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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선 아나운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대중매체에 ‘얼굴’이 나오고 대중들이 눈길을 준다는 사실이 가지는 짜릿함과 섬뜩함을 새삼 알 수 있습니다.

TV에 얼굴이 나오면 이루 말 할 수 없는 ‘권력’이 생기는데 이것은 양날의 칼이죠. 많은 이들을 휘두르는 권력을 통해 부를 어마어마하게 쌓을 수도 있겠지만 그 날카로운 권력에 얼마든지 자신의 삶이 찔릴 수도 있으니까요.

TV라는 요술램프 안에서 나온 거인은 누군가를 하늘로 띄우면서 끝없이 질퍽한 핏물을 바치라 합니다.

이 거인의 이름은 ‘대중들의 욕망’ 입니다. 어찌 보면 호기심과 관심일 수 있으나 다르게 보면 관음증과 집착일 수 있는 이 거인은 곧잘 어떤 이를 ‘스타’로 빛나게 하지만 거의 동시에 누군가를 시궁창으로 집어 처넣습니다.

스타에 대한 우러름과 누군가에 대한 깔봄은 이 거인의 오른팔과 왼팔이지요. 스타를 향한 대중들의 소리침이 두려운 까닭은 이 인기 속에는 언제나 누군가를 향한 업신여김이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송지선 씨의 죽음을 보면서 그를 괴롭게 만들었던 ‘누리꾼들’에게 손가락질하는 건 어쩌면 쉬운 일입니다. 이보다 어렵고 힘들지만 모름지기 짚어서 밝혀야 하는 것은 왜 사람들은 자꾸만 누군가를 미워하고 잡아먹으려고 희번덕거리는가, 왜 누군가를 들입다 욕하고 불장난하듯 싫어하는가... 이것입니다.

무슨 무슨 녀부터해서 타블로 그리고 이지아 등등 줄기차게 이어지는 돌팔매는 오싹하면서도 안타까운데, 이보다 더 끔찍하고 딱한 것은 이 욕망이 그치질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차갑게 따지면 그 사람이 ‘마녀’이기 때문에 사냥하는 게 아닙니다. 사냥할 때 ‘즐거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거지요. 따라서 사냥에 대한 욕망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사냥감만 달라질 뿐이지요.

유럽 중세 마녀사냥이 일러줬듯, 20세기 미국의 메카시즘이 보여줬듯, 누군가를 짓밟을 때 마녀나 공산주의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성욕에 눈 먼 나머지 정신 줄 놓은 사람처럼 누군가를 내치고 조지고 죽이는 데 ‘쾌락’을 느끼기 때문이지요.

다시 말하면 어떤 이들을 향해 송곳니를 내세우며 물어뜯는 사람들은 꼭 어떤 이가 못마땅하기 때문에 으르렁거리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고통을 보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병’에 걸려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울컥함으로 출렁거리는 자신을 달래고자 어떠한 ‘대상’이 필요할 것이지요. 싫은 이유는 ‘나중에’ 찾아집니다. 이것이 요즘 대중문화에서 ‘피의 잔치’가 끊임없이 벌어지게 하는 밑그림입니다.

인간의 성격구조와 정신건강에 대해 깊게 살피며 생각하게 되는데, 늘 그렇듯 인간이란 본디 그렇게 썩어빠진 종자이고 쓰레기라는 쓴웃음과 정신병자들은 쭉 있어온 거 아니냐면서 일부의 문제랍시고 생각하기를 멈추려는 헛기침은 피해야 합니다.

대중문화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속을 들춰보면 그 동안 감춰두고 숨기려 했던 ‘우리사회의 맨 얼굴’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회구조가 나타납니다. 툭하면 누군가를 짓뭉개고 함부로 까는 누리꾼들은 태어날 때부터 성격이 모질고 비비 꼬인 데퉁바리 라기보다는 이 사회가 낳은 자식들입니다.

자본주의 욕망을 갖고 행복하게 살기란 불가능합니다. 하란 대로 땀 뻘뻘 흘리며 고분고분하게 살면 성공도 하고 행복해질 거란 떡밥에 모든 이들이 달려들지만 어찌된 일인지 재벌회장부터 새벽녘에 집으로 돌아가 잠깐 눈 붙이는 김대리까지 하나같이 산뜻하게 웃지 못합니다.

자신의 노동력을 푼돈에 팔아야 하고 자신의 상품가치를 늘리고자 아침부터 밤까지 정신 없이 뜀박질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헉헉댑니다.

고달픔과 피로와 짜증과 부질없음으로 되풀이되는 하루하루에 넌더리내지 않는 이가 드뭅니다.

그러나 뭔가 이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얼핏 스치고 지나가더라도 어떻게 할 수 없다거나 바꾸기엔 이미 늦었다고 애써 생각을 털어버리려 하지요. 그렇게 자기 가슴에 빗장이 걸리고 머릿속에 자물쇠가 채워지면서 삶은 더 무거워지고 더욱 답답해집니다. 그 언짢음에서 남을 향한 미움과 시샘, 암상과 노염이 독버섯처럼 자랍니다.

그리하여 21세기 대중들은 “내가 비록 행복하지 않지만 당신의 불행을 보면서 견딘다”는 마음가짐을 ‘자신도 모르게’ 갖게 됩니다.

이 마음가짐이 평소엔 대놓고 나오지 않더라도 희생양을 제단에 바치면서 뭇따래기들이 징그럽게 즐길 때 용 오름 솟듯 불거집니다.

남들이 다 좋다고 하거나 죄다 싫다고 하는 ‘새끼 양’이 나타나면 삶이 팍팍하고 외로운 대중들은 소름 끼치게도 이 ‘거룩한 제의’에 반드시 끼려고 합니다. 그래야만 자신의 불행을 잠깐이나마 잊을 수 있으니까요.

송지선 씨를 향한 쑥덕거림과 욕지기들은 누군가를 괴롭혀야 조금이나마 기분이 나아지는 현대인들의 병리증세를 보여줍니다.

송지선 씨는 여태껏 다른 이들이 그래왔듯 또 하나의 볼거리이자 진통제처럼 쓰이곤 ‘버려지네요.’

즐겁지 않은 삶을 남의 고통에 기대어서 참는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알게 모르게 사람들은 지금 체제에서 어마어마한 상처를 받고 있으며 그 상처에서 환상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습니다. 이 환상은 이 사회가 쉴 새 없이 중얼거리는 욕망을 들으며 빚어지는 욕망이기도 하고 자신의 상처를 가리려는 발버둥이기도 합니다.

저 웅성거림을 따라야 내가 행복해질 거라면서 허겁지겁 허둥대는 낮, 나의 불행을 마주볼 수 없어 연예인과 종교인에게서 알량한 다독임과 얄팍한 어루만짐을 얻는 밤, 그러나 고통이란 덫에 걸린 듯 괴로움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죽음의 향연’을 끝내려면,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으라는 사회짜임새를 바꿔내야 하겠지요.

모두가 도끼나 삽을 들고 걸핏하면 칼부림을 하는 세상에서 자기 혼자 ‘착하게’ 사는 건 놀라운 일이지만 결코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사회를 생각하고 달라지게 하고자 애쓰지 않으면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고자 아무리 몸부림쳐도 행복하기는커녕 노상 일렁이고 조마조마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사회얼개가 뒤집어져야만 잇따른 죽음을 멈출 수 있습니다.

이와 아울러 틈만 나면 자신의 삶을 들쑤시고 휘젓는 ‘환상’을 생각해야 합니다.

자신을 이끄는 환상을 환상이라고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고 누구도 귀띔하지 않으며 불꽃으로 나방이 뛰어들 듯 모조리 환상을 좇아야 하는 이 시대에 환상에서 벗어나기는 매우 힘겨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즐겁지 않은 자신의 삶과 맞닥뜨리며 이렇게만 하면 즐거워질 수 있다는 환상을 확 걷어내는 건 말처럼 쉽지 않지요.

그럼에도 가로지르고자 애를 써야 합니다. 쩍 지더라도 자신의 환상으로부터 ‘거리 두기’를 하려는 몸가짐이 오늘날 ‘윤리’니까요. 이 윤리가 갖춰져야만 또 다른 죽음을 막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