

9명이 우글거려

 

 

그의 선행은, 그의 표현에 따르면 ‘작은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후배 친척들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럭저럭 5000만원이 모였고 후배의 아버지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치료를 받을 때 후배의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와 “나중에 꼭 돈을 갚겠다”고 말했다. 그는 “생활형편이 나아지면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분들을 도우면 좋겠다”며 정중히 사양했다. 후배의 아버지는 석 달 뒤에 세상을 떠났다.

 

“남을 도우면서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몰랐던 세계를 알게 돼요. 거기에 오묘한 진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살면서 마음으로 다가오는 울림이나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럴 때 어떤 결단을 내리느냐가 중요하죠.”

 

그가 또 하나의 일화를 들려줬다. 교회 후배 얘기라며 “정말 억울한 경우”라고 했다.

서울대 대학원에 다니던 그의 후배는 국제구호활동에 참가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으로 갔다. 거기서 병에 걸린 사람들을 돕다가 자기가 병에 걸렸다. 급성신부전증에 합병증까지 생겼다. 귀국해서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했는데, 일주일에 100만원씩 되는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했다.

 

“교회 광고시간에 목사님이 그를 위해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저는 기도도 좋지만 플러스 알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를 위해 기도하는 동안 마음속에 울림이 있더라고요. 목사님한테 계좌번호를 받아 치료비를 입금했습니다. 당시 제 통장에 600만원인가 잔고가 있었는데 500만원밖에 못했습니다. 다 드렸어야 했는데. 그게 조금은 도움이 됐을 겁니다. 후배는 그 뒤 얼마 못 버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럼에도 감사한 건 그 친구의 부모님이 제게 감사의 표시로 기도를 해주시고 결혼할 때도 찾아와 축복해주신 겁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 반응함으로써 귀한 인연을 맺고 그것이 더 큰 관계 속에서 발전하는 것, 그런 게 하나의 진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컨설턴트가 된 지 2~3년 됐을 때의 일이란다. 그는 지난해 12월에 결혼했다. 결혼 얘기가 나오자 꺽꺽거리며 즐거워했다. 결혼한 다음에도 예전처럼 기부를 할까.

 

“예전처럼 (연봉의) 80%까지는 못하고 있어요. 정해놓고 한 건 아니었지만. 현재 여러 조그만 단체를 돕고 있습니다. 알고 보니 아내도 결혼 전 컴패션(Compassion)이라는 단체를 통해 해외에 있는 두세 명의 어린이에게 도움을 줬더라고요. 아내는 기부활동을 많이 한 건 아니지만 기부에 대한 기본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컴패션은 탤런트 차인표·신애라씨 부부가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세계적인 어린이 구호단체다. 그는 자신의 기부행위에 대해 자신이 어려웠던 시절 주변사람들에게 은혜를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고향은 전남 나주다.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3학년 때 이른바 IMF 구제금융사태가 발생했다. 하루 14시간씩 사법시험 공부를 할 때였다. 시골집에서 하숙비가 3개월째 올라오지 않더니, 4개월째 어머니가 말했다.

“미안하다. 군대 가야겠다.” 그 길로 고향에 내려가 보니 집이 없어졌고 가족은 흩어져 있었다. 건축업을 하는 아버지가 사업실패와 빚 보증으로 20억원의 빚을 졌던 것이다. 그는 친구 집에 얹혀 지내야 했다.

 

“세상이 원망스러웠죠.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왜 꿈을 접어야 하나. 하나님도 원망스러웠습니다. 교회 수련회에 참석해 엄청 울었습니다. 역경을 이겨낸 분들이 간증을 하는데, 다 제 이야기 같았습니다. 비참하다고 할까. 그런 느낌은 태어나 처음이었습니다. 그러다 군에 끌려갔죠. 제대한 후에도 집안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서울로 올라온 그는 이문동에 있는 합숙촌으로 들어갔다. 14평의 좁은 방에 9명의 남학생이 우글거렸다. 곧바로 복학할 처지가 아니었기에 그는 이 참에 부모로부터 독립하겠다고 맘먹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막노동을 하고 유리창을 닦고 전단지를 돌리고 과외를 했다. 그렇게 해서 겨우 등록금을 마련했다. 그가 복학한 것은 2000년, 3학년 2학기 때였다.

 

“14평에 9명이 사는데 아침과 밤이 지옥이었습니다. 아침에는 화장실 문제로 조금만 늦게 일어나도 수업에 늦었습니다. 저녁엔 늦게 들어가면 현관 옆에서 자야 했는데, 그 발냄새… 하하, 그 많은 신발에서 풍기는 발냄새를 맡으면서 잠이 잘 오겠습니까. 하루는 잠을 자다가 냄새가 너무 지독해 깼습니다. 참고 자는 애들을 깨워서 살펴보니 천장에서 노란 물이 벽을 타고 줄줄 내려오는 겁니다. 위층에 중국음식점이 있었는데 화장실이 터져 오물이 샜던 겁니다. 그거 고치는 데 두 달 걸렸습니다. 그런 집에서 사는 동안 교회와 학교 선배들, 교수님들이 십시일반으로 저를 도와주고 챙겨줬습니다. 그래서 학교를 다닐 수 있었죠.”

 

“마동팔 검사가 되고 싶었다”

 

천안함 사건이 의식을 짓누르고 있어서일까. 특별히 의심을 한 건 아닌데, 이 대목에서 나는 그의 얘기를 잠깐 끊고 군복무에 대해 물어봤다.

 

▼ 군대는 정상적으로 갔다 왔나요?

“육군 23사단에서 근무했습니다.”

 

▼ 23사단이 어디에 있죠?

“강원도 강릉에 있습니다.”

 

그가 57연대 1대대라고 덧붙이기에 더는 묻지 않았다. 그는 군에 있을 때도 사법시험 공부를 계속 했다고 한다.

 

▼ 정외과 학생이 왜 사시 공부를 했습니까.

 “입신양명(立身揚名)을 위해서였죠. 유교적 사고에 젖어 빨리 성공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1학년 때 학생운동을 했는데 적성에 안 맞더라고요. 자본론과 국부론을 읽었는데 맞는 소리 같기도 하고 안 맞는 소리 같기도 했습니다. 자본론은 충분히 이해되지도 않았고. 저한테는 오히려 막스 베버가 맞더라고요.”

 

▼ 그 사람, 온건하잖아요?

“예. 저한테는 온건한 게 맞는 것 같아요. 그 후 공부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사법시험을 보자고.”

 

▼ 왜 사법시험이었죠? 

“검사를 빨리 하려고요.”

 

▼ 권력에 대한 욕망, 출세욕이 강했군요.

“강한 출세욕이 있었던 거죠. 당시 봤던 영화 ‘넘버 쓰리’에 나오는 마동팔 검사(최민식 분)처럼 자기 하고 싶은 얘기 다하면서 소신껏 일하는 검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내가 “아주 감동적인 영화”라고 맞장구를 치자 그가 헉헉거리며 웃었다.

 

“일종의 로망이었죠. 그런데 도저히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구조적인 환경 때문에 꺾인 겁니다. 군에서 키케로와 ‘자유론’과 ‘의무론’을 쓴 존 스튜어트 밀을 접하면서 그간 너무 생각 없이 살았구나 싶었습니다. 제대 후 크리스천 리더십 교육을 받았습니다. 섬김의 리더십을 배우면서 내가 정말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반성했습니다. 나만을 위한 출세가 결국 남기는 게 뭔가. 최종 결과물이 불행한 거예요. 여러 차례 토론을 하고 강의를 들으면서 정리가 돼갔지요.”

 

그가 느닷없이 내게 물었다.

“CEO로 성공합니다. 그런데 CEO 끝나면 뭐가 남죠?”

 

나는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뭐 가정의 소소한 행복을 챙기거나 돈이 있으니….”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그가 말을 이었다.

 

“돈이 남겠죠. 골프도 치고. 그런데 그걸 위해 사느냐는 거죠. 그 많은 시간을. 더 의미 있는 삶이 있지 않겠나, 고민한 거죠. 그러면서 동양철학을 공부했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내가 사는 고장을 변화시켜야 하고 고장을 변화시키려면 내가 속해 있는 집단을 변화시켜야 하고 집단을 변화시키려면 나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걸 깨달았죠.”

 

화장실 앞에서 만난 총장

 

자신의 삶과 세상을 바꾸기로 작정한 그는 복학 후 작은 일부터 실천했다.

첫 번째가 쓰레기 줍기 운동이었다. 먼저 자신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수업준비를 착실히 하고 강의시간에 맨 앞에 앉아 열성적으로 질문하는 모범학생의 이미지를 쌓았다. 그런 다음 학생들 앞에 나아가 동참을 호소했다. 연세대와 고려대 학생들이 매년 벌이는 연고전 행사 때 쓰레기를 줍자는 제안이었다. 처음엔 누구도 호응하지 않았다. 세 번쯤 제안하자 한두 명이 모이더니 점차 수가 늘었다. 그는 단체를 만들어 단체의 에너지로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고려대와 연세대의 기독학생연합회를 찾아가 호소했다. 그 결과 500여 명의 학생이 동참의사를 나타냈다.

 

쓰레기 줍기와 선거참여운동으로

탈이념 대학문화 주도

 

그 해 가을 연고전 행사가 열렸다. 1만여 명의 학생이 몰린 잠실야구장에는 담배꽁초, 김밥, 김치, 화장지, 가래침이 넘쳐났다. 역부족을 느낀 그는 쓰레기 줍기 캠페인에 참가한 학생들의 대표들을 본부석 앞으로 모이게 한 후 “총장님!”을 외치게 했다. 총장은 화장실 앞에서 학생 대표들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그는 총장에게 캠페인 취지를 설명한 후 전광판을 통해 전체 학생들에게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8회말이 끝나자 전광판에 쓰레기를 줍자는 문구가 나타났다.

 

“그때의 희열을 잊을 수 없습니다. 높은 직책에 있는 의사결정권자가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준 것에 대한. 경기가 끝난 후 많은 학생이 우리를 따라서 쓰레기를 주웠습니다. 아, 이렇게 세상을 변화시키는구나 싶었죠.”

 

이후 쓰레기 줍기는 연고전의 익숙한 풍경이 됐고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나중에는 쓰레기봉투가 응원도구로까지 등장했다. 그는 “이런 일에도 원칙이 있다”고 얘기를 이어갔다.

 

“아무리 뜻이 좋더라도 대중의 눈높이와 맞지 않으면 허무맹랑한 게 된다는 거죠. 예컨대 어떤 학생이 공부나 마땅히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너무 큰 얘기를 하거나 사회책임을 거론하면 ‘수업도 안 들어오는 너의 얘기를 왜 우리가 들어야 하지’라는 반박에 부딪히게 되는 겁니다. 제가 고민한 건 올바른 대학생상(像)이었습니다. 대학에 왜 들어왔는지, 뭘 배우고 나가야 하는지, 진정한 내공은 뭔지. 그때부터 묵상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내가 속해 있는 단체에서 정말 올바른 나의 모습은 뭔가.”

 

그는 무감독 시험운동을 벌이고 고려대의 남성우월주의적 문화를 바꾸기 위해 여성리더십 강연회도 추진했다. 비록 유명 인사들이 초청에 응하지 않아 무산되긴 했지만 강연회를 준비하면서 조직에 대해 많은 걸 배웠다고 한다.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통합

 

대학원에 들어가선 대학생을 비롯한 20대의 선거참여운동과 선거연령 낮추기 운동을 기획했다. 우선 필요한 일이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통합이었다. 그는 평소 가장 믿고 따르던 선배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그 선배는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통합은 무모해 보인다”며 “차라리 대학원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충고했다.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변화를 꿈꿀 때 가장 중요한 건 부정적 인식에 맞서는 겁니다. 두려워하고 훈련이 안 돼 있으면 부정적인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죠. 인생에는 2차 함수가 있어요. 그걸 아는 게 지혜죠. 많은 사람이 y=ax+b라는 1차 함수의 인생을 삽니다. 여기서 a는 직장에서의 성공 노하우 같은 겁니다. 모범생처럼 a를 키우기만 하고 다른 삶은 생각을 못하죠. b는 유산이에요. 그런데 인생이 과연 그것뿐인가. 2차 함수는 y=ax2+bx+c입니다.

여기서는 c가 유산입니다. b는 고통, a는 비전입니다. 큰 비전을 갖고 고통을 이겨내면 인생의 변곡점을 지나게 됩니다. 그게 바로 ‘오바마 인생’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인생을 보면 어김없이 고통을 이겨낸 지점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 고통을 피하고 안전한 길로만 가려 합니다. 하지만 그 고통과 리스크를 이겨내면 2차 함수의 인생을 살게 됩니다. 1차 함수보다 훨씬 더 큰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죠.”

 

5명으로 시작한 선거참여운동은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었다. 이질적인 성격의 단체들을 끌어 모으는 데는 엄청난 인내가 필요했다. 그가 보기에 대학가의 이념논쟁은 소모적인 것이었다.

 

“정말 힘들었어요. 우리 사회의 문제점 중 하나가 쓸데없는 이념논쟁이에요.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결국 자기만 옳다는 얘기 아닙니까. 이거 때문에 아무것도 안 되는 겁니다.”

 

몇 달간 고생고생해서 25개 단체를 끌어 모으자 그때부터는 참가단체 수가 빠르게 늘었다. 운동을 시작한 지 1년쯤 지났을 때 194개 단체가 하나로 뭉치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들은 선거참여운동과 함께 선거연령 낮추기 캠페인도 전개했다. 그들의 노력은 2004년 총선에서 결실을 거뒀다. 20대 유권자의 투표율이 11%나 올랐던 것이다. 2006년에는 선거연령이 만 20세에서 만 19세로 낮춰졌다.

 

“그때 저는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단어는 고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리더를 만드는 건 지식이나 학벌이나 돈이 아니라 고통이라는 사실을... 고통을 받아들이고 이겨내면서 생각의 깊이가 달라지고 주변사람들을 껴안을 수 있는 마음이 생기는 거죠.”

 

조직을 만들고 조직 간 연대를 성사시키면서 그는 컨설턴트 인생을 설계했다.

 

 

 

IMF 사태’ 이후

출세지향 인생에서 기부인생으로 전환

 

“총학생회장 선거에도 나가보고 전국대학신문의 칼럼니스트도 해봤어요. 26세부터 특강을 다녔습니다. 시민사회단체 사람들을 만나면서 우리 사회에 구조적 공백이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정책 만드는 것만 해도 다양한 전문가가 모여 머리를 맞대는 게 아니라 행정관료들과 시민사회단체 몇 사람, 정치학 박사 몇 사람이 졸속으로 해버리더라고요.

 

그리고 사회 곳곳에 사각지대가 있더군요. 재활여성, 노숙자, 재소자, 소년소녀 가장들에게는 원천적으로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새롭게 성장하고 싶어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못해 발전하지 못하고요. 이런 문제들을 인식하면서 자연스럽게 조직설계에 대한 꿈을 키우게 된 겁니다. 대학 시절 내가 만든 조직이 공신력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조금만 도와주면 성장할 수 있었는데.

(대학원 시절) 각기 따로 노는 조직들이 뭉칠 경우 어마어마한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걸 경험했죠. 이처럼 수많은 단체를 하나로 엮어내고 브리지 노릇을 하는 직업이 뭘까 생각하니 딱 컨설턴트인 거예요. 정부, 기업, 연구소, 재단, 지자체, 시민사회단체, 대학, 병원 다 경험하거든요. 그래서 컨설턴트가 되기로 한 거죠.”

 

 

M&A 기법으로 새로운 틀의 남북통일방안 제시하겠다

 

연방제로는 통일 곤란

 

대학원 2학기 때부터 1년간 교수 밑에서 컨설턴트 경험을 쌓은 그는 4학기를 맞은 2004년 하반기 헤이그룹에 취업함으로써 정식 컨설턴트가 됐다. 입사 첫해에 4억원짜리 프로젝트를 따올 정도로 그의 실력은 출중했다. 성과평가 때는 모든 항목에서 최고등급을 받았다. 3년 후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이라는 회사가 그를 스카우트했다.

 

솔직히 나는 그의 설명을 듣기 전까지 컨설턴트가 그토록 많은 일에 관여하는 줄 몰랐다.

전략 수립과 지배구조 개선, M·A(인수합병), 신사업 개발, 해외 진출, 각종 제도 설계, 조직 혁신, 영업력 강화, 인사제도 개선.....

 

▼ 컨설턴트 수입이 괜찮습니까.

 

“(웃음) 능력에 따라 차이가 크죠. 같은 직급이라도 성과에 따라 연봉이 수천만원에서 억대까지 다양합니다. 프로야구선수와 똑같아요. 1군도 갔다가 2군도 갔다가. 고객 만족도가 높고, 8년차에 할 일을 1, 2년차에 해내면 연봉이 올라갈 수밖에 없죠. 컨설턴트의 실력은 파트너인 기업의 대표들이 금방 압니다.”

 

그는 현재 부장인데 조만간 이사대우로 승진할 것 같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 너무 빨리 가도 안 좋은 것 아닌가요? 나중을 생각하면.

 

“저는 장기적으로 다른 고민을 하고 있어요. 남북한 M·A를 할 생각이거든요. 통일한국에 대한 설계죠. 새로운 틀의 남북한 통일방식을 제시할 생각입니다. 기존의 정치적 접근법에서 벗어나. 학부 때 연방제를 공부했는데 정치적인 통합은 이해관계가 복잡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경제적 문화적 측면에서 조직끼리 연대하는 것이 더 중요하죠.”

 

▼ 구체적인 방법론이 있습니까.

 

“마이크로크레딧(Microcredit·취약계층에게 담보 없이 소액을 빌려줘 자활하도록 돕는 제도) 아시죠?

 

호주에 ‘Opportunity International’이라는 재단이 있어요. 데이비드 부소가 회장인데, 마이크로크레딧으로 전세계에서 3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낸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김정일을 설득해 북한에도 이미 2004년에 마이크로크레딧이 들어갔습니다. 북한도 점차 대안경제가 발전하고 사회적 기업이 늘어날 걸로 예상됩니다. 중국처럼 공기업이 늘면서 사회체제가 바뀔 겁니다. 그렇게 되면 교육 문화 스포츠 등 모든 분야에서 교류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연대를 성공적으로 만들어내는 틀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양쪽의 이질적인 의식을 하나로 묶는 작업이죠. 제가 도움을 준 탈북자들과 대화해보니 가능 하겠더라고요.

 

개성공단이나 현대아산의 대북사업처럼 엄청난 돈을 들이는 사업도 좋지만, 저는 밑바닥에서부터 하나씩 다져가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기업이나 클러스터(Cluster), 혹은 스페인의 몬드라곤과 같은 조합 형태 말입니다.”

 

몬드라곤은 호세 마리아 신부가 설립한 경제공동체로, 노동과 소유가 일치하는 생활협동조합 형태의 기업이다.

 

 

천안함 유족 돕기 제안

 

▼ 책 얘기를 해볼까요. 나비형 인간은 고영 대표께서 처음 만들어낸 개념인가요?

“그렇죠.”

 

▼ 어떤 의미인가요?

 

“나비는 꽃가루를 묻히고 다니면서 꽃을 피우게 하잖아요.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만들기도 하고요.

자신의 재능으로 어떤 사람을 도와 그 사람이 더 성장하는 걸 즐기는 사람을 나비형 인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재능 기부를 편하게 생각하고 즐기는 사람들.”

 

▼ 고 대표도 거기에 해당된다는 거죠?

 

“해당돼가고 있고, 더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비형 인간이라는 표현이 널리 쓰이기를 바랍니다. 재능 기부라 하면 좀 거리감이 있거든요. 호기심도 안 생기고.”

 

▼ 봉사하는 삶과는 어떻게 다른 거죠? 개념이 일치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봉사가 훨씬 큰 개념이죠. 나비형 인간 창의적 재능 기부 초점을 맞추는 것이고.”

 

 

▼ 나비형 인간의 개념은 어떻게 생각해낸 건가요?

 

“대학 시절 제가 교내에서 쓰레기를 주우니까 다른 학생들이 따라서 했습니다. 지금은 쓰레기 줍기가 연고대의 전통이 됐어요.

세 명의 전문인으로 시작한 재능기부 단체가 지금은 120명의 전문가와 대학생 인턴 190명이 참여하는 큰 기구로 발전했습니다. 2년 반 만에 이룬 성과입니다. 30개 이상의 사회적 기업과 국제기구에 무료 컨설팅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 중 10여 개를 성공시켰습니다.

 

한 사람의 작은 재능기부 활동이 계속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아, 이게 가능하구나.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많구나. 나비형 인간의 DNA를 일깨워주기만 하면 된다는 걸 깨달은 겁니다.”

 

▼ 물질적인 기부도 해당되는 거죠?

 

“당연하죠. 자신의 기부로 누군가의 삶에 변화가 일어나고 그 변화가 또 다른 사람에게 축복이 되고. 행복의 통로가 되는 거죠.”

 

그는 이번에 책을 쓰면서 나비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나비가 되기 위해선 알-애벌레-번데기를 거쳐야 합니다.

200개의 알 중에서 나비가 되는 건 2개뿐입니다. 애벌레로 남으면 삶의 시야가 나뭇잎에 가려지잖아요. 20일간의 힘든 번데기 생활을 거쳐 나비가 되면 100㎞를 날게 됩니다. 엄청난 차이죠.

제가 만약 통장 잔고를 아까워하고 빨리 집 살 생각에 많은 사람을 돕지 않았다면, 주말에 재능 기부 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애벌레로 남았을 겁니다.

통장이 인생의 전부가 됐겠죠. 남을 도우면서 누리는 기쁨을 몰랐겠죠. 2년 전 일주일간 휴가를 내 전국에서 올라온 할아버지들과 아저씨들에게 무료 상담을 해준 적이 있습니다. 그들을 도우면서 제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사업하는 분들에게 무료 컨설팅을 해주면 확장효과가 나타납니다. 주변사람들에게 알리고 소개하기 때문이죠.”

 

그는 최근 천안함 유가족 돕기에도 나섰다. SCG에 소속된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디자이너, 실내장식가, 홍보 전문가, 마케터 등이 총동원돼 유족의 자활을 돕겠다는 계획이다.

 

“저 혼자라면 엄두를 못 냈을 겁니다. 하지만 나비형 인간들이 모여 있으니 도울 생각을 하는 겁니다. 그분들한테 많은 성금이 전달되고 정부도 지원하고 있지만, 더 중요한 건 그 돈으로 자영업이나 중소기업을 운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라고 봅니다.”

 

그가 대표인 SCG에 등록된 전문직 종사자 중 실제로 활동하는 사람은 100명 안팎. 평소엔 각자 본업에 충실하다 밤 시간이나 주말을 이용해 자신이 맡은 사회적 기업들을 무료로 상담해준다. 머지않아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와 국경없는 의사회도 지원 대상이 될 전망이다.

 

“너무 감사해요. 이런 분들을 모르고 살 수도 있었는데. 우리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친구나 선배나 직장상사를 데리고 찾아옵니다. 새로운 꽃가루가 막 생기는 거죠.”

 

5월16일엔 ‘나비형 인간 컨퍼런스’가 열린다. SCG를 비롯한 7개의 재능기부단체가 참여해 재능 기부와 나비형 인간에 대해 토론할 예정이다. 장소는 SKT에서 협찬했다.

 

 

 

 

나비형 인간 대회

 

그는 지난해 5월 혼자서 나비형 인간 대회를 열었다. KBS TV ‘아침마당’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후 도움을 요청해온 30여 명을 대상으로 무료 컨설팅을 한 것이다. 순번을 정해 카페에서 만났다. 회사에는 하루 휴가를 냈다. 대상자 중에는 치과원장, 목사도 있었다. 그는 앞으로 언론매체와 손잡고 잠실스타디움에서 나비형 인간 대회를 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SCG는 청와대가 기획한 사회적 기업 활성화포럼의 운영위원단체로 활동하고 있다. 프로보노 아카데미도 운영하고 있다. 자치단체들과도 연대하고 있다. 서울 마포구의 경우 조례를 바꾸는 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마포구에서 성과가 좋다는 얘기를 듣고 강서구에서도 연락이 와 곧 만날 예정이라고 한다.

 

▼ 저같이 평범한 사람이 나비형 인간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죠?

 

“선천적인 나비형 인간은 많지 않아요. 내 꿈과 남의 꿈을 일치시켜보려는 노력, 무엇보다도 어려운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거기서 길이 열려요. 훈련이고 습관이죠. 내가 가진 작은 재능을 남을 위해 쓸 때 그것이 더 커지는 걸 느끼게 됩니다.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만.”

 

▼ 많은 사람이 ‘나’에 갇혀 있잖아요. 나의 인생, 나의 가정, 나의 세계…. 한마디로 남의 인생에 관심을 가지라는 얘기죠?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되면 관심을 가지라는 거죠.”

 

▼ 실천이 쉽지 않지요. 다들 자기 먹고살기 바쁘니까.

 

“그래서 묵상이 중요하죠. 그런데 한 번 질문을 던져봐야 할 것 같아요. 진짜로 내가 그렇게 바쁜지.”

 

대출 받아 전셋집 마련

 

▼ 남을 도우려면 내가 일단 먹고 살 만하고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그렇지 않아요. 친구가 되어주면 됩니다. 미용사들과 대화하면서 아이디어를 주니까 도움이 됐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아는 게 별로 없어도 도움이 되는구나, 저분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려면 내가 더 공부를 해야지, 그러면 더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것만을 위해 사는 게 과연 올바른지 죽을 때까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내가 가진 게 적지 않다는 걸 알아야 해요. 시간도 있고 체력도 있고 먼저 경험한 것도 있고. 누군가를 조금씩이라도 도우면서 시간을 이겨내는 겁니다.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 당위성이나 의무감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가치관이 형성돼야 하지 않을까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경험입니다. 작은 한 번의 경험. 한 번 기부하면 계속 하게 됩니다. 저도 (연봉의) 80%까지 한 게 처음부터 그렇게 작정한 건 아니거든요.”

 

▼ 지금도 80%를 기부하나요?

 

“그렇게 못합니다. 요즘은 포트폴리오를 짜서 합니다. 큰돈은 못하고 있죠. 마이너스 기부도 안하고. 지난해까지는 했는데.”

 

▼ 연봉의 절반쯤 합니까.

 

“한 20%. 결혼 전에는 돈이 없어도 기부를 했는데, 결혼하니 달라지네요. 전세자금도 필요하고…(웃음) 대출 받은 것 갚아나가려니…. 전셋집도 대출 받아 마련했거든요. 그간 기부한 돈을 모았다면 아마 집을 한 채 샀을 겁니다. 1억9000만원 가까이 되니까.”

 

▼ 주로 어떤 사람들한테 기부했습니까.

 

“러시아 연해주의 고려인들에게 가장 많이 기부했습니다. 5000만원 가까이. 재소자에게 1000만원을 몇 번으로 나눠 지원한 적도 있습니다. 학사시험에 합격해 졸업할 때까지 돈을 댔지요. 그는 복지상담사 자격증을 땄어요.”

 

고려인 지원은 동북아평화연대의 고려인 돕기 프로젝트에 참여한 게 계기였다. 4박5일 동안 연해주를 둘러보고 고려인들의 딱한 처지를 알게 된 그는 그들의 자립을 돕고자 농장을 만들 땅과 말 2필을 기증했다. 하지만 뜻한 대로 일이 진척되지 않았다. 재단이 자금운용 계획을 잘못 세운 탓에 콩농사에 필요한 종자 살 돈이 없어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된 것이다. 종자 대금을 입금해야 할 시기가 닥치자 동북아평화연대에서 그에게 급히 도움을 요청했다. 수중에 돈이 없던 그는 마이너스통장을 만들어 2500만원을 마련했다. 며칠 뒤 추가로 1800만원을 송금했다.

 

▼ 현재 재산이 얼마나 됩니까.

 

“없죠. (웃음) 다 빚인데. 집도 없고 차도 없어요. 지금 입고 있는 양복은 15만원이 안 됩니다. 와이셔츠도 1만원짜리입니다. 가난합니다. (웃음)”

 

9년간 여자가 없었던 이유

 

그는 요즘 보험방식의 기부를 한다. 이른바 기부보험이다. 세 단체를 대상으로 기부보험을 넣고 있는데 10년 후엔 한 단체에 6000만원씩, 모두 1억8000만원이 적립된다고 한다. 그에게 돌아오는 수익은 전혀 없다.

 

▼ 자신을 위한 보험은요?

“상해보험 하나요. 하하. 아내가 들으라고 해서.”

 

▼ 정상적인 가정이 아닌 것 같네.

“와하하하. 아내한테 미안하니까.”

 

▼ 웬만한 여자는 감당하기 힘들 것 같은데요.

“그래서 9년간 여자가 없었지요.”

 

▼ 결혼이 늦어진 원인 중 하나인가요?

“중요한 원인이었죠. 비전과 가치관이 맞아야 하니.”

 

이성적이라고 해야 할지, 냉정하다고 해야 할지. 하여간 나로선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결혼 조건이다.

 

그는 유산 기부했다. 유니세프(UNI-CEF·유엔아동기금)에 유산을 기부하겠다는 약정을 하고 공증까지 했다고 한다. 유산이 100억원이든 1000억원이든 무조건 기부한다는 것이다. 자식 키우는 비용과 노후에 대한 걱정 따위는 그의 사전에 없는 걸까.  

 

“저는 자신감 있고 두렵지 않습니다. 할 일이 넘쳐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컨설턴트가 정말 좋은 게 경영에 대한 노하우를 업종별로 꿰면 누구든 도울 수 있습니다.”

 

나는 컨설턴트가 못 된 자신을 원망하며 부러움 섞인 질문을 던졌다.

 

▼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다는 거죠?

 

“그렇죠. 제 파트너들이 세 기업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데 합해서 1000만원을 받더라고요. 50대 중반, 후반들인데. 그 나이에 저도 경제활동을 하겠죠. 그래서 오히려 지금 더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타이밍을 놓쳐선 안 되죠. 지금 도와주지 않으면 나락에 빠질 사람이 많은데. 그럼에도 가장으로서의 책임은 다해야겠죠.”

 

 

2009년 5월24일 ‘아름다운 가게’에서

사회적 기업 인력양성 워크숍이 열렸다.

 

 

 

기부 안 하면 죄책감 들어

 

▼ 아내와 아이들에게 돌아갈 유산은 전혀 없나요?

 

“없죠. 결혼 전 아내에게 그 얘기를 했고 동의를 받았기에 결혼한 겁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안 했을 겁니다.”

 

▼ 부인께서 혹시 결혼한 걸 후회하지는 않던가요?

 

“너무하시는 것 아닙니까. (결혼한 지) 1년도 안 됐는데 그런 얘길 하시면.(웃음) 내가 뭐 빚보증을 선 것도 아니고. 허투로 돈 쓰는 것도 아니고. 술 담배도 안 하고 레저도 안 합니다.”

 

▼ 기부하면 마음이 즐겁습니까. 

“도움을 받는 분들이 있으니.”

 

▼ 일종의 중독인가요? 기부를 안 하면 불안한가요?

 

“중독은 아니고요. 불안이라기보다는 내가 잘 살고 있는지 늘 질문하는 거죠. 아니, 중독증도 없지 않은 것 같네요. 기부를 안 하면 죄책감이 드니. 내가 어려울 때 도움을 받았기에 그만큼 나도 도움을 줘야 한다는 책임감, 또는 원죄의식 같은 게 있습니다.”

 

▼ 기부는 이기적인 행위인가요, 이타적인 행위인가요?

 

“둘 다라고 봅니다. 제가 무슨 휴머니즘이나 인권 차원에서 기부하는 게 아니거든요. 저를 위해 쓰면 아까워요. 사치 같고. 청바지도 안 사 입어요.”

 

▼ 그 모든 게 IMF 사태 영향이라는 거죠?

 

“그게 가장 컸죠. 기부로 삶의 의미를 찾는 거지. 그 점에선 이기적이죠. 그것이 내게 도움이 되는 걸 아니까.”

 

▼ 긍정적 이기주의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렇죠. 당당해지고 자부심도 생기고. 생각한 대로 사는 거니.”

 

▼ 이런 생활방식에 갈등이나 회의를 느낀 적은 없나요?

 

“몸이 힘들 때요. 재능기부 하면서 주말에 쉬지 못하니. 체력이 고갈될 때마다 너무 힘듭니다. 이러다 다 소모되는 게 아닌가 싶고. 그럴 때마다 잠을 푹 잡니다. 잠이 보약이죠. 대표이기 때문에 책임감도 큽니다. 다른 사람들의 본이 돼야 하니.”

 

인터넷 검색창에서 그의 이름을 치면, 5월3일에 있었던 그의 서강대 강연내용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제시한 블로그를 접할 수 있다. “성취에 경도돼 있어 자신의 성취 외 다른 사람의 인생에 별 관심이 없다”는 문구가 눈에 띈다. 이날 강의 제목은 ‘전략형 사고와 나비형 인간’이었다. 이 비판에 대한 의견을 묻자 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 친구의 기준이나 선입관으로는 적절한 비판인지도 모르지요. 제 직업이 컨설턴트이기 때문에 성취지향적이라는 말을 들을 만도 합니다.” 

 

 

 

▼ 성취 자체가 나쁜 건 아니잖습니까.

 

“경도되면 문제가 되겠죠. 제게 그런 점이 있다면 고민하고 고쳐야겠죠. 그래서 제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답글을 달았습니다.”

 

한 사람을 귀중하게 여기는 마음

 

▼ 이런 구절도 있더군요. “다른 사람을 도울 때 실로 행복함을 느끼는 게 아니라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한 가지 도구로 다른 사람들을 취급한다.”

 

“좀 너무한 것 아닙니까. 제가 만일 그랬다면 이런 조직이 안 만들어졌겠죠.”

 

▼ 사실 여부를 떠나 상당히 날카로운 지적인 것 같습니다.  

 

“어머님이 늘 경계하라고 강조한 말씀이 있어요. 큰 이야기 할 때 빠지는 게 한 사람을 귀중하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어머니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사람들이 한 사람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걸 고민하라’고 하셨죠. 그런 차원의 지적이라면 받아들여야죠.”

 

▼ 관계와 소통의 중요성 말인가요?

 

“그보다는 한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목적을 포기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거죠.”

 

▼ 그런 경지에 올랐습니까.

 

“계속 반성적으로 성찰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런 주제에 대해 27세 이후 늘 고민해왔다”며 ‘양날의 칼’이라는 표현을 썼다.

 

“자꾸 드러날수록 위험하죠. 그게 영향력이 되고 권력이 되니까. 그게 자본이 되거든요. 브랜드가 캐피털을 만들어요. 거기서 탐욕이 생길 수 있죠.”

 

▼ 이번의 경우 조금 지나치긴 하지만, 앞으로 이런 비판이 자주 제기되는 게 좋겠군요.

 

“좋을 뿐 아니라 평생 안고 가야 할 주제입니다. 저는 특히 대표이기 때문에 더 위험합니다. 온전치 못하고 부족한 인간이기에 언제든 잘못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변하는 시점이 있습니다. 탐욕 때문입니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처럼. 절제할 줄 알아야죠. 그래서 묵상이 필요한 겁니다.”

 

▼ 말씀하는 수준이 상당한 경지에 오른 것 같습니다.그런데 인간이 탐욕을 완전히 떨치는 건 거의 불가능하지 않나요?

 

“저도 탐욕이 있습니다. 시장에서 제 가치를 인정받으려 하거든요. 컨설턴트이기 때문에. 연봉협상 할 때 대충 안 합니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늘 강조하는 말이 ‘겸손’이라며 “비판이 제기되면 자신을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인터뷰를 끝낼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에게 진정한 행복은 뭐라 생각하는지 물었다.

 

 

“행복은 찾거나 취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 ‘행복이라는 감정을 좇지 말라. 그게 얽매임이 된다’라는 얘기가 있어요.

저는 자신의 삶 의미 부여하는 게 행복이라고 봅니다. 나의 삶을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행복이지요. 그게 깨지면 불행이고. 남과 비교하는 순간 행복은 사라집니다. 가진 게 없다고 여기는 순간 행복은 없어집니다.

저와 연봉이 비슷한 컨설턴트들이 스포츠카 타고 아르마니 정장 입고 다니는 게 전혀 안 부러워요. 미안하지만 불쌍해 보여요. 그런 것에 도취해 사는 게.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고 그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자신의 모습에 감사할 줄 아는 게 참된 행복이죠.

버트란트 러셀의 말이 맞다고 봐요. 인생은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는 것 이외에 어떤 의미도 없다고.”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

 

그의 얘기는 빈틈이 없고 그의 자세는 반듯하다. 잘난 척한다는 느낌도 안 준다. 그런데 나 같은 속물도 나비형 인간이 될 수 있을까. 핑계는 역시 가족이다. 나비형 인간이 된다고 가정의 행복이 깨지는 것도 아닐 텐데.

 

“저는 그게 잘 훈련됐던 것 같아요. 일찍이 가족 중심 사고를 벗어났던 게 도움이 됐죠.

‘공부의 신’ 강성태군에게 초기부터 경영자문을 해줬습니다. 성태가 말하기를, 선배가 애를 낳으면 자기가 잘 키워주겠다는 거예요. 살아가면서 어떤 사람을 만나 어떤 대화를 하고 어떤 자극을 받느냐가 중요합니다. 저에겐 성태 같은 친구가 많아요. 사람 네트워크죠. 그들이 제 자식들에게 도움을 주면 제가 추구했던 가치와 정신이 자식들한테 전달되겠죠. 세대를 이어가면서 대물림되는 거죠. 그러면서 사회가 발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흐름을 알면 두려움이 없어지는 거죠. 이게 중요한 것 같아요.”

 

▼ 저도 나름 당당하게 산다고 생각하지만 마음 한구석엔 늘 두려움이 있어요. 미래와 노후에 대한 불안감, 가족의 행복을 잘 지킬 수 있을까 하는 걱정….

 

“저도 두려움 있죠. 너무 빨리 승진해서…(웃음). 뭐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나는 그의 웃음을 보면서 다소 마음이 편해졌다. 지금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는 게 좋을지, 퇴직 후 아이들 대학 학비를 어떻게 마련할지 따위의 걱정이 멀리 달아난 건 아니지만. (신동아/조성식 기자)

 

 

 

 

 

 

 

 

 

 

 

 


재산 절반 이상 ‘기부 서약’
미 억만장자 40명 서약 최소 175조원 이르러

 

 


억만장자들에게 재산의 사회 환원을 약속하는 기부서약(더 기빙플레지) 운동을 벌이고 있는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 그리고 이에 동참하기로 약속한 시엔엔 창업자 테드 터너, 영화감독 조지 루카스, 소프트웨어 기업 오라클 창업자 래리 앨리슨, 뉴욕시장 마이클 블룸버그 등 미국의 억만장자들.(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순)
 

“누군가는 이를 기회, 다른 누군가는 이를 책임이라 하지만 우리는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포브스 추정 57억달러의 재산가인 엘리 브로드와 그의 부인 에디트는 절반 이상의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서약하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영화감독 조지 루커스는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교육의 질을 개선하는 데 내 재산을 기부하고자 한다”고 말했으며, 비즈니스 와이어 창업자 로리 로키, 록펠러 가문의 데이비드 록펠러 등은 이익을 다시 사회에 환원해야 할 ‘의무’를 강조했다.

 

또 <시엔엔>(CNN) 창업자 테드 터너, 투자 자문사 블랙스톤 그룹 창업자 피터 피터슨 등 상당수는 ‘기부는 주는 이에게 더 큰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알리바바닷컴 데이비드 웨이 CEO가 이코노미스트에 한국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전자상거래의 비전에 대한 기고문을 보내왔다.

 

알리바바닷컴은 세계 최대 인터넷 무역 업체로 지난해에 전년보다 29% 많은 39억 위안(78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알리바바닷컴 회원사가 매년 모이는 알리페스트 행사 모습

 

 

 

글 / 데이비드 웨이 CEO

-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닷컴 -

 

 

알리바바라는 한 젊은이가 40명의 도둑이 감춰놓은 보물을 발견하고 “열려라 참깨”라는 주문을 외우자 보물 창고 문이 열려 부자가 되었다는 고대 아랍에서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알리바바닷컴은 그간 전 세계 수백만 중소기업을 인터넷 무역을 통해 성공적으로 지원해 왔다.
 

한국은 우수한 품질과 기술을 바탕으로 혁신적인 제품을 끊임없이 창조해 내고 있다. 인터넷 강국 코리아라는 강력한 유전자를 가진 수백만 개의 중소기업도 “열려라 참깨”라는 주문을 함께 외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세계 각국의 바이어는 인터넷 무역시장을 이용해 공급업체를 찾아 나서고 있다.
 

해외 출장이나 전시회 참가 같은 전통적인 수출 시장 개척 방식에 비해 비용이 덜 들고 효율성과 편의성은 무척 뛰어나기 때문이다. 특히 클릭 한 번으로 수많은 바이어와 공급업체를 한꺼번에 만나 볼 수 있다는 게 알리바바닷컴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매달 한국 고객사 2400곳씩 증가

 



항저우에 있는 알리바바닷컴의 본사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바이어가 전체 무역 상담과 거래 과정에 있어서 가장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입하는 일은 적합한 공급업체를 찾아내는 것이다. 세계적 컨설팅 업체인 미국의 애버딘 그룹이 최근 조사한 결과를 보면, 바이어가 수출박람회에 참가하거나 해외 출장을 가는 전통적 오프라인 방법을 이용해 원하는 공급업체를 찾는 데는 보통 3~4개월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전자상거래는 불과 1~2주면 모든 과정이 끝나기 때문에 미래의 무역은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시장이 더 커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인구와 비슷한 수인 전 세계 5030만의 중소기업이 알리바바닷컴이라는 인터넷 무역시장을 통해 보다 발 빠르고 손쉽게 수출입을 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이제 인터넷 무역 시장은 바이어와 공급업체를 연결해 주는 서비스 외에도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진화되고 있다.
 

인터넷 무역에 관한 교육과 세미나를 개최하고 바이어와 공급업체 간의 1대 1 면담을 주선하며 세계 각국에서 개최되는 중요한 수출 박람회와 전시회 참가와 같은 오프라인 서비스도 함께 제공하는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는 쪽으로 옮겨가는 중이다. 알리바바닷컴도 지난해 한국무역협회, KOTRA 등과 협력해 한국 제품 전용 온라인 수출입 상담 채널을 개설했다.

 

우리는 이를 통해 한국 중소기업의 해외 시장 개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또한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업을 통해 한국 중소기업의 글로벌 온라인 마케팅도 지원하고 있다.
 

현재 알리바바닷컴에는 한국산 자동차 부품, 중장비, 건설 기계, 전자 부품, 화학 제품, 섬유 직물, 소형 가전, 건축 자재, 고무, 플라스틱, 식품, 의약품 등 한국에서 생산되는 43개 업종의 다양한 수출 유망 제품이 전시되고 있다. 현재까지 알리바바닷컴에 등록한 한국 기업들의 수도 올해 3월 기준 11만 개를 넘어섰고, 매월 평균 2400개가 넘는 한국 기업이 신규 회원사로 등록하고 있다.

 

소비자 중심 사회에서 중기 제품 수요 늘어

 

알리바바닷컴은 한국 기업의 활약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의 한 타워크레인 전문 중장비 제조업체는 최근 알리바바닷컴을 통해 자사의 기술로 개발한 16t급 대형 타워크레인을 수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 계약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기 침체가 계속됐던 지난해 이 회사의 유일한 수출 실적이자 첫 번째 온라인 수출 실적이었다.
 

한국의 한 섬유 제조업체도 알리바바닷컴을 통해 연 300만 달러 수출에 성공했다. 알리바바닷컴을 통해 매월 2만 달러의 수출 실적을 올리고 있는 1인 의류수출 업체도 있다.
 

글로벌 무역시장에서 요구하는 엄격한 기준을 충족하려면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세계 각국의 바이어는 중소 제조업체에 우수한 품질, 합리적인 가격과 기술력, 신속한 제품 공급, 무역 거래 기준 준수 등을 종합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각국의 바이어가 중소기업이 만든 제품에 단지 관심을 갖는 데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구매로 이어지게 하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중소기업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중소기업형 수출 인프라 구축과 다양한 상품 및 서비스 제공 등으로 중소기업의 수출 확대를 위한 한국 정부 차원의 접근과 노력도 필요하다. 과거 오프라인 중심의 수출과 지원정책을 시대적 변화에 맞게 이제 온라인으로 시야를 넓힌다면 더 넓은 시장과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계 경제가 점차 회복됨에 따라 수출 관련 비즈니스 활동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특히 급변하는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인터넷을 통한 수출 활동은 더욱 그렇다. 생산자 중심의 후기 공업시대 문명이 소비자 중심의 상업문명으로 점차 바뀌어가면서 획일화된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대기업이 아니라 다양한 소비자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소규모 기업이 주도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나는 세계적인 인터넷 강국 한국, 무역 강국 한국의 중소·강소기업이 인터넷 무역 시장에 펼쳐진 새로운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온라인을 통한 해외 수출 시장 개척과 사업 확장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중국


 

데이비드 웨이는

 

 


 

데이비드 웨이 알리바바닷컴 CEO는 1970년생으로 상하이 외국어 대학을 졸업하고 런던 비즈니스 스쿨에서 MBA를 취득했다.

그는 1998~2000년 상하이에 있는 둥팡증권투자은행에서 근무한 뒤 2002년 세계적 유통업체인 B&Q의 중국법인 사장을 맡았다.
 

그는 B&Q를 5년 만에 중국 최대 가구주거용품 유통업체로 키웠다. 2006년 11월 알리바바그룹에 합류해 현재 알리바바닷컴 CEO를 맡고 있다.

 

1999년 잭 마 창업주가 50만 위안(약 1억원)으로 창업한 알리바바닷컴은 10년 만에 인터넷 무역 분야 세계 1위 업체로 도약했다.
 

헤지펀드의 큰손 조지 소로스가 이 회사의 3대 주주.

웨이 CEO는 ...

지난해 스톡옵션을 포함해 연봉이 5700만 위안(약 93억원)으로 중국의 전문경영인 가운데 최고 소득을 올려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어느 집 강아지 이야기입니다. 

그 집 강아지 네루는 예배 드리기를 좋아한답니다.

가정 예배에도 참석하고 특별히 구역 예배를 드릴 때 좋아한다고 합니다.

 

"네루야 예배 드리자"

 

이 소리를 듣게 되면 네루는 제 집에 있다가 어슬렁어슬렁 주인 옆에 와 앉습니다.

찬송가를 부르면 네루도 따라 부릅니다.

앞다리를 들고 꼿꼿하게 일어서서 "오오~ 오오~" 하고 찬송을 부릅니다.

찬송이 끝나고 기도 시간이 되면 네루도 엎드려서 기도 합니다.

설교 시간에는 옆에 앉아서 얌전하게 설교를 듣습니다. 주기도문을 외우고 예배가 끝나면 제집으로 돌아갑니다.

 

참으로 기특한 강아지 아닙니까?

그렇다고 이 강아지가 신령한 강아지냐?

그렇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느냐? 천만에 말씀입니다.

 

발람 선지자의 당나귀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다고 해서 신령한 당나귀가 된 것이냐? 아닙니다.

왜냐하면 동물에게는 영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오직 사람에게만 영을 넣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유일무이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예정하신 데로 강아지로 태어나지 않고 사람으로... 사람 중에서도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태어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강아지로 태어나지 않고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내 의지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과 같이 내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 받은 것은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총입니다.

 

예수님의 예화에 곡식과 가라지 비유가 있습니다.

가라지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곡식이 될 수가 없습니다. 처음부터 곡식으로 심어져야 합니다. 곡식으로 지음 받느냐 가라지로 지음 받느냐는 것은 곡식과 가라지의 의지나 행함으로 인한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창조주의 절대 주권에 있습니다.

 

그러나 곡식이 알곡이 되느냐 쭉정이가 되느냐는 곡식으로 태어난 이후의 행함의 문제입니다.

 

나무와 열매의 비유도 있습니다.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지만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나쁜 나무는 아무리 노력해도 좋은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의 비유가 있습니다.

가시나무에게 무화과 열매가 없다고 책망한 것이 아니고 무화과나무로 자라면서 무화과 열매를 맺지 못했다는 책망입니다.

 

무화가 나무가 되느냐 가시나무가 되느냐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달려 있는 것이지만 무화과 나무로 심겨졌는데도 무화과 열매를 맺지 못하면 크게 책망을 받게 됩니다.....

 

 

 

 

 

 

 

 

 

 

 

 

 

 

 

 

 

 

 

 

 

 

 

 

원산이 라틴아메리카인 한해살이풀

키는 1~3m로 노란색 꽃이 핀다

 

열매는

"리코핀"에 의해 붉은색을 띠며 식용목적으로 이용된다.

 

어원은 이탈리아어 "황금사과"라는 뜻인데

그리스 신화 중 "헤스페레스 동산"에서 자란다는

그 "황금사과"를 말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서양에서는

식사의 주 요리로 쓰이기 때문에 채소로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일상적으로 과일에 가깝게 인식된다.

 

효능

 

항암 효과가 뛰어나다. 혈압을 낮춰준다. 

 

골다공증을 예방한다.

치매를 예방한다.

 

당뇨병에 좋다. 소화를 돕는다.

신진대사를 활성화 시키고 변비를 막는다.

 

비만을 예방 한다. 불면증에 효과가 있다.

피부와 모발은 윤기 있게 한다.

 

 

 

 

 

 

 

 

 

 

 

 

 

 

 

 

 

 

반가운 고추잠자리

 

 


입추(立秋). 연일 계속되는 폭염 속에 6일 오전

경북 칠곡군 기산면 김종기 씨 벼논의 조생종 운광벼에는

벌써 알이 들어차 있다. 벼이삭에 내려앉은 고추잠자리가

성큼 다가선 가을을 알린다

 

 

18세 여성 코를 ‘싹둑’ …누가 이런 짓을 왜?

 

 

“가장 충격적인 표지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의 표지에 코가 잘려나간 끔찍한 흉터를 드러낸 소녀의 모습이 담겨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번 주에 발간된 타임의 최신호 표지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폭력과 폭행의 충격을 고스란히 담은 18세 여성 아이샤(Aisha)가 등장했다.
 

아이샤는 탈레반의 소굴에서 도망치려다 붙잡혔고, 이에 탈레반 책임자는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다. 결국 아이샤는 남편의 손에 코와 귀가 잘리는 변을 당했다. 누구도 탈레반의 명령을 피할 수 없어 생긴 일이었다.
 

그녀는 현재 가까스로 다시 도망쳐 아프가니스탄의 수도인 카불의 비밀 은신처에 머물고 있다.
 

아이샤는 타임과 한 인터뷰에서 “그들(탈레반)이 나에게 이런 짓을 했다. 내가 어떻게 그들을 받아들일 수 있겠나”라고 반문하면서 “미국으로 건너가 인권단체의 도움 아래 수술을 받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극적인 사진을 선택한 타임의 편집장 리처드 스텐절(Richard Stengel )은 “나는 많은 사람들이 탈레반이 여성에게 가하는 행위를 무시하기 보다는 직면하길 바라는 의미에서 아이샤의 사진을 표지로 택했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과 그의 동맹국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코가 잘려나간 아이사의 사진 옆에는 “우리가 아프가니스탄을 떠나면 어떻게 됩니까”(What Happens if We Leave Afghanistan)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실로 입 꿰매고…’ 섬뜩한 단식 투쟁

 

 

6일(현지 시간) 그리스 아테네에 위치한 국제연합난민판무관사무소

(이하 UNHCR) 앞에서 한 이란 남성이 입을 꼬맨 채 바닥에 누워

단식 투쟁을 하고 있다. UNHCR에 따르면 이란 남성 2명은 망명 신청이

거절 당하자 10일 전부터 단식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 대통령과 김태호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

 

만든 곳→ 한국 네티즌본부카페: 변조방지표시

이명박 대통령은 8일 오후 신임 국무총리에

김태호 전 경남지사(48) 내정하는 등

장관급 9명을 교체하는 개각을 단행했다.

사진은 2008년 10월 28일 경남도청 업무보고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대통령과 김 신임 총리 후보자.

 

예배 마치고 나오는 이재오 신임 특임장관 후보자

 

한국 네티즌본부카페 작성: ← 변조방지표시

이재오 신임특임장관 후보자가 8일 낮 서울 은평구

세광교회에서 예배를 마친 뒤 나오며 교인들과 악수하고 있다.

 

사우나 오래 버티기 대회 1명 사망·1명 중태

 


7일(현지 시간) 핀란드에서 열린 사우나 오래 버티기 대회 결선에 참가한 여성.

이번 대회에서는 남성 참가자 1명이 숨지고 1명은 중태에 빠졌다.

 

한국 네티즌본부카페 작성: ← 변조방지표시

7일(현지 시간) 핀란드에서 열린 사우나 오래 버티기 대회 결선에 참가한

블라디미르 라디젠스키가 온몸에 화상을 입고 응급처치를 받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는 남성 참가자 1명이 숨지고 1명은 중태에 빠졌다.

 

트럭 올라탄 스쿨버스… 美연쇄 추돌사고 40여 명 사상

한국 네티즌본부카페 작성: ← 변조방지표시

★*… 5일 오전 미국 미주리 주 그레이서밋 인근 고속도로에서

놀이동산에 놀러가는 존 F 호지 고등학교 관악대를 태운 스쿨버스가

대형차 견인트럭과 충돌한 뒤 이 트럭에 올라탄 형태로 멈춰 섰다.

이날 사고는 픽업트럭이 견인트럭을 추돌하고 멈추자 뒤따르던

스쿨버스가 이를 피하지 못하고 두 트럭을 들이받고 뒤따르던

같은 학교 스쿨버스가 앞 스쿨버스를 추돌하며 일어났다.

이 사고로 앞 스쿨버스에 탄 여고생 한 명과

픽업트럭 운전사가 숨졌고 40여 명이 다쳤다.

 

 

 

 

 

 

 

 

 

 

 

 

 

 

 

 

 

 

 

영국 스코틀랜드의 중심도시인 에든버러 시내 뉴윙턴 묘지.

 묘지 한쪽에 자리 잡은 소박한 비석 앞에서 한국인 30여명이 헌화하고 예배를 올렸다. 묘비명은 '만주와 중국에서 40여 년간 사역한 선교사 존 로스(John Rossㆍ1842-1915)'.

   존 로스는 묘비명대로 만주와 중국에서 활동한 스코틀랜드 장로교 선교사다. 스코틀랜드가 배출한 숱한 선교사 중 한 명이지만 한국 개신교 역사에서 그는 매우 특별한 인물이다.
 

로스 선교사는 만주와 중국에서 활동하면서 중국어를 배웠고 그곳에서 한국인을 만나 다시 한국어를 수학했다.
 

1882년 로스 선교사가 한글로 펴낸 누가복음 번역서인 '예수셩교 누가복음'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성경이다. 그는 1887년에는 신약을 한글로 완역한 '예수셩교젼셔'를 발간한다. 그가 누가복음 번역서를 내면서부터 'God'를 '하나님'이라고 번역한 것이 오늘에 이른다.
  

에든버러 뉴윙턴 묘지의 존 로스 묘지

 

존 로스 선교사의 묘비를 찾은 한국인들은 한경직 목사가 개척한 한국의 대형 장로교회인 영락교회 교인들이었다.
 

교인들은 뉴윙턴 묘지를 참배하고 나서 역시 에든버러 시내에 있는 메이필드 살리스버리 교회로 이동했다. 이 교회는 서른살 때부터 40여년간 중국과 만주에서 선교한 로스 선교사가 귀국해 은퇴한 후 장로로 지내던 교회다.
 

영락교회 교인들은 지난 2-6일 에든버러에서 열린 2010세계선교대회에 참석한데 이어 스코틀랜드의 하이랜드 일대에 흩어진 로스 선교사의 발자취를 밟는 '존 로스 루트' 성지순례를 지난 9일까지 진행했다.

 

영락교회가 만들고 있는 존 로스 루트는 가톨릭(구교)과의 치열한 투쟁 끝에 장로교의 본고장이 된 스코틀랜드의 성지들을 둘러보고, 한국 개신교 역사에 큰 자취를 남긴 존 로스의 생애를 '무덤(에든버러)에서 요람(니그)까지'의 순서로 찾는 코스다.

 

사실 한국에 개신교를 도입한 초창기 선교사들은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1884년 한국을 찾아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를 세운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호레이스 그랜트 언더우드(1859-1916), 미국 감리교 선교사이자 교육가로 1885년 배재학당을 세운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1858-1902), 1886년 이화여대 전신인 이화학당을 세운 미국 감리회 여성선교사 메리 스크랜턴(1832-1909) 등이 그들이다.
 

이들과 달리 스코틀랜드 선교사 존 로스는 한국 땅을 밟지는 않았다.
 

하지만 로스가 최초로 한글 성경을 보급하면서 우리나라에도 개신교 신자가 처음으로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가 전파한 장로교가 현재 우리나라 개신교계에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그를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영락교회의 생각이다.
 

영락교회 교인들의 발걸음은 7일에는 에든버러에서 대형버스로 10시간 이상 하이랜드(Highland)를 달려야 도착하는 스코틀랜드 북서쪽 스카이(Skye)섬으로 이어졌다.
 

 하이랜드는 장엄한 골짜기와 호수가 끝도 없이 펼쳐지고 한여름에도 차가운 비바람이 몰아쳐 거칠고 황량하면서도 아름다운 스코틀랜드 북부 지역이다.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의 대표적인 유적인 엘란도난성


스카이섬의 항구마을 포트리(Portree)의 아담한 교회를 찾은 교인들은 스물여덟살에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이곳에서 첫 목회를 하던 청년 목사 로스의 발걸음을 되짚었다.
 

영락교회는 한글 성경을 우리나라에 전해준 로스 목사의 행적을 기리는 동판을 만들어 포트리 교회 벽면에 부착하는 기념행사를 가졌다.
 

포트리 교회 산도르 담임목사는 "우리 교회에 한국인이 방문한 것은 처음"이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아름다운 스카이섬을 떠나 만주로 갔던 존 로스 목사가 있었기에 우리가 만나게 됐다"라고 반겼다.
 


 

포트리에서 다시 북동쪽으로 3-4시간 이동하면 스코틀랜드북단의 도시인 인버네스 인근 마을 니그(nigg)를 만나게 된다. 이곳이 바로 로스 목사의 고향이다. '이집트 하우스'라고 이름 붙은 노란벽의 집이 바로 로스 목사가 20여년을 살았던 고향집이다.

 지금은 개인 소유가 된 곳이지만 영락교회 교인들은 이집트 하우스의 마당에 로스목사를 기리는 작은 돌판을 설치했다.
 

로스 목사는 고향 니그를 떠나 글래스고 예술대와 에든버러대 신학대학원을 거쳐 28살에 목사안수를 받은 후 포트리 교회에서 2년간 목회한 후 결혼했고, 결혼 다음날 중국 선교를 위해 떠났다.
 

여행경비를 아끼려고 그는 캐나다행 배를 탔고, 캐나다 밴쿠버에서 일본, 상하이를 거치는 긴 여행끝에 만주지역으로 들어갔다.
 

영락교회 이철신 담임 목사는 "늦었지만 이제라도 로스 목사의 행적을 기리게 돼 다행스럽다"며 "한국 교회 중 어느 곳에서는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철신 목사는 "로스 목사가 보급한 한글 성경 덕분에 스스로 성경을 읽고 신자가 된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그래서 선교사들이 들어왔을 때 이미 기독교를 알고 세례 받기를 청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며 "로스 성경은 지금으로서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심한 평안도 사투리를 사용했지만, 단어나 개념은 놀랄 만큼 치밀하게 선택해 로스 목사의 한국사회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노력을 알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에든버러에서 유학한 후 로스 목사의 발자취를 더듬는 '존 로스 루트' 개발을 총괄하고 있는 영락교회 하충엽 목사는 "오늘날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쓰는 우리 기독교인들은 모두 존 로스 목사의 큰 은혜를 입었다"고 말했다.

 

하 목사는 "로스 목사는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기까지 힘겨운 십자가의 고통을 겪었다"며 "중국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내를 잃었고, 그 후 재혼한 아내와 아이들 4명도 차례로 중국 땅에 묻었지만 그는 슬픔을 선교의 열정으로 승화했다"고 소개했다.   (에든버러/연합뉴스 조채희 기자)


 

 

스코틀랜드 니그의 존 로스목사 생가를

영락교회 교인들이 찾았다


 

 

 

 

 

 

 

 

 

 

 

 

 

 

 
 

 

 

 

 

 

파레토 법칙(Pareto principle)을 <20:80 법칙>이라고 말한다.

상위 20%가 나머지 80%를 주도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백화점에서 20% 고객이 구입하는 매출액이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한다. 즐겨 입는 옷의 80%는 옷장에 걸린 옷의 20%에 불과하다. 20%의 불량 운전자가 전체 교통 위반의 80% 정도를 차지한다. 두뇌의 20%가 문제의 80%를 해결한다. 이런 학설이다.

 

이탈리아 사회학자 파레토(Vilfredo Pareto. 1848-1923)는 우연히 일 개미들을 관찰하다가 열심히 일하는 놈은 약 20%뿐이고 나머지 80%는 그럭저럭 시간만 때우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여기서 일 잘하는 20%만 따로 갈라 놓아 보았는데 이들은 처음에는 모두 열심히 일하는 것 같더니 곧 그 중 80%는 놀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것은 일을 안 하던 80% 집단도 시간이 지나니 곧 20:80의 비율로 일하는 무리가 생기고 80%의 나태한 군으로 나눠졌다는 것이다.

 

파레토(Pareto)는 당시 이탈리아 토지의 80%를 이탈리아 인구의 20%가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이 80%와 20% 사이의 상관 관계를 다른 여러 분야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일정 토지에서 생산된 콩의 80%는 전체 콩 깍지의 20%에서 만들어졌다는 것 등 인데 세상을 지배하는 대부분의 이치라는 것이다.

이것이 유명한 파레토(Pareto)의 <20:80>의 법칙이다.

 

회사의 조직이나 동호회 활동도 비슷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대략 20%가 일을 하고 80%는 그냥 동참하거나 동참하지 않거나 제 맘대로 한다. 만약 80% 모두가 적극적으로 다 나선다면 배가 산으로 올라가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결국 이들 중에서 완력으로 하든 추대를 하든 대표군 20%를 뽑게 된다.

 

파레토(Pareto)의 법칙은 어느 조직을 끌고 가는 리더(Leader)는 80%를 혼자 지고 갈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도 된다. 그만큼 리더(Leader)의 역할은 중요하다. 혼자 그 능력이 안 되면 20%라는 협력 군단의 도움을 받아 끌고 나가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늘 추진력이 약해져 아슬아슬하고 결국은 흐지부지 하게 되는 것이다.

 

이 법칙을 교회목회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 역시 20%의 주도하는 성도들이 이끌어 간다. 목회 포인트도 이 20% 교인들을 잘 활용하는 데 둔다면 교회가 활성화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20% 성도들의 기를 꺾어 놓고 80% 성도들에게 목회 포인트를 둔다면 교회 분위기는 조용하지만 침체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교회를 활성화 시키려면 이 20% 성도들부터 활성화 시켜야 한다. 

 

한편 인터넷 시대에 사는 우리가 온라인 사업에 80:20 법칙이 얼마나 작용하고 있는지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회사 80%의 수익이 20%의 영업 인력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는가?

80%의 매출 수익이 전체 제품의 20%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는가?

80%의 배송 지연이 20%의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가?

80%의 고객 불만이 20%의 제품/서비스 때문에 발생하는가?

80%의 웹 사이트 방문객이 20%의 웹 사이트 페이지만 둘러보고 있는가?
 

사업에서의 80:20 법칙은 우리가 불필요한, 비생산적인 부분에 많은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 때문에, 꼭 필요치 않은 장비 때문에, 실적 올릴 가능성 없는 영업 때문에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고 시간이 투자된다는 것이다.

 

적은 비율의 무언가가 대다수의 결과를 생산해 내는 것. 이는 모든 사업체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이다. 반드시 이것이 80%와 20%의 비율로 나타나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자기경영이나 사업경영이나 할 것 없이 불필요한 많은 부분 때문에 꼭 필요한 작은 부분을 등한시하여 얼마나 비생산적인 결과를 낳고 있는지 살필 일이다. (장재언)

 

 

 

 

 

 

 

 

 

 

 

 

 

 

 

 

 

 

젊음은 몸 안의 수분 양에 의해 결정
 

사람이 하루에 배출하는 수분은 소변과 대변으로 약 1.4ℓ, 호흡·피부로 배출하는 수분이 약 1ℓ로 총 2.4ℓ에 달한다. 호흡에 의해 나가는 수분이 하루 약 0.5ℓ, 피부에서 땀과 별도로 증발하는 수분이 약 0.5ℓ나 된다. 1ℓ나 되는 수분이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 빠져나가는 셈이다.
 

하지만 우리가 하루에 섭취하는 물은 1ℓ도 채 못 된다. 실제로 국민영양조사 결과에서도 하루 물 섭취량이 남성은 945㎖, 여성은 766㎖에 그쳤다. 일부는 식사에서 보충하지만 우리 몸이 요구하는 충분한 양에는 못 미친다. 몸에 수분이 부족한지 아닌지는 소변 색을 관찰하면 알 수 있다.
 

소변에는 우로크롬이라는 황색 색소가 들어 있다. 하루에 우리 몸에서 분비되는 우로크롬 양은 75㎎ 정도로 정해져 있으므로 소변 색진할수록 체내 수분이 부족하다는 증거다. 콩팥은 우리 몸에 수분이 부족하면 체내의 물을 소변으로 내보내지 않고 재활용하려고 노력한다. 소변량이 급격히 줄면서 색깔도 진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소변 색은 투명할수록 좋다는 의미.
 

물은 목이 마르지 않더라도 화분에 물을 주듯 꾸준히 정기적으로 마셔야 한다. 하루에 마시는 물의 양은 ‘하루 배출되는 양만큼’이 적정하다. 소변과 땀 등으로 나가는 수분에서 음식으로 보충하는 수분을 뺀 1~2ℓ가 하루 섭취 적정량이다. 여기에서 신장의 소변 배출 능력이 하루에 20ℓ이상이나 되니 이를 고려해 조금 더 물을 마셔도 좋다.

 

180㎖짜리 컵으로는 하루에 10잔을 마시는 것이 기준이다. 물을 마시는 방법은 시간을 정해 놓고 정기적으로 급수하거나 수시로 마시는 방법이 있다. 정기급수는 아침에 일어나서 2잔, 오전 10시쯤 2잔, 오후 2시쯤 2잔, 저녁 무렵 2잔, 샤워 전에 1잔, 잠자기 전에 1잔(하루 6회 합계 10잔)식으로 하는 것이다.
 

반면 수시 물병을 휴대하고 다니며 틈틈이 마시는 것이다. 보통 물은 한꺼번에 마시는 것보다 조금씩 나눠 마시는 것이 효율적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고혈압·당뇨병·심장병 등 성인병이 있는 사람은 물을 가지고 다니면서 조금씩 마시는 것이 좋다. 가장 좋은 물은 돈을 주고 사는 음료수보다 맹물이다.

 

 

 

 

 

 

 

 

 

 

 

 

 

 

 

 

 

 

 

 

 

 

 

 

뇌 노화를 막기 위해선 손을 많이 움직여야 한다. 손과 뇌는 연관성이 깊다. 대뇌에서 운동과 감각을 담당하는 중추신경 가운데 30%가 손과 관련돼 있다. 그래서 손을 ‘제2의 뇌’라고 하는 것이다. 아동 전문가들이 블록 쌓기, 진흙으로 동물 만들기 등 손으로 하는 놀이를 많이 하는 이유다.
 

뇌가 다 자란 성인도 마찬가지다. 뇌가 퇴화하는 중년기 이후엔 더 그렇다. 젓가락질, 피아노 치기 등 손을 많이 움직이는 것은 치매를 예방하고 뇌 기능을 개선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손을 많이 움직이면 신경세포 사이를 연결하는 시냅스가 새로 생긴다. 그에 따라 기존 시냅스가 두꺼워져 뇌 기능이 향상된다.
 

뇌세포 사이의 소통이 원활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을 움직일 때 매번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것은 금물이다. 별생각 없이 움직여서도 안 된다. 악기를 배울 때처럼 생각을 많이 하면서 손을 움직여야 한다. 지적 활동을 많이 하는 것도 좋다. 각종 연구 결과를 보면 지적 활동이 적으면 기억력이 떨어진다.
 

뇌 양전자단층촬영(PET-CT) 결과 고학력자일수록 뇌 기능이 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독서, 낱말 맞추기, 외국어 배우기, 바둑이나 카드 게임, 문제를 해결하는 컴퓨터 게임은 뇌 노화를 막아준다. 특히 바둑이 좋다. 운동량이 많지 않은 프로 바둑기사의 수명이 긴 것은 숱한 머리싸움 덕분에 뇌가 젊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신 운동을 ‘두뇌 조깅’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자세와 삶에 대한 열정이 뇌의 노화를 막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얘기다. ‘쓰지 않는 것은 퇴화한다’는 용불용설(用不用說) 원칙이 뇌에도 어김없이 적용되는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쓰지 않던 신체 부분을 사용하는 것도 좋다.
 

일반적으로 오른손잡이는 좌뇌, 왼손잡이는 우뇌가 좋다. 평소 잘 쓰지 않는 몸을 움직이면 덜 발달한 뇌에 자극이 돼 뇌 기능이 좋아진다. 뒤로 걷기, 옆으로 걷기 등 평소 하지 않던 운동이 뇌에 좋은 이유다. 매일 같은 길로 출·퇴근하는 것같이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일상을 새로운 방식으로 바꾸는 것도 뇌에 자극을 줄 수 있다.
 

화가나 음악가는 치매에 잘 걸리지 않는다. 뇌는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과정에서 발달하기 때문에 오감을 자주 사용하면 뇌가 좋아진다. 이런 점이 예술가를 치매에서 보호해 주는 것이다.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청각), 좋은 그림이나 경치를 감상하고(시각), 부드럽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미각), 좋은 냄새나 향기를 맡고(후각),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만지는 것(촉각)만으로도 뇌 노화가 방지된다.
 

노화방지법 중에서 필자가 추천하는 것은 악기 배우기와 글쓰기다. 악보를 읽고, 외우고, 손으로 악기를 연주하고, 그 음악을 들으면 뇌 기능이 활발해질 것이다. 책을 읽는 것보다 글을 쓰는 게 뇌를 더 자극한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권용욱 AG클리닉 원장 )

 

 

 

 

 

 

 

 

 

 

 

아래 그림을 아무데나 클릭하세요.

그리고 궁금한 질병에 관하여 해답을 얻으세요

 

 

 

 

 

 

 

 

 

 

 

 

 

 

 

 

 

 

 

아침반 9:30

오후반 2:30

저녁반 7:30

월요일

중급반 6월7일

 

급반 7월12일

화요일

중급반 8월3일

  

중고급반 7월6일

수요일

파워포인트 7월14일

무비 8월04일

목요일

급반 7월8일  

 방학

중급반 8월12일 

금요일

급반 7월9일

 

중급반 7월9일

토요일

급반 8월7일

 

 

 

 

8월 학생모집을 안내합니다.

 

초급반 토요일(7일) 아침 9:30

 

중급반 화요일(03일) 아침 9:30

중급반 목요일(12일) 저녁 7:30

 

무비반 수요일(04일) 저녁 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