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둑질을 일삼는 사람을 도벽(盜癖)이 있다 하고 책 읽기에 미친 사람을 독서광(讀書狂)이라 합니다.
조선시대 참판을 지낸 이의준이란 사람은 평소 <옥해>라는 책에 대한 벽(癖)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관야에 불이 났습니다. 뒤늦게야 그 책을 방에 두고 나온 것을 안 그는 큰 소리로 <내 옥해...> 하며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연기 속에 뛰어들었다가 숨을 거두었습니다.
김익은 칼 수집, 정철조는 벼루 수집, 김석손은 매화 시 수집 벽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이조 시대에 무언가에 단단히 미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홍한주는 <지수염필(知水拈筆)>에서 벽(癖)을 말하기를 <남들이 즐기지 않는 것을 몹시 즐기는 것> 이라고 정의하고 이의준의 일화를 두고 <벽은 제 몸이 죽는 것을 미쳐 깨닫지 못하기에 이른 것> 이라고 했습니다.
김득신(金得臣, 1604-1684)은 엽기적(?)인 노력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마 IQ가 절대로 두 자리를 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한 그는 평생을 두고 잠시도 쉬지 않고 노력에 노력을 거듭한 인물입니다.
나는 최근 역대 시화(詩話)속에 믿기지 않는 그의 둔재(鈍才)와 무식한 노력이 전설처럼 떠돌아다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한 사람의 인간이 성실과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한계를 그가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독수기(読数記)〉한편만 읽어봐도 알 수가 있습니다.
〈백이전(伯夷伝)〉은 1억 1만 3천 번을 읽었고,
〈노자전(老子伝)〉․〈분왕(分王)〉․〈벽력금(霹靂琴)〉․〈주책(周策)〉․〈능허대기(凌虚台記)〉․〈의금장(衣錦章)〉․〈보망장(補亡章)〉은 2만번을 읽었다.
〈제책(斉策)〉․〈귀신장(鬼神章)〉․〈목가산기(木仮山記)〉․〈제구양문(祭欧陽文)〉․〈중용서(中庸序)〉는 1만 8천 번,
〈송설존의서(送薛存義序)〉․〈송수재서(送秀才序)〉․〈백리해장(百里奚章)〉은 1만 5천 번,
〈획린해(獲麟解)〉․〈사설(師説)〉․〈송고한상인서(送高閑上人序)〉․〈남전현승청벽기(藍田県丞庁壁記)〉․〈송궁문(送窮文)〉․〈연희정기(燕喜亭記)〉․〈지등주북기상양양우상공서(至鄧州北寄上襄陽于相公書)〉․〈응과목시여인서(応科目時与人書)〉․〈송구책서(送区冊序)〉․〈마설(馬説)〉․〈후자왕승복전(朽者王承福伝)〉․〈송정상서서(送鄭尚書序)〉․〈송동소남서(送董邵南序)〉․〈후십구일부상서(後十九日復上書)〉․〈상병부이시랑서(上兵部李侍郎書)〉․〈송료도사서(送廖道士序)〉․〈휘변(諱辨)〉․〈장군묘갈명(張君墓碣銘〉은 1만 3천 번을 읽었다. 〈용설(竜説)〉은 2만 번 읽었고,
〈제악어문(祭鱷魚文〉은 1만 4천 번을 읽었다......
도합 모두 36편에 이릅니다.
아무리 짧은 단문으로 된 시가이지만 이쯤 되면 미쳐도 단단히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러지 못했을 것입니다.
좋아서 그랬을까? 아닙니다. 김득신은 머리가 아둔하여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대의 손꼽히는 시인이 된 것입니다.
김득신을 생각하며 세상사를 살펴봅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렸을 때 반짝하던 재주는 어른이 되어 그만 두고 늙어서 세상에 들림이 없으니 허망한 인생을 한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함부로 몸을 굴리고 여기저기 기웃대다가 청춘을 탕진한 사람 부지기수. 무엇이 좀 잘 된다 싶으면 너나 없이 밀물 들 듯 우르르 몰려갔다가 아닌 듯 싶으면 썰물 지 듯 빠져나가는 사람들의 무리.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싫은 소리는 죽어도 듣기 싫어하고 칭찬만 원합니다.
그 뜻은 물러 터져 중심을 잡지 못하고, 지킴은 확고하지 못해 우왕좌왕 합니다. 작은 것을 모아 큰 것을 이루려 하지 않고 일확천금만 꿈꿉니다. 이런 삶에 무슨 성취가 기약되겠는가 말입니다.
오늘 날 세상을 놀래 키는 천재는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기웃대지 않고 자기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김득신 같은 성실한 둔재는 찾아보기 힘든 것 같습니다. 한 때 반짝하는 재주꾼들은 있어도 꾸준히 끝까지 가는 노력가는 만나 보기 힘들다는 느낌입니다.
세상이 갈수록 경박해지고 있다는 씁쓸함이 큽니다. (장재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