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대교회-모바일 교회
- 행동하는 교회 -
모바일(mobile)을 다른 말로 포터블(portable)이라고 이해 할 수 있다. 포터블이라는 용어는 모바일의 초기 버전 정도로 이해 될 수 있겠다.
포터블 교회라는 용어는 이동식 교회의 인상을 주어 자칫 축소된 교회 이미지를 줄 수 있으나 포터블 교회라는 개념을 통해 현재 누리고 있는 교회 안에서의 은혜를 내가 이동하는 모든 공간, 삶의 영역에서 맛볼 수 있게 된다고 이해하면 좋다.
마치 유원지에 놀러 가서 돗자리를 펼치듯이, 교회를 가지고 다니다 필요한 곳에서는 펼쳐서 예배하고 사역하는 개념이다.
모바일이라는 용어에는 보다 진보적으로 교회된 내 자신이 서 있는 모든 곳이 교회가 되는 개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내가 있고 말씀이 존재한다면 이동식 교회로서의 기본적인 준비가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하신 곳에서는 떠나라고 하셨다(눅 9:5). 바울은 그의 사역 초창기 유대인들을 향해 복음을 전하다가 별다른 성과가 없음을 빠르게 깨닫고 이방을 향해 복음을 전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전환하였다.
전방개척 지역에서 불가피한 이동 상황이 있을 경우 건축된 교회를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 하지만 모바일 교회는 이동이 가능하다. 어쩌면 이러한 방법으로 이방을 위해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은 시대적인 사명,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성이다.
고린도전서 9장 20-23절을 통해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라고 말했다.

사도바울의 초상화
바울은 복음을 이방인들에게나 유대인들에게 전할 때 일방적으로 자신의 주장만을 피력하고 돌아서는 방식의 선교를 채택하지 않았다.
또는 주입식 전도 방식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그는 모바일 선교 방식으로 각 영역과 계층의 사람들에게 접근하여 그들의 문화와 언어로 융통성 있게 대화 하였다.
여기서 모바일이란 개념을 살펴본다면, 모바일은 단순하게 이동성, 기동성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행동하는 교회로서의 철학을 담고 있다. 그리고 생각의 전환, 포용성에 관련한 말이 될 수도 있다.
더불어 모바일이라는 단어에는 융통성(flexibility)이라는 의미가 첨가되게 된다.
따라서 모바일 교회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기존에 생각하고 개념을 가지고 있는 교회에 대한 고정적인 관념, 선교와 전도에 대한 복지부동한 관점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 될 수 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지역에 대한 기동성, 그들을 끝까지 품고자 노력하는 수용성, 그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융통성이 모바일 교회의 기본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교회를 찾아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 스스로가 교회가 되는 개념을 가져야 한다. 교회를 찾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그들에게 찾아 가는 개념이다.
이러한 개념에서 바울은 그 자신이 하나의 모바일 교회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 했다고 볼 수 있다. 그 자신이 움직이는 교회요, 움직이는 선교 단체요, 전도를 위한 최고 전략이고 도구였던 것이다. 바울 자신이 곧 그 교회였다.
우리가 때때로 복음을 전할 때 박해를 받는 것은 복음 자체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복음을 전할 때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걸맞지 않는 전달 방식 때문에 기인 할 수 있다.
한 예로 아프가니스탄의 봉사 활동을 통해 봉사팀들이 아프간 사람들에게 베푼 온정과 은혜, 의술과 봉사, 지원과 사랑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단 선교지에서 사역하는 것을 마치 나라를 점령하는 듯한 과시적, 공격적, 이벤트 선교 방식에 대한 반감, 공격적인 선교 용어들을 통한 21세기의 십자군 전쟁을 방불케 하는 열심들이 비난의 근거가 된 것이다.
그 일로 인해 이전부터 불편한 심기를 가지고 있던 대중들이 하나 둘 씩 마음 속에 있던 감정과 의견을 표출하기 시작했고, 전 기독교계가 당황 할 정도로 공격은 산을 이루었다.
심지어는 기독교인들마저도 회의감을 가지고 한국 기독교계의 물량주의 선교 태도에 대한 문제점을 제시하기도 했다.
따라서 바울이 행했던 것과 같은 일명 ‘모바일 교회(Mobile Church)’를 추구하고 기독교인들과 일반 비 신자들의 문화적인 충돌 부분을 잘 이해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융통성 있는 교회를 세우는데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바울은 거의 매일 회당에서는 유대인들과 경건한 사람들과 변론을 하였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상가들이 밀집한 장터에서 흔하게 만나는 상인들, 주민들과 담소하고 변론하였다.
우리는 주일만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예배가 되어한다. 움직이고, 생활하고, 일하고, 친교를 나누고 쉬는 모든 행동에는 예배적 요소가 있어야 하고 선교적 마인드로 살아야 한다.

그러한 삶이 바울이 선택한 ‘모바일 교회’로써, ‘모바일 사역(Mobile Ministry)’으로의 전략이다.
우리가 사역을 하는데 어떤 조건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데 꼭 성전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노트북을 펼치고 인터넷을 접속하는 곳이 바로 사역을 위한 사무실이 되는 것이다.
노트북을 펼치고 예배 동영상을 볼 수 있는, 인터넷을 접속하는 곳이 바로 예배를 위한 교회가 된다. 모바일 교회는 단순하게 물리적인 환경 면에서 기동성만이 좋은 교회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이해의 관점에서 융통성과 기동성이 있는 교회를 말한다.
마음이 열려있는 교회, 타 문화를 진심으로 안고자 하고 포용하고 배려 할 수 있는 교회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모바일 교회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 가운데 교회는 결코 소유 재산이 될 수도 없고,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도 아니며, 가시적 자랑거리도 아니다.
때로는 스스로를 희생하여 선교를 위해 찾아가는 모습이 될 수 있고, 유사시에는 이동을 할 수 있는 모습이 될 수 있다.
결국 이 세상 모든 곳, 모든 장소는 내 자신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예배를 위한 교회가 된다.
특별히 무슬림 선교 지역에서는 선교사 자신이 교회이다. 전통적 모달리티(Modality_구조적)의 입장에서 전방개척 소달리티(Sodality_우정적 관점)를 바라보는 이해가 먼저 변화 되어야 한다.(장재언)
이 글은 서장혁의 [인터넷선교의 힘, 웹멘토링]이란 책을 참고하여 쓴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