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20,  2010

 

 

 

 

 

 

 

 

 

 

 

 

Feliz Navidad

Feliz Navidad

Feliz Navidad

Prospero Ano y Felicidad

I wanna wish you a Merry Christmas

From the bottom of my heart

 

 

 

 

 

 

 

 

 

 

 

 

 

 
 
 

 

 

가난한 크리스마스

 

무명의 시인

 

아버지...

작년에

고이 깊이 모셔 둔

크리스마스트리를 꺼냈습니다.

 

가지를 곧게 펴고

먼지를 털어 내어

방울도 곱게 달았습니다.

 

애들은

기쁨에 부풀어

내일이

크리스마스인양

고운 촛불처럼

상기(想起) 되었습니다.

 

분명

이 땅 위에

꿈이 있음을

믿습니다.

 

아버지....

작년에

고이 깊이 모셔 둔

크리스마스트리를 꺼냈습니다.

 

걱정을 곧게 펴고

근심을 털어 내어

소망(所望)도 곱게 달았습니다.

 

애들도

희망(希望)에 부풀어

내일이

크리스마스인양

예쁜 사랑처럼

상기(想起) 되었습니다.

 

분명

이 하늘아래

내일이 있음을

믿습니다.

 
 
 

 

 

 

 

 

 

 

 

 

 

 

목사님 !
오늘 보내주신 <비전통신> 기사 중
<지금 당장에>를 읽고
많은 눈물을 흘리며
생각하는 날이었습니다

제게도 부친이 있었습니다.
각별히 사랑 많으신
서울 영락교회장로님이셨습니다.
간암으로 작년에 소천하셔서 
영락동산 장로묘역에 묻히셨습니다.

이 불효자식을
보고 싶어 하시며
미국 집에 오시고 싶어하심을 알면서도
강의하며 사역하며
제 일이 급하여
한번도 모시지 못했습니다.

발이 부었다는 소식에 사스 신을 사 보내는 것으로
잘난 체를 했습니다.
늘 근검 절약하시고 검소하신 부친께서
내 자식이 보내준
세상에서 제일 비싼 신이라며
병상에서 만지고 안고만 있다가
한번도 신어보지도 걷지도 못해보고
떠나셨습니다.

안치 실에 가보니
그 신발이 머리맡에 놓여있고
이생에 사시면서
입으신 옷 중 제일 비싼 옷을 입고
두건까지 쓰시고 계셨습니다
백만 원이라는  그 비싼 옷
삼베옷...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저도 그 말 한번 할 것을...


<아버지 수고 많이 하셨어요>
그 말 한번 할 것을....
 

<아버지 저희 집에 오셔요>
그 말 한번 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오늘 이 아침에
엉엉 울며
이 가슴을 목사님께 털어 놓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목사님. 강령하시옵길...
 

Kang@ 올림
 

 

 

 

 

 

 

 

 

 

 

라이트코리아, 사이버정화시민연대, 독립신문은 19일 오후 3시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프레스클럽에서 ‘反국가 친북좌파 사이트 2차 공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은

▲반국가행위(北대남전략 동조, 국가보안법폐지)

▲반민족행위(北세습, 선군정치, 주체사상 옹호, 선전)

▲국익훼손행위(국가정책, 행사 반대)

▲반헌법행위(6.15, 10.4 선언 이행, 병역거부 주장)

▲이적행위(천안함 北폭침 부정, 주한미군 철수주장)에 해당하는 활동이나 주장을 한 단체와 개인의 웹사이트를 ‘반국가 친북좌파 사이트’로 규정했다.
 

이번 2차 공개에 포함된 단체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사월혁명회, 한국여성단체연합, 동성애자인권연대, 인권운동사랑방, 평화인권연대 등 32개 단체 사이트와 박지원, 이정희, 강기갑, 정동영, 유시민 등 10명의 정치인 사이트가 포함되었다.
 

지난 10월 15일 1차 공개에는 민노당을 비롯해 민주노총, 전교조, 한총련, 진보연대,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실천불교승가회,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등 37개 사이트를 反국가 친북좌파사이트로 규정한 바 있다.
 

이들은 “최근 북한은 사이버 심리전을 강화하고, 인터넷을 통해 북한 세습독재와 주체사상, 선군정치를 학습, 선전하고 있다”며 “종북좌파세력들은 북의 대남적화노선을 따라 국가보안법 폐지, 주한미군 철수, 연방제통일 등을 주장하며 반국가, 이적행위를 노골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좌파사이트에 경계심 없이 접속해 북한을 미화, 찬양하는 글을 자주 접하다 보면 무의식 중에 선전, 선동에 현혹되기 쉽다”며 “네티즌들의 의식이 성숙되었기 때문에 북한의 체제 선전을 방치해도 무방하다는 주장은 적 앞에 빗장을 열어 주어도 아무 위험이 없다는 안이한 이적적(利敵的) 사고”라고 단정했다. 
 

 

反국가 사이트 총79개 


 
1. 민주노동당 http://www.kdlp.org (북 대남노선 추종)
2. 한국진보연대 http://www.jinbocorea.org ( 〃 )
3. 참여연대 http://www.peoplepower21.org (G20반대, 천안함 폭침 부정)
4.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http://www.615.or.kr (이적단체)
5. 환경운동연합 http://www.kfem.or.kr (국보법 폐지 주장)
 

6.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http://freedom.jinbo.net ( 〃 )
7. 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 http://www.tongil-i.net (이적단체)
8. 21세기코리아연구소 http://www.21corea.org (간첩단체)
9. 노동자연대 다함께 http://www.alltogether.or.kr (G20반대)
10. 주한미군철수운동본부 http://www.onecorea.org (미군철수)


11.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http://www.spark946.org (미군철수 주장)
12.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http://hcy.jinbo.net (이적단체)
13. 6.15공동선언실천청년학생연대 http://www.615chyd.org (6.15선언이행주장)
14. 반전평화연대 http://antiwar.textcube.com (미군철수 주장)
15.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http://minkahyup.org (국보법 폐지, 이적행위옹호)


16.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http://www.professornet.org (국보법 폐지)
17.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http://www.ugh.or.kr (이적행위자 옹호)
18. 천안함사건진실규명과한반도평화를위한공동행동 http://326true.net (폭침부정)
19. 평화재향군인회 http://www.pcorea.net (국보법 폐지 주장, G20반대)
20. 한국민권연구소 http://www.615.re.kr (북 체제 선전)


21. 민가협 양심수 후원회 http://www.yangsimsu.or.kr (이적행위자 옹호)
22.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http://www.nodong.org (G20반대)
23. 전국교직원노동조합 http://www.eduhope.net (빨치산 찬양)
24. 노동자전선 http://napo.jinbo.net (G20반대)
25. 전국농민회총연맹 http://www.ijunnong.net (G20반대)


26.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http://www.kpaf.org (국보법 폐지 주장)
27. 실천불교전국승가회 http://www.silchun.org (빨치산 찬양)
28.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http://sajedan.org/main.htm (국보법 폐지 주장)
29.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http://www.kncc.or.kr (6.15선언 이행 주장)
30.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http://www.ccjp.or.kr (6.15선언이행주장)


31. 예수살기 http://withjesus.or.kr (국가보안법 폐지, 6.15이행, 이적 옹호)
32. 향린교회 http://www.hyanglin.org (국가보안법 폐지, 6.15이행, 이적 옹호)
33. 사이버민족방위사령부 http://cafe.naver.com/kocoree (이적, 북 찬양)
34. 민주사랑 http://cafe.naver.com/minjusarang (민노당 지지, 6.15이행)
35. 안티 MB http://cafe.daum.net/antimb (G20반대, 정부 비방,모략)


36. 한국청년단체협의회 http://blog.daum.net/21hanch (국보법 폐지, 6.15이행 주장)
37. 통일파랑새 http://cafe.daum.net/nowar4 (국보법 폐지, 6.15이행)
38) 전국공무원노동조합 http://www.kgeu.org (反국가, 反헌법)
39) 전국언론노동조합 http://media.nodong.org (反국가, 反헌법, 이적단체 비호)
40) 사월혁명회 http://rev419.jinbo.net/ (反국가, 反헌법)


41) 사회진보연대 http://pssp.jinbo.net/main/index.php (국익훼손, 反헌법)
42)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http://www.humanmed.org/ (국익훼손, 反헌법)
43) 노동건강연대 http://www.laborhealth.or.kr/ (反국가, 反헌법)
44) 한국여성단체연합 http://www.women21.or.kr/ (국익훼손, 反헌법)
45) 한국여성민우회 http://www.womenlink.or.kr/ (反국가, 국익훼손)


46) 민주주의법학연구회 http://delsa.or.kr/zbxe/ (反국가, 反헌법)
47)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http://minbyun.org (反국가, 국가보안법폐지)
48)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http://kilsp.jinbo.net/ (反국가, 反헌법)
49) 한국노동사회연구소 http://klsi.org/ (反국가. 反헌법)
50) 다산인권센타 http://www.rights.or.kr/new/index.php (反국가. 反헌법)


51) 동성애자인권연대 http://www.lgbtpride.or.kr/ (反국가. 反헌법)
52) 미술인회의 http://www.misulin.org/xe/ (反국가. 反헌법)
53) 한국작가회의 http://www.hanjak.or.kr/ (反국가. 反헌법)
54) 민족미술인협회 http://www.minart.org/index.htm (反국가. 反헌법)
55) 민족화합운동연합 http://www.hwahap.org/ (反국가. 反헌법)


56) 스크린쿼터문화연대 http://www.screenquota.com/v2/ (反국가. 反헌법)
57) 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민주연대 http://www.khis.or.kr/ (反국가. 反헌법)
58) 인권운동사랑방 http://www.sarangbang.or.kr/kr/new/ (反국가. 국익훼손)
59)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http://www.kwpa.org/ (反국가. 反헌법)
60) 전쟁없는세상 http://withoutwar.org/index.htm (국가보안법폐지)


61)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http://www.peacewomen.or.kr/ (反국가. 反헌법)
62) 평화인권연대 http://peace.jinbo.net/ (反국가. 反헌법)
63) 인권실천시민연대 http://www.hrights.or.kr (反국가. 反헌법)
64) 민족문제연구소 http://www.minjok.or.kr (反국가. 反헌법)
65) 평화네트워크 http://www.peacekorea.org (反국가. 反헌법)


66) 추모단체연대회의 http://www.yolsa.org(反국가. 反헌법)
67) 빈곤사회연대 http://antipoor.jinbo.net/index0.php (反국가. 反헌법)
68) 전국철거민연합 http://poverty.jinbo.net/main/main.html (反국가. 反헌법)
69)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http://www.krhana.org (反국가. 反헌법)


 
反국가·친북좌파 정치인


1)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

 http://www.jwp615.com (反국가. 反헌법, 정부모함)
2) 이정희 (민노당 대표)

 http://www.heenews.co.kr(反국가. 反헌법)
3) 강기갑 (민노당 국회의원)

 http://www.gigap.net (反국가. 反헌법, 좌파단체 출신)
3) 권영길 (민노당 국회의원)

 http://www.ghil.net (反국가. 反헌법)
4)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http://www.nanjoong.net (反국가. 反헌법)
6) 정동영 (민주당 국회의원)

 http://www.cdy21.net (反국가. 反헌법)
7) 천정배 (민주당 국회의원)

 http://www.jb21.or.kr (反국가. 反헌법, 천안함 폭침 부정)
8) 최재성 (민주당 국회의원)

 http://www.js21.net (反국가. 反헌법, 주사파 출신)
9)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

 http://gtcamp.tistory.com (反국가. 反헌법)
10) 유시민 (정당인, 전 국회의원)

 http://www.usimin.net (反국가. 反헌법)
 

 

 

 

 

 

 

 

 

 

 

 

 

 

 

나는 도봉산을 바라보고 학교를 다녔고

도봉산을 오르며 꿈을 다지기도 했다.

 

대학생활을 마친 후에도

꽤 오래 도봉산 자락에서 살았다.

결혼도 그곳에서 딸도 그곳에서 얻었다.

가난도 배우고 사회생활의 첫발도

도봉산을 등에 지고 시작했다.

 

그곳에는 기도원도 있고 수녀원도 있고

419묘역도 그리고 조병옥 묘지도 있다.

 

조국을 떠나 온지 30년.

많이 변해버린 내 모습.

 

그러나

백야 유인현 님이 찍어 보낸 12월의 도봉산은

예나 지금이나 그 위용을 자랑하며

아직도 나를 향해 손짓 하고 있다.(언)

 

 

 

 

 

 

 

 

 

 

 

 

 

 

 

 

 

 

 

 

 

 

'시야'란 세상을 바라보는 범위를 가리킨다. 사람이 볼 수 있는 범위는 고작 180도 정도가 한계다. 격투기의 리더는 그 한계를 넘어서도록 노력해야 한다.

적이 어디에서 나타날지, 어디에 기회가 있는지 좀 더 빨리 예측하기 위해서는 곤충처럼 넓은 시야를 갖추어야 한다. (212p)

 

 

 

우치다 카즈나리 지음, 이서연 옮김 <갤럭시s의 경쟁자는 코카콜라다> 중에서 (비즈니스맵)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는 있는 우크라이나 치어리더 레드 폭시스(ReD Foxes)가  공연금지를 당한 사건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한국은 러브랜드(LoveLand)를 만들어 성교육을 시킨답시고 관광객 유치를 목적으로 노골적인 섹스장면을 조각한 조형물을 전시하여 어린이들과 함께 구경 나온 시민들의 얼굴을 홍당무가 되게 하고 있다. 

 

섹시함과 노출이 금지된 치어리더를 상상할 수 있을까? 

그런데 상상하기 힘든 사건이 지난 9월말 터키에서 열린 2010년 세계농구 선수권대회 기간에 벌어졌다.
 

대회기간 동안 세계적인 치어리더 댄싱팀 레드폭시스(ReD Foxes)의 공연이 금지된 것이다. 터키정부는 노출이 너무 심한 레드폭시스 치어리더들의 의상을 문제 삼아 그녀들의 공연을 제지 한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서 결성,  러시아는 물론 유럽에서 활약하고 있는 레드 폭시스는  미모와 섹시함 그리고 화려한 댄싱 기술로 치어리더 댄싱경연 대회에서 4번의 유럽챔피언과 2번의 세계챔피언을 차지한바 있다.

 


 

레드폭시스의 이런 춤도 어느 나라에서는 금지시키고 있다.

 

 

우크라이나 치어리더 레드 폭시스(ReD Foxes)

 

러브랜드(LoveLand)는 제주도에 조성된 성(性)을 주제로 한 테마 조각공원이다.

 

올바른 성문화를 알리려고 예술적으로 승화된 현대적 감각의 ’성 예술 작품’을 환상적인 야간 조명과 이국적인 조경을 사용하여 신비롭게 연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성 행위 하는 모습의 조각을 보고 예술성이 뛰어난다는 생각을 못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노골적인 성행위를 포르노 영화 이상으로 표현하고 있어 가족과 함께 구경 온 사람들을 난처하게 한다고 한다.

어쩌다 한국이 이렇게 변해가는 지 많이 염려된다고 뜻있는 사람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눈물의 경례' 홍찬선 기자(뉴시스)

 

 

 

'승자의 포효' 김주성 기자(한국일보)

 

 

 

 

 

 

 

 

절경을 자랑하는 나이아가라 폭포의 물이 다 빠져 흉물스럽게 변한 사진과 영상이 공개됐다.

때는 1969년, 미국 엔지니어들과 공병대가 댐을 건설하기 위해 나이아가라 폭포의 흐름을 막았고 물길이 막힌 나이아가라는 마치 폐허와도 같은 절벽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16일, 약 41년 전 당시의 사진과 영상을 공개해서 화제를 뿌리고 있다.
 

대자연의 위용을 뽐내는 북미 최대의 폭포 나이아가라도 물이 빠지면 저렇게 폐허의 도시 같은 모습으로 변한다. 우리네 인생도 은혜의 강물줄기가 끊기면 저렇게 흉한 모습으로 변할 것이다.  

 

 

 

 

 

 

위용을 자랑하는 현재의 나이아가라 폭포

 

 

 

 

무슨 일일까?

 

 

한국의 농촌은 지금 구제역 때문에 초비상이다.

소란스러운 바깥세상을 아무 물정도 모른 채 천진하게 내다보는 강아지들

 

 

 

 

<예수님은 십자가 지셨는데 마호메트는 뭐했느냐> 말했다가…

 

두 아이의 어머니인 한 파키스탄 기독교인 여성이 신성모독죄로 사형을 선고 받았다.

 

농장 노동자인 30대의 아시아 비비는 작년 6월 푼잡 주 이탄왈리 마을의 한 농장에서 무슬림인 여성 동료들과 함께 일하던 중 식수를 길어왔으나 일부 동료들로부터 <기독교인이 떠온 물은 깨끗하지 않아 마실 수 없다>는 모욕을 당했다.

 

비비를 모욕한 동료들은 오랫동안 비비에게 기독교 신앙을 포기하고 이슬람으로 개종하도록 강요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비비는 이어진 말싸움에서 동료들에게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는데, 마호메트는 당신들을 위해 무엇을 했느냐>고 물었고 이에 격분한 동료들은 비비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이어 성난 동네 무슬림이 몰려 와 비비와 그녀의 아이들까지 폭행한 뒤에, 비비를 낯선 방으로 끌고가 감금했으며, 무슬림들이 부른 경찰에 의해 연행된 비비는 결국 주일이었던 지난 7일 푼잡 주 법원으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았다.

 

이에 기독교 박해 감시단체 릴리즈 인터내셔널은 현재 비비의 무죄 석방을 위한 온라인 청원 운동을 국제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샴 쌍둥이>가 아닌 <기생 쌍둥이>라는 아주 특이한

신체적 기능을 가진 어린이 "디팍 쿠마"는
출생 당시 의사들은 불과 며칠간 밖에 살 수 없다는 진단을 내렸으나
8년 째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이런 유형은 유전학적으로도 아주 기이한 현상으로 밝히고 있으며,


 

 

다른 다리가 복부 밖으로 성장하는 바람에 적절히 통제할 수 없어
일상생활에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부모들은 아들의 불행한 삶을 걱정, 결국 수술을 결심했다.

현재 1차로 제거 수술을 위한 초기 단계 준비를 기다리고 있으며,
약 30시간에 달하는 수술시간이 소요되는 대수술 비용은
50, 000유로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전하고 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불쌍한 디팍 쿠마가 성공적인 수술로

새로운 인생이 열릴 수 있는 좋은 소식이 전해지기를 기원한다.

 

 

 

 

 

 

 

 

 

 

 

 

 

 

이슬람 시아파(Shi'a)의 최대 축제인 아슈라는 이슬람력인 무하람(Muharram)의 성월인 1월을 의미하며 최고 절정은 10일이다.

 

이슬람은 크게 두 개 즉 순니파와 시아파라는 종파로 나뉘는데, 1억 명의 사람들이 시아파 무슬림들이며 이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고 중심이 되는 나라가 바로 이란이다.

 

시아파 이슬람은 12명의 이맘을 거룩한 성인으로 숭배한다.

 

이들은 신이 특별히 죄를 없앰으로 사람과 신의 사이에게 중재 역할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12명의 이맘 중, 2번째 이맘인 후세인의 죽음을 비통해하며 매년 이슬람력으로 모하람달 1일부터 10일까지 10일간 통곡의 행진을 한다.

 

당시 후세인을 따르는 사람들이 후세인이 왕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고, 정권을 잡고 있던 다른 가문의 왕과 적대관계에 놓여, 후세인은 결국 적군에 의해서 지금의 이라크 남부에 있는 카르발라라는 곳에서 죽게 되었다.

 

후세인이 부상을 당한 9(터슈어) 저녁과 그가 죽은 10일 오전에 행진은 최고조에 달한다.

 

9일간 매일 밤 쇠사슬로 가슴과 등, 어깨와 머리를 치면서 통곡하다가 10일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 정도까지 계속적으로 거리를 돌며 행진한다. 이 기간에는 거리에서 핏물을 많이 보게 된다.

 

통곡 행진의 행렬이 자신의 집 앞을 지날 때에 맞추어 특별 기도제목이 있는 사람은 행렬 가운데 살아있는 양을 끌고 와 그 자리에서 목을 베어 피를 골목에 뿌리기 때문이다.

 

행렬은 잠시 그 앞에 멈춰 서서 알라에게 그 집안의 기도제목을 응답 해 줄 것을 함께 노래로 간구하고, 그 집이 마련한 간단한 음료로 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행렬의 맨 앞에는 150~300 킬로그램까지 나가는 무거운 상징물들을 몇 명 사람들이 번갈아 가며 짊어지고 가는데, 이는 후세인의 고난을 스스로 경험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런 행사는 파키스탄 외에도 아프가니스탄이나 레바논 등지에서도 행해진다

 

카불의 끔찍한 피의 제사

 

 

 

 

 

ashura 09 - 1.jpg

 

95

 

An Indian Shi'ite Muslim boy flagellates himself during Ashura procession in Jammu. Ashura marks the death of Prophet Muhammad's grandson Imam Hussein

 

 

 

 

 

 

 

 

 

 

피를 보기 위해 칼을 들이대자 공포에 떠는 어린아이.

무엇을 위한 일일까?

이런 일을 자행하면서 이슬람들은 <Happy Ashura> 라고 외친다.

 

 

 

 

 

 

 

 

 

 

 

 

바나그룹 2010년 설문조사 분석 보고서

 

미국 남침례교(SBC) 산하 교회 전문 리서치 기관인 바나 그룹이 2010년 한 해 동안 수행된 다양한 주제의 설문조사들을 통해서 미국 교회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들을 분석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의 작성자인 조지 바나 수석 연구원은 “교회의 변화는 보통 오랜 시간을 걸쳐서 일어나지만, 올해 이뤄진 조사 결과들은 미국의 종교적 환경이 뭔가 새로운 것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지난 약 11개월간 걸쳐서 미국 전역 18세 이상 성인들을 대상으로 이뤄진 5천여 설문조사들을 분석한 결과다.

 

다음은 이 보고서가 크게 6가지로 제시한 최근 미국 교회의 흐름이다.

 

1. 기독교인들은 성경적 지식에 더 무지해지고 있다.

 

기독교에 관해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간주됐으며, 보편적으로 널리 퍼져 있었던 진리들이 점차 <알려지지 않은> 미스테리들이 되어가고 있다.

 

새로운 미국 세대들, 특히 젊은 성인 층에서 이러한 경향이 뚜렷하다.

한 설문조사 결과가 그 예가 될 수 있다. 많은 미국 성인들이 부활절이 종교적 축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 날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성인은 소수에 불과했다.

과거보다 성경을 읽고 이를 이해할 수 있는 이들의 수가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

미국 교회에 닥친 성경적 지식의 무지 상태는 앞으로 올 세대들이 과거에 비할 수 없는 신학적 다양성과 불일치의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

 

2. 기독교인들은 더욱 내향적으로 되어가고 있다.

 

커뮤니케이션을 더욱 즉각적이고, 멀리까지 가능하게 해 주는 기술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은 비 기독교인들로부터 더욱 영적으로 고립되고 있다.

이러한 성향의 예는 교회 행사에 아는 이를 초대할 의향이 있다는 기독교인이 전체의 3분의 1에 불과한 조사 결과가 될 수 있다.

또한 최근 기독교인들은 과거보다 비 기독교인들과 있을 때 자신의 신앙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이 줄었다.

이러한 성향은 증가하는 무신론자들의 전략적 공격, 이민과 교육 등에 의해 강화되어 가는 종교적 다원주의 등에 의해서 더욱 영향을 받는다.

 

3. 많은 성인들이 영적인 것흥미느끼지 못하며, 실용적인 것을 선호하고 있다.

 

삶에 있어 가장 큰 관심사에 대해 십대들은 교육과 경력 쌓기, 우정, 여행 등을 꼽았다.

성인들은 삶의 안락과 성공, 개인적 성취에 우선순위를 뒀다.

 

신앙은 이들 모두에게 중요했지만 다른 인생의 성취 목표들에 자리를 내주고 있었다. 오늘날 빠르게 돌아가는 사회는 사람들에게서 깊은 성찰의 시간을 앗아가고 있으며, 따라서 사람들이 진지하게 고민하는 주제는 경제나 인간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한정되고 있을 뿐 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오늘날 많은 성인들이 현재에 살아남는 것이 영원의 보장보다 더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4. 지역 사회 봉사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기독교인들의 수가 늘어가고 있다.

 

기독교인들, 특히 그 가운데서도 젊은 성인들은 지역 사회 봉사에 더욱 열정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정의에 대한 집중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고 있으며 보다 큰 참여를 낳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들이 영적인 기반에 자리 잡고 있지 못할 경우에는 오래 지속될 수 없으며, 중간에 약화될 수 있다는 위험을 교회는 안고 있다.

단순히 사회적으로 존경 받는 좋은 일이기에 하는 봉사가 되지 않도록 교회는 이러한 활동들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안고 있다. 이럴 때 교회와 기독교인들의 봉사는 순수한 기독교의 사랑에 의한 것으로 비쳐질 수 있고 더 긍정적인 인상을 줄 수 있다.

 

5. 관용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즘적 주장이 교회를 지배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의 성경적 문맹과 영적 자신감의 부재는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매우 불확실한 행동들과 사상들을 허용하게 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교회가 원칙을 제공해야 한다고 믿는 이슈들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예를 들어 오늘날 미국에서 사랑의 개념은 갈등과 충돌이 없는 상태로 재 정의되고 있다.

한 교회 안에서 성경에 씌어진 그대로의 도덕적이고 영적인 원칙들을 믿고 삶에 적용시키며 살아가는 기독교인의 수는 매우 소수인 것으로 보여진다.

오늘날 교회가 안게 된 도전은 진리를 따르고 사랑 안에서 행동하는 것 사이의 섬세한 균형을 맞추는 것이며, 모든 기독교인들에 주어진 도전어떤 가치를 위해 싸워야 하는지, 어떤 가치가 절대 타협 불가한 것인지 알 수 있을 수준으로까지 자신의 신앙을 발전시켜나가는 것이다.

 

6. 문화개인의 삶에 대한 기독교의 영향미미하다.

 

기독교는 그 어느 종교, 철학, 사상보다도 미국 문화에 많은 영향을 제공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인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그들이 받고 있는 영향에 대해 검증해 볼 것을 요구 받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미디어 환경의 영향으로 미국인들은 교회와 기독교인들의 과오에 대해서 보고 듣는다.

비쳐지는 이미지가 현실이 되는 오늘날 교회는 더 긍정적이고 접근 가능한 이미지를 만들어야 할 절실한 필요 가운데 있다.

 

오늘날 문화가 연구와 성찰에 투자할 시간이 거의 없이, 바쁜 일정과 미완성의 정보 가운데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판단과 결정에 의해 이끌어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는 기독교인들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느냐에 의해서 가장 큰 영향력을 줄 수 있다.

예수님은 자주 열매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신 것과 같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삶은 문화적 영향력의 원천이 될 만큼 충분한 결실을 맺고 있지 못하다.

기독교인들의 삶이 기독교의 가르침과 어떻게 일치하느냐를 관찰하면서 사람들은 기독교에 대한 인상을 결정짓는다.

 

 

 

 

 

 

 

 

무엇이 성공인가

 

에머슨

 

 

무엇이 성공인가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 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으므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비전통신

 

 

 

 

 

 

 

 

 

 

 

 

 

 

 

 

 

 

 

 

 
 

 

 

 

 

 

올해 크리스마스엔 무슨 이야기로 성탄을 기릴 수 있을까 생각하다 노르웨이 왕가의 신데렐라 왕세자비 메테 마릿을 소개하기로 했다.

 

노르웨이는 입헌군주제(Constitutional monarchy) 국가이다. 인류의 역사상 가장 오래된 통치형태인 <군주제>를 근간으로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가 군주의 권한을 제한하는 정치형태이다.  의회에서 구성된 총리와 내각이 정치, 행정을 책임지며 왕실은 각종 의전 행사에 참여하거나 외국의 손님을 맞이하며 국가수장으로써 필요한 활동을 한다.

 

노르웨이 왕 하랄 5세(Harald V)는 약관인 18세의 나이로 왕좌에 올라 지금까지 헌신하고 있다. 평민이던 소냐Sonja) 왕비와 결혼해 현대 노르웨이의 역사를 국민들과 함께하는 왕가를 이룬 주인공이며 노르웨이 국민들로부터 크게 존경 받는 군주다. 국왕은 병중이라 현재 아들인 호콘 왕세자가 왕실의 거의 모든 업무를 지시, 관리하고 있다. 노르웨이 왕가는 약 70%의 국민의 높은 지지와 사랑을 기반으로 노르웨이의 발전을 이끌어가는 구심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던 어느날 평범 이하의 삶을 살던 한 젊은 서민 아가씨가 콘서트에서 호콘 왕세자를 만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노르웨이 왕가에 커다란 소용돌이가 일기시작했다. 그녀가 노르웨이 왕세자비 메테 마릿(Mette-Marit)이라는 여인이다.

 

 

 

 

왕세자비 메테 마릿(Mette-Marit)은 노르웨이 크리스티안산에서 자란 1973년생으로 왕세자와는 동갑내기이다. 그녀 집안은 아버지가 정부로부터 극빈자 보조금을 받을 만큼 가난하였는데 1984년 11세 되던 해에 부모는 이혼한다.

가난한 메테 마릿은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하면서 어머니 밑에서 2명의 오빠, 여동생과 함께 자랐는데... 학창시절에는 지역의 클럽활동도 앞장서서 했고, 배구선수로도 활동했으며, 교환학생으로 호주에서 6개월 정도 시간을 보내는 등 활동적이기도....

그런데 그녀는 1994년 고등학교 과정을 마칠 무렵 당시 유행하던 <하우스파티>라는 마약에 빠져들었다.

 

그녀는 음악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해 자신의 고향인 크리스티안산에서 매년 열리는 <쿼트(Quart)음악축제>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는데...

여기에서 어느 날 친구의 소개로 왕세자를 만난다, 그 때 왕자 호콘은 메테 마릿에게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은 서로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왕자 호콘이 사랑하는 그녀는 그들이 만났을 당시 이미 엄마였다. 그녀에겐 아들이 하나 있었다. 23살에 낳은 마리우스(Marius)라는 남자아이인데 파티에 빠져 있을 당시 남자 친구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다. 마라우스의 친 아빠는 불량배였다고 한다. 그는 10대들을 상대로 난교 마약파티를 조직하다 적발되어 마약 보유 죄로 옥살이를 하고 있었다.

 

소탈한 성격과 반듯한 외모로 노르웨이의 최고 신랑감이었던 호콘 왕세자가 왕세자비 감으로 메테 마릿을 소개했을 때 왕가는 물론 노르웨이 전 국민은 화가 났고 그녀를 기꺼워 하지 않았다.

그녀가 미혼모라는 사실 보다는 메테 마릿의 과거  때문이었다.  메테 마릿 역시 그녀의 옛 남자 친구와 마찬가지로 마약 파티와 마약 밀매와 운반을 도운 혐의를 받기도 했다.

노르웨이는 신생아의 약 60%가 미혼모에게서 태어난다. 노르웨이는 미혼모와 혼전 임신에 대해 관대한 편이기 때문에 메테 마릿이 평민이고 미혼모라는 것보다 이전의 마약 중독과 마약 밀매 행위. 그리고 난교파티 참여가 더 큰 문제로 부각 되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녀가 오슬로의 레이브(Rave) 파티에 자주 참석을 했었다는 소문이 불거지면서 그녀에 대한 반대 의견이 더욱 커졌다.

이 레이브 파티는 빠른 비트 음악에 보통 엄청난 인원들이 함께 현란하게 몸을 흔들며 밤새도록 춤을 추는 댄스파티인데 야광 밴드나 형광 물질이 든 도구를 흔들며 흥을 돋구고 남녀 난장판으로 뛰노는 파티이다. 유럽에서는 이 파티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거의 마약을 복용하는 게 상식이라고 한다.

한 나라의 왕세자비 후보가 수천 수만 명이 모이는 집단적인 광란의 댄스 파티를 자주 드나들고 있다는 소문과 함께 이 둘의 관계가 국민에게 알려지자  국민들의 왕가에 대한 지지도는 사상 최악인 58%정도로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유학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메테 마릿에게 첫 눈에 반한 호콘왕자는 거국적 반대에도 아랑곳없이 오슬로의 한 아파트에서 동거를 시작하며 메테 마릿과 그녀의 아들인 마리우스를 보살폈다. 호콘 왕세자의 사랑은 거침 없었다. 결국 2000년12월 약혼을 발표. 약혼식 이후 쏟아지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호콘 왕자는 메테 마릿과의 결혼을 추진하였다.

 

그래도 이 예비 왕세자 부부에 대한 여론이 좋아지지 않고 부글거리자 2001년 8월  결혼식을 3일 앞두고 호콘 왕세자와 메테 마릿은 전격적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호콘 왕세자는 애인의 손을 꼭 잡고 기자회견장에 들어섰다. 그리고 메테 마릿은 눈물을 흘리며 국민들에게 고백했다.

어린 시절 하우스 파티에 빠졌던 것은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심한 반항심 때문이었고, 당시 그녀 인생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었으며,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아픈 성장 통을 겪고 있었다고... 그녀의 성생활이 문란했던 것도 사실이고 그때 아들 마리우스의 아버지를 만났고 임신을 하게 되었다고... 그러면서 메테 마릿은 아무리 과거를 돌이키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면서 이제 앞으로는 그런 생활은 모두 청산 하겠으니 더 이상 자신의 과거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이 아픈 일이 없기를 바랜다고 약 한 시간에 걸쳐 눈물로 호소했는데...

 

그녀의 그 고백 모습을 보고는 왕실에 등을 돌렸던 대다수의 언론과 국민들이 메테 마릿에 호감을 갖기 시작했고 그녀가 자신의 과거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고백한 것에 대해서는 용기 있는 선택 이라며 박수를 보냈다.

 

 

이런 우여 곡절 끝에 호콘 황세자와 메테 마릿의 결혼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 아들 마리우스가 신부 들러리로 참석한 가운데 수많은 군중의 축복 속에 서 두 사람은 사랑을 맹세했다.

결혼식은 대형 스크린과 TV로 생중계됐으며 수천 명의 국민과 유럽 각국의 왕족들이 하객으로 참석했다.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하는 축포가 연달아 터졌고 가난한 미혼모 마테 마릿은 노르웨이의 왕세자로부터 반지를 받고 엄숙히 선서함으로써 공식적인 세자비가 되었다. 결혼식이 진행되던 중 그녀는 감격하여 손수건으로 끊임없이 눈물을 닦았다.  

                             

결혼 이 후 메테 마릿 왕세자비는 2004년 잉그리드 알랙산드 공주를 출산했고, 이듬해 스베레마그누스 왕자를 낳아 마리우스까지 2남1녀를 키우고 있다.

그러나 마리우스는 다만 귀족의 신분만 획득하게 된다. 신데렐라 엄마 덕에 왕실과 아무 혈연 관련도 없는 마리우스도 일거에 귀족이 되는 영광을 안았다.

 

 

Crown Prince Haakon and Crown Princess Mette-Marit of Norway and their children, Marius, Princess Ingrid Alexandra, and Prince Sverre Magnus, celebrate National Day in traditional costumes (17 May 2009)

 

결혼 후 메테 마릿은 왕세자를 따라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 대학교에서 동양학과 아프리카 학을 공부를 하였고 오슬로 대학교에서 인문학과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다 한다.

 

신데렐라 왕세자비는 다양한 왕실 행사와 국제기구 활동의 노르웨이 대표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메테 마릿 왕세자비는 노르웨이에서 정신질환 예방활동과 아프리카 에이즈퇴치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유엔 에이즈기구인 UNAiDS 특별 대표직을 맡는 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펼치고 있다.

왕세자비가 된 후 가장 기쁜 것은 다양한 사회봉사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 이라고 말하고 있다.

 

현재 투병중인 하랄 왕이 죽으면 호콘 왕자는 왕이 될 것이다. 메테 마릿은 당연히 왕세자비에서 왕비로 등극할 것이다. 명실 공히 메테 마릿은 왕녀가 되는 것이다.

 

크리스마스는 어떤 명절일까?

방탕한 메테 마릿이 호콘 왕자를 만나 신데렐라가 되는 것처럼 모든 인류가 구원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명절이 아닐까. 형벌의 자식이 영광의 자녀가 되는 기쁨을 크게 찬양하는 날이 크리스마스가 아닐까.(장재언)

 

 

 
 
 

 

 

 

 

 

 

 

 

 

 

 

 

 

 

 

 

개는 개니까 아무데나 눕는다지만...

 

 

 

사람이 아무데나 누우면 개가 오줌을 싼다.

 

 

 

이렇게 술이 취해 전철을 타면

누가 성추행을 막아줄까?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이 말하기를

<멀건 대낮에 만취한 여인>이라고 했습니다.
 

 

 

 

 

 

 

 

 

 

 

 

 

 

 

 

 

 

 

 

 

 

 

 

 

 

 

 

 

 

 

 

 

 

 

 

김필재 기자

 

 

“남한 내에 고정간첩 5만 명이 암약하고 있으며 특히 권력 핵심부에도 침투해있다….

그쪽(한국) 권력 깊숙한 곳에 이쪽(북한) 사람이 있다….

우연히 김정일의 집무실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보았더니 그날 아침 여권 핵심기관의 회의내용과 참석자들의 발언내용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었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망명 당시 서신)

 

 

자유베트남(남베트남)은 시종일관 반미 반전(反美·反戰) 데모를 주도했던 간첩과 시민 종교단체의 조직적인 선전선동 결과 미군의 전면 철수 후 공산화 됐다.

 

남베트남은 경제력은 물론 군사력(당시 기준 세계 4위, 병력 58만 명)에서도 북베트남(월맹)을 훨씬 앞질렀다. 그러나 국가 지도자급 인사의 자제와 돈 있는 집 청년 10만 명 이상이 병역기피 및 해외 유학을 갔거나 군 출신 장군이 운영하는 사기업에서 일했다.

 

지도층의 사리사욕과 부정축재, 황금만능주의의 병폐가 체제 파괴세력들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다.

 

 

 

자유베트남은 민족주의자/평화주의자로 위장한

5만 명의 간첩에 의해 패망했다.

사진은 1966년 5월 수도 사이공에서 열린 반전시위 장면이다.

 

 

일례로 남베트남 대통령 티우는 패망 당시 철수하는 미군을 향해 ‘맹렬한 비난’을 퍼부었다. 그리고 ‘허겁지겁’ 미군이 마련한 군용기에 몸을 실었다.

 

티우를 수행한 미국의 CIA 요원은 그의 트렁크를 옮길 때마다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를 들었다. 금덩이가 한쪽으로 쏠릴 때 나는 소리였다. 미군기는 티우의 금괴를 싣고 첫 망명지인 대만으로 날았다. 티우는 이란의 팔레비나 필리핀의 마르코스에 앞서 스위스 비밀은행계좌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1973년 휴전협정이 체결되어 미군과 한국군이 전면 철수 하자 사이공에는 100여개의 애국단체, 통일 운동단체들이 수십 개의 언론사를 양산해 베트남의 좌경화 공작에 앞장섰다.

 

이들은 베트남 전쟁은 민족 간 내전으로 미국 등 외세가 내정 간섭 할 문제가 아니라면서 미국을 고립시켰다. 북베트남은 남베트남에 수많은 간첩을 파견, 동조자를 포섭하고 각 분야에 간첩을 침투시켜 혼란을 조성하는 등 정부가 힘을 집중시키기 못하도록 했다.

 

특히 목사, 승려, 학생, 직업적 좌경인사, 반전운동, 인도주의 운동 등 가능한 모든 운동체가 총동원되어 티우 정권 타도를 외쳤다.

 

 

 

전쟁반대를 주장하며 1963년 6월 11일 분신 자살한

승려 '틱쾅둑'(Thich Quang Duc) 이후 베트남에서는

종교인들의 분신자살이 끊임없이 발생했다.

 

1975년 남베트남은 북베트남 정규군의 무력침공과 베트콩의 게릴라전에 패배한 것 이상으로 이들 100여개 이상의 좌익단체의 선전전에 당했던 것이다.

 

패망 당시 베트남에는 공산당원 9500명, 인민혁명당원 4만 명, 즉 전체 인구의 0.5% 정도가 사회의 밑뿌리를 뒤흔들고 있었다.  5만 명의 월맹간첩들은 민족주의자, 평화주의자, 인도주의자위장한 채 시민 종교단체는 물론 대통령비서실장과 장관, 도지사 등 권력핵심부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간첩이었다는 사실은 미군의 전면철수 후 베트남패망으로 수많은 시민들이 죽어간 이후에나 확인됐다.

 

1967년 치러진 베트남 대통령 선거에서 차점으로 낙선된 야당지도자 쭝딘쥬도 대표적 간첩이었다. 그는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들끼리 피를 흘리는 모습을 조상들이 얼마나 슬퍼하겠냐"면서 월맹에 대한 ‘포용정책’을 주동했다.

 

간첩들이 가장 많이 침투했던 것은 시민·종교단체부패척결운동반미반전(反美·反戰) 평화운동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선전선동을 통해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대해가면서, 국방과 안보를 강조하는 사람은 전쟁에 미친 또는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 받았다.

 

 

 

베트남 전쟁 당시 자유베트남은 경제력은 물론 군사력

(당시 기준 세계 4위, 병력 58만 명)에서도

북베트남(월맹)을 훨씬 앞질렀다.

그러나 국가 지도자급 인사의 자제와 돈 있는 집 청년 10만 명 이상이

병역기피 및 해외 유학을 갔거나

장군이 운영하는 사기업에서 일했다.

 

 

반공을 외치고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애국인사, 언론인들이 다음날이면 시체로 발견됐고, 이들의 가족-친지들이 사회에서 불이익을 받았다.

 

베트남은 공산화 이후 지식인, 공무원, 군인, 종교인, 부유층, 그리고 자유 베트남 정부에 협조한 사람들은 전부 재교육을 받았다. 그들은 적대(敵對)계층으로 분류됐으며 조국을 배신한 배신자로 간주되어 승자의 보복대상이 됐다.

 

탄압과 차별, 학대와 폭정이 자행되었고 전국 각처에 재교육 수용소가 설치되어 적대계층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은 잡아 가두고 공안경찰을 증원(增員)하여 국민의 일상생활을 감시하고 다른 곳으로 움직이는 것을 통제했다.

 

특히 가혹한 육체노동을 강요했다. 노동을 최고의 가치로 규정하여 "부모의 흘린 피와 땀, 자식이 흘린 피와 땀이 합쳐야 나라가 번영한다"고 선전하면서 무자비(無慈悲)한 노동을 강요했다.

 

논과 밭은 국유화되고 영농은 철저한 3모작을, 일반 국민은 헌금을 강요 받았으며 돈이 없는 자는 노력봉사를 해야만 했다. 노동자는 한 달에 15kg의 쌀을 배급 받아 생활해야 했고, 전쟁부채 상환비, 전비(戰費)기금을 내야 했다.

 

 

자유베트남이 패망하자 미군 헬기를 타기 위해

필사의 탈출을 시도하는 사람들의 모습.

이후 베트남 사람들은 공산 치하에서 지옥을 경험하게 된다.

 

 

먹는 것을 철저히 통제하고 수중에 돈이 없게 하여 국민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는 철저한 국민재교육을 시행했다. 또한 화폐개혁을 단행하여 종래 부를 축척한 모든 것을 부정해 자살을 하는 사람이 속출했다.

 

공산주의자들의 국민 재교육은 "공무원(公務員)은 제국주의의 앞잡이로, 경찰(警察) 및 정보요원은 제국주의의 도구(道具)로, 군인(軍人)은 무력으로 총을 가지고 대항했던 사람으로, 문예(文藝)인은 민족정신을 교란시킨 사람으로, 종교인(宗敎人)은 국민을 유혹하여 미신에 빠지게 하고 우매하게 만든 사람으로, 자본가(資本家)는 국민을 착취해 강압적 노동을 시켜 반혁명에 앞장을 섰으며 국민에게 피의 부채를 지고 있다"는 죄를 물어 재교육을 시켰다.

 

이와 함께 "우리 공산당은 반역자들을 재교육 과정을 통해 사회주의 혁명에 동참할 선량한 국민으로 개조하고, 사회에 필요한 사람으로 선도할 것이며 노동을 경험하게 하여 자력갱생(自力更生)의 길을 열어준다"라고 선전했다.

 

한 수용소에 2.000명 정도 수용했으며 성(省) 별로 1개 이상이 있고 사이공 주변 등 도시 주변에는 대상자가 많음으로 여러 곳에 설치했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밀림지대에 위치시켜 탈출을 방지하고, 나무를 벌목하여 수용소를 짓고 개간하면서 식량은 월 9kg을 지급하고 나머지는 현지에서 자급자족하도록 했다.

 

 

   베트남 전쟁 당시 사용됐던 땅굴의 모습.

 

 

수용소 방침 자체가 체형(體刑) 및 학대를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어 있었고, 작업 실적에 따라서 수용소장의 재량으로 급식의 양을 결정했다.

 

따라서 제거해 버리고 싶은 적대계층의 사람은 굳이 사형을 집행하지 않더라도 제거할 수 있게 제도를 만들었다.

 

가족이나 다른 국민들, 외국(外國)의 항의를 벗어나기 위한 교묘한 방법을 강구해 냈다. 수용소 기간에는 면회가 일체 사절되었고, 편지도 1년 또는 2년에 한번 보낼 수 있었으며 의료혜택은 전무하여 병에 걸리면 바로 죽는 것이었다.

 

말라리아 등의 열병과 뱀 전갈의 독충과 영양실조 및 미래에 대한 포기는 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다. 자연스럽게 혁명에 방해가 되는 사람을 제거했다. 즉결 처분된 사람들을 포함, 그 인원은 최소 30만에서 최대 20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정확한 통계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군 출신의 경우 하사관 및 초급장교까지 수용소로 보냈으며, 공무원 종교인 경제인 월남 정부 협조자와 그 가족까지를 포함하면 최소한 100만 명 이상의 인원이 재교육을 받았다고 판단된다.

 

공산치하에서 살기를 거부한 수많은 남부 베트남인들은 즉각 해외 탈출을 시도했다. 철수하는 미군을 따라 망명길에 올랐던 1세대 탈출 자들은 미국 등 서방으로 이주하여 비교적 쉽게 그곳에서 정착할 수 있었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북한 전투기 조종사들과 함께 사진을 찍은 호지명

 

그러나 1976년부터 탈출한 대부분의 베트남인들은 안전한 이주 및 재정착의 보장 없이 무작정 국경을 넘거나, 배를 타고 공산베트남을 떠난 사람들이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다른 나라에서 환영을 받지 못했고, 동남아 일대의 바다를 정처없이 유랑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들이 바로 보트피플(Boat People)이라 불리는 베트남 난민이다.

 

1976년부터 1992년 말까지 동남아지역으로 탈출한 사람들의 수는 총 792,893명에 이르렀다. 1979년부터 1992년 말까지 동남아국가들의 난민 수용소를 거쳐 최종적으로 난민자격을 인정받아 서방 등 제3국에 정착한 난민 수는 438,436명으로 나타나고 있다.

 

김정일은 “한반도 적화(赤化)통일 달성 시 1천만 명은 이민 갈 것이고, 2천만 명은 숙청될 것이며, 남은 2천만 명과 북한 2천만 명으로 공산국가를 건설할 것”이라고 했다. 북한 공산집단의 이 같은 주장을 절대 흘려 들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운명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

 

 

 

북한은 베트남 전쟁에서 조종사,

갱도병(땅굴파기 병사) 등으로 참전해 

한국군과 미군을 공격했다.

사진은 90년대 초 인민군 유해가 북한으로 이장된 후

베트남에 남은 묘비의 모습이다.  

이들의 유해는 현재 북한군 인민군 영웅열사 묘에 안장되어 있다.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명 및 재산을 수호하는 것은 미국과의 방위공약도 아니고 공산당과의 협상도 아니다. 북한 공산 집단에 맞서 우리의 자유를 지키겠다는 의지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전쟁은 결국 ‘의지의 대결’이다.

한반도에서는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

 

북한은 핵무기를 기반으로 본격적인 ‘강성대국’ 진입시기인 2012년부터 한미연합사가 해체되는 2015년을 ‘남조선 혁명의 성숙기’로 보고 있다. 북한 급변사태에 앞서 북한에 의한 남한 급변사태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전면전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은 오히려 위험한 생각이다. 군사 안보전략은 반드시 비관론적 가정에 근거해야 한다. 근거 없는 낙관론을 배격해야 한다. 지금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철통 같은 총력안보태세를 다짐해야 할 때다.

 

 

 

자유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다.

국군의 베트남 파병은 창군 이래 최초의 해외원정이었을 뿐 아니라

미국과 함께 자유진영의 공동 방어전선의 일익을 담당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으며, 4,000여 명이 희생되는 대가를 치렀다.

사진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 중 2명의 베트남 어린이를 구출하고 있는

백마부대 장병의 모습이다.

국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참된 군인의 모습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에 대한 정보를 파악할 때 시각은 물론 미각, 촉각, 후각 등을 모두 사용한다고 한다.

 

그 중 입 냄새는 단순한 냄새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미지 전반에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취는 양치질 하면 해결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향기로운 치약의 향기마저 무력화시키는 시키는 입 냄새를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양치질만으로는 구취를 완전히 제압할 수 없음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사람의 이미지마저 손상시킬 수 있는 입 냄새를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또 입 냄새를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철저한 원인 분석만이 구취 잡는 해결책!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50%를 넘는 성인이 ‘구취로 인한 고민을 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고 전한다. 이렇게 입냄새 고민은 많은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골칫거리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대구 칠곡 맥치과의 박근홍 원장은 “잠에서 깨어난 아침에 발생하는 구취라면 대부분의 경우 수면하는 동안 구강세균에 의해 생기는 일시적인 문제로 심각한 상황이라 보기는 어렵겠지만, 어느 정도를 넘어선 구취가 지속되고 있는 경우라면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박테리아가 입안 어딘가에 남아 있던 음식물 찌꺼기 등을 분해하면서 발생하는 황화합물로 인해 불쾌한 냄새가 나는 것이 입냄새가 나는 전형적인 과정이다.

하지만 구취의 경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차 증가되는 경향이 있고, 특히 여성의 경우에는 생리기간이나 임신 중에 구취가 증가하는 경우도 있다.

또 일부의 약물을 복용함에 따라 구취가 증가하기도 하고, ‘음식물을 섭취해서 입냄새가 난다’며 식사를 피하는 경우도 볼 수 있는데 배고픔은 오히려 입냄새를 더 증가시킬 수 있어 규칙적인 식사가 도움이 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구취제거가 내과나 이비인후과 진료를 통해 개선해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구취 문제로 치과를 찾아 고민을 호소하는 환자들의 경우 구취의 원인을 구강 내에서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건강한 구강 상태를 회복한다면 구취문제에 있어서도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구취의 치료는 구취를 유발하는 구강 내 원인을 찾아내 제거하고, 유지 및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박근홍 원장의 설명이다.

 

구취를 유발하는 원인에 대한 치료로는 설태의 제거, 치주질환 및 구강 내 염증치료, 치태나 치석제거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이 후에도 올바른 칫솔질 및 혀 닦기를 생활화하고, 구강청결제를 이용하거나 인공타액을 사용하고, 구취를 유발하는 음식물 보다는 신선한 과일과 야채를 중심으로 저지방 음식들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

 


 

 ‘입냄새’는 구강건강의 전반에 대한 적색경보,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구취를 유발하는 음식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계란, 파, 마늘, 겨자류 등이 대표적인 구취유발식품이다.

 

이러한 음식물이 구취를 유발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 향 때문이 아니다. 바로 황을 포함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섭취 후에 소화기에 흡수된 황은 혈액을 따라 순환하여 폐에 도달하고, 결국 숨을 쉬거나 이야기를 하면 공기를 타고 나오는 것이다.

 

또 육류의 경우도 단백질을 많이 포함하고 있어 세균이 황화합물을 만드는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신선한 과일과 야채 등의 섭취는 구취제거에 도움이 된다.
 

이미지의 치명타가 되고, 대인관계에 있어 스스로 위축되게 만드는 구취를 예방하기 위한 방법은 구취를 유발하는 음식물을 피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적어도 6개월의 한번 이상의 정기적인 구강검사를 통해 구취의 원인이 될 만한 요소를 원천 봉쇄해야 한다.

 

또 금연과 금주, 편안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도 구취제거에 많은 도움이 된다.

 

그리고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바로 올바른 칫솔질과 치실 등의 보조제품을 사용해 항상 청결한 치아를 유지하는 것이다.
 

흔히 “칫솔질은 하루에 3번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칫솔질은 ‘음식물을 섭취할 때마다’하는 것이 정석이다. 도구를 사용하고 가지런히 정리하고, 기름칠해 놓는 것과 마찬가지로 음식물을 먹은 후 치아에 붙어 있거나, 치아 사이에 끼어있는 음식물 찌꺼기를 잘 닦아내기 위해서는 양치질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이에 대해 박근홍 원장은 “하루에 세끼 식사 후에는 물론이고, 간식이나 과자류를 섭취한 후라면 가능하면 칫솔질을 하는 것이 좋고, 물이나 과일 등 간단한 음식물 섭취 후라면 물로 입을 헹구어주는 정도라도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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