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anuary
15,
2012




Love, love
changes everything
사랑 사랑, 사랑은 모든 것을
바꿔요.
Hands and faces,
earth and sky
손과 얼굴, 땅과 하늘을
Love, love changes
everything
사랑... 사랑은 모든 것을 바꿔요.
How you live and
how you die
당신이 사는 방법과 당신이 죽는
방법을
Love, can make the
summer fly
사랑은 여름을 날려버릴 수 있어요,
Or a night seem like
a lifetime
또는 하루 밤을 일생처럼 보이게 할 수
있어요.
Yes love, love
changes everything
그래요, 사랑, 사랑은 모든 것을
바꿔요.
Now I tremble at
your name
지금 나는 당신의 이름에 떨고
있어요.
Nothing in the world
will ever be the same
세상 어떤 것도 똑 같을 수는
없어요.
Love, love changes
everything
사랑, 사랑은 모든 것을 변화시켜요.
Days are longer,
words mean more
낮은 길어지고 말은 많아져요.
Love, love
changes everything
사랑, 사랑은 모든 것을 바꿔요.
Pain is deeper than
before
고통은 전보다 더 심해져요.
Love will turn
your world around
사랑은 당신의 세상을 뒤집어 놓을 수
있어요.
And that world will
last forever
그리고 그 세상은 영원히 계속될 수
있어요.
Yes love, love
changes everything
그래요, 사랑, 사랑은 모든 것을
바꿔요.
Brings you glory,
brings you shame
당신에게 영광을 혹은 수모를
가져오기도 하죠
Nothing in the world
will ever be the same
세상 그 무엇도 같을 수는 없어요.
Off into the world
we go
떨어져서 세상 속으로 우리는 갑니다.
Planning futures,
shaping years
미래를 계획하고, 날들은 구상하면서
Love and
suddenly all our wisdom disappears
사랑이 갑자기 쳐들어오면 우리의
지혜는 사라지지요.
Love makes fools of
everyone
사랑은 모든 사람을 바보로 만들지요.
All the rules we
made are broken
우리가 만든 모든 규칙이 파괴되지요.
Yes love, love
changes everyone
그래요, 사랑, 사랑은 모든 것을
변화시켜요.
Live or perish in
its flame
그 불꽃 속에서 살고 죽습니다.
Love will never
never let you be the same
사랑은 결코 당신을 그 상태로 두지
않을 겁니다.
Love will never
never let you be the same
사랑은 결코 당신을 그 상태로 두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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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련사 K
한명원
그는 입안에 송곳니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두 발로 걷는 것이 불편할 때도 있어 혼자 있을 때 네 발로
걸어도 보았다. 야생은 그의 직업이 되었고 조련은 가늘고 긴 권력이 되었다.
모든 권력은 손으로 옮겨갈 때
가벼워진다. 눈치를 보는 것들의 눈빛은 언제나 심장을 겨냥하는 법. 다만 두려운 것은
손에 들려 있는 권력일 뿐이니까.
조련사 k. 그는 아침마다
동물원을 한 바퀴씩 도는 순방이 있다. 금빛 은행잎이 k의 머리 위로 왕관처럼
씌워진다. 철조망에 갇힌 초원이 펼쳐져 있다. k는 손을 흔들거나 휘파람을 분다.
잠자던 맹수가 눈을 뜨더니 달려온다. 무릎을 꿇는다.
k는 맹수의 꼬리를 목에
두르고 맹수코트를 걸치고 곤봉을 휘두르는 자신을 상상하곤 한다.
어느 날부터인가 k의 얼굴에
구레나룻이 생기고 몸에 털이 자라고 손톱은 길어졌다. 모든 모의謀議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긴다. 말 안 듣는 맹수에게 먹이를 주지 않고 채찍을 휘두르며 맹수보다 더
맹수처럼 사나워져 갔다.
얼마 전 야생의 모의謀議가
철조망을 빠져나갔다. 그 후 k의 통장으로 감봉된 월급이 들어왔다. k는 자기 목을
조르는 조련사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머리카락이 빠지고 몸에 털이 빠지고
손톱이 빠졌다.
조련으로 청춘을 보낸 k는
결국, 야생을 놓치고 말았다.
새로운 조련사들이 들어오고
그들은 맹수들과 더 빨리 친해졌다. 동경하던 야생은 저 쪽에서 어슬렁거렸다. 이빨 빠진
맹수 한 마리가 다른 맹수 눈치를 보며 어슬렁거렸고 금빛 왕관은 가을 저 쪽으로 다
날아가 버렸다. 얼마간 퇴직금의 조련을 받는 힘없는 맹수가 되어 있었다.

[당선 소감]
초심으로 돌아가
세상에 소외된 것들을 노래하겠습니다

▲1965년 서울 출생
▲중앙대 예술대학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학원 논술강사·여성회관 독서논술지도 강사
아, 저에게도 이런 날이 오는군요. 연말 캐럴 송을 들었지만 올해의
캐럴은 유난히 따뜻한 음절로 들립니다.
상처받으면 혼자 공상하고 중얼거리는 것을 좋아하던 제가 이렇게 보상을
받는군요. 세상의 모든 관계들과 사물들에게 감사합니다.
한명원 집 근처에 있는 동물원으로 아이와 손을 잡고 자주 갔었습니다.
방학 때마다 개최하는 동물교실을 수강 신청했습니다. 염소에게 풀도 주고
물개들에게 생선도 던져주며 동물들과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조련사를
보면 동물들은 달려왔고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아이는 어느새 컸고 삶이 힘들고 버거울 때마다 나는 여전히 동물원을
찾았습니다. 새장 속 독수리, 철창 속 호랑이, 돌 위에서 앞만 멍하게
바라보는 곰 식구들. 그들은 나의 친구였고 나였기에 야생을 그리워하는
서로의 눈빛을 교환하며 위안을 얻었습니다.
동물원 입구에 서 있던 나뭇잎이 휘날리고 머리 위로 나뭇잎 왕관이
씌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동물원을 다 돌고 나올 때가 되면 어느새
마음이 편해져 겸손한 내가 오만했던 내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미흡한 제 글을 뽑아주신 조선일보와 조정권, 문정희 선생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문학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용기를 주신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이승하
선생님께도 인사드립니다. 앞으로 열심히 쓰겠습니다.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 친구 미정, 옥련, 미선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나와 함께 같은 길을 가는 제자들과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신이 내린
축복 같은 딸 수연과 오랜 시간 묵묵히 견디어준 남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초심으로 세상에 소외된 것들을 노래하겠습니다.

[심사
평]
치밀한 관찰과 묘사… 섬뜩한 시적 투시력 보여

본심에 올라온 8명 응모자들의 작품을 읽고 선자들은 갈수록 장황해지고 난삽하고,
모호해지는 오늘날의 시의 흐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시 본연의 길을 추구하는 시로서 시의 고전적 규범이라 할 언어의 함축미와 새롭게 삶을
성찰하고 투시하는 상상력의 결핍이 심화되어 간다는 것을 발견했다. 논의를 거듭하며
검토한 결과 최종적으로 3명의 작품이 남게 되었다.
먼저 ‘창밖이 푸른곳’등 3편을 투고한 김은지의 경우 ‘뿔의 냄새’가 눈길을 끌었지만
아쉽게도 이미 과거에 응모했던 동일 시를 계속 투고하고 있다는 점이 신인으로서의 자세가
아니라는 점과 다른 두 편의 시적 사유도 평면적이란 점이 못내 아쉬웠다.
'조련사k’ 등 3편의 작품을 투고한 한명원의 경우 산문적 진술을 꾀하며 그 안에 극적
구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거슬리지만 삶의 구체성에 대한 치밀한 관찰과 묘사가 눈길을
끌었다.
그의 시는 오늘날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되돌아보게 해준다. 그러나
시적 발상이나 화법이 새롭다기보다는 유형화된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번 응모자 중에서 인간과 현실에서 삶의 남루함을 포착하는 섬뜩한 시적
투시력을 보여준 유일한 작품이란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불통을 어루만지다’외 3편을 투고한 정지우의 경우 시적 표현은 응모 시 중에서 가장
세련되어 보였지만 ‘뒷문의 형식’이나 ‘사춘기’와 같이 시를 거의 관념에서 끌어오고
있다는 점이 아무래도 불안해 보였다.
두 선자는 당선작을 최종적으로 가리는 과정에서 유형화된 시적 틀에 갇힌 시라는 다소의
불만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삶을 관찰하는 한명원의 ‘조련사k’가 보여준 힘없는 맹수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단단한 말의 가능성을 믿어보기로 합의했다.
시라는 것은 삶과 현실에 대한 성찰과 열정의 산물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
문정희·조정권 시인


▶ 춘호는 빚에 몰려 있다. 시골로 이사 온 뒤 땅뙈기를
얻어 일구려 해도 생전 못 보던 사람이라 아무도 빌려주지 않는다. 춘호는 서울로 갈
차비를 마련하려고 아내에게 몸을 팔게 한다. 남편 닦달에 못 이긴 아내는 평소 추근대던
이 주사를 찾아간다.
193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김유정 소설
'소낙비'의 줄거리다. 그가 쓴 '안해' '가을' '산골 나그네'도 비슷한 얘기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식민지의 바닥 삶을 그렸다.
▶ 43년 전 윤흥길의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회색
면류관의 계절'에는 1960년대 후반 암담했던 시절이 녹아 있다.
주인공은 군복무를 하다 갑작스레 부친 별세 소식을 듣는다.
그러나 극심한 생활고를 겪는 가족을 도와줄 방법이 없다. 주인공은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려고 탈영을 꿈꾼다.
뒷날 작가는 "그 당시 내가 겪었던 지독한 절망과 분노는
나 혼자 속에 담아두고 있으면 큰 고질병이 될 것 같았다"고 했다.
▶ 2012년 벽두에 발표된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읽다 보니
가슴이 섬뜩할 만큼 '실직'과 '자살'이 주된 소재다.
조선일보 소설 당선작 '삼각조르기'는 실직 위기에 내몰린
직장인의 삶을 격투기 선수의 처절한 훈련과정에 빗댔다.
희곡 당선작 '그들의 약속'은 구직에 실패한 30세 여성과
파산당한 중소기업의 40대 남자가 자살 사이트를 통해 여관에서 만나는 얘기다. 남자는
여자를 설득해 돌려보낸 뒤 약을 들이켠다.
▶ 동아일보 소설 당선작 '치킨 런'은 통닭·피자 배달
청년이 주인공이다. 인생 막장에 내몰린 통닭 손님이 자신의 자살을 확실하게 도와주면
50만원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경향신문 소설 '방', 한국일보 희곡 '모기'도 비슷하다.
"서민과 젊은 세대의 피를 빨아먹는 사회 시스템"에 분노를 쏟아놓는다. 당선작 열
작품을 읽었는데 아홉이 똑같은 비명을 지르고 있다.
▶ 87년을 헤아리는 우리나라 신춘문예 역사에서 응모작들은
언제나 그때 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窓) 역할을 했다.
현실 문제를 부각시키는 세태소설과 삶의 진실을 드러내는
인생소설이, 역사적 비극을 소재로 삼는 이념소설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래도 올해처럼 한쪽으로 쏠린 적은 드물었다. 한
심사위원은 새해 신춘문예 경향을 '꿈꾸기를 멈춘 사람들을 향한 위로'라고 했다. 정치가
손 놓아버린 일을 새내기 작가들이 대신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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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사는 사람들에게
미국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사람들은 웃으면서 대부분
경찰관이라고 대답한다. 경찰관은 공권력을 최 일선에서 행사하는 사람이다. 경찰이
속도위반 티켓을 떼면 검사 아니라 법무부 장관도 벌금을 내야 한다. 거역할 수
없다.
2001년 12월이라고 기억된다. 9·11
테러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미국 사회는 엔론(Enron Creditors Recovery Corporation) 파산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맞이하게 된다. 1985년 에너지 회사로 출범, 15년 만에
미국 7대 기업에 선정된 엔론이 갑작스레 파산을 선언했다.
엄청난 규모의 분식 회계(粉飾會計,
window dressing settlement-기업이 고의로 자산이나 이익
등을 크게 부풀리고 부채를 적게 잡아 재무상태나 경영상태가 좋은 것처럼 고의로
조작하는 것)가 내부자 고발에 의해 들통났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 엔론은 영업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5억 8000만달러 규모의 적자를 장부에 기입하지 않고 매출을 조작하는 등의 방법으로 총 15억달러
규모의 분식회계를 5년간 계속해 왔다.
미국 사회는 제2의 엔론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 즉각 단죄에 나섰다. 미 사법 당국은 분식회계를 주도한 이 회사 최고경영자(CEO) 제프리
스킬링에게 징역 24년 형을 선고했고 스킬링은 아직 수감 중이다.
일부 경영진은 개인적으로 소송을 당해 주주들에게 상당한 금액의 피해보상을 해야
했다. 엔론의 회계감리를 맡았던 유명 회계법인 아서 앤더슨도 문을 닫고 말았다.
시장(市場)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하는 미국이지만 `룰(Rule)`을 어기는 사람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처벌을 내린다.
회사돈 110억달러를 횡령한
통신업체 월드컴의 CEO인 버나드 에바스가 징역 25년 형을 받고, 주식 내부자 거래를 통해 부당 이득을 챙긴 생명공학업체 임클론의 CEO 샘
왁살이 징역 7년형을 받은 것도 미국 사회의 엄격한
처벌 문화를 보여준다.
한국에서도 분식회계 등 이른 바 룰을 어기는 행위는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그러나 이들을 단죄하는 태도는 미국과 사뭇 대비된다.
지난 2008년 6월 1000억원대 비자금 조성 혐의로
징역 3년 형을 선고 받은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은 두 달 만에 사면복권 됐다.
앞서 2006년 1000억 원대 분식 회계 혐의로 역시
징역 3년 형을 선고
받은 두산그룹 박용성 회장도 2007년 사면됐다.
2009년 배임 혐의로
징역 3년 형을 선고 받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도 그 해 말 역시
사면됐다.
최근 회사 돈 2000억원 횡령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미 한 차례 분식회계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 받고 사면 받은
전력을 갖고 있다. 검찰 수사에 따르면 최 회장의 횡령이 시작된 건 2008년 10월 경으로 2003년 SK글로벌 분식 회계에 대해
사면을 받은 지
불과 두 달
만이다.
물론
미국처럼 수십 년 형의 징역형을 내린다고 정의가 바로서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 만으로 나라가 바로 잡아진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이것마져
무너지면 나라의 앞날은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한번 생각해 보자. [징역 3년에 집행유예... 그리고 사면 복권....]
이렇게 공식화 된
한국형 단죄가 한국 기업 총수들의 불법을 오히려 부추기는 사회악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어찌 보면 있으나 마나 한 법이요 어겨도 되는 법
쯤으로 생각하는 [공권력을 깔보는 사회]가 어찌 일등 국가가 되겠는가.
교회도 마찬가지다.
내가 어렸을 때는 교회에 [권징(勸懲)]이란 것이 있었다. 교인이 잘 못할 때
당회는 법원의 판사 같은 위치에서 잘못에 대해 응분의 판결을 내렸고 교인은 이를
하나님이 내리는 벌로 여기며 떨며 순종했다. 교회를 옮길 때도 반듯이
[이명증서]를 발급받아 다른 교회로 이적했다. 교회가 사랑의
교회이지만 법을 어길 때는 공권력 차원에서 벌을 내렸다. 권위가 있었다.
그러나 교회에
[권징]이 사라지게 되자 한국교회는 이 모양이 되었다. 이 모양이 무슨
모양인지는 말을 안 해도 아실 것이다. 교회의 권징을 받아들이는 교인도 없고
권징을 할 만한 목사도 장로도 없다. 그래서 일만 벌어지면 사회법정에 서로를
고발하여 교회의 권위를 스스로 짓밟고 있는 것이다.
교회 안에 권징에 관한
법은 엄연히 존재한다.
1. 권징은 교회의 생명에 본질적인 것이다. 권징이 없는 곳에 교회의 존재가 지속될 수 없다.
2. 권징이 복음에 필수적인 세 가지 이유
A. 그리스도의 영광이 손상될 수 없다.
B. 죄인은 반드시 회개함으로 낮아져야 한다.
C. 교회 안에서 죄인으로 인해 양무리들이 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
3. 교회가 권징을 행할 수 있는 권세가 있는가? 교회의 권세는 목회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목회자의
지위에 있는 것이고, 목회자의 지위는 목회자가 섬기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세에서 나오는 것이다.
권징의 두 가지 차원
1. 세우는 권징(formative)과 교정적 권징(corrective)
2. 세우는 권징: 설교, 가르침, 제자훈련, 소그룹모임, 예배 등으로 모든 잘못을 예방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건강하게 세워가는 차원으로 넓은 의미에서 권징이라고 할 수 있다.
3. 교정적 권징: 외과 수술처럼 더 심각하게 다치지 않도록 하는 책망, 권고, 출교와 같은 수단으로써
잘못을 바로잡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 두 번째 차원을 권징 혹은 치리라고 이해한다.
차제에 우리는 몇 가지를 생각해야
한다.
1. 과연 오늘날 권징을 하는
교회가 하나라도 있는가?
2. 왜 권징이 교회에서 사라졌을까?
3. 교회에서 권징이 사라진 결과가 무엇인가?
4. 어떻게 권징을 회복할 수 있을까?
저희 아버님께서 생존해
계신다. 아버님이자 목회 선배 되시는 목사님이시다. 아버님께서는 내가 어렸을 때
권징 하셨다. 잘못했을 때 벌을 내렸다. 두 손으로 의자를 들고
광(storage)에서 내리라는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서있었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의자를 내려도 되지 않을까 라는 양심(?)과의 싸움과 어깨가 무너지는
고통 속에서 나의 잘못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잘못의 반복이 없어야지
하는 개심을 작심했었다.
지금 자라는 자녀들에게
이렇게 단호하게 권징 하는 가정이 있을까?
결론은 그렇다. 국가도
교회도 가정도 다 룰이 있다. 그 룰을 지키기 위해 권징과 같은 치리가 있어야
한다.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하듯 법을 무서워해야 좋은 사람, 좋은
교회, 좋은 국가가 될 것이다.(장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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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사람, 선생님 맞습니까?

경기도 구리시 S중학교 3학년
황당 국사 시험문제. 이모 교사(32)는 나꼼수 발언을 예문으로 출제했다.
이 교사는 인터넷 방송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을 싸잡아 조롱하려는 목적으로 인용된 발언들을 3학년 국사 시험문제에
예문으로 출제했다. 또 자신의 트위터에 “답은 이승만인데 이명박 쓰는 애들도 ㅋㅋ”라고
올렸다.
이에 모 일간지 논설위원은 아래의 글을 썼다.
“어이없는 역사 왜곡이다. 반공포로 석방과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등을 놓고 미국과
대립하며 국가 이익을 지켜낸 이승만 전 대통령이 어째서 ‘대표적 친미주의자’인가.
1948년 항일 인사들로 건국 내각을 조각한 그가 ‘친일파와 손잡았다’고 할 수
있는가. 이 전 대통령을 비롯한 건국 세대의 지혜와 피땀이 없었더라면 이 교사도 지금
북한주민처럼 헐벗은 삶을 살고 있을지 모른다. 선배 세대의 역사적 노고에 감사하기는커녕 그들을 천박한 방식으로 야유하는 태도는 참으로 교사답지 못하다. ‘꼼수 교사’라고
부를 만하다.
김일성의 6·25 남침이 북한 소련 중국의 치밀한 사전 기획에 따라
이뤄졌다는 사실은 옛 공산권의 비밀문서를 통해 입증된 지 오래다.…
이런 교사에게 배운 아이들이 커서 대한민국을 자랑스러운 내 나라로 짊어지고 나갈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 한반도의 정통성은 북한 쪽에 있다는 반(反)대한민국 역사관에
오염돼 있다. 주민을 굶겨 죽이는 김일성 왕조에 도대체 무슨 정통성이 있다는 것인지,
… 국사교과서 내용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북한을 ‘우리 공화국’으로 지칭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 이들로부터 배운 학생들이 교사가 돼 다시 비뚤어진 역사를 가르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이 교사가 한 기자의 전화 문의를 받고 “지금 좀 많이 쫄린다(걱정된다는 뜻)”는
글을 올렸다. 서울북부지법 서기호 판사는 이 글에 “(기자가) 전화번호 알아냈다 해서
일거수일투족 감시 당하는 거 아니니 쫄 필요 없다”, “쫄면을 시켰다가는 가카의 빅엿까지
먹게 되니(겁을 먹으면 이명박 대통령이 의도한 대로 엿을 먹게 된다는 뜻)”라는 글을
올리며 “버티면 이깁니다”라고 응원했다.
2. 나꼼수 기자 주진우의 거짓말
‘박정희의 맨 얼굴’ 출판기념회에서 ‘나는 꼼수다’의 주진우 기자가 언급한
내용이다.
<허위발언 1>
“1963년도에 광부들이 파독 됐고 1966년도에 간호사들이
파독됐구요… (1964년도 박 대통령이 서독에 갔을 때 그곳에서 한국 간호사들을 함께
만나 울었다는 것은 거짓이라는 뜻)”
<허위발언2>
“1964년도에 대통령이 독일에 간 것은 맞습니다. 거기까진 팩트인데, 뤼브케 대통령을 만나지도 못했습니다. 독일은 이미 민주화가 되어서 대통령이
오자마자 호텔을 민주화 인사들하고 시민단체 인사들이 데모를 해 가지고요 저기 대통령은요
다른 데 한 발짝도 바깥에 못 나갔다는 겁니다. 그리고 대통령은 독재자하고 어떻게 …
우리나라도 그렇지 않습니까? 아프리카에서 쿠데타로 정권 잡은 사람이 온다고 해서 막
만나주고 그러지 않습니다. 아무리 이명박도 그러지 않지 않습니까? 그래서 만나지도
못했습니다. 탄광에 간 건 맞는데 나머진 다 구라입니다.”
<허위발언3>
“1961년도에 독일에서 ... 차관을 줬는데 우리나라도 1억
5천만 마르크를 그때 받았습니다. (1964년 박 대통령 독일 방문 시 1억 5천만
마르크 차관을 얻었다는 말은 거짓이라는 뜻) ”
“1963년도에 광부가 갔구요 1966년도에 간호사가 갔는데 이건 별개의
일입니다. 근데 간호사를 보내고 광부들이 가서 피와 땀과 시체를 닦아서 돈을 벌어 와서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했다 이렇게 다 듣고 있는데 다 구라입니다.”
주진우 기자가 허위 발언한 주요 내용들에 대한 역사적 사실은 아래와 같다.

박 대통령이 광부들과 간호사들
앞에서 연설하는 모습,
눈시울을 적시는 한국 간호사의
모습(오른쪽 하단)
<사실1>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는 방독 중에 광부들과 간호사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 눈시울을
적셨다.
(국가기록원-대한뉴스 영상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CmV4GlkZDhc$).
<사실2>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은 독일 방문 시 뤼브케 대통령과 여러 번
대담과 교제의 시간을 가졌다.
-1964년 12월 6일 박 대통령 공항 영접에 뤼브케 대통령이 직접 나와서
맞이함.
-8일 아침, 박 대통령 독일 뤼브케 관저 예방, 독일 뤼브케 대통령 박 대통령
내외에게 독일 최고 훈장 직접 수여하고, 박 대통령 역시 뤼브케 대통령 부부에게
무궁화대훈장 수여함.
-저녁 7시, 뤼브케 대통령이 베푼 만찬에서 다시 만남.
-저녁 9시, 뤼브케 대통령 부부와 박 대통령 부부가 함께 음악회에 참석하고 리셉션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하는 등 계속적인 교제의 시간을 가졌음(동일 영상 참조).
<사실3>
차관협정은 1961년이 아닌 1964년 박 대통령 방독 중에 이루어진 성과이다.
3. 내곡동 가까이

<나는 꼼수다>의 꼼수
‘내곡동 일대를 사려 함은’.
2011년 10월 24일 방송에서 나꼼수 출연진들은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
논란’을 잘 알려진 찬송가 내용을 패러디해 비난했다.
출연진은 찬송가 중 ‘내 주를
가까이’의 가사를 ‘내곡동 일대를 사려 함은 / 십자가 짐 같은 그린벨트 / 내 인생
소원은 재테크하면서 / 재벌이 되기를 원합니다 아멘’으로 바꿔서 부르며 낄낄거렸다.
‘내곡동 가까이’는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확산되었고 가사를 넣고 747장으로
찬송가를 표시한 악보도 공개됐다. 악보의 ‘747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747공약’을
빗댄 것이다.
이에 대해 한 네티즌은 “1000명이 함께 부르자”고 하며 ‘내곡동 가까이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새벽기도 주제는 내곡동 가까이”로 하자는 등
기독교를 폄하하고 조롱하는 반응들을 보였다.
같은 날 방송에서 출연진은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를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온 여인에 빗대기도 했다.
“1억짜리 피부과에서 마사지를 받으매 성난
군중이 ‘마땅히 돌을 던져야 하나이다’”라고 말하면서 나꼼수의 출연진들은
박장대소했다(그러나 나경원이 치료받았던 해당 피부클리닉 김모 원장은 1억짜리 피부과
마사지는 사실이 아님을 밝혔다).
출연진들은 성경 패러디가 끝나자 ‘할렐루야 아멘,
성령이 깃드셨다’ 등을 외치며 낄낄거렸다.
4. 악한 자의 입으로 말미암아 무너지느니라(잠 11:11)
나꼼수는 한국 팟캐스트 ‘뉴스 및 정치’ 분야에서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
KBS <박경철의 경제포커스> 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최근에는 한국
팟캐스트 전체 1위에 올랐다.
나꼼수 방송은 1회 다운로드가 180만 이상이 된다고 한다. 나꼼수 출연자들이
책을 출판하면 곧 베스트셀러가 된다고 한다. 순회 콘서트도 순식간에 티켓이 매진된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나꼼수는 사실이 아닌 ‘1억 피부과’ 패러디 등을 통해
나경원이 낙선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놀라울 정도의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대로 간다면 국회의원 총선거와 대통령 선거에서 더욱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돈도 별로 들이지 않고 빌딩 지하의 조그마한 부스 스튜디오에서 시작된 인터넷
방송이 수많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공략하며 거짓과 선동으로 교회와 국가의 근간을 뒤흔들며
서서히 무너뜨려 가고 있다.
급기야는 12월 7일 열린 검찰개혁 콘서트에서는 주진우를
국정원장으로 세우자는 말도 출연진들 사이에서 나왔다. 역사적 사실도 다 ‘구라’라고
말하는 사람이 국가정보원장이 된다면 이 사회와 국가는 ‘구라’로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정부도, 교회도 아무런 대처를 하지 않고 있다.
‘관군은 무너지고 의병만 남아 외롭게 싸운다‘는 누군가의 말이 새삼스럽게 가슴에
와 닿는다.
정부와 여당이 이 땅의 공의를 세우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교회들마저
개교회의 부흥과 확장에만 급급하여 이 사회에 정직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을 등한시한다면 ’나꼼수의 거짓말‘ 같은 흑암의 세력들이 더욱 강력하게 힘을 발하게
되어 이 나라와 교회는 마침내 함께 무너지게 될 것이다.
국회의원 총선거(4월)와 대통령 선거(12월)를 통하여 국가의 장래를 결정짓는
2012년이 시작된다. 마땅히 역할을 감당해야 할 자들이 역할을 감당하지 않을 때
누군가는 일어나서 자신을 희생함으로 조국과 이 사회의 무너진 틈을 막아서야 한다.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내가 내 분노를 그들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들 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겔 22:30-31)”
이 사회와 국민들을 거짓과 미혹과 선동으로부터 깨어나게 하며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어가는 북한 동포들을 살리기 위하여 하나님은 새로운 의병들을 일으키실 것이다. 거짓이
횡행해도 거짓을 거짓이라고 말하는 용기 있는 사람이 없을 때 ‘악인의 입’은 사회와
국가를 무너뜨리게 된다.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복으로 인하여
진흥하고 악한 자의 입으로 말미암아
무너지느니라(잠 11:11)”
5. 의병들이 일어나서 조국을 살릴 수 있도록…
이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과 교회의 지도자들은 용기 있게 참을 참이라고 하고
거짓을 거짓이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손해 보는 것이나 보복이 두려워서 마땅히 할 일과
할 말을 하지 않을 때 본인과 사회는 함께 망하게 되고 그 값을 다 치르게 된다.
베트남의 패망과 공산화가 이를 보여 준다. 김정일이 죽고 난 후 북한의 전쟁 도발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내부의 적, 즉 남한 내에 거짓으로 국민 다수를 미혹하며 선동하여
반국가적, 반기독교적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세력들이다.
이 세력들은 국가와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거짓말만 하는 것이 아니고, 동성애를
지지하고 초·중·고교생의 성문란, 임신·출산도 학생의 자유라고 주장하며, 학생 인권을
빙자하여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의 권위를 짓밟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이들은 인터넷과 SNS를 휘어잡고 언어적 폭력과 위협을 불사하며 대세를 잡아 가고 있는데 이를 막아 설
수 있는 헌신된 사람들과 전략과 재정적 지원이 극히 미비한 상황이다.
의병들이 일어나 무너져 가는 조국을 살릴 수 있도록 기도하고 격려하며 아낌없이
군자금을 지원해야 한다.
2012년 국가와 교회를 위해 내 몸을 드려 헌신하든지 아니면
헌신한 자들을 축복하며 후원함으로 국가적인 영적 전쟁에서 이 민족을 살리는 기드온의
300용사 같은 JESUS ARMY를 세워야 할 것이다.
(JESUS AR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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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는 데이터를 저장하는 기계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저장을 맡아왔던 HDD가
SSD로 바뀌는 변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를 거의 삼성이 도맡고 있는
실정입니다.


위의 모습을 거쳐 지금의
HDD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최초의 HDD는
3분짜리 고음질 MP3파일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참고로 하드디스크라는
명칭은 외장형 저장매체인 플로피디스크와 반대로 내장형 저장매체이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라고 합니다.
요즘이야 컴퓨터를 끄면 하드디스크가 알아서 안전구역(아래
사진을 보시면 텅 비어있는 부분)으로 액츄에이터 암이 접혀서 들어가지만 옛 HDD에는
DOS환경에서 컴퓨터를 끄기 전에 일일이 명령어를 써서 강제로 넣어야(저장) 했습니다.

플래터 :
데이터가 저장되는 공간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데이터를 담는 자성물질이 부착된
원판입니다.
스핀들 모터
: 플래터를 회전시키는 모터이자 구동축입니다. HDD의 전력소모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헤드(헤더)
: 플래터에 저장된 데이터를 쓰고(Write) 읽는(Read) 부분입니다.
액츄에이터 암 : 헤더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장치입니다. 프로그래밍을 통해 매우 섬세하게 움직여야 하는 부담이 있습니다.
커넥터 : 전원 - 메인보드에서 전력을 얻어오는
부분.
데이터 - 메인보드를 통해 RAM, CPU,
GPU 등과 통신하는 통로.
HDD는
컴퓨터의 기본구성 중에서 유일하게
기계식 작동을
하는 하드웨어입니다.
컴퓨터에서 오차라는 것은 매우 치명적이기 때문에, 특히
데이터 저장이라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HDD는 매우 정밀하고, 높은 신뢰도가
요구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류나 고장을 일으키지 말아야 하며, 외부환경에도 강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기계적 작동을 하기 때문에 고장이 나는
비운의 하드웨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HDD
제작사에서는 HDD의 고장을 방지하기 위한 많은 방법들을 강구해왔으며, 그 중간중간에
새로운 기술을 만들기도 하고 성능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도 꾸준히 기술을
발전시켜왔습니다.
1. RPM : 모터의 분당회전수입니다. 주로
5400(노트북에 주로 쓰임), 7200(고성능 노트북, 일반 데스크탑),
10800(고급 성능 데스크탑) 등이 있습니다. 회전수가 빠르면 그만큼 헤더가 데이터를
읽는 속도는 더 빠르게 되고 응답속도에도 영향이 있게 됩니다.
2. 규격 : SATA니 IDE이니 하는 것이 바로 HDD의
규격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IDE 다음에 SATA가 나왔고, 요즘 주로 쓰이는 것은
SATA2, SATA3, E-IDE가 있습니다.
3. 버퍼 : RAM과 HDD의 전송속도 차이는 꽤
큽니다. 결국 병목현상이 걸리게 됩니다만 이를 그나마 완충시켜주는 것이 바로
버퍼입니다. 쉽게 생각하면 임시저장소입니다. 미리미리 버퍼에 로딩해서 필요할 때 바로
램에 넘겨주는 역할... 생각보다 성능에
꽤 영향이 큽니다.
반영구적 수명을 가진 CPU나 램과는 달리
HDD에는 수명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아무래도 HDD를 구성하는 요소가 많다 보니
저마다 수명이 다르긴 하지만 그 중에서 액츄에이터 암의 모터부분을 주로
따집니다. 요즘은 50만~100만회 온로드가 수명입니다.
이번에는
SDD입니다.
HDD에서 더 진화된 형태라고 보시면 됩니다.

SSD는 HDD와 달리 전혀 기계적 동작을 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충격에 강하고, 전기도 덜 먹고, 발열도 적은 편입니다.
플레시메모리의 기술력을 쓰고 플레시메모리 여러 개를
병렬연결하는 컨트롤러 개념을 도입해서 HDD에 비해서 고속을 자랑합니다.
반응속도는 무려 0.01ms.... HDD가 일반적으로
5~20ms임을 감안하면 거의 명령이 들어오자마자 반응하는 정도.
일반 속도도 높지만 특히
렌덤엑세스 속도가 HDD에 비해 비약적인 속도이기 때문에 저용량 데이터에 대한 속도는
월등히 높습니다.
성능요인
1. 컨트롤러 : SSD성능요인 중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초기의 컨트롤러는 용량관리력 부족, 병렬데이터 처리력부족,
반응속도 부족 등등을 겪다가 같은 제품에 개선형 컨트롤러를 장착시키니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2. 규격 : HDD와 마찬가지입니다.
3. SLC/MLC : SSD를 구성하는 플래시메모리는
저장방식에 따라 SLC/MLC로 나뉩니다. SLC는 1셀(SSD의 용량 기본단위)에
1비트만 저장, MLC는 경우에 따라 다릅니다. 이에 따른 특징을 보면, SLC가
성능, 속도, 수명 등의 요소에서 유리합니다만... 그만큼 많은 셀이 필요하기 때문에
가격이 상승합니다. 그래서 SSD가 MLC형 모델로 만들어지는 경향입니다.
한가지 SSD는
HDD보다 수명이
짧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물론 속도가 빠르고 가볍고 전력이 적게 들고 발열이 적다는 점은 분명히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HDD는 하드가 한번 켜지고 꺼지는 것으로 수명이 정해지는
것이라서 쓰기 나름대로 긴 수명을 가졌다고 볼 수 있으나, SSD는 재기록
횟수라는 요인이 수명을 결정하기 때문에 컴퓨터를 쓰는 만큼 수명이 단축됩니다.
이것도 기술이 좋아지면서 거의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게
되겠지만 아직은 아니라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겠습니다.
용량도 HDD에 비해서는 아직
작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SSD가 주로 많이 쓰이게
될 것입니다.(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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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차세대 저장장치인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SD) 시장을 절반 이상 독식한 것으로 나타났다.
SSD의 핵심인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가진 삼성전자는 향후 SSD 시장에서 독주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15일 시장조사업체 아이 서플라이와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노트북, 서버 등을 포함한 전체 SSD 시장은
1710만대 규모다. 이 가운데 노트북용의 비중은 1400만대 수준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지난해 700만대 이상의 노트북용 SSD를 팔아, 전 세계 노트북용 SSD 시장에서
50%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가 울트라북을 겨냥해 올해 초 출시한
SSD 신제품 `PM830 시리즈`
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태국 홍수 이후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생산이 급감하자
삼성전자가 이를 대체하는 SSD의 생산량을 대폭 늘리면서 한때 점유율이 60% 이상으로 올라갔다"고
말했다.
전동수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사장)도 "태국 홍수 이후 SSD 주문이
늘어났다"면서 "PC업체들이 SSD를 탑재한 프리미엄 PC의 비중을 높이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삼성전자의 독주는 SSD의 핵심인 메모리반도체에서 물량 공세를 펼칠 수 있는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SSD는 자기 디스크에 정보를 저장하는 HDD와는 달리 메모리반도체인 낸드플래시를 기반으로
한다.
삼성전자는 전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39.1%의 점유율(지난해 3분기 기준)로 1위를 지키고
있다.
특히 올해 2분기부터는 세계 최초로 국내에서 10나노급 낸드플래시 양산에 들어가고, 내년 3분기부터는
중국에서도 10나노급 제품을 생산하는 등 생산량을 대폭 늘릴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노트북용 SSD 판매량을 올해보다 두 배 이상 늘려, 최대 1800만~1900만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올해부터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인텔 울트라북 등 초박형 노트북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주대영 산업연구원 반도체담당 연구위원은 "현재 낸드플래시는 SSD가 아니면 시장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면서 "낸드플래시 1위인 삼성전자가 SSD를 늘리는 것은 당연한 전략"이라고 말했다.
(언)
낸드플래시
[nand flash]
D램과 함께 메모리 반도체의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부품으로, 정보를 저장한다는 점은
D램과 같지만 전원이 꺼져도 저장한 정보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MP3 플레이어, 디지털카메라, 휴대폰 등에 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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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10일 개막한 세계 최대 전자제품 전시회 CES2012에서는
세계 TV 시장 1·2위의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부스에 관람객들의 엄청난 관심이 쏟아졌다.
양사의 부스에서도 특히 주목 받은 제품은 전시장 입구에 대거 설치해 놓은 55인치 크기의 대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다.
개막 전날 열린 프레스 컨퍼런스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제품이었던 OLED TV는
세계 최초로 국내
기업 두 곳이
함께 선보이는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있었다.


자체 발광 OLED가 보여주는 선명한 화질에 매료된 관람객들이 끊임없이 사진을 찍으려고
몰려드는 바람에 다른 전시를 구경하는 데에 방해가 될 정도였다.
대형 초고화질
UD(Ultra Definition) TV에 몰리는 사람들의 관심도 대단했다.
또한 삼성전자의 음성인식 TV 체험 공간이나 LG전자의 3D 체험존에는 기다리는 사람들로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 평균 10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한편,
전자왕국 일본의 침몰을 보여주는 듯 파나소닉, 샤프 등 일본 업체들의 부스는 비교적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시장을 선도하는 신제품보다는 이전 전시회에 갖고 나왔던 제품들 위주로
전시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이센스, TCL, 창홍 등
중국 업체들이 적극적인
따라하기 전략으로 국내 업체들의 뒤를
좆고
있는 모습이 더 인상적이었다.
삼성전자와 LG전자에 대한
외신들의
관심도 쏟아졌다.
C넷은 삼성전자의 글로벌 프레스 컨퍼런스에 대해 "올해 CES 기자회견 가운데 가장 긴 대기
시간과 스탠딩 참석자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이 행사에는 1천900명에 육박하는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은 "경쟁사 상품 개발 담당자들이 우리 제품을 접사 촬영하는 것을 일일이
막기가 어려워 곤혹스러울 정도"라며 달라진 위상을 전했다. 삼성전자 부스에는 곽승준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 제프리 카젠버그 드림웍스 CEO와 오츠보 후미오 파나소닉 CEO 등이
다녀갔다.
삼성전자의 OLED TV는 '얇은 스크린에 완벽한 화면을 표현했으며, 뒤에서도 화면이 선명하게
보일 만큼 아름다운TV'(인가젯,
기즈모도)라는 평가를 받았고, LG전자의 OLED TV는 개막일 CES2012 참가
기자들의 투표로 선정한 인기상 12개 품목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스마트TV에
대한 관심도 쏟아졌다. 영국 BBC는 삼성전자의 스마트TV 업그레이드 기능인 '에볼루션
키트'에 대해 '매년 업그레이드될 것이라는 비전을 제시했다'고 평가했고, LG전자 스마트TV는
음성 인식 기능으로 '대화할 수 있는 TV'라며 주목을 받았다.
10일(현지시간)부터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고 있는 CES2012 삼성전자 전시 부스에서 관람객들이 삼성전자 구글 클라우드 프린터를
살펴보고 있다.

"일본은 매우 앞선 나라였기
때문에 (지금은) 힘이 좀 빠져버린 것 같고, 중국은
열심히 따라오고 있지만 아직 한국을 좇아오기에는 시간이 좀
걸리겠다고 생각합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인식이 달라졌다. 여전히 위기를
말하지만, 과거에 비하면 자신감이 부쩍 붙었다. 이 회장은
12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 2012`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지난 2007년 1월 이 회장은 앞서 가는 일본과 쫓아오는
중국 사이에 한국이 끼어 있다는 일명 `샌드위치론`을
얘기했다.
당시 이 회장은 "중국은 쫓아오고 일본은 앞서 가고 있고
우리는 샌드위치 돼있다"라며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참
고생을 많이 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것이 우리 한반도"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5년이 흐른 지금 이 회장의 평가가 사뭇 달라졌다.
일본은 과거보다 경쟁력이 떨어졌고, 중국이 빠르게
쫓아온다고 하더라도 한국과의 격차를 좁히기는 힘들 것이라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이러한 자신감은 이 회장이 이번 CES에서 삼성전자와 한국 전자기업의 위상을
확인했기 때문. 이미 삼성전자는 지난 2010년 이후 매출
기준으로 휴렛팩커드(HP)를 누르고 세계 최대 IT 기업에
오를 만큼 덩치가 커졌다.

CES 참관 후 사장단과 어떤 얘기를 나눴는지 묻자 이
회장은 "더 깊이 미래를 직시하고, 더 멀리 보고, 더
기술을 완벽하게 가져가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미래에 대해 충실하게 생각하고 상상력, 창의력을 활용해서
힘있게 나아가자고 했다"고 답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등 세 자녀의 역할을 언제쯤 늘릴
계획인지를 묻자 이 회장은 "지금 열심히들 공부하고
있는데, 하는 것 보고 해야 한다"고 답하며 웃었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어려운 경기 상황에서도 43조1000억원을
투자했다. 올해는 48조원이 넘는 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이서현 제일모직·제일기획 부사장이
`CES 2012`의
삼성전자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가운데)이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
윤부근 삼성전자 CE담당
사장(왼쪽)과 함께
삼성전자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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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에게 존댓말을 쓴다는 것은 ...
나는 당신을 존중합니다.
나는 당신을 배려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무언가 배울 점이
있는 사람입니다.
나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나는 당신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을 닮고 싶습니다.... 처럼
엄청나게 많은 의미를 단
한방에 전달할 궁극적인 비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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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우스(Windows)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개발한 컴퓨터 운영체제다.
키보드로 문자를 일일이 입력해
작업을 수행하는 명령어 인터페이스(Command Line Interface)대신, 마우스로 아이콘 및
메뉴 등을 클릭해 명령하는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raphical User Interface,
이하 GUI)를 지원해 멀티태스킹(다중 작업) 능력과 사용자 편의성이 탁월하다.
또한 전 세계 PC
운영체제 시장에서 점유율 9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사용자층이 두터워(2011년 10월 기준)
대부분의 소프트웨어와 호환이 된다는 장점이 있다.
윈도우스는 용도에 따라 크게 개인용, 기업용, 임베디드용(윈도우스 CE 계열)으로 나뉜다. 개인용은 일반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제품이고, 기업용은 워크스테이션이나 서버에 적합하도록 네트워크 기능과 안정성을
강화한 제품이며, 임베디드용은 특정 용도에 최적화된 컴퓨터(휴대전화, PDA, 비디오게임기 등)에
맞춰진 제품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1985년 ‘윈도우스 1.0’을 출시한 이후로 꾸준히 후속 버전을 출시하며 시장 지배력을
강화해오고 있다.
한 때 ‘윈도우스 XP’의 후속 버전인 ‘윈도우스 비스타’가 사용자들에게 혹평을 받으며
마이크로소프트를 곤란하게 했지만, 2009년 출시한 ‘윈도우스 7’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점차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는 추세다.
그리고 모바일 운영체제인 ‘윈도우스 모바일’, ‘윈도우스 폰’ 시리즈를 앞세워 모바일 시장에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윈도우스의 시작, MS-DOS기반의 1.0에서 3.1까지
1981년 마이크로소프트는 멀티태스킹을 지원하는 GUI 기반 운영 프로그램 개발에 착수했다. 이
프로그램의 프로젝트명은 ‘인터페이스 매니저(Interface Manager)’였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 마케팅 담당자는 이 이름이 너무 평범해서 소비자들의 흥미를 끌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
운영진을 설득해서 창문을 뜻하는 ‘윈도우스(Windows)’로 변경했다.
실행화면이 창문의 격자를 닮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탄생한 ‘윈도우스 1.0’은 1985년 공식 출시됐다.
윈도우스 1.0은 독립적인 운영체제라기 보단 MS-DOS에서 구동하는 일개 프로그램에 가까웠다. 때문에
시장의 반향은 크지 않은 편이었다.
그림판, 워드 프로세서, 달력, 시계, 메모장, 클립보드,
게임등을 지원했는데, 전체적으로 맥 OS와 매우 유사했다.
이는 당시 마이크로소프트가 초기 매킨토시
소프트웨어 개발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고, 매킨토시용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해주는 대신 맥 OS
디자인을 일부 차용할 수 있는 라이선스 계약을 애플과 맺었기 때문이다. 당시 계약서는 애매한 표현으로
작성됐는데, 이 치명적인 실수로 인해 애플은 나중에 뼈아픈 후회를 하게 된다.
물론 윈도우스 1.0이 맥 OS를 완전히 대놓고 베낀 것은 아니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라이선스를 준수하기
위해 윈도우스 GUI 중 일부를 맥 OS와 다르게 꾸몄다. 예를 들어 윈도우스 1.0의 창은 타일을 나열한
형태로, 창을 여러 겹으로 겹치게 할 수는 없었다. 파일을 삭제할 수 있는 ‘휴지통’도 없었다.
1987년 출시된 ‘윈도우스 2.0’부터는 ‘MS 워드’와 ‘MS 엑셀’이 구동되기 시작했고 서드파티
프로그램도 점차 늘어났다. 또한 맥 OS의 창 겹치기와 같은 기능을 추가했다. 하지만 여전히
MS-DOS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고, 시장 반응 역시 잠잠했다.
윈도우스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 시발점은 1990년 발표된 ‘윈도우스 3.0’이었다. 멀티태스킹 기능이
대폭 향상됐다는 점이 특징이다.
곧이어 1992년 윈도우스 3.0을 개선한 ‘윈도우스 3.1’이 등장했고,
이 두 버전은 출시 2년 만에 1,000만 개에 달하는 엄청난 판매량을 올렸다.
애플로서는 아차 싶은 상황이었을 것이다. 윈도우스 2.0과 윈도우스 3.0이 출시되자 애플은 “라이선스
계약은 윈도우스 1.0에만 적용된다”며 저작권 침해 소송을 걸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계약상 문제
없다”고 맞섰다.
그리고 지방법원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손을 들어줬다. 애플이 문제삼은 189가지
유사점에 대해 “179가지는 윈도우스 1.0때 맺은 계약에서 동의했던 부분이며, 남은 10가지에서도
애플만의 독창성을 찾아볼 수 없다”고 판결한 것이다. 오히려 제록스가 “GUI는 우리가 먼저
만들었으며, 맥 OS의 GUI는 우리 것을 모방한 것”이라며 소송을 걸어와 애플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NT 시리즈로 시작된 기업용 윈도우스의 등장
1993년 출시된 ‘윈도우스 NT 3.1’은 최초의 32비트 전용 버전으로, 기업용에 맞게 네트워크기능, 보안성, 안정성을 높인 제품이다.
‘윈도우스 NT 3.5’, ‘윈도우스 NT 3.51’, ‘윈도우스 NT
4.0’이 차례대로 출시됐다. 원래 NT 계열은 기업용에 걸맞은 고성능 PC를 위한 운영체제였지만,
PC의 성능이 전반적으로 발전하면서 개인용으로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기업용 시장을 겨냥한 NT
계열이지만 멀티미디어 기능을 강화하고 윈도우스 9x와 유사한 사용편의성을 갖춘 ‘윈도우스 2000’이
대표적인 사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에 한 발 더 나아가 2001년, ‘윈도우스 XP’에서 개인용
윈도우스에도 NT 시리즈의 커널(운영체제의 기반을 이루는 뼈대)을 내장했다.
마찬가지로 ‘윈도우스 비스타’와
‘윈도우스 7’역시 NT 계열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03년에 ‘윈도우스 서버 2003’을,
2008년에 ‘윈도우스 서버 2008’을 별도로 내놓기도 했다.
DOS 시대는 안녕, 윈도우스 9x 시리즈
‘윈도우스 95’의 등장으로 본격적인 윈도우스 독주시대가 시작됐다. 전작인 윈도우스 3.1와 완전히 다른 GUI를
채택하면서 오늘날의 윈도우스와 거의 비슷한 골격을 갖추게 됐다. 플러그 앤 플레이 기능(주변기기를
연결하면 자동으로 인식하는 기능)이 추가됐고, 파일 이름을 최대 255자까지 지을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MS-DOS에서 구동되는 프로그램이 아닌 독립적인 운영체제로 거듭났다는 점이 가장 주목할만한
변화였다(하지만 호환성을 위해 MS-DOS를 포함했다). 윈도우스 95는 엄청난 성공을 거뒀고, DOS
및 DOS 기반 프로그램은 급속하게 자리를 잃으며 몰락하게 된다.
3년 뒤 출시된 ‘윈도우스 98’은 윈도우스 95의 후속작이다.
‘인터넷 익스플로러 4.01’, ‘아웃룩
익스프레스’ 등 다수의 인터넷 연결 프로그램을 지원했으며, USB 인터페이스도 추가됐다.
2000년에는 밀레니엄을 뜻하는 ‘윈도우스 미(Me)’가 출시됐으나 좋은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성능이
향상된 부분은 미미했지만 안정성은 오히려 떨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후속 제품 윈도우스 XP가 예상보다
빠른 시기에 출시되면서 윈도우스 미는 급격히 잊혀졌다.
윈도우스 9x 시리즈는 블루스크린의 잦은 발생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원성을 샀다. 이는 MS-DOS와의
호환성을 유지하기 위해 16비트 방식과 32비트 방식을 혼용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스
98을 시연하는 자리에서 블루스크린이 떴던 대형 사고는 상당 기간 동안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윈도우스 XP의 장기집권, 저조한 윈도우스 비스타
2001년에는 NT 시리즈와 9x 시리즈를 본격 통합한 윈도우스 XP가 출시됐다. NT 커널 기반으로
개발됐기 때문에 속도 및 안정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출시 초기에는 보안에 취약하다는 의견이
대두되기도 했지만, 마이크로소프트가 대대적인 서비스팩을 제공하면서 보안성 논란을 잠재웠다.
‘홈 에디션’과 ‘프로페셔널 에디션’으로 출시됐으며, 전세계 출시 2달 만에 2,000만 개에 가까운
판매고를 올리는 등 높은 인기를 끌었다. 2005년에는 64비트 프로세서용 에디션이 추가로 출시됐다.
2006년에는 에어로 GUI를 적용하고 보안 시스템을 대폭 강화한 윈도우스 비스타가 등장했다.
‘홈
베이식 에디션’, ‘홈 프리미엄 에디션’, ‘비즈니스 에디션’, ‘엔터프라이즈 에디션(대기업용)’,
얼티밋 에디션(홈 프리미엄과 엔터프라이즈 통합)’, ‘스타터 에디션(일부 국가에만 출시)’ 등 용도에
따라 총 6개 에디션으로 출시됐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윈도우스 XP에서 사용하던
프로그램들이 대부분
호환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보안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편의성은 퇴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수시로 뜨는 보안알림창은 사용자들은 불편을 야기했고, 윈도우스 XP의 세대교체를 노리던
마이크로소프트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여전히 사람들은 윈도우스 XP를 선호했고, 윈도우스 XP의 아성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다.
8년만의 세대교체, 윈도우스 7 그리고
윈도우스 8
2009년에는 윈도우스 7이 등장했다. 한번 고배를 마신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스 비스타의 보안 시스템을
손보고 다른 기능을 추가해서 내놓은 야심작으로, 윈도우스 비스타와 마찬가지로 6개 에디션으로 출시됐다.
이와 함께 윈도우스 XP와 윈도우스 비스타 양쪽에서 모두 호환되는 프로그램들이 서서히 시장에 풀리기
시작했다. 윈도우스 7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고, 2011년 9월 기준 누적 판매량은 4억 5,000만
개를 넘어섰다.
점유율은 점차 상승해 2011년 10월에 마침내 윈도우스 XP를 제치게 된다(윈도우스 7 약
40%, 윈도우스 XP dir 39%) 8년 동안 꿈쩍도 않던 윈도우스 XP가 드디어 조금씩 물러나게 된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12년 출시를 목표로 윈도우스 8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윈도우스 8은 기존의
인텔과 AMD의 마이크로프로세서뿐 아니라 ARM 마이크로프로세서도 지원하며, 터치스크린 인터페이스도
탑재한다.
윈도우스 8이 윈도우스 XP를 몰아내는데 일조를 할 것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기존
버전과의 호환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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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감상

아침
Ruggero Leoncavallo
1858~1919, 나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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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지난해 169개국에 23,331명의 선교사를
파송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0년보다 1,317명 늘어난
숫자다.
(사)한국세계선교협의회(대표회장 강승삼, 이하 KWMA)는
9일 안디옥교회(신화석 목사)에서 제22회 정기총회를 개최하면서
‘한국 선교사 파송 현황’을 발표했다.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는 교단은...
예장합동(총회장
이기창)으로 총회세계선교부(GMS)를 통해 101개국에
2,129명을 파송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이영훈 목사)는 개교회임에도 불구하고
57개국에 1,359명의 선교사를 파송해 다른 교단들을 제치고
2위에 올랐다. 2011년 파송 선교사 수는 2010년 710명의
2배에 가까운 숫자다.
그 뒤로는 예장통합(81개국, 1237명),
기감(74개국,
1184명),
기하성(65개국, 828명),
기침 (61개국,
649명),
예성(42개국, 536명),
예장대신(57개국,
496명),
예장백석(43개국, 418명),
예장고신(52개국,
374명) 순이었다.
선교단체 중에는 .....
92개국에 1,722명을 파송한
한국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UBF)가 수년째 1위 자리를 지켰으며,
2위에는 2010년 4위(27개국 540명)였던 인터콥선교회가
26개국, 677명으로 올랐다.
그 뒤로는 국제대학선교협의회(40개국, 654명),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70개국, 631명),
예수전도단(51개국,
519명),
한국대학생선교회(27개국, 502명),
WEC국제선교회(49개국,
446명),
두란노해외선교부(43개국, 356명),
바울선교회(87개국,
323명),
GP선교회(30개국, 290명) 순이었다.
선교사가 가장 많이 파송된 국가는...
중국ㆍ홍콩ㆍ마카오로
147개 단체로부터 3,775명의 선교사가 파송됐다.
2위는
미국(75개 단체, 2697명),
3위는 일본(85개 단체,
1347명)이었으며
필리핀, 인도, 러시아ㆍ연해주, 태국,
인도네시아, 독일, 캄보디아가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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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 넓고 광활한 대양을 4대 지역으로 구분한다.
1. 오스트랄리아 지역,
2. 멜라네시아 지역,
3. 폴리네시아 지역,
4. 미크로네시아 지역
등
4대 지역에 15개의 크고 작은 섬나라들이 있다.
미크로네시아 지역에는 마샬군도, 나우루, 미크로네시아 연방, 팔라우, 키리바시 공화국 등
5개의 섬나라들이 있다.
이 글 에서는 키리바시의 비극적 역사를 고찰해 본다.
키리바시 공화국은 하와이 남서쪽 2,500 mile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국토의 전체 면적은
32개의 섬들을 모두 합해 약 313sq miles이다. 32개의 섬들 중에서 21개 섬이
무인도이다. 키리바시 공화국의 수도는 Gilbert 섬에 있는 Tarawa시이며 이곳에 전체
인구 10만 명 중에서 27만 명이 수도에 살고 있다.

높아지는 해수면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키리바시
주민들
키리바시 (Kiribati) 공화국의 간추린
역사
키리바시에 3000년 전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고고학자들은 주장한다. 마샬군도와 피지 섬 등
여러 섬들과 왕래하면서 살고 있었다. 그들은 섬마다 추장들이 통치를 했으며 bangota라고
부르는 제단이 섬들에서 발견되었는데 원시종교 생활의 흔적으로 여겨진다. 그들은 상어 뼈로
무기를 만든 것으로 보아 부족들 간에 싸움도 있었다고 고고학자들은 말 한다.
고대로부터 14세기에 이르기까지 키리바시의 역사와 문화는 폴리네시아 인들과 미크로네시아 인들이
서로 왕래하고 혼혈하면서 독자적 삶의 세계를 형성하면서 그들의 역사는 계속되어 왔다.
그런데 1606년에 키리바시에 스페인의 해양 탐험가
Quiros가 제일 처음으로 상륙했다. 1788년에 영국인 Thomas Gilbert가
상륙하여 섬 이름을 자기의 이름으로 Gilbert섬이라고 명명했다. 오늘 키리바시의 수도가
있는 Gilbert 섬은 그때 시작된 섬의 명칭이다.
1799-1826년 사이에 영국인들이 선봉대가 되어 많은 유럽인들이 키리바시에 왕래했으며 백인
부랑자들의 무역의 중심지가 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Coconut Oil이 주요 무역의
상품이었으며 후에는 Copura 등 다양한 산물들이 영국인들의 주요 무역 상품들이 되었다.
1857-1875년에 영국의 기독교 선교사들이 줄을 이어 키리바시 여러 섬에서 선교를
시작했는데 이 선교사들은 주로 London Mission Society에 속한 선교사들이었으며
Catholic도 별도로 선교 활동을 하고 있었다.
1877-1892년에 영국은 키리바시 제도에 대한 통치권의 뿌리를 견고히 내리기 시작하였으며
1892년에 영국은 드디어 키리바시에 대한 보호령을 선포했다. 대영제국의 국기가 키리바시
Gilbert섬에 우뚝 서서 바람에 휘날리기 시작했다.
키리바시의 32개 섬들이 차례로 영국의 보호령에서 식민지로 전락하는 과정이 1939년까지 줄곧
계속되었는데 1939년에는 섬들의 일부를 미국과 공동으로 활용할 태평양 상의 항공비행장 건설에
두 나라가 합의를 했다.
1941년에 세계 2차 대전이 시작되었다. 일본은 진주만을 폭격하고 2일 후에는 키리바시를
폭격하여 영국인들이 모두 떠나갔다. 일본군은 키리바시를 1945년까지 완전히 점령하고 있었다.
1950년에 영국은
또 다시 키리바시에 돌아와 7년 동안 치안정국의 명목으로 식민통치를 계속하고 있었다. 이 7년
동안에 영국은 키리바시에서 그 악명 높은 핵실험을 감행했다.
영국은 키리바시를 핵 실험장으로 완전히 망가트려 놓은 후에 1963년에 이른바 <키리바시
행정위원회>와 <자문위원회>를 창설하여 키리바시의 독립을 위한 준비단계의 공작을 시작했다.
영국은 1970년대에 들어서서 키리바시를 영국의 태평양지역 지방행정관 산하에 속하도록 하고
영국인 행정관 John Field의 통치를 받도록 했다.
영국은 1973년에 미국의 평화봉사단(Peace
Corp)을 키리바시에 끌어들였다. 영국의 의도는 이를 활용하여 키리바시 민중들이
미국식 민주주의 선거제도에 세뇌 되어 선거를 통하여 친 서방 정권을 창출해 내자는 것이었다.
영국은 1977년에 키리바시 자치정권을 승인하고 1978년에 이른바 자유선거를 통하여 키리바시
독립 정권을 수립하게 했다. 1979년 7월 12일에 독립국을 선포하여 영국연방의 제 41번째
국가로 등록하도록 했다.
독립된 키리바시 공화국은 Gilbert에 속하는 16개 섬들, Phoenix에 속하는 8개
섬들 그리고 Line Island에 속하는 8개 섬들, 모두 32개의 섬들이 하나의 국가로
통합되었다. 영국이 키리바시 공화국을 독립국가로 승인한 또 다른 하나의 이유는 1900년대
초에 키리바시에서 발견된 인산 광산이 60-70년 후에 바닥이 났기 때문이다.
영국은 거의 1세기 동안 키리바시에서 막대한 인산을 착취하여 막대한 경제적 부를 약탈해갔다.
하지만 이제는 인산
광산은 바닥이 났고, 또 핵 실험으로 완전히 망가진 키리바시를 더 이상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1979년에 독립국으로 승인하고 영국의 연방국으로 묶어 놓았던 것이다.

키리바시에는
이미 바다가 주민지대보다 높아진 곳도 있다.
크리스마스 섬
(Christmas Island) 에서 영국의 핵 실험
왜 크리스마스 섬 이라 부르는가? 영국의 유명한 태평양 탐험가인 Captain James
Cook이 1777년 12월 24일 Christmas Eve에 이 섬을 처음 발견하고 상륙을
했다는 전설적 이야기에 근거하여 크리스마스 섬 이라고 부르게 됐다. 그럼으로 크리스마스 섬의
명칭은 종교적 의미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영국인들의 끝없는 대양 탐험과 침략 야욕의 전통에
근거하여 붙인 명칭일 뿐이다.
영국의 핵 실험은 전적으로 미국의 설계에 의존하여 성공을 했다. 영국과 미국은 냉전시대에
소련을 견제하기 위하여 상호 협력했다. 영국 크리스마스 섬과 말덴 섬 외에 또 다른 섬들에서도
수 없이 많은 각종 핵 실험을 미국과 합동으로 또는 미국이 단독으로 계속하고 있었다.
1953-1962년 적어도 50차 이상 감행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크리스마스 섬과 섬의 주변에서 그리고 또 말덴 섬에서 영국이 단독으로 실시한 두 핵 실험에
대하여서만 간략하게 살펴본 것이다.
영국의 핵 실험 진행과 사후처리와 피해
보상문제
영국이 단독으로 크리스마스 섬과 말덴 섬에서 핵 실험을 엄청나게 진행한 과정이었으며 핵 실험
후에 사후처리 및 보상문제 등도 너무나도 비도덕적, 비현실적인 야만적 처사로 일관하였다.
특히 보상문제에 대하여 너무나도 방대한 문제를 영국은 시종 묵살했다. 이에 대해 국제사회는
문제를 계속하여 제기하고 있으며 명백한 역사적 자료가 태산처럼 넘쳐 나오고 있다. 이 글에서는
그 빙산의 일각만 기술한다.
영국이 크리스마스 섬과 말덴 섬에서 위험한 핵 실험을 감행하기 사전에 당연히 주민들을
안전지역으로 대피시켜야 했다. 하지만 기록에 의하면
주민들을 대피시키는 계획이 전무한 상태에서 핵 실험을 감행한 사실이 밝혀졌다.
핵 실험을 감행한 영국 군부의 비망록에 의하면 영국정부로 부터 아무런 확실한 지침이 없었으며
다만 구두로 민중에게 핵 폭파 광선을 피하여 눈을 감고 얼굴을 돌리라고 경고를 내렸다는
것이다.
영국군 당국은 부녀자들과 아이들은 건물 안 에 모여 있으라고 경고를 했다. 그러면서도 영국군
당국은 핵 실험 폭파로 인하여 창문이 부수어질 것을 미리 예측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얼마나
악랄한 영국인들의 기만적인 두 얼굴의 모습인가?
핵 실험을 감행한 영국의 군부는 해상의 선박들에게 또 섬의 주민들에게 하등의 선전문이나
확성기를 사용하여 대피를 통고하지 않았다고 한다. 만일 그러한 통고를 시도했다면 도대체 어떤
언어를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대책 논의가 있어야 하는 점은 당연한데 지금까지 그런 것은 전혀
제시된 것이 없다.
핵 실험 후에 방사선 낙진이 섬 전역에 떨어져 쌓였는데도 불구하고 영국군 당국의 비망록에
의하면 핵 시험 후에 그러한 핵 낙진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섬과 말덴 섬에서 감행한 핵 실험에 동원된 인원은 총 2,500명으로 추산한다.
뉴질랜드인 500명과 오스트레일리아인 그리고 피지 정부가 제공한 대다수의 인원 등 총
2,500명이 영국의 핵 실험을 위하여 종사했다. 그런데
1999년에 발표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영국의 핵 실험에 동원된 2,500명 중에서 30%가
이미 사망했으며 이들은 하등의 보상을 받지 못하였다.
2,500명 중에서 100여 명의 자녀들이 불임증 환자들이 됐으며, 또 핵 실험에 종사한
2,500명의 후손들이 척추병 등 불치의 환자로 출생하는 확률이 일반인에 비해 5배 이상 높다
높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그 외에도
백혈병과 암환자들이 본인들과 후손들 사이에서 속출하고
있으며 또 염색체 이상형 환자들이 계속 발생했다.
핵 실험이 1950년대에 있었는데 40년-50년 후에야 보상 문제의 공방이 영국의 법정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또 놀라운 사실은 피해자들이 법정 소송을 진행하는 도중에 아무 결과를
보고 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뒤늦은 법정 투쟁도 뉴질랜드 인들과 오스트레일리아인 그리고 피지 정부가
적극적으로 투쟁을 시도함으로 가능한 것이었다. 크리스마스 섬과 멘델 섬의 피해자들은 감히
영국정부에게 핵 실험 피해보상 같은 것을 요구할 생각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 어제와 오늘의
현실이다.
크리스마스 섬에는 2007년 현재 5,200 명이 생존해 살고 있다. 이들은 핵 실험 낙진과
오염된 핵폐기물 대한 제거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매우 위험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바다 소금물의 침수로
죽어가는 키리바시 야자수, 지하수에도
염분이 침투하고 있어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수몰의 운명을 기다리고 있는 키리바시 공화국
남태평양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섬나라 키리바시는 1900년대에는 서방의
침략과 식민통치에
시달리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1900년대 말에 이르러서는 핵 실험장으로까지 사용되는 비운에
처했다.
그런데 영국과 미국의 방대하고 잔인한 핵 실험의 참화 속에서 겨우 살아남은 오늘의 키리바시
민중들에게 2000년대에 들어 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2000년대에 들어 지구온난화로
인하여 북국의 빙하가 녹아 내려 남태평양의 작은 섬 나라들은 수몰될 비극의 운명에
처해있다. 키리바시도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로서 예외로 될 수 없다.
지구온난화는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서구의 문명국들의 경쟁적인 산업화로 인하여 무진장 방출하는
이산화탄소가 지구의 열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는 이불효과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태평양의 작은 나라들이 수몰의 위기에 처해 있는 것도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행한
영국과 미국의 책임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미국 펜타곤의 비밀 보고서에 의하면 향후 50년
내에 지구의 기후변화로 인하여 난민의 발생이 증가하고 더욱이 핵무기 경쟁으로 인하여 세계는
위태롭게 될 것이라고 보고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이와 같은 보고서를 은폐하고 있는 것이다.
키리바시는 인구 10만의 작은 나라인데 수몰의 위기가 나타나고 있지만 이렇다 할 대책은
속수무책이다. 하루 두 번 썰물과 밀물이 엇갈리는 시간에 해안 주택들은 수상 가옥으로 변하고
아이들은 허리까지 차오르는 물길을 헤쳐 왕래한다.
코코넛 나무가 무성했던 마을들은 침수되고 있으며 그 보다 더 큰 문제는 지하수가 바닷물에
오염되는 것이다. 30년 안에 이곳 섬이 바다 물에 잠길 것을 생각하면서 떠날 곳을 찾고
있지만 고향을 버려야 하는 슬픔 때문에 쉽게 떠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키리바시 섬 사람들의 실질적인 문제는 이렇다 할 기술도 학력도 없기 때문에 그들을
받아주는 나라는 어디든 없다는 점이 문제이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는 노동능력이 있는 젊은
이민자들만 키리바시 난민으로 받아들인다는 엄격한 제한을 제시하고 있다.
키리바시 공화국의 제 5대 대통령으로 현재 집권하고 있는 Annuo Tang대통령의 말은 매우
심각하다. Tang대통령은 영국과 미국을 향하여 쓴 소리를 했다.
"당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물에 빠지는 것을 보고 싶으세요?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답게
행동해야 한다고 말 하고 싶어요."
키리바시가 처해 있는 수몰의 운명에 대한 영미의 태도를 세계는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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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언제나 누군가를 처음 만나고 또 만나면서 살아간다.
이때 사람들은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상대방과의 서열을 정하여 머릿속에 정립한다.
즉, 내가 그 사람보다 윗사람인가? 아랫사람인가? 같은 것들을 순식간에 정해버린다.
이때 간편하면서도 확실한 기준이 되는 것이 바로 '나이' 다.
고대시대부터 내려온 이런 문화는 전세계적으로 걸쳐있는데,
존댓말과 반말, 반쯤 존댓말(?)이 활성화 되어있는 동양아시아와 한국에 특히 자주 나타난다.
누군가를 알아갈 때 나이라는 숫자는 강력한 기준이 된다.
나이는 권위를 상징한다.
나이는 경험을 상징한다.
나이는 연륜 그 자체이며 그 사람의 품격을 높일 최고의 도구다.
물론 맞는 말이다. 지금이 1900년대라면 말이다.

지금은 어떤가?
시장이 글로벌화되고 빛의 속도로 정보를 찾아 낼 수 있다.
지식은 홍수처럼 넘쳐나고 개인의 역량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각광받는 시대다.
이처럼 시대가 전체적으로 바뀌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누군가를 판단할 때 '나이'를 기준 삼아도 문제가 없는걸까?
흔히들 나이는 경험치를 상징하는 최고의 숫자라고 인식하고 있다. 정말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나이'를 기준 삼아서는 절대로 안 된다!
왜냐하면 태어난 년도를 기준으로 하는 나이 따위는 그 사람의 포장일 뿐, 진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A는 태어난 지 10년이 되어 10살이다.
그는 하루에 12시간씩 잠을 자며 12시간만 일했다.
B도 태어난지 10년이 되어 10살이다.
그는 하루에 잠을 0시간 자며 24시간 일했다.
이때 A와 B는 모두 10살이다.
누군가가 그들에게 나이가 어떻게 되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10살이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A와 B의 경험치는 딱 2배 차이가 난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나이의 결정은 상대적으로 변경이 될 것이다.
A를 기준으로 하면 A는 10살이며, B는 20살의 경험치를 가지고 있다.
B를 기준으로 하면 A는 5살이며, B는 10살이 된다.
두 사람 중 누가 뛰어난 인재이며, 누가 당신에게 도움을 줄 확률이 높은가!
나이는
똑같은데 A와 B는 엄청난 차이를 보일 것이다.
나는 10살이라는 나이를
시계나이, 실제 경험했던 나이를
경험나이라고 부른다.
시계나이 VS 경험나이.
이 개념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절대로 잊지 말자.
다음 글에서도 이 개념이 나오므로 기억해두면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인간이라면 10년동안 잠을 아예 안자고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적절한 수면은 무엇인가를 할 때 성능을 높여준다.
극단적인 예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약간 우회해서 이해를 해보자.
예컨대, 1년동안 A는 책 1권을
읽고 B는 100권을 읽는다,
A는 TV에 주말을 모두 헌납하고 B는 여행을 떠나고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며 이야기 나눈다,
A는 매일 술이나 먹으며 밤을 지새지만 B는 운동을 하고 사색을 한다
처럼 말이다.
이렇게 나이 같은 숫자는 말 그대로
숫자일 뿐,
그 사람을 판단하는 척도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사회적으로 누군가를 만났을 때 우리들은 친해진다는 명목에서 족보를 정리한다.
즉, 나이 많은 순서대로 서열을 정해서 암묵적으로 그것을 추종한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는 그대로 존대를, 어린 사람에게는 말을 놓는다.
이유는 단 한가지. 친해진다는 명목 때문이다.
이 명목이라는 게 아주 웃기는 이야기며 말도 안 되는 것인 데 말이다.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에는 엄청나게
많은 의미가 있다.
존댓말을 사용하는 부부들은 부부싸움을 하는 확률이 낮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부부나 가족보다 더 친한 사람이 과연 있단 말인가?
거주지를 공유한다는 것은 최고로 친하다는 것의 증명이다.
친해진다는 것과 반말, 존댓말을 쓰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서로 존댓말을 사용해도 친해질 수 있으며,
반대로 서로 반말을 사용하더라도 안 친할 수도 있다.

자,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상대방의 시계나이는 말 몇 마디면 알 수 있지만 경험 나이는 측정하기가 힘들다.
확실히 친해진다고 하더라도 경험 나이를 알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시계나이 보다 경험나이를 우선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면,
당신은 사회에서도 학교에서도 객관적으로 누군가를 측정할 현미경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럼 이제 당신이 확실하게 나이를 기준으로 하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1. 지금부터 알게 되는 모든
사람들에게 존댓말을 사용한다.
당신과 동갑, 당신보다 어린 사람,
어른에게도 모두 존댓말을 사용하면 된다.
2. 상대방에게 나이를 절대로 묻지
않는다.
나이를 알게 되는 순간 당신은 그
사람을 나이로 판단하게 된다.
또한 나이라는 숫자는 그 사람과의
협업에서 안 좋은 영향을 많이 끼칠 수도 있다.
정말 궁금해서 미쳐버리기
직전이라면,
어느 정도 그 사람과의 친함을 체크한 뒤 조심스럽게 질문하라.
3. 누군가를 판단할 때 나이로
생각하려는 느낌을 의식적으로 제거한다.
지금까지 나이로 사람들을 판단해왔기
때문에,
당장 나이를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다.
서서히 서서히,
조금씩 조금씩 발전시켜 나가면 된다.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다거나 누군가를 좀 더 알고 싶다거나,
누군가에게 흥미가 있다면 그 사람의 나이를 알려고 하기 전에,
그 사람의 가치관, 취미, 흥미, 일,
식사, 건강, 꿈 등에 대해 질문해보라.
말 놓는 것보다 2배는 빨리 친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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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의 에너지난이 심각해지면서
수도 평양의 아파트 거주자들마저 집을 비우고 난방이 되는 친척이나 지인들의 집에서 숙식하는 동거사리를 택하고 있다고 대북매체 데일리NK가 13일
보도했다.
지난달 말 평양을 방문했던 내부 소식통은 "수돗물이 나오지 않아 먹을 물도 부족하고 화장실 이용에도 어려움을 겪었다"며 "여기에 난방 문제까지
겹치자 살던 집을 떠나 친척집으로 이동하는 세대가 많다"라고 전했다.
평양의 아파트 중 1980년대 이후에 건설된 중앙난방식 아파트들은 전력난으로 난방을 공급받지 못하면서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한 것. 거처를 떠난
임시거주자들은 해당 거주지 담당 보안원에게 신고할 경우 거주지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다.
20~40층짜리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 광복거리와 통일거리에서 이런 이주 세대가 가장 많이 발생하고 있으며, 북한이 자랑하는 현대적인 거리가
겨울이 되면 거주 기피 지역이 되고 있다고.
평양의 고층 아파트는 대부분 평양화력발전소에서 전기를 공급받는다. 그러나 발전 설비와 배전시설, 온수를 제공하는 배관이 워낙 낙후돼 있어
고장이나 열손실이 많다. 최근에는 이마저도 공급되지 않아 에너지난의 심각성을 드러내고 있다.
일부 주민들이 난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 한 개를 선택해 바닥을 뜯고 구멍탄 보일러를 설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자체 구조 변경으로 인한
붕괴나 질실 사고가 속출해 당국이 이를 금지하고 나섰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최근 평양 주민들은 물 부족, 전기(불) 부족, 식량(쌀) 부족에 떠는 자신들의 처지를 빗대어 "북한은 `ㄹ`이 없는 나라"라는 말을 한다고
한다. 물, 불, 쌀에 모두 `ㄹ` 받침이 들어간 것에 착안해 만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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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38%, 뇌졸중 대처 법 모른다”..
뇌졸중 증상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38%나 되는 등 우리나라 국민의 뇌졸중 인식 수준이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병원 신경과 윤병우 교수팀은 무작위로 선정한 20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뇌졸중에 대한 인식도를 조사한 결과, 여러 가지 뇌졸중
증상 중 하나도 알지 못한다는 응답자가 38%에 달했다고 9일 밝혔다.
조사 결과를 담은 논문은 뇌졸중 분야 저명 국제학술지
‘뇌졸중(Stroke)’에 실릴 예정이다.
한 가지 이상의 증상을 알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 중 인지도가 높은 것은 마비(44%), 언어 장애(27%) 등이었으며 의식 저하(11%),
어지럼증(9%), 편측 마비(8%) 등의 순으로 알고 있었다.
뇌졸중 위험 요인 중 한가지 이상을 아는 응답자도 56%에 불과했다. 질환별로 고혈압(31%), 과음(23%), 흡연(21%), 고지혈증(14%),
비만(14%), 당뇨(9%), 가족력(8%), 운동부족(8%) 등이 꼽혔다.
급성 뇌졸중의 표준 치료법인 혈전용해제에 대해 31%의 응답자만이 알고 있었으며, 발병 직후 가장 효과적 대처법인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가겠다’는 응답은 33%에 그쳤다.
단일 질환으로
국내 사망률 1위인
뇌졸중은
발병 후 3시간 이내에 치료를 받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혈관이 막혔을 때 다른 주변 혈관에서
산소와 영양분을 지원받아 일부 뇌세포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이 3시간 이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3시간 이내에 혈전용해제를 투여해 막힌 혈관을 뚫으면 회복될 가능성이 있지만, 이 시간을 넘기면 심각한 장애를 남기거나 사망할 수 있다.
윤 교수는 “뇌졸중은 증상과 대처 방법을 미리 인지하고 최소한 3시간 이내에 병원에 와야 한다”며 “아직도 일반인의 뇌졸중 인식도가 낮은 만큼
보다 효과적인 뇌졸중 치료를 위해 대국민 홍보 캠페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운동하지 않고도 운동을 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내는 호르몬이 있다? 미국의 한 연구팀이 인간의 근육 세포에서 칼로리를 연소시키는 호르몬을 새로 발견해 이를 생쥐에 투여한 결과
실제 운동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는 것으로 확인됐다.
12일 영국 텔레그래프 등에 따르면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원의 브루스 스피겔만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이리신(irisin)이라는 이름의 이
호르몬이 운동하는 동안 분비돼 에너지 소비를 늘리고 혈당 수준을 조절한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과학전문지 `네이처` 온라인판에 실었다.
연구팀은
이리신의 수치를 높이기만 하면 운동한 것과 같은 효과가 나는지 알아보기 위해 당뇨 직전 상태에 있는 운동을 하지 않는 비만 생쥐에게
적당량의 이리신을 주시했다.
그 결과 단 10일간 투여했는데도 생쥐들의 혈당과 인슐린 조절을 개선하고 당뇨병 발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또 체중도 약간 줄었으며,
고지방 사료를 먹인 생쥐의 포도당 내성도 개선됐다. 이리신의 투여량은 운동할 때 증가하는 수준으로만 제한했기 때문에 부작용이나 독성은 나타나지
않았다.
스피겔만 교수는 이리신을 장기간 투여하면 더 큰 체중감소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리신이 체중을 늘리는 지방을 태워주는 `갈색
지방`의 생산을 늘려주기 때문. 갈색 지방은 나이가 들면서 대폭 줄어들며 몸에 해로운 흰색 지방으로 대체된다. 흰색 지방은 주로 허리 주변에
축적된다.
스피겔만 교수는 "이리신은 체내에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물질인데다 인간과 생쥐의 단백질은 똑같아서 매우 이른, 아마도 2년 내 임상시험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런 호르몬이 발견됐다고 해서 헬스클럽에 가거나 근육을 키우는 것을 생략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이리신이
근육을 강화시켜주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
신체의 이리신 수치가 높아지는 것은 단기간 근육 강화 운동을 했을 때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운동을 반복했을 때라는 사실도 이번 연구결과 드러났다.
스피겔만 교수는 "우리는 다이어트와 운동을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다"면서 "이들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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