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한국의 한 케이블채널의 동성애 관련 토론에 참가한 이요나 목사의 방대한
양의 간증 내용을 편집하여 작성한 것입니다.(장재언)
잘 알려진 대로 그는 동성애자 출신이다.
이러한 사실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건
한 케이블채널 토론 프로그램에서다. 그는 패널로 나와 동성애자들과 ‘맞장 토론’을 하면서 자신도 과거
동성애자였다고 ‘커밍아웃’했다.
“저는 동성애자 출신이라는 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아요. 목사가 과거를
부끄러워해서야 되겠습니까?”
그가 당당하게 밝힌 덕에 지금도 동성애 성향으로 고민하지만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었던 사람들, 특히 크리스천들이 그와 터놓고 상담할 수 있게 됐다.
그가 처음 동성애에 빠지게 된 것은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어려서부터 주변에서 이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던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동성애를 처음으로 경험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 경험이 싫지 않았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이성에 대한 관심도 가지게 됐지만, 동성에 대한 욕정이 불길처럼 본능적으로
솟아올랐다. 그는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 남모르게 갈등해야 했던 젊은 시절을 생각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은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세월이 갈수록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자신과 같은 사람들과 점차
어울리게 됐다. “사실 지금도 당시 제가 왜 동성애자가 됐는지 잘 모르겠습니다.”예수님만이 알고 계실
거라고 그는 말한다.
‘트랜스젠더’나 ‘커밍아웃’이라는 용어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다. 철저히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이중생활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이미 동성애에 빠져 있던 그는 친구들 중 상대를 찾아야 했고, 그러면
소문이 퍼져 대학생활도 스스로 접어야 했다고 한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이러한 생활은 계속됐고, 결국
정상적인 대학 생활이 어려워졌다. 그가 어려서부터 키워 왔던 작가의 꿈이 무너져버리는 순간이었다.
그는 대학을 그만둔 이후 현실도피를 위한 해결책으로 군대를 선택했다. 하지만 군대에서도 이러한 성향은
고쳐지지 않았다. 그는 늘 동성애에 빠져 있으면서도 그의 생각은 늘 ‘왜 나는 동성애에서 벗어나지
못할까’였다고 한다.
제대 이후 그는 결국 패션 디자이너가 돼 충무로에 의상실을 열었다. 하지만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그에게는 가문의 재산만 탕진하는 꼴이었다.
그는 결국 27세의 나이로
승려가 되기로 결심한다. 승려가 되면 동성애에 대한 갈등과 번민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승려가 되기 위해 계까지 다 받아놓은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반대가 너무 크셨죠.”
그를
학자로 키우고 싶어하셨던 어머니는 그가 속세를 떠나 승려가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결국 그는
어머니에게 처음으로 자신이 왜 승려가 되려 하는지를 고백했다.
어머니의 자살
아들만이 소망이셨던 그의 어머니는 큰
충격을 받았고, 결국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아들에게 내린 저주를 끊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기에 이르렀다.
자신을 위해 목숨까지 내버린 어머니의 결행에 그는 다시 세상으로 돌아왔지만, 이젠 가진 것도 없었고
동성애자로 살면서는 무엇 하나 할 수 없었다. 다행히 그 시절 어울리던 패션계와 연극계 동성애자
친구들이 돈을 모아줘 이태원에서 카페를 열게 됐다. 하지만 동성애자들이 주로 모이는 ‘이반 카페’가
잘 될 리 없었다.
그렇게 힘겨운 삶을 계속해 나가던 그에게도 첫 번 째 희망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수년 전 절에 함께
다니던 누나가 그를 전도한 것이다.
“그 누나는 일본의 한 클럽에 가수로 진출해서 연락이 안
됐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전화가 온 거에요.”
그녀는 일본에서 하나님을 믿게 됐는데, 귀국하던 비행기
안에서 기도하는 중 그를 찾아서 전도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했다.
“내가 모르는 예수가 누나를 통해서 나에게 자기의 이름을 전하라고 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이제 내가
예수를 믿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는 누나의 말을 듣는 순간 서른 일생 동안 쌓였던 고통의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 때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동성애적 성향은 없어지지 않았다. 교회 생활은 정말 열심히 했다. 출석했던 교회에서는 그
시대 유명한 목회자에게 안수도 여러 번 받았다. 하지만 그러한 종교적 투쟁도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동성애의 존재를 쫓아내지 못했다.
오히려 ‘5년간만 축복해 주신다면 이후에는 모든 걸 버리고 당신을
위해 살겠다’고 했던 그의 기도 덕분인지 게이바였던 그의 카페는 날이 갈수록 번창해 갔고, 여전히
그는 밤만 되면 그렇게 살아갔다.
게이바의 대모가 돼 이태원에서는 3개의 클럽을 운영했고, 누구에게도
꺼릴 것 없이 커밍아웃한 사업가로 변신한 것이다.
예수를 영접하고 10년이 지났지만 그는 아직도 동성애자였다. 서원했던 5년이 지났지만 그는 사업을
정리하지 않았고, 그 후부터 신기하게도 사업은 내리막을 걸었다.
화려하게 불타오르는 이태원의 밤이
깊어갈수록 그는 자신도 알 수 없는 자괴감에 빠졌다. 결국 마음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태원
생활을 끊고 일본으로 신학을 하기 위해 떠났다.
신학을 배우는 과정에서도 그 육신의 멍에는 벗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43세가 된 그 해 7월 4일,
다시 한번 그에게 기적을 베풀어주셨다. 두 번 째 희망의 빛이었다.
사십여 년 만에 동성애에서
벗어나다. “동성애는 죄였다”
7월 4일, 그는 그 날도 수업을 들으면서 ‘나는 왜 안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칠판에는 교수님이 쓰신 듯한 ‘악령을 쫓으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글씨가 선명히 쓰여져 있었다.
“그러면 나는 왜 안 되는 거죠?”
그는 하나님께 마음 속으로 따지듯 물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강렬한 공간 속으로 이끌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토네이도에 휩쓸린 것 같았죠.”
그는 당시를 그렇게
회상한다. 엄청난 구름 기둥이 그를 휩쓸고 지나갔고, 마침내 ‘그것이 내 몸에서 나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 이루었다”는 느낌이었다. 평안했다.
삼십 년이 넘도록 극복하기 위해 발버둥 쳐오던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한편으론 허무했다.
“이렇게 간단한데, 왜 43년 동안이나 내버려 두신
건가요?”, “왜 예수를 믿고 12년 동안이나 이렇게 내버려 두셨나요?”
그의 안에서는 한꺼번에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이스라엘을 사랑했지만, 그들은 430년을 노예로 살았단다”, “낮도 12시간,
밤도 12시간, 이스라엘도 12지파, 1년도 12달이 아니니?” 라고 답하시는 듯 했다.
그는 당시
그러한 답을 듣고 ‘계획이 있으셨구나’를 느꼈다고 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말씀 드렸다.
“제
잃어버린 청춘을 회복시켜 주십시오.”
하나님은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는 새로 태어났다. 사람들이 아름다워 보였다. 그리고 다시 ‘남자’가 됐다. 이후 그는 다니던
신학대를 정리하고, 동경 호라이즌 채플로 옮겼다. 그리고 동성애자들을 위한 사역을 시작했다. 하지만
오히려 배척을 받게 됐고, 그 사역은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대신 그는 미국에서 히피와 마약, 동성애로 얼룩진 삶을 살던 수많은 청년들을 교회로 인도한 척 스미스
목사의 갈보리 채플 한국 선교사로 돌아온다.
자신이 게이바를 열었던 이태원 근처 서울 한남동에서
‘서울 갈보리 채플’을 개척하고, 성경강해를 하면서 성경적 자기대면과 치유상담을 시작했다.
갈보리 채플에서 일반 성도들을 대상으로 교회 사역을 하면서 그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 자신 같은 전철을
밟지 않도록 그들의 올바른 이성교제를 돕는 인터넷 카페를 개설했다.
그리고 매주 목요일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건전한 만남을 주선했다. 카페는 2만이 넘는 회원수를 기록했고, 그가 맺어준 커플만 1백 쌍이
넘는다.
“결혼이 성 정체성 문제로 고민하는 이들을 줄일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요즘 갈 곳 없는 예전 동성애자 시절 동료들도 돌보고 있다.
그가 돌보고 있는 동성애자들은
대부분 그보다 조금 나이가 어린 40-50대다. 그와 비슷한 나이였거나 그보다 나이가 많았던 사람들은
거의 다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들은 에이즈나 알콜중독, 마약중독에, 호르몬 주사 부작용 등에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어요. 성전환수술을 한 사람들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몸에 칼을 댔는데
어찌 멀쩡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교회에는 트랜스젠더나 레즈비언, 에이즈 환자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게 됐다. 그러면서 기존에
있던 교인들은 하나 둘 씩 교회를 떠나게 됐다.
“어쩔 수 없죠. 떠난 성도들은 다른 교회로 갈 수
있지만, 이들은 여기를 떠나면 갈 곳이 없잖아요?”
그는 이들을 이해해줄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주일 오후에는 이들을 대상으로 성경적 자기대면과 상담 과정을 함께하고 있다.
상담은 엄격하다.
“죄의식을 느껴야 해결이 가능합니다. 그런 면에서 동성애로부터 벗어나려면 예수를
먼저 믿어야 합니다.”
그는 동성애에 대한 관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안들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예수 믿고 죄의식 느끼면서,
철저한 노력과 의지 뒤따라야
왜 동성애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예수를 믿어야 하는지....
“성경은 동성애를 죄라고
단호하게 얘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천으로서 죄는 인권 때문에 용납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성경은 동성애 뿐만
아니라 모든 죄의 목록들을 기록하고 정죄했습니다. 그곳에는 사망이 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그리스도는
그런 사망에서 우리를 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그는 동성애가 죄의 목록 중 일부분이며, 죄는 죄를 낳는 것이므로 다른 죄에 빠지게 되면 동성애도
따라다니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사회 분위기가 동성애를
죄라기보다는 하나의
문화로
인식하게 만들기
때문에, 더더욱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사람이라야 동성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자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성애를 극복한 사람은 대부분 목회자가 된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그는 또다시 말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동성애가 자동적으로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알콜중독자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한다고 해서 중독 상태가 바로 없어지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고
했다.
그 자신도 30세에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동성애적 성향은 자신의 천성이라고 생각했고, 고치려는
노력 속에서도 12년을 더 그렇게 지냈다. 어린 시절부터 그랬고, 고칠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금연에 성공하는 사람들처럼, 동성애도 본인의 굳은 의지와 노력, 어떤 면에서는 피나는 투쟁의
과정을 거쳐야 고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새벽기도, 금식기도, 철야기도 해도 고쳐지지
않습니다.”라고도 했다. 그는 실제로 동성애의 치유를 위해 신유 은사를 가진 목회자에게 여러 번
안수를 받았지만, 동성애는 없어지지 않았던 경험이 있다.
하지만 그는 소망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저와 마찬가지로 동성애에서 회복된 사람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들은 다시 가정을 만들었기 때문에 저처럼 밝히지는 못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힘을 잃지 말기 바랍니다.”
그는 “사실 어떻게(How to) 나을 수 있는가 하는 방법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특효약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문제는 당신(Who)에게 있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굳은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담배를 끊으려는 사람은 담배
자판기 근처에도 가지 않고, 담배 피는 곳은 근처도 가지 않잖아요? 그런 노력이 필요합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한 노력을 위해 동성애의 원인에 대해서도 짧게 언급했다.
“동성애는 자위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성적인 장면들을 자꾸 접하고, 악한 영들에게 영혼이 잠식당하고, 중독당하게 되는
것이죠. 이러면서 생겨난 동성애적인 성향은 동성간에 그러한 신체적 관계를 가지면서 자신 안에
확립되고, 확산되게 되는 것입니다.”
최근의 보고에 따르면...
청소년에서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동성애는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가족이나 친구 등
주변에 동성애적인 성향을 가진 이들이 발견되면 어떤 식으로 도움을 줘야 할까?
“일단 이상한 눈으로
보려는 마음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절대 왕따시켜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왜 그것이 잘못된 것인지
성경 곳곳을 통해 정확히 설명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또 극복할 수 있다는 용기를 북돋워 주고,
진정으로 이해해 주고, 더욱 관심을 가져줘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날이 갈수록 늘어가는 이들을
바르게 인도해줄 수 있는 상담자들이 절실하다고 그는 밝혔다. 하지만 그러한 상담자들이 너무나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그들을 받아줄 곳이 사실 교회 말고 어디 있겠습니까?”
그가 아는 동성애자들은 젊은 시절을 욕망의
노예가 돼 무절제하게 보낸 그들은 의료보험이나 각종 보험혜택도 받지 못한 채 현재 가난과 질병으로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성 정체성을 잃어버린 그들에게는 부모나 형제도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
“분명히 삼촌이었는데 고모가 돼서 나타나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돈을 벌면 자신과 관계를 맺은 동성에게 쓰게 되고, 악순환의 연속이다.
“현재 이태원 밤거리를 배회하는 이들은 사실 다 트랜스젠더들이에요.”
그는 종종 이태원으로 이들을
전도하기 위해 나가 보면, 문제의 심각성을 느낀다고 한다.
“동성애자들은 트랜스젠더들과 관계를 갖지
않습니다.”
그만큼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쾌락에 대한 욕망을 많이 갖고 있다는
얘기다. 이들은 돈이 필요하기에, 인터넷 등을 통해 간단히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밤거리를 배회하는 이들을 원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교회가 동성애의 심각성을 인식해야 하는데, 아직 너무나 관심이 부족합니다.”
교회에서도 이들을
어쩌면 타고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보고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타고 났다고요?
그러니 어쩔 수 없다고요?” ....(장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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