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19,  2012

 

 

 

 

 

 

 

 

 

 

오늘은 다니엘 코비알카

미래는 아름다워 라는 연주 곡을 보내드립니다.

 

Daniel Kobialka는 작곡/편곡의 거장입니다.
Bach, Satie, Beethoven, Vivaldi, Debussy와 같은
거장들의 음악을 자주 재해석했습니다.


Daniel Kobialka의 음악은 어떤 환경에서도 즐길 수 있지만
그의 음악은 스트레스나 긴장을 풀 때
마음의 평온을 찾고자 할 때 크게 도움이 되는 음악입니다.

 

이 노래로

마음의 평온이 찾아오면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십시오.

나이를 묻지 마시고요.

 

말없이 달려온 지난 생의 모든 짐을 내려놓고

다시 떠나는 나그네처럼 다시 꿈을 꾸십시오.

또 다른 아름다운 꿈을 꾸십시오.

 

지금도 아름답지만..(언)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행위는
타인을 위로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타인의 말을 들어줌으로써
그를 최고의 상태에 이르게 할 수 있다.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 사람과
그 말을 진지하게 들으려는 사람,
이 두 사람의 만남은
말하자면 하나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어쩌다 운좋게 이루어진 것으로서,
미처 기대하지도 못했던 기분
좋은 사건이다.


-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중에서 -
 

 

 

"이 세상에서 정말 가치 있는 것을 얻게 해주

세 가지 습관이 있다. 그것은

 

- 일하는 습관,

- 건강을 관리하는 습관,

- 공부하는 습관이다.

당신이 만약 남자이고 이러한 습관을 가진 데다
같은 습관을 가진 여자의 사랑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지금 여기에서 천국에 있는 것이며,

여자 쪽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 헬렌 니어링의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중에서..-

 

 

 

마지막이란 말은 - 이정하

 

마지막이란 말은 하지 말기를...

설사 지금 떠나서 다시 못 본다고 해도

마지막이란 말은 결코 하지 말기를...


앞으로 우리 살아 갈 날 수없이 많이 남아 있으니

지금 섣불리 마지막이라고 단정 짓지 말기를...


사람도 변할 수 있고

사랑도 변할 수 있는 법


지금 공연히 마지막이라는 말을 해서

다음에 만날 수 있는

그 가능성마저 지워 버리지 말기를...


숨을 거두기 전까지 우리 절대로

마지막이란 말은 입에 담지 말기를...


 

 

 

나를 비켜가는 것들에 대한 예우


인연은 여기까지라고
아련함이 허용 되지 않는 날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전해 주었다
슬픈 사실들이 하나 둘 나부낀다
사막 한 가운데에서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라
사방을 둘러보는 내가 있었음을
눈썹이 가지런하게 누운 밤에
뒤늦은 고백을 한다

문득문득 그리워지는 것들이
얼마나 많이 나를 비켜 갔는 지에 대한
기억도 허물어져 간다
내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 때 나는 먼 곳에서도
그 통증을 느꼈다
나를 비켜갔던 것들에 대한 예우로
난 많이 아픈 척 해야 했다
나를 비켜가는 것들이 덜 미안하게
 

 

 

 

하루의 위대한 탄생

그 어떤 사건들보다 가장 나를 흥분케 하는 것은
'하루'의 탄생이다.

하루의 탄생을 지켜볼 때마다
나는 충만감을 느낀다.

왜냐하면 하루는 24시간 동안 매 순간 깨어나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나의 눈에는 하루의 탄생이
어린 아기의 탄생보다 더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내일은 또 다른 하루가 태어날 것이다.
내일 나는 다시 한번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이 될 것이다.


피에르 쌍소,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세상에 날개가 닿지 않는 새처럼

꽃들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사람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소나무에 걸린 달님과 마주앉아
차를 따르며 담소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허허로울 순 없을까.

세상 위로 날아가면서도
세상에 날개가 닿지 않는 새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타인의 달콤한 말이나 험담에도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듯
그렇게 무심함으로 살 순 없을까.

보는 이 없어도 홀로 피는 들꽃처럼
찾는 이 없어도 맑은 물 솟는 옹달샘처럼
그렇게 넘쳐나는 생명일 순 없을까

무한의 큰 품에 다담삭 안겨
성스런 향기 뿜어내는!

- 고진하의 <부드러움의 힘> 中에서

 

 

 

아인슈타인은 말한다.


“이 세상은 두 가지 방법으로 살 수 있다.
기적 같은 건 없다고 믿으며 사는 법,
그리고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법.”
이 두 가지 방식 가운데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는
각자의 마음가짐에 달렸다.

실제로 이 세상에는 감사해야 할 대상이 너무나 많다.
다른 누군가의 부드러운 손길과 따스한 미소,
울창한 나무 그늘과 집까지
무사히 올 수 있도록 길을 지켜준 신호등,
매끼 먹을 수 있는 따뜻한 식사….
우리가 사는 세상이야말로 감사할 것들로 가득한 선물이라는
‘좋은 것에 집중하는’ 삶의 태도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우리 각자의 삶이 반짝반짝 빛날 수 있게 할 것이다.

-위즈덤하우스 마이크 로빈스 지음,
『좋은 것에 집중하라』중에서

 

 

세상은 아름다운 곳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곳에서는 살육이 저질러지고 있겠지마는,

그래도 세상은 아름다운 곳,

 

지금 이 순간에도 모두가 떠나버린 고독에 몸을 떠는 사람들이 있겠지마는

그래도 세상은 아름다운 곳.

 

당신이 있는 곳은 어디나 세상의 중심,

당신의 생명이 끝날 때까지 당신은 세상의 유일한 선택

 

세상은 결코 당신을 버리지 않으니 당신이 떠난 뒤에도

세상은 여전히 아름다운 곳.

<유자효의 '아쉬움에 대하여' 중에서>

 

 

 

 

가까이 있으면 추해 보이는 것도

멀리 있으면 매우 아름다워 보입니다.

 

멀리 있으면 보이지도 않던 것이 가까이 가서 보게 되면

너무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고 보면 우리 삶도 때로는 멀리 보기로,

때로는 가까이 보기로 아름다운 모습만을 취할수 있어야 한다는

새로운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최원현의'기다림의 꽃'중에서

 

가장 큰 실수는 포기해버리는 것.

가장 어리석은 일은 남의 결점만 찾아내는 것.

가장 심각한 파산은 의욕을 상실한 텅 빈 영혼.

 

가장 나쁜 감정은 질투.

그리고 가장 좋은 선물은 용서.

-프랭크 크레인-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파는 것은 장사가 아니다.

당신이 가지지 않은 물건을 ,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에게 파는 것이 진짜 장사이다.

 

 

 

두툼한 지갑이 좋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텅 빈 지갑은 더 나쁘다.

 

 

 

부드러운 흙으로 만들어진 남자를 기쁘게 하는 편이

딱딱한 뼈로 만들어진 여자를

기쁘게 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비누는 몸을 위하여 눈물은 마음을 위하여.

 

신부는 어떤 신부라도 아름답게 보이며,

죽은 이는 그가 누구라도 경건하게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결혼이 경사스럽고,

모든 죽음이 경건한 것은 아니다.


 


 

실패를 극도로 두려워하는 것은 실패하는 것보다도 나쁘다.

 

 


아무 것도 손쓸 방법이 없을 때 꼭 한가지 방법이 있다. 그것은 용기를 갖는 것이다

 

 

 

입보다 귀를 높은 위치에 두라.

 


울기만 하면서 일생을 보내서는 안 된다. 웃기만 하면서 일생을 보내서도 안 된다.

 

 

 

이 세상에서는 당신이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계획하라.

그러나 저 세상을 위해서는 내일 죽는다고 생각하고 계획하라.  

 

 

 

 

 

 

 

 

 

 

 

 

 

 

언젠가부터 허전한 내 곁에

하얀 너의 넋이 찾아와

아주 옛날부터 혼자뿐이던 곁에

하얀 너의 넋이 찾아와

 

내 마음속에 조용한 돋움은

작은 그리움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 마음속에 세찬 울렁임은

한 때의 보고픔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젠 안녕 빠알간 꽃을 쥐어 주고 너를 돌아서니

찌르며 새겨지는 이 가슴의 한은 어데다 어데다

버려야 하느냐 사랑아

꽃을 쥐어 준 사랑아

이별인 듯 빨갛게 꽃을 쥐어 주고 떠난 사랑아

 

 

 

 

 

 

 

 

 

 

 

 

 

 

예기치 못한 사고로 죽음의 위기에 처한 주인을 살린 충견 두 마리가 감동을 주고 있다.
 

영국에 사는 마이클 다이어(66)는 얼마 전 한밤중에 잭 러셀 종(種)인 개 두 마리와 함께 산책을 하다 언덕에서 10m 가량 굴러 떨어져 목뼈가 큰 충격을 받은 중상을 입었다.
 

꼼짝달싹할 수 없던 그는 소리를 내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설상가상 한밤중이라 그를 도와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
 

차가운 밤공기가 그를 감쌌고 체온은 점차 떨어지면서 결국 의식을 잃었다.
그때 함께 산책을 나선 개들이 그를 감싸기 시작했다. 개들은 주인을 끌어안고 체온이 떨어지지 않게 하려 노력했고 수시로 얼굴을 핥아가며 의식을 깨우려 했다.

 

아침 9시 30분 경, 지나가는 행인이 개에 둘러싸인 채 쓰러져 있는 그를 발견하고는 곧장 병원으로 옮겼다. 사고가 발생한 지 16시간이 지난 후였다.
당시 그를 구조한 한 구조대원은 “밤공기가 쌀쌀했음에도 이상하게 그의 몸은 매우 따뜻했다.”면서 “최초 목격자의 증언을 듣고 난 뒤 개들이 16시간 동안이나 그를 감싸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놀라워했다.
 

응급수술을 한 담당의사는 “다행히 생명에는 큰 지장이 없다. 하지만 개들이 그를 감싸지 않았다면 저체온증으로 사망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충견들의 현명한 처사로 생명을 건진 다이어는 “몇 년 전 아내를 잃은 뒤부터 이 개들은 나의 전부가 됐다. 서로 떨어지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울먹였다. 
 

 

 

 

개가 2세 어린이와 맞먹는 지능을 가졌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콜롬비아 대학의 스탠리 코런 박사는 최근 토론토에서 열린 미국 심리학 협회(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연례회의에서 “개의 언어발달능력을 테스트한 결과 2세 어린이가 인지하는 말(언어)의 개수와 유사한 평균 165개로 밝혀졌다.”고 전했다.

 

여기에서 ‘말(언어)’은 사람이 쓰는 단어 뿐 아니라 사람의 손짓이나 명령을 내릴 때의 휘파람 소리 등을 포함하며, 매우 똑똑한 개는 단어를 250개까지 외울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개의 경우 지능 수준은 태어난 지 2년 6개월 정도가 지난 어린아이와 비슷하다.
 

개가 생각보다 ‘똑똑하다’는 증거가 또 있다.
 

연구팀은 개와 사람사이에 칸막이를 두고, 칸막이 앞에 개가 좋아할만한 선물 3개를 두었다. 이후 칸막이를 가렸다가 선물 1개를 추가해 다시 보여준 결과, 개는 하나가 더 늘어났다는 사실을 인지한 듯 놀란 표정으로 오랫동안 사람과 선물을 번갈아 쳐다봤다. 이것은 유아의 산수능력을 측정할 때 자주 쓰는 실험방식 중 하나다.
 

연구팀은 이 실험 결과를 토대로 개가 기본적인 수학개념을 가지고 있으며, 적어도 4에서 5까지는 셀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주장했다.
 

위의 실험 결과를 종합해 본 결과 가장 똑똑한 개 5종은 ▲보더콜리 ▲푸들 ▲독일산 셰퍼드 ▲골든 리트리버 ▲도베르만 등이며......

이에 반해 똑똑하지 못한 개 5종은 ▲보르조이 ▲중국 차우차우 ▲불독 ▲바센지 ▲아프간하운드 등 이라고 연구팀은 발표했다.
 

코런 박사는 “개 종자가 나온 시기를 보면 그 개의 지능을 짐작할 수 있다.”면서 “사람들이 종자 개량을 할 때, 더욱 사람 말을 잘 알아듣게 만들었기 때문에 나중에 나온 종자일수록 똑똑한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여대생이 자기 자신을 팔겠다고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 올렸다. 이유는 놀랍게도 친구의 병원비 마련 때문이다.
 

산동성에서 학교를 다니는 여대생 단단(22)은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 자신의 결혼을 상품으로 등록했다. 처음 제시한 가격은 $25000.
 

영국 토픽사이트 ‘아나노바’가 현지 광저우일보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단단은 뇌척수염 진단을 받은 가난한 학우 장웨메이의 치료비를 마련하려 이 경매를 결심했다.
 

이 같은 단단의 시도를 뜨거운 우정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일부에서는 비난이 제기되기도 했다. 친구의 곤경을 사용해 돈 많은 남편을 얻으려는 심산이라는 것.
 

단단은 “장웨메이의 부모님은 농사를 지으시는데, 비싼 수술비는 물론 이후 치료비 역시 감당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행위는 친구의 치료비를 내세워 자신을 매매하는 행위가 아닐까.

 

 

 

 

미국 세크라멘토주에 사는 한 대학 졸업반 여성이 자신의 학비를 위해 처녀성을 경매에 내놓아 논란이 일고 있다.
 

22세의 나탈리 딜란(가명)은 “경매로 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재정적인 안정을 줘 학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미국의 주간지 ‘인사이더’를 통해 밝혔다.
 

이어 “이미 거짓말 탐지기를 통해 나의 처녀성이 진실임을 입증됐고 의학적인 검사를 통해 다시 처녀성을 확인할 것”이라며 “이번 경매를 통해 수백만 달러를 받기 원한다.”고 말했다.
 

딜란은 또 “난 단지 경매에서 가장 높은 가격만을 찾지는 않는다. 난 진실한 사람, 전체적으로 좋은 사람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경매는 네바다의 잘 알려지지 않은 ‘문라이트 버니 랜치’(공창)라는 곳에서 열릴 예정이다.
 

 

 

 

순결을 판다는 여성이 또 나왔다. 스페인에서 의과대학에 다니는 20대 여대생이 알츠하이머를 앓는 어머니 치료비를 마련하려고 처녀성을 경매에 부쳐 논란이 되고 있다.

에콰도르인 에벨린 두에노스(28·Evelyn Duenos)는 최근 온라인 경매사이트에 순결을 내놨다. 이 같은 결정을 한 이유는 알츠하이머를 앓는 어머니 때문이라고 그녀는 덧붙였다.
 

그녀는 “수업이 없는 날은 바로셀로나의 한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지만 어머니 병원비로는 턱 없이 부족하다.”면서 “치료비와 등록금을 한번에 마련할 방법은 이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전에 10대 루마니아 소녀가 생계비를 마련한다며 순결을 경매사이트에 올려 최고가를 제시한 남성과 첫날밤을 치렀다는 사건을 보고 배웠다는 두에노스.
 

두에노스는 “그 소녀의 사연을 봤다.”면서 “처음 본 남성과 첫날밤을 치른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으나,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용기를 얻어 결정하게 됐다.”고....

 

경매 사이트에서 그녀는 “바르게 자랐으며 신앙심(?)도 깊다.”고 소개한 뒤 “구매를 할 남성에게는 처녀성을 증명하는 의학 소견서를 보여주겠다.”며 성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최고 입찰가격이 약 40만불(200만 파운드)까지 치솟았지만, 두에노스는 구매자를 까다롭게 고르겠다고 밝혔다.

 

그녀는 “첫날밤을 치르기 전, 남성은 각종 성병이 없다는 의학 소견서를 제출 해야 하며, 반드시 피임기구를 사용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키스와 같은 신체 접촉은 절대 안 된다.”고 못박았다. 별... 쯔쯔쯔.....


 

 

 

“혹시 남자친구 일주일만 빌릴 수 있을까요?”

“가능합니다. 금방 보내드릴게요.”

 

친구, 애인 심지어 피를 나눈 가족들까지 돈으로 빌릴 수 있는 시대가 된 걸까. 우크라이나에서 비용을 지불하면 달려가서 친구나 애인 혹은 가족을 대행해 해주는 영업소가 문을 열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이 회사는 진짜 사람을 필요로 하는 고객을 타깃으로 한다. 외로움에 빠져 있거나 가족의 온기나 연인의 사랑을 느끼고 싶어 하는 이들이 인터넷으로 ‘사람’을 주문하는 것.

 

“오늘 밤 나와 길을 걸어줄 남자친구 없나요?”, “부부동반 모임에 가야 하는데 부인과 싸웠어요. 부인을 보내주세요.”, “독신 여성인데 일주일만 진짜 모녀사이처럼 아이와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요?” 등이 이 회사에 쏟아지는 ‘주문 내역’이다.

 

우크라이나 현지 언론매체에 따르면 이 회사는 주문의 고객이 들어오면 구매 목적과 용도를 자세하게 파악해 각종 시뮬레이션으로 교육시킨 직원들을 보낸다.

 

가격은 한 시간에 10유로(15불 원) 정도. 최근에는 함께 쇼핑이나 산책을 할 또래 친구를 찾는 젊은이들의 전화가 부쩍 늘었다. 가끔 애인을 요청하는 고객도 있는데 이 경우 애인 대행 직원이 직접 운전해주거나 차 문을 열어주기도 한다. 데이트에 드는 모든 비용은 고객이 부담한다.

 

이 업체의 대표 비탈리 바질렌코는 “세상이 바쁘게 움직이고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진짜 ‘사람’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고 설명한 뒤 “가족이나 애인, 친구를 대행하는 직원에 불만족 하면 환불조치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에서 카 섹스까지 조장하는 이탈리아...

 

합법적이고 안전하게(?) 카섹스를 즐길 수 있는 유료주차장이 이탈리아에 등장했다.
 

이탈리아 남부지역 바라 시가 카섹스 전용 주차장을 만들기로 하고 최근 이에 대한 규정을 시의회에서 통과시켰다. 주차장의 이름은 ‘러브 파킹’으로 정해졌다.
 

나폴리의 동부에 위치해 있는 인구 12만의 작은 도시 바라가 ‘러브 파킹’을 만들기로 한 건 쾌적한(?) 섹스공간 제공과 청년들의 안전을 위해서란다.
 

당국자는 “주말이면 자동차를 세워놓고 카섹스를 하는 청년들이 많지만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지 않아 신문지로 창을 가리는 등 불쾌한 환경에서 사랑을 나눈다.”고 말했다.
 

그는 “주로 가로등도 없는 변두리에서 이런 일이 잦다.”며 “이런 경우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당국자는 “인근한 나폴리는 조직범죄의 기지 같은 곳으로 이탈리아에서도 범죄율이 가장 높은 도시”라며 “카섹스를 나누는 청년들이 강도, 성폭행을 당하는 건 물론 심지어 살해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래서 당국이 고안한 게 안전한 카섹스 공간이다.
 

당국은 주차장을 만들면 경비를 세워 자동차를 타고 입장한 청년들이 안전하게 카섹스를 나눌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또 노출을 걱정하지 않도록 칸막이를 설치, 신문지로 자동차유리를 막지 않아도 안심하고 사랑을 즐기도록 배려할 계획이다.
 

유료로 운영될 예정인 주차장을 이용하는 청년들에겐 입장할 때 피임도구가 무료로 지급된다.

이탈리아는 참 배려 깊은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UNOne God이란 노래를 만들어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이 부르고 듣게 하고 있다. 달콤한 사탄의 노래 'One God'을...

 

사탄은 항상 노래를 통해 인간을 미혹에 빠지게 한다. 

 

UN은 지금 종교통합을 획책하고 있다.  그 종교통합의 기본 원칙은 "모든 종교는 궁극적으로 하나의 같은 신을 섬기는 것이다." 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종교통합은 적그리스도가 가장 먼저 손꼽는 작업 수단 이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성경의 하나님과 다른 종교의 신이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아래 비디오는 UN NGO인 Bahai Community가 제작한 One God 라는 음악으로 바바라 스트레이센드가 불렀다. (역시 사탄은 음악의 천재인가 보다. 잠깐 들었는데도 멜로디에 중독(?)되는 느낌이다.)

 

 

Play 단추를 클릭하여 비디오 음악을 들어보세요.

 

만약 비디오 음악이 안 들릴 경우 아래

mp3음악으로 들어보세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Barbara Joan Streisand(1942- )

One God 가사

 

Millions of stars placed in the skies, by one God

Millions of us lift up our eyes, to one God

So many children calling to Him by many a different name

Our Father, loving each the same

 

수백만의 별들이 하늘에 놓여 있네, 하나의 신에 의해..

수백만의 우리가 눈을 들어 섬기네, 하나의 신을..

수 많은 아이들이 서로 다른 한 이름으로 그분을 부르네

우리의 아버지, 각자를 똑같이 사랑하시는..

 

Many the ways all of us pray, to one God

Many the paths winding their way, to one God

Brothers and sisters there are no strangers

after His work is done

For your God, and my God, are one

One God..

One God..

 

우리가 기도하는 많은 방법들이 있네, 하나의 신께.

굽이쳐 가는 많은 길들이 있네, 하나의 신께로.

형제 자매여, 그분의 일이 이루어진 후에 이방인은 없네.

왜냐하면 너의 신과 그리고 나의 신은 하나이니까

하나의 신..

하나의 신..

 

 

이 노래의 가사는 무엇이 문제인가?

 

⑴ 이 가사는 그리스도교의 근본인 유일신 사상을 철저히 부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삼위일체의 하나님, 유일하신 하나님만을 신으로 섬기며 인정한다. 그런데 이 가사는 모든 종교에서 각 언어마다 부르는 신들 중의 또 다른 이름 정도로만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가사의 내용을 수용할 수 있겠는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유대계 출신이었기에 그런 하나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음에도 유일신이신 하나님을 부정하는 이런 가사가 있는 곡을 불렀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⑵ 이 가사는 하나님을 타종교에서 섬기는 모든 신들과 동일하게 취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종교 다원주의(多元主義 pluralism)를 표방하며 조장하는 가사란 점이다.

 

이 세상에 퍼져 있는 수많은 종교들은 우상을 만들어 섬기고, 그 우상에 경배하며, 수많은 노력을 하는 것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 모든 이방신들과 하나님을 ‘동등하게’ 취급하는 것도 부족해, 한 발 더 나아가 아예 ‘동일하게’ 취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지 언어마다, 민족마다, 지역마다, 종교마다, 그 부르는 호칭만 달랐을 뿐이라고 호도한다.

한국도 그렇지만, 이웃인 일본과 중국만 보더라도 수많은 신들을 만들어 섬기고 있다. 인도에서는 믿는 신의 종류가 3억이 넘는다고 했다. 돌이나 나무에, 또 인간들이 만든 그 무엇에도 잘 차려 모셔놓고 절을 하며 숭배하고 있다. 심지어 정령들까지 숭배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우리의 거룩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과 동등한 반열도 모자라 동일하게, 이 세상 사람들이 믿는 그런 온갖 잡신들과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을 용납할 수 있단 말인가?

창조주가 어떻게 자신의 피조물들과 동일하게 취급 받을 수 있단 말인가?

 

⑶ 이 가사는 구원의 다양성을 인정하며, 또 조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세상 대부분의 종교들은 자신들이 믿는 신이 무엇이었던지, 그 신에게 복을 바라며 빈다. 그러면서 각자가 원하는 인생의 진리를 찾으려 하고, 죄에 대한 마음에서 벗어나려 한다. 또 어떤 종교들은 다음 생에 대한 염려를 하며, 더 낳은 생을 살기를 원한다. 그래서 이 세상을 사는 동안 각 종교에서 말하는 대로 그 길을 찾기 위해 고행하고 수행(修行)하며, 그 노력으로 인해 내세에서는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려 한다.

심지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마저 저마다의 방법으로 구원의 길에 이를 수 있다고 설파했다. 때로는 명상을 통해, 또 때로는 토굴에 들어 앉아 금식기도를 하며 고행을 벗 삼는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자신도 모르게 그런 다양한 방법들을 찾아 다닌다. 이렇게 내세를 믿는 종교는 각 종교에서 가르치는 방법대로 자신만의 진리라 생각하는 구원의 길을 찾고 있다. 그것이 어떤 방법이든지....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종교가 행하고 추구하는 구원의 방법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는 주님의 말씀을 잘 알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는 도저히 하나님께 갈 방법이 없다는 말씀이다. 왜?

주님 자신만이 곧 그 길이었고, 그의 말씀만이 진리였고, 그를 믿는 믿음만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 받을 수 있고, 그 구원으로 인해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와 함께할 수 있다는데, 왜 자신의 몸을 학대해 가면서 고행을 하고 수많은 시간들을 들여 노심초사하며 걱정해야 하는가 말이다.

도대체 이 세상의 종교 중에서 자신의 피조물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기 위해 창조하신 신이 어디 있으며, 그 피조물이 죄로 인해 지옥의 심판을 면할 수 없는 상황이 안타까워, 이를 불쌍히 여기시어 창조주 자신이 피조물들을 위해 죽음을 선택하신 신이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이런 지고지순(至高至純)하고도 지극한 인간 사랑을 보여주신 신이 과연 이 세상 어느 종교에 있었단 말인가?

이런 하나님을 세상에 존재하는 수십억의 다른 잡신들과 동일하게 취급하고 있는 노래가 바로 이 노래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聖所)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히 10:19-22)

 

⑷ 이 가사는 하나님에 대한 경배의 다양성을 조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인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섬기며 경배하는 방법으로 무엇을 주셨는가?

수많은 다양한 방법을 주신 것일까?

이 세상의 수많은 종교들이 가지고 있는, 아니면 각자가 믿는 신에 대한 경배의 방법들을 요구하신 적이 있으셨던가?

 

오로지 한 가지 외에는 없지 않은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

그런데 자신의 선행으로 공로를 쌓으며, 힘든 고통이 수반된 자신의 노력이 있어야 하며, 율법을 모두 준수해야만 마치 하나님을 섬기며 경배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그저 전심전력을 다한 믿음만이 하나님을 섬기며 경배하는 길이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조차도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줄 만큼의 믿음만 가지라는 것이다. 이 외에 대체 무엇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 믿음 외에 무엇을 더 해야 한단 말인가?

 

⑸ 이 가사는 하나님의 의의 기준과 선악의 개념을 타종교와 동일시하도록 조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의였고 진리였기에, 이에서 벗어난 것은 모두 죄였다. 인간의 죄란 다른 것이 아니다. 그저 하나님의 말씀과 어긋나는 것이 죄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언제나 진리였고 의였기에, 그 말씀은 온 우주와 자연의 섭리가 되었고, 질서가 되었던 것이다. 그 말씀에는 단 한 번도 공허한 말씀이 없으셨기에, 식언(食言)치 않으셨기에, 인간보다도 월등한 능력을 지닌 천사들조차도 그 말씀에 순종했던 것이다. 이런 점은 사탄조차도 인정하고 있었기에 성도들이 행여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 송사를 벌였던 것이다.

 

그런 하나님의 말씀이 타종교에서의 가르침과 동일하단 말인가?

사탄이나 악마를 숭배하는 사탄니스트(Satanist)들은 지금도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인신제사를 드리고 있음은 이제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들도 하나의 신을 믿는다. 그러면서 외부적으로는 하나님이라 말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그 하나님은 성경에 기록된 진정한 하나님이 아닌 사탄 루시퍼를 숭배하는 종교들이다.

도대체 무엇이 선이고 악인가?

선악의 기준은 시대와 문화와 사회에 따라 달라져 왔다. 또 무엇이 죄이고, 무엇이 죄가 아닌지는 그 시대와 문화와 환경에 따라 달라져 왔다. 이렇게 가변적인 것들이, 이렇게 인간의 필요에 따라 변화를 거듭하거나, 발생했다 폐지되거나, 또 폐지되었다가 다시 부활시키는 이런 기준들이, 어떻게 영원히 변치 않는 영원불변의 진리가 될 수 있단 말인가?

하물며 인간사회의 도덕과 윤리마저 시대에 따라 변하거늘, 어떻게 이를 진리라 할 수 있단 말인가?

타종교의 교리란 것도 시대에 따라 해석을 달리하고, 달리 가르치거늘, 이것이 어떻게 창조주의 말씀과 동일시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지금 이 가사들은 그런 점들을 모두 무시한 채, 각 종교에서 말하는 선과 악, 의와 불의의 기준들을 모두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과 동일시하도록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가사의 내용들을 음미하고 숙고하다 보면 어느 신이던지, 모두 추구하고 가르치는 바는 동일하다는 메시지를 얻게 되는 것이다.

… 그러니 그 이름들만 다를 뿐 다 같은 신이라고.

… 그런 신들이 모두 하나님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⑹ 이 가사는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가슴 터지도록 감사한 주님의 그 사역을 폄하하거나 희석시키다 못해, 변질시키고 소멸시키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노래의 가사는 ‘그 분의 일이 이뤄진 후로’라고 했다. 대체 어떤 신이 무슨 일을 했다는 것인가?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의 일을 말함인가?

 

‘세상이 있은 뒤로’라 했으니, 이 세상을 창조한 후를 말함일 것이다. 타종교에서도 세상을 창조했다는 신들은 있다. 그런데 이 가사는 ‘그 분의 일이 이뤄진 후로 이방인은 없다’고, ‘세상이 있은 뒤로 이방인은 없다’고 했다.

영문 가사에서 ‘낯선 사람, 모르는 사람, 외지 사람’이란 뜻의 ‘stranger’에 ‘이방인’이란 뜻도 있었고, 또 이 가사의 내용이 성경에 기록된 이방인과도 맥을 같이 하고 있기에 이방인이라 번역한 것은 결코 무리한 일이 아닐 것이다.

영어 가사의 이 단어는 자신과 같은 종교의 테두리에 있지 않은 타종교의 신자들을 지칭하는 표현이기에 이방인이란 번역은 오히려 적절한 용어선택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분의 일이 이뤄진 후로 이방인은 없다’는 식의 모호한 가사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세상을 구원한 것이 아니란 것과도 같은 셈이다.

… 참으로 교묘한 가사다.

주님의 십자가 사역을 폄하하거나, 아니면 ‘너희의 하나님만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 다른 신들도 그와 비슷하게 했어’라고 주장하며, 우리의 주님을 부정해, 타종교의 다른 신들도 그렇게 했다고 주입시키는 것과 동일한 속셈이다.

그러나 창조주가 죄로 인해 타락한 우리 인간을 위해, 자신의 피조물들을 위해 스스로 생명을 내어주며 구원하신 신은 이 세상 그 어떤 종교에도 없다는 것이 사실이 아닌가.

… 오로지 그리스도교 외에는.

…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⑺ 이 가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인한 신자와 불신자의 구분을 폐지시키며, 성도의 개념을 모호하게 가지도록 호도한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타종교의 신자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은 이분법적 사고를 지닌 사람들이라고 몰아붙인다고 해도 그래도 좋다.

… 왜냐하면,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으니까.

… 왜냐하면, 주님께서 세상의 죄로 인해 십자가에서 이미 돌아가셨듯이, 그리스도인은 이미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의 죄로 인해 죽고 의인이 된 신분이었기에.

그래서 주님께서는 인간의 관점이 아닌 주님의 관점을 먼저 가지길 원하셨기 때문이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 9:23)는 주님의 말씀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미 그리스도인은 한 번 죽었다 다시 산 것과 같기에, 거듭 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사고의 중심에는 주님의 말씀이 먼저이다.

이를 두고 이분법적․이원론적 단순한 사고와 가치만을 가진 사람들이라 조롱하며 비웃는다 해도 어쩔 수 없다. 만약 이런 소리가 듣기 싫어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다양한 사고를 통한 다양한 가치관을 형성하고 있다면 그것은 주님을 배반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 그것은 곧 사탄이 하늘에서 자신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반역한 행위와도 동일한 사고이다.

그런데 이 가사들은 주님을 믿는 믿음에 의한 기준들을 모두 모호하게 하며, 타종교의 신자들도 모두 이 믿음에 포함시킬 것을 그리스도인에게 종용하고 있다. 단지 신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구분만을 설정하라 요구하는 것과 같은 속셈이다.

… 참으로 간교한 술책이다.

… 결론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 곧 그리스도인을 지칭하는 성도와 비성도의 구분을 애매하게 만들면서 아예 구분 자체를 없애려는 시도다.

 

이 ‘One God’이란 노래의 가사는 이런 불순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가사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무력화시키려는 아주 간교한 속셈을 숨기고 있다.

… 적어도 그리스도인들에게.

…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신들이 다 그리스도인들이 믿는다는 그 하나님과 동일한 신이니 배척하지 말라는 것이 이 노래의 메시지다.

 

이 곡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의도와 과정에 대해선 모른다. 그리고 이 곡이 왜 하필이면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에게 주어졌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영향력이 있는 가수에게 이 곡을 맡겼다는 점은 다분히 의도적이었다는 것만큼은 짐작하게 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노래가 종교통합용 홍보를 위한 노래란 점을 명백히 알 수 있다.

 

이 곡과 가사를 만든 주체가 UN이다. 이 노래는 분명 사탄의 의도가 담겨 있는 매우 위험한 노래다.(장재언) 

 

 

 

 

 

 

 

 

 

 

 

 

 

 

 

 

 

이덕주 교수(감리교신학대학교)

 

시대의 징조, 자본주의의 몰락?

 

우리는 이 시대를 어떻게 읽어야 하나? 세상에 나타나고 이루어지는 ‘모든 것’ 속에 창조주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 이 내재되어 있음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두 눈 크게 뜨고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현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창 1:1, 롬 12:2, 딤전 4:4).

 

특히 요즘처럼 혼탁하고 어수선하며 사리판단이 어려운 때일수록 그러하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표적’, 즉 ‘때의 징조’는 무엇인가?
 

최근 “월가를 점령하자!” 외치며 반년 넘게 진행된 반(反) 월가 시위 현상을 예로 들어보자. 이를 두고 1%에 대한 99%의 분노와 저항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자본주의가 지니고 있는 태생적 한계인 빈부격차, 소득과 분배의 양극화 현상으로 인한 사회적 불만과 분노가 중산층마저 거리로 나오도록 만들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세계 3위의 미국 부자 워렌 버핏이 “부자인 자신에게 보다 높은 세금을 부과해 달라”고 요구한 데서 생겨난 버핏세가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부자세’로 번역되어 정부 여당에서도 도입여부를 놓고 갑론을박하고 있다.

여기에 2012년 한국 총선과 대선 판도와 오랜 세월 여의도를 지배해온 정치 환경을 일거에 뒤집어놓을 수 있을 결정적 요인으로 등장한 안철수 현상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정치 신인은커녕 정치 입문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재의 반(1500억 원)을 사회에 환원한 것 외에는 한 일도 없는데 왜 사람들은 그에게 열광하고 지지를 표하는가?

 

그리고 무상급식 문제로 야기된 정치적 논쟁의 뒤 끝에 치러진 서울시장 선거 과정에서 드러난 2040세대의 절망과 욕구는 과연 무엇인가?
 

결국 요즘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정치·경제·사회 현상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자본주의 위기 상황이다. 붕괴까지는 아니라도 공고했던 자본주의 체제와 질서에 균열이 생기고 그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불안이 야기되고 있음을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사회 안정과 평화는 불가능하다. 이런 자본주의 폐해로 인한 사회적 불안과 갈등에 기독교도 자유롭지 못한 것은 역사적·신학적으로 자본주의 형성과 발전에 기독교, 특히 개신교회가 깊은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개신교회는, 일제 강점기 자본주의 형성 과정에서 이 시기 내한 선교사 중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미국 선교사들을 통해 서구 자본주의 이론과 행태가 유입되었으므로 ‘미국식’ 자본주의가 한반도에 정착하는 데 일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이에 대해서는 류대영의 「초기 미국 선교사 연구」(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참조).

 

또한 해방과 분단과 전쟁을 거친 후 남쪽에 친미, 반공주의, 자본주의(자유민주주의) 정부가 수립되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기독교가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자본주의 문제점과 폐해를 극복하고 ‘건강한’ 자본주의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과 시도에서 기독교의 책임과 역할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결자해지 차원에서 기독교가 자본주의를 재해석하고 그 문제와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할 시점이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볼 때 오늘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문제와 한계는 무엇이며 과연 한국 기독교회가 그것을 극복하고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청교도 자본주의와 천민자본주의

 

기독교, 특히 개신교와 자본주의의 상관관계에 대한 논의는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명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으로부터 풀어나갈 수밖에 없다.

이미 기독교 고전이 된 이 책에서 베버는 건전한 기업 활동을 통한 이윤창출을 합리적 자본주의로 인식하고 개신교, 그중에서도 칼빈주의 신앙과 윤리의식이 자본주의 성장과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음을 밝히려 하였다.

특히 베버는 칼빈주의 신앙 중에서도 ‘금욕’을 중시하는 청교도 윤리를 주목하였다. 그는 금욕을 세속적 노동 욕구의 촉발 요인으로 보았다. 육체적 쾌락을 죄악시하는 청교도는 노동을 금욕의 수단으로 여길 뿐만 아니라 세속적 직업을 하나님의 거룩한 소명으로 인식하였다.

 

노동자로서 정해진 환경과 시간에 맞추어 성실하게 일하는 것은 신자로서의 미덕일 뿐 아니라 하나님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신앙수련이기도 하였다. 베버는 이런 청교도의 직업관과 노동윤리가 자연스럽게 노동과 기업의 이윤 창출로 이어졌고 그것이 자본주의 성장과 발전의 기반이 되었음을 지적하였다.

 

결과적으로 베버는 청교도의 금욕적 노동관과 직업에 대한 윤리적 소명의식이 서유럽 기독교 국가들의 자본주의 체제 정착과 발전의 촉진 요인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자본주의에 대한 베버의 평가는 지극히 긍정적이다. 그는 합법적 수단이나 정당한 경쟁이 보장된 기업 활동과 이를 통해 이루어지는 이윤 추구와 자본의 축적을 선한 것으로 보았다.

 

베버는 이런 기독교적 신앙관과 윤리의식에 기반을 둔 ‘건강한’(?) 자본주의를 ‘합리적’(rational) 자본주의, 혹은 ‘청교도적’(puritan) 자본주의라 불렀다.

그렇다고 베버가 모든 자본주의 체제와 문화를 지적한 것은 아니다. 그도 자본주의의 부정적인 측면을 지적하였다. 즉 ‘청교도’ 자본주의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천민’(pariah) 자본주의를 제시하면서 이를 ‘유태인’ 자본주의로도 불렀다. 천민자본주의에 대한 베버의 설명이다.
 

영국 청교도들이 볼 때, 당시 유태인들은 전쟁에 개입하거나, 정부와 계약을 맺고 국가 독점사업에 참여하거나, 지방 제후들의 건축 및 금융 관련 투기사업을 통해 부를 축적하였는데 이런 행위들은 청교도들이 지극히 혐오하는 것들이었다. 이런 [청교도와 유태인 사이의] 차이점을 간단하게 정리한다면, 유태인 자본주의는 투기적 천민자본주의(speculative pariah-capitalism)인 반면 청교도 자본주의는 부르주아 노동조직(bourgeois organization of labour)이라 할 수 있다.
 

베버는 노동조직을 산업구조의 기본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는 친(親)부르주아 자본주의 관점에서 전쟁 무기 생산과 수출, 정부와 국가권력과 결탁하여 이루어지는 독점 및 투기사업을 천민자본주의로 지칭하며 이를 경계했다. 베버가 비판한 천민자본주의의 전형은 세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유태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중세 신분사회에서 변두리(성 밖)로 밀려나 ‘천민’으로 분류되었던 유태인들은 주로 상업과 금융업 분야에서 활동했는데 이미 종교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비천한’ 계급으로 분류되었던 유태인들의 경제활동이었기에 자연스럽게 ‘비천한’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이런 식으로 베버는 청교도의 이름을 빌려 노동을 신성시하고 투기를 죄악시하는 기독교적(개신교적), 경제적 가치관을 피력하였다. 그로부터 도덕적 합리성을 상실하거나 사회적 공익을 추구하지 않는 이기적이며 탐욕적인 자본주의 경제 질서와 환경에 대해 ‘천민자본주의’란 비판적 수식어가 붙게 되었다.

 

특히 베버가 전쟁 무기 생산과 수출, 금융과 부동산 투기, 국가권력과 결탁한 독점 사업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현대 자본주의 폐해와 부조리를 일찍이 천민자본주의란 이름으로 경고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이런 베버의 용어 선택과 개념 설명에도 한계는 있다. 무엇보다 천민자본주의와 유태인 자본주의를 동일시함으로 독일인 특유의 반(反)유태적 정서를 보여주는 대목은 인종적 편견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또한 중세 귀족 중심의 신분사회에서 성 밖으로 쫓겨난 민중계층(파리아)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극히 제한적이었다는 사회경제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이들이 취할 수밖에 없는 직업에 ‘비천’이란 수식어를 붙인 것은 베버의 관점이 성 안의 주류(부르주아)와 기득권층 중심의 가치관을 반영한 것임을 방증한다.

따라서 그의 경제윤리는 자칫 ‘가진 자’와 기업가에게 유리하지만 비주류, 노동자 계층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여지도 없지 않다.

 

또한 노동 가치를 극대화한 청교도 직업윤리가 소득과 생산, 즉 성장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를 수립하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소득 이후에 제기되는 문제, 즉 사회 안정의 기본이 되는 활용과 분배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는 한계가 있음도 사실이다. 금욕과 희생을 강조하는 청교도 자본주의 이론이 사회경제적 소외계층, 빈곤계층을 배려하고 대변하기엔 부족하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 세계 각국에서 야기되고 있는 정치사회적 갈등과 충돌의 근저에 부와 자본의 독점과 그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 문제가 깔려있음을 감안할 때 분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자본주의 원리가 필요하다.

투기와 독점의 탐욕스런 천민자본주의나 생산과 소득 중심의 금욕적 청교도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한계와 문제점들을 극복하고 사회 안정과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제3의 기독교적 자본주의 원리가 필요하다.

 

 

 

그리스도인의 경제활동 3대 원리

 

막스 베버보다 3세대 앞서 살았던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의 설교에서 그런 제3의 자본주의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영국의 전통 성공회 사제 집안에서 출생하여 옥스퍼드대학에서 공부한 ‘엘리트’ 계층의 웨슬리는 18세기 산업혁명으로 인한 급격한 사회변동과 그로 인한 사회경제적 불평등 상황을 직접 목격, 경험하였다.

 

그는 산업혁명으로 부를 축적한 자본가와 기업가, 귀족들의 향락문화와 광산과 공장 노동자 및 도시 빈민의 열악한 생활 환경을 동시에 목격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기독교 신앙과 가치관에 입각한 경제활동 원리를 모색했고 그런 고민의 결과를 “재물 사용법”(The Use of Money)이란 설교에서 피력하였다.

 

“불의한 재물로 이웃을 사귀라”는 누가복음 본문을 바탕으로 하였는데 여기서 재물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3대 원리를 제시한다.
 

그 첫 번째 원리는.....

‘할 수 있는 대로 벌라’(Gain all you can)다.
 

★  세상에서 어떤 직업을 갖고 있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가장 위대한 규칙으로 여기며 살기로 결심하였다면, 누구든 당연히 재물에 대하여 생각할 것은, ‘할 수 있는 대로 벌라’는 것입니다.

정직한 기업 활동으로 할 수 있는 대로 버십시오. 당신이 받은 소명대로 가능한 한 열심히 노력하십시오. 시간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당신 자신과, 하나님 그리고 이웃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알면 아낄 것이 하나도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에게 부여된 특별한 소명이 무엇인지 깨닫는다면 팔짱을 끼고 있을 시간이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웨슬리는 근면과 성실을 바탕으로 한 경제활동을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의무로 보았다. 게으름과 낭비는 신앙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경계해야 할 악이었다.

이런 근면한 경제활동이 소득과 이윤을 창출하리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웨슬리가 무작정 생산과 소득을 장려한 것은 아니다. ‘정직한 기업’을 전제로 깔았다. 이주민 노동자들의 임금을 착취하거나 저울을 속이는 방법으로 소득을 올리지 말라는 것이다. 이처럼 웨슬리는 기독교인의 경제활동 제1원리를 근면과 정직을 바탕으로 한 생산과 소득 활동에 두었다. 베버가 말한 청교도 자본주의를 웨슬리도 지지했다고 할 수 있다.
 

웨슬리의 기독교인의 경제활동 제2원리는

‘할 수 있는 대로 아끼라’(Save all you can)다.
 

정직한 지혜와 지치지 않는 근면으로 가능한 한 많이 벌었다면, 그 다음으로 분별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취해야 할 두 번째 원칙은, ‘할 수 있는 대로 아끼라’입니다.

당신의 그 귀한 재능을 바다에 던지지 마십시오. 그런 어리석은 짓은 이교도 철학자들이나 하게 버려두십시오. 재물을 어리석은 일에 쓰지 마십시오. 그것은 바다에 던지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위해서는 한 푼도 쓰지 마십시오. 그처럼 소중한 재능을 단지 육신의 정욕을 만족시키는 일에 허비해서 안 됩니다.

그 어떤 종류든 감각적 쾌락을 얻는 일에, 특히 입맛의 쾌락을 줄기는 일에 낭비해서는 안 됩니다.
 

잘못하면 ‘Save all you can’을 ‘할 수 있는 대로 저축하시오’라고 번역할 수도 있는데 그것은 웨슬리의 의도가 아니었다. 웨슬리는 은행이나 금고 얘기는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행위를 악으로 규정하였다.

그가 강조한 것은 재능과 물질을 허망한 곳에 쓰지 말라는 것이다. 정직과 성실로 번 돈을 감각과 정욕을 만족시키는 것에 쓰지 말라는 것이다. 술과 음식만이 아니다.

 

웨슬리가 경계한 것은 당시 영국의 상류 귀족층 교인들이 즐기던 소위 ‘고상한 쾌락주의’(elegant epicurism)였다. 당시 귀족과 자본가들이 은밀하게 자기네들끼리 즐기던 고급스런 사교 문화, 영국의 ‘빅토리아 귀족 문화’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웨슬리는 구체적 예로 귀부인들의 화려한 몸치장, 비싼 가구와 미술품, 서적, 장식품으로 집안을 꾸미는 것, 정도 이상으로 화려하게 정원을 가꾸는 것 등을 지적하였다. 이런 귀족 문화는 정상적인 것으로 위장하고 침투하여 서서히 개인과 가정, 사회를 파괴한다.

이런 사치와 향락 문화를 피하고 검박한 생활과 절제의 소비생활을 하라는 것이 웨슬리의 두 번째 경제 원리다. 이 대목 역시 청교도 신앙 원리와 일맥상통하면서도 베버가 강조했던 생산(노동) 원리가 물질의 소비(생활) 원리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세 번째 원리는 .....

‘할 수 있는 대로 주라’(Give all you can)는 것이다.
 

첫째 할 수 있는 대로 벌었고, 둘째 할 수 있는 대로 아꼈으면, 그 다음은 ‘할 수 있는 대로 주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 원칙대로 살아야 할 이유와 근거는 여기 있습니다. 하늘과 땅을 소유하고 계신 분께서 그대를 지으셨고, 그대를 이 세상 가운데 두시되 소유주가 아닌 관리자로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식으로 그분은 온갖 종류의 물질을 그대에게 당분간 맡겨두신 것이므로 그 소유권은 여전히 그분께 있고 그분을 떠나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대 자신도 그대 것이 아니라 그분 것이며 그대가 즐기는 그 모든 것도 그분 것이기 때문입니다.
 

웨슬리는 물질의 궁극적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는 그 관리자일 뿐이므로 소유주인 하나님의 의지에 따라 사용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웨슬리는 이것을 “할 수 있는 대로 주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결국 기독교인의 경제활동 제1원리(근면 생산)와 제2원리(소비 절약)는 제3원리(물질 선용)를 위한 준비 단계임을 알 수 있다.

 

줄 줄 아는 교회, 나눌 줄 아는 교인

 

웨슬리의 설교를 요약하면, “1) 정직하고 근면하게 노력해서 가능한 한 돈을 많이 벌어라. 2) 그렇게 번 돈을 사치와 향락, 헛된 곳에 쓰지 말고 검박하게 생활하라. 3) 그렇게 해서 모은 돈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주라”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여기서 기존 생산과 소득 중심의 자본주의가 아니라 나눔과 분배 중심의 자본주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물질과 자본에 대한 청지기 개념에서 자발적 나눔과 베풂을 구현하는 기독교적 자본주의(Christian capitalism)로 나아간다면 이기적이고 탐욕스런 천민자본주의가 만들어놓은 소득 불균형과 자본 독점, 그리고 그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불안을 해소하는 데 진전이 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중국 만주에서 유랑민 목회를 했고 해방 후에 강원도 산골에서 초대교회를 모형으로 한 ‘홀리공동체’를 조성했던 중앙신학교(현 강남대학교) 설립자 이호빈 목사는 평생 청빈과 맑은 영성의 실천으로 많은 이들의 존경과 추앙을 받았다. 그가 남긴 “가을의 교훈”이란 설교의 한 대목이다.
 

교회는 받는 일보다도 줄 줄 아는 일에 더욱 힘써야 하겠습니다. 천국을 받는다든지 개인이 잘사는 일 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받는 것만을 목표로 할 수 없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기독교의 축복은 받는 데만 있는 게 아닙니다. 받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받는 축복도 크지마는 줄 줄 아는 축복이 더 큰 것입니다.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더 복되다’는 말씀은 바로 그런 뜻입니다. 받는 일만으로서는 완전한 만족은 아닙니다. 줄 줄 알 때 좋은 물질, 좋은 교육, 좋은 생명이 될 수 있습니다.
 

 

‘줄 줄 아는 교회’, ‘나눌 줄 아는 교인.’ 지금까지 자본주의가 자유와 경쟁을 바탕으로 한 생산과 소득에 초점을 맞추어 운용되어왔다면 이제부터는 (사회주의의 가치와 과제이기도 한) 나눔과 분배에 보다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자본주의의 태생적 한계와 문제인 소득 불균형과 빈부격차, 양극화 현상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불안을 해소하고 공동체적 평화와 협력을 구현할 수 있는 대안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의 나눔’(diakonia)을 신앙생활의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는 기독교인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다”

(ubi caritas et amore deus ibi est).  
 

이덕주 교수는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로서 한국 교회사와 아시아 교회사를 강의하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한국교회 처음 이야기」 「기독교 사회주의 산책」(이상 홍성사) 등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와 불행한 나라는 어디일까?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입소스가 전세계 24개국 1만8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인도네시아 국민들의 행복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조사에서 한국은 24개국 중 23위로 헝가리에 이어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입소스에 따르면 전세계적 경제 위기와 자연 재해에도 불구하고 4년전 실시된 같은 조사에 비해 전세계인의 행복도가 소폭상승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조사에서 51%가 ‘매우 행복하다’고 답변한 인도네시아가 조사 대상국 중 가장 행복도가 높았으며 각각 43%가 ‘매우 행복하다’고 밝힌 인도, 멕시코가 뒤를 이었다.

이어 브라질, 터키, 호주, 미국 순으로 국민들의 행복도가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아시아에서는 이웃한 중국이 14위, 일본이 17위를 차지했으며 한국은 단 7%만 ‘매우 행복하다’고 답해 23위에 올랐다. 

 

입소스 존 라이트 부사장은 ”행복의 조건이 부와는 큰 관계가 없다는 것이 증명됐다.” 면서 “나이, 교육 수준, 결혼 유무 등도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작가의 뛰어난 관찰력이 만들어 내는

말 없는 한 장의 사진이

때로는 그 시대의 모든 걸 설명하기도 한다.

 

 

 

 

 

작가의 뛰어난 관찰력이 만들어 내는 말 없는 한 장의 사진이 때로는 그 시대의 모든 걸 설명하기도 한다.

 

불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음산한 도시에 오래 전에 죽은 ‘위대한 수령’만이 홀로 조명을 받는 곳.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출신의 로이터통신 기자 다미르 사고르지는 북한을 이 한 장의 사진으로 표현했다.

 

2월 10일 발표된 2012년 세계보도사진전(World Press Photo) 일상생활 부문 1등 수상작이다. 

 

 

 

 

 

 

 

 

 

 

 

 

 

나는 오래 전에 만났던 최고의 치과의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당신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나는 내가 치료한 환자들이 죽어서 병원 안치대에 누웠을 때 사람들로부터 ‘이 사람은 정말 최고의 치과의사에게 치료를 받았군’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치과의사가 자신의 일을 하는데 있어 가졌던 이런 태도는 시간만 대충 때우면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기를 바라는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인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그 질문을 계속 하고 있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가?”

 

이 질문은 우리 각자를 스스로 거듭나는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준다.? (341, 342, 354p)

 

피터 드러커 지음, 이재규 옮김 '프로페셔널의 조건' 중에서 (청림출판)

 

 

 

 

 

 

 

 

 

 

 

 

 

 

 

 

 

 

 

미국의 보수 기독교인을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기독교 단체 'Defend Christians'가 온라인 투표를 통해서 2011년 미국에서 일어난 반(反) 기독교 10대 사건을 선정하여 발표했다.

 

이 단체의 게이스(Gary Gass) 박사는 이번에 선정된 10대 사건에 대해 놀라면서, 이는 기독교인들이 나라의 정치적 발전 방향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래는 미국에서 2011년 일어난 반 기독교 10대 사건 목록이다.

 

10위: NBC 텔레비전 방송국이 국기에 대한 맹세(the Pledge of Allegiance)에 나오는 ‘하나님 안에서(under God)’ 문구를 문제 삼다.
 

9위: 메사추세츠(Massachusetts) 주(州)에서 낙태를 반대하는(pro-life) 한 남성이 평화적으로 낙태 반대 홍보지를 나누어 주다 경찰에게 테러 용의자로 몰려 폭행을 당하다.
 

8위: 미네소타(Minnesota) 주(州)에서 직장 동료를 자신의 아내가 인도하는 성경 공부 모임에 참석하게 한 남성이 해고를 당하다.
 

7위: 플로리다(Florida) 주(州)의 한 기독교인 교사가 인터넷에 올린 (남성과 여성이 결합하는)전통적 결혼을 옹호하는 글로 인해 정직 당하다.
 

6위: 몬타나(Montana) 주(州)에서 낙태 반대자들이 낙태 시술소 앞에서 기도 모임을 갖다 폭탄 테러를 당하다(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음).
 

5위: 미국 자유인권협회(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의 제소로 미국 순회 법정이 샌 디에고(San Diego)에 있는 솔레다드(Soledad) 산(山) 전쟁 용사 묘지가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결하다.
 

4위: 한 동성연애 인권운동가의 고발로 낙태 반대 기독교 단체들의 온라인 모금 활동이 조사를 받다.
 

3위: 캘리포니아(California) 주(州)의 산 후안 카피스트라노(San Juan Capistrano)시(市) 당국이 공공 안전과 보건에 위험이 된다는 이유로 한 성경 공부 모임을 폐쇄시키다.
 

2위: 오바마(Obama) 대통령이 6월을 ‘동성연애자와 양성애자 그리고 성전환자(transgender)의 긍지의 달(pride month)’로 선포하고 백악관에서 동성연애자들이 참석한 기념식을 거행하다.
 

1위: 캘리포니아의 제리 브라운(Jerry Brown) 주지사(위 사진)가 동성연애자, 양성연애자 그리고 성전환자들을 ‘축하(celebrate)’하는 내용을 공공 학교 교육 과정에 포함시키도록 하는 법안에 서명하다.
 

Defend Christians는 이 이번 10대 사건들이 자신의 단체의 인터넷 회원들의 투표로 선정되었지만, 선정된 사건들과 자신의 단체의 사역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안철수가 느닷없이 미국에 가서 빌게이츠를 만난다고 했다. 왠 뜬금없는 행보인가 좀 놀랬었다.

 

 그럼 안철수가 미국에 가서 빌게이츠를 만났는가? 만나긴 만난 모양이다. 그러나 만남도 여러 가지인 것이다. 어떤 식으로 만났느냐가 더 중요하다.

 

안철수가 미국 가서 미국 경제인들과 만나는 것을 과대포장해서 언론을 통해 선전하고 있는 것 같다.
 

구글의 회장과 만나서 사진 찍은 것을 언론에 배포하고, 빌 게이츠와 만나서 [한 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누며, 그로부터 "기부에 그치지 말고 사회에 참여(take part in)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는 둥 은연중에 빌게이츠를 업고 자신의 위상을 높이고는, 한 발 더 나아가 자신의 정계진출을 빌 게이츠가 권유했다는 뉘앙스로 말하고 있는 듯 하다.
 

국의 언론은 빌 게이츠와 안철수의 만남을 비중 있게 다뤘지만, 미국의 어떤 언론도 그 만남을 보도하지 않았다. 그들의 눈에 그 만남은, 기사로서 단 한 줄의 가치도 없는 소식이라는 증거다.
 

안철수 측이 말하는 것들을 검토해 보자.

 

만남의 시간이 중요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 만남은 정확히 28분이었다. [한 시간 가까이]가 아니다. 한 시간 가까이란 말은, 안철수가 만남의 장소 앞에 도착해서 그 장소를 떠날 때까지의 시간이다.
 

그곳에 가서 한국 기자들과 10여분 대화했고, 빌 게이츠와 회동 후 또 다시 한국 기자들에게 10여분간 설명했다.
 

실제 만난 시간은 28분이다. 28분은 절대 [한 시간 가까이]가 아니다. [반시간(half) 가까이] 라고 해야 한다. 안철수가 그 회동을 얼마나 교묘하게 부풀리는지 알 수 있는 사례다.
 

빌 게이츠는, 안철수의 기부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듣고, 그냥 인사 치레로 "부의 기부에 그치지 말고 사회에 기여(service)하라"고 말했을 뿐이다. 절대 참여(take part in )하란 말을 하지 않았다. (대화중 빌 게이츠의 '스피치' 시간은 8분의1(half quarter) 정도였다, 거의 28분을 안철수 혼자 지껄인 것이다)
 

제일 중요한 부분... 우리 언론엔 빌 게이츠와 안철수가 TV화면에 같이 있는 동영상이 없다. 하물며 같이 있는 사진조차도 없다.
 

통념상 지금까지 어떤 중요한 회동이라는 것들에 동영상은 물론 사진조차도 없는 경우는 없었다.
 

그런데 안철수 측에서는 중요한 회동이라고 선전해 대면서도 동영상은 물론 사진조차도 없다. 그 이유는 빌 게이츠가 회동의 조건에, 기자의 참석, TV 카메라의 촬영, 사진의 촬영을 불허했기 때문이다.
 

회동 당일 안철수가 빌 게이츠에게, 안면 몰수하고 사진 찍기를 요청했으나, 그것 또한 일언지하에 거절 당했다.

 

미국도 사기꾼이 많은 나라다.

그 동안 사기꾼들이 빌 게이츠와 찍은 사진을 가지고 사기치는 작자들이 많았다.

그래서 빌 게이츠는 확실한 사람 아니면, 같이 사진을 찍지 않는다. 동영상 촬영은 더더욱 거부한다. 그래서 그는 안철수와의 회동에 동영상은 물론 사진 찍기 조차도 거부한 것이다.
 

그는 안철수를 사진 가지고 사기나 치는... 그런 종류의 인간으로 봤다는 증거(?)가 아닐까.
 

그래서 한국 신문에 빌 게이츠와 안철수가, 같이 찍은 사진 한 장 없고, TV에 동영상 한 장면 없는 것이다.
 

그 회동 후 빌 게이츠 측에서 대화내용을 언론에 배포 했는데...
안철수 측은 그 것을 무슨 대단한 것처럼 [공동 성명서]니 뭐니, 엉뚱하게 포장해서 선전하는데...

이것도 그 동안 빌 게이츠와 만난 사람들이 그와 만났을 때의 대화 내용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들을, 떠벌리고 다니니까.
 

[이러이러한 대화 이외엔 다른 내용이 없다]는 차원에서 배포하는 것이지, 절대 그 인물이 중요하고 대화내용이 중요하기 때문이 아니다.
 

10여년 전부터 빌 게이츠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의 대화는 모두 그렇게 공식적으로 발표한다. 그래서 이것도 빌 게이츠가, 믿을 수 없는 대화 상대와는 사진을 안 찍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면 된다.
 

통상적으로 빌 게이츠는 워렌 버핏 등 중요한 사람들과의 만남 이후엔, TV 카메라 앞에서 자신이 직접 대화 내용을 설명한다. 대변인을 시키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안철수가 빌 게이츠를 만난 것은 빌 게이츠를 빌려 한국에서 자신의 위상을 높이려 한 것이지, 무슨 기부 재단 설립을 위해 조언을 듣고자 만났다니 뭐니 하는 것은, 진짜 새빨간 거짓 말인 셈이 된 것이다.
 

안철수는 미국에 가서 행세 좀 하고 오려 했으나 오히려 철저하게 굴욕을 당했을 뿐이다.
 

 

 

 

 

 

 

 

 

 

 

 

 

 

히메노 토모미란 분이 쓴 글입니다.

 

 

포도당은 우리 뇌의 에너지원으로서 꼭 필요한 영양 성분이다. 하지만 음식에서 당질을 지나치게 섭취하면 혈당 조절에 이상을 불러와 정작 뇌에는 포도당이 부족해지는 이상 현상이 벌어지고, 마음은 오락가락 불안정해진다.

 

그런데 출출한 시간에 당질 그것도 정제 당질덩어리인 과자나 스낵 같은 걸 먹는다면 혈당치가 빠르게 높아질 건 불 보듯 번하다. 그러면 갑자기 올라간 혈당치를 떨어뜨리려고 인슐린이 분비될 것이고, 그러면 다시 혈당치가 급격히 내려가면서 정신이 아득해질 것 같은 졸음과 두통, 짜증, 피로감이 파도처럼 밀려올 것이다.
쿠키나 과자, 초콜릿 등 달콤한 과자류만이 문제가 아니라, 전병이나 포테이토칩과 같은 간식들도 마찬가지로 '뇌를 피곤하고 지치게 만드는 간식'이다.

 

대개 오후 4~5시쯤 되면 공복감을 느껴 간식을 찾게 됩니다. 사무실에서 잠시 함께 모여 과자나 빵을 나눠 먹기도 하고 가정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벌어지지요.

 

그런데 간식에도 '뇌를 활기차게 하는 간식'이 있고, 반대로 '뇌를 지치게 하는 간식'이 있다고 합니다.

 

일본의 심료내과 전문의인 히메노 토모미 박사는 출출한 오후가 되면 편의점으로 달려가 과자나 빵, 스낵, 컵라면, 튀김 등을 사먹는 직장인들에게 이렇게 말하며 뜯어말리고 싶다고 합니다.

 

"저기, 죄송하지만 간식을 잘못 고르셨어요. 그걸 먹으면 오히려 더 짜증이 나고 피로해질 뿐이라고요!"

 

피로나 짜증, 무기력을 느끼지 않고, 뇌가 활기찬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자기경영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요.

 

히메노 박사의 얘기는 이렇습니다.

 

"공복감이 밀려올 때 당질, 그것도 '정제 당질덩어리'인 과자나 빵 등을 먹으면 혈당치가 빠르게 올라간다.

 

우리 몸은 급격히 상승한 혈당치를 떨어뜨리기 위해 인슐린을 분비하고, 이에 따라 혈당치가 반대로 급격히 내려가면서 졸음과 두통, 짜증, 피로감이 몰려온다. 그러면 다시 당질을 찾게 되고, 뇌를 피곤하고 지치게 만드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그가 권하는 '뇌를 활기차게 하는 간식'은 인슐린을 분비시키지 않으면서 뇌의 활동 수준을 높이는 단백질이나 양질의 지질 식품입니다.

 

히메노 박사가 환자들에게 추천하고 자신도 즐겨 먹는다는 간식은 치즈, 땅콩이나 호두 등의 견과류, 우유나 두유, 무설탕 요구르트, 삶은 달걀, 말린 오징어와 같은 건어물이라고 합니다.

 

"단백질은 신경전달물질의 원료가 되며, 포도당을 뇌에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게 해준다. 게다가 속도 든든하게 채워주므로 마음을 한층 안정시키고 집중력도 떨어지지 않게 한다. 즉 '뇌를 활기차게 만드는 간식'인 것이다."

 

음료수도 설탕이 많이 들어 있는 캔커피나 커피믹스, 청량음료 대신 설탕이 들어 있지 않은 커피나 녹차, 홍차를 선택하라고 히메노 박사는 조언합니다. 그리고 꼭 단것을 먹어야겠다면 당도가 낮은 과일을 소량 먹으라고 말합니다. 사과라면 2분의 1개가 기준이랍니다.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에 간식을 사러 간다면, 과자 코너로 가지 말고 땅콩과 같은 견과류가 있는 술안주 코너나 치즈나 우유가 있는 유제품 코너를 이용하는 것이 우리 뇌를 지치지 않게 하는 최선의 선택이다." 

 

 

 

 

 

 

 

 

음악 한 곡 더 보내드립니다.

 

 

쓸쓸한 연가..

 

93년 언플러그드 그룹[사람과 나무] 원곡입니다.

노래가 좋은 이유도 있겠지만

이 노래에 얽힌 서글픈 사연 때문에

지금 까지도 수많은 가수들에 의해서

리메이크 되고 있는 노래 입니다.

 

김정환이 작사와 작곡을 담당했고

노래는 이수경이 불렀습니다.

이수경은 이화여대 음대 국악과 출신으로

현재 뮤지컬 배우로 활약 중.

 

이 노래에는 아주 슬픈 사연이 담겨있다고 전해집니다.

 

사창가에 들른 한 법대생이

어여쁜 직업여성에게 한눈에 반했답니다.

그 학생의 끈질긴 구애로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고

둘만의 보금자리를 꾸미고 예쁜 딸아이까지 낳고 살았는데

남자 쪽 집안에서 반대가 아주 심했다고 합니다.

 

그 후 사법고시에 합격한 남자의 마음도 차츰 변해갔고..

남자는 결국 다른 여자와 결혼하게 되고 나중에는

그녀에게서 분신과도 같은 아이까지 빼앗아 갔다고 합니다.

 

상처 입은 이 여인이 사창가로

다시 돌아와 눈물로 밤을 지새운다는

이 이야기가 청량리를 중심으로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퍼지게 되고
그래서 만들어진 노래가 바로
"쓸쓸한 연가"입니다.

 

 

 

Play 단추를 클릭하세요

 

쓸쓸한 연가 ... 사람과 나무

 

나 그대 방에 놓인 작은 그림이 되고싶어

그대 눈길 받을 수 있는 그림이라도 되고 싶어

 

나 그대 방에 놓인 작은 인형이 되고싶어

그대 손길 받을 수 있는 인형이라도 되고싶어

 

그댈 사모하는 내 마음을 말하고 싶지만

행여 그대 더 멀어질까 두려워

 

나 그저 그대 뜰에 피는 한송이 꽃이 되고싶어

그대 사랑 받을 수 있는 어여쁜 꽃이 되고싶어

 

그댈 사모하는 내 마음을 말하고 싶지만

행여 그대 더 멀어질까 두려워

 

나 그저 그대 뜰에 피는 한송이 꽃이 되고싶어

그대 사랑 받을 수 있는 어여쁜 꽃이 되고싶어 ..

 

 

 

 

 

 

영국 BBC 방송이 선정한 죽기전에 가 보아야 할 50곳 입니다.
순위 4위 반지의 제왕 촬영지 뉴질랜드 남 섬.
 

트와이젤.

 

반지의 제왕 2탄 '두개의 탑(The Two Towers)'의 스펙타클한 오프닝씬이 촬영된 트와이젤은 마운트 쿡/아오라키 국립공원에서 뻗어나오는 길 바로 밑에 놓여있다.

 

(반지의 제왕 촬영지 클레이클리프)

 

 

(클레이 클리프)

 

 

(샌드 클리프)

 

(반지의 제왕 촬영지)

 

맥킨지 분지 중앙에 놓여있는 이 산악마을은 로한을 포함하는 지역을 촬영하는데 광범위하게 이용됐다. 서던 알프스 발치에 위치한 벤 오하우 스테이션은 아라곤과 레고라스, 짐리과 영화 시작부분에서 오크들을 추격하는 로한의 초원지대를 제공했다. 제3편 왕의 귀환에서도 벤 오하우는 이스템넷협곡(Eastemnet Gullies)과 펠레노르 평원(Pelenor Fields)의 결정적인 전투씬 촬영지가 됐다.

 

와나카.

 

퀸스타운 북동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지점에 있는 와나카는 일년 내내 여행자들을 위한 휴양지이고, 마운트 로이, 블랙 피크, 폭스 피크, 마운트 나이거, 마운트 아발란쉐, 더 부쉬만스, 마운트 알파 등 마운트 어스파이어링 국립공원(Mount Aspiring National Park; 3,027m)에 의하여 둘러 쌓인 아주 작은 도시다. 앞으로 펼쳐진 호수와 호수를 둘러 싸고 있는 높은 산들!!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곳이기도 하다.

(와나카 호수)

 

카드로나(Cadrona), 해리스 마운틴스(Harris Mountains), 트레블 콘(Treble Cone) 등의 스키 연습장에서 호쾌한 다운힐 스키, 스노우 보드 그리고 헬리스키(Heliskiing) 등등 일년 내내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겨울에는 전세계에서 스키를 즐기기 위해서 이곳 와나카(Wanaka)와 퀸스타운(Queenstown)으로 몰려 온다. 또한 겨울에는 와나카는 뉴질랜드의 마터호른(스위스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불리는 마운트 아스파이어링(Mt. Aspiring)을 중심으로 한 국립공원에서의 트램핑 등산 입구이기도 하다.

 

퀸스타운.

 

퀸스타운은 그 자체가 지닌 아름다움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을 느낄 수 있으나 상상을 뛰어넘는 다양한 스포츠가 여행자들의 용기와 모험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더욱 더 큰 사랑을 받는다.

(퀸스타운 전경)

 

퀸스타운에서 25분 거리에있는 코로넷 피크와 50분 거리에 있는 리마커블은 겨울철의 유명한 스키장이며 가까이에 있는 카와라우와 스키퍼스 캐니언 브리지는 번지 점프로 유명하다. 이밖에도 열기구 풍선, 행글라이딩, 제트보트, 제트스키, 래프팅, 카약, 파라슛팅, 파라 플라잉, 파라 펜팅, 리버스핑 등 스릴 넘치는 스포츠를 즐길 여행자들로 붐비며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여행자들은 이 아름다운 호반의 도시에서 쉽게 친구가 되기도 한다.

 

테아나우.

 

평화로우면서도 매력적인 마을 테아나우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피오르드 랜드 국립공원의 중심지이다. 마운트 쿡과 안셋항공이 들어오는 이 곳은 관광객들이 한 번쯤은 들르는 곳이기때문에 많은 숙박소와 상점들이 즐비하다. 또한 주변관광지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밀포드 사운드와 다우트풀 사운드가 있어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밀포드 사운드.

 

퀸스타운에서 호머터널을 경유하여 차량으로 약 4시간을 이동하면 밀포드 사운드가 나타난다.

(피오르드랜드)

 

피오르드랜드에서 최고의 볼거리 중 하나인 밀포드 사운드는 지금으로부터 약 1만 2천년 전 빙하에 의해서 주위의 산들이 1,000m이상에 걸쳐서 거의 수직으로 깎여서 바다로 밀려들었다는 장대한 전망으로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풍경으로 자주 소개되고 있다. 이 풍경을 만끽하려면 크루즈가 좋을 것이다. 해면의 높이에서 올려다보는 단애(斷崖)는 압도적이다.

 

그런데 18세기에 뉴질랜드를 탐색한 캡틴 쿡(Captain Cook)도 밀포드 사운드는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쳤다고 한다. 불과 200년전까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던 이 신비스러운 곳을 지금은 연간 25만 명이나 되는 관광객들이 찾아가고 있다.

 

마운트쿡.


뉴질랜드 남섬의 '서던 알프스 산맥'은 '남반구의 알프스'라는 명칭으로 불릴만큼 험준하면서도 아름다운 곳으로 이 산맥은 남섬의 서쪽으로 치우쳐 남북방향으로 뻗어있다. 이 '서던 알프스 산맥'의 최고봉에 마운트 쿡이 우뚝 솟아있다.

(마운트쿡)

 

웨스트랜드.

 

웨스트랜드 국립공원은 서던 알프스의 서쪽지역의 1,175 ㎢ 를 덮고 있으며, 그것은 남섬의 서해안 줄기를 절반정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쪽으로는 마운트 쿡 국립공원과 경계를 짓는 주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곳은 1960년 산과 빙하를 보호하기위해 지어진 것으로서, 1982년에는 와이구구파의 남쪽과 오카리토 남쪽지역을 더 확장하게 되었다.

 

(폭스 빙하)

 

 

(폭스 빙하)

 

 

(프란츠 조셉 빙하 헬기 투어)

 

국립공원내에는 60개가 넘는 빙하가 있는데, 대부분의 빙하가 작다고 하지만, 그 길이가 8km가 넘는다. 빙하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폭스빙하와 프란츠 조셉빙하는 해발 300m에서 내려와 숲을 통과하기에 국립공원에 가장 큰 흥미를 불어 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카이코우라.
 

카이코우라는 고래 및 돌고래 관광으로 유명한 곳으로 해안에서 고래를 관측할 수 있는 세계에서 몇 안되는 장소로 5~7월과 11월~1월 사이 고래를 볼 수 있는 확률이 높다.

 

(카이코우라의 물개)

(자이안트 고래)

 

GIANT SPERM 고래의 크기는 거의 20m 정도 되며 바닷물을 뿜어내는 모습은 참으로 웅대하다.

그밖에도 DUSKY DOLPHIN, ROYAL ALBATROSS, 바다표범 등을 관찰할 수 있다. 

 

 

 

 

 

 

 

 

 

 

 

 

 

 

 

 

나이가 들면 신문이나 책을 읽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눈에서 조금씩 멀리하고 보게 된다.

이는 가까이 있는 사물에 초점을 맞추기 어려져서

생기는 현상인데, 이것이 노안이다.

 

노안이 발생하는 이유는 나이를 먹으면서

렌즈의 역할을 하는 수정체의 탄력이 떨어지고

수정체의 두께를 조절하는 모양근도 약해지기 때문인데,

특히 가까이 있는 사물에 초점이 맞지 않게 된다.

 

노안이 오면 눈의 건강을 항상 세심하게 챙겨야 한다.

버스나 지하철 같이 흔들리는 곳에서는 독서를 삼가고,

오랜 시간 운전도 피하는 것이 좋다.

또한 TV나 컴퓨터 모니터를 2시간 이상 바라보지 않도록 하고,

TV를 볼 때는 반드시 밝게 불을 켜고 보도록 한다.

 

 

노안이 오게 되면 안구건조증도 각별하게 조심해야 한다.

TV나 컴퓨터 화면을 오래 바라보게 되면

눈을 깜박이는 횟수가 줄어들고, 눈이 건조해진다.

나이가 들면 눈물샘이 위축되기 때문에 눈물의 양도 줄어든다.

안구건조증이 생기면 눈동자가 건조하고 따가우며,

눈을 자주 깜박이게 된다.

눈물이 나고 눈곱이 끼며, 충혈 되고 눈이 무거워진다.

 

인간의 눈에서 렌즈 역할을 하는 수정체는

단백질로 이루어진 투명한 조직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빛을 투과시키는 동안

점점 탁해지고 결국에는 뿌옇게 흐려져서

사물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 백내장이다.

 

 

백내장은 결국 누구에게나 발생하지만

자외선을 쬐게 되면 발병 시기가 빨라진다.

자외선이 수정체를 통과하면 단백질에 변성이 발생,

칼슘염이 되어서 렌즈에 쌓이는 것이다.

따라서 낮에 외출할 때는 반드시 자외선을 차단해야 한다.

 

자외선의 조사량은 계절로는 4~8월,

시간으로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 사이가 가장 많다.

낮에 옥외에서 활동할 때는

나이에 관계없이 선글라스를 착용해서

자외선에서 눈을 보호해야 한다.

자외선은 유리도 통과하며,

맑은 날뿐만 아니라 흐린 날에도 내리쬔다.

 

 

자외선 차단을 위한 선글라스 렌즈는

UV 차단 가공이 되어 있는 플라스틱이 좋다.

UV 차단 가공이 되어 있지 않은 짙은 선글라스는

동공이 열리기 때문에 오히려 자외선을 받아들이기 쉽다.

 

눈의 안쪽에는 수정체를 통과한 빛을 맺는 망막이 있다.

망막에는 로돕신이라는 단백질이 있어서

빛의 자극을 받으면 시신경에 전달, 사물이 보이게 된다.

로돕신은 분해와 재생을 반복하는데,

눈을 장시간 쓰게 되거나 나이가 들면 재생량이 감소한다.

 







자주색 양배추나 가지, 포도 등에 들어 있는

안토시아닌 색소는 로돕신의 재생을 돕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시력 회복과 안정 피로 등에 효과가 있다.

그리고 안토시아닌은 섭취하는 즉시 효과가 나타난다.

시금치나 브로콜리 같은 녹황색 야채에는 루테인이 많이 들어 있다.

 

루테인은 망막의 황반부에도 있으며,

자외선 때문에 눈 안에서 생기는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실명의 위험성이 큰 황반변성증과

수정체가 탁해지는 백내장을 예방하는 것 외에도

눈부신 빛을 흡수하고 시력회복도 촉진한다.





 

종 류

효 과

많이 들어 있는 식품

비타민 A

망막 습기 유지, 어두운 곳에서 시력 유지

녹황색 야채, 간, 장어

비타민 B1

시신경 작용 향상, 눈의 근육피로

돼지고기, 유제품, 콩류

비타민 B2

눈의 피로 회복, 각막 신진대사 촉진

육류, 어류, 녹황색 야채

비타민 B6

안정 피로 개선

마늘, 닭고기, 구운 김

비타민 B12

눈의 노화, 백내장, 녹내장 예방

구운 김, 바지락, 명란젓

비타민 C

눈의 노화 예방

딸기, 키위, 레몬, 감자

비타민 E

눈의 노화 방지 및 혈행 향상

아몬드, 꽁치, 아보카도

타우린

시력 저하 예방

문어, 오징어, 새우, 감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평소에도 눈을 보호하는 생활습관이다.

수면 부족과 스트레스는 눈물의 분비량을 감소시킨다.

또 밤에는 낮보다 눈물 분비량이 줄어든다.

따라서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해야 한다.

긴장하면 교감신경이 작용하기 때문에 눈물 분비량이 줄어든다.

 

방이 건조하거나 담배 연기 등으로

공기가 탁해지면 눈은 더욱 건조해진다.

사무실이나 집안의 환기를 자주해서 눈을 보호해야 한다.

그리고 방의 습도는 70% 전후가 적당하다.

가끔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눈 주위를 부드럽게 눌러주기도 하고

푸른 숲이나 하늘을 보고 안구를 움직이는

상하좌우운동, 대각선운동, 회전운동 등의 안구운동을 습관적으로 해준다.

 

 



 

 

 

 

 

 

 

 

  아침반(9:30) 낮반(1:30)  오후반(4:30) 저녁반(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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