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18,  2012

 

 

 

 

 

 

 

 

1.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2.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3.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주시리

 

4.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하리라 아멘

 

 

 

 

 

Praise Gathering

 

 

 

 

 

 

 

 

 

 

 

 

청포도 / 인곡 임월묵


처마 끝으로

이글이글 영글어 가는 청포도

비바람에 할퀸 자국도 없이

가지가지 줄기마다

익혀내는 알알이 토실토실 하구나

 

 

 

 

땡볕 불타오르던 그날도

온종일 좁은 돌담

벽 사이를 비집고

하늘을 향한 그 마음

씨알도 그렇게 익었으리

 

 

 

그 시절 청포도는

더 푸르렀고

알알도 더 속살차고

훤칠한 몸짓

늘 그렇게 늠름했다네

 

 

 

 

황금빛 여물어가는 노을에

출렁이는 초가을 들녘

고개 숙인 오곡(五穀)이 너그러운데

청포도 익어가는 뜨락에서

나는 너의 이름을 부르노라.

 

 

 

 

 

 

 

 

 

 

 

 

 

당신이 12월에 나셨는지 3월에 나셨는지

저에게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제게 오셨다는 사실,

오직 그것이 중요합니다

 

주님!

당신이 베들레헴에 나셨는지 나사렛에 나셨는지

저에게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낮은 자들을 찾아

비천한 곳으로 오셨다는 사실,

오직 그것이 중요할 뿐입니다

 

주님!

당신이 처녀의 몸에서 나셨는지 그렇지 않은지

저에게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인간으로 오셨다는 사실,

오직 그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불원천리(不遠千里) 찾아가

주님을 뵙는 것도 황공한데

당신이 우리에게 오시다니요!

화려한 궁전과 장엄한 성전을 외면하고

초라한 저희 집에 오셨다니 요!

 

영원한 먼지로 돌아갈 육신을 입으셨다니 요!

이 모든 일이 바로 저를 위한 일이었다니요!...

 

감사하다는 말이 왜 이렇게 어색하게 느껴지나요?

이럴 때 뭐라고 말해야 하나요?

아................!!! (다시 참회하는 자)

 

 

 

 

 

 

 

 

 

 

 

 

 

 

 

 

 

오늘은 라일(John Charles Ryle)이 지은 책 [거듭났는가](규장)를 통해 거듭남에 관하여 명확한 답을 얻고자 한다.

 

 

- “참으로 거듭난 제자가 적고 명목상의 기독교인이 많은 것,

이것이 교회가 세상의 비난을 받게 된 핵심 원인이다"

 

 

거듭남이란 참 믿음을 갖는 순간 인간의 마음과 본성이 변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신앙을 고백하고 그리스도인을 자처한다고 해서 모두 다 똑같지는 않다. 교회 안에는 항상 두 종류의 그리스도인이 존재한다. 하나는 이름과 형식만 갖춘 그리스도인이고, 다른 하나는 신앙과 행위가 일치하는 참 그리스도인이다.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해서 다 참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었듯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다 참 그리스도인은 아니다.

 

영국 국교회의 신조에도 보면 “유형교회 안에는 항상 악한 자들과 선한 자들이 섞여 있다”라는 조항이 있다. 교회 안에는 ‘참 신앙을 결여한 사악한 자들’과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지음 받아 선한 일을 하며 경건하게 살아가는 자들’이 있다.

 

하나님을 형식적으로 예배하는 사람들과 그분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는 공존한다. 세상에 마음을 바치는 사람들과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는 사람들이 있다. 성경을 믿고 그 믿음대로 사는 이들이 있고 그렇지 못한 이들도 있다. 어떤 이들은 죄를 의식하고 깊이 뉘우치지만 어떤 이들은 그렇지 못하다.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신뢰하며 충성을 다하는 이들이 있고 그렇지 못한 이들도 있다.

 

성경 말씀대로 하면 좁은 길을 걸어가는 이들과 넓은 길을 걸어가는 이들이 있다. 좁은 길을 가는 자가 복음의 그물에 잡힌 좋은 고기, 그리스도의 밭에서 거둔 좋은 알곡이라면 넓은 길을 가는 자는 나쁜 고기, 그리고 가라지에 해당한다. 눈이 성한 사람이면 누구나 성경은 물론 세상에서 그런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거듭남의 가르침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와 상관없이 자명한 현실이다.

 

그러면 그런 차이가 생겨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답은 거듭남에 있다.

참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거듭났기 때문이고,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에 머무르는 이유는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참 그리스도인은 마음이 변화되었지만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은 마음이 변화되지 못했다. 마음의 변화가 모든 차이를 빚어낸다.

 

 

요한일서에 명시된 거듭남의 영적 징표 체크 리스트

 

거듭남의 표시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성경은 거듭남의 징표와 증거를 명확히 제시한다. 하나님은 이 문제와 관련해 우리를 무지 속에 버려두지 않으셨다. 우리 가운데는 자신이 실제로 거듭났는지 아닌지를 고민하며 영혼의 건강을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고, 거듭났다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전혀 없는데도 당연히 거듭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나님은 그런 일이 있을 줄 미리 아시고 요한일서에 영적 상태를 진단할 수 있는 판단 기준을 제시하셨다. 요한일서는 거듭난 사람의 특성과 행동양식, 즉 삶의 습관과 태도와 믿음과 경험을 설명함으로써 우리의 이해를 돕는다. 거듭남의 교리를 올바로 이해하려면 요한일서를 철저히 공부해야 한다.

 

이제부터 거듭남의 징표와 증거를 순서대로 제시해보겠다. 이 책의 다른 내용은 모두 잊더라도 지금부터 말하는 내용은 절대로 잊지 말라. 이 증거 외에도 다른 여러 가지 증거를 얼마든지 소개할 수 있다. 다만 여기서는 요한일서에 제시된 증거에만 초점을 맞출 생각이다. 그 이유는 요한일서의 내용이 거듭난 자의 상태를 가장 명확하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사도 요한이 말하는 거듭남의 표징을 집중해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징표 1,

"죄를 짓지만 습관적으로 짓지는 않는다"

 

첫째, 거듭난 사람은 습관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요일 3:9).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요일 5:18).

 

거듭난 사람은 ‘습관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과 달리 거듭난 사람의 마음과 의지와 성향은 죄의 권세로부터 자유롭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행위가 죄인 줄 모르기도 하거니와 악을 저지른 후에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 사람은 죄와 다투지 않고 친구처럼 지낸다. 하지만 거듭난 뒤에는 죄를 미워하고 멀리 하며 죄에 맞서 싸운다.

 

거듭난 사람은 죄의 영향을 받을 때면 탄식하고 슬퍼하며, 죄를 가장 큰 질병으로 간주해 해방을 갈망한다. 한마디로 거듭난 사람은 죄를 기뻐하지 않으며, 죄를 방치하지 않는다. 거듭난 사람은 죄를 가증스럽게 여긴다.

 

물론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일 1:8)라는 말씀대로 거듭난 자도 얼마든지 죄를 지을 수 있다. 하지만 거듭난 사람은 진정으로 죄를 혐오한다.

 

거듭난 자의 가장 큰 소망은 죄를 짓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약 3:2)라는 말씀대로 거듭난 자도 때로 악한 생각을 하거나 그릇된 언행을 일삼을 수 있다. 하지만 거듭난 자는 거듭나지 못한 자와는 다르게 본성적으로 죄를 거부하며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잘못을 뉘우친다.

 

이것이 거듭난 첫 번 째 징표이다.

 

 

징표 2,

"구원의 근거를 행위나 공로에 두지 않는다"

 

둘째, 거듭난 사람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굳게 믿는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요일 5:1).

 

거듭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영혼을 용서하고 구원하실 유일한 구세주이시며, 인류의 구원을 위해 성부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신성한 존재라는 사실을 굳게 믿는다.

 

거듭난 사람은 자신은 구원받을 자격이 없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근거를 발견하고, 그분을 통해 자신의 죄와 불법이 모두 깨끗해졌다고 확신한다. 거듭난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덕분에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담대히 죽음과 심판을 향해 나간다.

 

물론 거듭난 사람도 두려움과 의심에 사로잡힐 수 있으며, 때로는 스스로 믿음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거듭난 사람에게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을 신뢰하며 그분을 포기하고 다른 구원자를 찾겠느냐고 묻거나 영생의 소망을 선행, 공로, 기도, 사역 및 교회 안팎에서 이루어지는 봉사활동에 두겠느냐고 묻는다면, 비록 자신이 연약하고 실수가 많지만 온 세상을 다 준다 해도 절대로 그리스도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그리스도를 가장 보배롭게 생각하고 그분만을 의지하며 굳게 붙잡겠다는 대답을 듣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것이 거듭난 두 번째 징표이다.

 

징표 3,

"여전히 불완전하고 의심하며 살지만 끊임없이 거룩을 지향한다"

 

셋째, 거듭난 사람은 의를 행한다.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요일 2:29).

 

거듭난 사람은 거룩한 사람이다. 그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며, 그분을 기쁘시게 하고, 그분이 미워하시는 일을 피하기 위해 노력한다. 거듭난 사람은 마음과 영혼과 생각과 힘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는다. 거듭난 사람은 구세주요 본보기이신 그리스도를 늘 우러러보며 그분이 무엇을 명하시든 기꺼이 복종함으로써 자신이 그분의 친구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물론 거듭난 사람도 완전하지 못하다. 사실 거듭난 사람은 그 누구보다도 먼저 자신의 불완전함을 겸손히 고백한다. 그는 자신을 괴롭히는 부패한 본성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기를 갈망하며, 자기 안에 은혜를 거스르는 죄의 법이 도사리고 있어 끊임없이 하나님을 멀리하도록 부추긴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거듭난 사람은 비록 자기 내면에 죄의 법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에 복종하기를 거부한다.

 

여러 가지 결함에도 불구하고, 거듭난 사람의 본성과 성향과 언행과 습관은 거룩함을 지향한다. 때로는 넘어지거나 잠깐 곁길로 치우치는 경우도 있지만, 거듭난 사람은 꾸준히 하나님을 향해 한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

 

영적 침체기를 보낼 때도 있고, 자신이 참 그리스도인인지 의심할 때도 있다. 하지만 거듭난 사람은 존 뉴턴처럼 “마땅히 되어야 할 사람이 되지도 못했고,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지도 못했으며, 내가 또 다른 세상에서 되고 싶은 사람이 되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나는 이전과 같지 않다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일세”라고 노래한다.

 

이것이 거듭난 세 번째 징표이다.

 

 

징표 4,

"그리스도의 참 제자들을 특별히 더 사랑한다"

 

넷째, 거듭난 사람은 같은 신자를 사랑한다.

 

“우리가…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요일 3:14).

 

거듭난 사람은 그리스도의 참 제자들을 특별히 사랑한다. 거듭난 사람은 온 인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처럼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만 그 중에서도 자기와 한 마음이 된 사람들을 특별히 사랑한다. 거듭난 사람은 그리스도처럼 극악한 죄인도 사랑하지만, 동료 신자들을 더욱더 사랑한다. 거듭난 사람은 동료 신자들과 함께 어울릴 때 가장 편안해 하며, 세상에서 훌륭한 성도들과 함께 거할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

 

세상 사람들은 지식, 명석한 두뇌, 인간적인 매력, 재산, 신분 따위를 높이 치지만 거듭난 사람은 ‘은혜’를 가장 소중히 여긴다. 따라서 거듭난 사람은 은혜가 충만하고 그리스도를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을 가장 사랑한다. 거듭난 사람은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한 가족이자 형제로 받아들인다.

 

또한 거듭난 사람에게 동료 신자는, 같은 대장의 지휘 아래 공동의 적을 상대하는 전우이자 같은 길을 걸으며 똑 같은 어려움을 겪다가 영원한 집에 당도해서 편히 쉬게 될 동반자이다.

 

거듭난 사람과 동료 신자들은 서로 이해한다. 그들 사이에는 영적 유대감이 싹튼다. 신분이나 지위나 재산 등 다른 점이 많지만 그런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백성이자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거듭난 네 번째 징표이다.

 

 

징표 5,

"세상 사람들에게 때로 특이하고 이상하다는 말을 듣는다"

 

다섯째, 거듭난 사람은 세상을 이긴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요일 5:4).

 

거듭난 사람은 세상 사람들의 견해를 옳고 그름의 척도로 삼지 않는다. 거듭난 사람은 세상의 방법과 관념과 관습을 따르지 않는다. 그는 더 이상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느냐?”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거듭난 사람은 더 이상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주위에 있는 일들에서 기쁨을 찾지 않으며, 세상 사람들의 즐거움에도 동참하지 않는다.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거듭난 사람의 눈에는 세상 사람들의 삶이 헛되고 무가치하고 무익하게 느껴진다.

 

또한 거듭난 사람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주위 사람들이 불필요하게 생각하는 일들을 하면서 만족을 얻는다. 그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아도 개의치 않고, 조롱을 당해도 포기하지 않으며, 사람들보다 하나님께 칭찬받기를 더 좋아한다.

 

거듭난 사람은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분노를 초래하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자신의 신념을 고수한다. 거듭난 사람에게 사람들의 칭찬이나 비난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거듭난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어디를 가든지 그분을 따르기로 결심한다. 그러다 보면 때로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가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거듭난 사람은 그런 상황도 마다하지 않는다. 거듭난 사람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당신은 다른 사람들과 달라. 당신의 생각은 사회적인 통념에 어긋나. "당신은 특이하고 이상해”라는 말을 듣더라도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는다.

 

거듭난 사람은 더 이상 유행이나 관습을 따르지 않는다. 세상을 즐겁게 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첫번째 목표로 삼는다.

 

이것이 거듭남의 다섯 번째 징표이다.

 

징표 6,

"자신의 영혼에 유익을 주는 사람을 친구 삼는다"

 

여섯째, 거듭난 사람은 주님이 그의 영혼을 지켜주신다.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요일 5:18).

 

거듭난 사람은 자신의 영혼을 주의 깊게 보살핀다. 그는 죄를 멀리할 뿐 아니라 죄를 짓게 하는 모든 유혹을 경계하며 사람을 사귀는 데도 매우 신중하다. 거듭난 사람은 악한 대화가 마음을 더럽히며, 선보다 악이 더 강력한 파급력을 지닌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시간을 유익하게 사용하기 위해 노력하며, 읽을 책을 선택할 때도 신중을 기한다. 그는 해로운 책이 자신의 생각을 더럽히지 않도록 주의한다.

 

거듭난 사람은 친구 관계를 맺을 때도 각별히 주의한다. 그는 친절하고 상냥하고 착하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사귀지는 않는다. 물론 그런 성품은 매우 바람직하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영혼에 유익을 주는 사람을 선택한다. 그는 일상생활의 습관이나 행동에도 신중을 기한다.

 

거듭난 사람은 인간의 마음이 거짓되고 심히 부패했으며 세상에는 악이 흘러 넘치고 마귀가 항상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그는 적의 진영으로 다니는 군인처럼 항상 단단히 무장하고 모든 유혹에 대비한다. 자기 영혼이 적진 한복판에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늘 경계하며, 겸손히 기도하면서 살아간다.

 

이것이 거듭난 여섯 번째 징표이다.

 

 

거듭남의 징표가 드러나는 정도는 개인마다 다르다

 

지금까지 거듭남의 여섯 가지 징표를 차례로 살펴보았다. 이 내용을 주의 깊게 읽고 생각하고 마음에 새겨두기 바란다. 거듭난 사람들 가운데도 이 징표가 나타나는 정도에는 개인차가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거듭남의 징표가 너무 희미하고 흐릿해서 식별하기에 몹시 어렵다. 그들의 징표를 식별하려면 현미경이 필요할 정도이다.

 

그와 달리 거듭남의 징표가 너무 뚜렷하고 확실해서 언뜻 보아도 식별이 가능한 사람들도 있다. 한 사람이 여섯 가지 표징을 모두 뚜렷이 드러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사람마다 여섯 가지 징표 가운데 다른 사람들보다 강하게 나타나는 징표가 제각기 다르다. 모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개인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는 하나 앞서 말한 여섯 가지는 거듭남의 가장 확실한 징표에 해당한다. 사도 요한은 거듭난 자의 특징을 분명히 언급했다. 거듭난 사람의 성품도 사람의 용모만큼이나 개성이 뚜렷하고 분명하다.

 

요한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해 기술한 서신에서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은 죄를 짓지 않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으며, 의를 행하고, 동료 신자를 사랑하고, 세상을 이기며, 자신의 영혼을 지킨다고 말했다.

사도 요한은 거듭남의 징표를 언급한 같은 서신에서 그런 특징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아니라고 거듭 강조한다. 이 모든 사실에 유념하기 바란다.

 

그러면 우리는 이 성경의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거듭남을 교회의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는 조건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런 성경의 가르침에 어떤 가르침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단 하나이다. 즉, 이 여섯 가지 징표가 있는 사람은 거듭난 사람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거듭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거듭난 척하지 말라

 

중생의 증거에 대한 여러 다양한 견해를 들어보자.

 

“중생의 증거는 우리의 행위와 태도에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새로워져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 판단 기준은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는 말씀에 있다. 마음이 불결하고, 손이 게을러 유익을 끼치지 못하고, 행실이 더럽고 부정하며, 부패한 본성에 이끌려 산다면 새로워진 척하지 말라. 그것은 아직도 옛 사람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홀 감독).

 

“우리의 입양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입양과 달리 단순히 외적 명칭의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는 경우에는 새로운 영과 본성을 부여받아 모든 것이 획기적으로 변화한다. 우리는 그런 변화를 통해 그리스도의 후사(상속자)로 지정되며, 초자연적인 중생의 역사를 통해 새롭게 거듭나서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된다.

우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닮게 된다. 그분의 형상이 우리의 영혼 안에서 새롭게 되살아나며, 그분의 영이 우리 안에 머문다. 우리는 그분의 영에 인도함을 받으며, 그 뜻에 따라 행동한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인 척한다. 하지만 자기기만에 빠져 있지 않은지 조심스럽게 살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지 아닌지를 구별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릇된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들 안에는 하나님의 영이 존재하지 않고, 그분의 인도를 따르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으며, 하나님의 자녀다운 성품도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성경은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고 말씀한다.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겉모습을 모방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요한은 ‘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요일 2:29)고 말했다”(레이튼 대감독).

 

“스스로 중생을 체험한 충실한 신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가운데 스스로를 속이는 이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골 3:7)라는 말을 들을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지금도 ‘여전히 그 가운데 살며 그 가운데서 행하기’ 때문이다”(대버넌트 감독).

 

 

거듭난 것은 증명할 수 있다!

 

거듭남의 징표가 있는가?

당신은 거듭남의 교리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가?

어떤 견해를 갖든 본인의 자유이지만 이 여섯 가지 징표를 갖추지 못했다면 두려워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 징표도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 거듭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헛된 공상에 불과하다. 요한의 증거는 명백하다. 그런 징표 없이는 거듭났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자녀들 사이에는 공통된 가족의 형질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그것이 없는 사람은 그분의 자녀가 될 수 없다. 거듭난 자의 내면에는 순금 또는 순은임을 인정하는 확인 도장처럼 성령의 증거가 명백히 드러나야 한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 23).

 

그런 증거가 없는 거듭남은 거짓이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

 

마찬가지로 확인할 수 있는 특징이 결여된 거듭남은 가짜이다. 오늘날 이런 사실을 마음에 깊이 새겨두어야 할 사람들이 많다.

 

 

무사안일주의의 잠에서 깨어나 거듭남을 구하라

 

거듭남의 표징이 없는 사람은 자신이 심각한 위험에 처했음을 깨닫고 무사안일주의의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지옥에 떨어져서 영원한 불행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의식하고, 지금이라도 서둘러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실 목적으로 제정하신 은혜의 수단들을 부지런히 활용해야 한다.

 

복음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열심히 성경을 읽어야 한다. 무엇보다 기도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 성령의 선물을 간절히 구해야 한다. 아직까지 자신이 거듭나지 못한 죄인임을 자복하고 통회하는 심령으로 주님께 나아가야 한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 34:18).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8, 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행 3:19).

 

거듭나기를 강청하라. 거듭나도록 씻어주시기를, 성령으로 새롭게 하시기를 절체절명으로 구하라.

 

이 과정을 따른다면 얼마든지 희망이 있다. 단순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하라. 그렇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 노력을 거부한 채 현재 상태에 만족한다면 희망은 없고 두려움만 있을 뿐이다.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롬 2:5).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그런 상태가 바로 아직 거듭나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거듭나지 못하면 구원의 축복을 받을 수 없다. 그런 사람에게는 “부디 주께서 당신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기를 바랍니다”라고 밖에 달리 해줄 말이 없다.

 

거듭남의 징표를 지닌 사람은 해를 거듭할수록 그 징표가 더욱 뚜렷해져야 한다. 잘못을 뉘우치고 더욱 충실한 믿음을 갖기 위해 노력하며, 세월이 흐를수록 더 거룩해지고, 세상과의 싸움에서 더 큰 승리를 거두며, 형제에게 진정한 사랑을 베풀고, 신중하게 자신의 영혼을 지켜나가야 한다. (장재언)

 

 

저자 J. C. 라일에 대한 소개

 

 

J. C. 라일(John Charles Ryle, 1816-1900)은 청교도의 영성을 소유한 지성적 목회자이다. 일찍이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신학을 전공하여 목회자가 되었다. 영국 교회 내의 교리적 혼탁함을 ‘오직 성경으로’라는 정신으로 개혁하는 일에 힘썼다. 그는 세례와 교인 등록이 거듭남을 자동으로 보장한다는 영국 교회 내의 의식주의자들의 견해에 맞서, 거듭남은 교회 의식이나 성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되는 것임을 역설하였다.

 

그의 이 책은 교회가 거듭남에 대해 침묵하고, 교회의 의식과 제도에 충성하면 자동으로 천국 백성이 된다고 여겼던 시대에 하늘에서 떨어진 거룩한 폭탄이었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J. C. 라일에 대해 “그는 스펄전과 더불어 쌍두마차를 이끌며 영국과 세계에 복음을 전파한 청교도 목사로서 존경과 찬사를 받아야 한다”고 극찬했다. 라일은 철저한 청교도적 개혁주의자로서 복음적 교리를 신봉하며 원칙과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신앙에 관한 실제적인 책들을 많이 펴낸 저술가이자 열정적인 설교자요 충실한 목회자였다. 그가 저술한 책들은 100년이 넘은 지금까지 끊임없이 출판되고 있으며,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그 영적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그는 오직 복음으로 사람들을 거듭나게 하는 일이 설교자로서, 기독교 저술가로서 해야 할 본분임을 깊이 자각하였다. 그래서 그의 설교와 책의 중심 주제는 항상 복음, 곧 사람을 회개시켜 구원 얻게 하는 일이었다.

그는 성령의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개인의 심령 부흥, 교회의 부흥이 성령으로만 가능함을 믿어 늘 성령의 불을 구하였다. (언)

 


 

 

 

 

 

 

 

 

 

 

 

 

 

 

 

1. 일꾼(사역자)을 세우는 지도력
 

성장하는 교회와 성장하지 못하는 교회의 차이점을 가장 잘 나타내는 부분은 사역자를 세우는 일이다.

 

성장하는 교회의 지도자는 사역을 위해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기회와 권한을 권한을 부여하는 일에 중점을 둔다. 지도자는 평신도들을 자신이 설정해 놓은 목표나 자신의 비젼을 이루는데 필요한 조력자 정도로만 여기지는 않는다. 오히려 피라밋형의 권위 구조를 거구로 뒤집어서 리더가 교인들을 섬기며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신 영적 잠재력을 개발하여 쓸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런 목회자는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들을 준비시키고, 격려하고, 동기를 부여하고, 훈련시키는데 중점을 둔다.

 

2. 은사 중심적 사역
 

은사 중심적 접근에는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어떤 그리스도인이 어떤 사역을 감당할 것인가를 스스로 정하였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교회의 지도자들의 역할은 교인들이 자신의 은사가 무엇인지를 발견하도록 도울 뿐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은사를 따라 섬길 때, 인간의 힘으로 하는 부분은 줄어드는 대신 성령의 능력 안에서 이뤄지는 일은 더 많아지게 된다.
 

그러므로 보통 사람들도 은사를 따라 사역하게 되면 놀랍고 대단한 일을 해 낼 수 있게 된다.
 

3. 열정적 영성
 

교회 성도들이 불붙어 있는가?

성도들이 기쁨과 열정으로 헌신과 믿음의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교회 성도가 기도하는데 얼마만큼의 시간(양)을 보내느냐 하는 것은 그 교회의 질적, 양적 성장에 미미한 영향 밖에는 주지 못한다.

반면 그 기도가 영감있는 경험이었나 하는 것은 교회의 질적, 양적 성장과 깊은 관련이 있다.
 

개인적으로 성경을 보는 것과 개인의 영성에 영향을 주는 다른 요소들의 조사 결과도 이와 비슷하다.

 

4. 기능적 조직
 

지도자는 단지 어떤 조직을 이끌 뿐 아니라 또 다른 지도자들을 양성해야 한다. 이와 같은 견해를 수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교회가 스스로 움직이는 자생 조직이 이뤄질 때까지 계속해서 교회 조직을 평가 개선해 나가게 된다. 이 기준을 도달하는데 장애가 되는 요인들 (예를 들면, 일할 수 있도록 여건 조성이 안된 체제, 동기 부여가 안 되는 재정적 관행 등)은 없애든지, 아니면 바꿔야 한다.
 

이와 같은 계속적이고도 조직적인 자동갱신의 과정을 통해 전통주의적 타성들 중 많은 부분을 제거할 수 있다.
 

5. 영감있는 예배
 

예배가 신자 중심으로 드려지거나, 불신자 중심으로 드려질 수 있고, 전통적 스타일로나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드려질 수도 있고 사용되어지는 언어가 거룩하거나 세상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 성장과 무관한 것이다. 교회 성장에 있어서 결정적인 요인으로 밝혀진 다른 기준이 있다면 그것은 예배가 과연 성도들에게 영감 넘치는 예배인가? 라는 점이다.
 

영감이라는 말은 인스피라티오(inspiratio)라는 단어의 뜻에는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오는 영감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단지 관념적인 성령의 임재가 아니라 성령이 진정으로 역사할 때에 예배의 분위기는 물론 예배 절차에 구체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그래서 진짜 영감있는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교회 가는 것이 즐겁다고 말한다.
 

6. 전인적 소그룹
 

소그룹의 계속적인 번식은 교회 성장의 원리가 된다.

소그룹이 단지 성경 구절을 암송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구절의 메세지를 매일의 삶에 적용시키는 전인적 소그룹이 되어야 한다. 전인적 소그룹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영적 은사들을 가지고 다른 사람 섬기기를 배우는 자연스러운 장소가 되어야 한다.
 

소그룹의 계획적인 번식을 위해 필요한 것은 일상적인 소그룹 활동의 부산물로 생기는 리더들이 계속 세워지고 개발되는 일이다. 제자도의 의미는 전인적 소그룹이라는 배경 안에서 실제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 제자도란 삶을 나누는 것이지 추상적 개념을 반복적으로 배워 나가는 것이 아니다.
 

7. 필요 중심적 전도
 

모든 그리스도인은 지상 명령을 자신에게 주어진 자신에게 주어진 구체적인 은사들을 사용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진리가 곧 모든 사람이 전도자(은사적 개념으로서의 전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지 않는가! 하나님께로부터 복음을 전하는 영적 은사를 부여 받은 사람만이 전도자가 될 수 있다.
 

피터 와그너 박사는 모든 그리스도인 중 10% 이하의 사람들에게만 전도의 은사가 있다고 한다. 전도의 은사가 있는 사람과 하나님께서 다른 분야의 일로 부른 사람을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전도자라고 한다면 정말 전도의 은사를 가진 10%의 사람을 찾아낼 필요가 없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되면 전도의 은사가 없는 90%의 사람들에게는 그 부담이 너무 커지는 반면 전도의 은사가 있는 10%의 사람들은 별로 도전을 못 받게 된다.
 

높은 질적 지수를 갖고 있는 교회의 지도자는 누가 전도의 은사를 갖고 있는지를 알고 그들에게 맞는 사역을 맡긴다.

자신의 은사를 사용해 자기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불신자들을 섬기고 ,그들이 확실한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도우며, 또한 그들이 가까운 교회와 연결되도록 돕고 격려하는 일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해야할 의무다.
 

교회의 성장의 열쇠는 교회가 전도의 초점을 불신자들이 당면한 문제와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에 맞추는데 있다. 이러한 필요 중심적 접근 방식은 불신자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주지 못함으로 불가피하게 불신자들에게 부담과 압력을 느끼게 하는 인위적인 프로그램과는 다르다. 불신자들과 새로운 친분관계를 맺으라고 독려한다고 해서 교회 성장이 저질로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미 갖고 있는 관계를 전도를 위한 기회로 사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8. 사랑의 관계
 

교회의 사랑 지수는 얼마인가?

교인들이 교회의 공식적인 모임 외에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함께 보내고 있는가?
얼마나 자주 서로를 식사에 초대하며, 얼마나 자주 만나 차를 마시는가?

교회는 칭찬하는데 얼마나 너그러운가?

교회 목사는 자기 교회 평신도들의 개인 문제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가?

교회 안에 얼마나 웃음이 있는가?

사랑 지수? 가 어느 정도인가?
 

웃음이 넘치는 교회 생활과 교회의 질적 양적 성장 사이에는 중요한 관련이 있다. 진실하고 실제적인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자석과도 같은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 입으로 전달하는 것에 그치는 전도 프로그램에 비해 훨씬 효과적이다.

사람들은 우리가 사랑에 대해 얘기하는가를 듣기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정말 어떻게 역사 하는지 경험하기를 원한다.

교회가 방법 지향적이 되면 될수록, 사랑이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살기는 더 어려워진다. 방법 지향적 사고 방식은 믿는 자의 삶을 일차적으로 교리와 도덕 수칙을 지키는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 그리스도인들끼리 서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게 된다.

사랑은 성령의 열매이다.
사랑이 부족한 곳에서는 어디서나 교회가 더 성장할 수 없도록 심각한 방해를 받는다.(언) 

 

 

 

경기 양평군 강상면 병산교회는 2010년 4월 완공되었다.

교회의 설계자인 권문성 성균관대 교수(51)는 낮은 교회로 설계했다.

 

 

 

 

 

 

 

 

 

 

 

 

 

 

 

 

 

 

 

 

 

 

 

 

 

 

 

1, 가슴에 기쁨을 가득 담아라. 담는 것 만이 내 것이 된다.
2, 좋은 아침이 좋은 하루를 만든다. 하루를 멋지게 시작하라.
3, 얼굴에 웃음꽃을 피워라. 웃음꽃에는 천만불의 가치가 있다.
4, 남이 잘되도록 도와줘라. 남이 잘 되야 내가 잘된다.
5, 자신을 사랑하라. 행운의 여신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6, 세상을 향해 축복하라. 세상도 나를 향해 축복해준다.
7, 노느니 하나님께 기도하라. 기도는 소망성취의 열쇠다.
8, 힘들다고 고민 말라. 정상이 가까울수록 힘이 들게 마련이다.
9, 항시 준비하고 살아가라. 준비가 안되면 들어온 떡도 못 먹는다.
10, 세상의 그림자를 보지 말라. 몸을 돌려 밝은 태양을 바라보라.


11, 남을 기쁘게 하라. 10배의 기쁨이 나에게 돌아온다.
12, 끊임없이 베풀어라. 샘물은 퍼낼수록 맑아지기 마련이다.
13, 안될 이유가 있으면 될 이유도 있다. 될 이유만 말하라.(긍정적 사고)
14, 약속은 꼭 지켜라. 사람이 못 믿는 사람 하늘도 못 믿는다.
15, 불평을 하지 말라. 불평은 자기를 파괴하는 자살폭탄이다.


16, 어디서나 당당 하라. 기가 살아야 운도 산다.
17, 기쁘게 손해를 보라. 손해가 손해만은 아니다.
18, 요행을 바라지 말라. 대박을 노리다가 쪽박을 찬다.
19, 밝고 힘찬 노래만 불러라. 그것이 성공 행진곡이다.
20, 슬픈 노래를 부르지 말라. 그 노래는 복 나가는 노래이다.


21, 젊고 푸른 꿈을 잃지 말라. 젊고 푸른 꿈은 행운의 청사진이다.
22, 감사하고 또 감사하라. 감사하면 감사할 일이 계속 생겨난다.
23, 남의 잘함만을 보고 박수를 쳐라. 그래야 자신도 복을 받는다.
24, 좋은 말만 사용하라. 좋은 말은 자신을 위한 기도다.
25, 희망의 꽃을 피워라. 희망의 꽃만이 희망의 열매를 맺는다.


26, 신용을 잃지 말라. 사람이 못 믿는 사람 하늘도 못 믿는다.
27, 돈 때문에 사람을 잃지 말라. 돈이 재산이 아니라 사람이 재산이다.
28, 마음을 활짝 열어라. 마음을 열어야 행운이 찾아온다.
29,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오늘 승차권은 오늘만 유효하다.
30, 집안 청소만 하지 말라. 마음이 깨끗하면 어둠이 깃들지 못한다.


31, 끊임없이 완숙하라. 완숙이 안되면 반숙되게 마련이다.
32, 좋은 기억만 되살려라. 좋은 기억 증폭되면 좋은 일만 생겨난다.
33, 걱정의 노예가 되지 말라. 걱정할 일이 있으면 기뻐할 일도 있다.
34,기왕이면 열정을 가지고 살아라.

    뜨거운 열정의 삶이 모든 것을 창출한다.
35, 즐거운 마음으로 잠을 자라. 밤사이에 행운으로 바뀌어진다

 

 

 

 

 

 

 

 

 

 

 

 

 

땅 속으로 물줄기가 떨어지는 폭포가 화제다.

땅 속으로 떨어져 모습을 감쪽같이 감추는 폭포가 눈길을 모은다.

해당 폭포는 아이슬란드의 유명한 관광지인 굴포스.

굴포스는 흐비타 강이 흘러오다 32m아래 협곡으로 떨어지는

장관을 보여주는데 떨어지는 물의 양이

1초당 80㎥~140㎥ 정도라고.


 

 

 

 

 

 

 

 

 

주민 학살한 전직 장군에게 징역 6060년 선고

 

 


주민대학살에 참여한 전직 장군이 서기 8072년까지 징역을 살게(?) 됐다.

1982년 발생한 도스 에레스 주민학살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기소된

중미 과테말라의 전 장군 페드로 피멘텔 리오스에게

징역 6060년이 선고됐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그는 도스 에레스 주민학살사건과 관련해

실형이 선고된 5번째 군출신이다.

사건은 1982년 12월 7일 발생했다. 과테말라가

게릴라와 한창 내전을 겪고 있던 때다.

군은 도스 에레스라는 지역에 살인병기로 불리던

엘리트 특수부대원 17명을 투입했다.

잃어버린 탄환을 찾기 위해서였다. 과테말라 군은 같은 해

 10월 22일 게릴라들의 공격을 받고 탄환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마을에 들어간 군은 학살자로 변했다.

 특수부대는 주민들이 게릴라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남녀를 분리한 뒤 학교와 성당에서 무참히 학살했다.

광란에 빠진 군의 손에 주민 201명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다.

당시 24세 청년으로 학살에 참여한 리오스는

내란이 종식된 후에도 군에 몸담고 있다가 법의 심판대에

서게 되자 미국으로 도주했다.

캘리포니아 산타아나에서 노무자로 일하며 숨어 지내던

그는 그러나 결국 신분이 드러나 과테말라 정부의

요청에 따라 신병이 인도돼 법정에 섰다.

재판부는 “주민사망자 1명당 징역 30년,

반인륜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30년을 추가해

6060년 징역을 선고한다.”며 중형을 내렸다.
 

 

승객 버리고 도망친 伊선장, 최대 2,697년 형?

 

 

 


지난달 이탈리아 토스카나 제도 인근 해상에서 좌초된

유람선을 버려두고 도망친 선장에게 최대

2,697년형이 선고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이탈리아 등 현지언론은 “초호화 유람선 코스타 콘코르디아호

선장 프란체스코 셰티노(52)에게 탑승객1명 당 8년형의 책임을 물어

총 2,697년형이 선고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셰티노 선장은 지난달 13일(현지시간) 배가 좌초된 후

남아있던 300여명의 승객과 선원을 버리고 도망쳤다.

이 사고로 탑승객 17명이 사망했으며 17명이 실종돼

사실상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현지 검찰에 따르면 셰티노 선장이 당시 버리고 달아난

탑승객 1명당 8년형의 선고를 가정하면 기본적으로 선장은

사망자를 포함 총 2,672년형을 받는다.
여기에 과실치사 혐의와 좌초 책임이 인정되면

각각 15년형과 10년형이 더해져 총 2,697년형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한편 셰티노 선장은 현재 가택연금 상태로 조사를 받고 있으며

지난 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검찰은 도주할 위험과

증거조작의 가능성을 우려해

교도소에 수감해 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미인대회 우승한 아프간 망명여성 ‘인생역전’

 

 


어렸을 적 내전으로 혼란스러운 고향 아프가니스탄을

간신히 탈출한 뒤, 성인이 되어 미인대회에 우승한

여성의 인생역전 스토리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더 선의 보도에 따르면, 미스 잉글랜드로

뽑힌 사바바 파즐(22)은 18년 전 내전의 혼란을 피해

목숨을 걸고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한 망명자다.
파즐은 “어렸을 때부터 나의 뿌리와 이곳(영국)에서의

생활을 균형 있게 맞추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과

영국의 문화는 확연하게 달라 힘든 적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태국어린이재단에서 기금을 모으는 활동을 한 것도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는데서 겪은 자신의 어려움을 토대로 한 선택이었다.

그녀는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한 미스 런던 콘테스트는

자선활동을 펼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을 뿐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 안에서 힘겨워 하는 젊은 사람들의 롤 모델이

될 수 있는 찬스였다.”면서 “이번 콘테스트에서 우승한 것이

내게는 매우 큰 의미를 가져다 줬다.”고 말했다.

로얄할로웨이대학교(Royal Holloway University in London)에서

미디어예술을 전공하고 지난 해 여름 졸업한 파즐은

망명자라는 ‘신분’을 뛰어 넘어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여성으로서 새 인생을 맞이했다.

또 한 번 리치몬드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는 그녀가

오는 6월 미스 영국 선발대회 본선에서 우승을 차지해

진정한 인생역전을 이룰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날 노회에 신규 가입한 두 명의 목회자들

 

 

6일 열린 미국장로교(PCUSA) 동부한미노회 제61차 정기노회에서는 “동성애를 찬성하느냐”는 질문은 금지됐다. 동부한미노회에 가입하고자 하는 목회자에게 동성애에 대한 입장을 묻는 것은 교단이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성애 찬성 혹은 반대를 표명하는 답변도 금지된다. 결국 이날 노회를 가입한 김세형 목사는 “전 아내와 딸이 있습니다”라는 말로 성적 지향성을 밝혔다. 동성애 대한 언급은 피한 채, 가정을 갖고 있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한 것이다. 노회원들은 김세형 목사의 재치있는 답변에 한바탕 웃으며 안심한 표정으로 노회 가입 절차를 마무리 지었다.
 

이러한 모습은 동성애에 대한 반대입장이 분명한 동부한미노회에서도 벌어지는 일이다. 동성애자가 목사안수를 받기 원하거나 동성커플이 결혼하길 원해서 PCUSA 교단과 교회를 찾을 경우, 동성애를 이유로 이를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날 PCUSA 동부한미노회로 새롭게 가입한 목회자는 플로리다 게인즈빌한인장로교회에서 온 김충홍 목사와 한인 2세인 김세형 목사였다. 김충홍 목사와 김세형 목사는 이날 노회가입에 대한 노회원들의 허락으로 동부한미노회 소속 목회자가 됐다.


이날 노회원들은 이들의 노회가입과 관련한 논의에서 동성애에 대한 성향을 물었다. 한 노회원은 “동부한미노회 노회원 가운데 목사는 목회위원회를 통해 동성애에 대한 고백을 꼭 하도록 해야 한다”며 “가장 예민한 문제이고 동성애 문제로 인해 개 교회에 어려움이 실질적으로 발생할 수 있기에 노회가 그것을 물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원로급 한 노회원은 “새롭게 노회에 가입하는 목회자가 동성애를 찬성하는지 하지 않는지 어떻게 아느냐. 신앙고백서에도 그 내용은 나와 있지 않다”며 “동성애에 대한 질문을 특별히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런 요청에 김득해 목사는 “총회에 가본 분들은 알겠지만 동성애에 관한 내용은 군대와 같이 ‘Don't ask, don't tell’이다. 본인이 스스로 말할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목회하면서 당신이 동성애자냐고 물어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봄을 이고 나온 수선화

 

 

 

 

 

 

 

 

 

 

 

 

미국 컬럼비아대 총장을 지낸 니콜러스 머레이는 세상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소수의 사람이다.


세상의 중요한 일은 언제나 이 소수 몇 사람이 하게 된다.

그래서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미국을 이끌어갈 700명을 달라고 기도했다.
 

둘째는 일을 그르치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어느 사회나 일을 그르치는 부류가 존재한다.

토인비 교수는 몇 사람의 정신병자 때문에 온 인류가 망한다고 했다. 몇 사람의 독재자, 사기꾼, 아첨자, 이기주의자들이 그 부류이다.
 

세 번째 사람은 잘못된 것을 보고도 수수방관하는 부류다.

 

분명히 잘못된 것을 알고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방관하는 사람,
나 몰라라 하는 이기주의자들 때문에 세상이 망가지고 있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블로그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블로그는 나에게 어떤 것을 주고 있다고 생각 하십니까?

블로그를 통해서 삶에 만족도가 높아지고 있는지요?

 

★블로그를 다른 사람도 하니까 나도 해보는 것인가요?

★블로그를 안 하면 심심하니까 하는 것인가요?

★요즘은 SNS가 대세니까 하다못해 블로그 운영자 정도는 되어야

학교나 직장에서 알아주고, 취업에 유리해서 블로그 운영을 하나요?

★명함에 무슨 블로그를 운영한다는 내용을 박아야 멋지니까 블로그를 운영 하나요?

★블로그를 그냥 되는대로 아무런 생각 없이 운영을 하고 있지는 않나요?


 

만약 위에 빨간 별표 중에서 하나라도 해당이 되는

블로거(Blogger)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블로그의 진정한 가치를 찾고  왜 블로깅을 하는가....

어떻게 블로깅을 할 것인가를 늘 고민하여야 할 것 있니다.

특히 방문자를 만족시키는 것이야 말로 올바른 블로그 운영일 것인데 말입니다.
 

 

 

 

먼저 블로그의 가치는 어떠한 유형의 자산을 만들어 내는 도구가 아닌

무형의 자산에 대한 무궁무진한 효과를 얻을 수가 있어야만 진정으로

블로그의 참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는 것을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몇 년 동안 기염을 토하며 블로그계를 호령하던 사람도 어느 날부터인가 기운이 빠져서 '이제는 블로그도 못해먹겠다'는 둥 하면서 블로그를 떠나려는 사람은 블로그의 가치를 미쳐 파악하지 못하고, 어떤 유형의 자산만을 좇다 보니 결국은 실망감을 느끼게 되면서 블로그 운영을 스스로 포기하는 안타까운 경우가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를 돈 벌이의 도구로 보면서 블로깅을 한다면 그 벌이가 시원찮아 지면 결국 블로그를 통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블로그를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를 보여주기만을 간절히 바라면서 블로깅을 하고 있다면 방문자가 줄어들게 되는 순간 역시 실망을 하면서 블로그에 대한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어 방치하게 되거나 떠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블로그의 참 가치는 무엇일까?

 

우선 무형의 자산을 통해서 자신의 인격 도야와 자기 수양을 목적으로 삼는다면 블로그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우치게 될 것입니다. 좀 거창한가요?

블로깅을 통해서 소망의 힘을 찾고 자신을 돌아보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본인이 쓰는 글을 통해 누구보다 자기자신이 깨우침을 받고 자기 발전의 기쁨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웃 블로그를 방문해서는 수없이 많은 종류의 정보를 얻게 되며

한 차원 높은 마음을 다스리는 글을 접하면 역시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면서 깨닫는 것이 많을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돈 주고도 살수 없는 귀한 마음의 양식을 매일 얻게 된다는 이야기 입니다.

 

뿐 아니라 자기 사역의 보고서가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기의 하는 일을 알려 기쁨을 공유하는 거지요.  기록으로 남겨 둘 수 도 있고요.

지금은 지식의 공유시대입니다. 좋은 정보와 데이터를 블로그에 올려 공유하면서 행복한 세상을 일구어나가는데 일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블로그 한 번 잘 해봅시다.(언) 

 

 

 

 

 

 

 

 

위 그림을 클릭하시면

세계 각 나라의 언어를 연습하는 사이트가 열립니다.

 

 

 

 

 

 

 

 

 

 

 

 

 

 

안데르센은 덴마크 오덴세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 문학에 소질을 가진 똑똑한 아이였지만 11살 때 아버지가 스웨덴과의 전쟁에서 병을 얻어 숨지는 바람에 옷가게에서 잡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안데르센은 15세 때 배우가 되려고 무작정 코펜하겐으로 가서 우여곡절 끝에 왕립덴마크극장의 합창단에서 소프라노를 맡습니다.

 

그러나 변성기(變聲期)가 와서 쫓겨날 처지에 몰렸다가 우연히 그곳에서 시를 쓰게 돼 능력을 발휘합니다. 이 무렵 안데르센은 후원자인 요나스 콜린을 만나서 공부를 하게 되고 마침내 ‘동화의 아버지’ 자리에 오릅니다.

 

안데르센은 평생 어머니의 말을 가슴에 새겨두었다고 합니다. 어릴 적 글쓰기를 좋아한 그에게 어머니는 ....

 “한스야, 아름답게 핀 꽃 옆의 싹이 지금은 볼품 없지만 언젠가 아름다운 꽃을 피울게다”며 등을 두드려주며 격려했다고 합니다.

 

안데르센은 “내 인생은 멋진 이야기다. 그 어떤 착한 요정이 나를 지켜주고 안내했다 하더라도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격려가 인생의 보약입니다.(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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