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ugust
16, 2010


Come sing with me
for peace and love
my only dream
and wish for the world
Join with me now
and march with me
Love is the word
let's try once again
stop all fights now
and march ... ...
Let's try once again
to help all mankind
to win those lost hearts
and start this new life
No evil, no guns,
just freedom and peace
No evil, just freedom,
no guns, no evil,
just freedom
and march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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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모여 노래하자.
평화와 사랑을 위하여
이 세상을 위한
내 꿈과 소망이
나와 함께 하나니
나와 같이 전진하자.
사랑이란 무언가?
다시 한번 시도하라
모든 싸움 멈추고
행진하라.....
이제 또 다시 시작 해 보자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고
잃어버린 사랑을 찾자
그래서 새 삶을 시작 하자구나
사악함도 없고 무기도 없는
다만 자유와 평화만 존재하라
사악함이 없고 다만 자유 만 있는
무기도 없고 악마도 없는
오직 자유 만있는
그래. 전진하자.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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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serrat Caballe(몽세라
카바예) 1933~
스페인의 소프라노 가수.
나는 비전통신 독자 중에 수준 높은
음악을 즐기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오늘은 독자들과 아름다운 음악을 한 곡 들으면서 그 노래를 부른 가수 몽세라
까바예를 소개하기로 한다.
몽세라
까바예는 지금 77세다. 70세까지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던 분이다. 지금도 그녀는 유엔홍보대사로 활약하면서 자선 활동을 벌이고
있다.
나는 음악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
글을 쓰기 위해 여러 가지 오페라 이야기를 읽고 참고하였다.
몽세라 카바예는 마리아
칼라스가 인정한 진정한 그녀의 계승자이며 그 누구도 따라 올 수 없는
벨칸토 예술의
정수를 보여준 가수라 말 할 수 있다.
어지간한 유명한 작품들은 거의 한
두 번씩 녹음을 했기 때문에 음반에서 그녀의 매력적인 목소리를 확인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주빈 메타의 지휘로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함께 호흡을 맞췄던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의 ‘류’ 역할은 지금까지 녹음된 어떤 소프라노도 넘을 수 없는
완벽한 목소리와 연기라는 평을 받고 있다.
몽세라 카바예는 로시니, 벨리니,
도니제티 등 위대한 벨칸토 작곡가의 작품을 가장 정확하게 해석하는 소프라노로 유명하다.
몽세라 카바예는 스페인의 보물이며
세계의 문화유산이다.
카바예는 ‘마리아 데
몽세라 비비아나 콘셉시온 카바예’라는 긴 이름을 가지고
1933년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났다.
그는 리체우(Liceu)음악원에서
공부를 마친 후 1957년 바젤 오페라에서 자코모 푸치니(Giacomo Puccini)의 "라보엠"(La Bohè
me)에서 미미 역으로 오페라 무대에 데뷔했다.
1960-61년도 시즌에는 독일의
브레멘 오페라에 전속되어 벨칸토 역할에서 훌륭한 기량을 선보였다.

카바예는 상당한 체구를 자랑한다.
그만한 체구이기에 비올레타와 같은 역할을 아무런 부담 없이 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오페라에서는 음성이 안정되어야 무리
없는 연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바르셀로나로 돌아온
카바예는 1964년 31세에 테너 베르나베 마르티(Bernabé Marti)와 결혼하였다.
그녀가 세계적인 가수로 인정받게 된
사건이 더욱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알려드리고 싶다.
카바예의 이름을
국제적으로 알리게 된 것은 1965년
뉴욕 카네기 홀에서
가에타노 도니체티(Gaetano Donizetti)의<루크레지나 보르지아에 출연키로 되어 있었던 마릴린 혼(Marilyn
Horne)이 사정상 못나오게 되자 대신 출연했던 연주회였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한번의 기회가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를 깨닫게 해주는 사건이었다. 뿐 아니라 그 기회를 위해 준비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그날 카바예의 연주는 유례가 없는
20분에 걸친 기립박수를 받았다. 미국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카바예는 하루 밤 사이에 국제적인 수퍼스타가 되었으며
곧이어 메트로의 초청을 받아 파우스트의 마르게리트로 화려한 데뷔를 하였다.
1972년 라 스칼라 데뷔는
노르마였으며, 코벤트 가든 데뷔는 비올레타였다.
1970년대 중반부터 세계 정상급
소프라노로 자리를 굳혔고, 이후 볼프강 모차르트(Wolfgang Mozart)에서부터 조아키노 로시니(Gioacchino
Rossini), 빈센초 벨리니(Vincenzo Bellini), 가에타노 도니체,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 자코모 푸치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에 이르기까지 레퍼토리를 끊임없이 넓혔다.

특히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에서는 티없이 맑은 톤과 섬세한 호소력으로 마르그리트를 열창하여 많은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카바예는 리릭 소프라노(목소리가
서정적인 노래를 부르기에 적합한 소프라노)였으나
콜로라투라와 스핀토, 수브레트, 심지어는 메조소프라노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역할이라도 완벽하게 해 낼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다.
바로크에서부터 베르디, 바그너,
푸치니에 이르기까지 1백 개가 넘는 오페라의 주역을 아무런 어려움 없이 맡을 수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심지어 카바예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마샬린과 엘렉트라까지 맡아 하였다.
카바예는 훌륭한 가곡 연주자이기도
하다. 특히 스페인 가곡에서는 최고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카바예의 음성은 순수하며 정확하고
강력하다.
그의 탁월한 발성 테크닉과 폭넓은
음색에 대하여 감탄할 뿐이다.
카바예는 잠시 클래식에서 벗어나와
팝송(크로스 오버)에도
관심을 가진 일이 있다. 유명한 팝싱거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가 함께 부른 ‘바르셀로나’는
1992년 하계올림픽의
공식찬가가 되었다.

이제 무대에서 은퇴한 카바예는 각종
자선활동에 헌신하고 있다.
카바예는 UN 친선대사이며
바르셀로나에 불우아동을 위한 자선재단을 설립하였다.
카바예의 딸인
몽세라 마르티 역시
소프라노이다. 어머니와 딸은 간혹 함께 연주하여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으며, 2006년 2월 잘츠부르크와 그라츠
등지에서 모녀 합동 연주회를 가져 많은 감명을 주었다.
몽세라 카바예의 몸무게가 얼마나
되는지는 비밀이다. 여러 사람들이 조사해보겠다고 용감하게 도전했지만 모두 밝혀내지 못하였다.
아무튼 그런 체구에서 그런 아름답고
여린 콜로라투라 음성이 나온다는 것은 신비에 가깝다. 고음에서의 피아니시모는 전율을 느끼게 해줄 정도이다.
카바예는 특히 벨리니의 노르마와
해적, 도니제티의 로베르토 드브로, 루크레지아 보르지아, 마리아 디 로한, 안나 볼레나에서 벨칸토의 심오한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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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길 나서는 날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을 살려 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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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咸錫憲 1901-1989)
평북 용천. 정주 오산학교 졸업.
이때 민족주의자인 안창호·조만식·이승훈 등의 영향 받음.
1928년 도쿄 고등사범학교 문과 졸업
1928년 귀국 후 오산학교 교사로 근무, 1942~43년 고향에서〈성서조선〉필화사건으로 복역.
1958년 발표한〈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라는 글로 필화사건 5·16이후 한일회담에 반대 등 사회운동 참여 1961년〈사상계〉에〈5·16을 어떻게
볼까〉라는 글로 필화를 입음.
1970년 월간지〈씨알의 소리〉를 창간 1980년 폐간
때까지 많은 글과 강연을 통해 민중계몽운동을
폄.
1984년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고문. 1985년 노벨평화상 후보지명·추천.
제1회 인촌상 수상.
주요 저서 :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 뜻으로 본 한국역사, 역사와 민족(1964), 한국 기독교는 무엇을 하려는가?(1984)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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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이
망
중립성(Network
Neutrality)
대상에서 무선인터넷을 제외하는 합의서를
내놓았다는 소식에 시민들이 분노했다.
구글 본사 앞
공원에 모인 항의집회 참가자들은 유명한
미국민요 클레멘타인의 가사를 바꿔 '구글이
망중립성을 논의한 것'을 '여우에게 닭장을
맡긴 것'에 비유한 패러디 노래를 불렀다.
씨넷은 13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
마운틴뷰 구글 본사 앞에서 구글의 망중립성에
대한 태도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집회모습과 30만 통의 반대 청원서명서를
구글에 전달하는 모습을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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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의그룹은
구글의 건물로
들어가 청원서를
직접 전달했다.
뒤에 보이는
플래카드는 제임스
러커의
‘인터넷을
구하자’는
구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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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시민들의
분노는 지난 주 구글이 버라이즌과 인터넷
망중립성과 관련해 무선인터넷을 제외시킨다는
합의를 도출했기 때문이다. 이에 구글의
망중립성 태도 변화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집회를 가지게 됐다.
이날 구글
관계자가 집회 자들 앞에 나와서 “구글은
열립 웹을 지지한다”며 “구글(이 버라이즌과
합의한 망중립성에서 무선인터넷을 제외한다고
합의한)제안은 현재 토론이 진행되고 있으며
현재로선 초기 제안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이 합의가
인터넷서비스사업자들에게 콘텐츠접속 제한과
함께 선별적으로 콘텐츠를 전송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3명이 전세계에서 온 30만 명으로부터의
청원서 서명을 받았다. 이들 가운데 3명이
청원서를 담은 상자를 구글 본사로 들어가
직접 전했다.
특히 할머니들까지
가세한 이날 데모에서 집회참가자들은 클레멘타인을
개사한 노래로 구글을 닭장을 지키는 여우에
비유하기도 했다.
여우에게 닭장
맡기면 지켜질 수 있을까?
농부들은 알고
있지 자물쇠가 필요하다는 걸
구글
말하길 '믿어달라' 하지만 그건 외양간
FCC가
잘하면야 누구든지 접속하겠지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FCC
여우로부터
컴퓨터를 보호해 다오
동등한 접속권이
열쇠란다.
Can the chickens in the
henhouse all be guarded
by the fox?
Every farmer knows it
won't do and the
henhouse needs a lock
So when Google says
"just trust us" we all
know it's just a stall
The FCC must do its duty
and protect access for
all
Oh my
darling, oh my darling,
oh my darling FCC
Keep computers safe from
foxes,
Equal access is the key.
 |
집회참가자들은
구글의 모토인
“사악해지지
말라”를 들고
나와 구글이
버라이즌과
합의한
망중립성이
인터넷개방성을
저해할 것이란
점을 강조하려고
노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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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의
망중립성 태도
변화에 화가난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할머니도
나섰다. 이
할머니는 팻말을
들고 마운틴
뷰까지 와서
클레멘타인 노래
집회에
참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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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구글본사
앞에서 구글의
망중립성 변화에
항의하기 위해
모인 네티즌.
이날 집회에는
시민단체
무브온과
프리프레스 등이
참여해 노래를
부르며
평화집회를
벌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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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집회참가자들은
구글의 모토인
“사악해지지
말라”를 들고
나와 구글이
버라이즌과
합의한
망중립성이
인터넷개방성을
저해할 것이란
점을 강조하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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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의
스트리튜뷰카가
13일
구글캠퍼스
근처에서
항의집회를 여는
사람들 근처를
돌아다니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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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은
구글이
버라이즌과
합의해 내놓은 망중립성
제안서에서
무선인터넷을
제외시킨다는
데서부터
나왔다. 13일
구글 본사
앞에서
항의시위중인
네티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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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콘텐츠 똑같이 취급
'비차별' 원칙
망중립성(네트워크 중립성)논쟁이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망중립성 이슈는 모든 통신망이 인터넷망으로 통합되는 컨버전스
시대의 인터넷 지형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성을 갖고 있다.
망 중립성이란
무엇인가
인터넷 세상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망 중립성(Network
Neutrality) 이슈가 세계 최고의 정보통신강국으로 꼽히는 한국에서도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에선 관련된 법안이 7~8개나 쏟아질 정도로 망중립성 논쟁이 정보통신기술업계를 넘어
정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으며, 이는 국제사회로 확산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망중립성 논쟁은 단순히 인터넷 콘텐츠와 트래픽을 둘러싼 네트워크사업자와 콘텐츠 사업자 간
경제적 헤게모니 싸움을 넘어 향후 또 하나의 세상인 인터넷의 지형을 결정지을 `최대 변수'라는 점에서 국내에서도
이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망중립성은 간단하게....
`모든 네트워크 사업자는 모든 콘텐츠를
동등하게 취급하고 어떠한 차별도 하지 않아야 한다'....
....는 개념이다.
망중립성이라는 용어는 1990년대초 미국에서 처음 언급됐으며, 유럽연합(EU)가
정보사회보고서에서 `망규제는 상호접속 및 상호운용성을 요구한다'는 내용으로 망중립성이란 용어를 사용하며 확산되기
시작했다.
망중립성은 망운영의 근본적인 원칙으로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비차별ㆍ상호접속ㆍ접근성 등
3가지 원칙이 모든 통신망에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비차별성은 모든 트래픽은 물론 네트워크 사업자의 트래픽을 포함해 네트워크상에서
동일하게 취급 받아야 한다는 이른바 `비트 동등성' 원칙이다.
즉, 모든 비트를 공정하게 취급해야 하며, 특정 트래픽을 처리하기 위해 우선순위를
부여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또 상호접속은 네트워크 사업자가 다른 어떤 네트워크사업자와도 상호접속을 허용하고 요구하는
의무와 권리를 가진다는 원칙이다. 심지어 경쟁업체의 망이라도 합리적인 요금으로 상호접속을 허용 해야 하는 것이다.
접근성은 사람을 비롯해 모뎀, 라우터 교환기 등 모든 최종이용자가 다른 어떤
최종이용자와도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인터넷은 도입 초기부터 개방형 네트워크 구조와 통신망간 동등접속 협정에 따른 무정산을
기반으로 발전해왔다.
즉, 이 같은 개방과 비차별의 원칙은 인터넷이 오늘날처럼 발전할 수 있는 근본적인 동력이
되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망중립성 개념을 자연스럽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왔다.
하지만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타사업자와의 상호접속 없이도 인터넷 연결성을 확보하는
인터넷사업자가 등장하면서 기존의 인터넷접속체계와 정산구조에 문제점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인터넷망에서 소통되는 트래픽 또는 사업자를 항상 동일하게 처리하는 것이 과연 인터넷의
발전에 바람직한가"라는 문제제기이며, 그 중심에 바로 망중립성 개념이 위치하고 있다.
미국의 네트워크 사업자들이 망중립성이 인터넷에 대한 투자를 억제, 인터넷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며 이 같은 문제제기를 지속하자, 콘텐츠 사업자들과 시민단체들은 망중립성을 입법화해 인터넷망에서 패킷과
사업자 차별을 금지하려 시도를 하고 있다.
망중립성을 둘러싼 찬반의 논란에 정치권까지 가세하면서 망중립성 논란은 단순한 경제적
이해관계자들간 갈등을 넘어 인터넷이라는 또 하나의 세상을 어떻게 발전시켜나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사회 전반의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아마.....
위에 쓴 글의 내용을 시원하게 이해하신 분이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좀 더 실제적인
면을 이야기해보겠다.
지난 2010년 8월 9일, 구글과
버라이즌(Verizon)의 망중립성 관련 합의문이
발표되었다. 합의문의 핵심내용은...
‘유선 인터넷에서 망중립성(network neutrality)은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
... 이다.
그러나 여기에 두 가지 매우 무서운 유예조항이
있다.
1) 유선 인터넷에서 이후 새롭게 등장할 서비스와
2) 모바일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데이타에 대해서는 지금의 망중립성을 유지하지 않고 차별적으로 다룰 수 있다는
내용이다.
예를 들면 새롭게 등장할 서비스인 구글 TV에게 또는 모바일 인터넷으로 즐기는 유튜브(YouTube) 동영상
서비스에게 ‘우선권’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우선권을 위해 구글은 버라이즌에게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 소비자는 예의 두 서비스를 보다 편하고, 빠르고 그리고
안정적으로 즐길 수 있다.
그렇다면 신생 업체가 동영상이나 음악 서비스를 스트리밍 형식으로 제공하려 한다면?
이들 업체가 ‘우선권’을 구입할 재정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소비자는 종종 끊김 현상이 있고 느리게 제공되는 이들 신생 서비스를 즐겨야 한다.
물론 이러한 차별은 현재형으로 진행되고 있다.
스카이프(Skype)는 와이브로 등 3G망에서는 사용할 수 없으며,
애플의 아이폰4에서 가능한 페이스타임(Face Time) 서비스도 WiFi 무선인터넷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이번 데모는 이런 차별의 문제를 사용자들이 들고 나선 것이라고 보면 된다.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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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블로그 운영자는 자기 블로그에
<우리 집
술상무>라는 제목으로
술 따르는
자기 아들의 사진을 여러 장 올렸다.
위 사진은
그 중의 한 장.

룸살롱, 단란주점 등 서울 지역
유흥업소를 찾아주는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이 등장했다. 특히 해당 앱이
소개하는 곳 중에는 유명한 퇴폐업소도
포함돼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지난 7일 애플 앱스토어에는 ‘술상무’라는
이름의 앱이 등록됐다. 아이오토(IOTO)
코퍼레이션이라는 곳에서 개발한 해당
앱은 증강현실(AR)과 GPS 기능을
활용해 가까운 유흥업소의 위치와
연락처 등의 정보를 제공한다.
또한 지역별 131곳의 유흥업소에
대한 소개와 함께 이벤트 쿠폰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기능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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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흥업소
소개 앱
`술상무`가
지난
8일
애플
앱스토어에
등록돼
파장이
예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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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앱 곳곳에는 ‘아가씨
350명, 에이스 초이스 보장’이나
‘북창동 하드코어를 아시는
분들이라면’ 등 낯 뜨거운 문구들이
흘러나와 보는이로 하여금 호기심을
자극한다.
해당 앱을 접한 성인 이용자들은 일단
유용한(?) 앱이 등장했다는 반응.
그러나 이러한 유흥업소 알선 앱이
사회정서와 다소 거리가 있다는 점에서
향후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술상무’는
17세 이상만 다운로드 받을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러나 애플
앱스토어 정책상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
경고메시지만 등장하기 때문에 사실상
청소년들에게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한 이용자는 “앱스토어에서 이런걸
승인해주다니 대박”이라며 “이러다가
조만간 오피스텔이나 안마시술소 등과
같은 성매매 업소를 소개해주는 앱도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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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수 줄고 평균연령 높아져
예산 줄어 교회당 관리 부실
노스캐럴라이나 프렌드십선교침례교회가 주일 오전예배를 드리던 중, 돌연 200명 교인들이
일제히 비명소리를 내지르면서 실내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마른하늘에 날벼락’격으로 천장이 내려앉아 그 조각이
교인들 머리 위에 떨어져 14명이 쓰러진 것.
온통 뿌연 먼지 속에 천정엔 10평방피트 짜리 구멍이 났고 안에 연결된 전선들도 노출된
채 공중에 대롱거려 흉물스러웠다.
이 사건은 미국의 수많은 교회들이 겪고 있거나 겪을 수 있는 문제들이며, 특히 역사적인
주류계 교회는 그렇다.
전국 교회 교인수가 나날이 줄어들면서 예산도 줄어들고 과거에 아름답던 역사적 교회건물들이
이젠 현대상황 속에서 과거의 것을 지키고 수리해야 하는 무거운 관리비 부담을 안고 점차 방관 상태가 돼가기 때문.
이 부담을 나눠지기 싫은 교인들은 일찌감치 떠나버린다. 그것 때문에 더구나 꼭 해야 할
복음사역들이나 지역사회 아웃리치도 하지 못하게 되기가 일쑤다.
디트로이트의 메트로폴리탄연합감리교회는 1926년 당대 시세 160만 달러에 완공된 고딕식
건물. 당시로서는 감리교 역사상 최고가의 건물이었다. 1949년 즈음엔 교인 수 1만300명으로 세계 최대급
감리교회였다. 현재 교인 수는 불과 375명.
이 도시의 감리교회수는 본래 77개였으나 현재는 16개뿐이다.
커네티컷의 프로스펙트 회중교회(필리스 노먼 목사)는 얼마 전 59년 묵은 교회당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계획이었다.
교회당들은 연방의 장애인 진입설비 의무 규정으로부터 면제되지만 현재 많은 교회들이 고령
교우들을 위한 휠체어 진입로, 엘리베이터 등의 시설물을 추가하고 있다.
그러나 프로스펙트 교회의 수십년 묵은 정화조 시스템이 망가져 졸지에 교인들이 30만
달러의 수리비 부담을 안게 됐다.
감리교 은퇴 감독인 켄 카더 교수(듀크신학대학원)는 수많은 목회자들이 복음사역비 대신
교회당 수리관리비 때문에 한숨을 쉬고 있는 실정이라고 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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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마음처럼 변화가 잦은 것도 없다.
하루에도 수백 번 금방 갰다 흐렸다
화창할 때도 있지만
그러나 대개는 우울할 때가 더 많은 법.
하지만 우울증에 너무 깊이 빠져 있으면 절대 행복할 수 없다.
그럴 때 두레박으로 마음을 끌어 올려보자.
그리고 높은 곳, 전망 좋은 곳으로 올라가
다시 한 번 세상을 바라보자.
아까처럼 그렇게 절망적이 진 않을 것이다.
내가 어떤 곳에 내 마음을 두느냐에 따라
해도 뜨고 달도 뜬다.


매일 한 이불을 덮는 부부 사이는 물론
부모자식, 친구사이, 친척들, 형제, 이웃
직장 동료에 이르기까지 예쁜 사람보다
미운 사람이 더 많은 게 인생살이 현장이 아닐까?
그런데 밉다는 것은 그 사람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을 미워하다 보면 결국 괴로운 것은 자기 자신일 뿐.
그럴 때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보자.
15층 정도의 높이만 올라가도 모두가 다 개미처럼 작아 보이고,
나도 모르게 연민이 생겨날 것이다.
그래, 인생이 뭐라고 아웅다웅 살아야 한담 !
다 그들도 이유가 있겠지, 뭔가 말 못할 사연이 있을 거야 ~
이해 = under + stand, 즉 상대방보다 낮은 곳에서 바라보면
타인을 이해하게 되고 인생이 환해진다.
마음의 사다리를 타고 남보다 더 낮은 곳에 자신을 세워보자.


우리의 현실은 바삭바삭 메마른 사막처럼 팍팍할 때가 더 많다.
그래서 꿈을 꿀 수 있는 상상력의 세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오랜 감금 생활에서 석방된 러시아의
인권운동가 솔제니친의 첫 마디,
" 상상력이 나를 살렸다 ! "
부자유스러운 감옥 속에서 그를 버티게 해주었던 것은
무수한 상상력의 세계였다고 그는 회고한다.
또한 바다 한가운데에서 난파된 한 미국인 가족을
절망에서 구해낸 것도 상상력이었다.
배가 고픈 아들은 배 터지게 먹고도 남을 만큼의 햄버거를,
피로에 지친 아내는 푹신하고 아늑한 침대를,
아빠는 아이스크림 같은 거품이 솟아오르는 맥주를
상상하며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
상상력의 색안경을 써보자.
지금 바로 인생이 오색찬란해질 것이다.


현미경을 들여다보면 각종 세균, 먼지, 바이러스 등
보기 싫은 것, 봐서는 안 될 것들이 잔뜩 보인다.
반대로 망원경으로 들여다보면 저 푸른 수평선,
저 넓은 지평선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낙천적인 사람은 파란색,
눈부신 가슴을 품지만
비관적인 사람은 새까만 어둠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푹 내쉰다.
바로 이 망원경이 미래를 탁 트이게 해주는
희망찬 생각들을 바라보고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우리들의 비전
낙천적인 정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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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예수가 죽었다. 아무도 그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 그가 그토록 무기력한 모습으로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맞았는지 말이다. 그의 제자들은
더했다. 예수가 죽음을 맞는 순간까지도 제자(사도)들은 스승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 ‘예수가
누구인가’를 알지 못했다.
그때만 해도 예수가 뿌린 말씀의 씨앗은 유대교의 울타리 안에 머물러 있었다. 대부분 유대인이었던 제자들은
예수 사후에도 여전히 유대교의 율법과 안식일을 지키며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올렸다. 그러니 당시 예수의
가르침은 ‘변방의 가르침’에 불과했다.
그랬던 기독교가 어떻게 세계로 퍼져 갔을까. 예루살렘의 테두리를
벗어나 어떻게 로마로, 유럽으로 흘러 갔을까. 불과 2000년 만에 그리스도교(개신교+가톨릭)는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로 성장했다.
신자 수만 무려 22억 명에 달한다.
그런 성장의
물꼬를 튼 이가 바로 사도 바울(바오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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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당시 고린도는 부유한 도시였다.
왼쪽에 돌이 깔린 레가이온 길은 도시 중심부에서 항구까지
이어져 있었다. 뒤편 멀리 솟은 산(아크로 고린도) 꼭대기에
아프로디테 여신을 모셨던 신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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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안디옥 지역에 세운
개신교회 창립 10주년을 맞은
광림교회(담임 김정석 목사)의
성지순례 일정에 동행했다.
지난달 26일부터 열흘간 그리스와
터키를 오가며
‘사도 바울의 전도지’를 훑었다.
그리고 거기서 바울을 만났다. 바울의 서신과 목숨을 건 여정, 그 너머에
그리스도가 있었다.
3회 시리즈로 그 발자취를 따라간다.
밧모섬·에베소(그리스·터키)=글·사진 백성호 기자


◆ 목숨을 건 전도여행
지난달 27일 터키의 이스탄불에 도착, 곧장 그리스
아테네로 갔다. 비행 시간은
고작 1시간30분.
사도 바울은 이 길을 지팡이를 짚고서 걸어 갔다.
그가 걸었던 길만 무려 7만㎞에 달한다. 네 차례에 걸친 바울의 전도여행은 목숨을 건 여정이었다.
그런 바울을 묵상하며 아테네 공항에 내렸다.
아테네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파르테논 신전이었다. 도시국가였던 아테네의 높다란 언덕에 세워진 거대한
신전이다. 2000년 전 바울도 이 신전과 마주했다. 바울이 넘어야 했던 거대한 산이기도 했다. 그 산의
이름은 ‘다신교(多神敎)’. 신화와 전설이 뒤얽힌 그리스의 종교였다. 그들 앞에서 바울은 ‘하나의
신(一神)’을 설파해야 했다.
오랜 세월 유대인은 메시아를 기다렸고, 지금도 기다리고, 앞으로도 기다릴 터이다. 그러나 범신론적 세계관을
가진 그리스인에겐 메시아란 관념이 없었다.
아테네 사람들은 ‘부활(아나스타시스)’이란 말을 수용할 수
없었다. 대신 그들은 희로애락이 넘실대는 신화, 인간의 이성과 지혜를 중시했다. 파르테논 신전도 지혜의 신인
아테네 여신을 모셨던 곳이다. 신전 한가운데에는 천장까지 닿는 거대한 아테네 여신의 석상(지금은 소실됨)이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창과 방패를 든 여전사인 아테네 여신이 도시를 지켜준다고 믿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설하는 바울의 이야기는 그저 ‘멀리서 날아온 이국의 종교’로 비칠
따름이었다.
파르테논 신전에 올랐다.
아고라(광장)가 내려다 보였다. 거기서 바울은 에피쿠로스(쾌락주의) 학파나 스토아(금욕주의)
학파와 열띤 논쟁을 벌였다. 파르테논 신전 근처의 언덕에는 바울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설했다는 법정 터가 남아
있었다.
바울은 거기서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는 살지 않는다. 인간의 예술과 상상으로 빚은
금상, 은상, 석상을 신과 같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테네 사람들은 바울을 철저히
외면했다. 결국 바울은 아테네 선교에서 참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2000년이 지난 지금, 기독교는 그리스의 국교가 됐다.
그리스인의 98%가 그리스 정교회를 믿는 기독교인이다. 바울은 그때 알았을까. 자신이 심은 씨앗이 수백 년,
수천 년이 넘어서야 열매가 맺힐 거란 사실을 말이다.
◆고린도에서 묻는 바울의 지혜
버스를 타고 고린도로 향했다.
아테네에서 고린도까진 2시간30분 거리였다.
고린도는 아테네·스파르타와 함께 그리스의 3대 도시국가였다. 바울 당시에는 거대한 무역도시였다. 고린도는
양쪽 겨드랑이에 커다란 항구를 끼고 있었다. 하나는 이오니아해, 또 하나는 에게해와 통했다. 그래서 성경에는
고린도가 사람이 몰리고, 상업이 성하고, 돈이 넘치고, 타락한 도시로 묘사돼 있다. 로마 시대에는 75만
명까지 살았다고 한다.
지금의 고린도는 달랐다.
붉은 개양귀비꽃이 여기저기 들판에 흐드러진, 오렌지 농사를 주로 짓는 소담한
농촌이었다. 고린도 역시 아테네와 비슷했다. 도시 한가운데 우뚝 솟은 산 위에 옛 신전이 있었다. 미(美)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를 모신 곳이었다. 바울 당시, 이 신전에는 1000명이 넘는 여사제가 살았다고
한다. 그들은 신을 모시는 몸으로 죄를 씻어주겠다며 거액을 받고 몸을 팔기도 했다고 한다.
고린도에 바울은 18개월간 머물렀다. 그리고 교회를 세웠다. 바울의
서간 중 가장 긴 편지가 바로 ‘고린도 전·후서’다. 그만큼 할 말이 많았다는 얘기다.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했다.
“지혜로운 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율법학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은 것으로 만들어 버리지 않으셨습니까?
유대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고린도
전서 1장)
고린도의 들녘에 섰다.
바람이 불었다. 눈을 감았다. 그랬다. 오랫동안 바울은 고민했던 것이다.
“무엇이 진정한 지혜인가. 나의 지혜인가, 세상의 지혜인가. 그도 아니면 대체 무엇인가?”
2000년 전,
이 도시 어딘가에서 바울은 밤을 새며 묵상을 했을 터다. 그리고 바울은 그 답을 길어 올렸다. 그는 먼저
보라고 했다. 나의 지혜, 세상의 지혜가 어리석음을 말이다. 그걸 깨우치라고 했다.
왜 그럴까.
“나는 어리석다”“세상은 어리석다”는 걸 진정으로 인정할 때 비로소 나와 세상이 무너지는
법이다. 그렇게 나의 지혜, 세상의 지혜가 ‘우르르’ 무너지는 자리로 하나님의 지혜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2000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썼던 편지의 수신인은 사실 2010년을
살아가는 우리들 자신이다. 아무리 첨단 기계와 문명과 통신이 발달해도 인간의 지혜, 인간의 삶은 결국 ‘오십
보 백 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끊임없이 나의 지혜, 세상의 지혜를 통해서 삶의 해답,
인생의 대안을 찾으려 한다. 바울은 그 한계를 지적했던 것이다.
그리스 철학은 서양철학의 모태다. 그리스인의 지혜, 그리스인의 철학을 향한 바울의 일갈은 결국 서양철학을
향한 일침이기도 하다. 바울은 ‘나’가 무너진 자리에 그리스도의 지혜, 하나님의 지혜가 밀려온다고 했다.
이건 논리나 철학으로 뱉을 수 있는 얘기가 아니다. 그건 자신의 지혜를 실제 허물었던 이들만이 던질 수 있는
소리다. 그곳으로 밀려오는 그리스도의 밀물, 하나님의 밀물을 체험한 자만이 토할 수 있는 살아서 꿈틀대는
소리다. 우리가 바울의 서신을 통해 그리스도의 소리를 듣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에베소로 배를 타고 떠났던 겐그레아 항구로 갔다. 허름한 나룻배 한 척이 보였다. 바울도
저런 목선을 타고 에게해를 건넜을 것이다. 그런 바울을 좇아서 배를 탔다. 에게해는 짙디 짙은 코발트
빛이었다.

◆ 사도 바울(바오로)
길리기아(지금은 터키 영토)의 다소에서 태어난
유대인.
그리스 문화에서 교육을 받았고, 로마 시민권자였다. 생전의 예수를 만난 적은 없으나, 그리스도를
체험하며 사도가 됐다. 열정적인 성격이었던 바울은 지금의 터키와 그리스, 로마에까지 복음을 전했다. 변방에
머물던 예수의 가르침을 세계의 중심이었던 로마에 전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로마서·고린도서· 갈라디아서 등
교회에 보냈던 그의 서신은 신약성경에 수록돼 있다. 전승에 따르면 네로 황제의 기독교인 박해 때 로마에서
참수형을 당했다고 한다.
"눈에 보이는
신’믿는 이방인에게
‘보이지 않는 신’설파한 바울

터키의 사르디스에 있는 아데미 신전의 유적.
왼쪽에 벽돌로 쌓은 사데
교회(초대 일곱 교회 중 하나)의
풍경이 보인다.
어마어마한 신전과
조촐한 교회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바울의 전도는 그리스와 로마의 신들
사이에
‘예수의 씨앗’을 심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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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오후 10시에 밤배를 탔다.
그리스 고린도에서
밧모(파트모스)섬으로
갔다.
밤 파도가 뱃전을 때렸다. 출렁이던 달빛이 그때마다 부서졌다. 2000년 전,
사도 바울도 에베소를 향해 이 뱃길을 지났다. 바울의 밤바다는 지금보다 훨씬 험난했을
터이다.
이튿날 오전 7시에야 밧모섬에 도착했다.
밧모섬은 바울과 동시대 인물이었던 사도 요한의
유배지였다. 바울과 더불어 ‘그리스도교 최초의 신학자’로 꼽히는 요한은 이곳에서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을 썼다. 섬에는 지금도 그 자취가 흘렀다.

◆ 요한의 동굴, 요한의 기도
밧모섬의 산
꼭대기로 갔다.
작은 교회당의 계단을 내려가자 길이 10m쯤 되는 동굴이 나왔다. 요한
계시 동굴이었다. 로마 시대, 밧모섬은 중범죄자들의 유배지였다. 섬에는 온갖 흉악범들이
살았다고 한다.
요한은 그들을 피해 일부러 가파른 길, 험한 동굴에 거처를 정한 걸까.
당시 요한은 연로했다. 90세가 다 된 나이에 그는 밧모섬에서 18개월이나 살았다.
동굴 암벽에는 요한이 엎드려 기도한 뒤 일어설 때 짚었다는 홈이 파져 있었다.
젊은 시절, 요한은 욕심이 많았다. 그는 형제인 야고보와 함께 예수에게 이렇게
부탁했다.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들어주십시오. 주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저희 중
하나는 주의 왼편에, 또 하나는 주의 오른편에 앉게 해주십시오.”
이 말을 듣고 다른
열 명의 사도들은 분노했다고 한다.
그러나 예수는 요한에게 이렇게 답했다.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요한과 야고보는 “할 수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그 말을 듣고 예수는 이렇게 답했다.
“너희 가운데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그때만 해도 요한은 몰랐을 터이다. 예수가 받을 잔이 어떤 잔인지 말이다. 그건 “하실
수만 있다면 이 잔이 저를 비켜가게 하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라고 예수조차 땀을 핏방울처럼 흘리며 기도했던 ‘십자가 죽음’이었다.
어둑어둑한
요한의 동굴, 거기서 눈을 감았다. 대체 뭘까.
‘예수가 마셨던 잔’
‘십자가 죽음’의
진정한 의미는 뭘까.
2000년 전, 사도 요한 역시 이 동굴에 머물며 그걸 묻고, 또
물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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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요한이 성령의 계시를 받았다는 밧모섬의 동굴에서 순례객들이 성경
구절을 묵상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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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동굴에서 하늘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기록했다.
“다 이루어졌다. 나는 알파이며 오메가다.
시작이며 마침이다. 나는 목마른 사람에게 생명의 샘에서 솟는 물을 거저
주겠다.”(요한계시록 21장6절)
그랬다. 예수의 십자가는 생명의 샘으로 통하는 통로였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 그 통로를 몸소 보여준 것이었다. 그게 십자가였다. 그건 내 뜻을
향한 온전한 죽음이자, 하나님 뜻을 향한 온전한 수용을 의미했다.
요한의 동굴 근처에 성 요한수도원(1088년 건립)이 있었다. 그리스 정교회의 수사들이
지금도 수도를 하고 있었다. 수도원 박물관에는 양피지에 기록된 큼직한 초기 성경도
전시돼 있었다. 그리스도교의 2000년 역사가 숨 쉬는 밀물로 다가왔다.
오후에 배를 타고 터키 땅 에베소로 향했다. 1시간쯤 지나자 파도가 거세졌다. 배가
앞뒤좌우로 휘청휘청했다. 그렇게 한동안 달리다 결국 배를 돌려서 밧모섬으로 돌아갔다.
예정에 없던 밧모섬의 1박이었다. 숙소 뒤 산 위로 요한 수도원이 보였다. 밤하늘에
별들이 무척 낮게 깔렸다. 이 밤, 수도원의 수사들도 요한복음의 한 구절을 묵상하고
있을까. “하나님은 빛이시며 그분께는 어둠이
전혀 없다.”(요한복음 1장5절)
◆ 나를 허물 건가,
신을 허물 건가
이튿날 아침 일찍 배를 탔다. 파도는
잔잔했다. 에게해를 건너 터키 땅 쿠사다시에 도착했다. 거기서 버스를 타고 초대
교회들이 있던 곳으로 이동했다. 에게해에서 멀지 않은 터키 땅에 초대 일곱 교회가
있었다.
그 중 하나인 사데 교회로 갔다. 차에서 내려 5분쯤 풀밭을 걷자 어마어마한 신전
유적이 나타났다. 다산과 풍요의 여신인 아데미를 모셨던 신전(알렉산더 대왕의 명령으로
BC 330년경 건립)이었다. 입이 쩍 벌어질 만한 규모였다. 옛날에 78개의 석주가
늘어선 모습은 장관이었을 터다. 지금은 높이 18m의 거대한 석주 2개가 남아 있었다.
신전 귀퉁이에 있는 사데 교회의 유적은 초라해 보였다. 웅장한 신전과 조촐한 교회의
모습이 무척 대조적이었다. 바울 당시에도 이런 풍경은 꽤 흔했을 터이다. 이방인을 향한
바울의 전도 여정은 사실 그리스 신들과 로마 신들의 틈새에 ‘예수의 씨앗’을 심는
일이었다. ‘눈에 보이는 신’을 믿는 이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설파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번은 그리스의 신을 믿는 이가 바울에게 물었다. “이 많은 신들의 석상 중 당신이
믿는 신은 어느 신이오?” 주위를 둘러보던 바울은 석상을 하나 발견했다. 그 아래
‘이름 없는 신’이라고 씌어져 있었다. 바울은 그 석상을 가리키며 “내가 말하는 신은
바로 저 ‘이름 없는 신’이오”라고 답했다.
초대 교회 유적지에는 들꽃이 곳곳에서 한들거렸다. 그 꽃들은 이름을 갖기 전부터
존재했다. 그 앞에서 눈을 감았다. 그랬다. 신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이 이름을 붙이기
전에 이미 신이 있었다. 그런데도 인간은 끊임없이 신에게 이름을 붙였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쉬지 않고 ‘이름 없는 신’을 향해 이름을 붙인다.
나의
바람, 나의 욕망, 나의 가짐을 ‘기도’란 이름으로 포장한 채 신에게 들이댄다.
“하나님! 당신 뜻대로 마시고, 제 뜻대로 하소서”라고 기도를 하면서 말이다.
2000년 전 바울이 낯선 땅의 회당과 신전에서 싸웠던 대상도 이것이었다.
우상(偶像)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사람들은 흔히 돌이나 쇠로 빚은 것을 우상으로
여긴다. 그러나 바울의 메시지는 달랐다. 나의 가짐, 나의 욕망을 위해 부르는 모든
신이야말로 우상 중의 우상이다. 왜 그럴까. 그건 내가 나를 위해 빚은 신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신을 빚지 않았다. 대신 자신을 십자가에 올렸을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그리스도가 산다.”(갈라디아서 2장20절)
바울은 하나님의 현존을 위해 자신을 그렇게 허물었다. 그건 그리스도교 신앙의 심장이기도
하다. 결국 누구를 허물 건가의 문제다.
나를 허물 건가, 아니면 신을 허물 건가.
◆에베소에서 만난 빛과 어둠
버스는 에베소로 향했다.
로마 시대, 에베소는 아시아
주(州)의 수도였다. 바울 당시에도 25만 명이 살았던 소아시아 최대의 도시였다.
버스에서 내렸다.
에베소 유적지 입구에 ‘누가의 무덤’이 있었다.
팻말에는 한글로
‘1860년 영국 고고학자가 본 건물의 일부인 십자가와 황소모양이 그려진 비석을 보고 누가의 무덤이었음을 판정하였다. 예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누가복음 19장10절)라고 적혀 있었다.
밧모섬에서 돌아온 사도 요한도
에베소에서 숨을 거두었다. 요한의 묘지도 에베소의 성 요한 교회에 남아 있었다.
에베소에는 무너진 돌과 기둥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옛 신전과 원형극장, 로마식 공중
목욕탕도 있었다. 2000년 전, 돌로 만든 도로가 시내에서 항구까지 이어져 있었다.
2세기에 건립된 셀수스 도서관은 위용이 대단했다. 바울의 첫 전도여행 목적지도 실은
에베소였다. 그러나 바울은 길이 막혀 터키 서부와 그리스 땅을 거친 뒤에야 뱃길을 통해
에베소로 갔다.
바울은 에베소의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에베소서
5장8절)
그랬다. 그건 “그분께는 전혀 어둠이 없다”는 요한의 메시지와도 맥이
통했다. 어둠의 두께, 어둠의 깊이는 ‘나의 뜻’에 대한 집착의 세기와 비례한다. 그걸
알 때 우리는 깨닫는다. ‘나의 뜻’이 무너지는 순간, ‘아버지의 뜻’이 흐름을
말이다.
그게 바로 빛이다. 그러니 아무리 짙은 어둠도, 아무리 깊은 어둠도 빛 앞에서
무너지게 마련이다.
그 순간 바울은 말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그리스도가 산다”고 말이다.
에베소를 떠나 다소로 향했다.
그곳은 바울의 고향이었다. 유년기의 바울과 청년기의
바울은 과연 어땠을까. 또 예수를 직접 본 적이 없었던 바울은 어떤 사연으로 사도가
됐을까. 다소에서 ‘2000년 전의 바울’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슴이 뛰었다.
밧모섬·에베소(그리스·터키)=글·사진 백성호 기자

“당신은 누구십니까”
바울이 물었다 …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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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에서 ‘바울(바오로)은 칼’로 통한다.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성령의 칼은 하나님(하느님)의 말씀이다”라고 말했다. [성 바오로
수도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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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1일 터키 남부의 해안도시
다소(타르수스)로 향했다.
2000년 전, 다소는
로마 식민지였다. 지중해에서 가까워 교역이 활발한 큰 무역도시였다. 사도 바울은 거기서
태어났다.
덕분에 헬레니즘 문화권 속에서 자랐다. 유대인이었던 바울은 동시에 로마시민권자였다. 당시 로마는 세계의 중심이었다. 굳이 요즘으로 치자면 ‘미국 시민권을
가진 재미동포’쯤 되는 셈이었다. 그건 이방인을 향한 바울의 시선과 그의 죽음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로마 제국은 이방인에게만 십자가형을 선고했다.
예수와 베드로가 십자가형에 처해 진 것도
로마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달랐다. 그는 십자가형이 아니라 참수형으로
죽었다고 전해진다. 너무도 모욕적인 십자가형은 로마 시민권자의 몫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바울은 지독한 유대교 율법주의자였다. 그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됐을까.
바울은
터키와 시리아, 그리스를 훑으며 무려 7만㎞를 달렸다. 목숨을 건 전도 여정, 그
에너지의 원천은 어디였을까. 바울의 여정을 좇는 순례길, 그걸 찾고 싶었다.
◆바울의 고향, 다소
버스는 터키의 광활한 들판과 산맥, 호수를 지났다. 그리고
바울의 고향, 다소에 도착했다.
보슬비가 촉촉이 내렸다. 도시는 조용하고 차분했다.
우산을 받쳐들고 바울의 생가 터로 갔다. 마당에는 옛날에 쓰던 우물이 하나 있었다.
순례객들은 손으로 줄을 돌리며 두레박을 끌어올렸다. 물이 무척 맑았다. 순례객들은
두레박에 든 물을 마시며 ‘바울의 자취’를 더듬었다.
바울은 이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그는 이렇게 생긴 거리를 걷고, 저렇게 생긴 나무
아래서 쉬었을 것이다. 바울의 집안은 천막을 만들어 팔았다. 지금도 다소에는 염소
가죽을 이용한 천막제조업이 성하다. 바울의 집은 부유한 편이었다. 당시 다소에도 큰
대학이 있었으나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유학을 갔다. 정통 유대교 교육을 받기 위함이었다.
바울의 생가 터에서 나왔다. 거리를 걸었다. 생가 터 옆에 공원이 하나 있었다. 공원의
입구에는 터키어로 ‘SAINT PAUL PARKI(성 바울 공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바울과 예수, 그리고 12사도들은 동시대 사람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목격하지 못했다. 그는 예수를 본 적도 없었다.
그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됐을까.
◆스테파노의 죽음과 바울
예수가 죽은 지 2년쯤 지나서였다. 예루살렘에 있던 바울은
예수의 가르침을 좇던 스테파노(스데반)의 죽음을 목격했다.
스테파노는 유대 법정에서 “예루살렘 성전 예배는
우상 숭배에 지나지 않는다”며 유대교의 율법을 정면으로 비판하다가 성밖으로 끌려나가
돌에 맞아 죽었다.
바울은 그 현장을 지켜봤다.
스테파노는 사람들이 돌로 칠 때도
무릎을 꿇고 “주님, 제 영혼을 받아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지우지 말아주십시오”라고 간청했다. 그건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 저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모릅니다.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했던 예수의 목청과도 통했다.
스테파노의 죽음은 바울에게 무엇이었을까.
바울은 충격을 받았을까, 아니면 분노했을까. 스테파노의 죽음을 통해 바울은 나자렛 사람 예수를 다시 보기 시작했을까. 구원의
통로라고 믿는 유대교 율법을 정면으로 부정하고도 저렇게 당당하고 온화한 죽음을 맞을 수
있다니. 어쩌면 바울에게 그 죽음은 거대한 물음표가 아니었을까.
그 사건 직후 예루살렘에선 그리스도인에 대한 박해가 이어졌다. 그리스도인들은 예루살렘
외곽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바울은 그들을 쫓았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남녀를 가리지
않고 그리스도인을 잡아서 감옥에 처넣었다. 바울은 다마스커스(현재 시리아 영토)까지
쫓아갔다. 거기서 바울은 말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사울(바울의 유대식 이름)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바울은 그 목청을
향해 물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러자 음성이 들렸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다소의 거리를 걸으며 그 순간을 묵상했다. 그랬다. 그건 바울의 율법, 바울의 신념에
금이 가는 순간이었다. 종교의 율법과 계율은 늘 방편이다. 그걸 너무 세게 움켜쥐면
이념이 되고 만다.
율법이 이념이 될 때 신앙은 박제가 된다.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하늘의 음성을 통해 바울에게 던져진 물음은 ‘예수냐, 율법이냐’였다. 그건
갈림길이었다. 숨 쉬는 생명이 될 건가, 아니면 율법의 박제가 될 건가.

◆바울의 물음, 바울의 회심
하늘의 음성을
들은 바울은 눈이 멀었다고 한다.
성경에는 ‘사흘간 앞을 못 보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사도행전 9장9절)고 기록돼 있다.
구원의 통로라고 믿었던 율법에
대한 믿음이 와르르 무너진 바울에겐 모든 것이 암흑이었을 터이다. 그 암흑을 헤쳐간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됐다.
그러자 ‘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다시 보게 되었다’(사도행전 9장18절)고 한다.
다소의 거리에 바람이 불었다. 그랬다. 우리의 눈도 마찬가지다. 생명에 눈 멀고,
진리에 눈 멀 때 우리의 눈도 비늘에 덮인다. 그러니 예수를 박해하는 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지지고 볶는 일상에서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예수를 박해한다. 예수의
가르침에 눈을 감고, 예수의 이웃에게서 고개를 돌리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예수는
묻는다.
“○○야, ○○야,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우리는 바울처럼 묻는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때마다 우리의 가족, 우리의 친구, 우리의 이웃이 그 답을
대신 한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예수를 박해하는 순간은 로마 시대만이 아니었다. 종교가 세상의 권력이 됐던 중세 때만도
아니었다.
‘아버지의 뜻’을 외면하고 ‘나의 뜻’을 고집하는 그 모든 순간이 예수를
박해하는 순간이다. 그러니 우리는 매 순간 물을 뿐이다.
“나는 지금 예수를 외면하고
있진 않나. 나는 지금 예수를 박해하고 있진 않나.”
그걸 묻고, 또 물을 뿐이다.
바울은 그렇게 회심했다.
그리고 내달렸다. 바울은 전도 여정에서 유대인들에게 다섯
차례나 몰매를 맞았고, 돌에 맞아 죽을 뻔했고, 파선도 세 번이나 당했다. 밤과 낮,
하루를 꼬박 바다에서 둥둥 떠다니며 표류한 적도 있었다. 바울은 결국 네로 황제의
그리스도인 박해 때 로마에서 죽임을 당했다.
버스에 앉아 바울의 생가를 바라봤다.
다시 눈을 감았다. 무엇이었을까. 목숨을 걸고
바울이 전하고자 했던 건 진정 무엇이었을까. 빗방울이 차창을 때렸다. 순례객의 가슴도
때렸다. 그랬다. 그건 종교의 틀, 종교의 껍질이 아니었다. 율법도 아니고, 제도도
아니고. 교회의 벽돌도 아니었다.
그건 생명이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그리스도가 산다”(갈라디아서 2장20절)고 바울이 고백했던 영원한
생명이었다.
버스는 다소를 떠났다. 그러나 우리의 순례는 끝나지 않았다. 내가 사는 게
아니라 내 안의 그리스도가 살 때까지 말이다. 거기에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다소(터키)=글·사진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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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자를 위한 중국산
‘참선’ 휴대폰이
해외 블로그에 지속적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확한 제품명은 ‘선(禅)
휴대폰’으로 나름대로
사념을 없애준다는 효과가
전해졌다.
박스 포장부터 불교적
감각이 느껴진다.
이 박스 안에 들어있는
물건이 휴대폰이라는 상상이 안 될 정도다.
제품은 금빛 폴더 형태로 화면에 연꽃과 부처 등이
등장하고
조용한 불교 음악이
흘러나온다.
숫자 키는 노인들도 쉽게 쓰실 수 있도록 크게
만들었다.
테두리 디자인은 염주
이미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이 제품은 각종 불교 관련 콘텐츠를 기본 탑재했다.
이동 중에 불경이나 유명
승려의 이야기를 읽어볼 수 있다고 한다.
기독교 콘텐츠를 담은
휴대폰은 언제 쯤 나올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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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해요
11일 오후 다시
시작된 무더위에 더위를 식히러
서울광장 분수를
찾은 외국인 어린이들이 물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복원된 광화문

15일
제65주년 광복절 경축식을 마친 이명박 대통령과
내외귀빈들이 현판제막식을 마친 광화문을 통해
경복궁으로 들어가고 있다.

원
모습으로 복원된 광화문의 현판 제막식이 열린 15일 오전
시민들이 광화문 문루에 올라가
광화문광장을 내다보고 있다.
한상렬
규탄하는 자유북한운동연합
15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망배단 앞에서 광복절을 맞아
자유북한운동연합이
불법방북 친북활동을 벌이고 있는
한상렬과 북한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15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망배단 앞에서 광복절을 맞아
자유북한운동연합이
방북 중인 한상렬과 북한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며 대북전단을 북으로 날려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
65년 전
‘승전 키스’처럼
뉴욕 타임스
스퀘어에 거대동상
제2차 세계대전
승리 6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2일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설치된 ‘간호사와 키스하는 수병’의
동상 밑에서 한
쌍의 연인이 키스를 하고 있다.
동상의 모델이 된
사진은 미국의 유명 사진작가
앨프리드 아이젠스타트가
1945년 8월 14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
소식이 전해진 뒤 타임스스퀘어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인파
속에서 포착했다.
이 사진은 일주일
뒤 주간지 라이프에 실려 미 전역에 알려졌다.
작품 명이 ‘무조건
항복’인
높이 7.7m의 이 동상은
조각가 슈어드
존슨 씨가 제작했다.
승전
키스의 주인공 / 바로 이 사진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의 기쁨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미지 중 하나로,
뉴욕 대로에서 ’짜릿한 입맞춤을 나누는
수병과 간호사’.
1945년 8월 14일(현지시간) 종전이 알려지던 순간을 촬영한
이 사진은 ’키스(The Kiss)’라는
제목으로 잡지 라이프에 게재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탄 바 있다.
사진 속 수병은 당시 18살이었으나 현재 80번째 생일을
앞두고 있는 글렌 맥더피.
여자 간호사의 경우 이디스 셰인이라는 캘리포니아 여성.
당시 노스 캐롤라이나의 캐너폴리스
해군기지를 떠나
뉴욕 브루클린으로 가던 맥더피는 종전
소식을 듣고
기뻐하던 간호사와 만나 키스를 나누게됐다.
간호사는 지하철에서 내려 막 지상으로 올라온
해군병사 차림의 맥더피를 보자
“당신때문에 너무 기쁘다”고 인사했고,
종전 소식을 알게 된 맥더피도 기뻐 고함을
치고
펄쩍펄쩍 뛰다가 키스를 나누었다는 것이다.
컴퓨터에 푹
빠져있는 청소년들
1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e스타즈 서울에서
수많은 청소년들이 컴퓨터 게임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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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문화축제
‘e스타즈 서울 2010

서울시는 전세계 e스포츠 팬들이 함께 즐기는 세계 최고의 디지털 문화축제 ‘e스타즈 서울 2010(e-stars Seoul 2010)’ 첫 날 관람객 1만 6천명이 방문했다고 밝혔다.
첫날 최다 관람객 기록을 달성한 ‘e스타즈 서울’은 궂은 날씨에도 아침 일찍부터 많은 관람객들이 행사장을 찾았다. 서울시가 주최하고, 서울산업통상진흥원(SBA)이 주관한 ‘e스타즈 서울’은 오는 15일까지 코엑스 D홀에서 진행된다.
행사 개막전으로는 ‘크로스파이어’ 8강 경기가 치러졌으며 그 후 대륙간컵과 아시아챔피언십, KEG 등도 치열하게 진행됐다.

대륙대항전에서는 서양팀이 동양팀을 누르고 승리했다.
대륙간컵의 대륙대항전에서 동양팀은 결국 서양팀의 높은 벽을 넘지 못했다. 쓰리썸(Three Some)매치로 시작된 대륙대항전 ‘워크래프트3(블리자드, 이하 워3)’는 동양팀이 모두 서양팀 선수들을 꺾어 압승을 거뒀지만 ‘카운터스트라이크1.6(밸브, 이하 카스)’에서는 한국의 위메이드폭스를 제외한 중국 타이루(Tyloo)와 싱가폴 타이탄즈(Titanz) 모두 서양팀에 패했다.
‘크로스파이어’, ‘겟앰프드’ 경기가 진행된 아시아챔피언십은 14일 경기를 통해 한국 국가대표의 윤곽이 드러났다. 8강이 풀리그로 치러지는 ‘크로스파이어(네오위즈게임즈)’ 한국 국가대표 선발전의 경기는 이제 3분의 1을 남겨둔 상태. ‘겟앰프드’ 개인전에서는 예선전을 통해 시드를 배정받았던 금민섭 선수가 오늘의 64강부터 올라온 '오늘의 선수'를 꺽지 못하고 결승진출에 실패했다. 밤늦게 까지 이어진 단체전 경기에서는 4강에 오른 4팀이 가려졌다.
게임마켓인 ‘e스타즈 프리미어’ 역시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서울시에 따르면 중소게임사와 퍼블리셔의 실질적인 만남이 행사 종료시간까지 끊임없이 이어졌다. 총 51개사가 참여해 진행된 이번 e스타즈 프리미어에서는 보다 편한 자리에서 비즈매칭이 진행돼 게임사와 퍼블리셔가 자유롭게 서로의 자원을 공유하는 자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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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이 69% 140명
원인은 ‘가정불화’가 1위
우울증-성적-이성문제 順…
전년보다 47% 늘어
지난해 한국 초중고교생 자살자가 처음으로 200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한국의 초중고교생 자살자는 202명으로 2008년(137명)보다 47% 증가했다.
지난해 자살한 학생 중...
고등학생이 140명(69%)으로 가장 많았고,
중학생은 56명(28%),
초등학생은 6명(3%)이었다.
2008년에는 고등학생 자살자가 89명, 중학생은 43명, 초등학생은 5명으로, 고등학생 자살자는 57%나 늘었다.
자살 원인은 가정불화·가정문제가 69명으로 가장 많았고, 우울증·염세가 27명, 성적 비관 23명, 이성문제 12명,
신체결함·질병 7명, 폭력·집단괴롭힘 4명, 실직·부도·경제궁핍 1명이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도 59명에 달했다.
서울시자살예방센터 이구상 팀장은 “청소년은 성적, 학교, 가정문제 등으로 우울증을 겪다가 자살을 택하는 사례가 많다”며 “대부분
여러 번 자해 끝에 자살하는데 부모나 주변 사람들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청소년들은 대개 인터넷에서 자살 정보를 얻고 연예인 자살도 큰
영향을 주므로 관련 정보를 가급적 차단해야 한다”며 “자살 충동을 겪는 청소년은 당장이 아니더라도 성인기에 확실한 방법으로
자살할 확률이 높아 조기 치료와 교육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학생 자살자는 2005년 135명, 2006년 108명, 2007년 142명, 2008년 137명 등 증감을 반복하다
지난해 처음으로 200명을 넘어섰다. 2008년 통계청이 발표한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자살은 10대 사망원인 중
교통사고(23.6%)에 이어
2위(22.1%)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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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키모들이
‘위대한 땅(Alaska)'이라 불렀던 경이로운 땅 알래스카.
알래스카는 본래 러시아가 모피공급을 위해
확보한 땅이었다.
모피무역이 시들해지자 재정 적자에 허덕이던 러시아는
미국에 알래스카를 팔겠다고 제안했다.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월리암 시워드는 팽배해진
반대여론을 무릅쓰고 위원들을 설득했다. 천신만고 끝에 단 한 표 차이로 알래스카 매입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다. 미국은 1967년 한반도의 7배나 되는 알래스카를 단돈 720만 불에 매입했다.
러시아
대표단은 쓸모 없는 땅을 비싼 값에 잘 팔았다며 상여금까지 톡톡히 챙겼지만, 시워드 장관은 평생 비웃음의
대상이 됐다. 심지어 알래스카는 ‘시워드 아이스박스’라 불리며 가치가 격하됐다. 실패한 거래를 뜻하는 ‘시워드의
어리석음’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로부터
30년 뒤 알래스카에서 금광이 발견되고 엄청난 석유와 천연가스가 발견되자 모든 사람은 시워드를 ‘꿈의
사람’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알래스카는 미국의 보물이 됐고, 시워드는 미국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알래스카에서 가장 대표적인 빙하인 ‘프린스 윌리엄 사운드 빙하’를 볼 수 있는 곳에는 ‘시워드’라는 도시가
생겼고 알래스카의 최대 도시인 앵커리지와 패어뱅크를 잇는 고속도로 이름도 ‘윌리엄 시워드 하이웨이’라
명명하였다.
그는
미래가치에 투자했던 사람이다. 그는 ‘눈 속의 보물’을 사자고 의회를 설득했다.
우리는 그의 연설에 귀를 기우려야 한다.
“여러분 나는
눈 덮인 알래스카를 바라보고 그 땅을 사자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 안에 감추어진 무한한 보고(寶庫)를
바라보고 사자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는 우리 세대를 위해서 그 땅을 사자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다음 세대를
위해서 그 땅을 사자는 것입니다.”
꿈의 사람은
미래가치를 위해 현재의 가치를 희생하는 사람이다. 낮은 가치를 심어 높은 가치를 거두는 사람이고 작은 것을
심어서 큰 것을 거두는 사람이다.
꿈의 사람은 ‘심음의 법칙’을 믿는다.
최고의 것을 거두기 위해 최고의 것을 심는다.
심고
거두는 비밀을 알기에 심는 것이 다르다.
꿈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
세계적인 꿈을 꾸는
사람은 준비하는 것부터가 세계적이다.
우리 모두 꿈꾸는 자가 되어 미래가치에 투자하자.(장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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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만(Bay)이
전기자동차의 천국이 된다.
미 에너지부는 샌프란시스코 만
지역(베이에어리어)에
500만달러를 투입해 내년까지
5천여곳 이상의
전기차 충전소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11일 발표했다.
500만달러의 예산은
▲고속도로 주변에 50대의
급속충전 전기차 충전소를
설치하는 것을 비롯,
▲일반 공공주차장과 참여
희망기업 주차장 2천곳
▲거주지역 3천개소 등 총
5천여 곳에
충전소를 설치하는데 투입된다.
씨넷은 12일(현지시간)
이같은 내용의 샌프란시스코만
지역의
새너제이시, 오클랜드시,
샌프란시스코시 등 3개
도시의
전기자동차 충전소 설치 계획을
보도했다.
특히 지난 달 29일
새너제이시가 전미충전소구축계획
(Charge Point
America
Program)의 일환으로
쿨롱테크놀로지사와 시내 전역
1600곳에 우선적으로
전기차 충전소를 설치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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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샌프란시스코시가 500만달러를 들여 만 지역을
중심으로 내년까지 총 5천 곳에 전기차 충전소를 만든다.
사진의 전기자동차 미니E는 1회 충전에 시속 160km로
4시간까지 달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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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너제이 컨벤션센터 충전소의 닛산리프.
처크 리드 새너제이 시장은 지난달 말 4번가 소재 주차장차고에서
수백 곳의 충전소 개막식을 가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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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에서는 지난 해
시청을 가로지르는 3곳에
EV충전소가 설치된 이래 EV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비용은 지난주 베이에어리어
공기청정운영국이사회
(Bay Area Air
Quality
Management
District Board
of Directors)에서
나왔다. 이 이사회는
베이에어리어에 면한 9개
카운티이
공기 청정도를 감독한다. 이
비용은 공기청정기금에서
나온다.
이번
자금 승인발표는 지난해 2월
이지역을 전기자동차
시험가동 지역으로 선정될
때까지만 해도 이를 큰 뉴스로
여겼던 샌프란시스코사람들에게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하지만 자동차 주유소가
충전소로 바뀌는 인프라의
전환은
이
지역 3개 시의 시장이 3년
전부터 추진해 온 결과
이뤄졌다.
지난 2008년 11월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새너제이
등
3개시의 시장이 샌프란시스코
만 부근도시를 미국의
전기자동차 수도로 만들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이들 시장은 충전소 표준화
계획 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당시 시장들의 약속에는
수천 개의 전기자동차 충전소를
설치하는 것이 들어있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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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차 충전기로 충전하는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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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시는 내년까지 시내곳곳에 이런
전기차 충전기 5000개를 설치할 계획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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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샌프란시스코시가 시범 설치한 전기차 충전기.
충전기 제조업체들은 샌프란시스코만 같은 전기차
수요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도시에 이미 충전기를 설치하고 있다.
쿨롱테크놀로지(Couloumb Technologies)는 내년 10월까지
4천600개이상의 충전기를 뉴욕, LA, 워싱턴D.C.
디트로이트, 오스틴,올랜드 등에 설치할 계획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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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충전기 연결 부분. 더이상 가스탱크가 필요없다.
3극으로 된 전기차 충전 플러그. 만일 전기차가 한번 충전으로84~160km밖에 갈 수 없고 충전시간이 4시간이나 된다면
전기차는 인기를 얻기 힘들다.
또 적정 인하도 전기차 보급의 과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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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롱테크놀리지사의 전기충전기가 로 충전하는모습. 미국정부는 에너지부 지원금 등 총 3천700만달러가 투입되는 전미충전프로그램(ChargePoint America program)을 통해 일반인과 가정을 대상으로 한 수백곳의 무료 전기자동차 충전소 운영을 구상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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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크 리드 새너제이 시장은 지난달 29일 실리콘밸리의 전기충전기술업체 쿨롱테크놀로지와의 제휴를 통해 이 지역을 가장 환경친화적 도시로 만들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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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넷은 샌프란시스코만을
중심으로 한
충전소 네트워크 구축은
미전역을 대상으로 하는
전기자동차 확산을 위한
시작일 뿐이라고 전했다.
보도는 샌프란시스코만을 전기차
충전 프로그램의 중심으로
만들기 위해서 자동차업체들과 쿨롱같은
충전기회사가
기술 향상 및 투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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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푹 찌는 무더위가 연일
계속되면서 끈적끈적한 땀
때문에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다른 사람에 비해
땀이 많은 체질인 경우 땀을
흘리는 모습과 냄새만으로도
상대방에게 안쓰러움과 불쾌감을
주기 때문에 주눅이 들고
민망스러워지게 마련이다.
본인이 귀찮은 건 둘째 치고
사회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라면
사소한 땀 정도로 무시할 게
아니다. 땀이야말로 여름철
건강 상태를 알아볼 수 있는
바로미터다.
광동한방병원에서
가져온 자료와
함께 땀으로 알아보는 자가
건강진단에 대해 알아보자

광동한방병원 두인선 원장은
"땀 자체는 열을 배출하여
적당한 체온을 유지하는
'냉각수'이자 피부 건조를
막는 '가습기'이며 체내에
축적된 납,
카드뮴 등
중금속을 몸 밖으로 배출해
신진대사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도하게 땀을 흘리고, 또
땀을 낸 뒤 몸이 개운치
못하고 오히려 피곤하다고
느껴진다면 이는 건강이 좋지
않다는 증거로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
땀을 놓고 한의사들이 주의
깊게 보는 것은 자한(自汗)인가
도한(盜汗)인가 하는 것이다.
저절로 나는 땀을 의미하는 자한증은 노동, 운동, 의복
복장, 기후, 방한, 약물의
복용 등과는 관계없이 자연히
땀을 흘리는 것을 말한다.
주로 기가 허해지면 생기는
현상이다. 따라서 기를
보충해주는 요법을 주로 하고
습(濕)과 담(痰)을 원인으로
보아 치료를 하게 된다.
몸에서 까닭 없이 땀이 날 때는
술과 카페인을 피해야 한다.
그리고 뜨겁게 음식을 먹거나
강한 향신료를 쓰는 것 역시
피하는 게 좋다. 또
자한증에는 황기, 인삼 등을
이용해 기를 북돋워주면 좋으며
가정에서는 인삼차나 인삼과
우유를 섞어 마시는
인삼셰이크로 기운을 올려주면
도움이 된다.
도한은 잘 때 나는 땀으로,
주로 식은땀이라고 표현하는데
보통 몸 속에 피가 부족해서
생기는 병이다.
몸 안에서
열이 생기면서 수분을 필요
이상으로 증발시키는 것이
원인이 된다.
도한증은 밤새
땀을 과도하게 흘리기 때문에
불쾌감으로 인해 수면장애가
오기도 하며 과도한 수분
증발로 인해 식욕이 떨어지고
체력이 약화돼 만성피로,
무기력증을 초래하는 등 건강을
해치기 쉽다. 수분 부족에
고통 받기 쉬운 만큼 평소에
물을 자주, 그리고 충분히
섭취하도록 한다. 또 제철
과일로 손실된 수분을
보충해주는 것도 좋다.
하지만 어린이들이 잠을 잘 때
땀이 많은 것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기본적으로 어린이들은 성장을
위한 양(陽)과 열(熱)의
기운이 있기 때문에 증상이
아주 심하지 않다면 그냥 두고
보아도 된다.

▶ 땀, 어디서 나느냐 중요
부위별로는 머리에서만 땀이
많이 나서 불편하다는 경우가
많다. 머리는 모든 양(陽)이
모이는 곳이어서 양기의 흐름에
문제가 생기면 발생한다.
머리에서 땀이 계속 나면 탈모
등을 유발할 수 있으며 심한
경우 어지럼증 등이 동반된다.
따라서 열을 식혀주는 한편
수분을 보충해주는 것도 좋다.
심한(心汗)이라는 것도 있는데
이것은 다른 곳에는 땀이 나지
않고 오직 심장이 있는
부위에서만 땀이 나는 것을
일컫는다. 대체로 신경을
과다하게 쓰거나 할 때
나타나게 되고 때로는
겨드랑이와 명치에서 땀이 나는
것도 심한의 범주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이 경우
육류, 계란, 우유, 버터,
치즈 등 체취를 더할 수 있는
고지방식은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좋다. 반면 쌀이나
보리의 배아, 깨, 당근,
호박, 시금치, 비타민 E
등은 악취발생의 원인이 되는
물질을 억제해주는 효과가
있으므로 챙겨먹는 것이 도움이
된다.
손과 발에 땀이 많은 수족한(手足汗)은
위장기능, 소화기능이
약해졌다는 신호이다. 또
발에만 특별히 땀이 많이 나는
경우라면 소화기관의 이상과
관련이 깊다.
소화를 관장하는
비장과 위장이 손상되어 인체의
수분이 몸 속에서 원활히
순환하지 못하고 손이나 발끝에
머물기 때문에 해당 부위에서
땀이 많이 나는 것이다.
치료는 비장과 위장을
튼튼하게 하는 인삼, 백출,
계피 등의 약재를 처방하고,
중완(배꼽 위 12㎝ 부위)혈자리에
침과 뜸을 놓는 방법이 좋다.
또 손과 발, 겨드랑이 등에서
나는 땀은 신체적인 원인도
있지만 심리적인 요인에서
비롯되는 경우도 많은데 이런
경우에는 땀을 멈추게 하는
단발적인 처방보다는 심리적
긴장을 풀어주는
자음건비탕,
청심온담탕과 같은 처방이 더욱
효과적이다.
▶다한증? 이열치열이 살길
다한증 치료는 이열치열
원리를 이용하면 효과적이다.
땀이 난다고 해서 차가운
음식을 먹기보다는 삼계탕과
같은 따뜻한 성질의 음식을
먹는 것이 비위의 활동을
원활하게 하는 데 좋다. 또
삼계탕에 같이 들어가는
인삼이나 황기는 여름철에 땀의
배설이 지나쳐 기운이 처질 때
기운을 돋게 하는 역할을 해
도움이 된다.
다한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평소 스트레스, 긴장, 피로를
피하고 휴식과 안정을 취하는
것이 좋다. 식이요법으로는
육류나 자극적인 음식(맵거나
짜거나 강한 향신료)을 가급적
피하고 담백한 음식 위주로
섭취하는 것이 좋다. 또
찜질방이나 사우나에 자주 가는
것도 좋지 않다. 노폐물
제거보다는 수분만 빠져나가기
때문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산수유차, 황기차,
오미자차, 생맥차 등은 모두
다한증 예방에 좋고 피로회복
등의 효과도 있으므로 미리미리
달여두고 마시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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