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18,  2011

 

 

 

 

 

 

 

 

 

 

오늘은 피지 섬의 민요를 보내드립니다.

노래의 가사를 번역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입니다.(언)

 

Isa lei lia

Isa sobo lei Lia

Au na soko wasa vei iko isa lei Lia

Au vaqara noqu matani civa

Mo noqui sakisaki e veisiga

Sevataki wale Adi Lia

Oilei Lia

Isa lei Lia

Isa sobo lei Lia

Au na soko wasa yani

Vei iko isa lei Lia

 

Na nomu leqa koso mai wai

Ko sega ni lamata rawa mai

Vuni nomu leqa Adi Lia

Oi lei Lia

 

Isa lei Lia

Isa sobo lei Lia

Au na soko wasa yani

Vei iko isa lei Lia

Au na soko wasa yani

Vei iko isa lei Lia

 

 

 

 

 

 

 

 

 

 

하얀 접시꽃은

위성 안테나

우리 마을 소식을

먼 우주로 송신하네

 

나란히 나란히

치솟은

푸른 꽃대 위에

층층이 매달린

하얀 접시꽃

접시 안테나

 

오늘은 내 동생

돌잔치 소식을

먼 우주로 송신하겠네.

 

 

 

 

동시 작가 하청호 시인의 [접시꽃 통신]은 우리의 일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 시작된 케이블 방송이 옥상 위에 설치되어 있던 알루미늄 안테나를 없애 버렸습니다. 사람들은 더 선명한 화면으로 텔레비전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아파트나 시골 집에서는 듬성듬성 안테나가 걸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나란히 나란히/ 치솟은/ 푸른 꽃대 위에/ 층층이 매달린/ 하얀 접시꽃”을 보면서 시인은 안테나를 떠 올린 것입니다.

 

이 시의 평면적 내용은 이게 전부입니다. 그러나 이 시는 안테나로 전파를 받기만 하는 수동적인 면을 넘어서서 적극적으로 우리들의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내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층층이 매달린/ 하얀 접시꽃”을 보면서 아름다운 꽃소식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동생/ 돌잔치 소식을/ 먼 우주로 송신” 한다는 것입니다.

 

“돌잔치”.... 어린 생명의 탄생을 감사하며 축복하는 잔치 그리고 그 기쁨을 “먼 우주로 송신”하는 것은 우주적 소통을 의미하는 것일 것입니다.  (언)

 

 

경북 영천시 신령면에서 출생(43년)하여 경북중학, 대구사범학교를 거쳐 계명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73년), 현대시학에 ‘시’가 추천(76년)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동시집 『초록은 채워지는 빛깔이네』 외, 시집 『새 소리 그림자는 연잎으로 뜨고』 외, 산문집 『큰 나무가 작은 나무에게』 등 여러 권이 있습니다.

 

받은 상으로는...

세종아동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방정환문학상, 윤석중문학상, 대구광역시문화상, 천등아동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대구광역시교육청 장학관을 거쳐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초등학교장으로 정년 퇴임했습니다.

 

 

 

 

 

 

 

강아지의 접시꽃 나들이

 

5월은 장미꽃의 달이라면

7월은 접시꽃의 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도 오랜만에 나들이 나왔는데

저와 함께 접시꽃 구경해요.

 

제가 스커트를 입었으니

누군지 아시겠죠?

순님이예요. 사람들이 예쁘데요.

그래도 저보단

접시꽃이 훨씬 더 예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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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장로교, 동성애자 성직 임명 허용법 발효

 

미국장로교(PCUSA)에서 동성애자 성직 임명의 길을 연 개헌안이 현지 시각으로 10일 발효에 들어갔다.

이로써 PCUSA 교회들에서는 동성애자인 목회자가 강단에 오르는 날이 멀지 않게 됐다.

 

PCUSA에서는 그 동안 헌법 가운데 ‘목사 및 장로, 집사 등 모든 제직자는 남성과 여성 결합의 신실한 결혼 정립 또는 혼전 순결을 유지해야 한다’는 ‘정절과 순결 조항’으로 인해 동성애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이들은 성직에서 제외돼 왔다.

 

그러나 PCUSA는 지난 5월, 173개 노회 중 과반수에 해당하는 87번째 노회가 이 조항을 삭제하는 데 찬성을 표함으로써, 작년 7월 총회에서 통과된 개헌안이 최종으로 승인되기에 이르렀다. 마지막 노회까지 진행된 투표 결과, 총 97개 노회가 이 조항의 삭제에 동의했다.

 

PCUSA 내에서도 동성애자 성직 임명을 추진해 왔던 자유주의 그룹들은 이 날을 축하하며 교단의 중요한 발전이라고 평가했다.

이들 그룹 중 하나인 More Light Presbyterians는 성명에서 “교단의 새로운 정책이 오늘부터 공식적인 것이 됐다. 수많은 교회들이 기도와 예배로 이 날을 기념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또 “우리는 새로운 평등의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며 “전 지역에서 이제는 신실한 이들이라면 누구나 성직자가 될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축하하고 있다”고도 썼다.

 

 

그러나 동성애자 성직 임명에 반대해 왔던 그룹들에게 이 날은 교단의 미래에 대한 염려를 한층 더 짙게 하는 날이 됐을 뿐이다.

 

앨러배마 주에 있는 한 PCUSA 교회 담임인 앤드류 퀸 목사는 “이는 하나님의 뜻에 반대하는 것은 물론 모든 종교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이라며 “세속적 욕망이 교회로 침입해 들어오도록 허락했다는 것이 날 슬프게 한다. 나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교단 내에 적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동성애자 성직 임명이 허용됨으로 인해 이에 반대하는 이들은 교단을 떠날 것인지 남아서 개혁에 참여할 것인지가 중대한 고민이 되고 있다.

 

현재까지 이 문제로 PCUSA를 떠난 교회 수는 전체 11,000여개에서 100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가 하면 자유주의화 되어가는 교단을 다시금 복음주의의 노선으로 되돌리기 위한 네트워크들도 곳곳에서 형성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The Fellowship PCUSA로, 이 운동은 처음에는 PCUSA 내에서 복음주의적인 7개 대형교회 목회자들로부터 시작돼 현재는 교단 내 많은 교회들의 지지 속에 추진되고 있다.

 

동성애자 성직 임명에 절대 반대 의사를 밝혀 온 PCUSA 내 한인 노회들도 이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다.

 

 

 

 

 

 

 

 

 

 

1931년 4월 8일, 두 여성이 철도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망자는 홍옥임(21)과 김용주(19). 둘은 동성애자였다.

자살 원인은 서로 겪고 있던 불행한 결혼생활(?)이었다.
 

이 일이 언론에 보도된 후 사람들은 제각각 원인을 분석 했다. 대부분 강제 결혼과 남편의 무관심, 감상적 허무주의 등을 꼬집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동성애에 대해서는 아무도 비난을 하지 않는 사회분위기였다.  어떻게 된 걸까.

 

 

역사학자 이철은 '동성애에 대해 너그러운 사회 분위기'를 그 이유로 꼽는다.

 

그는 저서 <경성을 뒤흔든 11가지 연애사건 > (다산초당. 2008)에서 "당시 동성애는 여학생들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며 "동성애는 이익이 있을지언정 해는 없는 관계라는 생각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고 말한다.
 

책에 따르면 남학생보다 여학생 사이에서 동성애가 유행했다. 관계가 형성되는 주요 장소는 학교와 기숙사. 여기서 여학생들은 엑스 형제를 맺으며 우정과 애정을 쌓아갔다. 엑스 형제란 "학기 초가 되면 선배가 신입 생 중 마음에 드는 학생을 골라 여럿 앞에서 공개적으로 형-동생 관계를 맺는 것"이다.
 

저자는 동성애가 가장 활발했던 학교로 이화학당, 경성여자고보, 평양여자고보 등을 들었다. 하지만 이런 동성애가 평생 지속된 건 아니었다. 대부분 학교를 졸업하면 자연스럽게 사라지곤 했다.
 

동성애에 대한 관대한 시각은 1930년대 후반 주춤했다. 동성애가 병적 상태이자 생리적으로 좋지 않은 현상이라는 인식이 늘어 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성애 인기는 식지 않았다. 그 시절에 결혼식까지 올린 여성 동성애자도 있었다.

 

다음은 1932년 6월 월간지 '여인'에 실린 기사 일부다.
 

"김모 씨의 부인 정순임과 김씨의 부인 장경희와는 오랫동안의 독수공방을 해오다가 두 사람이 그 사회에서 연애를 하게 됐다 한다. 그러다가 이 두 부인은 정식으로 결혼까지를 하게 됐는데 정씨가 신랑이 되고 장씨가 신부가 돼서 각각 고래식으로 예복을 입고 요리집에서 식을 거행했다고 한다."
 

이 책은 당시의 다양한 연애사건을 다루고 있다.

한 장씩 읽다 보면 예나 지금이나 연애 감정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 동성애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닌 것을 알게 된다.(언)

 

 

 

 

 

 

 

 

 

 

이 글은 한국의 한 케이블채널의 동성애 관련 토론에 참가한 이요나 목사의 방대한 양의 간증 내용을 편집하여 작성한 것입니다.(장재언)

 

 

잘 알려진 대로 그는 동성애자 출신이다.

이러한 사실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건 한 케이블채널 토론 프로그램에서다. 그는 패널로 나와 동성애자들과 ‘맞장 토론’을 하면서 자신도 과거 동성애자였다고 ‘커밍아웃’했다.

 

“저는 동성애자 출신이라는 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아요. 목사가 과거를 부끄러워해서야 되겠습니까?”

 

그가 당당하게 밝힌 덕에 지금도 동성애 성향으로 고민하지만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었던 사람들, 특히 크리스천들이 그와 터놓고 상담할 수 있게 됐다.
 

그가 처음 동성애에 빠지게 된 것은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어려서부터 주변에서 이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던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동성애를 처음으로 경험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 경험이 싫지 않았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이성에 대한 관심도 가지게 됐지만, 동성에 대한 욕정이 불길처럼 본능적으로 솟아올랐다. 그는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 남모르게 갈등해야 했던 젊은 시절을 생각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은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세월이 갈수록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자신과 같은 사람들과 점차 어울리게 됐다. “사실 지금도 당시 제가 왜 동성애자가 됐는지 잘 모르겠습니다.”예수님만이 알고 계실 거라고 그는 말한다.
 

‘트랜스젠더’나 ‘커밍아웃’이라는 용어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다. 철저히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이중생활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이미 동성애에 빠져 있던 그는 친구들 중 상대를 찾아야 했고, 그러면 소문이 퍼져 대학생활도 스스로 접어야 했다고 한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이러한 생활은 계속됐고, 결국 정상적인 대학 생활이 어려워졌다. 그가 어려서부터 키워 왔던 작가의 꿈이 무너져버리는 순간이었다.
 

그는 대학을 그만둔 이후 현실도피를 위한 해결책으로 군대를 선택했다. 하지만 군대에서도 이러한 성향은 고쳐지지 않았다. 그는 늘 동성애에 빠져 있으면서도 그의 생각은 늘 ‘왜 나는 동성애에서 벗어나지 못할까’였다고 한다.

 

제대 이후 그는 결국 패션 디자이너가 돼 충무로에 의상실을 열었다. 하지만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그에게는 가문의 재산만 탕진하는 꼴이었다.

 

그는 결국 27세의 나이로 승려가 되기로 결심한다. 승려가 되면 동성애에 대한 갈등과 번민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승려가 되기 위해 계까지 다 받아놓은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반대가 너무 크셨죠.”

 

그를 학자로 키우고 싶어하셨던 어머니는 그가 속세를 떠나 승려가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결국 그는 어머니에게 처음으로 자신이 왜 승려가 되려 하는지를 고백했다.

 

어머니의 자살

 

아들만이 소망이셨던 그의 어머니는 큰 충격을 받았고, 결국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아들에게 내린 저주를 끊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기에 이르렀다.
 

자신을 위해 목숨까지 내버린 어머니의 결행에 그는 다시 세상으로 돌아왔지만, 이젠 가진 것도 없었고 동성애자로 살면서는 무엇 하나 할 수 없었다. 다행히 그 시절 어울리던 패션계와 연극계 동성애자 친구들이 돈을 모아줘 이태원에서 카페를 열게 됐다. 하지만 동성애자들이 주로 모이는 ‘이반 카페’가 잘 될 리 없었다.
 

그렇게 힘겨운 삶을 계속해 나가던 그에게도 첫 번 째 희망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수년 전 절에 함께 다니던 누나가 그를 전도한 것이다.

 

“그 누나는 일본의 한 클럽에 가수로 진출해서 연락이 안 됐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전화가 온 거에요.”

 

그녀는 일본에서 하나님을 믿게 됐는데, 귀국하던 비행기 안에서 기도하는 중 그를 찾아서 전도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했다.
 

“내가 모르는 예수가 누나를 통해서 나에게 자기의 이름을 전하라고 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이제 내가 예수를 믿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는 누나의 말을 듣는 순간 서른 일생 동안 쌓였던 고통의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 때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동성애적 성향은 없어지지 않았다. 교회 생활은 정말 열심히 했다. 출석했던 교회에서는 그 시대 유명한 목회자에게 안수도 여러 번 받았다. 하지만 그러한 종교적 투쟁도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동성애의 존재를 쫓아내지 못했다.

 

오히려 ‘5년간만 축복해 주신다면 이후에는 모든 걸 버리고 당신을 위해 살겠다’고 했던 그의 기도 덕분인지 게이바였던 그의 카페는 날이 갈수록 번창해 갔고, 여전히 그는 밤만 되면 그렇게 살아갔다.

게이바의 대모가 돼 이태원에서는 3개의 클럽을 운영했고, 누구에게도 꺼릴 것 없이 커밍아웃한 사업가로 변신한 것이다.
 

예수를 영접하고 10년이 지났지만 그는 아직도 동성애자였다. 서원했던 5년이 지났지만 그는 사업을 정리하지 않았고, 그 후부터 신기하게도 사업은 내리막을 걸었다.

화려하게 불타오르는 이태원의 밤이 깊어갈수록 그는 자신도 알 수 없는 자괴감에 빠졌다. 결국 마음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태원 생활을 끊고 일본으로 신학을 하기 위해 떠났다.
 

신학을 배우는 과정에서도 그 육신의 멍에는 벗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43세가 된 그 해 7월 4일, 다시 한번 그에게 기적을 베풀어주셨다. 두 번 째 희망의 빛이었다.

 

사십여 년 만에 동성애에서 벗어나다. “동성애는 죄였다”

 

7월 4일, 그는 그 날도 수업을 들으면서 ‘나는 왜 안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칠판에는 교수님이 쓰신 듯한 ‘악령을 쫓으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글씨가 선명히 쓰여져 있었다.
 

“그러면 나는 왜 안 되는 거죠?”

 

그는 하나님께 마음 속으로 따지듯 물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강렬한 공간 속으로 이끌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토네이도에 휩쓸린 것 같았죠.”

 

그는 당시를 그렇게 회상한다. 엄청난 구름 기둥이 그를 휩쓸고 지나갔고, 마침내 ‘그것이 내 몸에서 나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 이루었다”는 느낌이었다. 평안했다.

삼십 년이 넘도록 극복하기 위해 발버둥 쳐오던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한편으론 허무했다.

 

“이렇게 간단한데, 왜 43년 동안이나 내버려 두신 건가요?”, “왜 예수를 믿고 12년 동안이나 이렇게 내버려 두셨나요?”

 

그의 안에서는 한꺼번에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이스라엘을 사랑했지만, 그들은 430년을 노예로 살았단다”, “낮도 12시간, 밤도 12시간, 이스라엘도 12지파, 1년도 12달이 아니니?” 라고 답하시는 듯 했다.

그는 당시 그러한 답을 듣고 ‘계획이 있으셨구나’를 느꼈다고 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말씀 드렸다.

 

“제 잃어버린 청춘을 회복시켜 주십시오.”

하나님은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는 새로 태어났다. 사람들이 아름다워 보였다. 그리고 다시 ‘남자’가 됐다. 이후 그는 다니던 신학대를 정리하고, 동경 호라이즌 채플로 옮겼다. 그리고 동성애자들을 위한 사역을 시작했다. 하지만 오히려 배척을 받게 됐고, 그 사역은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대신 그는 미국에서 히피와 마약, 동성애로 얼룩진 삶을 살던 수많은 청년들을 교회로 인도한 척 스미스 목사의 갈보리 채플 한국 선교사로 돌아온다.

자신이 게이바를 열었던 이태원 근처 서울 한남동에서 ‘서울 갈보리 채플’을 개척하고, 성경강해를 하면서 성경적 자기대면과 치유상담을 시작했다.
 

갈보리 채플에서 일반 성도들을 대상으로 교회 사역을 하면서 그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 자신 같은 전철을 밟지 않도록 그들의 올바른 이성교제를 돕는 인터넷 카페를 개설했다.

그리고 매주 목요일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건전한 만남을 주선했다. 카페는 2만이 넘는 회원수를 기록했고, 그가 맺어준 커플만 1백 쌍이 넘는다.

 

“결혼이 성 정체성 문제로 고민하는 이들을 줄일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요즘 갈 곳 없는 예전 동성애자 시절 동료들도 돌보고 있다.

그가 돌보고 있는 동성애자들은 대부분 그보다 조금 나이가 어린 40-50대다. 그와 비슷한 나이였거나 그보다 나이가 많았던 사람들은 거의 다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들은 에이즈나 알콜중독, 마약중독에, 호르몬 주사 부작용 등에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어요. 성전환수술을 한 사람들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몸에 칼을 댔는데 어찌 멀쩡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교회에는 트랜스젠더나 레즈비언, 에이즈 환자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게 됐다. 그러면서 기존에 있던 교인들은 하나 둘 씩 교회를 떠나게 됐다.

 

“어쩔 수 없죠. 떠난 성도들은 다른 교회로 갈 수 있지만, 이들은 여기를 떠나면 갈 곳이 없잖아요?”

 

그는 이들을 이해해줄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주일 오후에는 이들을 대상으로 성경적 자기대면과 상담 과정을 함께하고 있다.
 

상담은 엄격하다.

 

“죄의식을 느껴야 해결이 가능합니다. 그런 면에서 동성애로부터 벗어나려면 예수를 먼저 믿어야 합니다.”

 

그는 동성애에 대한 관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안들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예수 믿고 죄의식 느끼면서,

철저한 노력과 의지 뒤따라야

 

왜 동성애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예수를 믿어야 하는지....

 

“성경은 동성애를 죄라고 단호하게 얘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천으로서 죄는 인권 때문에 용납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성경은 동성애 뿐만 아니라 모든 죄의 목록들을 기록하고 정죄했습니다. 그곳에는 사망이 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그리스도는 그런 사망에서 우리를 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그는 동성애가 죄의 목록 중 일부분이며, 죄는 죄를 낳는 것이므로 다른 죄에 빠지게 되면 동성애도 따라다니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사회 분위기가 동성애라기보다는 하나의 문화 인식하게 만들기 때문에, 더더욱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사람이라야 동성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자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성애를 극복한 사람은 대부분 목회자가 된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그는 또다시 말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동성애가 자동적으로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알콜중독자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한다고 해서 중독 상태가 바로 없어지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고 했다.

그 자신도 30세에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동성애적 성향은 자신의 천성이라고 생각했고, 고치려는 노력 속에서도 12년을 더 그렇게 지냈다. 어린 시절부터 그랬고, 고칠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금연에 성공하는 사람들처럼, 동성애도 본인의 굳은 의지와 노력, 어떤 면에서는 피나는 투쟁의 과정을 거쳐야 고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새벽기도, 금식기도, 철야기도 해도 고쳐지지 않습니다.”라고도 했다. 그는 실제로 동성애의 치유를 위해 신유 은사를 가진 목회자에게 여러 번 안수를 받았지만, 동성애는 없어지지 않았던 경험이 있다.
 

하지만 그는 소망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저와 마찬가지로 동성애에서 회복된 사람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들은 다시 가정을 만들었기 때문에 저처럼 밝히지는 못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힘을 잃지 말기 바랍니다.”
 

그는 “사실 어떻게(How to) 나을 수 있는가 하는 방법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특효약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문제는 당신(Who)에게 있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굳은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담배를 끊으려는 사람은 담배 자판기 근처에도 가지 않고, 담배 피는 곳은 근처도 가지 않잖아요? 그런 노력이 필요합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한 노력을 위해 동성애의 원인에 대해서도 짧게 언급했다.

 

“동성애는 자위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성적인 장면들을 자꾸 접하고, 악한 영들에게 영혼이 잠식당하고, 중독당하게 되는 것이죠. 이러면서 생겨난 동성애적인 성향은 동성간에 그러한 신체적 관계를 가지면서 자신 안에 확립되고, 확산되게 되는 것입니다.”
 

최근의 보고에 따르면...

청소년에서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동성애는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가족이나 친구 등 주변에 동성애적인 성향을 가진 이들이 발견되면 어떤 식으로 도움을 줘야 할까?

 

“일단 이상한 눈으로 보려는 마음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절대 왕따시켜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왜 그것이 잘못된 것인지 성경 곳곳을 통해 정확히 설명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또 극복할 수 있다는 용기를 북돋워 주고, 진정으로 이해해 주고, 더욱 관심을 가져줘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날이 갈수록 늘어가는 이들을 바르게 인도해줄 수 있는 상담자들이 절실하다고 그는 밝혔다. 하지만 그러한 상담자들이 너무나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그들을 받아줄 곳이 사실 교회 말고 어디 있겠습니까?”

 

그가 아는 동성애자들은 젊은 시절을 욕망의 노예가 돼 무절제하게 보낸 그들은 의료보험이나 각종 보험혜택도 받지 못한 채 현재 가난과 질병으로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성 정체성을 잃어버린 그들에게는 부모나 형제도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

 

“분명히 삼촌이었는데 고모가 돼서 나타나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돈을 벌면 자신과 관계를 맺은 동성에게 쓰게 되고, 악순환의 연속이다.
 

“현재 이태원 밤거리를 배회하는 이들은 사실 다 트랜스젠더들이에요.”

 

그는 종종 이태원으로 이들을 전도하기 위해 나가 보면, 문제의 심각성을 느낀다고 한다.

 

“동성애자들은 트랜스젠더들과 관계를 갖지 않습니다.”

 

그만큼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쾌락에 대한 욕망을 많이 갖고 있다는 얘기다. 이들은 돈이 필요하기에, 인터넷 등을 통해 간단히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밤거리를 배회하는 이들을 원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교회가 동성애의 심각성을 인식해야 하는데, 아직 너무나 관심이 부족합니다.”

 

교회에서도 이들을 어쩌면 타고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보고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타고 났다고요? 그러니 어쩔 수 없다고요?” ....(장재언)

 

 

 

 

 

 

 

반드시 진실을 확인하라....

 

 

미리 대비해야 한다.....

 

 

칭찬은 신중히 하고, 칭찬을 받을 때에 교만하지 말라.

 

 

선물은 받되, 뇌물은 받지 말라.

 

 

따뜻한 정과 함께 냉철한 이성을 가져라.
 

 

 

호의에 담겨진 의미를 파악하고, 반드시 은혜로 받으라.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지금 결단하라

 

 

세상에는 안 괜찮은 일들이 많이 있다.

 

 

반드시 댓가를 지불하라.

 

 

남을 무시하면, 그를 지으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소중하다. 별 것 아닌 것은 없다.
 

 

 

기다리게 해 놓고 변하는 사람도 많다.
 

 

한 번이 열 번, 백 번이 된다.
 

 

세상 모든 사람이 다해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6월 21일 ㈜개성 이임동(50) 대표가 개성으로 향한다. 서울에서 개성까지 90분 남짓 걸린다.

㈜개성은 개성공단에 초코파이를 납품한다. 매달 초코파이 150만 개가 ㈜개성을 통해 북한으로 넘어간다. 그는 올해 초 대북(對北) 사업을 시작했다. 북한 근로자가 개성공단에서 소비하는 초코파이는 월 600만 개. ㈜개성을 비롯해 6개 업체가 납품한다.

 

 

 

 

“개성은 불황 무풍지대예요.”
 

이 대표가 웃는다. 그는 해군 중령으로 예편한 후 개성공단기업협회 사무국장으로 일하다 사업가로 옷을 갈아입었다. 북한에 맞서 바다를 지키던 군인이 북한을 상대로 돈 버는 기업가로 변신한 것.
 

4만6000명 넘는 근로자
 

“서울, 개성에 사무실이 있어요. 매주 이틀씩 개성에 갑니다.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북한에서 사업하려는 사람을 상대로 컨설팅도 할 겁니다. 젊은이에게 북한은 기회의 땅이 될 거예요.”


㈜삼덕통상 문창섭 대표

 

같은 날, 부산 강서구 송정동 녹산공단에 터 잡은 ㈜삼덕통상.

문창섭(61) 대표가 기지개를 켠다. 정오가 되려면 1시간 남짓 남았는데 벌써부터 몸이 파김치다.

 

“바이어와의 조찬으로 시작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어요. 샘플 보내 달라, 일정 보내 달라 아침부터 정신없었습니다.”
 

기업 대표가 바쁘다는 건 공장이 잘 돈다는 뜻이다. ㈜삼덕통상은 개성공단에서 신발을 만든다. 개성 진출 기업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이 업체가 고용한 북한 근로자만 2800명.
 

“개성공단이 불황 무풍지대인 까닭이 뭐냐고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눈치 볼 곳이 많아서….”
 

개성공단은 남북관계 별천지다. 불황 무풍지대다.

냉랭한 남북관계에 아랑곳하지 않고 매출액, 생산액이 상승세다. 남북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폐쇄를 언급했는데도 근로자 수는 오히려 늘었다. 2009년 1월 4만 명에 못 미쳤으나 현재는 4만6000명이 넘는다.
 

문 대표는 개성공단이 남북 당국의 정치적 노리개가 돼서는 안 된다고 꼬집는다. 노동집약 산업을 운영하는 데 개성만 한 곳이 없으며, 남북 경협이 북한을 바꾸는 첩경이라고 믿는다.



 

㈜삼덕통상 개성공장에서 여성 근로자가

K2 등산화를 만들고 있다.

 

㈜삼덕통상은 내로라하는 브랜드의 운동화를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생산한다. ‘스타필드’라는 이름의 ‘삼덕통상 브랜드’ 운동화 수출량도 상당하다. 신발은 1980년대 부산을 먹여 살린 산업이다. 스타필드로 개성을 먹여 살리는 게 그의 꿈이다.
 

“한국에서 신발 부속을 만드는 회사가 4900곳입니다. 이들이 개성공단 덕분에 먹고살아요. 개성은 세계적 신발 단지로 성장할 조건을 두루 갖췄어요. 북측도 남측 도움을 받으면 베트남처럼 신발산업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부산이 그랬듯 개성도 신발로 먹고살 수 있어요.”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남북은 개성공단을 볼모 삼아 기세 싸움을 벌였다. 한국 정부가 개성공단과 관련해 회의적 시각을 내놓으면서 근로자 기숙사 건설을 중단했고, 북한 당국도 개성공단을 폐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천안암 폭침과 연평도 포격을 거치면서도 개성공단이 잘나가는 까닭은 뭘까. 북한은 제조업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하다. 개성은 노동력 부족으로 한계에 부딪힌 한국 중소기업을 입맛 다시게 한다. 개성공단에서 옷을 만드는 L씨는 이렇게 말한다.

 

남과 북 쉽게 폐쇄 어려운 곳
 

“북한 근로자가 중국, 베트남 사람보다 솜씨가 좋아요. 20대 여성이 손재주가 뛰어난데, 우리 공장 근로자 대부분이 20대 여성이거든요. 20대 노동력을 한국에서 구한다? 어림없는 일이죠. 한국 정부나 북한 당국이 일방적으로 공단을 폐쇄할 수 없는 구조예요. 먹고사는 문제가 정치보다 힘이 셉니다.”
 

 

 

입주 기업이 북한에 내는 세금도 거의 없다. 북한 최고인민회의가 2003년 9월 ‘결정 1호’로 채택한 세금규정 29조는 이렇다.
 

“이윤이 나는 해부터 5년간 기업소득세를 면제한다. 그 다음 3년간은 50%를 덜어준다.”
 

개성 진출 기업은 별도 법인 명의로 개성에서 공장을 운영한다. 한국 법인과 개성 법인이 서류상으로 거래해 개성 법인이 적자가 나게끔 회계를 관리한다. 값싼 노동력, 세제 혜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셈이다.
 

북한 정권으로 흘러 들어 김정일 집단의 체제 유지에 쓰이는 달러도 많지 않다.

1인당 평균임금 100달러(복지비 포함)에 4만6000명을 곱하면 북한으로 넘어가는 돈이 월 500만 달러가 되지 않는다. 또한 그 중 상당 부분이 근로자에게 돌아간다. 중국이 나진·선봉, 황금평에 쏟아 붓는 돈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다.
 

금강산 관광은 개성공단과 성격이 다르다.

 

북한에 ‘현금 원조’를 해주는 측면이 크다.

경제학 다수설은 독재국가에 대한 현금 원조 효용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개발 지원과 달리 정치체제에 영향을 미치기 어렵고, 경제발전이나 제도 변화를 이끌기보다 엘리트 집단 지배력을 강화한다는 것. 사람이 굶는데도 체제 유지에만 혈안이 된 김정일 집단만 돕는 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개성공단은 남북관계 경색에도 풀가동하고 있다.

 

개성공단 근로자는 간식으로 받은 초코파이를 집으로 가져가 가족과 나눠 먹는다고 한다.

초코파이는 자본주의 맛이다.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사건 때 북한 근로자는 일자리를 잃을까 봐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개성공단은 자본주의 맛을 퍼뜨리는 도구 구실을 한다.
 

 

 

초코파이는 북한 뿐 아니다.

러시아에서도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북한 처지에서 개성공단이 문을 닫으면 근로자 4만6000만 명을 배치할 곳이 마땅치 않다. 북한은 개성공단을 문 닫을 생각이 없다.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이종혁 부위원장은 최근 현대그룹에 보낸 메시지에서 이렇게 밝혔다.
 

“개성 공업지구는 북남 연계를 유지하는 유일한 고리다. 북과 남의 이익에 부합할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큰 관심사다. 우리는 개성 공업지구 활성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북남관계가 악화했는데도 남측 기업이 요구하는 대로 인력을 보충해주고 있다. 개성 인구만으로는 인력을 보장하기 어렵다. 결국 다른 지역에서 노동자를 데려와야 해 기숙사 문제를 강조했던 것이다. 그런데 남측에서 기숙사 건설을 끌었다. 최근에 와서 변화가 있는 것 같다.”
 

개성공단 폐쇄는 한국 정부가 단행하기 어려운 카드다. 남측이 1조3600억 원가량의 손실(국회입법조사처 추산)을 보는 데다 입주 기업 보상 문제가 걸림돌이다. 북한 경제의 중국 의존도 심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거세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기 개성공단 폐쇄 카드를 북한을 길들이는 수단으로 쓰고자 했으나 개성공단 폐쇄는 북한보다 한국 피해가 더 크다.
 

개성공단 입주 업체 오너들은 입 조심을 한다. 개성공단을 풀가동하는 까닭이 뭐냐는 질문에 “이제야 그것을 알았느냐”면서 웃는다. 그러면서도 언론이 개성공단이 잘나간다는 사실을 보도하는 것을 꺼린다. 정부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개성공단 입주 기업이 예외 없이 잘나가는 것은 아니다. 개성공단기업협회 장상호 상무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통일부 관료 출신이다.
 

여전히 북한은 기회의 땅
 

“자동화 설비를 적극적으로 들여놓은 회사는 즐거운 비명을 지릅니다. 인건비 따먹기 차원에서 진출한 곳은 사정이 어려운 곳도 없지 않지만…. 문창섭 대표 같은 분은 일주일에 한 번씩 부산, 개성을 오갑니다. 정치 리스크를 빼면 개성은 한계에 이른 한국 제조업에 천국 같은 곳입니다. 잘나가는 곳은 정치라는 위험 변수가 있는데도 적극적으로 개성에 투자한 기업입니다. 5·24조처가 풀리면 개성공단은 더욱 좋아질 겁니다.”
 

지난해 5월부터 발효한 대북봉쇄정책(5·24조처)을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보수진영에서도 힘을 얻는다.
 

개성공단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K씨는 이명박 정부가 아마추어처럼 행동하면서 초코파이 혁명을 방해한다고 주장한다. 초코파이 혁명은 중동·북아프리카 국가의 재스민 혁명에 빗댄 것이다.

 

K씨는 이렇게 말한다.
 

“돈은 힘이 셉니다. 자본주의는 철 지난 이념보다 강해요. 이명박 정부가 개성공단을 키웠으면 황해도, 평안도로 초코파이가 퍼져 나갔을 겁니다. 나는 뼛속까지 보수예요. 보수를 표방한 정부가 바보 같은 짓을 했어요.”
 

문 대표는 개성 진출 성공기를 쓰다가 접었다. 남북관계가 어긋난 탓이다.
 

“눈치 볼 곳이 많아 집필을 중단했어요. 시절이 좋을 때 다시 쓸 겁니다. 북한은 기회의 땅이에요.”
 

㈜개성 이 대표는 오늘도 초코파이를 싣고 개성으로 내달린다.

북한에서 초코파이가 매월 1억 개 넘게 팔리는 날이 올까. 그는 한국 젊은이가 북한에서 먹을 거리를 찾아낼 그날을 기다린다. 조바심이 난다. 목이 빠진다. (동아일보 송홍근 기자)

 

 

 

 

 

 



 

 

 

지금은 시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안 계십니다. 

 

오늘이 시어머님 제삿날이라 옛날 생각이 납니다. 

시집살이 할 때 좋은 기억보단 고생했던 기억이 더 많은 게 사실이지만

안 계신 지금은 마음이 담담합니다.

이제 나이를 먹기는 먹었나 봅니다.

 

 

 한옥이라 담도 흙담으로 되어 있어요.


 

 대문 앞에 있는 은행나무는 가을이 되면 제겐 큰 일거리였답니다.


 

 지금은 삽살개가 빈 집을 지키고 있습니다.


 

 안채 - 지금도 명절이나 행사가 있으면 여기서 모입니다.


 

 연탄불 가느라 애먹은 기억이 납니다.


 

이 많은 장독들이 간장, 된장, 고추장, 막장,

묵은 장, 잡곡, 건어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장을 1말씩 담으려면, 아휴!


 

 여기다가 콩갈아서 콩국수 해먹었습니다.


 

 이 절구로 떡치고 청국장 빻고 풋고추 빻아 물김치 담았습니다.


 

 마늘은 걸어놔야 덜 상합니다.

옆에 있는 대나무 막대는 감 깎아 걸어 곶감 만드는 장대입니다.


 

 메주틀입니다. 메주 만들 때 여기다가 꾹꾹 눌러 모양을 잡습니다.

 

 나물 삶아 말리고 무우말랭이 말리면 잘 마르는 광주리입니다.



 지금은 하우스에 고추, 가지 등 몇 가지만 심지만,

시집 살 땐 노지에 온갖 나물을 다 심어서 자급자족했습니다.

아침마다 찬거리 하러 시장 대신 밭으로 갔습니다.

 

[덧붙이는 글]
싫기만 하던 시집살이가 알게 모르게 내게 많은 걸 가르쳐 줬다는 걸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씩 느낍니다.

장단영 / 경북 성주 장산꿈참외마을

 

 

 

 

 

 

 

 

 

800억 분당 할렐루야교회

 

1000억 녹산교회

 

500억 구세군교회

 

2100억 서울 사랑의교회

 

 

 

 

 

 

 

 

 

 

 

 

 

'조갑제의 현대사 강좌'(문화일보 홀)에 나온 독일계 한국인 이참(李參)(Bernhard Quandt)씨는 완벽한 한국어로 흥미진진하게 두 시간의 강연을 이끌었다.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나라의 답답함'이란 주제였다.
 

31년째 한국에 산다는 그는 자신이 "독일에서보다 한국에서 생활한 기간이 더 길어졌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의 한국論은 한국인이 보지 못한 점을 지적하였기에 청중들의 박수와 호응을 많이 받았다.
 

1. 한국은 원래부터 다원주의(多元主義) 문화를 가진 나라다.
 

한국은 샤머니즘, 불교, 유교, 기독교를 차례로 받아들여 한국화하고 꽃을 피우고, 평화공존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라는 것이다.
 

2. 철학과 과학성이 생활 속에 깔려 있다.
 

그는 한국의 건축, 한글, 음식 등에는 철학과 과학성이 깔려 있다고 하였다. 한국의 강점은 철학자와 학자들이 나라를 1천년 간 다스린 점이다.
철학을 공부하는 데는 돈이 들지 않습니다. 한국은 철학대국(大國)이 될 수 있습니다.
 

3. 다양하고 친근한 자연을 가진 나라는 없습니다.
 

한국만큼 다양하고 친근한 자연을 가진 나라는 없습니다. 애국가의 가사는 온통 자연에 대한 사랑입니다.

동해 물, 백두산, 남산, 소나무, 하늘, 바람 등등. 

한국처럼 드라이브 할 때 5분마다 풍경이 바뀌는 나라는 없습니다. 자연과 조화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사는 한국은 환경大國이 될 수 있습니다.




 

4. 공동의 목표가 있을 때는 단결합니다.
 

진돗개 연구가이기도 한 그는 진돗개가 한국인과 성격이 비슷하다고 했다. 한국인과 비슷하기에 도태되지 않고 애호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순종적이고 잘 훈련된 셰퍼드가 독일인의 애호를 받는 것도 마찬가지 이치이다.
 

"한 집에서 여러 마리의 개를 키우면 한번은 꼭 싸웁니다. 그리하여 서열이 정해지고, 이 서열에 따라 질서가 잡혀 더 싸우지 않습니다.
진돗개를 여러 마리 키우는 집에서는 싸움이 끊이질 않아요.
싸워서 진 개가 이긴 개에게 승복하지 않고 계속 도전합니다.

보스 기질이 강하여 모든 개가 우두머리가 되겠다고 그러는 거예요.
 

제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진돗개를 조사하였는데 세 집에서는 서로 싸우지 않았습니다.

이 세 집이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진돗개를 멧돼지 사냥에 이용하는 거예요.

멧돼지를 진돗개가 1 대 1로 상대하여선 다 죽습니다.
그러니 세 마리가 공동작전을 펴서 멧돼지를 피로하게 한 다음 물어서 죽입니다.
 

강한 적(敵)을 거꾸러뜨리기 위하여 협력하다가 보니 세 마리가 친해져서 사이 좋게 지냅니다. 한국인들도 공동의 적, 공동의 목표가 있을 때는 단결합니다. 한강의 기적이 그런 경우이지요.

 

 

 

5. 너무 혈연, 지연, 학연, 당파중심 사고에 억매 인다.
 

그렇다. 어디 한강의 기적뿐인가. 한국인들은 평소에는 내 가족, 내 친족, 내 동네, 내 동문, 내 파당 등등으로 갈라져서 제 편만 옳고 잘났다며 지역싸움, 당파싸움을 일삼고...

불안한 장래에 대하여도 각자가 다 다르게 개인적으로 혼자의 방식과 비책으로 대비하고 고민한다.
 

그러나 우리 역사를 한번 뒤돌아 보자.
나라에 매우 큰 환란이 닥쳐올 때에는, 참 신기하게도 국민 대다수가 순식간에 한 가족처럼 일치된 공감대 (共感帶 consensus)와 공동체의식을 형성하면서, 초당적으로 단결, 각자의 비책을 교환하며 너나없이 국난타개에 앞장서 몸바쳐 왔던 것이다.
 

한강의 기적 정도가 아니라 임진왜란이 그랬고 6.25전쟁이 그랬다.
 

조총이란 신무기로 무장하고 6년 동안 이나 삼천리강산을 들쑤셔 대던 20만대군(지금 같으면 2백만 정도의 대군)의 왜구가 종국엔 거의 다 죽고 패퇴하였는데... 

이것은 이순신장군 혼자서 이룩한 승전이 아니라 각처에서 온 백성이 의병, 승병, 학병, 심지어는 의기 논개와 부녀자들의 치마부대가 결사항전에 나섰기 때문이 아니었나?
 

제2차 세계대전의 용장으로서 6.25전선에 투입된 미국의 한 장성(밴플리트 장군)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전한다.

 

"내가 오랜 동안 크고 작은 전쟁터를 다 다녀 보았는데, 한국군 같은 독종(?)은 보지 못했어요.

38선에서 밀리기 시작해서 한강, 수원, 대전, 낙동강 등 전선마다 후퇴를 거듭하는 동안 한국군 패잔병들은, 제대로 된 훈련도 받지 못한 것 같은데, 항상 저희들 끼리 새 부대를 편성하여 일선에 다시 보내달라 무기를 달라! 고 절규하는 거야...

당시엔 탱크도 없어서, 나가면 죽는 게 뻔한데...

유럽 전선에서 보면, 어느 나라에서든 패잔병은 도망쳐 초야에 흩어지면 그만이었지."
 

6. 한국의 개인주의는 미흡함이 있으나 끈기가 있다.
 

이참씨는, 독일에서도 16세기 초 마틴 루터에 의한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에는 위대한 성취나 인물이 적었다고 한다.

종교개혁에 의하여 인간이 교회의 압제로부터 해방되고 개인의 소중함이 인정되면서 위대한 국민, 위대한 국가가 탄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개인주의는 아직 부족하다고 그는 지적하였다. 아직도 획일적인 생각이 힘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인들은 골프 연습을 너무 열심히 하여 갈비뼈에 금이 가는 일을 예사로 생각하는데 다른 나라에서 보기 힘든 경우이다"고 하였다.

무엇을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한국인의 성격이 잘 보여주듯이 한국인의 에너지는 세계적이란 것이다.
 

그는 독일인과 한국인이 다른 듯하지만 비슷한 점도 있다고 하였다.

철학자 헤겔이 지적한 대로 독일인은 세 가지 특징이 있다.

 

(情)이 깊다, 애국심이 강하다, 자신감이 넘친다.

그는 "처음 만났는데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남편감, 신부 감을 소개해주겠다고 하는 한국인, 어디 아프다고 하면 모두 약사가 된 것처럼 각자 좋은 약을 추천하는 한국인, 국민 다수가 자신을 대통령 감으로 생각하는 나라"를 자신감의 예로 들었다.
 

이런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교육제도가 문제라고 이참(李參)씨는 비판하였다. 너무 "우리끼리 경쟁"에만 빠져 있다는 것이다.

 

동양예의지국이 아니라 동양무례지국처럼 된 것도 교육의 실패이다.
 

이참(李參)씨는 한국인들을 단결시킬 수 있는 멧돼지 같은 사냥감, 즉 국가적 목표와 비전, 또는 대의(大義)를 국가지도부가 만들어내어야 무한한 잠재력을 활용할 수 있다고 결론을 맺었다. 

 

 

 

 

 

 

 

 

 

 

1995년 현재 미국의 종교인구 분포는 그리스도교 85.3%(그중 프로테스탄트 57.9%, 가톨릭 21%, 기타 그리스도교 6.4%), 유대교 2.1%, 이슬람교교 1.9%, 무종교 8.7%, 기타 2%로, 프로테스탄트가 압도적으로 많으나 가톨릭은 프로테스탄트의 어떤 종파보다도 그 수가 많다.

 

갤럽여론조사에 의하면 주 1회 교회에 가는 사람의 비율이 1955년 49%였던 것이 그 후 점차 저하하여 1970년대 전반에는 40%까지 떨어졌으나 1987년에는 다시 상승하여 47%가 되었다.

 

종교적 신념을 묻는 질문에 매우 중요하다고 답한 사람의 비율은 독일 17%, 프랑스 22%, 영국 23%에 비해 미국은 56%에 이르고 있다.

 

신 또는 영혼의 존재를 믿는가라는 질문에 믿는다 라고 답한 사람의 비율도 94%이다. 유럽 여러 나라와 비교해도 미국은 매우 종교적인 국가이며, 미국인은 종교적인 국민이라고 할 수 있다.

 

1. 미국인의 기본적 사고방식과 일상생활은 기독교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미국인은 일상생활에서 미국은 ‘하나님의 나라’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 따라서 다른 종교의 종교활동을 허락하기는 하지만 비기독교인이나 무신론자들에 대해 심정적으로 그렇게 관대하지 못하다. 이러한 ‘종교적 우월감’은 미국의 우월감 그리고 각종 영화(미국인이 서부나 세계를 개척하고 구하고 또는 악에 대항하여 지구를 구하는 각종 영화들)의 미국중심적 모티브를 자극하는 것이다.

 

2. 신교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초기의 청교도주의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세속화되었지만, 집안의 식사시간에 일상적인 기도가 아직도 왕성하게 행해지고 있는 곳이 미국이다. 현재도 신의 질서, 신앙심, 신과 관련된 언급이 학교나 공적 의례 등에서 일상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대통령 선서도 성경에 손을 얹고 하고, 결혼선서도 신에게 하는 식이다. 따라서 미국의 모든 대통령은 기독교인이었고 사회의 대부분의 지도층도 아직도 기독교도인이다. 현재도 미국민의 반절 정도는 날마다 기도를 하고 40%정도가 매주 교회에 간다. 기독교의 신앙관을 이해하지 못하면 미국의 다양한 관습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3. 신 아래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선언이

초기부터 널리 받아들여졌다.

 

독립 후 왕 대신 신성한 신과 신이 허락한 헌법이 사회질서의 기준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대통령은 국민의 뜻을 받들어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법이 중요한 나라가 되었고 법을 해석하고 법을 따지고 변호사를 활용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 상징적인 의미에서 미국은 하나님의 국가이기 때문에 헌법이 바로 신의 의사를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모든 것의 신성한 기준으로 생각한다.

 

4. 신을 매개로 세상을 해석하기 때문에

올바른 윤리, 도덕성을 강조한다.

 

신의 윤리에 따라 새로운 사회를 건설한 것이 미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식민지 시절부터 거짓말, 횡령을 아주 나쁜 것으로 간주하여 왔다. 신 앞에 마주선 개인으로서 수치나 염치보다는 신에 짓는 죄 또는 신 앞에 떳떳해야 하는 점이 크게 강조된다. 신 앞에 떳떳하기 위해 정직과 솔직은 중요한 미덕으로 받아들여진다. 물론 이러한 이상주의는 현실적으로는 실용주의와 타협하여 나타나지만 이념적으로 이런 주장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5. 어떤 면에서 보면

국가와 종교가 제대로 분리되었다고 볼 수 없을 정도다.

 

독립 후, 국가와 종교를 분리한다는 대원칙이 성립되어 있어 대법원이 지속적으로 국가기관이 종교의례를 행하거나 이를 강요하는 것을 위헌으로 판결해왔지만 국가와 종교가 제대로 분리되었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치인들의 일상적인 신앙 활동이 뉴스에 나타나고 있고 신과 종교에 대한 발언을 자주 하여 종교적임을 국민들에게 보여 주려 노력하고 있다. 대체로 스스로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나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기독교도가 아닌 사람을 약간 이단시하는 경향이 백인에게서 보이고 있다.

 

6. 신앙이 다양하게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며

약간 이상주의적이고 때로는 신비주의적인 성향을 미국사람들은 가지고 있다.

 

식민지 시절부터 기독교 유일신을 믿어 왔지만 일상생활에서 유령, 악마, 마녀, 사탄, 천사 등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현재에도 천당과 지옥 그리고 천사의 존재를 대부분 믿고 있으며 70% 가까이 예수의 부활을 믿는다. 또한 신과 연계된 혼(魂)인 Soul에 대한 언급이 많은 나라이다.

 

육체와 구분되는 영혼이 있다는 의식이 널리 존재하고 있다. 식민지 시기부터 마을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사탄이나 마녀가 벌인 일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찾아내 처형하는 작업이 이루어져 왔었다. 현재도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95%이상이 기독교 신자라고 대답하며, 46%가 자신을 지켜주는 천사가 있다고 대답했다.

 

7. 臨死(임사)체험, 천사, 부활, 예언적 꿈 등도 일반사람들에게 널리 회자되고 있다.

 

인간의 영적 성숙을 주제로 한 제임스 레드필드의 소설 '천상의 예언'이나 임사체험을 적었다는 베티 이디의 '빛에 둘러 싸여' 그리고 토마스 무어의 '영혼돌보기' 등이 무려 3년 이상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켰다.

 

영혼(Soul)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이 94년 이래 8백여종이 출간되어 계속 팔리고 있다. 한국에서도 히트한 영화 <사랑과 영혼>처럼 혼이 등장하거나 천사나 정령이 등장하는 영화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것도 이러한 분위기와 관련되어있다.

 

8. 각 종교를 믿고 있는 인구는 개신교(Protestants) 66%, 가톨릭(Catholics) 25%, 유태교(Jews) 3% 정도로 유럽 기독교가 지배적이다 (상이한 통계자료에 따른 차이로 인해 앞에서 언급한 수치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음).

 

흑인들 사이에 일부 무슬림이 존재하고 동남아시아와 일본인들 중 일부 불교도가 존재하고 인도인들 사이에 적지만 힌두교가 존재한다. 흑인이나 아시아인들 사이에서도 기독교가 물론 압도적이다.

 

하지만 백인들의 기독교와 조금 다르다. 흑인들로 이루어진 교회는 보통 아카펠라나 솔 등으로 독자적인 찬송가 스타일을 선보이는 경우가 많고, 동아시아 이민자들이 형성한 교회는 백인들보다 교회 참석율이나 예배의 열성도가 높은 편이다.

 

백인들의 경우 일부 남부의 근본주의 종파를 제외하고는 일요일의 교회참석율이 낮고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등의 절기에 참석이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백인들의 경우 기독교의 정신이나 신앙을 내면화하고는 있지만 이전보다 교회참석율이 계속 줄고 있어 실제 행동에서 기독교의 신앙과 의례를 그대로 행하는 경우도 줄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에도 좋은 교회가 잘 운영되고 있는 지역은 사회적 안정성, 활기, 고결한 기상이 있으며 청소년이 건전하게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믿어진다. 그만큼 교회는 지역에서 구심점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따라서 특정 지역으로 이사갈 때, 그 지역에 좋은 학교뿐만 아니라 좋은 교회가 있는지도 고려한다.

 

9. 미국내의 개신교는 엄청나게 많은 교파를 가지고 있는데 그중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기독교 교파가 침례교와 감리교다.

 

한국에서는 장로교가 개신교파의 주류를 이루지만 미국에서의 장로교세는 매우 약하다. 현재 미국의 기독교는 점점 감소되고 있는 추세지만 생활 근간 구석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기독교문화로써 미국대중과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마치 우리나라 유교문화가 우리 생활 구석구석에서 우리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현상과 같다고 하겠다.

 

10. 미국의 기독교의 또 하나의 특징은 신앙 노선의 다양성이다.

 

진보적인 성향과 보수적인 성향이 미국 기독교안에서 상호 공존한다는 것이다. 신앙노선에 따른 이념들이 대치하고 있지만 진보는 보수를 보수는 진보를 일정 영역에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보수적 경향이 무척 강하다.

 

11. 서구적인 종교관을 반영하여 신과 인간 사이의 존재로 보통 표현되는 영웅hero이라는 개념이 널리 쓰이고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도 많이 나타나며 또한 기적을 이룬 기독교의 성인과도 관련된다. 일반사람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며 이들을 영웅으로 묘사하고 있다.

 

뉴욕무역센터에 대한 9.11 테러 후 열성적으로 이를 정리한 소방관을 대통령이 영웅으로 묘사하거나 또는 이라크전쟁에서 이라크군에 잡혀 갔다가 구출된 여병사를 영웅으로 묘사하는 등 조금이라도 특이한 또는 보통사람보다 나은 행동을 보이면 영웅이라는 칭호를 붙이는 것이 자주 나타난다. 전쟁, 스포츠, 타인 구출 등의 이야기를 통한 영웅만들기가 지속되고 있다.

 

12. 외에도 이슬람, 불교, 힌두교 등이 존재한다.

 

이중에서 이슬람이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흑인들이 백인들에 대한 반감으로 기독교보다 이슬람을 택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힌두교와 불교는 대체로 인도나 동남아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이민 전에 믿었던 종교를 미국에 와서 믿는 경우다.

 

일상생활에서의 종교의 영향

 

➀ 몇몇 주들은 법원의 명령으로 교실 내 또는 공공장소의 십계명을 제거했고, 몇몇 주들은 아직 기존의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➁ 주립대학 졸업식 때는 시작할 때 기도를 한다. 이 시작 기도는 하나의 문화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➂ 미식축구 경기 후 양팀 선수가 경기장 한가운데 모여 함께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➃ 외국 호텔의 객실에는 거의 예외 없이 성경책이 놓여 있다. 그 관례의 원조는 미국이다.

 

➄ 초대 대통령이 된 워싱턴은 ‘우주를 지배하는 전능한 존재’에 대한 언급을 취임연설에서 결코 빠뜨리지 않았다. 그러고도 섭섭해 할 청교도들의 눈치를 보면서 잽싸게 ‘신이여 굽어 살피소서’(So help me God!)라는 말을 덧붙이며 취임사를 끝냈다고 한다.

 

➅ 달러화에는 ‘In God we trust'라고 인쇄되어 있다. 이 문구는 지폐, 동전 가릴 것 없이 미국 화폐에 공통으로 등장한다. 미국을 제외하면 화폐에 종교 문구가 삽입된 나라는 거의 없다.

 

➆ 미국 근본주의자들은 1919년 ‘금주법’을 통과시키는 데에 맹활약을 했다. 후에 금주법은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대통령에 취임하는 동시에 헌법에서 삭제되었다. 하지만 주일날에는 아직도 술을 안 파는 지역들이 많다.

 

➇ 미국 근본주의자들은 ‘금주법’에 이어, 공립학교에서는 ‘진화론’을 가르치지 말아야 한다는 일대 캠페인을 전개했다.

그러나 이는 제 1차 헌법 수정안에 규정된 정/교 분리 원칙과 미국의 전통 가치인 다원주의에서 분명히 벗어나는 것을 뜻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남부 몇 개의 주에 한한 것이지는 하지만 진화론 교육을 금지하는 법령을 통과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진화론 논쟁은 1925년 ‘존 스콥’ 재판에서 절정에 달한다. 존 스콥 재판은 테네시 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친 존 스콥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역사적 재판이다.

➈ 미국의 정신적 지도자하면 빌리 그래함이나 제리 팔웰과 같은 목사들을 상기하게 된다.

 

봉사 이념에 따라 대학이 설립된다. 예로 하버드, 프린스턴, 예일, 퀸스칼리지 등이 있다.

 

➉ 전 국민의 40% 정도가 자원 봉사에 참가한다.

 

자원봉사가 시민문화로 정착하였고, 교육기관, 정부, 기업, 사회단체 등이 조직적으로 활동한다. 국가정책 및 입법 과정을 통해 정부가 주도하고 민간 기업과 효율적으로 분업이 이루어져 체계적 사회봉사체제를 이룬다.

 

이런 미국의 자원봉사활동은 종교적 동기(청교도 사상)에서 시작된 것이다. 19C 이후 소집단 자원봉사활동으로 적십자사, YMCA, YWCA, 보이스카웃 등이 생겨났다..

 

   

 

 

 

 

 

 

 

 

사람이 늙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노화는 시작된다.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거역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노화의 속도를 조절하는 것은 각자의 노력과 관심, 그리고 습관에 따라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항상 즐겁게 살고 미래 지향적인 삶을 산다면 노화를 늦추고 수명을 연장시키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결코 아니다.

 

인간은 모든 포유동물 중 가장 오래 산다

 

자연의 법칙에서는 성장 한계연령의 5배를 살거나, 또는 초경 시작 연령의 10배를 사는 것이 자연수명이라고 한다.

따라서 인간의 성장한계인 25세의 5배인 125세 또는 초경시작 연령 13세의 10배인 130세까지 살 수 있는 것이 자연수명의 법칙일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수명은 얼마나 연장될 수 있을까? 

 

무엇이 인간을 늙게 하는가?

 

모든 생물은 살아 있는 동안 세포분열을 계속하여야 한다.

이때 세포핵의 주축인 DNA에 비결합전자(unpaired electron), 과산화기(superoxide radical), 자유기(free radical) 등이 작용하여 이것을 반복 변형·손상시킴으로써 노화를 일으키게 된다. 그래서 머리카락이 더 가늘어지고 하얗게 되면서 빠져나간다. 피부에는 주름살이 생기고 색소가 침착되며 건조해진다. 뇌세포가 줄어서 기억력이 감퇴되고 청력, 시력, 후각, 미각, 촉각이 둔화되며 치매에 걸리기도 한다. 또한 혈관 벽에는 지방이 축적되며 딱딱해진다.

 

심장은 탄력성과 최대 박축량이 감소되고 허파와 기관지의 탄성반발력이 약화된다.

 

내분비기능이 변화되고 근육, 관절, 뼈에 구멍이 생기고 얇아지며 닳아지고 찢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노화현상이 일방적으로 그냥 계속 진행되는 것만은 아니다.

 

이런 것들을 제어하는 과산화억제효소(SOD : superoxide dismutase)가 있고, 세포의 원상복귀를 돕는 촉매효소(catalase) 등이 있어서 노화방지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회복능력들을 활발하게 발휘할 수만 있다면 120세에서 150세까지 살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자연 수명이라고 한다.

 

어떻게 하면 자신의 수명을 다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인간들은 잘못된 사고방식과 불규칙한 일상생활, 지나친 스트레스, 흡연, 음주, 기호식품 과식, 과로, 수면부족, 약물남용, 공해 등으로 세포의 원상회복과 수리보수능력을 방해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또한 어떤 신체 장기가 불시에 커지거나 작아지는 구조적인 변경도 아니다. 이것은 미미한 기능적 변성의 누적현상이므로 혈액정밀분석검사를 통하여 노화의 정도나 질병의 가능성을 알아냄으로써 수명단축 요인을 제거하고 성인병을 예방할 수 있다.

 

혈액분석은 단 한 번 소량의 혈액만으로 여러 장기의 각종 질병을 고루 찾아낼 수 있을 뿐 아니라 간편, 신속하며 부작용이나 후유증이 없고 재확인할 수 있는 장점들이 있다. 자신의 수명을 다할 수 있도록 건강을 지키는 길만이 가정의 안녕과 사업의 성공에 가장 확실한 투자가 될 것이다.

 

인간의 수명

 

한 인간의 신체는 수많은 장기와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것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노화하는 것도 있고, 오히려 더 좋아지는 장기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이든 나이에 따라 그 기능이 떨어질 수 있는 현상은 거역할 수 없는 이치입니다.

 

하지만 그 속도를 조절하는 것은 각자의 노력과 관심·습관에 따라 결정 되어짐으로써 인간의 수명이란 각자 자기 스스로 결정하는 측면을 갖고 있습니다.

 

항상 즐겁게 살고 나쁜 일은 얼른 잊어버리며, 미래지향적인 삶을 갖는 것이 곧 수명을 연장하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노화정도 측정법 : 해당되는 번호를 전부 더해 보십시오.

 

1. 남성입니까, 여성입니까?

③ 남성 ① 여성이지만 남자처럼 살아왔다 ⓞ 여성

 

2. 조부모님들이 장수하셨습니까?

③ 아니오 ① 보통이다 ⓞ 예

 

3. 부모님 중 한 분이라도 60세 이전에 질병으로 사망하셨습니까?

③ 예 ① 60세 이후에 돌아가셨다 ⓞ 건강하심

 

4. 생활수준이 중류 이상입니까?

③ 아니오 ① 보통이다 ⓞ 예

 

5. 독자의 학력 수준이 높습니까?

③ 아니오 ① 보통이다 ⓞ 예

 

6. 대도시에서 살고 있습니까?

③ 예 ① 잠깐 살았다 ⓞ 아니오

 

7. 배우자와의 사이가 원만하고 좋습니까?

③ 나쁘다 ① 보통이다 ⓞ 예

 

8. 가족과 우애하며 살아왔습니까?

③ 아니오 ① 잘 모르겠다 ⓞ 예

 

9. 매주 3회 이상 운동을 합니까?

③ 아니오 ① 가끔 한다 ⓞ 예

 

10. 매일 6∼8 시간씩 수면을 취하고 있습니까?

③ 불면증이 있다 ① 형편에 따라 다르다 ⓞ 잘 잔다

 

11. 10시간 이상 수면을 취하는 경우도 있습니까?

③ 예 ① 가끔 그렇다 ⓞ 아니오

 

12. 쉽게 화를 내거나 긴장하는 성격입니까?

③ 예 ① 가끔 그렇다 ⓞ 아니오

 

13. 거의 모든 시간을 즐겁게 보내고 있습니까?

③ 아니오 ① 그런 편이다 ⓞ 예

 

14. 매일 많은 담배를 피웁니까?

③ 예 ① 조금 피운다 ⓞ 아니오

 

15. 거의 매일 술을 마십니까?

③ 예 ① 가끔 마신다 ⓞ 아니오

 

16. 체중이 5∼10kg 이상 초과되고 있습니까?

③ 예 ① 약간 초과된다 ⓞ 아니오

 

17. 체중이 4∼8kg 이상 미달 됩니까?

③ 예 ① 다소 부족한 편이다 ⓞ 아니오

 

18. 매년 정기 검진을 받으며 건강을 확인하고 있습니까?

③ 아니오 ① 오래 전에 받았다 ⓞ 예

 

19. 독자의 혈압이 높은 편에 속합니까?

③ 예 ① 다소 높은 편이다 ⓞ 아니오

 

20. 휴식 중 맥박수가 65회/분 이상입니까?

③ 예 ① 가끔 그렇다 ⓞ 아니오

 

21. 장기적인 만성질환이 있습니까?

③ 예 ① 이전에 있었다 ⓞ 아니오

 

22. 애완동물이나 화초를 기르십니까?

③ 예 ① 가끔 그렇다 ⓞ 아니오

 

23. 음식을 폭식하는 편입니까?

③ 예 ① 가끔 그렇다 ⓞ 아니오

 

24.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납니까?

③ 아니오 ① 가끔 늦게 일어난다 ⓞ 예

 

25. 운동 후 피로회복 시간이 길게 필요합니까?

③ 예 ① 가끔 그렇다 ⓞ 아니오

 

26. 의욕상실이나 빈혈증세가 있습니까?

③ 예 ① 가끔 있다 ⓞ 아니오

 

27. 고지혈증·고혈압증 등이 있습니까?

③ 예 ① 조금 있다 ⓞ 아니오

 

28. 남보다 질병을 자주 앓는 편에 속합니까?

③ 예 ① 그런 편이다 ⓞ 아니오

 

29. 자신의 건강과 용모를 스스로 잘 가꾸십니까?

③ 아니오 ① 그럴려고 한다 ⓞ 예

 

30. 책읽기·글쓰기·영화감상·음악감상을 좋아합니까?

③ 아니오 ① 가끔 한다 ⓞ 예

 

31. 스스로 잘 웃고 남을 잘 웃기기도 합니까?

③ 아니오 ① 가끔 그렇다 ⓞ 예

 

32. 식후에 꼭 이를 닦습니까?

③ 아니오 ① 가끔 닦는다 ⓞ 예

 

33. 좋지 않은 일은 잊어버리고 낙관적 미래성향입니까?

③ 아니오 ① 그럴 때도 있다 ⓞ 예


 

노화정도 측정결과

0~35점

당신은 100세 이상이라도 장수할 수 있습니다.
더욱 적극적인 삶을 지향하십시오.

36~69점

노력만 한다면 얼마든지 장수할 수 있는 체질입니다.
신체기능은 생활습관과 심리상태의 영향을 받는 것이므로 철저한 자기관리를 요합니다.

70~90점

다소 자기관리를 잘못한 것 같습니다.
지금 부터라도 부정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생활습관을 미래 지향적으로 설계, 실천하도록 노력하십시오.

91~100점

본 설문을 통하여 독자 자신이 단명할 것이라고 나왔다 해도 걱정할 것은 없습니다. 미래라는 말속에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단명할까 두렵습니까?


인간의 수명은 ....

일생동안의 생활습관과 사고방식·가치관 등에 따라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것이라도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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