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31,  2011

 

 

 

 

Suites No.2 Op.55 - 4. Solvejg's Song

Ole Kristian Ruud - Bergen Philharmonic Orchestra

 

 

 

 

그 겨울이 지나 또 봄은 가고

또 봄은 가고

그 여름날이 가면 또 세월이 간다

세월이 간다

아 그러나 그대는

내 님일세

내 님일세

내 정성을 다하여 늘 고대하노라

늘 고대하노라

아 - - -

 

그 풍성한 복을 참 많이 받고

참 많이 받고

오 우리 하나님

늘 보호하소서

늘 보호하소서

쓸쓸하게 홀로

늘 고대함 그 몇 해인가

아 나는 그리노라

널 찾아 가노라

널 찾아 가노라

 

 

 

 

 

 

노르웨이 어느 산간마을에 가난한 농부

페르귄트가 살고 있었고

한 동네에 아름다운 소녀 솔베이지가 있었다.

둘은 사랑했고 결혼을 약속했다.

 

가난한 농부였던 페르귄트는

돈을 벌기 위해 외국으로 간다.

갖은 고생 끝에 돈을 모아 고국으로 돌아오다가

국경에서 산적을 만난다.

돈은 다 빼앗기고 고생 끝에 겨우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어머니 오제는 이미 죽었다.

 

어머니가 살던 오두막에 도착해 문을 여니 어머니 대신

사랑하는 연인 솔베이지가 백발이 되어

다 늙어버린 노인 페르귄트를 맞는다.

 

병들고 지친 페르귄트는 솔베이지의 무릎에

머리를 누이고 눈을 감는다.

 

꿈에도 그리던 연인 페르귄트를 안고

'솔베이지의 노래'를 부르는 솔베이지 ...

그녀도 페르귄트를 따라간다. 

 

 

 

 

 

 

 

 

 

 

 

 

 

 

 

그대라는 말

들어본 적 있겠지요

 

그윽한 속삭임을

되뇐 적 있겠지요

 

벼랑 끝에 섰을 때나

안개 속을 헤맬 때나

아련하게 떠오르는

모습이 있겠지요

 

무심히 흘려 보내던 은하수나

가물가물한 무지개에

애틋한 의미를

부여한 적 있겠지요

 

눈물의 강을 건널 수 없을 때

불러 보고픈 이름 있겠지요

 

그만하면 그대

아름답게 살았습니다.

할 만큼 얼추 다 하였습니다

 

 

 

 

 

 

임영준 시인

 

부산출생
서울 우신초,용산중,성남고 졸업
한양대학교 영문과 졸업
1974년 학원지 데뷔
한국문인협회 회원
세계한민족작가연합 회원
한국시사랑문인협회 회원
한국문학방송국 대표
한국문학인상 수상
문학사랑 인터넷문학상 수상
미국 거주

시집
      <무엇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가.2008>
      <새벽은 아직도 멀었나보다.2004>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2004>
      <미혹의 꿈을 꾼다.2003>
      <어떻게 내게 왔을까.2003>
      <우수의 끝.1992>
      <상실기.1981>
      <그래도 시인은.1979>
      <고독의 열기 속에서.1975>

 

 

 

 

 

 

 

 

 

 

 

 

 

살다 보면 하도 기가 막혀서 .....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래도 기도해야 된다는 생각에 무릎을 꿇기는 하지만, 도대체 무슨 말로 기도해야 되나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정신은 멍하고 생각은 텅 비어비린 듯한 그런 때가 있습니다.

 

가슴을 치며 한 숨만 내 쉬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친구여.....

 

애써 할 말을 찾지 마세요.  그냥 가만히 있으면, 그냥 가만히 엎드려 있으면 내 안에서 성령님께서 탄식하는 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나보다 더한 애타는 마음으로 나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간구해 주시는 성령님의 탄식소리를 들어 보세요.

 

성령님은 어디 먼 곳에 계셔서 핸드폰처럼 우리의 기도를 중계(繼) 하시는 분이 아니라, 내 심장에서 내가 기도할 수 없을 때 내 대신 탄식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도 기가 막힐 때는 성령님도 하도 기가 막혀 나와 똑같이 탄식하십니다.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8:26)  -   

 

 

 

 

 

 

 

 

어떻게 하면 전보다 더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을지

"예상치 못한 일에 부딪쳤을 때 네가 얻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경험이다."

일을 창조적인 경험으로 보는 이런 마음의 자세는 서서히 내 뇌리에 뿌리를 내렸고, 경력 쌓기에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늘 어떻게 하면 전보다 더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을지 고민했고, 이런 자세 덕분에 세상을 열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76p)

 

   

해럴드 제닌 & 앨빈 모스코우 지음, 권오열 옮김

'프로페셔널 CEO - 유니클로는 왜 이 책을 경영 바이블로 삼았는가?' 중에서 (지식공간)

 

 

 

 

 

 

 

 

 

 

 

 

지난 해(2010년)를 멋지게 마감한 문화 이벤트는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The Last Station)이라는 영화였다고 생각됩니다.

 

이 영화는 미국 작가 제이 파리니의 원작소설 <톨스토이의 마지막 정거장>(The Last Station A Novel of Tolstoy's Last Year>을 마이클 호프만 감독이 영화화한 것입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생애 가운데 마지막 1년을 그린 이 영화는 <위대한>소설가의 <위대한>작품세계를 그린 것이 아니고 지극히 개인적인 삶, 거의 사실에 가까운 삶을 잘 조명해주고 있습니다.

 

1820년에 태어난 레프 톨스토이는 20대 초반 소설 <유년시절>을 시작으로 죽을 때(1910년, 82세)까지 쉬지 않고 일기, 소설, 참회록, 인생론, 예술론 등을 쓴 대 작가인 것을 누구나 잘 압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82세라고 하는 노구의 몸을 이끌고 가출을 했습니다. 그것도 야밤에 아내가 잠든 틈을 이용해, 아내에게 들킬까 봐 극도로 불안해하면서 몰래 집을 빠져나가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리고 <아스타포보>라는 조그만 시골 간이역에 병든 몸으로 내려 다행히 역장의 집에서 일주일을 묵으며 간호를 받다가 결국 회생하지 못하고 가출한 지 열흘 만에 눈을 감습니다.

 

톨스토이는 끝내 아내와 만나지 못한 가운데 세상을 떠납니다.  톨스토이는 실제로 이렇게 죽었습니다.

 

톨스토이...

그는 이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젊었을 적에는 완전을 향한 열정과 에너지로 충만했고, 중년에 들어서는 인생의 허무와 회심 사이를 방황하면서 고뇌를 반복하다가 50세에 <참회록>을 썼을 정도로 인생과 자신의 삶을 철저하게 성찰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82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왜 가출을 했을까?

망령이라도 든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는 오랜 세월 동안 가출을 하기 위해 고민하며 방황했었습니다. 막내딸이 태어나던 56세에 이미 첫 번째 가출을 하려다가 주저앉았고, 그 후로도 아내를 떠날 결심을 여러 번 했었으니까 최소한 26년 동안은 가출을 고민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출을 놓고 고민했을까?

그가 쓴 <참회록>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이미 오십이 되기 전에 세상적인 생활의 한계와 인생의 절대 허무를 꿰뚫어 보았습니다. 그가 한 남자로서 그리고 작가로서 잘나가던 시절에 그는 <참회록>에서 이렇게 묻습니다.

 

<나의 작품활동이 내게 가져다 주는 명성을 생각할 때에는 이렇게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 좋다. 너는 고골리나 푸슈킨이나 세익스피어나 몰리에르나 그 밖의 온 세계의 모든 작가보다 훌륭한 명성을 얻을지도 모른다. 그래. 그게 어쨌다는 건가?>

 - - - -

<나는 내가 서 있는 기반이 엉망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생활의 바탕이 이제 깡그리 없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 나에게는 살아갈 아무 것도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생활은 정지했다. … 마술 할머니가 찾아와서 네 희망을 이루어 주마 라고 하더라도 나는 할 말을 몰랐을 것이다.>
 

그가 말한 것처럼 그는 더 이상 인생을 살아갈 어떤 이유나 희망도 붙잡을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오직 처절한 절망뿐이었습니다. 자살하는 것 외에는 길이 없었습니다. 물론 그가 바라던 꿈을 이루지 못해서가 아니었지요. 실패해서가 아니었지요.

 

그는 백작의 가문에서 태어났고, 적어도 그때까지는 실패를 모르는 인생을 살았었습니다. 그 당시의 그는 인생의 최 정점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매우 놀라운 역설이지만 그는 <최 정점이라는 위치>는 인생을 살아갈 만한 것이 못 됨을 뚜렷이 보았던 것입니다.

 

이성을 통해 생존이 불합리하다는 것. 헛되고 헛되니 헛되고 헛되다는 솔로몬의 탄식이야말로 거부할 수 없는 인생의 진실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썩는 악취와 구더기 이외에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나의 행위는 그것이 어떤 행위이건 조만 간에 모두 잊혀질 것이며, 나라는 존재도 완전히 없어져 버릴 것이다.>(참회록)고 절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결국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 후부터 그의 관심은 <신앙과 진리>가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신앙 속에 진리가 있다는 것. 그것은 나에게는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속에 허위가 섞여 있다는 것 또한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나는 진실과 허위를 발견하여 이 둘을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참회록)
 

톨스토이는 이처럼 인생에 대한 처절한 고뇌와 인식을 통해 절대 절망에 도달했고 동시에 신앙으로 회귀했습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이전처럼 살 수 없었습니다.

 

큰딸 타티아나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톨스토이는 부요 했던 모든 재산을 버리고 농민들과 같이 살고자 했습니다.

오락과 부요의 삶을 과감하게 내 던져버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 톨스토이 부부의 갈등과 불화가 눈에 두드러지게 됩니다.

 

더욱이 헨리 조지의 <토지국유론>을 읽고는 땅을 많이 소유했던 그는 <지주(地主) 생활 청산>을 선언 했고 농민들에게 영지를 나눠 주어야겠다고 나섰던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아내에게...

<사치에 빠져 하는 일 없이 그럭저럭 사는 것, 이제는 더 계속할 수 없소. 아이들의 교육 역시 내가 해롭다고 판단되는 환경에서 받게 하고 싶지는 않소. 이제는 집과 영지의 소유자만으로 있을 수는 없소. 이런 생활은 어느 구석을 봐도 견딜 수 없는 고통뿐이오. 나가든지 아니면 생활을 바꾸든지 하겠소. 우리 재산을 분배하지 않으면 안 되겠소. 농민들처럼 자기 힘으로 일하면서 살아가야 하오.>라고 말하면서 모든 소유를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줄 뜻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소피야는 <당신을 죽이겠어요. 생활을 바꾸다니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어요. 어떤 망상인지 모르지만 나는 그런 것 때문에 행복한 지금의 생활을 내팽개쳐야 하다니요. 왜 그래야 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어요.>라고 대꾸했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고 신뢰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등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톨스토이가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회심하기 이전까지는 둘 사이가 원만했었지만 회심 이후에는 점차 틈이 벌어져 나중에는 날마다 전쟁을 치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악화되었다고 합니다.

 

둘 사이에는 세계관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고, 소통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고, 추구하는 것이 다를 수밖에 없었고,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없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톨스토이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많은 것을 얻었고 누렸습니다. 그는 모든 것이 원만했고 행복했고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진리로 말미암아> 아무것도 아닌 게 돼 버렸습니다. 진리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이전의 행복은 고통의 원인이 되었고, 이전의 자랑은 수치가 되었습니다.

 

부부 간의 사랑에 금이 갔고, 가정의 평화가 흔들렸습니다. 마음으로 꿈꾸는 진리의 삶과 진리에 어긋나는 자신의 처지를 번민하면서 날마다 가출을 꿈꾸는 잔인한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나는 여기서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해봅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 10:34~3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6)>

 

이 말씀이 톨스토이에게 적중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진리를 따라 산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톨스토이의 가출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진리를 따라 살다 보면 불화와 갈등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리 때문에 꼭 불화해야 하는 것일까?

진리를 따라 살면서도 평화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진리와 함께 행복할 수는 없는 것일까?

과연 불화와 가출이 최선이었을까?

 

그러나 .....

톨스토이는 <진리>를 위해 <가출>했던 것입니다.(장재언)

 

 

 

 

 

 

 

 

 

 

 

 

영화배우 엄다혜가 전라로 열연(?)하는

연극 <교수와 여제자>

 

 

 

기자회견 하는 엄다혜


개막일인 27일 공연을 본 관객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20여분간의 알몸 연기, 3D로 촬영한 베드신과

 목욕장면 등에서 특히 열광했다.
 

 

‘공연’하면 다들 연극, 무용, 음악 따위를

떠올리게 됩니다.

한국 법에 ‘공연음란죄’가 있는데

이것은 <음란한 공연(公演)을 하는 죄>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 죄에서 공연은 이제 <공연(公然)>이

되어버린 한국입니다.

공공연히 음란한 행위를 해 성적 도덕감정을

해치는 죄인데 법은 있어도 다스리는 곳이 없습니다.

 

먹고 살만 하니까 이제는 공공연하게

저급한 음란행위를 공연이란 이름으로

자행하며 관객을 모읍니다. 

 

기자의 글을 통해 고발하기로 합니다. (언)

 



 

신동립 기자

 

서울 혜화동에서 막을 올린 연극 <교수와 여제자>.

 

예술이냐 외설인가 차원이 아니다.

이보다 더 음탕할 수 없는 지경이다. ‘에로’라는 표현으로는 모자란다. 그렇다고 ‘포르노’ 수위까지는 안 간다. 형법 망을 빠져나오며 관음(觀淫), 도시(盜視) 수요에 대고 있다.
 

극중 40대 교수는 ‘임포민’, 교수를 따르는 처녀는 ‘여성옥’이다. 연극 제목과 배역명 그대로다. 발기부전으로 마누라에게 구박받던 교수가 20세 연하여성의 극진한 섹스요법으로 기능을 회복, 가정의 평화를 지킨다는 줄거리다.
 

글래머 여우 엄다혜는 매회 20분씩 전라로 무대에 오른다. 실오라기 한 올 걸치지 않은 채 서고 앉고 눕고 엎드린다.

 

그 모습도 매우 당당한 프로페셔널이다. “극 전개에 필요한 부분이라 벗는다”는 모범답안을 비웃는다. “노출도 보고 연기도 봐라. 내 몸은 참 예쁘다”며 거침없이 하이킥 하는 누드다. 타의에 의한 알몸공개라는 기색을 전혀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은 객석의 마음도 편케한다. 일말의 미안한 감정 없이 관찰하는 눈길이 참 많기도 하다.
 

이런 연극은 강철웅 아니면 못 올린다. 1993~97년 36만명이 봤다는 외설극 ‘마지막 시도’를 만든 주인공 혹은 장본인이다. 강철웅은 ‘교수와 여제자’ 개막에 앞서 마광수라는 안전장치부터 확보했다. 마광수에게서 모티프를 가져왔다고 내세웠다. 마광수는 교수, 교수는 학자, 학자는 지성인이다. 마광수의 성 논리를 방패 삼아 “교수와 여제자는 가정을 건강하게 지키자는 메시지를 전하는 부부 화합극”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남자는 중년의 나이로 접어들수록 성적 욕망의 증가에 비해 성적 실천능력이 점점 줄어든다. ‘영계’들은 섹스의 진수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으므로 남자가 으스대고 잘난 체하며 리드하는대로 잘 따라와준다. 그렇지만 동년배 여성의 경우에는 아는 것도 많고 요구해대는 것도 많아, 가뜩이나 성에 주눅들어 있는 남성들을 더 피곤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마광수의 주장을 극의 이론적 자양분으로 활용한다.
 

강철웅은 여자의 나신 쯤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실제 성행위를 자행시킬 만큼 정신이 나간 사람은 아니다.

궁즉통, 마침 대한민국은 IT강국이었다. 요술같은 3D 입체영상을 척척 찍어내는 세계정상급 업체를 찾아냈다. 이 회사의 도움으로 벌거벗은 여체가 침대와 욕조에서 교성을 지르며 정사를 벌이는 15분짜리 영상 여러 편을 완성했다.

 

여배우의 회상 형식을 빌려 이 준포르노그래피를 모니터에 띄운다. 손님들이 일제히 3D 안경을 착용하는 순간이다. 본디 3D인 연극에 3D영상을 접목한 난센스가 묘하게, 어처구니 없게도 맞아떨어지고 있다.

 

강철웅은 “영화는 날로 발전하건만, 연극은 왜 항상 답보여야 하는가”라고 스스로 대견스러워하며 기염을 토한다.

 

 

 

 

 

 

 

 

 

 

 

 

 

 

 

뉴욕에서 온 통신


 

뉴욕에서 만난, 한국 가요를 좋아하는 한 터키인 친구의 질문입니다.

 그녀의 아이팟엔 동방신기, 휘성, 비 등  MP3플레이어 리스트의 절반이 한국의 노래입니다. 그런데 영어가 일색인 한국 가요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입니다.


 

"멜로디 자체는 너무 좋은데, 영어가 너무 많다 보니 거슬려."


 

 

유튜브에서 5천만 회에 육박하는 조회수를 자랑하는 원더걸스.

하지만 한국어버전에까지 가득한 영어 가사, 정상적인 것일까?


 

미국의 식민지가 되어버린 한국 대중가요
 


최근 몇 년간 인기 있었던 노래 속 영어 가사들을 몇 개 생각나는 대로 추려보았습니다. 공교롭게도 제목까지 모두 영어입니다.
 

    You got the wrong number. I'm sorry. Don't call me no more.
    (동방신기-Wrong number)

    Girl, pretty girl. If you wanna pretty. Every wanna pretty.
    (카라- 프리티걸)

    I'm gonna be a bad boy. I gotta be a bad boy.
    (비-레이니즘)


    Everyday I shock Every night I shock Come to me oh oh tonight so so crazy
    (비스트- shock)


 

당장 생각난 것만 이 정도입니다. 하나같이 후렴구 부분, 소위 명당자리를 영어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몇 곡 정도면 그러려니 할 수도 있지만, 언젠가부터 이렇게 우리나라 가요는 영어에 완벽하게 점령당했습니다.

 

한번 영어에 의한 대중가요 잠식, 그 역사와 문제점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중가요 영어화의 일등공신 sm기획

 


 

지금 자라나는 청소년 세대들에겐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겠지만, 제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8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영어 가사를 노골적으로 배치한 노래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영어랩을 처음으로 넣은 신해철의 '안녕'(1990), 그리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Come Back Home'(1995) 정도가 눈길을 끌었고, 대체로 국내 대중가요에서 영어 가사의 도입은 한정적이었습니다.


 


 

영어의 노골적 삽입의 시초는 아마도 SES, 플라이 투더 스카이 등을 배출한 sm기획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SES의 데뷔곡 'I'm your girl.'(1997)의 경우 인트로부터 'I like S.E.S, yo!' 로 시작되는 영어 랩을 필두로, 아래와 같은 가사가 계속해서 한국어 가사에 섞여 나옵니다. 이전에 나왔던 가수들과는 확연히 다른 시도였습니다.


 

Cause I'm your girl. Stay with me last forever yeah. Baby always in my heart.

 

뒤이어 등장했던 R&B듀오인 Fly to the sky의 앨범의 경우엔 더욱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그룹 이름에서부터, 노랫말의 영어 가사까지 모자라 앨범의 전 곡의 제목을 영어로 지어버립니다.


 

 

플라이 투더 스카이의 2집 리스트

유일한 한글 제목이 될 뻔한 '약속'도 'The Promise' 라고 부제를 달았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비단 아이돌 댄스 곡 뿐만 아닙니다.

장르를 불문하고 노래의 도입부의 랩부터 시작하여 후렴구까지 영어 삽입은 아예 기본 공식처럼 되어버립니다.

일례로, 발라드가수인 박효신의 리메이크앨범 속 '숙녀예찬'(2005)은 원곡에는 있지도 않은 영어가사 'Yes. You're mine. Do you know that? Good good good good.' 같은 단어를 마구 추임새로 삽입하기도 합니다.


 

영어면 다 멋있고 좋다?

 


 

영어 한 줄 없이도 얼마든지 멋진 노래들이 나올 수 있죠.

영어라고 더 멋있어지는 걸까요? 한국인에게 단박에 알아듣기도 힘든 언어가 뒤섞여 나오니까 그냥 '쿨'해보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전람회의 '취중진담'같은 명곡들은 그 흔하디 흔한 'love,baby' 같은 단어 없이도 오랫동안 사랑을 받습니다.

 

특히, 별 의미 없이 넣는 묻지마 식 영어가사 삽입은 한국 대중가요하는 타이틀을 달기엔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제가 들어본 가요 중 가장 실소를 금할 수 없게 만든 노래는 이것이었습니다.
 

Here I am 여기 here I am. Here I am 내가 여기에 여기 있는데

Here I am 여기 here I am. Here I am 내가 여기에 여기 있는데

(드라마 시크릿 가든 OST)

 

이 가사를 한번 한국어로 번역해 볼까요?

 

여기에 내가 있는데 여기 여기에 내가 있는데

여기에 내가 있는데 내가 여기에 여기 있는데

여기에 내가 있는데 여기 여기에 내가 있는데

여기에 내가 있는데 내가 여기에 여기 있는데

 

?? ?? ??

 

 


 

멜로디 자체는 좋습니다.

그런데, 한번 가사를 읊어보세요. 개그맨 허경환이 부른 노래라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무슨 한국어 학당 연습용 테이프도 아니고, 같은 말의 무한 반복. 작사가의 역량 부족을 영어 번역으로 때웠다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영어 가사가 노래에 꼭 필요한 부분이 아니라면, 작사가들 스스로 진지한 고민을 가지고 작사에 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영어 발음이 한국어에 비해 더 유(柔)하기 때문에 사용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것은 작사가로써의 직무유기입니다. 

 

만약 우리나라의 시인이, 소설가가, 영화감독이 글씨가 폼 난다고, 사운드가 멋드러진다고 작품의 중요부분을 전부 영어로 처리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것이 아름답고 세련된 것일까요?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모든 가사를 허밍으로 처리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국에선 빵 터지는 '프리티 걸'
 


 

제가 아는 여자 유학생의 이야기입니다.

2년 전, 3인 1실의 기숙사 방에서 카라의 '프리티 걸'을 듣고 있었습니다. 아시겠지만 노래에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카라 뮤직비디오 중에서(저작권자 DSP Entertainment.)


 

If you wanna pretty, Every wanna pretty.
안된다는 맘은 No no no no.


이 부분을 들은 미국인 친구들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는 큰 소리로 웃습니다.


 

 

Did she just say, "If you WANNA pretty?" Hahahahaha!

"지금 쟤 '만약 이쁜싶다면' 이라고 한거야?ㅋㅋㅋㅋㅋㅋ"

 

이 가사는 문법 자체가 에러입니다.

종종 팝송에서도 3인칭 단수에 doesn't 를 don't 등으로 바꾸는 등의 운율을 위한 허용은 종종 있지만 If you wanna pretty.는 해석 불가의 표현입니다.

 

굳이 말하자면, 어떤 동남아시아 가수가 한국어 노래를 작사했는데 "만약 이쁜싶다면~" 라고 불렀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떨까요?


 

손발이 오그라들게 하는 한국가요
 


 

혹자는 영어 가사가 한류의 세계화에 이바지할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글쎄요.

한국식 영어 발음도 큰 문제입니다. 우리나라는 영어가 모국어인 나라도 아니고, 필리핀처럼 자신들만의 영어 스타일이 확립되어 모국어로 쓰이는 나라도 아닙니다.

한국 노래를 즐겨 듣고, 한국어를 배운 한 미국인 친구는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한국어 부분이 차라리 듣기 편하다. 영어 가사가 나오는 순간 너무 어색해서 끄고 싶어진다."


 

세계화? 초난강 수준은 되어야 한다.
 


 


 

혹자는 영어가사의 도입은 한류 열풍 등 세계화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위대한 탄생'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이 방송에서는 외국인들이 그럴듯하게 한국 노래를 부르지만, 우리 귀에는 '거죠~' 를 '~고죠' 라고 만 발음해도 어색해서 웃음이 터지곤 합니다. 

 

우리 귀엔 제법 괜찮은 발음으로 들리는 보아의 "Eat you up."이나, 유학파라는 클래지콰이의 노래도 미국인들이 듣기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원더걸스의 경우는? 오히려 원더걸스의 어설픈 발음이 '귀여움'으로 받아들여져 인지도에 도움이 되긴 했었습니다.)

 

여담으로, 제 주변친구들이 듣기에 발음 면에서 Perfect하다는 한국 가수들은 모두 교포 출신인 박준형(god), 솔리드, 윤미래 정도였습니다.

 

사실 북유럽 가수들 중에는 영어 가사로만 이루어진 노래로 빌보드에서 놓은 순위를 차지하는 경우도 흔히 있습니다만,

 

그들은 기본적으로 상당한 수준의 회화가 이미 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우리 귀에 최소한 초난강의 '정말로 사랑해요'(2002) 정도로 능숙하게 부를 정도의 현지어 구사 실력은 되어야 명함을 내밀던지 말던지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보아의 미국 진출곡 Eat You Up 뮤직비디오 중에서

저작권자 sm기획. www.smtown.com



 

어색한 영어가사, 한국 가요의 세계화에 도움될까? 
 


 

 

이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영어권 국가를 떠나서, 한류의 진원지인 일본/중국/베트남/태국 등의 나라에서 과연 영어가 들어간 부분을 더 멋스럽고 멋있다고 생각할까요?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작사가나 음반제작자분들은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음식, 순수예술,영화 등 다른 분야는 한국의 스타일을 최대한 고수하면서 세계화를 추구합니다.

 

사실 현대의 대중가요는 이미 사용하는 악기부터 서양의 것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럼 적어도 가사만큼은 한국어만의 특색을 조금이라도 더 살려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통속에서 노는 어린이들

 

 

 

 

불타는 카이로

 


 

 한 시위자가 28일(현지 시간) 이집트 카이로에서

불타는 장갑차를 바라보고 있다.

이집트 전역에서는 30년간 독재를 해온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Goran Tomasevic

 

시위자 붙잡는 이집트 경찰

 


 

경찰관들이 28일(현지 시간) 이집트 카이로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이는 남성을 붙잡고 있다.

이집트 전역에서는 30년간 독재를 해온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Amr Abdallah Dalsh

  

튀니지 이어 예멘에도 반정부 시위 물결

 


 

 예멘 나헤즈의 라드판에서 행진을 하고 있다.

‘재스민 혁명(튀니지 시민혁명)’에 자극을 받은 예멘 국민들은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필리핀, 안타까운 추락 사고 현장

 


 

 구조대원들이 27일 필리핀 마닐라의 마카티 금융지구의

한 공사 현장에서 건물 아래로 추락하는 노동자들을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날 사고로 최소 10명의 노동자가 숨졌다

 

가장 뛰어난 중년의 뇌

 


 

 저자 바버라 스트로치는 “중년의 뇌가 두각을 나타내는 부분은

판단력, 종합능력, 어휘력, 직관, 통찰력 등이다”라고 설명한다.

중년의 뇌는 신속하게 요점을 이해하며 젊은 동료들보다

더 빨리 논의의 핵심을 파악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기간 : 2011년 1월26일~2월1일
장소 : 서울 종로구 관훈동 소재 가이아 갤러리
 

 

 

작가 송벽은 황해도 출신으로 7년간 북한에서 선전화를 그리다가

지난 2002년 탈북한 뒤

공주사범대와 홍익대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송벽은

한국에 와서 내가 얼마나 속고 살았는지 알게 됐고,

분노를 삭이듯 그림을 그렸다"며

이번 전시회가 많은 사림이 아직도 자유를 모르고 살아가는

북한 주민들의 현실을

마음으로 느끼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에서 송벽은 "과거, 현재, 미래"를 주제로

북한의 실상을 보여주고,

"벽"을 깨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을 표현했다.

 

 

 

 

한이라는 집단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자유의 억압...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에서 유일무일한

집단적 만행이 지속되는 곳은 단 한 곳.

북한.

그러나 그곳 사람들은 누구나 가장 기본적이며

가장 원초적인 자유를 꿈꾼다.

 

 

작가인 나는 그 곳에서 살아왔고

그 시절 나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나의 기억을 그려보면서

하나 하나 작품화 하였다.

 

 

 북한에서 태어나 30년 가까이 주체사상의 통제 밑에 익숙하게 생활해 왔다.

 

 

 그곳에서의 삶, 실제로 체험하지 않은 이들이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은 너무나 비참하다.

 

 

자유도 없고 김일성과 김정일을 위해서 일개미처럼 일하며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충성을 강요 당하고

거대한 동상과 초상화 밑에서

 

 

 매일 머리를 수그리고 복종해야 하는 세계,

아마도 세계 어느 곳이든 북한과 같은 나라는 아마도 존재하지 않다고 본다.

 

 

 

 

 

 

현재

 

 

 

언론의 자유, 종교의 자유, 예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마음대로 느끼지 못하고 아직도 분단 초기의 냉랭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

하나의 거대한 감옥 같은 나라.

 

 

그 누가 뭐라 해도 내가 살아온 세상

그곳 사람들의 생활 하나 하나가

내가 겪었고 제3의 나라를 거처

이곳에서 우선 배고픔을 해결하고

손가락이 잘려나갔던 그 옛날의 나의 감옥 생활과

 

 

 

부모 형제가 죽어 나가도 찾아갈 수 없는 생생한 죽음의 땅,

혈육의 뼈가 있어 그리움의 땅,

북한의 현실은 이러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숨어 있는 자유가 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을 마음에 새겨 글로 토하면 문학이요

손으로 붓을 놀리면 미술이고

누르거나 튕겨내면 음악이고

몸으로 비틀면 춤이 된다.

 

 나의 예술은 내 삶의 덧없음과 회한과

고통과 슬픔으로 숙성되며

그것들을 통해서 새로운 사상으로 승화된다.

 

 

 

 

나는 과거의 잔영들을 가슴속 깊이 새기며

현재 나의 메시지로 전달하는 작가이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미래

 

 

 

 벽은 허물어 져야 되지 않느냐.

나는 진정한 <영원한 자유>란 무엇인가에 대해 물어보고 싶다.

 

 

 

우리가 염원하는 <영원한 자유>

그것은 엇갈린 역사 속의 우리 모두의 과제이며,

우리 모두가 꿈꾸는 이상향이다.

 

송벽

 

 

 

 

북한과  남한의 자유

 

 

 

김정일  풍자화 <벗어라>

 

 

 

 

 

 

 

구제역이 전국을 휩쓸고 있다. 한국 축산 농가가 기르는 가축의 십분의 일에 해당하는 200만 마리가 넘는 소와 돼지를 도살 처분되고 게다가 독극물이 없어서 생매장까지 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앞으로 해동이 되면 도살 처분한 가축들의 피가 4대강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이 엄청난 재앙이 왜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어야 하는가? 모두들 어리둥절해하며 정부의 무능함을 비난하고 있다.

과연 그것만이 능사인가?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를 종합해본다.
 

그 첫째는 공장식 사육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다.

 

좁은 국토에서 많은 가축을 키우려니까 우리에 가두어 놓고 키운다. 가축들도 운동을 하고 햇볕을 쬐어야 건강하고 면역력이 있는데 우리에 가두어 두니 면역력이 없어지고 병원체가 가축에게 침투하면 쉽게 발병하게 된다. 또 집단적으로 사육하기 때문에 한 마리의 가축이 발병하면 곧바로 다른 개체에게도 전염이 되면서 많은 가축들이 구제역에 감염되게 되는 것이다.
 

공장식 사육은 짧은 시간 안에 중량이 많이 나가는 가축을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좁은 우리에 꼼짝 못하게 가두어 놓고 사육하므로 면역력이 약해진다.
 

둘째는 가축의 사료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소는 되새김질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풀이나 짚을 먹어야 하는데 중량이 많이 나가는 소를 만들기 위해서 곡물 사료를 먹이게 되고 그 때문에 중성이어야 할 소의 위장이 산성이 되면서 소가 침을 흘리고 면역력이 없으니 병원체가 소에 침투하게 되면 발병하게 되는 것이다.

가축의 발병을 막기 위해 항상 항생제를 사료에 섞어서 먹이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 것이고 오히려 바이러스의 변형을 가져와 사람들이 대처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또한 사료는 대부분 미국에서 수입되는데 수입 사료 곡물의 90% 이상이 GMO(유전자조작 농산물)이라는 사실이다. GMO(유전자조작 농산물)은 인간에게 어떤 해를 가져올지 아직은 아무런 검사 결과가 나와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런 곡물을 먹은 사람이나 가축이 어떤 해를 입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셋째는 품종개량이 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한우는 나름대로 우리 환경에서 적응하여 온 품종이기 때문에 우리 풍토에서 발병되는 병원체에 나름대로 면역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체중이 많이 나가는 개체를 만들고 또한 사람의 입맛에 맞는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그에 맞게 개량하면서 면역력이 약해지게 되고 병원체가 가축에 침투하면 쉽게 발병이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결국 구제역은 창조의 질서를 어긴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재앙이 되어버린 구제역 그 근본적인 문제부터 해결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동네에 고급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예배당도 네 군데나 새로 문을 열었다


아파트로 솟아오른 십자가의 불빛은
밤을 지켜 새벽이면 빈혈이 깊어가도
그야 어떠랴, 아름다운 일이다


요즘 세상에서 유행하는 말로
기죽지 마, 기죽지 말라고
소리소리 저렇게 자지러지면서도
하늘에 먼저 가서 닿으려는 발돋움
그야 어떠랴, 어여쁜 일이다


다만 이것만은 걱정이다
외롭던 성자의 피에 젖던 고난이
오늘은 에드벌룬처럼 떠 있어도 되는지


유명 메이커의 상표 속에서
저토록 헤픈 눈짓으로 손을 까불어도 되는지


화려한 십자가가
죄 짐 보다 무겁게 어깨를 짓누르는 새벽


기죽지 마, 기죽지 마,
나는 얼토당토 않게
기죽지 않을 것만 결심하였다
 

 


 

이향아 시인

 

출생 1938년 7월 24일 충남 서천군

데뷔 1966년 '현대문학' 등단

학력 경희대학교

 

 

 

 

 

 

 

 

 

 

 

 

"남편 누나의 남편은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처남의 부인은 뭐라 호칭하죠?"

 

민족 최고의 명절 설이 다가왔다. 명절은 그 동안 자주 보지 못하던 가족들이 만나 정을 나누는 좋은 기회지만 가족들이 모이면 종종 '호칭' 때문에 곤란한 경우가 많다.

특히 결혼 후 새 가족이 생긴 경우에는 가족에 대한 호칭을 익히는 일이 필수다.

 

자주 사용하지는 않지만 꼭 알아둬야 할 가족 간 호칭을 주부커뮤니티 미즈에서 소개한다.

 

◇시부모 앞에서 '오빠' 부르면 안돼요

 

결혼해서 가장 많은 실수를 하는 부분이 부부끼리 호칭을 부를 때다. 연애할 때처럼 편하게 '오빠' 또는 '누구씨'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시집 식구들 앞에서는 남편을 '그이' 또는 '저이', '사랑'이라고 불러야 하며 아이를 낳은 후에는 '아비', '아범'이라고 칭해야 한다.

 

친정 식구들 앞에서는 성을 붙여서 '~서방' 또는 '그 사람'이라는 호칭을 쓴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남편, 그이, 애 아빠, 바깥 양반, 남편'으로 칭하면 된다. 부부끼리 부를 때는 '여보, 당신'이라 부르면 된다.

 

시부모는 '아버님', '어머님'으로 불러야 하며 시집식구들에게 말할 때도 '아버님', '어머님'으로 칭해야 한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시아버님', '시어머님'으로 말하고 아이들에게는 '할아버지', '할머니'로 말한다. 시부모가 허락을 한다면 '엄마, 아빠'로 불러도 무관하지만 시부모보다 더 어른이 있는 경우에는 주의해서 호칭해야 한다.

 

남편의 손위 형제들은 '아주버님', 손아래 형제 중 결혼한 형제는 '서방님', 결혼하지 않은 형제는 '도련님'으로 부른다. 남편 형의 아내는 '형님', 남편 동생의 아내는 '동서, 자네'로 부르며 아이들에게는 '큰어머님', '작은어머님'으로 말하면 된다.

이때 여자는 남편의 형의 아내인 손위 동서가 나이가 적더라도 남편의 위계를 따라 '형님'이라고 불러야 한다.

 

남편의 누나는 '형님', 여동생은 '아가씨, 아씨, 애기씨'로 부르는데 남편 누나 또는 여동생의 남편은 '~서방님, 고모부'로 부른다. 아이들에게는 '고모' 또는 '고모부'로 칭하면 된다.

 

◇내 아내는 '그 사람'

 

결혼한 남성은 아내를 친가에서는 '어멈'이나 '그 사람', '~어미'로 칭하고 처가에서는 '집사람', '안사람', '그 사람', '~어미'로 부르는 것이 맞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엄마, 처, 집사람, 아내'라고 칭하면 되고 부부끼리 호칭은 '여보'나 아이이름을 붙여 '~엄마' 같은 호칭이 맞는데 '당신'이라고 하거나 '~씨'라고 불러도 된다.

 

처가부모는 '장모님, 장인어른' 또는 '어머님, 아버님'으로 부르고 아이들에게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로 지칭한다. 아내의 오빠는 '형님'이라고 부르며 남동생은 '처남'이라고 칭하는데 아이들에게는 '외삼촌' 또는 '외숙부'로 지칭하면 된다.

 

남자들은 혼인을 해도 아내와의 서열에 따라 대접하지 않고 자신과 연령차이로 상대하게 되는데 손위의 처남이나 처 삼촌, 손위 동서라도 나이가 친구같이 지낼 정도면 친구로 사귀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손위 처남은 형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처남'이라고 부른다.

 

아내 오빠의 부인은 '아주머니, 처남댁'이라고 칭하고, 아내 남동생의 아내는 '처남댁'으로 지칭하는 것이 보통인데 아이를 낳았으면 아이 이름을 붙여 '~어머님' 또는 '~자친(慈親)'이라 부른다. 아내 오빠의 부인을 아이들에게 말할 때는 '처남댁'이라고 하고 아내 남동생의 부인은 아이들에게 '외숙모'라고 지칭한다.

 

아내의 언니나 여동생은 '처형', '처제'로 부른다. 아내 언니의 남편은 '형님, 동서'로 칭하고 아내 여동생의 남편은 '동서, ~서방'으로 부른다. 아이들에게는 '이모부'로 칭하면 된다.

 

형의 아내는 '아주머니, 형수님'으로 부르고 집안 어른에게 형수를 말할 때는 '아주미, 아지미, 형수'라 칭하며 남에게 형수를 말할 때는 '형수씨'라고 한다. 동생의 아내는 '제수씨'라고 부르고 집안의 어른에게 동생의 아내를 말할 때는 '제수'라고 칭한다.

 

누님의 남편을 부를 때는 '매부'라고 하며 누이동생의 남편은 '~서방, 자네'라고 한다. 누님의 남편을 남에게 말할 때는 '매부', 누이동생의 남편은 '매제'라고 칭한다.  

 

 

 

 

끊다

발음:끈타

 

1 실, 줄, 끈 따위의 이어진 것을 잘라 따로 떨어지게 하다.

 

실을 끊다

테이프를 끊다

 

- 참고예문

- 고무줄을 끊다

- 암호의 누설은 조직의 동맥을 끊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출처 : 조정래, 태백산맥

 

2 관계를 이어지지 않게 하다.

 

교제를 끊다

발길을 끊다

소식을 끊다

연락을 끊다

거래를 끊다

관심을 끊다

왕래를 끊다

대를 끊다

외부와 일체 접촉을 끊어 버렸다.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산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 동안 부모의 정을 끊고 그렇듯 각별하던 동무들에게도 근년에 와서는 엽서 한 장 안 보내고 지냈었다. 출처 : 심훈, 영원의 미소

 

그가 무욕 무념의 상태에서 문밖출입마저 끊게 된 것은 병도 병이었지만 외동아들 종두에 따른 근심이 더 깊었기 때문이었다. 출처 : 김원일, 불의 제전

 

3 하던 일을 하지 않거나 멈추게 하다.

 

흐름을 끊다

송금을 끊다

밥줄을 끊다

지원을 끊다.

 

4 습관처럼 하던 것을 더 이상 하지 않다.

 

술을 끊다

담배를 끊다

커피를 끊다

 

- 참고예문

 

- 노름을 끊다

- 그는 침식을 끊다시피 하며 일찍이 듣지도 읽지도 못했던 이 책에 몰입해 있었다. 출처 : 한무숙, 만남

 

5 공급하던 것을 중단하다.

 

전기를 끊다

수도를 끊다

가스를 끊다.

 

6 배달하던 것을 배달하지 못하게 하다.

 

신문을 끊다

우유를 끊다.

 

7 길 따위의 통로를 막다.

 

수송로를 끊다

보급로를 끊다.

 

8 말을 잠시 중단하다.

 

그는 말을 잠시 끊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남녀는 한동안 자신들의 일을 생각하느라고 대화를 끊었다. 출처 : 유주현, 대한 제국

 

- 참고예문

- 태공은 하려던 말을 다시 끊고 뒷짐을 지고 머리를 숙이고 다시 거닐기 시작하였다. 출처 : 김동인, 젊은 그들

- 구경꾼들은 숨을 끊고 안 천총과 막쇠패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출처 : 김원일, 불의 제전

- 내 이 말에 아버지 대신 엄마가 울음을 딱 끊고 푸념을 시작했다. 출처 : 박완서, 도시의 흉년

- 무출은 분한 욕설을 내뱉다가 누가 옆에서 듣지나 않았는가 하여 말을 끊고 좌우를 살피다가 이었다. 출처 : 유현종, 들불

- 호흡은 뚝 끊어 더운 심장을 차갑게 식히는 완벽에 가까운 사격의 자세를 취하고…… 출처 : 윤흥길, 묵시의 바다

 

9 말이나 문장 따위에서 사이를 두다.

 

문장을 끊어 읽다

그는 큰 목소리로 또박또박 끊어서 말하였다.

한참을 생각한 뒤에 한마디씩 한마디씩 끊어서 똑똑히 대답하였다. 출처 : 김동인, 운현궁의 봄

 

- 참고예문

- 석호는 냉랭하게 말을 한 마디씩 꼭꼭 끊어 가며 떡 먹듯이 일렀다. 출처 : 현진건, 적도

- 한참만에야 입을 연 기응은 등판을 당겨 부싯돌을 그으며, 한 마디 한 마디씩 끊어 가며 천천히 말한다. 출처 : 최명희, 혼불

 

10 옷감이나 표 따위를 사다.

 

한복감을 끊다

 

- 참고예문

- 기차표를 끊다

- 화물을 인수하고, 자리도 보기 위하여 먼저 와 있던 태기와 석준이 입장권을 끊어 가지고 마중을 나왔을 땐 다른 승객들은 거의 플랫폼을 빠져나가고 없었다. 출처 : 한수산, 부초

- 심지어 넝마가 다 된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보면, 장에 가서 옷감까지 끊어다가 소문 안 나게 해 입힌 것이 한두 벌이 아니었다. 출처 : 심훈, 상록수

- 금쪽 같은 돈 주고 장에 가서 삼베 끊어다가 했답디다 ! 출처 : 박경리, 토지

- 얼마나 밀렸는지 겨우 세시 차표를 끊었어요. 시골엔 밤이 깊어 도착하겠어요. 출처 : 김원일, 노을

 

11 수표나 어음 따위를 발행하다.

 

출금 전표를 끊다

- 참고예문

- 수표를 끊다

- 진단서를 끊다.

- 100만 원짜리 수표로 끊어 주세요.

 

12 목숨을 이어지지 않게 하다.

 

목숨을 끊다

생명을 끊다

 

- 참고예문

- 숨통을 끊다

- 물결 흐르는 대로 떠다니다가 이젠 더 이상 흘러갈 곳이 없다고 생각되면 미련 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릴 작정이었다. 출처 : 윤흥길, 완장

- 컥 외마디 숨을 끊으며 엄마가 축담에서 마당으로 굴러떨어졌다. 출처 : 김원일, 노을

 

13 전화 통화의 송수신을 멈추게 하다.

 

상대편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14 거래나 셈 따위를 매듭짓다.

 

외상값을 끊다

노무자들은 밀린 일당을 끊어 달라고 아우성이다.

 

15 목표 지점을 통과하다.

 

백 미터를 11초대에 끊는 선수.

 

 

관용구 및 속담

 

[관용구] 간장을 끊다

몹시 슬프고 애달프다.

- 간장을 끊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관용구] 목숨(을) 끊다

스스로 죽거나 남을 죽이다.

- 어떤 이유로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관용구] 발그림자도 끊다

같은 관용구 : 발(을) 끊다

- 이런 일이 한 번 있은 뒤로는 초저녁에 혹간 찾아오던 사람들까지도 발그림자를 끊었다.

 

[관용구] 발(을) 끊다

오가지 않거나 관계를 끊다.

비슷한 관용구 : 발그림자도 끊다

- 그는 올해부터 술집에 발을 끊고 가정에 충실하기로 마음먹었다.

- 친정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불효하는 오빠와 올케의 얼굴 보기 싫다고 발을 끊었고…. (출처 : 한승원, 해변의 길손)

 

[관용구] 손(을) 끊다

교제나 거래 따위를 중단하다.

- 나쁜 친구들과 손을 끊어라.

- 그는 이제 건축 일에는 손을 끊었다.

 

[관용구] 숨(을) 끊다

(비유적으로) 스스로 죽거나 남을 죽이다.

 

[관용구] 곡기를 끊다[놓다]

음식을 먹지 못하거나 먹지 아니하다.

- 아씨가 염병을 앓듯이 몸이 불덩이같이 달아오르고 곡기를 끊은 채 생사지경을 헤매는 동안도 박 씨는 그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출처 : 박완서, 미망)

 

[관용구] 창자를 끊다

몹시 애가 타거나 슬프다.

- 창자를 끊는 통곡 소리

- 창자를 끊는 듯이 구슬프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전도서 12:13)

 

성경을 따라 솔로몬 왕의  일생을

어떻게 요약할 수 있었을까요?

 

젊었을 때 그는 <하나님께서 내게 큰 지혜를 주셨다>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년이 되어서는 <내가 가르친 것을

내가 실천했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하는 했을 것입니다.

 

평화와 번영이란 단어로 표현될 수 있는

그의 통치기간 동안 솔로몬은 <영적인 병>들을

키워 나갔던 것입니다.

 

그가 늙었을 때 <왕비들이 그 마음을 돌이켜

다른 신들을 좇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 부친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게>

(왕상 11:4)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게 되고

예전의 모범적이었던 그의 인생에

슬픈 결말이 찾아왔습니다.

 

전도서에서 솔로몬이 여러 번에 걸쳐 헛되다

(무의미하다)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그가 인생에 환멸을 느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한때 현명했던 이 왕은

모든 것을 가졌다가 그것들을 다 잃고 나서

깊이 후회한 후에 마지막 결론을 내리며

전도서를 마칩니다.

 

1. 하나님을

2. 두려워하여라

3. 그분이

4. 주신

5. 계명을

6. 지켜라

 

(전도서 12:13, 표준새번역).

 

 

우리도 이 여섯 단어에 주의를 기우려야 합니다. 

세상의 쾌락들은 무의미하며 헛된 것이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따른다면 의미 있는

목적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자막에 눈으로 볼 수 없는 극히 짧은 순간에 '콜라를 마시고 싶다'는 글자를 몇 차례 내 보낸다면 어떨까.

콜라 판매가 급증한다.

눈은 글자를 읽지 못해도 뇌가 그것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뇌의 무엇이 그렇게 하는지는 잘 모른다. 여전히 뇌는 신비의 영역이다.
 

 

 


 

 

눈이 아닌 뇌만으로도 본다=
 

1975년 미국의 한 극장에서 극장 주인이 자막에 ...

'Drink Coca-Cola(콜라를 마셔라)'

'Eat Popcorn(팝콘을 먹어라)'이라는 문구를 몇 차례 관람객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짧은 순간에 넣었다.

결과는 놀랍게도 콜라 판매는 17%, 팝콘은 58% 늘었다.
 

관람객들이 전혀 눈으로는 그 글자를 읽지 못했어도 뇌는 알아차린 것이다. 관람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 글자의 주문에 따른 행동을 한 셈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역하자극'이라고 한다.
 

200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부시 후보는 민주당 앨 고어 후보를 공격하기 위해 부시 측 정치 광고에 30분의1초 동안 'RATS(경멸조의 속어)'를 화면 가득히 내 보내기도 했다.
 

그런 짧은 순간은 눈으로 글자를 인식하지 못한다. 역하자극을 이용하자는 것이었다.

 

어느 한 백화점에서는 극히 작은 소리로 도난 방지 관련 메시지를 방송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상업적인 역하자극 광고를 금지하고 있다.




  

 

머리 통째로 이식 가능할까=
 

1970년 당시 미국 오하이오주 한 대학 교수였던 로버트 화이트 박사가 원숭이 머리 이식 수술에 성공했다. 원숭이는 수술이 끝난 뒤 빛에 반응을 보이고, 수술진을 깨물려고도 했다. 원숭이는 수술 뒤 8일간 살았다.
 

98년에는 화이트 교수팀은 원숭이 머리를 완벽하게 바꾸는 수술에 성공했다.

그는 현재 정년퇴임 했지만 사람의 머리를 통째로 이식하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머리를 제외한 몸통을 기증할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하반신이 마비된 한 척수장애인도 화이트 박사한테 몸통 이식수술을 받으려 하고 있다.
 

화이트 박사는 "몸통도 간이나 심장 등 장기 이식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해마는 임시 기억 저장소=
 

해마는 뇌 속 한중간에 있는 작은 부위다. 해마를 다치면 다친 이후의 일은 기억할 수 없다.
 

이런 환자에게는 방금 만난 사람도 돌아섰다 다시 오면 역시 처음 보는 사람이다.
 

해마는 기억이 영구 기억으로 새겨지기 전에 임시로 머무는 곳인데 그 기능이 고장났기 때문이다.
 

해마의 비밀은 한 의사가 50년 미국의 H.M이라는 간질 환자의 뇌를 수술하다 해마를 잘라낸 게 실마리가 됐다.
 

H.M이 매일 봤던 의사도 처음 본 사람인 양 볼 때마다 인사하는 것을 이상히 여긴 의사의 관찰로 그 기능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강원대 심리학과 강은주 교수는 "이 외에도 실어증 관련 브로카 부위 등 상당수 인간의 뇌 연구 성과는 H.M처럼 뇌를 다친 사람들로부터 나왔다"며 "기능성 MRI 등의 출현으로 뇌 연구는 비약적인 발전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뇌에는 사람 얼굴만 알아보는 부위가 있다. 이곳을 다치면 다른 사물은 멀쩡하게 보는데 사람 얼굴만 못 알아본다. 뇌에는 움직이는 동작을 볼 때만 작동하는 부위도 있다.
 

또 공간상의 주의를 통제하는 뇌를 다친 사람에게 사람을 그리라고 하면 예를 들어 왼팔 (주로 장애가 좌측에 나타나기에 오른팔을 안 그리는 경우는 드물다) 또는 오른팔이 없게 그린다.

이런 사람은 시야에 들어온 접시의 왼쪽에 담긴 음식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음식을 먹지 않고 남기기도 한다.

 

◆명상은 뇌를 활발하게 한다=
 

명상을 하면 우울증이나 고혈압.스트레스 등이 완화된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즉, 뇌의 활동을 훈련을 통해 조절함으로써 호르몬 분비 등도 달라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천안 순천향의대 안의태 교수는 "운동은 땀을 흘리고 장기를 움직이게 하는 교감신경을 활발하게 하지만 명상은 스트레스 등을 이완시키는 부교감신경을 활발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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