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라일(John
Charles
Ryle)이 지은 책
[거듭났는가](규장)를
통해 거듭남에 관하여
명확한 답을 얻고자
한다.
-
“참으로 거듭난 제자가
적고 명목상의
기독교인이 많은 것,
이것이
교회가 세상의 비난을
받게 된 핵심
원인이다"
거듭남이란 참 믿음을
갖는 순간 인간의
마음과 본성이 변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신앙을
고백하고 그리스도인을
자처한다고 해서 모두
다 똑같지는 않다.
교회 안에는 항상 두
종류의 그리스도인이
존재한다. 하나는
이름과 형식만 갖춘
그리스도인이고, 다른
하나는 신앙과 행위가
일치하는 참
그리스도인이다.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해서 다 참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었듯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다 참 그리스도인은
아니다.
영국 국교회의 신조에도
보면 “유형교회 안에는
항상 악한 자들과 선한
자들이 섞여 있다”라는
조항이 있다. 교회
안에는 ‘참 신앙을
결여한 사악한 자들’과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지음 받아 선한 일을
하며 경건하게 살아가는
자들’이 있다.
하나님을 형식적으로
예배하는 사람들과
그분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는 공존한다.
세상에 마음을 바치는
사람들과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는 사람들이
있다. 성경을 믿고 그
믿음대로 사는 이들이
있고 그렇지 못한
이들도 있다. 어떤
이들은 죄를 의식하고
깊이 뉘우치지만 어떤
이들은 그렇지 못하다.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신뢰하며 충성을 다하는
이들이 있고 그렇지
못한 이들도 있다.
성경 말씀대로 하면
좁은 길을 걸어가는
이들과 넓은 길을
걸어가는 이들이 있다.
좁은 길을 가는 자가
복음의 그물에 잡힌
좋은 고기, 그리스도의
밭에서 거둔 좋은
알곡이라면 넓은 길을
가는 자는 나쁜 고기,
그리고 가라지에
해당한다. 눈이 성한
사람이면 누구나 성경은
물론 세상에서 그런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거듭남의
가르침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와 상관없이
자명한 현실이다.
그러면 그런 차이가
생겨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답은
거듭남에 있다.
참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거듭났기
때문이고,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에 머무르는
이유는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참
그리스도인은 마음이
변화되었지만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은 마음이
변화되지 못했다.
마음의 변화가
모든 차이를 빚어낸다.
요한일서에 명시된
거듭남의 영적 징표
체크 리스트
거듭남의 표시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성경은
거듭남의 징표와 증거를
명확히 제시한다.
하나님은 이 문제와
관련해 우리를 무지
속에 버려두지
않으셨다. 우리
가운데는 자신이 실제로
거듭났는지 아닌지를
고민하며 영혼의 건강을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고, 거듭났다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전혀
없는데도 당연히 거듭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나님은 그런 일이
있을 줄 미리 아시고
요한일서에 영적 상태를
진단할 수 있는 판단
기준을 제시하셨다.
요한일서는 거듭난
사람의 특성과
행동양식, 즉 삶의
습관과 태도와 믿음과
경험을 설명함으로써
우리의 이해를 돕는다.
거듭남의 교리를 올바로
이해하려면 요한일서를
철저히 공부해야 한다.
이제부터
거듭남의
징표와 증거를 순서대로
제시해보겠다. 이 책의
다른 내용은 모두
잊더라도 지금부터
말하는 내용은 절대로
잊지 말라. 이 증거
외에도 다른 여러 가지
증거를 얼마든지 소개할
수 있다. 다만
여기서는 요한일서에
제시된 증거에만 초점을
맞출 생각이다. 그
이유는 요한일서의
내용이 거듭난 자의
상태를 가장 명확하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사도
요한이 말하는 거듭남의
표징을 집중해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징표 1,
"죄를
짓지만 습관적으로
짓지는 않는다"
첫째, 거듭난 사람은
습관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요일
3:9).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요일
5:18).
거듭난 사람은
‘습관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과 달리 거듭난
사람의 마음과 의지와
성향은 죄의 권세로부터
자유롭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행위가 죄인 줄
모르기도 하거니와 악을
저지른 후에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 사람은 죄와
다투지 않고 친구처럼
지낸다. 하지만 거듭난
뒤에는 죄를 미워하고
멀리 하며 죄에 맞서
싸운다.
거듭난 사람은 죄의
영향을 받을 때면
탄식하고 슬퍼하며,
죄를 가장 큰 질병으로
간주해 해방을
갈망한다. 한마디로
거듭난 사람은 죄를
기뻐하지 않으며, 죄를
방치하지 않는다.
거듭난 사람은 죄를
가증스럽게 여긴다.
물론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일
1:8)라는 말씀대로
거듭난 자도 얼마든지
죄를 지을 수 있다.
하지만 거듭난 사람은
진정으로 죄를
혐오한다.
거듭난 자의 가장 큰
소망은 죄를 짓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약
3:2)라는 말씀대로
거듭난 자도 때로 악한
생각을 하거나 그릇된
언행을 일삼을 수
있다. 하지만 거듭난
자는 거듭나지 못한
자와는 다르게
본성적으로 죄를
거부하며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잘못을
뉘우친다.
이것이 거듭난 첫 번 째
징표이다.
징표 2,
"구원의
근거를 행위나 공로에
두지 않는다"
둘째, 거듭난 사람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굳게 믿는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요일 5:1).
거듭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영혼을 용서하고
구원하실 유일한
구세주이시며, 인류의
구원을 위해 성부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신성한 존재라는
사실을 굳게 믿는다.
거듭난 사람은 자신은
구원받을 자격이 없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근거를 발견하고,
그분을 통해 자신의
죄와 불법이 모두
깨끗해졌다고 확신한다.
거듭난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덕분에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담대히 죽음과
심판을 향해 나간다.
물론 거듭난 사람도
두려움과 의심에
사로잡힐 수 있으며,
때로는 스스로 믿음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거듭난 사람에게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을 신뢰하며 그분을
포기하고 다른 구원자를
찾겠느냐고 묻거나
영생의 소망을 선행,
공로, 기도, 사역 및
교회 안팎에서
이루어지는 봉사활동에
두겠느냐고 묻는다면,
비록 자신이 연약하고
실수가 많지만 온
세상을 다 준다 해도
절대로 그리스도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그리스도를 가장
보배롭게 생각하고
그분만을 의지하며 굳게
붙잡겠다는 대답을 듣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것이 거듭난 두 번째
징표이다.
징표 3,
"여전히
불완전하고 의심하며
살지만 끊임없이 거룩을
지향한다"
셋째, 거듭난 사람은
의를 행한다.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요일
2:29).
거듭난 사람은 거룩한
사람이다. 그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며, 그분을 기쁘시게
하고, 그분이
미워하시는 일을 피하기
위해 노력한다. 거듭난
사람은 마음과 영혼과
생각과 힘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는다. 거듭난
사람은 구세주요
본보기이신 그리스도를
늘 우러러보며 그분이
무엇을 명하시든 기꺼이
복종함으로써 자신이
그분의 친구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물론 거듭난 사람도
완전하지 못하다. 사실
거듭난 사람은 그
누구보다도 먼저 자신의
불완전함을 겸손히
고백한다. 그는 자신을
괴롭히는 부패한
본성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기를
갈망하며, 자기 안에
은혜를 거스르는 죄의
법이 도사리고 있어
끊임없이 하나님을
멀리하도록 부추긴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거듭난 사람은
비록 자기 내면에 죄의
법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에 복종하기를
거부한다.
여러 가지 결함에도
불구하고, 거듭난
사람의 본성과 성향과
언행과 습관은 거룩함을
지향한다. 때로는
넘어지거나 잠깐 곁길로
치우치는 경우도
있지만, 거듭난 사람은
꾸준히 하나님을 향해
한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
영적 침체기를 보낼
때도 있고, 자신이 참
그리스도인인지 의심할
때도 있다. 하지만
거듭난 사람은 존
뉴턴처럼 “마땅히
되어야 할 사람이
되지도 못했고,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지도
못했으며, 내가 또
다른 세상에서 되고
싶은 사람이 되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나는
이전과 같지 않다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일세”라고
노래한다.
이것이 거듭난 세 번째
징표이다.
징표 4,
"그리스도의
참 제자들을 특별히 더
사랑한다"
넷째, 거듭난 사람은
같은 신자를 사랑한다.
“우리가…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요일
3:14).
거듭난 사람은
그리스도의 참 제자들을
특별히 사랑한다.
거듭난 사람은 온
인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처럼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만 그 중에서도
자기와 한 마음이 된
사람들을 특별히
사랑한다. 거듭난
사람은 그리스도처럼
극악한 죄인도
사랑하지만, 동료
신자들을 더욱더
사랑한다. 거듭난
사람은 동료 신자들과
함께 어울릴 때 가장
편안해 하며, 세상에서
훌륭한 성도들과 함께
거할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
세상 사람들은 지식,
명석한 두뇌, 인간적인
매력, 재산, 신분
따위를 높이 치지만
거듭난 사람은
‘은혜’를 가장 소중히
여긴다. 따라서 거듭난
사람은 은혜가 충만하고
그리스도를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을 가장
사랑한다. 거듭난
사람은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한 가족이자
형제로 받아들인다.
또한 거듭난 사람에게
동료 신자는, 같은
대장의 지휘 아래
공동의 적을 상대하는
전우이자 같은 길을
걸으며 똑 같은
어려움을 겪다가 영원한
집에 당도해서 편히
쉬게 될 동반자이다.
거듭난 사람과 동료
신자들은 서로
이해한다. 그들
사이에는 영적 유대감이
싹튼다. 신분이나
지위나 재산 등 다른
점이 많지만 그런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백성이자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거듭난 네 번째
징표이다.
징표 5,
"세상
사람들에게 때로
특이하고 이상하다는
말을 듣는다"
다섯째, 거듭난 사람은
세상을 이긴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요일
5:4).
거듭난 사람은 세상
사람들의 견해를 옳고
그름의 척도로 삼지
않는다. 거듭난 사람은
세상의 방법과 관념과
관습을 따르지 않는다.
그는 더 이상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느냐?”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거듭난 사람은 더 이상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주위에 있는 일들에서
기쁨을 찾지 않으며,
세상 사람들의
즐거움에도 동참하지
않는다.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거듭난
사람의 눈에는 세상
사람들의 삶이 헛되고
무가치하고 무익하게
느껴진다.
또한 거듭난 사람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주위
사람들이 불필요하게
생각하는 일들을 하면서
만족을 얻는다. 그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아도 개의치
않고, 조롱을 당해도
포기하지 않으며,
사람들보다 하나님께
칭찬받기를 더
좋아한다.
거듭난 사람은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분노를
초래하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자신의 신념을
고수한다. 거듭난
사람에게 사람들의
칭찬이나 비난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거듭난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어디를
가든지 그분을 따르기로
결심한다. 그러다 보면
때로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가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거듭난 사람은 그런
상황도 마다하지
않는다. 거듭난 사람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당신은 다른 사람들과
달라. 당신의 생각은
사회적인 통념에
어긋나. "당신은
특이하고 이상해”라는
말을 듣더라도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는다.
거듭난 사람은 더 이상
유행이나 관습을 따르지
않는다. 세상을 즐겁게
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첫번째 목표로 삼는다.
이것이 거듭남의 다섯
번째 징표이다.
징표 6,
"자신의
영혼에 유익을 주는
사람을 친구 삼는다"
여섯째, 거듭난 사람은
주님이 그의 영혼을
지켜주신다.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요일
5:18).
거듭난 사람은 자신의
영혼을 주의 깊게
보살핀다. 그는 죄를
멀리할 뿐 아니라 죄를
짓게 하는 모든 유혹을
경계하며 사람을 사귀는
데도 매우 신중하다.
거듭난 사람은 악한
대화가 마음을
더럽히며, 선보다 악이
더 강력한 파급력을
지닌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시간을
유익하게 사용하기 위해
노력하며, 읽을 책을
선택할 때도 신중을
기한다. 그는 해로운
책이 자신의 생각을
더럽히지 않도록
주의한다.
거듭난 사람은 친구
관계를 맺을 때도
각별히 주의한다. 그는
친절하고 상냥하고
착하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사귀지는
않는다. 물론 그런
성품은 매우
바람직하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영혼에 유익을 주는
사람을 선택한다. 그는
일상생활의 습관이나
행동에도 신중을
기한다.
거듭난 사람은 인간의
마음이 거짓되고 심히
부패했으며 세상에는
악이 흘러 넘치고
마귀가 항상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그는
적의 진영으로 다니는
군인처럼 항상 단단히
무장하고 모든 유혹에
대비한다. 자기 영혼이
적진 한복판에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늘
경계하며, 겸손히
기도하면서 살아간다.
이것이 거듭난 여섯
번째 징표이다.
거듭남의 징표가
드러나는 정도는
개인마다 다르다
지금까지 거듭남의 여섯
가지 징표를 차례로
살펴보았다. 이 내용을
주의 깊게 읽고
생각하고 마음에
새겨두기 바란다.
거듭난 사람들 가운데도
이 징표가 나타나는
정도에는 개인차가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거듭남의
징표가 너무 희미하고
흐릿해서 식별하기에
몹시 어렵다. 그들의
징표를 식별하려면
현미경이 필요할
정도이다.
그와 달리 거듭남의
징표가 너무 뚜렷하고
확실해서 언뜻 보아도
식별이 가능한 사람들도
있다. 한 사람이 여섯
가지 표징을 모두
뚜렷이 드러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사람마다
여섯 가지 징표 가운데
다른 사람들보다 강하게
나타나는 징표가 제각기
다르다. 모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개인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는 하나 앞서
말한 여섯 가지는
거듭남의 가장 확실한
징표에 해당한다. 사도
요한은 거듭난 자의
특징을 분명히
언급했다. 거듭난
사람의 성품도 사람의
용모만큼이나 개성이
뚜렷하고 분명하다.
요한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해 기술한
서신에서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은 죄를 짓지
않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으며,
의를 행하고, 동료
신자를 사랑하고,
세상을 이기며, 자신의
영혼을 지킨다고
말했다.
사도 요한은
거듭남의 징표를 언급한
같은 서신에서 그런
특징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아니라고 거듭
강조한다. 이 모든
사실에 유념하기
바란다.
그러면 우리는 이
성경의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거듭남을 교회의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는 조건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런
성경의 가르침에 어떤
가르침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단
하나이다. 즉, 이
여섯 가지 징표가 있는
사람은 거듭난 사람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거듭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거듭난 척하지 말라
중생의 증거에 대한
여러 다양한 견해를
들어보자.
“중생의 증거는 우리의
행위와 태도에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새로워져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 판단
기준은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는 말씀에
있다. 마음이
불결하고, 손이 게을러
유익을 끼치지 못하고,
행실이 더럽고
부정하며, 부패한
본성에 이끌려 산다면
새로워진 척하지 말라.
그것은 아직도 옛
사람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홀 감독).
“우리의 입양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입양과 달리 단순히
외적 명칭의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는 경우에는
새로운 영과 본성을
부여받아 모든 것이
획기적으로 변화한다.
우리는 그런 변화를
통해 그리스도의
후사(상속자)로
지정되며, 초자연적인
중생의 역사를 통해
새롭게 거듭나서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된다.
우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닮게
된다. 그분의 형상이
우리의 영혼 안에서
새롭게 되살아나며,
그분의 영이 우리 안에
머문다. 우리는 그분의
영에 인도함을 받으며,
그 뜻에 따라
행동한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인 척한다. 하지만
자기기만에 빠져 있지
않은지 조심스럽게
살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지
아닌지를 구별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릇된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들 안에는
하나님의 영이 존재하지
않고, 그분의 인도를
따르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으며, 하나님의
자녀다운 성품도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성경은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고 말씀한다.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겉모습을 모방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요한은 ‘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요일
2:29)고
말했다”(레이튼
대감독).
“스스로 중생을 체험한
충실한 신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가운데
스스로를 속이는 이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골
3:7)라는 말을 들을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지금도 ‘여전히 그
가운데 살며 그
가운데서 행하기’
때문이다”(대버넌트
감독).
거듭난 것은 증명할 수
있다!
거듭남의 징표가
있는가?
당신은
거듭남의 교리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가?
어떤 견해를
갖든 본인의 자유이지만
이 여섯 가지 징표를
갖추지 못했다면
두려워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 징표도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
거듭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헛된 공상에
불과하다. 요한의
증거는 명백하다. 그런
징표 없이는 거듭났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자녀들 사이에는 공통된
가족의 형질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그것이 없는
사람은 그분의 자녀가
될 수 없다. 거듭난
자의 내면에는 순금
또는 순은임을 인정하는
확인 도장처럼 성령의
증거가 명백히 드러나야
한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 23).
그런 증거가 없는
거듭남은 거짓이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
마찬가지로
확인할 수 있는 특징이
결여된 거듭남은
가짜이다. 오늘날 이런
사실을 마음에 깊이
새겨두어야 할 사람들이
많다.
무사안일주의의 잠에서
깨어나 거듭남을 구하라
거듭남의 표징이 없는
사람은 자신이 심각한
위험에 처했음을 깨닫고
무사안일주의의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지옥에
떨어져서 영원한 불행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의식하고,
지금이라도 서둘러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실 목적으로
제정하신 은혜의
수단들을 부지런히
활용해야 한다.
복음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열심히 성경을
읽어야 한다. 무엇보다
기도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 성령의
선물을 간절히 구해야
한다. 아직까지 자신이
거듭나지 못한 죄인임을
자복하고 통회하는
심령으로 주님께
나아가야 한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
34:18).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8,
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행
3:19).
거듭나기를 강청하라.
거듭나도록
씻어주시기를, 성령으로
새롭게 하시기를
절체절명으로 구하라.
이 과정을 따른다면
얼마든지 희망이 있다.
단순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하라.
그렇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
노력을 거부한 채 현재
상태에 만족한다면
희망은 없고 두려움만
있을 뿐이다.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롬
2:5).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그런 상태가 바로 아직
거듭나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거듭나지
못하면 구원의 축복을
받을 수 없다. 그런
사람에게는 “부디
주께서 당신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기를
바랍니다”라고 밖에 달리
해줄 말이 없다.
거듭남의 징표를 지닌
사람은 해를 거듭할수록
그 징표가 더욱
뚜렷해져야 한다.
잘못을 뉘우치고 더욱
충실한 믿음을 갖기
위해 노력하며, 세월이
흐를수록 더
거룩해지고, 세상과의
싸움에서 더 큰 승리를
거두며, 형제에게
진정한 사랑을 베풀고,
신중하게 자신의 영혼을
지켜나가야 한다.
(장재언)

저자 J. C. 라일에
대한 소개

J. C.
라일(John
Charles
Ryle,
1816-1900)은
청교도의 영성을 소유한
지성적 목회자이다.
일찍이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신학을 전공하여
목회자가 되었다. 영국
교회 내의 교리적
혼탁함을 ‘오직
성경으로’라는 정신으로
개혁하는 일에 힘썼다.
그는 세례와 교인
등록이 거듭남을
자동으로 보장한다는
영국 교회 내의
의식주의자들의 견해에
맞서, 거듭남은 교회
의식이나 성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되는 것임을
역설하였다.
그의 이 책은 교회가
거듭남에 대해
침묵하고, 교회의
의식과 제도에 충성하면
자동으로 천국 백성이
된다고 여겼던 시대에
하늘에서 떨어진 거룩한
폭탄이었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J. C.
라일에 대해 “그는
스펄전과 더불어
쌍두마차를 이끌며
영국과 세계에 복음을
전파한 청교도 목사로서
존경과 찬사를 받아야
한다”고 극찬했다.
라일은 철저한 청교도적
개혁주의자로서 복음적
교리를 신봉하며 원칙과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신앙에 관한
실제적인 책들을 많이
펴낸 저술가이자
열정적인 설교자요
충실한 목회자였다.
그가 저술한 책들은
100년이 넘은
지금까지 끊임없이
출판되고 있으며,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그 영적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그는 오직 복음으로
사람들을
거듭나게 하는
일이 설교자로서,
기독교 저술가로서 해야
할 본분임을 깊이
자각하였다. 그래서
그의 설교와 책의 중심
주제는 항상 복음, 곧
사람을 회개시켜 구원
얻게 하는 일이었다.
그는 성령의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개인의
심령 부흥, 교회의
부흥이 성령으로만
가능함을 믿어 늘
성령의 불을 구하였다.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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